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와 관객반응 ― 헤롤드 핀터의 『배신』을 중심으로

Backward Plot Dramaturgy and Audience Response in Harold Pinter's Betra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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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이 논문은 헤롤드 핀터의 『배신』에 사용된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를 관객반응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극은 처음 1, 2장과 중간 부분의 5, 6, 7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연대기적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드라마터지는 순방향 드라마터지에 비해서 관객에게 상당히 도전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사실 시간의 흐름이 자유로운 드라마터지는 핀터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경험에 기인한 것인데 그가 이러한 영화적 기법을 연극 무대에 전용한 주된 목적은 관객이 극에서 연출되는 사건들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관객에게 객관적 관점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는 관객이 극의 플롯인 제리와 엠마 그리고 로버트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하는 배신들과 그 배신의 기법들에 주목하게 한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이 극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종류의 배신들과 접하게 되고 그 결과 이 극이 배신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인간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배신을 극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극의 처음부터 극의 결말을 알게 하는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는 관객이 극중 인물보다 극의 상황에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됨으로써 관객이 초월적인 관점을 갖게 한다. 이 덕분에 관객은 극중 인물과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보다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극중 인물의 대사가 내포된 뜻을 제공된 정보에 근거하여 추론하고 분석하여 이해하게 됨으로써 제2의 작가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 극의 마지막 장면인 9장에서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좌절감이다. 9년 동안 수 많은 배신이 가능하게 한 그 최초의 배신이 관객의 기대와 달리 너무도 미미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목격한 관객은 그 사소함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관객은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엠마의 모습이 극의 제일 처음인 1장에서와 첨예하게 대비되는 것을 통해 시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배신 역시 경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핀터의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는 객관적 관점을 관객에게 제공하려는 그의 의도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연대기적 극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관객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This essay explores Pinter's anti-clockwise dramaturgy in his Betrayal, focusing on audience response. The play moves backwards in time except Scene 1, 2 and Scene 5, 6, 7, which move chronologically. That is, it begins with Scene 1(1977) where Jerry meets Emma about two years after their adulterous relationship has finished and ends with Scene 9(1968), where their affair begins. Compared with normal plot dramaturgy, this dramaturgy gives the audience challengeable experiences. In the movement of plot from present to past, the influence of the cinematic technique of the flashback is detected. The main goal of employing the backwards plot deployment is to offer the audience an objective perspective of events in the play.

    Thanks to the backward plot dramaturgy, the audience pays more attention to the mechanics of betrayal rather than the sexual aspects of the affair. Ultimately, the audience confronts the generalized and abstracted structure of the theme, betrayal, as a result of experiencing various forms of betrayals that pervade in the play. Furthermore, the audience can analyze and criticize the characters in the play instead of sympathizing with them because of knowing the consequence of the play from the beginning. The last scene(Scene 9) shows that Jerry's betrayal starts from his self-betrayal, which brings out many other betrayals between characters for nine years. The audience is betrayed by the triviality of the incipient nature of betrayal. Finally, the scene also gives the audience an opportunity to witness the effects of time on Emma.

    In conclusion, this essay argues that Pinter's dramaturgy of reversing the timeline plays an important role to achieve the writer's aim of establishing an objective point of view and to allow the audience various theatrical experiences as well.

  • KEYWORD

    헤롤드 핀터 , 『배신』 ,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 , 관객반응 , 제2의 작가

  • 1. 들어가는 글

    베네딕트 나이팅게일(Benedict Nightingale)은 1978년 『배신』(Betrayal)의 공연에 대한 리뷰에서 『배신』은 핀터가 극작가로서의 경력이 퇴보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라고 평을 하였다(46). 그의 평가에 “피상적으로 보기에(seen superficially, 46)”라는 단서가 있는 것처럼 『배신』은 이러한 견해를 상쇄시킬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명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이팅게일이 말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크 바티(Mark Batty) 역시 이 극이 “겉보기에 사소한 삼각관계(seemingly trivial love triangle, 71)"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나이팅게일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핀터의 『배신』이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주된 원인을 극의 플롯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극은 친구사이인 제리와 로버트 그리고 로버트의 아내 엠마와의 삼각관계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신』은 그 플롯에서부터 많은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두 중년 남녀의 불륜, 게다가 그 관계가 이미 2년 전에 끝나버린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만남이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하는 의아함이 있다. 퇴색된 그들의 관계처럼 관객은 지루하고 따분한 공연을 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의 리뷰 후반부에서 나이팅게일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식상한 플롯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핀터가 선택한 극의 시간이 시계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역방향 드라마터지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들을 인용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한 아놀드 힌치리페(Arnold P. Hinchliffe)도 그가 인용한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의 의견을 이용해서 이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극의 이야기 흐름이 역방향으로 흐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작품에는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157).1)

    『배신』은 모두 9개의 장(scene)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1977년 봄, 정오)에서 2장(1장 장면 이후), 그리고 모두 1973년을 배경으로 하는 5장, 6장(5장 장면이후)과 7장(6장 장면이후)이 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들은 역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1977년으로 시작된 극은 제리와 엠마의 불륜이 처음 잉태되는 1968년의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 결과 관객은 제리와 엠마의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을 보면서 극의 전개에 몰입하기 보다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극의 사건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그 결과 극이 순방향으로 진행될 때와는 다른 효과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시간의 방향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극작법은 영화대본을 쓰고 있었던 핀터에게 플래시백(flashback)과 같이 영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친숙한 기법이었음에 틀림없다(Batty, 71). 버나드 듀코어(Bernard F. Dukore)가 지적하듯이 핀터는 그의 영화각본인 『사건』(Accident), 『이동-사이』(The Go-Between) 그리고 『프루스트 각본』(Proust Screenplay)에서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하였다(109). 핀터의 영화기법의 활용은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 다루어 졌던 주제이다. 특히 『배신』에서 사용한 영화기법에 대해서는 오경심의 「영화 기법과 새로운 무대 드라마의 가능성: 헤롤드 핀터의 Betrayal을 중심으로」에서 잘 논의되고 있다.2) 오경심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핀터는 연극무대에 영화기법을 끌어 와서 상당히 흥미 있는 효과를 가능하게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관객의 반응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용한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는 분명 연극 관객에게 상당한 도전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극의 처음에 그 결과를 미리 알게 됨으로써 갖게되는 관객의 당황스러움, 또 무대 위의 등장인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됨에 따라 관객이 머릿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응, 또는 무대 위에서 공연되어지는 장면이 관객의 기대와 다르게 됨에 따라 경험하는 관객의 좌절감등 여러 가지 반응들이 도출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 작품의 역방향 드라마터지를 관객의 반응을 중심으로 추적하여 그 드라마터지의 기능과 효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에베레트 에반스(Everett Evans) 역시 이 작품의 참신함은 모든 사건이 끝난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참조 .  2)핀터의 영화기법의 무대 활용에 대한 것은 박일형의 논문 「물신주의적 분열과 남성유대: 헤롤드 핀터(Harold Pinter)의 배신(Betrayal)」에서도 잘 다루어져 있다. 비록 이 논문의 중심이 슬라보이 지젝의 논의를 바탕으로 남성유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논문의 전반부에 『배신』이 사용한 영화적 장치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 참조. 박일형, 「물신주의적 분열과 남성유대: 헤롤드 핀터(Harold Pinter)의 배신(Betrayal)」, 『문학과 영상』5호, 문학과 영상학회, 2004, 37∼60쪽.

    2.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와 관객반응

       2.1. 영화기법의 무대 활용

    핀터가 『배신』이란 작품에서 사용한 영화기법은 시간상 앞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간의 기술이다. 이러한 기법을 극에 전용한 주된 원인은 박일형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과거의 사건을 “어떤 특정인물의 관점을 거치지 않고 관객들의 눈앞에 직설적으로 펼쳐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43). 다시 말하면 관객들에게 객관적 관점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핀터가 이 작품을 통하여 추구한 객관적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오경심은 핀터의 방법을 그가 기존의 연극에서 사용한 플래시백 기법과도 구별한다. 그녀는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핀터가 지향한 것은 주관적인 색채를 배제한 객관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가 과거를 스스로 말하게 하기”(the past speaks for itself, Brater, 35)위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핀터의 실제 경험을 상당히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Billington 257). 이러한 배경이 핀터가 유독 객관적 관점을 추구한 하나의 원인이 된다. 핀터는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로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필요하였다(박일형, 앞의 논문, 43). 이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과거를 다루는 방법이 야기하게 되는 시사점을 박일형은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과거에대한 감상적인 집착을 버리고 미학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시사점은 과거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핀터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관객들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41).

    이렇게 관객들이 차가운 카메라 렌즈와 같은 객관적 관점으로 대상을 새롭게 보게 하기 위한 기법은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주장하는 ‘낯설게 하기’ 장치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3) 또한 시간이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드라마터지는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추구하는 ‘소외효과’의 영향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사실주의 연극에 반대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여 무대 위의 인물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브레히트, 183). 핀터가 사용한 역방향 드라마터지도 관객들이 극의 결말을 극 처음부터 알게 됨으로써 순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소외효과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출 장치들을 사용하였다. 그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아이들』에서 보면 의도적으로 극이 사실적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무대장치가 없는 텅 빈 무대를 사용하였고 극의 연속성을 방해하기 위해 단순한 나열 방식으로 12개의 장으로 구성하였다. 부자연스러운 높은 조도의 조명도 관객들의 환상을 깨기 위해 사용되었다. 게다가 각 장의 시작에서 그 장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려주는 프로젝터를 사용하였다(Jacobus, 1029). 예를 들어서 극의 1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1장이 시작되기 전에 1장의 줄거리가 소개되고 주인공 억척어멈이 “아들 한 명을 빼앗긴다”라는 중요한 사건을 알려주어서 관객들이 아들을 빼앗긴다는 사건에 주목하기보다 극의 상황을 비판적 사고로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왜냐하면 브레히트가 원하는 것은 관객이 억척어멈의 고통에 동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려고 일종의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파악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송동준, 12).

    이처럼 브레히트는 소외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연극적 장치를 사용하였는데 이와 유사한 장치가 핀터의 『배신』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억척어멈과 아이들』이 에피소드를 집합시킨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배신』도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여러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된 극의 특성상 관객들에게 시간적 배경을 알려줄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브레히트가 극의 시작에 앞서 극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프로젝터를 사용한 것처럼 역방향 드라마터지를 사용하고 있는 『배신』은 시간적 배경을 알리기 위해서 연출가에 따라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나 플래카드 또는 슬라이드 등의 장치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4)

    물론 핀터의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가 브레히트가 사용한 연출법과 완전히 동일한 기능을 한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장치의 목적과 구체적 작동 원리와 기대 효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목적은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사건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하여 그럼으로써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상당히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억척어멈과 아이들』에서 보듯이 극의 소재가 되고 있는 30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도록 연출을 한 것이었다. 한편 핀터의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시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장치이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불륜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배신에 주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덕분에 관객들이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되는 동시에 시간의 경과에 의해 배신당하는 등장인물들도 함께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 관점에 의해 소외효과를 경험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극에 몰입하게 되는 경험도 한다. 그것은 관객이 극의 결론은 처음부터 알고 있지만 극중 인물들의 배신의 폭로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팅게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이팅게일이 설명하듯이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관객이 “아이러니와 두려움 그리고 파멸의 감정”을 느끼면서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 ‘배신’이란 주제의 일반성과 추상성

    린다 벤즈비(Linda Ben-Zvi)는 그녀의 논문 「핀터의 『배신』: 진부함의 패턴들」("Pinter's Betrayal: Patterns of Banality")에서 극의 주제인 배신은 동시대 경험의 거의 모든 양상을 다 포함할 만큼 그 범위가 넓어서 주제는 단순히 ‘배신’이라기 보다 “사회에서의 존재”(existence in society)가 된다고 주장하였다(228). 그녀는 주제의 광범위함에 비해서 극의 플롯이 세 중년 남녀의 불륜이라는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 오히려 인상적임을 지적하고 그렇게 사소한 플롯을 매개로 어떻게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양상을 다룰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벤즈비의 설명처럼 이 극은 세 명의 중년 남녀 간의 배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삼각관계를 통해서 그들과 연관된 모든 사회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신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 스콜니코프(Hanna Scolnicov)도 배신이라는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핀터의 다른 작품들이 모두 관사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배신』은 무관사의 형태를 띠는 것을 지적하면서 핀터는 배신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배신이라는 생각(idea of betrayal)”의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구조(its generalized and abstracted structure)”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5). 이처럼 특정한 인물간의 배신이 아니라 배신의 일반성과 추상성으로 관객을 이끌어 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핀터가 사용한 역방향 드라마터지이다.

    1977년 어느 봄날에 시작하는 『배신』의 첫 장에서는 제리와 엠마가 한 선술집에서 점심시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제리와 엠마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밝혀진다. 즉, 제리와 엠마는 불륜의 관계를 가졌었고 엠마의 남편이 제리의 친한 친구인 로버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리와 엠마의 관계는 2년 전에 끝나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관계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엠마는 그 전날 남편과의 대화 끝에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제리와의 관계를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고 한다. 오랜 친구인 로버트와의 우정을 유지하려는 제리에게 사전에 상의도 없이 가한 엠마의 배신에 제리와 관객 모두 당황하며 의구심을 갖게 된다.

    1장 이후에 극은 순방향으로 진행하여 2장은 1장 장면의 “이후(later, 31)”6)가 된다. 제리는 그와 엠마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로버트를 집으로 초대해서 그에게 사과하려고 한다. 그는 로버트의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하지만 제리는 로버트로부터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털어 놓은 것이 "지난 밤(last night, 37)"이 아니고 이미 "4년 전(four years)"이라는 것이다. 로버트의 말에 제리의 당혹스러운 분노는 그 대상이 엠마로 부터 4년 동안 사실을 알고도 내색하지 않은 로버트에게로 옮겨간다. 그는 로버트의 배신에 분노한다. 로버트가 4년 동안 말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엠마가 이미 4년 전에 밝혀진 비밀을 그 전날 이야기 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은 당연히 그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서 그 해답을 찾기 원한다. 하지만 관객이 그 다음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인가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여기 2장이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 3장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 1975년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극은 관객의 기대를 배신한다.

    1975년의 장면인 3장에서 관객은 2년 전에 끝났다고 하는 제리와 엠마의 결별모습을 보게 된다. 1장과 2장을 통해서 제리와 엠마의 관계를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의 사랑보다는 제리와 엠마의 결별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인가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역뱡향 드라마터지로 인해서 과거에서 오늘의 사건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방향 드라마터지의 효과에 대해서 나이팅게일은 이렇게 말하였다.

    핀터가 선택한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나이팅게일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또는 극중 인물의 그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과 호기심보다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한다. 다시 말하면, 제리, 엠마 그리고 로버트 세 사람을 둘러싼 배신이 어떻게 일어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들이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폭로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다고 할 수 있다.

    3장은 1975년 겨울 제리와 엠마가 밀회를 즐기기 위해 얻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아파트에 온 것이 여름이었는지 아니면 가을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상당히 오랫동안 그들은 만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엠마가 갤러리 매니저 일로 바빠져서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제리는 말한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만날 수도 있었다고 엠마는 반박한다. 그녀의 반응에 제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리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제리의 엠마에 대한 사랑은 그 열정을 잃은지 오래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을 방어한다. 즉, 거짓된 변명으로 제리는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고 동시에 엠마를 배신하고 있다. 이러한 제리의 태도에 엠마는 결별을 결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한 것은 엠마가 오후 시간을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리의 마음이 변한 것 때문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장에서 관객이 얻게 되는 정보는 제리는 그의 로맨스가 끝났다는 사실을 그 자신에게도 그리고 엠마에게도 인정하지 않고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3장에서 본 것처럼 역방향 드라마터지 덕분에 관객은 엠마와 제리의 불륜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와 연관된 배신들을 주목하게 된다. 나이팅게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이팅게일이 주장하듯이 이 극의 주제는 제리와 엠마의 불륜이 아니라 극중 인물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배신 그리고 그 배신의 방법과 기법이다. 실제로 이 극 속에서는 제리뿐만 아니라 엠마와 로버트도 다양한 방법으로 배신을 한다.

    극중 인물들이 배신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인물이 그것을 이용해서 정보가 적은 인물을 배신하고 조롱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장인 4장에서 제리와 엠마의 불륜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로버트는 그 사실을 제리에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제리를 조롱한다. 로버트는 그와 제리가 엠마를 놓고 벌이는 삼각관계를 빗대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운다더군(They say boy babies cry more than girl babies, 49)”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이 의문점에 대해 제리가 대답하게 한다. 로버트가 말한 남자아이는 앨린 다이아몬드(Elin Diamond)가 지적하듯이 “제리와 로버트의 원형”(242)이 된다. 그녀는 로버트와 제리가 그들 자신을 지칭하는 대신에 남자아이라고 하는 재치 있는 언어적 술책을 쓰는 것은 그들의 두려움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242). 로버트의 강요된 질문에 제리는 “엄마 배속을 떠나 세상에 직면하려니 그런 거겠지(Well . . . facing the world, I suppose, leaving the womb, all that, 63)”라고 말한다. 이러한 제리의 대답에도 로버트는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왜냐하면 로버트는 제리의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리의 엠마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에 빗대어 질문을 함으로써 제리를 조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엠마가 제리를 배신하는 모습은 1장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녀는 서로 사전에 상의도 없이 제리와의 불륜사실을 로버트에게 털어놓았다는 실토로 제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로버트에게 고백하는 것은 ‘지난 밤’이 아닌 ‘4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로 ‘지난 밤’에 털어놓았다고 잘못된 정보를 줌으로써 제리를 또 한 번 배신한다. 제리가 그런 것처럼 엠마도 제리에게 배신을 하는데 이들을 통해서 연인들 간에도 배신은 예외 없이 자행되고 있음이 목격된다.

    엠마가 행하는 배신들 중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마치 배신의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은 8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8장은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로버트에게 털어 놓는 베니스에서의 사건이 있기 2년 전인 1971년 여름이다. 제리와 엠마가 그들의 아파트에서 만나고 있다. 엠마는 그 전날 제리의 아내 쥬디스를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서 그녀가 그들의 관계를 아는 게 아니냐고 묻지만 제리는 쥬디스가 병원일이나 아이들로 바쁘고 깊이 생각하는 성격이 아 니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그는 그보다는 그저 쥬디스를 좋아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엠마는 제리의 진정한 마음을 알기 위해서 “말해봐요 . . . 당신 삶을 바꾸어 볼 생각이 있어요? (Tell me . . . have you ever thought . . . of changing your life? 127)”라고 묻는다. 즉 아내인 쥬디스를 떠날 수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제리는 “불가능하다 (It's impossible, 128)”라고 답한다. 엠마는 그녀와의 관계를 가지면서 자신의 가정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제리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털어 놓음으로써 배신을 실행한다.

    제리와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엠마에게 그는 아내 쥬디스가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She loves me, 129)”라는 말로 실망을 안겨 주면서 일종의 배신을 한다. 이에 대한 배신으로 엠마는 같은 장 앞부분에서 제리에게 불성실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로 제리를 배신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러한 엠마의 고백에 제리는 “잘 되었네”라는 말 밖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것은 쥬디스가 사랑한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제리의 말에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던 엠마의 상황과 흡사하다.

    8장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극에서 배신이 일어나는 상황에 주목해서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그것을 무기로 상대방을 배신한다는 앞서 언급한 패턴과 관련하여 실비오 가기(Silvio Gaggi)는 “일종의 정보 게임(a kind of information game, 505)”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로버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엠마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가 제리가 아내를 떠나 그녀와 새로운 삶을 계획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복수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2장에서 로버트가 제리에게 “아는 게 별로 없군(you didn't know very much about anything, 42)”이라고 말한 것처럼 제리는 이 삼각관계가 생겨나도록 배신을 처음 시작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세 사람이 벌이는 ‘정보게임’에서 정보를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한 그가 이 게임에서 많은 경우에 희생자가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서로 서로 배신을 행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에 주목해 볼 때 드러나게 되는 것은 배신을 하는 세 인물들이 모두 자신들이 행한 배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그보다는 자신들이 당한 배신에만 주목한다는 것이다. 8장에서 보듯이 아내를 배신하고 있는 제리는 자신의 배신은 간과하고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는 문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엠마 역시 1장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이 로버트에게 행한 배신보다 그가 자신에게 가한 배신에 흥분한다. 이 점을 아이러니하게 제리가 인식시켜준다.

    자신의 배신에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배신에 민감한 극중 인물의 상태에 대하여 버나드 듀코어(Bernard J. Dukore)는 잭 크롤(Jack Kroll)의 말을 인용해서 극중 인물의 상태가 핀터에게는 “현대적 의식의 돌이킬 수 없는 사실(irreducible fact of modern consciousness)”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110). 서로 얽혀서 죄의식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신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극중 인물들의 모습은 배신이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풀리지 않은 거미줄처럼 엉겨 있는 거짓말들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에슬린의 주장처럼(207), 극 속에는 앞에서 지적한 배신들 즉 가족간의 배신, 친구간의 배신 그리고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연인들 간의 배신이외에 직업상의 배신도 있다. 제리와 로버트 모두 예이츠의 시를 읽으면서 예술적 이상을 꿈꾸었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젊은 시절의 예술적 이상과 타협하여 작품성과 상관없이 돈이 되는 케이시의 작품을 선택하고 출판하는 일을 하면서 직업상의 배신을 한다. 또한 엠마가 읽는 스핑크스의 책의 주제가 ‘배신’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배신』이란 이 작품이 배신을 의식하게 하는 메타연극의 성격도 갖게 한다. 그럼으로써 배신이란 주제의 본질, 그 일반성과 추상성을 관객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한다.

       2.3. 관객의 시선 따라가기: 제2의 작가로서의 관객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는 관객이 극중 인물보다 극의 상황에 대해 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관객은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극중 인물의 대사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고 또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미 또한 추측하고 추론하여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관객들이 “특권적 초월적인 관점”(박일형, 앞의 논문, 44)을 갖도록 한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핀터의 코믹 연극』(Pinter's Comic Play)에서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관객을 “제2의 작가(secondary author)”가 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209). 이렇게 우위적 관점을 갖고 “제2의 작가”의 역할을 맡게 된 관객이 극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관객의 시선을 따라가 보도록 한다.

    4장은 극중 인물의 대사에 대해 관객이 나름대로 분석하고 추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1974년 가을이 배경인 4장은 제리와 엠마의 관계를 로버트가 알고 있는 상태이다. 3장에서 보여 준 대로 제리와 엠마가 결별하기 직전으로 그들의 관계에 이상이 감지된다. 관객은 제리와 엠마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로버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주목하게 된다. 2장에서 밝혀졌듯이 1977년으로부터 4년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4장은 로버트가 제리와 엠마의 관계를 알고 난 뒤 1년 정도가 지난 때이다. 관객은 로버트가 친한 친구였던 제리의 배신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4장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버트가 사내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운다는 화제로 제리에게 대답하도록 종용하는데 그 해답을 요구하던 로버트는 “나는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다(I am prepared to do so, 64)"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로버트의 말은 이 극이 순방향으로 진행되었을 때와 다르게 역방향으로 진행됨에 따라 그들의 삼각관계와 연관 지어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로버트가 그렇게 말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제리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우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엄마의 자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 이후에 하는 로버트의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대사는 순방향으로 흐르는 상황이었다면 그저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운다고 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일상적인 대화로 넘겨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방향 드라마터지로 관객은 이미 로버트가 엠마의 배신행위를 알고 있고 그것으로 로버트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로버트의 대사는 다르게 해석된다. 제리가 “아무도 여자아이들이 엄마의 자궁을 떠나는 것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잖나”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의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대답은 ‘로버트가 엠마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것으로도 해석되어질 수 있다. 1장에서 주어진 정보로 관객은 로버트가 불륜 관계를 갖고 결국 엠마와 결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은 좀 더 신뢰성을 갖는다.

    또한 같은 장에서 로버트가 스쿼시에 대해서 말하는 대사도 관객들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로버트는 계속해서 제리에게 함께 스쿼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의 의중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2장에서 로버트는 그가 제리의 배신을 안 이후로 스쿼시를 함께 한 적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말한다.

    로버트의 스쿼시 상대는 그를 배신한 제리로부터 이동하여 새로운 파트너인 케이시로 변해 있다. 로버트는 케이시가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선수”라고 말한다. 그가 제리에게 함께 경기를 하자고 말은 하지만 더 이상 함께 스쿼시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제리에게 “상당히 괜찮은 파트너였다”라고 하는 표현은 그가 사용한 과거시제처럼 제리와의 우정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로버트의 두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하는 대사의 숨겨진 의미는 그 결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의 머릿속에서 완전하게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객은 제2의 작가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이 극에서 관객들이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는 것은 1장과 2장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5, 6, 7장들이 순 방향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 장들 역시 1, 2장에서 얻은 정보로 그 결과가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 1973년에 일어나는 5, 6, 7장은 2장에서 로버트의 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실토한 것이 ‘4년 전’이기 때문에 극이 시작하는 1977년을 기점으로 4년 전은 1973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장은 베니스에서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로버트에게 털어 놓는 장면, 그리고 6장은 베니스에서 돌아 온 후 엠마가 제리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7장은 로버트가 제리를 만나는 장면이다.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논문에서 밝혔듯이, 다른 장과 달리 중간의 5, 6, 7장이 순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한 것은 이 극의 중요한 배신들을 명료화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op.cit., 239). 그녀의 주장처럼 이 장들에서는 엠마가 제리와의 관계를 털어 놓는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비밀의 폭로후에 제리에게 그 폭로 사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엠마와 로버트가 어떻게 제리를 배신하는지에 주목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순방향으로 진행하는 5, 6, 7장들도 전체적인 역방향 드라마터지에 의해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우위의 관점을 갖게 되는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관객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극중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관객이 극에 대해 ‘특권적 초월적 관점’을 부여받아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됨으로써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게 한다. 엠마가 베니스에서 돌아 온 후 제리와 재회하는 장면인 6장에서 제리는 아침에 로버트와 통화했고 돌아오는 목요일에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이 말에 엠마는 무엇 때문에 만나는 것인지 묻는다. 제리에게 그와의 관계를 로버트에게 실토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엠마는 제리와 만나기로 한 로버트가 그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하지만 관객은 로버트가 제리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극중 인물보다 관객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서 제리의 말에 엠마와 같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관객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극중 인물의 행동에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는 또 하나의 장면은 같은 장에서 엠마가 베니스에서 사온 식탁보를 제리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엠마는 “베니스에서 집에 필요한 것을 사왔어요(I brought something in Venice - for the house, 98)”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엠마는 “아파트(flat)”가 아닌 “집(house)”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그들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장면인 3장에서 엠마의 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인용된 3장의 엠마와 제리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엠마가 여기서는 ‘집(hous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제리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엠마는 6장에서 “여전히 좋아해요? 우리 집 말이에요? (Do you still like it? Our home? 98)”라고 묻는다. 하지만 제리의 생각은 다르다. 6장에서는 제리가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관객은 제리의 대답을 이미 알고있다. 3장에서 그는 엠마와 함께 구한 아파트가 “결코 가정이 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제리에게 그것은 그저 “아파트(flat)”일 뿐이다. 이러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6장을 보면서 제리의 태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된다. 베니스에서 식탁보를 사가지고 오면서 엠마가 가졌을 기대감과 달리 관객들은 제리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를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제리의 행동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된다.

       2.4. 역방향 구성 드라마터지의 종착점과 관객 반응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극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리가 로버트와의 우정을 배신하고 엠마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1968년에 종착한다. 관객은 1장에서 이미 제리와 엠마의 관계가 퇴색되어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뒤에 이어지는 장을 통해서 제리와 엠마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핀터가 엠마와 제리의 관계가 처음 시작된 장면을 극의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방향 드라마터지로 인해서 관객은 더 이상 엠마와 제리의 사랑에 주목하지 않는다. 관객은 극을 통해서 시간이 흘러감에 그들의 사랑이 “시작, 사랑, 대립, 이별, 무관심”(initiation, love, confrontation, separation, indifference, Ben-Zvi, op.cit., 234∼5)7)으로 변질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7년의 기간 후에 완전히 허물어지게 되는 제리와 엠마의 관계가 처음 잉태된 시점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9년간의 서로 물고 물리는 사건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싶은 관객의 기대는 충족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에서 관객이 직면하는 것은 제리가 처음으로 엠마에게 접근하는 태도이다. 제리는 로버트와 엠마의 침실에서 엠마를 기다리고 있다. 엠마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다가오는 제리를 엠마는 “술이 취했어요(You're drunk, 134)”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제리는 막무가내이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그는 엠마의 결혼식에서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엠마를 보았다고 하지만 엠마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제리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은 계속된다.

    위의 대사에서 보듯이 제리에게는 엠마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엠마가 입은 드레스가 하얀 드레스가 아니라는 사실도 상관이 없다. 제리는 그것이 하얀색 드레스라고 믿고 있다. 엠마의 부정에도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만큼 철저히 자신만의 생각에 충실하다. 이러한 제리의 태도를 캐서린 버크만(Katherine H. Burkman)은 나르시스적 태도라고 설명한다(510). 또한 듀코어는 “자기기만(self-betrayal, op.cit.,114)”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제리가 엠마에게 접근한 것은 파티에서 술에 취해 즉흥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기기만에서 시작된 배신이 또 다른 배신을 낳고 또 낳아서 9년 동안 빠져 나올 수 없는 단단한 올가미가 되는 것을 목격해 온 관객은 그 시작의 가벼움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관객은 사소한 취기에서 시작된 배신이 9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커지고 켜져서 결국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간의 거침없는 힘과 인간관계를 침식하고 왜곡시키는 능력”(Diamond, op.cit., 244) 또한 경험하게 된다.

    제리의 나르시스적 태도와 자기기만 그리고 그러한 제리에게 반응한 엠마의 배신이 이들의 불륜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데에는 로버트의 역할도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의 아내에게 접근하는 제리에게 로버트는 “옳은 말이군(Quite right, 137),” “물론이지(Absolutely, 137)”라는 말로 제리의 행동에 호응한 뒤에 엠마를 제리와 남겨 두고 침실을 떠난다. 이러한 태도는 엠마와 제리의 불륜은 처음부터 로버트의 묵시적인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러면 아내를 친구와 남겨두고 떠나는 로버트의 의도는 무엇일까? 핀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친한 친구 사이었던 두 남자의 9년간의 관계(a nine-year relationship between two men who are best friends, Burkman, op.cit., 508)”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만큼 이 극은 제리와 로버트 두 남자의 우정을 강조한다. 친한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또한 그 사실을 알고도 친구와의 관계를 지속한 제리와 로버트의 행동이 가능한 것은 부부간의 배신보다 남자들 간의 배신을 더 큰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Ben-Zvi, op.cit., 230). 그렇기 때문에 1장에서 엠마가 로버트에게 제리와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고 말했을 때 제리가 처음 보인 반응은 로버트와의 우정이 파괴되는 것의 두려움이었다. 제리는 로버트와의 우정이 깨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로버트와 엠마의 딸인 샤롯데 이야기를 한다.

    제리가 그의 가족과 로버트 가족의 행복을 나타내는 증거로 반복하는 샤롯데의 이야기는 실상은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겉모습으로는 화목한 두 집안의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그 실체는 여러 종류의 배신을 껴안고 있다. 제리는 로버트의 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서 로버트도 웃고 제리의 아내 쥬디스도 웃고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 로버트도 쥬디스도 제리와 엠마의 불륜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엠마도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불륜사실을 남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제리만이 진실에 눈을 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제리가 엠마와의 7년간의 불륜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말했을 때 엠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I wonder if everyone knew, all the time, 16)”라고 말한다.

    엠마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로버트와의 우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샤롯데 공중제비 돌리기는 제리의 바람과 달리 가족단위의 배신을 보여주는 배신의 또 다른 변주곡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샤롯데의 공중제비 돌리기는 로버트가 제리와의 우정을 지속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제리가 집착하는 샤롯데 이미지는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엠마를 닮은 샤롯데를 통한 제리의 엠마를 향한 성적 자발성과 그들의 비밀의 폭로에 대한 불안감을 암시하는 것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불안감일 뿐이다(op.cit., 242). 로버트 역시 제리의 배신을 알고도 9년 동안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은 것은 제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일 마지막 장에 그의 침실에 엠마를 제리와 함께 두고 나왔을 때 그는 이미 그들의 불륜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부간의 문제보다 제리와의 우정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이 로버트를 침묵하도록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68년의 장면을 극의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관객의 주목이 엠마에게로 집중되도록 한다. 남편인 로버트가 침실을 나가고 제리와 단 둘이 남겨지게 되었던 1968년의 엠마를 생각하면 극 처음인 1장에서 본 엠마는 상당히 변해있다. 두 남자사이에 불안정한 상태로 놓여있던 엠마가 그녀를 그러한 상황에 둔 제리와 로버트를 떠나 케이시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고 이제는 로버트와의 관계도 정리하기로 결정하는 등의 능동적인 행동을 한다. 이미 2년 전에 끝난 관계인 제리를 찾아서 로버트와의 관계가 끝나고 그에게 제리와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고 말한 엠마의 심정에는 두 남자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던 그녀의 상황을 종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엠마의 변화와 관련하여 버크만 역시 핀터의 역방향 드라마터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관객은 역뱡향 드라마터지로 1장에서의 엠마의 변화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계기로 이루어 졌는지를 알게 된다. 제리와 로버트 두 인물과 비교해서 극의 진행과정을 통해 많은 변화를 보여주는 엠마를 통해서 관객은 시간의 효과를 더욱 극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3)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낯설게 하기’는 독자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중의 하나로 작가보다 수용자 즉 관객(독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이론은 관객에 대해 본격적인 학문적 연구가 되는 수용이론과 독자반응 이론의 기반이 된다. 20세기에서부터 포스트 드라마에 이르기 까지 연극 무대에서 관객의 의미와 그들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것은 이진아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관객의 위치」에서 잘 논의되어지고 있다. 참조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관객의 위치」, 『한국연극학』 42호, 한국연극학회, 2010, 194∼225쪽.  4)필자가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극단 거미의 『배신』 공연에서 시간적 배경을 표시하는 플래카드를 사용하였다. 2011년 6월 16일(목) - 6월 26일(일)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김제민 연출로 공연되었다. 참조 . 또한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에 기고한 트리시아 올제위스키(Tricia Olszewski)의 리뷰에 따르면 그가 관람한 파운틴헤드(Fountainhead theatre)공연은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슬라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참조 .  5)스콜니코프는 부정관사를 사용하는 A Slight Ache를 비롯해서 정관사가 있는 The Room, The Birthday Party, The Caretaker, The Dumb Waiter, The Collection, The Lover, The Homecoming을 예로 들고 있다. 참조   6)작품의 대사는 그로브(Grove) 출판사의 1978년 버전(Betrayal. New York: Grove Press, 1978)에서 인용하고 이후에는 페이지 번호만 표기하도록 한다.  7)사실 벤즈비는 그녀의 논문에서 극의 순서에 맞게 지금 저자가 서술한 것의 역순으로 표기하였다. 하지만 글의 문맥상 극의 진행상이 아니라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는 것이 이해가 용이한 것으로 판단하여 원전과 다르게 표기한다.

    3. 결론

    핀터의 『배신』은 “최고의 글쟁이(miglior fabbro, Hinchliffe, op.cit., 159)”라는 작가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정적인 비판을 받게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극의 플롯이 영국 중산층의 불륜이라는 다소 식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적 평가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작품을 살펴보면 크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작품이 “최상의 희곡(an exquisite play, kroll, Grove Atlantic)”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핀터는 시간의 진행이 자유로운 영화적 기법을 무대로 가져와서 과거의 사건들에 객관적 관점을 부여하여 이 극이 배신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배신이란 주제의 일반화와 추상화를 성취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핀터가 객관적 관점을 위해 선택한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극의 결말을 극 처음부터 제공함으로써 관객에게 초월적 관점을 부여한다. 그 결과 관객은 특별한 연극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는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확보된 정보에 근거하여 나름대로 추론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은 제2의 작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관객은 초월적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중 인물의 감정과 동화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극중 인물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경험도 함께 제공받는다.

    극 처음에서 극의 결과를 알게 되는 역방향 드라마터지는 그 플롯이 거슬러 올라가서 최종적으로 멈추게 되는 장면을 강조한다. 이 지점은 순방향으로 흘렀을 때 극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리와 엠마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 핀터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핀터는 우리가 이 극의 배신을 처음 시작한 제리의 배신이 취기에 의해 저질러진 불장난과 같은 것임을 목격하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시작된 배신은 9년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지속되어 세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시키게 될 만큼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배신의 시작의 지극히 미미함에 관객들은 배신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마지막 장은 제리와 단둘이 남겨진 엠마에게 주목하도록 한다. 갤러리 매니저가 된 1장에서의 엠마와 남편인 로버트가 떠나고 혼자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엠마의 모습이 첨예하게 대조되면서 관객은 시간이 엠마에게 작용한 결과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배신』이란 극은 역방향 드라마터지를 사용하여 핀터가 의도했던 배신이란 주제의 일반화와 추상화를 이루어 내고 관객들로 하여금 특별한 연극적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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