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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Public Desire and Dramatic Representation 대중의 욕망과 드라마적 재현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Public Desire and Dramatic Representation

이 연구는 김수현 드라마의 성취가 ‘Genre VS genre’의 구도를 철저히 수용하는 서사전략으로부터 많은 시청자의 공감과 호응을 받아왔다는 기존 연구의 성과를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가 도달하려는 지점은 선행연구의 성과를 단순히 반복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런 서사전략을 통해 그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의 장에서 자신의 개성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나아가 이런 그의 전략이 대중문화의 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의 서사전략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이슈의 선점과 새로운 사회 문화적 의제 설정’ 이다. 동성애를 드라마적으로 재현하는 데서 나타나는 작가의 태도나 능력에서 그런 점은 두드러진다. 이는 두 가지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이런 장르관습의 반복과 변용이 그의 드라마를 같은 장르 내의 다른 작가와 변별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른바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작가만의 고유한 색채를 만들게 하고, 나아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그의 드라마들이 대중의 취미를 교정하고 특정 사안을 교육하고자 하는 거대한 의지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는 등장인물의 내외적 경험들을 드라마 안에서 세밀하게 재현함으로써 작가의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소구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이때의 진정성이란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 되게 재현할 수 있는 예술가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각이나 태도,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의 이런 특징은 대중문화의 장에서 대중의 욕망을 드라마적으로 재현하거나, 현실의 단면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이해를 조직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KEYWORD
Kim Su-Hyeon , , Antonio Gramsci , Organic intellectuals , desire of the public
  • 1. 문제제기

    오늘날 대중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은 여가활동의 주요한 부면을 이루고 있다. 대개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드라마들이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 조사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것은 이런 현상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중들은 드라마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강한 친밀감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투영하면서 그것의 드라마적 재현을 즐기고 있다.1) 그러나 TV드라마는 단순히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기 때문에 대중의 세계인식이나 이해방식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TV드라마는 대중문화의 장에서 담론 설정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패션이나 언어표현 등에 있어서 드라마 속 인물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가족제도나, 연애에 이르는 여러 사회적 행동 등에서도 드라마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이런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사회과학계의 학문적 대응은 주로 ‘영향-수용’관계의 측면에 논의2)가 집중되어 왔다.

    김수현 드라마의 독보적인 지위는 무엇보다도 다른 드라마를 압도하는 시청률에서 비롯되는 대중적 소구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드라마는 케이블방송 이전 시기였던 지난 70-80년대에 이미 7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며, 케이블방송 시대가 열린 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도 평균 20-30%의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런 높은 시청률은 그의 작가적 지위를 확고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으며, 그 자체로 충분히 학문적 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준다.3) 여기서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표현을 원용하여 작가를 “사회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통치의 하위 기능을 수행하는, 지배 집단의 대리인”4)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면, 그가 문화적 담론의 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배 집단의 헤게모니 구축에 협조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지배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로서 대중의 욕망을 대리하고 의제를 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김수현의 드라마들은 흔히 일상성을 기반으로 다층적인 대가족 구성원의 혼사장애담을 통해 가족애를 드러내는 ‘홈드라마’류와, 사랑의 본질적 실체와 인간 내면을 통해 드러나는 욕망을 드러내는 ‘멜로드라마’류로 대별된다. 앞서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의 경우는 주로 가부장적 가족애라는 지배집단의 헤게모니 구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상정될 수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대중의 욕망을 대리하거나 의제를 선도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의 드라마에서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는 담론 대리인으로서의 면모와 함께 대항담론을 헤게모니화 하려는 면모가 함께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한 작가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그가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다수의 대중들이 갖는 욕망을 드라마적으로 재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지녔다는 사실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흔히 김수현의 장르 드라마들은 기존 장르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그것과 같지 않은 김수현 ‘류’로 변주된 서사전략들이 드라마의 미적 가치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된다. 예를 들어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일반적으로 그것을 감추거나 지연시킴으로써, 혹은 불륜당사자인 등장인물로 하여금 그런 상황을 ‘부인’케 하는 서사지연 방식으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다거나 다수의 선량한 의지를 갖는 시청자들을 공분케 하는 정서적 소구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해 간다면, 김수현의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남성에 의해서 주도되는 낭만적 사랑이나 그 완결로서의 가족 재현의 장르적 관습을 파기하는 대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사랑에 관한 일종의 자기성찰을 구현해내고 있다”5)는 것이다. 즉, ‘불륜’상황과 같이 시청자들의 관습적 시선에서 볼 때 파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사태를 둘러싼 여러 당사자들의 내면 풍경이나 행동 등을 추적해 가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기존 관습 속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고정된 환상을 ‘낯설게’6)함으로써 그것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성찰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기능은 그의 담론능력이 대항 헤게모니의 설정에 기여하는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의 일반적인 장르 관습의 반복과 변주는 그의 드라마적 성취가 상당부분 이른바 ‘Genre VS genre’의 구도7)를 철저히 수용하는 서사전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본 연구도 작가의 이런 서사전략이 시청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가져온 핵심적 기제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는 선행연구의 성과를 반복하는 차원에서 크게 더 나간 것이 아니다. 본 연구가 도달하려는 궁극적인 목표지점은 이런 서사전략을 통해 그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의 장에서 자신의 개성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나아가 이런 그의 전략이 대중문화의 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어떤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가에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대중문화의 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김수현 드라마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드라마가 미학적 차원에서 대중적 소구력을 갖고 있는 이유와 그것이 갖는 함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첫째, 김수현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특별함이 ‘이슈를 선점하거나 사회문화적 의제들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탁월함을 갖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둘째, 그의 이런 방식의 서사전략은 작가적 진정성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며, 이를 통해 대중문화를 둘러싼 담론의 장에서 독특한 ‘지식인’으로서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 동원되는 방법론은 그람시의 대중문화론이다. 특히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서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이런 본 연구의 기본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데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우선 본 연구가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특히 그의 서사전략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이슈의 선점과 새로운 사회 문화적 의제 설정’ 능력을 지적하고자 한다.8) 특히 새로운 고부관계 설정, 불륜에 대한 독특한 시선,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아감을 중시하는 어머니상, 남성 동성애의 표현 등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나 능력에서 그런 점은 두드러진다. 이는 그가 대중적인 욕망을 누구보다 먼저 간취하고, 그것을 드라마적으로 재현하는 데 능한 작가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작가적 능력은 두 가지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이런 장르관습의 반복과 변주가 그의 드라마를 같은 장르 내의 다른 작가와 변별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른바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그람시가 지적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그의 드라마들이 대중의 취미를 교정하고 특정사안을 교육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런 그의 창작의지는 한편으로 대리담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대항담론을 형성하는 계기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율배반이 가능한 기제로는 그의 드라마에서 읽을 수 있는 특징으로 작가적 진정성의 문제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드라마 문법은 주로 등장인물의 내‧외적 경험들을 일상적 차원에서 미시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진정성’이란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 되게 재현할 수 있는 예술가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각이나 태도,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김수현 드라마에 나타나는 이런 방식의 특징이 대중문화의 장에서 대중의 드라마적 욕망을 드러내는 담론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현실의 단면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이해를 조직함으로써 대항담론의 형성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1)이영미, 「드라마 속 기업가가 어머니로 바뀌다」, 『황해문화』 통권71호, 2011.6., pp.331-338을 참조할 것.  2)원용진, 「문화연구의 텔레비전 담론」, 『문화과학』 통권45호, 문화과학사, 2006, pp.195-208을 참조할 것.  3)유진희, 「김수현 멜로드라마의 장르문법과 성 이데올로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제9권 11호, 2009, p.177.  4)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역, 『그람시의 옥중수고』2, 거름, 2006, p.22.  5)앞의 글, p.182.  6)위의 글, 같은 면.  7)이 용어에 대해서는 원용진,「장르변화로 읽는 사회: 인기드라마 <모래성>과 <애인>으로 읽는 사회」, 『언론과 사회』통권16호, pp.100-133을 참조할 것.  8)‘이슈의 선점과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제 설정’과 같은 표현은 소재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를 일컫는 것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를 넓은 의미에서 서사전략(story duration)의 하나로 보고자 한다.

    2. 언어와 사태, 그리고 진정성

    드라마가 지니는 본질로 그것을 시청하는 대중에게 ‘유익함과 재미’를 주는데 있다9)는 점을 생각하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아마도 이런 류의 기준에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적 유익함이라는 부분에 방점을 두고 본다면, 단순히 재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특별함이 더 요구된다. 대중이 재미를 느끼는 데는 앞서 언급한 어떤 드라마적인 장치들이나 서사전략들만으로도 일정한 성과를 얻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익함’이라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작가 스스로 이미 어떤 문화적 담론 형성에 대한 강한 동기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의 이런 성격, 즉 공공성을 강조한 바 있기도 하다.10) 어떤 드라마가 재미와 함께 유익함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작가의 특별한 진정성이 발휘될 필요가 있다. 작가적 진성성이야말로 언어가 갖는 힘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의미 없는 말들의 무지개가 아니라면, 작가적 진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진정성’(sincerity)을 어떻게 얻어 가질 수 있을까?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에 기대면, 그것은 ‘엄격한 솔직함’ 혹은, 사태에 대한 ‘틀림없는 충실함’을 의미한다.11) 이는 미리 통용되는 장르의 관습이나 문법에 따르지 않고 작가 정신의 자유롭고 생명력 있는 운동이 작품의 싹을 무르익게 함에 따라 작품이 자발적으로 그 자신을 구성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자생성’(spontaneity)이라는 개념과도 통한다.12) 이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지적 상상물을 표현할 매체 형식을 선택하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구성해 가는 정신의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운동과 그 결과로서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진정하고 자생적인 시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따라서 작가적 진정성은 대개의 경우 인간 내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과 결부되어 드러나게 된다. 언어는 거의 언제나 작가의 이런 노력을 구체화하는 도구이다.

    이미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수현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높은 호응은 그의 작가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그의 드라마가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내적 동기가 있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이른바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그만의 색채가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런 그의 성취를 선악의 이분법적 인물구도를 허무는 갈등양상, 가부장적 성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를 뒤집는 특별한 경향성, 감정소구의 장르문법에 기대지 않고 논리와 이성에 소구하는 전략 등의 서사전략적 측면13)과 함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일상 속에서 감각적으로 이뤄지는 빠른 호흡의 대사전개14)에서 찾고 있다. 그가 곧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호를 얻게 된 데에는 그가 남다른 언어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작가로서 대단히 중요한 자질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다른 작가와 변별되는 점은 기실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학의 언어는 언어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하다. 즉 표현의 유기성과 그 언어적 표현의 대상이 지닌 세계 자체의 내적 질서를 부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기호로서의 언어로부터 그것이 지시하는 삶으로 강조점을 바꿈으로써 재현의 진정성을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대부분 장르 문법의 틀 안에 갇힌 드라마들이 스스로를 겨우 지탱해 가던 놀라움과 환상이 소진되었을 때, 그 자체의 낡음으로 말미암아 찾아가게 되는 억지나 장광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드라마가 보여주 는 세계 인식이 ‘막장’에 그치고 오직 자본의 성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언어의 중요성은 내용의 진실됨을 획득함으로써만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이른바 “언어가 아니라 사태(Cose e non parole)”15)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적 진정성이 없이 언어의 유희에만 머물고만 작품들이 지니는 저열함을 비판하는 말이다.

    한편 언어가 강조되는 문학언어의 특징은 ‘문어적’인데 반하여, 사태가 강조되는 문학언어의 특징은 ‘구어적’인 데 있다.16) 구어로서의 언어는 어떤 맥락속에서 만들어지게 될까?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언어이다. 김수현의 드라마적 공간은 주변의 생활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다. 그의 드라마에서 대사들은 흡사 “사람들의 회화를 몰래 엿들은 것”17)같은 것들이다. 그는 그런 대사들을 통해 “인생의 한 순간을 예민하게 발견”18)하고 있다. 김수현 드라마의 언어가 갖는 구어적 진정성이라는 개념은 어떤 수사적, 문학적 기교나 형식적 법칙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들은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되게 재현할 수 있는 작가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각이나 태도,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특성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사태’가 강조되는 언어인 것이다. 이런 언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언어를’19) 가져와야 한다.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언어들은 모두 등장인물 자신의 삶의 결에 직접적으로 뿌리를 대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살아있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내 아이 하나, 남편 아이 하나, 그리고 우리아이 둘”의 재혼가정을 다룬 홈드라마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인생의 의미를 여러 결로 보여준 작품이다. 예의 전작들에서처럼 펜션집 주인내외를 중심으로 다층적인 대가족 구성원들이 동성애 아들을 가족애로 껴안는 내용이 서사의 주요 줄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다분히 주목할 만한 극적 소재로 사회‧문화적 담론의 장에서 관련 주제를 놓고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전체 64회분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작가는 되돌아가지 않는 직설적인 특유의 서사 전략20)으로 극초반부에서부터 이 문제를 터뜨린다.

    위의 인용문는 시청자들에게 둘 사이가 남다른 사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암시하는 장면이다. 동성애 당사자들도 이 문제는 사회적 편견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놓고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그 갈등에서 당사자 본인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정도로만 이 장면을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장면이 갖는 이면의 메시지를 읽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는 그것을 인정하고 진실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경수)와 망설이는 자(태섭) 사이의 숨막힐 듯 팽팽한 긴장과 함께, 그들이 여느 이성 연인들처럼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읽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한 그의 인식과 태도에서 드러내려는 작가적 진정성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여기서 비평의 초점은 작가 김수현이 이런 자신의 진정성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하는가에 모아지게 된다. 먼저 지적할 만한 점은 그가 핵심을 은폐하거나 질질 끌지 않는 서사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방송드라마의 일반적인 사건전개의 방식이기도 한 이른바 ‘두껍게 묘사하기’의 방식을 통하여 둘 사이의 관계가 가족 사이에 하나씩 드러나고, 시청자의 긴장을 유도하여 ‘이 중대국면이 언제쯤 가장 중요한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인가?’ 와 같은 ‘서사의 은폐’, 혹은 ‘지연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동성애를 극적 긴장을 유지하거나, 시선을 끌 어떤 장치쯤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녀는 핵심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리면, 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이를 통해 어떤 사회문화적 의제를 설정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인용문 는 이런 그의 서사전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는 태섭의 동성애가 여동생 초롱에게 알려지고, 놀란 초롱이 그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면서 오빠를 지켜주려는 태도를 보이자(20회), 태섭이 곧바로 그 사실을 민재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민재는 아들 태섭의 동성애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니며, 그 일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인지를 잘 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며 “나는 태섭이가 너무나 애처로워요. 집에서만이라도 멀쩡한 녀석으로 살게 할래요. 아니 멀쩡한 놈이예요.”(21회)라고 선언한다. 태섭을 매도하고 욕하는 삼촌 병걸을 향해 태섭이 동성애자 이기 전에 가족 구성원이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이라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진정성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등장인물의 내적인 진솔함에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객관적 현실세계를 얼마나 진실되게 드러내느냐에도 달린 문제이다. 생생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없이 작가적 진정성이 드러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진정성이라는 개념을 어떤 수사적, 문학적 기교나 형식적 법칙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되게 재현할 수 있는 예술가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각이나 태도,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특성을 아우르는 말21)이라고 정의한다.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 드라마의 주요한 서사전략으로 지적하는 것으로 흔히 ‘일상성을 기초로 한 사실주의’22) 전략을 꼽는다. 이는 그가 드라마의 문법으로 우화적인 어떤 표현속에서 작가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내려감으로써 비로소 극적 진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드라마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식사장면에 관한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드라마에서 밥이나 집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공간이나 ‘끼니’의 의미를 넘어 등장인물들 간의 대립과 화해를 모색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수단23)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드라마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대중의 드라마적 욕망을 찾아 드러내는지를 살피는 일은 그런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인용문에서도 우리는 등장인물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내면의 진솔한 성찰과 그 결과물로서의 언어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반응하는 심리표현들, 사건에 반응하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정서적 반응들은 ‘사태’로서의 언어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낸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일반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거나, 심지어 증오로 가득 찬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극적 설정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되게 재현하기 위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는 시청자를 공감의 현장으로 이끄는 동기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드라마 속 인물들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잘못 가고 있는 방향 수정에 노력하면서, 자긍심과 희망을 심어주어 부정 바이러스를 긍정 바이러스로 전환시켜보자는 목표”24)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담론 장에서 그가 어떤 의미지향을 갖는지를 알게 한다.

    9)원우현, 「한국 방송드라마에서 김수현의 드라마가 갖는 의미」, 『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솔출판사, 1998, p.55.  10)김수현 외, 『드라마 아카데미』, 펜타그램, 2005, p.23.  11)신혜경, 「청년 그람시의 연극비평」, 서울대인문학연구소, 『인문논총』 65집, 2011, p.65.  12)A. Caputi, Pirandello and the Crisis of Modern Consciousness,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8, p. 28. 신혜경, 위의 글, p.65에서 재인용.  13)유진희, 앞의 글, pp.178-182.  14)김포천, 「거울과 창, 그리고 꿈」, 『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 솔출판사, 1998, p.23.  15)J. Redfern, History of Italian Literature, Vol. 1-2, NY: Basic Books, 1959. 신혜경, 앞의 글, p.67에서 재인용.  16)신혜경, 위의 글, p.68.  17)김포천, 앞의 글, p.35.  18)위의 글, p.36.  19)정홍수, 「말의 자유와 성찰하는 시선의 깊이」, 『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 솔출판사, 1998, p.229.  20)김수현은 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극적으로 자극적인 어떤 소재들, 예컨대 <내 남자의 여자>에서 처럼 ‘불륜’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멜로드라마의 서사전략처럼 그것이 극중의 다른 인물에게 드러나는 시점을 ‘지연’시키거나, 감추거나, 부인하는 방식으로 정서적 공감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극서사의 초반부터 ‘터뜨리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인물의 다양한 반응이나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선택한다.  21)신혜경, 앞의 글, p.68.  22)유진희, 「김수현 홈 드라마의 장르 문법과 젠더 이데올로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0권 11호, 2010, p.107.  23)윤석진,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집과 밥의 힘」, 월간 『말』, 2008.3.  24)http://tv.sbs.co.kr/beautifullife

    3. 이슈의 선점과 사회?문화적 의제 설정

    김수현은 드라마 만들기가 “극적 상황이라는 맥락에 반응하는 개인과 그를 둘러싼 관계망의 표현”25)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주목하는 극적 상황은 대개 두 가지 지점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가족관계에서 발견되는 극적상황’과 ‘정념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남녀관계의 맥락’이 그것이다. 전자는 홈드라마 장르로, 후자는 멜로드라마 장르로 대별할 수 있겠다. 김수현의 작가적 변별점은 그가 단순히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아류에 머무르지 않고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과 변주’(’Genre VS genre’의 서사구도)를 통해 대중의 드라마적 욕망을 조직하고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는 장르의 문법을 단순히 반복하는 일체의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조차 스스로 닮은꼴을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26) 이런 정신은 그를 독보적 지위를 갖는 작가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필자는 김수현이 시도하고 있는 이런 장르 문법의 ‘변주’가 대중적 욕망의 드라마적 재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적 전략이며, 이는 주로 ‘이슈의 선점과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제 설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는 그의 드라마를 ‘탁월하고 기발한 언어’의 연금술에 기댄 ‘차별화된 서사전략’ 속에서 구축된 것이라는 기존의 해석에 또 다른 부면을 추가하는 일이다.

    이런 방향에서 연구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개념이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다. 헤게모니론은 그람시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람시에게 있어서 헤게모니는 폭력적 강제를 전제하는 ‘지배’(domination)와 대중의 자발적인 동의가 내포된 개념인 ‘지도’의 기능이 결합된 의미이다.27) 이제 어떻게 대중문화의 장 안에서 대중의 자발적인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인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배계층의 지적‧도덕적 리더십이다. 당연히 이 때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게 제기된다. 이들 지식인이야 말로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순환과 발전에 있어서 전문적인 책임을 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람시는 지식인을 두 종류로 대별한다.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s)이 그것이다.28) 전자는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집단정신을 통해 역사적 연속성을 갖고, 고유한 신분과 특권을 누리며, 자신을 사회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집단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대중과 유리된 집단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전통적인 지식인들과 다른 집단으로 후자의 유기적 지식인이 거론된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적 유형을 위한 지식인으로 과거의 지식인과 다르게 과거의 지적상황과 스스로를 단절하고 실제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대중들의 의식 속에 일정하게 유형화되어 내면화된 도덕적 지적 생활을 변혁하고 조직화하면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정교화한다.

    그람시는 이런 논의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모든 문화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는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 유기적인 통일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지식인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9) 그람시는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무비판적인 세계인식과 이해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30) 이런 대중의 무비판적인 세계인식과 이해 수준을 보다 일관성 있는 사고 수준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장 안에서 보다 광범위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편 그람시가 파악한 대중문화의 장에 포섭된 대중의 세계인식과 도덕성은 기존의 그것을 반영하는 보수적인 층과 창조적이며 진보적인 층 등이 뒤섞여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인식과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확대하고 사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31) 즉 문화적 의제의 선정과 그 충격에 의해 대중들로 하여금 체계적으로 사유하고 실제 현실에 대해서도 새롭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 대중문화의 담론 장 안에서는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더 많은 설득과 동의를 얻기 위한 지적·윤리적·문화적 차원의 헤게모니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거나, 문화 활동을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투쟁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의 역할이다. 지식인들은 바로 매체나 저술 등의 문화적인 담론의 장에서 담론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주류 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주류 미디어를 통한 지배적 헤게모니에 대해, 대중들 역시 여러 방향에서 대항 헤게모니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런 현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복잡성 때문에 바람직한 지식인상이 ‘전통적인 비판 지식인’에서 자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람시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도 막강한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기업가는 자신 주위에 산업 기술자, 경제전문가, 새로운 문화와 법체계의 조직가들을 만들어낸다.32) 이 과정에서 주류 진영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들을 스스로 길러내고, 다시 이들 지식인들을 이용하여 문화‧교육‧언론 등과 같은 영역의 개별적 지식인들이 그들 주류의 이해에 부응하도록 한다는것이다. 그리하여 유기적 지식인은 그들 스스로가 특정 계층이나 계급을 형성하기보다, 어느 다른 특정계층이나 계급에 대해 지도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그 계급의 방향을 제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리담론의 ‘실천적 지식인’들인 셈이다. 한편, 주류 헤게모니 진영과는 반대로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려는 쪽에는 전적으로 지식인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해야 하는 까닭에 유기적 지식인들이 절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항 헤게모니를 고민하는 진영에서 담론 형성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이슈를 선점하고 선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김수현 드라마가 갖는 특징으로 확인되는 ‘이슈의 선점과 사회‧문화적 의제 설정능력은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케 하는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수현의 작가적 지위를 구축하는 데 출발점이 된 것으로 평가되는 <새엄마>(1972-1973, MBC)는 재취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뒤바꾸는 데 일조한 드라마로 평가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복잡하고 말 많은 대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어 들어간 재취 여성은 간단치 않은 갈등을 겪으며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이라거나, 전처소실들을 핍박하는 악한 인물일거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33) 김수현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들에서도 이런 점은 흔히 발견된다. <내 남자의 여자>(2007, SBS), <엄마가 뿔났다>(2008, K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SBS), <천일의 약속>(2011, SBS) 등이 그런 사례이다. <내 남자⋯>에서는 가장의 불륜을 겪는 부부 갈등과 그 과정에서 주목하게 되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자기성찰의 문제’를, <인생은⋯>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엄마가⋯>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자아찾기’ 내지는 ‘태업’이 갖는 의미를, <천일의⋯>에서는 젊은 여성을 통한 ‘치매’의 문제 등을 지적한다. 이런 극적 소재와 그것을 펼쳐가는 서사전략들을 통해 김수현은 새롭게 조직되는 대중적 욕망과 그것의 드라마적 재현을 통하여 주류 담론과는 다른 대항적인 대중문화 담론의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특히 ‘동성애’ 문제로 문화 담론 장안에서 뜨거운 반응을 낳았던 <인생은 아름다워>를 중심에 놓고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소수자 집단으로 차별받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향한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태도는 학력이나 가치관, 경제적 소득과 상관없이 그들 동성애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데 있는 부적응자로 인식되고 있다.34) 이는 이 문제에 관한 사회문화적 담론의 헤게모니가 이성애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데 따른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성에 관한 사회적 담론은 성적인 욕구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당대의 권력가들이 주도하는 종교적·도덕적 판단이나 생체권력에 의해 관리되며 그 결과 사회적 주도권을 쥔 지배세력의 성욕은 통제가능한 건강한 것으로, 권력을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의 그것은 병, 광기 혹은 범죄의 영역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35)고 한다. 앞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난광고 등과 대항담론의 논쟁은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지배세력들의 비과학적인 비판에 대한 대항 담론의 반론은 이런 사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TV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기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라고 한다. 그러나 줄곧 동성애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드라마의 중심 서사로 다뤄지기 보다는 중심 서사의 곁가지 혹은 그 일부로 다뤄지거나 드라마의 갈등 구도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다뤄진 것이 보통이었다. 동성애 드라마의 연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주창윤의 연구이다.36) 그는 TV드라마가 사회적인 쟁점을 드라마로 다룰 때 인물/갈등구도, 서사전략의 측면에서 일정한 표현방식상의 특징들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2000년대 초 방영된 세 편의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이들 동성애 표현 드라마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첫째, 이성애와 동성애의 대립적 구도에서 이성애는 낭만적 사랑의 모델로, 동성애는 비극적 사랑의 모델로 고착화된 시각을 보여준다. 둘째, 가능한 동성애를 사적 공간 안에서만 다루려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셋째, 서사의 전개과정에서 결혼을 중요한 기제로 활용하면서 기존의 결혼제도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후로도 TV라는 매체 안에서 이 문제가 여전히 단순한 소재주의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연구자의 우려가 현실적으로 반복되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후로도 TV드라마가 동성애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직접적인 방식 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이었다. 낭만적인 동성애 코드가 사용되었다고 평가되는 <커피프린스>(2007.MBC)에서는 이 문제를 남장여성에 대한 성적호감을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사실은 아름다운 여성인 주인공의 성 정체가 언제 드라마 속에서 표면화되고, 그리하여 언제쯤 그들 주인공 남녀의 낭만적인 사랑이 결실을 맺을 것인가?”에 있었지 드라마 속에 표현된 동성애문제에 대한 사회·문화적 의제 제기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앞 장의 인용문을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 문제가 처음 드러나는 장면은 2회에서이다. 장면은 민재의 주방으로 동성애자인 태섭이 전날 여자와 헤어진 뒤 가족들의 아침식사자리에서의 대화를 그리고 있다. 동생들은 태섭이 여자와 헤어진 것은 가족들이 모르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 때문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면서 적어도 여자에게 차인 거라면, “술 퍼먹고 들어와 싸고 드러눕진 못해두 밥은 안 먹혀얄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 이에 태섭은 “상처주기 싫을 뿐”이라고 답한다. 이 장면은 이후 전개될 동성애 문제에 대해 작가가 어떤 태도로 임하는 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설명을 담고 있다. 애정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단호하다. 그는 여러 드라마에서 남녀간의 사랑의 문제에서 인간적인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진실됨’을 최고의 가치로 주장한다. 불륜을 바라볼 때에도 그는 일관되게 제도나 관습보다는 사랑의 진실됨을 더 강조한 바 있다.37)

    작가는 위의 장면에서도 남녀가 사랑문제에 있어서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의사가 없으면 처음에 정확하게 말하고 정리해야” 하며 질질 끄는 것은 “피차 쓸데없이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고 교활한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작가가 이후 전개될 태섭의 동성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태도이다. 그에게서는 문제사태에 대해 우회하거나 지연시키는 방식은 있을 수 없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당사자인 태섭을 통해 “반해지질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이성에 대해 감정이 끌리지 않는 동성애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지는 가족들의 거듭된 질문에 태섭은 의사인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보이면서 다가오는 그 여성이 동료의사이며, 그것도 외모나 성격에 있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여성이지만, 그저 당사자인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이후 전개될 드라마 서사에서 동성애 표현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작가의 시각이 과거 그의 드라마에서 일관되게 그려졌던 ‘사랑지상주의적인 태도’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사회적 시각에서 비정상적인 것이든 정상적인 것이든, 그 어떤 사랑도 당사자 사이의 ‘진실성’이 결여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은 그런 작가의 사랑관을 잘 보여주는 인물일 것이다. 이런 작가의 사랑지상주의적인 태도는 동성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주인공 태섭의 성적정체성을 아직 드러내지 않지만 이후 그가 친구인 ‘경수’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여러 동성애적 사랑표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의 서사전략은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방식에서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성담론과 관련한 주류의 이해 수준이 편견에 가득 찬 것이고, 악의적인 배제와 차별에 있다는 사실은 대개의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지할 만한 것임에도 공중파 매체의 드라마에서 이 문제를 이 정도 수준에서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여간한 의지와 실천력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다. 작가 김수현은 “더 많은 대중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정형의 대중에게 인격을 부여하기 위해”38)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특정 사안에 대한 대중적 욕망을 발견하고 나아가 그것의 드라마적 재현을 위해 펼쳐지는 담론 투쟁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런 그의 시도들은 동성애문제를 둘러싼 당대의 이데올로기적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는 동안 드라마 속에 그려진 ‘동성애 코드’가 문제시되면서 조선일보에 ‘참교육어머니 전국모임’ 등 몇몇 단체의 이름으로 비난광고가 게재되었다. 광고에서는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제목으로 드라마의 내용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에 “⋯에이즈 운운하는 광고 났다면서요. 웃음도 안 나오네요. ⋯메이져 신문인데도 돈만 내면 말 안 되는 광고 받아주나 봐요. 참나⋯”라고 받아치는 등 공방이 일었으며, 이후로도 이 논란은 사적·공적인 담론공간을 통하여 한 동안 계속되었다. 이른바 우리 시대 동성애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를 대중문화의 장에 하나의 상징기호로 정착시킨 홍석천 등의 트위터 상의 발언 내용이나 작가의 개인 홈피, 드라마홈페이지 등에서 이뤄진 열띤 논쟁 등은 그 구체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또 드라마 속 태섭과 경수의 동성결혼 장면 촬영과 관련한 종교단체와의 갈등, 애정표현 등을 둘러싼 우려와 비난을 둘러싼 담론 장에서의 논란 등 드라마 외적공간에서의 성담론을 둘러싼 논쟁은 지배집단의 대리담론과 대항 담론 간의 헤게모니 투쟁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다만 김수현을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대중의 욕망을 드라마적으로 재현하여 대중문화의 담론 장 안에서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드러내는 면모 이면에는 주류 담론 속에서 대리담론자로로서의 모습 역시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위의 인용은 전체 63회 분량의 드라마의 중반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처음 가족 구성원인 여동생에게 태섭의 동성애가 드러나고, 이후 이어지는 장면에서 곧바로 고백(커밍아웃)이 이뤄지는 장면이다. 장남의 고백을 들은 민재는 충격으로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당연히 이 충격 은 주류 헤게모니의 입장을 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이 충격은 김수현의 이전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족애’를 통해 극복된다. 동성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동성애자라고 해도 그가 아들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고백 이전과 다른 존재로 인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런 가족중심주의 서사는 작가 김수현의 담론 대리인으로서의 모습을 증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25)김수현 외, 『드라마 아카데미』, 펜타그램, 2005, p.23.  26)신상일, 「김수현 드라마의 인간과 문화」, 『김수현드라마에 대하여』, 솔출판사, 1998, p.79.  27)안토니오 그람시, 앞의 책, p.17.  28)위의 책, p.46.  29)앞의 책, p.22.  30)위의 책, p.21.  31)위의 책, 같은면.  32)앞의 책, p.261.  33)오명환, 『텔레비전 드라마의 사회학』, 나남, 1994, p.428.  34)박수미·정기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적 태도에 관한 연구」 ,『여성연구』 통권 70호, 2006, p.10.  35)M.푸코, 이규현 역, 『성의 역사1. 앎의 의지』, 나남, 2004, p.86.  36)주창윤, 『텔레비전 드라마-장르, 미학, 해독』, 문경, 2005, pp.67-94를 참조할 것.  37)이에 대해서는 유진희, 「김수현 멜로드라마의 장르문법과 성 이데올로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9권 11호, 2009를 참조할 것.  38)안토니오 그람시, 앞의 책, p.183.

    4. 결어

    그람시에 따르면, 국가개념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로 이뤄진다. 둘이 균형을 이루며 각자의 헤게모니를 산출하고 유지할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역사성을 띤 국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정치사회’는 대중을 기존의 형태에 순응 통제하기 위해 동원되는 강권적 권력기구이다. 반면, ‘시민사회’는 대중이 사회문화적 담론 장에서 행사하는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지식인은 바로 이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시민사회는 지식인의 책임과 연대에 의한 감시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문화 담론의 장에서 지식인의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이런 사회‧문화적 요구가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앞서의 논의를 통하여 김수현과 그의 드라마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적 담론 형성의 장에서 일정한 위치를 갖고 있으며, 이런 지위는 그람시가 말하는 헤게모니의 개념을 통해 보다 새롭게 의미화할 수 있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본 연구가 논의를 통해 도달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수현의 드라마들은 특유의 드라마 전략들, 예컨대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일상언어의 아름다움과 인간에 대한 독특한 시각 등을 통해 그 자체로서 작가적 진정성을 발휘하고 있다. 둘째 이런 그의 작가적 진정성은 사회‧문화적 이슈의 선점과 의제설정 능력을 통해 문화적 담론장에서 헤게모니적 기능을 갖는다. 셋째, 이런 헤게모니적 기능은 그를 ‘유기적 지식인’의 한 전형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데 무리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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