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 Etude sur la Valeur Polysemique du Present en Francais

프랑스어 현재시제의 다의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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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Notre étude a pour objet d’expliciter la polysémie du Présent : en dépit de la croyance implicitement acceptée du public, le Présent a plusieurs valeurs sémantiques. Ce qui nous intéresse le plus, parmi ces valeurs-État contigent ou permanent, État conséquent dans le présent, Procesus inaccompli actuel, et Habitude actuelle, ce sont l'État et le Procesus. C'est parce que ces deux valeurs sont censées principales lors de l'étude aspecto-temporelle des Opérateurs Temporels, en d'autres termes, des Temps grammaticaux. L'intervalle de ces deux valeurs représentées par le Présent possède en commun une structure temporelle à borne droite ouverte, et un déroulement en cours au moment de parole. Nous avons essayé de faire valoir la différence notionelle de ‘permanent’ et ‘contingent’ au niveau de la valeur sémantique des Temps, comme Présent et Imparfait. Si le contenu sémantique était vrai ou non à un moment passé, cette vérité se sert de la critère de différencier le permanent et le contingent. La morphologie syntaxique ‘être en train de + inf.’ peut être utilisée seulement avec le Procesus. Ce qui permet d'employer la syntaxe ‘être en train de + inf.’, c'est quand l'énonciateur a la connaissance phénomenale de l'objet-animé ou inanimé-qu'il envisage de décrire. Au contraire, si l'énonciateur veut parler quelque priorité de l'objet, il doit utiliser le Présent simple, en se fondant sur sa connaissance structurale. Par conséquent, on peut dire que le cognitif humain joue un rôle décisif dans le choix du Temps.


  • KEYWORD

    present , aspect , progressif , etat , polysemie

  • 1. 들어가는 글

    언어적 시간은 외부적 시간 혹은 우주적 시간과 구분되어야 한다. 한 사건이 발생하여 진행되는 과정과 평행하게 전개되는 시간이 외부적 시간이라면 언어적 시간은 외부적 시간을 인간이 인식한 것을 표상한 결과물이다. 개념적으로만 본다면 외부적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직선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직선을 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한 것이 외부적 시간의 개념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언어적 시간은 이렇게 사건이 개념화된 영역과 정확하게 대응되지 않는다. 언어적 시간을 표상하는 시제는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의 부분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프랑스어 동사는 활용(conjugaison)을 통해 동사의 의미자질이 현동화 된다. 현동화된 동사에서 시제, 인칭, 수, 법, 태 등의 문법범주는 하나의 형태소에 의해 드러난다1). 발화체에서 주어의 인칭, 수는 형태소와 일대일의 대응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시제는 의미대상인 사건의 시간축상의 위치, 전개 양상 등과 관련하여 복합적인 관계를 맺는다. 발화체에 사용된 동사가 동일한 형태를 갖는다 해도, 즉 동일한 시제로 사용된다 해도 의미하는 대상-사건 혹은 상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시제의 다의성이라고 본다. 본 논문에서 우리는 프랑스어 현재시제의 다의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피고 다의성의 이면에 잠재하고 있는 사건과 인간의 인식, 그리고 언어적 시간의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시제의 다의성이 다음 발화체들이 갖는 사행특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어느 품사보다도 동사는 많은 정보를 포함한다. 현동화한 동사는 문장에서 시제 외에 여러 정보를 알려준다. 프랑스어 동사는 시제, 시상, 인칭, 수, 성, 태, 법 등의 문법범주가 중첩된 언어기호이다.

    2. 현재시제 발화체들의 의미 유형

    발화체가 갖는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개념도구들이 필요하다. 상태(état)나 행위(action)가 점유하는 시간길이인 사행구간(intervalle)은 물리적 시간 안에서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하여 전개된다. 사행구간에는 개시되는 시점(point de départ)인 좌측 경계(borne gauche)와 종결점(fin)인 우측 경계(borne droite)가 존재한다. 참조점(point référentiel)은 발화자의 인식(cognitif)이 사행구간에 대응하는 시간이다. 발화시점(moment de parole)은 인식한 사행구간을 언어표지로 생산해내는 순간이다. 물리적으로는 실제 사건인 사행구간에는 시작점이 있어야만 하지만 화자는 그 시작점인 좌측 경계(borne gauche)를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인식했다 해도 굳이 그 좌측 경계를 발화에 포함하지 않기도 한다.

    현재시제가 표상하는 의미영역을 몇 개의 유형으로 구분하여 우리의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신타스와 데클레는 시제(Temps)를 다의성을 갖는 문법범주로 간주한다. 그들은 문장의 술어에 의해 표상되는 모든 상태나 동작은 상태(État), 사건(Événement), 진행(Processus)의 3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2).

    현재시제의 의미치(valeur sémantique)를 현재의 우연한 상태, 항구적인 상태, 미완의 진행, 현재시점에서의 반복, 현재 진행되는 결과적인 상태라고 하는 신타스와 데클레는 현재시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2-1. 현재의 우연한 상태

    여기에서 거론한 발화체들의 의미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두 가지 가설을 세우고자 한다. 하나는 역동성의 부재(absent)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시점의 존재여부이다.

    첫째, 위의 발화체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상태(état)를 의미한다는 것은 발화체의 동사들에게서 역동성(dynamisme)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역동성은 발화체 주어인 개체가 술어의 의미인 행위를 주체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인데 이 발화체들에게는 그런 역동성이 결여되어 있다. 역동성이 없다는 것은 의도를 나타내는 부사와의 양립가능성을 통해 밝혀진다3). (4)는 의도를 의미하는 부사 ‘délibérément’. ‘volontairement’, ‘exprès’과 같이 사용되면 비문이 된다.

    위의 발화체가 비문이 되는 것은 문장의 주어인 개체가 의도적으로 행위를 했다고 볼만한 징후가 없기 때문이다. 발화체 (4)는 변함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므로 이 사행구간에는 좌측 경계 혹은 우측 경계가 없다. 이 말은 (4)가 지시하는 사행구간에는 전이(transition)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을 변경시킬 요소나 전환의 순간이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이 작용하여 상황을 변화시킬 수도 없었다4).

    둘째로, 개시점의 존재 여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상태는 동작, 행위와는 달리 지속의 속성을 갖는다. 이런 속성을 갖는 상태도 분명히 개시점과 지속되는 순간들 그리고 종결점이 있을 것이지만 위에서 거론한 발화체들에게서는 개시점이나 종결점이 표시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감지되지도 않는다. 단지 발화시점에서 지속하는 상황만을 의미한다. 개시점이나 종결점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주장은 ‘pendant +시간길이’와 같은 상황보어를 결합시켜 보면 분명해진다.

    (1a)와는 달리 (1b)에서는 개시점과 종결점이 분명히 감지된다. 비록 언제부터 언제까지 잠이 들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개시점에서부터 종결점에 이르는 사행구간동안 개는 잠을 잤고 그 기간이 ‘3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a)가 비문이 되는 것은 개시점과 종결점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1a)와 (1b)가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시제가 표상하는 의미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미영역이라는 것은, 발화시를 중심으로 과거-현재의 대립뿐만이 아니라 상태가 지속된 사행구간의 시간유형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발화체 (4) Il sait la réponse는 ‘알고 있는 상태’에 진입하는 개시점이 과거에 존재했을 것이지만 그 개시점이 현재시제의 발화체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개시점은 ‘현재의 상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이면서 필요조건 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와 필요조건이 위의 발화체들에서는 암시되지 않는다. 시간의 축(axe du temps)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가 명백히 드러내지 않고 현재의 상태만을 표상하는 것이 위 발화체들의 공통적인 의미이다. 발화체 (4)의 시제를 복합과거와 단순미래로 치환하면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된다.

    발화체 (4a-1)에 대하여 우리는 ‘Il ne sait plus la réponse’라는 함의(implication)를 추론해낼 수 있다. 동사 savoir의 과거분사형태는 사행의 완료를 의미하므로 이제 더 이상 그는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 있지 않다’라는 것이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이다. 발화체 (4a-1)에는 전이(transition)가 내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4b)는 ‘Il ne sait pas encore la réponse’ 라는 전제(présupposition)가 지금, 현재에 내재한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사이에는 전이가 있다. 발화체 (4), (4a-1), (4b)의 차이는 함의와 전제의 성립여부, 전이의 내재 여부일 것인데, 이런 논리적 차이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문법범주는 다름 아닌 시상(aspect)이다. 달리 말하면 발화체 (4), (4a-1), (4b)는 시제를 달리함으로써 사건의 시점을 현재, 과거, 미래에 위치시킬 뿐만 아니라 사건(혹은 상태)이 지속, 완료 혹은 개시되는 지를 보여준다. 즉 사건 혹은 상태가 전개되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5).

    이 발화체의 주어를 달리하면 (6)의 사행과는 다른 사행이 나타난다6).

    (6a)가 의미하는 사행은 상태일 수도 있고 진행일수도 있다. 문장의 주어의 유/무생의 특성에 따라 사행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인데, 이와 관련된 사항은 우리의 논의를 벗어난다.

    우리는 여기까지의 논의를 통해 현재시제의 의미치 중 하나인 상태에는 역동성이 부재한다는 것과 개시점인 좌측 경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역동성이 없다는 것은, 의도를 나타내는 부사와 결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어 증명하였고 좌측 경계가 없다는 것은 ‘pendant+시간길이’와의 양립 불가능성, 현재시제는 과거나 미래시제와는 달리 좌-우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 다는 것으로 입증했다.

       2-2. 항구적인 상태

    항구적인 상태(État permanent)에는 발화체의 사행구간에 전이나 개시점이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종결점인 우측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어떤 과거의 순간에 이 상태로의 진입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의미되는 사행구간은 단지 현재에 지속하는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발화상황이 달라지면 항구적인 상태가 현재 진행하는 상황으로 변환될 수도 있다.

    발화체 (8a)는 (8)과는 달리 진행하는 상황을 표상한다. 발화체 (8)이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인 반면 발화체 (8a)는 현재 목도할 수 있는 사건을 기술한다. 야채를 냄비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은 물이 100도에서 끓기 시작했다는 것과 이전에는 100도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동시에 의미한다. (8a)에는 이전과 현재사이에 전이가 존재한다. 그 전이는 현 상태의 개시점을 의미한다.

    발화체 (9)와 (9a)의 차이는 ‘지구는 자전한다’라는 사실을 언술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진리처럼 언술하거나 구체적 사실로서 진술하는데서 차이가 비롯한다.

    그런데 현재의 우연적인 상태와 항구적인 상태는 서로 구별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현재시제로 쓰인 두 종류의 상태(État)의 사행구간이 동일한 유형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이어서 유형을 구분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제시될 수 있는지와 연관된다.

    직관적으로 보아 ‘항구적인 상태’는 앞서 거론한 ‘우연적인 상태’보다 지속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리고 항구적인 상태는 현재 발화상화에서 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지속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발화체가 과거시점에 발화되었다 해도 발화체들의 진리치(valeur de vérité)는 참(vrai)이어야 한다. 정말 그러한지를 다음의 테스트를 통해 알아보자.

    (2a)의 진리치가 의미하는 상황이 참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사실(factuel)의 문제이다. 조셉의 과거 건강상태를 확인하면 진위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 그는 건강했었는데 우연하게 ‘최근에’, ‘얼마 전부터’, ‘여행을 마치고 나서’ 아플 수도 있다. 사행구간에 전이가 포함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2a)와는 달리 (2b)는 (2)와는 대립을 이루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발화체(2b), (2)는 서로 이어서 사용될 수 있다.

    항구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발화체 (10)이 시제를 달리하여 반과거로 사용될 경우 사행구간은 (10)의 사행구간과는 달라진다. (10)의 사행구간이 발화시점을 중심으로 개시점이나 종결점을 전제하거나 함의하지 않은 반면에 (10a)는 발화시점 이전(avant)에 종결되었을 수도 있을 사행구간을 표상한다. 달리 말해 (10a)의 사행구간은 ‘지금, 현재’의 발화시점까지는 지속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를 지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는 발화체(10)이 의미하려는 상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즉 (10a)는 (10)에 앞선 ‘분명히 참’인 과거의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10)의 진리치가 과거에도 참이지 않은 상황-(10b)에 의해 표상되는 사행구간-은 (10)이 의도하는 상황의 표상과는 모순된다. 항구적 상태는 발화순간과 관계없이 언제나 참이어야 한다. 반과거 부정문을 통해 우연적 상태와 항구적 상태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연적 상태가 반과거 부정문으로 사용되어도 자연스러운 반면 항구적 상태는 반과거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현재와는 의미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과정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언어 시스템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한 세계와 인식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항구적인 상태를 현재시제로만 표상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화체 (10)이 미래시제로 쓰인다면7) 상황은 달라진다. 즉 그 상황은 현재의 상황과는 다른 상태로의 진입, 그리하여 현재의 사실과 미래의 사실 사이에 전이가 존재하는 상황이 함의된다.

    현재시제가 표상하는 사건 혹은 상태는 우리의 목전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시제(반과거, 복합과거, 단순과거)나 단순미래가 표상하는 사행구간들은 현재의 발화순간과는 단절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사행, 혹은 미래에까지 지속될 사행은 현재시제로 그리고 현재시제로만 표상될 수 있다. 항구적인 상태는 현재시제에 의해서만 의미될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상태와 현재시제와의 관계는 현재시제의 구성을 논의하면서 다시 살피기로 한다.

       2-3. 현재의 미완료 과정, 진행

    미완료는 상태나 행위가 종결점 혹은 완결점에 이르지 않는 상황이다. 진행은 ‘être en train de+부정법’의 통사구조와 결합할 수 있다.

    두 발화체의 사행구간에 좌측 경계는 존재하지만 우측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행의 개시점은 있지만 종결점은 없다. 그래서 사행의 의미인 상태나 행위가 발화시점에 미완결된 채 지속하거나 진행된다. 목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 표상되는 것이다. 진행(progressif)은 프랑스어에서는 ‘être en train de + ’로, 영어로는 ‘be+현재분사’, 한국어로는 ‘-고있’라는 진행형 형태소를 사용해 표현된다.

    앞서 거론했던 ‘우연한 상태’와 ‘현재의 미완료 과정’은 동일한 특성의 사행구간을 갖는다. 개시점은 있으나 종결점이 없는 상황이 표상된다. 진행과 상태를 구별할 수 있는 통사적 특징은 진행형 시제와 단순형 시제이다. 진행형 시제의 사용과 이에 대한 제약은 뒤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2-4. 현재의 습관

    발화체가 습관(habitude)을 의미하는 경우, 습관이 되는 행위는 반복되어야 한다. 습관은 지속과 유사하지만 술어인 동사는 의미론적으로 상태동사는 배제된다.

    반복되기 위해서는 행위가 발생한 후 종결되어야 한다. 그 후 시간을 두고 다시 발생과 종결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발생과 지속이 현재의 발화시점에서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반복의 사행구간은 현재 진행(Processus, progressif)과 유사하다. 작은 단위의 행위들이 모여서 큰 단위의 진행을 이룬다. 작은 단위의 행위들은 사건(Événement)인데, 발생하여 종결되고, 다시 발생하여 종결하는 반복을 이어간다. 반복이 현재 진행과 유사한 사행구간을 갖지만 현재진행형 시제로 사용될 수 없다는 통사적 제한을 받는다8). 이것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2-5. 현재에 진행되는 결과적인 상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어지는 상황은 발화시점인 현재에도 진행되거나 전개되므로 현재시제로 사용되어야 한다. 다음의 예문이 이런 상황을 표상한다.

    이 발화체의 사행구간의 우측으로는 전이가 없지만 좌측에는 개시점에 해당하는 전이가 존재한다. 그 개시점은 현재로부터 ‘2년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현재시제의 다의적 의미기능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 Cintas와 Desclés의 논의에 의하면 현재시제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 혹은 진행되는 상태의 모든 유형, 즉 상태, 사건 그리고 진행을 의미한다. 우연한 상태, 결과적인 현재의 상태, 그리고 항구적인 상태는 개시점에 해당하는 좌측 경계(borne)의 존재여부에 의해서 구분된다. 습관은 단일한 사건들의 합으로, 진행은 하나의 상태로 제시된다.

    이러한 구분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특성은 현재 발화시점에 사행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행이 언제 종결될 것인지를 말해주는 표지가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현재시제가 의미하는 사행구간의 우측에는 경계가 없다.

    그런데 사행의 우측으로 경계, 곧 사행의 종결점이 존재한다면, 그런 사행을 현재시제로 의미할 수 있을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사행에 개시점만 있는 경우, 개시점과 종결점이 있는 경우 그리고 종결점만 표시된 다음 발화체를 비교해보자.

    우리가 인용했던 신타스와 데클레의 분류에 의하면, (16)은 현재에도 지속하는 결과적인 상태9)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결과적인 상태라고 보는 이유는 개시점에 해당하는 순간이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9시’와 일치한다, 개시점과 종결점이 모두 표시된 (17)은 어떤 사행구간을 갖는가? 신타스와 데클레의 분류에 의하면 현재시제가 표상하는 모든 사행의 우측은 개방되어 있다. 그래야만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7)은 우측이 개방되어 있지 않으므로 비문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이 비문이 아닌 이유는 이 발화체가 ‘반복, 습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반복, 습관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이 발화체는 비문이 된다10).

    이와는 달리 사행구간 우측에만 경계가 설정된 (18)은 비문인가, 정문인가? 비교를 위하여 우측에 경계가 표시된 예문 (19)를 살펴보자. (19)는 정문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18)과 (19)는 어떻게 다른가? 현재시제로 쓰이고 우측 경계가 표시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비문과 정문으로 판단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발화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현재시제가 표상할 수 있는 의미영역을 세밀하게 고찰해야 한다. 발화체 층위가 아니라 랑그 차원에서 현재시제의 기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시상연산자로서 현재시제를 알아보기로 한다.

    2)Cintas, P.F., Desclès, J. P., “Signification des temps grammaticaux”, Le Français dans le monde, no. 214, 1988. 상태는 개시점과 종결점이 모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즉 시작과 끝이 없다. 사건은 개시점과 종결점이 모두 폐쇄되어 있다. 그래서 사건은 시작되어 종결된 사행구간을 갖는다. 진행은 개시점은 있으나 종결점은 있거나 없는 사행구간을 갖는다. 진행이 완결될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종결점의 유‧무가 드러난다.   3)상태동사들은 진행형이나 명령문, 문장의 주어인 개체의 의도를 의미하는 부사, 근접과거, 단순과거 시제와는 양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거론하는 상태는 문장층위에서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의미소에 의해 분류된 동사의 부류(상태동사, 행위동사 등)과는 거리가 있다. Hoepelman,J., Rohrer,L, “≪Déjà≫ et ≪encore≫ et les temps du passé du français”, La notion d'aspect, Université de Metz, pp.120-121.   4)역동성 부재는 발화체가 명령법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être + 형용사 속사’의 통사구조를 갖는 발화체 (2), (3), (5)의 주어에게 명령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6)처럼 무생물인 개체가 주어인 경우에도 명령은 이루어질 수 없다. (1)의 경우는 명령이 가능할까? 물론 이 발화체에 사용된 동사는 ‘dors !’라는 명령법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발화체가 현재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잠자고 있는 현재의 상태이지 잠에 빠져 드는 과정을 언술하는 것이 아니다.   5)상태의 지속과 상태의 전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예를 보자. (a) Tu es la plus belle au monde. (b) Tu es toujours la plus belle au monde. (c) Tu es encore la plus belle au monde. 이 예문들 중 (a)는 상태의 지속, (b)에서는 상태의 지속에 대한 화자(énonciateur)의 확신, (c)에서는 현재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의 전이가 감지된다. 그런데 그 전이는 주어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는, 외부적인 상황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6)동사의 주어와 통사구조에 따라 의미되는 사행구간이 달라질 수 있음은 본인의 졸고(원유상, 「다의어 동사의 시상분기에 관한 연구」, 『프랑스문화연구』 제 17집, 2008. pp.289-313.)를 참고바람.   7)프랑스어의 미래시제는 총체상(perfectif)을 갖는다. 사행의 시작부터 종결까지가 하나의 단위로 제시된다. 단순과거의 용법과 동일하다. 반과거와 현재는 분할상(sécant)을 의미한다. 의미되는 사행에는 원칙적으로 시작과 종결이 없다.   8)영어에서는 다음의 예문이 각각 습관과 진행을 의미한다. 1.(습관) He smokes. 2. (진행) He is smoking. 습관과 진행은 세계에 대한 화자의 인식에서 비롯한다. 화자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면 (1)을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의 현재 행위만을 목도한 화자라면 (2)를 말할 것이다.   9)여기에서 사용된 ‘상태’라는 용어를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형용사의 주된 의미인 ‘상태’ 혹은 시상분류에서 사용되는 상태동사(sembler, connaître)에서 사용되는 용어와는 다르다. 본문에서 사용한 ‘상태’는 사건을 상태, 동작, 진행으로 유형화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10)문장의 문법성(grammaticalité)이 시상과 관련되는 예는 드물지 않다. (1) ‘A quatre heures le prisonnier parla encore : 부사 ‘encore’는 ‘지속’의 의미가 아니라 ‘반복’의 의미로 사용될 때만 이 문장은 정문이 된다. 단순과거의 총체적인 의미로서 기동상과 지속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Hoepelman,J., Rohrer,L, “≪Déjà≫ et ≪encore≫ et les temps du passé du français”, La notion d'aspect, Université de Metz. pp.123-124참조. (2) “~오늘도 화장을 고치곤 해~”(한국 대중가요 가사) : ‘오늘’이라는 발화시점과 ‘고치곤 해’라는 반복이 양립할 수 없으므로 잘못된 문장이라는 필자의 주장에 대학원 여학생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교수님이 여자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 여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들여다보거든요”.

    3. 현재시제의 구성과 시상

    현재시제가 의미하는 영역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있다. 다음 예문이 현재와 과거의 사행구간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4주전부터 내가 일해 왔다는 사실은 현재 발화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즉 미래에 내가 여기에서 ‘일할 것’이라는 것은 ‘가능(possible)11)’한 사실이다. 가능하다는 것은 ‘필연적(nécessaire)’과 대비되는 양태(modalité) 개념으로서 긍정과 부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내가 여기에 다시 오게 될 사건은 미래에 전개된다. 이 사건에는 현재의 순간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발화체 (20)과 (21)에서 보듯이 과거에 이루어진 부분(ω)과 미래에 계속될 부분(α)을 포함하는 것이 현재시제의 구성원리이다. α와 ω로 구성된 현재시제는 “그 비율구성에 따라 다양한 의미효과들”12)을 생성할 수 있다. 이 논의의 근본적인 이론을 제시한 기욤에 따르면 프랑스어 시제는 랑그(langue)차원에서 그 기능이 결정되어 있다. 그 기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따라 담화(discours)차원에서 발화체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 이론에 의하면 발화체 (19) Jean part demain. 는 순수히 미래의 사실만을 의미하는 정문이다. 이와는 달리 발화체 (18)‘* Jean travaille jusqu'à six heures’ 는 왜 정문이 될 수 없을까. 이 문제는 현재시제가 시상을 한정하는 연산자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고찰해야 해결될 수 있다.

    시상을 결정하는 시상연산자로서 현재시제의 의미는 상태와 진행이라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상태는 반복, 습관, 지속 등의 시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18)이 반복이나 습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문장은 참이 된다13). 진행과 상태는 우측 경계가 열려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측 경계가 닫혀진 발화체 (18)은 비문이다14).

    그런데 다음의 발화체는 비록 우측에 경계가 설정되어 있지만 정문이 된다.

    사행구간에 우측 경계가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18)은 비문, (19)는 정문으로 판단된다. 그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사행구간(I : Intrevalle)을 구성하는 성분을 이루어진(ω : accompli) 부분과 이루어져야 할(α : accomplissement) 부분의 합으로 볼 때 I=ω+α이라는 산식이 성립한다. (19)의 사행은 I(1)= ω(0)+α(1)로서, 이루어진 사행(accompli)은 제로(0)이고 이루어져야 할 사행(α(1))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발화체에 내일(demain)이라는 부사가 사용되지 않는다면 표상되는 의미는 ‘현재(en ce momnet)’ 진행하는 사행구간일 것이다.

    발화체 (18)에서 ‘jusqu'à six heures’가 삭제된다면 이 발화체 역시 현재에 진행되는 사행구간을 의미하는 정문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18)이 상황보어를 지닌 채 정문이 되려면 사행의 완료부분이 제로(ω(0))인 상황, 즉 ‘Jean doit travailler jusqu'à six heures’로 고쳐 쓰면 될 것이다. 법(mode)이 개입하게 되면 이 발화체의 사행구간은 순수하게 미래에 이루어질 순간들만으로 구성된다.

    이 테스트들을 통해 현재시제로 쓰인 발화체는 ‘현재의 발화점에서 사행이 진행(전개,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사실상 현재의 시점에서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도 현재시제는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거나 그 진행과정이 임박한 것으로 사행을 표상한다15).

    그런데 (18)의 발화체에 'Aujourd'hui'라는 상황보어를 도입하면 이 문장은 정문이 된다.

    이렇게 되면 발화체에는 시간을 표시하는 상황보어가 두 개가 된다. 두개의 상황보어는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먼저 ‘오늘’이라는 상황보어는 사행구간보다 상위인 사행구간을 상정한다. 상황보어 ‘6시까지’는 사행의 우측 경계를 이룬다. 상위 사행구간과 우측 경계와의 관계는 포함관계로서 ‘6시까지’∈‘오늘’이다. 일을 마치는 시간은 6시인데, 그 뒤로 개방된 시간공간이 있다. 그 시간공간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오늘’이라는 상황보어이다. 우측 경계인 6시 이후에도 개방된 공간이 있다는 조건에서 이 발화체는 정문이 될 수 있다16). 이러한 조건에서 (18)은 ‘현재에 진행하는 결과적인 상태’와 유사한 사행구간을 갖는다. 이 발화자의 인식은 6시 이전부터 6시 이후에 이르는 영역에 걸쳐있다.

    상위 사행구간이 ‘오늘’에서 ‘이번 주에’, ‘금년에’로 연장된다면 ‘6시까지 일하다’라는 사건(Événement)은 반복되어질 것이다. ‘이번 주에’, ‘금년에’를 사용하면 현재 반복되는 습관을 의미할 수 있다.

    사행의 전체가 미래에 완료되어야 할 부분(α=1)으로만 구성되는 발화체인 (19)는 상황보어 ‘Aujourd'hui’와 결합될 수 없다.

    결합될 수 없는 이유는 상황보어 ‘Aujourd'hui’에 의해 상정되는 시간영역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루어진 부분은 제로이고 이루어져야 할 부분은 내일(demain)이라는 시간영역과 일치한다. (19)의 두 상황보어사이에는 교합되는 부분(intersection)이 전혀 없다. (19)는 (18a)가 ‘오늘’이라는 시간영역이 ‘현재, 6시까지, 6시 이후’의 부분들로 채워져 있는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11)가능하다는 것은 ‘필연적(nécessairement)와 대비되는 양태(modalité) 개념이다. 가능하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12)박동열, 「시제교육과 정신역학이론의 시제체계」, 『프랑스어문교육』, 제 20집, 2005. p.55.   13)(18)이 반복이나 습관을 매끄럽게 의미하려면 다음과 같은 상황보어가 필요하다. (18) Ces jours-ci (depuis quelques temps), Jean travaille jusqu'à six heures.   14)이 발화체는 ‘반복’ 혹은 ‘습관’으로는 해석될 수 있지만 진행의 의미의 의미는 가질 수 없다.   15)파티에서 다음 대화가 오고 가는 상황이 현재순간과 사행의 진행과정을 보여준다. (a) - Vous dansez ? - Oui, d'accord. (b) - Vous dansez ? - Non, merci. (a)와 (b)는 현재순간에 사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행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질문자는 판단한다.   16)Sylvie Mellet, “La valeur aspectuelle du présent”, BCN, CNRS, Nice, 2006. p.8. PDF. 우리의 논의와 관련된 부분만을 인용한다. Dans ces exemples, ce qui est donné à voir, ce n'est pas l'entier du procès, ni sa partie déjà accomplie, mais c'est la progression de la borne droite ouverte qui délimite l'intérieur strict I(p) jusqu'à atteindre la borne droite fermée qui clôt la frontière et ouvre sur l'extérieur E(non-p) ; le circonstant précise la durée de cette progression, c'est-à-dire en somme l'étendue de la zone frontière.

    4. 결론을 대신하여 : 진행과 상태

    현재시제가 표상하는 사행은 진행과 상태이다. 우연적이거나 항구적인 상태, 반복되는 현재의 습관, 과거로부터 이어진 상태들은 모두 상태이다. 현재시점에서 전개되는 행위는 진행이다. 현재시제가 의미하는 영역은 상태(État)와 진행(Processus inaccompli actuel ; progressif)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이 두 부류를 구분하려면 발화상황에 의존해야만 한다.

    발화체 (23)이 표상하는 사행은 상태일 수도 있고 진행일 수도 있다. 발화자가 뽈의 흡연습관을 알고 있다면 (23)은 상태를 표상하고 현재 뽈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진행으로 표상될 것이다.

    (23b)는 ‘être en train de fumer'라는 형태소와 결합하여 ‘Il est en train de fumer’로 변환될 수 있다. 상태를 의미하는 (23a)는 이러한 통사 구조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il fume’라는 발화체가 이런 다의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23a)을 말하는 사람은 뽈의 습관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23b)은 뽈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대답이다. Goldsmith와 Woisetchlaeger은 화자의 세상에 관한 인식을 구조적 지식(structural knowledge)와 현상적 지식(phenomenal knowledge)17)으로 구분한다. 구조적 지식은 개체가 항구적으로 갖는 속성의 영역에 속하고 현상적 지식은 현재 확인될 수 개체의 속성을 말한다. 그리고 구조적 지식과 현상적 지식은 의미하려는 사건을 화자가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영어에서는 현재 단순시제와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프랑스어에서는 현재의 단순형이 진행과 상태를 모두 의미할 수 있으므로 현재 진행형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voilà’, ‘en ce moment’, ‘maintenant’이 발화체에 사용되면 발화체의 의미는 진행의 의미를 갖는다.

    속성은 그 자체로 지속하려는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사행구간에 우측경계가 없다. 즉 종결점이 없다. 종결점이 없으면서 현재 시점에서 진리치가 참인 상태를 표상할 연산자로는 현재시제 단순형이 적합하다. 진행되는 사건도 우측 경계가 없다. 진행은 현재시제의 단순형이나 진행형 모두로 표현될 수 있다. 상태와 진행의 대립관계를 보여주는 아래의 함의추론을 통해 우리의 주장은 타당해진다. (앞선 예문의 번호를 그대로 적는다.)

    현재시제가 표상하는 사행은 다의적이다. 현재시제에 의해 의미되는 사행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첫째, 현재순간에 사행의 진리치가 유효하고 둘째, 우측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순간에 유효할 수 있는 조건은, 사행을 인식하는 참조시가 사행구간내에 위치하고 참조시는 또한 발화순간과 일치해야 한다. 사행구간이 종결될 순간인 우측 경계가 없기에 현재시제는 종결되지 않은 사건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대로 속성propriété, 상태état, 습관habitude등은 지속하려는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들을 현재시제가 서술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어 현재시제의 기능을 대별한다면 상태와 진행의 표상이다. 현재 시제 단순형은 상태état를 표상하는데 이 부류에는 속성propriété, 상태état, 습관habitude 등이 포함된다. 현재시제 진행형으로는 진행processus을 전달하기에 적절하다. 진행은 목전에서 전개되는 사행을 말한다.

    세계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구조적이라면 현재시제 단순형이 화자의 인식을 충실히 반영한다. 반면, 화자의 지식이 현상적인 경우, 발화체에 사용된 현재시제는 진행의 의미를 갖는다.

    17)John Goldsmith, Erich Woisetchlaeger, “The logic of the English progressive”, Linguistic Inquiry, 13, 79-89. 1982. p. 80.

  • 1. 박 동열 2005 [『프랑스어문교육』] Vol.20 P.37-59
  • 2. 신 언호 2006 [『한국어 의미학』] Vol.21 P.165-181
  • 3. 원 유상 2008 [『프랑스문화연구』] Vol.17 P.289-313
  • 4. Cintas (Pierre), Descles (Jean) 1988 “Signification des temps grammaticaux” google
  • 5. Goldsmith (John), Woisetchlaeger (Erich) 1982 “The logic of the English progressive” [Linguistic Inquiry] Vol.13 P.79-89 google
  • 6. Hoepelman (Jean), Rohrer (L.) 1978 “≪Deja≫ et ≪encore≫ et les temps du passe du francais” P.117-135 google
  • 7. Mellet (Sylvie) 2006 “La valeur aspectuelle du present” P.1-10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