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Cleansed to Crave: The Paradox of ‘Cruelty’ and Love in Sarah Kane

『정화』에서『갈망』으로 ―사라 케인의‘잔혹’과 사랑의 역설**

  • cc icon
  • ABSTRACT

    Despite the ubiquity of love in the work of Sarah Kane, the theme has been overshadowed by the violence that characterizes her early plays. This essay differentiates Kane from her contemporary “in-yer-face” playwrights, arguing that violence in Kane operates as a means of securing love. Antonin Artaud’s concept of cruelty, often (mis)understood in a physical sense alone, provides a clue to the nature of Kane’s violence and its relation to love. The essay focuses on Cleansed and Crave, both written in 1998, one about love’s redemptive possibility, the other about its pure impossibility. What makes Cleansed hopeful is its violence that works as love’s obstacle, creating the illusion that once it is removed love would be possible. The absence of violence in Crave on the contrary lays the illusion of love bare, making it Kane’s most despairing play. Kane’s oeuvre draws a trajectory of love from hope to despair; as a whole it stages the impossibility of love. To love the other requires the relinquishing of the self, making love logically impossible by depriving the verb of its subject. Love, if possible, would offer the bliss of unity, tearing out the constraint of the Symbolic Order. Kane’s only alternative is death, as is expressed in Crave and 4.48 Psychosis.


  • KEYWORD

    Sarah Kane , love , Cleansed , Crave , Artaud , cruelty , the Real

  • “나는 거의 항상 사랑에 관해서 쓴다”라는 사라 케인(Sarah Kane)의 단언에도 불구하고(Saunders, “Just”107-08), 케인의 극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접근한 연구는 많지 않다.1 리벨라토(Dan Rebellato)가 케인의 자살 후 쓴 짧은 글에서 지적하듯, 비평가들은 전적으로 폭력에 집중하였지만 케인의 극이 사랑에 대한 것임은 후기 극들로 갈수록 분명해진다( “Appreciation”280). 폭력에 관심이 편중되는 것은 케인의 본격적인 데뷔작인『폭파』(Blasted)가 현대 영국 연극계에 일으킨 센세이션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폭파』는 케인의 대표작이며, 1995년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의 초연은 영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이정표적인 사건이다. 과도한 폭력, 섹스, 잔혹행위, 파괴적 형식으로 논란을 일으킨『폭파』이후, 케인의 극에는 도발극, 체험극, 파경극, 신야만주의, 신자코비언극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들은 케인이 남긴 다섯 편의 극들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2 본 논문에서는 케인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랑의 주제에 주목하며, 사랑에 대한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주는 두 극『정화』 (Cleansed)와『갈망』(Crave)을 중심으로 사랑과 폭력의 역설적 관계를 살펴본다. 신체적 폭력으로 흔히 이해되는 아르토의 잔혹 개념을 바로 읽고 케인과의 유사성을 지적함으로써, 케인의 폭력을 1990년대 영국 도발극의 폭력과 구별하며 케인의 연극사적 위치를 재고하고자 한다.3

    “도발극”(in-yer-face theatre)은 알렉스 씨어즈(Aleks Sierz)가 1990년대 영국연극의 새로운 극작 경향을 설명하며 도입한 표현으로, 씨어즈는 케인의 『폭파』를 대표적인 도발극 작품으로 꼽는다(In-yer-face xii). 도발극은“센세이션의 연극”이며, 관객의 신경을 자극하며 경악과 충격을 야기하는“체험적” 연극이다(4). 씨어즈는 도발극이“우리가 진짜 누구인지에 대해 말해준다”고 덧붙이지만(4), 이는 다른 극에도 공통된 것으로 도발극만의 고유한 요소는 아니다. 씨어즈가 제시하는 도발극의 특징은 소재와 표현 방식에 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케인이『갈망』이전에 쓴 극들은 전형적인 도발극이다. 리뷰와 비평에서 이미 수차례 반복해서 나열되어온『폭파』의“역겨운 오물의 향연”(Tinker, n. p.)은“자위행위, 펠라티오, 프로타주, 배뇨, 배변 (아, 저 익숙한 배설물!), 동성 강간, 눈알 추출, 식인행위의 장면”(Billington, n. p.)을 포함한다. 케인이“희극”(comedy)이라고 여긴『페드라의 사랑』(Phaedra’s Love) 역시 갖가지 성행위와 폭력이 난무하는데(Saunders, About 70),4 사제(Priest)가 히폴리터스(Hyppolytus)에게 행하는 구강성교(97)나, 히폴리터스의 성기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바베큐에 굽는 장면(101) 등은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인 블랙유머로 보인다.5 케인의 작품 중 가장 폭력적이라고 평가 되는『정화』는 마약 주사, 집단 구타, 전기고문, 남매 성교, 신체절단의 장면으로 점철된다. 극단적인 예로, 카알(Carl)은 혀(118), 손(129), 발(136)을 차례대로 절단당하며, 그레이스(Grace)는 가슴이 베어지고 오빠 그레이엄(Graham)의 성기가 접합되는“성전환수술”을 당한다(145). 씨어즈의 도발극 정의대로 케인의 극들은“관객이 메시지를 파악할 때까지 목덜미를 붙잡고 흔든다”(In-yer-face 4).

    그런데, 이 극들이 전달하는“메시지”가 과연 어떤 것이기에 관객들이 극단적인 도발을 견디어야 하는가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케인은『폭파』의 초연에 대한 언론의 악평이“저널리스트들의 자기영속적 히스테리이지 관객들의 반응이 아니었다”고 작품을 변호하지만(Saunders, About 51), 굳이“중년의 중산층 백인남성”(52) 저널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케인의 극에 산재하는 섹스와 폭력의 역겨움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마치“쿨”하지 못한 보수성의 징표처럼 여겨질 뿐더러, 모리스(Peter Moris)가 지적하듯 자살이후 케인이“평온하게 박물관에 모셔진 뒤샹의 변기처럼”우상화되는 분위기에서(Saunders, About 2), 케인의 도발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케인의 도발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일차적인 답변은 그것이 인간/사회의 잔혹함과 폭력성에 대한 폭로라는 해석일 것이다. 예컨대, 도발극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는 씨어즈의 주장처럼, 작품의 적나라한 섹스와 폭력은“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하지만, 알아내기에는 두려워하는 것”(In-yer-face 8)과 같으며“인류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자 우리 일상 행위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9).『 폭파』는 종종 본드(Edward Bond) 의『구원』(Saved)에 비견되는데, “내가 폭력에 대해 쓰는 것은 제인 오스틴이 예절에 대해서 썼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본드의 말처럼 케인은“통탄할만한 사회 구조의 표명으로 섹스와 폭력을 다룬다”는 것이다(Sellar 31, 34). 씨어즈가 케인과 함께 도발극의 대표작가로 꼽는 레이븐힐(Mark Ravenhill)이나 닐슨(Anthony Neilson)은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되며 소재의 도발성에도 불구하고 주제적 측면에서는 영국의 사회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케인의 작품은 정치적이라기보다 개인적이다. 케인에게 정치성이 부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차적이라는 말이다. 이니스는 케인의 극이“개인적인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스트 슬로건을 극대화한 경우로 본다(Innes, Modern 530). 쏜더스 역시 케인의 극들은 당대에 대한 언급들이 산재하지만“1990년대 영국의 현안들과는 거의 무관한 독단적인 개인적 비전”을 따른다고 지적한다(Saunders, About 6). 도발극과는 달리 케인의 극은“우주에서 인간의 위치, 신과의 관계, 강박으로서의 사랑, 성적 충족의 황홀경과 파괴성”같이“본질적으로 실존적인”문제들을 다룬다(Saunders, “Out”77). 케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비평가들은『폭파』에 나타난 성, 전쟁과 폭력의 문제에 주목하며, 『정화』의 배경이 되는 사회기관(무대지문에 의하면 대학교이나 마치 정신병원이나 수용소를 연상시킨다)의 억압에 대해서 논한다.6 분명『폭파』는 90년대 당시 보스니아전의 참상에 대한 케인의 항변이다. TV에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 대학살 보도를 본 케인은“갑자기 쓰고 있던 극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고, 지금 막 텔레비전에서 본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폭파』의 창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Sierz, In-yer-face 100-01). 원래 쓰고 있던 남녀 관계 이야기와 전쟁을 연결시키기 위한 케인의 해결책은 두 이야기가“씨앗”과“나무”처럼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윽고, 내가 쓰고 있는 극이 바로 그것[보스니아전]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극은“폭력, 강간 그리고 서로 알고 서로 사랑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101). 『폭파』는 전쟁과 일상의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케인의 다른 극들을 보면 그녀의 궁극적인 관심사는“씨앗”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아르토(Antonin Artaud)의 잔혹극 개념은 케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데 또 다른 단서를 제공한다. 케인과 아르토의 잔혹극이 연결되는 지점은 우선 초기 극들에 나타나는 폭력과 잔혹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케인과 아르토의 유사성은 이 표면적 폭력 이상이다. 흔히 아르토의 잔혹극을 신체적, 물리적 가혹행위로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아르토는“잔혹”(cruelty)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야만적인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Artaud 101). “육체의 고통이 없는 순수한 잔혹”도 있을 수 있으며, 이때“잔혹은 엄정성, 굽힐 수 없는 의도와 결심,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결단력을 의미한다”(101). 잔혹은“인류가 사랑, 범죄, 마약, 전쟁, 폭동 등을 통하여 추구하는 인생의 초월적 경험”과 같은 것이다(122). 아르토의 잔혹극은 서구 합리주의의 비판이며, 라캉적으로 말하자면 상징계를 찢고 실재를 드러내는 극이다. 잔혹극은“삶의 열정적이고 경련적인 개념을 연극에 복원시키고자 창조되었으며,”유혈과 물리적 폭력은 필요한 경우 사용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122). 아르토가 말하는 잔혹은 문명에 억압된 존재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극의 신화와 제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Innes, Avant-Garde 93). 토넬리는 잔혹성이“인간에 대한 앎과 의식화를 새롭게”하며, 잔혹극은 인간에게 진실을 강요하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39).

    월러스(Clare Wallace) 역시 아르토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케인이 90년대 영국 극작보다는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 극과 더 유사하다고 주장한다(88). 씨어즈는 케인이 말하는 체험성(즉 관객이“생각과 감정에 직접 신체적으로 접  촉할 수 있도록”것)을 도발극의 특징으로 들지만(In-yer-face 92), 이는 아방가르드 미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파열, 극단, 과도, 진실, 내면성 같은 특징들은 “표현주의에서 아르토까지, 그리고 하워드 바커의 파경극(Theatre of Catastrophe)을 거쳐 케인에게까지 이어진다”(Wallace 95-96). 케인은 뒤늦게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에 대해서 알게 된 후, “그가 말하는 것이 내 작업과 얼마 나 완벽히 연결되는지에”놀라워한다(Saunders, About 87). 아르토의 연극론은 “제정신(sanity)에 대한 정의”이며, 우울증(depression)은“세상사의 현실적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건강한 존재 상태”이다(87). 만성적으로 미친 사회에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느끼고 지각하는 능력을 무디게 해야 하는데, 아르토의 잔혹은 이러한 무감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케인은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영화처럼 폭력을 미화하거나, 본드나 레이븐힐처럼 폭력을 통해 사회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케인의 폭력은 마치 예수의 수난처럼 인간성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한다. 쏜더스 역시 케인  을 동시대 도발극 작가들과 구별하면서, “케인 극의 극단적 상태와 상황은 [이들과] 정반대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제시되는데, 즉 우리에게 충격을 주어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Saunders,“ Out”76). 케인의 지속적인 주제는 사랑이다. 케인의 극 다섯 편은 사랑을 통해 삶을 붙잡으려는 시도가 실패와 절망으로 끝나는 여정이다. 케인의 정전은 폭력성으로 점철된『폭파』,『 페드라의 사랑』, 『정화』와 언어 실험적인『갈망』, 『4.48 사이코시스』(4.48 Psychosis)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Cohn n. p.), 마지막 두 극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섹스와 폭력의 장면이 전혀 없으며, 구체적인 인물도 플롯도 없이 끊임없는 이어지는 언어의 직조물처럼 극의 전통적 형식을 극단적으로 파괴한다. 이러한“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은 이전 극들에서 보였던 도발과 충격이 케인 극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임을 말해준다. 월러스는 케인이 아르토처럼 “자아와 무의식의 상태”에 천착하지만 아르토가 추구하는“신성함의 회복에 대한 어떠한 허세”도 없다고 지적하는데(Wallace 96), 이 말은 후기 작품에만 적용될 수 있다. 초기극들은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제시하며, 특히『정화』는 트워미의 말을 빌면“포스트모던 수난극”과 같다(Twomey 117). 오히려『갈망』과『4.48 사이코시스』는 폭력의 부재와 표면적 평화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절망적이며 죽음만을 유일한 탈출구로 제시한다. 이러한 변화의 전후에 위치하며 사랑에 대한 상반된 생각을 표현하는『정화』와『갈망』은 폭력과 사랑의 역설적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의 장을 제공한다.

    1998년 네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사이에 두고 나타난『정화』와『갈망』은 완전히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극의 분위기와 주제도 전혀 다르다. 『갈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신체적, 성적 폭력의 부재와 정제된 시적 언어의 사용이다. 이 때문에 어떤 평자들은『갈망』을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케인은 이러한 해석에 의아해한다. 1998년 타버트(Nils Tabert)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듯『갈망』은“여태껏 [케인이] 쓴 가장 절망적인 것”이며, “사랑에 대한 믿음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된 과정 동안 쓰였기”때문이다(Saunders, About 79-80). 오히려 이전의 잔혹한 극들에는“한 줄기 희망”이 있다(80). 『4.48 사이코시스』에 나오는 한 줄의 대사, “희생자. 가해자. 방관자.”(Victim. Perpetrator. Bystander. 231)는 케인이 바라보는 인간관계를 요약한다. 세 단어 사이의 마침표는 서로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인간의 고립과 결핍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전 작품들이 사랑의 환상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적 결핍을 메우려 한다면, 『갈망』과『4.48 사이코시스』은 사랑의 불가능을 확인한다.

    『정화』의 직접적인 창작 배경은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서『연인의 담론』(A Lover’s Discourse)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사랑에 빠진 주체의 상태는 다카우[유대인 수용소]의 수감자와 유사하다”는 단상(Barthes 49)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섬뜩한 통찰이다. 케인이 보기에“그것은 자아의 상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자아를 상실하면 어디로 가는가. 갈 곳이 없으며, 사실상 일종의 광기와 같은 것이다”(Saunders, About 76). 사랑은“자아를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타자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며“나는 영원히 상실된다”(Barthes 49).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를 전적으로 상실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주체가 상실되는 상태는 사랑의 지속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인용하며 말하듯 사랑의 근원은 자아(Ich)이며, 소위“박애”라고 하는 것은“다름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그 사람의 행복을 보존하며 기뻐하는것”이기 때문이다(Lacan, Four 191-92). 케인은『정화』가“어떻게 사랑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Saunders Love 108). 사랑의 자기-파괴는 상징계를 파열하고 인간이 상실한 전-상징적 합일을 느끼게 하는 잔혹의 순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전의 잔혹한 극들은 외부적 폭력을 통하여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확인을 지연시킨다. 『폭파』의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폭파』에는 40대 중년 저널리스트 이언, 20대 여성 케이트, 군인만이 등장하지만, 이 세 인물의 관계와 액션은 전 인류와 사회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상징적이고 축약적이다. 이언이 케이트에게는 가해자이나 군인에게는 피해자이듯 인간관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쇄 사슬을 형성한다. 장면 5에서 죽은 아기를 묻고 케인이 음식을 구하러 나간 후, 혼자 남은 이언은 자위하고, 스스로 목을 조르고, 배설하고, 미친 듯 웃고, 악몽을 꾸고, 피눈문을 흘리며, 힘없이 누워있는 장면이 빛과 어두움의 교차 속에서 스냅사진처럼 펼쳐진다(57-60). 마침내 이언은 파묻은 아기를 꺼내어 먹고 그 구덩이에 들어가 목을 내밀고 누우며, 죽는다(he dies with relief. 60)라는 무대 지문에도 불구하고 곧 비가 오자 이언이“젠장”(shit)이라고 말을 한다. 케이트가 다리 사이에 피를 흘리며 음식을 구해와 자신이 먼저 먹고 나머지를 이언에게 먹이자, 이언이“고맙다”고 말하며 극이 끝난다(61). 논리적으로 불가해한 이 장면은 사랑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마크레이븐힐의『쇼핑 앤 퍽킹』(Shopping and Fucking)도 마크(Mark), 로비(Robbie), 룰루(Lulu)가 전자레인지용 즉석음식을 서로에게 먹이면서 끝나지만 (Ravenhill 90-91), 두 극의 결말은 페이소스(pathos)와 숭엄(sublime)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작용한다.

    『페드라의 사랑』의 불가해한 마지막 대사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순간이 더 있었더라면”(if there could have been more moment’s like this. 103)—사랑 때문에 자살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아를 상실한 페드라, 히폴리터스의 사형을 막으려다 친부 씨시어스(Theseus)에게 강간당하고 죽어간 스트로피(Strophe), 변장한 스트로피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한 씨시어스, 이 세 구의 시신 옆에서, 자신 역시 성기가 잘리고 창자가 꺼내져 죽어가며 독수리의 밥이 되기 직전 히폴리터스가 하는 대사이다. 라신(Racine)의 비극을 개작한 이 극은 페드라의“전적인 자기 포기”(selfabnegation)과 히폴리터스의“전적인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이라는 사랑의 두 극단적 반응을 통해 자아와 사랑의 역설적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Greig xi). 온갖 섹스와 폭력의 와중에도 냉담하던 히폴리터스의 자기 보존은 마지막장면에서 깨어진다. 히폴리터스의 마지막 대사는 그가 갇혀 있던 자아에서 벗어나 타자와 접촉하는 잔혹의 순간이며, 상징계적 질서를 넘어서는 라캉적 향락(jouissance)의 순간과도 같다.

    『정화』는 사랑과 자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그렉에 의하면 사랑의 전면적“자기-포기”를 극화한다(Greig xi). 로드(Rod)와 카알, 그레이스와 그레이엄, 로빈(Robin)과 그레이스, 팅커(Tinker)와 스트립댄서의 스토리라인은 각각 쓴 후 해체되고 재배치되어, 뷔히너(Georg Bu¨chner)의『보첵』(Woyzeck)처럼 인과적 진행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2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정화』의 매장면은 사랑을 시험하는 폭력과 잔혹의 극한상황을 연출하며, 사랑을 갈망하는 커플과 그 사랑을 방해하고 중단시키려는 팅커의 고문으로 이어진다. 그레이스의 선물로 준비한 초콜릿 두 판을 즉석에서 먹어치우도록 명하자, 팅커가 던져 주는 초콜릿을 하나씩 받아먹으며 겁에 질려 오줌을 싸는 로빈의 코믹한 장면도 있지만(138-40), 대부분의 장면들은 핀터(Harold Pinter)의 말처럼“폭력이 페이지에서 튀어 나올 것처럼”잔혹하다(Hattenstone n.p.).

    동성애 커플인 로드와 카알의 이야기는 사랑의 힘을 확인하는 주된 스토리라인을 형성한다. 카알은 로드에게 반지를 끼워주며“너를 항상 사랑할 거야,”“너를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야,”“네게 결코 거짓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자(110), 로드는 냉소적으로 응답한다.

    실상, 카알은 팅커가 막대기를 항문에 찔러 넣어 어깨까지 꿰뚫는 고문을 가하며(116) 연인의 이름을 묻자 육체적 고통 앞에 자신도 모르게 로드의 이름을 외침으로써 배신 아닌 배신을 하게 된다(117). 로드에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  자 팅커는“커다란 가위를 꺼내 카알의 혀를 자른다”(118). 배신을 힐난하는 로드에게 카알이“용서한다고 말해줘”라고 진흙 위에 쓰자 감시하던 팅커가 와서 두 손을 자르며(129), 카알이 로드를 위해“사랑의 춤”을 추자 팅커가 양 발을 잘라버린다(136). 카알의 한없는 사랑 앞에 마침내 로드는“오직 지금만이 있어”라고 말하며 카알을 안고 운다(142).

    팅커가 로드를 끌어내며“로드, 너와 쟤 중 누가 되어야 할까?”라고 묻자“나 야, 카알은 안돼, 나야”라고 답하고, 팅커는 로드의 목을 그어 죽인다(142).『 정화』는 각기 다른 네 쌍의 사랑을 교차해 나가는데, 케인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영원한 사랑을 긍정하는 로드의 변화에서 명확히 표현된다. 케인의 말처럼“『정화』는 결코 폭력에 대한 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Saunders, About 74). 다른 극에서도 그렇지만 특히『정화』에서는 폭력이“은유”로서 사용된다(74). 그레이스/그레이엄이 카알의 잘린 팔을 맞잡고 하늘을 바라보자 비가 그치고 태양이 나온다. 카알은 울고 그레이스/그레이엄은 미소 지으며, 태양은 눈이 멀 정도로 점점 더 밝아지고 찍찍거리는 쥐소리는 귀가 먹을 정도로 점점 커지는 마지막 장면(151)은 고통 속에서도 (혹은 고통 때문에) 계속되는 사랑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갈망』은 이러한 영원한 사랑의 믿음이 환상에 불과함을 시인하는 절망의 표현이다. 상징계를 파열시키는 사랑의 무한대적 향락은“가능하면 적게 즐기라”는 리비도의 경제학과 현실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7『갈망』은『정화』의 초연 후 네 달이 채 되지 않아 마리 켈브던(Marie Kelvedon)이라는 필명으로 쓰였는데, 두 극 사이의 짧은 간격은 정반대로 보이는 두 작품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문제에 대해 천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갈망』은 A, B, C, M의 알파넷 이니셜로 표시되는 네 목소리로 구성되며, 초연에서는 네 명의 배우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서 대사를 읊는 토크쇼처럼 연출되었다. 케인이 밝히듯 『갈망』에 영향을 준 작품은 엘리엇(T. S. Eliot)의『황무지』(The Wasteland)로, 『갈망』은 극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다. 극(drama)이라는 용어는 행하다(drao)라는 그리스어가 어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처럼 극이 행위(action)의 모방이라면, 『갈망』은 행위가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의미가 고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물의 성별도 이름도 지정하지 않고 이니셜로 표기하였지만, 케인에게 A는 중년 남자로 작가(Author) 또는 학대자(Abuser), M은 중년 여자로 어머니(Mother), B는 젊은 남자로 소년(Boy), C는 젊은 여자로 아이(Child)를 의미한다(Saunders, Love 104). 『갈망』은 마치 사중주곡처럼이 네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듯 혼잣말을 하듯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험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갈망』은“희미한 플롯의 흔적”(plot-shades)을 가지고 있으며(Cohn n.p.),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소아성애 도착자인A“( I am a paedophile.”156)와 젊은 여자 C, 젊은 남자 B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M“( I want a child.”157;“ I need a child.”167) 사이에 서로 갈구하고 뿌리치는 애증의 얼룩을 읽을 수 있다. A와 C의 관계는『폭파』에서의 이언과 케이트처럼“불평등하고, 비상호적이며 아마도 가학적인”것이다(Saunders, Love 105). 아이를 원하던 M을 거부했던 B는( “M: 사랑이 온다면./B: 어쨌든 난 아니야.”160) 이제 반대로 M을 갈망하나 거부당한다( “B: 내가 원하는 것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M: 어쨌든. 난. 아니야.”190). “어쨌든. 난. 아니야”(It’s just. Not. Me.)라는 거부는 시도동기(leitmotif)처럼 B와 M에 의해 되풀이되며 욕망의 어긋남을 보여준다.

    성서에서 셰익스피어, 하이네(Heine), T. S. 엘리엇, 베켓, 까뮈(Camus), 체홉(Chekhov), 에드가(David Edgar)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직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갈망』은 언어의 음악성을 실험하는 작품이며, 네 개의 목소리로 연주되는 사중주와 같다. 『갈망』에서 말의 소리와 리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악성은 그 말의 의미만큼 중요하다. 주요 대사는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옮겨가며 되풀이되어 발설되어 시도동기처럼 극의 분위기를 주조하고, 어떤 문장들은 네목소리에 의해 나누어서 발설되면서 이 목소리들이 결국 한 사람의 내면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가령 극을 시작하는 C의 첫 대사“당신은 내게 죽은 사람이야”(You’re dead to me. 155)는“당신”이 누구인지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인간관계전반을 부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당신”은 다음 대사를 읊는 B일수도, C와의 과거가 있는 A일 수도 있고, C가 곧 구체적으로 말하듯 그녀의 어머니일수도 있다( “I told my mother, You’re dead to me.”156). 이 대사는 C에 의해 다시 반복되고(168), M에 의해 다시 상기되며(196), 극의 마지막에서 다시 C에의해 불변의 진실로 봉인된다.

    『갈망』은 사랑이 불가능함을 확인하며, 사랑 대신 죽음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풍경을 그린다.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네 목소리는 사랑의 기억과 욕망, 좌절로 고통스러워한다. “사랑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데, 사랑이 나를 파괴하였다”는 A의 대사(174)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적용된다. “사랑이 온다면”(M: If love would come. 160, 166), “사랑의 행위”(B: An act of love: 167, 196), “내 생애의 사랑”(B: Du bist die Liebe meines Lebens: 172), “진짜 사랑”(B: A real love:190),“ 사랑해줘”(B: Love me. 184),“ 사랑해”(C: I love you. 190),“ 그녀를 사랑해 그녀를 보고 싶어”(C: I love her I miss her. 193),“ 아직 널 사랑해“(A: I love you still. 183) 등 이들은 강박관념처럼 사랑의 기억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갈구는 2페이지에 달하는 A의 긴 대사에서 절정에 달한다.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 네게 내 옷을 주고 네 신발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고 네가 목욕하는 동안 계단에 앉아 있고 목을 마사지해 주고 발에 입 맞추고 손을 잡고 밥 먹으러 가고. . . . ”(169-170).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럭키(Lucky)의 장광설을 연상시키는 A의 대사는 연인과 함께 하고 싶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숨가쁘게 나열하며“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너를 향한 나의 압도적인 불멸의 강력한 무조건적인 모든 것을 포용하는 가슴을 풍요롭게 하는 마음을 확장시키는 계속되는 결코 끝나지 않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자 한다(170). 타자에 대한 절실한 갈망의 표현인 이 대사는“분명 감동적이지만”(Saunders, Love 107), 소아성애 도착자인 A의 전력은 이 대사에 일종의 아이러니를 입히며, A의 폭풍 같은 대사에 숨을 몰아쉬고“그만”(this has to stop)을 반복해 외치는 C의 반응은 사랑에 내재된 폭력성을 암시한다. 사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C: 내 감정적 느낌을 신체로도 느끼고 싶어. 굶주림./ M: 만신창. A: 망가짐.”(179); “M: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 적이 있다고 나는 결코 말하지 않을 거야./ B: 그녀를 찾았다/ A: 그녀를 사랑했다/ C: 그녀를 잃었다/ M: 끝.”(196);“ C: 기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 M: 욕망에서 자유롭게,/ C: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건들지 마,/ B: 아무 말도 하지 마./ A: 보이지 않게.”(198).

    『정화』가 사랑의“지금”을 극화하며 사랑의 강도를 보여준다면, 『갈망』은 그“지금”이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로드의 냉소적인 말처럼 사랑은 일순간만 지속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폭력에 저항하는 동안은 사랑의 내적 지구성을 의심할 겨를이 없다. 궁정풍 사랑(courtly love)이“성적 관계의 부재를 보상하는 세련된 방법으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마치 우리 자신인듯 가장하는 것”처럼(Lacan, Encore 69),『 정화』의 폭력은 사랑의 장애를 외적인 요인으로 돌림으로써 사랑의 본질적 불가능을 감추는 것이다. 지젝이 설명하듯, 외부적 장애물은 대상의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대상에의 접근을 좌절시키는 외부적 방해는 기실 그 방해가 없으면 대상이 직접적으로 접근가능하다는 환상(illusion)을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한다”(Žižek 155).“ 백 일 밤을 창 밖 정원에서 기다리면 당신 것이 되겠다”는 기녀(courtesan)와 사랑에 빠진 중국 고관이 99일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린 이야기도 사랑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장애를 설치하는 예이다(Barthes 40). “『폭파』와『정화』는 우리가 극복 할 것이라고 믿고 싶은 끔찍한(distressing) 일들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은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케인은 한 인터뷰에서 말한다(Sierz 116). 그러나 그 끔찍한 일을 극복하여도 사랑은 소멸하며, 이것을 인식하기에『갈망』과『4.48 사이코시스』는 절망적이다. “넌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어”(158, 190)—C와 A에 의해 두 번 반복되는 이 대사는“사랑은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라는 라캉의 유명한 정의처럼 사랑이 허상임을 지적한다. 상징계의 사랑은 충족불가능한 욕망의 대상을 대신하여 끝없이 대체물을 갈구하는 욕망의 순환 고리이다. 『갈망』후반의 표면적 평화는 인물들이 이 욕망의 사슬을 끊고 죽음을 갈망하며 가능해진다. 케인의 말대로『갈망』은 인물들이“씨발, 난 빠질 거야”(Fuck this, I’m out of here)라며 포기해 버리는 최초의 극이다(Saunders, Love 108).

    “이렇게 계속 될 순 없어요”(This can’t go on)—샤를로테(Charlotte)가 베르테르(Werther)에게 던지는 이 말은“마법과도 같은 첫 만남의 경이로움이 지나고 나면, 사랑의 상황은 곧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기에”모든 연인이 당면하는 문제이다(Barthes 140). 다시, 자살은 사랑의 불가능을 은폐하는 편리한 방편이 된다. 케인이 목숨을 끊기 직전에 완성된『4.48 사이코시스』와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연관성이 간과되어 온 것은 이 극이 케인의 자살록(suicidal note)으로 축소되는 것을 피하려는 이유도 적지 않다. 괴테의『베르테르』에 기초한 극을 써달라는 한 극단의 요청에 케인은 이미『4.48 사이코시스』를 쓰는 중이며 둘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답한다(Hattenstone n.p.). 『4.48 사이코시스』는『갈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니셜조차 없이 인물 구분이 아예 없어지고 몇 개인지 모를 목소리의 텍스트로 구성되며 대사와 무대지문마저도 구분되지 않는다.8 극은 의사로 짐작되는 목소리와의 대화가 다섯 차례 진행되는 사이사이 독백, 페이지에 흩어진 숫자들, 정신병의 증상과 처방, 무수한 약들의 리스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동사들의 나열, 형용사들의 나열, 끝없이 나열되는 to 부정사구들 등 두서없이 흘러가는 내면의 풍경이 펼쳐진다. 『4.48 사이코시스』는 현실과 자아의 경계가 와해되는 정신적 붕괴(psychotic breakdown)를 겪는 내면에 대한 것이라고 케인은 말한다(Saunders, Love 111). 화자를 절망과 자살로 이끄는 원인은『베르테르』와의 연관성을 고려한다면 사랑이다. 그러나 이사랑은 베르테르처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로테가 결혼했다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4시 48분에/절망이 찾아올 때/나는 목을 매리라/내 연인의 숨소리에 맞추어”(207)라는 대사가 보여주듯, 화자의 연인은 현실적으로 곁에 있지만 여전히 화자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화자 옆에 잠이 든 연인은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의 사슬의 한 고리일 뿐이다. 화자는 아마 과거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 자신을 떠나간 연인을 생각한다(218-19). 화자의 좌절은“부재하는 것을 사랑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도록 지어진”(Built to be lonely/ to love the absent 219) 인간의 실존 때문이며, 그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본원적 결핍 때문이다( “I can fill my space/ fill my time/ but nothing can fill this void in my heart”219). 베르테르와 달리 화자 는“나를 개의치 않는 사람 때문에 죽어가고/ 알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죽어간다”(243).

    케인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상징적 질서에서 해방되어 애초에 가졌을 합일과 충만감을 되찾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드 보스(Laurens de Vos)가 말하듯 케인 작품의 호소력이“상징적 질서의 위반”에 있다(135).9 케인의 극이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케인이 추구하는 극단적 사랑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실재적 향락의 주변을 맴돈다. 절대적 사랑의 불가능에 대한 케인의 대안은 죽음이다. “이런 순간이 더 있었더라면”(103)—케인이 히폴리터스의 마지막 대사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듯“완전한 제정신과 인간성을 누릴 단 한 순간”은 죽음으로써만 성취된다(Saunders,“ Beckettian”71). 1999년 2월 케인은 150알의 항울제와 50알의 수면제를 삼켰다. 이틀 후 케인은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났다.

    <영 남 대>

    *이 연구는 2008년도 영남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한 것임.   1케인의 자살 이후, 케인의 작품이 사랑, 특히“순수한 사랑의 불가능”에 대한 것이라는 평가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고(Hattenstone n.p.), 케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케인 작품의 핵심으로 보지만“( Love is in all the plays.”Macdonald 125;“ Most of the work ... is about love. Yet they are impossible loves.”Kenyon 148),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연구는 부재하다.   2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케인은 2001년 출판된 전집에 포함된 다섯 편의 극과 짧은 영화대본『스킨』(Skin) 이외에 출간되지 않은 세 편의 모놀로그를 남겼다. 이 모놀로그들은『폭파』이전에 쓰였으며 브리스톨과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 등에서 공연되었다.모놀로그에 대한 연구는 Rebellato 28-44를 볼 것.   3케인이 도발극 작가들과 구별되는 고전적인 작가라는 주장은 이미 쏜더스(Graham Saunders)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본 논문은 사랑과 폭력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쏜더스의 논의와 차별성을 갖는다.   4이 인용의 출처는 1998년 Nils Tabert와의 인터뷰로, Graham Saunders, About Kane: The Playwright and the Work(London: Faber and Faber, 2009)에 실려 있다. 이 편저는 케인에 대한 소개, 케인의 인터뷰 및 기사, 케인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2부는 편집자의 주관에 의해 주제별로 발췌되어 있기는 하지만 케인의 목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편저에서 인용할 경우 글쓰기의 편의상 원 출처는 생략한다.   5케인의 작품은 Sarah Kane: Complete Plays(London: Methuen, 2000)에서 인용하며, 괄호 안에 해당 대사 혹은 장면의 페이지수를 적는 것으로 한다.   6예를 들어, 씨어즈는 케인의 초고에 나타난 인종적 언급들을 살펴보며『폭파』의 폭력성과 인종문제를 논한다(Sierz“Looks”). 애스턴은『폭파』, 『정화』, 『갈망』에 나타난 “사랑의 구원적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궁극적으로 케인이“남성성의 파괴적이고 잔인한 힘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Aston 89, 97). 케인의 폭력을 푸코적 처벌의 스펙타클(spectacle of punishment)로 해석하는 애스턴의 논의는 사랑을 상상계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폭력을 남성적이고 상징계적인 것으로 이분화하는 문제점이 있다. 국내의 케인 연구 또한 정치적 해석이 주도적이다. 『폭파』와 폭력의 문제에 대한 논문은 박일형(2004), 정병언(2009), 최성희(2010); 푸코의 훈육 개념에 기반하여“포스트모던한 정치극”으로의『정화』를 해석한 논문은 김영덕(2007)을 볼 것.   7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인간은 리비도의 사용을 최소화하려는 경제 원리를 따르며, 쾌락 원칙은 쾌(Lust)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자아보존이라는 현실 원칙에 의해 보완된다(301-06; 594-97).   82000년 런던 로열코트극장의 초연에서는“희생자. 가해자. 방관자.”(231)에 착안하여 두 여자와 한 남자로 대사를 나누었다.   9드 보스는 아르토의 서브젝틸(subjectile) 개념으로『4.48 사이코시스』를 분석하며, 케인이 초기극의 물리적 폭력에서 후기극의 언어에의 폭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상징계를 벗어나“분열된 주체의 재합일”을 이루기 위해 언어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de Vos 126-38).

  • 1. 김 영덕 (2007) 「 “완벽한 몸”: 사라 케인의『정화』에 나타난 훈육, 욕망, 신체」. [『 영미어문학』] P.85-102 google
  • 2. 박 일형 (2004) 「재현의 폭력과 체험으로서의 연극: 사라 케인의『폭파』」. [『영미문학 페미니즘』] Vol.12 P.105-27 google
  • 3. 정 병언 (2009) 「폭력의 일상성과 차이의 공간 ― 사라 케인의『폭파』」. [『영어영문학21』] Vol.22 P.223-38 google
  • 4. 최 성희 (2010) 「‘폭력에 기반하여’사라 케인의 Blasted 읽기」. [『현대영미드라마』] Vol.23 P.165-88 google
  • 5. 토넬리 프랑코., 박 형섭 2001 『 잔혹성의 미학: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 연극의 미학적 접근』. google
  • 6. Artaud Antonin. 1958 Theater and Its Double. Trans. Mary Caroline Richards. google
  • 7. Aston Elaine 2003 Feminist Views on the English Stage: Women Playwrights, 1990-2000. google
  • 8. Barthes Roland. 2010 A Lover’s Discourse: Fragments. Originally published in French in 1977. Trans. Richard Howard. google
  • 9. Billington Michael. 1995 Review of Blasted. Guardian. google
  • 10. Cohn Ruby. (2001) “Sarah Kane, an Architect of Drama.” [Cycnos] Vol.18 P.39-49 google
  • 11. De Vos Laurens 2010 “Sarah Kane and Antonin Artaud: Cruelty Towards the Subjectile.” Sarah Kane in Context. Ed. De Vos and Saunders. P.126-38 google
  • 12. De Vos 2010 Laurens and Graham Saunders, ed. Sarah Kane in Context. google
  • 13. Freud Sigmund. 1989 “Formulations on the Two Principles of Mental Functioning.” The Freud Reader. Ed. Peter Gay. P.301-306 google
  • 14. Freud Sigmund. 1989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The Freud Reader. Ed. Peter Gay. P.594-626 google
  • 15. Greig David. 2000 “Introduction.” Sarah Kane: Complete Plays. P.ix-xviii google
  • 16. Hattenstone Simon. 2000 “A Sad Hurrah.” Guardian Weekend. google
  • 17. Innes Christopher. 1993 Avant-Garde Theatre, 1892-1992. google
  • 18. Innes Christopher. 2002 Modern British Drama: The Twentieth Century. google
  • 19. Kane Sarah. 2000 Sarah Kane: Complete Plays. google
  • 20. Kenyon Mel. 2002 “Conversation with Mel Kenyon.” 13 November 2000. Interviewed by Graham Saunders. ‘Love Me or Kill Me’: Sarah Kane and the Theatre of Extremes. P.143-53 google
  • 21. Lacan Jacques. 1981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XI. Trans. Alan Sheridan. Ed. Jacques-Alain Miller. google
  • 22. Lacan Jacques. 1999 On Feminine Sexuality: The Limits of Love and Knowledge. Book XX. Encore 1972-73. Trans. Bruce Fink. Ed. Jacques-Alain Miller google
  • 23. Macdonald James. 2002 “Conversation with James Macdonald.” 8 August 2000. Interviewed by Graham Saunders. ‘Love Me or Kill Me’: Sarah Kane and the Theatre of Extremes. P.121-27 google
  • 24. Ravenhill Mark. 2001 Mark Ravenhill Plays: 1. google
  • 25. Rebellato Dan. (1999) “Sarah Kane: An Appreciation.” [New Theatre Quarterly] Vol.15 P.280-81 google
  • 26. Rebellato Dan. 2010 “Sarah Kane before Blasted: The Monologues.” Sarah Kane in Context. Ed. De Vos and Saunders. P.28-44 google
  • 27. Saunders Graham 2002 ‘Love Me or Kill Me’: Sarah Kane and the Theatre of Extremes. google
  • 28. Saunders Graham (2003) “‘Just a Word on a Page and There Is the Drama.’ Sarah Kane’s Theatrical Legacy.” [Contemporary Theatre Review] Vol.13 P.97-110 google doi
  • 29. Saunders Graham (2004) “‘Out Vile Jelly’’ Sarah Kane’s Blasted and Shakespeare’s King Lear.” [New Theatre Quarterly] Vol.20 P.69-78 google doi
  • 30. Saunders Graham About Kane: The Playwright and th Work. P.2009 google
  • 31. Saunders Graham 2010 “The Beckettian World of Sarah Kane.” Sarah Kane in Context. Ed. De Vos and Saunders. P.68-79 google
  • 32. Sellar Tom. (1996) “Truth and Dare: Sarah Kane’s Blasted.” [Theater] Vol.27 P.29-34 google doi
  • 33. Sierz Aleks. 2000 In-yer-face Theatre: British Drama Today. google
  • 34. Sierz Aleks. 2010 “‘Looks like There’s a War on’: Sarah Kane’s Blasted: Political Theatre and the Muslim Other.” Sarah Kane in Context. Ed. De Vos and Saunders. P.45-56 google
  • 35. Tinker Jack. 1995 Review of Blasted. Daily Mail. google
  • 36. Twomey Jay. (2007) “Blasted Hope: Theology and Violence in Sarah Kane.” [The Journal of Religion and Theatr] Vol.6 P.110-23 google
  • 37. ?i?ek Slavoj 1999 “Courtly Love, or Woman as Thing.” The ?i?ek Reader. Ed. Elizabeth Wright and Edmond Wright. P.148-73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