단편소설「진보의 전초기지」“( An Outpost of Progress”)가 수록돼 있는 단편집『불온한 담화들』(
콘래드는“내가 글을 쓰는 동안, 당시의 온갖 쓰라림, 내가 본 모든 것의 의미에 관해 갈피를 잡지 못했던 온갖 놀라움, 박애주의를 가장하는데 대한 온갖 의분이 다시 한 번 나와 함께 있었다.”(Karl 294)라고「진보의 전초기지」의 창작 경험을 설명한다. 콘래드가 인간적 성숙의 결정적인 과정에 관해“콩고 에피소드 이전에 자신은 그저 동물이었을 따름이었다.”(Sherry 345에서 재인용)라고 고백하는데, 이는“자신이 부딪쳤던 삶의 온갖 다양성을 거의 전혀 논리적으로나 곰곰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의미였다”(Garnett 195). 선원 콘래드가 소설가 콘래드로 바뀌는데 있어서 콩고자유국 여행이 윤리적 각성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진정한 변모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콘래드가 콩고자유국 여행의 경험을 소재로「진보의 전초기지」를 쓰고 나서 다시『어둠의 핵심』으로 쓴 이유를『어둠의 핵심』의「저자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콘래드는『어둠의 핵심』의 내용이「진보의 전초기지」의 내용보다“그 사례의 실제 사실을 약간 (게다가 아주 약간일 뿐이지만) 넘어서 더 밀고 나간 경험”이라고 정의하는데, “독자들이 마음과 가슴에서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는 (내가 믿기로는) 완벽하게 적법한 목적을”생각한다면「진보의 전초기지」에서의 작업이 불만족스러웠다는 고백이다. “성실한 채색의 문제”라는「진보의 전초기지」의 서술전략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어둠의 핵심』의 창작을 위해서는 “전혀 다른 기교”를 발굴해내야 했다는 보고인 것이다.2
본사의 전무이사가 영업소장 카에르츠(Kayerts)의 자살 장면을 발견하는「진보의 전초기지」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다.
바로 이 장면이 산출해낸 독서효과에 대한 불만족이 콘래드로 하여금『어둠 의 핵심』에서 콩고자유국에서의 경험을 다시 쓰게 했던 것이다. 위에서 인용된 『어둠의 핵심』의「저자의 주」에서 콘래드는“마지막 음이 울린 뒤에 공중에서 떠돌다가 귀에 남아 있게 될 것으로 내가 희망했던 불길한 울림, 나름대로의 음조, 계속되는 진동이 저 음산한 주제에 제공돼야 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콩고자유국에서의 쓰라린 경험이란 음산한 주제는『어둠의 핵심』에서도 유지되겠지만 콘래드는 불길한 울림이 나름대로의 음조를 갖고 계속되는 진동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진보의 전초기지」와는 전혀 다른 서술전략이『어둠의 핵심』을 위해서 발견됐어야 했다는 말이며, 이러한 콘래드의 노력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시피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둠의 핵심』은 콘래드를 헨리 제임스(Henry James)와 더불어 영국 모더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만들었는데,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보편적인 서술 관습이 었던 연대순의 연속이란 선조성(lineality)을 벗어나는 서술 기법의 발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모더니즘은 리얼리즘에 대한 반작용이며 리얼리즘의 보수적 가치관에 대한 반란이다. 콘래드 소설의 전개 과정이란 관점에서 설명하자면「진보의 전초기지」의“성실한 채색”이라는 리얼리즘 서술전략과는“전혀 다른 기교”인 모더니즘 서술전략이『어둠의 핵심』을 위해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진보의 전초기지」의 리얼리즘을 분석하기 위해 이 단편소설의 첫 부분을 읽어보자.
There were two white men in charge of the trading station. Kayerts, the chief, was short and fat; Carlier, the assistant, was tall, with a large head and a very broad trunk perched upon a long pair of thin legs. The third man on the staff was a Sierra Leone nigger, who maintained that his name is Henry Price. (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적 저자(the omniscient author)의 시점으로 쓰인 것은 분명하다. 독자들은 독서 행위 중에서 저자의 마음 상태를 추정한다기보다 텍스트 내에 있는 저자의 의도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무대 관리자, 손가락 인형을 놀리는 사람 또는 조용히 손톱에 칠을 하고 있는 무심한 신이든지 간에 무대 뒤에 서 있는 저자라는 암시적인 그림”(Booth 147)으로 제시되는 저자의‘두 번째 자아’이며 텍스트의 디자인과 텍스트가 고수하는 가치관과 문화적 규범에 책임을 지는 암시적 저자(the implied author)를 읽어낼 수 있다. 「진보의 전초기지」의 등장인물들인 카에르츠와 칼리에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적인 전향1을 하였으며, 그리하여 사회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제국주의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데 박지향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듯이 이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감지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거의 마비시켰다.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자세는 리얼리즘의 보수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데, “진보의 전초기지”라는 제목 자체가 근대적 진보의 가치관을 옹호하고 있다.
「진보의 전초기지」의 리얼리즘에 대비되는『어둠의 핵심』의 모더니즘은 이중편소설이 액자양식(額子樣式)을 사용하면서 테두리 화자(the framed narrator)라고 명명할 수 있는 1인칭 화자(the first-person narrator)에 의해 쓰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규범과 행위가 암시적 저자의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화자. (기호, 판단, 도덕심 등) 가치관이 암시적 저자의 것을 벗어나는 화자”(Prince 101)인‘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데에서 드러난다. 『어둠의 핵심』의 테두리 화자는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는「진보의 전초기지」의 전지적 저자 시점과 달리 이데올로기적인 전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어둠의 핵심』의 앞과 뒤에 있는 템스 강에 관한 유사한 묘사 두 개를 비교해보면 테두리 화자의 제국주의에 대한 신념의 약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둠의 핵심』의 앞부분에는 진취적인 템스 강의 풍경 묘사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있는 거의 똑같은 장면의 묘사를 읽어보고 첫 번째 것과 비교해보자.
마지막 부분의 템스 강의 묘사 장면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어둠의 핵심”이 나온 것을 보면 테두리 화자의 심리적인 태도의 변화가 이 작품의 핵심 주제를 반영한다. 이런 종류의 심리적인 변화는 충분한 비평적 해석을 요구하지만 만족스러운 해명이 작품 속에서 제공되지 않는다. 단지 말로우(Marlow)의 담화의 강력한 영향력에 관한 테두리 화자의 고백이 단 한 번 있었는데, 그것도 다음과 같이 아주 희미한 것이었다.
테두리 화자가“희미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며 그러한 감정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테두리 화자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이유는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안정적이었던 암시적 저자의 서술 차원이 실제 작가나 독자의 인식론적 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을 반영하도록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테두리 화자의 불안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로우의 담화를 자세히 읽어야한다. 왜냐하면 대영제국이“지구의 어두운 장소 중 하나”라고 갑자기 말하며 시작하는 말로우의 담화가 템스 강의 썰물 위에 떠도는“인간의 꿈, 자치령의 씨앗, 제국의 싹”등 대영제국의 위대한 역사에 관해서 독자가 바로 직전에 읽었던 테두리 화자의 제한된 통찰력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어둠의 핵심』의 액자양식에서 형식적으로는 테두리 화자의 이야기가 말로우의 담화를 감싸고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말로우의 담화에 의해서 테두리 화자의 이야기가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어둠의 핵심』이 모더니즘의 대표작품인 이유는“문학 자체에 대하여 자의식을 느낄 뿐만 아니라 문학의 표현 수단인 언어에 대해서도 자의식을”(김욱동 144) 다음과 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우의 담화의 의미는 잘 들여다보면 테두리 화자의 이야기를 뛰어넘어서 “안개 같은 후광”처럼 드러난다. 액자양식의 형식상 말로우의 담화 내부에 커츠(Kurtz)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것도 테두리 화자와 말로우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의미상으로는 커츠의 에피소드에 의해 말로우의 담화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커츠의“에피소드의 의미가 인처럼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어서 담화를 감싸고”있다는 주장이 바로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로우의 통찰력이 커츠의 것보다 못해서 테두리 화자가 말로우의 담화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로우는 커츠의 에피소드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테두리 화자의 극적인 심리 변화가 말로우의 담화에 의해서 일어났고, 그 원인이 된 말로우의 극적인 심리 변화는 커츠의 에피소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자신과 유사하게 내부영업소의 소장이었던「진보의 전초기지」의 카에르츠를 비롯하여『어둠의 핵심』의 중앙영업소의 지배인 등과 달리 커츠가 말로우의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말로우에게 극적인 심리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검토해야 한다. 중앙영업소의 지배인은 커츠의 사고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가한다.
지배인은“너무 바보 같아서 아예 잘못될 리가 없을 수도 있고, 또 너무 둔해서 어둠의 세력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커츠의 내부영업소의 울타리 기둥에 흑인의 오그라든 머리들이 매달려 있다거나, 커츠가 상아를 획득하기 위해 다른 부족을 무력으로 공격했다거나 또는 커츠가 증기선에서 몰래 도망쳐서 흑인부족에게 되돌아가려고 했다는 사실이주는“도덕적 충격”(
콘래드는『어둠의 핵심』의 소설 세계가「진보의 전초기지」와 유사하며 적용범위가 조금 더 넓어지고 등장인물에 관해 덜 집중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지만, 지금까지 검토한 바에 의하면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의 서술전략의 대전환이었다.2
커츠를 만나기 전까지 벨기에의 본사에서 콩고의 지역본부를 거쳐 중앙영업소까지 가는 말로우의 여행을 묘사한『어둠의 핵심』의 제1부는 콘래드의 초기창작계획에 비교적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진보의 전초기지」보다 묘사가 자세하지만 비슷하게 사실주의적이다. 식민정책이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비효율성과 사리사욕이란 개인적 차원의 범죄적 문제점이란 관점에서 콩고의 경험이 묘사되고 있다. 프랑스 군함의 무모한 함포 사격, 지역본부의 비효율적인 철로 개설 작업과 물자의 낭비, 중앙영업소의 무능력 등이 냉소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지역본부 주임 회계사의 단정한 모습과 질서정연한 업무 태도가 제시되는데, 식민정책의 비효율적 혼돈 속에서 만난 이런 기적 같은 모습은 그가 일하는 바로 옆에서 죽어가며 신음하는 환자와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그늘에서 무모하게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상황과 대비되면서 주임회계사의 개인적 성취는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사리사욕은 콩고식민정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중앙영업소의 순례자들과 엘도라도 원정 탐험대가 아무리“금고를 터는 도둑놈들”(
친구 그래함(Graham)이『어둠의 핵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콘래드는“제7의 천국에 있는”것 같으며“정말로 내게 축복을 내린 것”이라고 감격해하면서도, “2회의 연재가 더 남아 있는데, 그대가—아무리 그대라도!— 놓쳐버릴 수 있는 이차적인 개념들로 사상이 싸여”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Watts: 1969, 116). 노동당 국회의원이란 현실정치인이었던 그래함이 선호했던『어둠의 핵심』의 제1부에서는 비효율성과 사리사욕이란 개인적 차원의 국면에서 제국주의가 사실주의적으로 비판되고 있다. 그런데 콘래드는 이것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진정한 비판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제2부와 제3부에서는 커츠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면서 다층적인 서술 구조를 의도적으로 동원한다. 콘래드의 초기 창작계획에서 언급된 제목인『어둠의 핵심』(
약혼녀와의 약혼을“그녀의 집안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았고”(
말로우의 이런 표현은 커츠 개인에 관한 애정 어린 관심의 표명이 결코 아니다. 말로우의 담론은 커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라기보다 과학적인 흥미의 산물이었다. 말로우는 콘래드 자신이 일원이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콩고식민 정책을 과거 로마의 영국 정복과 비교하면서 열등한 종족들을 정복하고 착취하는 아름답지 못한 행위를 속죄해주는 것은“이념”(
테두리 화자가“희미한 불안감”을 느꼈던 이유는 자신보다 통찰력이 심오한 말로우의 담화에 영향을 받아 대영제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있어서 위대한 역사가 아니라 어둠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극적인 심리 변화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로우도 이와 유사하게 커츠와의 만남이 있은 뒤에 대영제국의 수도인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다음과 같이‘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말로우에게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런던의 일반 대중에 대한 자신의알 수 없는 분노를 분석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고된 여행의 후유증일 것이라고 치부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테두리 화자가 말로우의 담화에 영향을 받아 대영제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극적으로 바꾼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우는 커츠의 통찰력 있는 에피소드에 영향을 받아 대영제국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극적인 심리서술 전략의 전환—「진보의 전초기지」에서『어둠의 핵심』으로 637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콘래드의 서술 기법은 의도적인 작업의 결과다. 콘래드의 창작 과정에는“무엇보다도 심리적인 목표”가 있었으며 그는 이러한“진짜 목표를 시야에서 결코 놓쳐본 적이 없었다”(Roberts 132에서 재인용). 콘래드는 1902년 블랙우드(Blackwood)에게 보낸 편지에서“마지막 사건에 비추어 이야기 전체가 묘사의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잡고 그 가치와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심사숙고한 확신에 기반을 둔 나의 방법이며 그런 방법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라고 강조하면서“남자와 여자의 인터뷰를 통해 30,000자에 이르는 서술 묘사 전부를 인생의 전체 국면에 대한 하나의 함축적인 견해로 만들어 마음에 간직하게 만들면서, 중앙아프리카에서 미쳐버린 남자의 일화와 진짜 아주 다른 수준에 그 이야기를 올려놓게 되는『어둠의 핵심』의 마지막 페이지들을”예로 든다(Conrad 1988, 210). 그런데 말로우는 커츠의 약혼녀와의 만남이란 이마지막 사건에서 커츠의 마지막 말이“공포다! 공포다!”(
커츠가 르네상스의 남성적 덕목의 완벽한 전형으로 그리고 그의 약혼녀가 르네상스의 여성적 덕목의 완벽한 전형으로 제시되는데, 말로우는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상상의 눈앞에서 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이미 그림자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계몽사상에 기반을 둔 제국주의의 완벽한 실패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콩고로 가기 전에 르네상스적인 전인이었던 커츠, 제국식민주의의 성공 사례인 콩고에서의 커츠를 포함하여 부재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현재의 커츠가 총체적 실패일 뿐만 아니라, 말로우 자신도 그런 실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이제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너무 끔찍하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둡다. 도망치고 싶은, 나가고 싶은 현실이다.
이런 사실을 먼저 깨달았다는 점에서 커츠는 말로우의 스승이다. 이런 점에서 커츠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커츠에게는 적어도“뭔가 할 말이”(
말로우의 거짓말에서는 지배인의 자기기만이나 커츠의 자기실현이라는 악몽들과는 다른 차원의 의의가 발견된다. 말로우의 담화가 그리스 희극의 코러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테두리 화자를 필두로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테두리 화자를 포함한 넬리 호의 소유주인 회사 중역, 변호사와 회계사 등 말로우의 직접적인 청중은“그런 이야기의 전개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간주하기에는 제국 사업에 관한 이해관계가 너무 명백할 뿐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Spearey 44) 있다. 테두리 화자의 사회적 역할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이유는 당대의 평균 독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말로우의‘아프리카의 이미지’는 그 한계성이 무엇이든 간에 테두리 서술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맥락화돼있다”(Hampson 216).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테두리 서술이 말로우라는“상상 속의 등장인물의 발언에 의해 제시돼”(Miller 24) 있으므로 소설의 내용은 말로우와 테두리 화자의 상호관계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이제 이 논문의 남은 문제는 말로우의 담화가 테두리 화자의 심리적 변화를 극적으로 유도했던 것처럼, 콘래드가 말로우의 담화를 통해서『어둠의 핵심』의 「저자의 주」에서 설명한 근대소설의 적법한 목적인“독자들이 마음과 가슴에서 절실하게 느끼게”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포드(Ford)는“삶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두뇌에 인상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에“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이름을”콘라드와 함께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Levenson 117에서 재인용). 이는 재현이란 리얼리즘의 전통적인 관습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콘래드는 1923년 컬(Richard Curle)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배치 작업”과“다양한 관점이란 효과”등에 자신의‘기술’거의 모두가 걸려 있으며 이는“순전히 기질의 문제”인데 그것이“비평가가 자신의 작품을 낭만주의나 리얼리즘으로 분류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고백한다(Ireland 43에서 재인용). “콘래드의 ‘인상주의’ 의 기반은 암시성을 향한 그의 분투인데, 지성적으로 전달되는 거울 같은 묘사나 보고의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서와 상상력에 직접 호소하여 독자에게 특정의 기분이나 비전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Najder 212).
콘래드가「진보의 전초기지」에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일어났던 일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면, 『어둠의 핵심』에서는 에피소드 같은 사건 이상의 수준을 제시하면서 콘래드 자신에게 끼친 콩고자유국 여행의 영향을 독자들이 마음과 가슴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테두리 화자 이외에 또 하나의 화자인 말로우를 등장시켰던 것이다. 말로우의 입장에서 볼 때『어둠의 핵심』은 자신의 경험에 관한 기록, 즉 자서전이다. 자서전에는 서술하는 나(the narrating I)와 서술되는 나(the narrated I)라는 나이와 경험에서 차이가 나는 두 명의 행위자가 등장한다. 커츠의 에피소드에 동참하는 나는 서술되는 나, 즉 행동자 말로우다. 『어둠의 핵심』은 행동자(行動者) 말로우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 관한 성찰자(省察者) 말로우의 담화다. 이런 자서전의 형식을 통해서 말로우는 자신의 경험을 반성하면서 자신의 담화를 듣는 독자들에게 그 반성의 차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소설의 액자양식의 형식에서는 성찰자 말로우의 담론의 차원이 커츠 에피소드의 차원에 동참하는 행동자 말로우의 담론의 차원을 둘러싸고 있다. 성찰자 말로우의 담론을 통해서 사실적인 묘사 이상으로 콩고자유국 경험의 진정한 의미를 추적하려는 것이 말로우의 담화의 목적이다. 월레거(Wollaeger)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말로우의 회고적 서술이 모험 이야기라는 재료를 진실과 가치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탐구로 변형시킨다.”라고 정리한다(21). 암브로시니는 이러한 단계에서“말로우가 자신이 창조했던 상상의 창조물에서 이탈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자의식을 일부 회복한다.”라고 설명한다(Ambrosini 107).
말로우는 종종 자유간접화법(free indirect speech)을 사용하는데, 이 형식은 간접화법의 전형적인 문법의 흔적을 갖고 있지만 “그가 말했다” 혹은 “그녀가 말했다” 등 표현된 발화와 생각을 소개하고 한정하는 상투 어구를 포함하지 않는 담화의 형식이다.
위의 인용부분에서는 벽돌제조공이 직접화법 형태로 질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당신이 그걸 알았어요?”(Did you see it?)라는 질문을 간접화법의 형식인 “내가 그걸 알았느냐고 그가 물었어요.”(He asked me if I saw it.)로 기록하는 대신 “그가 물었어요” (He asked me)라는 상투 어구를 삭제하고 직접화법 같은 느낌을 가미한 자유간접화법의 형식인“내가 그걸 알았냐고요?”(Did I see it?) 라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벤베니스트(Emile Benveniste)는 언어 행위의 두 가지 수준을 구별하는데, 그것은 스토리(story)와 담론(discourse)의 수준이다. 스토리는 화자의 개입 없이 일정한 순간에 발생한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이며, 반면에 담론은“화자와 청자를 전제하며, 이를테면 후자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전자에게 전제하는 발화행위를 뜻한다”(벤비니스트 345). 말로우가 자유간접화법을 사용한 이유는 담화 속에 담론의 수준을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화자와 청자를 전제하면서 말로우의 담화를 듣고 있는 독자들을 비롯한 청자에게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부분에서는 이런 장치를 통해서 말로우가 커츠의 정적인 중앙영업소의 지배인을 대신한 벽돌제조공의 음흉한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말로우가 자의식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행동자 말로우의 담론의 표현이다.
말로우의 담화에서는 주절의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일 때와 과거형일 때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행동 속에서의 판단과 현재의 회상 속에서의 판단, 즉 행동자 말로우의 차원과 성찰자 말로우의 차원이 뚜렷하게 구분돼야 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중앙영업소까지의 캐러밴에서 말로우와 동행하던 몸무게가 이백사십사 파운드(약 백십일 킬로그램)였던 백인 동료가 열병에 걸려서 장대에 매단 그물 침대로 그를 운반해야만 했는데 흑인 운송인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을 가버린 장면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내 자신이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존재가 돼 가는 걸 느꼈어요.”(I felt I was becoming scientifically interesting.)라는 말은 말로우가 과거에 경험했던 콩고의 상황 속에서 내렸던 판단력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행동자 말로우의 담론의 표현이다. 그런데 뒤이은 문장인 “그 모든 짓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죠.”(However, all that is to no purpose.)라는 말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현재의 판단력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성찰자 말로우의 담론의 표현이다. 말로우가 담화를 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에서 콩고자유국에서의 과거를 회상해보 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콩고자유국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식민지 개척자의 정신적 변화를 관찰한다는 의사의 과학적인 노력으로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의 표명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내가 크면 그곳에 갈 거야.”(When I grow up I will go there.)는 자유간접화법의 표현인 바, 담론의 형식을 통해서 말로우가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말로우의 담화는 회상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주절의 동사의 시제가 현재인 경우가 종종 있다. “북극이 그런 장소 중 하나였던 게 기억나는군요.”(The North Pole was one of these places, I remember.)에서“북극이 그런 장소 중 하나였던”건 행동자 말로우가 소년 시절인 과거에 내렸던 담론의 표현이지만, “기억나는군요.”는 그런 과거의 판단력을 반성하면서 성찰자 말로우가 현재 시점에서 내리는 담론의 표현이다. 그리고“황홀하게 하는 매력이 없어졌어요.”(The glamour’s off.)라고 말로우가 현재 시점에서 말하며 탐험의 영광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렸음을 독자들에게 확인해준다.
『어둠의 핵심』에 대한 비평적인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다. 와츠(Watts)는 『엘마이어의 어리석음』(
콘래드는「진보의 전초기지」에서 등장인물들인 카에르츠와 칼리에를 독특한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부영업소의 소장 및 보좌관이라는 역할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어둠의 핵심』에서는 커츠가 내부영업소의 소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로우는 커츠를 그런 역할의 관점에서 보지않고 독특한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어둠의 핵심』이「진보의 전초기지」의 리얼리즘이 갖고 있는 피상적인 제국주의 비판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비판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체베의 비난은 성급하기 이를 데 없다.
로드(Lord)는“콘래드의 서사적 혁신의 인식론적 함의(含意)와 그의 혁명 및 민주주의 탐구의 정치적 함의 간에 연결고리가 수립돼 있다.”라고 분석한다(275). 이는 콘래드의 서술전략의 전환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적인 비판과 연관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근거에서 콘래드가“소설이 우리 시대의 사상을 위한 절대적으로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 동의했다.”(Wollaeger 180에서 재인용)라는 포드의 보고는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의 서술 전략의 전환이 시대의 도덕과 정서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문학적 확신의 표현이다. 콘래드가“어리석고 비겁할”(Watts: 1969, 68) 뿐인 인간의 본성을 개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업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데올로기의 기반인 문화가 소설을 통한 정치적 변화의 가장 효과적인 공격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콘래드는 그래함 등의 불만스러운 반응을 예상하면서도『어둠의 핵심』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혁명적인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싱(Singh)은“양가적인 태도(ambivalent)야말로 식민주의에 대한 콘래드의 태도를 요약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일 것이다.”라고 지적한다(279). 그래함 같은 정치가들은 제국주의의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양상을 리얼리즘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콘래드 같은 소설가들은 제국주의의 확립된 신념 체계인 문화에 대해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소설을 통하여 독자들을 유도하여 책임감을 인식하도록 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콘래드는「진보의 전초기지」에서와 달리『어둠의 핵심』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커츠의 에피소드를 말로우의 담화를 통해서 전달하면서 독자들의 의식이 제국주의를 넘어서는 시대에 적합하게 변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1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서울: 인간사랑, 2002. 78쪽 참조. “그렇다면 파스칼의 최종 대답은 이런 것이다. 이성적인 논증을 접어두고 그저 이데올로기적인 의식에 네 자신을 맡기고, 무의미한 제스처를 반복해서 무뎌져라. 그리고 마치 네 자신이 이미 믿고 있다는 듯이 행동해라. 그러면 믿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전향을 얻기 위한 그런 절차는 기독교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2Matthew Paul Carlson,“ Conrad’s Early Fiction and the Aesthetic of 633,”The Conradian, Vol. 36-1(2011): 14-30. p. 21 참조. “적어도 이 편지에서는 콘래드가 모더니즘 미학에 근접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재현에 있어서 덜‘분명하고’나름대로의 예술적 형식주의에는 더 조율되어 있는 접근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