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ude sur l’Integration Sociale des Immigres Etrangers Influencee par la Conception de la Nation

민족의 개념이 이주민 사회통합정책에 끼치는 영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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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Les politiques d’intégration sociale des immigrés étrangers sont différentes dans chaque pays selon les valeurs sociales, les idéologies, les systèmes de droits et les pratiques cultureles propres au pays. Néanmoins nous pouvons classifier en trois catégories les grands modèles de politique d’intégration: exclusion/discrimination, assimilationisme et multiculturalisme. Cette catégorisation dépend tout d’abord des lois, des politiques d’intégration, des systèmes ou des conditions sociales des pays qui accueillent les immigrés et les travailleurs étrangers. Alors cette étude se développera dans l’hypothèse que les politiques d’intégration soient influencées par la conception de l’Etat-nation qui y prédomine dans les pays, aussi bien que des objectifs différents: démographiques, économiques, humanitaires, sécuritaires. La vision de chaque pays qui accueille des immigrants s’enracine dans les épreuves politico-historiques à travers lesquelles la Nation s’est formée. Nous sommes donc à révéler l’influence de la conception de la Nation et le Nationalisme sur les lois ou la politique d’intégration sociale. En vue de démontrer cette thèse nous allons comparer trois pays; l’Allemagne, l’Angleterre et la France. En Allemagne, les politiques d’intégration se vivent en tant que modalité de l’exclusion et de discrimination des immigrés étrangers en les considérant comme les visiteurs provisoirs. Nous supposons que cette direction de l’Allemagne sur les politiques d’immigration est dû à la conception de la Nation spécifique et rigide. C’est-à-dire, d’être Allemand, il s’agit toujours du sang, de la terre et de la culture communs qui causent. Donc l’Allemagne revendique toujours “l’Allemagne n’est pas un pays d’immigration!” Pour les Britanniques, la conception de la Nation se développe de façon spécifique. En vue des intérets politiques et économiques sur les pays colonisés, le gouvernement britanique permet aux immigrés d’entrer librement sur le territoire. En plus l’Angleterre leur permet de pouvoir conserver leurs coutumes, leurs religions et leurs langues. La conception de la Nation donc pour eux s’est définie comme un ensemble de sujets britanniques gouvernés par la Reine. Naturellement l’Angleterre appliques en vigueur des lois ou une politiques d’intégration sociale des immigrés dans la direction visant la multiculturalisme. La France est un pays qui pratique une politiques assimilationiste des étrangers. La conception de la Nation pour les Français s’était définie comme le citoyen qui donne son accord à la valeur de la République à l’époque où la Révolution se developpait. Par conséquent la conception de la Nation française a été attribuée comme un ensemble de personnes qui voulaient ‘vivre ensemble’ sur un territoire. La France ne permet pas d’avoir une autre identité qui soit un danger pour la France. Donc il est exigé pour des immigrés de s’assimiler à la culture française. Bref, Nous prouvons que les politiques d’intégration sociale des immigrés, qui concerne la vie des immigrés résidents, leurs droits et leur participation à la vie sociale et politique, c’est-à-dire la régulation des flux et le contrôle des migrants et des étrangers, est influencées par la conception de la Nation qui s’est formée au cours de la construction de l’Etat-Nation au 18-19ème siècle.


  • KEYWORD

    immigres etrangers , Nation , Nationalisme , integrarion sociale , exclusion/discrimination , assimilationisme , multiculturalisme

  • 1. 들어가는 글

    현대는 다문화 공존의 시대이다. 세계화로 인한 인적교류와 인구이동은 대상국가에 단지 인구 구성비율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입되는 민족과 인종의 수만큼 다양한 종교나 문화가 함께 동반된다. 이처럼 다인종․다문화 사회로의 진입과 심화는 세계화의 진척 정도와 맞물려 전지구적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이에 맞서 수용국가들은 국가나 공동체 사회가 유지하고 보호하는 가치나 이념, 권리체계 또는 문화적 실천 등에 따라 제 각각 고유한 유형의 이민자 통합정책들을 실천하였다.

    이민자와 다문화를 수용하는 대표적인 정책유형은 일반적으로 크게 세가지 모델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이민자의 전통과 문화를 제도적으로 제한하거나 구속하지 않으며, 용인하거나 적극 수용하는 다원주의적 유형의 통합정책이다.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 나타나며,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포용하기에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고 한다. 두 번째는 동화주의(assimilationism)이다. 소수집단 구성원들의 문화나 가치관 또는 정체성을 주류집단의 그것으로 흡수․융합하는 유형이다. 사적영역에서 개인의 관습과 종교적 실천 등 문화의 다양성은 보장하지만 국가의 정체성과 분리되는 집단적 정체성의 형성과 권리요구는 용인하지 않는다. 프랑스가 동화주의를 채택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세번째 모델은 국가나 민족 구성원의 강력한 동질성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문화나 타 집단의 가치와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배제(distinction/exclusion)의 정책유형이다. 유입된 외국인 이민자의 권리요구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며, 국적부여 기준이 혈통주의를 최우선시하는 국가들에서 보이는 차별․배제 유형의 모델이다. 일본, 한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에서는 독일을 들 수 있다.

    본 논문은 이처럼 국가마다 차별적이고 특징적인 사회통합정책의 선택과 실천이 해당 국가에서 함의되고 형성된 ‘민족(Nation)’과 ‘민족주의(Nationalism)’에 내포된 의미나 정의에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민족의 개념과 다문화 수용정책의 관계를 비교 검토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각자 특징적인 유형의 다문화 모델을 시행하는 영국, 독일, 프랑스라는 세 국가를 선택하였다.

    서유럽국가의 이주민 통합정책에 대한 연구는 가까운 시일에 직면하게 될 다문화, 다인종의 미래 한국 사회에 시사 하는바가 적지 않다. 단일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노동력 부족에 따른 외부노동력의 유입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그 외 여러 형태의 이주민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민족의 개념이라는 토대위에서 형성된 서유럽 세 국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서 한국형 다문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정책의 방향과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서유럽 국가의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이라는 용어는 집단들의 차이를 설정하고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양식이며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공동체를 통합하는 인식론이자 질서구조로서 민족은 작동하며, 이러한 개념에는 타자로 분류되는 소수부류의 계급과 계층의 구분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거나 배제하는 사회․제도적 장치가 내재되어 있다. 유럽에서 국가 간 인구이동과 이주가 시작되는 시기는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거나 강화되는 시점이어서 외국인 이주자를 수용하는 국가정책의 근간은 민족의 경계를 파악하는 내부 정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2.1. 독일의 종족ㆍ문화적 민족

    독일에서 민족이란 종족적이며 동일한 문화적 공동체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즉, 혈통을 공유하는 종족집단이 공동의 언어와 가치관, 관습에서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문화적으로도 같은 구성원들로 형성된 집단이 민족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개념은 18세기 독일인에게 민족국가 이념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던 헤르더(Johann. G., Herder)의 사상에서 출발하였다. 인민을 특정한 문화적 속성을 지닌 민족(Volk)으로 이해한 헤르더는 무수한 단위들로 나눠진 각 민족은 동일한 문화적 전통과 역사를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민족성과 자기의식을 가진다고 보았다. 프랑스에서도 민족을 가늠하는 정의에 언어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듯이(인성기 2003: 420; 조홍식 2008: 114) 헤르더도 민족성과 자기의식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언어라고 보았다.1) 그는 민족을 집단구성원이 공유하는 언어적․문화적 공동성에 근거하여 ‘문화민족(Kulturnation)’2)으로서의 규정을 독일민족에 부여하였다. 헤르더의 민족문화 이념은 피히테(Johann G., Fichte)의 독일인이라는 ‘우리’와 독일인이 아닌 ‘그들’을 구분하면서 적과 동지라는 이데올로기적이며 배타적인 민족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 피히테는 가장 자연스러운 국가는 ‘하나의 민족성을 가지는 하나의 인민’임을 강조하였고, 독일인만이 외래어로부터 보호된 고유의 언어와 지성 그리고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유럽의 민족 중에서 유일한 완전무결한 국민이라고 주장하였다.

    18-19세기 독일 사상가들이 배타적이며 혈통중심적인 민족 개념을 제시한 이면에는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볼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 독일은 단일국가 건설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고 민족의식의 고취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고유의 의회와 정부, 독자적인 문화생활을 지닌 수많은 연방주들로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인접한 유럽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하나로 통일되고 더 강한 독일로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그 결과 이탈리아 북부 등 동구권의 식민지를 포괄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로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배제한 프로이센 중심의 순수 독일인만의 국가통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프로이센은 최고의 가치는 국가라는 기치3)로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순수 독일인의 정체성 집단의 강화를 강조하는 독일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서 배타적인 군국주의 국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국가적 통일에 방해되는 세력들을 철저하게 억압하면서 나타난 애국주의는 문화민족과 결부되었고 종족적 쇼비니즘의 출현은 결국 20세기 초에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의 결정체인 나치즘으로 태동되었다. 파시즘에 경도된 히틀러에게 민족은 생물학적 의미의 인종 공동체로 이해되었고, 우월한 게르만 민족공동체를 실현시키는 도구였다. 히틀러는 이러한 인종중심의 민족개념을 19세기 후반의 고비노(Arthur de Gobineau)의 논리에서 제공받았다.

    고비노는 “인종불평등에 관한 논고(Essai sur l’inégalité des races humaines)”에서 ‘원초적 인종(아리안족 혹은 게르만족)’의 완전성 개념을 전개시키고, 백인종은 황인종보다 그리고 황인종은 흑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인종의 혼합이 고등인종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며, 유대인은 타락되고 비생산적 인종이라는 논리를 전개시켰다. 이러한 논리는 독일의 민족운동과 국가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최치원 2009: 67). 고비노의 논리는 ‘우월한 피(Blut)와 역사적 기억으로서의 땅(Boden)’에 근거한 민족의식으로 독일인에게 운명공동체임을 강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인종민족이 갖는 내재적 힘은 강한 독일건설의 기반이 되었고, 재통일을 향한 건설적 힘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인에게 민족과 민족주의는 자민족과 타민족을 가르는 차별성과 배타성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결국 독일의 영토는 독일 혈통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는, 전형적인 ‘민족국가(Volksnation)’ (한승완 2001: 231)의 특성으로 민족 개념이 내포되었다.

       2.2. 프랑스의 데모스 시민과 민족

    프랑스 민족의 형성은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서 출발한다. 즉,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의지와, 함께 살고자 하는 동의를 이룬 집단이 민족을 구성한다는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개념이 프랑스 민족에 내포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기에 나타난 공화주의 시민(citoyen)의 의미는 공화국을 찬성하는 이는 누구나 프랑스인이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색인, 외국인, 노예 등 그 누구라도 공화국을 구성하는, 개방적이며 정치적인 민족이 등장한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합의체의 결과인 프랑스의 데모스(demos)민족의 기원은 루소(J. J., Rousseau)와 르낭(J. E., Renan)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루소는 정치적이고 시민적 공동체의 유지․존속에 대한 갈망은 사회계약(Contrat Social)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계약을 맺은 개인들의 집단이 바로 민족을 형성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러한 루소의 영향은 19세기 르낭에게 미치게 되는데, 르낭은 민족이란 공동의 삶을 지속하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민족은 영혼이고 정신적인 원리이다 (...) 하나는 과거 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현재에 있다. 하나는 풍부한 기억의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동의이고 함께 살고자 하는 소망이며 개인이 받은 유산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이다.”4) 르낭의 이러한 민족에 대한 정의는 프랑스의 민족 개념과 국가의 정의를 대변한다.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취득에 있어서 자발적인 의지와 자세에 대한 법적근거를 만드는 이론적 토대가 제공된 것이다.

    이후 제3공화정 시기에도 프랑스는 억압받는 야만 상태의 민족들도 프랑스의 문화적 혜택을 받는다면 자유롭고 문명화된 프랑스 국민이 된다는 논리까지 전개하고 있었다. 프랑스어도 구사하지 못했던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프랑스를 정부는 동화주의를 통하여 강력한 프랑스국민화정책으로 민족정체성을 이루어 나갔다. 대대적인 교육(초등교육)과 군대개혁(징병)은 민족을 구성하고 계도하는 강력한 대내적 동화주의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국민은 민족의 역사적 뿌리를 강조하는 계보학의 관점5)보다는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발전하면서 공동체에의 참여와 헌신에 대한 의지라는 사회계약논리에 기초하여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프랑스식의 시각에서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성립되는 것은 구성원 개인들이 얼마나 공동체를 유지하며 공유하는가에 대한 의지표현의 결과이다. 외국인에게도 국적을 개방하고 시민적 자유를 공유한다는 보편주의 이념은 오늘날까지 민족의 새로운 정의에 강력한 상징적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2.3. 영국과 신영연방 시민으로서의 민족

    다문화 정책과 관련하여 정의될 수 있는 영국의 민족 개념은 제국팽창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즉, 중세적인 정치적 관계에서 국왕의 영토에 살고 있는 중세적 신민(subject)으로서의 구성체라고 규정하는 폭넓은 정의에서 출발되었다.

    영국 민족의 확대는 제국주의시기에 식민지 산업에 대한 경제적 이익과 제국 경영에 대한 정치문화 속에서 새롭게 태동한다. 유럽 강대국들과의 장기적인 경쟁 속에서 광대한 식민지 건설에 수많은 군인과 인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요구는 종족적 요소가 강하고 경쟁적인 다민족 국가들로 이루어진 영국 시민들을 하나의 제국과 국가 기구 속에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식민지 경영과 제국 팽창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영국을 구성하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제국의 중요성과 안정된 정부, 왕정에 대한 애착 등 애국주의가 출현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김대륜 1999: 190-191). 이처럼 영국의 민족의식의 고취 배경에는 영국인이 해외 식민지에서 누리는 정치, 경제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 그리고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뒷받침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민주주의 전통에 익숙하였던 영국은 영국적 전통으로 외부의 식민지를 관할하였다. 자유스럽게 그들의 문화나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영연방으로까지 귀속하였다. 영연방에 속한 식민지 국민들은 영국인이자 영국 여왕의 중세적 의미의 충실한 신민이 된 것이다(조홍식 2005: 134-135). 따라서 영국여왕의 식민지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영국인의 범주에 포함되었고, 신민으로서의 민족 개념은 20세기까지 유지되었다. 실제로 1914년 영국의 국적법은 당시 제국의 모든 사람을 영국의 신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후 1981년 제정된 새로운 국적법에는 영국민은 영국령 영토시민, 영국 해외시민, 영국시민의 세 종류로 세분화되지만 법적으로는 영국 국민으로서의 신분은 유지되었다.

    이처럼 18세기 형성된 영국에서의 민족 또는 국민이라는 개념은 언어나 종교, 문화라는 강력한 동질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한 영토 확장과 지배라는 제국주의 경험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 영국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영연방이라는 제국의 틀 안에서 공존하는 다수의 신민적 종족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

    1)베네딕트 앤더슨,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나남출판사, 1993.  2)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독일적 특수성에 대한 강조는 역사주의 역사가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에 의해 1907년 ‘문화민족’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그는 공통의 정치사와 헌법에 토대를 둔 프랑스와 영국을 ‘국가민족(Staatsnation)’이라 칭하였다(최치원 2009: 63).  3)헤겔(Hegel) 역시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면서 애국심에 고취되어 프로이센을 사유의 중심에 놓으면서 국가가 역사발전의 최종단계이며 국가는 보편적 의지의 구현이므로 개인은 국가와 관련된 사유와 행동을 통해서만 윤리와 통일되고 실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국가는 지상에 존재하는 신의 이념이라는 신정론적 국가관을 펼친다(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r Rechts, Hg. von Johannes Hoffmeister, Hamburg, Meiner 1955). 인성기(2003: 423)에서 재인용.  4)Renan (Ernest), “Qu’est-ce qu’une nation?”, Discours et conférences, Calmann Lévy, 1887.  5)16세기부터 대혁명 이전의 시기까지는 프랑스인의 자격은 상속권의 견지에서 규정하고 있다. 즉, 16세기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프랑스인이며, 프랑스에 거주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프랑스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었다.

    3. 민족이 갖는 함의와 이민자정책

       3.1. 독일의 차별과 배제정책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의 결합은 하나의 이념도구로써 독일인들을 내부적으로 결속시켰고, 외부적으로는 타자들에게 차별과 배제를 가져왔다. 이는 곧 독일 제국의 내부적 통합을 위한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되었다. 독일 민족에게 자국 내의 다른 인종 혹은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집단이나 민족은 전적으로 통제되고 배제되어야 한다는 배타적 인식의 형성이 그 기원을 갖게 되었다.

    3.1.1. 종족 ? 문화적 동질성을 위한 차별과 배제정책의 유형들

    2005년 새로운 이민법이 제정되어 다문화 사회를 인정하고 표방하기 전까지 혈통과 문화의 동질성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사고는 그대로 독일의 이민법과 이민정책, 통합정책에 반영되었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성향이 전제된 독일의 이민자 통합정책은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였으며, 오히려 인종적 차이를 강조하고 분리하는 차별적 배제의 정책으로 독일 다문화 정책의 기조를 이룬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는 외국국적 보유자가 독일 전체인구의 8.25%에 달하면서 67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 외국인이 이주를 하여 독일인이 된 수와 그 후속세대의 수까지 더한다면 약 1,400만 명 이상에 이른다. 독일 GNP의 약 10%는 국제이주민에 의해 창출되었고, 음식업, 건설업, 병원, 양로원 등 독일산업의 일정부문은 이들에게 의존(박명선 2007: 272;박채복 2007)하고 있을 만큼 이민자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독일은 이민법이 제정된 최근까지도 다민족, 다인종적 현실을 부인하면서 이민국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베버(Weber)나 동시대의 민족주의자들도 당시대규모로 유입되던 폴란드 국적의 노동자들을 독일 민족국가와 독일문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고용금지와 입국금지를 강력하게 주장하였을 정도로 유입된 이민자들은 통합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6)

    이러한 배타성과 폐쇄성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철저하게 독일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반영되었다. 1955년 이탈리아를 선두로 시행된 ‘외국인노동자프로그램(Guestworker Program)’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과 노동환경을 통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일로의 정착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곧 귀국할 한시적인 ‘손님’으로서 간주되었고, ‘이동노동자(Wandererabeiter)’, ‘계절노동자(Saison-arbeiter)’, ‘강제부역노동자(Zwangsarbeiter)’로 구분되어 불렸다. 이들은 또한 내국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이방인노동자(Fremdarbeiter)’로도 지칭되었다. 이러한 용어들은 1960년대에 ‘초청노동자(Gast-arbeiter)’라는 용어가 앞선 용어들을 대체하면서 사라졌지만, 필요에 의해서 충당했다가, 일정시기가 지나면 귀국을 강요당하였다.7) 그리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정부가 지정한 제한된 지역에서 국한된 직종에 한해 노동을 할 수 있었고, 가족을 독일 내로 초청하는 것 역시 제한되었다. 프로그램 시행의 감시는 연방노동사무소와 정부기관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주노동자가 범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노동자의 거주나 노동허가를 박탈할 수 있으며 강제추방을 전담하는 특수경찰도 유지되었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는 ‘순환원칙(Rotationsprinzip)’에 따라 노동시장 정책의 대상자로서 1년 단위로 해당 사업장 또는 일자리에 제한되는 고용만이 허가되었다. 따라서 이주정책으로서의 외국인 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김용찬 2008; 박채복 2007).

    1980년대 이후 이민자의 장기체류와 가족동반 등 이민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의 발생 때문에 이루어진 1990년도 최초의 외국인관련법 개정에도 여전히 혈통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국적 취득과 이중 국적을 금지하는 제도는 유지되었다. 더욱이 사실상 이민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이 독일사회에 통합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강도높은 외국인 규제정책을 실현하였다. 여전히 이민자들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위한 낯선 외국인일 뿐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모국어로 독일어를 하며 독일 문화 속에 살며 삶을 지속한 이민자 가족들도 독일인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민자 또는 외국인 취급을 받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이들도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귀환의 대상으로 늘 간주되었고 독일내부에 살고 있지만 비독일 민족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와 반대로 300년 전 러시아나 구동독, 동유럽으로 이민 갔다가 재이민의 형태로 다시 유입된 독일계 후손들(Aussiedler)은 독일어와 독일 문화에 무지할지라도 귀국 즉시 독일인으로 간주되어 모든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다.8)

    교육에서의 차별은 외국인의 사회적 진입을 원하지 않던 독일 정부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배제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주민 자녀들을 독일학생들과 분리하여 학급을 편성하여 차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독일인과 비교하여 보다 더 우월한 교육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교육의 부재나 낮은 학력으로 경쟁력이 저하된 이민자 자녀들을 실업에 내몰리거나 힘든 일자리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의 최하위 계층에 자연스럽게 머무르게 한 것이다.

    결국 혈통주의 전통에 따른 이민억제와 단기 인력정책 중심의 독일 이민정책 방향은 이민자를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국가적 노력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외국인 자녀 교육문제, 외국인의 정치 참여 제한, 이민자의 문화와 관습 포기 강요 등을 통한 일방적인 통합 원칙은 이민자의 동화와 통합의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외국인은 위험한 타자라는 선입견과 혐오, 배척과 차별, 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3.1.2. 이민국 독일과 이민자정책의 변화

    이민에 의해 야기되는 여러 사회적 갈등에 봉착했던 독일에 이민자의 정착과 후속세대의 사회적 통합 문제뿐만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야기로 새롭게 이민자 유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독일 노동력의 감소는 소극적이고 배타적이었던 이민정책과 통합정책에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에 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나는 새로운 외국인 정책을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혈통을 기본으로 하던 국적법이 출생지역을 기본으로 하는 법으로 전환되었다. 1999년 국적취득법 개정에는 2000년 1월 1일부터 독일에서 태어나는 외국인 자녀는 부모 중 한 명이 적어도 8년 이상 독일에 합법거주를 하였고 무기한 체류허가나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으면 자동으로 독일인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국인 자녀들은 원칙적으로 만 24세 전에 독일이나 부모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하였다. 또한 2004년 제정되어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첫 이민법(Zuwanderungsgesetz)은 이주정책과 이민정책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독일이 이민의 나라임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제는 어떻게 이민자들을 독일 사회에 통합시키느냐 하는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개정된 이민법은 이주민들의 고유한 민속적,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여 독일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일인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통합하자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9) 그 배경에는 이민자를 독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주민에 대한 배려와 인정 그리고 다문화 공존에 대한 통합의 노력 없이는 사회적 안정과 국가안보 그리고 경제 안정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에 있었다(박명선 2007: 273).

    비록 새 이민법의 이민규정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까다로울 뿐만아니라, 이주자들에게 600시간의 독일어 과정과 30시간의 독일 사회로의 통합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등을 이수해야하는 통합교육과정10)이 법적으로 명시되었지만, 지난 시기 통합을 부정하던 독일의 이민자정책의 기본인식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새로운 이민법의 시행은 취업을 통한 이주민들의 경제적 통합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통합을 진행하여 이미 진행된 다문화 사회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수용․발전시켜, 독일의 민족주의적 폐쇄성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여겨진다.

       3.2. 프랑스의 동화주의 이민자정책

    프랑스는 개방적 민족 개념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공화주의 국가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구성원 개인들의 의지표현은 중요한 사회계약의 일부로 작동한다. 즉 다수의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요약되는 집단의지는 문화적 다양성과 복수적인 정체성을 관리하기 위하여 하나의 정체성만을 인정하고 있다. 공화국을 분리하는 그 어떠한 정체성이나 공동체주의의 발현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질적인 인종과 문화를 수용하는 이민자 사회통합의 원리가 동화에 기반을 두는 이유였다.

    3.2.1. 공화주의 가치와 다문화정책 담론

    프랑스가 채택하고 있는 이민자정책은 공화주의를 통한 동화정책이다. 즉 프랑스 특유의 ‘공화주의적’ 다문화 정책이다. 프랑스는 공화국의 법보다 우월한 규정은 없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프랑스가 추구하는 이주민 통합의 정책은 프랑스의 공화주의 가치를 유지하는데 기반을 둔다. 공화국의 이념은 1946년 제4공화국 그리고 제5공화국 헌법전문에 구체화되어 있다(이정욱 2010: 137-142).

    헌법의 전문에서 프랑스 특유의 이민자 통합정책인 동화주의가 태어난 배경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의 불가분한 공화국(Une République indivisible)’에 대한 정의이다. 헌법에서 공화국은 국가를 분리하는 이질적인 외부의 어떠한 정체성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오직 하나의 정체성에 의한 통일성과 국민통합을 공화국 최상의 가치로 둔다. 그러므로 프랑스 영토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사회의 가치나 관습, 문화 등 프랑스적인 것에 융합을 해야 한다. 어떠한 정체성도 공화국과 ‘다를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세속적인 공화국(une République laique)’, 즉 라이시떼(laïcité)이다. 정교분리원칙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교회가 국가정치와 정부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라는 대전제를 말한다. 1905년 프랑스는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위한 법(Loi relatif à la séparation des églises et de l’Etat)’을 제정함으로써 프랑스 공화국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를 세우게 된다. 정교분리원칙은 후일 2004년도에 ‘종교적 상징물 착용 금지법’이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것은 ‘법 앞에 평등(l’égalité devant la loi)’의 이념이다. 프랑스의 사회통합의 원칙은 평등에 기초하는 보편주의이다. 프랑스의 인권자문위원회는 이를 ‘프랑스의 통합 개념은 반드시 소수자의 논리가 아니라 평등의 논리로 준수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헌법에 기초하여 재천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통합모델은 집단보다는 개인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소수자들에게 일정한 배려를 하여 그들의 사회적 진입을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없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시행하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나 ‘긍정적 차별(Discrimination positive)’이라는 사회적 취약집단으로 분류되는 소수집단만을 위한 정책을 공식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프랑스인으로 분류되는 공동체 외의 소수집단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1789년 인권선언의 첫 조항과 상반되는 아이러니를 가진다.11)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이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출신의 다양성을 배제하고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로부터 소수집단의 권리에 대한 보호나 호혜는 배제되었다.

    3.2.2. 동화주의 정책들

    동화주의는 적어도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주민이 현재 살고 있는 이민수용국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권리체계 그리고 문화적인 실천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흡수통합방식이다. 따라서 동화주의에 기초한 이민자 정책은 소수집단이나 이민자들이 지배적인 사회구조를 이루는 여러 층위의 그물망에서 사회․문화적 적응이라는 일방적이고도 단선적인 과정을 통하여 융해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국 소수의 정체성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다수집단의 정체성 그리고 방향성과 일치를 이루어야 되며, 수용국가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에 정책의 기본 틀을 둔다.

    적응을 통한 순응 또는 융합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다양한 동화의 정책들이 시도된다. 비교적 쉬운 국적취득과 속지주의 원칙, 무료로 시행되는 언어교육정책, 프랑스 역사교육, 군복무 등을 통하여 융합과 동시에 프랑스 정체성의 자연스러운 습득을 이민자들에게서 이끌어 내고자 한다. 또한 국적 취득의 유무와 문화적, 인종적, 민족적 기원과 차이를 막론하고 시행되는 각종 사회복지정책(주거, 교육, 의료, 사회보조 등) 서비스에의 접근에도 프랑스인과 동일하고 동등한 권리를 외국인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이것이 프랑스’라는 긍정적 인식을 확보함은 물론 문화와 정체성 전이를 용이하게 하는 주된 역할을 다문화 정책을 통해 실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의 균등과 사회적 권리의 공유와 향유 뒤에는 프랑스 공동체집단의 유지에 대한 동일한 의무가 요구된다. 특히 국적이나 영주권의 취득은 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소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실현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케 하는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행되어야 한다. 1989년 출범한 ‘사회통합최고위원회(Haut Conseil à l’Intégration)’가 내놓은 프랑스 통합모델의 기본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명시되었다.

    이 같은 프랑스의 특징적인 동화주의 통합정책은 정치적 시민공동체의 원칙, 즉 공화주의에서 태동한다.

    3.2.3. 공화주의 가치와 이민자 정체성

    르낭의 민족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프랑스의 동화주의라는 이민자 국민통합 정책의 기본 원리가 되어 이민자 담론이나 정치에 있어서도 이민자의 동화 정도를 통해 의심의 기준을 삼는 잣대가 되었다. 르낭의 텍스트는 프랑스식 민족주의를 생산해 왔으며, 프랑스 민족을 정의하고 유지시키는 최고의 상징성을 갖는 유산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동의는 프랑스 이민자들이 최소한 가져야 할 의무로 남는다.

    유입되는 이들은 국적과 인종, 종교적 특성의 정도에도 상관없이 프랑스의 공화주의 전통에 따라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프랑스의 사회 관습과 국가의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 유입된 이민자의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은 북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무슬림 이민자와, 이들의 언어와 관습, 전통, 종교를 계승하고 있는 후속 세대들이다.

    유럽인들이 개인 중심적 평등주의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이루는데 반해 무슬림 이민자들은 가족중심의 부계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언어, 문화적 전통의 승계와 유지를 뜻한다. 프랑스 문화에 융합되지 않고 전수되고 유지된 이슬람 문화의 프랑스 내 등장과 확산은 프랑스의 가치와 원칙이라는 공화주의에 중대한 위협적 요소가 되었다. 히잡 사건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이처럼 공화국의 가치와 이슬람 정체성의 확산으로 인한 문화적 충돌을 의미한다. 히잡을 반대하는 프랑스인들에게 히잡은 무슬림 공동체 출현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히잡 허용에 대한 무슬림의 요구는 프랑스 사회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인식되었다.

    극우정당인 민족전선(Front National)이 주장하는 반이민정책의 배경이 되는 이념에는 상이한 두 정체성의 인위적인 융합은 이들 사이를 구분 짓는 유일한 특성이 사라지며, 이와 같은 방식의 인종 간의 융합 혹은 혼합은 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종언을 의미 한다(박단 2005: 107-110)는 논리가 뒷받침된다. 프랑스의 민족 정체성은 국가를 위한 희생의 피와 땅과 종교와 같은 공통된 속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온 신앙과 가치에 차이가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프랑스 문화에 흡수될 수 없고, 흡수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민족전선의 주장처럼 문화적 차이를 절대화하는 것에 근거를 두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racism without race)’ 또는 문화적 인종주의는 무슬림의 존재 자체가 프랑스 문화와 전통의 보전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는 이슬람혐오주의(islamophobia)를 생산하였다.

    2005년의 이민자 소요사태는 강력한 동화주의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였다. 이민자, 특히 이슬람계 이민자에 대한 문화적 권리의 제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제적 기회의 차단, 혐오와 차별, 배제라는 사회현상의 확산에 저항하는 이민 후속세대들의 문화투쟁, 인권요구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소요사태 후 개정된 2006년 이민법은 공화국의 가치 유지와 동화의 원칙을 여전히 지켜나간다는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의 방향을 재확인해준 계기가 되었다.

       3.3. 영국의 자유방임적 다문화주의

    영국의 이주민 통합의 원칙은 자유방임에 의거한 다문화주의 정책에 근거를 둔다. 통합의 방향은 상호적인 관용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소수집단의 고유성과 문화적 이질성을 존중하는 영국식 고유의 다문화주의 정책의 기틀을 이루어 나갔다. 자유방임적 이주 허용과 다문화 정책의 수용은 ‘신영연방(New English Commonwealth)’의 구축에서 비롯되었다.

    3.3.1. 선의적인 방관과 문화적 균등화

    ‘선의적인 방관(benign neglect)’에 의한 이주의 자유방임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영연방을 강화하여 영국의 정치적 영향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영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다. 당시 영국과 신영연방 국가와의 관계는 ‘자유, 자결, 인종적 평등’의 이념적 기초 위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영국의 입장에서는 신영연방체제 안으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가입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연방 국민들의 영국이주를 방관하였다. 이는 외국인이 영국이주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미 선(先) 조치로 신영연방 수립에 앞서 1948년 제정된 ‘영국국적법(British Nationality Act of 1948)’은 식민지 국가들의 자유로운 영국이주와 고용을 허용하고 있었으며 영국이주를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영국이 자유로운 이주를 허용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구영연방국에서의 이주 경험과 식민지 초기부터 시작되어 온 이주민 수용의 경험은 이민자들이 영국의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해 줄 것이라는 영국인의 국민적 신뢰와 느슨한 인식을 조장하였다. 또한 영국의 식민지역의 간접통치 방식에 의한 정치적 인식, 즉 식민지국의 자치를 인정하고 문화적 전통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던 통치방식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영국정계가 초당파적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인을 더 나은 아프리카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 더 좋은 통치방식’이라는 영제국의 간접통치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정희라 2007: 6)이란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 가운데 다문화 정책의 수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로이 젠킨스(Roy Jenkins)였다. 1966년도 내무부장관이던 젠킨스는 다음과 같이 이민자 통합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통합(integration)은 다소 명확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나는 통합이라는 것이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특성과 문화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영국이 모두가 공동의 틀 안에서 전형적인 영국인의 모습으로 복사되어져 나오는 용광로(melting pot) 국가가 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통합이란 동화가 아닌 상호간의 관용이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동반되는 동등한 기회라고 정의한다.13)

    위와 같이 젠킨스는 통합을 “획일적인 균등화과정이 아닌 상호관용의 분위기 속에서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에 의해 배가되는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과 균등화 과정”이라 정의하였다.14) 즉 차별을 방지하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며, 다인종, 다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며 주류사회와의 우호적 관계의 증진이라는 필연성을 제안한 것이다.

    존 렉스(John Rex) 또한 “다문화사회에서 개인들은 동등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들을 가지는 한편 분리된 인종공동체의 관습에 기초한 종교와 가족 관련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적 권리들을 간직할 수 있다”15)라는 사적영역에서의 다문화주의와 함께 공적 영역에서의 기회의 평등을 제시하였다. 젠킨스와 렉스의 통합에 관한 이러한 정의와 제안은 이민자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영국에서의 다문화 정책의 이론적 배경과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3.3.2. 좋은 인종관계와 다문화주의 정책

    영국의 이주민 통합에 관한 공공철학은 문화․인종적 다양성은 물론이고, 종교의 다양성까지 널리 수용하고 있다. 이주민 통합은 단선적인 동화의 과정이 아니라, 상호적인 관용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수반한 균등의 기회로 간주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를 위해 초기 영국 다문화주의 정책은 인종 간 차별을 방지하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며 다문화 인종 사이 또는 주류사회와 소수 인종 사회의 우호적 관계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원칙을 내세웠다.

    영국의 문화적 균등화 정책과 다문화주의 정책의 기조가 되는 것은 1976년 공표된 ‘인종관련법(The Race Relations Act)’이다. 가장 포괄적이며 반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관용과 다양성, 다원주의를 통해 평화로운 공존을 의도하였던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 법안으로 인해 영국은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과 ‘좋은 인종관계(good race relations)’의 증진을 통한 통합의 촉진이라는 다문화정책의 공식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다양한 다문화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인종평등위원회(the Commission of racial Equality: CRE)’라는 독립적이고 제도화된 기구에 의해 형성되고 추진되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교육, 주택, 고용등에 있어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들을 지속적으로 공표되었다.

    특히 공립학교 내에서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정책 보고서인 ‘Education for All’은 상호적 관용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장소, 연령, 인종의 구분에 상관없이 모든 학교에 다문화주의 교육시스템을 이루어 나가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보고서는 영국을 다문화 사회라고 규정하고 완전 동화나 분리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동시에 소수민족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학교 내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도록 권고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교육에 있어 다양한 종파의 인정은 물론 공립학교 내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급식마련, 히잡이나 터번 착용의 자유, 기도소 설치가 시행되는 등 교육에 의한 다문화주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었다(정희라 2007: 0-11).

    또한 정부는 영국국교회라는 공식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이슬람 사원의 건립, 이슬람의 종교적 희생이나 제식을 위한 장소 제공 등 이질적인 관습을 허용하는 종교적 관용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15-30개의 이슬람학교들이 사(私)기금으로 건립되었고, 1998년에는 2개의 이슬람 학교에, 2006년도에는 7개의 이슬람 학교 건립에 노동당 정부가 기금을 내는 탈종교적 성향의 다문화정책이 실현되었다(김복래 2009: 223). 이는 이주민의 문화 정체성과 가치는 주류사회의 가치와 관습 및 전통까지도 수직적인 방식으로 일방 흡수되어 주류 공동체 사회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동화정책과는 분명 차이를 가진다. ‘좋은 인종관계’의 증진이라는 다문화주의적 감성과 가치에 중점을 둔 영국 정부의 배려는 영국 특유의 이주민 통합 방식이라 할 수 있다.

    3.3.3. 다문화주의 정책의 한계와 영국 시민성의 요구

    좋은 인종관계를 바탕으로 선의의 다문화정책 실현이라는 영국 정부의 이상적 목표는 이민자들의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의 강화, 이들과 연관된 각종 테러 사건 등으로 정책적 변화와 전환을 가져왔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차이라는 좁힐 수 없는 간격과 삶의 가치와 이념이 다른 인종과는 ‘공존할 수 없음’을 폭넓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불안한 공존과 특히 무슬림 이민자들의 존재는 『런더니스탄(Londonistan)』16)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젠킨스조차도 “다문화 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60년대의 가정이 불가능한 것임이 이제 판명되었고, 1950년대 무슬림 공동체 형성을 허용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해야 했으며 이민정책과 다문화주의 통합정책을 후회한다”(정희라 2008: 172)라고까지 고백하였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결과가 이민자들의 ‘귀속에 관한 공통인식(a common sense of belonging)’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이민자들을 통합하여 영국사회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영국의 가치’나 ‘영국성’을 심어주는 길을 모색하게 되는 제도적 안배가 나타났다. 2006년 제정된 ‘이민, 망명, 국적법(Immigration, Asylim and Nationality Act 2006)’의 제정으로 불법이민과 망명신청을 규제하였고, 이민자 범죄, 테러리즘 전담 부서인 ‘국경 및 이민청(BIA: Border and Immigration Agency)’을 신설하였다.17) 영국국경청(UK Borders Agency)이 설립되어 이민과 관련된 업무에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였다.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심사나 관리시스템을 강화, 이들에 대한 거주지역 제한, 사회보장 혜택 감소, 불법이민자 관련 업체나 개인에 대한 엄중한 벌금 부과 등이 시행되었다. 2008년에는 이민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정책 중의 하나인 ‘이민심사에서의 점수제(The Points Based System: PBS)’18)도 도입하여 시행중에 있다.

    이민자는 영국사회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법의 지배, 국가와 역사적 유산에 대한 존경 등 시민적 권리의 존중과 영국의 가치들을 공유해야 함이 강조되었다. 히잡 금지와 부르카 금지에 대한 논란과 법안 추진에서 자유방임 이민국에서 철저한 이민규제 정책으로, 다문화주의 통합정책에서 동화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영국의 새로운 이민자 정책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6)키어런 앨런,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 삼인, 2010.  7)이 같은 독일 이민자정책의 기본 틀은 제국 말기의 역사적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19세기 말 독일의 산업화의 가속화와 노동력 부족은 폴란드인을 농업노동자나 광산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러나 독일지역의 폴란드화를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입국절차를 철저하게 통제하였으며, 장기체류를 막기 위해 겨울철에는 취업을 금지시켰고, 노동계약이 끝나면 곧바로 귀국시켰다. 독일은 이민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이 독일 사회에 통합되는 것을 규제하였고 지금까지도 이런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이철용 2007: 323; 박명선 2007).  8)냉전체제 종식과 독일의 통일 후 유입된 독일의 후손들은 ‘Aussiedler’라 불리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약 150만 명 정도가 독일에 정착했다. 무엇보다도 독일 정부의 재이주민정책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어서 이들은 곧바로 독일국적 취득과 함께 독일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와 사회보장혜택을 누렸다(http://de.wikipedia.org/wiki/Sp%C3%A4taussiedler).  9)2005년 독일의 새이민법 개정의 세부적인 내용은 2005년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 권영민이 발간한 『독일 생활법률 안내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http://www.koreaemb.de/down/Inhalt_Total.pdf).  10)외국인 통합교육과정에 대한 자료는 박채복의 논문(2007: 311-313) 참조.  11)제1조-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 있어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 사회적 배제는 공익을 근거로 할 때만 허용될 수 있다(Article premier-Les hommes naissent et demeurent libres et égaux en droits. Les distinctions sociales ne peuvent être fondées que sur l’utilité commune).  12)Virgine Gauiraudon, 2005; 박단 외(2009: 37-38)에서 재인용  13)Banton (B), Promoting Racial Harmo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71, 1985 ;정희라(2007: 6)에서 재인용.  14)Taguieff (Pierre André), “Les Multiculturalisme, ou le cheval de Troie de l’islamism”, 2008, http://www.bivouac-id.com/billets/le-ulticulturalismeou-le-cheval-de-troie-de-lislamisme-par-pierre-andre-taguieff/(검색일자2011년 3월 5일)  15)Rex (John), Race and Ethnicity. Milton keynes. Open university Press. p.119-121, 1986 ; 김용찬(2007: 148)에서 재인용.  16)Melanie (Phillips), Londonistan. Copyrighted Material; Ernst Hillebrand. 2006. “Atmosphère suffocante dans le Londonistan”. (http://referentiel.nouvelobs.com/file/594169.pdf.) 힐브랜드에 따르면 2006년 당시 영국에는 언제든지 행동에 옮길 준비가 되어있는 약 500명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검색일자 2011년 3월 10일).  17)http://www.legislation.gov.uk/ukpga/2006/13/pdfs/ukpga_20060013_en.pdf  18)PBS는 이민 신청자들을 5개 계층으로 분류하고 계층 별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면서 일정 점수 이상을 취득한 자에게 이민을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온대원(2009:250-)의 논문에는 PBS의 5층위에 대한 설명이 있다.

    4. 나오는 글

    18세기 이후 생겨나 근대화의 산물이라 볼 수 있는 민족 개념은 결국 이념체계 또는 세계관으로서의 민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구성되었다. 민족주의는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역사적 현실에서 필수적인 실천개념으로 작동하였고, 민족은 국가를 형성하는데 있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물론 이때 혈통과 언어, 문화, 관습의 일치, 과거 역사의 공유 등에 대한 강조는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되어 동일한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기제가 되었다. 이처럼 민족의 개념에는 정치적 또는 정서적으로 타민족, 타문화에 대한 분리와 차이를 가짐으로써 공동체 집단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있어서 유리한 일체적 단결과 통일성을 확보할 의도가 내포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형성과정과 근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 망명이나, 난민, 이주 노동자 등 타민족, 타인종의 유입은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나간다는 근대적 인식에 혼란을 가져왔다. 다문화․다인종 사회로의 진입은 국가가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나 존엄, 정체성에까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되었다.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이민을 받아들이는 전 세계의 이민 국가는 이민에 관한 법률이나 정책, 외국인의 사회통합정책의 수립에 있어 민족에 내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각각 반영하였고, 프랑스의 동화주의나 독일의 차별적 배제정책, 영국의 다문화 정책과 같은 세 가지 유형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였던가에 따른 차이에서 기인하였다.

    배제정책이나 동화주의, 다문화주의 모두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양성평등 등 보편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핵심적인 가치를 전제로 하면서 이주민들을 자국의 정치․경제․사회체제 내로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인종과 민족의 색채를 가리지 않고 공존을 내세운 영국의 다문화주의 사회통합정책이 제도적 틀안에서 성과를 거두며 가장 모범적이며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다문화를 인정하는 정책에 대한 지지는 영국 내부에 여전히 건재하지만, 영국성을 심어줄 수 있는 동화주의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동화주의적인 방향으로 일정부분 나아가고 있는 게 영국 이민자정책의 현실이다. 그런 반면 프랑스에서 동화주의는 문화적 인종주의라는 개념으로 사회 전반에 표출되어 무슬림 이민자와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결국 2005년 파리 방리유 소요사태와 같은 국가 위기적 상황을 맞음으로써 교육과 경제, 의료 등에서 이주민에 대한 실질적인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만 프랑스 사회로의 완전한 동화를 위한 기본 생활권에 대한 배려이지, 결코 영국과 동일한, 이질적인 문화를 공공의 영역에서 인정하는 다문화정책의 도입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히잡 문제라든지, 부르카 착용금지안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한 사회적 논의를 보면 오히려 프랑스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동화주의 정책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다. 독일의 경우, 민족의 폐쇄성에서 기인한 차별적 배제정책을 차츰 폐지하면서 다문화정책의 병용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이민법의 제정은 독일이 이민국임을 인정하면서 주어진 사회구조와 기반을 적극적으로 수용, 발전시킨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국가의 이민자 통합정책 또는 외국인 정책에 있어서 중요하고 공통적인 점은 이민자 사회통합의 갈등에 대한 논란과 논쟁의 여지가 있을 때마다 갈수록 동화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예처럼 다문화사회로 향한 정책의 전환 노력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는 동화주의로 회귀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동화정책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공동체주의의 형성에 대한 두려움과 테러에 대한 공포,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경제적 차원과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택이라 본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유럽국가의 외국인 통합정책의 전반적인 흐름에는 수용국가 나름의 사회적 전통과 각 국가의 민족에 대한 개념이 외국인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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