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미학이 현대건축에서 다중성의 개념형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L'Etude sur la conception de multiplicite dans l'architecture contemporaine par rapport a l’esthetique Deleuzie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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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Quand on voit les produits intellectuels d’une époque, on trouve que le processus de cette production est plutôt dû à l’interaction des divers domaines voisins qu’à leur propre motivation spécifique. Cette interaction s’applique aussi sur le domaine de l’architecture. Surtout la série des réflexions philosophiques de Deleuze vers la fin du 20ème siècle nous a enormèmement affecté , et stimulé dans le domaine de l’ architecture comtemporaine et a attribué enormèment à élargissement du champ et des discours sur l’architecture nouvelle. La philosophie esthètique deleuziennne qui touche divers domaines sans frontières, a rendu possible la création de nouvelles types de l’architecture dans le processus de l’expression de l’espace et la création de la forme, en stimulant imaginations de nombreux architectes. Sa symboise avec le progrès technologique a apporté l’apparition d’un aspect innovateur de l’architecture jamais vu avant. Ainsi, les diverses tentatives architecturales expérimentales ont debuté avec plusieurs formats libres atypique du passé.

    Cette étude a pour l’objectif de regarder les logiques de l’esthètique de la fin du 20ème siècle a travers les ouvrages de Deleuze et analyser l’architecture contemporaine afin de comprendre son contexte de création, et la méthode de son application. C’est à dire que nous voulons voir fondamentalement l’architecture comme produit synthètique de la socièté, et les processus des échanges entre les différents domaines et leurs influences mutuelles sur des intérèts communs, les influences qui jouent le rôle décisif dans la production des nouvelle types. Ainsi, en éclaircissant sur les relations référentielles mutuelles, nous voulons offrir la possibilité du déploiement des aspects créatifs chez les architectes et ainsi son expansion vu la demande de la diversité.

    La véritable importance de notre travail sera donc la libération de l'esprit architectral à travers une approche multiple.

  • KEYWORD

    Gilles Deleuze , Multiplicite , la Conception Architecturale , Rem Koolhas , Kazuyo Sejima , Bernard Tschumi , Herzog & de Meuron

  • 1. 서론

       1.1. 연구의 목적

    한 시대의 지적 산물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의 생성과정에서 특정 분야의 독자적인 동기 촉발보다는 주변의 다양한 분야들의 상호작용에 기인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1) 이와 같은 경향은 건축의 영역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특히 20세기 후반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들뢰즈의 일련의 철학적 성찰은 세기말 현대건축의 다양한 지적 활동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어, 새로운 건축과 그 담론의 지평을 넓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분야를 넘나들며 역설하는 들뢰즈의 미학적 개념은 많은 건축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공간표현과 형태생성의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계열의 건축유형을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이는 급기야 기술적 진보라는 훌륭한 매개체와 맞물려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보다 혁신적인 모습의 건축물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상의 변화가 건축의 학문 영역에서 ‘진정한 진보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우리는 망설임 없이 긍정할 수는 없다하여도, 확실한 것은 이를 계기로 지난날의 전형적인 틀로부터 벗어나 그 형식에 있어서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실험적인 건축적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20세기 후반의 들뢰즈의 저서들을 통해서 당시의 미학적 논점을 고찰해보고 그와 동시대에 이루어진 건축적 산물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현대건축의 개념형성 배경과 적용방법을 이해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근원적으로 사회의 총체적 산물로서 건축을 바라보고자 하며, 이는 영역을 달리하는 분야들끼리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상호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유형의 결과물을 생산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호 참조적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특히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는 이 시대의 건축가들에게 창의적 형식과 개념 확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들뢰즈의 문헌 고찰과 현대건축의 자료 분석을 통하여 현대사회의 패러다임과 건축적 추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합리적 근대주의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패러다임, 즉 들뢰즈의 다중성에 관한 시공간 개념의 출현 배경과 그 이론적 당위성에 대해 알아 본다.

    둘째, 들뢰즈의 주요 미학적 관점들을 세분화된 범주 하에서 이야기하며, 이와 부합하여 동시대의 현대건축 영역에서 추상적이거나 관념의 단계를 넘어서 구체적인 생산적 과정으로의 적용을 통해 만들어진 건축의 실례들을 살펴본다.

    셋째, 다양한 외부 영역과의 상호 영향을 통해 새로운 건축개념 형성과 구현을 위한 ‘전위’2)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1)이는 미쉘 푸코가 이야기하는 ‘l'épistémè’와 같은 개념으로서, 이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사회·시대의) 학문적 지식의 총체, 인식체계를 의미한다.  2)사전적 의미로 ‘전위’(예술)는 종래의 (예술)경향에 대항해서 여러 형식의 혁신을 목표로 한 (예술)을 의미하나, 여기에서 저자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이나 형식’으로 한계를 지음.

    2.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 리좀

       2.1.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3)로부터 기초한 근대건축에서의 핵심적 논제는 중심의 해체와 그 주변의 확장, 보편적 공간, 기능적 영역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20세기 중반까지의 근대적 도시 및 건축적 사고는 기능적 합리성을 구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역으로 사회적 근대성의 개념을 명료하게 설명함에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 이와 같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논제4)는 근대화 과정 이래 수세기동안 사회의 각 분야에서 매우 유용하게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도 그 영향력은 막대하고 지배적이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960년대의 탈근대주의자들은 이러한 ‘나무’를 모델로 하는 사고에 한계를 인식하며 새로운 형식의 논리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건축과 도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제안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그는 나무의 쉐마를 따르는 여러 근대도시의 예를 들며, 생동감 있는 현실에 보다 적용가능한 도시의 새로운 시스템으로서의 준격자(le semi-treillis)를5) 제안하였다.(그림 1) 그에 따르면, “20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나무는 최대한 19개의 부분집합을 지니는 반면, 동일한 수인 20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준격자는 백만 개 이상의 다양한 부분집합을 지닌다. 이러한 엄청난 양의 다양성은 나무가 지니는 구조적 단순성에 대비되는 준격자의 확연한 구조적 복잡성의 지표이다. 이는 우리의 도시계획의 개념을 의심스레 만들어내는 나무의 구조적 특징, 즉 복잡성의 결여이다.”6)라고 이야기하며 진일보한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각각의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고려를 통해 보다 많은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가설은 그 또한 한계를 드러낸다. 즉, 오늘날의 사회적 현상 속에 내재된 모순과 갈등적 요소를 포괄하여 본질적으로 데카르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차별성을 보여주기에는 그 구조적 모순을 보이고 있다. 그의 관점은 여전히 엄격한 기능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존의 합리주의적 패러다임 하에서 단일 인과관계를(mono-causal) 통해 전체성(la totalité)으로 통합하려는 나무의 구조, 즉 하부로부터 정상을 향한 구조적 발상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이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서 근원적인 치유를 위한 새로운 제안이라기보다는 데카르트 이래의 인문주의 시대의 말미에서 바라본 보완적 대안이며, 변형된 합리주의적 방법일 뿐이다.

       2.2. 시·공간의 다중성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정신성은 단순하고 명료한 사고의 구조로서 ‘나무(l’arbre)’를 그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상은 그와 같이 항상 예측 가능한 메커니즘 하에서만 작동된다기보다는, 보다 더 복잡하고 자율적이어서 이와 같은 고정적인 구조는 우리시대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인 듯하다. 따라서 우리에겐 하나에서 직접 셋이 되거나 넷, 다섯, 또는 무한으로 확장 가능한 결속된 관계의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에 들뢰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델로서 ‘리좀(le rhizome)’을 제시하였다.7) 즉, 데카르트의 가설은 세분화된 최소치(minima)를 선형적인 사슬에 늘어놓으면서 분석적인 방정식을 채택하는 반면, 들뢰즈의 리좀은 지난 수세기를 지배했던 합리주의의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다원론=일원론>이라는 개념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한다. 빠른 사회적 변이와 다중성(la multiplicité)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는 현대적 국면에서, 들뢰즈가 제안하는 리좀의 원칙들은 오늘날의 사회적 정신성을 가늠하는 척도임과 동시에 나아가서 도시와 건축적 현상을 설명하기에 매우 일관성 있는 논리구조일 수 있겠다. 이에 리좀에 관한 주요 내용과 건축·도시의 문제를 연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연결접속과 이질성의 원칙(principes de connexion et d'heterogeneite)

    “리좀에서는 그 어떤 지점이든 또 다른 지점과 연결되어질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이는 하나의 점, 하나의 질서를 고정시키는 나무나 뿌리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 나무에서는 언제나 계통학적인 그 무언가가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다. 반대로, 리좀의 방법은 또 다른 차원이나 다른 영역의 범위에서 벗어나야지만 그 언어를 분석해낼 수 있다.“8)

    이 원칙에 따르면, 구조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은 점에서 서로 교차하는 라인들로 구성된 도시의 시스템을 연상할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활동들이나 다양한 속도와 결합된 일련의 선들에는 잠재된 에너지가 집중되며, 한편 그 분절점들은 반드시 그 선들의 구체화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종의 <프로그램변형>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으며, 거기에는 매우 다양하고 잡다한 요소들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것들, 최소한의 유사성도 지니지 않은 양식들, 그리고 그 어떤 공통의 관심사도 지니지 않은 기능이나 카테고리의 것들 모두는 또 다른 현대성(la modernité)-완전한 이질성-을 위한 조작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다중성의 원칙 (principe de multiplicite)

    “여기에는 대상(l'objet) 안에서 주축역할을 하는 통일성도 없고 주체(le sujet) 안에서 나뉘는 통일성도 없다. 대상 안에서 없어지거나 주체 안으로 <회귀하는> 통일성도 없다. 다중성에는 주체도 객체도 없다. 다중성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결정, 크기, 차원들뿐이며, 그것들은 다중체의 본성이 변할 때에만 증가할 수 있다.“ ” 구조, 나무, 뿌리에서와는 달리 리좀에는 점이나 위치가 없다. 선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수는 어떤 원소들이 특정한 차원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따라 원소들을 측정하는 보편적 개념이기를 멈추고 해당되는 그 차원에 따라 변하는 하나의 다중체가 되었다. 우리에게 측정단위들은 없다. 측정의 다중체들 또는 측정의 변이만이 있을 뿐이다.”9)

    즉, 우리 도시의 지형은 점과 중심 또는 위치들이 아닌 선이나 벡터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각각의 선들은 속도와 방향, 그리고 다양한 활동 등의 요인들에 따라 고유한 성질이 결정된다. 도시는 더 이상 방향이나 단위들의 변수 속에서 공간적 참조를 하지 않으며, 각 요소와 위치들 사이에서의 특정 방정식에 따른 체계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건축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조화로운 통일성과 보편적 총체를 위해 현실적 제약들을 합성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다중적 요소들이 하나의 단일 목적 하에 조화되기보다는 서로서로가 독립적으로 작용하여 병렬되거나 겹쳐진다. 시스템내에는 더 이상 상·하부의 관계나 내·외부의 구조로 나뉘는 위계질서를 지향하지 않는다.

    3) 탈기표적 단절의 원칙(principe de rupture asignifiante)

    “이것은 구조들을 분리시키거나 하나의 구조를 가로지르는, 그래서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닌 절단에 반대한다. 하나의 리좀은 어떤 곳에서든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이나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된다.(...) 모든 리좀은 분할선을 포함하는데, 이 선들에 따라 리좀은 지층화되고 영토화되고, 조직되고 의미화되고 그 어딘가에 귀속된다. 또한 모든 리좀은 탈영토화의 선들을 포함하는데, 이를 따라 리좀은 끊임없이 도주한다. 분할선들이 하나의 도주선 속에서 폭발할 때마다 리좀 안에는 단절이 생기지만 도주선은 리좀의 일부이다. 분할선과 도주선은 끊임없이 서로를 참조한다.“10)

    이 단자론적인(monadologique) 철학에 입각하면, 우리 도시의 공간개념은 그 경계가 기표로부터 벗어날 때 무한으로 확장하기 위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영역은 회전하는 중심축을 따라 규정되기 보다는 일괄로 둘러쳐진 불확정적인 것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여기에서 영역화의 과정은, 인공적인 경계 지움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불규칙한 진화와 유연성을 내포하며, 벡터의 힘을 따르면서 적응하여 자유로이 변형된다. 이러한 공간성은 공간을 일시적인 성격으로 만들어서 정적이지 않고 항상 역동적이게 한다.

    4) 지도화와 전사의 원칙(principes de cartographie et decalcomanie)

    “리좀은 그 어떤 구조적인 모델이나 발생학적인 모델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심층구조와 같은 발생학적 계보와는 거리가 멀다.” “ 모든 나무의 논리는 복제와 재생산의 논리이다.(...) 리좀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복제가 아니라 지도.(...) 지도는 열려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들 속에서 연결접속이 가능하며, 분해될 수 있고, 뒤집을 수 있으며, 끝없이 변형될 수 있다..(...) 지도는 다양한 입구를 가지는 반면, 복제는 항상 <동질한 것>으로 회귀한다.”11)

    르네상스 이후 건축의 역사는 선행된 것들에 대한 재현이나 모사의 역사였다.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근대주의자들은 비참조적인 객관성을 얻기 위해 보편적 공간을 내세워 기존의 구현 방식을 변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축적 형식을 본질적인 순수함으로 현실에서 추상화시킴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조건들(기술, 기능, 등)을 다시 참조하기에 이르렀다. 즉, 참조의 대상은 다르나 그 대상의 논리적 귀결은 같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위계적인 체계를 지닌 나무나 뿌리의 재현적 모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이분법적 논리를 따르는 생산의 과정을 따른다. 그리하여, 이 네 번째의 원칙에서 우리는 실제의 과정에서의 복제나 언어학적 추상기법을 통한 법제화가 아닌, 다양한 통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이한 규칙들과 이질적인 부분들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운동감 있는 선들, 여러 활동들, 그리고 밀도를 나타는 현상들, 이 모든 것은 코드화되거나 결정론적이지 아니하며, 언제나 변형이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반응하며 자유로이 병렬된다.

    이상으로 우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들뢰즈의 미학적 관점을 살펴보았으며, 그의 원칙들에 따라 건축·도시를 바라볼 때 다중적 사고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였다. 시·공간의 다중성, 이는 1+1=2와 같은 인과관계로 형성되지 않으며, 역동적인 관계성들의 결합으로써 연속적 성장으로 무한에까지 도달하며, 형식에서의 다양성과 내용에 있어서의 거대한 복잡성을 만들어 낸다. 즉, 이는 ‘존재(l’existence)‘의 미학이라기보다는 ’관계(la relation)’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3)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 Editions Sociales, 1983. 이 저서에서 데카르트는 사고 모델의 이미지로서 ‘나무’를 제시하며,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인과관계로 이어진 단순 명쾌한 선형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합리적(혹은 이성적) 사고의 과학적 방법론을 이야기 하였다.  4)Ibid. pp.100-101. 이러한 합리주의적 문제해결을 위한 4가지 규범을 살펴보면, ①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한 것들만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며, ②비교적 해결이 용이하도록 세분화된 작은 문제로 분류하며, ③이들을 인식하기에 쉽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점차 복합적인 것으로 순서대로 조정하고, ④최종적으로 빠뜨림 없이 전체적인 열거와 보편적 검토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긴 이성의 사슬을 통해, 원래의 목표 하에 각종 제기된 문제들을 취합하고 합성하여 최종의 해결을 도모한다.  5)Christoper Alexander, Une ville n'est pas un arbre, AMC, N° 161. 1967 여기에서 그는 말한다. “(...) cet arbre, et l'idée d'une hiérarchie des centres urbains (qui s'y apparente) n'eclairent guère les relations entre l'art et la vie urbaine. Elles sont nées simplement de la fixation, nourrie par toutes, les personnes intellectuellement simples, de mettre dans le même panier les choses qui ont le même nom.” Par contre, ce semi-treillis est “la structure d'une usine complexe: c'est la structure des choses vivantes, des grands tableaux, des grandes symphonies.”  6)Ibid.  7)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 Mille Plateaux, Les Editions de Miunit, 1980, pp.9-37  8)Ibid. pp.13-14  9)Ibid. pp.14-15  10)Ibid. pp.16  11)Ibid. pp.19-20

    3. 들뢰즈와 생성의 건축

       3.1. 매끈한 것과 홈패인 것

    매끈한 공간(l'espace lisse)과 홈패인 공간(l'espace strié)은 그 속성에 있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두 공간은 사실 서로 섞인 상태로만 존재함을 상기해야 한다. 매끈한 공간은 끝없이 홈패인 공간으로 표출되고 그곳을 가로지르며, 홈패인 공간은 지속적으로 매끈한 공간으로 반전되고 되돌려 보내진다.”12) 이에 이들 두 가지의 공간들의 작동방식의 차이나 서로간의 소통의 방법, 그리고 상호 운동에 의해 비대칭적인 대립이 발생하는 이유 등 다양한 특성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래 이러한 매끈한 공간과 홈패인 공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음악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이다. 그는 이 두 공간의 근원적인 차이를 이야기하며, 그들 사이의 비대칭적이며 상호 호환적인 관계와 복잡성을 정의하였고,13) 이 개념을 그의 개별적인 작품 중에 최고라 할 수 있는 ‘pli selon pli’(1957-1962)에 적용하였다. 음악적 공간에서 불레즈가 이 두 가지 공간에 대해서 정의하듯이 들뢰즈는 현상적 공간에서 이들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 마치 그 어떤 직물을 구성하는 씨실(나뉘고 단절된 홈패인 공간)과 날실(무한의 연속을 지닌 매끈한 공간)처럼, 이들은 서로 긴밀한 짜임새를 형성하며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데(그림 2), 이는 건축가들이 공간을 조직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취하는 개념들 중에서 분절(l'articulation), 혹은 연속성(la continuité)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20세기말 새로운 이미지의 구축이나 실험적인 공간구성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건축에 있어서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개념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던 사례로서 렘 쿨하스의 파리 쥐시대학 도서관 현상설계안(1992년)을 살펴보기로 하자. 쥐시대학은 1968년 5월의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캠퍼스를 되살리고자 두 개의 도서관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그림 3과 같이 격자형의 배치형식으로 반복적인 안뜰을 지닌 원안에 새로운 코어를 삽입하고자했던 본 계획안은 일차적 목표인 기능적 개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14)

    이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삼차원의 네트워크이다. 무한한 연결이 모든 동선을 흡수하여 그 안에 고정되거나 머물고자하는 것들을 심리적으로 제거하려하고, 바닥은 단순히 쌓아올리기보다는 각 층의 단면이 아래로부터 위까지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각 층의 평면은 기존의 건축물에서 대부분 그래왔던 층간의 단절을 피하고 모든 프로그램의 요소들을 노출하여 연속시켜, 방문객들로 하여금 그 사이를 산책하듯 책과 정보의 세계를 탐색하도록 한다. 규모와 다양성으로 인해 수직적으로 연속된 평면은 거의 도로와 같은 효과를 내는데, 그렇게 형성된 실내공간에는 도시적 프로그램 요소인 광장, 공원, 기념비적인 계단, 카페, 상점 등이 배열되어 통로와 공공영역에는 여느 도시에서와 같은 연속성을 만든다. 이렇게 단면구조에서의 다양한 공간은 건축적 형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각종 사건들을 개념적 레벨에서 ‘접고, 펴고, 다시 접는’- Boulez의 'pli selon pli', 혹은 Deleuze의 ‘le Pli’와 같은15) -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

       3.2. 반복과 차이

    반복은 차이를 배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생산해내는 좋은 도구라고 들뢰즈는 이야기한다.16) 반복은 숭고한 표현으로서 특별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다이내믹한 리듬과 텍스츄어를 만들어 내어 풍부한 영역을 확보하며, 또한 차별성을 만듦에 있어서 구상적인 재현(la représentation figurative)이나 objet-type의 시스템으로써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작용 - 비재현적 차이로써(la différence nonreprésentative) 무한의 공간과 영역을 구축한다(그림 4). 이는 시간이나 공간속에서 끊임없이 작용하여 마치 아프리카 tam-tam의 리듬처럼 원초적 힘을 발휘하며 차별화된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속성에서 보듯이 반복과 그에 의한 차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산업사회의 불안정하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대응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무한한 운동성을 가진 자유를 표방하며, 하나가 곧 다수(la multiplicité)로 생성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상기한 내용의 반복과 차이를 건축적으로 적용한 사례로서, Parc de La Villette (1982. Bernard Tschumi) 계획은 훌륭한 제안을 하고 있다. 라빌레트 공원은 파리의 순환도로의 옆, 북동쪽 시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관문의 사이에 위치한다. 이는 원래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두 가지의 주요 목표-하나는 파리 중심부의 기능을 해체하여 새로운 활동적 공간으로 확장하여 국제적 수준의 시설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도시계획상의 목표, 또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 등 첨단의 것과 전통적 문화 가치들이 조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하는 문화적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이 공원의 계획에서 건축가에게는 공원에 대한 현대적 정의가 필요했는데, 두 개의 거대한 옛 건물이 들어찬 오래된 산업지역의 대지에서, 그리고 수십만의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이질적인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전체를 관장하는 테마로서 일정 법칙을 내포하는 구조-그리드를 제안하였다.17)

    폴리는 전체 대지를 가로지르는 120m간격의 그리드 상의 점들을 따라서 놓여있는데, 10m×10m×10m의 크기와 3개 층으로 이루어진 입방체를 기본으로 한다. 이와 같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붉은 점들은 중성적 성격에서 시작하지만, 위치와 프로그램의 특수한 요구에 따라서 변형되어 크고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며, 공원의 모든 프로그램에 의해 생겨난 사건과 활동성들의 공통분모(le dénominateur commun)가 된다. 폴리는 엄격한 기준좌표로서 프로그램과 형태를 집결시키며, 전통적 의미의 모뉴먼트를 대체하고, 새로운 시대의 다양성을 담보한 문화콘텐츠의 참조점임과 동시에 형식적 시스템이다.

    라빌레트 공원 폴리에서의 엄격한 반복과 미묘한 차이는 공원의 명확한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3.3. 중심의 해체

    지속적인 변화와 예기치 못한 다수의 변수들로 가득 찬 현대사회는 점차 고정된 관점으로서의 중심과 주변, 혹은 명확한 위계질서 체계 하에서 공간을 한정하려하지 않는다. 즉, 중심성에 대한 논의는 이제 그 입지와 기능에 있어 그 중요성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부분적인 중심들, 혹은 불규칙적이고 뒤얽힌 다수의 중심들이 지속적인 혼돈(le chaos)속에서 존재하며, 이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교류하며, 그들 서로의 사이에서는 무수한 사건들이 발생하며 다양한 관계들이 만들어진다(그림 6). 중심성이나 대칭성에 의한 명료한 위계적 시스템은 사라지고, 서로 대등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지닌 반복적 속성들이 전체주의적 굴레를 해방시키고 무한한 영역에 리드미컬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비중심, 탈중심, 다중심적 공간에 대한 논의는, 사실 들뢰즈의 고유한 개념이라기보다는 1960년대 말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일반화된 견해에서 출발하며,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이기도하다.18) 건축에 있어서도 이러한 논지는 예외가 아닌데, 균질함과 보편성을 표방하는 근대적 공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포스트모던 건축공간은 중심성을 탈피하려하며 다원적이며 해체적이다.

    이의 한 예로서 일본건축가 카즈요 세지마(Kazuyo Sejima, SANAA)가 설계한 ‘De Kunstlinie’, Almere를 살펴보자. 이 건물은 암스테르담 동쪽에 OMA가 총괄하여 마스터 플랜을 하였던 신도시인 알메르의 호숫가에 위치하는데, 프로페셔널 예술가와 아마추어들의 연습공간을 하나의 볼륨 안에 집적한 지역문화센터이다.19) 여기에서는 세 가지의 주요 이슈들이 다루어지는데, 그 첫째가 위계 없는 평면계획이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각각의 고유한 단위공간인 방으로 대체되어 하나의 단일평면상에 펼쳐져 배치되었다. 이 모든 공간은 대등한 위상에서 다루어지며, 방들에 독립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동선체계는 호수가라는 입지조건에서 각 공간으로부터 물가에 쉽게 접근시키며, 마치 미로와 같이 매우 다양한 공간을 제공한다. 건물의 중심부에는 외곽과는 차별화된 중정이 위치하며 밀도의 차이를 만들어내어 전체 사각형의 거대한 성 속에서의 크고 작은 장소적 특징을 만들고 있다. 또한 건축가는 공간을 구축함에 있어서, 구조와 칸막이벽을 일체화시켜 개별 단위공간의 독립성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De Kunstlinie에는 동질한 방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단순한 시스템 속에서 공간의 다중성(la multiplicité)이 펼쳐진다.

       3.4. 우연성, 프로그램의 불확정성

    우연성은 구조화(la structuration)를 완전히 파괴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무한의 공간 속으로 열려있으며 규제가 없는 창조적 기능을 발휘하여 불확정성의 잠재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속성에 따른다면, 예술가들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그의 의도를 결정지으려는 근원적인 법칙만 세울 뿐이며,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확정적인 제안을 하지 않음이 적절할 것이다. 즉, 관찰자나 사용자로 하여금 안정적인 프로그램에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발적 이미지에 의한 독자적인 방법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택권을 갖도록 함이다(그림 8).

    이러한 사고는 건축가들에게도 계획의 과정에서는 예견하지 못했던 요소들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항상 활기 있고 자유로운 자생적 공간을 생성해내며, 확정적인 공간이 지닌 부동의 이상보다는 엔트로피가 축적된 과정으로서의 공간적 역동성을 추구한다. 시스템을 총괄하는 형식은 더 이상 기계적이고 선형적인 통제의 법칙을 따른 산물이 아니라, 일단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는 진화적 산물이라 하겠다.20)

    지난 세기말의 건축적 성취 중에서 하드웨어를 생산하기 위한 개념적 진보의 이면에 프로그램이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은 괄목할 만하다. 즉, 양적 팽창에 치중하여 물리적 대상으로서 건축을 이해하려던 차원으로부터 벗어나, 형태와 기능의 분리 해체, 운용체계와 프로그램의 변환 등, 시간적 변이에 따른 적용을 고려한 잠재적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우리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게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Parc de La Villette 현상설계에서 최종후보중의 하나로 지명되었던 OMA의 계획안(1982)은 우리에게 좋은 예시를 보여준다. 건축가는 이 광활한 대지를 다룸에 있어 ‘디자인’을 한다기보다는 이를 운용하기 위한 프로그램 ‘전략’으로서, 건축적 특수성과 프로그램의 불확정성을 결합하는 방식-대지 전체를 지배하는 다섯 개의 켜(les cinq couches superposées)-을 제시하였다.21)

    첫 번째는, 대지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50m의 폭(이는 또 다시 5, 10, 20, 또는 40m로 뉘어진)으로 이루어진 평행의 밴드들로서, 테마 정원, 놀이 공간, 덮힌 정원 등으로 구성 되는데, 이는 많은 수의 프로그램 요소들 사이의 경계를 가장 길게 하여, 각 밴드간의 투과성을 높여서 프로그램 변이 가능성을 높인다. 두 번째는, 점적인 그리드(색종이 조각 같은)로서 키오스크, 일부의 놀이터, 매점, 간이식당, 피크닉 장소, 등 잘게 분쇄된 프로그램들이 그 어떤 수학적 방식에 따라 전체 대지에 분산 흩뿌려지게며, 세 번째는, 동선체계를 담당하는 켜로서 남북으로 가로질러 밴드들을 수직으로 이어주는 주요 길과, 그에 대한 보조동선의 작은 산책로들이 각 밴드들 간의 상호 작용을 촉진한다. 그리고 네 번째의 마지막 켜는 기존의, 또는 새로이 추가되는 주요 오브젝트로서 지오드, 아리안의 원뿔, 동물 로툰다, 그리고 대형의 시설로서 박물관, grande halle, 음악당, 등이며, 최종으로 이들은 대지 외부로부터의 조건들과 요소들을 연결하게 된다. 이상으로, 다섯 개의 켜는 전체 대지에 겹쳐지며(superposé), 각각의 켜들 사이에는 우연적 충돌이 발생하며, 이는 마치 맨하탄의 마천루에서 층 단위의 프로그램이 수직으로 적층된 구조로부터 발상을 전환하여 수평의 평면위에 옮겨놓은 것과 같다.

    OMA의 라빌레트 계획안은 완성된 공원의 이미지로서의 확정적 디자인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계획의 시작과 끝이 열려있는 과정적 운용시스템에 의한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3.5. 비유기적 몸으로서의 건축

    앞서 기술된 개념들을 전개함에 있어서 중요한 논점중의 하나는 부분과 전체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즉, 고전적 시대의 관점에서 부분은 전체주의적 방향성을 띄고 있으며, 이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에는 유기적 관계성이 존재한다. 즉, 부분은 전체라는 맥락에서만 본질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데카르트의 관점과 상반되는 라이프니츠의 단자론(le monadisme)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다른 형식의 모델을 생각할 수 있겠다. 즉, 세상은 무한의 부분들로 파편화되어 있으며, 이들 파편은 비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된 몸체(le corps) 속에서, 밀도의 양적인(quantitatif) 속성만을 지닐 뿐 질적인(qualitatif) 차이는 지니지 않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변화는 들뢰즈를 비롯한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지니고 있기에 현대사회에서 매우 훌륭한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지난세기말 부터 도시와 건축의 개념적 모델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Louis H. Sulivan의 그 유명한 선언문에서와 같이, 근대주의적 관점에서 건축 생성의 프로세스는 기능의 체계적 분리, 그리고 그 역할 분담된 기능들의 유기적인 관계구성을 통한 전체적 공간구축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던건축의 경향은 이러한 기능주의적 출발점으로부터 벗어나서, 건축을 구성하는 단위들 간의 상호 관계성이라든지 다변화된 요소들의 총체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이는 전체적 맥락에서의 유기적 통합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파편들의 집합체를 형성하여 기호의 불투명성(l’opacité d’un signe)을 표방하는 건축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의 한 사례로서 Herzog & de Meuron의 Signal Box, Basel을 들어 보자.22) 바젤의 새로운 철도 엔진 창고 옆 18세기 묘지의 오래된 담장 너머철로 변에, 신호제어를 위한 동판으로 마감된 박스형의 건축물이 서있다. 이 건물은 원래 6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몇몇의 작업장과 그 부속실, 그리고 주로 전기신호를 통제하는 장치들의 창고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건물의 콘크리트 외벽은 단열처리가 되어 있고 이의 외부는 동판으로 싸여있는데, 그 동판은 약 20cm 폭의 띠들로 감겨있고 그 띠의 일부분은 점진적으로 뒤틀어지면서 일정의 틈을 형성하여 내부에 빛을 투과시킨다. 동판의 효과는 마치 패러데이 케이지와 같이 작동하며 예기치 않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내부의 전자 장비들을 보호한다. 또한 동시에, 이는 이러한 물리학적인 효과를 유추하여 건축물의 외관에서 생동감 있게 드러내는데, 관습적인 건축물에서의 방식과는 달리, 건축물의 스케일은 개방되어 그 속성을 쉽게 가늠할 수 없게 (층간 구분을 인지할 수 없도록)하여, 철도변과의 추상적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건축가는 건축물에 내포된 기능이나 그에 따른 공간구성의 형식을 철저하게 숨겨서 건축요소들 간의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써 비유기적인 몸체로서의 건축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또한 반복 패턴의 동판피막으로 관습적 스케일 체계를 붕괴시킴으로써 건축과 비건축의 본질적 경계를 흐리고 있다.

    12)Ibid. pp.593  13)Pierre Boulez, Penser la Musique Aujourd'hui, Gallimard, 1987, pp.93-113  14)El Croquis N°79 OMA / Rem Koolhaas, El Croquis Editorial, Madrid, 1996, pp.124  15)Gilles Deleuze, Le Pli, Les Editions de Miunit, 1988, pp.38-54  16)Gilles Deleuz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UF, 1968.  17)Marianne Barzilay, l'Invention du Parc, Graphite Editions/E.P.P.V, 1984, pp.18-39  18)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 관점에서도 그 이전의 입장과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새로운 철학적 입장은 주로 프랑스에서 1960년대 말엽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는 포스트구조주의가 가장 잘 대변한다. 해체 주의를 포함한 포스트구조주의는 후기의 롤랑바트르를 비롯하여 데리다, 푸코, 라캉, 료타르 그리고 들뢰즈 등의 이론가들이 주로 주창하였다. 이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삶의 실재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해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리 실재를 편린적, 이질적, 다원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에 회의적이면서 ‘존재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있다... 이 ‘주체의 죽음’은 장소의 고정성 그리고 개인이나 국가역사에서의 권위나 가치의 확실성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의미한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1&docId=88163&qb=7ZuE6riwIOq1rOyhsOyjvOydmOyekA==&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RS02lc5Y7vdssutaikGsssssstd-329606&sid=2wKh3yslWVEAAE9bHwoAAAAk  19)El Croquis N°121/122 SANAA, El Croquis Editorial, Madrid, 2004, pp.42-53  20)Ilya Prigogine, La Fin des Certitudes, Editions Odile Jacob, 1998, pp.89-106  21)Jacques Lucan, OMA-Rem Koolhaas, Electa Moniteur, 1990 pp.56-65  22)El Croquis N°60 Herzog & De Meuron, El Croquis Editorial, Madrid, 1993, pp.136-139

    4. 결론

    지난 역사를 통틀어 지배되어왔던 건축의 본질적 의미에 대하여 어원으로서 이야기하자면, 개념형성의 주된 틀로서의 ‘원형(archi-)’과 이를 현실 세계에서 생산해내기 위한 실현기반으로서의 ‘구축(techne-)’을 들 수 있는데, 지난 세기 말 케네스 프램프턴은 그의 저서를 통해 현대건축에서의 현상적 특징 중 하나로서, 전자의 구속력은 약화되는 반면 후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증가됨을 들고 있다.23) 여기에서 원래 프램프턴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구축성(tectonic)이 지니는 위상에 대한 문화적 의미와 논점은 다소 다르지만, 이 중에서 시대 전체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양식(또는, 형식)은 사라지고 다양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현상은 들뢰즈의 다중성에 대한 논의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세기말 급진적인 기술의 진보는 건축설계 프로세스 상에서 난해하고 복잡한 것들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거나, 계획안의 실현을 위한 구축(techne-) 인프라의 정밀도를 높여줌으로써 역으로 새로운 유형의 건축을 생산해내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세기 말의 건축적 담론은 그 이전까지의 몇몇 선언적 ’이즘‘(-ism)들의 지배적 형식을 넘어서서 매우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나며 그 다양성은 다중적 계열화라는 특징적 현상으로 현대건축을 정의할 수 있도록 한다.

    이상과 같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우리는 20세기 후반 들뢰즈의 다중성에 대한 철학개념을 고찰하고, 그와 연관하여 세분화된 카테고리 하에서 현대건축에서의 실례를 들어, 건축의 개념 형성에 있어서 철학과의 상호 참조 방식을 살펴보았다. 특히, 과거로부터의 답습이 아닌 전위적인 건축적 실험에 있어서는, 들뢰즈가 제시한 미학적 사유들은 동시대의 건축가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동력을 제공하였으며, 이는 건축에 있어서의 개념적 확장과 새로운 형식의 도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시대의 정신성은 또는 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원론적 논리로,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더 이상 원치 않으며, 현실과 이상,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고자 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들뢰즈가 이야기하듯이 무한의 운동 속에서 생성의 건축을 생각한다.

    23)Kenneth Frampton, Studies in Tectonic Culture, MIT Pres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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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1.] Modele de l'Arbre / Semi-treillis, proposee par C. Alexander
    Modele de l'Arbre / Semi-treillis, proposee par C. Alexander
  • [그림 2.] Quilt, 매끈한 것과 홈 패인 것
    Quilt, 매끈한 것과 홈 패인 것
  • [그림 3.] Deux Bibliotheque pour Jussieu, Paris (concours, 1992), Rem Koolhaas
    Deux Bibliotheque pour Jussieu, Paris (concours, 1992), Rem Koolhaas
  • [그림 4.] Repetition Nineteen(1968), Eva Hesse
    Repetition Nineteen(1968), Eva Hesse
  • [그림 5.] Parc de La Villette, Paris(concours 1982), Bernard Tschumi
    Parc de La Villette, Paris(concours 1982), Bernard Tschumi
  • [그림 6.] Objet Fractal de B. Mandelbrot
    Objet Fractal de B. Mandelbrot
  • [그림 7.] 'De Kunstlinie' Theatre abd Cultural Center, Almere(concours, 1998), SANAA
    'De Kunstlinie' Theatre abd Cultural Center, Almere(concours, 1998), SANAA
  • [그림 8.] Fontana Mix (1959), John Cage
    Fontana Mix (1959), John Cage
  • [그림 9.] Parc de La Villette, Paris (concours 1982), OMA
    Parc de La Villette, Paris (concours 1982), OMA
  • [그림 10.] Visage despotique signifiant terrestre, G. Deleuze
    Visage despotique signifiant terrestre, G. Deleuze
  • [그림 11.] Signal Box, Basel(1982), Herzog & de Meuron
    Signal Box, Basel(1982), Herzog & de Meu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