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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홍해성의 배우론 연구* A study of the acting theory of Hong Hae-seong
  • 비영리 CC BY-NC
ABSTRACT
홍해성의 배우론 연구*

This study aims at closely reviewing , who is assessed as a person of realism theater, and to identify the essence of his acting theory. Studies on Hong Hae-seong until now focused on discussions about realism dramaturgy and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with Stanislavsky. However, recent researchers raised objections on their influential relationship through close reviews on the dramaturgy of Hong Hae-seong and Stanislavsky's dramaturgy. Based on such preceding studies, this study aims at reexamining the acting theory of Hong Hae-seong. In particular, this study avoids methods that defined Hong's dramaturgy through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with western dramaturgy and examines his dramaturgy as an independent world. In other words, it examines the drama art theory that he accepted and made his own, and reexamines the key factors of his acting theory.

For this, his acting theory was studied by categorizing as the theory on the actor ontology and acting theory. First, in the actor ontology, the issue of the social existence of actors as artists redefined in modern contexts and the awareness of the ego and existence of the actor as a natural person playing the role of a different character than one's own on stage were examined. In the actor acting theory, <stage art and actors>, which is the theory of actor techniques by Hong Hae-seong, and his acting skills that sporadically appears in his critiques and dramaturgy were inspected to reveal that the essence of his actor acting theory is in the naturalness felt by the audience. In addition, his actor theory reveals that it is focused on the issue of expression and forms rather than role analysis and psychological approaches by actors. It is expected that this research will ultimately be a cornerstone for reexamining the modernity issue and realism dramaturgy of Korean theater.

KEYWORD
홍해성 , 배우 존재론 , 연기론 , 한국근대 리얼리즘 연극 , 무대 환상 , 스타니슬랍스키
  • 1. 서론

    해성(海星) 홍주식(洪柱植) 대한 연구는 안광희의 연구1)를 통해 최초의 근대적 전문적 연출가로 평가된 이후 1990년대 중후반 유민영, 서연호, 이상우 등에 의해서 본격적 연구가 진행되었다.2) 무엇보다도 홍해성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는 서연호, 이상우가 엮고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1998년 발간한 『홍해성 연극론 전집』일 것이다. 연극론 전집의 발간을 계기로 하여 홍해성에 대한 연구는 연기론, 연출론, 희곡론 등으로 세분되어 연구되었고 스키지 소극장 및 일본연극인과의 영향관계, 해외연출가들과의 영향관계 등 비교연극학적 연구로도 확대되었다.

    홍해성 연구에 있어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그의 리얼리즘 연극관과 스타니슬랍스키와의 관련성이다. 안광희의 연구 이후 홍해성 연극론의 핵심은 리얼리즘과 계몽주의적 연극관으로 이해되었으며 특히 리얼리즘 연극관의 배경에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간접적 영향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홍재범, 김철홍 등의 연구자는 홍해성과 스타니슬랍스키 연극론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3) 홍재범은 ‘주어진 상황’, ‘사고의 흐름’, ‘앙상블’, ‘즉흥성’, ‘사이’ 등 주요 연극 개념에 대한 두 연극인의 이해와 활용을 대조하면서 유사성과 변별성을 고찰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홍해성의 연극론은 시스템에 대한 영향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의거한 입론 구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4) 김철홍은 홍해성에게 간접적으로 스타니슬랍스키를 전수했다 여겨지는 오사나이 가오루와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관계 자체가 문제시 된다는 점을 들어 간접적 영향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그는 홍해성의 「무대예술과 배우」를 분석하여 ‘형조의 배우(재현의 배우)’를 주장한 그의 연기론은 오히려 스타니슬랍스키의 ‘체현의 배우’와 근본적으로 상이함을 밝히고 있다.5) 한편, 변미선의 연구는 스타니슬랍스키와의 관련성 속에서만 논의된 홍해성 연극론을 달크로즈, 라인하르트, 코포, 코크랭 등과의 관련성 속에서 재고찰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와의 영향관계는 부정하지 않아, 홍해성이 스타니슬랍스키로부터 영향받은 사실주의의 바탕 위에 다양한 서구 연극론을 받아들여 한국적 연기론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6)

    홍해성과 스타니슬랍스키와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련의 연구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접근해 온 홍해성의 사실주의 연극론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연구자들도 지적했듯이 사실주의 연기론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이나 모스크바 예술극장 식의 작업 방식과 동일어는 아니며, 또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핵심은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등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론을 배제한다면 그 영향관계란 다분히 막연하고 추상적인 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역할에 대한 배우의 체험적 심리적 작업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홍해성의 연기론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은 실제로 적잖은 무리가 있다. 때문에 최근의 연구자들이 지적했듯 오히려 스키지 소극장의 지도자들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을 돌아보거나 유학하며 익혀 온 것을 절충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7)

    홍해성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그의 근대적 연극론의 요체를 파악하고 그의 연극론에 미친 다양한 영향관계가 규명된 것은 주목할 일이다. 그러나 서양연극론과의 관련성 속에서 그의 연극론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연극론을 독자적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식민지 근대라는 조건에 놓인 조선의 현실에서 일본을 경유한 서구 연극론의 강력한 영향은 필연이었을 것이나, 그 영향 관계만으로는 홍해성의 연극세계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 연극인들과 일본 신극인들의 영향을 통해 결국 홍해성이 생각한 연극이 무엇인지,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배우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독자적 세계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에야 우리 근대 연극론의 시작과 주요 쟁점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고는 선행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홍해성의 배우론을 재점검하고자 한다. 영향관계를 배제하고 논하기는 어려우나 단순히 영향의 원천을 밝히는 것을 지양하고, 홍해성이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만든 연극예술론, 특히 그의 배우론의 핵심을 독자적 예술관으로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그의 배우론은 다시 배우의 존재론과 배우 연기론으로 나누어 고찰될 것이다.

    배우의 존재론에서는 근대의 맥락에서 재정의되는 예술가-배우의 사회적 존재의 문제를 우선 점검한다. 이것은 홍해성의 예술관, 연극관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고 규명될 것이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제 자신과는 다른 존재, 즉 등장인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연인-배우’의 자아와 현존에 대한 인식도 살펴볼 것이다. 한편 배우의 연기론과 관련해서는 홍해성의 대표적 배우론이자 배우술 이론인 「무대예술과 배우」를 비롯하여 그의 연극론, 비평 등에 산발적으로 나타난 연기론을 살펴, 배우 테크닉으로서의 연기론의 요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특히 그동안 사실주의 연기론,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의 영향 등으로만 설명되어 온 홍해성의 배우론을 그 자체의 독자적 이론으로서 재독함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배우의 역할 창조 원리와 특징을 밝힐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한국연극의 근대성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일이 될 것이다.

    1)안광희, 「홍해성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홍해성론」, 『국문학논집』 13, 단국대학교, 1989., 「홍해성의 <무대예술과 배우론>」, 『강남어문』 7, 1992.  2)유민영, 「해성 홍주식 연구」, 『한국연극』, 한국연극협회, 1994.11; 서연호, 「홍해성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연극』, 한국연극협회, 1994.10., 「홍해성의 연출론 고찰」, 『김기현교수 회갑기념논총』, 1995. 「연출가 홍해성론」, 『한림 일본학 연구』, 한림대학교, 1996; 이상우, 「극예술연구회와 연출가 홍해성」, 『작가연구』 4, 새미, 1997, 「홍해성의 연극론에 대한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8, 한국극예술학회, 1998.  3)홍재범, 김철홍 등의 연구 이전에도 홍해성과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의 영향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상순, 송선호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정상순은 스타니슬랍스키의 한국 유입을 논하는 자리에서 시스템에 대한 일련의 저서가 발행된 시기와 홍해성의 일본 유학 기간 사이의 시차, 홍해성의 스승이라 할 오사나이 가오루와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 등을 통해 간접영향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송선호 역시 당시 스키지 소극장의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이해 상황으로 보았을 때 홍해성이 그곳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정상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한국 유입 양태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송선호, 「홍해성의 연극관 재고(1)」, 『공연예술저널』 창간호,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2001. 참조.  4)홍재범이 두 연극인의 영향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체적 논거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 중 가장 대중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라 할 ‘정서적 기억’과 ‘만약에(Magic If)’에 대한 이해가 홍해성의 연극론에 없으며, 또 가장 기초적 개념이라 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그는 홍해성의 연극론은 스타니슬랍스키나 시스템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사실주의적 무대예술에 대한 개괄적 이해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홍재범, 「홍해성의 무대예술론 고찰」, 『어문학』 87, 한국어문학회, 2005. 참조.  5)김철홍, 「홍해성 연기론 연구-「무대예술과 배우」에 나타난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관계 재론」, 『어문학』 106, 2009. 참조.  6)변미선, 「홍해성의 연기론 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7.  7)스키지 소극장의 두 지도자 중 히지카타 요시는 베를린에서 유학하였으며 오사나이 가오루는 유럽의 최근 동향에 항상 관심을 두고 있었다. 때문에 1924년 1월 25세의 청년 히지카타요시가 42세의 오사나이 가오루를 찾아가 함께 ‘연극실험실’로서의 스키지 소극장을 건설하고자 결심했을 때 그들의 극장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풍의 연극에 머물렀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스키지 소극장의 개관 당시 체홉, 입센을 비롯한 사실주의 작가는 이미 새로운 레퍼토리가 아니었으며, 바로 그 때문에 개관 공연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도 체호프의 작품이 아니라 표현주의 작품인 괴링의 <해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1900년대 중반의 일본에는 유럽 연극을 순회하고 런던 배우학교에서 청강생으로 머물며 발성법, 웅변술, 델사르트식 표정술, 무용, 펜싱, 화장법, 판토마임 등을 공부한 이치카와 사단지의 영향으로 서구식의 배우 훈련법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으며, 오사나이 가오루 역시 자신의 1차 유럽 순방 시 자크 달크로즈의 방법론에 큰 자극을 받아 ‘음악과 무용으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달크로즈식의 인간 교육을 역설하는 글을 1916년에 쓰기도 했다. 오자사 요시오, 명진숙·이혜정·박태규 역, 『일본현대연극사』, 연극과 인간, 2012. 68쪽, 88쪽. 참조. 스키지 소극장의 탄생에 대해서는 스가이 유키오, 박세연 역, 『스키지 소극장의 탄생』, 현대미학사, 2005. 41-48쪽; 오자사 요시오, 명진숙·이혜정·박태규 역, 『일본현대연극사』, 연극과인간, 2012. 68-71쪽 참조.

    2. 배우 존재론

       2.1. 근대 사회에서의 배우 존재론

    홍해성은 그 자신이 스키지 소극장에서 배우로서 연극인생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연극은 복잡한 다각적 결정체이다. 그리고 그 결정체의 핵심은 항상 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연극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명확한 사실이다. 때를 따라서 혹은 문학 혹은 무대장치로 그 종합의 중심이 이동되는 듯이 보이나 그것은 피상적 관찰이요, 그 중심이 배우의 연기를 떠나 본 적은 없었다.”(「연극계의 장래를 위하여」, 『문예월간』, 1932.1)8)고 주장할 정도로 배우예술이 연극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새로운 사회, 즉 근대 사회의 배우는 ‘예술가’이어야만 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예술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자’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배우에 대한 주장은 귀국 후 그가 썼던 그의 주요 논문에서 자주 강조된다. ‘배우는 사회적 기능을 가진 데 의의가 있는 것’(「무대예술과 배우」, 『동아일보』, 1931.9.26)9)이라 단언하기도 하며, ‘배우라는 무량한 존경과 명예를 받을 자는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성직자)이며 일로(一路)의 광명을 투여하는 등대가 되는 자’(「극예술운동과 문화적 사명」, 『동아일보』, 1929.10.15-27)10)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또 「무대예술과 배우」에서는 스티븐의 배우론을 인용하면서 “배우는 진실한 삶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가는 진실한 삶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1)라고 설명한다. 그는 예술가 중 특히 배우에게 부여된 과업은 더욱 엄중하다고 여겨 ‘배우는 복잡한 내면의 쟁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배우가 인생에서 처한 위치는 다른 예술의 그것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무거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연극이 단순한 심미적 의미의 예술이 아니며 특수한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겸대(兼帶)하는 예술’이라는 스티븐의 배우론에 동의한다. 무거운 배우, 진지한 배우, 철학하는 배우, 사회의 교사로서의 배우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홍해성이 생각하는 근대의 배우는 아카데믹하고 지적인 존재로, 사회의 학교라고 할 연극을 통해 민중에게 설교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자이다.

    홍해성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배우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바를 ‘인격’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대의 화려함만을 막연히 쫒거나 유명을 쫒는 당시 배우들의 풍토를 한탄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격임을 강조한다.

    그는 배우로서의 재능이나 외향적 조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반면, 배우로서의 인격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그는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견디지 못하는 인물은 무대예술가로서 대금물(大禁物)이라고도 말한다. ‘일평생의 전업으로 심신을 바치고 예술가적 통찰과 부요불굴(不撓不屈)하는 기백을 구비한 이’가 아니면 무대 예술에 저해가 될 것이라 강조하면서, “무대란 보기에는 화미안일(華美安逸)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의 여간 아닌 고통과 곤란에 저항할 인내심이 없으면 안 된다.”14)고 경고한다.

    그런데 사회에 기여하는, 인격을 갖춘 자만으로는 배우 요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배우는 무대예술의 ‘전문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식을 지닌 자로서의 배우’와 ‘무대 전문인으로서의 배우’는 홍해성의 배우론에 있어서 상호 필요충분조건이다. 전문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는 딜레탕티즘에 빠진 배우는 연기자의 사회적 평가도 떨어뜨릴 뿐더러 배우의 존재에 대한 철학과 연극예술의 사회적 의미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홍해성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특이한 것을 쫒거나 무료함을 달래려는 ‘몽롱한 호기소한기분(好奇消閑氣分)’으로 무대예술을 하려 하는 일종의 딜레탕티즘이다. 예술가연(藝術家然)하면서 낭만적 방랑적 마음가짐으로 겉멋에 도취된 자는 이 길에는 금물이라고 거듭 경계한다. 특히 무대예술이 조선에는 아직 불모인 까닭에 그 앞길이 더 험난할 것이므로, 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예술가만이 이 길로 들어서고 한번 들어서면 최선으로 그 사명을 다하기를 당부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연극운동이 실패한 원인도 바로 배우의 사회적 존재와 역할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홍해성은 체계 없이, 제대로 된 메소드 없이, 제 감정에 취하여 마음대로 발산하는 방식의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연기를 매우 경계하며, 바로 그 때문에 연기자의 사회적 평가가 절하될 것을 걱정한다.

    그가 말하는 전문성은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카데믹하고 연구하는 자세의 연극인, 그러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홍해성의 열망은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우리 신극운동의 첫 길」에서 배우 양성책으로 특히 대학 내 연극 강좌의 설치나 학교 단위의 연극연구회의 활성화를 꼽은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17) 실용적인 배우 교육을 실시하고 무대에 바로 설 수 있는 배우 양성을 절실히 원했던 그이지만, 홍해성은 양적 육성에 앞서 배우의 질적 육성을 중요시했다. 때문에 그는 여러 번 ‘인생 순실(純實)’의 문제를 강조한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진지함과 순수함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의 자세, 인격의 문제로, 다른 표현으로는 내면의 진정성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그가 배우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연구이며 수양이다. 「극예술운동과 문화적 사명」의 한 장을 ‘극장인과 수양’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어 논설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점에 대한 강조를 알 수 있게 한다. “누구보다 먼저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근본적 토대인 극예술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수양함이 없어서는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새롭게 하지 못할 것이며 문화적 사업인 극운동의 기초가 확립하지 못하리라 함이외다”(「극예술운동과 문화적 사명」, 『동아일보』, 1929.10.15-27)18)라고 그는 말한다.

    전문성을 갖춘 배우는 자신의 연기를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연기술을 완벽히 습득한 자이다. 이러한 연기술을 익히지 못한 자, 제 자신을 통어하고 배우기술과 무대 관습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제 감정대로 연기하는 자는 전문성을 갖춘 배우라 할 수 없다. 그의 배우기술론이라고 할 「무대예술과 배우」의 상당 부분이 다양한 극적 상황 속에서 배우가 수행해야 할 바를 나름의 원리와 법칙에 의거하여 서술한 것도, 또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배우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매질(媒質)을 의식적으로 통어하는 재능을 가진 배우’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요약컨대 홍해성이 주장하는 근대 사회의 새로운 배우는 사회의 교사요 사회의 지식인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배우는 인격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했다. 인격과 전문성은 끊임없는 수양과 연구를 통해 갖추어지는 것으로, 시대적 요청으로 문화사업으로서의 연극운동을 해 나가야 할 배우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홍해성은 이러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채 딜레탕티즘이나 예술가연하는 낭만적 기분에 빠져 연극을 하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조속히 전문인으로서의 배우가 양성되기를 여러 글을 통해 강조한다.

       2-2. 무대 현실에서의 배우 존재론

    홍해성은 배우가 운명적 본질적으로 처하게 되는 무대 위에서의 ‘자연인-배우’와 ‘역할-배우’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히 인식하고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홍해성에 의하면 전문인으로서 배우는 ‘자신의 매질(媒質)을 의식적으로 통어하는’ 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연기론의 요체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배우란, 역할을 연기하는 제 자신을 한시도 잊지 않으며 무대에서 항상 이를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통제하는 존재이다.

    홍해성의 연기론은 「무대예술과 배우」에 집약되어 있는데 그 성격은 대단히 실무적이다. 발음법, 준비 운동, 표정연기법, 극적 연기법, 각 상황에서의 실제 적응 법칙, 배우 움직임의 리듬, 군중 연기 등, 「무대예술과 배우」에는 당시 연기자가 무대에서 마주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세부 상황과 그 속에서 실제 실현해야 하는 실무적 차원의 원칙과 방법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홍해성의 서술을 살펴보면 그가 강조하는 배우가 스타니슬랍스키 식의 체현의 배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에서 그는 스티븐이, 현재 존재하는 배우를 모방의 배우, 형조(形造)의 배우, 체현(體現)의 배우로 나눈 것을 언급하면서, 현재의 배우에 가장 적절한 것은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기 환상을 일으켜 자기의 역을 연출하는’ 두 번째 형조의 배우라는 의견을 피력한다.19) 형조의 배우는 참되게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인간과 형조의 배우가 만들어낸 인간은 항상 서로 융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체현의 배우는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 전부를 가지고 역의 인물과 일치한다. 연극 중 참된 인간의 유동을 보게 하므로 이러한 예술은 심미적 기준을 초월한다. 그런데 홍해성이 생각하는 현재 배우에게 가장 적절한 것은 형조의 배우이다. 그는 배우가 무대에서 실제 그 역할로 융화되고 그 역할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이지적으로 연출하는 배우가 되기를 원한다.

    그는 같은 글 안에서 “연기의 그 근본은 인류의 상징적 표현의 형태이다.”20) “근대의 무대의 여러 가지 발견과 여러 가지의 자각한 것을 보건대 모든 연기의 본질은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21)라고 말하며, 배우와 역할이 동화되는 심리적 접근법보다는 역할에 대한 외적인 표현, 표현의 양식/관습, 그 결과로서의 관객의 수용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또 배우는 자신의 신체를 제어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하여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배우는 그 자신이 피아노이며 또한 그 자신이 건반을 뜯게 되는 것”22)이라 강조한다. 메이에르홀트가 ‘배우는 기계이며 동시에 그것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기술자’라고 한 것과 비견할 만한 주장이다. 그는 타이로프, 라인하르트, 메이어홀드를 언급하는 자리에서도 이들이 모두 ‘연극의 새로운 표현양식의 연구’를 고민했으며 그 중에서도 ‘어떠한 공간적 양식화를 취할까’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홍해성이 배우예술을 사도(邪道)가 아닌 학문이요 과학으로 인식시키고자 했음은 앞서 서술한 바 있다. 때문에 그는 배우술이 이성적인 분야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특히 이것을 형식적이고 표현적인 측면에서의 배우기술론, 다시 말하면 무대 연기술의 원칙과 법칙의 제시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배우를 악기로 비유하면서, 직관이 아닌 의식과 인지와 연습에 의해 연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무대의 세계에서 배우가 자기가 맡은 역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자아를 망각할 것인가 또는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이 두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24)고 말하며, 그 중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것은 자아를 망각하지 않고 자신의 신경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춘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지 그 자신이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이것을 배우 코크랭의 스승인 루니에의 일화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루니에는 어느 날 무대에서 연기를 하던 중 자신의 감정적 충동으로 무대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장면은 대 성공이어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고 동료 배우는 그 장면이 성공적이니 계속해보자고 제안했지만, 루니에는 그러한 자연적 충동의 연기를 하지 않고 그 동안 계속해 온 4부분 간박자로 정확하게 끊어 연기하는 방법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이것을 홍해성은 루니에가 ‘자연으로부터 직접 환기케 한 것보다도 그 자신의 예술을 굳게 믿었던 까닭’이라고 설명한다.25) 배우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통어해야 하지 충동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26)

    홍해성이 언급한 두 가지 배우 존재론의 대립, 홍해성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배우는 자기가 맡은 역에서 참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것인가 또는 열정적이며 격렬한 역을 맡아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배우 자신은 자아를 잊지 말고 그것을 통어해 나가야 할 것인가 즉 배우 자신이 그 역에 감동한 바 없이 표현함이 관객을 더 감동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로 두 주장이 대립하여 있다”27)고 설명하는 바는, 부르주아 연극의 탄생 이후 19세기 전반기 유럽 연극에서 자주 대조적으로 언급되던 두 가지 유형의 배우에 대한 논의이다. 즉 개인적 재능과 열정으로 연기하는 감성의 배우와 고전적 테크닉으로 연기하는 이성의 배우이다. 예컨대 뒤메닐과 클레옹28), 탈마와 코크랭29), 모찰로프와 카라티긴30)으로 설명되는 두 가지 배우의 유형인 것이다.31) 그리고 여기서 홍해성은 후자의 연기에 지지를 보낸다. ‘위대한 배우가 관객에게 일루젼을 던져주기 위해서 항상 의지의 통어 하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32)을 홍해성은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홍해성이 배우 존재론에서 강조하는 바는 언젠가 디드로가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바 있는 ‘배우의 역설’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우는 등장인물 자체가 아니라 등장인물을 연기할 뿐이며, 배우를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관객이지 배우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극적 환영이란 관객의 몫이지 배우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이다. 디드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사색과 연구, 그 어떤 이상적 모델에 따른 지속적 모방, 상상력과 기억력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한결같고 고르고 완벽할 것이라 이야기한다.33) 이런 이상적인 배우는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연구하고 터득하는 배우이지 본인이 체험하는 배우는 아니다. 차가운 지성과 역할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 연기하는 배우인 것이다.

    홍해성은 관객이 보는 무대의 현실감을 강조하였지만, 그것이 무대 위 배우가 무대 현실을 실제로 느끼고 그것을 경험하고 무대 위에서 해당 등장인물로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무대 현실이 실제 현실과 다름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며, 배우 역시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배우로서의 자신 몸과 마음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현실이 아니며 자연을 양식화한 것’34)이기 때문이다. 같은 지면에서 그는 ‘재현과 양식화함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의 예술에 따라 거기에 합당한 조건과 약속이라는 것이 필수조건으로 붙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현실 그대로 자연 그대로 무대 위에다 장치한다면 - 다시 말하면 자연을 무대예술에다가 요구한다면 무대예술은 도저히 성립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그는 제4의 벽을 상정한다고 하여도 거기에 일상의 가구와 살림을 둘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연극의 비자연성, 인위성, 즉 조건과 약속을 강조한다. 자연계의 일부분을 떼어 가지고 와 그대로 무대 위에 갖다놓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라 해도 실상은 재료도, 재료를 제작하는 방법과 방침도, 실제 자연과는 아주 다르다고 강조한다. 스키지 소극장에서 <세자매>를 공연했을 때 실제 백화나무를 가져다 놓았으나 통 진짜 백화나무로는 보이지 않았던 일, 무대에서 말하는 배우가 일상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한다면 정작 관객에게는 조금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설명하면서 홍해성이 거듭 주장하는 바는, 무대 위의 진실이 아닌 관객이 보는 진실, 무대 위 자연이 아닌 관객이 보는 자연스러움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한 연극적 조건과 약속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대 배경, 대소도구,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 그 무엇 하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며 그럴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필요한 것은 관객이 보기에 사실적인 것, 그들이 심리적으로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홍해성의 표현으로는 ‘관극자들이 신념을 가지도록 되어야’하는 것이며,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환상’을 사념하게 되는 것’이다.36) 배우가 아닌 관객의 연극적 일루젼, 그것을 통한 관객의 정서적 동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즉, 그가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실 그 자체보다는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사실감은 관객이 느끼는 것이지 배우가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해성은 「연출론에 대하여」에서 ‘관객은 통일된 순미한 정서를 가지고 지금 무대 위에서 전개되어 가는 그 생활 속으로 충분히 동화하여 그것이 심신에 체험할 수가 있게 되면 완전히 양식적인 환상의 작용이야말로 무대예술의 최후의 목적’37)이라고 말한다.

    그는 배우 예술의 위대함을 인간 그 자체가 표현의 수단이 되는 유일한 예술이라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모순 속에서 쟁투를 하며 얻는 고통을 흡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풍부한 감정의 공상과 환상으로 실현하고 때로는 심령의 정말 가운데서 미를 찾는 힘에서 나오는 것인데, 연극이 위대한 것은 그 구성요소로 살아있는 인간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위대한 예술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자가 배우이기에 배우는 그 매개질(媒介質)인 그 자신, 즉 자신의 육체, 신경, 감각을 자유자재하게 조상(造像)할 수 있도록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불어 이러한 배우술은 타고난 재능만으로도 안 되며 천재에게서 볼 수 있는 직관적 움직임으로도 안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연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순간적인 신경 충동으로 움직여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해성에게 있어서 배우는 등장인물의 이상적 형상을 거리를 두고 조상하는 자이며, 이 과업을 위하여 부단한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어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홍해성의 연극론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배우에게 강조되었던 전문성은 무대 현실 속 배우의 존재론에서도 강조된다. 홍해성에게 무대 위 배우로서의 전문성이란 배우로서의 자의식,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매개질로 하여 다른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배우-그 자신’으로서의 존재를 잊지 않는 일이다.

    8)서연호, 이상우 엮음, 『홍해성 연극론 전집』,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8. 55쪽. 홍해성의 글은 모두 『홍해성 연극론 전집』,을 참고하며, 이하 전집으로 표기함.  9)전집, 111쪽.  10)전집, 46쪽.  11)전집, 107쪽.  12)전집, 21쪽.  13)전집, 46쪽.  14)전집, 24쪽.  15)전집, 52쪽.  16)전집, 83쪽.  17)전집, 22-24쪽.  18)전집, 43쪽.  19)전집, 108-110쪽.  20)전집, 75쪽.  21)전집, 94쪽.  22)전집, 95쪽.  23)전집, 96쪽.  24)전집, 96쪽.  25)전집, 97-98쪽.  26)유사한 설명을 홍해성은 「연출론에 대하여」에서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코크랭과 배다튼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전집, 121-122쪽.  27)전집, 96쪽.  28)이뽈리따 클레옹(H.Clairon, 1723-1803)이 나무랄 데 없는 테크닉의 배우라고 한다면 그녀와 항상 대비되었던 마리 뒤메닐(M.Dumesnil, 1713-1803)은 관습을 무시하는 강하고 화려한 열정과 감정의 여배우였다. 디드로는 자신의 책 『배우의 역설』에서 이 두 배우의 연기를 비교하고 있으며 클레옹의 연기를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29)죠셉 탈마(J. Talma, 1763-1826)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기를 했다면 베누아-콘스탄트 코크랭(B. Coquelin, 1841-1909)은 정확한 분석과 차가운 이성에 바탕을 둔 계산된 연기를 했다.  30)모찰로프(Mochalov, 1800-1848)은 낭만주의적 열정으로 연기하는 모스크바의 대표적 배우였으며 카라티긴(Karatygin, 1774-1831)은 뛰어난 테크닉으로 연기하는 페테르부르크의 대표적 배우였다. 비평가 벨린스키는 모찰로프의 연기는 자유주의적이며 카라티긴의 연기는 귀족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31)이것은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술과는 관련지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이다. 물론 메이에르홀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술에 반대하며 코크랭의 연기 전통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스타니슬랍스키 역시 열정과 즉흥의 연기가 아닌 과학적 체계적 배우 연기술을 위해 시스템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32)전집, 98쪽.  33)드니 디드로, 주미사 역, 『배우에 대한 역설』, 문학과지성사, 2001. 21쪽.  34)전집, 118쪽.  35)전집, 120-121쪽.  36)전집, 120쪽.  37)전집, 121쪽.

    3. 배우 연기론

       3.1. 테크닉의 문제

    홍해성은 「무대예술과 배우」를 통하여 당시 연극이론 중에서는 유일한 배우술의 실무적 이론을 대단히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실무적 이론은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분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을 재료로 하여 육화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기보다는, 관객이 보기에 편안하고 무대가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배우의 기술이다. 즉 홍해성 배우술의 첫 번째 특징은 관객의 무대 환상(illusion)을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무대 관습인 것이다.

    배우가 자신의 표현 매개체인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제어하고 통어하고, 그리하여 그 결과 무대 위에서 무대 관습과 조건에 의거하여 의식적으로 구현한 세계를 관객이 사실처럼 느끼고 동화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홍해성은 매우 다양한 무대 상황의 예시를 들어가며 배우 연기술의 실제를 설명한다. 홍해성의 배우론에서는 배우가 무대에서 발성과 호흡을 하는 방법, 무대를 구획하여 이해하는 방법, 무대에서 상대 배우와의 간격을 두는 방법, 대사와 동작의 효과를 논하는 방법 등 모든 방법론의 세부 목표가 수용자인 관객이 그것을 보고 느끼는 효과의 측면을 염두에 두고 서술되어 있다. 예컨대, 무대 구획을 중심으로 배우가 어떻게 서고 앉으며 등퇴장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것은 관객이 배우를 관찰하기에 비교적 편안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배우의 전면을 관객에게 노출하는 방법에 대한 서술이다. 이어서 설명하고 있는, 2인이 등장하면 반드시 2인의 위치와 상호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 역시 관객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관련하여 홍해성은 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한 후에도 반드시 다시 인위적으로 거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제 일상 속에서 대화상대자와 갖게 되는 간격과 달리 무대에서는 무대 너비와 관객의 시야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대 관습과 무대 법칙을 준수하라는 지시이다.

    홍해성의 무대기술론은 많은 부분에서 유럽 근대 프로시니엄 극장의 관습이 축적해온 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무대의 구획에 있어 중심과 주변을 나눈 것, 무대 중심을 푸트 라이트에 가까운 곳으로 상정한 것, 그곳을 주의 집중의 자력을 가진 곳으로 생각하는 것 등이 그렇다. 그는 같은 장에서 계속하여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회전하면 안 된다’라고 하거나 ‘반사면체로 회전할 것’ 등을 당부하기도 한다. 또, 우전문(右前門)에서 들어올 때는 왼손으로 핸들을 잡아 열고 퇴장할 때는 오른손으로 닫으며, 좌전문(左前門)에서 들어올 때는 오른손으로 열고 퇴장시에는 왼손으로 닫으라하는 법칙도 제시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사실주의 연극의 무대 개혁자들이 가장 먼저 타파하려고 했던 무대 관습이다. 푸트 라이트의 제거, 무대 구획과 중심의 타파, 관객에게 되도록 배우 몸의 전면을 오픈하는 관습의 탈피 등은 사실주의 연출가들이 가장 먼저 거부했던 무대관습이었다. 말하자면 오토 브람의 베를린 앙상블, 앙트완느의 자유극장, 스타니슬랍스키의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자신들의 사실주의 무대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파기했던 법칙을 홍해성은 오히려 고수하며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홍해성이 배우 연기에 있어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과장된 연기, 그래서 꾸민 듯 보이는 연기이다. 더불어 법칙 없이 매번 달라지는 연기, 자연적 충동에 기인하는 연기도 경계한다. 즉 신파의 연기, 반복 훈련을 통해 테크닉적으로 완성을 기하지 않는 충동적 배우의 연기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은 무대가 관객에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결과에 있는 것이지 역할에 다가가는 배우의 작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연극론 안에서 끊임없이 ‘관객의 실감’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러움’ ‘인위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주의 연기술, 심리적 연기술과는 다르다. 그가 원하는 자연스러움은 관객이 관극하는 동안 무대와 동화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며, 인위적이고 조건적인 무대 관습을 통해 관객이 모르는 사이 성취되는 무대 환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이’에 대한 설명에도 이를 과장되게 사용하여 제 연기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우들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그는 ‘사이’의 효용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을 미숙하게 사용하여 오히려 분위기를 깨는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그는 “대사의 끝을 받는 것은 흡사히 캐취 볼 하는 것과 같다”39)고 말하면서 주고받는 대사의 템포와 호흡이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사실 그 설명은 다소 막연하다. 그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자의 대사가 끝날 때 그 순간에 급히 자기 대사를 할지 천천히 할지를 잘 알아야 하는데, 너무 속히 하면 상대자의 대사를 파괴하기 쉽고 느리면 공간이 떠서 기분이 깨지고 만다고만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전체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분위기이다. 그리고 그 흐름과 분위기는 배우의 체험이나 상대 연기자와의 정서적 교감이 아닌, 전적으로 제3의 눈, 관객의 관점에 달려 있다. 때문에 홍해성은 배우가 상대 배우와의 관계 속에서 심리적 내적 충동으로 그것을 해결하도록 주장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기에 그것이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만을 논한다. 즉 그의 연기론은 배우와 배우 사이의 심리적 교감이나 배우의 역할에 대한 내적 체험보다는, 관객이 받는 인상, 관객의 무대 환상에 중심이 있는 것이다.

    위의 예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홍해성 연기론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연기, 무대 앙상블을 설명하는 부분도 그것의 결과로서 관객에게 미치는 효과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같은 글에서 홍해성은 배우가 상대자의 동작과 대사가 그치고 자신의 대사로써 답하는 효과를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타인의 대사를 들을 때는 그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표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를 위하여 ‘A. 상대자가 묻는 말을 왜 하는가를 볼 것, B. 그러할 순간에 대사의 뜻을 파악할 것, C. 상대자의 여러 가지 말에 사이를 타서 답할 것’의 그러한 세 가지 단계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육체적 훈련과 심리적 체험으로 거듭하여 제2의 천성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에야 이 술법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작용하게 될 것이며 관객이 그러한 술법이 있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관객이 상대자의 말의 결과를 미리 짐작할 것 같다면, 이럴 때는 상대자가 말을 채 끝마치기 전에 동작과 대사를 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설명은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는 타이밍에 대한 것이며, 그것의 궁극적 효과는 관객이 무대 위의 상황을 실제 처음 오가는 대화로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홍해성은 순수할 정도로 테크닉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무대 관습으로서의 연기 테크닉을 강조하고 중시하는 것은 홍해성 연기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의 연기술은 배우가 역할과 교감하고 인물의 내면을 정서적으로 체험하거나 공감하는 것보다는 형식적이고 기술적 측면으로 그것을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할 것인가에 더 집중되어 있다. 즉 무대 연기에 있어서 관습적으로 통용되어 온 연기 기술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다. 관객 중심의 효과를 중시하는 그의 배우 연기술은 ‘정서의 고조’까지도 테크닉적으로 접근하도록 주문한다.

    매 공연마다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정서적 고양을 표현해 내기 위한 배우의 움직임과 템포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같은 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이라면 두 사람의 이야기 리듬을 대립법으로 전개시키다가 점차 그 리듬을 활기 있게 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26가지 걸음걸이 훈련 항목의 유형(나이, 성별, 신분, 성격적 특징, 병증 등으로 인한 신체적 특징) 역시 각 인물유형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른 ‘걸음걸이의 템포’의 문제에 중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템포를 통해 인물의 정서와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등퇴장에 대한 연습문제도 에너지의 완급, 리듬과 템포 변화에 따른 배우 훈련에 중점이 두어 있다. 다시 말하면 홍해성의 배우 테크닉과 연습 과제는 전적으로 외적 형식과 템포의 문제이지 심리적 체험의 차원이 아니다. 리듬과 템포, 강약과 완급의 조정을 통한 정서와 상황의 표현에 중심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무대예술과 배우」에서 끊임없이 리듬, 음악, 율동 등을 강조한다. 배우의 음악적 기질, 육체적 장애를 제거하는 리듬의 훈련, 나아가 ‘음악의 리듬을 육체의 리듬으로 이조(移調) 시키기 위한’ 유리스믹스도 언급한다.42) 또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율동이 육체적, 심적으로 통어하는 힘을 줌으로 말미암아 기질을 해방하고 음악 구성의 원리에서 육체 운동과 대사의 말하는 데 따르는 극적 동작의 표현에 직접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맥을 발견”43)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가 이렇듯 배우에게 음악적 원리를 비롯한 전문적 테크닉을 익히고 그것이 관객이 보기에 자연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연습할 것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매 공연마다 관객에게 정확성과 신뢰성으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의 표현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가 어떠한 것을 표현할 때 항상 동일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이러한 지식이 필요하다’44)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우 테크닉만이 매 공연마다 관객에게 안정적으로 무대 환상을 제공하고 무대와 관객의 합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이것은 그가 생각한 예술가로서의 배우가 갖추어야 할 ‘전문성’과도 관련된 문제였다.

    요약컨대, 홍해성의 연기론은 배우의 체험과 무대적 체현보다는 연기 테크닉과 무대 관습에 대한 설명에 집중되어 있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정서적 체험이나 상대 역할과의 정서적 교감도 그는 테크닉적인 측면, 즉 관습이나 박자, 리듬 등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배우술의 결과로 관객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연기술은 관객의 연극 환상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며, 그러한 기술적 방법에 통달해야 배우는 무대에서 항상성, 안정성, 나아가 예술성을 확보하는 전문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3.2. 대본 분석 및 연출법과의 관계

    홍해성의 배우 테크닉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리듬, 템포, 대립법, 절분법 등의 음악적 원리이다. 그런데 이것은 배우 테크닉에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작품 해석에서도 강조된다. 그의 희곡작품론이나 연극비평 등을 통해 파악되는 홍해성의 희곡 분석 방식을 보면, 작품 전체의 주조, 분위기, 리듬감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인물의 심리적 동기조차도 극의 전체적인 주조, 분위기 속에서 이해된다.

    예시한 <앵화원>과 <유령>의 분석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극의 흐름과 함께 감지되는 템포와 리듬의 문제이다. 특히 극적 콘트라스트가 박자의 완급 교차로, 희망과 절망의 정서 대비로, 밝음과 어둠의 조명 대조로, 분위기의 급변과 충돌로, 대사의 이질성의 교차로 다양하게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우 테크닉과 마찬가지로 무대 연출에서도 홍해성이 강조하고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리듬과 콘트라스트를 통한 무대 효과의 문제이다.

    이러한 점은 군중 연기를 설명하는 장에서도 나타난다. 홍해성은 군중 연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그것이 지니는 음악적 효과를 강조한다. 「무대예술과 배우」의 7장 ‘군중의 동작’은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홍해성이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군중 장면과 군중의 기능은 사실주의 군중 장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마이닝겐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고전극의 코러스에 가깝다는 점이다. 군중은 극적 동작을 연출할 뿐 아니라 시인의 사상을 전달하고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관객과 무대를 매개한다는 설명이 특히 그렇다. 더불어 그의 군중 장면이 사실주의적 구현보다는 양식적이고 무대 표현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군중은 연출가에게는 여러 수족을 가진 일개의 인물이며 전체를 하나로 간주하게 되어야 한다.”49)고 말하면서 군중의 코러스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대비의 동작으로 장면을 구성하여 효과를 배가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연극적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콘트라스트를 이용한 위와 같은 장면은 대단히 무용적이고 조형적인 효과를 내는 군중 장면에 대한 설명이다. 홍해성은 이러한 방법으로 일반적인 장경도 만들 수 있지만 정서적 효과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형적 군중 장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사실적인 군중 장면보다는 비장미나 장엄미와 같이 비사실적인 장면의 구성에 적합한 방식이다. 마이닝겐 극단이 군중에 속한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과 동기를 고려하여 사실적으로 군중 장면을 구성한 것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것으로, 홍해성의 군중 장면은 오히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나 표현주의의 추상적 군중 장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군중을 하나로 간주하여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은 스타니슬랍스키식 역사극의 군중장면 구성과도 다르다. 뒤에 선 사람보다는 그 앞에선 사람들이 더 큰 스텝으로 전진하는 식으로 뒤-중간-앞의 사람이 다른 보폭으로 움직임으로써 공간이 가득차고 그 전체가 확대된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 전체가 전진한다는 인상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회화적 조형적 디자인이다. 이렇듯, 극 구성의 음악성, 율동성, 조형성, 리듬과 콘트라스트를 통한 인상적 효과 등은 홍해성이 자신의 연극세계를 서술하면서 수없이 강조하고 있는 바이다.

    이처럼 음악과 템포에 대한 홍해성의 관심은 배우 테크닉 뿐 아니라 무대의 전체적 구성, 군중의 운용, 희곡의 분석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연출가를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고도 말한다. 음과 운동으로 전개되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 양자의 임무는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1) 그는 이러한 표현적 극적 방법론이 연극의 장면 구현을 효과적으로 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관객을 극 세계에 몰입시키고 감흥 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대본 분석과 군중 장면을 통한 음악적 조형적 무대 구성에 대한 관심은 홍해성의 연극 세계가 사실주의적 연극에 대한 관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해성은 일본을 통해 그가 접할 수 있었던 동시대 유럽의 다양한 연극론을 흡수하여 나름의 연극론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38)전집, 88쪽.  39)전집, 92쪽.  40)전집, 80쪽.  41)전집, 102쪽.  42)홍해성이 유리스믹스와 달크로즈를 강조하는 것은 오사나이 가오루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오사나이는 1차 유럽 순방 시 자크 달크로즈의 방법론을 접했고 이것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대화체 문장으로 쓴 <작고 새로운 극장으로>라는 글에서 자크 달크로즈의 영향을 인정하면서 ‘음악과 무용으로 인간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다’ ‘음악과 무용으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훌륭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오자사 요시오, 명진숙·이혜정·박태규 역, 『일본현대연극사』, 연극과인간, 2012. 87-88쪽 참조.  43)전집, 101쪽.  44)전집, 102쪽.  45)전집, 177쪽.  46)전집, 179쪽.  47)전집, 234쪽.  48)전집, 234쪽.  49)전집, 104쪽.  50)전집, 105쪽.  51)전집, 102쪽.

    4. 결론

    한국근대연극은 리얼리즘 연극의 확립이라는 과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알려져 왔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근대연극인들의 희곡문학, 연출세계, 연극관 등이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연극의 리얼리즘 문제는 다소 피상적 관점에서 반복 서술되어 온 경향이 적지 않으며, 개별 작가 및 연출가에 대한 연구 역시 리얼리즘을 전제한 채 연구되었다. 그러나 리얼리즘의 확립이 곧 근대의 징표인 것은 아니며, 리얼리즘 연극이 근현대 연극에 있어서 반드시 성취하나 거쳐야 할 과정인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대전제에 가려 개별 연극인들의 독자적 세계를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쉽게 단정하고 재단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제기 하에 그동안 사실주의 연극인으로 평가되어온 홍해성의 배우론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의 배우론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다. 특히 최근 홍해성과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의 관계를 재론한 일련의 연구에 힘입어 홍해성의 배우론을 다시 재점검했다. 본 연구는 서구 연극론과의 영향관계를 통해 그의 연극론을 규명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가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만든 연극예술론, 특히 배우론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다.

    홍해성의 배우론은 크게 배우의 존재론과 배우 연기론으로 나누어 고찰되었다. 홍해성은 연극은 사회의 학교이며 배우란 민중을 이끌어가는 목자이자 등대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배우의 인격과 정신적 자질을 배우로서의 재능보다 중요시 했다. 예술가가 진실을 찾는 사람이라고 할 때 배우는 그 자신의 육체로 그것을 표현하는 유일무이한 예술가이기에, 다른 예술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무거운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더불어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배우는 자신의 육체와 마음을 통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해성은 제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고 자연의 법칙에 좌우되는 배우를 경계하면서, 배우는 엄격한 계산과 법칙에 의해 연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홍해성의 배우 존재론은 배우연기술에 있어서도 무대 법칙과 엄격한 메소드를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그의 배우기술론은 배우의 역할 분석이나 심리적 접근과는 다른, 표현과 양식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리듬, 템포, 대립법, 절분법 등의 음악적 원리를 무대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것은 이러한 방법과 원리가 매번 동일하고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배우를 돕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무대 위 역할을 창조하는 그 자신을 매순간 잊지 않고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이가 배우이어야 하는 것이다.

    홍해성의 배우론은 지금까지 추상적으로 알려져 온 리얼리즘 연극인으로서의 홍해성에 대한 평가에 수정을 가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는 오히려 동시대 유럽의 다양한 연극론을 흡수하여 제 자신의 연극론을 정리한 연극인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홍해성의 연기론이 그의 실제적 연극 실천을 통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실현되었는지, 즉 그의 이론과 실제를 관련지어 고찰하는 문제 역시 홍해성 연극론과 한국연극의 근대성 논구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 가지 당시의 여건상 식민지 조선에서의 그의 연출 작업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그마저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출 작업 및 배우 교육 실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연구의 어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과 실제를 함께 고찰하는 것은 초기 근대 연극인들의 이상과 현실을 밝히고 한국연극의 근대성 문제를 고구하는데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이후 과제로 미루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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