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formance of Consciousness and the Experience of Liminal Space in A Feeling, Like Paradise

<느낌, 극락같은>에 나타난 의식의 연행과 리미널 공간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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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paper will newly approach audiences’ cognitive act in A Feeling, Like Paradise by examining figuration of minds and bodies, focusing on consciousness and space. In other words, this article aims to understand cognitive process which audiences experience during performance of A Feeling, Like Paradise. Especially, this paper attends to the process that audiences transform and frame theirselves' mental activity via the performance of consciousness in the liminal space as ‘becoming’ extended bodies. Consciousness is the key concept in this article. Consciousness is general term for the subjective characteristics of mental experience, namely, qualia. In other words, Consciousness is defined as the distinctive experience of subjectivity and phenomenality, that is, the way that subjects take cognizance of objects, unlike things as they really are. For example, consciousness includes one’s subjective way of thinking, remembering, attending, sensing, feeling. As René Descartes points out, the prime feature of body is its spatial extension. Therefore, in order to study the subjectivity of consciousness that phenomenally happens via embodiment in objective reality, it is required to examine spaces which arrange bodies, surround humans, and construct the objective environments. This paper will bear in mind these theoretical discussions. As a results, the main issues are comprised of two different argument, i.e. the performance of consciousness and the experience of liminal space.


    이 논문에서는 의식(consciousness)과 공간(space)을 화두로 하여 <느낌, 극락같은> 공연에 나타난 연극적 고르디아스의 매듭, 몸과 관념의 형상화를 통해 관객의 인지적 활동이 구성되는 과정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다. 즉 확장된 몸 ‘되기’의 형태인 리미널한(liminal) 공간 속에서 의식의 ‘연행(performance)’을 거쳐, 관객이 어떻게 스스로의 정신 활동을 역동적으로 변형시키고 틀 짓게 되는가에 주목함으로써, 본고에서는 <느낌, 극락같은> 공연 중 관객이 체험하게 되는 인지적 과정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볼 것이다. 이 글에서 활용하고 있는 핵심 개념인 의식(Consciousness)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정신적 경험의 주관적 성질을 총칭한다. 바꾸어 말해 외적인 사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다르게 주체인 나에게 인지되는 방식(사고, 기억, 관심, 느낌, 감정 등등), 그 주관성(subjectivity)과 현상성(phenomenality)의 독특한 경험이 바로 의식이다. 데카르트의 지적처럼 몸의 근본적 특징은 그것이 공간적으로 확장된다는 데에 있다. 때문에 객체적 리얼리티에서 체현의 과정을 거쳐 현상학적으로 발생하는 주관적 그 무엇인 의식의 해명에, 몸이 배열된바 인간을 둘러싸고서 객체적 환경을 구성하는 공간의 검증은 필수적이다. 본론에서는 이상의 이론적 논의들을 염두에 두었기에, 의식의 연행과 리미널한 공간 논의를 본론 전개의 두 단계로 구성하면서도. 의식 - 몸 - 공간의 긴밀한 고찰을 꾀하였다.

  • KEYWORD

    Embodied Consciousness , Cognition , Neurophysiology , Performance , Betweeness , Liminal , Placeness

  • 1. 서론

    1998년 상연되었던 이강백 작, 이윤택 연출의 <느낌, 극락같은>은 문학성을 중시하는 극작가와 연극성을 중시하는 연출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실제 공연 당시 무대형상화를 위해 극의 1/3을 삭제하는 문제를 두고 이윤택과 이강백이 격렬히 대립했다는 일화가 말해주듯이 이 작품에는 공연 중심적 연극론과 희곡 중심적 연극론의 충돌이라는 연극적 존재론에 얽힌 고유한 논쟁거리가 밀접히 연루되어 있다. 공연 당시 비평가들의 의견도 제각각이었다. 긍정적 입장에서는 “공연언어, 신체언어를 통해 희곡적 의미의 이원대립과 그 조화를 비교적 명징하게 구현”하였고, “원작의 지나친 관념성을 무대 상에 놀랍게도 구체적으로 현시”했다는 사실이 중점적으로 고평되어 왔다.1) 반면 “이강백과 이윤택의 만남은 개성과 개성이 충돌하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케 하는 화학적 만남은 되지 못했다.”2)는 비판은 희곡, 공연 각각에 본질을 부여하는 이원론적 연극 담론이 과연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인가를 지적한 터라 주목을 요한다.

    이상의 엇갈린 평가가 암시하는 것처럼 <느낌, 극락같은>에 관한 수용 경험의 한 가운데서 첨예하게 드러나는 문제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이분법적 관점, 즉 재현하는 정신과 현전하는 몸의 대립관계를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극복하여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예컨대 추상적 관념의 언어와 구체적 몸의 언어가 무대에서 조우되는 경우, 관객의 인지적 활동(cognitive act)은 어떠한 방식으로 발생하게 되는가? 이러한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적 도구는 무엇이며 어떠한 절차를 거쳐 이를 해명할 수 있겠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느낌, 극락같은>의 수용 경험에 보다 분명히 다가설 수 있다.

    기존 연구에서 <느낌, 극락같은>에 관한 고찰은 서사극 양식적 작법의 원리, 희곡의 반복구조가 갖는 특징, 희곡 텍스트의 연극성, 알레고리로 대표되는 희곡적 작품성3) 등의 검토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들 논의들이 저마다 거둔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느낌, 극락같은> 공연 텍스트가 필연적으로 노정하고 있는 몸과 관념의 문제와 관련지어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관객의 인지 경험에 대한 이해의 심화를 꾀한 연구는 극히 드문 편이라 할 수 있다. 해서 이 논문에서는 의식(consciousness)과 공간(space)을 화두로 하여 <느낌, 극락같은> 공연에 나타난 연극적 고르디아스의 매듭, 몸과 관념의 형상화를 통해 관객의 인지적 활동이 구성되는 과정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다. 즉 확장된 몸 ‘되기’의 형태인 리미널한(liminal) 공간 속에서 의식의 ‘연행(performance)’4)을 거쳐, 관객이 어떻게 스스로의 정신 활동을 역동적으로 변형시키고 틀 짓게 되는가에 주목함으로써, 본고에서는 <느낌, 극락같은> 공연 중 관객이 체험하게 되는 인지적 과정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볼 것이다. 관객의 연극 체험이란 변형의 체험, 곧 존재와 의식을 잠재적으로 바꾸는 과정 자체라 할 수 있는 까닭에, 관객이 공연을 어떻게 인지하는가 해명하는 것은 공연의 수용 경험 고찰에 의미 있는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러한 조망은 의식의 차원과 연계하여 연극적 몸 - 공간의 현전을 설명해본다는 차원에서 기존 연극 공간 논의에도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뿐더러,5) 또한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 발간과 함께 확장되고 있는 인지과학적 탐구의 성과를 연극적으로 전유해보려는 시도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할 수 있다.6)

    이 글에서 활용하고 있는 핵심 개념인 의식(Consciousness)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정신적 경험의 주관적 성질을 총칭한다. 예컨대, 만일 박쥐가 되는 것 같이 보이는 어떤 것이 박쥐에게 있다면 박쥐는 의식적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박쥐는 의식적이지 않다. 바꾸어 말해 외적인 사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다르게 주체인 나에게 인지되는 방식(사고, 기억, 관심, 느낌, 감정 등등), 그 주관성(subjectivity)과 현상성(phenomenality)의 독특한 경험이 바로 의식이다.7)

    행동주의에 반해 정신을 연구하고자 1960년대부터 서구에서 대두된 인지주의적 연구는, 연구 초기, 정신(minds)의 일련의 원칙들을 정보 처리 과정으로 보고 컴퓨터 모델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정신 작용을 설명하려 하였다.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정신의 작용들은 표현 가능한 수학적 논리로 환원될 수 있는 재현 시스템인 까닭에 의식적 주관성의 문제는 인지과학적 연구 대상의 범주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더불어, 정신의 작용은 그것들을 지지하는 몸이나 신경 해부학적 구조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 고전적 인지주의자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대 인지주의자들은 체현된 의식(embodied consciousness)을 주창했던 현상학자 메를로 뽕티의 영향을 받아서 몸과 몸으로부터 방출된 감정의 문제, 그리고 현상적 주관성의 의식을 정신이나 마음의 철학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게 된다. 더구나 신경생리학(neurophysiology)의 연구 성과는 인지적 능력의 진화와 강화의 메커니즘 기저에 이미 1차적 매개체로서 뇌의 뉴런 활동, 몸의 감각이나 비합리적 감정 등의 작동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인간의 정신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몸 현상학적 입장을 뒷받침하기에 이른다.8)

    데카르트의 지적처럼 몸의 근본적 특징은 그것이 공간적으로 확장된다는 데에 있다.9) 때문에 객체적 리얼리티에서 체현의 과정을 거쳐 현상학적으로 발생하는 주관적 그 무엇인 의식의 해명에, 몸이 배열된 바 인간을 둘러싸고서 객체적 환경을 구성하는 공간의 검증은 필수적이다. 본론에서는 이상의 이론적 논의들을 염두에 두었기에, 의식의 연행과 리미널한 공간 논의를 본론 전개의 두단계로 구성하면서도. 의식 - 몸 - 공간의 긴밀한 고찰을 꾀하였다. 연구 대상이 되는 주 텍스트는 <느낌, 극락같은>의 1999년 서울연극제 공연 동영상이다.부가적으로 이강백 희곡집에 실린 대본을 활용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10)

    1)각각 김방옥, ‘몸과 관념 : <느낌, 극락같은>과 <뙤약볕>의 경우’, 『공연과 리뷰 제19호』, 1998, 9-10, 19~26쪽. 김미도, 『21세기 한국연극의 길찾기』, 연극과인간, 2001, 74~75쪽 참조.  2)김윤철, 『우리는 지금 醜學의 시대로 가는가?: 한국연극 1990~1999: 김윤철 평론집』, 연극과인간, 2000, 283~286쪽.  3)김길수, 「<느낌, 극락같은>의 연극 미학 : 서사극 작법을 중심으로」, 『한국문예창작 제6권 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7, 297~320쪽. 백현미, 「이강백 희곡의 반복 구조와 반복의 철학」, 『한국극예술연구 제9집』, 한국극예술학회, 1999, 235~281쪽. 김소정, 「<느낌, 극락같은>의 연극성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제12집』, 한국극예술학회, 2000, 347~376쪽. 이은하, 「이강백의 ‘작품(oeuvre)성’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제32집』, 한국극예술학회, 2010, 449~ 475쪽.  4)이 논문에서는 performance를 연행(演行)으로 번역하였다. 무대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인간 상호 행위의 과정은 모두 광의의 ‘연극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행’이라는 용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다음의 논문 참조 이상란, 「오태석 연극의 연행성-<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으로-」, 『한국연극학 제41집』, 한국연극학회, 2010, 39~75쪽.  5)신현숙,「연극 공간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 「오구:죽음의 형식」 을 중심으로」, 『기호학연구 제1집1권』, 한국기호학회, 1995, 332~359쪽. 이화원, 「연극의 공간성 분석을 위한 비교 연구」, 『연극교육연구 제10집』, 한국연극교육학회, 2004, 77~96쪽. 서명수, 「연극 커뮤니케이션과 공간의 수사학」,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2집』,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00, 101~117쪽.  6)연극의 인지과학적 논의로는 김용수,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본 연극대사 : <아가멤논>의 사례를 중심으로」, 『드라마연구 제35집』, 한국드라마학회, 2011, 149~184쪽. 이강임,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살펴본 연기예술의 창조과정과 방법론 연구 :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공연학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연극학 38집』, 한국연극학회, 2009, 123~182쪽의 논의 참조.  7)즉 의식의 기본적 성격은 현상성(phenomenality)과 인지(cognition)로 구성된다. 한편으로 의식은 주체의 가장 고유한 주관적 경험의 자질(qualia)로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의식은 고도의 인지적 기능(사고, 기억, 관심, 느낌, 감정)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Susan J. Blackmore, Consciousness :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4.  8)Jennifer Ewing Pierce, “Emotional ‘Lifeworlds’ : Toward a Phronetic Understanding of an Ontology of Acting” In Consciousness, Theatre, Literature and the Arts, ed, Daniel Meyer-Dinkgräfe, Cambridge Scholars Press, 2006, pp. 41~44 참조.  9)Blackmore, op,cit, p.2에서 재인용.  10)동영상은 다음의 DVD 자료 참조. 『(98) 서울 국제연극제 : 느낌, 극락같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8. 희곡집은 이강백, 『이강백 희곡전집 6권』, 평민사, 2001, 152~216쪽 참조. 본론에서 표기되는 쪽수는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2. 인물들의 의식 수준과 의식의 리허설

    <느낌, 극락같은>은 불상 제작과 관련된 갈등을 다루고 있는 극이다.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식 상태와 불교적 담론의 상관성은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아트만(Atman), 영혼(Soul) 같은 자아(Self)11) 개념이 발달한 대부분의 종교와 달리 불교는 자아의 개념을 거부하는 종교다. 불교에서는 자아의 관념에 대한 집착과 무지로부터 인간의 고통이 비롯된다고 본다. 자아는 보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 자아는 환각이라는 점이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에서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는 존재한다. 하지만 각 경험에서 발생했다가 다시 사라지는 덧없는 경험, 감각의 다발에 대한 관습적 명명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불교에서 인식하는 자아의 개념이다. 의식적 경험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일어나는 것이기에, 의식의 문제를 밝히고자 한다면 자아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적 자아로 대표되는 비실체적, 비영속적 자아의 개념은 <느낌, 극락같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식이 어떻게 본인의 자아를 구성하고, 변형시키며 그것이 또한 관객의 인지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논의의 단초를 제공한다.

    먼저 동연의 의식 상태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해 보자. 동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색(色)’, 즉 사물의 ‘형태’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조숭인에게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그는 이 세상이란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서, 이런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남보다 더 그 형태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인물이다. 해서 서연과 달리 불상 제작 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부처의 마음보다도 부처의 형태를 얼마나 완벽하게 만드느냐 하는 점이다. 부처의 형태를 미숙하게 만들면 그 속에 부처의 마음이 없는 것이 당연지사이기에 그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 있는 열 한 개의 얼굴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그것의 귀고리, 목걸이, 손에 든 보병과 기현화란 꽃의 형태까지 꼼꼼히 연구하는 일에 주력한다.

    결과적으로 불상을 위시하여 사물의 형태에 치중하는 동연은 세계의 완벽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보는 합리주의적 의식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세계의 완벽한 그림은 인간의 머리, 인간의 내재적 정신 어디인가에 간격 없이 얼마든지 세밀하게 재현되고, 보존된다. 역으로 사물에 완전한 형태를 부여하는 인간의 의식은 그만큼 균열 없는 통합적 속성을 지닌다. 이미 동연의 머릿속에는 ‘의식의 내용’으로서 불상의 형태가 통일성 있게 자리한다. 또한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전이되는 시간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상의 온전한 형태가 고정적으로 재현된다고 생각하는 터라, ‘의식의 연속성’ 또한 동연은 획득한다. 통일성 있는 의식의 내용, 단절되지 않는 의식의 연속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동연을 의식적 경험의 단일한 경험자, 영구적 실체로서 해석하게끔 하는 의식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12) 그것의 효과는 세계를 자아가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적, 인과적, 로고스 중심적 사고의 생산과 목격일 테다. 함묘진의 망령에 시달리는 함이정에게 동연이 그가 만든 황금 석가여래좌상 앞에서 그녀가 결가부좌로 명상하고 삼천 배의 형태를 취하면 온갖 들끓던 마귀들이 항복하게 되리라 종용하는 부분(196쪽)에서 의식의 통합성으로 점철된 이러한 동연의 자아 효능감에 대한 관객의 목도는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의식 밖 세계에 대한 그림을 의식 내부에서도 정확히 재현하고 인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경심리학에 의해서 이미 도전을 받아 허구임이 증명된 억견(doxa)이다. 예컨대 시신경이 모아진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과는 별도로 망막 주위에는 맹점(blind spots)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뇌는 망막에서 지각된 시각적 정보와 맹점에서 지각되지 못한 시각적 정보의 간격만큼 부정확하게 세계의 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꾸어 말해 망막과 맹점의 지각적 간격으로 인해 상실된 시각적 정보들을 메우는 뉴런 활동 같은 처리 과정은 뇌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시각적 재현이란 외적 사물의 정확한 내적 복사라기보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 특정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결과 시계와 관련된 의식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각적 재현은 일정 정도 환각적인 것으로서 일종의 참여하기, 행동하기의 성질이 함의된 세계에 대한 의식적 조작의 또 다른 측면이다.13) 이렇게 봤을 때 동연의 눈에 완벽한 형태로 보이는 불상들도 맹목지점을 애써 외면해, 꾸며 만들어진 시선의 소산인 셈이다.

    한편 극이 진행됨에 따라 함묘진과 함이정의 의식 수준은 점점 정상적 의식상태와는 다른 상태가 되어간다. 그들의 달라진 상태의 의식에 따른 자아 구성양상은 그들의 비전을 왜곡시키는데, 이는 동연의 통합적 의식이나 그의 완벽한 재현 행위와 대척점을 이루는 터라 주목을 요한다. 물론 함묘진과 함이정 모두 극 초반부에는 형태를 중시하는 동연의 입장에 동조한다. 함묘진은 이 세상에서 본인보다 불상의 형태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없다고 자부할 만큼, 불상의 마음보다 불상의 형태를 중시하는 불상 제작자로서의 입장을 처음에는 보인다. 함이정도 동연과의 결혼식 날 그가 만든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이 극찬을 받은 일에 기뻐하며 동연이 만든 완벽한 불상의 형태에 매료된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다른 의식 수준을 보이면서 사물의 형태를 강변하는 동연에게서 멀어져 간다.

    이를테면 불상제작소를 동연에게 넘긴 함묘진은 ‘술’에 의지하며 지내던 중 하반신, 상반신 차례대로 마비증세가 오더니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임박해서는 미쳐가는 모습을 보인다. 동연의 말을 빌리자면 함묘진은 예전에는 결코 안하던 짓을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말마저 변덕스러워지는 ‘노망’ 증상을 겪는다고 진단된다. (파킨슨 식 치매) 함이정은 아버지가 불상에 깔려 압사한 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동연의 종용에 따라 ‘명상’을 시도한다. 하지만 명상의 집중 순간에 죽은 아버지를 보는 등 끝내 심적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잠’, ‘꿈’으로 추측되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망령과 들판에서 조우하여 그녀는 서연의 행방을 묻는 비정상적 경험마저 체험하게 된다.

    ‘술’은 뇌에 광범위한 효과를 미친다. 알코올의 흡수는 뇌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동작 계획 영역의 능력과 양 옆에 위치한 동작 실행 영역의 능력을 저하시켜서 자극에 대한 동작 반응을 50퍼센트 감소시킨다고 보고되고 있다. 손발이 갑작스럽게 마비되는 전형적인 파킨슨 식 ‘치매’의 경우, 기저핵(basal ganglia)에 위치하여 신경 간 소통을 허용하는 신경전달체 도파민이 일부 사멸되어 운동 감각을 소멸시킴으로써 증상이 나타난다.14) ‘명상’은 의식 외부의 세계나 사물에 대한 주의력의 범위를 좁혀, 고도의 선택적 의식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잠’자는 동안 뇌는 내면적으로 경험의 패턴을 생성시킨다. ‘꿈’ 꾸는 동안에 이 패턴은 사람과, 대상, 감각을 구비한 세계상을 시뮬레이션하게 된다. 비록 ‘꿈’이 기괴한 특징을 담고 있을지라도, 잠자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꿈꾸는 상태에서의 자기 인식은 현저하게 저하되기 마련이다. 그런 터라, 깨어 있는 의식과 다른 상태의 의식을 연구하는데, ‘잠’과 ‘꿈’은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다.15)

    정리해서 말하자면, 함묘진, 함이정이 경험하는 ‘술’, ‘치매’, ‘명상’, ‘잠’, ‘꿈’ 등은 가시적 세계의 절대 현존을 신뢰하는 동연의 일상적 의식 상태와는 또 다른 종류의 의식 상태를 극에 전개한다. 교체된 의식 상태(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 : ASC)16)라 정의될 수 있는 이러한 의식 상태들은 동연의 그것과 구별되는 등장인물 주체들의 분열적 자아 구성 양상을 입상화한다 할 수 있겠다. 지켜보는 장소‘theatron’)라는 뜻의 연극의 어원이 암시하듯, 무대는 ‘보기’ 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해서 술, 치매 등으로 동작이 마비되며, 명상의 실시 에 의해 선택적 주의력의 시계가 고양되고, 잠, 꿈에 따라 사후 캐릭터와의 기괴한 만남이 장면화되는 자아의 또 다른 경험 패턴을 취함으로써, 함묘진, 함이정의 교체적 의식 수준은 극의 객체적 환경을 관객에게 좀 더 새롭게 시지각적으로 환기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주체와 대상의 새로운 형상화를 위한 고도의 의식 수준 체험, 곧 서연의 의식적 각성 상태 체험으로 관객의 인지 활동을 안내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서연은 <느낌, 극락같은>에서 가장 각성된 의식 수준(Higher States of Consciousness) 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조숭인에게는 ‘정신’적 아버지로서 호명된다. 동연과는 달리 서연은 부처의 형태보다 마음을 중시하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자로 그려진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서연의 의식적 각성 상태는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된다. 첫째로 그는 ‘고도의 주의력 상태’를 지닌 인물로 볼 수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불상의 형태에 온 관심을 기울이는 동연에 비해 그는 비석바위, 다불바위, 보살암 등 십리에 걸쳐 늘어서 있는 운장산 바윗돌에서 진짜 부처님의 모습을 찾아낸다. 해서 그는 전 감각적-지각적 영역에 걸쳐 동시적으로 사물에 주의를 광범위하게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이는 자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협소한 주의력만을 가졌더라면 불가능했을 자질이다. 둘째로 그는 ‘고도의 감정적 상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대신 불상 제작소의 후계자로서 동연을 택한 후 동연에게 딸마저 내준 스승 함묘진을 미워하지도 않고, 더불어 경쟁심에 자신을 집에서 쫓아낸 동연의 심정마저 이해하는 관대함과 온정적 심정의 소유자다. 서연이 만든 돌부처 앞에서 빌면 무식한 농사꾼이 모신 늙은 부모의 고질병이 치유되고, 청상과부의 울화가 풀려 가슴속까지 후련해지며, 심지어 지나는 소나 말도 돌부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절을 하는 등 서연은 내면에 부정적 감정이 없고, 긍정적 행복으로만 가득 찬 지복의 존재로 극에서 형상화되고 있다. 셋째로 서연은 ‘고도의 인지적 상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 텅 빈 공백이 무섭고 두려워서 네 이름을 불렀다. 부르고 또 부르고 목이 터져라 너를 불러서 그 공백을 가득 채웠는데, 이듬해 봄 눈 녹는 봄이 되니깐…… 돋아나는 풀잎이며 피어나는 꽃송이가 모두 네 모습이더라.”(212쪽)라는 서연의 말에서 드러나듯 그는 정인이었던 함이정에 대한 그리움을 우주적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사물의 본성에 관한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심오한 인지적 능력을 지녔다.17)

    결과적으로 높은 주의력, 감정, 인지 상태를 갖춘 서연은 경계 없이 무한히 확장되어 자신임을 잊고서 모든 대상과 융합되는 고도의 의식 수준을 체화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돌부처 머리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떨어졌다고 해서 부처님이 없어졌겠느냐는 그의 대사나 물속으로 들어가 물로 부처를 만들어 세우는 그의 몸짓(212~213쪽)을 통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의식이란 거대한 환각 자체이며, 자아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무지에서 비롯된 소치라는 ‘공(空)’의 의식적 과정을 관객은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잊고 모든 것을 향해 의식적 지향성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야말로 내적자아의 외적 세계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의식적 체험임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서연의 깨달음을 교훈적으로 전달받으며 아무 간격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극을 지켜보는 관객의 인지적 경험이라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유보적이다. 왜냐하면 일상적 의식 상태(동연), 교체적 의식상태(함묘진, 함이정), 고도의 의식 상태(서연)와는 또 다른 층위의 의식 수준을 지닌 인물로서 조숭인이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사적 해설자 역할의 조숭인은 극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두 분의 아버지가 다투고 있다 토로하는데, 이는 가시적 세계에 대한 의식적 체험과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의식적 체험 사이에서 조숭인의 의식 상태가 ‘과정 중’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형태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합리적 앎 / 극락 같은 느낌의 비합리적 직관에 의해 획득되는 갑작스러운 앎 사이, 이미 되어 있었던 세계 / 앞으로 되기가 진행할 세계 사이, 덜 존재하는 것 / 더 존재하는 것 사이에 조숭인의 의식은 자리한다. 이는 한 현상에 정지하고픈 ‘상태 의식’이자, 변형의 흐름을 자극하는 ‘행동 의식’ 둘 다이면서도, 또한 그 둘 다도 아닌, 탈중심적 이중적 양태로서의 의식이다. 요컨대 우리는 조숭인의 의식을 리허설되고 연행되는(performative) 의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관객이 의식의 절정 경험을 대리 체험하게 되는 계기도 서연의 각성 의식보다 이러한 조숭인의 의식을 통해서이리라 추측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관객이 연극을 목도하며 존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지점은 곧 조숭인이 형상화하는 의식의 리허설처럼 의미작용 체계의 사이에 존재가 위치하는 잠재성의 영역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18)

    11)어떤 행동이나 작용의 능동적인 실체가 ‘주체(subject)’라고 한다면, ‘자아(self)’는 말은 단순한 주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주체 자신에 대한 재귀적 지시가 포함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12)의식의 통합성에 대해서는 Blackmore, op,cit, p.18 참조.  13)Ibid, pp.61~65.  14)Paul M, Matthews. and Jeffrey MacQuain, The Bard on the brain: understanding the mind through the art of Shakespeare and the science of brain imaging. Dana Press, 2003, p.198, p.179 참조.  15)Blackmore, op,cit, pp. 101~104.  16)Ibid, p.100.  17)고도의 의식 상태에 관한 설명은 Antti Revonsuo, Consciousness : the science of subjectivity, Psychology Press, 2010, p.264 참조.  18)의식의 연행은 Ralph Yarrow, “The Performance of Consciousness: The Consciousness of Performance”, In op,cit, ed, Daniel Meyer-Dinkgräfe, pp. 13~26 참조.

    3. 공간들의 이미지 스키마와 공간의 사이성

    연극은 여타 예술과 달리 물리적 공간을 매개로 발생한다. 이 물리적 공간은 일견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을지라도 배우들의 몸이 환기하는 감각적 자극들로 인해 불안정한 유동적 공간의 가능성을 출현시킨다. 물론 생물학적 감각성의 영역들은 전반성적(pre-reflexive), 전의미적(pre-meaningful)인 현상학적 몸과 공간성의 역동적 지각 과정에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몸과 공간의 탈의미화된 물질성, 기표들의 현전적 효과야말로, 새로운 재의미화 과정을 발현하게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물질화된 몸과 그것이 배열된 공간 속 에너지 흐름은 의미론적으로 명확할 수 없겠지만, 관념, 사고, 기억, 감정 등 풍부한 연상 작용을 지각 주체에 환류하기 때문이다. 즉 몸과 공간의 현전적 효과는 지각 주체에게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발생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새로운 의미, 기의의 재현과 관련된 재의미화작용에 기여하게 된다.19) 이러한 과정이 바로 인지과학에서 의식을 살아 있는 세계 내 살아 있는 몸에 대한 응답, 체현된 것으로서 보는 이유라 할 수 있다.20) 그러므로 몸의 물질화 과정이 추동하는 생성적 과정과 그와 결부된 공간의 확장 측면은 의식과 분리시켜 생각될 수 없다. 그보다 의식은 몸이 깃들여진 의식이고, 몸은 의식이 깃들여진 몸인 바, 사이의 공간에서 사라지면서도 탄생하는 몸을 통해 의식은 물질적으로 연행되며, 더불어 관객은 되기의 과정을 물질적으로 의식하게 된다.

    관념, 사고, 기억, 감정 등 풍부한 연상 작용을 지각 주체에 환류하는 감각동작적 경험의 추상적 게슈탈트를 인지과학에서는 이미지 스키마(Image Schemas)라 부른다. 쉽게 말해 의미론적으로 규정될 수 없지만, 몸의 물질적 발현에 의해 뇌 속에 최소한의 정보 형태로 저장되면서, 반복적 사용으로 복합적 연상작용을 발생시키는 지각적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스키마는 뉴런의 활동과 인접적인 것으로 어린 아이 시절부터 개발되고, 그 원형(archtype)적 속성때문에 보다 고등 수준의 문화적 인지를 정립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나 주목할 만한 공간 이미지 스키마라 확인된 것은, 움직임에 따른 감각동작적 경험과 관련한 ‘원천 - 길 - 목표(Source - Path - Goal)'의 이미지 스키마와, 공간의 경계에 따른 감각동작적 경험과 관련한 ’격리 - 노출(Isolation - Exposure)'의 이미지 스키마다.21) 이 같은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의 ‘원형 효과(prototype effect)’22)를 통해 앞서 살펴본 의식의 다양한 양상을 체현적 의식으로 관객이 인지하는 과정을 가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느낌, 극락같은>에서 가장 동적인 인물은 서연이다. 서연은 부처의 형태보다도 마음을 찾는 구도의 길을 위해 동연, 함묘진, 함이정과 어렸을 때부터 살아 왔던 불상제작소가 있는 집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집을 나온 후 그가 다닌 곳은 운장사 가는 길이라든지, 전라도 어딘가의 들길이었다. 이렇게 길을 따라 걸어 다니면서 그가 한 일이란 돌들을 주워서 돌부처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는데, 이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고자 행해진 수행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가 들길을 헤맨 끝에 도달한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개울물 건너편의 극락문이다. 요컨대, ‘불상 제작소가 있는 집→들길→개울 건너편의 극락문’을 경유하는 감각동작적 경험은 ‘원천→길→목표’의 이미지 스키마를 부여하고, 그러한 여정의 시퀀스를 통해 좀 더 복합적으로는 서연의 각성 과정이 공간적 층위 내 몸의 구체적 위치성에 의해 체현되기에 이른다.

    공간에서 등장인물이 겪는 몸의 특수한 경험이 어떻게 이러한 의식 구조를 파생시키고 관객의 인지 과정 상 원형 효과로 경험되는지 좀 더 세밀히 살펴보자.

    먼저 ‘원천’의 인지적 스키마를 형태화하는 집은 어떠한가? 집이라는 허구적 공간은 무엇보다도 부처의 완벽한 형태를 찾는 동연과 부처의 진정한 마음을 찾는 서연의 대립이 발생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의 대립 의식은 무대의 물리적 구성에서도 투사된다.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체격이 단단한 근육질형의 동연 역을 맡은 이용근과 평범한 모습이지만 사려 깊은 심성을 가진 서연 역의 조영진은 지시문에서 서술된 대로 극 초반부 좌우 대칭으로 배치돼서 대립의 긴장 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그들이 만든 불상도 마찬가지다. 동연의 불상은 피부에 금동을 입혔고, 완벽한 대칭적 기교로 힌두 계통의 춤을 보이나, 서연의 불상은 보다 소박한 모습에 한국 무용의 춤을 선보인다. 또한 절에서 불상을 구입하기 위해 손님들이 오자 구매자에게 선택된 동연의 불상들은 정지동작을 풀고 화려한 군무를 추는 반면 선택되지 못한 서연의 불상은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빠져 나간다.23) 집에서의 동연과 서연의 대립 의식이 불상들의 대립적 움직임의 감각을 통해서도 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집에서의 동연과 서연의 대립 의식은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반복되고, 그러한 의식의 기반은 캐릭터 저마다의 몸의 행위로부터 매개된다. 예컨대 함묘진은 죽음에 가까워지자 동연과 심한 마찰을 겪는다. 동연에게 형태를 가르쳐준 자신을 자책하며 함묘진은 동연이 크게 만들 건 작게 만들고, 작게 만들 건 크게 만들었다(190쪽) 나무란다. 동연과 함묘진의 갈등 의식은 함묘진의 죽음 장면에서 함묘진이 겪는 몸의 체험을 통해 보다 양각화된다. 함묘진이 죽어갈 때 불상들은 함묘진을 포위한 채 엎드렸다가 일어났다 하는 제스처를 반복적으로 취하면서 그를 향해 점점 거리를 좁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압박감의 장면은 무대 중앙에서 단발마의 호흡으로 팔을 위로 뻗지만 점점 쓰러져가는 함묘진의 생물학적 죽음의 순간을 보다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것은 함묘진의 교체된 의식상태, ‘술 마심’, ‘치매’ 등의 변화된 의식 상태가 동연이 지배하는 집의 가시적 세계로부터 일탈되어 마침내 제거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되었음을 배우들의 신체적 행위에 의해 비유적으로 형태화하게 된다. 함이정의 교체된 의식 상태, 명상의 순간 역시 신체적으로 매개된다. 동연의 강요로 아버지의 망령을 쫓아내고자, 함이정은 삼천 배에 들어간다. 하지만 절하는 그녀 앞에는 동연이 만든 황금 석가여래좌상이 무대의 우측에 고요히 좌정한 반면, 좌측에 배치된 함묘진의 망령은 극락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장면화된다. 석가여래좌상의 정지적 포즈와 함묘진의 움직임의 포즈가 무대 좌우를 분할하면서 몽타주처럼 충돌하고 있는 까닭에, 동연의 완벽한 형태론적 세계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함이정의 의식적 경험이 신체적 감각을 거쳐 어떻게 출현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정리하자면, 집에서 경험되는 서연, 함묘진, 함이정의 신체적 경험과 이를 표현하기 위한 무대의 물리적 구성 등은 동연이 점유한 집으로부터의 분리, 추방 등 탈구의 의식을 구조화한다. 그래서 집의 가시적 세계는 더 이상 익숙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낯선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거리를 두고 떠나가야 할 곳임을 관객의 의식은 감각동작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불상 제작소가 있는 집은 길에 오르기 위한 ‘원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함묘진이 죽을 때, 조숭인이 집에서 맡게 되는 토할 것 같은 피비린내 나는 ‘냄새’는 이와 같은 장소 상실의 의식이 후각 등 원초적인 몸의 감각에 의해 체현된 형태로서 발생되고 있는 과정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길’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는 서연의 신체적 이동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러한 여정 공간 중 전진해가는 몸의 행위 자체가 구도의 의식을 낳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연의 깨달음은 운장사 가는 길, 전라도 길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중 획득된 것이다. 서연의 이동은 감각적 대상들과의 대면을 뜻하는 바, 그의 깨달음은 외적 환경과 몸의 접촉으로부터 의식 구조가 파생되는 과정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동연처럼 십일면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 있는 열 한 개의 얼굴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그것의 귀고리, 목걸이, 손에 든 보병과 기현화란 꽃의 형태까지 꼼꼼히 연구하는 등 논리적 사고에 따라 서연의 깨달음이 도출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서연의 신체적 움직임은 직관적, 감정적 느낌이 우선적으로 충만한 의식 구조를 낳는데, 이처럼 느낌으로 모호하게 체현된 의식이야말로 합리적 의식이라 명명되는 세상사 모든 앎들의 보다 본질적인 근원임을 그의 도정은 관객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예컨대 서연이 함이정과 길동무를 하면서 삶은 감자를 먹고, 물부처를 만드는 장면은 보다 더 큰 앎의 인지 구조를 파생하는 토대로서 감각적 몸의 느낌이 작용할 수 있음을 관객에게 암시한다. 시각적으로 그 외관을 확인할 수 없는 물부처만들기 장면은 시각적 인상에 담보 잡힌 존재에게는 분명 지속성을 위협하는 안정한 장면일 테다. 하지만 역으로 말해 물의 부드러움이라는 촉각적 지각은 ‘무(無)’를 보는 행위를 전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관습적 시각의 영역이 도전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보는 것의 부재 속에서 촉각을 경유하는 새로운 보기의 감각은 자아가 어떻게 존재하고, 또 어디에서 존재하게 될지 환원될 수 없는 보다 넓은 공간의 감각으로써 서연과 함이정이 속한 들판의 장소성을 새롭게 확장하기에 이른다. 합리적 지성적 계측에 의해 수치화될 수 없고 또 그것과도 구별되는 의식적 경험, 신체적 앎의 속성이 매개되는 과정은 들판에서 서연과 함이정이 삶은 감자를 먹는 행위로부터도 출현한다. 먹기의 행위는 몸의 경계를 열고, 닫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배치되는 들판의 장소성과 함께, 감자 먹기는 서연의 의식적 각성을 낳는 또 다른 몸의 특수한 경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목표’의 공간 이미지 스키마 지점에 무대화된, 경전 글귀가 아로새겨진 7m 높이의 극락문은 고도의 의식을 매개하는 전거(locus) 자체로서 물리적 공간 경험과 그 속에서 발생되는 물질적 체현의 중요성을 관객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함묘진을 비롯한 불상 역의 배우들이 극락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한 것은 이러한 몸과 의식의 불가분성을 특권화한다. 즉 몸으로부터 의식으로의 통과, 의식으로부터 몸으로의 통과야말로, ‘극락 같은 느낌’일 수 있음을 교리의 글자들이 아로새겨진 극락문을 넘어서는 이들의 슬로우 모션은 관객의 의식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관객의 의식적 체험은 이 극에서 ‘원천→길→목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에 순응하며 그 궤적을 그대로 경험한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만큼이나 관객과 연행자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다. 이때의 거리란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객석이라는 실제적 공간에 속하면서도 무대라는 허구적 공간에 속한 이중적 공간 내 존재로서 관객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 또한 여기에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객석의 이중적 공간성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조숭인이 체현하고 있는 공간이다.

    조숭인은 극 속에서 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 그의 태어남은 반투명의 폭넓은 하얀 천을 매체로 이루어진다. 강보에 휩싸여 있듯, 조숭인의 몸은 태어나기 전 하얀 천에 둘러 싸여 ‘한정된 공간 속’에 ‘격리’되어 있다. 하지만, 탄생의 순간 하얀 천을 둘둘 말아 은밀한 부분만을 가린 채, 그의 벌거벗은 몸이 ‘전 공간 속’에 ‘노출’된다. 그러므로 ‘격리→노출’의 감각동작적 경험은 조숭인 뿐만 아니라 관객의 리허설되는 의식, 문턱 경험을 조직하는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로서 작용한다. 그는 동연과 서연에 관련된 극적 전개 속에서 동연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극중 사건을 관객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경계 짓는다. (격리) 반면 서연이 죽은 후 현재적 시점에서 과거 동연과 서연에 얽힌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해설자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극중 사건과 관객이 관계를 획득하고 경계를 허무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노출) 해서 그를 통해 관객은 극중 공간에 고착되어 있다는 안정적 의식을 자극받으면서도 (격리), 극중 공간으로부터 탈구되고 있다는 불안정적 의식을 자극받기도 한다. (노출)

    관객의 극중 공간에 대한 모호한 지각은 조숭인이 극의 시작과 끝에서 서연의 장례식, 즉 ‘제의적 장소’에 참여하게 되는 행위에 의하여 더욱 고양된다. 함이정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서연에 대한 함이정의 느낌은 저기 들판의 뒹구는 돌들을 봐도, 흐르는 물,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통해서도 지각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157쪽) 서연의 시신이 목관에 뉘여 있는 당골나무 앞 장소는 그러한 느낌으로 충만한 곳이라 어떠한 의미로도 규정지을 수 없을 뿐더러, 의미의 바깥에 서 있는 의미작용 이전의 풍경을 구성한다. 그러나 다시 가능성, 이동성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도록 계기가 마련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서연의 장례식, 부재하는 서연의 몸을 목도할 때 구성되는 제의적 풍경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파괴된 몸에 의해 비위치화되는 무(無)의 의식이야말로 새로운 의식의 잠재성을 위치화 시킬 수 있는 끊임없는 ‘되기’로서의 장소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24) 결과적으로 제의적 장소에서의 리미널한 경험이 던져주는 그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은, 조숭인, 더 나아가 관객의 리허설되는 의식 상태를 매개한다. 조숭인이 서연의 관에 대면하여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육신은 동연을 닮았는데, 정신은 서연을 닮았다는 조숭인의 마음 속 두 분의 아버지의 다툼은 “상처를 입고…… 언제나 괴로워”(195쪽)하는 ‘상처받을 수 있는’ 의식의 형태를 그곳에 거주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얀 천으로 자신의 나신을 고립시키고, 그것을 노출시켰듯, 끊임없는 격리와 노출의 경계, 의미작용의 경계에서 틀 지워진 자만이 항상 과정 중 ‘되기’의 흐름 속에 자신의 의식을 리허설 할 수 있다.

    연극의 관객은 실제 공간에 있는 자이면서, 허구 공간에 있는 자이기도 하다. 연극의 관객은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곳에 있으면서도, 캐릭터들이 살지 않는 곳에서 또한 살아가는 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객으로서 우리는 우리 아닌 곳에 있으며, 우리 아닌 것들이 우리인 곳에 있다.25) 동시적으로 우리인 곳들과 우리 아닌 곳들에 있으면서도 또한 동시적으로 우리인 곳에 있지도 않고 우리 아닌 곳들에 있지도 않은 곳이 바로 관객의 공간이다. 조숭인의 몸 체험과 장소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된 사이성의 의식은 바로 이러한 관객의 몸 - 공간 -의식과 상동적이다. 요컨대 ‘상태 의식’과 ‘행동 의식’의 의식적 리허설을 체험하는 <느낌, 극락같은>의 관객은 공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상 인지를 위한 공간’과 ‘행동을 위한 공간’이라는 이중적 장소, 그 사이에 자리한다.

    이 극의 주제는 형태와 정신 중심의 예술관의 조화라 평가되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단순히 그 같은 주제를 수용하는 양상으로 관객의 인지 행위가 간주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조숭인의 몸 - 공간 - 의식과 결부된 관객의 몸 - 공간 - 의식 경험을 염두에 둔다면 초점은 달라진다. 즉 살아 있는 세계 내 살아 있는 몸의 물질성을 통해 리허설되는 의식의 발생 과정, 특히나 우리가 우리이면서 우리가 아닌 곳에 있을 수 있는 되기의 장소적 경험이야말로 이 극의 텍스트적 세계와 관객의 인지적 과정이 상호 행위를 거쳐 발현시키는 <느낌, 극락같은>의 정신적 이미지일 것이다.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형태와 정신의 조화라 답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적 존재와는 다른 상처, 균열의 낯선 풍경, 낯선 공간 속에서 겪는 되기의 경험과 언어로 개념화될 수 없는 그것의 의식적 과정이, ‘경험’으로서 예술의 또 다른 본질이라 우리는 답변할 수도 있겠다.

    19)Erika Fischer-Lichte, The transformative power of performance, tr. Saskya Iris Jain, Routledge, 2008, pp. 140~158 참조.  20)F. Elizabeth Hart, “Performance, Phenomenology, and the cognitive turn”, In Performance and cognition: theatre studies and the cognitive turn, ed, Bruce A. McConachie, et al, Routledge, 2006, p. 30.  21)Ibid, pp, 38~40와 Maya N. Öztürk, “Through the Body : Corporeality and Consciousness at the Performance Site”, In op,cit, ed, Daniel Meyer-Dinkgräfe, pp. 143~158 참조.  22)원형 효과(prototype effect)란 범주(category)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가 공연 중 증가일로되는 관객의 인지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전제 하에 비롯된 개념이다. 범주는 범주화(categorization)의 정신적 과정에 의해 달성되는데, 범주화는 투입되는 수많은 양의 이산적인 데이터를 지각되는 유사성에 따라 함께 묶을 수 있는 능력(grouping)을 지칭한다. 범주화는 무엇보다도 생물학적 진화의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왜냐하면 진화 초기 음식과 음식이 아닌 것, 친구인 존재와 친구가 아닌 존재를 분별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거친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형 효과라는 차원에서 관객의 인지적 경험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원천-길-목표’, ‘격리-노출’ 같은 이미지 스키마는 공간 경험에 따른 일종의 원형적 범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같은 원형적, 일반적 이미지 스키마의 환유적(metonymic) 인접적 재현으로 관객은 극 공간을 인지한다고 볼 수 있다. 원형 효과와 관객의 지각 행위의 상관성은 Neal Swettenham, “Categories and catcalls: Cognitive dissonance in The Playboy of the Western World” In op.cit. ed, Bruce A. McConachie, et al, pp. 208~222 참조.  23)불상의 춤과 연기는 김방옥의 논의에서 이미 상세히 분석된 바 있다. 김방옥, 앞의 논문.  24)무로써 존재하는 몸이 체현하는 리미널 의식은 Jude James, “The Porous Body As Ontological Site - Interface For A-Located Realities”, In op,cit, ed, Daniel Meyer-Dinkgräfe, pp. 83~91 참조.  25)Gay McAuley, Space in performance: making meaning in theatr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9, p.277.

    4. 결론

    본고는 의식과 공간의 문제가 <느낌, 극락같은>을 수용하는 관객의 인지적 활동 해명에 정방향성을 제공해주리라는 가정 하에 논의를 진행하였다. 비록 몸과 관념의 차원에서 이 작품을 섬세하게 읽어낸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몸과 정신의 이분법적 시각을 뛰어 넘으면서도 그것을 관객의 인지적 차원으로까지 연계해 고찰할 수 있는 모종의 문제의식은 선행연구에서 간과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에서 본 논의는 출발하였다.

    때문에 의식과 몸을 함께 결부시켜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하였는데. 인지과학이나 메를로 뽕티의 몸 현상학, 신경생리학에 많은 영향을 받아 최근 검토되고 있는 체현된 의식에 관한 연구를 이 글은 재전유하게 되었다. 우선 등장인물의 의식 상태를 가시성의 환각, 교체된 의식 상태, 고도의 의식 상태로 분류하고서, 이들 등장인물들의 의식 양상이 조숭인에 의해 리허설 되고 연행되는 국면을 살펴보았다. 뒤이은 논의에서는 몸의 확장된 실체라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를 중심으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원형효과를 발휘하는지 분석하였다. 의식에 관한 논의 뒤에 공간의 고찰이 뒤따랐으나, 의식이 몸이나 공간을 조종한다는 차원으로 생각하기보다, 현전적 몸에 의해 구성되는 공간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관객의 의식이 어떻게 매개되어 출현하는지가 논의의 주 관심사였다. 그 같은 관객의 체현된 의식의 토대로서, 본론에서는 ‘원천→길→목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와 ‘격리→노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를 조망하였다. 즉 가시성의 환각, 교체된 의식 상태, 고도의 의식 상태로 이어지는 의식의 각성 과정은 ‘원천→길→목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에 응답하여 발현되는 관객의 의식 차원이라는 점을 밝혔고, 조숭인의 리허설로서 구성되는 관객의 사이성에 관한 의식은 ‘격리→노출‘의 공간적 이미지 스키마가 배태하는 리미널한 공간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형태와 정신의 조화라는 예술관의 설파 차원에서 <느낌, 극락같은> 관객의 해석 활동을 전개한 기존 논의들과는 달리. 조숭인의 몸 - 공간 - 의식의 차원과 연관하여 관객이 인지하는 사이성의 되기 과정이야말로 바로 관객의 의식 자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밝힌 점이 본 연구가 여타 논의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의식에 관한 연구는 인지 과학, 신경 생리학, 현상학, 인공 지능 이론, 콴툼 이론(quantum theory)의 물리학, 심리학, 언어학 등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해 연구의 범위와 주제를 확장하고 있어 그 이론적 논의의 유용성이 기대되는 분야다. 연극학적 담론 내에서도 물리적 환경을 정신보다 강조하는 극을 리얼리즘, 정신을 물리적 환경보다 강조하는 극을 표현주의로 분류하여 의식의 연구를 극 양식의 내적 논리 차원에서 확인하려는 시도가 행해진 바 있다. 아울러 배우와 캐릭터의 존재론 또한 의식의 교체 현상을 통해 읽어 내거나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최근 실험으로 증명된 미러 뉴런(mirror neuron)을 가지고서 이해하려는 연구도 있었다. 또한 감각적 투입물을 의식으로 전개시키는 인간 생물학적 진화의 양상에서 볼때 연극이 환경에 대한 적응 시스템으로서 진화론적 과정에서 갖는 의의를 고찰한 후, 물리적 무대의 물질구성에 의한 의식의 조성이 생물학에서의 자연선택이론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 밝혀보려는 노력도 행해졌다.26)

    이상의 연구 경향들이 암시하듯, 의식의 연구는 연극학적 담론에서 무한한 생산적 가능성을 노정하고 있다. 물론 몸 - 공간 - 의식의 상관관계가 본고에서 전체적으로 선명하게 그려진 것은 아니었으며, 관객의 인지적 활동 또한 상세하게 전문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몸 - 공간 - 의식의 정확한 상관관계 해명을 위해서는 현상학적 논의라든가 신경생리학적 고찰이 보다 요구되며, 관객이 구성하는 정신적 활동의 구체화를 위해서는 인지적 서사학의 성과가 보다 요구된다. 그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의식 연구가 얼마나 연극학적 논의에서도 잠재력을 지닐 수 있는지 짚어보는 작업으로서 본고가 의미를 지닐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6)각각 William W. Demastes, Staging consciousness,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2, p.51. Daniel Meyer-Dinkgräfe, Theatre and consciousness : explanatory scope and future potential, Intellect Books, 2005, pp. 55~92, pp. 128~134 참조. Gordon Scott Armstrong, Theatre and consciousness : the nature of bio-evolutionary complexity in the arts, Peter Lang, 2003, pp. 23~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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