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trayal of Love, Trauma Narrative and Subjectivity Formation: Toni Morrison’s A Mercy

사랑의 배반, 트라우마 서사와 주체 형성 ―토니 모리슨의『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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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oni Morrison’s ninth novel A Mercy delves into the colonial American history of the seventeenth century when Europeans began to migrate to the New World and when the first slaves were brought to Virginia. Morrison presents a diverse group of people such as white Europeans, an American Indian, a free black man, indentured servants, and slaves from Africa in order to explore the subjects of ownership, freedom and racism. She emphasizes the fact that most of the Europeans who came to America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were the people who were thrown out from the society such as felons, prostitutes, servants and children. By portraying how these castaways tried to settle in a new environment surrounded by unknown dangers and challenges, Morrison demystifies and reconstructs the myth of the birth of America as a nation state. In continuation of Morrison’s writings about love and the betrayal of love, her novel A Mercy explores the subjects of trauma, memory and subjectivity by choosing the topic of motherly love and its betrayal which she dealt with poignantly in Beloved. The female protagonist, Florens, is given away by her mother in partial payment of debt incurred by the owner of Florens’s mother. The traumatic memory of Florens’s separation from her mother shapes Florence’s character. She has to revisit the site of the original traumatic experiences of being given up by her mother in order to reconstruct her fragmented memory and past. The recurring dream of the traumatic incident that takes hold of Florens can be explained by the trauma theory of Freud, Cathy Caruth, Suzette Henke, and Judith Herman. The paper explores the self journey of Florens in which she faces the traumatic past and comprehends its meaning which enables her to construct her subjectivity by understanding the true meaning of being free and of owning oneself. In particular, it demonstrates how the process of writing a confession, a story about one’s history, enables one to reclaim the traumatic experience and to locate it in the narrative memory.


  • KEYWORD

    Trauma , Toni Morrison , A Mercy , Migration , Subjectivity , Racism

  • I. 서론

    토니 모리슨의 아홉 번째 소설『자비』(A Mercy, 2008)는 미국 건국 이전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17세기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이주민들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면서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해나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루었던 작가의 이전 소설과 달리 모리슨은 이 소설에서 인종적 범주를 뛰어 넘어 자유와 종속, 주체성의 문제를 천착하기 위해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남성과 여성, 노예무역의 희생자인 아프리카 흑인노예, 자유 흑인, 아메리칸 인디언, 백인 계약 노동자등을 등장인물로 설정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인종차별주의가 제도화되기 이전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Brophy-Warren 5). 아프리카 노예들이 유입되기 전후 식민지에서는 백인 남녀 계약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착취가 만연했고 백인 하인들은 흑인노예처럼 주인에게 속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베이컨 반란(Bacon’s Rebellion)이후 백인들을 흑인들과 분리하여 보호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인종차별주의에 근거한 노예제도가 제도화되었다.1 모리슨은 17세기 말 계약노동제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승선 명단에 있는 유럽이주자들의 80퍼센트가 자신의 직업을 하인이라 기록했고, 이들은 영국사회가 원치 않은 범죄자, 창녀, 그리고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역사 기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집필과정을 설명했다(Nance 47). 다시 말해 모리슨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추방당한 이주민들을 소설의 중심에 위치시켜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그들의 여정을 재현함으로써 백인 중심의 미국 건국 신화를 탈신비화하고 주변적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토크빌(Alexis Tocqueville)에 의하면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신봉하는 청교도들이 민주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세운 국가이며 신대륙에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라고 주장했다(15-28). 토크빌로 대표되는 이와 같은 건국 신화는 국가로서의 통일성을 위해 잔인한 폭력과 정복의 역사를 삭제해버린 “망각의 서사”(a forgetful narrative)라고 베다드(Ali Behdad)는 주장한다(7). 따라서 캐시 웨그너(Cathy Wagner)는 모리슨의『자비』가 인종과 젠더, 계층에 근거하여 자행된 무자비한 착취를 무시한 채 미국 건국계획을 찬미하는 성찰적이지 못한 애국주의를 보충하고 균형 잡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91).

    모리슨은 2006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최된“이방인의 집”(The Foreigner’s Home) 전시회 개회사에서 이주와 이방인의 문제를 강조했다. 이주와 이민, 추방에 따른 고통의 문제를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모리슨은 이주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예 이주 이후에 이루어진 멕시코인들의 미국으로의 이동, 아프리카인과 아랍인들의 유럽으로의 이주, 그리고 중국인들의 도시로의 이동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고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모리슨은 이주민들이 낯선 정착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적응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2 또한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고국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주체의 문제는 시민권 개념을 넘어서 낯선 것을 정의하는 문제로 확장된다고 역설했다. 모리슨에 의하면 이방인 개념은 안전과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토지를 빼앗으려는 백인 기득권층에 의해 구축되었고, 이것은 이른바 국가적 병적 현상을 총체적으로 지칭하게 되었다.3 모리슨의『자비』는 백인과 흑인,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들 간의 인종적, 계층적 갈등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17세기 신대륙에서 백인 헤게모니가 구축되는 과정을 재현한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와 정착은 가족 관계의 분열과 파괴를 수반하며, 이것은 곧 사랑의 단절과 상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단절은 이주에 수반되는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 된다. 작가는『자비』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사랑, 또는 사랑의 배반을 그린다. 모리슨은『러브』(Love)에서 자신의 소설이 전반적으로 사랑보다는 사랑의 배반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사랑은 날씨와 같다. 그리고 사랑의 배반은 그 사랑을 쪼개어 가르고 드러내는 번개와 같다”(x)라고 말한다. 『빌러비드』(Beloved)는 노예제도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 아이를 살해한 어머니의 사랑과 그 모순을 그렸고, 『자비』역시 딸을 보호하기 위해 포기하는 어머니와 버림 받은 딸의 트라우마를 재현한다.4 더 나아가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부모와 사회에 의해 버림받은 자들이며, 소설은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이들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욕망을 규명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주체를 다루고있다.

    캐시 카루스(Cathy Caruth)는 트라우마가5 개인이 경험한 과거의 파괴적이고 원초적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당시 인지하지 못해 동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가 뒤늦게 자각하게 되는 것이며 생존자는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신적 외상은 불시에 경험되기 때문에 악몽이나 플래쉬백(flashback)을 통해 생존자에게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의식되지 않는다(Unclaimed Experience 4). 프로이트는『쾌락원칙을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예기치 못한 외상적 위기 상황을 무방비상태에서 조우하게 됨으로써 느끼는 정서를 경악(fright)이라 정의한다. 그는 불안(anxiety)과 경악(fright)을 구분하면서 불안은 위험 대상을 모를지라도 위험을 예측하고 그것에 대비한 상태이고, 경악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위험에 직면했을 때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6). 프로이트는 환자가 외상적 사건을 반복해 경험하는 것은 외상의 원인이 된 부재했던 두려움을 다시 조성함으로써 자극을 통제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26). 카루스에 의하면 외상으로 남은 사건은 기억 속에 정상적으로 암호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며, 따라서 이전 지식체계 안에 자리매김할 수 없다. 또한 이해되지 못한 사건은 완성된 과거의 이야기 안에 흡수될 수 있는“서사적 기억”(narrative memory)6이 될 수 없다. 플래쉬 백을 통해 상기되는 역사는 당시 그 사건이 충분히 경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재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자리매김되지 못한 역사이다(Trauma 153). 따라서 그녀는“상처받은 기억은 감당할 수 없는 경험의 소화되지 않은 파편들로서 그것은 기존의 정신체계와 통합되어 서사적 언어로 변형될 필요가 있다”(176)고 주장한다. 즉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말하기/ 글쓰기는 상징질서 내에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내 것으로 소유되지 않은 경험”(unclaimed experience)을 서사적 기억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다.

    본 논문은 식민지 시대 초기 대부분의 정착자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 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들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주체형성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아프리카 노예였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플로렌스(Florens)의 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머니는 말없이 정지된 이미지로 남아있다. 플로렌스 기억 속의 어머니는 무엇인가 말하려 하지만 딸은 어머니의 소리 없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상실한 플로렌스는 대장장이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집착과 편집증적 사랑은 그녀를 정신적 노예상태에 갇히게 한다. 플로렌스는 그의 사랑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자유와 종속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며 어머니가 딸에게 전해주려 했던 메시지도 바로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플로렌스의 고백이며 그녀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 억압된 트라우마와 대면하고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며 이 과정을 통해 잃었던 주체성을 회복한다.

    1베이컨 반란은 선거권이 없는 가난한 소작농과 식민지의 부유한 엘리트 계층 간의 갈등, 세금을 포함한 식민정책에 대한 소작농의 지속적인 불만, 그리고 인디언으로부터 땅을 빼앗으려는 정착인들의 인디언에 대한 증오 등 다양한 사회 정치적 요인이 복합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백인 계층 간의 갈등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인종차별에 근거한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제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백인 지배층은 백인 계약노동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흑인 노예들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이로써 백인 계층 간의 갈등이 완화되었고 가난한 백인들도 흑인노예를 통제함으로써 식민지 특권계층의 일부라는 의식을 갖게되었다(Middleton and Lombard 160-67). 1676년 나다니엘 베이컨(Nathaniel Bacon)은 인디언으로부터 식민지 정착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의용군을 모집했다. 인디언 토벌 작전은 인디언들을 말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엘리트 계층에 대한 하층계급 백인들의 점증하는 불만을 인디언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자행되었다. 백인 계약노동자, 흑인 노예,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들로 구성된 의용군들은 토지를 소유한 엘리트 계층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인디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버지니아 주지사 윌리엄 버클리(William Berkeley)를 비롯한 버지니아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베이컨은 버클리에 의해 반역죄로 기소되었다. 결국 베이컨을 포함한 반란군은 이에 저항해 버클리를 쫓아내고 제임스타운을 불태웠다. 그러나 버클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반란군은 진압되었다(Takaki 60-68). 모리슨에게 이 역사적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베이컨 반란이 진압된 뒤 아프리카 사람들을 유럽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분리해 취급하는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자비』에서 이 사건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법적으로 제도화되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흑인들의 계약 노동과 집회, 여행을 금지하며, 어떤 이유로든 흑인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백인에게 주고, 불구가 되거나 죽은 노예에 대해 보상해 줌으로써 모든 백인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분리시켜 보호했다. 반란이 일어나기 전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상류계층과 노동자사이의 원만한 사회적 관계는 상류계층의 이익을 위해 휘두른 망치아래 무너졌다. 제이콥 바크는 이 법들이 공동선이나 적어도 공동 목적을 추구하는 대신에 잔인함을 부추기는 비합법적인 법(lawless law)이었다고 주장했다”(10-11).  2토니 모리슨을 초청한 루브르 박물관의 프로그램과 그에 관한 뉴욕 타임즈 기사 참조. Riding, Alan.“ Rap and Film at the Louvre? What’s Up With That?”The New York Times, November 21, 2006. online www.nytimes.com/2006/11/21morr.html. 루브르 박물관 행사 프로그램 www.louvre.fr/media/repository/resources/sources/pdf/DPTToniMorrisonlight ENGLISH_v2_m56577569831144595.pdf  3Toni Morrison. “‘The Foreigner’s Home’: Introduction.”Louvre Museum Auditoriums, Paris, 6 November, 2006 (Schreiber 159).  4『자비』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은 양극화 되어 있다. 만텔(Hilary Mantel)은 이 소설이 빌러비드의 영혼을 기억하게 하는 짧은 서사로서 등장인물도 비현실적이며 훌륭한 소설의 그림자라고 평했다. 존 업다이크(John Updike)는 포크너의 영향으로 인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화자의 서술로 시작되는 소설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면서, 시대와 장소를 묘사하는 서사 감각이 등장인물 묘사를 압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노예제도와 흑인들의 고통이 아닌 신세계를 더 잘 묘사하고 있으며 흑인 등장인물보다 백인 등장인물들이 더 생동적으로 재현되었다고 평한다. 업다이크는 신세계의 부패와 몰락을 그린『자비』를 부정적으로 평하면서 이 소설 전반에 드리운 모리슨의 비관주의를 비판한다. 데이비드 게이츠(David Gates)는 이 소설이 미국 전원 문학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탈식민주의자, 페미니스트, 녹색당이나 맑시스트들이 이 소설에 집착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빌러비드』의 열정도『러브』에 나타난 용감한 창의성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의 레오노라 토다로(Leonora Todaro)는 업다이크와 달리 모리슨의 뛰어난 역량이 바로 소설 시작부분에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시대와 장소로 안내되어 극적인 질문에 직면하면서 화자의 마법에 빠지게 된다고 토다로는 지적하고 이전 두 소설『패러다이스』, 『러브』와 달리『자비』를 성공적 소설로 평한다. 모리슨 자신은 찰리 로즈(Charlie Rose)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의 깊이와 스스로 설정한 도전 때문에 이 소설을 자신의 최고 작품 이라고 말한 바 있다. (www. charlierose.com November 10, 2008)  5그리스어인 트라우마는 원래 신체에 가해진 상처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의학서적, 특히 프로이트 텍스트에서 트라우마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가해진 상처로 이해되었고 그 후 정신적 외상을 뜻하게 되었다(Caruth 3).  6프로이트와 피에르 자네(Pierre Janet)가 외상적 사건이 기억의 암호화 과정에서 누락되는 것과 그대로 다시 출현하는 것의 관계에 대해 강조해왔다는 점을 카루스는 지적한다. 자네는 과거의 완전한 이야기 구조에 통합되는 것을 “서사적 기억”이라 정의한다(Trauma 153)

    II. 트라우마와 글쓰기

    소설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플로렌스의 일인칭 서술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삼인칭 서술이 마치 직물의 날실과 씨실처럼 교대로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나 숫자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전 열두 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플로렌스의 이야기는 총 여섯 장에 이르며 그녀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삼인칭 서술이 교차된다. 2인칭 청자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시작되는 소설에서 화자는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이야기에 내포된 위험성을 예언하는 한편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당신”은 주인공 플로렌스가 사랑한 대장장이를 지칭하지만 또한 트라우마의 고백을 듣게 되는 독자를 암시한다. 플로렌스는 폐허가 된 백인 주인저택의 마루와 벽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고백의 글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폴 제이(Paul Jay)는 자서전을 대표하는 오거스틴(St. Augustine)의『고백록』(Confessions)에 나타난 자기 성찰적 글쓰기의 정신분석 기능을 강조한다. 즉 오거스틴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현 시점에서 지난 잘못을 되돌아보고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오거스틴의『고백록』에 회고와 자기성찰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자서전 쓰기의 주요 목적은 자기 분석을 통한 치유이다(23-24). 여성들의 자전적 글쓰기의 치유효과를 강조한 수젯 핸켓(Suzett Henkett)은 치유를 위한 사건 재연 형식을 통해 외상적 경험을 글쓰기로 풀어내는 과정을 “쓰기치료”(scriptography)로 정의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려는 글 쓰는 사람의 노력이 정신적 치유의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지속적인 불안과 플래쉬백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자서전은 정신분석학 장면을 효과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정신적 외상 환자에게 대안적 치유를 제공한다(xii-xiii).

    플로렌스도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 과거를 회고하고 다시 체험하며 이 과정은 자신을 분석하고 치유하는 기회가 된다. 말하기의 치유 기능을 강조한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과정을 통해 회상되는 장면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재생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이며 소망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것이라 주장한다(49).7 즉 프로이트가 강조한 점은 회상을 통해 기억하는 과거는 주체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사건들을 상상 속에서 재구성함에 따라 창조되는 내러티브라는 사실이다(Jay 25). 플로렌스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과거도 글을 쓰는 현시점에서 상상을 통해 재구성된 과거이며 파편적 기억들이 연결되어 이야기가 완성된다. 플로렌스의 이야기는 트라우마 서사이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 역시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는다. 카루스에 의하면 트라우마의 서사를 듣는 사람은 선택된 트라우마의 증인이며 트라우마를 경험한 자의 절박한 증언은 청자에게 영향을 미친다(Trauma 10). 플로렌스는 고백의 끝에서 고통스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절박함과 증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신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이것을 말할 수가 없어요”라는 말에 암시되어 있듯이 대장장이와 독자는 플로렌스의 트라우마를 듣도록 선택된 증인이다. 또한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이것을 읽지 않을 거예요”(161)라는 플로렌스의 말은 독자가 트라우마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화자와 청자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플로렌스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것이며 이것은 곧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 된다. 플로렌스의 백인 주인 제이콥 바크(Jacob Vaark)가 병을 앓다 죽은 뒤 여주인 레베카(Rebekka) 역시 홍역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다. 레베카는 약초로 자신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유 흑인인 대장장이를 불러 오기 위해 플로렌스를 험난한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대장장이를 찾으러 나선 열여섯 살 플로렌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려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플로렌스는 노예무역을 통해 바베도스(Barbados)를 거쳐 미국으로 온 앙골라 출신 노예 여성인 어머니로부터 어린나이에 버림받는다. 백인주인 도르테가(Senor D’Ortega)는 빚 상환 조건으로 채권자인 바크에게 노예를 제시하지만 바크가 플로렌스 어머니를 선택하자 부인의 반대를 핑계로 이를 거절한다. 이 때 상황을 눈치 챈 플로렌스 어머니는 남자아이를 등에 업은 채 갑자기 바크에게 다가와 “저 말고, 이 여자 아이를 데려가세요. 내 딸 말이에요”(26)라고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 속삭임 같은 급박한 목소리와 “그녀의 눈에 나타난 공포감”(26)에 놀란 바크는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는 것은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고아였고 “어린 시절부터 낯선 사람들의 관대함 이외에는 떠돌이 아이들과 불량아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세상에 없다는 것”과 “어른들 밑에 있는 것이 덜 위험”(32) 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버려진 아이에 동정심을 갖는다.

    어머니 상실로 인한 트라우마는 플로렌스의 꿈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 플로렌스의 신발을 구겨 넣은 채 남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데 이것이 플로렌스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 모습이며 정지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주디스 허만(Judith Herman)에 의하면 트라우마적 기억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정지된 상태이며 일련의 스냅샷이나 무성 영화의 형태로 남아있다(175). 또한 언어화되고 연대기적 내러티브로 구성된 성인 기억과 달리 트라우마적 기억은 어린아이의 기억처럼“생생한 느낌과 이미지 형태로 ”두뇌에 기록되어 있다(37-38). 꿈속에서 어머니는 눈과 입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지만 소리로 전달되지 않은 마지막 말을 플로렌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남동생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 손이 자기 손을 잡아 주길 기대하며 어머니 치마 뒤에 숨어 백인남자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어머니의 손은 사랑과 삶을 상징한다. 젖먹이 동생 때문에 어머니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고 생각하는 플로렌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선택할 때 그들의 눈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다. 어떻게 눈을 치켜뜨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내게 중요한 말을 하면서 어린 남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지 알고 있다”(8). 꿈과 환영 속에 나타나는 어머니 모습을 통해 트라우마와 대면하게 되는 플로렌스는 사랑하는 사람인 대장장이로부터 다시 버림받은 후에야 어머니가 전하고자 했던 중요한 메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프로이트는「히스테리아의 원인」(“The Aetiology of Histeria”)에서 첫 번째 충격적 사건을 상기시키는 제2의 사건을 통해 이전 사건을 기억하게 됨으로써 최초의 사건에 외상으로서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사후작용(Nachtra¨ glichkeit, deferred action)을 통해 두 사건이 연결되면서 무방비 상태에서 이해하지 못한 첫 번째 사건은 두 번째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로서 인지되는 것이다(214-21).8 쟝 라플랑쉬(Jean Laplanche)는 트라우마를 두 단계 작용으로 설명하는 프로이트 이론을 설명하면서 첫 번째 경험의 기억이 잠재해 있는 한 그것은 발병이나 외상의 원인이 되지 못하며, 두 번째 장면에 의해 되살아난 기억이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주체는 내부로부터 기억의 공격을 받는 것이다(112-13). 라플랑쉬에 의하면 현재의 난관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과거를 상기하는 융(Jung)이 주장한 회상(retrospection)과는 달리 프로이트는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과의 긴장관계를 강조한다(118). 또한 프로이트의 사후작용은 단순히 쌓여있던 긴장된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심리작용을 내포하는“회고 작업”(a work of recollection)이라고 설명한다(Laplanche and Pontalis 114).

    플로렌스는 어머니를 상실하는 순간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건은 상징체계에 자리 잡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플로렌스는 여행길에서 첫 번째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과 조우한다. 대장장이를 찾으러 가는 여정중 플로렌스는 사팔뜨기 눈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녀로 지목을 받고 있는 딸 제인(Jane)과 함께 살고 있는 과부 일링(Widow Ealing)의 외딴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식민지 사회 지도층은 가부장 질서를 공고히 하고 식민지 통치를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통제할 수 없는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격리시켜 제거하고자 했다, 17세기 말 마녀사냥은 주로 과부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 그리고 종교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여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마녀사냥을 주도한 사람들 중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복잡하고 모순된 사회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즉 경제적 사회적 책임은 부여되었지만 공적 영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식민지 여성들은 “피해자이며 가해자였고, 반항자이며 순종자”였다(Ryan 76-77). 제인이 어머니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목장이잖아요”(109)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은 토지와 재산을 둘러싼 분쟁과 가문 간의 숙원, 그리고 인디언과의 전쟁과 정치적 혼란에 휩싸인 청교도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Fischer 12-13). 제인을 심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자 제인은 어머니 치마에 매달린 채 떨며 서있다. 어머니 치마 뒤에 숨어 다가온 위험을 인지하는 제인은 어머니와 함께 백인남자들 앞에서 서 있던 플로렌스의 모습과 같다. 플로렌스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검은 피부를 사탄의 징표로 간주하며 옷을 벗게 한 뒤 마치 동물을 검사하듯 그녀의 몸을 샅샅이 조사한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객체화된 플로렌스는 자신을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백인들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서서히 자기 분열과 혐오를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를 거기서 찾으려한다.

    플로렌스의 주체 형성은 어머니 상실과 그로 인한 사랑의 결핍으로 완성되지 못한다. 허만에 따르면 외상적 사건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아형성을 파괴하며 그것은 인간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믿음체계를 무너뜨리고 피해자는 존재론적 위기에 빠진다(51). 프로이트도 사랑의 상실이 자긍심에 영원한 상처를 남기며 이것이 열등의식을 조장한다고 설명한다(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14). 여덟 살에 어머니를 상실하고 애정에 굶주린 플로렌스는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타인의 미소나 애정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크가 새 저택의 대문 장식을 위해 고용한 자유 흑인인 대장장이가 나타나자 플로렌스는 사랑에 빠지고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38). 아이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그러하듯 대장장이와 함께 있으면 “나의 몸은 즐거움이 넘치고 안전하며 누구에겐가 속해 있다”(137). 그러나 타자와 자아를 완전히 일치시키는 편집증적 사랑에 빠진 플로렌스는“자유로운 것과 자유롭지 않은 것이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69) 뿐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을 때만이 살아있기 때문에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지 않는다”(70)고 말한다. 낸스가 지적하듯이 모리슨은 이 소설에서 자유를 위협하는 다양한 힘들을 천착하고 있으며 플로렌스는 자아를 삼켜버리는 정신적 모래무덤인 낭만적 사랑에 직면한다(48).

    플로렌스가 사랑을 상실할 위기에 접하는 시점에서 어머니는 꿈과 환영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즉 대장장이로부터 버림받는 사건은 플로렌스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채 잠재해 있던 어머니와의 이별 장면을 상기시킴으로써 트라우마로 부상한다. 플로렌스가 대장장이를 찾는데 성공하고 그는 입양한 남자아이 말라이크(Malaik)를 그녀에게 맡긴 채 레베카를 치료하러 떠난다. 꿈결에 “주머니에 내 신발을 넣은 채 작은 남자 아이의 손을 잡고 문에 기대선 어머니”(137)를 본 플로렌스는 잠에서 깨자 또 다시 말라이크의 손을 잡고 침대 옆에 서있는 어머니 환영을 본다. 환영 속에서 어머니가 손잡고 있는 말라이크는 어머니가 선택한 남동생과 일치된다. 자신을 버리고 어린동생을 선택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플로렌스는 또 다시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며“이렇게 쫓겨나는 일은 결코 다시 있을 수 없다”(137)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을 직감한 그녀와 말라이크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플로렌스는 아이가 우는 것을 멈추 기 위해 팔을 잡아당기고, 이 때 돌아온 대장장이가 플로렌스를 구타하면서 두사람은 격렬한 몸싸움에 휘말린다. 대장장이는 자의에 의해 욕망의 노예가 된 플로렌스를 거부한다.

    플로렌스에게 대장장이는 삶 자체이고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당신은 항상 내 삶으로, 그리고 악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자세히 들여다 본 뒤 나를 버리는 사람들과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여겼어요”(157). 허만은 외상환자가 분석가에게 보이게 되는 외상 전이(traumatic transference)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환자의 무력함과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더욱 더 강력한 구원자를 필요로 하고 심지어는 이상화된 기대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137). 플로렌스는 대장장이에게 구원자의 역할을 투영하고 그를 이상화한다. 대장장이는 맹목적 사랑의 노예가 된 플로렌스에게 자신의 주인이 되라고 말하지만 플로렌스는“내가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141)라며 분노한다. 사랑의 배반에 대한 억압된 분노가 폭발한 플로렌스는 그에게 망치를 휘두르며 폭력으로 저항한다.

    7프로이트의 “사후작용”에 대한 논의의 원초적 사례가 된 것은「늑대 인간」(The ‘Wolf Man’)이며 주인공이 한 살 반때 경험했던 부모의 원초적 장면이 4살 때 “늑대 인간의 꿈”으로 나타난 사례에 대한 분석이다. 「늑대 인간」(The‘Wolf Man’)은『유아 신경증 역사』(From the History of An Infantile Neurosis),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17에 포함되어 있음.  8“The Aetiology of Histeria,”from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3. Trans. James Strachey. London; Hogarth, 1955.

    III. 버림받은“주인없는 여자들”

    흑인 뿐 아니라 신대륙의 백인 여성들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플로렌스의 여주인 레베카는 16세에 아버지 결정에 따라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신대륙에서 함께 살 신부를 찾는 광고에는 여성의 옷과 비용을 차후 환불해주겠다는 거래와 같은 결혼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캐틀린 윌슨(Kathleen Willson)에 의하면 식민지 초기에 미국에 정착한 하층계급 영국 여성들은 이처럼 결혼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되거나 또는 계약 노동자로서 이주했다. 심지어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들은 돈과 옷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모집되었고 사회적으로 부랑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난한 여성들에게 이주하도록 강요했다(270). 건강하고 순결한 여자를 신부로 구하는 광고를 본 레베카의 아버지는 부양가족을 줄이기 위해 “고집 세고, 질문 많고, 반항적인 입 모양새를 한”(74) 애정 없는 딸을 포기한다. 사회적 위계질서를 중요시한 17세기 영국은 가부장제도가 지배 이념이었고 남편에 대한 여성의 순종은 배우자에 대 한 애정의 척도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질서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여성이 남편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Mendelson 133). 또한 여성들은 종속적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에 의존했고 신앙심은 곧 여성적 순종을 상징했다(137). 따라서 광신도인 레베카의 어머니는 야만인에게 딸을 “팔아넘기는 것”(74)이라고 생각하지만 딸을 보호하지 못한다.

    17세기 영국 도시는 인구이동으로 팽창하고 있었고 런던은 16세기보다 3배 가까운 인구 증가를 보였다. 특히 17세기 말 도시로 온 이주자들 대다수가 여성이었고 이들은 도시에서 하녀로 일하거나 물건을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가난했고 1625년 살스베리(Salisbury)에서 빈곤계층의 2/3가 여성이었던 것처럼 빈곤의 여성 집중화 현상을 보였다(Eales 76). 인구가 집중된 런던은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했고 공개 처형이 빈번했으며 여성들은 남편으로부터 습관적인 구타를 당했다. 영국 사회는 아내 구타를 정상적 가족관계의 일부로 용인했으며 폭력 피해 여성은 남편에게 이혼도 제기할 수 없었다(Mendelson 141). 특히 하층계급 여성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이 제한적이었던 당시 주로 가사를 돌보는 하인으로 일했던 여성들은 주인으로부터 구타와 굶주림을 당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 권위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라는 사회적 이념에 갇힌 이들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더구나 임신한 하녀는 해고되어 부랑자가 되거나 더 이상 일거리를 찾지 못해 창녀로 전락하기도 했다(Mendelson 268). 레베카도 남자 주인으로부터의 성적 접근을 피해 다녀야하는 일을 겪고 사흘 만에 하인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

    멘델슨은 “가난한 싱글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결혼은 가장 매력적인 경제적 선택이 될 수 있었다”(268)고 주장한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레베카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므로 먼 곳에 있는 알지 못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일이 현재의 삶 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레베카는 “돈도 없었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는 일도, 그리고 먹을 것과 쉴곳을 제공받는 대가로 견습공이 되기도 싫었으며 상류층을 위한 수녀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가능한 미래는 하인이나 창녀가 되는 것, 그리고 결혼하여 아내가 되는 것”(78)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마지막 선택이 가장 안전한 것 같았다”(78). 레베카와 함께 앤젤러스(Angelus)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온 여섯 명의 여자들도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불명예스런 일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과, 법에 따라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는 선택을 강요받은 창녀, 도둑과 소매치기 등이었다. 상류층 여성들과 달리 이 여성들은 선박 아래쪽의 가축우리 옆에 있는 좁고 어두운 공간을 공유하며 항해했다. “추방당하고 버려진 여성”(82)들은 고통스런 대서양 횡단 여정속에서 마치 상류층 여성들처럼 함께 차를 마시며 여성으로서의 공통된 운명을 느낄 뿐 아니라 차를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남자들의, 남자들을 위한 여자가 아니었다”(85).

    레베카의 집은 부모를 잃거나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레베카와 바크가 부모를 잃은 것처럼 그 집에 모여 살게 된 세 명의 여자 하인들도 유사한 상처를 갖고 있다. 남편이 도르테가로부터 빚 상환 조건으로 데리고 온 여 덟 살의 흑인 아이 플로렌스, 배가 난파되어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목수가 데리고 있다가 바크에게 주어버린 혼혈아 쏘로우(Sorrow), 가사 일을 위해 장로교인으로부터 산 아메리카 인디언 리나(Lena)가 주인과 함께 살고 있다. 쏘로우는 배가 난파된 뒤 해안가에서 목수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에서 살게 되지만 두 아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자 목수 부인은 바크에게 아이를 주어버린다. 바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갈 곳 없는 열한 살의 아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데리고 온다.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는 쏘로우는 자신의 더블인 상상 속의 친구에게만 마음을 털어놓지만 아이를 출산한 후 어머니가 되자 자신을 컴플릿(Complete)이라고 새롭게 명명함으로써 아 이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출산을 도와준 백인 노동자 윌라드와 스컬리의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호의도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146) 거절하는 쏘로우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리나는 백인에 의해 말살된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의 증인으로서 가족 뿐만 아니라 인디언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한 트라우마의 생존자이다. 그녀는 여섯살 때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과 백인들에 의해 불타버린 마을을 목격한 정신적 상처를 갖고 있다. 백인 병사에 의해 장로 교인들에게 넘겨진 뒤생존을 위해 자신을 야만인이며 이단자로 간주하는 백인들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요예배에 동행시키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백인들의 위선과 모순을 깨닫게 되면서 잊었던 인디언 전통과 문화를 기억해내어 삶의 기둥으로 삼는다. “기억과 창의력에 의지해 그녀는 잊혀져버린 의식들을 엮어 내었고, 유럽의약과 인디언 치유법, 성경과 인디언 지식을 융합시켰다. 그리고 숨겨진 의미를 기억해내고 발견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49). 결국 장로 교인은 “강인한 여성이고 기독교인이며 모든 가사 일을 할 수 있고, 물건이나 동전으로 교환가능 함”(52)이라는 광고를 붙여 바크에게 그 녀를 팔아버린다.

    트라우마의 생존자는 새로운 관계 형성과 행위주체로 힘을 얻는 것을 통해 외상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다. 회복은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관계 속에서 진행되며,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는 외상적 경험으로 왜곡된 친밀성과 신뢰, 자신감 등의 정신적 기능을 다시 창조한다(Herman 133). 리나는 플로렌스와의 밀착된 관계 형성을 통해 주체로서 힘을 얻게 되고 정신적 외상으로부터 회복된다. 리나의 상실감은 플로렌스에 대한 모성으로 나타나며 어머니를 잃은 리나에게 플로렌스는 그런 사랑의 대상이 된다. 어린 나이에 혼자 살아남은 리나는 가족을 버리고 살아남은 수치심을 느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로 배반하거나 버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에 대한 굶주림—어머니가 되고 싶고 어머니를 갖고 싶은 갈망. 두 사람은 그런 갈망으로 현기증을 느꼈고 리나는 그것이 살아서 뼛속까지 스며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63). 리나가 플로렌스에게 들려주는 자신이 낳은 알을 여행객으로부터 보호하려다 공격 받고 죽은 새와 어미 새를 잃은 알들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이야기에 담겨있듯이 플로렌스와 리나는 스스로 부화한 알처럼 어머니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트라우마의 생존자로서 강인한 자아를 형성한 리나는 플로렌스를 모성적 사랑으로 보살필 뿐 아니라 레베카의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돌보면서 여주인의 신뢰를 얻는다. 레베카는 리나에 대한 초기의 경계심과 두려움을 잊고 두 여성은 친구처럼 가사와 농사짓는 일을 함께 하며 신대륙의 어려운 삶을 개척해나간다. 플로렌스와 레베카에 대한 리나의 헌신적 사랑은 플로렌스의 편집증적 사랑과는 달리 종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대한 표시이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과 같았다(151). 그러나 바크의 사망은 주인과 하인사이에 형성된 가족 같은 관계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주인이 살아 있는 한 진실을 숨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며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집단도 아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고아였다”(59). 더구나 레베카마저 병에 걸려 눕자 리나는 세 명의 여자 하인들이 직면하게 될 위험을 직감한다. 누구에게 도 속하지 않은 “주인없는 여자”(unmastered women)는 누구든 넘볼 수 있는 먹잇감이고 “여주인이 죽고 나서 그곳에 계속 머물게 되면, 여성이고 불법자인 그들은 침입자나 무단거주자로 간주되어, 팔리거나 고용되거나 공격당하거나 납치당하고 추방당할 것이다”(58). 남성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대륙의 여성들과 노예, 하인들은 법적 권리가 없었으며 따라서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여주인과 하인 사이에 구축되었던 여성간의 연대의식은 레베카가 남편이 죽은 뒤 백인 남성중심 사회구조를 수용하면서 서서히 무너진다. 그 당시 “남편의 지위도, 기댈 곳도 잃었을 뿐 아니라 가족이나 후원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과부는 실제로 불법적인 존재”(98)였고 윌라드는 그녀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곧 재혼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도로시 메이즈(Dorothy Mays)에 의하면 남녀성비가 균형 잡히기 시작한 18세기 이전, 여성이 부족했던 초기 식민시대의 변방지역에서는 재혼이 가능했으며 젊을수록 재혼 가능성이 높았다(418).9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종교인들의 편협한 생각을 경시했던 레베카는 병에서 회복된 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속죄하는 사람처럼 기도에 몰두한다. 뿐만 아니라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여자 하인들에게 느꼈던 애정마저도 거둬들인다. 플로렌스는 자신을 악의 화신으로 여기며 몸을 검색하던 사람들과 레베카의 시선이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결국 하인들을 억압하고 거래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백인 중심의 가치관을 받아들인 레베카는 그들을 창고와 가축우리에서 지내게 할 뿐 아니라 쏘로우를 구타하고 플로렌스를 팔기 위해 광고를 낸다. 레베카가 “이 땅은 우리의 고향이야. 하지만 너와 달리 난 망명자일 뿐이야”(58)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리나보다 더 깊은 소외감을 느끼며 동화하지 못한 채 망명자로 살아 온 것이다.

    9메이즈에 의하면 그 당시 삼십 세 이전의 과부는 80퍼센트가 재혼했고 삼십에서 삼십 구세 나이의 과부는 50퍼센트가 재혼했으며 나이가 더 많은 여성들은 거의 재혼하지 못했다. 특히 자식이 있는 중년 나이의 과부는 재혼하거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도 어려웠다. 이들은 돈벌 수 있는 일을 하거나, 재혼하거나, 또는 친척과 자선단체에 의존해야만 했다. 또한 여성들의 평균 임금은 남성 임금의 4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417-18).

    IV. 신대륙의 남성들

    신대륙에 정착한 백인 남성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원시적 대 자연 속에서 물질적 풍요를 꿈꾼다. 그들은 부의 축적을 통해 떠나온 구세계의 사회적 계층을 뛰어 넘고자 하지만 물질적 탐욕은 도덕적 정신적 부패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백인들의 끝없는 탐욕과 그것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에 대해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대지의 영혼으로부터 잘려나간 채그들은 땅을 사는데 몰두했고 모든 고아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을 파괴하고 끔찍한 것을 뱉어 낼 운명이고 이 끔찍한 것들은 인디언을 파멸시킬 것이다”(55). 인디언들이 보기에 유럽에서 온 백인 남성들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갖고 있는 고아들이다. 바크는 영국태생의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사망한 뒤 네덜란드 출신의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 “초라한 고아”(12)이다. 그러나 만난 적도 없는 친척에게서 토지를 유산 받게 된 그는 버지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한다. 1682년 버지니아는 “혼란”(mess) 그 자체였고 신대륙 에서의 삶은 “살 수 없는 곳에서 살 곳을 개척하는 것”(12)이었다. 신대륙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된 바크는“노아 이래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해안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야생의 먹을거리를 보았을”(12)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모험과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농업 기반 사회였던 초기 식민지 사회에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여성의 협력 없이는 일상적인 삶조차 꾸려가기 어려웠다. 식민지 지도자들도 유럽 이주자들이 식민지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뿌리내림으로써 식민지를 번성시키기 위해 가족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신대륙으로 이주할 여성들을 모집하기도 했다.10 여성의 출산은 식민지 인구를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고 따라서 식민지 여성의 출산율은 영국 여성보다 훨씬 높았다(Ryan 37-38). 개척되지 않은 땅에서 지주가 되기 위해서 여성의 내조가 절실했던 바크는 오랫동안 결혼할 아내를 찾은 뒤 자신의 광고에 응답한 미모와 능력을 갖춘 영국 여성 레베카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성실과 근면한 노동에 대한 바크의 초기 신념은 부에 대한 욕망이 커지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부에 대한 바크의 욕망은 담배농장 주인인 도르테가의 물질적 탐욕과 정신적 부패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시작된다. 포르투갈 출신의 도르테가는 식민지 앙골라에서 브라질로 노예를 송출하는 노예무역에 종사했으나 신대륙에서 더 빨리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이주한 뒤 노예무역과 노예노동으로 부를 축적한다. 노예선 침몰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치자 그는 노예를 팔아 빚을 상환하기 위해 바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노예무역으로 지주가 된 도르테가의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은 바크로 하여금 계층적 열등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가 착취한 노예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자신은 양심을 팔지 않고 재산과 지위를 쌓을 것이라 결심한다. 그러나 바크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지 못한채 처음에 거절했던 도르테가의 제안에 굴복하고 결국 빚 상환의 조건으로 흑인 노예를 받아들인다. 화려한 저택이 상징하는 계층상승을 꿈꾸던 바크는 마침내 도르테가의 도덕적 부패에 오염되고 순수했던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변질되고 만다.

    물질적 욕망이 내포하는 도덕 불감증과 비극적 결말은 바크의 죽음과 폐허로 변한 저택으로 상징된다. 바크는 바베도스의 노예노동에 의존한 설탕과 럼주를 파는 일에 손을 대면서 더 큰 부를 축적하게 되고 분에 넘치는 저택을 짓기 위해 백인 계약노동자인 윌라드와 스컬리의 도움 뿐 아니라 대문을 장식할 대장장이를 불러들여 대공사를 진행한다. 레베카가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큰 저택을 짓는 것에 대해 반대하자 “남자는 남겨진 것에 의해 평가된다”(90)고 그녀의 말을 일축해버린다. 두 번에 걸쳐 세운 저택을 부수고 마지막 세 번째 저택을 짓기 위해 자행되는 자연 파괴에 대해 리나는 “자신을 위한 불경스러운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나무들의 허락도 요청하지 않은 채 그 많은 숫자의 나무를 죽이는 것, 그의 이런 노력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44)이라고 주인의 불행을 예견한다. 결국 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바크는 병석에 눕고 죽음을 맞게 된다. 폐허로 변해가는 바크의 저택은 이주민이 갖고 있었던 초기의 순수한 꿈이 인디언 말살과 자연 파괴를 통해 퇴색해버린 것을 상징한다.

    도르테가와 바크가 지주 계층 백인 남성의 물질적 욕망과 부패를 상징한다면 윌라드(Willard)와 스컬리(Scully)는 백인 계약노동자이다. 그들은 신대륙에 온 백인 계약노동자로서 주인에게 흑인 노예와 다름없이 종속되어 있는 하인이다. 노예제도가 인종차별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이전에 이들은 흑인노예와 다름없이 노동을 착취당했고 억압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계약노동자인 두 사람은 원래 주인이 바크의 토지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바크에게 노동 대여를 해 준 것이었다. 그들은 바크의 집 짓는 일을 도와주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레베카의 농장일을 돕는다. 백인 계약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온갖 사유로 주인이 계약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끝없이 지속되었고 따라서 이들은 자유인이 될 기약이 없었다. 유럽에서 온 스컬리는 이주비용을 갚기 위한 7년의 계약 노동기간이 도망 등의 다양한 사유로 인해 20년으로 연장되어 주인에게 종속된 노예와 다름없었다. 스컬리는 식민지로 추방된 어머니가 죽은 뒤 그녀의 계약 기간인 3년이 더해졌고, 그 후 아버지에 의해 계약노동자로 현 주인에게 팔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부목사에게 구타와 성적 착취를 당하는 등 폭력과 억압의 희생자가 된다. 자유 흑인과 백인 계약노동자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갈등은 대장장이와 윌라드의 만남에서 나타난다. 대장장이가 윌라드를 미스터 본드(Mr. Bond)라고 부르자 윌라드는 난생처럼 들어보는“미스터”라는 경어에 자존감을 느낀다. “자유로운 아프리카인과 자신의 위치 때문에 속상했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그는 속수무책 이었다. 그들로부터 계약노동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151). 자유흑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백인 노동자 윌라드는 하지만 흑인 노예인 플로렌스와 쏘로우에게 보호자와 같은 애정을 갖는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쏘로우의 출산을 도와줄 뿐 아니라 스컬리는 양가죽이 깔린 아기 침대를 손수 만들어 주는 사랑과 배려를 보여준다. 여기에 나타나 있듯이 당시 백인노동자, 흑인 노예, 자유 흑인들은 인종 차별의식에 갇혀있지 않았고 오히려 계층의식에 따른 동질감을 공유했다.

    대장장이는 소설 속에서 일인칭 독백이 없는 유일한 인물로서 고유 이름 없이 등장한다. 자유흑인인 그는“결혼을 하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여행을 하거나 자신의 노동을 팔수도 있었다”(45).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인을 처음 만난 대장장이가 똑바로 눈을 쳐다보는 것을 본 리나는 놀라는 한편 거만하다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플로렌스가 대장장이와 사랑에 빠지자 리나는 사랑을 빼앗길 것을 우려하고 플로렌스가 그에게서 버림받을 위험성을 예견한다. 하지만 대장장이는 홍역에 걸린 쏘로우뿐 아니라 사경을 헤매는 여주인을 살리는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죽은 남자와 함께 발견된 어린 말라이크를 데려와 함께 살며 보호자 역할을 하는 관대함을 갖고 있다. 플로렌스가 욕망의 노예가 된 사실과 스스로의 주인이 되라고 일깨워 주는 것도 대장장이다. 매기 게일하우스(Maggie Galehouse)는 대장장이가 노예들에게 인간성을 상기 시켜준다고 지적하면서 모리슨은 아프리카인을 독립적인 생각과 몸을 갖고 있는 자유인으로 그림으로써 전통적인 주인/ 노예 서사의 경계를 확장시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게일하우스는『자비』가 “노예가 종속을 내면화하는 과정과 소유에 대한고찰이다”라고 주장한다.11

    101619년 버지니아의 에드윈 샌디스 경(Sir Edwin Sandys)은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할 100명의 여성을 주문했고 이들에게는 결혼할 남성과 함께 120 파운드의 최상품 담배잎을 선물로 주었다(Ryan 37).  11www.chron.com/life/books/article/A-Mercy-by-Toni-Morrison-1758717.php#page-2 참조

    V. 어머니로 말하기

    소설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플로렌스 어머니의 일인칭 서사는 딸을 버린 어머니의 죄책감과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그린다. 앙골라 태생의 플로렌스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서인도 제도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노예무역 역사의 증인이다. 그녀는 바베도스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로 노동을 착취당한 뒤 다시 팔려 미국으로 온다. 흑인 여성노예의 자전적 소설인 헤리어트 제이콥스(Harriet Jacobs)의 1861년 출판된『노예 여성의 삶에 일어난 사건』(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이 보여주듯 여성노예는 백인주인에 의한 성적착취와 억압의 대상이었고 여성 몸에 대한 이 같은 폭력은 노예제도로 인한 종속의 비극적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도 성적 착취와 학대를 당하고 그 결과 플로렌스와 남동생을 낳게 되었으며 담배농장 주인의 눈길이 성장하는 플로렌스에게 머무는 것을 인식하면서 딸도 희생자가 될까 두려워한다. 그녀는 흑인 노예 여성이 직면한 고통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에서 여자로 사는 것은 아물지 않는 노출된 상처와 같다. 상처가 딱지 져 아물어도 상처 밑에서는 여전히 곪아 쑤시는 것이다”(163).

    종속된 노예 여성에게는 주인의 상대적인 친절함과 인간성만이 그녀를 보호해줄 유일한 희망이 된다. 그녀는 주인집에 온 바크를 보는 순간 자신의 주인과 달리 인간적인 면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바크의 시선에는 동물적 욕망이 없었고 따라서 자신의 딸을 보호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기적을 바라면서”(166) 딸을 데려가 달라고 무릎 꿇고 그에게 부탁한다. 물론 노예 여성의 의도를 알지 못한 바크는 어머니가 딸을 포기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고백에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아무도 네 남동생을 원하지 않을 거야. 난 그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 단순한 것들보다 가슴이 더 쾌락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지. 네가슴은 너무 빨리 부풀어 오르고 있고 소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옷에 너는 짜증을 내지. 그들이 네 가슴을 바라보고 있어. 그리고 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162). 그녀는 바크가 딸을 데려 간 것은 신이 내려준 기적이 아니라 “한 인간이 베푼 자비”(164)라고 말한다. 플로렌스가 떠나기 전 어머니가 들려준 노래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자신이 낳은 알을 훔치려는 원숭이와 싸우다 죽은 새에 관한 노래이다. 이 새처럼 어머니도 자신이 낳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바크에게 애원한 것이다. 플로렌스의 기억에 남아있는 어머니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 밝혀지는 딸에게 전해주려던 마지막 메세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VI. 결론

    플로렌스의 어머니는 소설에서 이름 없는 여성으로 남는다. 어머니는 노예들에게 몰래 글을 가르쳐주는 목사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면서 “배움 속에 마법이 있다”(163)고 생각하고 딸이 배움을 통해 언젠가 자신의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플로렌스는 격렬한 싸움 끝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대장장이를 남겨둔 채 주인집으로 돌아 온 뒤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폐허가 된 저택 마루와 벽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목사로부터 글을 배울 때 고백은 말로 하고 글로 남기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여주인 몰래 저택에 숨어 들어가 불을 밝히고 글을 쓰는 플로렌스는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가 완성되었음을 알린다.

    플로렌스의 강인한 자아 형성은 홀로 설 수 있는 튼튼한 발바닥으로 상징된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신발과 치장을 좋아한 플로렌스가 여주인의 하이힐을 신는 것에 화를 내곤했다. 리나도 신발 신기를 좋아하는 플로렌스의 발바닥이 쓸모가 없으며 생존하는데 필요한 가죽보다 질긴 튼튼한 발바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4). 그러나 대장장이가 레베카의 병을 치유하고 떠난 뒤 이틀 후 돌아 온 플로렌스는 이전의 유순한 아이가 아니라 거칠고 다른 사람들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 있다(152). 플로렌스의 변화된 자아는 자신의 이름 “플로렌스”를 호명하는 마지막 고백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플로렌스는 트라우마를 과거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뿐 아니라 어머니의 상실을 애도함으로써 정신적 상처를 치유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상실이란 자아를 구성하는 관계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상실을 경험한 자는 스스로에게 알수 없는 존재가 된다고 주장한다(22). 애도는 상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는 자아를 다시 인지하는 것이다(23). 플로렌스가 고백의 끝에서 마치 죽은 영혼을 불러내듯 어머니를 부르며 직접 말을 거는 것은 어머니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것이며, 또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제스처이다. “한 가지 슬픔은 간직할거에요. 어머니가 제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는지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머니도 모르실 거예요. 어머니, 이제 기뻐하실 수 있어요. 제 발바닥이 나무처럼 단단해졌으니까요”(161). 외상 환자는 상실을 애도함으써 파괴될 수 없는 내적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허만의 주장처럼(188), 플로렌스는 글쓰기를 통해 상실의 역사를 대면하고 자신의 내적 생명력을 되찾는다.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어머니가 기뻐할 것을 기대하는 플로렌스의 말에는 고통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플로렌스와 흑인 노예 여성인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상실 역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슬픔을 잊으려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간직하겠다는 플로렌스의 말에는 망각의 역사에 대한 저항이 담겨있다. 더 나아가서 플로렌스의 이야기는 흑인 노예라는 개인적 차원의 경험을 넘어서 이주와 상실을 경험한 여성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상징하며 이들의 트라우마는 카루스의 주장처럼 “울부짖는 상처의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역사적 진실을 전해준다(Trauma 4).

    플로렌스 어머니의 고백을 듣는 독자와 달리 플로렌스는 끝내 어머니의 메시지를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녀간의 실현되지 못한 사랑의 비극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플로렌스는 말하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이 과정을 통해 독립된 주체로 탄생한다. 라캉(Jacques Lacan)은 말하기 치유란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를 무의식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 즉 과거 역사의 전환점이 된 사실들을 현재 시점에서 역사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3). 플로렌스는 어머니 상실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을 현시점에서 역사화함으로써 완성된 서사를 만들어 내고 트라우마 상처를 치유한다. 말하기 주체가 된 플로렌스는 헨켓이 주장한 것처럼 자기 인생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통해 분열된 자아에 행위주체로서의 의식을 회복시킨 것이다(xvi). 모리슨은 인터뷰에서 플로렌스는 자신의 내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자신을 사랑하고 항상 자신을 지켜주는 자아의 일부라고 설명한다(Thompson C4). 『빌러비드』의 폴 디(Paul D)가 세드(Seth)에게 “당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322)이라고 일깨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플로렌스는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기성찰과 분석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주체로서 자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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