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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Conversational Revisionism of “The Nightingale” 「나이팅게일」의 대화적 수정주의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Conversational Revisionism of “The Nightingale”
KEYWORD
Lyrical Ballads , Coleridge , Wordsworth , The Nightingale , conversation
  • 「나이팅게일」(“The Nightingale; A Conversational Poem, Written in April 1798”)은 1798년에 출간된『서정민요집』(Lyrical Ballads)에 실린 시이다. 그간 적지 않은 비평적 관심을 받아왔지만, 시집과의 상호관계성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사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보다도「나이팅게일」은 1798년 시집의 정신과 구성원칙을 선언하고 있는「공지문」(“ Advertisement”)의 취지를 소재나 언어, 그리고 논지 면에서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본 논문은「나이팅게일」이 구현하는 ‘대화’(conversation)라는 개념을 시집의 창작원칙과 관련지어 검토하면서, 시집에서 제시되는 시론과 시인관을 설명하려 한다. 시의 화자는 자연의 텍스트화 과정에서 시적 언어의 비유적 속성과 그 한계를 직면하게 되며, 이러한 속성과 한계를 나이팅게일이라는 메타포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가 누구인가는 1798년 시집의 구성원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가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시적 성향을 반영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본 논문은 1798년 시집이 콜리지와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간의 긴밀한 문학적 대화의 산물임을 인정하여, 화자가 두 시인간의 차별과 배제 그리고 융합의 속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1798년의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문학적 실험이 그동안의 많은 선행연구에서 논의된 것처럼 독창적이며 참신한 만큼이나, 선배시인들과 동료시인 그리고 이전의 시론과의 대화를 통한 차이성에 기반을 두는 수정주의적 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1798년 시집의 정신을 구체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창작되었다. 조단(John E. Jordan)은『서정민요집』의 출간과정에서 이 시가 원래 계획되었던「루티」“( Lewti, Or The Circassian Love-Chaunt”)를 대체하는 이유를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시집의 계획이 점차 구체화됨에 따라 “목표의 충실함과 독창성을 좀 더 확신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나이팅게일」이 그 목표에 좀 더 적절하다고 결정”(43-44)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 루서(Susan Luther)도「나이팅게일」을 1798년 시집에서 공표하고 있는 시적 실험과 관련지어 설명하면서 “1798년 4월에 쓴 대화시”라는 부제는 시집의「공지문」에서 표현되는 “사회 중하층의 대화체 언어가 어느 정도까지 시적쾌락이라는 목표에 부합될 수 있는지를 주로 확인할 목적으로 쓴” “대담하고, 아마도 결정적인 실험”(91)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시의 부제「1798년 4월에 쓴 대화체 시」의미는 좀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익명으로 출간된『서정민요집』이었지만 표제면에는 1798년이라는 연도가 명기된다. 부제의 1798년은 시집과 연결되는 부호가 되며, 특히 4월은 시집에서 ‘서정 민요’로 분류되는 실험 시들이 창작되는 시기이다. 부제의 이러한 특이성은 시의 제목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도겟(Frank Doggett)이 말하듯, 영시에서 나이팅게일은 시나 시인을 지칭하는 비유가 된다(547).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실제로 나이팅게일은 시적소재로 빈번히 다루어져 그 자체가 독립된 시적쟝르를 이룰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평범한 나이팅게일을 굳이 시의 제목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부제와의 상호관련성에서 답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부제는 제목의 일반성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1798년 시집에서 표명되는 창작원칙을 표명한다는 것이다.

    제목과 부제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부정과 차별성의 시학은 본 논문에서 언급되는 수정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 글에서 사용되는 수정주의는 스틸링어 (Jack Stillinger)의『복수 저자와 고독한 천재의 신화』(Multiple Authorship and the Myth of Solitary Genius)나 리더(Zachary Leader)의『개작과 낭만주의적 저자』(Revision and Romantic Authorship)에서 논의되는 저자의 개작에 따른 텍스트의 판본 설정과 관련된 수정의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매그누슨(Paul Magnuson)이『공적 낭만주의 읽기』(Reading Public Romanticism)에서 주장하는 출간 당시의 배경 속에서 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하는 시도를 수용하여 개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작품의 이형태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의 위치”(40)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관점에서는「나이팅게일」이 1798년『서정민요집』내의 다른 시들과 맺는 유기적 관계와 시적 관행을 비판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부제의 핵심적 개념인 “대화”는「공지문」에서 시적 실험의 주요한 논제로 암시된다. 그렇다면「나이팅게일」이「공지문」의 선언 내용을 어떻게 실행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은 시의 독법의 핵심이 될 것이다.2「공지문」은 1798년 시집의 시들이 시적 “실험”(3)으로 창작되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대화체 언어”(3)를 적합한 시어로 설정하면서, “시적 쾌락”(3)을 강조하며, 관습화된 판단 규칙을 배제하고 좋은 작품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배양되는 “정확한 시적취향”(4)을 강조한다. 「나이팅게일」은「공지문」의 취지를 충실히 따르면서, 선언하는 시론을 운문으로 표현하면서 시적 메타포를 형성시키는 토대나 근거의 정당성을 따진다. 이 과정에서, 화자는 그의 친구들과 공유하는 “다른 가르침”(41)에 의거한 차별적 기준과 취향을 전달하려 한다.3

    그렇다면 대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화는「나이팅게일」에서도, 심지어 1798년 시집 전체에서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정의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시는 콜리지가 ‘대화시’라는 명칭을 붙인 유일한 시이다.4 문제는 대화시라는 명칭이 워즈워스와의 문학적 제휴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공식적으로 거명된다는 점이다. 「공지문」에서는 대화체 언어를 시집의 실험과 관련짓고 있다. 「나이팅게일」은 1800년 이후에 재출간 되면서 저자명을 워즈워스로 명시한『서정민요집』에서도 실리지만, 대화라는 부제는 삭제된다. 콜리지를 배제하고 시집을 전유하려는 워즈워스의 의도와, 대화에 내포된 원래의 실험 정신이 훼손되고 공동창작 과정이 은폐된 것에 대한 콜리지의 반응이 합쳐진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이팅게일」의 개작과정은 시의 형식적이며 문체적 요소의 변천이 시와 시인이 불가피하게 맺게 되는 역사와의 관련성을 함의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낭만주의 이론가인 맥간(Jerome McGann)이나 로빈슨(Jeffrey   Robinson)에게서도 확인된다(Ulin 70-74).

    콜리지의 시학을 염두 둘 때, ‘ 대화’의 개념은 그가 이후에『문학전기』나 서간에서 언급하는 “로고스, 달리 말해 소통적 지성”(the Logos, or communicative intelligence) (Letters 3:553)과 가까울 것이다. 관계와 대화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서 언어와 지성이 존재하고 의미를 얻게 된다는 콜리지 특유한 대화적 사유방식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시라는 개념은 그 당시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1790년대 영국 문학시장에서 대화시는 특정한 문학양식을 지칭하였다. 예컨대 1799년『영국비평가』(British Critic)에 실린 한 비평은 스타일면에서 카우퍼(William Cowper)의『일』(The Task)이「나이팅게일」에 비해 “보다 대화적”(Smith 40)이라고 평가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비평을 받은 후 1800년 판 시집에서 대화라는 낱말이 시의 제목에서 삭제된다는 사실이다. 문단에서 비판을 받는 대목을 없애버림으로써, 문학소비체제와 원만한 대화를 유지하며, 이를 통해 시집의 판매를 원활하게 하려는 동기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라는 논점에는 당대의 문학생산과 소비체제간의 긴밀한 공조가 함의되어 있다. 중요한 대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콜리지는 1817년『예언적 시들』(Sibylline Leaves)에「나이팅게일」을 다시 실을 때 대화를 부제에 복원시킨다. 1799년 당시의 비평이 대화의 의미를 스타일면에만 한정시키면서, 내포된 복합적 의미를 간과했다는 콜리지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다 넓게, 1798년 시집에서 대화는 시창작의 양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798년 시집이 콜리지와 워즈워스간의 시적 대화를 근본에 두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더 나아가 모든 문학 창작에 내포된 협업적 성격을 암시하면서, 시적 언어의 측면에서는 관습적 시어를 탈피한 자연적, 일상적 대화체 언어를 강조하는 관점을 포괄한다. 「공지문」은 시집의 대화의 대상에 중하층 계층 사람들의 언어, 당대의 모범적 작가들과 옛 시인들, 그리고 시집의 독자들을 포함시킨다. 또한 “올바른 시적 취향”(4)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능력”(4)이며 이를 배양하려면 모범적인 문학 작품과의 오랜 기간의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이팅게일」에서 화자는 그의 친구와 친구의 누이, 나이팅게일들, “아주 상냥한 여성”(69), 그리고 밀턴을 포함을 포함하여 여러 선배 시인들과 대화를하고 있다.

    1「루티」는 워즈워스의「미와 달빛, 오드 단편」(“Beauty and Moonlight, An Ode Fragment”)을 콜리지가 다시 개작한 것이다. 콜리지는 이 시를 Nicias Erythraeus라는 필명으로 1798년 4월 13일에『모닝 포스트』(Morning Post)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필명이 콜리지를 지칭한다는 것은 적어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사실이었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두 명 모두의 실명을 밝히는 것은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1798년 계획에 위배되었다. 1798년 시집의 인쇄판에는 브리스톨 판본에서와 같이「루티」를 그대로 싣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확정된 출간물은 런던에서 출판업자 코틀(Cottle)이 500부로 인쇄한 것이다. 「나이팅게일」이「루티」를 대체하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폭손(D. F. Foxon) 221-41; 콜월(Colwell) 68-70 참조.   2조단은「공지문」과「나이팅게일」이『서정민요집』의 시적 실험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적하면서, 「나이팅게일」이 시집에 포함된 것은「공지문」이 작성된 시기와 어느 정도 동일하다고 말한다(43-44).   3『서정민요집』의 시집의 시들에 관한 인용은 오웬(W. J. B. Owen)의 편집본을 따른다.   4콜리지가 아니라, 하퍼(McLean Harper)의 분류에 따른“대화시”에 속하는 콜리지의 시는 대부분『서정민요집』출간 이전에 이미 창작되었다. 「이올리안 하프」(“The Eolian Harper”),「 나의 감옥 라임나무 정자」(“This Lime-Tree Bower My Prison”), 「한밤의 서리」(“Frost at Midnight”)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대화시에서 표명되는 시론이나 언어관은 1798년 시집에 반영된다. 물론 콜리지가『문학전기』(Biographia Literaria)에서 워즈워스의 일상적 언어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I

    첫 운문 단락은 풍경에 대한 알레고리적 소묘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대화시인「한밤의 서리」(“Frost at Midnight”)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마찬가지로 화자의 불안감이 노출된다. 네 번에 걸쳐 반복되어 사용되는 “No”는 강조를 넘어서 급진적 거부나 단절의 의미까지 제시한다.

    화자는 석양에 대한 관습적 메타포를 나열하면서 이를 계속 부정한다. 일종의 패러디라고 말할 수 있겠으며, 그 대상은 석양에 대한 감수성 시대의 표현이나 관념 그리고 당대의 “고딕 기제”라고 할 수 있다(Bernstein 341-42; Hopkins 436-41; Enright 489). 당대의 독자들은 콜린즈(William Collins)와 그레이(Thomas Gray)의 관습화된 석양의 표현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화자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기계적 모방이 석양의 본래적 이미지를 탈색하거나 증발시킨다는 것이며, 이와 함께 나이팅게일도 우울함의 담지체로 화석화되어 본래의 활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물의 본성이 잘못된 메타포로 치장되어 왜곡되어버렸다는 의미이다.5

    시의 화자는 “낡고 이끼 낀 다리”(4) 위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서있다. 사상이나 전통의 연결점 혹은 전이지대를 암시하는 다리는, 동시에 다른 곳을 조망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그는 동료들과 교감을 통해 오랜 문학적 관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에 착수한다. 강조되는 것은 문학의 사회성이다. 친구라는 존재는「공지문」에서 암시되듯이 화자와 함께 새로운 시적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에 포함된다. 본논문의 논제인 대화의 사전적 개념에는 “아는 사람들, 사람의 무리, 사회”와 “공개적 논의나 토의”(Oxford English Dictionary 5, 8)가 포함된다는 점은 이러한 문학의 사회적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대화가 친밀성을 함의하면서 차이성을 전제로 하고, 부제에서 표시된 대로「나이팅게일」이 시이면서 동시에 대화라면, 친밀성을 유지하면서 차이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냇물’은 시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화자는 이러한 시적 전통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을 차지하고 관습과 배치되는 요소를 지적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이 추구하려는 시적 이상을 개진하려 한다. 시의 도입부에서는 시각적측면에서 관습적 요소를 수정하려했다면, 이번에는 청각적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차별성에 토대를 둔 새로운 시적 행위가 연출될 수 있는 장을 보다 굳건히 확립시킨다. 이렇게 전통과 창조가 교차하면서, 긴장을 이루는 동적인 고요함이 지속되는 도중에, 갑자기 새로운 사태가 발생한다.

    나이팅게일 소리는 여태껏 고요하던 풍경을 깨뜨린다. 모리스(Morris G. S.)가 콜리지의 대화시의 한 특징으로 지적하는 침묵과 소리가 상호작용을 펼치며, 소리가 명상을 촉발하는 점(66-67)은 이 구절에도 적용될 수 있다. 텅빈 기호 ‘O’는 관습의 허위성을 무화시키는 효율적 표지가 된다. 화자는 자의식적으로 관습적 구절을 반복해봄으로써 오히려 그것의 허구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킨다. ‘자연에 우울한 것은 없어’라는 구절은 논지의 전개에 결정적 전환을 이루면서, 자연에서 관습과 대비되는 새로운 미학을 도출하는 화자의 의지를 표명한다.6 계속되는 일상적 대화체 언어는 인위적 시어와 대비되면서, 이를 적절한 시적 언어로 천명하고 있는「공지문」의 취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시 전체의 주안점은, 「공지문」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자연과 문학 전통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미 확립된 판단 규칙”(3)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공지문」에서 관습화된 규칙은 시적쾌락을 누리는 것에 대한 “가장 극악한 적”(3)으로 비판되고 있다. 시의 산문 각주에서 명시되듯이, 나이팅게일의 속성으로 간주되어온 우울함이라는 특성은 밀턴이 사용했을 당시에는 “극적인”(38) 힘을 가졌지만, 점차로 관례로 굳어져버리게 된다. 적어도 나이팅게일은 인식 주체와의 관련 속에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화자는 나이팅게일과 우울함은 아무런 필연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폭스(Charles James Fox)가 워즈워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시는 “나이팅게일 소리가 우울하다는 잘못된 생각”(The Early Letters 296)을 배격한다는 점이 표현된다. 워즈워스 자신도 윌슨(John Wilson)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친구의 시가 나이팅게일의 진정한 성질에 관한 오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 것에 크게 기여할 것”(The Poetical Works of Samuel Taylor Coleridge 611)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이팅게일이 우울하다는 것은 잘못된 수사나 명명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잘못된 명명행위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최초의 명명행위로 되돌아가, 그 조건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확한 기원을 식별할 수 없기에 가설적 기원이 상정되고, 이에 따라 “밤에 배회하는 어떤 사람”(16)이 최초의 행위자로서 가정된다. 그리고 이 사람이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나이팅게일에 투사시킴으로써, 실제의 “모든 부드러운 소리가 / 자신의 슬픔을 되받아 말하게”(20-21) 한 사람으로 기술된다. 그 후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착상을 그대로 되풀이”(23)함에 따라, 나이팅게일 소리는 아예 우울한 곡조로 굳어져 계속 반복된다고 설명된다. 그렇다면, 나이팅게일에 대한 현재의 문학적 관행은 나이팅게일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이팅게일에 대한 특정한 사람의 주관과 편견에 기반을 둔 비유를 맹목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팅게일의 본질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사물에 자의적으로 반영된 인간의 특정한 이해와 관심사가 문제시된다는 것이다. 화자는 이렇게 고정된 편견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며 오도된 시적 재현의 역사를 산출하게 된 과정에는, 최초의 행위자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21) 부류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개입하였다는 것을 말하면서, 시적 언어의 기원이 인간들 간의 이해관계와 암묵적 순응과 동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교섭과 혼성을 함의하는 복수성에 있음을 시사한다.

    적어도 화자의 관점에서는 나이팅게일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는 자연에서 생동하는 새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효력을 가진다. 자연은 생생한 시적목소리와 비유로 충만하다. 자연은 그 자체가 시적 텍스트인 것이다. 그는 자연속에서 “형상들과 소리들 그리고 움직이는 요소들이 쇄도하고 있음”(27-28)을 경험한다. 다시 말해, 자연은 형태적, 음성적, 통사적 요소에 비견되는 것을 지닌다.7 계속해서 그는 자연에 영혼을 내맡기고, 시적 “명성”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리면, 시인의 명성은 오히려 영원한 자연만큼 영원하게 될 것이고, 그의 시는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 자연처럼 사랑받게 될 것”(33-34)임을 피력한다. 그렇다면, 화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시학에서 주체는, 제라르드(Albert Gerard)가 말하듯이, 대상과의 의도적인 융합을 통하여, 주체에게는 대상이, 대상에게는 주체가 서로의 정립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307-18).8 시적 상상력의 요체는 대상에 자신을 함몰시키고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정립시키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9

    자연의 불멸성에 기반을 둔 시의 명성에 대한 화자의 언급은 부제에서 표시되는 1798년 4월이『서정민요집』출간을 위한 창작과 준비 과정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기임을 감안한다면, 엔라이트(Timothy Enright)의 지적대로, 그 무렵 시인으로서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문학적 명성에 대한 욕망이나 시의 본질에 관한 복잡하고 불안한 심정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493). 그러나 동시에 화자는 자연이 시창작의 모태이면서, 그 자체가 원형적 시라는 사실도 제시한다. 자연은 시인이 산출할 수 있는 모든 시적 목소리와 시각적, 청각적 요소를 담고 있다. 자연은 1798년 시집의「초봄에 쓴 시」(“Lines Written in Early Spring”)에서처럼 “모든 것이 어울려져 있는 곡조”(1)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조율되는 요소들을 만들며,「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yent Marinere”)의 제5부에서처럼 “달콤한 새소리”(351)와 “때로는 뒤섞이기도, 때로는 하나씩 하나씩”(346) 변조되는 조화 속에서 차이와, 차이 속에서의 조화를 산출한다. 화자는 이러한 자연의 시학을 실천하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깊어가는 봄철의 황혼”(36)을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하여 좋은 시를 쓰지 못하게 될 것임을 말한다.

    자연에 대해 진지한 사고를 함으로써 “심원하게”(36)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사람은, 자연의 영향력을 받아 자신을 고양시키게 될 것이며, 시인으로서의 능력을 더욱 기르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잘못된 시인들은 시적 쾌락을 함양시켜주는 자연과 가까이 하기보다는, “무도장이나 외설스런 극장”(37)을 선호한다.10 이들은 조형적 상상력의 공급처인 자연과 단절되어, 전승된 나이팅게일 신화를 맹신하며, 타인의 착상을 그대로 모방하며, 사물의 자연적 본성을 왜곡한 인위적 모습을 그려낸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나이팅게일의 소리는 “필로멜라의 구슬픈 곡조”(39)이어야만 한다.

    5콜리지 자신이 이전에는 이러한 관습에 사로잡혀있었다. 1796년에 창작된「나이팅게일에게」(“To the Nightingale”)은 2년 후에 창작된「나이팅게일」과 반복되는 시상과 모티프를 담고 있지만, 사용되는 메타포는 인습적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콜리지의 당대의 우울파의 시적 관습에 대한 패러디는, 시즈만(Adam Sisman)이 지적하듯이, 바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230). 이후에 콜리지는 1798년 5월에 알폭스덴(Alfoxden)으로「나이팅게일」을 부치면서 자신의 시에 대한 장난기어린 졸시(doggerel)를 동봉한다. 가벼운 어조로 아무렇게나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워즈워스에게 자신의 “새의 가치”(4)를 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6우울한 새는 밀턴의“Il Penseroso”에 있는“Sweet bird, that shunn’st the noise of folly, / Most musical, most melancholy”(61-62)라는 구절에서 나타난다.   7자연을 읽을 수 있는 언어로 간주하는 콜리지의 생각은 버클리(George Berkeley)의 영향이다. “자연에 있는 신성한 가시적 언어를 봄으로써 신의 존재를 알 수 있다”(Magnuson 37)는 것이다. 콜리지는 사우디(Robert Southey)에게 부친 편지에서「나의 감옥 라임나무 정자」(“This Lime-Tree Bower My Prison”)의 “이 드넓은 풍경에서”라는 구절과 관련된 설명에서 자신이 버클리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Letters 1, 335; Morris 51-55).「 한밤의 서리」(“Frost at Midnight”)에서 콜리지는 아들인 하틀리가 신이 말하는 “그 영원한 언어로 이해되는 / 아름다운 형상과 소리를 / 보고 듣게” (58-61) 되기를 바란다. 콜리지의 기독교적 성향을 ‘대화’의 개념에 적용시키면서, 모리스(G. S. Morris)는 콜리지에게서 대화는 “언어로서의 자연과 시적 언어에 의해 매개되는 인간과 신성과의 성찬적 행위(sacramental act)”라고 설명한다(52). 버클리는 콜리지가「이올리안 하프」에서 “우리들 내면과 외부의 하나의 생명”(26)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단일 생명’(One life)론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으며, 콜리지의 이러한 성향은 워즈워스에게 옮겨져「틴턴사원」의 “살아있는 영혼”(47),“ 고결한 사색의 / 기쁨으로 나를 뒤  흔드는 존재”(95-96)를 포함하는 많은 구절에서 나타난다.   8‘대화시’로 명명되는 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체와 대상의 융합과 분리라는 현상을 콜리지 자신은 “구심성”과 “원심성”이라는 천문학 메타포로 설명하면서, 주체의 인식행위는 동시에 두 방향을 가진다고 말한다(1:188). 제라르드는 이를 심장확장적(diastolic)과 심장수축적(systolic)으로 달리 설명하면서, 주체는 의도적으로 대상과의 융합을 통하여 자신을 재정립하면서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307-18).   9콜리지는『시학 혹은 예술에 관하여』(“On Poesy or Art”)에서 예술의 기능을 “자연과 인간 간의 여성중개인이며 조정자”로서 설명한다. 「나이팅게일」은 이후에 콜리지가 본격적으로 이론화시키는 상상력과 시어에 관한 의미심장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 영혼을 자연에 내맡긴다는 것은 같은 시집의「충고와 응답」(“Expostulation and Reply”)에서 표현되는 “현명한 수동성”(24)과 상통하며, 외부의 힘에 대해 단순히 수동적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자연의 영혼을 의식적으로 인식해야만”(Burwick 177)하는 것을 의미한다. 번스타인(Gene M. Bernstein)은 고정된 사물을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써 자아가 사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콜리지의 제 2 상상력(the secondary imagination)으로 설명한다(256).   10이 구절은『실낙원』(Paradise Lost) 제 4권 767행에서 770행에 나타나는 밀턴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에서 화자는 자신을 밀턴과 같은 새로운 시적 기원으로 자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밀턴의 시적 계승자이기를 욕망하는 모순적 복합성을 보여준다. 즉, 반항적 아들과 창조적 아버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 한다. 「나이팅게일」에는 밀턴의「리시다스」(“Lycidas”),『 코무스』(Comus),『 실낙원』의 구절이 문학적 인유의 기법으로 지시되며, 밀턴에 대한 계승과 전복이 복잡하게 표출되고 있다.

    II

    바람직한 시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나이팅게일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고있다. 그들은 관습화된 전통에서 벗어나, “다른 가르침”(a different lore)(41)을 학습한다. “Teaching”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원 “Lehre”에서 유래한 “lore”는 문자적 지식보다는 구어성의 특징이 있으며, 친밀한 사람들 간에 견지되는 전통이나 지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different”에 내포된 차이성과 결합하여, 전통을 살피고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시학 원리를 모색한다는 수정주의 원칙과 연결된다. 이러한 지식 체계는 “사랑과 즐거움으로 / 항상 충만한 자연의 달콤한 목소리”(41-42)를 결코 모독하지 않는다. 이것은「공지문」에서 천명하는 “시적 쾌락”(3)이라는 시창작 목표와 부합되며, 또한 제도나 관습이 아니라 자연스런 본연의 감정으로 대상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것과도 상통한다. “다른 가르침”은 나이팅게일을 정당하게 평가하여 원래의 활기찬 속성을 인정하는 준거가 되며 관습적 언어를 벗어나 새로운 시어의 원칙을 형성시키는 토대가 된다.

    화자는 나이팅게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를 활용하며, 이전과는 활기찬 정서를 서술한다. 동사의 사용은 주목을 끈다. ‘떼로 모이다,’ ‘황급히 움직이다,’ ‘곤두박질하다’로 이어지는 동사는 ‘흥에 겨운’ 나이팅게일의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표현 대상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러한 새로운 낱말은 자의성이라는 언어의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내던지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창의적 언어의 사용으로 세계와 살아있는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며, 실제로 이러한 언어는 나이팅게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역동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소리가 갖는 리듬까지 전달한다. 남성으로 표시된 나이팅게일이 쾌락의 담지체이며, 성적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발산하다는 표현은 문학적 관습을 뒤집는 또 다른 예시이다. 전통적으로 나이팅게일 메타포는 테레우스(Tereus)에게 성적 희생물이 되는 여성인 필로멜라로 해석되었다.

    나이팅게일이 그가 배웠다고 주장하는 “다른 가르침”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지를 입증한 다음, 시의 논지는 나이팅게일이 즐거운 새라는 해석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나이팅게일들이 많이 거주하는 장소가 제시된다. 다름 아닌, 이제 “위대한 영주가 살지 않는”(51) 성곽 근처 숲으로서, “잘 다듬어진 길이 끊겨”(53), 수많은 나이팅게일이 뒤섞여 놀고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나이팅게일은,

    절대적 권위가 사라진 이곳에서 모든 목소리는 제약을 벗어난다. 수많은 소리가 다양한 곳에서 나와 서로 소통하며 공존한다. 「노수부의 노래」5부의 “감미로운 새 소리”(351)의 현상학처럼, 음의 조화가 발생하며, 대화의 양식을 이루며 여러선율이 서로를 유발시키면서 뒤섞인다. 모음운, 자음운, 두운, 통사적 반복은 음성적 자질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하여 나이팅게일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으며, 새가 어떠한 방식으로 문자로 적힐 수 있는 지를 암시한다. 흥겨운 자연은 동시에, 랜덜(Fred V. Randel)이 말하듯, “논쟁의 장”(35)이기도 하다. 소리의 집합적 조화 속에서, 두드러지는 한 소리도 있다. 조화 속에서 다양성을 실현하는 화음에서, 한 요소가 즐거운 변화를 유발하면서, 차이성에 기반을 둔 또 다른 행위가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음의 총체성을 더욱 완성시킬 수 있는 이러한 열림의 장에서 화자가 표현하는 어떤 불안감이며, 이러한 불안감은 1798년 시집에서 개별 시들 간의 대화의 양식과 워즈워스와 콜리지간의 문학적 협업의 과정에 개입되는 복합적 정서를 이해하는 단서를 준다.

    시인이 나이팅게일의 다층적이고 유쾌한 교환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새에 대한 묘사는, 자기도 모르게, 새의 사실성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눈의 메타포는 화자가 계속해서 밀턴의 존재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암시한다. 동시에 ‘눈을 감는다면’은 사물의 해석에서 맹목적인 주관적 해석의 세계로 빠져버리는 위험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바리(Peter Barry)가 말하는 대로, 이러한 관점에서 밤에 배회하는 처량한 인물은 “투사된, 어느 정도는 부정되는” (613) 화자 자신일 수도 있다. ‘거의 / 잊을 것이다’는 자기기만이나 착각이 얼마나 쉽게 사물을 오도할 수 있는 지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대상인 나이팅게일의 “그 빛나는, 빛나는 눈들, 빛나고 환한눈”(66)을 직시하며, 이들의 생동감과 열정을 파악하려 한다.

    흥에 겨운 나이팅게일이라는 특성을 보강하는 또 다른 예시는 “아주 상냥한 여성”(69)이다. 이 인물은 “숲에 있는 자연이상의 무엇에 / 서약하고 헌신한 숙녀”(72-73)로서, 경험적 세계와 새로운 존재의 질서를 매개하는 “사제적” (Holstein 217) 성격을 가지는 시인의 표상으로서 자연 속에서 자신의 미학을 헌신적으로 추구한다. 쉴러(Frederick Schiller)가 말하듯, “감각적 기호로서는 표  상할 수도, 번역할 수도 없는”(208) 것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시적 사명을 헌신적으로 추구하는 그녀의 모습은「틴턴사원」의 화자인 ‘나’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이 여성은 민감한 시적 능력으로 자연의 복합적 양태를 파악하며, 나이팅게일의 “모든 곡조”(74)를 이해한다. 「노수부의 노래」3부에서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물체의 움직임을 성급하게 명명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노수부처럼, 그녀도 나이팅게일의 움직임을 아주 조심스럽게 관찰한다. 이 특이한 여성은 시의 화자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존재이다. 그녀는 달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전이기 중에서 “한 순간의 침묵”(77)을 들을 수 있는 존재이다.11 이 장면은 산문 각주에서 말해지는 단순한 서술과 대비되는 극적인 속성의 언어를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딕스타인(Morris Dickstein)은 “위낸더소년”의 일화에서, 소년과 올빼미의 상호교환이 정지된 한 순간을 포착하는 워즈워스의 시적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379-80). 「나이팅게일」에서의 이 여성은 콜리지보다는 오히려 워즈워스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달의 존재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나이팅게일의 심리적 충동을 조정하여, 노래를 하거나, 하지 않게 하는, 어떤 시적원칙으로 볼 수 있다. 나이팅게일에 대한 그녀의 관찰은 “자연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여지를 남겨주지만 초자연적 계시적 상태로 전이하기보다는 사실주의의 한 자락에 닿아있다. 이제 나이팅게일은 신화에 매몰되어 있는 음울한 새가 아니라 “고개를 흔들대며 취해 휘청휘청 걷는”(86) 쾌활하고, 우스꽝스런, 실제로 접하는 새로 완전히 다시 그려진다. 이렇게 대상의 감각적 속성과 열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 창작에서 중시하는 것은 콜리지가 밀턴의 시의 특색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12

    11콜리지는 이 ‘상냥한 여성’이 밤에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주의 깊게 경청하여 달빛이 가려지는 어둠속에서 침묵의 휴지기가 일어나는 것을 인식한다고 말한다(Dorothy  Wordsworth 279, 298).   12콜리지는「브리스톨에서 행한 셰익스피어와 밀턴 강좌」(“Lectures on Shakespeare and Milton at Bristol”)에서 밀턴을 논하면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진리를 도출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감각적 이미지”(Lectures and Notes, 459)라고 말한다.

    III

    이제 화자가 문학적 관행을 탐색하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표출하는 불안감에 내포된 문제점을 살펴보려한다. 나이팅게일을 우울한 새로 서술하는 것은 「사색하는 사람」(“Il Penseroso”)의 구절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저자는, 산문 각주에서 명시되듯이, 화자에게 성경에 비견되는 권위를 갖는 인물로 표현되는 밀턴이기도 하다.

    이처럼 굳이 각주까지 달면서, 밀턴의 실명을 거론하고, 밀턴과 그의 시에 등장하는 우울한 인물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며, 인용된 ‘가장 음악적이고, 가장 우울한’이라는 구절의 ‘극적 속성’을 칭찬하면서 이를 ‘단순한 묘사’와는 대비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1798년 8월 7일에『안티-자코벵 잡지와 비평』(Anti-Jacobin Magazine and Review)에 실린 길레이(James Gillray)의「새로운 도덕」(“The New Morality”)이란 제목의 만평과 시에서 콜리지, 워즈워스, 램(Charles Lamb), 사우디(Robert Southey), 로이드(Charles Lloyd)는 “콜리지와 그의 무리”로 분류되면서 “조화와 사랑으로 부드럽게 장단을 맞추는 . . . 다섯 명의 음유시인들”이라고 조롱된다(Roe 76; Johnston 360-61과 그림 참조). 존스톤은 ‘조화와 사랑’ ‘방랑’을 사실상 이들의 시적경향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434), 사실 이러한 설명은「나이팅게일」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들은 1790년대의 정치상황에서 영국의 자코뱅으로 분류되어 흔히 무신론자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화자의 자기방어적인 자세는 문학작품이 사회적 동의나 승인의 절차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직면하게 되는 도덕적 비난이나 나아가 심할경우 법률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산문 각주는 문학 작품에 대한 사회적 처벌기제를 피하는 동시에, 이러한 기제로부터 승인을 받으려는 저자의 책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3 동시에 기원을 텍스트성에 편입시킴으로써, 인용되는 저자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시적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보이며, 화자 자신을 마찬가지로 배회자로 기술함으로써 그 자신이 새로운 시적기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관점을 달리 하면 밀턴은 우울한 속성을 나이팅게일에 부여한 최초의 시인이아니라, 이미 우울한 나이팅게일이라는 문학적 비유를 차용하여 반복한 사람에 불과할 수 있다.

    시적 전통을 살피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시적 언어의 본성에 내재한 문제점을 자의식적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연에 우울한 것은 없어”(15)라는 구절은 자연의 타자성과 함께 이러한 자연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필연적인 비유화를 제시한다. 시창작의 과정에 개입되는 자연의 텍스트화는 불가피하게 자연의 충만함을 손상하거나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1798년 시집의「사태의 역전」(“The Tables Turned”)에서 “인간의 주제넘은 지력이 / 사물의 아름다운 형태를 왜곡시키 며”(27-27), 분석을 위해 사물을 “죽여 버리는”(27) 것을 지적하는 것은 이것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14

    이러한 사실은「나이팅게일」이 시어의 비유적 속성을 중요한 논제로 다룬다는 것을 제시한다. 최초의 시어도 결국에는 비유라는 사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식의 주체는 자연물에 대해 개인적 감정을 투사하는 감상적 오류(pathetic fallacy)를 범한다는 것이다. 니이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허위에 관하여」(“On Truth and Lie in an Extra Moral Sense”)에서 모든 개념은 비동일성을 동일화시키고 이면의 비동일성을 가려버리는 책략이라는 말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는 않다. 자연의 인식에는 비유화라는 번역의 매개가 연적이며, 어떠한 시적 언어도 사물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없으며, 인식 주체의 인상이나 반응, 다시 말해 해석만을 첨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밤에 배회하는 어떤 사람”(16)이 자신의 슬픈 감정을 나이팅게일에게 투사시켜 대상을 우울한 새로 만들어버렸다는 화자의 비판이 정작 자신에게로 향한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될까? 나이팅게일이 쾌활한 새라는 화자의 주장은 이전의 관행을 뒤집고 있지만 과연 절대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화자의 주장은 나이팅게일이 우울한 새라는것은 “한심한” 해석을 뒤집는 또 다른 해석에 불과하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터무니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 아닌지? 결국 나이팅게일은 메타포라는 사실만이 참일 따름이다. 더구나 마지막 운문단락에서 “연상”(109)을 통한 새로운 인식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화자의 입장이 상상력을 통해 전적으로 새롭게 나이팅게일이라는 대상을 창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온 대상에 새로운 시적 메타포를 적용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하겠다는 수정주의적 성격을 가진다는 입장은 더욱 강화된다.15

    산문 각주의 존재는 1798년 시집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인 저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본문이 아닌 여백에, 운문이 아닌 산문의 형태를 통해서이지만, 느닷없이 “저자”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은, 화자와 저자를 분리시킴으로써, 언술행위에 대한 화자의 권위를 훼손시키며, 동시에 저자가 자신의 작품의 소유권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산문 각주의 저자는 1798년『서정민요집』의「공지문」에 등장하여 자신이 시집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실체와 상동적 관계를 가진다. 그는 일반 명사가 아닌, 고유명사 저자이다. 워즈워스와 콜리지는 문학적 협업의 과정에서 그들 중 어느 한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를 저자로 밝히는 대신에, 의도적으로 저자라는 독립된 실체를 내세웠고, 그가 통일적 저자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산문 각주의 저자라는 인물은 콜리지로 확정시킬 수 없는, 1798년 시집의 실험적 정신과 문학적 협업의 과정을 감안하여, 양자의 협업과정에서 생겨나는 차별과 배제  그리고 융합의 원칙을 포괄할 수 있는, 정확히 콜리지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워즈워스도 아닌 독립된 실체라고 볼 수 있다. 루서가 “산문 각주는 시의 퍼스나가 밀턴과 마찬가지로 콜리지가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93)라고 말하는 것은 문맥상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논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고유명사 저자는 두 시인들 간의 완벽한 조화만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산문 각주에서 비판되는‘단순한 묘사’는 워즈워스가 이전에 출판한『묘사적 스케치』(Descriptive Sketches)나 존스톤이“줄지어있는 언어로 된 그림엽서에 불과” (114-15)하다고 비판하는『저녁 산보』(An Evening Walk)를 겨냥하고 있으며, 콜리지는 워즈워스의 단순한 풍경 묘사와 대비되는 자신의 대화시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서로간의 불안감이 내재하고 있지만「나이팅게일」에서는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목소리가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져 있어서 시의 저자는 콜리지만큼이나 워즈워스이거나, 혹은 워즈워스가 아닌 만큼 콜리지도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밤에 배회하는 “처량한” 인물은 1798년 시집에서 바로 앞에 위치한 워즈워스의 시로 분류되는「주목나무」(“Lines Left upon a Seat in a Yew-tree”)의 불운한 인물과 상통한다.16 자연에서 시적 불멸성을 추구하는 시상은 워즈워스의「폐허가 된 오두막」(“Ruined Cottage”)의 화자나「도붓장수」(“The Pedlar”)에서 그 원형이 제시된다. 그는 또한 골드버그(Brian Goldberg)가 말하는 대로, 같은 시집속의「충고와 응답」,「 사태의 역전」을 직접 지시하기도 한다(335). 또한 마지막 운문단락에서 자연과 감하는 아들은 워즈워스의 시적 이상의 전형이기도 하다. 도시의 무도회장이나 극장에서 자연과 단절되어 들어본 적도 없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시로서 창작하는 시인은 워즈워스가 비판하는 시인관이자, 「나의 감옥 라임나무 정자」(“This Lime-Tree Bower My Prison”)에서 찰즈 램((Charles Lamb)을 통해 바라보는 이전의 콜리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연과의 이상적인 대화의 가능성에 화자의 의문은 마지막 운문단락에서 자신의 한계를 노출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이제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던 시적 소요를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그는 아들에게서 대리 만족을 구하려 한다. 아이의 언어는 나이팅게일의 언어와 다르지만 아이와 나이팅게일간의 제휴 관계가 명백히 설정된다.

    아이의 언어도 대상을 훼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혀짤배기소리’는 사물을 음성적 기호로 결합시키는 일반적 방식에서 일탈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자체가 언어의 필연적 속성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나이팅게일의 형상을 취함으로써 사물과 이것의 본모습을 치환시켜버리는 시적언어간의 거리를 좁히는 실체로 묘사된다. 그가 나이팅게일을 들으라고 간청하는 것은 화자가 “우울한” 이라는 관습적 비유와는 대조적인 “즐거운”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으라고 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여 아이가 자연과 소통하는 한 사례를 기억해 낸다. 시적 전이의 발생을 암시하는 달이 등장하며, 무엇보다도 달과 소통하는 아이는 대상과 주체, 사물과 언어 간의 조화를 예시한다. 버윅(Frederick Burwick)이 지적하듯이, 아이는 밤에 회하는 “처량한 사람”(19)과는 달리 “자연에서 기쁨을 느끼고 달을 보고 웃는”(177) 존재이다. 이런 경우, 아이는 “자연의 사물”(Letters 1: 352)로서, 이전 운문단락에서 서술되는 눈을 “반짝거리는”(67) 나이팅게일과 자연에서 “침묵의 정지”(77)를 듣는 “상냥한 여성”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게 된다.

    화자는 자신을 아들과 공감하는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동시에 그의 언어와는 다른 양태의 언어를 가정하면서, 이러한 언어를 통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아이나 나이팅게일과는 달리, 화자는 자연에서 소외되었으며, 완벽히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가 어떻게 자연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나이팅게일이나, 자연과의 공감상태에서의 아이의 언어는, 일반적인 인간 언어의 형식을 벗어난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차이를 말해주는 마지막 운문 단락은 모호하다. ‘그의 어린 시절’이라는 특이한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아버지는 아들과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들의 미래를 결코 확신하지 못한다. ‘손을 귀에다 대고’ 나이팅게일의 형태를 모방하는 아들의 모습을 서술하는 화자의 태도에는 긍정적 어조가 보이지만, 그 경우에도 아이는 자연의 허울뿐인 모방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1798년 시집에 실린「아버지들을 위한 일화」(“Anecdote for Fathers”)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염려는 자신의 관점과 성향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이어진다.17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처럼 사랑받는”(34) 시를 창작하여 “자연의 불멸성”(31)을 획득하는 시인은 화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시론과 시어의 요체를 파악하는 핵심적 단서가 된다. 다름 아닌, 언어와 대상이 하나로 일치하는 이상적 시어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콜리지는 『셰익스피어 비평』(Shakespearean Criticism)에서 세익스피어의 언어는 “단순히 사물의 차가운 개념을 회상시키는것이 아니라 사물의 실체를 표현”(1:185)한다고 설명한다. 낱말과 사물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시어를 창조하려는 그의 바램은 고드윈(William Godwin)에게 1800년 9월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낱말과 사물간의 오랜 대립을 없애고, 낱말을 사물로 . . . 끌어올리려”(Letters 1:353)한다고 밝히는 것에서도 표현된다. 이렇게 보면, 나이팅게일은 언어를 사물화하고, 낱말을 그것이 재현시키려는 실체와 일치시키려는 시적 의도가 펼쳐지는 장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의도가 결코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자 자신은 실패와 한계를 자인하지만, 나이팅게일과 화자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이상적 여성 화자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 표현되고, 화자의 아들 또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산문이 각주의 형태로서 시와 함께 병렬되는 현상은 나이팅게일을 통해, 그리고 앞서「공지문」에서 주장한대로, 새로운 시적 언어의 형태 주장되는 “대화체 언어”(3)의 성격에 대한 암시를 준다.18 콜리지가 1796년 12월 17일에 실월(John Thelwall)에 보낸 편지나, 『문학전기』의 특히 1장, 14장, 17장에는 시어에 관한 상세한 논의가 펼쳐진다. 『문학전기』에서의 논지는 시어에 관해 분명히 워즈워스와의 이견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관심사를 벗어난다. 그렇지만 산문 각주는 적합한 시어의 성격이 적어도 운문이나 산문이라는 영역의 구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며, 적절한 시어는 단순한 서술에 치중하기 보다는, 극적인, 다시 말해 대화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1798년 시집의「공지문」에서는 “인간의 감정, 인물, 인간사를 자연스럽게 묘사”(4)하는 것을 시의 본질로 제시한다. 수사적 기교에 치중하기 보다는 인간의 본연의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시어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19

    「나이팅게일」의 화자는 자연에 내재하는 “즐거움”을 찾으려 시적 여정을 시작한다. 시 창작에 관해, 시어에 대해, 새로운 판단과 실천의 준거로서 “다른 가르침”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쾌활한 새로서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로운 메타포를 시창작을 통해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이러한 쾌락의 원칙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또한 사물과 주체, 대상과 기호 간의 완벽한 일치와 소통을 입증하는 시어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인한다. 그는 나이팅게일들 간의 역동적이며 유쾌한 대화를 외부에서 지켜볼 뿐이며, 이상적 자아의 대리인으로서 자연과 소통하는 한 여성을 설정하거나 아들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결핍을 보상하려 한다. 어떻게 보면 “다른 가르침”을 주장하는 화자의 시적 행위는 나이팅게일을 새로운 존재로 확립하기보다는, 연상이라는 인식 기제를 토대로 대상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뿐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지만, 「나이팅게일」은 화자를 가식을 벗어나 친구나 가족의 일원인 소박한 일  상인으로 설정하여, 그가 겪었거나 경험하고 있는 일이나 가족사를 시적 소재로 활용한다. 이러한 시적 소재는 대화체 언어와 잘 어울려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화자의 시적 언어는 같은 시집에 실린 시들 뿐만 아니라, 시집의 경계를 벗어나 이전의 작품들과도 대화를 진행한다. 대화의 개념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시어에만 국한될 수는 복합성을 띄며, 시인으로서의 콜리지의 특이한 사유방식과도 연관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대화의 논제는 1798년 시집이 추구하는 시적실험이 잘못된 문학적 관습에서 탈피하고, 계승된 시적 전통을 면밀히 검토하여,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시적특성을 되살려내어, 새로운 시적 활력을 창출하려는 사실을 말해준다.

    13시에 대한 산문 각주의 성격에 관해서는, 먹파랜드(Thomas McFarland)가 말하듯, “낭만주의는 모든 경계를 넘쳐흐르는 것을 함의”하면서, “시와 산문, 영감과 비평을 뒤섞고 융합”(228-29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휠러(Kathleen Wheeler)는, 「이올리안 하프」(“The Eolian Harp”)를 예시하면서, 산문 각주가 “시 구조상의 모호함과 복잡함”(90)을 표시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산문 각주에 직접 등장하여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는 점도 중시되어야 한다.   14「사태의 역전」(“The Tables Turned”)은 워즈워스의 시로 분류된다. 그러나 짝을 이루는「충고와 응답」과 함께, 「나이팅게일」과 동일한 시적 내용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저자가 콜리지인가? 워즈워스인가? 라는 질문보다는 이들이 모두 통일적인 저자의 기능을 받으며, 같은 시집에 실려 있다는 것이 보다 중요한 사실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15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테일러(Anya Taylor)는「나이팅게일」이 전반적으로 자연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수동성을 강조하며, 마지막 운문단락에서 화자의 아들(하틀리 콜리지)의 꿈이 “의식의 . . . 미지의 영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은 연상주의의 전제를 깨뜨린다고 주장한다(38).   16「주목나무」텍스트의 불안정성은 저자의 불확정으로 이어진다. 이 시에서 첫 번째 운문단락과 두 번째 운문단락은 단절에 가까운 전이가 일어나고 있으며, 두 번째 단락에서 등장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이전 운문단락에서의 불운한 인물의 문제점을 기독교적 사랑에 가까운 원칙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논지는 당시의 콜리지의 사고에 훨씬 가깝다. 워즈워스와 콜리지간의 시적 교환을 구체적 예시를 통해 보여주는 뉴린(Lucy Newlyn)의 “합성 인물”(45)론은 나이팅게일과 보다 넓게는『서정민요집』의 특이한 저자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에 활용될 수 있다.   17번스타인(Gene M. Bernstein)은 대화시의 결말에서 주체와 대상의 분리는 주체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한다(250).   18대화시로 분류되는「은거지를 떠난 것에 대한 회상」(“Reflections on Having Left a Place of Retirement”)에서 콜리지는 로마시인 호라티우스(Horace)의『풍자』(Satires)에 나오는 구절인 “Sermoni propriora”[more appropriate for a sermon]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시를 “아마도 시보다는 시와 대중연설 간의 어떤 중간물”이며, “일부는 생동감 있는 산문이 될 정도까지”의도하고 있음을 말한다(Magnuson, “The‘Conversation’ Poems”32; Wu 453). 대화체와 산문을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19콜리지의 밀턴에 대한 해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맥로린(Elizabeth T. McLaughlin) 562-64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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