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박기현은 그의 논문 「보들레르의 미술비평에 나타난 여성」1)의 <맺음말>의 말미에서,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에 나타난 여성들을 상호 비교하여 보들레르의 다양한 시 세계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살펴보는 일”과 “보들레르 이후 회화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모습과 시인들의 작품을 상호 비교하여 보는 작업”을 그 자신 및 국내 보들레르 연구자들의 차후의 연구과제로 제안하였고,2) 6년 후에 발표된그의 후속 연구속에서도 “보들레르 연구들 중에서 여성과 에로티즘이라는 주제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에로티즘과 색채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바로 그러한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로 이루어졌다”3)고 자신의 연구의 동기를 재차 밝히고 있다.
이번에 우리는, <보들레르와 여자> 내지 <보들레르의 에로티즘4)>이라는 주제에 대한 본격적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본 논문을 통해,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들이 현재 국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어 있는가, 다시 말해 이 주제에 관해 주로 어떤 부분들이 주로 어떤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는가, 어떤 면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 여전히 미진한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들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에서 보들레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행된, <보들레르와 여자>라는 다소 폭 넓은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성과들 가운데, 주요 문학잡지, 프랑스 문학-예술 관련 학회지, 대학 발행 논문집 등에 게재된 글들 및 박사학위 논문, 그리고 이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번역서 및 연구서를 선별하여 연대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하겠다.
이러한 성격의 작업에 항상 수반되는 위험과 일종의 권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동일 주제에 관한 동일 내용의 연구들이 그것도 축소적으로, 중복 생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선행연구들의 성과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가 보다 신속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러한 작업에 의해, 유사하거나 동일한 분야에 관심을 지닌 연구자들 사이에서의 연구를 통한 교류와 공조를 통해 저 간극들을 메워나감으로써 보다 견고하고 완전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희구한다. 이하에서 우리가 검토 대상인 연구들의 원문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이다.5)
1)Cf. 박기현, 「보들레르의 미술비평에 나타난 여성」, 「프랑스문화연구」, 제 5집, 한국프랑스문화학회, 2000, pp. 157-174. 2)Cf. Ibid., pp. 171-172. 3)박기현, 「L'érotisme et les couleurs」, 「불어불문학연구」, 제 65집, 2006, p.124. 4)Stéphane Michaud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여기서 이 용어를 Robert Desnos的인 폭넓은 의미로 사용하겠다. Cf. Michaud (Stéphane), “Erotisme et crauté : Le culte baudelairien de la femme-idole”, in Etudes baudelairiennes, XII, A la Baconnière, 1987, p. 23 : “Erotisme : Tout ce qui se rapporte à l'amour pour l'évoquer, le provoquer, l'exprimer, le satisfaire, etc.” 5)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식이 분명하거나 현행 표기법에 분명히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단어들과 문구들은 우리의 교정으로 인용하겠다.
우리의 확인에 의하면, 국내에서 <보들레르와 여자 > 문제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1966년 2월 24일자 <중앙일보 >에 실린 筆名 “美”의 “여인 - <보들레르 >의 戀人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구절들에서 우리가 짐작 할 수 있듯이, 보들레르의 세 애인들 및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보들레르의 경멸적 여자관의 일면에 대한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소개라고 할 수 있다.
1969년에 최귀동은, 잡지 「新像」에 게재된 「보들레르의 女性을 통해 본 罪惡觀」6)을 통해, 1930-50년간에 행해진 프랑스에서의 보들레르의 연구들,7) 그리고 일본에서의 보들레르 연구들8)의 일면, 그리고 당대의 한국에서의 보들레르에 대한 연구의 수준을 가늠케 해주는 흥미로운 견해들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보들레르는여자와의 사랑에서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 찬 쾌락”을 추구한 사람이다.
1971년에 조우현은 「보드레르와 女性들」15)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Baudelaire에게 있어서 여성은 “詩心의 고향이며 살아 있는 Muse”였고, “여성을 주제로 한 시들 중에서 훌륭한 것들은 모두가 肉感的인 것과 精神的인 것들이 渾然一體가 되어 영혼의 절규가 되어 흘러나온 것”이었으며, Baudelaire의 여성증오나 멸시는 오히려 보들레르 자신이 “feminist임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1976년에 김인환은 「문학사상」에 「옛 資料로 엮은 文學史 뒤의 女人들 - 보들레르가 創造한 두 女人」을 발표한다.23) 거기서 그는 “보들레르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찰이 필수적인” Jeanne Duval, Marie Daubrun, Sabatier와 보들레르 사이의 관계 및 관련 시편들을 소개한 후, 보들레르가 “여성과의 사랑에서 갈구한 것은 쾌락보다도 정신적인 구원”이었고, 보들레르에게 여인은 자극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비극적인 현실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었으며, 그의 비극적인 생애가 어머니를 잃었다는 슬픔에서 비롯되었기에 결국 “보들레르의 시 속에 잠재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여성에 대한 사랑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1977년에 김붕구는 그의 「보들레에르」30) 속에서 보들레르와 Jeanne Duval,31) Marie Daubrun,32) Sabatier33) 사이의 연애와 관련된 일화들을상세히 소개하고, “사랑의 양극성”,34) “사랑의 기사도”,35) “선구적 미감각과 이원성의 미학”,36) “시에 나타난 여성미”,37) “반자연-반여성의 정신(이상)주의”38)라는 제목들 하에서 여자와 사랑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원적시각을 상세히 소개한 후, 1979년에는 「惡의 꽃」의 5편의 시39)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논문 「「악의 꽃」의 여성미 편에 관하여」40)를 통해 「악의 꽃」속에 나타나는 여성미가 <美>에 대한 보들레르 자신의 정의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에 김환희는 「Baudelaire의 Jeanne Duval篇 分析 -
1985년에 박익재는, Sartre의
1988년에 손우경은, 자신이 3년 전에 썼던 논문53)을 확대발전시킨 연구 「Baudelaire와 그의 여성들」54)을 통해, 보들레르와 Jeanne Duval, Sabatier, Marie Daubrun 사이의 관계 및 그녀들이 시인에게 끼친 정신적 영향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후 “Jeanne가 관능적인 계열, Sabatier는 지성적인 계열, Marie는 그 양자가 혼합된 성격을 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55)
1995년에 심재상은 자신의 1년 전 박사학위 논문 「老莊的 視覺에서 본 보들레르의 詩世界」를 동일제목의 단행본56)으로 출간한다. 그 책의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Léon Cellier의 한 논문57)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시인이란 무엇보다도 우주적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Cellier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58) 그는, “보들레르의 시편들은 하나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의해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그의 시언어들은 그 비전을 가장 온전하게 표현해내려는 노력의 표현들이자 그 결과들이다”59)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보들레르가 二元論的 세계관으로부터 一元論的 세계로 옮아가는 극적인 변모과정”60)을, “老莊的 世界觀”을 “하나의 해석적 틀”61) 내지 “보들레르의 시세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일종의 거울”62)로 삼아 추적하고자 시도한다. 요컨대 그의 주장에 의하면, “보들레르의 美를 구현하는 여자는 <괴물>”이고, “‘추악한 위대함, 숭고한 치욕’인 여자야말로 최고로 실현된 「惡의 꽃」”이다.
1995년에 김영은 Julia Kristeva의
1995년에 민희식은, 그의 논문 「보들레르의 「惡의 꽃」 쟌느 뒤발 시편에 나타난 영상세계」72)의 <서론>에서, “「惡의 꽃」의 연애 시편에 있어 사바티에 부인 시군이나 마리 도브룅 시군에 대한 연구는 F. Forché나 A. Feuillart에 의해 상세한 연구가 이루어진 데 비해 쟌느 뒤발 시군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 이 논문은 쟌느 뒤발 시군 약 20편을 분석하여 각 시군을 관련시켜 고찰함으로써 시편이 주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미학을 탐구하는 데 있다”73)는 말로 자신의 연구의 목적을 밝힌 후, 이어서 이미지 분석의 대가들인 저 G. Bachelard와 J.-P. Richard의 방법론을 빌어
1996년에 정광흠은 「La volupté divine dans
1997년에 김종호는 「보들레르의 에로스 시학」79)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연속되는 自問들과 돌발적인 단언들로 다소 혼란스럽게 구성된 이 논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겠다.
1997년에 유정애는 Pierre Emmanuel의
2000년초에 우리는 「보들레르의 산문시 연구」122)의 제 3장에서, 보들레르의 女子觀을, 특히 反自然主義的 모랄리스트로서의 보들레르의 시각을 강조하면서, 간략하게 논하였다.123)
우리가 본 연구의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2000년 말에 박기현은, 그의 논문 「보들레르의 미술비평에 나타난 여성」124)을 통해, 보들레르의 단편소설 「La Fanfarlo」 및 미술비평들에 나타나 있는 보들레르의 여자관을 고찰한 후 보들레르가 추구하는 회화적 에로티즘은 “고통과 결부된 관능미, 고통이 따르는 여인의 관능적인 미”이며, 보들레르는 회화의 외양적 주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당대에 살고 있는 시인이 느끼는 우울감과 반항, 영웅적인 모습이 투영된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2001년에 이수진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악마주의적 괴물미학에 관한 고찰」130) 속에서, “「惡의 꽃」의 독특한 미학은 주로 연애시편에서 볼 수 있고”, “미의 기본적인 형태는 여성의 육체에서 이루어지고”, “보들레르에 있어서 여성과 여성의 신체는 현실세계에서 이상세계로 가는 관문이며”, “「惡의 꽃」의 再版에서는 괴기의 미학이 나타나고, 모든 괴기한 요물이 여성을 상징하며, 그것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본질적 성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001년에 윤영애는 김붕구의 평전 「보들레에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132)를 통해, 1977년에 김붕구가 그랬던것처럼, 보들레르와 Jeanne Duval,133) 「인공낙원」의 헌사에 “J. G. F.”로 표기되는 미지의 여인,134) Marie Daubrun,135) Sabatier136) 사이의 연애담 및 보들레르가 그녀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시 수편을 소개한다. 거기서, 보들레르와 여자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기사도”와 “영웅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김붕구가 느꼈던 특별한 매력과 감동137)을 “몽상”이라는 낱말에서 발견하는 윤영애는, 보들레르에게 있어서의 여자의 의미를, 요컨대<몽상의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2003년에 이진성은, 김붕구141)와 윤영애를 비롯한 국내의 보들레르 연구자들이 거의 언급하지 않은 Joseph de Maistre에 관해 3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유추와 상상력의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142)를 출간한다. <저자의 말>을 통해, 보들레르의 시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특히 “아름다움”, “꿈”, “감미로움”, “긍정적 기쁨”을 준다고 강조하는143) 그는 보들레르의 연애담들을 간략히 소개하고,144) 「La Fanfarlo」의 내용과 가치를 언급145)한 후, 「惡의 꽃」의 시론과 미학에 대한 해설 속에서 “여인은 보들레르의 상상력에서 ‘감미로움’이라는 아름다움과 죽음이라는 ‘毒’을 함께 구현한다”고 주장한다.
2006년에 이건수는, 그의 보들레르 略傳 「저주받은 천재시인 보들레르」150) 속에서, 보들레르의 여자 문제에 대해, “여성과 육욕에 관한 보들레르의 부정적 시각은 그의 미학 세계 내에서 ‘당디즘’과 ‘영혼의 성스러운 매음’으로 해소된다”는 놀라운 확신을 피력한다.
2006년에 박기현은 「L'érotisme et les couleurs」153)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회화가 보들레르의 시적 사고에 많은 자양분을 제공했고, 이미지는 보들레르의 열중의 대상이었으며, 「惡의 꽃」 속에서 보들레르는 회화적 이미지들과 시적 이미지들을 교류시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154) 「惡의 꽃」의 처벌시들 모두가 “육체들과 일락의 표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에로틱한 시들”155)이라는 John E. Jackson의 지적을 상기시키면서, 박기현은 “「惡의 꽃」의 시들 속에서의 색채들의 역할에 대한 분석 및 보들레르가 ‘그리고 싶은 욕망’을 색깔 그 자체 속에서 및 색채 그 자체에 의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고찰”156)을 그의 탐구의 목표로 삼는다. 풍부한 참고자료들로 구성된 논문의 본문을 통해, 청색, 흑색, 적색에서, 각기 멜랑꼴리, 美, 暴力이라는 보들레르의 개인적 테마 내지 상징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후, 이를테면 <에로티즘을 중심으로 살펴 본 보들레르의 색채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을 한 연구로부터 박기현이 도출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6)Cf. 최귀동, 「보들레르의 女性을 통해 본 罪惡觀」, 「新像」, 제 2호, 1968, pp.70-83. 7)그가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연구서들은 다음과 같다 : Gustave Lanson, 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Gonzague de Reynold, Charles Baudelaire, Crès, 1920; Albert Thibaudet, Intérieurs, Plon, 1924, pp. 1-61. 8)대단히 혼란스러운 일종의 非文들로 형성된 이 논문은 우리로 하여금, 논문의 말미에 “詩人. 西江大講師”로 소개되고 있는 그 저자가 아마도 재일동포가 아니었나 생각하도록 만든다. 9)최귀동, 「보들레르의 女性을 통해 본 罪惡觀」, 「新像」, 제 2호, 1968, p. 74. 10)Ibid., p. 77. 11)Ibid., p. 78. 12)Cf. Ibid., pp. 79-81. 13)Ibid. p. 81. 14)Cf. Ibid., pp. 82-83. 15)Cf. 조우현, 「보드레르와 女性들」, 「불어불문학연구」, 제 6집, 1971, pp. 187-204. 16)Ibid., p. 188. 17)Ibid., p. 189. 18)Ibid., p. 191. 19)Ibid., p. 195. 20)Cf. 조우현, 「보드레르와 女性들」, 「불어불문학연구」, 제 6집, 1971, pp. 201-202. 21)Ibid., p. 203. 22)Ibid., p. 204. 23)Cf. 金仁丸, 「옛 資料로 엮은 文學史 뒤의 女人들 - 보들레르가 創造한 두 女人」, 「문학사상」, 1976년 11월호, pp. 234-241. 24)Ibid., p. 234. 25)Ibid., p. 235. 26)Ibid., p. 238. 27)Ibid., p. 239. 28)Ibid., p. 240. 29)金仁丸, 「옛 資料로 엮은 文學史 뒤의 女人들 - 보들레르가 創造한 두 女人」, 「문학사상」, 1976년 11월호, p. 241. 30)Cf. 김붕구, 「보들레에르」, 文學과 知性社, 1977. 31)Cf. Ibid., 특히 pp. 79-83. 32)Cf. Ibid., 특히 pp. 133-138, 157-167. 33)Cf. Ibid., 특히 pp. 201-214, 223-226. 34)Cf. Ibid., pp. 211-215 : “그의 사랑의 兩極性이라 할만한 二元性 (...) 한편으로는 사랑의 이상(순수)주의 내지 신비주의랄 만한 근본 태도와 생각, 다른 한편으로는 性愛에 동반하는 쾌락에 대한 惡意識, 또는 섹스의 대상으로서의 女性 자체에 대한 멸시와 惡意識이 詩人 속에 늘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 35)Cf. Ibid., pp. 322-325. 36)Cf. Ibid., pp. 361-365, 370-371. 37)Cf. 김붕구, 「보들레에르」, 文學과 知性社, 1977, pp. 371-373. 38)Cf. Ibid., pp. 403-405. 39)즉,
이상에서 우리는, <보들레르와 여자>라는 주제에 대한 본격적 연구에 앞선 선행 작업으로서, 그 동안 국내에서 <보들레르와 여자> 내지 <보들레르의 에로티즘>이라는 주제로 실행된 연구들 - 대학 신문에 게재된 글이나 석사논문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 을 연대기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국내에서 이 문제에 관해 꽤 많은 연구가 실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여러 문제들이 아직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째, 보들레르와 「惡의 꽃」의 세 뮤즈, Jeanne Duval, Marie Daubrun, Mme Sabatier 사이의 연애 문제, 그녀들과 관련된 「惡의 꽃」의 詩群들이 보여주는 변별적 특성 문제는, 조우현, 김인환, 김붕구, 김환희, 손우경, 민희식, 이수진, 윤영애에 의해, <완전히> 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해명되었다고 생각한다.158)
둘째, 조우현, 김인환, 김붕구, 김환희, 손우경, 유정애(Pierre Emmanuel), 윤영애, 이진성이 논하고 있는 <보들레르와 그의 어머니>문제는 아직 여전히 미결 상태로 남아 있는 듯하다. 비록 보들레르의 서간들을 세밀하게 검토한 김붕구는 “自己傳記의 소급적 윤색 내지 재구성”159)과 “원한의 회고적 逆流”160)를 고려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밖의 거의 모든 연구자들은 어머니와 단둘이 행복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성인 보들레르의 對女性觀 및 여자를 주제로 한 그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보들레르의 에로티즘의 요체는 바로 유년의 “푸른 낙원”으로의 향수 내지 회귀의 욕망이다>는 식의 단언에는 많은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이미지> 분석이나 <행복한> 내지<성공적인> <몽상>의 차원에서는 해결되기 힘든 문제이며, 역시 보들레르의 서한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김붕구의 연구 방식을 계승하여, <인간>보들레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보들레르의 에로티즘이 노정하는 가학적 내지 파괴적 성격에 대한 연구는, 김종호, 이수진, 박기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전히 미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듯하며, 차후 Sade의 작품들 그 자체와 P. Klossowski의 「Sade mon prochain」, 그리고 G. Blin의 「
넷째, 최귀동, 김붕구, 심재상, 크리스테바(김영), 정광흠, 엠마뉴엘(유정애)이 주장하는 보들레르적 관능(일락)의 신비주의적-종교적 성격은 물론, “보들레르 세계에는 진정한 에로티시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에로티시즘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추억의 매개체이거나 이상화 작업의 구실에 불과하다”는 윤영애의 단언이나, “보들레르가 여자들과 맺는 관계들은 금지된 모태로의 회귀적 욕망의 드라마의 반복이다. 여자 숭배자인 동시에 여자의 포로인 보들레르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여자를 통해 고통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성교를 통해 시원적 통일성으로의 회귀를 지향한다. 보들레르에게 여자는 도달불가능한 어떤 현실의 그림자이고 추억이며, 사랑은 심연의 유혹인 동시에 어떤 지고한 현실에의 욕망이다. 보들레르에게 갈망과 증오의 존재인 여자와의 성애적 결투는 신과의 끝없는 전투의 이중적 양상이다”고 주장하는 Emmanuel에 대한 유정애의 찬동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것들을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김붕구가 “사랑의 이상주의 내지 신비주의와 성애에 동반하는 쾌락에 대한 惡意識, 또는 섹스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자체에 대한 멸시와 惡意識의 공존161) (...) 이상주의와 신비주의의 대극을 이루는 性愛의 惡意識의 공존”이라고 불렀던 문제도 여전히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붕구는 그것을 그가 수립한 도식162) 속에서의 최종적 단계이자 궁극의 차원인 “초자연주의”163)로, 그리고 심재상은 “보들레르의 몽상의 힘에 의해 무한히 확장된 우주적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신비롭고 행복한 순간”164), “현묘함의 꽃들이 벙그는 순간”165)의 도래에 대한 확신으로, 그리고 윤영애는 “보들레르의 시의 근저를 이루는 교감과 아날로지의 원리에 따라 동물적인 여인이 정신적인 심오한 존재로 상승되어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는 몽상의 영역”에서, 그리고 정광흠은 “육체적 쾌락을 통한 신성한 관능의 극치”166)를 통해 해결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해결>에 대한 이 모든 단언들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의 저작들 그 어디에서도 <해결의 순간과 장소>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우리는, “보들레르에게서 원죄와 연결되어 있는 여자와의 사랑은 죄악시되지만, 여성과 육욕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 시각은 보들레르의 미학 세계 내에서 당디슴과 영혼의 성스러운 매음으로 해소된다”167)는 이건수의 대담한 단언과 “여성 혐오증은 극복되지 않는다. (...) 꿈이자 毒으로서의 여자의 이중적 특성은 우울과 이상의 대립과 긴장처럼 역동적 긴장과 에너지로 충만되어 있다”168)는 이진성의 주장 사이에서, G. Blin의 저 결론169)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다섯째, 조우현이 T. S. Eliot의 논법을 차용하여 자신의 연구의 결론으로 제시하는 저 단언 - 즉 “보들레르의 여성혐오는 뒷문으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 자신이 실제로는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170) - 에 대해, 우리는, 만일 우리가 그의 주장에 찬동한다면 보다 풍부한 증거자료들을, 그리고 만일 우리가 반대한다면 보들레르의 anti-féministe的 면모를 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 연구 성과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섯째, “보들레르가 여성과의 사랑에서 갈구한 것은 쾌락보다는 정신적 구원이었다”는 김인환의 주장 및 “여자는 보들레르가 그 속에서 때때로 망각을 추구하는 어떤 향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관조의 대상이다”는 윤영애의 단언은, 그것들이 정반대의 주장과 대면하여 설득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하고 견고한 관점과 논리, 그리고 보다 풍부한 증거들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일곱째, 에로티즘을 중심으로 보들레르의 색채 심리를 고찰한 박기현의 연구는 현재 국내에서의 보들레르 연구에 있어서 대단히 독창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점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보들레르의 반자연주의를 논하는 가운데 여자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중적 태도를 간략하게 언급했던 우리는 본 논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후속될 다음 연구에서는 ‘보들레르와 여자’라는 문제를 보다 넓고 견고한 관점에서, 그리고 본 논문에 동기를 부여했던 박기현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국내에서의 보들레르 연구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워보겠다’는 마음으로 탐구해 볼 생각이다.
158)본 논문에서는 비록 검토되지 못했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석사학위 논문도, 윤영애의 「Les Fleurs du Mal에 나타난 Jeanne Duval의 연구」(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1974)를 비롯하여, 필경, 여러 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9)Cf. 김붕구, 「보들레에르」, 文學과 知性社, 1977, p. 15-27. 160)Cf. Ibid., pp. 88-97. 161)Cf. 김붕구, 「보들레에르」, 文學과 知性社, 1977, p. 211-213. 162)Cf. Ibid., p. 409 : “신의 전락(창조행위)에 의한 인간의 원초적 고독 → 프로 스티튀숑의 욕구 → (특히 예술가의) 프로스티튀숑에 의한 황홀경의 성취와(특히 사회적 자아의) 프로스티튀숑의 좌절 및 소통 불가능성(때로 오해에 의한 합치)의 이원성 → 고독 혐오(원초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와 고독 갈망(창조적 자아의) 이원성 → 소통 불가능성과 실격당한 사회적 자아와 고독을 갈망하는 창조적 자아의 공동무장으로서의 반부르조아-속물의 미학 당디슴->反自然-反女性->초자연주의” 163)Cf. Ibid., pp. 208, 409-411 : “모든 감각이 하나(性感)로 혼합되는 신비로운 변모 (...)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영혼의 초자연적 어떤 상태」에 (...) 이르러 合體에서도 아직 주체와 객체의 개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프로스티튀숑 정도가 아닌, <만물상응>의 절대경 (...) 여기서 모든 이원성은 종합 해소된다 - 단 오직 예술에 의하여 (...) 이원성의 딜레마에서 예술가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특수한 양식으로 하는 프로스티튀에하는> 이 <영혼의 시적 건강 상태>에 있는 <희한한 시간>의 <행복스런 순간>에는 (...) <우주적 아날로지> <만물상응>의 교감 속에 잠겨, 여기서 그의 유명한 반자연의 미학마저 해소되고, <자연은 하나의 말씀>으로 지양되는 것이다. (...) 참으로 <저주받은 시인>의 구원이며 <영광>이고, 마침내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성자>, <영웅>의 경지를 전취한 것이다.” 164)심재상, 「老莊的 視角에서 본 보들레르의 詩世界」, 살림, 1995, p. 219. 165)Ibid., p. 220. 166)정광흠, 「La volupté divine dans Les Fleurs du Mal」, 「불어불문학연구」, 제 33집, 1996, p. 94. 167)이건수, 「저주받은 천재시인 보들레르」, 살림, 2006, p. 45. 168)이진성, 「유추와 상상력의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3, p. 182. 169)Cf. Georges Blin, Baudelaire, Gallimard, 1939, p. 217 : “‘Les poètes, les artistes, et toute la race humaine seraient bien malheureux si l'idéal, cette absurdité, cette impossibilité était trouvée, qu'est-ce que chacun ferait de son propre Moi ?’ Baudelaire en est là dès le Salon de 1846. Mais le laisser-vivre est bien fort. Il est pathétique et banal de ne pas trouver le havre de grâce et de conclure une destinée sur les trois points de suspension.” 170)Cf. 조우현, 「보드레르와 女性들」, 「불어불문학연구」, 제 6집, 1971, p. 204 : “Baudelaire의 惡魔主義 그것 自體는 단지 虛飾이 아닌 이상, 뒷문으로 基督敎에 들어가고자 企圖한 것이다. 말만이 아닌 精神的인 참된 瀆神은 일면적인 신앙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完全한 基督信者나 完全한 無神論者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信仰을 主張하는 하나의 方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