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글쓰기 퍼포먼스*

Die Performanz des Schreibens von Ein Tag des Schriftstellers Ku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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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0년대 경성의 스펙터클을 한 지식인 산책자의 시각으로 면밀히 구성한 실험적 소설로 평가 받는다. 8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연출가 성기웅은 그 소설을 재구성하여 다양한 매체가 무대 위에서 산책하도록 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생산하였다. 이글에서는 공연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어떻게 글쓰기 자체가 다양한 매체로 무대 위에 퍼포먼스로 실현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산책자문학에서 산책 자체가 글쓰기로 연결되는 장치로 활용되는 서술주체의 분열을 살펴보았다. 공연에서는 서술주체의 분열이 글 쓰는 자 태원과 행동하는 자 구보로 구체화되었음을 천착하였다. 이러한 서술주체의 분열은 공연이 진행되면서 차츰 주체간의 경계 넘기로 변화한다. 뿐만 아니라 서술주체의 분열현상은 그 둘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서술주체가 되어 무대 위에서 서술적 발화를 통한 글쓰기에 동참함으로써 확산됨을 살펴보았다.

    배우들은 발화할 뿐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통해 글쓰기를 무대에서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구보의 산책, 어머니의 바느질, 선 본 여인의 춤추기 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글을 무대 위에 체현하여 문장의 결과 리듬을 살려내는데 기여한다. 무대는 태원의 글쓰기 과정이며 구보의 산책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 글쓰기에 다양한 매체들이 기여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캐리커처, 사진, 영화, 음악 등이 함께 산책이자 글쓰기 과정을 퍼포먼스하는 것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특징이다. 그 중 문자라는 매체는 공연에서 특히 강조된다. 간간이 떠오르던 문자는 구보의 산책 마지막, 텅 빈 거리에 소설 전체의 문장을 폭발시켜 이미지화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의 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Der Roman Ein Tag des Schriftstellers Kupos von Taewon Park läßt sich als Spaziergängertext bestimmen. Der Erzähler, ein Romanschriftsteller, geht durch die Stadt Kyongsong (jetzige Seoul) spazieren, beschreibt das Spektakel der modernisierenden Stadt in den dreißiger Jahren des letzen Jahrhunderts, in den Korea von Japan kolonialisiert wurde. Gleichzeitig erzählt er dazu assozierten Gedanken und Erinnerungen.

    Der Regisseur Kiung Sung hat den Roman bearbeitet und auf die Bühne gebracht. Er betont den Charakter des Spaziergängertextes und die Prozessualität des Schreibens. Nach Volker Georg Hummel ist die Aufspaltung des Erzählers in einem Schreibenden oder auf dem Papier spazierenden und einen diese Bewegung fortwährend kommentierenden Ich-Anteil in Spaziergängertexten häufig zu erkennen. Auch in der Aufführung von Ein Tag des Schriftstellers Kupos tritt der Erzähler aufgespaltet als Schreibender Taewon und als Gehender Kupo auf. Der Schauspieler Yungi Lee stellt den Schriftstleller Taewon, der immer wieder sowohl zu Hause als auch in Teestuben schreibt, dar, während der Schauspieler Daesok Oh Kupo, der in den Roman von Taewon als Hauptfigur auftritt, den einsamen Spaziergänger veranschaulicht. Am Anfang scheint Taewon ein Schöpfer, Kupo sein Geschaffener zu sein. Aber im Lauf der Aufführung läßt sich erkennen, daß sie Doppelgänger sind und miteinander kooperieren. In der Tat werden Schreiben und Gehen auf der Bühne miteinander identisch verwendet.

    Nicht nur Gehen sondern auch Nähen und Tanzen etc. schließen sich mit Schreiben an. Nach dem Rhythmus und Atem des Satzes bewegen sich Schauspieler und aussprechen. Alle Schauspieler schreiben den Text mit eigenen Körper auf der Bühne. Dazu tragen verschiedene Medien z.B. Illustrationen, Karikatur, Photos, Filme, Musik, etc. bei. Vor allem spielt die Schrift große Rolle. Im Lauf der Aufführung taucht Schriften häufig auf, immer wenn der Regisseur die Situation betonen will. Aber langsam werden Schriften nicht nur Sinne gebildet, sondern auch als Image verwendet. Schriften spielen als Image autonom. Am Ende der Aufführung, am Ende des Spaziergangs von Kupo werden alle Sätze des Romans auf der Bühne explodiert, schweben sich rund um Kupo, der in der tiefen Nacht allein zu Hause geht.

  • KEYWORD

    <소설가 구보씨의 1일> , 글쓰기 퍼포먼스 , 서술주체의 분열 , 무대 위의 산책 , 산책자

  • 1. 머리말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는 독자는 한 산책자의 모습과 몸짓 그의 걸음걸이와 그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1930년대 경성 한복판의 스펙터클을 선명히 그려 볼 수 있다. 산책자의 움직임과 그 시선으로 전달되는 외부의 풍경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산책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연상과 회상들을 독자는 바라 볼 수 있다. 서술자가 멈춰서 고정된 시선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장면들이 산발적이고 유동적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산책자인 서술자의 보행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그 호흡이 느껴지는 문체가 특징적이다.

    그러한 산책자 문학으로서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출자 성기웅은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다매체를 활용한 퍼포먼스로 전환시키는 괄목할 만한 실험을 하였다. 소설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 경우 대부분은 소설을 각색하여 희곡의 형태로 만들어 무대화한다. 그러나 성기웅은 소설 매체의 특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무대에 올리면서 배우의 몸, 캐리커처, 영상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관객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1930년대의 근대화되어 가는 식민지 경성의 스펙터클 속의 한 지식인의 방황과 성찰을 감각적으로 추체험하게 유도한다. 이글의 연구대상인 2012년 11월 27일부터 12월 3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된 공연에는 연일 젊은 관객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고, 내가 관람한 12월 7일과 12월 30일 공연의 관객들은 매체들의 유희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드러냈다.

    이 글에서는 성기웅 연출의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글쓰기 과정 자체가 어떻게 무대에 퍼포먼스로 실현되는지 천착하려 한다. 즉 배우의 몸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들이 상호조응하면서 어떻게 1930년대의 분위기를 재현해내고 그것을 통해 80년이나 지난 오늘의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려 하였는지 탐구하려 한다.

    2. 서술주체의 다원화와 경계 넘기

       2.1. 서술주체의 분열: 박태원, 태원 그리고 구보

    공연이 시작되면 막 앞의 무대 오른쪽에서 자리옷을 입고 목에 수건을 건 청년이 앉은뱅이책상에서 펜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쓴다. 막이 열리면 그 뒤로 샤막이 쳐 있고 단장을 짚은 또 하나의 청년이 양복을 입고 있다. 이 두 청년은 갓빠머리의 헤어스타일을 동일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글 쓰는 자 태원과 행동하는 자 구보 사이를 샤막으로 구분하여 분열된 두 주체가 무대 위에 존재한다. 구보 박태원이 자신의 호 구보를 등장인물에게 부여하고 그의 글쓰기 과정이자 산책과정을 소설에 담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설에 나타나는 실제 작가 박태원과 내포작가 그리고 등장인물 구보 사이의 분화와 겹침을 무대화에서는 인물의 분열로 형상화한다. 그들의 헤어스타일, 의상, 소도구 등을 통일함으로써 태원과 구보는 같은 인물의 분열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언제나 걷어 버릴 수 있는 반투명의 샤막으로 규정하고 시작한다. 서술주체의 분열은 산책자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인 것을 이미 훔멜이 지적한 바1), 이를 성기웅은 무대에서 서술자의 분열된 등장으로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보와 태원이 같은 헤어스타일, 안경, 의상에 한 손에는 노트를 다른 손에는 스틱을 짚고 명랑한 산택을 한다. 이들의 외양은 근대화된 도시의 산책자(Flaneur)의 모습을 모방하면서도 헤어스타일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위키페디아에서 묘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책자는 실크 헷트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양복을 잘 차려 입은 댄디들이다. 그러나 구보와 태원은 모자를 쓰지 않고 앞머리를 내린 갓빠머리를 하고 안경을 쓰고 있다. 이는 산책자의 전형을 단순히 모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작가 박태원에 의해 변주된 산책자의 모습을 재현한 것임을 명시하는 기호이다. 갓빠머리는 파리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일본 화가가 수용하여 일본에 퍼뜨린 것을 박태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그가 동경 유학시절이후 젊은 날에 하고 다니던 헤어스타일이다.2) 안경이라는 소도구는 박태원이 고도근시였고 노년에는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는 점을 상기시킨다.3) 이렇게 실제 작가 박태원과 그를 모방한 태원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분신인 구보가 연극 속에서 함께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주체의 경계는 공연에서 원작의 사소설적인 요소를 그대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반투명의 샤막이라는 장치처럼 때로는 구분되고 때로는 넘나들 수도 있는 성격을 지닌다.

    우선 무대의 두 개의 주체로 등장하는 태원과 구보는 작가와 그가 창조해낸 허구의 등장인물로 설정된다. 태원이 책상에 앉아 사유하고 글을 씀으로써 창조되는 존재로서의 구보가 무대화되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는 태원이 상상하는 소설의 공간이 샤막 뒤로 설정되고 그가 소설의 첫 문장을 가다듬자 등장인물 구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펜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존재에 생명을 불어 넣는 창조자로서의 소설가의 글쓰기 과정 자체를 무대와 배우의 움직임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태원이 펜을 거두자 구보는 무대 오른쪽의 커튼 뒤로 사라지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자 구보가 다시 등장해 움직이다가, 태원이 갑자기 원고지를 뜯어 파지를 내어 구겨버리자, 구보가 도로 뒷걸음질 쳐서 구겨지듯 사라지는 장면에서 더욱 구체화된다.4) 이러한 태원의 글쓰기와 구보의 행위의 일치는 퍼포먼스로서의 글쓰기가 구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실현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 프롤로그는 훔멜의 언급대로 “창조과정 자체의 복합적인 인격화”5)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구보가 태원의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님이 드러난다. 구보가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태원의 분신이자 짝패임이 드러난다. 4장에서 태원이 카페 낙랑파라 구석에서 글을 쓰며 카페 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을 때, 구보가 태원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여 테이블에 앉아 벗 아닌 벗과의 해후를 함께 묘사해 낸다.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은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6)이라고 한 언급은 시사적이다. 글 쓰고 있는 구보의 모습은 태원이 스스로를 거울에 비춘 모습이며, 이를 통해 태원이 행동하는 자신을 관찰하는 매우 연극적인 순간이 된다. 즉 글 쓰는 자신을 관찰하는 또 하나의 나, 즉 구보와 태원의 분열은 보알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에 존재하는 연극성에 다름 아니다.7)

    태원만 자신을 관찰하는 면모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구보와 태원 양자가 동시에 자신의 관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황금광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그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차를 함께 마시자는 황금광 친구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태원은 자신의 분신인 구보를 경성역 티룸으로 떠다밀어 보낸다. 황금광 사내, 그의 애인 그리고 구보가 차를 마시는 장면은 샤막에 미리 찍어 놓은 영상으로 비춰진다. 구보가 다시 등장하여 그 영상을 바라보며 태원과 함께 그에 대한 논평을 한다. 태원이 자신을 거울 속에 비친 모습 같은 구보를 관찰하듯이, 태원의 분신인 구보도 스크린 위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태원과 구보가 함께 글을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주체 분열의 유희는 구보가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하자 태원이 그에 합류하면서 더욱 역동성을 띠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춘 춤추는 듯한 이 두 서술주체의 산책에 그들이 관찰하는 도시의 다양한 풍광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영상이미지로 형상화되어 함께 흐르게 된다. 태원과 구보는 도시의 풍광에 상호작용하며 고현학자(考現學者)로서의 기록을 본격화한다. 다양한 현상에 대한 기록자로서의 상이한 모습들이 스크린에 수없이 많은 구보의 이미지로 분열되어 형상화되면서 서술주체의 분열의 이미지가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원은 작가라는 실제성과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을 지배적으로 지니게 된다. 반면 구보는 과거와 현재가 대비될 때 과거에 속하고 허구성을 더 많이 내포한다. 태원이 이상과 김기림이라는 작가와 직접적인 소통을 한다든지 글 쓰는 자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하게 띠며 객석 가까이에 위치하는 빈도수가 잦은 것으로 관객이 속한 현실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도록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경계가 모호해진다. 예컨대, 우연히 산책 중에 벗 아닌 벗을 만나는 회상 장면(4-2장)에서는 태원이 ‘행동하는 자아’가 되고 구보는 산책에 동행하여 태원과 벗의 만남에 ‘논평을 하는 자아’의 역할을 함으로써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선다.

    특히 이 극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동경 유학시절의 연인인 임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형상화하는 장면에서는 현재와 회상의 오버랩이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경계의 넘나듦이 본격화된다. 태원은 이상이 경영하는 제비다방에서 글을 쓰다 동경시절 다방에서 임이와 만나게 되는 계기를 회상하고 이 회상 장면에는 구보가 등장한다. 현재와 과거의 회상은 틀막과 샤막을 이용하여 무대에서 긴박하게 동시 진행된다. 태원이 이상과 만나 설렁탕을 먹으러 대창옥에 들어서면 무대 오른쪽은 현재의 대창옥이 되고, 무대 왼쪽은 샤막을 쳐서 과거 동경 임이의 집과 영화관 무장야관 앞이 되어 그곳에서 구보와 임이가 만나는 장면이 동시 연출된다. 대창옥의 태원은 설렁탕을 먹으며 땀을 흘리고 동시에 무장야관 앞에서 임이와 함께 있던 구보가 영어교사를 만나 당황해하여 땀을 흘리던 장면이 동시 연출될 때, 회상 장면의 임이가 내민 손수건으로 현재의 태원이 땀을 닦게 된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은 이런 방식으로 동시 진행되고 오버랩된다. 특히 손수건이라는 소도구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오버랩을 명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오버랩은 히비야 공원에서의 이별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무대에 펼쳐진 샤막에는 테두리가 영사되어 그 속의 구보와 임이의 모습은 마치 영화 스크린 속 인물처럼 드러난다. 그리고 태원은 무대 왼쪽 앞에서 자신의 회상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켜보고 있다. 밤비 내리는 히비야 공원에서 하염없이 걷던 임이와 구보가 사라지자, 태원은 그 감정의 절정에서 회상장면 속으로 뛰어든다. 이어 다시 등장한 임이와 회상 속의 이별을 재현한다. 회상 속에 등장했던 구보는 스크린 밖으로 나와 태원과 임이를 지켜보는 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장면 마지막에는 태원과 구보가 마주 봄으로써 실제작가-현재/ 허구적 인물-과거의 이분법의 경계가 무화된다.8) 이러한 현상은 9-2장의 늦은 밤의 술집 장면에서도 일어난다. 이상과 함께 구보가 여급들이 나오는 술집에서 어울리다가 나중에 태원이 이 자리에 합류하자, 구보와 태원이 상호 작용하며 이 장면을 마무리 한다.

       2.2. 서술주체의 확장과 협업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공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 모든 인물이 무대에 등장(일인 다역이긴 하지만)하고 서술적 자아까지 등장하여 문장 하나하나의 결을 살려서 읽어 낸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서로를 향한 대화로 이루어지는 연극의 내부적 소통구조는 상당 부분 와해된다. 이러한 현상은 공연의 전반부에 지배적으로 드러난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체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앞 서 언급한 태원과 구보 역을 맡은 배우와 함께 분화된 서술적 주체로서 기능한다.

    이는 공연의 프롤로그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현실적 맥락에 근접한 작가로 등장하는 태원이 메인 커튼 앞에서 글쓰기를 시작할 때 그 뒤에 한 남자가 누워 자고 있다. 그러다 메인 커튼이 열리고 샤막 안에서 구보와 어머니가 동작을 시작하면 그 남자가 일어나 글쓰기 작업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가 바로 박태원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이었음을 극이 진행되면서 알게 된다. 특히 1장 마무리에서 이상이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생성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때 이상이 삽화를 담당하였음을 무대 뒤 스크린에 삽입영상을 통해 알려준다. 창작 당대의 박태원과 이상의 관계를 공연은 태원이란 등장인물의 글쓰기에 이상이 돕는 행위로 구체화한다.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서술되고 있는 문장을 읽어내지만, 일부분은 태원, 구보, 이상 등이 나누어 읽어 줌으로써 문장을 함께 완성해나간다. 다음 부분은 이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어머니로 분한 강정임은 아들을 기다리다 잠이 드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대사는 자기 자신을 어머니라 지칭하며 자신의 행동을 서술자로서 묘사한다. 그 행동에 대한 묘사도 혼자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으로 분한 양동탁이 마무리한다. 또한 그녀의 생각은 태원 역의 이윤재가 묘사한다. 특히 콤마나 피리 오드와 같은 문장부호를 글 쓰는 행위와 함께 태원이 발화함으로써 작가의 게스투스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 문장부호를 이상도 나누어 담당함으로써 작가로서의 면모도 공유하게 된다.

    여러 인물이 등장할 때도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각자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묘사하고 태원이나 구보가 이를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구보가 백화점에 들러 오찬을 즐기러 옥상정원으로 올라가는 한 가족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러한 현상이 잘 드러난다.

    이때에도 각 배우들은 젊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의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을 과시하는 듯한 극행동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거리를 두는 묘사를 하게 된다. 특히 아이 역을 맡은 배우는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의기양양하게 드러내면서도 스스로를 “수남이나 또는 복동”이라 지칭함으로써 서술자로서의 묘사임을 명시한다. 이런 방식으로 극 행동과 묘사하는 대사 사이의 유희적 거리가 형성된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서술주체로서 기능하지만, 때로는 서술자이면서 동시에 내부적 소통구조의 안의 연극적 대사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태원은 대부분 극 전체를 관통하는 서술주체로서 작용하지만, 낙랑파라에서 김기림을 만나 자신의 소설작법에 대해 논할 때는 온전히 내부적 소통구조 안에 들어 있다. 이는 김기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두 인물은 대화를 나눌 때는 내부적 소통구조 안에 들어 있지만, 김기림이 태원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 글을 읽고 쓸 때는 태원은 구보에게 서술자의 기능을 위임하고 김기림은 스스로를 묘사하는 서술자의 역할을 한다. 다음의 두 경우를 비교해보면 선명해진다.

    성기웅은 연출가의 변에서 “배우들과 함께 텍스트와 동작과 감정을 분리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의 연기, 연극적인 요소와 비연극적인 요소를 병치해서 이어가는 내러티브”9)등의 시도를 했노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연극적인 요소라 함은 내부적 소통구조로만 이루어진 인용문1의 경우이고, 비연극적 요소는 인용문2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이 서술자의 역할을 할 경우이다. 이 두 방식을 병치하고 엮어가면서 전체적인 서사구조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마치 브레히트가 배우들과 함께 서사극을 연습할 때 때때로 사용했던 방식처럼 자신이 맡은 등장인물을 3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지문과 함께 읽는 것과 같은 형국을 하고 있다.10) 브레히트가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의 배역으로부터 사회비판적인 거리를 만들어내도록 고안해낸 연습방법을 성기웅은 공연 자체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는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의 배역을 비판적으로 떼어놓고 바라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낯설게 하기 과정을 공연에 도입해서 배역과 배우 사이의 거리를 유희하는 실험적 표현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공연은 서술주체가 우선 태원과 구보로 이분화 되어 글쓰는 자와 글 속의 행동하는 자로 나뉜다. 그러나 이 두 주체는 단순한 창조자와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라, 동행하기도 하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는 짝패이자 분신으로 작용한다. 그런가 하면 서로의 경계를 넘기도 한다. 그러한 서술주체의 분열은 태원과 구보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모두가 스스로를 묘사하는 서술주체가 되어 그 분열이 확장 된다. 이러한 다양한 서술주체에 의해 묘사되는 텍스트는 그 발화자의 행동으로 실현된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묘사되는 텍스트와 극적 행동 사이의 균열은 낯설게 하기가 유희적으로 작용하는 공간이 된다.

    1)Volker Georg Hummel, Die narrative Performanz des Gehens, Bielefeld, transkript, 2007, 54쪽 참조. 훔멜은 위의 책에서 산책자 문학의 특징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서술주체의 분열(Aufspaltung des Erzählers)’은 들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훔멜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태원과 구보가 원래 한 인물이지만 둘로 나뉘었음을 강조할 때는 ‘분열’로 표현하고 그러나 각각의 수행하는 기능을 설명할 때에는 ‘분화’라 명명하기로 한다. 분열이란 원래 하나였던 것이 나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태원과 구보에는 해당하지만 공연에서 기능하는 다양한 서술주체 즉 다른 등장인물들과 매체들까지 아우르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능을 강조할 때에는 확장된 개념인 ‘분화’의 개념을 활용하고자 한다.  2)장석주, 『이상과 모던 뽀이들. 산책자 이상씨와 그의 방황하는 벗들』, 현암사, 2011, 250쪽 참조.  3)위의 책, 266쪽 참조.  4)박태원 작, 성기웅 구성· 연출,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공연대본, 3쪽. 이후 대본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밝히겠음.  5)Volker Georg Hummel, 앞의 책, 55쪽.  6)아우구스또 보알, 『아우구스또 보알의 연극 메소드』, 현대미학사, 1998, 34쪽.  7)위의 책, 35쪽 참조.  8)대본 72-74쪽 참조.  9)성기웅, 「다시 그려보는 구보 씨의 얼굴」, 공연 팜플렛.  10)베어톨트 브레히트, 김기선 역, 『브레히트연극론. 서사극 이론』, 한마당, 1992(1989), 72-73쪽 참조.

    3. 글쓰기 퍼포먼스

       3.1. 글쓰기의 메타포: 무대 위에서 몸으로 글쓰기

    배우들은 단순히 읽거나 말하는 존재만이 아니라,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를 스스로의 ‘몸으로’ 무대 위에서 ‘쓴다’.11)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 묘사를 몸으로 실현한다. 보통 연극에서는 등장인물을 형상화하는 다양한 기호 중의 하나로 언어적 기호가 활용된다. 피스터는 희곡의 인물형상화기법을 인물을 통한 것과 내포작가를 통한 것으로 분류하고, 각각을 명시적인 것과 암시적인 것으로 나눈다. 즉 인물을 통한 명시적 기법은 등장인물들이 대사로써 스스로나 타인에 대해 형상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인물을 통한 암시적 기법은 다시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으로 나뉜다. 비언어적인 것은 인물의 태도, 행동, 외양, 표정, 의상, 소도구, 극적 공간 등을 말하며, 언어적인 것은 음색, 언어표현 방식 등을 말한다. 특히 무대화에서는 비언어적인 요소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12) 그리하여 배우들은 다양한 기호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그 인물을 무대에 체현해 내는데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는 그 어느 기호보다도 배우들이 배역을 3인칭으로 놓고 묘사하는 인물에 의한 명시적 기호 즉 등장인물의 발화가 우위에 놓이고, 비언어적인 기호들 즉 인물의 태도, 행동, 외양, 표정, 의상, 소도구, 극적 공간 등은 전자를 따라가며 보완하고 마무리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공연에서 소설가의 글 쓰는 과정 자체 그리고 그 문장의 호흡과 결을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발화하고 몸으로 실현하는데 중점이 놓이게 된다.

    배우 강정임은 미색의 한복에 쪽진 머리와 돋보기를 쓴 태원의 어머니로 분하고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태원이 발화하는 콤마의 휴지에 맞춰 어머니는 바늘에 머릿기름을 바르기도 하고, 바느질 한 땀을 하고 바느질감을 입에 물고 애써 바늘을 빼내기도 하는 동작 등을 함으로써 문장의 리듬을 바느질이라는 제스처를 통해 수행해낸다.

    1장에서 어머니는 밤늦게야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며 선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몸짓을 하며 문장의 리듬을 살려내기도 한다. “편안하지 못한 잠은, 두 시간씩, 세 시간씩, 계속될 수 읎다.”(6쪽)라는 문장의 쉼표에 따라 어머니를 맡은 배우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일어나 앉는 몸짓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다음의 장면에서는 태원과 이상 그리고 어머니의 앙상블로 글쓰기가 완성된다. 즉 하나의 문장도 둘 이상의 인물이 나누어 말하고 움직이며 호흡을 맞춰 완성한다. 이상은 어머니의 생각에 호흡을 맞춰 문장부호를 삽입하여 리듬을 만든다. 마지막 “답답하였다”라는 문장에서는 어머니와 이상이 함께 그 답답함의 느낌을 가지고 태원을 어르면, 태원은 윗몸을 뒤로 제켜 피하며 책상의 원고에 손으로 얼른 “피리오드”를 찍음으로써 난처한 상황을 서둘러 마무리 한다. 이렇게 문장부호까지 살려서 리듬을 만들고 감정을 넣어 함께 한 땀 한 땀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루며 몸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구체화된다.

    배우 전수지는 분홍색 줄무늬 블라우스에 분홍색 치마를 입고 분홍색 양산을 들고 등장한다. 전차 안에서 선본 여인과 구보가 우연히 마주친 상황을 두 인물이 역시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한다. 이때 전수지는 슬로우 모션으로 양산을 펼쳐들고 춤추는 듯한 동작을 하며 그 묘사를 완성한다. 그럼으로써 그녀에 대한 구보의 연정이란 행간의 의미를 구체화한다.

    한트케는 글쓰기 메타포의 변주들로서 바느질, 천짜기, 춤추기 등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특히 바느질 하는 여자를 주목하고 있다.13) 바느질 하는 여자처럼 한 땀 한 땀 글을 써나가는 과정을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공연에서는 강정임의 연기와 발화과정을 통해 무대화하고 있고, 전수지의 춤추는 듯한 동작을 통해 변주하여 형상화한다. 그 외의 등장인물들도 일반적인 극적 연기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소설 자체를 체현하는 그리하여 몸으로 문장을 써 나가는 듯한 연기를 한다.

       3.2. 무대 위의 산책과 글쓰기

    태원 역을 맡은 배우 이윤재는 메인 커튼이 열리기도 전인 프롤로그에서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펜을 들고 글 쓰는 행위를 하며 입으로는 쓰고 있는 문장 하나하나를 발화한다. 심지어 컴마와 피리오드까지 발화하며 원고지에 그 부호를 찍는다. 이렇게 앞으로 전개될 공연은 그의 펜 끝에서 창조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공연이 전개되는 동안 그는 구보를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과 간간히 동행하면서 극 전체를 관통하며 논평을 가하고 관찰하고 때로는 카페에 앉아 글 쓰는 행위를 지속한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태원이 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글 쓰는 행위이다. 또한 공연 전체가 그의 글 쓰는 과정 자체를 수행(perform)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태원의 분신이자 짝패인 구보의 ‘산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태원의 펜 끝에서 창조된 듯한 구보가 샤막 안에서 산책을 시작하면서 공연이 본격화된다. 갓빠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쓰고, 여름 양복으로 잘 차려 입고, 한손에는 노트를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경쾌하게 무대 위에서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구보의 보행은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행위이다. ‘구보의 산책’이 공연의 테마음악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의 발걸음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춤추듯 경쾌하게 진행된다. 보통의 보행 속도로 혹은 느리게 혹은 빠르게 또는 멈추었다가 또다시 가는 다양한 리듬으로 진행된다. 걷기의 리듬과 템포 그리고 분위기는 공연 전체의 리듬과 정조로 연결된다.

    구보는 걸으면서 경성의 도시의 다양한 거리풍경과 사람들과 조우한다. 한 손에 지팡이가 그것을 지시하듯, 또 한손의 노트는 그가 관찰자이며 동시에 기록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태원이 그러하듯이, 구보도 실제로 글을 쓰기도 한다. 또한 태원도 글쓰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보와 동행하며 산책한다. 이 둘의 이미지의 겹침은 태원과 구보가 동시에 산책을 하면서 다양한 구보들로 분열되면서 경성의 풍광들을 기록하는 장면(5장)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렇게 공연이 태원의 글 쓰는 행위과정이듯이, 구보의 걸음걸이 즉 산책 자체이기도 하다. 태원이 구보의 분신이고 결국 하나이듯이, 태원의 글 쓰는 과정은 바로 구보의 산책과정이며 이것이 상호작용하여 공연의 골격을 이룬다. 소요학파에게 걷기가 바로 사유이듯이, 성기웅이 연출한 공연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태원의 글쓰기이고 구보의 산책이며, 그 산책에 등장인물들이 합류하는 것이다.

    구보가 활보하는 장소는 바로 1930년대 경성이다. 식민정책에 의해 이제 막 근대화가 시작된 도심의 스펙터클이 구보 산책의 배경이 된다. 구보가 무대 위를 걸을 때 펼쳐지는 경성의 스펙터클은 공연에서 삽화의 이미지로 배경막에 비춰진다. 산책자의 시각은 필연적으로 삽화적14)임을 일찍이 벤야민이 언급했듯이, 무대에서는 그 이미지가 영상 일러스트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구보의 걷기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무대 위를 움직이는 것에 제한되지만, 영상 삽화들이 배경막이나 샤막 위를 흐름으로써 산책의 역동성을 부여한다. 산책을 할 경우 밖으로는 풍경이 지나가고, 그에서 연상되거나 혹은 자동적으로 내면에 다양한 사유들이 동시 진행되기 마련이다. 파리의 산책자 벤야민이 “산책할 때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아득히 먼 것이 풍경과 순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다”15)고 했듯이, 구보도 산책과 병행하여 다양한 생각과 회상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산책의 안과 밖을 동시에 형상화하기 위해 공연에서는 틀막, 샤막, 흑막, 배경막 등 다양한 막을 사용하여 상이한 매체를 개입시킨다. 구보역을 맡은 배우 오대석은 자신의 배역을 3인칭으로 칭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사유를 묘사함과 동시에 그 묘사를 다양한 호흡과 템포의 걸음걸이로 무대에서 실현한다.

    구보의 산책은 “리드미컬하고 명랑”(10쪽)하게 시작된다. 공연의 시작 크레딧이 샤막에 영사되는 동안 구보는 객석을 향하여 바라보고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경쾌한 보행을 하면 무대 후면 중앙을 소실점으로 한 원근법의 경성의 중심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앞에서 뒤로 움직인다. 그러면 마치 구보가 그 거리를 걸어 객석 쪽으로 나오는 듯한 이미지가 형성된다. 1930년대 식민정책에 의해 근대화가 시작된 경성중심가의 스펙터클에 반응하는 구보의 경이에 찬 표정과 지팡이를 들어 경탄하는 제스처로 그의 산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구보와 태원이 함께 산책을 시작하는 5장에서도 두 배우가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경쾌하게 걸으면 거리와 전차 자동차 인력거 행인들을 담은 그림 이미지가 앞에서 뒤로 움직인다. 또는 구보가 천변 길을 걸을 때는 그는 제자리걸음인데 물결을 형상화한 점선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다. 그러면 구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듯한 이미지가 구현된다.

    집에서 나온 구보는 천변길을 따라 광교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산책에는 지향점이 없다. 그에게는 어떠한 사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 있는 듯이 꾸민” 행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발걸음이 우연히 향하는 곳이 바로 움직임의 방향이 된다. 그의 잘 차려 입은 복장과 손에 든 노트는 그가 지식인임을 드러내지만 사실은 직업이 없는 도시의 배회자임을 형상화한다. 게다가 그의 걷기의 템포는 경성의 근대화된 중심가의 속도와 충돌을 일으킨다. 걷다가 전차가 육박해 들어오자 놀라 몸을 피하고, 현기증으로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신경쇠약에 걸린 구보의 캐리커처와 신경안정제(3B水)약병이 제시된다. 조금 걷다가 자전거와도 충돌하고 구보는 자신의 청력을 의심한다. 곧 이어 자동차와도 부딪칠 뻔하자 시력까지 문제 삼는다. 그는 사실은 갈 곳도 없고 근대화된 도시의 속도와 불화하면서 소외되고 병들어가는 무기력한 국외자임이 이렇게 명시된다.

    태원이 김기림과의 대화를 통해 소설의 의도를 “도회지를 배경으루 한 명랑과 고독의 꼬라-쥬”(51쪽)라고 밝혔듯이, 성기웅은 명랑과 고독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정서를 구보의 산책에 함축시키고 있다. 태원과 구보가 함께 산책하기 위해 태평통거리를 나섰을 때 한낮의 뙤약볕에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때 신경안정제를 마시고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여 경쾌하게 산책을 시작한다. 산책 도중 거리에서 우연히 영락한 ‘옛동무’와 만난 후 구보와 태원은 “울 것 같은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38쪽)하고 발걸음이 느리고 무거워진다. 그러나 곧 기분 전환을 하며 둘이 함께 스틱을 차올리며 언제보다도 경쾌하게 “약동하는 무리들”(39쪽)이 모여 있을 경성역으로 향한다. 영상으로 비춰진 남대문의 초록빛 터널을 탭댄스의 스탭을 가미한 경쾌한 걸음걸이에 산책음악이 곁들여지면서 우울에서 명랑으로 급전한 분위기를 구현한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그 군중들 속에 더한 고독이 있음을 발견한다. 인간 본래의 온정은 찾을 수 없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소통이 안 되며, 더구나 병들거나 부랑자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풍속도를 보게 된다. 그곳에서 구보와 태원이 옛 동창생 황금광 사내를 만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근대화된 도시의 인간들은 소외되어 더욱 외로워지지만 그곳에 새롭게 등장하는 황금의 우상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황금광 사내라는 명명과 구보가 그와의 만남에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도록 하여, 무대진은 당대에 새롭게 부상하는 자본의 위력을 아이러니컬하게 형상화한다. 황금광 사내의 “어어쁜” 여인을 묘사하면서 사랑도 상품화 되어가는 시대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이미 언급했듯, 역 티룸에서 황금광 사내와 그의 연인 그리고 구보가 차를 마시며 서로 엇갈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영상으로 처리하고 구보 스스로 무대에서 그것을 마치 영화처럼 바라봄으로써 비판의 거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구보의 산책은 전반적으로는 명랑하고 유쾌하지만 언뜻 언뜻 우울함과 고독이 드러난다. 그러나 곧 경쾌한 발걸음으로 우울함을 밀어내지만 다시금 고독에 마주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식민지 경성의 지식인 산책자의 비애가 함축되어 드러난다. 그리하여 한 낮에 시작된 구보의 경쾌한 산책은 저녁을 지나 밤이 깊고 새벽 두시가 되어가는 동안 명랑과 우울의 반복 속에 점점 무거워진다.

       3.3. 문자의 이미지화

    공연의 배경스크린에는 다양한 문자들이 떠돈다. 공연의 사회적 문화적 문맥을 제공하는 각주와도 같은 문자화된 정보들 이외에도 필기체로 중간 중간 떠오르는 문자들을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구보가 집에서 나와 천변 길을 걸으며 어머니에게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나온 것을 후회하는 장면에서 구보의 표정을 담은 캐리커처와 더불어 “네”가 담긴 말풍선이 그 소리의 크기처럼 작거나 크게 제시된다. 만화의 기법을 활용하여 문자가 의미와 더불어 소리의 크기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차 안에서 선 본 여인을 우연히 마주친 구보가 망설이다 그녀가 차에서 내려 떠나가 버리자 그 상황에 대해 예상되는 어머니의 반응을 강정임이 직접 등장하여 연기하는 동안, 차창에는 ‘責: 꾸짖을 책, 拙: 서투를 졸, 怯: 겁낼 겁’ 글씨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마치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에서 칼리가리의 망상을 “너는 칼리가리가 되어야해”라는 문자들이 화면을 자율적으로 날아다니게 하는 문자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듯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구보의 상념을 문자로 이미지화한다.16) 그 외에도 “전차 안에서”, “여자는”, “얼마잇다-”와 같이 박태원의 소설에도 고딕으로 강조되어 드러나는 문자들의 일부가 무대 위 스크린에도 씌어진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성기웅 연출에서 ‘幸’이란 단어가 세 번이나 무대에 강조되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재선의 언급대로 소설에서도 구보의 산책 즉 “그의 거리읽기란 곧 대중적 <행복>과는 다른 자신의 행복인 소설쓰기 그 자체”17)였다면, 성기웅의 이번 공연에서는 그 ‘행복’이란 개념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구보는 화신 백화점에 들렀을 때 오찬을 즐기러 온 가족을 만난다. 그들이 단란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스크린에 ‘幸’이란 글씨가 옆 스크린에 씌어지면, 온 가족이 두 손을 들어 그것을 가리키며 동작을 멈춘다. 그리하여 그 가족의 상황과 행복이란 문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강조된다. 그 소시민적 행복을 구보는 축복하여 주려 하지만,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다. 또한 전차 안에서 선 본 여인이 사라지자, 그 여인이야 말로 자신의 ‘幸’을 보장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하는 동안 역시 문자가 떠오른다. 그 ‘幸’이란 문자는 역 티룸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황금광 사내와 여인의 이미지 옆에도 씌어 진다. 이를 바라보던 구보는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라며 자본으로 사고파는 ‘행복’에 대한 경멸을 나타낸다.

    이렇게 ‘幸’은 구보라는 인물의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산책을 통해 성기웅이 무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으로 부각된다. 대낮에 집을 나와 새벽 두시까지의 긴 산책의 여정을 거쳐 찾아 헤매던 구보의 행복은 소시민적 행복도 자본주의에 매몰된 행복도 아니고 놓쳐 버린 행복도 아닌, 자신의 생활 즉 ‘글쓰기’임을 산책의 끝에서 문자의 이미지화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간간히 떠돌던 문자들은, 새벽녘 구보가 친구 이상과 헤어져 홀연히 걸어가고 있는 텅 빈 거리를 가득 메운다. 그의 산책이 바로 글쓰기 자체였으며, 글쓰기는 그의 생활이자 자신만의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을, 공연은 문자의 이미지화를 통해 극대화하여 보여준다.18) 소설의 많은 문장들이 가로로 세로로 흐르며 무대를 가득 메우는 이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11)장 뤽 고다르는 “작가는 펜으로 글을 쓰고 화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영화감독은 카메라로 영화를 쓴다”고 했다.  12)Manfred Pfister, Das Drama, München, Wilhelm Fink, 1982, 251쪽 참조.  13)Volker Georg Hummel, 앞의 책, 57쪽 참조.  14)발터 벤야민, 조형준 역,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16쪽 참조.  15)위의 책, 16쪽.  16)박태원의 소설 실험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단어들을 한 줄에 고딕으로 한 단어를 써 넣곤 하였다. 그러나 성기웅은 그 중에서 일부를 취사선택하고 또 공연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더 넣은 다음, 만화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고, 문자 자체를 이미지화하기도 한다.  17)이재선, 「현대소설의 ‘권태’의 시학」, 『현대문학』, 1997년 5월호, 415쪽.  18)공연의 마지막은 배우 오대석이 소설의 마지막 연재부분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서 구보의 진정한 행복은 바로 좋은 소설을 쓰는 것임이 명시된다. “참말 조흔 소설을 쓰리라. 번을 드는 순사가 모멸을 가져 그를 훑어보았서도,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생각에 조고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대본 94쪽)고 밝힌다.

    4. 맺음말

    성기웅이 연출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무대에는 수많은 문자들이 씌어 진다. 우선 연출과 드라마투르그(Dramaturg)가 원작 소설에 대해 연구한 내용과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이고 문화적 맥락을 재구성한 정보가 막간 막간에 사진과 함께 문자들로 영사된다. 이는 연출부의 글쓰기 과정에 속한다. 3장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공연의 중심화두가 문자로 제시되고 이는 다시금 이미지로 변주되면서 구보 산책의 마무리에 문자이미지의 폭발로 극대화된다. 문자의 이미지 즉 글쓰기 과정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서술자도 구보와 태원으로 분열될 뿐 아니라 거기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합류하여 서술주체 분화의 확산으로 이루어진다. 배우는 걷기, 그림 그리기, 바느질하기, 춤추기 등을 통해 무대 위에서 몸으로 글쓰기를 수행한다. 그 외에도 캐리커처, 만화,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한 영상이미지는 배우 몸의 퍼포먼스를 지원할 뿐 아니라, 그 스스로 다시금 글쓰기의 다른 차원을 구현한다.

    이렇게 성기웅은 상이한 무대스태프들과의 협업으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작품 생산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재구성하여 무대화한다. 사소설적인 요소를 강화하여 실제 작가 박태원과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 이상과 김기림을 무대에 불러내듯 구체화하고 그 전기적 정보들을 재구성하여 막간에 각주처럼 제공한다. 그들의 시가 인용되기도 하고 당대를 새롭게 풍미하기 시작한 영화매체 특히 채플린 영화가 인용되면서 공연의 문화적 맥락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분위기를 신문을 인용하여 각주처럼 스크린에 제공한다. 예컨대, 독일의 히틀러 등장, 경제적 빈곤으로 자살한 이발사 부부, 가을에 유행할 패션까지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당대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사진자료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당대 경성의 거리를 영상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구보와 태원이 자주 들르는 카페와 다료의 풍경도 삽화 등을 통해 보조 자료를 제공하고 다시금 무대장치로 구체화한다. 그 안의 분위기도 당대의 서울 사투리와 경상도 어투 그리고 일본어의 다중언어 상황으로 형상화하고 그때 유행했던 음악을 제공한다. 장면전환 음악으로 당시 유행했던 “행복지대”를 틀어 준다든가 카페에 “Ay Ay Ay" 같은 음악을 유성기 풍의 음조로 들어줌으로써,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의 분위기를 80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관객에게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그러기 위해 무대진은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다원공연’이라 칭하며 다양한 막을 마치 바로크시대의 원근법무대(Kulissenbühne)의 배경막처럼 활용하며 다매체의 향연을 벌인다. 이렇게 작품 생산 당대의 기대지평을 충분히 재구성하여, ‘그때, 거기’의 시공간과 사람들의 형상화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의 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에서 오는 흥미로운 관조를 즐기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성기웅이 연출의 글에서 밝혔듯이, 어떤 팟캐스트에서 확인한 바, 이미 소설을 읽고 20대의 젊은 독자들이 “참혹한 불경기 속에서 다니는 직장도 없고 따라서 정해진 일과도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백수 구보씨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대입해 보고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19)고 한다. 소설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공감대를 성기웅은 공연에서 다양한 영상 매체의 유희와 유쾌하고 발랄한 구보의 산책을 통해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오늘날의 관객들은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영화 등의 매체들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한 공연양식 자체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였다.20)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지난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구보의 산책과 태원의 글쓰기 과정 속에는 불안과 우울을 견제하는 명랑한 힘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아직 모든 것은 과정에 놓여 있지만, 땅에 발 딛고 ‘생활’하려는 의지와 ‘행복’을 향한 시도가 관객과 공유할공간으로 열린다.

    19)성기웅, 앞의 글.  20)내가 참석한 두 번의 공연은 모두 객석이 젊은 관객들로 만원이었고 반응도 아주 긍정적이었다. 어느 한 관객은 영화 같기도 하고 연극이기도 한 이 공연이 아주 재미있다고 친구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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