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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탈춤에 나타난 연극치유적 자질에 대한 연구* A Study about The Theater Therapeutic Quality of The Talchum
  • 비영리 CC BY-NC
ABSTRACT
탈춤에 나타난 연극치유적 자질에 대한 연구*

This paper aims to study how The Talchum mitigates performer´s mental, emotional, and psychological pain, taking the focusing therapy than cure. If cure simply means removing the biological illness in medical terms, therapy means the various experience of treating physical, mental, social sickness. In other words, therapy implies concern, affection and care in humanities terms. Therefore, this article will consider the diverse dynamic transformative process how The Talchum's performance participants experience from physically, mentally, socially abnormal disease to stable condition, i.e. healthy states that generates the qualitative change of life. By staging The Talchum, performance participants experience identity transformation that they reflects themselves, simultaneously representing themselves. This process urges performance participants to come into a new and more meaningful relationship with existing life. So the following will say this process is the key point of the therapeutic functions that The Talchum works.

In the therapeutic functional terms, this paper's premises are as follows. In the first, taking part in The Talchum performance itself is therapeutic process because The Talchum performance is the staging of repressed unconsciousness. Second, performer is therapist for village people that play audience roles, but, at the same time, performer is too village member, so performers are therapists and patients in one in order to reflect and transform village member's life experience. Third, the transformative process of selves and communities that is achieved by The Talchum performance is regarded as therapeutic process that overcomes the disease and recovers the healthy states of inner growth.

Thus, part one will examine the trace of theater therapy in The Talchum's macroscopic performative structure, so-called made up of several ritual of The ChungSin, The OhSin, The SongSin. And part two will investigate the sprouts of theater therapeutic technique in The Talchum's performative scenes, such as embodiment, projection, play and ritual, symbol and metaphor, roleplaying.

KEYWORD
탈춤 , 연극치료 , 체현 , 투사 , 놀이와 제의 , 상징과 비유 , 역할연기
  • 1. 서론

    탈춤에 관한 연구는 1970·80년대 개화하고, 이후의 연구들은 이렇게 정전화된 기존 연구를 대부분 답습했다 할 수 있는데, 주로 탈춤의 사회적 기능이나 탈춤의 기원 같은 몇 가지 주제에 집중했었다. 사회적 기능 연구는 조선 후기 상업 자본과 도시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하층 계급의 민중적 저항 의식에 주목하여 이루어졌다.1) 반면 기원 문제 연구는 산대희 기원설, 기악 기원설, 풍물굿 기원설 등의 가설에 따라 탈춤을 발생사적 맥락에서 설명하려 하였다.2)

    이 연구들의 선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탈춤이 연극으로서 갖는 강력한 치유적 잠재력에 대한 관심은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정도 치유적 기능을 인정하는 연구에서도 탈춤을 통해 지배계층이 신분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일면만을 중점적으로 고평하였다.3) 하인들이 놀이를 통하여 평소에 억압되었던 감정이나 욕구를 마음껏 해소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줌으로써 양반들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고찰은 탈춤의 연행 과정을 통해 촉진된 개인과 공동체의 변화 과정을 전체적으로 아우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들게 한다. 마을에 동티가 날 것 같으면 하회별신굿과 하회탈놀이를 할 징조로 받아들였다는 하회마을의 전래적 구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탈춤에는 치유를 위한 강력한 잠재력이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층 계급의 사회전복적 풍자와 공격이 펼쳐지는 장이라든지, 그 반대로 민중의 힘을 무력하게 만드는 양반들의 체제 옹호적 안전장치로서 탈춤을 간주하려는 태도는 탈춤 연행에 참여한다는 사건의 사회심리학적 의미를 어느 한 쪽으로만 편중시켜 고찰한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탈춤의 치유적 자질을 온전히 이해해보려는 한 시도다.

    이 논문에서는 ‘치료(cure)’보다는 ‘치유(therapy)’의 측면에 맞춰 탈춤이 연행자들의 심적 고통을 어떻게 덜어주는지 고찰하려 한다. ‘치료’가 의학적 차원에서 생물학적 질병을 단순히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면, ‘치유’는 배려와 보살핌, 돌봄의 의미까지 함의된 신체적, 심적, 사회적 환부 다스리기의 다양한 경험적 차원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4) 그러므로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이상 상태’의 질병에 고착된 탈춤 연행 주체들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삶의 질적 전환이라는 ‘안정 상태’의 건강에 이르게 되는지 그 다양한 역동적 변환 과정을 이 논문에서는 추적할 것이다.5) 즉 탈춤의 극적 상연 과정을 통하여 연행 주체들은 자신을 재현하면서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정체성 ‘변형’의 과정을 겪으며 삶과의 새로운 관계를 달성하게 된다. 해서 이러한 과정이 탈춤이 수반하게 되는 치유적 경험의 핵심임을 본론에서는 밝힐 계획이다. 물론 탈춤의 체험이 실제 현대 연극 치료 과정과 같은 일관된 흐름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연극 치료 과정의 ‘맹아’로서 탈춤에 치유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탈춤에 나타난 연극치유적 자질에 대한 고찰이 이 글의 연구목표라 할 수 있다.

    연극 치유적 관점상 본고의 전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억눌려왔던 무의식의 무대화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탈춤 연행 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치유과정이라는 점이다. 둘째, 배역을 맡은 광대는 청관중이 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치료사로서 역할하기도 하지만 광대 자신 또한 동리 주민으로서 마을 공동체 성원들이 겪는 삶의 경험을 성찰하고 변형시키기 위해 탈춤을 연행한다는 사실에서 광대 역시 환자로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그러므로 탈춤 연행 과정에 의해 달성되는 자아와 공동체의 변형과정은 병듦을 극복하여 내적 성장의 건강 상태로 복귀하게 하는 연행 공동체 본연의 보살핌과 돌봄의 치유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탈춤은 마을 공동체의 동제(洞祭), 마을의 축제 차원에서 행해졌다. 축제 중 광대들과 청관중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된 공간은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치유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본론 첫 번째 부분에서는 청신-오신-송신의 굿거리 과정과 연관시켜 탈춤의 거시적 연행 구조에 남아 있는 연극 치유적 형태의 흔적을 살펴보려 한다. 그런 연후 두 번째 부분에서는 각 과장들의 연행 양상6)을 헤아려 어떠한 연극 치유 기법의 맹아들이 실제 탈춤 연행 과장에 활용되고 있는지 ‘체현’, ‘투사’, ‘놀이와 제의’, ‘상징과 비유’, ‘역할 연기’ 등의 국면으로 세분화해 조망해보려 한다.

    물론 연극 치유에 대한 접근법은 다양하다. 인지주의적 치료법, 행동주의적 치료법, 분석심리학이나 대상관계심리학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적 접근법 등이 그 예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극적 치유의 이론으로, 체현(Embodiment)-투사(Projection)-역할(Role)이라는 인간 생애 상 극적 발달의 패러다임을 연극치유의 내용으로 활용한 수 제닝스(Sue Jennings)의 EPR이론이나 역할에의 접근을 통해 연극치유를 시도한 로버트 랜디(Robert J. Landy)의 역할접근법, 그리고 이 둘의 이론적 체계에 놀이와 제의, 상징과 은유 등을 연극치유 기법으로 덧붙인 필 존스(Phil Jones)의 작업 등을 거론할 수 있다.7) 본고는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을 참조하여 탈춤의 치유적 기능을 해명해보려 한다. 이와 같은 고찰은 여러 경로에서 확대일로를 꾀하고 있는 연극 치료 분야 논의8)의 범주를 확대하고 의의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연극 치료에 대한 현재의 논의들은 연극 치료 상 활용될 수 있는 ‘투사’나 ‘은유’ 기법의 해명, 체현을 통한 치료의 가능성 타진, 그리고 장애아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적용될 수 있는 연극치료, 결핍 언어 발달 장애 아동의 치료에 이용되는 집단 언어치료, 사이코드라마의 치료 기법 등 이론적, 실천적 면에서 연극 치료의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해서 현대 드라마치료사가 시도하는 치료 작업에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대적 연극 치료의 방법과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치유의 시원적 형태를 고찰해본다는 점에서 본고는 선행 연구를 보완하는 지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탈춤 연행 양식에 나타난 ‘질병’, ‘치유’, ‘건강’의 문화 맥락적 의미를 검토하는 작업의 촉매제로서도 본 연구는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으리라 본다.

    1)조동일, 『탈춤의 역사와 원리』, 홍성사, 1979, 81~107쪽.  2)이두현, 『한국의 탈춤』, 일지사, 1981, 22~25쪽. 이혜구. 「산대극과 기악」,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226~236쪽. 조동일, 위의 책, 50~60쪽. 박진태, 『한국가면극 연구』, 새문사, 1985, 7~43쪽. 김열규, 「현실 문맥 속의 탈춤」, 『고전문학을 찾아서』, 김열규 외 공저, 문학과 지성사, 1976, 383~407쪽.  3)김욱동, 『탈춤의 미학』, 현암사, 1994, 222~238쪽.  4)테라피의 정의는 이대범, 「21세기 인문학의 치료적 기능」, 『21세기 인문학의 새로운 도전, 치료를 논하다』,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엮음, 산책, 2011, 247쪽 참조.  5)질병, 치유, 건강의 관계는 강신익, 「질병, 건강, 치유의 문화사」,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엮음, 위의 책, 33~54쪽 참조.  6)본론에서 발췌되는 탈춤 연행 장면은 다음의 채록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두현, 『한국가면극선』, 교문사, 1997, 1~448쪽. 꼭두각시놀음의 경우 다음의 채록본 참조. 서연호, 『꼭두각시놀이』, 열화당, 1987, 87~115쪽.  7)Sue Jennings 저, 이효원 역, 『(수 제닝스의) 연극치료 이야기』, 울력, 2003, 1~284쪽. Phil Jones, Drama as therapy : theory, practice, and research, 2nd ed. Routledge, 2007, pp. 1~356. Robert J. Landy, 이효원 역, 『페르소나와 퍼포먼스 : 역할 접근법의 이론과 실제』. 학지사. 2010, 1~454쪽.  8)박미리, 「장애아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연극치료에 관한 연구 : 의사소통 능력 개발을 위한 방법 중심으로」, 『공연문화연구 11집』, 한국공연문화학회, 2005, 313~345쪽. 배희숙, 이선형, 「연극을 활용한 집단 언어치료가 사회성 결핍 언어발달장애 아동의 언어 및 사회성에 미치는 효과」, 『드라마연구 34호』, 한국드라마학회, 2011, 223~252쪽. 이경미, 「연극치료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 -“드라마”를 통한 경험의 확장 및 치료사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국연극학 45집』, 한국연극학회 2011, 269~292쪽. 윤일수, 「사이코드라마의 개입과 치유 효과」, 『드라마연구 37호』, 한국드라마학회, 2012, 85~116쪽.

    2. 연극적 치유 형태로서 청신-오신-송신의 구조적 의미

    대부분의 탈춤은 굿과 함께 진행되었다. 해서 탈춤의 무질서한 난장은 탈춤 전후에 벌어지는 굿판이 계획하는 새로운 질서 확립의 동력으로 기능하였다. 삶의 갱신된 의미 확립을 주목적으로 하는 굿판 또한 탈춤과의 관계와 분리하여 생각될 수 없다. 탈춤의 카오스적 세계관이 분출하는 동물적 흥분이 아노미 상태로까지 번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화벽 역할을 굿은 담당하였다. 예컨대 강릉단오제의 관노 탈놀이나 동해안별신굿의 탈놀음굿은 부락제, 풍어제를 배경으로 해 연행된 탈굿, 근원적으로 서낭제의 탈춤이다. 뚜렷한 동제(洞祭)가 행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고성오광대, 수영야류, 꼭두각시놀음 같은 모든 탈춤들 역시 공연하기 전에 고사를 드리고 공연이 끝난 후 연행자, 청관중이 한데 뒤섞여 죽음과 소생의 굿판을 함께 즐겼다는 점에서 제의연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 까닭에 탈춤의 연행 구조는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굿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규명된다. 굿의 연행 구조는 서낭신의 현세 강림을 기원하고, 맞이한 그/그녀를 찬양하여 즐겁게 하며, 제사가 끝난 뒤 신을 보내는 등의 청신(請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탈춤만을 놓고 연행구조를 파악하는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 굿을 배경으로 하는 탈춤의 본질적 성격을 감안했을 때 탈춤의 장면들은 이 중에서 신을 즐겁게 하고자 노랫가락이나 몸짓, 재담이 행해지는 오신(娛神)의 장면을 구현한다 할 수 있는 셈이다.9) 전형적인 서낭제 탈놀이인 하회탈놀이를 보자. 이두현의 보고에 따르면, 하회탈놀이는 10년에 한 번씩 또는 신탁에 따라 임시로 거행되는 하회별신굿 중의 한 행사로 마련된다. 정월 초이튿날 아침에 간택된 산주와 무녀와 광대들이 서낭당에 모여 제수(祭需)를 차려놓고 강신을 비는 것으로 별신굿은 시작한다. 신이 내리면 서낭대와 성줏대를 받들고 주악(奏樂)하면서 옛 동사(洞舍) 앞 놀이마당까지 행진한다.(청신) 놀이마당에 이르러 서낭대를 세워놓고 별신굿탈놀이를 시작하는데, 파계승 마당, 양반·선비놀이 마당 등을 위시한 10개의 마당이 연행된다.(오신) 놀이가 끝나면 헛천굿(거리굿)이 별신 행사 최종일인 정월 보름날 마을 앞 길거리에서 거행되고, 이날 밥 자정에 당제를 올리면 별신행사가 끝난다. 그리하여 산주와 광대들은 12월 그믐날 이래로 보름 만에 근신합숙에서 풀려 집으로 돌아간다.(송신)10)

    이처럼 청신(請神)→오신(娛神)→송신(送神)으로 구성된 탈춤 연행 과정은 일련의 특정 기간 속에서 구조화된 형태로 실천되는 극적 치유 과정의 기본적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연극 치유 과정은 ‘준비(warm-up)’→‘초점 조정(focusing)’→‘주요활동’→‘주요활동의 종결과 역할 벗어나기(deroling)’→‘완료(completion)’의 수순으로 이루어진다. ‘준비 과정’은 개인 또는 집단이 극적 치유 작업에 대해 준비할 수 있도록 치료사가 도와주는 과정으로서 특별한 극적 치유의 공간이 생성되고 있음을 지표화한다. ‘초점 조정’의 과정은 환자가 작업해야 할 영역, 치유 과정의 주제나 내용에 좀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기간이다. ‘주요활동’ 기간에는 다층적, 복합적 극적 매체를 표현 형태로 자신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심층 심리적 요인들을 연기를 통해 환자들은 표현하게 된다. ‘주요 활동이 종결’되면서 환자들은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그만 두게 되는 바, 외적 리얼리티에 그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 극적 치유 공간을 떠난다. 완료 단계는 연극 치유의 결정적 측면이다. ‘완료’ 기간에는 치유 기간 동안의 지각과 느낌을 환자 각각이 개인적으로 연계하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치유 시 다루어진 내용들을 환자 개별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에서는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11)

    결과적으로 산주와 광대로 선별되어 서낭당에 모여 강신을 비는 ‘청신’의 과정은 ‘준비’와 ‘초점 조정’의 단계에 해당된다. 이를 통해 연극 치유 공간이 생성된다. 탈춤 연행의 본격적인 ‘오신’ 과정은 가면의 방어막 하에 연행자들과 동리 주민들이 억눌려 왔던 무의식적 질료들을 표현하게 되기 때문에 연극 치유의 ‘주 활동’에 준한다. 반면 헛천굿과 함께 종결되는 별신굿의 ‘송신’ 단계는 연극 치유 단계 상 ‘주요 활동 종결 및 역할 벗어나기’와 ‘완료’의 단계를 실현한다. 산주와 연행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탈춤과 굿에서 얻은 흥과 신명, 한풀이 등을 현실 속 변화된 생의 통찰력으로까지 연계해야 하는 작업이 치유공간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실제로 하회탈놀이가 놀아진 후에는 동리 주민들 사이의 긴장감과 서로에 대한 불안한 적대감은 사라지고 다시 마을은 평온함과 활력을 되찾았다고 보고되고 있다.12)

    그러므로 탈춤이 굿마당의 원초적 상연과 함께 삶의 문제와 경험들을 다루고 그것을 극화하는 방식은 그 과정 내 본질적으로 자연적 치유력을 위한 구조적 양식을 함의한다 할 수 있겠다.

    9)박진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형성과 구조연구」, 고려대 국문과 박사학위 논문, 1988, 13~25쪽.  10)이두현, 앞의 책, 1981, 30~31쪽.  11)Jones, Op,cit, pp. 11~13.  12)임재해, 『하회마을의 세계』, 민속원, 2012, 40~45쪽.

    3. 탈춤에 나타난 연극적 치유의 기법들

       3.1. 체현 : 치유를 위한 시공간의 생성

    탈춤에 표현되는 삶은 몸의 삶이다. 탈춤에 재현되는 세계는 몸 내에서, 몸을 통해 의식된다. 호흡이 넘치는 구음, 과장된 제스처, 춤을 매개체로 영위되는 근접공간적 움직임, 굴곡으로 조각된 탈들과 다종다양하게 채색된 옷, 그리고 삼현육각으로 공명되는 음악 등은 세계를 추상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구체성의 감각동작적 주관성으로 느끼는 것을 탈춤에서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한다면 탈춤의 극적인 몸의 표현을 통해 어떤 치유적 기능이 수행된다고 할 수 있을까?

    몸을 사용한 연극치유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첫 번째는 환자가 그 자신의 ‘잠재적’ 몸성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데 있다. 즉 습관화된 몸의 타성에서 벗어나 익숙치 않더라도 새로운 몸틀에 자신을 거주시켜 몸과 자아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함으로써 환자 자신의 정체성 변화가 꾀해진다. 새로운 발성 연습, 보다 역동적 제스처 연습 같은 것을 연극적 치유 기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13)

    <송파산대놀이>의 [침놀이 마당]에서 먹중의 조카들이 쓰러져 있는 장면은 때문에 주목된다. 이들은 관격(關格)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관격이란 병명은 먹은 음식물이 갑작스레 체하여 가슴이 꽉 막힌 것 같고, 답답하면서도 토하지도 못하며 대소변도 잘 못 보는 증상을 지칭한다. 등장한 신주부는 기를 통하게 할 목적에서 이들의 손과 발, 네 관절에 침을 놓는다. 침놓기가 끝나자 주위에서 다들 놀랄 정도로 팔먹중이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연출된다.

    다 죽어가던 먹중들이 신주부의 침을 맞고 갑작스레 기립하는 장면은 물론 일차적으로 희극적 분위기를 유도한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먹중들의 몸짓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회복력이 빠른 이러한 몸의 잠재성에 대한 느낌이야말로 곧 주체의 실존을 구성하는 가장 능동적인 정동적(affective) 요소임을 암시한다.14) 나 자신에 대한 지각은 무엇보다 몸에 의해 전달된다. 해서 먹중들의 건강 회복 과정은 잠재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어떤 실존 감각보다도 더 강력하며 넓은 범위를 지닌 채 나와 관계 맺게 되는 요소인, 내몸과 나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측면을 무대화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몸의 잠재력 발견 이외에 다른 몸의 정체성을 취해 ‘몸을 변형’시키는 것 또한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일상적 자신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극 무대에서 환자가 연기해보거나 몸을 사용해 움직이는 물 같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은 결국 다른 캐릭터나 다른 사물이 지닌 다른 몸의 정체성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극적 페르소나의 몸에 적응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환자는 자신의 일상적 정체성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15)

    해서 <봉산탈춤>의 [노장과장]에서 표현되는 노장의 몸짓도 연극 치유적 측면에서 의의를 따져볼 만하다. 노장은 존경받는 고승이지만 소무를 앞에 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으로 탈춤에서 그려진다. 그래서 [노장과장]은 노장의 파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대사가 없지만, 노장은 소장에 대한 유혹지심을 제스처로 표현한다. 예컨대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마음이 달아오른 듯 한편 구석으로 뛰어간다. 그 후 부채를 펴들고 멀리서 소무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육환장을 집어던지고 소무 곁으로 해서 반대쪽으로 가서 다시 소무를 바라본다. 이와 같은 행동을 두어 번 반복한 뒤 갖은 수단을 다 써도 끝내 소무의 마음을 사지 못하자 이번엔 손춤을 추면서 염주를 벗어들어 소무의 목에 걸어준다.16)

    승려신분에 맞지 않는 노장의 일탈적 행위들은 성직자 신분 계층의 타락에 대한 풍자로 줄곧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초세간적 성스러움의 영역이 초월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과 대극되는 세간의 저속함마저 대립항적 범주로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 인식론적 자유에서 비롯된다는 점 역시 헤아려봐야 한다. 타락한 불교상의 재현이라 이해되어 온 노장의 파계과정은 초월적 존재가 초월적 존재가 되기 위해 속의 영역과 직접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구도의 진정한 국면을 상징하지는 않을까?17) 그것은 속의 세계에 속하는 다른 정체성의 요소를 신체적으로 체현함으로써 승려 계급의 성스러운 자아가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본능적 감정, 자질, 경험 등을 탐구하는 순간을 제공하는 셈일 수 있다. 몸은 자아의 내적 출처 지점이며, 주관적 주체의 영도(zero degree)다. 그러므로 유혹자 몸으로 노장 ‘몸이 변신’하는 것은 자아에게 있어 불명료했던 것을 명료하게 해주고 무의식적 요소를 의식과 직접적으로 소통시킨다는 점에서 치유적 기능의 일면을 내포한다는 점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셋째, 연극치유 과정 내에서 신체적 자아와 연결된 문제적 기억을 탐구하는 것은 몸의 트라우마에 새겨진 사회적, 정치적 힘의 요소를 탐색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물질적 몸은 차이의 시스템으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몸으로 역할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과된 과거 ‘몸의 기억에 관계된 힘의 탐색’은 현재적 몸에 다시 몸의 미래적 지평이 펼쳐질 수 있는 시간적 깊이를 부여한다. 바꾸어 말해 몸에 남겨진 기억의 적극적 탐색은 의미를 창조하는 몸의 잠재력을 강화시키고 습관적 몸을 전이시킬 수 있는 다른 사회문화적 관계 창조에 관심을 가지게 해 준다. 그것은 치유적 공간의 생성에 다름 아니다.18)

    <봉산탈춤>의 [미얄춤]에서 영감이 재회한 미얄에게 그녀와 난리 통에 헤어진 후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갖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이러한 치유적 기법의 한 예시라 할 수 있다. 특히나 길에서 만난 산대도감(山臺都監)의 사람들에 의하여 세금을 내놓으라고 협박받지만, 돈을 못 내겠다고 거부하다가 그들에게 의관탈파 당하여 머리에 쓸 것이 없어 개가죽으로 관을 만들어 돌아다녀야 했던 쓰디 쓴 경험을 영감이 미얄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그러하다.

    영감의 발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개가죽관을 머리에 쓰고 다녀야 했던 이유는 산대도감 관리들의 학정 때문이다. 관리들의 사회적, 정치적 힘에 의하여 피지배자 계층인 영감이 몸에 쓸 수 있었던 것의 범위가 규제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가죽관이라고 하는 ‘몸에 남은 흔적’으로 인해 영감과 미얄은 자신들의 몸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정치적 힘을 지각하게 된다. 이 흔적 때문에 그들은 주류담론의 감시적 시선에서 벗어나 좀 더 저항적인 반담론을 형성한다. 이러한 국면은 자신 몸과의 다른 관계 맺기의 토대로서 소용될 수 있기에 치유적 효과를 지닌다.

    몸의 잠재력, 몸의 변형, 몸에 남은 흔적의 기억은 탈춤의 극적 활동 상 치유적 시공간을 생성시키는 결정적 요소다. 연행자의 몸은 지각 대상이 되는 외적 환경, 곧 탈춤 연행이 발생하는 시공간, 세계와 분리돼서 생각될 수 없는 주체이자 객체로서의 이중적 위상을 지닌다. 그러므로 몸과의 갱신된 관계맺음은 자아를 둘러싼 환경과의 갱신된 관계맺음의 근원이 된다.

       3.2. 투사 : 내면적 상태의 투영

    수 제닝스에 따르면 아이들의 극적 발달 측면에서 체현의 단계를 거쳐 투사의 단계가 나타난다. 유아 초기에는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점점 몸 외부의 다른 사물들을 가지고 그것에 자신의 느낌 등을 투영하며 복잡한 경험을 하는 것을 즐기게 된다.19) 때문에 연극 치유에서 활용되는 투사 기법은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방어기제인 정신분석학적 투사 기법과 그 의미가 다르다. 치유적 의미에서 연극적 투사는 자기 자신의 내적 갈등을 외적인 대상을 통해 표현해봄으로써 자신에 대한 새로운 관계맺음을 개시하는 데 사용된다.20)

    탈춤에서 투사의 예는 우선 <하회탈놀이>의 [할미마당]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할미마당]에 등장한 할미는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얹어 부른다. 그녀의 행색도 불쌍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할미는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 수건을 머리에 쓰고 허리를 구부린 채 한평생 여성으로서 고생하며 살아온 불만을 하소연하듯이 베틀가를 처연하게 가창한다. 한숨을 쉬고 허공을 바라보는 몸짓은 그녀의 신세타령이 내포한 비애감을 더욱 발전시킨다. 하지만 할미는 어제 사 온 청어 10마리를 어떻게 했느냐는 악사의 물음에 “영감 한 마리 꾸어주고 내 아홉 마리 다 먹었지 않나.”라고 대답하여 이전까지 표출한 부정적 감정을 일소하게 된다. 사람은 평생 동안 먹는 사람 역할 연기를 해야 하지만 연령 때 마다 먹는 양태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아동기의 먹기는 놀이와 연관되고, 청소년기의 먹기는 외모와 연관되며, 성인기의 먹기는 맛의 감각과 연관되나, 죽음을 앞둔 노년기의 먹기는 단순한 필수품에 불과하다.21) 이런 점에 비춰 봤을 때 할미는 노년기의 먹기와 관련된 연령 역할을 위배하고 있다. 노인이 한꺼번에 9마리나 되는 생선을 먹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할미는 <베틀가>에 얹어 자신의 신산한 삶을 투영하고 있을지라도 또 다른 극적 매개체인 ‘청어’라는 음식을 통해서는 부정적 자기와의 갈등을 봉합하고 삶의 생기를 표출하려는 쪽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양상을 보이는 셈이다.

    <양주별산대놀이>의 [취발이마당]도 투사의 면에서 주목된다. 이 무대에서 취발이는 자기의 아들 ‘마당이’ 역할도 겸해 1인 2역을 한다. 인형을 앉혀 놓고 복화술로 아기 목소리를 내면서 성인과 아이의 연령대를 왔다갔다 취발이가 연기하는 모습은 연기의 능숙함이라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취발이의 1인 2역은 인형을 가지고서 취발이가 본인의 또 다른 측면을 투사하게 되는 경험의 측면도 내장한다. 그것은 마치 환자가 인형을 수단으로 자신의 무의식적 질료들을 표현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취발이에게 자식인 마당이가 글을 배워가며 커 가는 모습은 기쁨 자체이다. 하지만 마당이에게 노랫조로 “기역, 니은이면 디귿, 리을”을 가르치다가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 사잤더니, 가이없는 이내 몸이 거지 없이 되었구나”라 신세 한탄하는 모습도 내비춤으로써 자식있는 아버지가 참으면서 견디어야 하는 고통 또한 취발이는 표현하게 된다. 요컨대 취발이는 자식의 대리격인 인형이라는 외적 대상에 가장이 겪는 희로애락과 관련된 내면적 굴곡들을 투영시키는 바, 자신의 삶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노래나 음식·인형 같은 오브제 등을 수단으로 삼아 [할미마당]. [취발이마당]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재화한다. 여타의 상대배역은 여기서 없다. 그렇지만 할미, 취발이는 그러한 외적 대상에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 등을 투영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을 보고 느껴,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며 확장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는 환자에게 인형, 그림, 조각, 찰흙, 대본 등을 주고서 환자 본인의 내적 갈등을 그러한 대상들에 투사시킴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것을 표현하게 하는 연극 치유 과정의 ‘작은 세계’(small world) 기법22)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탈춤이 ‘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진행되는 또 하나의 가상적(as if) 세계임을 감안했을 때, 탈춤의 연행 양상 자체가 연행 주체의 자아를 탐색하고,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발견하게 되는 투사적 영역 자체임을 우리는 곧 깨닫게 된다. 즉 ‘탈’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연행 주체 자신들의 외부에 서서 스스로를 보고 느끼는 과정 자체라 할 수 있다면, 탈춤의 온당한 의미로서 그 바탕이 되는 치유적 기능에 대해 우리는 상론해 볼 수 있겠다.

       3.3. 놀이와 제의 : 다른 존재 방식으로의 리허설

    탈춤의 또 다른 명칭은 탈놀이다. <산대탈놀이>, <오광대탈놀음>, <야류(野遊)>, <꼭두각시놀음>의 개별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탈춤의 연행은 리얼리티와 놀이적 관계를 가지는 공간에서 벌어진다. 이러한 놀이적 요소들은 어떤 치유적 기능을 지니는 것일까?

    탈춤에서 빈번하게 형상화되는 놀이 중 하나는 감각동작적 놀이다. 예컨대 <양주별산대놀이>의 [옴중과 목중 마당]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목중이 옴중의 벙거지와 의관을 잡아 뜯어 먹는 장면이 연출된다. 옴중이 자신이 쓴 벙거지를 수수전병, 빈대떡 등의 음식으로 빗대어 묘사한 것을 마침 배가 고팠던 목중이 정말 수수전병과 빈대떡의 음식이 차려진 것이라 간주해서 이 같은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몸과 관련하여 현기증 날 정도의 전복적 놀이, 일종의 베르티고(vertigo)가 무대화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음식 체계가 의상에까지 확대, 적용되어 맛의 감각이 지녔을 지각의 안정성은 때문에 순간적으로 파괴된다.

    남의 몸짓이나 대사 등을 따라하는 모방적 놀이, 미미크리(mimicry)의 연출 또한 빈번하다. <동래야류>에서 원양반은 “이놈 말뚝아!”라고 하인인 말뚝이를 부르며 귀를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자 차양반과 모양반도 원양반을 따라해 말뚝이를 부르고 귀를 쫑긋 세운다. 이를 지켜보던 종가도령도 세양반의 발화와 몸짓을 따라하는데, 종가도령만 유독 “이이놈 말뚝아~”라고 목소리나 제스처에 변형을 가해 흉내 내어, 웃음을 유발한다. 자아의 타자화가 요구될지라도 모방은 따라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존재로 간주할 수 있을 때 비롯될 수 있다. 모방의 행위는 모방하는 자와 모방당하는 자의 구분을 함축한다는 전제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춤의 모방적 놀이는 자아/타자 간의 상호 의존 및 서로로부터의 분리 상태가 복잡하게 얽혀진 주객의 미묘한 중간 영역을 연행 현장에 생성시킨다.

    탈춤에서는 양반층이 자주 하던 놀이인 운자놀이, 파자놀이, 시조놀이도 등장한다. <봉산탈춤>에서 서방이 ‘山’, ‘嶺’이 운자를 내자 생원이 “울룩줄룩작대산허니 황천 풍산에 동선령”이라 대답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다. 이런 운자놀이, 파자놀이, 시조놀이 등은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규칙을 준수하며, 자신들이 가진 능력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경쟁자들끼리 하는 게임, 아곤(agon)에 해당한다. 따라서 운자놀이, 파자놀이, 시조놀이가 진행될 때, 무대에는 현실적 리얼리티와도 다르고, 이전까지의 극적 리얼리티와도 차별화된 또 다른 리얼리티의 공간이 창조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가산오광대>에서 재현되는 문둥이들의 ‘짓구땡 놀이’는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행운의 귀속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는 우연의 놀이, 알레아(alea)를 발생시킨다. 투전이나 골패를 가지고 하므로 운이 지배하는 노름의 일종인 짓구땡 놀이에 개인의 기량은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해서 이 같은 알레아 놀이적 요소로 인해 탈춤 연행판은 계획되거나 통제될 수 없고, 우연만이 통용되는 카오스적 에너지로 들끓게 된다.23)

    이처럼 진지하지도 않고 실제적이지도 않은 놀이 덕택에 비형식적이며 예측 할 수 없고 개방적 결말을 지닌 불확실한 세계의 맥락으로 탈춤의 허구적 무대가 틀 지어진다. 감각의 불안정성을 야기해 일상적인 주체-대상의 구분을 흔들고 (베르티고), 자아와 타자의 중간 영역을 창조하여 내가 아닌 것도 아닌 나(not-not-me)가 되게 한다. (미미크리) 적대적인 상대방과의 게임에 의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를 생성시키고 (아곤), 운과 우연의 놀이로 제도적으로 통어될 수 없는 무질서의 감각을 연행 현장에 환류하다. (알레아) 이와 같은 유희적 과정을 행함으로써 연행 주체들은 그들의 실제적 경험을 환각적으로 조작하게 된다. 이때 실제적 목적성을 떠난 데서 비롯되는 놀이 행위의 자발성, 자유스러움, 비일상성에 대한 지각은 정감적 차원에서 ‘흥’이 일어나는 계기를 연행판에 제공한다.24) 종합하자면 재미있고 흥겨운 놀이 행위는 고착된 삶의 경험을 유연하게 변형시키므로 탈춤의 체험을 좀 더 치유적인 것으로 만든다.

    탈춤 연행 중 놀이적 구조 양식과 대척점을 이루는 제의 장면도 공연된다.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 같은 해서탈춤과 산대놀이극에서 미얄이 죽은 후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인도하는 무당의 지노귀굿이 펼쳐진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남 지방의 탈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수영야류>에서는 할미가 죽자 상여꾼인 향도군이 등장하여 상여가를 부르고 출상하는 등 아예 전통 장례의 절차가 재현되기도 한다. 생에 개입한 죽음이라는 뜻밖의 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살아남은 공동체의 생존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역으로 말해 사체는 ‘생존자들을 위한 죽음의 정치학(necropolitics), 죽음의 생물정치학(biopolitics)’이 작동되는 물적 토대로 기능한다. 탈춤에서는 굿이나 장례 절차 등의 제의를 통해 미얄의 죽은 몸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고 그녀의 죽은 몸에 개입함으로써 생존한 사람들이 죽음 때문에 느끼는 불확실함의 감각을 통제하게 된다. 생존자들이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였다고 해서 미얄의 한이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혀 해결 된 것이 없을지라도 갑작스러운 미얄의 죽음이 유발하는 ‘한스러운 감정의 분출’로 인하여 연행 주체들은 억압의 거부와 같은 존재론적 궁극에 도달하고자하는 염원의 체험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25) 결과적으로 제의 장면은 연행 주체 각각의 자의식을 소멸시키고 그들의 공동체에 지속성과 연대성이라는 안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결과로 광대나 청관중의 세계 재구성의 체험이 가능해진다. 놀이와는 달리 통제의 감각을 추구할지라도 제의 역시 탈춤에서 참여자로 하여금 다른 정체성으로의 변형을 취하게 한다는 점에서 치유적 효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연극 치유를 위해 놀이와 제의는 기법적으로 흔히 사용된다. 이를테면 치유 기간 중 환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끌어내고자 놀이 공간이 계획되고, 환자가 겪었던 과거의 사건과 관련해 안정적 힘을 취하기 위해 효과적인 제의가 고안된다.26) 이러한 카오스적 놀이와 코스모스적 제의는 혼재된 채 탈춤 속에서도 와류를 이루어 참가자들이 다른 존재방식으로 자신의 실존을 리허설하는 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요컨대 탈춤 연행이 치유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근본적 연행 구조로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존재하는 놀이와 제의적 구조를 거론할 수 있겠다.

       3.4. 상징과 비유 : 간접 경험을 통한 자아 개념의 확대

    보통 상징과 비유는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발신자의 메시지를 소통하기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의 전략 정도로만 간주된다. 이렇듯 수사법에 국한하여 상징과 비유를 생각해오던 방식은 그러나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eoff) 같은 인지 언어학자가 등장하면서 그 위상이 달라진다. 인지 이론에 따르면 수사법은 표현 방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친숙한 자기 세계를 근거로 새로운 상황이나 숨겨진 의미에 접근하려는 연계의 정신적 체험이 바로 상징과 비유의 진정한 기능이라고 레이코프는 설명한다. 이처럼 자기 체험의 확장, 나 경계의 확장이 상징과 비유를 통해 가능해지므로 내면의 문제를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다루려 할 때 상징과 비유는 치유적 효과를 가지게 된다.27)

    <꼭두각시놀음>에서 박첨지는 평양감사가 죽은 후 사십구제를 지내기 위해 명당 터에다 절을 짓는다. 그러나 절을 짓고 나서는 그 절을 세웠던 박첨지 손에 의해 다시 절이 헐린다. 김욱동의 지적대로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 인간의 탄생을 뜻한다고 한다면 새로 지은 집을 부수는 것은 좁게는 인간의 죽음, 넓게는 우주의 종말을 상징한다.28) 그런데 파괴되는 절로써 상징되는 불가항력적 죽음의 양상은 극중에서도 재현된다. 예컨대 <꼭두각시놀음>의 등장인물들인 피조리1, 피조리2, 귀팔이, 작은박첨지, 표샹원, 동방삭, 묵대사 등 모두가 요괴인 이시미에게 물려죽는 피의 잔치가 극중에서는 벌어진다. 애써 건립했던 절을 박첨지 스스로 파괴하였듯이, 요괴 이시미에게 등장인물들이 모두 물려죽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단지 파괴적 행위의 반복, 죽음 충동의 반복만이 하나의 ‘상징’으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와해되고, 무너지고, 깨뜨려지고, 부수어지는 장면의 무대화는 하나의 상징적 기호로 묶여져 수많은 잠재적 의미 집합체를 연행 주체들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꿈의 무대처럼, 무의식적 마음이 가진 판타지적 세계가 외적으로 표출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29) 이러한 파괴적 본능의 상징적 무대화는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개인적 경험에 보다 비확정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기 체험의 확장이라 할 수 있으므로 개방적 의미를 파생시키는 반복적 죽음 충동의 상연은 <꼭두각시놀이>의 상징을 치유적인 도구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편 탈춤에서 ‘비유’는 발화자가 특히 타인의 정체성에 대해 논평할 때 만들어진다. <수영야류>의 [양반과장]에서 수양반은 옆에 있던 종가 집 도령을 가리켜 “저게 선 도령님이 훌륭하고 깨끗하고 물찬 제비 같고 깨어진 파구로다. 앉이면 작약 같고 서면 목단이라.”고 빗대어 말하며 도령의 풍채를 미화하고 양반으로서의 자부심을 표출한다. <고성오광대>의 [오광대과장]에서 말뚝이는 양반들의 서 있는 모습을 “빈터에 강아지 새끼 모딘 듯이 연당못에 줄남생이 모인듯이.......”라고 강아지나 거북이와 연계시켜 말해 양반들을 비웃는다. <봉산탈춤>의 [미얄춤]에서 할미는 “난간이마, 주게턱, 개발코, 상통은 갓바른 과녘(판) 같고 수염은 다 모즈러진 귀얄 같고......”로 말하는데, 난간같이 생긴 이마에 주걱 같은 턱, 개코처럼 생긴 코, 과녁처럼 넓죽한 낯 위에 옻칠할 때 쓰는 기구 같은 수염이 붙어 있는 모양으로 헤어진 영감의 모습을 희화화시켜 묘사함으로써 남편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관념이 되는 종가 집 도령, 양반들, 영감 등의 모습을 제비나 강아지, 난간 등의 친밀한 영역, 보조 관념을 거쳐 우회적으로 발화함으로써 비유되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지각적 이미지가 형성되고, 강력한 감정적 관여 또한 형성된다. 이러한 비유적 리얼리티의 창조 과정은 탈춤 연행주체들이 제시되는 원 대상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자아를 탐색하고 변형시키는 또 다른 치유 과정을 마련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탈춤에서는 수많은 상징과 비유적 표현들이 찾아진다. 상징적, 비유적 상황의 창조는 연상적 의미와 감성적 가치의 소통을 연행판에 가능케 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연행 주체 자신들이 연행 현장의 비확정적 의미에 연계되어 개별적 자아를 확장하는 또 다른 치유의 과정을 나타낸다.30)

       3.5. 역할 연기 : 정체성의 해체와 성장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그 무엇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흔히들 말한다. 한 인간의 내적 토대를 이루는 바 안정적으로 지속되며 예측 가능하여서 고정불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사고, 성격, 감정 정도로 정체성은 정의된다. 하지만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한 인간에게 하나의 정체성만이 있다는 가정은 타당성이 확립될 수 없다. 인간 발달단계 초기 우리는 유아라는 최초의 역할을 ‘수령’하고, 점점 커 가면서 사회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다양한 이차 역할, 이를테면 신체적 역할, 인지적 역할, 정의적 역할, 사회문화적 역할 같은 역할들을 ‘취득’한다. 그리고 수령되고 취득된 역할을 처한 맥락에 맞게 ‘연기’(action)함으로써 인간은 적절한 인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연기되는 역할들은 다양한 집합적 범주들을 형성하므로 이 역할 범주들이 형성하는 역할 체계가 건강할 때만이 인간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병환의 상태에서 벗어난다. 역할 체계가 건강하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역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그 역할에 맞는 자아상을 확장하고 축소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녔음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고정불변한 실체적 본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보다 역할 체계의 확장과 축소, 교차와 분리에 따른 자아의 해체와 재탄생, 즉 변형의 신축성에서 확인될 수 있는 유동적 관계 속에 있는 자아야말로 정체성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31)

    때문에 탈춤에서 연행 주체들이 일상적인 역할을 떠나 ‘탈’을 쓴다는 것은 다양한 역할들이 묶인 역할 체계 내 상존하는 역할의 변화 · 전환의 가능성을 능숙하게 연기하려는 과정적 경험 자체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치유적 의미를 좀 더 명확히 나타내는 탈춤의 역할연기에는 어떤 장면이 있을까?

    첫째, 역할과 관련된 치유 방식 중 한 가지가 이야기, 노래, 조각, 미술 같은 허구적 질료들을 가지고 환자로 하여금 환자 자신이 아닌 이야기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의 역할이 되게 해 보는 데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강령탈춤>의 [영감·할미광대춤]에서 할미가 장구잽이의 권유에 따라 <이별가>를 부르는 장면은 이 점에서 주목된다. 이별가를 잘 하면 영감 또한 잘 찾을 수 있지않겠느냐는 장구잽이의 충고대로 할미는 진양조로 이별가를 가창한다. 결과적으로 장구잽이는 치료사로, 할미는 환자로 생각될 수 있다. 그리고 노래라는 허구적 질료를 연행하는 할미의 모습은 억압된 내면에 접하는 길을 연습하는 일종의 치유적 역할훈련의 재현이라 간주될 수 있겠다.

    둘째, 연극 치유 상 역할과 관련된 또 하나의 치유 기법은 환자로 하여금 과거, 현재, 미래, 판타지적 상황에서 그들 자신을 연기해 보게 하는 작업이다. <통영오광대>의 [풍자탈과장]에서 양반근본을 조롱하는 말뚝이에게 양반들은 그럼 말뚝이 본인의 근본은 어떤지 말해보라고 종용하는 장면이 이러한 치유기법의 전형적 예에 속한다. 양반들의 추궁에 ‘하인’인 말뚝이는 자신의 조상이 명문가라며, 할아버지, 아버지의 벼슬한 내력을 양반들에게 말해주고는 오히려 “내 집 사랑에 종놈만도 못한 놈”이라 양반들을 꾸짖는다. 말뚝이의 책망에 이어 양반들은 말뚝이를 박생원으로 칭하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말뚝이는 보기 싫으니 물러가라고 일갈한다. 이 같은 장면 재현은 한 마디로 말해 말뚝이의 판타지가 극적 현실에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말뚝이는 양반들의 종이기 때문에 양반들보다 말뚝이가 우위에 서서 그들을 나무라는 것은 말뚝이의 상상 속에서나마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뚝이의 일갈호령은 판타지적 상황 속에서 그동안 물러나 있었던 또 다른 역할의 표현이라 할 수 있어서 치유적 효과를 지닌다.

    셋째, 환자가 지닌 정체성의 측면을 분리시켜 그들 자신의 특수한 측면만 연기해보도록 하는 것은 역으로 일상생활에서 창조적으로 역할 연기하는 것의 기본을 이루어서 치유적 효과를 달성한다. 예컨대 자신의 ‘팔’이나 ‘다리’가 되어 역할 연기를 해 본다거나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 중 태업(怠業)하고 싶은 역할만을 따로 떼어 내어 연기해보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상연이라는 점에서 잠재적 정체성 형성의 치유적 기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가산오광대>의 [중과장]은 이를 잘 나타낸다. 묵극(黙劇)으로 진행되는 대부분의 여타 탈춤의 [노장과장]과는 달리 <가산오광대>의 [중과장]에서는 노장이 창으로 “중노릇을 파하자”는 대사를 한다. 그러면서 썼던 굴갓을 내던지고, 손에 든 목탁을 던져 부수고, 목에 걸었던 염주도 뜯어 버리고, 짚었던 죽장도 분질러 버리고, 장삼도 벗어 되는 대로 내던지는 광경을 노장은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듯 노장의 파계과정에 사회적 비판의 시선이 일부 담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 구도의 과정으로 본다면 노장의 이 같은 파계과정을 풍자적 측면에서만 따져볼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역할 중 자아에 의해 거부되었던 역할을 무대에 상연해봄으로써, 삶의 경험과 문제를 내면 밖으로 표출하는 자아탐구 방식으로서의 의의를 그것은 지니고 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에서 썩은물을 먹고 해탈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노릇을 파하는 노장의 파격 행위는 정체성을 분리시켜 상연해 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치유적 의의를 가진다.

    이렇듯 탈춤에서는 삶에서 드러날 필요가 있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현실에서 표현되지 못하고, 역할 체계 중 우위를 점한 다른 역할에 의해 억눌려 왔던 역할들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때문에 탈춤의 무대공간은 무의식의 작업이 활발하게 발생하는 곳으로서 고정된 본질 없이 해체되고 성장하며 변화되는 정체성의 역동적 흐름을 보이게 하는 치유공간으로서의 의의를 점한다.32)

    13)Jones, Op,cit, pp. 229~230.  14)Michelle Maiese, Embodiment, emotion, and cognition, Palgrave Macmillan, 2011, p. 26.  15)Jones, Op,cit, pp. 230~232.  16)이두현, 앞의 책, 164쪽 참조.  17)이와 같은 입장에서 노장과장을 분석한 논의로는 유민영, 「한국전통연극에 나타난 한국인의 미의식 - <봉산탈춤>과 <꼭두각시놀음>을 중심으로」, 『도솔어문 1집』,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5, 45~61쪽 참조.  18)Jones, Op,cit, p. 232.  19)Jennings, Op,cit, pp. 70~73.  20)Jennings, Op,cit, pp. 137~154.  21)Landy, 앞의 책, 253쪽.  22)Jones, Op,cit, pp. 144~145.  23)호이징하, 카이유와의 놀이 이론의 개괄적 설명은 Carlson, Marvin, Performance : a critical introduction. Routledge, 1996. pp. 21~22를 참조.  24)“‘흥겹다’는 것은 ‘흥취가 일어나 한껏 재미있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는데, 이를 봐도 ‘흥’과 ‘재미’가 거의 의미가 겹쳐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언급은 놀이와 한국적 흥의 정감 사이의 깊은 관련을 시사한다. 신은경, 『풍류 :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보고사, 1999, 122~124쪽.  25)한 체험은 응고된 감정의 응어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응어리진 것의 액화의 순간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은 단순히 고착된 심리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위의 책, 259~261쪽.  26)Jones, Op,cit, p. 165, p. 253 참조.  27)이점에 대해서는 정성미, 「감성과 인문치료의 언어, 은유」, 『인문과학연구 24집』,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201~220쪽 참조.  28)김욱동, 앞의 책, 111쪽.  29)이런 점에서 꼭두각시극을 ‘죽음의 축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란, 『희곡과 연극의 담론』, 연극과인간, 2003, 144쪽 참조.  30)Jones, Op,cit, pp. 241~269 참조.  31)로버트 랜디의 경우, 인간의 발달 단계와 관련해 역할 수령자, 역할 취득자, 역할 연기자로서의 극적 발전을 강조한다. 이런 역할 접근법에 따르면 연극치유의 중요한 목적은 역할 체계의 건강성 확보다. Landy, 앞의 책, 68~84쪽.  32)“치유공간의 무대에서는 환상이 더욱 환상적으로 되듯이, 현실이 더욱 사실적으로 되거나 특별해진다.” David Read Johnson, 김세준 외 공역, 『현대 드라마치료의 세계 : 드라마치료의 역사와 현재적 접근』, 시그마프레스, 2011, 448쪽.

    4. 결론

    이 논문은 탈춤의 연행 과정을 치유 과정 자체로 인식하고 논의를 출발했다. 누가 누구를 치료해 주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광대와 청관중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입장이 전제되었다. 그래서 연행 주체 모두가 탈춤에 참여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는 가정 하에 본론의 기술을 시도하였다. 이때의 건강이란 삶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 삶의 질적 변화 같은 내적 성장의 국면을 뜻한다. 탈춤 연행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건강으로의 복귀를 가능케 하는 바, 정체성 변형이라는 치유적 속성의 자질이 이미 탈춤에 내포되어 있음을 본론에서는 살펴보려 하였다.

    탈춤의 치유적 요소는 굿과 결부된 거시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청신→오신→송신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연행구조에서 우선 발견된다. 청신→오신→송신의 신을 맞고 신과 놀다가 신을 떠나보내는 등의 탈춤을 둘러싼 거시적 연행구조는 ‘준비’→‘초점 조정’→‘주요활동’→‘주요활동의 종결과 역할 벗어나기’→‘완료’라는 극적 치유의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탈춤을 통한 이계(異界)로의 왕래 체험은 일상적 삶과 거리를 두고 삶의 환부들을 반추하여 환자 자신이 자기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조건 지어진 공간 내에서의 치유적 경험과 일치한다. 청신→오신→송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탈춤의 연행 참여자들은 극적 형태로 현실의 경험을 자기화하고 그것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연행자들의 삶이 탈춤을 통해 연루되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좀 더 다양한 기법 속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예컨대 몸의 삶을 재현한다 할 수 있는 탈춤에서 <침놀이>와 같은 극적 몸의 체현은 치유를 위한 시공간을 생성시킨다. 이렇게 형성된 시공간을 바탕으로 연행 주체들의 내면적 상태가 투영됨으로써 치유적 계기가 마련되는데,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고 과식을 통해 늙음의 우환을 극복하고자 하는 할미의 사례 등이 대표적 예다. 한편 놀이를 통해서는 무질서의 자유로움이, 제의를 통해서는 질서의 통제적 감각이 형성된다. 옴중과 목중의 몸을 뒤척거리는 대거리 놀이 그리고 굿판의 제의 간의 길항은 탈춤의 극적 세계에서 참여자들이 다른 존재방식으로의 변형을 감행할 때의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치유적 의의를 지닌다. 탈춤현장에 연상적 사고를 유발하는 상징과 비유도 단순한 표현법의 기능을 넘어 자아 개념의 확대를 가능케 하는 인지 방식으로 기능하므로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치유적 과정으로 연행자들에게 자리매김될 수 있다. 대사에서 빗대어 발화되는 종가 집 도령, 양반들, 영감의 원관념은 유형적 실체의 영역을 벗어나 참여자들이 연계적 사고와 감정적 관여를 가지고 자아의 경계에 대한 경험을 확장하게 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 측면을 분리시켜 연기하는 <가산오광대>의 [중과장]에서 드러나듯 이상의 여러 기법들과 함께 뒤섞인 채 연기되는 역할 연습을 거치면서 정체성이 해체되고 성장하는 과정의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탈춤은 역할 체계의 관점 상 동화와 적응의 치유적 효과를 또한 발현하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 본 치유 기법들은 남사당패놀이나 무당굿 등 초기 단계의 탈춤에서도 어느 정도 발견되는 장면들이다. 그렇지만 경기도 지방의 산대놀이나 해서 지방의 탈춤 그리고 경상도 지방의 오광대와 야유 등 거의 모든 탈춤에서 연행되는 노장의 파계, 영감과 할미의 다툼, 그리고 양반과 말뚝이의 대립처럼 탈춤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갈등 장면 상 이러한 요소들이 보다 부각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역으로 말해 종교적, 사회적, 가정적 위계질서가 부여하는 모든 제약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비록 본고에서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치유적 기법들이 갈등 장면에 활발히 결부되었다는 점을 고찰할 수 있다면 탈춤 고유의 연극치유적 자질이 더 상세히 가늠될 수 있으리라 본다.

    본론에서 다루어진 탈춤의 잠재적 치유 과정과 치유 기법을 간략히 요약해 보았다. 이러한 치유 과정이나 기법의 의미는 사실 그것에 관련된 건강과 질병을 어떻게 개념화하느냐에 많은 부분 의존한다.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해명된 본고의 내용을 따라 탈춤 연행을 발생시키는 병환을 이야기해본다면 여러 탈춤의 연극 치료과정과 기법 활용이 암시하듯이 변형을 허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체계야말로 탈춤이 극복하고자 하는 병중의 병이다. 역으로 말해 널리 크게한다는 어원의 ‘광대(廣大)’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탈춤이 추구하는 건강이란 생물학적 튼튼함, 정신적 정상, 사회학적 안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아를 부정하고, 탐색하고, 확충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삶으로의 질적 전환을 꾀할 만한 잠재력을 얼마만큼 지닐 수 있느냐 하는 점으로부터 결과한다. 물론 연행 기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병들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연행 과정을 거쳐 연행 참여자들의 삶이 연행 이전과 비교해 이후에는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객관적으로 따져 볼 만한 정확한 자료도 없다. 그런 까닭에 탈춤에 연행되는 환부적 증상의 정의와 진단 과정, 그리고 그러한 병듦의 징후들이 얼마나 다스려지고 나아졌는지 하는 치유의 효과 등이 탈춤 연행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결부되어 차후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일반적인 연극치료가 개인적 차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동놀이로서 탈춤의 집단적 속성이 현대 연극 치료의 원리와 방법의 해명에 기여하는 부분인지라 그 후속연구가 절실하다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탈춤을 통해 인간 병듦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한 한 과정으로서 “변형”의 가능성을 헤아려보았다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인간이 병듦을 회복하고 존재론적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과 밀착하면서도 자신과 거리를 두는 정체성 변형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할 수 있다, 이 중 연기로 자신을 가상의 무대(as if)에 인용해보는 과정은 자아와 또 다른 관계 맺기 과정으로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가설해보는 것 자체야말로 치유적 속성을 함축한다 하겠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천대받았지만 한 섞인 흥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처한 존재론적 조건을 널리 크게 하고자 하였던 광대(廣大)의 연행이 잠재젹 연극치유력의 의의를 넘어 인간됨의 본질을 회복하는 치유의 맹아를 가지고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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