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Geunhyung’s Theatrical Aesthetic and Directing Craft

박근형의 연극미학과 연출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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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Park Geunhyung is considered as the most active writer and director who is representing Korean theatre since his debut in the 1990s. This paper aims to explore his directing method and its aesthetics based on the analysis of his interviews, the plays, and the performance texts, and his position in Korean theatre history. The aesthetics in Park Geunhyung’s directing is to combine two opposite aesthetic ingredients such as representationalism and theatricalism, the everyday and the grotesque, hyperrealism and absurdity, and the comedy and the tragedy. To do this, he strategically uses the poor condition of little theatre and its glaring materiality, minimal but efficient set, simple props to be transformed into various spaces with ensuing theatricalities. While representing theatre group ‘Golmokgyl’, he was familiar with the performers’ character and their physical condition. This becomes his aesthetic soil to induce their spontaneity and creativity into the process testifying his directing method is closer to the performance. Conclusively, it can not be denied that Park Geunhyung’s directing aesthetic and his position is unique in Korean theatre history. The former directors of the 70s and the 80s described grand discourse with the aesthetics of realism or ‘modernized tradition’. On the other hand, Park Geunhyung induces surrealism and the absurd to the realism, while he expresses social reality and history metaphorically through the little discourse and uses theatrical playfulness in his play writing and directing method. Also, his method is differentiates itself from the 1990s’ directors. Most of the directors in the 1990s were indulged in the formalistic experiments, deconstruction and theatricality, but Park Geunhyung attempts to call back the narrative into his play. As a result, it is not exaggerating to say that he has established his own directing method. First, he choose little theatre and create familiar distance between stage and the audience. Second, he creates everyday atmosphere with simple dialogues and the props but transforms them with the audiences’ imagination to a theatrical leap. Finally, he combines the formalistic acting style and the realistic acting style, and empty space with transformative possibility. This method forms eventually the main stream of everyday realism style and little theatre model, so it says his value and importance in contemporary Korean theatre.


    1990년대에 연출 활동을 시작한 박근형은 요즘 우리 연극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작가이자 연출가이며, 한국연극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본 연구는 박근형과의 인터뷰와 희곡 및 공연텍스트 분석을 토대로 박근형의 연출메소드와 연극미학 및 연출기법을 분석하고자 했으며, 한국연출사에서 어떤 맥락과 지점속에 위치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박근형의 연출미학은 재현주의와 극장주의, 일상과 그로테스크, 하이퍼리얼리티와 부조리성, 희극과 비극 같은 양극단의 미학을 혼융하는 것이다. 소극장의 영세한 구조와 물질성,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세트, 간소한 오브제로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고 기호들의 연극성을 기발하게 창조해내는 연출전략을 사용한다. ‘골목길’ 극단을 이끌면서 배우들의 개성을 캐릭터 창조에 적극 활용하고, 배우들의 즉흥성과 창조성을 이끌어내어 서사와 장면, 신체연기를 완성해 가는 수행적인 연극만들기 방식은 그가 퍼포먼스적 연출미학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박근형의 연출미학이 한국 연출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70, 80년대 연출가들이 거대담론을 리얼리즘 미학으로, 혹은 ‘전통의 현대화’ 양식으로 표현했다면, 박근형은 리얼리즘미학에 초현실과 부조리 미학을 혼융하고 미시적 서사의 이면에 사회와 역사를 환유하며, 연극성의 놀이를 적극 활용하는 극작/연출 전략을 사용한다. 90년대 연극이 주로 형식 실험이나 해체, 연극성의 과도한 탐닉을 보여줬다면, 박근형 연극은 ‘서사의 귀환’을 지향한다. 특히 박근형은 소극장 무대와 관객간의 친밀한 거리를 염두에 두고 그에 조응하는 미시적 서사와 연출 양식, 간소한 소품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연극성의 놀이, 꾸미지 않는 일상적 연기와 양식적 연기의 조합, 비움의 미학을 활용한 연출 메소드를 정립했다. 이는 2000년대 주류 연극으로 부상한 일상극이나 소극장 연극의 모델을 이루었는 바, 박근형 연출미학이 2000년대 연극에 끼친 영향력과 중요성을 말해준다.

  • KEYWORD

    Park Geunhyung , directing esthetics , postmoderinism , hyper-reality , absurdity , representationalism , theatricalism , everyday realistic play , grotesque , carnival.

  • 1. 들어가며

    1990년대에 연출 활동을 시작한 박근형은 요즘 우리 연극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작가이자 연출가이며, 한국연극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의 연극은 자신만의 독특한 무대어법과 언어, 파격적인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연극감각을 보임으로써 ‘박근형 표’ 연극이란 브랜드네임을 얻었다. 그의 연극의 개성이라 하면 서민의 궁상맞은 삶의 재현, 쉽게 전달되는 이야기,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연극성의 놀이, 풍부한 희극성과 사유성, 어떤 장르나 스타일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청춘예찬>은 생생한 일상언어와 생활세계의 감각, 소극장 연극의 구조원리를 탁월하게 구현해냄으로써 2000년대 일상극의 유행을 선도했다.1) 그는 주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는데, 영세한 무대구조와 물질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관객과의 친밀한 거리와 작은 무대에 걸맞는 배우들의 꾸미지 않는 연기와 양식화된 연기의 혼용, 간소한 소품을 다양한 연극적 용도로 사용하는 연출전략으로 소극장 특유의 현장감과 맛을 만들어낸다. 작품성과 뚜렷한 개성이란 두 가지 덕목을 지닌 박근형 연극은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었고, 많은 논문과 평론이 쏟아져 나왔다.2)

    박근형 연극은 구체적인 생활 현실을 재현하는 무대를 보이지만 기존의 사실주의극과 차이를 보인다. 그의 연극에는 현실적 상황에 느닷없이 부조리하거나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끼어들고, 거기에 ‘전혀 놀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대응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논리성과 개연성을 따르는 사실주의극의 틀이나, 부조리하거나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인물을 그리는 부조리극의 틀 또한 깨트린다. 배우들은 상황에 따라 재현적 연기, 또는 연극임을 현시하는 극장주의적 연기나 양식화된 연기를 오가기도 하고, 음악과 춤, 간소한 오브제들과 더불어 자유분방한 연극성의 놀이를 벌인다. 간단한 대사나 동작, 혹은 음악이나 조명만으로 시공간을 전환하거나 압축하고, 이질적인 장면의 병치를 통해 특수한 연극적 효과를 창출하며, 익숙한 사물이나 사건을 낯선 맥락 속에 위치하게 하여 그로테스크나 언캐니(uncanny) 효과를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연극성의 놀이를 펼친다.

    그때문에 그의 연극은 사실주의나 부조리극, 희극 등 어떤 연극양식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희극과 비극, 하이퍼리얼리티와 부조리성, 재현주의와 극장주의3), 일상과 그로테스크가 뒤섞인 장르와 양식의 혼합을 보이는 바, 이것이 그의 연극세계와 연출미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평론이나 논문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긴 했으나, 박근형의 연출미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아직 없었다. 이에 본고는 작품을 쓰고 직접 연출하는 ‘작가주의’ 연출가 박근형의 연극세계와 연출 메소드, 연출미학을 인터뷰와 공연희곡 및 공연텍스트의 분석을 통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박근형의 연출미학이 한국연출사에서 어떤 맥락과 지점 속에 위치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1)김성희, 「한국 일상극의 글쓰기와 공연방식」, 『‘90년대 이후 한국연극의 미학적 경향』, 푸른사상, 2011, 30쪽.  2)주요 논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영주는 박근형 연극의 특성을 ‘현실주의 상상력과 일상의 재현’으로 보면서, 서사의 수행성과 미학적 실천을 분석했다.(최영주, 「박근형의 <청춘예찬>에서의 현실주의 상상력과 일상의 재현—서사의 수행성을 중심으로」, 『한국연극학』 28호, 2006) 김방옥은 박근형 연극의 특성을 일상적으로 재현하는 듯 하면서 동시에 의뭉하고 능청스러운 이중성을 띠고 있으며 그 근저에 경계성, 즉흥성, 과정성, 물질성, 환유성, 관객과의 소통 등의 특성을 깔고 있다며, 퍼포먼스적 연극으로서의 특성을 거론한다.(김방옥, 「삶/일상극, 그 경계의 퍼포먼스」, 『한국연극학』 39호, 2009) 김영학은 박근형의 <백무동에서>와 <너무 놀라지 마라> 2편을 대상으로, 바흐친의 그로 테스크 육체개념을 끌어와 분석하고 ‘그로테스크 미학’이란 특성을 거론한다.(김영학, 「박근형 연극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드라마연구』32호, 2010) 김정숙은 박근형의 대표작 3편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를 대상으로 몸성과 공간성, 주체의 개념을 분석한다. (김정숙, 「박근형의 연극의 몸성, 공간성 그리고 주체」 『한국연극학』43호, 2011)  3)‘theatricalism’은 흔히 극장주의나 연극주의로 번역된다. 본 논문에서 굳이 ‘극장주의’나 극장성(theatricality)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박근형 연극이 극장의 물질성과 관객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연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 형상화되는 공간이자 관객이 교감하며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공간으로서의 ‘극장’이란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극장주의’ 란 용어를 사용한다.

    2. 연출 메소드

    박근형의 연극 이력은 연극 현장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의 연출가가 대학에서의 교육과 실습을 통해 연극계에 입문하는 경로와는 달리, 박근형은 일찍 극단에 들어가 연극 만들기에 관한 현장 경험을 두루 쌓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장충동의 동인극장을 찾아가 입단했다. 고교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연극을 많이 본 것도 아니었지만, 평소 유랑극단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연극을 자신의 길로 선택했다.4) 처음엔 배우를 지망했으나 배우란 성실함과 재능 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공부가 필요한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스탭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연출가는 기국서이다. 박근형은 1985년 신촌에 위치한 76극단에 입단하여 활동하면서 자신의 극작 스타일과 연출미학을 형성하게 된 중요한 몇 가지 배움을 얻게 된다. 처음 박근형은 연극과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노는 것처럼 생활과 연극은 분리된 세계라고 생각했었다. 기국서는 산다는 것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 있는 예술’에 대해 탐구하게 했다. 박근형은 이때 “연극하고 현실하고 같이 맞물려서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고, 주변 현실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과 냉철한 현실인식을 하게 되었다. 생활과 분리된 연극이 아닌, 현실과 밀착된 연극에의 지향은 자연스럽게 주변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박근형의 연극미학과 연출메소드에서 가장 지배적인 요소는 드라마, 배우, 관객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무대장치, 음악, 조명, 의상 등 공연의 시청각적 요소들도 중요하게 사용하지만, 직접 공연희곡을 쓰고 자신의 극단 골목길 배우들과 함께 수행적으로 공연텍스트를 구성해 나가기 때문에, 희곡과 배우는 서로 유기적 관련성을 가진 공연텍스트 구성 인자이다. 또한 박근형의 연극작업은 공연의 수신자인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할 뿐 아니라, 공연의 구성요소이자 참여자로 인식한다.

       2.1. 수행적 텍스트 구성

    박근형의 연출메소드 중 특징적인 것은 공연 텍스트 구성방식이다. 그가 공연텍스트를 구성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원칙은 관객과의 관계이며 관객의 반응이다. “보는 사람이 쉽게”5)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연극이 가진 사회적 발언도 중요하지만, 연극을 처음 보는 관객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가 여부를 가장 중요시한다. 따라서 연극의 기본 줄거리는 쉽게 풀고, 쉬운 이야기 속에 사회적 메시지나 삶의 성찰을 함축하는 연극을 지향한다. 쉽고 재미있게 연극을 관람하고, 극장 문을 나선 후 연극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생각을 각자 할 수 있게 하는 연극 만들기를 목표로 삼는다.

    그는 배우들에게 자신의 삶이나 경험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곤 한다. 배우들의 실제 삶이나 개성에 기반한 에피소드나 캐릭터를 희곡 쓰기에 반영하기도 한다. 먼저 간략하게 쓴 초고 대본을 바탕으로 배우들과 연습해 나가면서 서사의 방향을 만들어가고, 배우들의 아이디어와 즉흥적 연기를 끌어내어 다양한 장면만들기와 표현방식을 실험하고 그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고 배치한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공동작업을 자신의 연출 컨셉과 서사의 방향, 미학적 틀을 중심으로 지휘하고 조율한다. 연습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어본 장면과 표현양식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고, 대사를 써나가는 식으로 공연희곡을 구성한다. 연습과정에서 희곡 쓰기와 공연 만들기가 수행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그때문에 박근형의 희곡이나 연출기법에는 연습장의 현장적이고 즉물적인 수행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대사를 쓰는 방식은 “전부 입으로 해보고 해보고.⋯ 그리고 웬만하면 다 지우”는 방식이다. 문학적이고 수사적인 대사를 다 지우고 “쉬운 말, 가장 쉬운 대화법”6)으로 다듬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풍요에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서민의 생활을 간결한 구어체 경상도 사투리 대사로 표현한다든지, 희극적 과장과 유머로 이루어진 촌철살인적 대사, 일상과 생활감각을 구현하는 연극적 표현은 박근형 이전의 연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들이다. 간결하고 생생한 구어체 대사와 일상세계의 감각, 극장공간의 물질성은 극의 구조나 장면 만들기에 반영된다. 그의 텍스트에 재현되는 서민층의 남루한 삶은 영세한 소극장의 물질성과 조응한다. 좁은 무대에 이불을 깔고 누울 때 꽉 차는 공간(<청춘예찬>)은 비좁고 초라한 서민층의 일상공간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또, 몇 개의 간소한 소품들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도 연습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이를테면, 전화벨이 울리자 마시던 술병을 귀에 대고 통화하는 장면(<청춘예찬>), 이불을 둘러쓰고 박스속으로 들어가거나 박스를 출산의 상황, 이삿짐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식(<경숙이, 경숙아버지>)이 그 예이다.

    소극장연극을 주로 작업해온 박근형은 공간의 친밀성과 구조를 염두에 두고 쉽고 단순한 서사, 귀에 쏙쏙 들어오는 짧고 간결한 구어체 대사, 적은 수의 등장인물, 재미있는 표현방식을 선호한다. 텍스트 구성이나 연출 메소드를 관통하는 특징은 일상세계의 감각과 공연 공간의 현장적 감각이다. 일상적 생활감각을 중심에 놓고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한 사건과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연극은 일상과 그로테스크가 뒤섞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로테스크한 세계가 일상 세계와 쌍생아처럼 맞붙어 표현되는 것이다. 박근형 이전의 연극들에는 이렇게 시침 뚝 떼고 일상과 그로테스크를 혼연일체로 뒤섞어 놓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너무 놀라지 마라>의 경우, 이 말을 유서로 남긴 친구 아버지의 죽음이란 일상적 소재에다 시신이 말을 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혼성하고, 이런 그로테스크적 상황에 일상적 사건인 양 반응하는 인물들을 배치한다.

       2.2. 재현적/양식적/극장주의적 메소드

    박근형이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은 배우를 동등한 위계의 ‘동료’로 대하는 수평적 관계이다. 그는 평소에 사적인 대화들을 많이 나누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공연텍스트의 구성에 배우가 가장 큰 몫을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목과 이야기를 만들어 오면 연습이 시작된다. 배우들에게 대강의 상황과 인물간의 관계를 제시하면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여러 가지 장면과 캐릭터의 관계, 리액션, 연극적 표현 등을 만들어내며 연기를 수행한다. 박근형은 이 과정에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나 연극적 표현, 연기양식을 선택하거나 수정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이런 수행적 과정을 거치면서 공연 텍스트의 글쓰기와 장면 구성이 만들어진다7). 배우들의 즉흥성, 배우들의 몸과 개성, 수행성이 어우러진 퍼포먼스적 텍스트가 구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와 극 전체의 방향과 표현 기법을 만들거나 확정하고 대사를 쓰고 연극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박근형이다.

    그의 연출메소드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배우와 관객 양자이며, 이 둘과의 관계이다. 연극의 최종 목표를 관객으로 삼기 때문에 연출 스타일을 사실주의나 다른 어떤 것 하나에 한정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어떤 것이 더 잘 전달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여러 양식을 뒤섞는다.

    그는 자신의 연출 작업에서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특별한 메소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우로부터 최대한의 창조성과 즉흥성을 끌어내는 수행적 장면 만들기, 배우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연극을 완성해가는 작업방식에서 그의 연출 메소드를 추론해낼 수 있다.

    박근형은 배우에게 관습적인 연기나 모방연기가 아닌, 자신의 고유한 말과 감정으로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주문한다. 다른 인물로 변신하려 하지말고 ‘자기 자신’으로 연기하라는 것, 다시 말해 연극적으로 꾸미는 연기를 하지 말고 평상시 말하고 행동하듯 연기하라는 것이다. 이는 박근형 연극의 재현적 연기가 사실주의극의 재현적 연기와 차별화되는 요인을 만들어내는 메소드이다. 사실주의극의 재현 연기는 극중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가장 잘 표현해내기 위해 분장, 의상, 음악 등의 시청각적 요소들과 더불어 배역의 인물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극중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박근형의 재현주의는 분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의 배우 이미지를 그대로 노출시키며, 일상적인 말하기와 행동으로 이루어진 캐릭터 재현을 목표로 삼는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연기와 조응하여, 진짜 소품이나 일상세계의 물건들을 직접 사용한다. 또 사실주의극이 중요한 극적 사건을 다룬다면, 박근형은 극히 일상적이거나 사소한 행동들을 무대화한다. 이전의 연극들에서 배우들이 빈그릇을 놓고 먹는 연기를 했다면, 녹차 티백을 담근 소주병으로 술을 따라 마신다든지(<청춘예찬>),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장면(<너무 놀라지 마라>) 같은 일상생활의 미시적인 행동들이 재현된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재현주의 메소드와 더불어 활용되는 것은 정반대의 미학인 극장주의적이고 양식적인 연출/연기술이다. 그는 관습적 표현이나 일상의 모방을 벗어난 연기를 강조한다. 실제 삶의 모방적 표현과는 다른, 자유로운 상상에 의한 색다른 표현방식과 양식적 연기를 추구한다.

    이렇게 그는 항상 배우에게나 작가/연출가로서의 자신에게 상식이나 기존의 관습을 깨트리는 ‘다른 표현’이나 상상력을 요구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연극에 특이한 양식적 연기11)나 초현실적 상황, 혹은 그로테스크가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기존의 상투적이고 관습적 표현에 반하는 연출/연기메소드를 의식적으로 채택하기 때문이다. 재현과 표현,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그로테스크를 넘나들고, 이질적인 장면들을 병치하여 다양한 기표들의 놀이를 벌이기 때문에 관객은 벤야민이 현대적 지각의 특성으로 꼽은 ‘산만함’을 즐기게 된다.

    연기 메소드와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것은 배우의 존재감을 강력하게 창조해낸다는 점이다. 배우의 존재감은 배우가 인상적인 캐릭터를 탁월한 연기력으로 소화해 내거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을 때 전달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박근형은 텅 빈 무대에서 배우가 아무 연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행위로 만들어낸다. 혼자 계단형 세트에 앉아 오랫동안 객석을 응시하는 <청춘예찬>의 청년(배우 박해일, 혹은 김영민)이나 <아침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해설자(배우 서이숙)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하나, 박근형의 연출미학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메소드는 관객을 공연의 구성요소이자 참여자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자연스러운 재현연기와 더불어, 배우들은 객석을 바라보며 연기하는 극장주의적 연기를 자주 수행한다. 그런가하면, 소극장 객석을 본뜬 무대장치(<청춘예찬>)를 세워서 무대와 객석이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상이며, 무대위 현실이 관객의 현실과 동일하다는 메타연극적 컨셉을 표현한다. 또, 객석 통로로 배우들이 등장하는 방식(<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이나,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는 해설자를 사용(<아침드라마>)하여 연극공간을 객석으로까지 확장하는 동시에 관객을 연극의 구성요소로 삼는다.

    4)김성희, 「박근형과의 인터뷰」, 2011.8.25, 카페 엘빈.  5)앞의 인터뷰.  6)위의 인터뷰.  7)미니 인터뷰, 「관객을 많이 생각하게 된 요즈음 연극 작업이 더 재밌다」, 『공연과 리뷰』 통 55호, 116쪽.  8)김성희, 앞의 인터뷰.  9)앞의 인터뷰.  10)앞의 인터뷰.  11)이를테면, <아침드라마>에서 딸과 신랑의 결혼생활은 춤으로 표현되는데, 서로 스텝이 맞지 않는 춤으로 그들 결혼생활의 불화가 표현된다. 임신은 딸이 머리에 쓴 밀가루반죽 모자로 표현된다.

    3. 박근형의 연극미학과 연출기법

    박근형이 연출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는 현실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탈이념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압도적인 영향을 발휘한 시기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메타담화의 부재, 다원성, 불연속성과 우연성, 일상성 혹은 대중주의, 즉흥성과 퍼포먼스, 비정치성, 주변적인 것의 부상, 탈장르화, 패러디와 패스티시, 퍼즐 혹은 콜라주 구성, 자기반영적 경향 등의 특성을 지닌다.12) 박근형의 90년대 대표작 <쥐>(1998)와 <청춘예찬>(1999)을 비롯해서 박근형 연극들은 모두 포스트모던 미학을 드러낸다. <쥐>와 <청춘예찬>은 그동안 한국연극에서 배제되어 왔던 주변부의 현실과 하위문화를 일상적 삶의 맥락에서 다룬다. 극중 인물들은 고정되고 본질적인 정체성이 없고 파편화된 주체라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적 주체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일관성을 가진 통합된 주체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문화체계 속에서 재현되거나 다뤄지는 방식과 관련하여 형성되고 변형된다.13) <경숙이 경숙아버지>(2006)에서 자야는 경숙아베의 애인에서 청요리의 애인으로, 나중에는 유사가족관계인 경숙의 이모가 된다. 꺽꺽아재 역시 경숙아베의 은인, 경숙이네 집의 가장, 어메의 애인, 유사가족관계인 경숙의 삼촌으로 계속 그 정체성이 변형된다. <청춘예찬>의 아버지, 청년, 용필 등도 역시 문화적 재현체계에 따라 정체성이 유동하는 파편화된 주체이다.

    박근형 연극의 구조 또한 비선형적 구조와 분절된 장면 구성, 시공간의 오버랩이나 이질적 장면의 병치, 콜라주 등 불연속성을 지닌다. 리얼리즘극이 조직화된 경험과 감각을 통해 재현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의 극은 낯익은 일상 속에 사물이나 사건의 특이성을 생산함으로써 재현을 넘어 새로운 현실을 생성한다. 하이퍼리얼한 무대에서 인물들은 부조리하거나 엽기적인, 혹은 초현실적 상황과 맞닥뜨리지만 이에 일상적으로 반응하거나, 상식이나 관객의 예상을 깨트리는 행위를 천연덕스럽게 벌여나간다. 이처럼 기표들의 충돌과 양극적 스타일의 혼성, 차이의 놀이로 생성된 연극적 현실은 의미를 여러 갈래로 분기시킨다. 재현적 연기와 극장주의적 연기의 혼성, 하이퍼리얼 미학과 부조리극 혹은 초현실주의 미학의 혼성을 통해 그의 연극은 재현과 표현의 여러 층이 혼종된 다원화 경향을 띤다. 또한 그의 연극에는 장면들의 불연속성, 오버랩, 파편화, 현실에 대한 상이한 관점, 느닷없이 끼어드는 다른 목소리에 의한 단절과 의식의 상호침투 등이 나타난다. 시간, 공간, 의식의 상호침투를 통해 포스트모던한 현실인식과 세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14)

    다음에는 그의 연극세계와 연출미학을 대표적인 특성들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그 의미와 효과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3.1 하이퍼리얼리티와 부조리의 혼성

    박근형 <쥐>(1998)의 무대는 등장인물들의 실제 삶의 환경이 극사실적으로 재현된 무대이다. 장작이 활활 타고 있는 난로, 집안에 설치된 민간 라디오 방송실과 수북이 쌓인 낡은 레코드판들, 신발장에 가득 정리된 각종 사이즈의 헌신발들, 무대 한편에 놓인 성경책까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실제의 사물들이며 그 사물들이 내뿜는 생생한 물질성이다. 사설 방송을 하는 큰아들과 만삭의 며느리가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따스한 가족 풍경으로 시작된 이 연극은 어머니가 물 양동이를 들고 등장하면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환한다. 비는 끝없이 내리고, 창궐하는 쥐떼는 배수관까지 갉아먹어 집이 언제 물에 잠길지도 모르는 상황이 알려진다. 강둑에 나갔던 작은아들과 막내딸이 아이를 사냥하여 돌아오고, 가족은 경건한 기도를 올리고 인육 식사를 한다. 며느리 뱃속의 애는 큰아들의 앤지 작은아들의 앤지 모를 지경이고, 작은아들과 막내딸 역시 근친상간 관계이다. 실종된 아이를 찾는 방송을 부탁하러 온 방문객은 가족이 대접한 음식이 자신의 아이로 만든 요리인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다. 그녀 역시 이 가족의 다음 식사 재료가 된다. 무대 한켠 신발장에 그득한 신발들은 이 가족의 인육 식사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기호이다. 이 연극의 중심 아이러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설방송이 사실은 방문객을 유인하여 식량으로 삼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인육을 먹고 근친상간 관계를 맺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 가족은 전혀 죄의식이 없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갉아먹어 종말의 시대를 가져온 ‘쥐’와 동일한 존재이다. 방송이란 덫을 쳐놓고 방문객을 잡아먹는 무대 위 낯선 세계는 극도의 이기적 탐욕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메타포임에 분명하다.

    <쥐>는 하이퍼리얼한 무대에 부조리극 같은 사건을 전개해 나가고 거기에 일상적으로 반응하는 인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결합된 세계를 그로테스크하게 제시한다. 이 연극의 극작/연출전략은 언어와 행위의 어긋남, 기표들의 충돌, 인물들의 행위를 관습적 맥락에서 이탈하여 생소한 맥락에 재배치하기 등이다. 이로써 연극무대는 그로테스크 혹은 언캐니(uncanny) 효과를 생성하고, 우리의 인식기반을 급진적으로 전복하면서 낯선 사유를 촉발한다. 생존하기 위해 사람을 사냥해 인육을 먹는, ‘쥐’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곧 극도의 이기심과 경쟁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은유한다는 점을 문득 깨달을 때 언캐니 효과가 발생한다.

    <너무 놀라지 마라>(2009) 역시 화장실, 수건을 걸어놓은 옷걸이, 술병들이 놓인 찬장, 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는 실물 수도, 낮은 서랍장, 신발장, 의자등 궁상맞은 서민층의 거실 겸 부엌을 하이퍼리얼하게 재현한다. 이 남루하기 짝이 없는 거실과 초라한 살림살이는 매우 낯익은 것이어서 실제 현실의 투명한 재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꼼꼼히 보면 이 연극의 무대는 재현이 아닌 시뮬라크르이다. 재현은 원본을 전제하며 유사성의 원리에 종속된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이 없는 복제(벤야민), 원본과의 일치가 중요하지 않은 복제(들뢰즈), 원본보다 더 실제적인 복제(보드리야르)를 가리킨다.15) <너무 놀라지 마라>의 무대는 얼핏 보면 낯익은 현실의 복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본 없는 복제인 시뮬라크르이다. 화장실이 거실 중앙에 자리잡고 주방 찬장과 나란히 붙어있는 구조가 원본과의 불일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뮬라시옹이 일반화되어 가상과 실재의 구별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사실성의 거짓 재현 여부를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재가 더 이상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16)을 숨기는 하이퍼 리얼리티의 전략에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

    연극은 변비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둘째, 노래방 도우미로 술에 취해 들어와 술주정을 부리는 며느리, 양복을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자살하는 아버지의 미시적 행위들을 하이퍼리얼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화장실에 매달린 아버지의 시신이 눈을 뜨고 자기를 내려달라고 말을 하면서부터 초현실적 상황으로 급변한다. 놀라운 것은 인물들이 이 초현실적 상황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전혀 변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자기 세계에 갇혀 비루한 일상을 영위해 나간다는 점이다. 영화감독인 형은 장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가 남긴 장례비만 챙긴다. 영화를 만든답시고 현실을 외면하는 그는 아내의 자해에도 불구하고 전혀 꿈쩍하지 않는다. 현실과의 관련성을 놓고 본다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며느리를 제외하고는 형(영화감독)이나 둘째(은둔형외톨이)는 시신이나 비슷한 존재이다. 이 연극 역시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결합함으로써, 또 하이퍼리얼과 부조리 스타일을 혼성함으로써, 언어와 인물의 행위를 문화적 재현체계와 상충하게 함으로써 희극성과 그로테스크 효과를 생성한다.

    형수와 관계해 애까지 낳게 한 둘째는 형에게 오히려 남편 역할을 못하는게 더 큰 문제라고 공박하고, 형은 아내가 매춘상대로 데려온 남자가 자신을 남편으로 인정하는 데 대해 감사를 표한다. 위 인용 장면은 인물들의 역전된 관계와 비상식적인 행위, 남자에게 말을 거는 시신, ‘놀라게 한다’는 말을 내뱉긴 하지만 전혀 놀라지 않고 마치 집안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남자 등으로 인해 의외성의 효과와 웃음을 유발한다. 동시에 인습적 사고를 깨트리게 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판타지 영화를 만든답시고 현실에 눈을 감고 가상현실에 빠져 사는 형은 자기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를 가리켜 “니 형순 다 좋은데 삶이 거짓말이다”라고 말한다. ‘거짓’의 삶을 사고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처럼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 곳곳에 숨어 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혼성하는 연출전략은 실재와 가상, 진짜삶과 거짓삶이 전도된 세계를, 그리고 의미가 다양하게 분기하는 이미지들을 생성해낸다.

    하이퍼리얼하게 재현된 무대는 실재 같으면서도 실재가 아니다. 참조대상이 없고 자기충족적인 하이퍼리얼리티에서 현실은 기호에 의해 지워지고 대체된다.18) 하이퍼리얼리티와 부조리성의 혼성은 언캐니와 ‘낯설게 하기’ 효과를 발생하며,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도록 촉발한다. 디테일의 정교한 재현으로 현실에 과장적으로 충실하면서 동시에 왜곡을 통해 현실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박근형 연극이 그리는 현실은 철저하게 비속하고 남루하고 반미학적이고 끔찍한 것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연극 밖의 현실세계는 광고와 영화와 백화점의 상품들이 표상하듯 소비자본주의의 찬란한 미학을 과시한다. 이는 형이 만들고 있는 ‘SF판타지’ 영화 <제3의 방랑자>의 환상적 미학과 등가의 것이기도 하다. 세계를 미학화하고 이미지화하는 것, 그래서 현실 재현이 아닌 가상현실로서의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는 것이 형의 영화이다. 박근형 연극은 실제 삶과 극중극으로서의 영화를 대비시키고, 하이퍼리얼한 무대와 부조리한 상황을 중첩함으로써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던한 연출전략을 사용한다. 이는 재현(再現)에서 그 ‘재’를 제거하고 현실 혹은 삶을 스스로 상상하게 만들기19) 위한 것이며, 현실에 대한 과장적 충실성과 부조리의 혼성으로 실제 현실의 왜곡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3.2. 재현주의와 극장주의의 혼융

    박근형의 연극에는 재현적 연기와 극장주의적 연기가 혼융된다. 전자는 극적 환상과 동화효과를 목표로 하고, 후자는 환상 깨트리기와 이화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대립적인 연기양식이다. 박근형은 한 연극 안에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연기양식과 기표들의 충돌을 통해 삶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고, 연극과 현실을 등가의 것으로 만들며 생동하는 기표들의 놀이를 만들어낸다.

    <청춘예찬>의 무대는 3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하나 놓인 빈 공간이다. 객석을 마주보는 이 계단 구조물은 연극이 공연되는 소극장 객석과 닮은 꼴이다. 이 연극은 서사가 다 종결되면 끝나는 관습에서 벗어난다. 마지막 장면은 청년이 계단형 세트에 앉아서 <청춘예찬> 프로그램을 들춰보며 객석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러한 구성은 극의 허구성은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연극 매체적 성격을 의식하는 반영극20)이란 것을 말해준다. 허구적인 현실 재현과 극장주의적 시각이 혼융된 구성인 것이다. 이러한 연출전략의 효과는 무대(허구 재현)와 현실 관객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연극이 던진 질문을 관객이 대답하고 사유할 것을, 즉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삶에 대해 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청춘예찬>은 성장과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누락되고 일탈한 빈민층과 불량학생 등 개인주체를 등장시켜 현실의 남루함과 소소한 일상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현실을 재현하고 개인주체의 일상을 공간화하는 서사와 플롯은 선조적 글쓰기가 아니라 구술행위로서 수행적 기능을 지닌다.21) 일상을 재현하는 장면들은 파편화되어 다음 장면과 오버랩되기도 하고, 한 시공간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끼어들거나 비실재적인 요소들이 중첩된다.22)

    그런데 분절과 이질적 요소들을 삽입하는 서사-연출전략 중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바로 위 인용장면처럼 극장주의적 대사와 행동이다. 용필이 불량친구들과 노는 장면의 끝에서 느닷없이 “조명이 왜 이렇게 밝아!”라고 외치자, 조명은 곧 어슴푸레한 청색으로 바뀌며 용필이 둥근 탁자를 둘러매고 나오자 다방장면으로 전환된다. 재현성과 극장성의 중첩이 이런 식으로 신속하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 장면은 청년과 아버지. 간질이 한 장의 이불을 덮고 잠을 잘 때, 용필 혼자 플래쉬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하는 대사이다. 어둠에 잠긴 무대에서 플래쉬 불빛을 받은 용필의 얼굴만이 기괴하게 떠있는 가운데 발화되는 이 대사는 용필이 스스로 연극을 미메시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용필은 플래쉬 조명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면서 스스로가 주연이자 스탭인 연극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용필이 생각하는 연극이란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생과 대비되는, 재미와 액션과 스펙타클이 있고, 새로운 무언가가 있는 연극, 관객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있는 연극이다. 이 장면은 극중인물이 연극을 만드는 행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연극에 대한 발언과 작가의 자의식을 표출하는 메타연극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와같이 <청춘예찬>은 주변부 인생의 일상에 대한 허구적 재현에 오버랩하여 극장성을 현현한다. 일탈적인 학생들, 술만 마시는 백수로 이혼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 돈을 뜯는 아버지, 염산을 뿌린 폭력 남편 때문에 맹인이 되어 안마시술사가 된 엄마, 우리 사회에 절망하고 이민 떠나는 선생 등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재현한다. 그러나 비판적 리얼리즘처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성토와 개선을 촉구하고 있지는 않다. 또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전망을 내세운 화해의 상태를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박근형의 연극은 현실의 부정성을 재현하지만 거기에 극장주의 미학을 혼융함으로써 재현된 현실로부터 거리를 갖고 부정성을 바라보게 한다. 물론 그것의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끔찍한 삶의 조건을 인식하고 깨어 있게 만드는 것이다.

    박근형이 현실의 부정성을 비판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방식은 부조리극처럼 현실을 추상화하고 의미의 거부와 소통의 부재를 전경화하여 예술의 타자성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다. 그는 재현미학을 통해 현실을 구상화하며,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려는 자신의 연출관에 입각, 관객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용필의 대사처럼 재현미학에 갇혀 있는 <벚꽃동산>이나 방송드라마 <청춘의 덫>과 다르게, 박근형은 극장성을 현시하는 연출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또 코미디와 액션을 버무려 넣어 관객에의 서비스정신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그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극장주의적 연기나 장면들, 오브제와 음악, 춤 등으로 만들어내는 기표들의 놀이는 그 효과로 재미와 코미디, 액션 등을 창출한다. ‘답답한 인생’을 재현하는 장면들과 극장주의적 요소들을 혼융하여 박근형은 ‘가상성’을 파괴하고 ‘연극적 가상’, 곧 ‘참으로서의 가상성’을 현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재현주의와 극장주의를 혼융하는 연출전략은 그의 연극 전반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성으로서, 박근형 연출미학의 특성을 이룬다. <경숙이, 경숙아버지>(2006)의 경우에도, 난산 끝에 애를 낳은 경숙이 아들을 보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순간, 객석 통로를 통해 군화를 둘러맨 경숙아버지가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등장한다. 그래서 이 연극은 경숙이 회상하는 ‘기억의 극’이기도 하다. 아베의 경상도 사투리는 군사정권시대와 권위주의적 가장을, 군화는 떠돌이 삶을 상징한다. 장구와 춤은 늘 바깥으로 떠돌며 살아온 한량으로서의 아버지를 표상하는 이미지이다. 이는 근대화 이전 아버지의 전형적 이미지를 호출한 것으로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상징이기도 하다. 상징의 힘을 획득하게 되는 기억은 자신의 인생을 거꾸로 더듬어 가서 해석함으로써 확인되며 일정한 의미 맥락과 관련된다.25) 한량 아베를 장구치고 춤추는,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각인력이 뛰어난 능동적 이미지로 연출한 것은 성격화의 ‘감각적 현현’이라 할 수 있다. 무대는 빈 공간에 몇 개의 박스들이 쌓인 미니멀한 무대이다. 경숙이는 재현적 연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이불 속에 퍼뜩 안 들어가나!”라고 호통치면 이불을 뒤집어쓰며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이사 장면도 상자들을 들고 무대를 빙빙 도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런 연출방식은 한국 가면극을 비롯한 극장주의적 연극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이 연극에서 박근형의 극장주의적 연출이 창의적이고 재치있게 발휘된 방식은 심각하거나 비장한 장면에 키치적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전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가장 밀착된 표현방식인 키치적 이미지, 즉 미적으로 저급하거나 조악한 이미지를 극적이고 비장한 장면에 배치함으로써 비장함은 희극성으로 전환되고, 연극을 삶과 일상성의 맥락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예술이 간과하는 삶의 실체로서의 가벼움, 무의미, 통속성26)이 키치적 이미지 연출로 전달되는 것이다. 경숙어메의 출산과 애가 죽는 장면은 무대 뒤편 상자에서 기저귀를 찬 남자가 만세를 부르며 나와 무대 가운데로 걸어오다가 쓰러지는 것으로 연출되는데, 이는 만화적 상상력에 의한 키치적 이미지이다. 또 아베가 데려온 자야가 덥다고 하자 경숙은 들고 있던 대야로 부채질한다. 오브제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그 기능이나 물질성은 전혀 다른 무거운 것(대야)으로 가벼운 부채의 기능을 행하게 함으로써 이 상황에서 경숙이 느끼는 삶의 무거움을 촉각적 효과로 전달한다. ‘청요리와 자야’(10장) 장면에서는 경숙어메가 “내도니처럼 노래 잘하고 싶었다 / 내도 뽀족구두 신고, 입술연지 바르고/ 우리 신랑노래할 때 젓가락 장단 맞춤서 내도 사랑받고 싶었다 내도 여자 아이가!”라고 절규하며 자신의 배를 칼로 찌른다. 어메의 과장된 신파적 연기로 센티멘탈리티가 분출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인물들은 엉뚱하게 ‘강남달’ 노래를 부르며, 연이어 그 멜로디로 찬송가를 부른다. 한복 입은 예수가 웅장한 찬송가 소리와 함께 객석 통로를 통해 등장한다. 성령이 임하는 순간을 극장주의적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랑을 주지 않는 남편, 늘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에 절망하여 교회에 의지하게 되는 한국 어머니의 한이 ‘한복입은 예수’라는 키치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예수는 어메가 들고 있던 칼을 들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라고 외친다. 흉기로서의 칼과 성경의 사랑의 메시지를 병치한 이 장면은 박근형식 블랙 유머이자 그로테스크 효과를 발생한다. 칼부림의 현장이 은혜의 현장으로 바뀌고 연적 관계였던 어메와 자야는 형님-동생의 유사가족이 된다. 그러나 아베는 혼자 소외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힘겹게 가정을 꾸려왔던 서러운 세월을 어머니는 교회에 다님으로써 보상받고자 하고,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늘 바깥으로 나돌았던 아버지는 결국 아내로부터 소외당한다.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보편적인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이 극장주의적 연출로 강력하게 현현하는 것이다.

    <백무동에서>(2007)의 무대는 링겔이 달린 병원 침대 3개와 주사, 약품 등을 놓는 이동식 선반으로 병실을 하이퍼리얼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사실적 재현무대를 음향효과나 간단한 오브제 등을 활용하여 전혀 다른 공간, 곧 상림(숲)이나 공항, 달리는 차 등으로 전환한다. 무대 왼편에는 공항 카트에 짐가방을 올려놓고 배우들이 앉거나 옆에 서있는 것으로 차의 실내, 혹은 달리는 차를 표현한다. 무대 오른편에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갓과 도포를 쓴 유림들이 병실 침대에 앉아 약품 이동선반에 휴대용 가스렌지를 놓고 불을 피우는 것으로 숲속 공간을 연출한다. 링겔이 매달린 병원 침대라는 재현공간의 물질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간소한 오브제와 음향효과를 사용하여 전혀 다른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적극 끌어들이는 연출전략이다. 근대의 미학인 재현이 현실의 반영 이미지를 의미한다면, 박근형의 연출전략은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고 결정한다는 포스트모던 미학을 보여준다. 원본을 대신하는 시뮬라크르의 놀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병실침대가 놓인 하이퍼리얼한 무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간단한 오브제나 음향효과의 첨가만으로 다른 공간으로 전환하는 극장주의적 연출, 상이한 맥락으로 전유된 공간과 오브제를 가지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재현적 연기를 결합시키는 것이 박근형의 특징적인 연출미학이다.

       3.3. 일상과 그로테스크가 혼합된 카니발적 세계

    3.3.1. 카니발적 세계와 전도된 기호들

    박근형의 연극세계는 일상과 그로테스크의 미학과 양식을 뒤섞음으로써 일종의 카니발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카니발적 세계는 민중적 시각으로 기존질서를 뒤집거나 패러디하고, 감각적이고 유희적 성격을 가지며 전도된 기호들을 활용한다. 바흐친에 따르면, 카니발은 지배적 진리들과 현존하는 제도들로 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민중축제로서, 모든 계층 질서적 관계, 특권, 규범, 금지의 일시적 파기가 흥겹게 일어난다. 따라서 카니발의 형식과 상징은 지배적인 진리와 권위에 대해 유쾌한 뒤집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거꾸로’ 뒤집은 논리, 패러디와 풍자적 개작, 격하, 모독 같은 특성을 지닌다.27) 카니발적 예술은 기성 예술이 규범으로 삼고 있는 모든 공식적인 법칙이나 형식을 깨트린다. 바흐친은 카니발의 핵심이 “예술과 삶 자체의 경계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며 “독특한 놀이의 이미지에 의해 형식화된 삶 자체”28)라고 말한다. 박근형의 연극이 기존 질서를 해체하거나 패러디하고 하위문화를 형상화하며, 민중 생활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 또 삶을 재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희의 패턴에 따라 구성된 놀이를 펼친다는 점에서 카니발과 상통한다.

    민속문화나 카니발의 형성원리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웃음이다. 바흐친은 카니발의 웃음의 특징을 3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웃음은 민중적·집단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계에 대한 웃음’이다. 둘째로 웃음은 보편적인 것으로, 세계 자체는 익살스럽게 제시되며 웃는 자신까지도 웃음의 대상이 된다. 셋째로 웃음은 양면적 가치를 지닌다. 유쾌한 동시에 조소적이고, 부정하기도 하고 긍정하기도 하며, 매장되기도 하며 부활하기도 한다.29) 모든 제도의 모순과 한계성을 강조하는 카니발의 웃음은 확실한 것을 불확실한 것으로, 안정된 것을 불안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30)

    박근형의 연극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그 웃음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탐욕, 위선 등 인간의 약점을 풍자하고 자신을 웃음의 대상보다 우월한 입장에 놓음으로써 자신을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통상적인 희극의 웃음과는 차이가 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의 아베는 현실세계의 모순을 풍자하는 웃음의 주체인 동시에 자신도 모순을 유발하는 웃음의 대상이 된다. 한국전쟁이 나자 아베는 혼자 피난을 떠나면서, 자신은 ‘쏠로’이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이라며 익살스럽게 전도된 논리를 들먹인다.

    아베는 가족을 집에 두고 혼자 피난 가기 위해 세 명의 가족 중 자신을 ‘쏠로’로 규정하며 자식 낳으면 자기 맘 알 거라는, 상식을 뒤집은 말을 한다. 전쟁 중이라 집에 있기가 무섭다는 말엔 “인생은 평생 무서운” 것이라 응수한다. 아베가 습관처럼 잘 쓰는 “깝깝한 년”이란 욕이나,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의무와 책임은 도외시하는 아베의 언행은 웃음의 주체인 동시에 웃음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박근형은 일상적 생활감각을 뒤집는 역설이나 패러디, 촌철살인적 대사, 예상이나 기대치를 깨트리는 언행, 터무니없는 희화화, 반어적 대응 등을 사용한다.

    <대대손손>(2000)은 4대에 걸친 조씨 가문의 역사를 역순구조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구조로 보여주면서 ‘단일민족 신화’의 허구성을 희극적으로 폭로한다. 이대는 고조부(사대)가 의병장 최익현의 왼편에서 상소문을 쓴 애국지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대는 일본인에게 아내를 상납하여 일본인의 피를 받은 삼대와 삼순을 얻었고 일본인에 아부하며 식민지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이대 역시 삼대가 일본 게이샤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이대도 베트남전 참전 중 베트남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는다. 이렇게 이 연극은 한 가족사를 통해서 한국역사를 표상하며 ‘단일민족 신화’의 허구성을 해체함으로써 지배적인 진리를 유쾌하게 뒤집는다. 사대는 일본인의 피를 받은 아이들에게 “뿌리깊은 우리 가문의 내력”을 종족 기원신화를 패러디한 장엄한 과장법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제사 준비를 하도록 하자” 라고 말한다. 이에 인물들은 모두 ‘스지 큐’음악에 맞춰 슬로우모션의 춤을 춘다. 엄숙해야 할 제사 준비는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팝송과 춤에 의해 무질서한 축제로 전환된다.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기호들의 놀이는 일본 종속의 시대를 거쳐 이제 미국 종속의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이어지는 장면(마지막 장면)은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이대가 일대를 데리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제삿밥 먹으러 나온 사대는 “다들 모였구나. 이 애비는 참으로 흐뭇하다”며 연설을 한다. 앞 장면에서 밝혀진 사대의 실체는 자식을 못 낳아 일본인에게 아내를 상납한 인물이기 때문에 부조리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장면의 희극성은 ‘선조들의 업적’과 ‘대대손손’ 이어져 온 조씨 가문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면서, 가문을 지키기 위해선 “시대를 읽어야” 하고 “시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아이러니에서 나온다. 산에 나무만 있는 게 아니라 죽은 비둘기 시체, 심지어 호시탐탐 노리는 독사도 있다는, 굴곡진 세상과 시대에 대한 비유는 부조리한 직관으로서의 웃음을 전달한다. 또한 대대손손 이어져 온 한국인의 ‘단일민족 신화’가 사실 이 가문의 내력처럼 얼마나 허구인가, 대대손손 얼마나 많은 폭력과 비굴과 거짓이 점철되어 왔는가를 함축한다. 성스러운 ‘단일민족 신화’의 조롱과 신성모독, 바흐친적 개념으로 본다면 공식적 가치를 카니발적으로 전복함으로써 가치의 상대성, 권위에 대한 의심, 즐거운 무정부상태, 모든 독단에 대한 조롱을 보여주는 것이다.33)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도 일상과 그로테스크가 혼합된 카니발적 혼돈을 보여준다. 그중 자야와 아베가 경숙이에게 양은밥상을 들게 하고 신나게 젓가락 장단 두드리며 춤추는 장면과 경숙어메의 출산, 아기의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자야는 한복 저고리를 옷 위에 겹쳐 입고, 아베에게도 입혀 주고 장단치고 춤을 춘다. 일상복 위에 한복 저고리를 겹쳐 입은 모습은 카니발의 야누스 가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중적 가면은 변화와 재생의 기쁨, 즐거운 상대성, 단일성과 유사성의 즐거운 부정을 생성하는 그로테스크한 향연34)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노래와 춤이 광란을 향해 치달을 때, 밭일하던 만삭의 어메가 들어와 산통 끝에 출산한다. 화류계와 풍류의 삶으로 함축되는 아베-자야 한 쌍의 광란의 카니발, 그리고 노동과 출산으로 함축되는 어메-꺽꺽 아재 한 쌍이 삶의 야누스적 양상을 표상하며 그로테스크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어메의 출산은 박스에서 나온 알몸의 기저귀 찬 남자가 응애응애 울며 걸어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성인남자로 하여금 갓난애를 연기하게 하고, 만세부르며 걷다가 고꾸라지는 것으로 죽음을 연출한 장면은 전도된 기호의 놀이로서 카니발적 웃음을 안겨준다. 바흐친은 카니발적인 것의 진행과정에서 더블(double)의 주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카니발에서 모든 진지한 것은 희극적 더블과 결합되어 표현된다는 것이다.35)

    출산과 죽음이란 진지한 문제는 박근형 연극에서 희극적인 표현과 결합되어 연출된다. ‘임신한 죽음이며 생명을 주는 죽음’의 이미지인 출산과 죽음은 삶이 서로 모순되는 양면의 과정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경숙이 밥상을 들고 아베와 새엄마의 광란의 노래와 춤을 견뎌야 하는 시간, 그 옆에서 어메가 출산하고 아기가 죽는 시간의 중첩은 규범화된 삶의 질서를 해체하는 카니발적 시간이다. 육체의 제한된 공간을 뚫고 또다른 육체가 나오고, 육체와 세계의 경계가 해체된다는 점에서 카니발적 시간인 것이며,생성의 자리인 그로테스크한 육체를 현현시킨다. 어메 역의 배우 고수희의 뚱뚱한 몸이 만삭으로 더욱 부풀어 오름으로써 몸의 물질성이 강조되고, 알몸에 기저귀 찬 성인남자의 몸도 진지한 것을 키치적 이미지로 뒤집는 전도를 통해 웃음과 그로테스크 미학을 생성한다.

    <선착장에서>(2005)는 대부분의 무대 공간이 울릉도 선착장과 다방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인물들은 창밖 혹은 바다로 설정된 객석을 바라보며 욕설과 신랄한 풍자, 분노를 표출한다. 재현성과 극장성이 교묘하게 중첩된 극적 설정을 이용하여 전도된 기호들의 놀이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울릉도를 한국사회의 축도로 비유한 무대, 재현성과 극장성을 중첩한 연출전략으로 박근형은 한국사회의 부패한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동시에 관객의 비판의식과 책임을 촉구한다. 항상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외피 속에 자신의 정치성, 현실 발언을 숨겨놓던 박근형은 그러나 <선착장에서>나 <백무동에서>를 통해선 날선 비판과 풍자, 신랄한 야유를 직설적으로 퍼붓고 박근형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신랄한 비판과 야유를 퍼붓는 인물들이 바로 부패와 부정의 화신이라는 점, 다시 말해 풍자의 주체가 풍자의 대상으로 겹쳐지기 때문에 카니발적 웃음을 유발한다.

    기세등등하게 노무현 전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패륜을 목청높여 비판하며, 자신의 정의감을 하늘의 뜻과 동일시하던 엄사장은 이내 다방 레지 향숙을 끌어안는 행동으로 부도덕성의 기호가 된다.

    남자도 임신하고 애를 낳는 그로테스크한 세계로 그려진 이 연극에서, 백무동 유지의 네 자식들은 공항에서 함께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한국사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 사회의 ‘질서 개판’을 비꼬면서도 그들은 투표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신호위반, 속도 위반에 마약까지 한 채로 운전하다가 택시 기사를 치어 죽이기까지 한다. 자기들이 풍자하는 ‘세상 개판’을 만드는 인물들이 바로 자신들임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은 전도된 기호들이 된다. “세상 개판된 게 우들 책임이가?”라며 책임을 회피할 때, 풍자의 칼날은 그들을 넘어 관객을 향한다. 부정적 인물을 내세워 현실을 풍자하는 연극들에서 전도된 기호들을 활용하는 박근형의 전략은 최종적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3.3.2. 차이의 놀이

    <너무 놀라지 마라>에도 과장과 전도의 희극성, 그로테스크한 몸 등 카니발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출전략들이 도처에 편재한다. 먼저 이 연극에는 다리를 저는 몸, 배설하는 몸, 들보에 매달린 시신, 신발장에서 뛰쳐나와 춤추는 머리끈 동여맨 남자, 싱크대 찬장에서 상체만 불쑥 튀어나오는 선글라스(맹인)의 백발도사, 자해하는 몸 등 그로테스크한 몸의 현현이 두드러진다. 배설하고 다리를 절고, 춤추고, 고통을 호소하고, 가위에 찔린 피흘리는 몸, 맹인 등 본능적이고 노골적인 육체성, 그로테스크한 몸이 강조되는 것이다.36) 바흐친은 카니발의 제1요소로 “육체들이 자유롭게 뒤얽히는 것”, 배설, 교미, 노동, 출산 등 육체의 기능들이 눈에 보이게 전시되는 것, 육체와 외부 세계가 자유롭게 상호교류하는 것을 꼽는다.37) 심지어는 영화 속 인물까지도 직접 튀어나와 현실의 인물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육체적 고통을 가한다. 싱크대 찬장 문에서 튀어나온 백발의 예언자는 “이 악취나는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인간”이라며 둘째의 머리를 붙잡고 흔든다.

    이 연극에서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관점과 세계관으로 각각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다중적 목소리를 보여준다. 몇 개의 극중극들이 차이를 현시하면서 그로테스크한 과장과 떠들썩한 카니발적 놀이로 재연된다. 둘째가 자신을 심해의 문어로 동일시하는 이야기, 며느리가 히키코모리인 시동생의 카운셀러를 자처하며 노래방 경험으로 둘째를 치유하려는 장면, 둘째가 자신의 일기를 가족사의 기록일 뿐 아니라 창조적 영감이 담긴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는 장면, 아버지의 자살이 며느리의 알콜 중독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형제 등 이 연극은 다성적인 목소리들로 짜여져 있다. 이중에서 떠들썩한 카니발적 활력과 희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형의 영화 재연 장면과 며느리의 재연 장면이다. 형의 SF판타지는 만화적, 무협적 상상력과 전도된 기호들로 구성된다. 3013년의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개되는 이야기는 신탁, 예언자 등 고대의 모티브와 무협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형은 세트장에서의 감독 일에 대해선 “초를 다투고 피가 마르는 촬영현장의 최전선이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유태인 새끼들처럼”이라고 비유한다. 황당무계한 영화의 재현 이미지들은 형이 언급한 제작현장의 치열함, 그리고 비유된 가자지구의 치열한 정치성과 강력한 대조를 이룬다. 악의 제국과 그에 맞서 싸우는 제3의 방랑자라는 영화의 대립구도는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대립구도와 의미론적 등가관계를 이룬다. 형의 삶의 태도는 자신이 만드는 황당무계한 영화와 등가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형은 카니발의 야누스 가면처럼 이중의 가면을 쓰고 있다. 박근형은 형의 성격창조에 진지함과 희극적 더블을 결합함으로써 카니발적 인물을 만들어낸다. 형은 생계의 짐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심지어는 매춘까지 용인하는 인물이면서도 아내의 삶을 거짓의 삶으로 단정한다. 궁상맞고 추악하기까지 한 현실에는 눈을 감고 판타지영화의 세계 구원 모티프에 빠져 사는 비현실적 인물이면서도, 동생의 비행이나 심리까지 꿰뚫어보는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진지함과 신파성을 극도로 과장한 언행으로 상황에 대한 전도된 기호가 되어 희극성을 자아낸다. 그는 영화 얘기만 하고 나가려 하다가 둘째가 아버지의 시신을 보라고 하자,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느 가문에 있을까?”라고, 판타지 영화의 과장된 수사법으로 말하면서 진지한 어조로 과장된 슬픔을 연기한다.

    아버지의 시신은 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효자’라며 과장되게 오열한다. 형제는 시신이 건강하다는 둥, 살아계실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고 젊어 보인다는 둥 넌센스적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상황에 걸맞지 않은 인물들의 전도된 반응과 언어의 유희는 웃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식적 태도인 음울한 진지함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시신은 장례를 애처롭게 요청하지만 자식들은 진지한 애도의 의례 대신 시신의 엉덩이를 때리며 시신의 건강 운운하는 언어의 유희를 늘어놓으며 슬픔을 가장한 희극적 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한편 며느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멜로 신파 사극’이다. 며느리는 집으로 데려온 매춘 대상의 남자가 남편이 무슨 영화를 찍느냐고 묻자 ‘전설의 고향’을 패러디한 내용을 과장되게 재연하면서 희극적 놀이를 벌인다. 며느리 역의 장영남 배우가 장씨 부인 역을, 매춘하러 온 남자가 늑대 역을 맡음으로써 현실/가상이 중첩된 이중적 가면이 만들어진다. 며느리의 ‘멜로 신파’는 자식의 죽음으로 유발된 여인의 광기와 사내의 유혹이란 플롯으로, 며느리의 일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형의 판타지는 세상을 구원하는 거대서사 판타지로서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 두 극중극은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본없는 복제인 시뮬라크르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대중예술의 통속성과 상투성을 패러디하는 차이의 놀이를 통해 희극성을 만들어낸다. 차이의 놀이는 연극 곳곳에 포진하여 웃음을 유발하고 관객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아버지의 친구가 자살하며 쓴 유서 ‘너무 놀라지 마라’는 극의 배음을 이루는데, 아버지는 친구를 모방하여 자살하지만 유서를 쓰는 대신 둘째에게 말로 전한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변주를 보여주는 차이의 놀이는 ‘놀라 움’과 역전을 속성으로 하는 카니발적 희극성을 만들어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위 현실에 대한 관습적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효과를 생성한다. 차이의 놀이를 통해 상식과 통념을 해체, 조롱, 패러디하는 연출전략은 그의 모든 연극들에서 활용된다.

    <아침드라마>(2010)도 세 가지 서사로 차이의 놀이를 벌인다. 첫 번째 서사는 나레이터가 나와 관객에게 들려주는 설화, 두 번째 서사는 나레이터의 해설과 더불어 배우들이 희화적으로, 빠른 속도로 패러디하는 ‘아침드라마’, 세 번째 서사는 재현적 연기로 펼치는 ‘우리 동네 이야기’이다. 첫 번째 서사는 작품 전체의 의미를 상징하는 일종의 ‘전제’로서의 역할을 한다. 극중극 형식인 두 번째 ‘아침드라마’와 세 번째 ‘우리 동네 이야기’는 서로 왜곡된 거울상이자 대조의 역할로 배치된다. 이중 ‘아침드라마’ 서사는 박근형 특유의 희극적 과장과 전도된 기호들의 놀이, 블랙유머로 연출된다. 실제 방송극의 멜로드라마 서사를 압축하고 극단적으로 양식화함으로써 그로테스크와 생소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물론 방송드라마의 비현실성과 허위를 인식하게 만들기 위한 연출전략이다. 집안의 몰락, 신분차이로 인한 갈등, 혼전 임신과 결혼, 신분상승, 우연적 사고, 해피엔딩 같은 전형적 서사가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 압축되고 ‘빠르게 감기’식의 양식화된 연기로 표현된다. 현실의 모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의 허구성은 인생과 인물을 미화하는 나레이터의 과장된 해설과 이를 전복하는 배우들의 비속한 언행과 성적 제스처, 통속적인 행동의 병치로, 다시 말해 전도된 기호들을 통해 폭로된다. 딸이 구두 닦는 행위는 노골적인 성적 서비스 행위로, 출산은 밀가루반죽 모자로, 삼대독자는 눈이 셋 달린 아이로, 부부 갈등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스텝이 맞지 않는 춤으로 기호화된다. 이렇게 극중극 ‘아침드라마’는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차이의 놀이’로서 양식화된 연출로 표현된다.

    세 번째 서사인 ‘우리 동네 이야기’는 ‘아침뉴스’ 에 나오는 현실적 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현실성이란 맥락에서 ‘아침드라마’와 차이의 놀이를 펼친다. 드라마에서는 혼전 임신이 신분상승을 위해, 교통사고가 불륜의 방해자인 남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면, 현실 세계에서는 혼전 임신 때문에 신혼여행을 거부하는 철없는 아들이 등장하고, 아침에 약수를 뜨러 가던 교장선생이 청소차에 치어 사망한다. ‘우리동네 이야기’의 결말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면서, ‘무심하면 죽는다’라는 직설적 메시지와 함께 남자의 ‘현실에 대한 무감각’을 처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현실사회에서 벌어짐직한 악몽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꿈이라고 뒤집고, 다시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뒤집는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서사 패턴은 환상성이나 모호함의 효과를 위해 흔히 차용되는 전략으로, 텍스트에 균열을 내고 단성적인 관점을 파열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3.4. 장면 전환, 음악, 무대장치

    박근형의 연출기법 중 특징적인 것으로 시공간의 압축 혹은 오버랩 기법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기호들의 놀이를 통해 연출된다. 세트가 거의 없는 오브제 몇 개만의 미니멀한 무대든, 혹은 하이퍼리얼하게 재현된 무대이든 간에 박근형은 시공간을 압축하거나 포개는 기법을 사용하여 포스트모던 미학과 극장주의적 연출을 수행한다. 공간 표현이나 장면 만들기에서, 박근형은 꼭 필수적인 것만 표현하는 생략과 집중의 미니멀한 연출전략을 사용한다. <청춘예찬>의 교실장면(2장)은 강의하는 선생에게만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 공간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극적 역할이 없는 학생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선생만 클로즈업한 듯한 효과로 교실장면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선생이 강의하며 던지는 질문에, 어둠에 잠긴 무대 우측에서 불쑥 용필이 등장하여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질문에 답한다. ‘힘은 용가리 아가리에서 나온다’는 용필의 불손한 대답은 선생의 “너희들! 용가리 봤나?”라는 대사로 이어져 이질적 목소리의 상호침투를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선생이 청년을 매질하고 청년이 매 숫자를 세는 순간 암전되며 용필이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는 학교 부근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처럼 시간적 간격이나 공간의 변화 없이 두 장면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장면전환이 숫자를 세는 소리의 연속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박근형은 연상이나 환유, 오버랩, 비약, 교차, 몽타주 등의 기법 혹은 가요나 팝송 같은 음악, 무대를 몇 발짝 이동하는 배우들의 걸음걸이를 통해 시공간을 압축하거나 단절 없이 장면 전환을 한다. 이를테면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이사장면은 꺽꺽아재의 “나를 따르라”는 대사와 박스(이삿짐)들을 들고 몇 발짝 움직이는 것, 그리곤 “경숙아 새집이 어떻노?”라고 묻는 것으로 신속 간결하게 처리된다. 청요리집으로 자야를 찾아 쳐들어가는 에피소드도 배우들이 몇 발짝 움직이곤 “여다!”라는 아베의 대사와 동시에 청요리가 무대 좌측에서 등장하여 박스 위에 앉는 것으로 장면전환이 연출된다. <선착장에서>의 관광승합차 여행은 대사를 부여받은 배우들만 등장하여 무대 좌측에서 중간, 우측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운전하는 영필과 안내멘트하는 성효 두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나머지 무대는 어둠 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울릉도 일주 버스여행이란 상황을 표현한다. 극적 기능이 없는 여행객들을 생략하고도 연극적 리얼리티를 살리는 연출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박근형은 장면전환에 흔히 음악, 특히 대중가요를 사용한다. 음악은 극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나 분위기를 표현하고 극적 상황에 액센트나 리듬감, 혹은 유머를 만들어낸다. 울릉도를 배경으로 한 <선착장에서>는 ‘울릉도 트위스트’가 배음을 이루면서 공간적 배경을 암시한다. <대대손손>은 현재와 다양한 과거 시간, 일본과 한국을 넘나드는 공간의 교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70년대 장면으로의 전환에는 ‘목련화’가, 베트남 장면으로의 전환에는 짐 모리슨의 음악이, 일본 장면에선 일본 노래가, 미국 종속의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수지 큐’ 노래가 사용된다.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는 대중가요가 유머와 희극성을 만들어내는 기호로 사용된다. 병원, 경숙의 난산 장면에서 유사가족들은 함께 모여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강남달’ 노래를 부름으로써 전도된 기호와 유머를 만들어낸다. 또 경숙어메가 자야 앞에서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심정을 절절이 토로하며 칼로 배를 찌르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강남달’ 노래를 부르다가 그 멜로디로 찬송가를 부른다. 대중이 기쁠 때나 괴로울 때 부르면서 위안을 받았던 대중가요의 역할을 교회, 혹은 찬송가가 대체하게 됨을 보여주는 절묘한 연출기법인 것이다.

    박근형의 무대장치는 하이퍼리얼한 것에서부터 간소한 세트와 상징적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기호들의 연극성을 적극 활용한다. <너무 놀라지마라>처럼 하이퍼리얼한 무대의 현실에 대한 과장적 충실성과 시신이 말을 하는 초현실적 상황의 상충성은 블랙 유머와 전도된 기호들의 연극성을 적극 이끌어내는 기능을 한다. 특히 무대 중앙에 위치한 화장실과 변비, 고장난 환풍기, 부패하는 시신을 통해 강조되는 공감각적 악취와 부패의 분위기는 이 극의 중심이 몸성과 공간성에 있음을 언표한다.38) 양극단의 대립적 미학을 맞붙여놓음으로써 현실성과 부조리성이란 두 개의 거울이 서로를 비추는 아이러니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싱크대 찬장이나 신발장에서 환상의 인물이 튀어나오고 싱크대 밑으로 둘째가 들어가 숨는 등 구체적인 세트와 오브제를 의외의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연극성의 놀이를 보여준다. <청춘예찬>의 무대 세트인 3개의 계단형 구조물은 소극장 객석의 시뮬라크르로서 연극과 현실에 대한 메타연극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의 박스들은 가재도구, 이삿짐,의자, 가방, 이불속, 출산 등 다양한 기호들로 변신하며 연극성의 놀이를 연출한다. <선착장에서>는 작은 탁자 하나만 놓고서 이를 상황에 따라 의자로 또는 관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박근형은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세트나 오브제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연극성의 놀이를 보여준다.

    12)신현숙, 『20세기 프랑스 연극』, 문학과 지성사, 1997, 228쪽.  13)스튜어트 홀,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 전효관 외 역, 『모더니티의 미래』, 현실문화연구, 2000, 325쪽.  14)김성희, 앞의 책, 41-42쪽.  15)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아트북스, 2003, 155쪽.  16)진중권, 위의 책, 266쪽.  17)박근형, 『너무 놀라지 마라』, 애플리즘, 2009, 141-142쪽.  18)박정자,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기파랑, 2009, 148쪽.  19)레지스 드보레, 『이미지의 삶과 죽음』, 시각과 언어, 1994, 79쪽.  20)James L. Calderwood, Shakespearen Metadrama,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72, pp.11.  21)최영주, 앞의 논문, 279쪽.  22)김성희, 앞의 책, 40쪽.  23)박근형, 『박근형 희곡집1』, 연극과인간, 2007, 18쪽.  24)앞의 책, 35쪽.  25)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경북대출판부, 2003, 333쪽.  26)양효실, 「키치」, 『현대의 예술과 미학』(미학대계3), 서울대출판부, 2007, 369-370쪽.  27)바흐친,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아카넷, 2001, 32-34쪽.  28)위의 책, 28쪽.  29)위의 책, 35-36쪽.  30)김욱동, 『대화적 상상력』, 문학과 지성사, 1988, 244쪽.  31)박근형, 『너무 놀라지 마라』, 27쪽.  32)박근형, 『박근형 희곡집1』, 86-87쪽.  33)레나테 라흐만, 「축제와 민중문화」, 여홍상 편, 『바흐친과 문화이론』, 문학과지성사, 1995, 60-61쪽.  34)클라크, 홀퀴스트, 이득재 역, 『바흐친』, 문학세계사, 1993, 294쪽.  35)도미니크 라카프라, 「바흐친,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축제적인 것」, 여흥상 편, 앞의 책, 193쪽.  36)김영학도 박근형의 <백무동에서>와 <너무 놀라지 마라> 2편을 중심으로, 그동안 무대 위에서 좀체 시도하지 않았던 행위 (출산장면, 자살한 사람의 몸 전시, 똥싸는 행위, 만취한 여주인공, 장애인 배우 채용)이 관객에게 혐오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고 지적하면서,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육체 개념으로 작품 해석을 시도한다. 김영학, 앞의 논문.  37)클라크, 홀퀴스트, 앞의 책, 302쪽.  38)김정숙, 앞의 논문, 71쪽.

    4. 나오며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박근형의 연극미학과 연출기법은 재현주의와 극장주의, 일상과 그로테스크, 하이퍼리얼리티와 부조리성, 희극과 비극 같은 양극단의 미학을 혼융하는 것이다. 극단 ‘골목길’을 이끌면서 배우들의 개성을 캐릭터 창조에 적극 활용하고, 소극장의 영세한 구조와 물질성을 이용하는 연출전략, 배우들의 즉흥성과 창조성을 이끌어내어 공연텍스트를 완성해가는 수행적인 연극만들기 방식은 그가 퍼포먼스적 연출미학에 기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박근형의 연출미학은 한국 연출사에서 어떤 맥락과 지점 속에 위치하는가? 우선 서민의 궁핍한 일상을 재현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개편된 한국현실의 부정성을 은근하게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독재체제나 사회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아냈던 70, 80년대 연극과 주제의식이나 리얼리즘미학 면에서 뿌리가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70, 80년대 연출가들이 거대담론을 리얼리즘 미학으로, 혹은 ‘전통의 현대화’ 양식으로 표현했다면, 박근형은 리얼리즘미학에 초현실과 부조리 미학을 혼융하고 미시적 서사의 이면에 사회와 역사를 환유하며, 연극성의 놀이를 적극 활용하는 극작/연출 전략을 사용한다. 한편 90년대 연극이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문민정부 수립으로 인한 탈이념과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속에서 주로 형식 실험이나 해체, 연극성의 과도한 탐닉을 보여줬다면,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박근형 연극은 ‘서사의 귀환’을 지향한다. 그는 일상적 현실을 극화하면서 포스트모던 미학의 영향 하에 주변성, 일상성, 즉흥성, 불연속성, 콜라주 구성, 퍼포먼스, 대중미학 등의 극작/연출전략을 보인다. 특히 박근형은 소극장 무대와 관객간의 친밀한 거리를 염두에 두고 그에 조응하는 미시적 서사와 일상생활감각을 투영한 연출 양식을 보여준다. 간소한 소품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연극성의 놀이, 자연스러운 재현적 연기와 양식적 연기의 조합, 비움의 미학을 활용한 연출 메소드를 정립했다. 이는 2000년대 주류 연극으로 부상한 일상극이나 소극장연극의 모델을 이루었는바, 박근형 연출미학이 2000년대 연극에 끼친 영향력과 중요성을 말해준다.

    연출가로서의 박근형은 자신이 쓴 희곡을 연출하는 경우와 다른 극작가의작품을 연출하는 경우로 구분지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전자에 비해 그의 개성적인 연극미학과 연출기법을 분방하게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많아 본 논문의 분석대상에서 생략했다.39) 최근 박근형 연극은 초기의 신선도와 밀도를 잃고 변질이 시작되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40) 초창기부터 함께 작업하던 숙련된 배우들이 빠져 나가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 배우들 중심으로 극단이 개편된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소극장에서는 탁월한 공간감각과 연출미학을 보여주었으나, 중극장에서의 초빙연출에서는 중극장의 규모나 구조에 걸맞은 공간운용이나 연출미학을 보여주지 못해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햄릿>(2007)<갈매기>(2009) 등의 고전 연출도 원작이나 공연사에 대한 깊은 탐구 없이 단순하고 평이한 해석과 무대화에 머문 경우도 있었다.

    모든 작품이 다 성공작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근 그의 극작/연출작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연극적 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징후이다. <백무동에서>, <아침드라마>(2010) <처음처럼>(2011) <70년 전>(2011) 등은 작위적인 설정, 쓰다 만 듯한 서사와 제대로 구축 되지 않은 캐릭터, 모호함과 직설적 메시지가 혼합된 세계, 매너리즘에 빠진 무대세트와 자기복제적 연출전략 등의 허점을 보인다. 미시적 일상 속에 담아내는 거시적 조망, 지배적 규범이나 현실의 부정성에 대한 기발한 패러디와 역동적인 전복 같은 예술적 혁신과 치열함을 기대한다.

    39)우선 외국 작품 위주로 주요 연출작을 열거해 보면, <햄릿>(2007), <필로우맨>(2007), <포트>(2008), <아오모리의 비>(2008), <갈매기>(2009), <마라/사드>(2009), <오이디푸 스>(2010), <잠못드는 밤은 없다>(2010) 등이 있다.  40)김방옥, 앞의 논문, 73쪽.

  • 1. 김 성희 2011
  • 2. [『공연과 리뷰『]
  • 3. 박 근형 2007
  • 4. 박 근형 2009
  • 5. 김 방옥 2009 [『한국연극학』]
  • 6. 김 성희 2011
  • 7. 김 영학 2010 [『드라마연구』]
  • 8. 김 욱동 1988
  • 9. 김 윤철 2008
  • 10. 김 정숙 2011 [『한국연극학』]
  • 11. 박 정자 2009
  • 12. 양 효실 2007
  • 13. 여 홍상 1995
  • 14. 진 중권 2003
  • 15. 최 영주 2006 [『한국연극학』] Vol.28
  • 16. 드보레 레지스 1994
  • 17. 라카프라 도미니크 1995
  • 18. 라흐만 레나테 1995
  • 19. 바흐친 ? 2001
  • 20. 아스만 알라이다, 변 학수, 백 설자, 채 연숙 2003
  • 21. 얀 코트, 김 동욱 2002
  • 22. 홀퀴스트 클라크, 이 득재 1993
  • 23. 스튜어트 홀 2000
  • 24. Calderwood James L. 1972 Shakespearen Metadrama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