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mate Change, Meteorological Vision, and Literary Imagination

기후변화·기상학적 비전·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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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As extremes of climate such as heavy storms, rainfalls, and droughts tend to be routine in recent years, global climate change becomes a serious concern not only for natural scientists but also for scholars of the human sciences. Efforts to tackle the anthropogenic climate change certainly require not only scientific knowledge about it but also a new sociocultural paradigm for valorizing and respecting nature in its own right. The huge casualties and mass destruction caused by recent climate disasters also remind us that nature has been an important factor to bring about changes in human history-a fact largely ignored in traditional history. This again validates the ecocritical request to prioritize place, physical setting, or the relationship characters hold with the natural world in understanding literary works. In this context this paper aims to demonstrate the importance of the meteorological vision in creating as well as understanding literary and cultural texts by examining such works as Shelley’s “The Cloud,” Byron’s “Darkness,” Keats’s “To Autumn,” all produced during the period of dramatic climate change including “the year without summer.” It also briefly discusses Roland Emmerich’s 2004 movie The Day after Tomorrow as a way of understanding recent cultural responses to the crisis of global warming.


  • KEYWORD

    climate change , the meteorological vision , Montesquieu , “Darkenss , ” “To Autumn , ” environmental apocalypse , The Day after Tomorrow

  • I. 기후변화에 대한 문화생태학적 조망

    기상 이변은 사회문화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조명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인류가 처해 있는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가장 두드러진 징후적 현상이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는 위기에 처한 지구 자체의 제유(synedoche)이자 제임  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표현대로“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라는 차원에서 살필 수 있다. 둘째, 그것은 자연 환경이 인간사의 불변적 배경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그 변화와 발전의 중요한 변인이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전자의 시각은 근대 이후 자연을 지속적으로 정복하고 훼손하고 피폐시켜온 삶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촉구한다. 주지하듯 심층생태학을 비롯한 현대의 중요 생태사상이나 환경보전 운동은 이런 입장을 밑바탕으로 한다. 후자의 시각은 자연 환경을 역사적 변화의 중요 동인으로 고려하여 역사와 문명의 변화를 새롭게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근래에 주목을 끌고 있는 환경사 혹은 생태문화사는 이런 관점에서 역사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 밑바탕에는 무엇보다 자연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유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의식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과 더불어 인간 또한, 크로스비(Alfred Crosby)가 환기시키고 있듯이, “수천 년 동안 동료 생명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존재”(크로스비 33)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영국의 환경사가인 데이비드 아널드(David Arnold)는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관계에 주목하는 환경사의 주제 영역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가지로 나눈 바 있다. 첫째, 환경이 인간 사회와 그 문화적 혹은 물질적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가, 둘째, 인간이 자연을 형성하고 변모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셋째, 이런 과정에서 형성되고 변모한 자연관과 그것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간 인식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4 요컨대 생태환경사는 문명의 발전과 역사적 변화의 주체를 전적으로 인간에 국한시키는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서식하는 자연 환경 또한 인간의 인식, 가치 체계, 종교, 더 나아가 사회 구조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확장된 역사관을 그 기저로 삼는다.

    서양근대사에서 이런 관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몽테스키외이다. 그의 주저『법의 정신』(Esprit des Lois, 1748)은 법과 그것을 산출한 환경의 복합적관계, 곧 법체계의‘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제 변인들과 그 상호 관계에 대한 탐구의 소산이다. 그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일반 정신(esprit ge´ne´ ral) 혹은 민족성의 차이를 물리적 변인(causes physiques)과 도덕적 변인(causes morales)으로 나누어 살폈다. 물리적 변인으로 그가 가장 주목한 요소가 기후이다. 그는 양의 혀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낮은 기온에서는 혀의 돌기가 수축되고 기온이 높으면 팽창하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나라에 따라 사람들의 정신의 기질과 열정이 다른 까닭을 설명하는데 원용한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은 말단 신경과 섬유 조직이 수축되어 있기 때문에 체액의 흐름이 기운차고 더운 지방 사람들은 반대로 신체 조직이 느슨하게 팽창되어 있기 때문에 활기와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몽테스키외는 북유럽 사람들이 도덕적인데 반해 남유럽 사람들이 욕망에 휘둘리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나 열대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노예제도가 활성화되어 있고 여성이 더 종속적이며 일부다처제가 지배적 경향을 띠는 것도 기후 탓이라고 설명한다.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예속의 문제도 기후와 연관시킨다. 자유의 향유는 폭정에 저항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시민 정신을 요구하는데 이런 에너지는 더운 지방보다는 추운 지방에서 더 활기차다. 북구쪽 국가가 역사적으로 자유에 대한 열망이 더 뜨거웠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자유의 향유 여부는 기후뿐만 아니라 자연지형과도 상관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높은 산이나 넓은 강이 많지 않은 아시아의 지형은 작은 국가로 분할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전제 정치를 조장한 측면이있고, 이에 반해 자연 경계가 많은 유럽의 경우 영토가 작은 국가로의 분할이 가능했고 이런 소규모의 국가에서 법치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기후를 문화적 및 도덕적 상대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변인으로 성찰했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인간 정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결정인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간 사회가 기후를 포함한 물리적 환경에 적합한 사  회 제도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거기에 그 밖의 다른 변인이 개입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콜링우드(R. G. Collingwood)와 같은 후세의 지성사가들이 몽테스키 외를 환경결정론자로 비판한 것은 지나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5 그가 기후나 지형적 조건에 주목한 것은 그 중요성의 이해를 통해 물리적 환경에 순응하는 바람직한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하다.

    법제를 포함한 사회적 제도와 기후의 상관성에 대한 주목에서 몽테스키외는 두드러진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예외적 존재인 것은 아니다. 글락켄 (Clarence J. Glacken)이 보여주고 있듯이 기후와 인간의 삶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은 몽테스키외에 앞서서 오랜 전사를 가진 것이다. 특히 식민지의 팽창과 더불어 유럽의 지리적 지평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17세기 이후 문명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빼놓을 수 없는 시대적 관심사였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기후나 지형과 같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는 환경결정론적 사고를 서구에서 처음으로 구체화시킨 히포크라테스와 그가 쓴 것으로 알려진「공기, 물, 장소」“(Airs, Waters, Places”)가 몽테스키외의 시대에 새롭게 주목을 끌었다는 사실에서도 시대의 이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데이비드 아널드는 런던왕립학회가 창설된 1662년부터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1851년까지의 시기를 생태학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못지않게 환경을 의식한 시대라고 주장한다(아널드 50). 사회문화적 특성과 물리적 환경의 관련 양상에 대한 관심은 이후로도 물론 꾸준히 이어졌다. ‘민족, 환경, 시간’(race, milieu, moment)의 삼요소로 국민문학의 특이성을 규명하고자 한 세기말의 프랑스 비평가 텐느(Hippolyte Adolphe Taine)의 시도나‘지리적 시간’혹은‘장기 지속’의 개념을 통해 역사적 변화를 규명하고자 한 아날학파의 역사 인식 태도는 두드러진 사례이다. 이들의 입장이 환경을 차이의 절대적 변인으로 간주하는 결정론적 시각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사의 현실적 동인으로서 환경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주의 환기로서의 의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문학의 관심도 앞서 말한 두 가지 조망에서 살필 수 있다. 기후변화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기후는 물리적 환경의 일환으로서 혹은 그 은유로서 문학적 관심의 대상의 되었다. 그 동안 문학에서 삶의 환경은 인물  의 행동과 사건이 펼쳐지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리얼리즘 문학이나 인간의 내면세계의 묘사에 관심을 기울였던 모더니즘 문학에서 물리적 배경은 작품 구성의 부차적 요  소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설화나 서사문학, 비극, 혹은 근래에 주목을 받고 있는 지방색 문학(local color)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사정은 다르다. 여기에서 자연 환경과 대지는 나날의 삶을 추동하면서 인간의 내밀한  정서와 상상력을 빚어내는 근원적 힘으로 나타난다. 문학 작품을 통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환기시키고,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일깨우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자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  하여 태동한 문학생태학은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킴으로써 문학을 보는 관점과 작품 이해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야성의 자연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자 했던 로렌스(D. H. Lawrence)는 선배 소설가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문학 세계의 진정한 주인공은 인물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비극적 삶을 주형하는 웨섹스의 황야, 이그돈 히쓰 (Egdon Heath) 그 자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하디의 소설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문학에서 그의 고향 슬라이고나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에서 더블린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으로 그치지 않는  다. 그것은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이 펼쳐지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주형하고 채색하는 원천이다. 마찬가지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미시시피 강,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라파이엣(소설 속의 요크나퍼토파) 카운티, 윌라  캐더(Willa Cather)의 황량한 네브라스카 평원, 박경리의 평사리는 그 문학 세계의 궁극적인 모습을 결정짓는 운명과도 같은 곳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독특한 문학적 상상력을 특징짓는 이 장소 의식 혹은 장소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상 현상이다. 예컨대 상쾌한 미풍과 고요한 일몰, 짙은 안개, 거센 폭풍, 눈보라와 같은 기상 변화나 계절의 순환은 장소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근원적 요소들이다. 성경의 대홍수 에피소드와 흡사한 설화나 천둥과 번개가 중요한 의미소를 이루는 각종 신화가 중근동은 물론 유럽, 아메리카,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에서도 그 점은 확인된다. 날  씨나 기후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들의 전 세계적 편재는 인류사에 그 모델이 될 만한 사건들이 있었음을 또한 시사한다. 마찬가지로『리어왕』에서 딸들의 배신에 분노한 리어 왕이 광기에 젖어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는 인상적인 장면을 전적으로 상상의 소산만이라고 할 수 없다.

    근래의 고기후학(paleoclimatology)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후반, 전 유럽이 오랫동안 이상 저온에 시달리고 특히 추운 겨울에는 이전에 비해 폭풍우가 85%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6 기후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첫 작품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해인 1588년, 영국과 스페인의 해전에서 무적함대가 참패한 것도 대서양의 폭풍우를 예측하지 못한 탓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조라 닐 허스턴 (Zora Neal Hurston)의『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다』 (Their Eyes Were Watching God)도 기상 현상이 문학 상상력의 불을 지피는 불씨로 작용한 또 다른 예들이다. 1930년대에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황진지대 (Dust Bowl)로 만든 모래 폭풍 현상이 없었더라면 스타인벡의 소설은 씌여질 수 없었을 것이고, 1928년 플로리다 오키초비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체험이 없었더라면 허스턴 소설의 결말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이-프 투안(Yi-Fu Tuan)과 같은 현상학적 지리학자는 인간의 사고와 의미의 조직화가 특정 장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장소 체험은 성인이 된 후의 인식과 사고 작용을 규제하는 근본 바탕이  된다. 이프-투안은 예컨대 직선과 각도가 첨예한 사물들이 많은 환경, 이른바“목공적 세계”(carpentered world)에서 성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형상도 그런 규격화된 사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샌더 평행사변형의 착시 현상’(Sander Parallelogram Illusion)은 인간의사물 인식이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점을 환기시키는 또 다른 예이다. 아프리카의 평원에 사는 부쉬맨 부족의 겨우 시각이 특히 발달되어 있고, 변화가별로 없는 설원에 사는 에스키모인의 경우 후각과 촉각이 남달리 예민하다는 것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설명된다. 이프-투안은 또한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부족들의 세계관, 평원 지역에 사는 부족들의 세계관, 그리고 숲과 평원의 경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각각 서로 다른 것도 그들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함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물리적 환경은 인간의 지각과 태도 더 나아가 세계관의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7

    지각 심리학 또한 인간의 지각이나 상상 행위에 작용하는‘원소적 배경’(the elemental background)을 주목해 왔다. 인간의 세계 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은 하늘, 대지, 비, 눈, 햇빛과 같은 원소적 현상이다. 이런 근원적 체험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인식과 상상력의 바탕으로 작용한다. 근대 서양의 풍경화는 회화적 상상력에서 이런 원소적 바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소적 체험을 근대의 풍경화를 창출한 회화적 상상력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근대 기상학의 아버지 루크 하워드(Luke Howard)였다. 1801년에서 1841년까지 런던의 기상 상태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기상학의 정초를 마련한 하워드는 무정형의 구름을 린네의식물 분류법을 원용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난운, 층운, 적운, 권운 등으로 분류한 장본인이다. 그의 구름 분류 덕분에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같은 화가는 그림 낀 하늘의 풍경을 화폭에 재현할 수 있었고, 괴테를 통해 하워드의「구름의 변형에 관하여」“( Essay on the Modification of Clouds”)라는 글을 접한 1820년대의 독일 드레스덴 파 화가들 역시 풍경화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 나갈 수 있었으며, 러스킨(John Ruskin)은 이를 길잡이로 근대 풍경화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Novak 78-83).

    기상학적 비전은 이처럼 문학과 예술 창조를 자극하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낭만주의 시인 셸리(Percy B. Shelley)가 1820년에 발표한「구름」“( The Cloud”)이라는 시도 기상학적 비전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좋은 예이다.

    낭만주의 시인 가운데 셸리는 누구보다도 당대의 과학 사상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는 데이비(Humphry Davy), 다윈(Erasmus Darwin) 그리고 갈바니(LuigiGalvani)와 같은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들의 책을 탐독했다(윤효녕 외 참조). 이 시에서도 그는 구름의 다양한 모습과 기능 그리고 액체에서 수증기로 변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떨어지는 그것의 순환상을 의인화 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모두 6련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의 첫 련에 해당하는 인용 부분에서 특히 인상적인것은 자연 속의 꽃과 나무들에게“시원한 소나기”라는 자양을 제공하고 한낮에는“그늘”을 만들어주어 이들을 보살피는 부드러운 모성적 이미지와 더불어 그것과 정반대로대지를 도리깨질 하듯이 광폭하게 쏟아 내리는 우박과 그것을 다시 비웃듯이 녹여버리는 천둥치는 폭풍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고 있는 점이다. 구름에 대한 이 대극적 이미지는 시인이 나날의 기상 현상을 예사롭지 않게 체험했음을 암시한다.

    1박환일, 『불편한 진실 Revisited』1-4 참고.   2DiMento and Doughman 편, Climate Change에 실린 논문들, 특히 Oreskes 참조.   3스토치(Hans von Storch)와 스테르(Nico Stehr)도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의 차원에서도 사회과학적 전문성이 자연과학적 기후연구와 제휴해야 함을 강조한다. 윤순진 또한 탈탄소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국제적 및 대내적 협력 과정에서 탄소 감축 목표와 비용 분담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첨예화를 경계하고 이를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 거버넌스 체제의 수립이 긴요하다고 지적하면서 기후변화를 환경 문제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4『인간과 환경의 문명사』26; 김기봉 31 참조.   5『역사의 관념』(The Idea of History)에서 콜링우드는 이렇게 썼다: “Montesquieu conceived human life as a reflection of geographical and climatic conditions not otherwise than the life of plants . . . and institutions appear not as free inventions of human reason in the course of its development but as the necessary effects of natural causes”(79). 콜링우드에 앞서서 볼테르, 흄(David Hume), 헤르더(Johann G. von Herder)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몽테스키외에 비판적이었다(Glacken 570, 582-87).   6페이건 164-69 참조; 에스톡(Simon C. Estok)은 이런 관점에서『리어왕』과『코리올 레이너스』에 표현된 자연에 대한 공포를 검토하고 있다(Estok 2009, 212-13; Estok 2010).   7Topophilia 제7장,“ Environment, Perception, and World Views”참조.

    II. 기상학적 비전과 문학적 상상력

    1986년 영국의 노동당 당수 마이클 풋(Michael Foot)은 핵무기 감축 캠페인을 벌리면서 바이런이 1816년에 발표한「어둠」(“Darkness”)이란 시를 인용한 적이 있다. 저널리스트로서 정치에 입문한 뒤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면서 의원 생활을 해온 풋은 바이런의 전기를 쓰기도 했는데, 핵전쟁 후 핵폭발로 방출된 방사능 재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태양 빛을 차단한 결과 도래한다는 이른바‘핵겨울’(nuclear winter)의 가공할 모습을 그리면서 특히 시의 끝 부분에 주목했다.

    풋은 핵무기가 확산되어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파국적 정황이 이 시가 표현하고 있는 암울한 종말론적 비전과 흡사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과감한 군축과 핵무기 체제 폐기를 촉구했다. 인용 부분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생명이 사라진  종말론적 파국 앞에서는 빈부와 귀천이 따로 없다는 점의 지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고도의 기술문명을 성취한 오늘의 사회가 뒤따르는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에 노정되어 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위험사회”라고 진단하고, 이런 사회에서는 빈부의 차이나 계급의 상하에 상관없이 모두가 그 재해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 적이 있다. 이 암울한 시에서 바이런은 흥미롭게도 일반 대중이나 권력자들 모두가 생명의 파국을 맞은 재앙 앞에 속수무책인 무력한 혼돈의“덩어리”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암흑」이 핵 재앙에 노정되어 있는 지구촌 사회의 파국을 선견지명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풋의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물론 바이런이 핵무기의 등장을 예견하고 이 시를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암울한 비전의 동인은 무엇인가? 혹자는 이 시가 1816년 여름, 제네바에서 쓰여진 점에 주목하여 시가 표현하고 있는 암울한 상황을 결혼의 파탄과  스캔들로 인해 영국 사회에서 쫓겨나다시피 제네바로 건너온 직후의 바이런의 우울한 심사의 발현으로 보았다. 전기적 사실보다는 문학의 내재적 전통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그것을 성경의 묵시록적 비전과 연관시키기도 하고, 그 당시  널리 읽히고 있던 프랑스 소설가, 쿠생(Cousin de Grainville)의『최후의 인간』(The Last Man), 루이스 (M. G. Lewis)의 고딕 소설『수도사』(The Monk), 뷔퐁(Buffon)과 퐁트넬(Fontenelle)의 박물지, 혹은 더 소급해서 로마의 루크레티우스(Lucretius)가 쓴『자연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등과 같은 텍스트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Bate 95).

    최근에 영국의 생태문학자인 조나단 베이트(Jonathan Bate)는 태양이 사라져 버린“꿈 아닌 꿈같은 현실”에 대한 소묘로 시작되는 이 시의 암울한 정황을 비유가 아니라 사실적인 묘사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당시의 기상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1816년 스위스에서는 4월에서 9월까지 183일 중 130일 동안 비가 내렸다. 그 해 7월 스위스의 평균 기온은 1807~24년간의 평균 기온에 비해4.9ㆍF가 낮았다 . . . 이는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 7월 런던에는 18일동안 비가 내렸고, 21℃ 이상인 날은 단 하루였다. 그 전해에는 비가 온 날이 단3일에 불과했고, 기온도 21℃ 이상인 날이 19일이었다. 1816년 8월에 21℃ 이상인 날은 2일에 불과했다”(Bate 96). 기후학자들은 이처럼 온 여름동안 비가 줄곧 내리고 기온이 곤두박칠 치는 이상 기후가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 지역에 지속된 것을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1816년을“여름이 없는 해”(the year without a summer)로 불러 왔다. 바이런 자신도 이 무렵 영국의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런 끔찍한 연무—안개—비 그리고 영속적일 것 같은 칙칙함”이 지속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Bate 96).

    1816년 바이런이「어둠」을 썼던 제네바의 빌라 디오다티의 이웃에는 시인 셸리와 그의 동반자 메리 셸리(Mary Shelley)가 살고 있었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날씨가 추워서 외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화로 불 주변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독일의 유령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바이런이 각자 한 편의 유령 소설을 써보자는 제안을 했고, 이 제안을 받아들여 메리 셸리가 약관 19세의 나이에 쓴 소설이 바로『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이다. 『프랑켄슈타인』에 보이는 빈번한 폭풍우 장면과 황량한 극지방에서 벌어지는 추적 장면은 메리 셸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기상적 조건에 의해 굴절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소설에서 알 수 없는 자연의 원초적 힘을 표상하는 폭풍은 불완전하고 허약한 인간의 지성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유전공학자들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여겨지는『프랑켄슈타인』은 그러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생태학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8

    그 당시 유럽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로 평화를 되찾긴 했지만 그 후 유증으로 사회적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퇴역병이 거리에 넘쳐났고 군수산업의 쇠퇴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결식 가정이 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상 이변으로 그 해 가을 흉작이 들면서 주식인 곡물과 빵 가격이 급등했다.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이 전하는 이 시기의 비참한 사회상은 자급자족적 생계형 농업이 주종을 이루었던 근대 농경 사회가 기후 변화에 얼마  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기근으로 굶주림이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질병이 창궐했다. 예컨대 1817~18년 동안 아일랜드에서는 85만 명이 티푸스로 사망했다. 스위스의 경우 1816년의 사망률은 1815년에 비해 8%가 증가했고, 1817년에는 수치가 무려 56%로 증가했다. 이 무렵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도 이 같은 지속적인 기근 또한 무역과 제조업의 불경기, 그로 인한 대량 실업 못지않게 중요한 동인이었다. 생존의 위기는 또한 유럽 전역에 이민 바람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연에 의존해야 했던 근대 농경사회에서 기후 변화는 이처럼 사회 전반에 심원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변인이었다.

    1816년을 여름 없는 해로 만든 이상 저온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당대의 사람들은 태양 흑점의 증가를 주목했다. 신문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큰 흑점이 목격되었다고 보도하면서 태양열의 감소로 자연이 시들고 지구가 종국을 맞이  할지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우려를 전했다. 그 후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13년 미국의 기상학자 윌리엄 험프리스(William J. Humphreys)에 의해 주어졌다. 그는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  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두터운 띠를 형성하여 지구 주위를 돌면서 장기간 지구로 입사되는 태양열의 흡수를 감소시킴으로써 이상 저온 현상을 야기한다는 것을 밝히고, 거대한 화산 폭발은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재앙을 부를 수있다고 주장했다(Clubbe 30). 그리하여 1816년 여름의 기록적인 저온과 이어진 냉해는 1815년 인도네시아 동자바 지역의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 폭발이 직접 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지난 400여 년 동안 있었던 화산 분출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화산재의 분산 규모에서 탐보라 화산은 지구 일사량을 15~20%나 감소시킨 것으로 조사된 1883년의 크라카타우아 화산폭발을 훨씬 능가했고, 1980년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의 100 배에 해당되었다. 게다가 그 전해인 1814년 필리핀의 마욘 화산의 대규모 폭발, 1812년 카리브해 세인트 빈센트 섬의 수프리에르 화산 폭발이 있은 직후여서 그 폐해가 가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페이건 275-79).

    1816년의 이상 저온 현상은 3년이 지난 1819년에 가서야 정상을 회복했다. 조나단 베이트는 키츠의 유명한 시「가을에게」“( To Autumn”)도 오랜만에 정상을 되찾은 화사하고 따뜻한 날씨에 대한 사람들의 안도감과 환희와 연관시켜 이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시를 쓴 직후인 1819년 9월 21일, 키츠는 친구 레놀즈(J. H. Reynolds)에게 “계절이 이제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기는 얼마나 청량한가”라고 찬탄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렇지만 이 해에 키츠는 실상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건강이 약화되어가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전 해 11월 둘째 동생 톰 키츠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고 이 시를 쓴 일 년 반 뒤인 1821년 2월 23일 그 역시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을에게」에는 그런 개인적 슬픔과 고통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시인의 눈은 풍요한 결실의 계절을 장식하는 과일과 나무 열매와 꽃과 벌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을에게」는 일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1810년대 섭정 시대(Regency Era)의 불안한 사회상으로부터 등을 돌린 시인의 도피적 환상의 소산이 결코 아니다. 자연과 생명체의 상호의존과 조화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이 정경은 3년여의 음침한 날씨로 어쩌면 병이 깊어가고 있었던, 그리하여 화사한 날씨의 지복을 누구보다 절실히 갈구했을, 시인이 오랜만에 맞은“정결한 날씨”와 되찾은“다이애너와 같은 하늘”(Dian skies)에 대한 찬사이다. 기상 자료는 그 해 영국의 날씨에 대해 8월 7일에서 9월 22일까지 47일 동안 38일이 화창했고, 9월의 평균기온도 전년도의 14℃에 비해 4℃나 높은 18℃였음을 밝히고 있다(Bate 102).

    기상 현상은 이처럼 문학과 예술 창조를 자극하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기상재난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오늘날 그 자극은 더더욱 강렬해진 듯하다. 근래에 기상 이변을 소재로 한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부쩍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환경 파괴로 인한 생태계붕괴나 종말론적 상황을 주제로 하는 환경 묵시록적 서사(environmental apocalypse)는 중요한 문화 양식으로 자리잡았다(Buell 285; Garrard 93-107;(Heise 122). 레이철 카슨의『침묵의 봄』(1962), 폴 엘릭(Paul Ehrlich)의『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 1972), 빌 멕키번(Bill McKibben)의『자연의 종말』(The End of Nature, 1990)과 같은 현대 환경 담론의 정전에 속하는 텍스트에서부터 롤랜드 에머릭(Roland Emmerich) 감독의 영화, 『모레』(The Day after Tomorrow)나 코맥 맥카디(Cormac McCarthy)의 퓰리처 수상 소설『길』 (The Road)에 이르기까지 묵시록적 비전은 중요한 서사 전략으로 원용되고 있다. 핵재앙, 화학 물질 오염, 인구 과잉, 자원 고갈 등과 같은 시대의 첨예한 환경적 관심사를 서사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묵시록 서사는 고창된 위기 상황이 일상화되면서 대중적 호소력이 소진되다가 근래에 이상 기후 현상이 잦아지고 그것을 소재로 한 서사물이 증가하면서 다시금 관심을 끌고 있다(Killingworth and Palmer 참조).

    어원적 의미 그대로 (그리스어‘apocalyptein’은 드러내다[unveil]는 뜻이다) 묵시록적 서사는 역사의 끝, 문명의 종말을 예시적으로‘드러냄‘으로써, 그 파국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미래에 다가올 파국의 예시적 비전이서사적 박진감을 얻기 위해서는 타당한 과학적 근거와 섬세한 공감적 상상력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하이제(Ursula Heise)의 지적처럼 재난의 다양한 양상을 범지구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것의 복잡한 연관성은 물론 그것이 개인, 지역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삶에 몰고 온 복합적 파장을 함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묵시록적 서사 장르는 서사시적 스케일과 복잡한 사회적 연관성 및 내면 심리에 대한 섬세한 공감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만큼 성공하기 쉽지않은 양식이다(Heise 206).

    에머릭의『모레』는 지구온난화와 기상 이변의 상관성을 포함하여 최근의 기후 변화 담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소재로 하면서 묵시록적 장르의 특징과 문제점을 다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범적이다. 『모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와 유빙이 녹으면서 민물이 바다로 유입되고 그 결과 해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기온이 급강하하여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이 빙하로 덮인다는 가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이런 가설을 주장해온 주인공이 남극지방에서 빙심을 채취하다가 연구 캠프 주변의 빙하층이 갈라지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목숨을 건진 주인공은 기후 관련 회의에서 자신의 가설을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하면서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킬 근본적인 정책의 실천이 긴요함을 역설하지만 몇몇 학자를 제외하고는 참석자의 대부분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환경문학에서 전문가의 과학적 시각과 경제적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당국자들과 과학에 문외한인 일반 대중의 실용주의적 입장의 대립은 가장 흔한 서사적 갈등을 이룬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부통령을 비롯한 정책 입안자들은 주인공의 가설이 현실로 나타나는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도 정책 결정을 미루어 결국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는다. 영화는 주인공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래한 북반구의 한랭화가 지구 전체에 파국적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주먹만한 우박이 내린 도쿄, 토네이도로 폐허가 된 로스앤젤레스, 밀려드는 해일로 침수되는 뉴욕의 혼란스런 정경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미국 행정부는 결국 빙하로 뒤덮혀 가는 미국 북부 지역을 포기하고 남부 지역 사람들에게 더 남쪽으로 소개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기상 재난을 서사시적 스케일로 보여주면서 영화는 또한 주인공이 뉴욕에 고립된 고등학생 아들을 찾으러나서는 개인적 이야기를 중첩시킨다. 암울한 재난에 파멸되어가는 전체적 삶과 극한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개인의 미시적 삶의 대비는 환경묵시록 장르의 또 다른 단골 메뉴이다. 주제적 차원에서 이 모티프는 뿌리뽑힌 삶에 대해 가정, 이산의 비극에 대해 삶의 연대성, 폭력과 혼란에 대해 사랑과 희생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메시지로 변주되곤 하는데, 『모레』역시 이 점에서도 전범적이다. 이런 서사 패턴은 가령 워싱턴을 무대로 기후변화 문제를 소재로 한 킴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의 삼부 작, 『40가지 비의 징후』(Forty Signs of Rain, 2004), 『50도 이하』(Fifty Degrees Below, 2005),『 60일과 계산하기』(Sixty Days and Counting, 2007)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인 묵시록이 흔히 파국의 확인으로 끝나는데 반하여 생태묵시록은 파국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환경 재앙의 예시를 통해서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장르의 주목적이  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집념과 용기 그리고 동료들의 희생과 헌신적 도움으로 결국 뉴욕에 고립된 아들을 구하는 영화의 결말은 따라서 정해진 수순인 셈이다. 핵폭발로 폐허가 된 지구촌의 암울한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여 최근  관심을 모은 맥카디의『길』도『모레』처럼 부정(父情)을 주제로 삼고 있는 소설인데, 구명도생을 위한 여정의 끝에서 아버지는 죽지만, 그의 헌신적 사랑을 발판으로 아들의 생존 가능성이 암시되면서 끝난다. 생태묵시록적 서사 장르가 한결같이 재난 극복의 밑바탕으로 제시하는 인간적 신뢰와 연대성, 자기희생과 헌신은 결국 생태계의 상호의존과 연대성, 생명에 대한 공경과 배려를 강조하는 생태윤리의 근본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영화『모레』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과학자들로부터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영화가 서사의 바탕으로 삼은 기후변화 가설이 세부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사실과 정보의 확인을 소홀히 하고 복잡한 사태를 단선적으로 혹은 선정적으로 채색하거나 환경 훼손의 원인을 마녀사냥식으로 지목하려 든다면 환경문학은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감정의 소비로 끝나고 말 수 있다. 가라드(Greg Garrard)도 환경묵시록 장르가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그것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에 유의할 것을 특별히 강조한 바 있다(Garrard 86).

    8예컨대 그리핀(Andrew Griffin)은『프랑켄슈타인』의 기상학적 비전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지리적 언어가 아니라 로맨스와 판타지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Griffin 52). 자연을 정신의 풍경화로 보아온 문학 전통의 벽은 강고한 것이다.

    III. 맺음말

    1816년의 이상 기후는 어느 한 지역의 환경 변화가 그로부터 동떨어진 다른 지역에 뜻밖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나비 효과’의 극단적 사례라 할 수있다. 지구 온난화, 황사 현상, 오존층의 파괴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의 상당 부분이 실상 이와 같은 나비 효과의 소산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지구가 하나의 단일한 공동체라는 거시적 시각과 범지구적 비전에 입각한 사고와 행동을 요청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하겠다.

    세계가 날로 좁아지고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사람들은 정확한 기상 예보를 요구하지만 예측은 종종 빗나간다. 기상 예보의 정밀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상 위성을  띄워 정보를 수집하고 대용량 컴퓨터를 비롯한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기상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인간의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상 이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변화는 자연 그 자체의 표상이요 메타포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결코 정복될 수 없는 대상임을 기상 이변은 웅변으로 말해주면서 인간에게 자연의 일원으로서 겸손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 특히 자연을 대상적 존재로 보아온 이원론적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제반 사회적관계의 변혁을 통한 보다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정립하고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윤리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가들에게 날씨와 기상 조건은 창작의 중요한 자극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인간 문화와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해온 근대  의 관행적 사고는 그 밀접한 연관성을 도외시해왔다. 물리적 환경을 정신의 거울로 보아온 문학 전통의 완강함은 상상력의 바탕으로서 배경의 중요성을 간과해왔다. 이처럼 자연 세계로부터 눈을 돌림으로써 문학을 보는 지평의 협소를  가져왔고 그 결과 우리 삶과 세계의 이해 또한 부분적이고 편향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인간의 나날의 삶은 필경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상기시켜준 오늘날의 기상 이변은 이처럼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새로운 창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졸고「기후변화와 문학」『[ 기상기술정책』3.4(2010년 12월): 65-74]의 일부 를 원용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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