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ian Perspectives in Cultural Identity Formation

제임스 가의 문화 정체성 형성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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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paper attempts to look at how the question of cultural identity can be discussed in terms of which “a family of the minds” as a unit can be given meaningful form of interpretation. I found its real possibility in the James family, especially in Henry James Senior, William James, and Henry James Junior since they represent important cultural context reflecting their European relationship in terms of American cultural consciousness. This research is divided in two parts; the first part of this study consisted of the elder James’s role as a source of moral aesthetic consciousness for the two children, the second part consisted of showing different aspects of inter-relationships between father and sons and between brothers in the process of identity construction. I examine different aspects of the identity formation process of William James and Henry James Junior by arguing different ways of making relationship with their father’s philosophy to illuminate how they reflect and represent American cultural consciousness, and to define the meaning of the Jamesian mind in American cultural history.


  • KEYWORD

    cultural identity , cultural consciousness , America , Europe , James family , Henry James Senior , William James , Henry James Junior

  • I. 서론

    미국 문화의 정체성은 미국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향을 심각하게 수용하고 있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회적, 학문적 논쟁의 주제이다. 다른 곳으로부터 문화를 이식하여 성립한 특정 사회는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근원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문화의 뿌리에서부터 미국은 필연적으로 유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필연적 관계’에 대한 인식은 유럽문화의 이식과 변형, 그리고 미국문화 정체성 해석에 원천적으로 중요한 방법론적 틀을 제공한다. 이것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구체적인 분석 대상이 필요하다. 시점은 미국 문화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된 정신적·문화적·철학적 논의가 총체적으로 논의되었던 19세기일 수 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유럽과 미국 문화를 포괄하는 문화적 배경을 갖춘,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포괄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연구 대상을 설정하고자한다. 제임스(James) 가(家)를 미국 정체성 논의의 대상으로 채택했다. 제임스가는 다양한 사상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관심사들을 거의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미국 지성사에서 문화 정체성 논의의 장을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은 많은 비평가들이 인정해온 사실이다. 그리고 문화 정체성 논의에서 그 대상 자체를 사회나 국가가 아닌 제임스 가로 한정하는 것은 논의의 구체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이고, 이 구체성은 관련 논의를 더욱 밀도 있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가의 구성원들 중 부친 헨리 제임스(Henry James, Senior)와 두 아들, 즉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Junior)의 지적 고민과 논쟁 속에서 우리는 원천 문화인 유럽 문화에 대한 반감이나 동경, 반성, 그리고 변형된 문화로서의 자국 문화에 대한 멸시나 정체성 형성의지 등, 두 문화의 관계에 대해 상이한 해석 및 입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제임스 가에 대한 논의가 곧 미국과 유럽의 관계 논의로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 문화 정체성 관련 논의에 있어서 그 가문의 상징적 비중을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들 자신의 언어로 씌어진 탐구정신과 통찰력의 소산으로서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미국문화 정체성 형성에 대한 인식과 사명의식으로부터 인문학적 논쟁과 해석의 장을 제공하고 있기때문이다. 제임스 가의 사람들은 유럽과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발견하기 보다는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이를 우리는 문화 정체성 형성의지라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원들의 문화 정체성 형성의지를 살펴보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그들이 어떻게 정체성 문제로 수렴하는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제임스 가의 정체성 관련 분석은 하나의 동일한 가(家)의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차원의 동질성이나 이질성 또는 대립적 특성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그들 사이의 동질성 또는 이질성이 형성하는 다양한 양상들이 어떻게 미국문화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은 두 아들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의식과 관점에 영향을 끼친 부친 제임스의 사상과 교육 철학에 대한 분석이다. 둘째 부분은 제임스 가의 문화 정체성 분석이다. 어릴 적 미국과 유럽을 왕래하며 비전통적이며 비체제적인 교육으로 인해 혼란을 겪은 아이들이 성장해 의식적 차원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그들이 부친 제임스의 사상적 체계와 관계 맺는 상이한 방법들을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II. 본론

    제임스 가 형제들1의 성장기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아버지의 교육 철학에 의해 구축된다. 소설가 제임스가 그의 자서전 속에서 회상하는 부모의 중요한 지침은 일상의 모든 경험을 소통 가능한 형태로, 즉 형태가 없는 경험의 세계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하라(Convert, convert, convert!)” (Autobiography 123)는 것이었다. 이 ‘형태’란 ‘개성’(individualism)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각자의 해석 방식이 각자의 자아 형성과 관련이 깊다고 판단하여 부친 제임스는 특히 윌리엄과 동생 헨리에게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동시에 서로 소통하는 형식들을 계발하도록 장려했다. 가족을 모든 신뢰할만한 도덕적 발달의 원천으로 생각한 부친 제임스는 삶의 주요 목적이 아이들의 도덕성 계발이었다. 그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각력으로서의 감수성(sensibility) 계발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것을 위해서는 경험의 세계 자체를 열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친 제임스는 기존의 교육제도를 탈피하여 아이들에게 적합한 감성 교육을 위한 문화적 토양을 미국에서가 아닌 유럽에서 찾았다. 당시 독자적인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유럽적인 것을 원용해야만 하는 미국 사회의 복합적인 상황하에서는 도덕성과 감수성 계발이 어렵다고 판단한 부친 제임스는 1855년 3년 계획으로 유럽을 향한다. 그는 유럽에서도 체제가 잘 잡힌 진보적인 교육 체제를 갖춘 학교를 찾았는데 그것이 제네바의 학교다. 하지만 곧 학교 교육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1858년 미국으로 돌아와서 1859년 다시 유럽으로 향한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뿌리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결국 가까운 과거 또는 먼 과거로 옮겨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따라서 제임스 가의 유럽과 미국 두 대륙 간의 문화적 공간 이동은 이상적인 변형과 새로운 정체성에의 욕구에 의해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제임스 가의 문화적 이동은 초기 문화적 공간 이동의 결정권자인 부친 제임스의 철학, 그리고 성인이 되어 아버지 사상의 전수자로서 자발적인 왕래를 통해 끊임없이 경험을 구체화하려 했던 윌리엄과 헨리의 과학적, 철학적, 그리고 예술적 특성들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동적인 축으로 작용한다.

    부친 제임스는 스웨덴보리히(Emanuel Swedenborg)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니 인간 역시 사랑과 지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며, 따라서 그는 초월적 권위주의적 존재에 대한 절대적 복종 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탐색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자서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저서들을 통해 꾸준히 나타나는데 난델먼(Nandelman)은 이러한 변화를 “칼뱅주의로부터 스웨덴보리히 사상으로의 상징적 여정(the symbolic journey from Calvinism to Swedenborgianism)” (Nandelman 259) 이라고 해석한다. 이 종교적 여정의 계기는 그의 영국 체류시 경험하게 된 ‘정신적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접하게 된 스웨덴보리히 사상에 탐닉하면서 치유된 바로 그 시점에 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스웨덴보리히의 사상 속으로 투시하며 그의 삶의 전체 방향을 변화시키고 강화한다. 스웨덴 보리히의 사상에 집착한 아버지의 모습(a devoted attachment to the writings of Swedenborg)은 소설가 제임스의 회상 속에서도 중요하게 각인되어 있다 (Autobiography 331). 부친 제임스의 스웨덴보리히 사상에 대한 교감은 소설가 제임스의 문학적 상상력과 윌리엄의 철학적 종교적 경험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델(Leon Edel)이 지적했듯이, 소설가 제임스가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세라피타』(Séraphita)에서 스웨덴보리히 사상의 울림2을 발견했다면, 소설가 제임스 자신의『비둘기 날개』(The Wings of the Dove) 속에서는 그 사상의 반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소설가 제임스가『비둘기 날개』집필 당시 라이의 램 하우스(Rye, Lamb House)에서는 윌리엄의『종교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에 관한 이야기로 충만했는데 이러한 대목들은 부친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Master 115)고 판단 할 수 있는 문학적·철학적 정황들이다.

    부친 제임스의, 신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자기중심적 분석에서부터 주변의 사회를 생각하게 되는 전환점은 스웨덴보리히와 푸리에(Charles Fourier) 사상을 종합하게 된 바로 그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은 당시 과도한 개인적 자유를 주창하는 미국 사회에 대해 형제애와 사회적 유대감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의 이상주의적 개혁 정신을 반영한다. 그의 마지막 저서가 바로 ‘사회’와 ‘신’을 결합시키려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사회』(Society the Redeemed Form of Man, and the Earnest of God’s Omnipotence in Human Nature)인데 이것은 그러한 사상적 전환점의 융합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훗날 윌리엄이 회고하듯, 아버지의 삶은 신과 인간과의 진정한 관계에 관한 진리를 찾아가는데 바쳐진 삶으로 규정하는(Literary Remains 9) 것은 부친 제임스의 사회적 진보 사상 체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친 제임스가 스웨덴보리히에서 살아있는 영혼의 ‘새로운 천국’을 찾았다면, 푸리에로부터는 지상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한 ‘과학적 직관’을, 즉 실제적·실천적 사회과학을 찾아 그것을 스웨덴보리히 교리에 보충적·보완적인 것으로 결합했다. 이 두 사상을 융합하고자 하는 경향은 당시 출판된 책 제목3에서도 간파된다. 1848년 헴펠(Charles J. Hempel)은 그의 저서 ‘서문’에서 푸리에와 스웨덴보리히 사상의 결합은 “과학과 종교의 결합(the union of Science and Religion)” (Hempel 12)이라고 하며 그들의 사상적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바친다고 한다. 당시 푸리에의 사회주의적 사상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19세기 중엽 미국에 상당히 확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며 그 사상은 실천적 사회개혁 ‘프로젝트’로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소설가 제임스의 어린 시절 친구 페리(Thomas Sergeant Perry)는 당시 그와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부친 제임스가 스웨덴보리히 사상을 발견한지 약 2년이 지난 1846년, 당시 프랑스 사회 사상가 푸리에는 미국에서 약 이십만 명의 추종자들을 갖게 되었다.4 사회의 경쟁적 복잡성이 사라질 수 있는, 분명 조화로운 사회질서가 획득될 수 있는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려는 그의 계획은 콩코드(Concord)의 초월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사상5을 확장하는 셈이 되었다. 이러한 조화로운 사회 질서와 관련된 사회주의적 사상은 부친 제임스의 ‘문명’의 억압적 기능에 대한 생각과 연결 된다.

    부친 제임스는,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본능들(god-given instincts)을 가졌는데 문명이 금지해 왔듯이 그것들을 금지한다는 것은 신의 의지와 의도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와 사회에 대한 부친 제임스의 이러한 생각은 ‘문명’이 인간에게 가하는 구속적 속성에 대해 문제 제기 한다. 그에게 있어서 ‘악’이란 문명이 개인에게 부과하는 억압이었다. 개인은 그가 물려받은 모든 것과 그가 태어난 사회에 감사해야 하는데, 문명이 가하는 억압은 신이 부여한 운명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오랜 전통의 유럽 문화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신생국이 희구하는 문화적 독립에 대한 절대적 열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버지의 이러한 열망은 사상적틀, 강연의 틀, 글쓰기의 틀, 인간관계의 틀 등 그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재현된다. 한 예로, 고드킨(Edwin Lawrence Godkin)은 19 세기 자유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국가와 시대적 변화에 따르는 필요성에 적합한 주간지『네이션』(Nation)을 1867년 7월 발행하게 되는데 이 잡지의 첫 호에 부친 제임스와 소설가 제임스가 함께 글을 실었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 정체성 형성에의 참여 의지의 표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부친 제임스의 내적 삶을 추구하는 지나친 지적 탐구 정신은 동시대인들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실제 행동을 위한 사유와는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푸리에 프로젝트’에의 관심은 자신의 유토피아적 꿈을 묘사하기에 적절했으나, 실질적 관심과 추구 행위가 결여된 그의 지성은 동시대인들, 특히 뉴 잉글랜드의 푸리에주의자들에겐 순전히 이상주의적 개혁가로 비춰졌던 것이다. 헨리가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을 명시해야 할 때 뭘 써야 할지 물으면 “철학자라고 하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 . . 작가라고 하든지, 최상의 것은 그냥 학생이라고 하렴”(Autobiography 278)이라는 제임스 부친의 대답을 상기해 볼 때 가족 구성원에게도 그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부친 제임스의 신학자로서의 정체성 형성에의 매진은 계속되어 항상 ‘신’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지만 점차적으로 인간의 내적 성찰 또는 창의적 역량으로 관심의 초점이 바뀌어간다. 예를 들면, 인간 정신세계의 내재적 일관성을 외부현상 세계의 경험적 요소들의 비일관적이며, 파편적인 것과 대치시킨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세계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인간은 그의 정신세계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실재한다고 부친 제임스는 피력한다. 그에겐 정신세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며 모든 사람의 내면성은 신(神)이 된다. 인간을 규정하는, 자의식을 규정하는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의 그림자 또는 반영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플라톤(Platon)의 동굴비유와 유사한 비유 형태를 빌려와 내면성은 신이며 이데아(Idea)의 세계인 한편, 인간의 의식 세계는 그런 내면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이데아와 실재를 신과 인간의 관계로 대체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유럽의 사상적 체계와 전통이 그리스 철학에 그 기반을 두고 형성된 것처럼 미국도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직접 원용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임스 부친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인간의 내면 세계였으나 점차 그것을 외부 경험 세계의 단편적 속성과 대비시키며 경험의 내적 역량에로 관심을 기울이는 양상은 ‘심미적 표현’과 ‘개성’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잘 드러난다. 부친 제임스에 의하면 “심미적 표현은 예술의 원칙들에 입각해 맞추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성한 비전을 자연스런 형태로 전환하는 것”(Weissbourd 50-51)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예술가는 자신을 사회로부터, 즉 관계들로부터 격리 시켜야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해서 내면세계, 정신세계는 ‘단절’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부친 제임스는 진정한 개성을 ‘행위’자체에서 찾았으며, 따라서 “우리를 진정으로 개성화하는 모든 행동은 본질적으로 심미적”(Moralism 49)이라고 규정한다. 사회적 격리와 단절, 그리고 개성적 행위는 그 특성상 서로 모순적이다. 소설가 제임스는 어릴 적부터 제임스 가의 이러한 “모순과 불일치들을 호흡하고 먹고 마셨다”(Autobiography 124)고 회상한다. 이것은 훗날 소설가 제임스의 소설 창작에 있어서 인물의 특성과 행동의 모순적 특징들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적 역량으로 논의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경험의 외적 역량으로서의 개성과 심미적 표현에 대한 부친 제임스의 생각은 그것의 인간 사회에서의 과학과 힘으로서의 역할에로 그 관심의 초점이 옮겨진다. 이렇게 볼 때 훗 날 윌리엄의 철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도 페리(Ralph Barton Perry)가 지적했듯이, “과학을 소외시키지 않고 종교를 정당화해야 하는 철학적 진리를 발견하는 윌리엄의 예정된 운명”(Thought I, 230) 이라고 볼 수 있다.

    매티슨(Matthiessen)이 지적했듯이 제임스 가의 정신적 활동의 중요한 지표들 중 하나가 미국과 유럽의 차이에 관한 주제라고 한 것처럼, 그 주제에 대한 그들 각자의 관심과 반응은 마치 그들이 그 주제적 논쟁에서 특정 역할들을 이미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친 제임스는 신학적·사회적 차원에서, 윌리엄은 철학, 심리학적, 과학적 차원에서, 소설가 제임스는 문학과 예술 차원에서 각자 ‘미국’이라는 신생국의 지적·정신적 기반을 위해 긴 터널과도 같은 역사속의 유럽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선택하며 부정하고 창조하는 삶을 만들어나간다. 따라서 ‘문화적 변형’이란 바로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 속에서의 의도적·의식적·무의식적 소통과 단절을 통한 부정과 선택의 연속이며 그들의 미국적 특성을 규정짓는 ‘정체성 형성’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라는 시대는 미국의 사상가들, 예술가들에게 역사적·문화적 ‘경험’의 문제가 가장 절실한 것이었고, 이 문제는 유럽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따라서 요구되는 비교문화적 관점에서의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의식은 시대적 필요성으로서의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위해 부친 제임스의 유럽에서의 감성 교육은 윌리엄과 소설가 제임스에게 애초부터 ‘경험’의 장을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소설가 제임스는 ‘경험’의 문제를 창작을 통해 미학적 의식의 차원에서 풀어가고자 했다면, 윌리엄은 심리학·과학·철학을 통해 어떤 일반론을 찾기 위한 복합적 사색과 분석의 긴 연정을 보여준다. 유럽 문화와 미국문화에 대한 비교, 갈등, 선택은 그들의 사상적·미학적 체계를 위한 경험이자 분석 대상, 그리고 방법론 자체였던 것이다. 이렇게 교육적 영향, 가족적 운명, 비판적 성장 등에 의해 제임스 가 사람들은 각자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필생의 작업들을 시도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부친 제임스의 평생의 과제는 인간과 그 창조자와의 진정한 관계였다. 그러나 윌리엄은 거기에 분석이 결여되어 그의 일련의 저서들은 재구성의 과정이라기보다 반복, 확대의 연속(Literary Remains 9-10)이었음을 지적한다. 그의 진리들 자체가 그의 삶이었고 그 진리들은 신학적인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논의에 사용되는 용어들의 종교적 접근의 한계를 윌리엄은 암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철학적 성격이 드러난다고 판단한 부친의 말년의 글(Society the Redeemed Form of Man)을 그의 최상의 것으로 간주한다. 윌리엄의 평생의 과제인 종교와 철학에 대한 성찰은 이미 부친의 사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작된 것이다. 윌리엄은 1883년 당시 뉴욕에서 출판 된 켈로그 (Kellogg)의 저서『헨리 제임스의 철학』(Philosophy of Henry James: A Digest)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면서 그 표현의 적절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부친 제임스는 가장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세련되지 못한 종교적 감정을 구가하기 위해 너무나 요원히 멀리 태초의 순간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건(Giles Gunn) 교수에 의하면, 부친 제임스의 종교적 신념을 피력하는 방식은 마치 ‘감정의 논리’(the logic of feelings)를 ‘개념의 논리’(the logic of concepts)로 전달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Gunn 42). 헨리 제임스는 그 많은 저서에도 불구하고 종교사상가로서의 그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왜 조성되지 못했던 것일까라는 비평가들의 의구심에 대한 건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적절하다.

    바로 이 삶과 진리의 문제는 작가 헨리와 철학자 윌리엄이 안고 가야 할 문제로서,6 관념적이 아닌 그들의 삶 속에서 그것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필생의 과제가 된다. 이러한 진리 개념과 신학적 이론과의 간극에 대한 인식은 윌리엄과 소설가 제임스가 진리의 차원에서가 아닌 진정한 ‘경험’의 차원에서, 작가 헨리는 체계적인 소설 미학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윌리엄은 삶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동시에 상대적 보편성을 지니는 철학을 정립하게 되는 중요한 인문학적 화두가 된 것이다.

    제임스 가의 아버지와 아들의 문화 전수자와 수용자로서의 관계의 특성, 즉 제임스 가의 사상적 전수 형태의 변형과 차이는 수용자의 특성·개성에 따라 드러나는 국면의 차이 뿐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요구의 필연성과도 관계가 깊다. 미국이라는 신생국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던 부친 제임스와 에머슨 세대의 사회적 책임의 짐이 훨씬 홀가분해진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미국인으로서의 문화 정체성 형성 작업을 하게 된다.

    소설가 제임스가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한 시기에 윌리엄이 부친의 종교적·철학적 체계에 대한 총체적 소개로서의 긴 서문7을 작성했던 것은 당시 사회적·종교적 공감을 얻지 못한 부친의 사상체계에 대한 회상, 비판, 그리고 애정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윌리엄 자신의 철학적 이론 정립에 있어 중요한 시초로서 윌리엄과 부친 제임스와의 사상적 관계가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부친 제임스 사후 그의 글을 정리하면서 작성한 윌리엄의 서문은 부친의 신학적·철학적 사상에 대한 윌리엄 자신의 비평이자 동시에 부친 생전에 그의 글에 대한 독자나 청중의 반응에 대한 윌리엄의 사회적 의식의 발로로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윌리엄은 부친의 많은 논점들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오류는 제임스 부친의 타자들을 생각하는 방식이 무지함에서 오는 것이며, 또한 그의 논의 방식은 철학이 아니라 순전히 신학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윌리엄은 그의 철학적 영향에의 친밀함을 피력하는데 이것은 동생 헨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친의 육필에 ‘서문’을 작성하는 윌리엄의 자세에는 냉정한 철학가와 개인적 관심에 대한 이해를 풀어가고자 하는 심리학자로서의 면모가 이미 드러난다. 이 ‘서문’을 작성할 당시 윌리엄은, 자신의 시대는 신학적 체계를 생성하게 한 아버지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실증주의 시대임을 알았으며, 따라서 미국 지성사에 있어서 윌리엄은 시대적으로 이미 그 전(前) 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게 된 위치에 선 셈이다. 그 평가의 시초가 부친의 글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이 어떻게 보면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식하며 객관적 평가를 해야만 하는, 아들로서의 심리적 부담과 지성인으로서의 철학적 의무를 함께 짊어진 윌리엄의 운명이었다. 훗날 콩코드에서 거행된 에머슨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의 윌리엄의 연설8은 철학자로서의 윌리엄의 시대적·사회적 역할을 더욱 상징적으로 표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실증주의 시대에 성숙한 윌리엄은 부친의 형이상적 세계로의 몰입과는 달리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가 형이상학적 사유에 선행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이 자신의 철학적 방식을 생물학과 심리학을 통해 찾아가고 있는 동안 과학 교육은 윌리엄을 오히려 과학적 권위로부터 그를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윌리엄은 부친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존재론적으로(ontologically)라는 말 자체가 유한한 현상적인 것에 그 뿌리를 두는데,” 아버지에겐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론적 “창(window)”이 오히려 벽이 되어 세상이 “머리”와 “가슴”사이의 방대한 심연으로 나뉘어져 버렸다며 부친의 순수한 형이상학적 논리에 대해 비판한다.9 왜냐하면 윌리엄에겐 이 두 가지가 동일한 가지로부터 자라난, 묘하게 얽혀있는 것인데 그 둘을 구분하는 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윌리엄의 과학적 태도에 대해 그의 부친은, “존재론적 문제들은 일상적인 과학적 상상력에는 한심하게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연(Nature)이라는 거대한 미 신에 의해 지각력을 상실해 마취되어버리기 때문”(Correspondence 4, 204)10이라고 한다. 서신교환을 통한 이런 형식의 대화를 통해 윌리엄은 아버지와 큰 괴리감을 느끼며, 1869년 11월 어느날 동생 헨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그와의 사상적 불협화음의 원인에 대해 토로한다.

    이 서한은 당시 윌리엄이 부친의 저서(Moralism and ChristianityLectures and Miscellanies)를 읽으며 작성한 것으로서 윌리엄의 이런 비판적 태도는, 과학자는 정신적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한 아버지의 신념과 비교해 볼 때 사물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서부터 다르다. 부친 제임스는 지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자연’에 대한 ‘미신’을 구분하여 철학자와 과학자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부친 제임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의 영역과 계시의 영역, 과학과 정신적 진리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는데, 그가 과학을 인정할 때는 과학이 사물의 정신적 본질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매체로서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할 때이다.

    한편 과학과 철학에 대한 윌리엄의 관심이 더욱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계기는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의 ‘자유 의지’ 사상과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 그리고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공동체적 의견으로서의 진리에 대한 실용적 사상이 자신에게 철학적 확신을 준다고 생각했을 때이다. 이러한 영향에 의해 윌리엄은 “작용하는 진리” 로서의 상황적 진리 개념을 제시하게 된다. 이것은 당시 유럽의 개념적·관념적 차원의 이상주의 철학자들의 진리 개념과는 적극적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과거의 부재는 존재로서의 가치보다 생성과정으로서의 가치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러한 문화적 조건에서 나온 낙관적 실용주의적 상대주의는 지극히 미국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낙관주의적인 실용주의 철학은 당시 미국 문학의 비관적 성향과는 대조를 보이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호튼(Horton & Edwards)은 미국 철학과 미국 문학의 “묘한 패러독스(a curious paradox)” (179)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경향과 문학적 경향은 그 시대적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소설가 제임스가 윌리엄의『실용주의』(Pragmatism)를 읽고 난 후 보여준 반응을 상기해보면 흥미롭다. 왜냐하면 소설가 제임스는 자신의 창작적 삶에서 실용주의를 실천해왔음을 고백12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미국 문학사적 맥락과는 다른, 하지만 미국적인 맥락으로서 유럽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 헨리가 오히려 미국의 철학적 경향 속에 있어왔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동일한 가(家)에서의 어떤 동질성뿐만 아니라 미국의 사상적 경향을 공유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윌리엄의 철학적 성숙기에는 물질세계에 어떤 해를 입히지 않고 종교를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과 우주에 대한 윌리엄의 실용주의적 사고는 종교가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확실한 영향을 끼치는 한 종교를 철학 속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윌리엄의 이런 입장은 과거 부친과의 과학과 철학에 관한 논쟁에서 보았듯이 모든 사안을 종교적 정신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던 부친 제임스와는 확연한 대립적 양상을 보이는 국면이다. 평생 종교와 과학, 과학과 철학을 분리하지 않고 어떤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려 했던 윌리엄은 관념적인 절대적 진리로서의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귀납적이며 상대적인, 그리고 경험적 자유의지에 기초한 철학을 정립하고자 나아간다.

    부친 제임스가 “유럽적 질서”에 비해 “미국의 무질서”(Thought 1, 123 재인용)가 더 낫다고 표명했듯이 윌리엄도 ‘과거’에 대해 부정적이다. 윌리엄의 현실적 사고는 그의 이탈리아에 대한 생각에서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과거’의 무게가 치명적인 수준이라고 하여 현재로서의 미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수함을 윌리엄은 주장한다. 과거 사람들은 선조들의 무덤을 멍하니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들 시대의 일을 했으니 오늘날은 우리 시대의 일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중국의 한 특정 시대보다 미국 캠브리지에서의 50년이 더 나을 것(Correspondence 4, 473)이라는 내용의 글을 동생 앨리스(Alice)에게 보낸다. 여기서, 역사적 시간성보다 공간성 자체로서의 신세계(New World)를 꿈꾸는 윌리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역사성으로부터 물리적 공간성으로의 관념적 이동은 실용주의적 사상임과 동시에 새로운 에덴동산을 꿈꾸는 미국적 낭만주의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역사와 전통에 대면할 때 분출하는 제임스 가의 에너지는 후대의 사상가들에게도 전수된다. 블리스 페리(Bliss Perry)의『미국적 정신과 미국적 이상주의』(The American Mind and American Idealism)는 미국적인 특질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의 미국 문학을 규정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인데 여기서 페리는, “켄터키 통나무 오두막집의 진흙마루를 기어가는 앙상한 아기는 전적으로 문명화된 장례식보다 더욱 희망적인 스펙터클”(23-24)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미국인으로서의 존재는 “과거형”에 의해 정립된 것이 부재(不在)하는, ‘미래’를 향해 존재 의미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적 현실은 “죽음의 원시성”(the barbarism of death)이 아닌 “생명의 원시성(the barbarism of life)”(23)으로 표현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페리의 이러한 생각은 윌리엄의 이탈리아에 대한 비판적 서술과 일맥상통한다. ‘과거형’으로서의 정립된 것에 대한 부정과 함께 미국적 존재성을 찾기 위해 과거로서의 유럽을 찾고 비판하고 뿌리로서 의식해야만 하는 과정은, 한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적인 것”을 정립해야 할 필요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 정립에의 열망은 곧 바로 정체성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페리(R. B. Perry)의 1948년 미시간 대학에서의 강의 제목(“Characteristically American”)은 신생국으로서의 미국적 열망을 확실하게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미국 철학은 유럽 전통과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철학은 종교, 도덕성, 교육, 과학, 정치, 경제, 문학적·심미적 비평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적 삶에 영향을 끼쳐온 점이 유럽의 철학과 구분되는 것(“Characteristically American” 34)이라고 한다. 이것은 정립된 ‘과거’가 부재하는 상황에서‘현재’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형태를 구성하기 위한 많은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한꺼번에 논의되어야 했던 미국적 삶의 현실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어떤 문화적 지류에 있어서 철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개념들과 근본적 원칙들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미국이야 말로 “가장 철학적인(the most philosophical) 나라”가 아닐까라고 페리는 역설한다. 이렇게 해서 윌리엄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현대적인 철학자”13이기 때문에 19세기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철학자로서, 그리고 항상 미래를 향하는 인간으로 규정된다. 이 모든 미국적 존재성에 대한 열망은 창조적 변형을 도모하고자 했던 실용주의자들의 철학으로서, 정립된 기반에 대한 분석을 통한 ‘부정’과 ‘선택,’그리고 창조적 변형의지를 보여주는 윌리엄의 사상을 반영하는 예들이다. 한편 ‘실용주의’라는 말이 생산해내는 철학적 가치 절하에 대해서도 그들은 준비되어 있다. 예를 들면 럿셀(Bertrand Russell)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대한 듀이(John Dewey)의 반박이다.

    그들에게 부재하는 과거, 그리고 미래를 현재에 구현해야만 하는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정체성과 관련된 정신 무장을 위해 각각의 영역에서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데 그 극복 대상은 과거로서의 유럽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 문화로서의 문화적 토양을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창조적 변형을 도모하는데 유럽의 기반적 배경이 장애가 되면 그들은 유럽을 부정한다.

    소설가 제임스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의 특징으로 인해 그의 동시대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창작과 비평계에 문화정체성 관련 논의의 장(場)을 열어 놓은 장본인이다. 거의 유럽에서 소설가로 활동한 헨리는 그의 코스모폴리탄 성향과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인해 활동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뿌리 없는 작가”로 미국 내에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치열한 극복 대상으로서의 유럽에 대한 소설가 제임스의 의식은 미국을 보는 눈 또한 엄격해서 그의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의식 역시 남달랐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미국 내에 있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가 제임스는 미국 문학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 미국인들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를 던져 주었고, 그 결과 그는 미국문학 연구를 학문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창작에서 뿐만 아니라 비평적 차원에서의 그의 업적은 근대·현대 문학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에 남게 되었다.

    소설가 제임스에게서는 부친과 형 윌리엄의 철학적 대립관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 관계정립이 간파된다. 실천적 행동을 위한 사유와는 거리가 먼 내적 삶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지나친 지적 탐구 정신이 동시대인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 것은, 훗날 소설가 제임스의 창작 활동에 있어서 일반 독자들로부터 비판받은 그의 예술적 기질의 독특한 내면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소설가 제임스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궤도 내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는데 이것은 그의 심미적 신조와 의식에의 믿음을 통한 창작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제임스 가의 의식 속에는 유럽과 미국이 공존하며, 그들의 정체성 형성의지는 두 대륙의 비교에 의해 작동한다. 문화의 형성을 위한 변형의지는 도덕성에 대한 성찰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임스 가에 있어서 이 도덕성 문제는 그들 각각의 종교적, 철학적, 미학적 성찰의 기본적 틀로서, 그것은 새로운 문화 창조에의 열망에 접목되어 그들의 의식에 뿌리내린다. 이렇게 해서 도덕성은 ‘의식’문제와 직결되어 그들의 문화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자리잡는다. 여기서 제임스 가 구성원들의 도덕성 관련 논의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부친 제임스는 신이 도덕적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신은 “모든 사물의 존재를 구성하며, 그를 벗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든 도덕적 관계로서의 신의 입장은 설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그의 완전성은 정신적·육체적 차원이 결여된 것(His perfection is destitute both of physical and moral dimension)”(Lectures 344)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을 신성한-자연적 인간성(Divine-Natural Humanity)의 자발적 특질로부터 결별시키는 사회적·도덕적·개인적 긴장이나 제한들을 비판하면서 인간이 신성한 창조성(Divine Creativity)과 이상적으로 재결합하길 바라지만 사회적 상황은 그러하지 못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에 의해 생기고 진행되는 것으로 규정되는 ‘도덕성’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망가뜨린다고 하여 부친 제임스는 신 앞에서의 엄격한 평등관계를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들 사이에 엄격한 평등관계가 유지된다면 ‘도덕성’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완전한 평등”(a perfect equality)이라고 설파하면서 평등과 도덕성과의 관계를 마치 시이소의 양쪽의 관계로 제시한다. 부친 제임스의 ‘도덕성’에 대한 탐색은 소설가 제임스의 문학적 탐색 과정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소설가 제임스 역시 도덕성을 사회적·전통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개성적 관심의 차원에서 다룬다. 그는 자신의 문학 방식에서 도덕성을 사회적 규준과 분명히 분리한다. 그에게 있어서 ‘도덕성’이란 “미학적 의식”(aesthetic consciousness)과 직결되며 따라서 자신의 창작활동 내에서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부친 제임스에 있어서 지극히 추상적 차원에서의 ‘도덕성’ 논의는, 소설가 제임스에 와서는 창작에 있어서 미학적 정당성 기준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예술 창작에 있어서 사회적 모랄을 내세우는 당대 문인들이나 독자들에게 인식되긴 쉽지 않았다. 한 예로, 소설가 제임스가 1884년 그의 글(“The Art of Fiction”)에서도 밝혔듯이, 관습적으로 사회적·전통적으로 정립되고 적용되어온 도덕관념이 특히 앵글로 색슨 사회에서는 문학에서까지 그 통념적인 도덕적 기준이 되어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과 관련해 그는 비전트(Walter Besant)의 비평을 가져와 통렬히 비판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소설가 제임스는 소설 창작에 있어서 “도덕적 에너지의 본질”과 비전트가 말하는 영국 소설의 “도덕적 의도”를 구분해야 함을 주장한다(“The Art of Fiction”406). 따라서 그에겐 작품의 예술성 결여 자체가 비도덕적인 것으로서 그의 도덕의식은 미학적 차원에서 논의된다. 이런 입장은 부친 제임스의 도덕성 비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부친이 인간을 신성한 자연적 인간성의 자발적 특질로부터 결별시키는 사회적·도덕적·개인적 제한들을 비판하며 인간이 신성한 창조성(Divine Creativity)과 이상적으로 재결합하길 바랐다면, 소설가 제임스는 창작을 작가적 개성의 자발적 특질로부터 결별시키는 사회적·도덕적 관습을 비판하며 미학적 의식의 자발성을 도덕성과 결부시킨다.

    한편 개성과 심미성에 관한 부친 제임스의 다음과 같은 생각은 소설가 제임스의 심미성과도 관련지어 볼 수 있다.

    부친 제임스의 ‘취향’이나‘ 자발성’에 의거한 심미적 행위에 관한 생각은 소설가 제임스의 작가 정신에 끼친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글이 소설가 제임스에게는 “삶 자체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철학적이었고, 동시에 사상적으로는 너무나 생명력 있는 것”이 헨리 제임스의 글쓰기 스타일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특히 다양성이 결여된 것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Untried 52).

    한편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경험의 유사성들 중 흥미로운 것은 부친 제임스가 영국의 카알라일(Thomas Carlyle)의 집에서 당대 주요 사상가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소설가 제임스가 프랑스의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집에서 프랑스 작가들을 만난 사실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유사한 반응을 간파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당대의 유럽, 아니 유럽의 정신을 대면하는 장면이다. 1843년 에머슨의 소개로 카알라일의 집을 방문한 부친 제임스는 당대 사상가들 중 특히 죤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진지한 성격을 극찬하는 한편, 그들 모두를 통털어서 볼 때 미국의 사상가들보다 진지함이 부족함14을 지적한다. 당시 신생국이 정립해야 할 문화적 정체성 관련 문제들 자체가 그들 일상 생활의 절박한 사안임을 항상 의식해야만 했던 부친 제임스에게 그들의 지적 유희로서의 대화는 진지함의 결여로 규정된다. 한편 1875년에서 1876년에 걸친 소설가 제임스의 플로베르 집 방문15과 그곳에 모인 당대 문인들과의 대화는 궁극적으로 그로 하여금 소설의 의무에 대해 성찰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소설가 제임스는 프랑스 작가들의 소위 ‘부도덕한’ 작품 소재와 관련된 관심들에 대해서는 냉소적 입장을 피력하지만 소설의 의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데, 그것은 소설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잘 씌어진 소설인가 아닌 가라는 점이다. 소설가 제임스의 프랑스 작가들과의 만남은, 통념적 도덕성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규준이 되어 예술과 도덕성의 대비적 관계에 의거한 논쟁이 쉽게 이루어지는 영국과 미국 문단을 훗날 냉정하게 평가하게 되는 비평적 작가로서의 긍지를 갖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가 제임스의 문학적 상상력은 윌리엄의 과학적·철학적 상상력과 또 다른 차이를 보여준다. 이델의, “헨리는 윌리엄처럼 그림 그릴 수 없었지만 그는 예술과 예술가들에 관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행동할 수 없거나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느꼈으나, 윌리엄이 실행한 어떤 것을 행하는 자신에 관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윌리엄은 매순간 자신의 상상을 행동으로 변형시켜 채울 수 있었다. 한편 동일한 행동에의 능력을 소유한 헨리는 그것을 상상으로 변화시켰다”(Untried 64)라는 대목은 윌리엄과 헨리에 있어서의 상상력과 그것의 변형 능력, 그리고 변형 방식에서의 기질적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기질 자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상상’에 대해 추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로띠(Pierre Loti)에 관한 비평(1888)의 시작 부분에서 소설가 제임스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 일부를 가지고와서 화두로 삼는다. 누구의 편지인가에 대해서 소설가 제임스는 밝히지 않는데 그 장본인이 윌리엄임을 그의 작가 일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16 그 내용은 윌리엄이 파리에서 사르두(Victorien Sardou)의 연극을 관람한 후 쓴 편지로서 당시 로띠의 작품을 읽고 있던 소설가 제임스로 하여금, 지각, 우연성, 상관성, 작가 개인, 개인의 국가적 확장 등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서한임을 그는 밝힌다. 여기서 소설가 제임스는 19세기의 훌륭한 작가들은 소설가이었음을 얘기하면서 그 작가들의 공통된 특징적 재능은 ‘지각’과 ‘표현’의 동시적 구현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훌륭한 작가들의 재능은 ‘지각’과 ‘표현’의 동시적 구현에 있다고 하는 소설가 제임스의 생각에서 부친의 ‘감수성’과 경험의 표현 가능한 형태로의 ‘변형’(convert)에 대한 교육철학을 읽을 수 있다. 소설가 제임스는 로띠를 이러한 작가들의 보편적인 특성에 또 다른 어떤 새로운 것을 더해주는 작가로 평가한다. 그것은 바로 “행동하는 사람”(the man of action)과 “관찰하는 사람”(the man of observation)이 로띠 속에 서로 녹아들어 일종의 이상적인 성공을 구현하는 로띠의 “예술가 정신”(“Pierre Loti” 1888, 489-90)이다.

    한편 소설가 제임스는 1898년의 로띠 비평에서 그의 철학을 “상상의 철학(philosophy of imagination)”(513)이라 명명한다. 로띠의 ‘상상력’에 대해 논리적 분석이 불가능함을 토로하면서도 소설가 제임스는 그것에 대한 실체를 규명 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의 영역에서도 ‘상상’이라는 용어는 의미규정 대상으로서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을 규정하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매개적 기능을 위해 사용되는 말인데 여기서는 철학적 특성으로서, 또는 철학적 대상의 경지에까지 두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것은 객관적인 재현 또는 미메시스(mimesis)의 영역이 아닌 개인적 비전에 대한 인증과 관련된 영역으로서의 ‘상상’에 대한 논의를 유도하는 제임스의 의도를 여기서 간파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가 제임스가 프랑스 작가에 대한 논의를 할 때엔 영·미 문학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차이를 규명하는 비평적 습성이 있다. 그런데 로띠의 경우 비평가로서의 제임스와 소설가 로띠와의 관계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이것은 단순히 프랑스 소설과 영국 소설 또는 미국 소설의 차이로 비롯되는 해석의 차원이 아님을 제임스는 보여주고 있다. 소설 미학 관련하여서는 철저하고도 엄격한 해석적 입장을 견지해온 냉정하고도 복잡 미묘한 소설가 제임스의 비평 의식이 로띠 비평에서는 존재이유가 없음을 제임스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이다. 소설가 제임스의 문학적 정체성을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든 그의 냉정한 비평적 시각을 표출해야만 하는데 로띠의 ‘초월적 상상력’의 경우엔 비평적 시각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17

    로띠의 철학을 “상상의 철학”으로 규정하고 제임스는 로띠 작품 세계의 실체가 무엇일까에 대해 탐색한다. 로띠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것을 독자로서의 제임스가 온전히 스스로 느낀다는 사실에서 그는 보편적 연민과 그것의 진정성이 보여주는 작가의 철학을 간파한다. 그는 그것을 “상상의 철학” 차원에 두며, 독자로 하여금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로띠의 상상은 철학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수성과 경험의 완벽한 표현을 소설가 제임스는 로띠의 창작을 통해 ‘경험’한 셈이다. 이것은 창작적 ‘상상’의 실행성을 의미한다. 한편 윌리엄은 그의『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제 18장에서 “상상(Imagination)”에 관해 논한다. 여기서 그는 상상의 기능을 재현(reproductive)과 새로운 것을 생성해내는(productive) 기능으로 구분한다. 기존의 형태들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을 실행적인 “상상의 행위(acts of imagination)”(45)로 규정하고, 이것을 후자에 포함시킨다. 결국 이것은 철학자 윌리엄과 작가 헨리가 추구하는 상대적 보편성으로서의 진리 차원에서의 ‘개성’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철학의 대상으로서의 ‘상상’은 까다롭고 힘들다. 그러나 보편성으로서의 진리를 찾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로띠의 상상력은 바로 “모든 것에 대한 보편적 연민(the general pity of almost everything)” (“Pierre Loti”1898, 512)을 제공하는 힘을 지닌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감성의 진실성(authenticity)이 만들어내는 보편적 진리 차원에서의 상상력의 기능을 작가 제임스는 ‘상상의 철학’으로 규정한 것이다.

    소설가 제임스가 예술가 정신의 구현을 로띠 작품 세계의 “행위자”와 “관찰자”의 혼연일체 속에서 찾았다면, 제임스의 로띠 비평은 마치 각각 다른 세계를 보게 되어있는, 인식의 주체를 “행위자”(actor)로 보는 윌리엄과 “관찰자”로 보는 헨리가 서로 조우하여 어우러지는 긴 여정이 로띠의 예술 세계 속에서 실현되는 것 같은 생각을 낳게 하는 비평이다. 이것은 또한 훗날 윌리엄이 그의 저서『실용주의』(Pragmatism)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을 읽은 소설가 제임스의 반응과 유사하다. 두 형제가 기질상, 성격상 대조적인 것은 객관적으로나 그들 스스로의 의식과 생각을 통해서 긴 세월 동안 표명되어 왔다. 그런데 1907년 소설가 제임스가 윌리엄의『실용주의』를 읽고 난 후 자신이 이미 ‘실용주의’를 자신의 문학에서 실천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18 마치 로띠의 작품에 대한 소설가 제임스의 반응과 흡사하다. 그들의 일생에 걸친 차이와 갈등은 타자에 대한 비평 속에서 이미 공감으로 해후하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1907년 윌리엄은『실용주의』를 출판하고 소설가 제임스는『미국 정경』(The American Scene)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소설가 제임스의『미국 정경』을 읽었다. 혹스(R. Hocks)가 윌리엄을 “실용주의자”라고 하는 한편 소설가 제임스는 “실용주의”라고 하여 소설가 제임스를 윌리엄의 실용주의 사상을 예술 형태로 구현하고 있었음을 피력(Hocks 4)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인식 자체에서 도출된 것이다.

    로띠 비평에 있어서 필자의 관심은 프랑스 작가인 로띠 관련 비평 속에서 제임스 형제의 차이, 갈등, 또는 융합적 특성이 간파되는 네러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며, 로띠의 ‘상상의 철학’이 소설가 제임스의 특성과 윌리엄의 철학적 특성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작가 제임스의 ‘상상의 철학’(philosophy of imagination)에 대한 탐색은 곧 윌리엄의 ‘상상의 행위’(acts of imagination)를 환기시킨다. 또한 그들의 ‘상상’에 대한 논의는 진정한 개성을 ‘행위’의 심미성에서 찾았던 부친 제임스의 생각과도 합류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작가 제임스의 ‘상상의 철학’과 윌리엄의‘상상의 행위’에서 그들의 차이는 사유(철학)와 행동(행위)으로 드러나지만 그 차이는 궁극적으로 동일하다. 결국 소설가 제임스의 로띠 비평은 한 작가에 관한 자신의 비평을 통해 드러나고 확장되는 창작세계의 성격에 관한 논의인 한편, 동시에 소설가 제임스와 윌리엄의 차이, 갈등, 조응의 양상들을 포괄하는 다층적 차원의 비평으로 특징지어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비평계에서 오랫동안 흥미로운 주제로서 논의되어 온 헨리와 윌리엄 두 형제의 이질적 특성이 로띠의 예술가 정신에 대한 탐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의외의 맥락 속에서 일종의 궁극적 의미를 생성하는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비평이다. 이 궁극성이란 작품을 통한 헨리의 미학적‘경험’의 진정성이 윌리엄의 경험론적 진리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이다.

    1제임스 가(家)의 구성원들 중 우리의 논의를 위해 선정된 구성원들 외의 다른 형제들과 유일한 딸인 Alice가 배제된 것은 논의의 성격을 한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제임스 가에 대한 저서들은 대체로 특정 구성원의 관계 연구이든지, 아니면 가(家)라는 범주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가족 전체를 이야기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것에 해당하는 예는 다음과 같다. Gay Wilson Allen의 William James: a Biography, Feinstein 의 Becoming William James, R. A. Hocks의 Henry James and the Pragmatistic Thought, James Duban의 The Nature of True Virtue, Andrew Taylor의 Henry James and the Father Question 등이 있다. 후자의 것에 해당하는 예는 다음과 같다. Matthiessen의 The James Family, Lewis의 The Jameses: A Family Narrative, Holly의 Intensely Family, Paul Fisher의 House of Wits: An Intimate Portrait of the James Family, Susan Gunter의 Alice in Jamesland 등이 있다.   2Balzac의 소설 세계와 스웨덴보리히 사상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L. R. Wilkinson의 The Dream of an Absolute Language: Emanuel Swedenborg and French Literary Culture 참조. 한편 18 세기 독일에서 스웨덴보리히 사상의 영향이 철학과 문학에서 간파된다는 논의들이 있다. 예를 들면 Kant에게서는 ‘이성’의 필요한 가설로서, Goethe에게서는 자아의 영적 세계로의 확장의 관점에서 그 영향이 간파된다는 것이다.   3예를 들면, 1848년 Charles J. Hempel의 The True Organization of the New Church, as indicated in the Writings of Emanuel Swedenborg, and Demonstrated by Charles Fourier (New York: William Radde; London: H. Ballière, 1848).   419세기 미국에서의 푸리에 사상의 영향 관련 저서로는 Carl J. Guarneri의 The Utopian Alternative: Fourierism in Nineteenth-Century America (Ithaca and London: Cornell UP, 1994) 참조.   5특히 “the fuller realization of man”을 추구하는 사상.   6오늘을 살고 있는 그의 후손들 역시 이러한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필자는 2008년 8월 William James의 증손자 Henry James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Henry James Senior의 철학에 있어서 진리 개념과 신학적 이론과의 간극으로 인해 체계적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학자들의 비판적 견해를 그가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7Introduction to The Literary Remains of the Late Henry James.   81903년 5월 25일 Concord에서 거행된 Emerson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의 연설: “Address of William James.” The Centenary of the Birth of Ralph Waldo Emerson, June 1903.   9To Henry James Senior on Sept. 5, 1867. The Correspondence of William James (vol. 4). Edited by Ignas Skrupskelis and Elizabeth Berkeley(Charlottesville and London: UP of Virginia), 195. 앞으로 이 서한집 인용시 Correspondence, 그리고 권호 와 쪽번호만을 기입하기로 한다.   10“Ontological problems seem very idle to the ordinary scientific imagination, because it is stupefied by the giant superstition we call Nature.” To William James on Sept. 27, 1867.   11인용문 중 “fm.” 과 “wh.” 는 맥락상 각각 from, which의 줄임말로 이해한다.   12각주 18) 참조.   13“He was modern, in the sense that is applicable to all ages.”R. B. Perry’s Foreword to The Thought and Character of William James (1996), p. xix.   14“They had not half the seriousness of our men. Life to them began and ended in conversation, not in action.” Austin Warren, The Elder Henry James (New York: Octagon Books, 1970), 52. 재인용.   15Leon Edel, The Conquest of London: 1870-1883 (London: Rupert Hart-Davis, 1962), 215-22.   16이 부분은 L. Edel과 L. H. Powers에 의해 편집된 소설가 제임스의 The Complete Notebooks 에서 January 17th 1881과 April 8th 1883 사이에 인용문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이 편지 인용문은 편집자에 의해, 윌리엄이 파리서 헨리에게 보낸 1883년 2월 19일자 편지로 명시되어 있다. 이 서한의 원문이나 전문을 Harvard Houghton Library의 가족문서 속에서 여러 차례 찾아보았으나 출판된 형태로든 수기 형태로든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Notebooks에 명시된 대로 윌리엄이 헨리에게 보낸 1883년 2월 19일자 서한의 일부로 인정하고자 한다.   172008년 7월 Rhode Island의 Newport에서 “Jamesian Strands”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 4차 국제 Henry James 학회에서 발표한 필자의 논문 “Theoretical Track of the ‘Philosophy of Imagination’: A Rare Jamesian Surrender to Loti’s Memory of‘all experience’”는 소설가 제임스의 비평적 딜렘머의 성격을 ‘상상력’과 관련된 서구의 지적 전통 속에 정치시켜 조명해 봄으로써 그의 Loti 관련 비평적 딜렘머의 성격을 규명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논문에서 로띠 비평은 헨리 제임스와 윌리엄과의 정신적 해후를 논하기 위해 사용된다.   18“I simply sank down, under it, into such depths of submission & assimilation. . . Then I was lost in the wonder of the extent to which all my life I have . . . unconsciously pragmatised.” Henry James’s letter to William James: 17 October 1907. Lubbock II 83.

    III. 결론

    다른 곳으로부터 문화를 이식하여 성립한 특정 사회는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근원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논의는 미국 문화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된 정신적·문화적·철학적 논의가 의식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논의되었던 에머슨의 시대를 살고 그 시대적 유산을 이어받은 세대를 구성하는 시점의 제임스 가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했다. 제임스 가의 문화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성에 역점을 두고 19세기 미국 사회가 미국 문화 정립을 위해 절박하게 주창하고 강조한 경험, 개성, 정체성, 도덕성, 심미성, 다양성 등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부친 제임스의 시대적 사명과 교육철학이 다음 세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영향이 어떤 형태로 그들에게 작동하는가는 부친 제임스와 윌리엄, 부친 제임스와 소설가 제임스, 그리고 윌리엄과 소설가 제임스의 사상적 차이에서 연유하는 관계의 특성을 통해 분석해보았다.

    하나의 동일한 가(家)의 구성원들로서 인식론적 또는 다른 차원의 동질성이 존재하는가? 관련 문제는 세 구성원 중 특히 부친 제임스와 소설가 제임스와의 관계, 그리고 소설가 제임스와 철학자 윌리엄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났다. 예를들면, 부친 제임스의 ‘도덕성’과 ‘심미성’에 관한 사상적 집념은 인식의 필요성 차원에서 소설가 제임스의 미학적 형성에 끼친 영향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문화 전수 차원에서는 영향의 형태로, 또는 공감을 통해 그들 상호간의 동질성을 확인하여 공감대를 인식하는 차원으로서,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부여하는 모태로서의 가(家)를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의식의 차원에서 각각 추구한 방식과 결과는 다른 형태로 드러났다. 한편, 하나의 동일한 가(家)의 구성원들에게 인식론적 또는 다른 차원의 이질성 또는 대립적 특성이 존재하는가? 관련 문제는 부친 제임스와 윌리엄과의 논쟁에서 특히 체계적으로 잘 드러났다. 미국적 존재성에 대한 열망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부친의 순수한 형이상학적 논리에 대해서 윌리엄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비판하며 대립한다. 이렇게 해서 윌리엄은 일생동안 그 비판과 대립의 요인에 대해 탐색하며 자신의 철학을 완성해나갔다. 제임스 가의 아버지와 아들의 문화 전수자와 수용자로서의 관계의 특성, 즉 제임스 가의 사상적 전수 형태의 변형과 차이는 수용자의 특성·개성에 따라 드러나는 국면의 차이 뿐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요구의 필연성과도 관계가 깊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그들의 업적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아버지 헨리는 미국과 유럽이라는 무대 배경을 하나의 무대 위에 세팅하고자 한 사람이다. 헨리는 그 위에 재현할 대본을 만드는 작가라고 한다면, 윌리엄은 사색적인 행동가로서의 배우와도 같다. 이렇게 그들의 역할은 잘 배분되어‘미국’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각각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윌리엄은, 부친이 종교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혁명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간주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교적·사회적 차원에서 치열한 탐구를 한 부친 제임스는 동시대 사상가들과 적극적으로 호흡을 같이 하려 했지만 자신의 ‘진리’와 ‘도덕성’에 대한 생각은 당시 미국 사회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윌리엄은 미술에서 시작해 과학, 의학, 심리학 등을 거쳐 자신의 실용주의 철학을 정립했다. 윌리엄 스스로 상대적 보편성을 추구했듯이 그의 실용주의 사상은 어떤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다고 평가된다. 소설가 제임스의 문학은 당시 미국 본토에서는 정서적으로 쉽게 수용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의 지적 전통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세계 속에서 그 역할이 분명해짐에 따라 문학 비평에 의해 미국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되고, 동시에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Post-postmodernism) 논의에 있어서도 그의 문학적 입지는 다양한 해석을 위한 보루로서 인정되고 있다. 제임스 가 구성원들의 특징을 엄밀히 살펴보면, 그들 각각 미국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강하게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그 국가적 시대적 의식의 틀을 넘어선 작업을 했다는 공통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식과 재현 방식을 어떻게 미국 문화 정체성과 연관시켜 볼 수 있을까.

    제임스 가의 정신적 활동의 중요한 지표들 중 하나가 미국과 유럽의 차이에 관한 주제라고 한 것처럼, 제임스 가의 부친 제임스는 종교적·사회적 차원에서, 윌리엄은 철학적, 심리학적, 과학적 차원에서, 소설가 제임스는 문학과 예술 차원에서 각자 ‘미국’이라는 신생국의 지적·정신적 기반을 위해 긴 터널과도 같은 역사 속의 유럽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선택하며 부정하고 창조하는 삶을 만들어갔다. 소설가 제임스는 유럽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세심하게 분석하여 그것을 자신의 창작을 위한 주제 또는 소재로 활용한다. 한편 그들은 정립된 과거가 현재를 구속하는 한 그러한 과거를 부정하는 공통성을 지닌다. 부친 제임스가 “유럽적 질서”에 비해 “미국의 무질서”가 더 낫다고 주장했듯이 윌리엄도 ‘과거’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과거’의 무게가 치명적인 수준이라고 하여 그는 미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수함을 논한바 있다. 부친 제임스와 윌리엄의 그러한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은, 자신의 시대는 신학적 체계를 생성하게 한 아버지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실증주의 시대임을 알았으며, 실증주의 시대에 성숙한 윌리엄은 부친의 형이상적 세계로의 몰입과는 달리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가 형이상학적 사유에 선행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동일한 가(家)의 구성원들에게 이질성 또는 대립적 특성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여기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러한 대립적 특성은 윌리엄의 철학적 정립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과학과 철학에 대한 윌리엄의 관심이 더욱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계기는 르누비에의 ‘자유의지’ 사상과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퍼스의 공동체적 의견으로서의 진리에 대한 실용적 사상이 자신에게 철학적 확신을 준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러한 영향 하에서 윌리엄은 “작용하는 진리”로서의 상황적 진리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의 개념적·관념적 차원의 이상주의 철학자들의 진리 개념과는 적극적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과거의 부재는 존재로서의 가치보다 생성과정으로서의 가치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러한 문화적 조건에서 나온 낙관적 실용주의적 상대주의는 지극히 미국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부친 제임스가 인간을 신성한 자연적 인간성의 자발적 특질로부터 결별시키는 사회적·도덕적·개인적 제한들을 비판하면서 인간이 신성한 창조성(Divine Creativity)과 이상적으로 재결합하길 바랐다면, 소설가 제임스는 창작을 작가적 개성의 자발적 특질로부터 결별시키는 사회적·도덕적 관습을 비판하며 심미적 의식의 자발성을 도덕성과 결부시켰다. 또한 훌륭한 작가들의 재능은 ‘지각’과 ‘표현’의 동시적 구현에 있다고 하는 소설가 제임스의 생각에서 부친의 ‘감수성’과 경험의 표현 가능한 형태로의 ‘변형’(convert)에 대한 교육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부친 제임스의 ‘심미성’에 관한 생각 역시 소설가 제임스의 작가 정신에 끼친 영향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부친의 글이 소설가 제임스에게는 “삶 자체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철학적이었고, 동시에 사상적으로는 너무나 생명력 있는 것”이 헨리 제임스의 글쓰기 스타일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특히 다양성이 결여된 것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부친 제임스와 소설가 제임스의 경우엔 동질적 요소와 이질적 요소가 교차되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부친의 철학에서의 다양한 결여는 삶에서의 경험, 자유, 실험 등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거한 창작을 지향하는 소설가 제임스에게 적극적인 단절의 요인이 되었다. 한편 실행적 능력과 상상력의 대비를 통해 그들의 기질적 특성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준 윌리엄과 소설가 제임스는 윌리엄의『실용주의』가 출판된 후 인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실용주의』를 읽은 소설가 제임스가 자신이 이미 ‘실용주의’를 자신의 문학에서 실천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의 동질성에 대한 놀라운 인식으로서 이것은 동일한 미국인으로서의 인식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인식론적 차원의 동질성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중요한 맥락으로서 그들의 철학과 문학은 여기에서 미국 철학과 미국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제임스가 구성원들의 작업은 미국을 대상화하는 작업이었으며, 바로 이 점이 미국 스스로 객관성을 견지할 수 있게 한 강점이 된 것이다. 그들의 미국 문화형성에 대한 의지와 접근 방식은 그들 각자의 철학에 의거한 자발적 개성에 의해 인간 개체의 문제로 접근했으며, 바로 이러한 개인적 방식이 그들 각각의 인본주의적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이유이다.

    이 연구는 제임스 가에 일관되게 전수된 어떤 통일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미국문화 정체성 규명의 한 표본으로서의 가(家)의 역할을 규명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들은 시대에 대한 해설가 또는 해석자가 아니라 미국문화 정립의 시대적 창조자라는 점에서 정체성 규명을 위한 적절한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비판적인 역량을 키워나가며 방법론적 틀을 규정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는 미국적 특징으로 간주되는 무모함, 생경함, 단순함이 절제되어 있다. 바로 이 절제가 역설적으로 그들을 미국문화의 창조자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그들의 지적(知的)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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