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헤게모니에서 자란 아이들

Young theatre directors under the Soviet heg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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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 논문은 1970년대를 전후로 태어나 소비에트 헤게모니의 간섭을 경험하고 세계연극무대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 리투아니아, 폴란드, 라트비아의 현대연극의 오늘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은 국내의 각종 연극축제를 통해 소개되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니,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 그제고쥐 야쥐나, 알비스 헤르마니스 등이 그들이다. 소비에트 헤게모니가 종언을 고한 지 20년, 무엇보다 연극은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에 대한 수긍할 만한 초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데, 지나간 모순의 시간들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이들 무대는 공통점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급격한 변화가 가지고 온 국가적 정체성의 혼란 따위는 이들에게 전혀 굴레가 되지 않으며, 그들은 역사의 변환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과도기’의 비극적 희생물로 자신들을 지목하는 것에 손사래 치며 오히려 혼란스러운 자신의 세대를 스스로 무대의 중심에 놓는 과감한 패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의 무대는 현대연극의 복잡한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따르거나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현대연극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본 논문은 이들의 대표작품들에 대한 공연비평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지나간 역사에 대한 그들의 연극적 성찰을 유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There are young theatre directors, who try to tell about a contradictory time or a confusing epoch when two ideologies collide within a theatrical boundary. It is true that identical confusion is occurred while their countries become liberated from ideology, however, it is not a matter or does not bother for them at all. Rather, they refuse to be considered as a tragic victim in this transient period of historically converting time, and they are willing to stage portraits of their generation who have gone through the hardship of identical confusion.

    In fact, we can find out some common things in these young theatre directors. They are the ones who were born in around 1970s, have experienced the fall of the Berlin Wall in 1989, and have led to bring new revolution in European theatrical topography: Grzegorz Jarzyna and Kristof Warlikovsky from Poland, Oskaras Korsunovas from Lithuania and Alvis Hermanis from Latvia can be representatively counted in this group.

    If we consider that they might become a recognized figure thanks to describing a cruel confession about themselves and destiny on stage, it is a big misunderstanding. What they contribute is that they success to develop an unique style in contemporary theatre and ultimately enlarge the spectrum of theatrical approach. That is why they never emotionally end up raising up the voice to their father, ancestor or history on stage, but they show rather intellectual and cool-headed character. Their perspective is objective and detached. In order to sublimate the voice and passion into the high level of arts, they call upon not only classical plays but also progressive contemporary plays. Based on it, they boast to show unique context of mise-en-scène carefully created on the basis of receptive context.

    This study aims to deal with the portraits of these young european theatre directors, who have not succumbed to the historical confusion and loss which are mainly brought from the fall of Soviet hegemony, but they are the ones who have rather succeeded to be armed with a sort of theatrical weapon based on this historical agonizing.

  • KEYWORD

    소비에트 헤게모니 ,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 , 그제고쥐 야쥐나 , 알비스 헤르마니스.

  • 1. 서론

    이성이 꼿꼿이 직립하던 스무 살의 청춘에게 소비에트의 수많은 모순들은 어떠했을까? 1970년을 전후로 태어나 소비에트 헤게모니의 오만을 경험하고 연이은 국가의 혼란을 고스란히 떠맡게 된 이 청춘들에게 ‘자유’란 진정 ‘가능성’이었을까? 그리고 그 모순과도 같았던 헤게모니가 종언을 고한 지 20년, 적어도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수긍할 만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하나는 분명 ‘극장’일 것이다.

    에이문타스 니크로슈스(Эймунтас Някрошюс)와 더불어 리투아니아를 발빠른 유럽 현대연극의 종주국으로 이끌고 있는 40대 초반의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Оскарас Коршуновас)의 고백처럼, 두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혼란의 시기에 연극이라는 영토에서 모순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젊은 연극인들이 있었다. 국가 정체성의 혼란 따위는 이들에게 전혀 굴레가 되지 않으며, 그들은 역사의 변환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과도기’의 비극적 희생물로 자신들을 지목하는 것에 손사래 치며 오히려 혼란스러운 자신의 세대를 스스로 무대의 중심에 놓는 과감한 패를 던진다. 그리고 또 이들은 무대와 관객사이에서 자신들의 작품이 제대로 된 의미작용을 일으켜 결국은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1970년을 전후로 태어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유럽 무대에 새로운 연극의 혁명을 발기했던 유럽의 연출가들과 나란히 세계연극의 열렬한 지지와 주목을 받고 있는 이름들이니, 리투아니아의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폴란드의3)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Кшиштоф Варликовский)와 그제고쥐 야쥐나(Гжегож Яжина) 그리고 라트비아의 알비스 헤르마니스(Алвис Херманис) 등이다.

    이들의 무대가 유럽의 현대연극에서 제대로 인정받게 된 배경에는 단순히 스스로에 대한 잔혹한 고백에 있지 않다. 그들의 무대가 현대연극의 복잡한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따르거나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며 현대연극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이 그저 격양된 목소리로 아버지와 역사에 대해 외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인간과 역사에 대해 지적이고 냉철하며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오감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감각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클래식을 불러 들였고, 발빠른 동시대 최전선의 현대희곡과 조우하였으며, 주어진 텍스트를 손에 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각을 담보로 하는 컨텍스트를 아주 세밀한 손놀림으로 요리할 줄 아는 동시대의 예술가들이다.

    아래는 소비에트 헤게모니 속에서, 그리고 그것의 몰락이 가져온 혼란과 고통과 상실 속에서도 낙오되거나 문제아로 남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무기 삼아 잘 자라준 청춘들의 모습이다.

    1)Марина Давыдова, Нравственность-это тоже терроризм, Известия, 05,08, 2004.  2)Марина Давыдова, Нравственность-это тоже терроризм.  3)폴란드는 소비에트 소연방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오랫동안 연방국가 못지않게 소비에트의 정치적 간섭 하에 국가를 가동시켰다. 스탈린이 폴란드를 오랫동안 눈독들인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이전에도 폴란드는 러시아의 정치적 군사적 간섭 하에 놓인 적이 많지만 1944-45년 소련은 폴란드 땅에서 독일 세력을 몰아내고 폴란드 임시정부 수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스탈린은 폴란드를 확실하게 소련의 세력권 안에 두고 싶어 했고, 소련의 간섭으로 1948년 PUWP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어 소련은 직간접적으로 폴란드를 통치하기 시작한다. 결국 1952년에 소련의 체제를 본떠 만든 헌법이 채택되고 폴란드는 스탈린이 주도하는 전체주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된다. 스탈린 사후에서도 당수가 된 기에레크 역시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모델을 소비에트로 상정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연유로 폴란드는 소련식 정치 체제의 간섭 속에서 온갖 피폐를 경험하게 된다. 폴란드와 소련의 역사를 배경으로 본 논문은 “소비에트 헤게모니”라는 키워드 아래 동유럽 연출가들의 작품에 대한 공연비평을 시도하면서 폴란드의 대표적인 동시대 연출가 두 명의 작업을 포함시킨다.

    2. 아브라함과 이삭의 테마

    니크로슈스와 투미나스(Римас Туминас)의 일련의 작업들을 시작으로 90년대 중반 유럽연극의 중심으로 떠 오른 리투아니아 현대연극,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의 최대 수혜자는 코르슈노바스였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들고 30대 초반의 한 연출가가 유럽으로 ‘상경’했을 때, 그는 니크로슈스를 선배로 둔 리투아니아 연극의 ‘새 얼굴’이란 꽤 값나가는 배경을 얻을 수 있었다. 코르슈노바스는 이 배경에 부응할만한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았고, 초기작이었던 <한여름 밤의 꿈>은 젊은 배우들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문짝이라는 작은 소품으로 ‘놀이판’을 연 아이디어 넘치는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니크로슈스와 투미나스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기억 속의 트라우마로 담아내고 심리적 드라마투르기로서의 자기반영성이라는 리투아니아 연극의 특별한 ‘인장’을 만들어 냈다면, 코르슈노바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의 무대와는 다른 속도와 리듬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발명가’이며, 이미지 저편에 속내를 감추기 보다는 외적인 표상으로 드러내길 좋아하는 다분히 ‘유럽적’인 연극의 경향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는 사실주의 극은 물론이고 셰익스피어 극, 부조리 극, 도발적 연극 등을 종횡하며 다양한 연극미학의 가능성을 습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유럽연극이 코르슈노바스에게 건 기대에 걸맞은 초기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5) <한여름 밤의 꿈>은 1999년 코르슈노바스가 연극학교에서 함께 수학했던 동료들과 ‘OKT(Театр ОскарасКоршуновас)’라는 이름으로 선 보인 최초의 공연이었으며, 젊은 배우들이 선보이는 역동적인 신체언어와 활기찬 무대 에너지로부터 니크로슈스와는 다른 또 다른 리투아니아 현대연극의 긍정적 오늘을 목도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출, 무대, 안무라고 하는 포지션을 모두 자신이 거머쥐고 만든 코르슈노바스의 <한여름 밤의 꿈>은 가벼우면서도 시적인 동시에 역동적이며 에너지 넘쳤는데, 몰락한 소비에트 헤게모니의 잔재는 이 젊은 연극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6)

    <한여름 밤의 꿈>의 시작, 그 어떤 무대장치도 없이 오직 16명의 배우들이 방문 크기만 한 두꺼운 나무판자를 들고 무대에 선다.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나무판자를 손에서 놓거나 몸에서 분리시키지 않는다는 규칙 하에, 16명의 배우와 16개의 나무판자는 현실과 꿈의 가벼운 접몽이라는 희곡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리를 생산해낸다. 그들 16개의 나무판자가 만들어 내는 것은 우선 공간이다. 그들은 각각이 혹은 협동해서 젊은 청춘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위한 다리가 되고, 집이 되고, 벽이 되고, 배가 되고, 침대가 되며, 문이 된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주인들과 함께 다른 등장인물들과 싸우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데, 나무판자들은 코르슈노바스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한 여름 밤의 환상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특별한 의상 없이 검은색 작업복을 동일하게 입은 16명의 배우들은 몸으로 숲 속의 수많은 소리들을 만들며 셰익스피어 희곡의 미스터리를 확보해나간다. 숲 속의 금수들이 울고 바람이 윙윙거리며 나뭇잎이 바삭거리면, <한여름 밤의 꿈>은 급기야 객석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OKT’7)를 발기하면서 극장의 과제로 “관객에게 다른 삶, 다른 행동을 위한 생각을 이끌어 내고, 동시대 삶의 리듬에 대답하는, 동시대인들의 현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무대언어의 추구”를 둔다. “연극이란 시간과 관계하는 예술이다”8)라는 오스카라스의 연극에 대한 정의는 극장의 선언문에서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되는 셈인데, 이를 위해 코르슈노바스는 어떤 완고한 미학적 경계 안에 자신의 무대를 가두지 않고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1997), 마르크 라벤힐(Марк Равенхилл)의 <쇼핑엔 퍽킹(Shopping & Fucking)>(1999),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1999), 마리우스폰 마이엔부르그(Мариус фон Майенбург)의 <불의 가면(Огнелики)>(2000),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Мастер и Маргарита)>9)(2000),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2002),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2003), 블라지미르와 알렉 프레스냐코븨 형제들(Братья Пресняковы)의 <희생자를 연기하며(Изображая жертву)>(2005),셰익스피어의 <햄릿>(2007), <말괄량이 길들이기>(2012), 고리키의 <밑바닥에서>(2012)와 같은 일련의 레퍼토리의 제목을 통해서도 증명되듯이 코르슈노바스의 무대는 시적인 것과 도발적인 것을 넘나들고, 잔혹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을 넘나들며 클래식과 동시대 텍스트를 넘나든다.

    이중에서도 OKT극장 설립의 배경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1997)는 코르슈노바스 무대의 ‘현재’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은 리투아니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시기타스 파룰스키스(Сигитас Парульскис)의 시들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 진 작품으로 신화와 현실의 배합을 통해 오늘의 리투아니아 현실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이끌어 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에서 코르슈노바스는 조국의 극작가의 작품을 들고, 소비에트 시절의 리투아니아에 대한 기억을 토해내면서 그 기억의 배면에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한 성경 속 전설을 펼친다. 그가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한 전설을 불러들인 이유는 이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연극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전설은 ‘아들’의 시간의 근원이 된 ‘아버지’의 시간을 추적하면서 무대가 ‘오늘’이라는 시간에 대한 영리한 분석을 시도토록 한다.

    코르슈노바스는 에서 그가 처음으로 제시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 즉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화를 연극 무대 위 익숙한 클래식 텍스트를 통해 다시 한 번 규명하는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발에 구멍이 뚫린 채 내다 버려진 우리시대의 아들 오이디푸스는 ‘오늘’의 모든 고뇌와 죄의 근간을 살피기 위해 아브라함과 아버지의 시대로 가는 고통을 짊어진다.

    무대미술가 유라테 파울레까이쩨(Юрате Паулекайте)가 만든 <오이디푸스 왕>의 무대는 회색빛 놀이터다. 무대 중앙에 회전하고 있는 거대한 시소가 있고 뒤로 정글짐이 서 있다. 무대 앞쪽에 연극에서 가장 많은 메타포를 창출하는 작은 모래밭과 그네까지, <오이디푸스 왕>의 무대는 완벽한 어린아이들의 놀이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놀이터는 꿈속의 시간처럼 회색빛의 음영이 장악하고 있고, 놀이터의 기구는 익숙지 않은 크기로 부풀려져 있어 공포스럽다. 그래서 이곳, 아들 오이디푸스의 모든 비극은 무의식의 두려움이 작동하는 악몽의 현장 같기만 하다. 연극의 시작, 익숙지 않은 의심의 목소리들이 들리고, 코러스 역할로 등장하는 거대한 머리를 이고 있는 흉흉한 괴물인형들의 군집은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와 원작의 물리적인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르슈노바스는 이 악몽의 현장 같은 놀이터에서 배우들의 몸과 놀이기구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온갖 가능한 장면들을 상상한다. 우선 모래밭과 그곳의 흙은 어린 시절 모래 놀이의 재료로, 이오카스테와 사랑을 나누는 밀실의 방으로, 급기야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에 흩뿌리는 살해의 도구로, 결국 혼자 남은 오이디푸스의 죽음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무대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시소는 고문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이디푸스의 고뇌의 무게를 측량하는 기구가 되기도 하며, 또 때로는 오이디푸스의 의심과 절망을 시각화 하는 장치가 된다. 정글짐은 대부분 흉측한 코러스들이 타고 기어오르내리며 불안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는데, 터질 것처럼 복잡한 오이디푸스의 내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코르슈노바스가 상상해 낸 이 회색빛 악몽의 공간-놀이터에 양복 입은 신사가 서 있으니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다. 넥타이에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코르슈노바스의 젊은 오이디푸스는 무대에 등장하며 바쁘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는 극의 시작부터 뭔가에 쫓기듯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다. 로부터 시작된 코르슈노바스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화,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를 <오이디푸스>에 적용시킨다면, 이 양복 입은 신사는 부모로부터 죽음을 선물 받은 젊은 세대에 대한 환유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를 물려받은, 혹은 아버지가 벌려놓은 해결되지 않은 온갖 문제들을 끌어않은 이 시대의 불행한 청춘인 것이다. 그러나 코르슈노바스의 양복 입은 신사가 환유하는 것은 단순히 죄 없는 순수한 희생양에만 귀착되지는 않는다. 불만스럽고 폭발할 듯 짜증을 내며 시종일관 시계를 들여다보는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는 다르게 자신과 관련한 모든 비밀을 묻고 이곳으로부터의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는 그 어떤 무대 위의 오이디푸스보다도 급하고 오만하다.

    어른들이 벌려놓은 악몽과 같은 시간의 정체로부터 격리된 젊은 세대, 코르스노바스의 언급으로부터 유추해 보자면 를 잇는 코르슈노바스의 아버지와 아들의 테마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라이오스 왕과 오이디푸스보다는 목동과 오이디푸스를 통해 구체화 된다. 이는 무대 위에서 오이디푸스의 오만과 절망과 그리고 급기야 그의 죽음까지 지켜보는 목동의 존재를 통해 포착할 수 있다. 양복 입은 신사가 자신의 반대자를 거칠게 비난하고,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오만하게 확신할 때,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의 앞쪽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어둡게 앞을 직시하는 노인이 있다. 그가 이 놀이터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목동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는데, 그는 한 순간도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객석을 마주 보며 이 악몽의 현장을 지켜본다.

    목동은 놀이터에서 온갖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짐에도 끝까지 침묵한다. 그를 아브라함, 즉 아버지 세대에 대한 초상으로 상정할 때, 아버지의 침묵은 라이오스 왕처럼 ‘죽음’이 가지고 온 어쩔 수 없는 침묵이 아닌, 방황하고 의심하는 아들 앞에서의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침묵하는 아버지의 세대에 대한 환유로서 연극 속에서 오이디푸스와 더불어 유일하게 ‘꿈’이 아닌 ‘현실’ 속 모습으로 허름한 베이지색 재킷을 걸치고, 오이디푸스의 자만이며 의심이고 불안을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과 함께 목도한다. 코르슈노바스는 아버지 세대가 진실로부터 의도적으로 아들을 격리시키는 현장을 목동을 통해 구체화 하는 셈이다. 목동은 결국 오이디푸스를 산에다 내다버린, 소포클레스의 비극적 스토리의 동참자이자 최후의 목격자에 다름 아니며, 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가 악몽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은 자기파괴와 해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닐 것인데, 여기가 양복 입은 오이디푸스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접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여 코르슈노바스의 양복 입은 오이디푸스는 결국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이후 악몽의 주인공으로 꿈속에 직접 침잠해 들어간다. 사실 코르슈노바스는 굉장히 복잡한 미로 속에 오이디푸스를 놓아두어 맥락을 쫓아가기 힘든 지점이 있지만,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려는 흔적은 있다. 그것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악몽의 주인공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전과 후, 그의 외면적 모습과 행동에서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포착이 가능하다.

    그 구체적인 장면을 보자면, 해괴망측한 검은색 마스크에 피노키오처럼 긴 코를 한 테이레시아스의 등장 이전과 이후이다.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듣고 싶지 않는 진실을 말하고, 스스로 악몽의 근원이 되어 오이디푸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오이디푸스에게 테이레시아스는 그래서 ‘혐오’의 대상이다. 코르슈노바스는 테이레시아스 입에서 나오는 역겨운 소리와 마스크를 벗어던지자 드러나는 검은 입술의 혐오스러운 외향을 통해 이 ‘혐오’를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셈이다. 그녀는 마치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마녀처럼 이 모든 비극을 ‘말’로 만들어내는 부정의 기운인 것이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은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가 악몽임을 방증하는 연극 속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셈인데,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와 한 판 전쟁을 치르며 악몽의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흉측한 외모의 테이레시아스가 역겨운 소리로 예언을 마치는 것을 그저 기다리고만 있지 않다. 그는 테이레시아스의 코를 잡아당기며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예언자와 한 판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예언자는 양복 입은 오만한 신사를 깔아뭉갠다. 이 순간 무대는 무엇인가 폭발한 것처럼 연기로 가득차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빛이 객석 까지 밀고 들어온다. 폭발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코러스의 코와 귀가 녹아 흉측하게 변하고, 코러스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거대한 곰의 왼쪽 다리는 절단된다. 그리고 양복 입은 신사는 헤지고 찢겨진 양복을 몸에 대충 걸치고 악몽의 주인공으로 선다. 이 악몽의 주인공이 된, 스스로 악몽으로 들어가 진실을 알고자 했던 오이디푸스 앞에서 객석을 직시하며 앉은 목동은 여전히 침묵하고 말이 없는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화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까발려지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모든 사실을 안 후, 모래밭의 악몽으로부터 깨어난다. 시소의 가장 높은 곳에서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된 인간을 전경화하고 있는 그가 양복을 입고 오만했던 신사 오이디푸스다.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라면 코러스의 지휘자로서 시종일관 그의 옆에서 그를 지지했던 슬픈 곰인형과, 악몽에 대한 환유로서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모든 삶은 죽음의 날로 끝이 날 것이니 기다리라”는 운명의 곡절에 대한 코러스들의 탄식일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또는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적용된다.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오이디푸스 왕>의 무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밝고 환하다. 스테인리스 빛이 강렬하게 반사되는 무대에 밀가루가 흩날리고, 갖가지 반죽들이 장식된 커다란 쟁반들이 객석과 마주하게 놓여있다.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대대로 이어져온 몬테큐와 캐플럿 가의 원한은 커다란 밀가루 반죽주조용 통을 실어 나르는 레일을 사이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 있는 빵집 주방을 통해 이야기 되어 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첫 인상은 이전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양복 입은 오이디푸스가 꿨던 악몽과는 천지차이다.

    은빛의 빵집 주방에는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각종 식기류는 물론이고 유모차, 빛바랜 군기, 인골, 전화기 등, 주방이라는 공간과는 썩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잡동사니들이 빼곡히 차 있다. 조리대 앞에 보일 듯 말 듯 ‘숨겨 놓은’ 장총과 선반 한쪽에 놓여 있는 웨딩드레스와 흰색 관구(棺柩)는 숨은 그림처럼,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놓은 두 집안의 운명적인 적대에 대한 하나의 복선 혹은 각주처럼 자리한다.

    한 치의 차이도 없이 균등한 모습으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자리한 두 개의 빵집에 대해 연출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생긴 차이점을 전통으로 받아들여 같은 방식으로 증오를 가진 채 살아”15) 가는, “외부에 적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집단들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언급한다. 연출가의 이러한 언급처럼, 연극의 시작은 각각의 주방이 빵이며 갖가지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을 뽐내고 서로를 비아냥거리며 그러다가는 결국 패싸움까지 벌이게 되는 상황으로 확대된다. 이 상황은 진지하다기 보다는 우스꽝스럽고 심술궂다. 그래서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선 이 우스꽝스럽고 심술궂은, 두 집안의 운명과도 같은 경쟁관계를 익살스런 콩트형식으로 보여주는 시작 10분이 흥미롭다. ‘주방’이라는 공간은 ‘밀가루’와 ‘반죽’을 이용한 갖가지 난장에 적극적인 설명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두 집안의, 대대를 거쳐 온 숙명적인 대결구도는 익살스럽게 희화화된다. 도시인의 깔끔한 정장을 입고, 이들의 난쟁이 ‘허리띠 아래’ 이야기까지 풀어내면 두 집안의 유서 깊은 원한은 순간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래서 여기서 ‘빵’과 ‘피자’는 연출의 언급처럼 ‘어른’들의 세대가 서로를 이유 없이 증오했던 것에 대한 패러디에 다름 아닐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 이유 없는 증오로 똘똘 뭉친 한 치의 차이 없는 ‘주방’에서 만난다. 부슬거리는 곱슬머리를 얹은 앳된 로미오와 작은 키에 통통한 몸을 한 어린 줄리엣은 한 순간 서로를 알아보고, 파티가 끝난 아무도 없는 텅 빈 주방의 한 가운데로 서로를 이끈다. 커다란 밀가루 반죽주조용 통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쯤 유모가 줄리엣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이들의 몸은 통에 빠지게 되고 그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비극적 사랑에 함몰된다. 연출은 이 두 젊은 청춘들이 밀가루가 그들이 빚는 증오의 재료이자, 그것이 결국에는 두 가문을 서로 죽게 만드는 독약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챈 젊은이16)라고 말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혹은 아이들이라는 코르슈노바스의 주제의식을 통해서 살펴본다면, <오이디푸스 왕>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떤 설명 없이 아버지로부터 ‘분노’와 ‘증오’를 물려받은 이 시대 청춘들에 대한 환유일 것이다. 코르슈노바스는 공연에 앞서 이 ‘환유’를 지지할 중요한 발언을 하는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를 수행하는 것은 ‘아버지’며 그것을 어떤 설명 없이 수행하는 것은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연출가는 두 집안 사이의 갈등과 반목의 결과가 가져온 청춘들의 죽음이란 곧 한 가문의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모두 양쪽 가문에 유일한 자식”이었고,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가족들도 자신들의 자식과 함께 죽었으며”, 결국 “그들의 부모가 방어하려 했던 전통”18)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들이 만났던 밀가루 반죽주조용 통 위에 앉아 함께 칼을 손에 들고 객석을 향해 찌르면서 끝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칼이 향하는 곳은 진실을 숨기고 이삭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아브라함이며, 자신들이 만든 역사 속에 묵묵히 따르라고만 하고 침묵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테마에 집중하던 코르슈노바스가 <햄릿>을 무대화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선 코르슈노바스의 <햄릿>은 햄릿이 연극 속에서 고민하는 대상의 측면에서 동시대 <햄릿>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지성인으로서 햄릿이 읽는 책이 그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면, 오늘날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들고 하나의 페르소나로서 자신을 스스로 분석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오늘날 동시대 <햄릿>의 가장 주된 경향 중의 하나일 터인데, 코르슈노바스의 <햄릿>이 손에 든 것 또한 저 옛날 셰익스피어 시대 때 햄릿의 손에 들렸을 법한 몽테뉴의 『수상록』도 아니고 지난 세기 햄릿들이 손에 들었던 니체의 실존철학서도 아니며 낭만주의 시대 때 햄릿이 손에 들었을 법한 괴테의 『파우스트』도 아닌 바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이를 위해 코르슈노바스는 <햄릿>의 무대 위에 분장실을 세운다. 분장실에서나 봄직한 거울이 달린 책상이 있고, 극이 시작하면 햄릿을 비롯한 <햄릿>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 앞에 앉아 거울을 보며 “거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치 메아리처럼 무대에 울려 퍼지며 반복되는 이 질문은 코르슈노바스의 <햄릿>이 종국에 하나의 페르소나로서 스스로를 분석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통스런 질문의 과정을 겪게 됨을 암시한다. 그리고 여기서 햄릿은 오이디푸스와 로미오, 그리고 줄리엣을 거쳐 아버지가 만든 세상 속에 내팽개쳐진 아들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극의 시작, 검은 옷을 동일하게 입은 등장인물 속에서 햄릿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고 밝혀지는 햄릿은 일반적인 무대 위에서의 햄릿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여기서 햄릿은 행동하기 보다는 의심하고 질문하고 그러다가 절망하는 나약한 햄릿, 그러한 고민들로 물리적으로도 늙어버린 햄릿으로 등장한다.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불사하고 악몽의 공간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서 거대한 시소 위에 누더기를 걸치고 서 있던 오이디푸스에게서 진실을 알게 된 자의 몸서리치는 자기 환멸이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코르슈노바스의 오이디푸스는 ‘의심하는 자’, ‘알게 된 자’라는 점에서 그는 ‘타인’과 구별되며 영웅의 언저리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다.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칼을 객석으로 내리치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히 ‘희생자’만은 아니었다. <오이디푸스 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코르슈노바스의 <햄릿>을 바라본다면, 수많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늙어 버린 햄릿 또한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를 분석하는 능동적인 주인공의 맥락에 얹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코르슈노바스는 최근 셰익스피어의 <태풍>과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를 무대화 한다. 아직 관람 할 기회가 없었지만, 두 작품은 몇 가지 점에서 각각 코르슈노바스 무대의 ‘변화’를 예상케 한다. 지금껏 무대에서 이야기되어진 <태풍>을 상상할 때, 그리고 중요한 순간 클래식 텍스트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를 이야기해온 코르슈노바스의 이력을 볼 때, <태풍> 에서 그의 해석이 무의미한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에서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코르슈노바스의 <태풍>은 우선 제목부터 <태풍>이 아닌 <미란다>이다. 미란다는 프로스페로, 즉 은둔하며 침묵했던 아버지가 키운 그들의 유일한 미래이자 꿈일 진데, 시대를 보는 코르슈노바스의 시선이 많이 밝아졌음을 어느 정도 포착 가능할 것이다. <밑바닥에서>는 그의 기존 연극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미니멀하고 금욕적이며 심리적”21)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평단의 평가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며 다양한 메타포들로 숨 쉴 틈 없었던 기존의 연극적 방법론으로부터 탈피하는 징후들이다. 그런 점에서 <태풍>과 <밑바닥에서>는 코르슈노바스 무대의 새로운 담론에 대한 기대에 다름 아닐 것이다.

    4)Марина Давыдова, Нравственность-этотоже терроризм.  5)셰익스피어의 테마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자주 무대화하는 것이다. 그는 <한 여름 밤의 꿈>,<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그리고 최근 프랑스의 코미디 프랑세즈와 러시아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Александринскийтеатр)에서 무대화 한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 총 다섯 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화 하였다.  6)본고에서 행한 공연분석은 필자가 실제 관람한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연출의 <한여름 밤의 꿈>(2006, 빌뉴스 OKT에서 관람>,<로미오와 줄리엣>(2004, NET에서 관람) <햄릿>(2009, 시레노스 국제연극제에서 관람), 바를리코프스키 연출의 <(아)폴로니아>(201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관람), 알비스 헤르마니스 연출의 <롱라이프>(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관람), <검찰관>(2003,NET과 2009 뉴리가 극장에서 관람)에 관한 리뷰와,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OKT 극장의 <햄릿>,<오이디푸스 왕>,<한 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실황 동영상, 그제고쥐 야쥐나 연출의 , 뉴리가 극장의 <검찰관>,<라트비안 러브>,<침묵의 소리>,<롱라이프> 공연 실황 동영상을 바탕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7)OKT는 시레노스라는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한 국제규모의 공연예술 축제를 발기하여 리투아니아를 세계 젊은 연극의 교류의 장으로 만든다. 일개 극단이 주관하는 축제가 10년이라는 길지 않는 시간 동안 국제 규모의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물론  <한 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이어지는 연출가 코르슈노바스의 성공적인 작품 행보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엔 모스크바의 NET, 페테르부르크의 발틱하우스, 프랑스의 아비뇽축제, 그리고 독일, 폴란드, 헝가리 등 유럽의 젊은 극장들과의 협업이 있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공동 프로덕션 형태의 협업을 통해 양질의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데 동참하였고, 서로의 작품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 ‘마케팅’도 자처하였다. 시레노스의 해외 초청작에 이름이 올라 있는 로메오 카스텔루치, 하이네게벨스,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 아르파트 쉴링 등이, 그들 서로의 이웃들이자 친구들이다. 신작 <햄릿>을 보기 위해 찾아간 코르슈노바스 극장은 그가 얼마나 대내외적으로 인지도를 넓혀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그 증거였다. 지난 2006년 시레노스 축제 사무국을 처음 찾았을 때, 리투아니아 대성당 근처의 작고 허름한 건물의 사무실 한 칸을 임대해서 쓰던 코르슈노바스는 옛날 얘기가 되었다. 니크로슈스가 말 수 없이 그저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하는 다소 답답하고 고지식한 예술가라면, 코르슈노바스는 자기를 알릴 줄 알고 팔 줄 아는 젊고 패기 넘치는 아티스트였다.  8)Марина Давыдова, Нравственность-это тоже терроризм.  9)위의 책.  10)위의 책.  11)Павел Руднев, “ВыборИсаака” Время новостей, 13,11, 2001.  12)위의 책.  13)Павел Руднев, “ВыборИсаака”.  14)Павел Руднев, “ВыборИсаака”.  15)http://www.seoulscope.co.kr/youth/contents/view.asp?a=644&c=2  16)「‘로미오와 줄리엣’ 내한 공연 연출가 코르슈노바스」, 한국일보, 03,05,2005.  17)Павел Руднев, “ВыборИсаака”.  18)http://www.seoulscope.co.kr/youth/contents/view.asp?a=644&c=2  19)전정옥, 발트해의 풍경들, 『연극평론』, 복간 35호, 연극평론가협회, 2009, 270쪽.  20)afisha.open.by perfomance/16669.  21)http://dramanvk.narod.ru/181011.htm

    3. 신화의 몰락

    코르슈노바스가 유럽연극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지칭한 자신의 동료들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그제고쥐 야쥐나,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 알비스 헤르마니스 등이다. 이중에서 폴란드 현대연극의 선봉자라고 할 수 있는 바를리코프스키와 그제고쥐 야쥐나는 소비에트의 이데올로기적 식민지로서 악전고투를 경험한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불러들이면서 코르슈노바스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동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폴란드 현대사의 질곡은 지도에서도 몇 번이나 사라졌던 오욕의 역사, 히틀러가 600만 폴란드인을 모두 전멸시키겠다고 호언했던 공포의 시간, 소련식 정치 체제의 간섭 속에서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온갖 피폐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질곡 속에서 나고 자란 연출가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무대 위에 불러들이는 방식에 있어 여느 동유럽 국가의 나라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더불어, 그 옛날 피스카토르와 결별하며 연극은 결국 예술이어야 한다고 외쳤던 브레히트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포지션을 한 번도 잊지 않고 현대연극 미학의 최전선에 있다는 점이, 현대연극이 폴란드연극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일 것이다.

    폴란드의 현대사를 조금만 눈여겨보아도 새로운 천년을 전후로 폴란드 사회에는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한 사회적 문제들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여기에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일상의 고민들이 중첩되자, 시민들은 정치가 인간사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었던 역사 속 수많은 우여곡절을 떠올리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괄했었다. 이것은 그라토프스키와 칸토르를 선배로 둔 연극무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위의 야쥐나의 언급처럼 연극 또한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물러”섰고, 관객들은 더 이상 연극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무대로부터 발길을 돌리게 된다.

    폴란드 연극사는 이러한 사회전반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침묵의 긴 터널로 진입한 폴란드 사회를 깨우는 임무를 짊어진 젊은이들을 기억한다. 1997년 1월 18일, 바르샤바의 두 극장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갓 서른을 넘긴 연극연출가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와 그제고쥐 야쥐나가 연출한, 그리스 비극의 공간을 발칸반도에 불어 닥친 전쟁의 소용돌이로 전환한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와 동방과 유럽 문명의 충돌을 그린 스타니슬라프 비트케비치의 <타는 듯한 광기>가 그것이다. 폴란드 연극사는 두 편의 작품을 지목하며 이를 폴란드 연극사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평가한다.

    폴란드 연극의 갱생을 통해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던 이러한 젊은 연출가들은 일치단결하여 동시대 극작가들을 무대로 불러왔으며, 머뭇거리며 방황하는 폴란드의 현대연극과 적극적인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들이 불러들인 동시대 극작가들은 그대로 유럽 연극에 있어서 새롭게 등장한 극작가들의 이름과 맞물렸는데, 폴란드 현대연극이 유럽의 현대연극과 동일선상에 서게 된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무대는 야쥐나의 고백처럼, 폴란드 사회에 도래한 문제들을 무대로 적극적으로 불러들이며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일체의 감상을 걷어내고 구체적이고도 명료한 현실 속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제시하며 침묵하던 도시에서 말하는 자, 질문하는 인텔리겐치아로서의 포지션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폴란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 도래한 이 불명확한 시간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이토록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은 폴란드 사회가 스스로 묻어두려고 했던 현실에 대한 문제점들을 참혹하게 직시하는 구체적인 계기가 된다.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 그제고쥐 야쥐나와 함께 폴란드연극의 갱생에 이름을 올린 연출가로는 표트르 체플랴크, 쟈비그네프 보조자, 안나 아우구스티노비치 등이 있다. 이들의 무대가 그리고 그 무대 속 냉정한 현실인식과 투쟁정신이 폴란드의 불명확한 현실을 개선시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과거 폴란드 역사를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에겐 폴란드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안고 무대를 통해 역전의 기회를 보여주었던 예지 그라토프스키와 타데우즈 칸토르, 콘라드 쉬비나르스키, 요제프 샤이나, 예지 야로츠키와 같은 선배들의 이름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라토프스키와 칸토르 그리고 루파를 거쳐 폴란드현대연극의 3세대에 속하는 연출가 군단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은 국내무대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크쉬쉬토프 바를리코프스키다. 위에서 코르슈노바스가 언급한 ‘새로운 물결’을 이루는 유럽의 연출가 군단 중에서는 가장 연배가 높은 바를리코프스키는 크라코프 연극학교를 졸업하고 90년도 초반부터 크리스티앙 루파, 피터브룩, 베르그만, 스트렐레르 등, 세계 연극의 거장들의 조연출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으며, 2001년 아비뇽페스티벌에서 <햄릿>을 무대화 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바를리코프스키의 최근 문제작 <(아)폴로니아>는 그가 무대 위에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질문들이 매뉴얼처럼 나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할 작품이다. 바를리코프스키는 <(아)폴로니아>에서 줄곧 그가 연극을 통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자초한 부조리한 현대사에 대한 냉혹한 현실인식에 기초한다.

    바를리코프스키는 <(아)폴로니아>에서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안데르센, 존 쿳시, 한나 크롤, 조나탕 리텔, 안제이 차이코프스키, 시비에클리츠키 등, 그리스 비극부터 현대소설까지 무작위 패스티쉬 한다. 여기서 패스티쉬는 바를리코프스키가 하고자 하는 ‘말’ 그 자체이며,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연출의 우선적 수행 행위라는 점에서 무대 위의 수많은 볼거리를 넘어서는 연출적 콘셉트가 된다. 여기서 패스티쉬는 단순히 텍스트들의 조합이라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말을 강조하고 논리를 심고 종국에는 하고자 하는 말이 객석에 반드시 전달되어야 한다는 초목적을 가진 일종의 연출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아)폴로니아>를 비롯하여 바를리코프스키 대부분의 무대를 함께 작업한 무대미술가의 짧은 인터뷰는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아)폴로니아>에 대한 이해는 연출적 행위로서의 ‘패스티쉬’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작품 해석의 가장 중심된 지점이라고 할 것이다. <(아)폴로니아>에서 패스티쉬는 상당히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회 시스템의 허위를 고발해온 기존 그의 무대와 같은 선상에서 살펴본다면 패스티쉬의 맥락은 어렵지 않게 잡힐 것이다.

    한계 지워지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적 특성에는 ‘빈정댐’, ‘조롱’, ‘야유’, ‘비꼼’ 등과 같은 말하는 ‘본새’가 있다. 이 말하는 본새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 즉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는 행위에 다름 아닌데, 바를리코프스키는 <(아)폴로니아>에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말하기 방식을 제대로 따른다. <(아)폴로니아>에서 우선 바를리코프스키가 야유하고 비꼬고 빈정대고 풍자하는 것은 ‘억울함’과 ‘낭만’으로 포장된 역사 바라보기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이차 세계대전 속에서 만들어진 폴란드 역사의 희생신화다. 바를리코프스키는 트레블린카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냉철한 직시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만든 것은 폴란드인의 손이었다고 당당히 말하며 <(아)폴로니아>를 통해 역사의 숨은 양심을 건드린다.

    극의 시작, 바르샤바 게토의 나치들을 피해 25명의 유대인을 숨겨주다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한 아폴로니아 마친스카25)의 일화는 영웅화되고 낭만화된 희생신화를 비꼬기 위해 바를리코프스키가 실제 폴란드의 역사 속에서 가지고 온 대표적 희생신화이다. 마친스카의 희생신화는 그녀에게 공로메달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그런데 그녀가 온 세상을 구했습니까?”, “이 세상이 그래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라는 판사의 질문으로 마무리 된다. 판사의 질문은 곧 현대 역사 속 희생신화에 대한 바를리코프스키의 질문에 다름 아닐진데, 바를리코프스키는 희생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신뢰가 맹목적인 믿음일 뿐이었음을, 결국 희생은 동화도 역사적 위엄도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바를리코프스키는 아폴로니아 마친스카를 지나 그리스 비극 속 영웅들의 희생신화를 전개시키며 플라톤의 『향연』에서 ‘이 세상 최고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알케스티스’라고 한 철학자 파이드로스의 의견에 반기를 든다. 그리스비극 희생신화의 대표적인 인물인 트로이전쟁의 제물로 바쳐진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와 남편을 대신해 죽음을 택한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의 아내 알케스티스의 희생신화는 비꼼의 구체적인 대상이다. 흰색드레스를 입은 이피게니아가 자신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영웅적 면모를 과시할 때, 그녀는 약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과 걸음걸이로 무대를 활보한다.

    마친스카와 그리스 비극의 희생신화는 종국에 위와 같은 대화에서 접목된다. 우선 아드메토스가 돌아온 아내에게 “당신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뒤이어 장교는 “유대인들을 숨긴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각각의 희생신화를 이야기하던 아드메토스와 장교는 동일한 에피소드에서 차례로 질문을 하는데, 이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마친스카다. 희생을 스스로 짊어진 아드메토스의 아내는 곧바로 아폴로니아가 되는 셈이다.

    그리스 신화와 현실 속 희생신화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봉합되면 극의 이해를 위해 그리스 신화 속 아드메토스와 이피게니아 희생신화에 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딸을 희생물로 바치면서까지 속죄하는 아가멤논의 마음을 읽고 이피게니아를 살려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제단에서 칼에 맞아 죽으며 피를 쏟아내는 희생물은 이피게니아가 아니라 사슴이었다. 그리고 알케스티스도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다시 남편 아드메토스에게 돌아온다. 즉, 두 명의 그리스비극의 대표적 희생신화의 주인공들은 죽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 속 이 희생신화는 어떠한가? 아폴로니아 마친스카 희생신화 종막은 어떠한가? 현실 속 장교는 아르테미스 여신과 헤라클레스와는 다르게 아폴로니아 마친스카에게 냉정히 말한다.

    <(아)폴로니아>에서는 수많은 텍스트들의 패스티쉬로 이루어진 바를리코프스키의 이야기처럼, 영상의 적극적인 사용은 물론이고 리딩연극, 잔혹극, 도발적 연극 등 수많은 신구의 연극 양식들이 총 망라된다. 물론 이러한 형식이 새롭고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대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깬 채 전방 위의 인접 예술장르를 편견 없이 수용하고 스스럼없이 그것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자 그것은 바를리코프스키의 무대에서 마치 규칙처럼 극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예를 들어, <(아)폴로니아> 2부는 전혀 다른 연출적 콘셉트로 문을 여는데 일종의 ‘리딩연극’의 형태를 하고 있다. 딸 이피게니아를 희생시킨 아버지 아가멤논이 독일과 소련의 전투에 참여한 군인의 자격으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전쟁과 살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는 평균 4.6초마다 한 명이 죽어나가던 전쟁에서 당신도 그 숫자의 희생양일 수 있다고 위협하며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었던 살인과 폭력의 당위성에 대해 관객들의 동의를 구한다. 그리고 이어 희랍비극의 희생신화를 깡그리 무너뜨렸던 핏빛의 무대에 강연대가 세워지고, 현대식 복장을 한 한 여인이 강연노트를 들고 관객 앞에 마주선다. 이 여인 또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형태의 살인에 대한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발표하는데, 그녀는 꽤 긴 시간동안 자신의 주장을 강단 있게 설파한다. 그녀의 강연은 ‘주장’을 하고 혹은 ‘팩트’를 전하는 식의 꽤 노골적인 형태로 진행되며 그 주장들은 명확한 메시지이자 주제로 관객들에게 수용된다.

    40대 중반의 깡마른 체격의 이 여인은 자신이 마치 빨간 피터 같다고 농담을 하며 강연을 시작한다. 그녀는 존 쿳시의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코스텔로다. 인류가 행했던 또는 행해오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살인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수치를 읽어 내려가며 코스텔로는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한 폭력의 실체를 환기시킨다. 동물학대에 관한 어마어마한 수치는 곧바로 1924년과 1945년 사이에 트레블린카 수용소에서 죽은 150만 명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인간의 하찮은 죽음의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코스텔로는 이 엄청난 수치의 죽음의 원인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나치즘의 잔혹함에 두지 않는다. 그녀는 폴란드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하는 것은 계획된 무지였으며, 그것은 독일의 저지른 죄악하고 다를 바가 없다는 날카로운 통찰에 다다른다. 즉, 계획된 무지에 의해서 생존의 유용한 메커니즘으로 침묵했던 역사 속 수많은 살인은 ‘살인’에 대한 아가멤논 고백 속의 물리적 살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논지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은 곧바로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며 코스텔로는 현대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거대하고 공격적인 집단적 노력을 통해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바로 이곳이 도살장에 다름없다는 주장으로 연설을 마무리 한다.

    2부에는 아폴로니아의 이야기와 동명소설인 크랄의 『(아)폴로니아』가 아가멤논의 고백과 코스텔로의 강연 사이 혹은 후에 삽입되면서 폴란드 역사 속 희생신화의 뒷이야기를 이어간다. 여기서는 크랄의 소설 속의 한 장면이 무대에서 극화되는데, 위대한 희생신화의 주인공인 아폴로니아 마친스카에게 수여하는 메달을 대신 받으러 온 그녀의 아들 스와벡의 이야기다.

    살아남은 25명의 유대인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리프카 부인과 아폴로니아의 아들 스와벡의 증언과 주장들은 희생신화의 뒤에 감춰진 잔혹한 인간의 실체를 확인토록 한다. 이 연극이 종국에 비극이라는 장르를 지향한다면, 두 사람의 증언과 주장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을 것이다. 리프카 부인은 독일군에게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우는 아이를 목 졸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충격적인 기억을 꺼내들며 인간 극한의 이기심을 방증해나간다. 그리고 스와벡은 어린 아들의 곁에 있어야 할 엄마의 자리를 빼앗은 그녀의 희생은 자신의 몸을 판 창녀이자 쓸데없는 감상주의라고 비판한다. 엄마 마친스카의 희생은 자식에게 가한 일종의 살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스와벡의 외침은 4시간이 훌쩍 넘도록 진행된 바를리코프스키의 희생신화에 대한 ‘비꼼’의 정점을 찍는다.

    바를리코프스키의 대부분의 무대가 그렇듯이, 동시대 폴란드 연극의 첫인상이 그러하듯이, <(아)폴로니아>의 무대 또한 빛처럼 환한 거대한 유리 속에 만들어지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유럽의 중산층들이 무대를 건조하게 종횡하거나 객석을 직시한다. 배우의 몸이 만들어내는 농밀한 에너지에 기댔던 그들 선배 그라토프스키와 칸토르의 연기술과는 다르게 <(아)폴로니아>에서 배우의 연기는 삭막하고 건조하다. ‘죽음’, ‘희생’, ‘살인’이 이야기되어지고 보여지는 무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터질 듯한 인간 내면의 감성과는 별개로 <(아)폴로니아>의 ‘죽음’과 ‘희생’과 ‘살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연기는 <(아)폴로니아> 속 희생신화를 비극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리고 배우들의 이러한 연기술은 그리스 비극 속 희생신화와 현실 속 희생신화를 영리하게 교접시키면서 현실 속 희생신화를 깡그리 전복시키고 막을 내리는 ‘내용’적 측면과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죽음’이 과연 희생인가? 그래서 역사 속 수많은 희생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그 희생의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지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그대로 바를리코프스키가 연출적 행위로서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패스티쉬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다름 아닐 것이다.

    바를리코프스키는 무대에서 음악을 무대의 전면에 흐르게 하거나 애초부터 없애버리는 극과 극의 방식을 택한다. 설사 음악을 애용한다고 하더라도 클래식과 팝을 오가며 장르를 한계 짓지 않는 대범함을 보이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러한 모든 특징은 그대로 유럽현대연극의 오늘을 설명하는 지점이었다. <(아>폴로니아>에서도 바를리코프스키는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발견한 팝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무대 위 희생신화의 비극적 무게감을 순간순간 완화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한다. <(아)폴로니아>에서 희생신화에 대한 에피소드가 마무리 될 때 마다 매력적인 중년의 여가수는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가사의 내용과 앞에 전개된 에피소드의 내용을 구지 상관하지 않더라도, 무대를 파고드는 멜로디는 마치 희생신화에 내재된 수많은 질곡의 트라우마를 진정시키는 완화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배우들은 연극이 끝나고 편안한 복장과 자세로 무대 한편에 차려진 캐비닛에 앉거나 누워 중년의 여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희생과 살인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몸으로 전한 배우들과 그것을 목격한 관객들의 트라우마 또한 그녀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는다.

    바를리코프스키와 함께 폴란드 현대연극을 이끌어오고 있는 또 하나의 이름은 그제고쥐 야쥐나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야쥐나는 유럽의 대부분의 연출가들이 그러하듯, 스무 살 초반의 나이에 유럽연극계에 확실히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클래식과 동시대 희곡을 넘나들며 무대가 ‘현재’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하는 야쥐나는 그것과 동시에 무대가 예술임을 한 시도 잊지 않은 채 자신의 미학적 취향을 작품 속에 세련되게 수렴할 줄 있는 연출가다.

    연출가 스스로의 언급처럼, 그제고쥐 야쥐나의 무대는 ‘과거’ 혹은 ‘역사’라고 부르는, 그들의 아버지가 기획하고 운영하였던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현실을 은밀하게 부패시키고 있는 ‘과거’에 직시토록 한다. 파졸리니의 영화 <테오레마>28)를 무대화 한 그제고쥐 야쥐나의 는 과거와 현재, 그들의 역사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그가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품이라 언급할만하다.

    악명 높은 영화 <테오레마>29)를 무대로 가지고 온 야쥐나의 의 마지막은 무대 뒤쪽 영사막을 통해서 보이는 노인들의 대화로 마무리 된다. 파졸리니 영화와의 여러 가지 차별되는 지점 중 하나일 터인데, 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의 혼재가 벌어지고 그것을 마무리하기 한참 애매할 때 이 장면은 연극 가 파졸리니의 그것과 교접하고 또는 상충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해독케 한다. 노인들은 폴란드어를 쓰고 있으며 정해진 이야기의 중심된 테마 없이 그저 혼잣말처럼 대화처럼 이야기를 이어간다. 과거 폴란드가 사회주의 국가였을 때의 기억을 꺼내들고, 그들은 그 시간이 가지고 온 상실과 절망을 넋두리처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기억들 사이사이에 감지되는 것이 있다면, 패망한 사회주의 국가의 잔재를 껴안고 이 땅에 기적과 희망이 도래할 것이라 그들이 아직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테오레마>는 1968년 영화가 발표되었던 시간도 그러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도 영화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금기들이 그것의 종교적인 의미이던 정치적인 의미이던 독해를 지연시킨다. 연극에서도 파졸리니의 위험한 담론들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야쥐나의 은 노인들이 등장하는 마지막 다큐를 시작으로 부르주아 가정에 불어 닥친 성의 향연을 역추적해 들어가면 작품에 대한 이해로 들어가기 위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무대 위에 적막한 거대한 거실이 들어섰다. 거실은 객석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길고 크게 유리창이 세워져 빛을 내 뿜고 있고, 그 앞에서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을 보며 오랫동안 얼굴을 매만지고 있다. 그리고 객석을 마주보고 책상에 앉아 우두커니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그들의 행동은 실제 보다 느리고 적막하다. 중년 부부의 아들은 무대 뒤쪽 중앙에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아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비행기 조립에 열심이고, 딸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리고 사진기를 매만지면서 가족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 사이에 검은색 옷을 입고 우울하고 의심스런 시선으로 가족들 사이를 지나며 집안일을 돌보는 하녀가 있다. 거실 위에 전시된 가족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졸리니 영화 속 부르주아 가정과 매치가 된다.

    이처럼 야쥐나의 의 시작은 부르주아 가정에 대한 파졸리니의 이론을 따른다. 따라서 야쥐나의 무대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엄격할 정도로 절제된 간결함은 에서 파졸리니 영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부르주아 가정의 건조와 고독과 외면을 냉혹하게 응시케 한다. 연극 속에서 아내는 하녀가 가지고 온 커피를 남편의 책상 위에 무심하게 내던지고, 딸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마지못해 웃음을 짓고, 아들이 만든 장난감 모형비행기에 아내와 남편은 형식적인 칭찬을 보탠다. 겉으로 보았을 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이 가정은 전형적인 유럽의 중산층 부르주아 가정에 대한 은유일 것이며, 일상의 속도보다 느리게 걷고 앉고 서는 의 인물들로부터 우선 생각나는 것은 무료함이다. 파졸리니의 시선이 여기에 보태진다면, 이 공간은 가족들에게 삶의 안식을 주지 못하고 가족들 또한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가족의 가치가 상실되어가는 공동체 사회의 사막과 같은 공간일 것이다. 공연에 앞서 가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야쥐나는 이 가정이 바로 얼마 전에 자본주의로 돌아선 폴란드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연극이 시작되고 객석에서 한 남자가 등장해서 묵묵히 책상에 앉아 객석을 응시했던 남자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받는 그는 이 거실의 아버지다. 문화와 경제와 정치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질문에도 그는 소신 있게 추호의 동요도 없이 자신의 모든 이론과 철학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와 예술에는 이미 시장경제의 혹독한 원칙들이 개입되고 있으며, 사회는 오직 소비만 하려는 대중의 무리들이 독식해 들어가고 있으며, 선택된 자들은 없거나 모자라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신을 섬기는 교회라는 공간은 이미 오래 전에 인간들이 규칙적으로 만나기 위한 사교의 장소로 변질되었다는 그의 발언에는 확신이 있다. 이러한 질문들 끝에, 객석에서 등장한 남자는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데, 한참 생각한 끝에 그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를 끝으로 연극은 파졸리니의 영화 속 줄거리를 따라 2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무대 뒤쪽에 놓여 있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가족들, 식탁 위에서 내리 쏘는 따뜻한 전등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식사하는 부르주아 가정의 메마른 분위기를 강조할 즘, 이들 앞에 “내일 도착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전보가 도착한다. 전보의 주인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랭보를 읽는 의문의 남자다. 파졸리니의 영화 속 테렌스 스탬프처럼, 남자는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하녀를 시작으로 아내와 딸 급기야는 아들과 이 거실의 아버지와도 성적 관계를 맺고, 급기야 이 비밀스러운 남자와의 성적 교감은 가족들의 무의식의 욕망을 폭발시킨다. 아들은 예술가로서의 욕망을 딸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그리고 엄마에게는 검은 성적인 본능을, 그리고 아버지는 이 의문의 남자와의 만남 이후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일체를 노동자들에게 넘겨준다.

    남자는 누구인가? 영화에서 의문의 남자는 하녀가 그를 부르는 것처럼 ‘메시아’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거실을 폐허로 몰고 가는 악마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와 가족들이 맺는 섹스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서, 그것은 때론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때로는 좌파지식인으로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던 파졸리니의 성향을 배경 삼아 마르크스시즘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영화 속 테렌스 스템프의 의미를 포함하여, 야쥐나의 의 의문의 남자에게 어떤 심각한 메타포를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이들이 신처럼 떠받치는 남자는 신이 부재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불안에 사로잡힌 그들이 만들어 낸 허구일 가능성 또한 높아 보인다. 만약 그러하다면, 야쥐나의 은 신이 사라진 시대 구원받지 못한 폴란드 사회에 대한 투영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야쥐나의 의 문제는 단순히 의문의 남자가 가족들과 맺은 섹스에 있지 않다. 연극의 중심된 순간 또한, 의문의 남자가 그 부르주아 가정에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 이후다. 의문의 남자가 사라진 후 부르주아 가정은 서서히 파괴되어 간다. 아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그림들을 광적으로 그리더니 그것이 분에 차지 않자 그림을 가차 없이 망가트려 버리고, 엄마는 정신 나간 음탕한 여인으로 변하고, 딸은 병으로 온 몸이 망가졌다. 신체만 멀쩡한 불구자처럼 변한 이들과 이들이 기거하는 거실은 현대 사회의 은유로서 복구 불가능한 폐허다.

    파졸리니 영화의 마지막은 아버지를 통해 그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공장을 노동자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사막의 불구덩이에 스스로 몸을 던지며 자기 파괴에 이른다. 하여, 파졸리니의 영화는 단순히 의문의 남자로부터 해체된 부르주아 가정이라는 주제로 귀결되지 않고, 파졸리니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리며 아버지의 죽음은 일종의 자기파괴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구현의 측면에서 이해되어 왔다. 파졸리니의 영화 <테오레마>가 만들어졌던 1968년 공산주의는 분홍빛 희망이 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폴란드 사회에서 그것은 잊고 싶은 악몽의 기억일 것이다. 하여, 연출가는 이 아버지를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연극이 끝나고 아버지는 작품이 시작할 때처럼 객석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거실의 아버지는 자신의 소신 있던 발언을 관객들에게 설파했던 애초의 그가 아니다. 기적을 믿느냐는 객석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병약한 노인처럼 우두커니 서 “우리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거실의 아버지는 붕괴된다. 연극 속 아버지의 붕괴는 그들이 신처럼 떠받쳤던 사회주의의 도그마에 대한 참패일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올 것 이라고 여겼던 ‘기적’의 까발려진 실제의 모습일 것이다. 붕괴된 아버지의 도그마는 이데올로기라는 헤게모니의 참패를 목도하면서도 여전히 기적을 바라며 살고 있는 과거 역사의 조직자들의 희망과 상충되며 종국에 이 연극이 당도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직감케 한다.

    현대폴란드연극이 화려한 그들 선배의 업적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를리코프스키의 <(아)폴로니아>와 그제고쥐 야쥐나의 에서도 보았지만 그들은 다큐멘터리이면서도 픽션인 그들 선배의 연극을 훌륭한 본보기로 삼으며 예술가로서 미를 탐하고 거기에 사회적 문제를 현명하게 직시할 줄 아는 훌륭한 후배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무대는 젊은 관객들을 불러모으며, 연극창작의 쇠락기에 영화와 클럽으로 관객들을 빼앗긴 폴란드연극에 부흥을 가져왔다. 여기에 현실을 직시할 때 찾아올 수 있는 두려움 따위를 극복하며 연극을 통해 자신들을 분석하는 데 서슴지 않는 동시대 폴란드 관객은 폴란드현대연극이 유럽의 중심된 좌표를 만들어 가게 된 또 다른 큰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22)Надежда Нестюричева, “Две равно уважаемых семьи”, в Перми из теста булоч ки пекли, Филолог, Выпуск No. 20.  23)http://sanktpeterburg.bezformata.ru/listnews/gzhegozh-yazhina-ya-lyublyu-menyatsya/12155716/  24)http://topnewstheater.blogspot.kr/2010/07/blog-post_9699.html  25)연극의 제목인 <(아)폴로니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듯한데, 하나는 현실 속 위대한 희생신화의 주인공으로서의 아폴로니아이며, (아)가 삭제된 상태에서 폴로니아는 위대한 폴란드를 뜻하는 라틴어로 볼 수 있을 듯하다.  26)http://sanktpeterburg.bezformata.ru/listnews/gzhegozh-yazhina-ya-lyublyu-menyatsya/12155716/  27)위의 책.  28)“나에게 가까운 사람은 메이에르홀드이자, 체홉이자, 스타니슬라브스키입니다. 그리고 나는 요즘 동시대 영화감독들에게도 매료되어 있습니다. 영화감독으로부터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몽타주의 시선, 내러티브를 각색하는 것, 서스펜스 등(중략) 이러한 개념들은 연극무대에서 그다지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러한 것들은 무대에 아주 유익한 사고를 줍니다.” http://sanktpeterburg.bezformata.ru/listnews/gzhegozh-yazhina-ya-lyublyu-menyatsya/12155716/  29)‘테오레마’는 다양한 현상을 주재하는 추상적 법칙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에서는 신비한 인물 테렌스 스탬프를 가리키는데, 말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이 부르주아 가정이 구원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이 신비한 남자의 손에 달려 있다.  30)http://sanktpeterburg.bezformata.ru/listnews/gzhegozh-yazhina-ya-lyublyu-menyatsya/12155716/

    4. 정치적 공간의 일상적 풍광들

    발트 3국을 여행하다가 보면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에 비해 소비에트로부터 독립 후 불어 닥친 국가적 혼란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가장 잘 극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국민의 상당수가 러시아인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러시아어가 가장 잘 통하는 나라 또한 3국 중에서 라트비아이며, 그러한 동시에 과거 러시아연방국에서 유럽연합국으로의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 또한 가장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다.32) 그들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또는 새롭게 몰려오는 유럽 문화에 대해서도 그다지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연극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오래된 명제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헤르마니스를 필두로 하는 라트비아의 현대연극무대를 지켜보면, 이러한 오늘의 라트비아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라트비아 현대연극을 이끌고 있는 알비스 헤르마니스는 리가의 하키클럽 디나모에서 운동을 하다 건강상 이유로 하키를 그만두고, 리가 키노스튜디오 산하에 있는 영화배우 국립스튜디오를 졸업했다. 이후,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라트비아 국립 컨세르바토리 연극학부를 졸업하며 배우로서 연출가로서 무대와 인연을 맺는다. 컨세르바토리 졸업과 동시에, 17명의 배우와 뉴리가 극장을 발기하고 상임연출가로서 행보를 시작한 헤르미나스는 고리키, 고골, 그리쉬코베츠, 사로킨, 따찌아나 톨스토이와 같은 러시아 작품들을 주로 무대화 하면서 세계무대에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간다.

    헤르마니스의 작품은 ‘과거’라는 시간을 통해 ‘오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동유럽의 연출가들과 닮은 지점이 있다. 그러나 헤르마니스의 무대는 과거를 불러들이는 방식과 태도에 있어 상당히 긍정적인 분위인데, 이 지점이 라트비아 현대연극을 이끌고 있는 헤르마니스와 다른 동유럽의 젊은 연극과의 차별 지점이기도 하다. 2002년에 만든 <검찰관>은 알비스 헤르마니스에게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자, 헤르마스가 다른 동유럽연출가들과 차별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헤르마니스의 <검찰관>에서 흘레스타코프의 사기행각은 소비에트 시절의 공동식당에서 벌어진다. 무대가 열리면 짙은 화장에 풍만한 몸을 한 여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닭에게 먹이를 주며 식당 오픈을 준비 중이다. 이윽고 어수룩하게 생긴 사람들이 식당으로 한두 명씩 모여든다. 게걸스럽게 접시와 수저를 핥는 남자손님들에게 뚱뚱한 남자가 들이닥치더니 연신 땀을 훔치며 마을에 검찰관이 도착하였음을 알린다. 이 뚱뚱한 남자는 도시의 시장일 것이며, 앉아서 밥을 먹는 ‘그 외’들은 이 도시의 관료들일 것이다. 우체국장과 병원장도 있을 것이며, 돕친스키와 봅친스키도 있을 것이다.

    소비에트 시절의 공동식당으로 변한 무대는 헤르마니스의 무대가 늘 그러하듯이, 당시 소비에트 식당을 리얼하게 전시한다. 실제 살아있는 닭이 무대를 종횡하고, 60년대 소비에트 국영기업의 공동식당의 세밀한 풍경이며, 금방이라도 냄새가 날 것 같은 지저분한 소비에트식 화장실은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기록’과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적 의지의 산물일 것이다. 헤르마니스는 이 공동식당의 세밀한 풍경 위에 고골의 인물들을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한다. 리얼한 무대 위에 서 있는 이 만화 같은 인물들은 연극이 다큐멘터리와 시를 오가며 고골적 사실주의 즉, 환상적 사실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물질이 될 터이다 그런 점에서 예로, 일부러 부풀린 가슴과 엉덩이를 달고 만화적으로 캐릭터를 단순화시키며 우둔한 식당 아낙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안나 안드레이예브나의 연기는 다큐멘터리적 ‘기록’과 ‘사실’ 위에 얹어진 판타지가 될 것이다.

    고골의 <검찰관> 저변을 흐르는 주제적 측면에서의 ‘악취’는 헤르마니스의 <검찰관> 무대만들기의 주된 콘셉트로 자리한다. 헤르마니스는 ‘무대’와 ‘역할’ 모두로부터 이 ‘악취’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 흘레스타코프는 여드름 난 얼굴에 땅에 질질 끌리는 청바지를 입고 있고, 오시프는 다리에 숲처럼 자란 털을 시종일관 문지르며, 시장은 비대한 몸을 하고 연신 땀을 훝어내고, 안나 안드레이예브나는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천박한 웃음을 흘리며 흘레스타코프를 유혹한다. 이들은 모두 <검찰관>에서 60년대 소비에트 사회를 상징하는 특별한 무대 위 악취를 생산하는 주체인 셈이다.

    ‘악취’는 작품의 시작 공동식당에서 풍기는 실제 양배추 스프 냄새를 시작으로, <검찰관>의 중심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뇌물’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고골 <검찰관>에서 뇌물장면은 작품이 소유하고 있는 고골의 정치적 풍자가 극에 달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헤르마니스의 <검찰관>에서 흘레스타코프가 도시의 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곳은 소비에트의 공동화장실이다. 흘레스타코프가 화장실에 들어와서 볼 일을 볼 때 관리들이 하나둘씩 주섬주섬 쭈뼛쭈뼛 그곳으로 들어와 뇌물을 건넨다. 어떤 이는 흘레스타코프가 들어간 화장실 문 밑으로 뇌물을 건네고, 또 어떤 이는 흘레스타코프가 볼 일은 보는 화장실의 옆 칸에서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뇌물을 건넨다. 공동화장실하면 상상할 수 있는 시각적 더러움과 후각적 악취를 리얼하게 재현한 <검찰관>의 뇌물 장면은 ‘코미디’라고 하는 작가가 직접 설정한 <검찰관>의 장르를 수긍케 함은 물론, ‘뇌물’에 대한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알레고리를 생산해낸다.

    묘하게도 헤르마니스 <검찰관>으로부터, 더 이상 리얼할 수 없는 악취 풍기는 화장실로부터, 그리고 허름한 소비에트 공동식당에서 풍기는 양배추 삶는 냄새로부터 관객들은 특별한 형태의 ‘기억’과 ‘향수’를 꺼내든다. 헤르마니스가 무대에 불러들인 과거의 시간은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맥락과 더불어 시적이고도 인간적인 향수를 포착해 내기 때문일 것인데, 이것이 헤르마니스와 본론에서 언급한 다른 동유럽연출가들과의 차별된 지점이다. 헤르마니스가 꺼내든 소비에트의 시간은 특수한 역사적 지형을 배경으로 하는 무대에서 찾을 수 있는 ‘분노’와 ‘갈등’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나간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헤르마니스는 <검찰관>을 필두로 60년대 소비에트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무대 위에 지속적으로 불러내는데, “라트비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라트비아 시리즈는 라트비아와 라트비아 사람에 관한 헤르마니스와 뉴리가 극장의 장기 프로젝트로서 <롱라이프(Долгая жизнь)>(2003), <침묵의 소리(Звук т ишины)>(2007), <라트비안 러브(Латышская любовь)>(2006), <할아버지(Дедушка)>(2009), <푸른 언덕의 3월(Марта с голубой горы)>(2009), <검은 우유(Черное молоко)>(2010), 그리고 <무덤에서의 베체린카(Вечеринка на кладбище)>(2010)를 마지막으로, 근 10여년에 걸쳐 완성된다. 스스로의 과거를 “어떠한 이상화나 낭만적 시각 없이”36) 바라보겠다는 헤르마니스의 의지는 라트비아 시리즈에서 다큐멘터리와 시적 감성을 오가며 라트비아현대연극을 동유럽의 여타 나라 연극과 변별시킨다.

    이웃 나라의 훌륭한 선배이기도 한 니크로슈스로부터 헤르마니스가 깨달았던 삶과, 인간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 13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나열되는 <라트비아 러브>는 뉴리가 극장과 헤르마니스의 10여년에 걸친 ‘라트비아 시리즈’의 중심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라트비아 러브>의 공연프로그램에는 연출을 맡은 알비스 헤르마니스를 시작으로, 구나 자리냐 (Гуна Зариня), 바이바 브로카(Байба Брока), 빌리스 다우드지니쉬(Вилис Даудзиньш), 기르트스 크루미니쉬(Гиртс Круминьш), 카스빠르 즈노띠니쉬(Каспар Знотиньш)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중에서 연출을 맡은 헤르마니스를 제외하고 다섯 이름은 그대로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라트비아 일간신문의 한편에 자리하던 ‘구혼광고’가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데, 이로서 짐작하겠지만, 총 13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라트비아 러브>는 특별한 소재를 중심으로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짜낸 에튜드들이 극의 시작이요 끝이다.

    객석에 관객이 들어차면 붉은색 전형적인 무대 막을 배경으로 의자 다섯 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금발의 여인이 간소한 재킷과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해 남은 삶을 함께 할 이성을 구한다는 광고 문구를 읽어 내려간다. 이어 등장하는 4명의 남녀 또한 이 금발의 여인처럼 별다른 연극적 분장 없이 등장해 직접 써 들고 온 광고 문구를 진지하게 읽는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얼마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당신과 가족을 이루기 위해 알고 지내고 싶다는 전형적인 구혼광고이다. 다섯 배우가 읽어 내려가는 광고 문구는 특별한 직업과 나이와 또는 구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때론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고백으로 객석의 웃음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광고는 꽤 길게 진행되는데, 3시간이 넘는 시간 중에 약 10여 분이 다섯 명의 구혼자들의 구혼광고이다. 10여 분 동안 진행되는 구혼자들의 광고는 실제 신문에 있었던 재미난 광고 문구를 옮겨 읽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이자 팩트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3시간 여의 연극은 배우들이 구혼광고로부터 상상해서 만들어진 에튜들이다. 실제 이 광고를 낸 구혼자의 성격은 어떨 것이며, 그의 집은 어떠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만약 이 사람들이 실제 구혼자를 구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만날 것이며 무슨 말을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서 그들의 일상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상상은 늙은 화가의 화실에서 이루어진다. 어지럽게 널린 화판들과 붓, 그리고 물감냄새 가득한 곳에 한 노인이 곱게 나이든 노파를 데리고 등장한다. 자신이 그린 사과를 든 풍만한 여인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노인은 할머니에게 사과를 쥐어주면서 자신의 마지막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젊은 배우들이 창조한 노인들의 몸과 행동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그들의 늙은 몸을 만들어 낸다. 이어지는 장면은 갑작스럽게 연필을 떨어뜨린 노인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잠이 든 것인지 관객이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노인의 몸에 수건을 덮어주고 할머니가 화실을 나가면서 끝이 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보았듯이 나열되는 에피소드는 모두 남녀의 만남, 간혹 남자와 남자간의 만남이다. 그리고 에피소드는 별다른 극적 사건 없이 그들의 서먹서먹한 첫 만남을 짧게 펼친다. 발트의 해변에서 만난 두 젊은 남녀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빛으로 신호를 주면서 어색하게 수영복을 갈아입고 역시나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는다. 클럽에서 만난 남녀는 서로 춤추는 스타일이 달라 어색하게 헤어진다. 노년의 신사는 자신의 집에 초대한 이성에게 거실의 소파며 책들을 일일이 자랑하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구혼광고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13개의 에피소드 속 ‘함께 더불어 살기’는 실패로 끝이 난다. 인생의 종막에 행복을 찾던 두 노년의 남녀도, 종탑 위에서 만난 두 히피 남녀도, 쑥스럽게 발트 해를 바라보며 수영복을 갈아입던 남녀도,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던 두 남녀 모두 여전히 혼자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13개의 에피소드 속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울하거나 비극적인 뉘앙스는 추호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공간에서 일련의 동유럽의 정치적 연극 속에서 발견되는 역사의 피해자, 혼란스러운 동시대 젊은 세대, 숨 쉴 곳 없는 모순의 시간, 그것들이 야기하는 절망과 분노의 흔적을 어렵게 찾을 필요는 없다. 연출가의 언급처럼, 그가 무대로 불러들인 60년대 소비에트는 오히려 그 속에서도 존재했던 ‘일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헤르마니스의 무대는 일련의 동유럽 연출가들의 무대와 차별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전혀 풍자적이지 않고, 오히려 시적인”38) 헤르마니스는 그가 무대에 불러들인 이 60년대를 심지어 “행복한 공동체 사회의 마지막 유토피아”39)라고 부른다.

    그러나 외부적 시선에서 <라트비아 러브> 속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라트비아의 도시화된 삶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은 사람들이 고독과 가난으로부터 자신의 우울한 미래를 보호하기 위한 비극적 풍경”41)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에피소드 속 60년대의 풍경은 순수와 결핍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가의 붉은색 지붕들이 그려진 판넬을 배경으로 싸구려 술과 피다가만 담배에 불은 부치는 두 남녀의 모습, 쇠락한 화실에 몸을 뒤뚱거리며 저렴한 비닐봉투를 손에 들고 등장하는 두 노인들을 우리는 라트비아의 그리 멀지 않았던 역사가 환기하는 정서를 더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트비아 러브>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 비극적일 수도 있는 풍광과 정서에 인간적 온기를 더하며 라트비아의 특별한 사랑을 마무리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배경은 교회인데, 늙은 노파가 교회에서 합창단을 지휘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늙은 선생은 콘서트 도중에 심장이 아파서 쓰러진다. 마지막 에피소드 속 ‘만남’은 유일하게 이 연극에서 ‘행복한 만남’의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그러나 두 늙은 노년의 만남이 상기시키는 것은 앞의 12개 에피소드 속 남녀가 그토록 원했던 이성적 관심이기보다는 인간적 의리 사이에서 생기는 따뜻함과 동정이다. 그녀는 달뜬 목소리로 쓰러진 동료의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괜찮은지 반복해서 묻는다. 그리고 두 늙은 노년은 지금까지 <라트비아 러브>에서 13개의 에피소드를 연기 했던 배우들과 함께 라트비아의 애국가를 부르며 어설프고 별다른 성과 없는 라트비아 사람들의 ‘결합’에 대한 갈망을 마무리한다.

    국내무대에서도 소개된 <롱 라이프>는 라트비아시리즈 작품으로서, “살아 있는 박물관(настоящий музей)”42)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헤르마니스를 유럽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매뉴얼의 중심에 자리토록 하는 데 일조를 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롱 라이프>는 또 다른 라트비아 시리즈의 하나인 <침묵의 소리>와 완벽한 공산사회를 향한 과도기적 단계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평등의 실현, 그것의 구체적이고 이상적 ‘모델하우스’인 소비에트 산 공동주택 코뮤날까를 무대로 공유한다. <롱 라이프>의 코뮤날까 속에 ‘늙음’의 전형이 전시된다면 <침묵의 소리>에는 그 ‘늙음’의 적어도 반세기 이전의 삶이 그려진다. 즉 두 작품은 같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면서 50년의 시간적 차이를 통해 ‘젊음’과 ‘늙음’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위에서 언급한 헤르마니스의 <검찰관>의 공간적 배경이었던 소비에트의 공간식당도 그러하지만, <침묵의 소리>의 공간적 배경인 코뮤날까는 정치적 맥락에서 작품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다. 공동주택이라는 의미의 코뮤날까는 지금까지 다른 여타 무대에서 이데올로기였으며, 이데올로기가 남긴 폐허로서의 ‘악’이며 ‘가난’이며 ‘비인간성’과 같은 인간의 가치 상실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였다. 그러나 헤르마니스는 이 코뮤날까가 연극 무대에서 쌓아온 부정적 ‘의미장’을 일순간에 무너뜨린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공간으로서의 코뮤날까가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탈피코자하는데, 그는 오히려 이 공간에서도 존재했었던 일상의 풍광들을 쫒는다. 그리고 헤르마니스는 지금까지 무대에서 공간으로의 코뮤날까가 한 번도 얻지 못한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헤르마니스가 코뮤날까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새롭게 발견한 풍광들은 위에서 언급한 동유럽의 연출가들과 헤르마니스가 차별되는 시작시점이기도 하다.

    <침묵의 소리>는 ‘한 번도 있은 적 없는 1968년 사이먼 앤 가펑클의 리가 콘서트’라는 소제목으로부터 구체적인 시간적 배경을 명시한다. 마치 반세기 전의 “흑백필름을 들춰 보는 것”43)처럼, <침묵의 소리>는 60년대라는 시간에 대한 노골적인 노스탤지어를 지향한다.

    긴 머리에 선글라스 낀 두 여자가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방을 살핀다. 그들이 찾은 것은 오래된 축음기에서 나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이자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이다. 이어 커다란 안경에 수건을 뒤집어 쓴 여자가 의자 4개를 가져다 놓고 각각의 의자에 헤드폰을 놓아둔다. 이윽고 남자들이 한 명씩 들어오면 여자에게 증명서 같은 것을 보여주곤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데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들었던 음악 또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멜로디다. 1968년의 소비에트 헤게모니 속 젊은 청춘들에게 사이먼 앤 가펑클의 낭만적인 감성은 금기였을 것이다. 하여 연극 속에 이 청춘들은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는 라디오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때로는 옆방에서 간간히 작게 들리는 음악을 주워들으면서, 또는 은밀하게 운영되는 음악 감상실에서 감시를 피해 듣는다.

    <침묵의 소리>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대표곡 , , , 등은 3시간의 공연 내내 별다른 에피소드와의 연관 없이 마치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지속적으로 들린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짧은 치마에 복고스럽게 머리를 올린 7명의 여자와, 수염을 기르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멋을 잔뜩 부린 7명의 남자는 락앤롤과 섹스와 마약에 취한 젊음, 그러면서도 책을 읽고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열정을 불살랐던 젊음,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성장’의 과정을 한 마디의 대사 없이 보여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배우들의 즉흥 에튜드를 통해 실제 삶 속에서 관찰된 디테일한 장면에서부터 다분히 초현실적인 장면들, 거기에 실제 섹스와 마약에 빠졌던 60년대 히피족을 담은 영상물을 공연중간에 화면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까지 폭넓은 방식으로 다뤄진다.

    헤르마니스는 일곱 쌍의 청춘남녀의 성장과정을 두고 “우리 탄생의 역사”45)라고 설명한다. 하여 연극 속에서 감지되는 수많은 가난과 절망으로부터 소비에트 역사의 모순을 억지로 끄집어 낼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는 위에서 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젊은연극들과 헤르마니스의 무대가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한데, 그가 불러들인 소비에트의 60년대는 부박한 역사의 증거로서의 인간의 참담하고 비극적인 시간이 아니라, 소비에트라는 헤게모니 아래서도 흘러갔던 일상의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헤르마니스는 자신의 무대 위 소비에트라는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형적인 코뮤날까의 구조마냥 방 셋을 중심으로 욕실과 부엌이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이 코뮤날까는 헤르마니스의 <침묵의 소리>에서 1968년 라트비아의 청춘들이 사이먼 과 가펑클의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그 공간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마치 세월의 흔적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다. 물건들이 쌓여있는 이 공간은 마치 실재하는 아파트의 내부를 떼어온 듯한,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침묵의 소리>에서 관객들은 프로시니엄 무대에 마련된 코뮤날까를 객석에 앉아서 마주했었다. 그러나 <롱 라이프>에서 관객들은 오래된 물건들로부터 풍기는 쾌쾌한 냄새를 맡으며 이 공동주택의 복도를 지나야 한다. 복도에는 벼룩시장을 방불케 하는 잡다한 물건들이 먼지 쌓인 채 켜켜이 쌓여 실감나게 자신의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검찰관>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까지 다가가며 ‘리얼’로 승부하겠다는 연출가의 전략은 복도를 지나는 관객들이 처음으로 하는 생각일 것이다.

    <롱 라이프>의 공동주택에 배치된 ‘물건’들은 연극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 아닌 실제 현실 속에서 시간을 살다가 연극무대로 차출된 것들이다. 부엌의 낡은 싱크대와 허름한 식탁 그리고 욕실의 낡을 대로 낡아서 색깔이 누렇게 변한 욕조와 변기는 물론이거니와 방방마다 쌓여져 있는 그림, 옷가지, 비닐봉투, 사진기 등등 작은 소품 하나까지 특별한 시간을 담고 있는 실제 현실 속에서 임무를 다한 물건들47)인 것이다.

    “실제 역사”48)를 가지고 있는 무대 위에 <롱 라이프>는 이제까지 무대 위에서 만나보기 드물었던 특별한 주인공들을 선보이는데 기력이 소진된, 죽음으로 가는 카운트다운의 목전에 자리한 망가진 육체의 다섯 ‘노인들’이다. 그들은 늙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별다른 분장 없이도 “초자연적이다”49)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웃긴 것과 끔찍한 것의 믿을 수 없는 균형”50) 위에 ‘늙음’이라는 육체적 증거를 그려낸다.

    앉았다 일어설 여력도 없이 쓰러져 가는 육체는 ‘늙음’의 전형적인 속도로 일상을 버텨 나간다. 라디오 소리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침대에서 일어나고, 떨리는 손으로 찻잔에 차를 따르고, 켜켜이 쌓인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집안을 정리하고, 한 방울 남은 우유를 궁상스럽게 긁어 마시며, 힘겹지만 느릿한 자신들만의 템포로 그들은 익숙하게 일상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늙은 몸들은 도도하다. 늙은 몸들은 헤밍웨이의 초상화와 크람스꼬이의 명화 <미지의 여인>을 방안에 걸어두고, 다 무너져 가는 집이지만 페인트칠을 하고, 사진 촬영과 음악 감상이 취미이며, 옆방에 초대받아가는 길이지만 가장 아껴두었던 여우 털을 걸치고 튤립을 선물할 정도로 지적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을 열고 치직거리는 텔레비전을 끄고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는 <롱 라이프> 속 노인들의 하루를 헤르마니스는 실제시간과 무대상의 지속시간이 동일할 정도의 세밀한 롱테이크로 생산해낸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의 삶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리얼리즘의 깊고 큰 대의일터인데, <롱 라이프>는 사실주의의 세 가지 금기를 노골적으로 깨트리며 서방세계가 만든 리얼리즘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사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리얼리즘 전통의 파괴 제스처는 <롱 라이프>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사실주의’가 유일하게 경배하는, 또는 사실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전달체계인 ‘언어’가 ‘고의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헤르마니스의 <롱 라이프>는 리얼리즘에 대한 첫 번째 금기에 도전한다. 사실 이것은 라트비아 시리즈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라트비아 사랑>, 그리고 <롱 라이프>와 무대를 나누어 쓰고 있는 <침묵의 소리>에서도 그러하지만, 위의 두 작품이 최소한의 말과 ‘음악’을 통해 ‘언어’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면 <롱 라이프>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말’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의 끙끙거리고 주절거리는 소리와 기침 정도인데, ‘말’과 ‘설명’이 오히려 리얼리티의 감각을 손상시킬 수 있다 여겼을지 모른다.

    <롱 라이프>가 범한 리얼리즘의 두 번째 금기는 바로 극을 관통하는 흔한 사건이나 명확한 갈등 같은 ‘고상한’ 내러티브가 부재하다는 점에서다. 익숙한 라디오 소리에 눈을 뜨고, 약을 먹고, 아침을 준비하고, 옆방 친구가 주문한 양복을 재단하고, 유일한 취미인 전자피아노를 조율하고, 그림을 걸어 집안을 장식한다. 그리고 방에 돌아가 잘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프로를 청취하고 잠자리에 든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중간 방 노인의 생일날의 흥겨움과 옆방 노인을 향한 노부의 질투 정도가 되겠지만, 이 또한 갈등이라고 하기에는 사건을 형성할 만한 에너지가 없다.

    셋째는 사실주의가 불경스러워하는 센티멘탈적 감정이다. 이것은 물론 작품의 의도라기보다는 관객의 몫일 터인데, 늙음의 육체적 증거들의 디테일은 종종 유머와 웃음을 반사하고, 급기야는 궁상맞은 늙음의 행동들은 센티멘탈적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제대로 한 발자국 내딛지도 못해 오늘도 아들의 무덤에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늙음’의 절망과, 한 방울 남은 우유까지 싹싹 빨아들이키는 늙음의 궁상과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허름한 잠자리를 그저 단순명쾌한 늙음의 육체적 증거들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 가지 금기의 파괴를 통해서 작가의 세상을 향한 리얼리즘의 시선이 목도 됨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리얼리즘의 편견과는 완벽하게 작별하며 발트 해의 새로운 연극적 ‘리얼’을 제시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설명’의 방법 대신 ‘풍광’으로, ‘말’ 대신 ‘이미지’ 로, 그리고 ‘폭로’ 대신 ‘침묵’으로, ‘성남’ 대신 ‘웃음’으로, 또 진지하기 보다는 장난스럽고, 우울하기 보다는 생뚱스럽도록 발랄하게.

    연출이 <롱 라이프>에서 노인들의 늙음에 대한 어떠한 “연민과 동정이라고 하는 감정을 위한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53) 할지라도, 말라버린 육체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속도들은 <롱 라이프>를 라트비아의 지난한 역사를 배경삼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확장케 한다. 다분히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이었던 <검찰관>과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그렸던 <라트비아 러브>는 그렇다 치더라도, <롱 라이프> 속에서의 이 늙음을 공동체사회의 유토피아로만 봐줄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결국 어쩔 수 없이 어떠한 지점에서 <롱라이프>는 다른 여타 라트비아 시리즈의 작품과는 별개로 코뮤날까의 늙은 육체로부터 “과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끄집어 낼 수밖에 없다. 견고한 시스템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그 부속물로서 순응만을 익힌 이 늙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상적인 평등사회 구현의 실현으로서의 소비에트의 코뮤날까가 이론적 근거였던 이데올로기의 패망 후 어떤 해괴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자식의 무덤에 가기 위해 하루를 천년처럼 채비해보지만 오늘도 역시나  무덤에 당도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한 고장 난 육체의 흔적, 한 점 빛도 들어올 수 없는 집의 구조는 그렇다 치고, 밖에 나갈 기력이 없으니 늙음을 재생할 광합성을 대신해 자구책으로 선택한 자외선램프 일광욕의 궁상, 그리고 내일도 무사히 깨어나 주길 기도하며 아내에게 불러주는 노부의 노랫소리의 절절함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롱라이프>를 포함하여 라트비아 시리즈에서 그가 불러들인 60년대 소비에트의 일상의 저변에서 관객들이 발견하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의 흔적들은 그가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련의 동유럽의 연출가들과 이해의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1)Яна Жиляева, “Херманис и другие животные”, Эксперт, No.43 2010.  32)발트 3국 여행에서 만난 리가는 모든 것이 의외였다. 탈린이나 빌뉴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업도시였다. 호텔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라트비아 화폐는 유로의 두 배 가량 비쌌으며, 물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이한 것은, 탈린과 빌뉴스가 점점 러시아어를 쓰지 않기로 암암리에 약속하면서 소비에트 속국이었던 과거의 시간을 잊고자 한다면, 리가의 모든 상점과 음식점에서 러시아어는 라트비아어만큼 중요한 공용어였다. 명품 숍이 즐비한 리가 중심에 헤르마니스의 뉴리가 극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전환기를 맞은 라트비아 연극의 오늘이 전적으로 1997년 헤르마니스가 예술 감독으로 부임한 결과라 했다. 그들이 손꼽으며 나열하는 헤르마니스의 연극들은 새로운 부흥을 맞게 된 라트비아연극의 자존심일 것이다.  33)Роман Должанский, “Родственников по голове не бьют”, Коммерсант, 21.11.2003  34)Роман Должанский, "Родственников по голове не бьют" .  35)http://www.peoples.ru/art/cinema/director/alvis_hermansis/interview4.html  36)위의 책.  37)Ольга Коршакова, НЕ НАДО ПУГАТЬ ЗРИТЕЛЯ, петербургский театральный журнал, No. 2 [48] 2007.  38)Олег Зинцов, Устойчивый вкус, Ведомости, 21,11, 2003.  39)Кристин Матвиенко, Простые вещи, Петербургскийтеатральный журнал, No. 50 2008.  40)Алена Карась, РИЖСКИЕНАТЮРМОРТЫ, 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 18,04,2008.  41)Кристин Матвиенко, Простые вещи.  42)Роман Должанский, “Родственников по голове не бьют”.  43)Алена Карась, “Апология коммуналки”, РГ, 02,05, 2006.  44)Ольга Егошина, “Театр должен давать надежду”, Новые Известия, people, 21.11.2007  45)위의 책.  46)위의 책.  47)사실 무대에서 이 공간은 20세기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지방색’으로 ‘애용’되었었다. 해서 공간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정치적 메시지를 확보하며 매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레프도진의 <형제자매들>과 <모스크바 합창단>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48)Дина Годер, “Сорокин в комиксах”, Газета, -02,05,2006.  49)Алена Солнцева, “Между двух больших традици”, Время новостей, 03,05, 2006.  50)Алена Карась, “Апология коммуналки”.  51)Дина Годер, “Сорокин вкомиксах”.  52)위의 책.  53)Григорий Заславский, “Старость не радость”, НГ, 04,05, 2006.

    5. 결론

    지형도를 통해 무대를 살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을 거꾸로 확인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소비에트 헤게모니를 경험한 이들의 무대는 그들의 오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전통’은 물론이요, 소련이라고 하는 거대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있었던 지난한 ‘역사’며, 거기에 소비에트 패망 후, 이제야 자신들의 지도에 아로새겨졌던 상흔의 역사를 이성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적이고 심적인 여유를 가지게 된 ‘오늘’ 모두를 통과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복잡한 역사의 지형도를 통해 유추해본다면, 부박한 이들 나라의 역사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억울함으로 포장되어 유럽 무대에서 제대로 소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유럽의 젊은 연출가들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세대를 스스로 무대의 중심에 놓는 과감한 선택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역사의 질곡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던 일상의 모습들을 좇는 휴머니티들이기도 하다.

    자국문화와 예술의 중심에 선 이들 연극을 자신들 앞에 놓인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는 신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거리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하면서 새롭게 인식되는 그 모든 것은 위대한 통과의례의 과정일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막론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희로애락은 무대의 오랜 소재였다. 동유럽 연극 속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우리는 그저 변방의 상처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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