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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의 예술적 정체성* L'identite artistique de la premiere avant-garde cinematographiqu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의 예술적 정체성*

Dès les premières années du vingtième siècle, le cinéma a suscité l'enthousiasme artistique des peintres, des écrivains et des musiciens qui participaient volontiers à la fabrication d'un film. Les futuristes qui exaltaient la civilisation urbaine, les machines et la vitesse ont envisagé le cinéma comme le moyen d'expression idéal pour décrire une société largement remodelée par les machines.

Ricciotto Canudo qui jouait un rôle actif dans les milieux de l'avant-garde littéraire et cinématographique a ouvert la voie à une réelle autonomie de l'expression cinématographique en déclarant que le cinéma est le septième art qui synthétise la peinture, la sculpture, l'architecture, la musique, la poésie et la danse.

Les cinéastes de la première avant-garde ont essayé de s'éloigner le plus possible de la mimesis pour affirmer la supériorité de l'intériorité sur les apparences extérieures. Ils ont mis en valeur la mobilité du cinéma pour assurer à celui-ci une valeur artistique malgré ses mécanismes photographiques auxquels on reproche souvent de ne faire qu'enregistrer mécaniquement la réalité.

Les premiers avant-gardistes ont élaboré une esthétique cinématographique qui contribuait à l'émancipation du cinéma par rapport aux autres arts. La photogénie, un accord mystérieux de la photo et du génie, est au fondement de cette esthétique cinématographique. D'après Epstein, l'aspect des choses, des êtres et des âmes dont la qualité morale est accrue par la reproduction cinématographique est photogénique. La photogénie apparaît comme fonction de la mobilité. La mobilité photogénique est une mobilité dans le système espace-temps où le vecteur du temps passe par l'intersection des trois directions de l'espace.

L'aspect photogénique des choses et des êtres révèle leur personnalité, c'est-à-dire leur âme visible. Le cinéma a donc une fonction animiste en accordant la vie aux apparences gelées des choses et des êtres.

KEYWORD
le futuriste , le septieme art , la premiere avant-garde , la mobilite du cinema , la photogenie , la personnalite
  • 1. 머리말

    아방가르드는 현대예술에 관한 담론에 흔히 등장하는 용어이다. 원래 전투에서 본 부대의 공격에 앞서 적군의 동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되는 정찰대를 뜻하는 이 용어에는 ‘개혁을 통한 쇄신’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운동은 낡은 전통과 관습의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강한 저항과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수세력의 견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전위대의 진취적 모험 정신이 아방가르드에 내재한다.

    아방가르드 용어의 예술적 전의는 19세기 후반에 뚜렷해진다. Matei Calinescu에 따르면 1870년대의 프랑스에서 아방가르드의 용어는 정치적 함의를 여전히 지니면서도 급진적인 사회개혁의 비판 정신을 예술의 영역에 적용하는 예술집단을 지칭하였다.1) 아방가르드 예술에는 당대의 지배적 가치 이념에 대한 저항과 비판 정신이 깃들여있다. 이러한 저항의 근저에는 산업혁명 이후에 급속히 성장한 산업자본주의의 폐해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회의가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발발한 전대미문의 세계대전은 과학기술이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의 와해와 더불어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파괴적인 죽음의 충동이 꿈틀 대는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지적 담론의 장이 열렸으며 기존의 예술 형식과 내용을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나타났다.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19세기 부르주아 중산층의 의식에 자리 잡았던 과학 기술의 효용성에 대한 신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에 의한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성 숭배 등과 같은 부르주아적 모더니티를 부정하였다. 그들은 사회 개혁을 위하여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추구하고 불변하는 초월적 미를 추구하는 전통 미학과 대립하였다. 예술을 통한 사회 혁신의 염원은 진취적인 예술 양식의 탐색으로 이어졌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기성 예술 매체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졌다. 영화라는 새로운 표현 매체의 출현은 대중에게는 시각적 오락의 향유를 의미했던 반면에 아방가르드의 기치를 내건 예술가들에게는 진보적 신념의 혁신적 표현 가능성을 뜻했다.

    영화가 탄생하자, 처음으로 이 새로운 예술 매체에 대해 열광적인 관심을 표명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태리 예술에 대한 자긍심에 충만한 미래주의자들이었다. 프랑스의 입체파나 독일의 표현주의를 필적하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탐색했던 미래주의자들은 영화에서 현실의 재현이라는 국한된 기능을 넘어서 예술 매체의 가능성을 간파하였다. 미래주의자들은 산업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근대사회의 역동성을 중시했는데, 영화는 그 역동성의 산물이면서 또한 이상적인 표현 매체로 간주됐다.

    미래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예술적 소재였던 역동적 사회상은 산업혁명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산업혁명은 생산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근대자본주의 사회를 형성했을 뿐만이 아니라 도시 규모의 확대를 가져왔다. 자동차, 전화, 전보 등의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생활리듬의 증속을 초래했다. 화폐 경제와 시장 생산의 본거지인 대도시의 거주민들은 빨라진 생활 리듬으로 인한 외부의 과잉 정보를 신속하게 인지하여 처리해야만 했다. 근대 사회를 문화현상학적으로 사유했던 Georg Simmel은 근대 도시인들의 심리를 “신경과민”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현상은 근대 도시 환경의 “외적·내적 자극들이 급속도로 그리고 끊임없이 바뀌는데서 기인하고 있다”고 보았다.2) 근대 도시민들은 기민한 인지 능력으로 인해 동적인 아름다움에 더욱 민감해졌으며 예술의 양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Simmel은 로댕의 조각에 드러난 역동미의 예를 제시하며, “현실적 삶의 상승된 운동성은 예술의 동일한 운동성으로 명백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삶의 양식과 이 삶을 표현하는 예술의 양식은 모두 동일한 근원에서 샘솟는다. 예술은 역동적 세계를 반영할 뿐 아니라, 예술의 거울 그 자체가 더 역동적이 된다”3)고 주장하였다.

    1)Matei Calinescu, Five faces of modernity: Modernism, Avant-garde (1987), Decadence, Kitsch, Postmodernism, p.112 «In the 1870s in France, the term avant-garde, while still preserving its broad political meaning, came to designate the small group of advanced writers and artists who transferred the spirit of radical critique of social forms to the domain of artistic forms.»  2)Simmel에 따르면 근대 도시민들은 대인 관계의 상충과 끊임없이 수용되는 외부 자극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거리 두기’와 ‘속내 감추기’와 같은 방어기제를 무의식적으로 이용한다. cf. 게오르그 짐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pp.35-44  3)Ibid., p.190

    2. 영화예술의 자율성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 예술가들은 Simmel이 예시한 역동적 예술미에 매료됐다.4) 특히 미래주의 영화인들은 전통적 예술형식을 거부하였고 사물의 외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내적 역동성을 영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그들은 미래주의의 미학적 이념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매체가 영화라는 신념을 가졌다. 미래주의를 주도한 Marinetti는 1916년에 Bruno Corra, Arnaldo Ginna, Remo Chiti 등과 함께 ‘미래주의 영화 선언’을 통해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선언문은 영화의 “과거부재”와 예술적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로움”때문에 영화는 회고주의를 거부하는 미래주의의 혁신적 이념에 부응하는 매력적인 예술적 매체임을 밝히고 있다. 미래주의자들은 영화에서 탁월한 미래주의적 예술의 가능성과 미래주의 예술가의 복합적인 감성에 가장 부합되는 표현력 있는 매체”의 모습을 간파했다.5) 미래주의자들은 영화의 예찬을 위해 구시대의 매체인 서책을 비판한다. 그들에게 “복고적인” 서책은 더 이상 “혁명적이고 호전적인 활력으로 들뜬 새로운 미래주의 세대를 고양시킬 수 없는”6) 반면에, 역동적인 요소들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일상적 삶의 운동감과 속도감을 포착하여 표현할 수 있는 영화는 미래 지향적 예술의 형태였다.

    영화는 미래주의자들의 예찬에도 불구하고 태생 초기에는 예술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영화는 장터나 축제행사에서 일시적 여흥을 위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시네마토그라프 영사기의 발명을 통해 영화를 탄생시킨 Lumière 형제조차 영화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였다. 영화가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영화의 기계적 재현성이었다. 영화 이미지를 회화 이미지와 비교해 볼 때, 그림에는 화가의 창조적 시각이 색채, 선, 면, 구도, 명암과 같은 조형적 요소들을 통해 반영되는 반면에 영상 이미지는 피사체의 반사광이 필름의 감광막에 자동적으로 기록된다. 영상 이미지의 자동 생성 과정에는 예술의 창조적 과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영화의 예술성을 부정하는 논거였다. 영화를 기계적 자동성을 지닌 재생 매체로 격하하는 관점은 사진에 대한 근대 예술가들의 수용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Baudelaire는 사진이 “프랑스의 예술적 재능을 상당히 빈곤”하게 만들었기에 사진은 “과학과 예술의 예속물이라는 본연의 소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7) 주장하면서 사진의 예술적 자율성을 강하게 부정하였다. 영화의 자율적 예술성을 부인하는 또 다른 근거는 영화가 기존 예술들이 이뤄낸 성과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Léon Pierre-Quint은 영화가 타 예술들의 성과를 차용하여 스크린 상에 옮겨놓았을 따름이라고 주장하며 영화의 예술적 자율성에 문제를 제기하였다.8) 영화 고유의 형식적 규칙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이전에 영화는 타 예술, 특히 문학의 종복일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영역 밖에 머물던 영화를 예술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그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의 몫이었다. 파리 아방가르드 운동에 동참했던 Ricciotto Canudo는 1911년 10월 발행된 Les Entretiens idéalistes 지에 <제6의 예술의 탄생, 영화시론 (La naissance d'un sixième art. Essai sur le cinématographe)>을 기고하면서 영화가 “제6의 예술”임을 선언하였다. 그는 기성예술, 특히 연극의 아류로 간주되던 영화에는 고유한 예술적 특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Canudo에 따르면 영화는 사물이나 인간존재의 순간적인 형상을 포착하여 재현하는 그림들의 연속물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공간 속에 고정된 그림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간 속으로 전치한 예술 형태이다. Canudo가 “우리는 움직이는 조형예술인 제6의 예술의 창조를 생각할 수 있다.”9)라고 선언했던 이유는 영화의 예술적 복합성 때문이다. 이후 Canudo는 영화를 공간예술인 회화, 조각, 건축과 시간예술인 음악, 시, 무용을 총괄하는 “제7의 예술”이라 명명하면서 모든 예술의 근원적 기능을 융합하는 “총체예술(art total)”로 영화를 규정하였다. Canudo에 따르면 영화는 “빛의 리듬을 포착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예술로서 “과학적 발견과 예술의 이상” 사이의 결연을 통해 탄생한 종합예술이다.10) Canudo에게 영화는 속도에 지배되는 현대사회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해내는 탁월한 예술매체이다.

    영화를 예술의 영역에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은 영화를 자본의 지배에서 탈피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영화는 타 예술과는 달리, 탄생 초기부터 산업화됐다. 영화가 영리추구의 수단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망한 예술가들의 참여가 필요했다. Canudo가 생각했던 진정한 영화인 “에크라니스트(écraniste)”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꿈의 형상에 따라 현실을 변형시키는”예술가이다. 그는 이러한 예술적 소임을 실행하기 위하여 현실의 “표면적 사실이 아닌, 정신 상태를 그려내기 위하여 포착된 빛을 다루는”작업을 한다.11)

    영화에 종합예술의 정체성을 부여한 Canudo와 마찬가지로 여류 영화인 Germaine Dulac도 영화 특유의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Dulac은 영화가 다른 예술의 “그림자로 남기에는 너무 위대하다. 영화를 자신의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뚜렷한 개성을 부여해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영화는 현존하는 어떤 예술과도 유사하지 않다.”12)고 주장하였다. Dulac은 영화가 타 예술의 그늘에서 벗어나 순수예술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광학 기술에 의존하는 영화의 매체 특성에서 엿보았다.

    4)초기 유럽 아방가르드 영화예술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영화, 이태리의 미래주의 영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로 압축된다. 이 글에서는 일차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에 나타났던 프랑스의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가 영화의 예술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떠한 지적인 노력을 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프랑스의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인 Ricciotto Canudo, Germaine Dulac, Louis Delluc, Jean Epstein 등의 미학적 관점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된다  5)Marinetti 외, The futurist cinema, in Umbro Apollonio (1973), Futurist manifestos, p.208, « (...) we see in it the possibility of an eminently futurist art and the expressive medium most adapted to the complex sensibility of a futurist artist.»  6)Ibid., p.207  7)Charles Baudelaire, Le public moderne et la photographie, in Ch. Baudelaire, Oeuvres complètes, éd. Claude Pichois, Tome 2, Gallimard, 1976, p.618  8)Léon Pierre-Quint, Signification du cinéma (1927), in Patrick de Hass (1985), Cinéma intégral, p.124, «Il (le cinéma) emprunte au roman une intrigue, au théâtre ses acteurs, à la musique l'accompagnement et le rythme, à la peinture ses décors, aux journaux amusants leurs sous-titres.»  9)Ricciotto Canudo, La naissance d'un sixième art. Essai sur le cinématographe (1911), in L'Usine aux images, p.40  10)Ricciotto Canudo, Manifeste des sept arts (1923), in L'Usine aux images, pp.161-164  11)Ricciotto Canudo, Réflexions sur le 7e art (1927), in L'Usine aux images, p.38  12)Germaine Dulac, L'essence du cinéma- l'idée visuelle (1925), in Germaine Dulac, Ecrits sur le cinéma: 1919-1937, Textes réunis et présentés par Prosper Hillairet, Paris Expérimental, 1994, p.63

    3. 영화예술의 매체적 특성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이론가들은 영화 특유의 매체적인 속성을 깊이 사유함으로써 영화에 고유한 예술적 정체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영화 매체의 운동성이었다. 회화나 조각의 조형예술에도 동적인 속성이 드러날 수 있지만, 영화와는 달리 정태적 역동성이다.13) Canudo가 영화를 “움직이는 조형예술”로 본 것처럼 Elie Faure 역시 “영화는 시간을 공간에 통합 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동적 조형성에 동의한다. 영화 특유의 예술적 특성은 순간을 포착하는 잠재적인 역동성이 아니기 때문에, Faure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의 어떤 순간에 정지된 네거티브”로부터는 아무런 “감동의 기억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14)라고 주장한다.

    초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영화의 운동성이라는 매체 특성에 주목한 것은 영화가 역동적인 근대 사회를 잘 그려낼 수 있는 이상적인 재현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근대성의 상징인 영화는 광학적 정밀성에 의해 탁월한 인식의 수단으로 인정받고 다른 예술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다. Bergson은 영화 메커니즘에서 인간의 인식 방식을 주목한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현실계는 정신과 물질의 중간물인 이미지들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하여 구성되는데, 인간의 지각능력은 수많은 이미지들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부단히 지속되는 실제 운동을 제한된 수의 절편들로 잘라서 재구성하여 인식할 수밖에 없다. Bergson이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 메커니즘은 영화적 성격을 지닌다.”고15) 보는 이유이다. Bergson에 따르면 영화 속에 재현되는 현실계의 운동들은 일정한 간격의 정지된 단면들로 분할되어 재구성되므로 운동의 고유한 특질인 지속과 생성이 제거된 거짓 운동들이다. 실제 지속의 시간은 유리수처럼 고착된 순간들의 연계로 왜곡되면서 영화 속의 시간은 공간에 종속된다. 인간의 지성은 생존 활동의 필요에 의해 지속이라는 부단한 생성의 과정을 정지된 부동의 국면으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구성 방식과 유사하다.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 이론가들은 영화를 시각적 환영으로 이해하는 Bergson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Epstein은 Zenon이 그 가능성을 부인하였던 비연속체의 연속체로의 변환을 영화가 실현해준다고 역설한다. 영화의 개별적 이미지들은 필름이라는 물질에서 비연속체로 존재하고 스크린 상에 영사되어도 단속적인 부동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관객의 지각영역으로 수용되는 순간에 부단한 연속체로 인식된다. 이러한 변환은 Epstein의 지적대로 인간 정신의 “순수한 내적 현상”이다.16) 파이현상(phi phenomenon)이라는 이 내적 현상은 항상 능동적으로 어떤 의미를 탐색하는 심리적 경향에 기인한다. 만일 2개의 불빛이 번갈아 점멸하면 우리는 한 불빛이 전후로 운동한다는 착시에 빠진다. 영화에도 이러한 외현운동의 현상이 나타나서 움직임을 재현하는 각각의 고착된 부동의 프레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파이현상에 의해 메워져 연속 운동으로 인식된다.

    Bergson이 경험했던 영화는 고정된 카메라에 포착된 이미지 운동이었기 때문에 카메라의 다양한 움직임, 몽타주, 슬로우 모션 등의 기법에 의한 공간과 시간의 확장과 축소 가능성을 그는 예측할 수 없었다. 초기 영화 이론가들에게 영화 장치는 인간의 육안이 간과한 부분을 포착하고 세상을 다른 시각에 조망하는 탁월한 기계적 시각으로 인식됐다. Epstein은 이 기계적인 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Epstein은 영화를 통해 인간의 가청과 가시 범위는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영화의 기계적인 눈은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고 여기는 개체들을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게 해주고 추상적 현실들을 드러내는” 뛰어난 인식의 도구이다.18)

    영화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추상적 현실로서 ‘지속’(durée)이 있다. 지속은 부단히 계속되는 시간의 흐름, 즉 지속적 유동성을 의미하며 육안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영화는 현실 세계에 은폐된 부단한 유동성의 측면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불완전한 지각 능력을 보완하는 좋은 방편이다. 영화를 통해 확대된 인간의 인식 능력은 현실에 대한 명료한 해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현실 통제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Epstein이 영화가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는 이유이다. 그의 믿음에 따르면 영화는 보다 나은 삶이 실현되는 “약속의 땅”이며 “대단한 경이의 장소”이기 때문에 영화에 “우리의 최대 희망이 실리게 된다.”19)

    영화의 눈이 포착하는 이미지의 우월성에 대한 Epstein의 관점은 후에 Deleuze의 영화 이미지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영화 이미지에 대한 Deleuze의 사유는 Bergson의 이미지 존재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Bergson에 따르면 물질은 “이미지의 총체”이기 때문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하며 우주라는 객관적 체제를 이룬다. 이 개관적 체제에 “특정 이미지”인 우리의 몸이 작용하는 것이 지각이다.20) 이미지의 객관적 체제는 몸의 지각을 통해 주관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로 정박된다. Deleuze는 영화 이미지가 몸의 지각과 같은 “정박점(point d'ancrage)”이나 “준거 중심(centre de référence)”에 의해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탈중심화된 사물의 상태에서 중심화된 지각으로 이행하는 대신에 탈중심화된 사물의 상태로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그것에 근접할 수 있다.”고21) 주장한다. 영화의 눈은 프레임이나 앵글, 초점 등으로 제한되므로 육안과 마찬가지로 정박점을 지닌 상대적인 이미지 체계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눈은 육안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다양한 시점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탈중심화된 본래의 이미지 체계에 근접할 수 있다. 이념과 신체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영화의 눈이 주관성에서 벗어나서 이미지의 절대 체제인 현실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육안에 비해 상대적 우월성을 지닌다.

    육안을 능가하는 인식의 도구로서 영화 장치를 이해하는 관점은 Epstein 뿐만 아니라, Dziga Vertov, Béla Baláz 등의 근대 영화이론가들이 공유하고 있다. Vertov는 "영화의 눈(kino-eye)”이라는 개념으로 카메라가 지닌 발군의 탐지능력을 예찬하였다. 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고착된 육안과는 달리 영화의 눈은 지속적인 움직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육안이 공간상의 이동이 제한되는 몸에 의해 한계 지워는 반면에, 영화의 눈은 인간의 시각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비인간적인 눈이다. 이 비인간적인 눈은 육안의 지각 한계를 넘어서 부단히 운동하는 물질 속에 스며들어 다양한 시점을 낳고 공간의 모든 지표를 시점화할 수 있다. Vertov에게 영화의 눈은 가시적 세계의 탐색 수단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진실을 밝히는 인식 도구였다. 그는 영화의 눈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육안의 가시 영역 밖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판독한다.”22)고 보았다. 영화의 눈이 포착한 현실의 단편들은 불완전한 인간의 지각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사실들이며 몽타주 같은 영화적 장치에 의해 현실의 진실로 재구성될 수 있다. Vertov는 영화가 지닌 현실의 변혁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Epstein의 관점과 유사하다.

    Epstein과 Vertov가 강조한 영화 장치의 탐지력, 즉 미지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능력을 Baláz는 창조성의 측면에서 부언하고 있다. Baláz는 “영화 카메라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숨겨진 세계, 즉 사물의 영혼, 군중의 리듬, 말하지 못하는 사물의 비밀스러운 언어 등을 보여 준다”는23) 점에서 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화가 순수 기록영화일지라도 현존하는 세계를 단순히 재생하지 않고 새롭게 재창조한다고 보았다. 재창조의 가능성은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 앵글, 편집 등의 테크닉을 통해 열린다. Baláz에 따르면 영화는 현실의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예술로서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현실인식을 이식하는 매체이다.

    초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영화는 육안의 미흡한 시각 능력을 벌충하는 시각적 도구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수단이었다. 영화 이미지는 Peirce적 의미의 지표기호(Index)이며 도상기호(Icon)이지만, 카메라 앞에 현존하는 피사체를 단순히 정밀하게 재현하는 도상기호는 아니다. 이러한 영화 이미지의 특성은 초현실주의 시인 Philippe Soupault가 영화장치를 사진기와 같은 정밀한 재현 장치가 아닌, 미지의 세계를 여는 열쇠로 이해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인간은 과학 기술에 기대어 신체의 열등한 기능을 보완해 왔다. 치타보다 빨리 달리기 위하여 자동차와 기차를 만들었고 군함조보다 쾌속으로 날기 위하여 비행기를 발명하였다. 영화 카메라는 몸의 눈을 속박하는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우월한 정밀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현미경이나 망원경과 같이 인간의 시각 기능을 보조하는 실용적 도구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은 현실세계의 엄밀한 관측과 기록 장치를 넘어서는 영화의 창조적 기능에 집중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영화 이미지는 물리적 현실의 엄밀한 기록인 사진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현실의 구축 가능성을 열어준다. 영화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사진 이미지 또한 인간의 시각적 인지 범위에서 벗어나는 현실의 국면을 포착할 수 있다.25) 그러나 영화 이미지와는 달리 부동의 이미지인 사진 이미지에는 부단한 지속의 유동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현실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현실의 창조가 어렵다. 영화를 사진이나 회화와 구분 짓는 변별적 특질이 초기 영화이론가들의 주요한 사유 대상이 됐던 이유는 영화의 예술적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은 포토제니(photogénie)를 영화의 특유성으로 보았다.

    13)Goethe가 라오쿤(Laocoon)의 군상 앞에서 눈을 감고 뜰 때 느끼는 대리석조각상들의 역동적 환영이 그러한 예이다. cf. Goethe, Observations on the Laocoon (1798), in Goethe on art, selected and translated by John Gage, California Univ. Press, 1980, p.81, « (...) let us place ourselves before the groupe with our eyes shut, and at the necessary distance; let us open and shut them alternatively and we shall see all the marble in motion; we shall be afraid to find the group changed when we open our eyes again.»  14)Elie Faure, De la cinéplastique (1922), in Fonction du cinéma. De la cinéplastique à son destin social (1921-1937), Edition d'Histoire et d'Art, 1963, p.33  15)Bergson은 “우리가 생성을 사유하거나 표현하던가, 혹은 그것을 지각하던 간에 우리 내부에 있는 일종의 영화를 작동시킬 따름이다.”라는 표현으로 영화와 인간의 인식 메커니즘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cf. Henri Bergson, L'évolution créatrice, PUF, p.1966, p.305  16)Jean Epstein, L'intelligence d'une machine (1946), un document produit en version numérique, la Bibliothèque Paul-Émile-Boulet de l’'Université du Québec, 2001, p.11, «La discontinuité ne devient continuité qu'après avoir pénétré dans le spectateur. Il s'agit d'un phénomène purement intérieur. A l'extérieur du sujet qui regarde, il n'y pas de mouvement, pas de flux, pas de vie dans les mosaïques de lumière et de l'ombre, que l'écran présente toujours fixes.»  17)Jean Epstein, Le cinématographe vu de l'Etna (1926), in Écrits sur le cinéma, vol 1, Seghers, pp.136-137  18)Jean Epstein, Photogénie de l'imponderable (1935), in Écrits sur le cinéma, vol.2, Seghers, p.13  19)Jean Epstein, De quelques conditions de la photogénie (1924), Cinéa-Ciné pour tous (N°19), in Écrits sur le cinéma, Seghers, 1974, p.139  20)cf. Henri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1896), édition numérique: Pierre Hidalgo, La Gaya Scienza, 2011, p.19, « J'appelle maitère l'ensemble des images, et perception de la matière ces mêmes images rapportées à l'action possible d'une certaine image déterminée, mon corps. »  21)Gilles Deleuze, Cinéma 1, L'image-mouvement, Éditions de Minuit, 1983, p.85  22)Dziga Vertov, Manifesto from The Council of Three (1923), in Kino-Eye: the writings of Dziga Vertov, edited by Annette Michels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pp.17-18  23)벨라 발라즈, 영화의 이론 (1952), 이형식 옮김, 동문선, 2003, p.52  24)Philippe Soupault, Le malaise du cinéma (1929), in Écrits de cinéma 1918-1931, Plon, 1979, p.60  25)Benjamin은 육안이 놓치는 외부 현실계의 국면을 “시각적 무의식의 영역”으로 보고 사진은 접사와 고속촬영을 통해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의 충동들을 파악하듯이 시각적 무의식의 영역을 가시화한다고 보았다. cf. Benjamin, A short history of photography, in Classic essays on photography, p.203, «Photography, however, with its time lapses, enlargements, etc. makes such knowledge possible. Through theses methods one first learns of this optical unconscious, just as one learns of the drives of the unconscious through psychoanalysis.»

    4. 포토제니

    포토제니는 1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예술이었던 인상주의 영화미학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영화의 탄생지인 프랑스가 누렸던 세계 최고의 영화 산업국이란 위상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화에 흔들렸다. 미국 영화는 최초로 카메라의 다양한 움직임을 이용한 Griffith 등의 걸출한 영화인들에 의해 한층 풍부한 표현력으로 무장하고 축적된 경제적인 부를 바탕으로 할리우드를 중심축으로 자본집약적인 산업 체계를 구축하였다. 전후에 피폐해진 유럽의 경제 상황 속에서 유럽영화는 거대한 산업자본의 체계로 부상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패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미국 영화의 헤게모니에 대항하여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는 새로운 영화미학을 표방하는 예술영화의 제작이 시도됐다. 독일의 경우, 빌헬름 시대의 허세와 부르주아 규범의 위선, 산업혁명 후에 가속화된 물질주의에 반발했던 표현주의 예술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전이됐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주관주의는 건축구조의 기하학적 선과 명암을 빛의 대비로 영상화됐다. 표현주의 영화의 전범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 Dr. Caligari)>을 감독한 Robert Wiene, 의 Fritz Lang, 의 Friedrich Murnau 등이 화가 출신이라는 사실은 표현주의 회화와 영화의 밀접한 상관성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영화의 정수에 대한 미학적 고찰에 입각하여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Louis Delluc, Léon Moussinac, Germaine Dulac, Abel Gance, Jean Epstein 등의 인상주의 영화인들 사이에 일어났다. 특히 Louis Delluc은 영화예술의 정수를 포토제니(photogénie)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표현하였다.26) Delluc에 의하면 어떤 사물의 영화 이미지가 그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각 방식과 효과를 촉발할 때에 포토제니가 나타난다. Delluc에게 포토제니는 “빛(photo)과 영성(génie)의 합일”로부터 생기며 현실의 대상물이 영화에 의해 “미지(inconnu)”와 “비현실(irréel)"의 양상을 드러낼 때, 포토제니가 나타난다. Delluc에게 영화인의 소임은 포토제니의 발견에 있으며 영상화된 사물은 현실계로부터 유리되어 꿈과 상상력의 세계에서 포토제니의 생명력을 얻는다.27) Delluc은 포토제니가 영화의 예술적 근간을 이루며 포토제니가 결여된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상실한다고 보았다.

    다소 모호한 Delluc의 포토제니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던 아방가르드 영화인은 Epstein이었다. 그에 의하면 포토제니는 “영화의 재생” 과정을 통하여 “정신적 특성”이 증대된 영상화된 대상의 특징이다.28) Epstein은 Delluc과 마찬가지로 포토제니를 영화의 고유한 미학적 특성으로 간주하였다. 색채와 용적이 각각 회화와 조각의 토대인 것처럼 포토제니의 개념은 영화예술의 존재 기반이다. Epstein의 포토제니는 영화가 창조하는 미적 양상이다. 그에게 포토제니는 카메라와 조명 등의 영화 장치에 의한 광학적 효과로 나타나는 미적 아우라이다.

    Epstein의 포토제니 이론은 영화 이미지의 “운동성(mobilité)”을 포토제니의 특성과 연관 짓는다. Epstein은 1924년 4월 11일, Club des Amis du Septième Art에서 행한 강연에서 영화 이미지의 운동성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Epstein이 고찰한 영화 이미지의 운동성은 3차원의 공간과 더불어 4차원의 시간으로 구성된 좌표 상에 나타난다. 영화 속의 시간은 불가역적이고 균일하게 흐르는 절대 시간이 아니다. 비일향적인 영화의 시간은 과거로 역행할 수도 있고 진행의 속도가 가속 또는 감속될 수 있다. Epstein이 말하는 영화 이미지의 운동성은 가변적인 “시공간의 체계(un système espace-temps)”속에서 드러난다. 과거와 미래로 이뤄진 시간 축은 3차원의 공간 축과 만나면서 현재라는 시간의 점을 만든다. 따라서 영화가 구축하는 시공간의 체계에서 시간의 벡터는 공간의 벡터와 교차되며 가변적 운동이 실현된다. Epstein은 이 시공간의 체계 속에 드러나는 운동성을 “포토제니의 운동성(mobilité photogénique)”으로 규정하고 “어떤 대상의 포토제니적인 양상”은 그 대상이 겪는 “시공간 속에서의 변화들의 결과”임을 지적한다.30)

    영화 이미지의 포토제니한 속성으로 Epstein이 제시한 운동성은 외적형상들의 유동적인 변화일 뿐만이 아니라, 시간적 가변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영화 이미지에 감속과 가속의 시간적 변화를 가함으로써 회화에서의 공간적 원근법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는 시간적 원근법이 적용 가능하다.

    영화의 재생 과정을 통하여 정신적 특성이 증대된 모든 대상의 특징이라는 Epstein의 정의에 따른다면 포토제니는 시공간적 운동이 발생하는 영화 과정을 통해 영상화된 대상의 정신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정신적 특성의 증대는 시공간적인 운동성과 더불어 영화 이미지의 포토제니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Epstein은 영상화된 대상의 정신적 특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인격성(personnalité)”의 발현으로 본다. 포토제니를 추구하는 영화는 평범한 대상에게 인격성을 부여한다. 무생명체도 영화를 통해 활물화되어 “생명력의 가장 고귀한 양상”인 인격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인격성은 “사물과 사람의 가시적인 혼”으로 영화를 통해서 일깨워지는 것이다.31)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의 심층에 잠재된 정신적 특성을 영화 매체로 표현한다는 Epstein의 관점은 인상(physiognomy)의 개념을 통해 영화 이미지의 기층 의미를 탐구했던 동시대의 영화 이론가 Béla Balázs의 입장과 상통한다. Balázs에 따르면 어떤 대상의 인상은 그 대상의 외양에 내포되어 있는 심층적인 양상으로 영화 이미지는 이러한 “사물의 얼굴”들을 잘 드러내준다. 사물에 함축된 얼굴은 인간적 형상을 띨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사물을 향해 “우리 자신을 투사한 세계관”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모든 사물에서 사람을 닮은 형상을 드러내는”탁월한 예술이다.32)

    Epstein의 포토제니는 가시적 현실의 이미지 너머로 비가시적 현실을 탐구했던 상징주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천부적인 예술가의 시각에 포착되는 비가시적 현실은 사물의 혼으로 영화에서는 포토제니를 통해 드러난다. Epstein에게 영화 이미지가 포토제니의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영화 이미지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영화 이미지가 영상화 대상과 갖는 표층적 도상 관계는 심층적 도상 관계로 변화된다. 영상화 대상의 심층적 양상이 생명력을 부여받아 생동한다는 의미이다.33)

    26)포토제니는 '빛‘을 뜻하는 photo와 ’산출하다‘는 의미의 génie의 합성어로 원래 사진술의 용어이다. 1839년 François Arago가 형용사 photogénique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명사형 photogénie는 19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초기의 사진술에서 피사체의 선명도는 노출 시간에 비례했기 때문에 초기의 포토제니는 ‘선명한 상이 맺히도록 장시간 빛을 산출하는 것’이란 뜻을 의미했다.  27)cf. Louis Delluc, Écrits cinématographes, tome 1 : le Cinéma et les cinéastes, Cinematheque française, 1985, p.39-50  28)Jean Epstein, De quelques conditions de la photogénie (1924), in Écrits sur le cinéma, op. cit., p.137, « J'appelle photogénique tout aspect des choses, des êtres et des âmes qui accroît sa qualité morale par la reproduction cinématographique. »  29)Jean Epstein, L'élément photogénique (1924), conference du 11 avril 1924, in Écrits sur le cinéma, vol. 1, Seghers, 1974, p.147  30)Jean Epstein, De quelques conditions de la photogénie (1924), op. cit., p. 139, « La mobilité photogénique est une mobilité dans ce système espace-temps, une mobilité à la fois dans l'espace et le temps. On peut donc dire que l'aspect photogénique d'un objet est une résultante de ses variations dans l'espace-temps. »  31)Ibid., p.140  32)벨라 발라즈, 영화의 이론, op. cit., p.107  33)김호영(2006)은 포토제닉한 이미지가 영상화 대상에 활물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 자체가 생명력을 지닌 현전성을 지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cf. 김호형, 영화 이미지와 포토제니, 영화연구 36호, pp.147-171

    5. 맺음

    산업기술의 발전에 따른 근대 사회의 두드러진 변화로서 대중문화의 정착과 확산이 있다. 20세기 초, 과학적 혁신의 산물인 영화가 대중문화 패러다임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던 것은 역동적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영상기호의 탁월한 도상성과 지표성은 운동성과 더불어 영화를 현실 재현의 이상적 도구로 만들었다. 시네마토그라프와 비타스코프와 같은 영사기들의 폭발적인 수요가 입증하듯이 영화는 뛰어난 미메시스 기능으로 인해 가장 광범위하게 향유되는 대중문화 매체가 됐다. 영화의 대중적 인기는 영화산업의 형성과 급속한 발전의 토대가 됐다. Salon indien에서 열렸던 Lumière 형제의 첫 유료 영사회는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산업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장터의 볼거리로 한계점에 이른 영화가 장편화 되면서 영화는 문학에 기대어 소위 ‘문학영화’를 제작하는 Film d'Art를 탄생시켰다. 고급화를 표방하는 문학에로의 예속은 영화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야기하였다. 영상화된 문학의 출현은 영화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미학적 성찰의 욕구를 증대시켰으며 그러한 지적 움직임의 중심에 프랑스의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이 있었다. 영화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이 경주했던 노력은 완결된 서사성의 탈피와 인간과 사물에 함축된 심층 세계의 탐구라는 두 갈래로 이뤄졌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막강한 서사예술인 문학의 굴레에서 탈피해야만 했다. 그러한 시도로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는 문학으로부터 서사적 소재를 차용하지 않고 서사적 완결성에서 벗어나 시각적 리듬을 중시하였다. 또한 일정 시점을 일관성 있게 취하는 문학적 서사와는 달리, 가변적인 복수 시점을 극대화하였다. 서사 중심의 영화에 대한 거부는 1차 세계대전 후에 피폐해진 프랑스 영화계에 드리웠던 위기의식의 전위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세기말부터 잠재됐던 사회적 불안감과 갈등은 세계대전의 비극으로 그 응축된 에너지가 방출됐다. 대참화의 경험을 통해 타나토스의 존재가 확인됐으며 사회의 선순환적 발전이 부르주아 이념의 환영임이 드러났다. 영화계에서는 짜임새 있는 서사 구조와 풍부한 자본으로 유럽 시장을 석권하는 미국 영화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 미학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에게 영화는 현실을 모사하는 재현의 수단이 아닌, 현실의 이면에 내재하는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인식의 도구였다. 영화 매체의 특유성에 대한 미학적 탐구와 더불어 영상화된 대상의 정신성을 부각시키는 포토제니가 영화의 핵심적인 가치로 찬사를 받았다. 영화 이미지는 무생명체의 활물화를 넘어서 인격화하는 마법의 권능을 부여받았다. 꿈, 환상, 내면의 감정 변화와 같은 정신 현상이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의 주된 서술 대상이 됐으며 내면의 심층적 변화를 표현하기 위하여 슈퍼임포즈의 기법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영화가 태생적인 상업성에서 탈피하고 기성예술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는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의 정신적 노고가 점철되어 있다. 영화매체의 표현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현시점에서 영화예술의 미학적 정초를 위해 힘쓴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의 지적 노력은 큰 역사적 비중을 지닐 뿐만 아니라 심도 있는 학술적 고찰의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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