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랍스키 연극론에 있어서 배우와 역할의 관계*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중심으로-

The Relationship between Actors and Their Roles in Stanislavsky’s Theatric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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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 연구는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과 그의 저술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중심으로 하여 희곡과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배우와 무대 위 역할의 관계를 고찰한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스타니슬랍스키가 완성한 원고가 아니라 그의 사후 편집진들에 의해서 정리된 것이다. 때문에 각 장의 집필 시기도 다르지만 배우의 역할 창조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생각 또한 시기에 따라 조금씩 상이하다. 초기 작업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무엇보다도 배우는 감정을 장악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배우는 역할의 감정이 지닌 본질을 규정한 이후에야 그 감정을 불러일으킬 행동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후기로 오면서 상상력을 통한 즉흥 연기를 활용하는 ‘신체행동방법론’을 희곡과 역할의 분석보다 선행하여 시도해 보도록 제안한다.

    그런데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시기에 집필된 원고를 살펴보자면, 배우의 희곡을 대하는 태도, 배우 자신의 신체와 체험을 역할 창조에 활용하는 세부 방법들, 배우가 희곡을 느끼고 분석하는 법 등에 대한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역할에 대한 배우 작업의 세 시기(인식의 시기, 체험의 시기, 구현의 시기)의 선후 순서, 각 작업에서 세부 과제들의 강조점에 변화가 있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 예술은 창조적 배우가 중심이 되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시스템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때문에 그는 배우가 무대에서 ‘역할로서 존재함’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무대 위에서 존재하는 배우와 역할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지울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역할의 삶을 살고 연기하는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대 위에서 배우는 역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역할을 이해하고 무대에서 그의 삶을 살며 동시에 의식적으로 역할을 제어하는 자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 그 자신이 체험하고 느끼지 못한 역할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후기 작업에서 강조되고 있는 신체행동방법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체험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무대 위 배우는 ‘역할’인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통제자’라는 이중의 존재여야 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꿈꾼, 예술가로서의 배우, 예술로서의 배우술, 배우 예술의 완전성 역시 여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This study reviewed ‘System’ suggested by Stanislavsky and “Creating a Role” written by him, in order to look into Stanislavsky’s thought on the relationship among actors, roles in a play and roles to be played on a stage.

    Creating a Role” was not completed by Stanislavsky but by editors after his death. There are differences in times when each chapter was written and also in the author’s attitude and opinion toward the creation of a role. In the early years he emphasized that actors should dam up and control their feelings, and maintained that they should define the essence of emotion and should grope for actions to bring out it. In later years, however, he proposed ‘the method of physical actions’ based on imagination and improvisatory acting, suggesting that it should come before what actors analyzes a play and their roles. Even so, they are little different in the attitude toward plays and ways to create a role based on the actor’s physical activity and experience and to feel the play.

    Stanislavsky maintained that performing arts should be centered on creative actors, and his thought led to a study on the system. He wished actors to have experience of existing as their roles on the stage. Of course, he did not hope to get rid of the boundary between actors’ own selves and their roles on the stage. He particularly stressed that actors should be immersed in their roles but at the same time should be aware of themselves as actors. Actors are not characters on the stage. Actors comprehend their roles and lead their lives on the stage,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subjects who control their roles consciously.

    Stanislavsky believed that without actual experiences, actors could not make the characters come to life on the stage. Such experiences are what he wanted to gain with the method of physical actions. In this regard, an actor should be an actor as well as a controller; specifically, an actor should completely go into the character and act the character so as to communicate them to the audience. Herein lies the artistic completeness of which Stanislavsky dreamed.

  • KEYWORD

    스타니슬랍스키 , 시스템 ,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 신체행동방법 , 역할 창조

  • 1. 문제제기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스타니슬랍스키(Константин Сергеевич Станиславский1863-1938)가 연극 예술가로서의 평생을 바쳐 연구한 ‘시스템’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기술이자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론이다. 그는 당시 많은 배우들이 재능과 영감에 기대어 막연하게 연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겼다. 무대 예술에 대한 그러한 막연한 접근이 연극과 배우술을 예술이 되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연극에서 재능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배우라면 단숨에 역을 느끼고 창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배우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매번 필요한 순간에 그런 영감이 찾아오는 것 또한 아니라고 강조한다.1) 스타니슬랍스키는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것을 체계적으로 교육하여 필요할 때 불러오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2)에 토대를 두어 탐구하고자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의식을 통하여 잠재의식으로’, ‘잠재의식적인 창조에 도달하는 의식적인 길’이었다. 그는 이러한 예술적 창조가 훈련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연극예술이 그저 억측이나 우연에 기대는 것이 아닌 ‘법칙과 근거에 기대어 창조하는’ ‘예술’이 되는 것을 원했다. 그는 “법칙이 없으면 취미는 될 수 있을지라도 진실한 예술을 창조할 수는 없다”3)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제기 하에 탐구하고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그가 저술한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우선적으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바쳐져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에게 『배우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체험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в творческом процессе переживания))』은 음악, 회화, 무용 등의 여타 예술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배우도 그 자신의 예술적 완성을 위하여 매일의 일상 속에서 훈련하고 정진해야 하는 작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다른 예술분야처럼 연극도 희곡과 배역을 받은 이후의 리허설이 아닌 평소의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없이 그저 관습과 기계적 기술에 기대어 희곡과 역할로 접근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극예술의 핵심으로 생각한 것은 배우이며, 배우의 연기는 체험에 근거해야 했다. 연극예술은 배우예술이며, 배우예술은 체험의 예술인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그 자신이 연출가이기도했지만, 그럼에도 강력한 연출가 중심의 연극을 지지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된 미장센, 세심하게 계산된 세부와 정확하다고 믿는 동선 등에 기인하는 20세기 초 연출가 중심의 방법론이 가져온 혁신이 매우 크다는 것을 그 역시 인정했지만, 연극은 배우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 배우에게 강제로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스타니슬랍스키는 신념처럼 가지고 있었다.4) 『체험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토르초프의 입을 빌려 “배우는 역할에 가깝게 다가가고 역할과 하나가 되어 느끼기 시작하는 것, 오로지 이것에 도달해야 한다. (…) 체험 없이 진정한 예술은 없다.”5)고 주장한다. 역할을 느끼지 않고서는 무대에서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배우는 이러한 체험을 자신의 경험의 내부에서 찾거나 그럴 수 없다면 에튜드를 통해서 연습 과정에서 체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1부는 특히 이 체험 창조를 위한 것이다. 희곡과 역할을 대면하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작업’을 선행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의 강조가 무대 위의 역할과 배우가 완전히 일치되어 배우로서의 자아를 잃고 무대 위에서 역할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체험은 무대 위에 서기 전,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또 리허설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스타니슬랍스키에 의하면 무대 위의 배우는 역할을 이해하고 무대에서 그의 삶을 살며 동시에 ‘의식적으로 역할을 제어하는 자’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역할의 삶을 살고 연기하는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생각이 그의 저술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ролью)』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연구되었다. 특히 한국연극계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에 대한 연구는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특히 제1부에 해당되는 ‘체험 창조’에 대한 부분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연극계에 『배우 수업』이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중심 저술로서 알려지고 연구된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러시아에서 유학한 일군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신체행동방법론(метод физических действий)’을 비롯한 그의 후기 작업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배우가 자신의 신체 기관들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구현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 에튜드를 활용한 배우-학생의 정신적 신체적 체험 등이 활발히 연구되었다.6) 그러나 연구의 대부분이 실용적이고 교육적 목적을 중심으로 진행된 까닭에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술에 담긴 연극관, 배우관을 살피는 것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술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중심으로 하여 그가 생각한 배우, 희곡과 역할에 대한 작업, 배우와 무대 위 ‘역할/구현된 형상’과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한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7)이 앞선 저술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잘 연구 되지 않은 까닭에는 이것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생각을 요령 있게 전달하는 체계를 갖춘 저술이 아닌 까닭도 있다. 그의 생전에 출간된 『나의 예술 인생(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이나 그의 사후 바로 출간된 『체험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그리고 1948년 발간된 『구현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는 달리,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여러 개의 산발적 원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술 계획을 참고로 하여 편집진들이 이에 해당되는 원고들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8) 때문에 각 장의 집필 시기도 다르지만 그 시기에 따라 배우의 역할 창조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와 생각도 조금씩 상이하다.

    본 연구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론 안에서 배우-역할 간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우선 시스템 전체에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이 차지하는 의미와 위치를 파악한다. 그런 후 저술의 핵심 내용과,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있어 시기별로 변화되고 있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생각을 정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저술의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드러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와 역할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스타니슬랍스키가 생각한 예술가로서의 배우, 예술로서의 배우술에 대한 고찰이 될 것이다.

    1)Станиславский К. С.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В 9 т., Т. 1. 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М.: Искусство, 1988.. C.491. * 본 논문에서 인용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모든 저서는 1988-1999년판 전집(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9 т.)으로, 각 권이 처음 인용될 때에만 서지 정보를 밝히고 이후는 권호와 인용 페이지만 밝힌다.  2)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에 토대를 둔 것이 시스템이라는 점은 매우 주목해야할 점이다. 시스템 이해의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요체와 창조의 원천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생각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인간 본성으로부터 시작하는 메소드”를 만들고자 했다. 영감과 재능에 막연히 기대어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본성을 훈련시킴으로써 창조에 봉사하는 배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무의식의 영역,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우리 본성의 중요한 중심이 우리의 비밀인 ‘나’이며 그것이 영감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다. Станиславский К. С.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9 т. Т. 4.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ролью: Материалы к книге, М.: Искусство, 1991. C.156. 참조.  3)Т. 1. C. 454.  4)이러한 생각은 『나의 예술 인생』 곳곳에 잘 드러나며, 특히 마이닝겐 극단의 공연을 본 직후의 감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술된다.  5)Станиславский К. С.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В 9 т., Т. 2.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 в творческом процессе переживания, М.: Искусство, 1989. C.62.  6)이러한 방향에 선 대표적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홍재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주어진 상황”에 대한 교수-학습 모형(1) : 시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한국연극학』 19, 2002;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구현의 시기'와 에쮸드 연행에 의한 극 텍스트 읽기 : ‘서사적 채워 넣기'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21, 2005; 김태훈, 「스타니슬랍스키의 신체적 행위법을 통한 연기교육 교수법 모형개발에 대한 연구」, 『한국연극학』 26, 2005; 정선혜, 「우리시대의 연기 교육방법론 ; 스타니슬랍스키 신체행동법 및 행동분석법의 운용」, 『연극교육연구』 11, 2005; 임주현, 「ETUDE를 활용한 배우의 인물 구축에 관한 연구」, 『드라마연구』 23, 2005; 오진호, 「스타니슬랍스키 3기 시스템 연구 : 실행방법을 중심으로」,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7, 2006. 더불어 스타니슬랍스키의 신체행동방법론과 그 적용에 대해서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러시아 교수진과의 좌담도 있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의 생명력」, 『공연과 이론』 2000. 여름/가을호.  7)이 책은 영문판을 신은수가 변역한 『역할 창조』(예니 출판사)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역할창조』는 스타니슬랍스키 전집 총 9권 중 4권에 해당되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실린 원고 중 일부의 발췌 번역본이다. 전집 제4권의 주요 목차는 1) 1911-1916년의 메모에서 2)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 3) 어느 공연 이야기(교육 소설) 4)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메모에서 5)셰익스피어의 <오셀로> 6) 고골의 <검찰관>: 역할과 희곡의 삶의 실제적 느낌 7) 1936년-1937년의 메모에서 8)1926-1938년의 메모에서 등 총 8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니 출판사에서 간행한 『역할 창조』는 <지혜의 슬픔>, <오셀로>, <검찰관>을 다룬 장을 중심으로 주요 부분을 발췌 번역하고, 1936년-1937년의 메모 중 ‘역할로의 접근’ 부분을 번역하여 부록으로 수록했다.  8)스타니슬랍스키의 저술은 1950년대 총 8권의 전집으로 묶였으며, 이를 보완하여 1990년대 (1988-1999) 총 9권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2.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시스템에 대하여 “이것은 내 스스로 찾아낸 배우 연기의 메소드”로서 시스템은 “배우가 역의 형상을 창조하고 그 형상 속에 인간의 정신적인 삶을 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훌륭한 예술적 형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메소드의 토대는 내가 실험 속에서 얻은 배우 본성의 법칙 체계”이기에 장르와 사조를 불문하고 모든 연극예술의 작업에 사용 가능하다고도 말한다.9)

    시스템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배우의 내적 감정의 진행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현대의 과학이 배우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제스처나 표정 등(외양, 표현된 것)을 화면에 옮길 수 있다고 해도 감정의 내적 진행은 복제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를 합리적,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가능해 질 때에야 배우술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연기의 기술이나 관습적인 표현법이 아니라, 이런 저런 역할들을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 어떻게 배우의 예술적 본성을 의식적으로 일깨워 초의식적 창조 과정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교육(훈련)을 통해 배우의 내면을 여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이 필요한 이유였다.

    내면을 여는 방법과 체험에 대한 강조가 테크닉에 대한 경시인 것은 아니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예술에 있어서 경험과 함께 테크닉 역시 예술의 완전성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있어야만 재능과 영감, 그리고 잠재의식 등의 본성에 해당하는 부분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예술은 ‘역할을 느끼는 것에 9/10를 바쳐야 하며 의식과 이성은 전체의 1/10을 차지한다’10)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이성과 의식의 도움없이 자신의 재능에만 기대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배우일수록 테크닉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해 기록했다는 것도 강조한다. “테크닉이 의식적으로[의식을 통해서] 잠재의식적 창조를 일으키는 데 봉사한다”11)는 것이다. 배우에게 중요한 영감과 잠재의식은 의식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은 훈련을 통한 법칙에 따라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갖추면 실제 주어진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이 진행되게 된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역시 다른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스타니슬랍스키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저술되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원고는 191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의 약 30년간의 시기에 걸친 기록이다.12) 스타니슬랍스키가 역할에 대한 작업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은 계기가 된 작품은 1909년에 올린 <시골에서의 한 달>이다. 『나의 예술 인생』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배우는 자신에 대한 작업 뿐 아니라 역할에 대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13) 그는 이점은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진리였지만 이때 더 구체적으로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더불어 역할에 대한 작업은 단순한 텍스트와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완전한 영역이다. 자신의 지식, 자신의 특별한 테크닉, 장비, 연습 그리고 시스템이 요구되는”14)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두 개의 핵심 영역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니슬랍스키는 결국 이를 체계화하지는 못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극학자이자 비평가였던 구례비치(Л.Я.Гуревич)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스템 집필의 전체 계획에 대해서 밝혔는데, 그것은 전체가 8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계획이다. 첫 번째 책은 서문이자 시스템으로의 안내서이기도 한 『나의 예술 인생』이다. 두 번째 책은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으로 체험과 구현으로 나뉘는데, 처음에 그는 이것을 한 권으로 기획했다. 그러다가 출판을 구체화하면서 이 부분이 인쇄본으로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 임을 깨달았고 하는 수 없이 두 권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수정을 가하는 상당한 수고를 거치더라도 두 권 을 다시 하나로 합쳐 출판할 계획을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의 사후에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체험과 구현으로 각각 분 리되어 출간된다. 세 번째 책은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으로, 희곡 전체를 ‘관통하는 선’을 이해해야하는 중요성과 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부 과제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스타니슬랍스키는 설명한다. 여기서는 특히 희곡과 역할의 총보가 강조될 것이라 말했다. 네 번째 책은 ‘준비된 역할에 대한 창조적 과정’에 대한 것으로,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책이 세 번째 책과 합쳐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창조적 자감(творческое самочувствие)’인데, 창조적 자감은 의식적인 작업을 통하여 잠재의식이 일깨워지는 과정 속에서 (Подсознательное через сознательное) 무대적 자감(сценическое самочувствие)이 희곡을 통해 성장하여 그 결과 창조적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다섯 번째 책은 ‘연기 예술의 세 가지 방향’으로, 그 세 방향이란 체험의 예술(искусство переживания), 재현의 예술(искусство представления), 연기 기술(ремесло)이다. 그는 체험의 예술에 대해서는 앞서 충분히 다루었음으로 이 책에서는 재현의 예술과 기술에 대해서 주로 다루게 될 것이라 말한다. 특히 기술은 체험과 구현에 대한 것이 완전히 이해된 후에 다루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여섯 번째 책은 연출예술에 대한 것 으로 연기예술의 세 방향을 결합하여 앙상블을 이루어내는 작업에 대한 것이며, 일곱 번째 책은 오페라에 대한 것, 마지막 여덟번째 책은 혁명적 예술에 대한 것이라 설명한다.15)

    그러나 그의 생전에 발간된 것은 『나의 예술 인생』 한 권 뿐이며, 『체험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가 그의 사후 1938년 그가 준비해 놓은 원고 그대로 바로 출간되었을 뿐이다. 『구현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그가 정리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1948년에 출간된다. 한편,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 양 축을 이루는 시스템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손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다. 오늘날 발간된 이 책은 해당 주제와 관련된 여러 원고들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그 스스로가 원고를 완성하지는 못했기에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원고도 있으며 견해가 달라진 부분도 있고 분명치 않은 원고도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원고로도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스타니슬랍스키가 중요하게 정해놓은 일련의 원칙은 조망할 수 있으며, 더불어 시기별로 달라진 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 또한 알 수 있어 흥미롭다.16) 결국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을 살필 수 있는, 나름의 체계를 갖춘 저서는 총 4권이라 하겠다. 즉, 연극 인생에 대한 자서전인 『나의 예술 인생』,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제1부과 제2부, 그리고 비록 미완성인 여러 원고들로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그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총 네 권이다.17)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은 그가 강조했던 항시적 배우 훈련이자 준비과정이라 할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인 희곡과 역할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저술이다. 즉 배우가 처음 희곡 대본을 손에 들었을 때부터 역할로서 무대에 서기 전까지 어떻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접근하고 구현해 나가는가의 과정이 상세히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것을 특히 <지혜의 슬픔>(그리보예도프 작), <오셀로>(셰익스피어 작), <검찰관>(고골리 작) 등 세 작품의 구체적 실례를 통해 설명한다.18) 이 세 편의 저술 시기는 <지혜의 슬픔>에 대한 것이 1916-1920년, <오셀로>에 대한 것이 1930-1933년, <검찰관>에 대한 것이 1936-1937년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 각 시기에 따라 스타니슬랍스키의 생각도 조금 상이하다. 이 문제에 대해 스타니슬랍스키 연구자 베네데티(J.-N. Benedetti)는 이 책의 원고가 책을 위한 일종의 자료 형태라는 점을 주목하면서, 1916년부터 1937년까지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스타니슬랍스키 작업의 달라진 부분을 대조해가며 설명한다.19) 그러면서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모델이지 고정된 형태의 연습 과정에 대한 설명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실제로 스타니슬랍스키 역시 매 작품마다 그에 적합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음도 상기시킨다. 즉, 작품의 특징과 성격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베네데티의 지적처럼 각 작품의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가 희곡을 대하는 태도, 배우 자신의 신체와 체험을 역할 창조에 활용하는 방법, 희곡을 분석하고 느끼는 법 등의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각 작품별로 작업 단계의 순서, 선후, 강조점 등에 변화가 있을 뿐이다. 베네데티에 동의한다면, 각각의 작품은 그 원칙들의 적용에 대한 일종의 모델인 것이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창조적 역량을 지닌 배우’이다. 이에 대한 논쟁은<어느 공연 이야기(История одной постановки)>라고 이름붙인 ‘교육용 소설(педагогическийроман)’ (부제이기도 하다)에 잘 드러난다.20) 이 부분은 미국 순회공연 시기에 썼다고 하는 <나의 예술 인생>과 비슷한 시기에 쓰인 것으로 역시 미완성 원고이다. 실제 스타니슬랍스키의 전기적 사실들과 많은 부분이 겹치기도 하며, 내용의 일부는 다른 원고들에 흡수되어 있기도 하다.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처럼 소설 형식으로 된 이 작품에도 교사/연출가와 학생/배우들이 등장한다.<어느 공연 이야기>에 등장하는 교사는 트보르초프(Творцов)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적 이상을 대변하는 그의 분신이다. 이 인물은 후에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1부와 2부,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일부 원고 속에서는 토르초프 선생으로 변형된다.

    트보르초프의 극장에 매우 유명한 지방 연출가 레메슬로프(Ремеслов)가 초청되어 온다. 트보르초프라는 이름은 ‘창조자’라는 어원을 갖으며, 레메슬로프는 ‘연기 기술’이라는 어원을 갖는다. 그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성)은 그가 지닌 특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일종의 알레고리인 것이다. 교사들/연출가들 뿐 아니라 학생들/배우들 역시 라수도프(Рассудов, 이성 (Рассудок)이라는 의미), 츄프스트보프(Чувствов, 감성(Чувство)라는 의미) 등의 이름을 지닌다. 초청된 레메슬로프는 어떤 방식으로든 극장과 학생들의 작업에 창조적 열정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매우 관습적이고 기계적인 그의 작업 방식은 배우들과 충돌을 빚고 곧 갈등상황이 전개된다. 그는 지방에 있는 자신의 극장에서 이미 올린 바 있는<지혜의 슬픔>을 작업하면서, 이미 분석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해설과 미장센, 동선 등의 세부를 학생들에게 적용시키려 한다. 이에 리허설 시간은 트보르초프에 의해 훈련받은 학생/배우와 초청된 연출가 레메슬로프 사이의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된다. 이렇게 하여 연극 연습 과정에서, 또 제작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소설 속에서 다루어진다. 레메슬로프에게 배우는 연출가의 계획을 수행하는 자로, 몇 번의 리허설 후 무대에 서기만 하면 되는, 일종의 예술적 재료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여 이 소설은 배우와의 상호 작업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방식의 창조적 연출가 트보르초프와 연출가 중심의 무대를 만들려고 하는 레메슬로프의 차이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배우/학생들의 문제 제기와 스스로 답을 구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희곡과 역할에 접근하는 창조적 역량을 지닌 배우의 작업을 설명하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속 여러 원고들 사이의 두드러지는 차이는, 상상력과 무의식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신체적 작업을 연습 과정 중 언제 시도하느냐의 문제다. 비교적 원고의 완성도가 높은<지혜의 슬픔>, <오셀로>, <검찰관>의 세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저술을 비교해보면, 후기로 갈수록 그 시기가 빨라지며 가장 마지막에 저술된 <검찰관>에 대한 원고에서는 이를 아예 연습 초기부터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희곡에 대한 분석이나 논의에 앞서 신체 행동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행동방법론(Метод физических действий)’이 후기 작업에서 강조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의 작업 후반기에 비로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창조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신체적 작업을 자신의 작업 초기, 즉 시스템을 위한 메모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1900년대 중반부터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후기 작업에서는 단순히 보조적 수단이 아닌 중심 과정으로, 그것도 배우의 역할 창조의 초기단계부터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업인 <타르튀프>의 리허설 과정에서 이 작업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초기 작업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감정을 장악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감정의 본질을 규정한 다음 배우는 그 감정을 불러일으킬 행동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상상력을 통한 즉흥 연기는 보조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후기로 오면서 상상력을 통한 즉흥 연기를 활용하는 신체행동방법론을 희곡의 분석, 인식에 앞서 선행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중 가장 마지막 시기에 저술한 <검찰관>에 대한 작업에서 그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토르초프 선생이 배우-학생들에게 새로운 희곡에 대한 독서나 토론에 앞서 극의 연습으로 바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에피소드로 연결된 줄거리의 대략적 흐름만 기억하면서 즉흥 연기를 시도하자고 제안한다. 희곡의 상황을 전제로 그 속에서 직접 인물의 입장을 느끼고 체험함으로써 행동의 동기와 일관성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는 “단지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역할의 삶에 생생한 느낌을 준비된 내적인 무대 자감(внутреннее сценическое самочувствие, 영문판 번역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용어로는 ‘내적 창조 상태’)에 불어넣어야 한다”22)고 말한다. 그리고 정신적 신체적인 역할에 대한 생생한 느낌은, 바로 주어진 상황 속에 배우가 직접 놓여 움직이면서 논리와 일관성을 찾아가는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존재한다(я есмь)’의 느낌도 바로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의 행동이 연극적이고 인위적이지 않고 현실과 같은 진실된 동기나 일관성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업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설명한다.23)

    신체적 행동과 정신적 내면이 하나라는 생각은 스타니슬랍스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점으로 앞선 <오셀로> 작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신체적 삶과 영혼의 삶이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역할이 배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배우는 외부로부터 역할에 접근해야 하는데 이때 행위에 대한 믿음과 진실감이 내적 감정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24) 그는 그 외에도 저술의 여러 곳에서 정신적 삶과 신체적 삶을 분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계획하던 시기 ‘체험’과 ‘구현’을 통합하여 한 권의 책으로 쓰고자 한 것 역시 내적 체험과 외적 구현이 이분법적으로 이해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역할 창조의 과정에서도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그는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강조한다.25)결국 그가 후기 작업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 신체행동방법론은 내적 체험과 외적 구현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9)Т. 1., C.499. 참조.  10)Т. 4., C.54.-55.  11)Т. 1., C.490.  12)『나의 예술 인생』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나의 시스템은 두 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뉜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1) 배우 자신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작업 2) 역할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작업”(T.1., C.499)이라고 말한다. 시스템의 두 축 중 하나인 ‘역할에 대한 배우의 내적이고 외적인 작업’이 그의 미완성 원고들을 모은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담겨있는 것이다.  13)Т. 1., C.409.  14)Там же.  15)Станиславский К. С. “Письмо к Л. Я. Гуревичу. 1930.23–24 декабря. Москва”,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9 т. Т. 9. Письма: 1918–1938, М.: Искусство, 1999. C.438-439. 참조.  16)한편, 구례비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 합쳐질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 네 번째 책 ‘준비된 역할에 대한 창조적 과정’ 역시 독립된 원고로 작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계획했던 ‘창조적 자감’에 대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체험의 창조적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들어 있어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17)러시아에서 1988-1999년에 걸쳐 총 9권으로 재발간된 스타니슬랍스키 전집의 1-4권이 이에 해당된다. 5-9권은 그의 연설문, 논문, 일기, 메모, 편지 등을 모아놓은 자료집이다.  18)<지혜의 슬픔>에 대한 부분은 설명의 형식으로, <오셀로>와 <검찰관>에 대한 부분은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토르초프 선생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소설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전집 4권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수록된 글 중에는 토르초프 선생이 아닌 다른 교사가 나오는 소설 형식의 장도 하나 있는데, ‘교육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공연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장에서 활용되는 작품 역시 <지혜의 슬픔>이다. 그밖에도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는 다양한 시기에 쓰인 투르게네프의 <시골 처녀>에서 류빈 백작,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살리에리, 골도니의 <여인숙 안주인>과 폴란드 작가 슬로바츠키의 <발라디나> 등의 작업에 관한 메모들이 수록되어 있다.  19)Jean-Norman Benedetti, 김석만 역, 「스타니슬라브스키 입문」, 김석만 편저,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 이론과실천, 1993. 참조.  20)Т.4., C.174-261. 참조.  21)Vasily Toporov, Stanislavsky in Rehearsal, Theatre Arts Books, NY., 1979. Jean-Norman Benedetti, 김석만 역, 「스타니슬라브스키 입문」, 김석만 편저,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 129-130쪽에서 재인용.  22)Т. 4. C.328.  23)Т. 4., C.325-329.  24)Т. 4., C. 296.  25)스타니슬랍스키 연구자 비노그라드스카야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마지막 발견을 무대 공간에서의 율동적 형식과 관계된 메이에르홀트의 배우 예술론과 비교한다. ‘체험의 예술’과 ‘생체 역학’이라는 두 개의 다른 방향의 배우술의 창조자가 각각 터널의 다른 극단에서부터 시작하여 배우 연기술의 본질, 배우의 자연성이라는 동일한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Виноградская И. Н., “Камертон жизни. К. С. Станиславский о работе актера надролью”, Т. 4. C.18

    3. 역할 창조에 있어서 배우와 희곡의 관계

    역할 창조의 과정에서 배우가 해야 하는 작업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희곡을 대하는 태도, 배우 자신의 신체와 체험을 역할 창조에 활용하는 방법, 희곡을 분석하고 느끼는 방법 등에 대한 원칙은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관통하며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그때그때의 주어진 작품의 성격, 장르, 특징 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역할 창조에서 배우가 해야 하는 작업을 스타니슬랍스키는 인식의 시기(Период познавания), 체험의 시기(Период переживания), 구현의 시기(Период воплощения)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26) 이것은 무엇보다도 배우와 희곡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통하여 훈련이 된 배우가 처음으로 희곡과 배역을 대하고 작업해야 하는 내용이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중심인 까닭이다.

    그가 인식의 시기, 체험의 시기, 구현의 시기로 명명한 각 단계의 세부 내용과 목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각 시기와 단계의 선후 순서는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지혜의 슬픔>을 중심으로 순서를 정리하되, 세부 설명은 다른 작품에 대한 작업을 참고하여 보충한다. 소설의 형식으로 된 다른 작품들에 대한 부분과는 달리, <지혜의 슬픔>은 설명문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이 가장 상세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시기는 희곡을 통해서 ‘주어진 상황(предлагаемые обстоятельства)’ 을 마련하는 시기로,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시기를 역창조를 위한 준비 기간이 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인식은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정의하는 것처럼 지성적이고 분석적인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우의 언어로 ‘인식한다는 것’ 은 ‘느끼는 것’(Раз что на языке артиста познать—означает поч увствовать)”27)이라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말한다. 즉, 문학비평가가 희곡을 분석하고 인식하는 것과 배우가 희곡을 분석하고 인식하는 작업은 다른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은 희곡에 대한 배우의 첫인상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강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배우가 처음으로 희곡과 배역을 대하고 받은 첫인상은 그 어떤 것보다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무의식과 직관의 영역은 비과학적이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배우 예술의 핵심이자 배우로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배우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창조적 직관, 배우의 본능, 초의식적 감각(творческя интуиция, ар тистическийинстинкт, сверхсознательное чутье)을 통해 희곡과 역할의 삶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배우 언어로서의 인식, 즉 ‘느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는 무엇보다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 하며, 타인의 생각이나 강요된 인상으로 인해 희곡과 역할에 대한 첫인상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28)

    그런데 타인의 생각으로 인하여 배우 제 자신의 인상이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희곡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이나 문학적 분석 이론을 배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오히려 그러한 것을 철저히 연구해야 하며 가능한 한 모든 비평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오셀로>를 중심으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을 서술한 원고 중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교사 토르초프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읽고 들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희곡과 비평, 주석,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말이다. 그것들이 창조를 위한 재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지켜내고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헛되이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29) 토르초프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지키되 편견 없이 모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정신 상태를 요구한다. 다만 그가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은 제 자신의 연구와 분석 없이 내린 섣부른 결론, 편견, 재단, 왜곡인 것이다.

    첫인상의 단계와 더불어 인식의 시기에서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희곡의 분석이다.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과정이 아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하는 분석의 단계는 무엇보다 배우 제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분석이어야 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러한 분석은 결국 역할의 삶에 있어서 90%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인도하게 만들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를 ‘이성의 도움을 얻어 무의식적이고 직관적 창조를 수행하는 일’30)이라고 설명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분석의 창조적 목적을 그는 다섯 가지 정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란 거칠게 요약하자면 작품 안에서 객관적 사실과 창조를 위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내고 이를 다시 배우로서 제 자신이 가진 정신적 물리적 조건 안에서 찾아봄으로써 역할을 창조하기 위한 의식적 무의식적인 창조적 자극을 받기 위함이다.31) 즉, 배우의 창조적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자극을 일차적으로는 희곡에서, 그 이후에는 그 자신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때문에 스타니슬랍스키는 언어 텍스트로서의 희곡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중시한다. 그는 역할을 분석하는 과정은 텍스트 안의 사실들을 가려 순서에 따라 기록하면서 모든 주어진 상황을 검토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의 층위에 대한 철저한 검토, 마치 프로토콜이나 연대기와 같이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 등은 그가 희곡 분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오셀로>를 중심으로 한 토르초프 선생과 학생들의 수업에서도 토르초프가 희곡을 처음 읽고 온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줄거리와 사건의 흐름을 정리 해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파악은 인물들의 내적 관계와 사건의 내적 의미를 규명해 주는 것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곡 안에서 뿐 아니라 희곡 밖에서도 이러한 자료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희곡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민족적, 역사적, 종교적 도덕적 면들은 어떠한 것이었나를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또 작가 언어의 문학적 문체적 아름다움과 특징도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정리된 사실들은 희곡과 역할의 삶에 대한 ‘주어진 상황의 기록들(протокол предлагаемых обстоятельств)’이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창조적 상상력의 영역을 열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분석의 다음 단계를 스타니슬랍스키는 ‘외적 상황의 생성과 소생(создание и оживления внешних обстоятельств)의 과정’이 라고 말하는데, 이 과정은 이성의 영역으로부터 상상력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 배우는 자신의 경험을 뒤져 희곡 속 시공간과 등장인물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서적 일치감도 생긴다. 이렇게 하여 배우는 역할의 ‘실존의 상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배우는 처음에는 관찰자로 배회하지만 이후 점점 인물 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제 역할을 느끼고 그곳에서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이 단계가 네 번째 단계인 ‘내적 상황의 생성(создание внутренних обстоятельств)’ 단계이다. 더불어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시기가 바로 배우들이 은어로‘나는 존재한다(я есмь)’로 말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32) 희곡 속의 인물로서, 희곡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흩어 지기 쉬운 감각이고 체험이기 때문에 이러한 실존의 느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대상으로 반복해 보아야 한다. 물건들을 통해 감각이 형성되면 이제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심리적 교감도 시도한다. 여기서 더 발전하게 되면 ‘나는 존재한다’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도 그저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감각은 강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외적 내적 상황의 생성은 희곡에 근거한 모티프를 바탕으로 하여 배우가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감각이 구현된 이후의 단계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희곡의 진행 그대로를 따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곡에 쓰인 그대로의 사건과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철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곡의 ‘사실을 인식한다(оценить факты)’고 말한다.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그것 안에 숨은 의미, 정신적 본질, 의의 등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배우 연기에 일관성과 관통하는 선(сквозное действие)을 부여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곡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내고 그 내외적 배경을 이해하며,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실과 사건을 깊고 풍부하게 평가하고, 삶에 대한 많은 경험을 지니고 기억하고 느낄수록 희곡과 역할의 내적 상황은 더욱 분명한 모습으로 창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시기는 체험의 시기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체험을 단순히 심리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무대 행동이란 것이 단순한 외적 움직임이 아닌 내적 마음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이 체험의 시기를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본성에 기초한 유기적 과정이라고 설명한다.33) 그는 무대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몸으로,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내부로부터 외부로, 체험으로부터 구현으로의 행위이며, 관통하는 행동 선을 따라 초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34) 무대 위의 모든 행위는 내적 충동에 의해 유발되고 이를 통해 정당화 되어야 한다. 더불어 체험을 위한 체험, 무활동성의 체험 역시 무대에서는 필요치 않다. 이런 체험 속에서도 배우는 종종 자신이 창조하고 있고 진실로 무대의 삶을 느낀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적 체험이 아니다. 진정한 창조적 체험은 내적 욕구를 통해 외적이고 육체적 행위로 표현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행동이라는 적극적 요소를 포함하는 감정을 위하여 스타니슬랍스키는 관통하는 행동을 동사로 설정하라고 말한다. 배우가 희곡의 각 장면과 순간마다 접하게 되는 모든 목표들(задачи)은 신체적이며 동시에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목표는 배우의 목표이면서 역할의 목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배우는 인물의 위치에 서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창조적인 목표가 배우 자신이 삶에서 체험해 본 것이거나 잘 알고 있는 감정이라 한다면 배우는 역할을 아주 빠르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목표를 통해 배우의 분명한 심적 체험은 창조된다. 크고 작은 목표들이 역할의 마음의 총보를 만든다.

    이렇게 창조의 모든 의식적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 후, 배우는 오직 본능만이 다가갈 수 있는 무의식과 직관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초의식(Сверхсознание)이다.35) 스타니슬랍스키는 인간 정신의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이 바로 이러한 초의식의 영역에서 행해진다고 말하며, 이 점을 간과해 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36) 무의식으로의 유일한 접근 방법을 스타니슬랍스키는 의식적 방법을 통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인도의 요가 수련을 예로 들면서 의식적 준비과정을 통해 무의식으로, 현실을 통해 비현실로, 신체적인 것으로부터 정신적인 것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말한다. 초의식의 영역에서 주저하고 있는 영감을 위한 토대를 이러한 방법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영감은 그럴 때에야 비밀의 문을 열고 나가 자유롭게 창조를 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37) 그런데 이렇듯 초의식과 교류하기 위하여서는 배우가 생각의 묶음을 선별하여 무의식의 자루에 넣어 놓아야 하는데, 그 생각의 묶음은 초의식을 위한 재료이자 자양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 정보, 경험, 회상, 우리의 지성과 시청각적 육체적 기억이다. 이러한 준비가 있어야 초의식의 영역을 위한 자양분이 마련된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강조한다.

    체험의 시기는 에튜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며 신체행동방법론의 적극적 활용과도 관련된다. 희곡을 느끼고 그 인물을 체험하지 못하면 배우는 역할로서 살고 움직일 수 없다. 배우 개인의 경험과 내외면적 재료를 활용하여 희곡의 인물의 삶을 체험하는 것은 에튜드와 신체행동방법론을 통해 가능하다.<지혜의 슬픔>에 대한 서술에서 에튜드의 적극적 활용과 신체행동방법론은 희곡에 대한 분석과 인식 다음에 오지만, 스타니슬랍스키의 후기 작업, 특히 <검찰관>이나 <타르튀프>의 작업에서는 희곡에 대한 분석에 앞서 이것이 행해지기도 한다. 스타니슬랍스키의 후기 작업에서 배우의 능동성, 특히 상상력의 적극적 활용이 강조되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방법론 때문이다.

    역할 창조의 세 번째 시기는 구현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스타니슬랍스키는 비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인식의 시기가 미래의 연인들이 만나고 서로 알아가는 것이라 비유한다면, 두 번째 시기는 합일과 잉태에 비유할 수 있으며, 세 번째 시기는 존재의 탄생과 성장에 비유할 수 있다.”38) 구현의 시기에 앞서 배우는 인식의 시기를통해 ‘사실을 평가하고’ ‘나는 존재한다’ 를 느꼈다. 또 역할에 대한 ‘총보’도 구축했다. 그렇다고 하여도 막상 역할을 구현해야 하는 리허설 현장에서 배우는 종종 앞서 준비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말한다. 특히 동료 배우들의 쓸데없고 진부한 습관과 긴장한 목소리 등은 혼자 역할을 준비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질서를 느끼게 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다시 에튜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말한다. 준비가 안된 상태 에서 대본읽기는 금물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야 대본의 단어들은 정당화되며 살아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에게 있어 작가의 대사는 창조의 시기 중 가장 마지막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우가 모든 분비를 마쳤을 때에야 작가의 텍스트는 배우의 창조적 감정과 마음의 총보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언어 표현의 형식이 될 것이며, 역의 대사는 저절로 떠올라 말해지게 될 것이다.39)

    대본 읽기를 멈추고 에튜드로 돌아가게 되면 배우는 다시 심적 체험과 내적 행위들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배우는 체험의 단계나 인식의 단계에서 그랬듯, 작가의 말 대신 다시 자신의 말을 사용하게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러한 자신의 말이 구현의 형식을 찾는 과정에서 얼굴의 표정과 몸짓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심적 체험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도 된다. 또 이러한 감정과 생각을 선명히 하기 위한 제스처나 움직임을 찾아 사용하게 된다. 신체적 행위란 창조적 의지와 열망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다. 즉 신체적 행위를 통해 목표를 수행하고자 하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충동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몸이 움직이게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점에 대하여 “몸, 배우의 모든 신체적 기관들은 언제나 그의 마음과 창조적 의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40)고 말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스타니슬랍스키는 거미줄과 밧줄로 설명한다. 감정이 거미줄이라면 근육은 밧줄인데, 때문에 거미줄이 밧줄과 견주어 볼 수 있으려면 수많은 거미줄을 엮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배우의 신체와 근육을 감정에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의 총보를 정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표현 기관과 내적 본질 사이의 직접적 연관이 구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눈에 보이는 수단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말이나 제스처 등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초의식적인 것들은 이런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역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내적 형상이 그 스스로의 외적 형상을 제안하고, 배우는 이를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현하기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할의 외적 형상은 의식적이며 또한 무의식적으로 직관적 방법을 통해 느끼고 전해진다. 역할의 형상을 구현하는 의식적 방법은 무엇보다도 상상력, 내적 시각과 청각의 도움으로 외적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배우는 먼저 내적 시각으로 묘사하려는 인물의 외견, 의상, 걸음걸이, 움직임 등을 보도록 해야 한다. 그는 이러저러한 기억과 관찰 속에서 유형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신체적 특징의 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는 다른 것을 찾아, 이들을 결합해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배우는 언제나 제 자신과 자신의 기억 속에서만 필요한 재료를 찾을 수는 없다. 그를 위해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다양한 외적 형상과 문학적 사례 등을 수집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시도가 역할의 외적 형상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일이 된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강조한다.41)

    그러나 에튜드와 신체행동방법론을 통해 배우의 상상력을 사용하고 즉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희곡과 절연한 내용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곡의 대본이 지닌 객관적 정보들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그는 모든 것은 희곡 대본에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천재적인 작품에 여분의 단어란 단 한마디도 없다. 모든 것은 필요불가결하며 중요하다. 그것들은 희곡의 초목표와 관통 하는 행위를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있다. 그 안에 여분의 순간도, 여분 감정도 없다. 따라서 여분의 단어도 없다.”42) 스타니슬랍스키는 만약 배우가 대본을 분석하면서 많은 단어들이 불필요하고 잉여적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역할의 총보가 아직 충분하게 준비되지 못했으며 탐구가 충분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26)이 세 단계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지혜의 슬픔>을 중심으로 한 작업에 대한 서술에서 이다. 이는 이 부분이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설명의 형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듯 세 단계를 설정하여 역할에 다가가고 맡은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교사인 토르초프와 그의 학생들이 등장하여 수업하는 방식으로 저술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중심으로 한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27)Т. 4., C.50.  28)이 점은 <오셀로>에 대한 원고에도 있다, 코스챠는 토르초프 선생이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도록 담백하게 작품을 배우들에게 낭독했을 때의 인상과 효과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9)Т. 4., C.286.  30)Т. 4., C.54-57. 참조. 더불어 그는 감정이 침묵하고 있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이성이라고도 말한다.  31)인지적 분석의 창조적 목표는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1) 작품에 대한 이해 2) 희곡이나 역할 안에 있는 창조를 위한 영적인 것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위한 탐구 3) 배우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재료를 위한 탐구(자기 분석) 4)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창조적 감정의 발현을 위한 토양을 자신의 내면에 준비하는 것 5) 희곡과의 첫 만남에서는 생기지 않았던, 희곡 안에 있는 더더욱 새로운 인간 정신의 삶의 부분을 만들어내고 더 새로운 창조적 열망의 불꽃을 제공하는 창조적 자극에 대한 탐구 T.4., C. 55.  32)T.4., C.76.  33)T.4., C.95.  34)T.4., C.99.  35)스타니슬랍스키는 초의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의식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영혼을 끌어 올리며, 바로 그 때문에 이것은 우리의 예술에서 높이 평가되고 보존되어야하는 것이다(Сверхсознание больше всего возвышает душу человека, и потому именно оно должно больше всего цениться и сохраняться в нашем искусстве).”  36)T.4., C.140-141.  37)T.4., C.142-143. 스타니슬랍스키는 인도의 요가 수련인이 초의식의 분야를 활용하기 위해서 생각의 묶음을 만들고 무의식의 자루에 넣어 버려둔 후 그로부터 벗어나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하며 잠시 무념무상의 상태로 지내는 것을 거듭함으로써 잠재의식이 준비되도록 하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한다.  38)T.4., C.145.  39)T.4., C. 157.  40)T.4., C.167.  41)T.4., C. 171-173.  42)T.4., C.155-156.

    4. 역할 창조에 있어서 배우-통제자로서의 존재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무대에서 역할로서 존재함을 느끼고 그의 정신적 신체적 삶의 연속적 흐름을 성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무대 위에서 존재하는 배우와 역할 사이의 거리를 지울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역할의 삶을 살고 연기하면서,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그 자신에 대한 자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배우는 그 자신이 역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역할을 이해하고 무대에서 그가 되어 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럴 때 배우는 역할의 삶을 사는 배우 그 자신을 지켜본다. 즉 배우의 이중은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화가 『구현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토르초프와 그의 학생들은 가면무도회를 실행해 본다. 그때 코스챠는 비평가(критикант)가 지닌 역할의 특징과 성격으로 완벽한 변신을 하는데, 후에 토르초프 선생은 그것을 그 자신의 이름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코스챠는 몹시 난색을 표하면서 부끄러워서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제자의 이러한 상태에 대하여 토르초프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즉 무대 위의 배우가 과감하게 영혼의 깊은 곳을 드러내고 평소라면 하지 못할 일까지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이 배우 그 자신이 아닌 ‘역할의 성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르초프는 “역할의 성격은 자연인 배우 자신을 감추는 가면(Характерность—та же маска, скрывающа я самого актера-человека.)”이라고 설명한다. 무대 위 배우는 제 자신의 인격,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역할의 성격, 역할의 진실된 형상의 창조를 표출하는 것이다.

    역할의 창조는 자연인인 배우 그 자신의 내적이고 외적인 재료를 통해 구현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재능이 있는 배우의 경우라면 자신이 창조해야 하는 역할의 구체적인 형태는 내적으로 정확한 요소들을 구성할 수 있으면 대부분 외형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즉, 심리적 특징을 파악하면 외형의 형상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모든 배우에게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약 내면으로부터 창조할 수도 없고 자연스러운 재능으로부터도 발현되지 않을 경우, 역할의 외형적 모습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구성할 수 있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말한다. 하나는 직관에 의해서,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기술적이고 외적인 방법에 의해서이다. 외형적 이미지의 반향으로 내적인 감각이 반응하고 적응할 수 있다. 직관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과 연구 역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상상, 체험, 경험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강조한다. “단 하나의 진리는, 탐구 과정에서 결코 완전히 외형적이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이며, 반면에 고유한 자신의 내적인 자아를 상실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44) 외적인 관찰로 외형을 창조하는 경우라도 전형적이고 일반적 범주의 인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상투적 전형이 아닌, 그 인물만의 특징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일반적인 군인’이 아닌 ‘진짜 군인’을 창조할 수 있다.45) 인간으로서의 배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배우 그 자신을 재료로 사용해야 한다. 모든 역할의 시작이며 재료는 그 자신이다. 단순한 모방과 상투성이 아닌,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그럴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배우가 그 자신을 재료로 사용한다고 하여 역할이 그 자신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는 자신의 제스처에 고삐를 매달고 그것을 제어하는 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비통한 환경에 빠진 사람은 격정적이고 감정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상처도 아물고 내적 동요도 잠잠해지면 그 사람은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자신을 제어하면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배우가 도달해야 하는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46)라고 말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격정에 휩싸이고 고통에 사로잡히는 일은 무대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연습기간 동안 해야 하는 일이다. 무대에서는 그것에 고삐를 매달고 제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배우인 것이다. 그는 “배우가 역할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제어하고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형태와 역할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지고,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더욱 커질 것”47)이라고 말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나의 예술 인생』 중 ‘오래 전부터 알려졌던 진실을 발견 하다’라는 장에서도 쉬토크만 역을 통해 이 점을 깨달았던 경험을 술회한다. 그는 천 명의 관객과 찬란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서 있다는 배우의 자감은 연극예술의 가장 큰 방해물이지만 그것을 창조적 자감으로 바꿀 수 있다면 대단히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48) 이것을 그는 무대 위에서, 창조의 순간에서, 또 일상에서의 자신을 관찰하는 훈련을 통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창조적 자감의 상태에 있을 때, 배우는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고 몸의 모든 조직을 배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으며, 육체적 자유과 정신이 느끼는 것을 어떤 장애도 없이 몸으로 표현해 낼 수 있도록 한다고 스타니슬랍스키는 강조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러한 자감이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나는 일임을 말한다. 즉 인간으로서의 본성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것을 경험하거나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보일 때에 그것에 대해 관찰하는 자아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배우는 이것을 훈련하여 창조적 자감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특히 무대의 행동선과 목적을 연구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두 개의 관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는 역할의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무대 위에서 존재하면서 연기하는 동안의 심리적 기술인 배우의 관점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두 개의 관점은 서로 가까우며 항상 평행으로 가야한다고 설명한다.49)

    스타니슬랍스키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종종 그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나 스스로가 관찰하고 비평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시선이 우리가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이나 그 순간 어떤 감정을 깊이 느끼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배우도 이와 같은 것이다. 더불어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러한 분리가 배우의 영감을 해쳐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한쪽은 다른 한 쪽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는 그 자신을 재료로 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재료이자 창조자인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 때문에 배우는 창조의 재료인 그 자신의 정서, 내면, 신체 등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며, 언제나 필요한 시간 필요한 장소에서 창조의 영감을 불러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그는 배우인 제 자신이 체험하고 느끼지 못한 역할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신체행동방법론과 에튜드를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역할의 내면을 느끼고, 역할과 역할의 행동을 정서적 외형적 특징을 체득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적 정신과 외형적 신체를 함께 활용하여 이를 일관성과 논리를 지닌 인물로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배우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무대 위 배우는 역할인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그 자신을 통제하는 통제자-배우의 이중의 존재여야 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꿈꾼 예술로서의 배우예술, 배우예술의 완전성이 가능한 지점 또한 여기에 있다 하겠다.

    43)T.3., C.250.  44)Станиславский К. С.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В 9 т., Т. 3. Работа актера над собойв творческом процессе воплощения, М.: Искусство, 1990. C.227.  45)T.3., C.247.  46)T.3., C.259.  47)T.3,, C.260  48)T.1., C.671-674.  49)스타니슬랍스키는 『구현 창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중 한 장 ‘배우와 역할의 전망’을 이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T.3,, C.150-158. 참조.  50)T.3,, C.151.  51)T.3., C.150.

    5. 결론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단순히 연극사적 의미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우 예술의 기초가 되어주는 동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연극은 그의 시스템으로 인하여 그동안 추상적이고 막연하게만 접근하던 배우 연기술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 본성에 근거하여 연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교육 체계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은 근대 연극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저서를 관통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연극예술은 배우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며, 배우예술은 체험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그는 연극적 기능으로 익히고 반복하여 연기하는 것은 그 세련되고 화려한 테크닉으로써 보는 이를 감탄시킬 수는 있어도 진정한 감동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란 역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사람이 아니며, 진정한 배우는 매 순간 새롭게 체험하고 느끼고 역할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도 창조적 체험 과정에 있어서 내적이고 심리적인 작업을 가장 먼저 하라고 제안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 없이는 무대 위 배우는 관객에게 진실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험의 강조가 심리적, 내면적인 부분의 강조인 것은 아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외형적 구현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외적 신체적 구현과 내적 심리적 구현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역할 창조의 과정에서 그것은 따로 접근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의 작업 후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신체행동방법론의 적극적 활용은 이러한 생각을 잘 반영한다. 스타니 슬랍스키는 배우 그 자신이 체험하고 느끼지 못한 역할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신체행동방법론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체험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무대 위 배우는 ‘역할’인 동시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통제자’라는 이중의 존재여야 했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해야 하는데, 그것은 무대가 아닌 연습기간 동안 해야하는 것이라 말한다. 역할과 유사한 경험이나 감정 상태를 자신의 지나온 삶 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에튜드와 신체행동방법론을 통해 연습기간 중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후 무대 위에서는 그것 제어하고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역할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제어하고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형태와 역할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지고,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 주 장했고, 이것을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항상 과정 중에 있는 자, 탐구하고 움직이는 자였다. 그는 시스템이 하나의 여행안내서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때문에 각 작품마다, 작업의 특징마다 시스템은 ‘적용’되고 ‘적응’되었다. 그의 저술 속에서 종종 시스템이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시스템은 도그마나 절대 불변의 법칙이 아닌, 배우로서의 그 스스로가 적응하고 실험한 결과인 것이다. 시스템에 대한 저술이 소설의 형식으로 쓰인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시스템을 실험하고 탐구하는 도정, 그 과정을 ‘공유’하고 ‘나누고자’ 한 것이지 ‘교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정신적 창조의 비밀스러운 영역을 과학과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 놓은 예술가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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