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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Scientific Revolution in the Lab: Mad Scientists’ Labs in Victorian Novels 실험실의 과학 혁명―빅토리아시대 소설에 나타난 ‘미친’과학자들의 실험실*
  • 비영리 CC BY-NC
ABSTRACT
Scientific Revolution in the Lab: Mad Scientists’ Labs in Victorian Novels
KEYWORD
Scientific Revolution , Mad Scientist , Laboratory , Frankenstein , Dr. Jekyll , Dr. Moreau
  • I. 서론

    “빅토리아 시대는 전례 없는 과학의 발견과 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진 시기” (Guy 1)로서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과학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이 시대에 있어 가장 강력한 변화의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다윈의 진화론은 빅토리아 시대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심리적 동력과,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현상은“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들을 사로잡았던 논쟁의 두 주제가 주로 종교와 과학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Kucich 213). 산업혁명을 거친 이후의 근대과학의 급속한 성장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원리와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소설 속에 불러들이게 된다. 특히 생명 원리와 신체 변형을 과학적으로 다루어보려는 과학자들의 다양한 실험이『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1818), 『지킬 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 1886), 『모로우 박사의 섬』(The Island of Dr. Moreau 1896)와 같은 소설에 반영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사회적 전통과 신의 섭리를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로“기껏해야 기괴하고 약간은 우스운, 보통 이상한, 그리고 보통은 비건전하고 자주 아주 악한”(Millhauser 288)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이“아직 옥스퍼드 혹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되는 교과목이 아니었고 종종 독립적인 아마추어들이 추구하는 열정”(Postlethwaite 99) 정도로 인식되었고, 더군다나 대부분의 실험실은 어둡고, 황량한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와 실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소설 속에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에 걸쳐 과학실험 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되던 그 당시 실험실은 현재와 같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공인받은 연구소로서의 기능을 수행치 못했기 때문에 과학자의 능력이 과소평가되었고, 심지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연구의 특이성으로 인해 오히려 그들이 기이한‘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라 불리기까지 하였다.

    ‘미친’과학자의 모습은『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모로우 박사의 섬』과 같은 빅토리아 시대 과학소설 전반에 걸쳐 잘 반영되어 나타난다. 국내에서 이러한 과학소설에 나타난 진화론적 측면의 자연과학 담론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례 이루어진 바 있으나 과학자들과 그들의 실험실에 초점을 맞추어 수행된 연구는 거의 없다.1 반면 국외에서는‘미친 과학자’에 대한 여러 연구를 통해‘미친’이라는 개념이 이미 과학소설 문학담론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구가 미친 과학자의 연구와 실험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논의로 발전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그리고 모로우 박사가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개별적인 과학적 욕망과 그들의 이교적인 실험과의 상관관계, 어두운 실험실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 실험들이 그 과학자들에게 기이하고 악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는 시대적 환경, 그리고 마지막으로‘미친’그들의 이교적 실험과 고립되고 음침한 실험실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험이 성취해 내고 있는 과학적 혁명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봄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의 발전 양상이 문학 속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비록 문학과 역사가 일체성을 지니고 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문학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학을 통한 빅토리아 시대의 자연과학의 발전상을 뒤집어 보는 본 연구는 소설 속에의 약간은 과장된‘미친’과학자들의 작업이 소위 과학혁명이라 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 단계에 어떻게 이르게 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학 담론을 통한 과학자와 과학실험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은 단순히 과학의 역사 연구가 제공할 수 없는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증진할 수있는 새로운 방법론이라고도 여겨진다.

    1빅토리아 시대 영국문학을 통해 자연과 과학에 대해 논한 국내 주요 논문은 다음과 같다: 문상화. 「다윈의 패러다임: 19세기 영국소설과 진화론의 상호연관성에 관한 연구」. 『19세기 영어권 문학』6. 1(2002): 5-23. 문상화. 「진화론, 소설 그리고 제국: 영국소설에 나타난 왜곡된 진화론」.『 19세기 영어권 문학』9. 3(2005): 61-80. 양영수.「 근대영국소설에 나타난 진화론적 자연관: 조지 엘리엇과 토마스 하디의 문학 비교」.『 신영어영문학』37(2007): 109-33. 김종갑. 「문학‘과’과학 그리고 이데올로기」. 『과학사상』 13(1995): 58-85. 추재욱. 「『프랑켄슈타인』과『멋진 신세계』에 나타난 과학과 생명윤리연구: 포스트휴먼 시대의 생태학적 생명윤리」.『 현대영미소설』16. 2(2009): 27-48. 추재욱.「 진화론과 생태학의 관점에서 본 과학, 의학과 몸의 상호관계성 연구」.『 근대영미소설』17. 3(2010): 129-51. 추재욱. 「19세기 영소설에 나타난 두 문화의 갈등과 통섭연구: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주홍색 연구』를 중심으로」. 『19세기영어권문학』5. 2(2011): 123-48.  2예컨대, 헤인즈(Roslynn D. Haynes)의『파우스트에서 스트렌지러브까지』(From Faustus to Strangelove)는 서구문학에 나타난 많은 미친 과학자의 유형을 분석하고 있으며, 밀하우저(Milton Millhauser)의 논문「스위프트에서 스티븐슨까지의 소설에 나타난 과학자들: 뉴튼 박사와 하이드」“( Dr. Newton and Mr. Hyde, Scientists in Fiction from Swift to Stevenson”)와 스타일즈(Anne Stiles)의「마음과 문학: H. G. 웰즈와 미친 과학자의 진화」“( Literature in Mind: H. G. Wells and the Evolution of the Mad Scientist”) 그리고 슈머(Joachim Schummer)의「미친 과학자의 역사적 기원: 19세기 문학 속의 화학자들」(“Historical Roots of the“Mad Scientist”: Chemists in Nineteenth-century Literature”) 등은 서구 문학과 빅토리아 시대에 나타난 비정상적으로 비춰지는 다양한 과학자의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II. 본론

       1.‘ 미친’과학자의 베이컨식 과학적 욕망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과학자의 유형을 분류한 헤인즈는『파우스트에서 스트렌지러브까지』의 서문에서 과학자를 연금술사로서의 과학자,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과학자, 무감각하고 비정한 과학자, 영웅적인 모험가로서의 과학자, 안절부절 유형의 통제력이 부족한 과학자, 이상주의자로서의 과학자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3-4). 그 개별적 특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소설 속 과학자의 모습은 대개 사회적인 현실감각과 사회적응력이 부족하게 묘사된다. 달리 보면 과학자는 현실 사회와 동떨어진 욕망을 추구하는 괴상한 파우스트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살펴보려는 주요 인물인 프랑켄슈타인, 지킬박사, 모로우 박사 모두가 파우스트적인 유형의 인물들로 간주될 수 있다. 인간의 연구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아 보이는 영역에 대한 그들의 연구는 종교적 신념이나 생명윤리 의식과는 무관하다. 유달리 그들은 은밀한 곳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작업을 수행함으로 인해 결국 기괴하고, 정신이상의 미친 과학자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실험실 환경의 기이성과 그 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이론과 지식의 이교적인 도발성은 그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편화하도록 하였다. 텍스트에 나타난 그 과학자들이 행하는 실험의 내용과 더불어 그들의 작업 환경을 살펴보면 그들이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가가 드러난다.

    프랑켄슈타인은 교회를 단순히 주검의 수용소 정도로 여겼으며, 밤낮을 시체보관소에서 보내며, 주검의 자세한 관찰을 통해 생리학적인 죽음과 생명의“세세한 인과작용”(the minutia of causation)을 탐구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 스스로 생명의“놀라운 비밀”(so astonishing a secret)을 발견하여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기이한 야망을 지니게 된다(34). 지킬 박사(Dr. Jekyll)의 과학적 야망의 경우도 프랑켄슈타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실험 목표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선과 악을 분리시킬 수 있는‘초월적인 약’(transcendental medicine)의 발명이다. 지킬 박사의 기이하고 독특한 성격은 그의 친구 랜연 박사(Dr. Lanyon)와 그의 변호사 어터슨(Mr. Utterson) 사이의 대화를 통해 쉽게 파악될 수 있다. 어터슨이 랜연 박사를 방문하여 지킬의 소재를 물었을 때,랜연은“나에겐 지킬이 너무나 몽상적으로 된지가 벌써 10년이 넘습니다. 그의 마음 속 무엇인가가 잘 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 . . 그러한 비과학적인 허튼소리는”진정한 우정과 신뢰의 상징인“다몬(Damon)과 피티아스(Pythias) 사이라도 갈라놓게 하였을 것입니다”라고 답한다(12). 지킬은 비과학적이고도 공상적인 생각에 몰두하고 있어서, 자신이 개발하려는“초월적 약품의 효능을 부정하는”다른 친구들에게 적대감까지 드러낸다(53). 모로우 박사(Dr. Moreau)는 그의 실험의 잔인성으로 인해“그 나라에서 순전히 사람들의 조소를 받으며 쫓겨났다.”곧 그의 실험의 잔혹성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면서 거센 여론에 의해 영국에서 추방되었다. 어느 날“한 개가 비참하게 가죽이 벗겨지고 다리가 절단된 채로 모로우의 집을 탈출한”뜻밖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연구방법이“국민에 호소하는”유명한 편집자의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심지어 모로우 박사의 실험을 돕던 연구조수마저도 편집자인 자신의 사촌이 그 기사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정도로 그의 실험방법은 잔혹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모로우 박사의 동료 의사들과 의사협회도 그문제와 관련하여 그에게 도움을 주려하지 않았다(32).

    이처럼 과학자들의 과학적 발견과 연구가 기이하게 여겨져, 그들은 비정상적이고 광적인, 혹은 미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지닌 특이한 천재성도 오늘날과 다르게 당시엔 일종의 정신적인 질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19세기 후기 저널리스트였던 니스벳(John Ferguson Nisbet)은『천재의 광증』(Insanity of Genius)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천재성은“핏 속에 흐르고 있는 . . .신경의 무질서”(325)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천재성이란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질병과 함께 나타나는 증세”(Stiles 124)로서 천재를 심각한 도덕적, 정신적결함을 지닌 정신병자로 여긴 것이다. 과학자들이 미친 혹은 제정신이 아닌 인물들로 간주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3

    흥미롭게도 스타일즈에 따르면“낭만주의자들은 천재성을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는 신비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 . . 빅토리아인들은 창조적 능력을 찬미하기 보다는 천재성을 병적인 것으로 여기며 중간자적인 사람을 진화론적 이상형으로 떠받들었다”(126). 곧 낭만주의 작가들은 과학의 승리보단 그것의 한계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이“우주를 개별적인 측정 가능한 실재의 합으로 제한함으로서, 감성, 비이성적 경험, 정신적인 바램들, 그리고 개성의 유용성을 거부하며 인간 역시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Haynes 7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가 과학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쉬베버(S. S. Schweber)의 주장엔 신빙성이 있다. 그는“초기 빅토리아 과학자가 가졌던 낭만적 가치와 영감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다윈의 비글호의 항해 일지를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19). 낭만주의자들에겐 과학자들이 우주와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과학자들은 기이한 연구 환경 하에 혐오스러운 과학 실험을 행하는 가운데 속에서도 자연에 내재한 무한한 초월적 힘과 능력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낭만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신중심주의의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근대과학이 시작되는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뉴튼적인 세계관과 베이컨적인 세계관이 공존한다. “데카르트는 동물의 신체를 복잡한 기계로 묘사하거나 이해하였다. . . . 심지어 인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Haynes 74). 이러한 생각이 바로 세계가 엄격한 이성과 원리에 기반해 마치 시계처럼 유기적인 기계 체계 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뉴튼의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도 신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그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고 믿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활발한 과학연구는 뉴튼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식물학 분류 수준에서 벗어나 화학, 전기와 자기장의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 관찰되긴 하나 설명할 수 없는 원거리의 신비로운 힘의 영역으로 옮겨지게”(75) 되고, 모든 자연을 과학을 통해 시녀화할 수 있다는 베이컨적인 세계관이 더욱 큰 힘을 얻게 된다.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의 출간 이후 확산된 다윈의 진화론은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베이컨의 경험론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론은 자연스럽게 신의 초월적 세계관을 내파해 나가면서 만물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인간화해가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근대 과학자들의 실험은 신의 원리에서 벗어난 이교적인 작업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인문학과 과학에 관한아놀드(Matthew Arnold)와 헉슬리(T. H. Huxley)의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이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존 인문학적 질서를 붕괴하고 새로운 학문적, 지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한다”(추재욱 125). 결과적으로 한편에선 전통적인 세계관을 거부하는 과학자들의 실험에 대해 반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곧 과학자들의 연구가 기존의 전통적인 존재론적 인식론적인 세계를 뛰어넘고 있기에 그들은 오만하고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따라서 헤인즈는 심지어 18세기 주요 문학가들도 과학자들의 도덕적 결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의 스승인 M. 발드만(Waldman) 교수 역시 베이컨의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예컨대“가장 위대한 발전을 이루어왔고, 앞으로도 그리할”(31) 것이라고 믿고 있는 화학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의 화학은 베이컨적 세계관의 중심 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미래 연구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교훈, 즉“자네의 소원이 단순히 소소한 실험가가 아니라, 진정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면, 자네에게 수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자연과학에 전념하라 충고 하겠네”(31)라 말하며 프랑켄슈타인에게 뉴튼적 사고에서 벗어나 폭넓은 근대적인 과학적 세계관을 주문한다. 슈머 역시“새로운 화학의 반형이상학적인 태도,”“자연신학과의 관계성의 결핍,”그리고“(유기적) 화학적 분석을 실험 연구의 기반으로 확립한 것,”“이 모든 것들이 형이상학적인 기독교 작가들의 편견과 종교적 분노에 기여를”하였기 때문에 화학의 이교도적인 연구는 작가와 일반인들의 공격의 표적이 되었음을 지적한다(62).

       2.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 환경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들의 새로운 과학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의 변화, 그리고 외부에 비쳐진 과학자의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위해 작품 속에 묘사된 과학자의 성장과 교육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킬 박사나 모로우 박사의 경우와는 다르게 프랑켄슈타인의 어린 시절의 교육 과정이 작품 속에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고 있다. 그의 과학 연구의 동기와 배경에 대해 살핌으로써 빅토리아 시대 전후의 과학 연구의 역사적 배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3세의 프랑켄슈타인은 소논(Thonon) 온천 여행 중 묵게 된 한 여관에서 코넬리우스 아그리파(Cornelius Agrippa)의 저서를 우연히 접하였고, “근대 자연과학의 효용성에 대해 경멸하고 있었던”차에“영생과 권력”(immortality and power 29)을 추구하던 옛 과학자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4 이후 개별적인관심에 의해 알버투스 매그누스(Albertus Magnus)와 패라셀서스(Paracelsus)의 서적들을 찾아 읽고“철학자의 돌과 불로장생약에 대한 탐구”(23)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15세 때 집 인근에서 번개가 떡갈나무를 내려친 사건을 계기로 전기 작용의 역할을 알게 되고 난 후, 그 자신의“상상력의 주군들을 그리 오랫동안 통치해왔던”그 옛 과학자들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여러 날동안 자연과학 강연에 참석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부분의 강연을 놓치게 되고, 간신히 후반부 강연에 참석해 듣게 된 칼륨(potassium), 붕소(boron), 황산염(sulphates)과 산화물(oxyds) 등과 같은 낯선 화학 용어들이 오히려 그가 화학을 더 혐오하도록 만든다(25). 결국 그가 17세에 이르러 잉골쉬타트(Ingolstadt) 대학에서 다니기 시작하면서 화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과학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화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트만 교수를 만나면서 새로운 과학의 잠재성을 깨닫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이러한 경험은 빅토리아 시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경험한 신선한 과학의 혁명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혁명의 중심에 바로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모로우 박사와 같은‘미친’과학자들이 서있다. 비록‘기껏해야 기괴하고 약간은 우스운, 보통이상한, 그리고 보통은 비건전하고 자주 아주 악한’자들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학자들은 바로 그 어둡고 침침한 자신들의 실험실에서 그 과학혁명을 성취해 낸다. 특히 변종, 곧 새롭고 비정상적인 것을 창조하고 싶은 과학자들이 행하는 실험의 기이한 목적과 비정상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업은 새로운 과학의 영역을 탐색하여 기존에 기대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비정상적인 과학자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과학자들의 고립주의”(Haynes 157)의 작업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그 사건에 대한 지킬의 진술」의 장에서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은밀하고 어두운 실험장소는 곧“[그들의]성격의 감옥”(the prisonhouse of[their]disposition)이다(59). 말하자면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실험실은 마치 쾌락, 욕망, 이성과 회환과 같은 모순적인 감정들이 생산되는“고뇌에 찬 의식의 자궁”(the agonized womb of consciousness)과도 같이 기능하고 있다(56).

    프랑켄슈타인에겐“그의 외로운 아파트”(28)가 그의 실험실이다. 그는 그 공간에서“열심의 정도가 너무나 진지하고 간절하였기에, 내가 아직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별이 아침 빛 속에 종종 사라지게 되었다”(32)라고 말할 정도로 연구에 전념한다. 그가 만든 괴물이 자신과 같은 여성 생명체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였을 때 그가 택한 작업 공간은“오크니 군도에 멀리 떨어진 섬”위에 위치해 있다. 지붕의 볏짚이 무너져 내려 있고, 벽에 회도 칠해져 있지 않고, “문에 경첩도 빠져있는”초라한 헛간이 그의 실험실이다. 하지만 그곳은 그가 일하면서“사람들의 눈을 피해 방해 받지 않고”(136) 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마찬가지로 모로우 박사의 경우 역시 그가 머무는 고립된 섬 자체가 실험실이자 반수반인의 사육장과 다름없다. 잔인한 의학적 생물학적 실험은 그 섬위‘고통의 집’(the House of Pain)이라 불리는 한 은밀한 공간에서 행해진다. 그 실험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쇠창살로 막혀있는 자그만 유리 없는 창”이 있는 방의 어두운 모퉁이를 지나야만 한다. 심지어 모로우 박사는 외부인이 있을경우“마치 안쪽 문을 다시 여는 것을 피하려는 듯 바깥 쪽문으로 그 방을”떠나 실험실 내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30). 왜냐하면 그 실험실 안에서 생리학적, 외과적 방법과 사지의 절단과 접합을 통해 다양한 동물들을 인간의 체형으로 변형시키는 끔찍스러운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가 사용하는 실험실 역시 한 때“저명한 외과의사의 해부실”로 사용되었다(26). 그 실험실은 천장을 통해 약간의 빛만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어 항상 어둡다. 거리에서 보았을 때, 그 실험실은 2층으로 된 건물 내부에 위치해 있고, “창문도 없이 아래층에 문 하나가 있고 2층의 앞부분은 퇴색된 벽이 있다. . . . 벨이나 손잡이도 없는 그 문은 페인트가 부풀어 올랐고, 변색되어 있다”(6). 내부로부터 그 실험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부엌의 방들을 지나 마당을 가로 질러가야 한다. 왜냐하면 실험실은 건물의 몸체로부터 독립되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실험실로의 접근은 자신 이외엔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실험실내부는“실험도구들로 가득한 테이블들, 상자들이 널려 있고, 포장 지푸라기들이 흩어져 있는 바닥과 안개 자욱한 지붕을 통해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26)으로 음산해 보인다.

    왜 그들의 연구실이 고립되어 있고 분위기가 음산할까? 그 이유가 아마도 과학자들의 기이한 개인적인 성향의 탓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맥락에서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그리고 모로우박사들과 같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사회와 괴리되고 열악할 수밖에 없는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기의 과학자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입지는 아주 취약했다.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불충분했으며 정치적인협조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험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어린(Thomas F. Gieryn)은 그 당시의 과학분야 관계자들의 언급을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수학자로서 최초 컴퓨터 개념의 기계를 발명한 배비지(Charles Babbage)가 과학자의 전문성이 인정되어야한다는 취지에서 소득 가능한 고용의 기회의 확대, 과학 교육을 위한 적절한 교육 커리큘럼의 개발의 필요성, 그리고 자연과학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내세우는 정부의 지나친 권위, 이 세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38). 또한『네이처지』(Nature) 최초 발행인이자 편집자인 J. 노만 락카이어(Norman Lockyer)의 “이 나라에는 절대적으로 과학의 연구자를 위한 직업이 없다. 진정한 과학 연구가 절대적으로 장려되지 않고 보수도 지불되지 않는다”라는 말과 다윈의 불독이라 칭함을 받는 T. H. 헉슬리의“생물과학에 있어서 아무리 유능하다하더라도 분명 빵과 치즈로 바꿔 받을 수가 없다”(39)는 말은 과학자들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런던 왕립기관의 총감독으로 재직하던 틴달(John Tyndall)은 과학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큰장애 요인으로 빅토리아 시대에 지속되고 있는 종교의 문화적인 권위와 기계, 기술, 상공 등과 같이 이미 자리를 잡고 힘을 과시하던 전통적인 분야의 세력들을 꼽고 있다(40). 그리고 연구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역시 큰 불만사항 중에 하나였다. 과학자에 대한 대우뿐만 아니라 실험실의 열악한 조건과 실험실에 대한 관심의 부재에 대한 염려는 밸러리-라돗(René Vallery-Radot)의『파스퇴르의 생애』(The Life of Pasteur)를 통해 잘 나타난다. 파스퇴르는 실험실의 열악성, 실험실에 대한 사회의 관심 부족, 그리고 사회발전에 있어서의 실험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파스퇴르가 비록 프랑스 생화학자이지만 그의 실험실에 대한 언급은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다른 주변 유렵국가들의 실험실 상황을 단적으로 잘 대변해주고있고, 동시에 실험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배비지, 노만, 틴달, 그리고 파스퇴르가 제기하고 있는 과학발전에 있어서의 주요 장애요인들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실험실 여건과 소외받는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과학자의 입장을 고려할때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그리고 모로우 박사가 처해 있을 수 있는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학자들의 작업은 전통 사회 가치에 어긋나는 뜻밖의 발견과 결과들을 가져옴으로써 종종 전통적인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의 갈등을 불러왔다.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밝히고 있듯이, 결과적으로“오래된 패러다임은 전체가 혹은 부분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 된다”(92). 그리고 난 후“변종을 만들어낸 패러다임과 이후 그 변종을 합법화하려는 패러다임 사이에 갈등이 분명 있게 된다”(97). 그런 면에서 보면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모로우 박사의 기괴한 과학적 도전은 불리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그들의 과학적 야망을 성취해 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실험실의 과학혁명

    17세기와 18세기 중반까지 과학 연구를 지배하던 뉴튼의 기계론적 세계의 패러다임에 따르자면“신은 영리한 제조공으로서 우주를 완벽한 기계로 만들었기에 그 어느 부분도 마모되거나 멈추어 서지 않는다”(Brush 3). 곧 신이 모든 물질의 상태의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기 때문에“모든 물질의 운동은 완벽하게 어느 한 순간 우주의 상황에 의해 결정되어진다”(4)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바탕 하에“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튼, 라브와지어 등에 의해 이루어진 1500-1800년대 사이”(4)의 새로운 발견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과학적 변화를 가져왔고, 브러쉬는 그 변화를 과학혁명이라 부른다.5 그에 따르면“과학혁명은 구체적인 이론과 기술의 근본적 변화뿐만 아니라 이론이 답해야하는 질문의 종류들과 그 답을 판단하는 기준들에 있어서 변화를 포함한다”(5). 이몬(William Eamon)은『과학 그리고 자연의 비밀』(Science and the Secrets of Nature)에서 그 두 전통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전통들은 우선 초기 근대 이후 나란히 존재하였다. 첫째의 전통은 천문학, 광학, 역학, 그리고 의학과 같이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으로 기존의 학문적전통을 유지하고 영구화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전통은 르네상스 기간에 생겨난 화학, 자기학, 전기, 그리고 야금술과 같은 근대 과학으로 고전 과학과는 대조적으로 산발적인 경험적 자료들이 존재하지만 일관된 이론적 독트린의 분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후자의 근대 과학의 전통에 있어서의 실험의 목적은 고전적인 과학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실험의 목표는 오래된 스콜라식의 비실증적인 과학 탐구방식과는 달리 기존에 알려진 사실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시각화하는 것이다(6-7). 곧 후자의“베이컨식 과학”(Baconian sciences)의 실험은 이론적으로 중립적인 사실의 규명을 위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관련 논문의 출판이 이루어졌지만, 후자의 경우는 넓은 범주의 많은 경험적 정보에 의존하였다. 예컨대, 길버트(William Gilbert)의 자기장 실험 연구는 중세의 자연철학보다는 실제 당시의 항해사들과 도구제작자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일(Robert Boyle)은 그의 화학실험에 있어 야금술사들, 염색업자들, 증류제조업자들로부터 절대적인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직업 전문가들의 정보에 많이 의존했다. 실제 그러한 실질적인 실험 활동은 이론적이고 학술적인차원에만 머물고 있는 과학자들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Eamon 8).

    『프랑켄슈타인』에서 월튼(Robert Walton) 선장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철저히 과학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는 모험을 통해“자석의 비밀”(the secret of the magnet), 즉“바늘을 끌어당기는 그 놀라운 힘”(the wondrous power which attracts the needle)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한다(6). 또한 북극과 가까운 곳에 항로를 개척하여 여러 달 걸리는 항해 기간을 단축시키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세 인류를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 새로운 자연철학은 스콜라 자연철학과는 대조적으로 자연의 껍데기가 아니라 내부“자연의 비밀”(Eamon 298)을 새로운 과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이몬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프랑켄슈타인』에서 발트만 교수도 새로운 과학자들이 직접“손을 흙에 집어넣고 눈을 현미경 혹은 도가니에 대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실제 기적을 행하며. . . 자연의 후미진 곳으로 파고들어 그것이 그 은밀한 곳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천상에 오르고, 피가 어떻게 순환하는지와 우리가숨 쉬는 공기의 성질을 발견한다”(30-31)라고 말한다. 과학연구의 변화에 대한발트만 교수의 구체적인 예들을 고려할 때 작가 매리 셸리 스스로가 새롭게 등장한 자연철학의 성격에 대한 변화를 잘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프랑켄슈타인은 전기, 자기장, 중력 등을 바탕으로 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경도되어 있는 월튼의 과학적 세계관을 넘어서고 있다. 예컨대, 프랑켄슈타인은 잉골슈타트 대학 내에서 교수들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그의 과학적 지식에 필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과학적 지식의 깊이와 폭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베이컨적 세계관을 지니고“생명의 스파크”(a spark of being, 38), 즉 발견된 전기 에너지를 활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한다. 이미 전기와 화학의 교차적 작용에 의해 신체작동이 가능하다는 공리가 수립된 상황이기 때문에,6 그의 실험은 발트만 교수를 통해 배운 근대 화학적 지식과 신체기관의 생리학적 지식을 응용한 창조 작업이다. 따라서 비록 프랑켄슈타인이 ‘영생과 권력’을 추구하던 연금술적인 공상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프랑켄슈타인의 인간 괴물 창조는 복합적인 과학연구의 결과라 추정할 수 있다.

    초월적인 신약을 개발하려던 지킬 박사는 스스로가“그의 연구방향이 그의 몸 내부에서 지속되는 전쟁에 대한 인식에 . . . 강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55)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지킬 박사 자신을 갈등하게 만들고 있는 한 신체에 동시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분리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화학적 방식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져 있다 할 수 있다. 그의 과학적 발견은 그 두 가지 성질의 것을 분리할 수 있는 기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모로우 박사는“과학 서클에서 자신의 특별한 상상력과 대화에서의 거침없는 공격성으로 인해 잘 알려져 있는 저명하고 노련한 생리학자였다. . . . 그는 수혈과 관련하여 매우 놀라운 몇몇 사실들을 글로 발표한 적이 있고, 게다가 병적인 성장들에 관해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32). 그가‘고통의 집’에서 만든 생명체들은 그의 생리학적 지식과 살아있는 형태의 성형술 연구로“깎고 뒤틀려져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진 동물들”이다(74). 곧 모든 동물들은 그에 의해 생리학적 수술을 거쳤다. 그 수술은“그 생명체의 화학적인 순환도 역시 지속적인 변형의 과정을 견뎌낼 수 있도록 다루어져야 하는”수술이다. 그는 역시“한 동물의 신체를 다른 동물 혹은 한 동물을 다른 동물로 신체 이식하는 법, 그것의 화학적반응과 성장의 방식들을 변형시키는 방법, 사족의 모형을 변형시키는 법, 그리고 실로 그것을 가장 친밀한 구조로 변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75). 모로우는 동물의 외형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동물들의 심리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프랜딕(Edward Prendick)에게“매시간 나는 산 생명체를 불타는 고통의 욕탕에 담근다네. 난 이리 말하겠네. 이번에 난 모든 동물을 불살라 이번에 내 자신 스스로 이성의 생명체를 만들도록 하겠네. 결국 10년의 세월 아닌가? 인간의 형상은 수십만 년 걸려 된 것일세”(81). 그의 실험에서 모로우 박사는 인간과 동물이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증하고자 한다. 동시에 동물들이 인간화되기 위해 오랜 진화의 세월없이도 생물학적 의학적 실험을 통해 인간으로 빨리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어한다.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그리고 모로우 박사의 실험에 있어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점은 그들 모두가 새롭게 등장한 과학 분야인 화학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킬 박사의 작업은 화학적 실험과 발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실험실이 이전에 해부학 연구실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어 자신의 작업이 진부한 해부학보다 상위의 자연과학 분야로 여기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모로우 박사의 실험 분야는 신체의 화학적 분비물의 작용과 더불어 신체의 생리학적 작용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병을 치료하려는 생리 해부학(pathological anatomy)이다. 크로포드(Catherine Crawford)는 19세기 초에 발행된 과학저널을 통해 법의학이 과학의학, 그 가운데 화학과 생리 해부학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밝힌다(208). 이는 곧 화학과 해부학, 그리고 해부학과 생리학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크로포드는 이 시기에 많은 의학자들 사이에 화학이더욱 많은 관심과 기대를 끌었다고 명시하며 당시 화학과 다른 과학 분야와의 연계성 및 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화학을 포함한 전반적인 과학 분야의 혁명적인 발전은 곧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간혹 이색적인 실험의 결과는 사회 안정에 균열을 불러일으키고, 전통적 믿음을 훼손시키고, 학자들 간의 의견을 분열시켰다. 예컨대, 실험실에서 나온 다양한 업적들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연구들은 항상 학문, 정부, 그리고 교회와 같은 곳에서 논쟁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이슈들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모로우박사가 감행하고 있는 획기적인 실험은 전통적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커다란 분쟁을 불러왔다. 해리스(Mason Harris)가 주장하고 있듯이, “진화론에 기대고있는 새로운 과학의 사제단은 더욱 전통적인 종교와 문학 지도층에 도전하였고”반면“생체절단 반대운동은 전통주의자들의 저항운동을 제공하였다”(104).  그것이 영국에서 1870년대 초에 생체절단에 대한 격론이 있던 이유이다. 코베(Frances Power Cobbe), 호건(George Hogan)과 허튼(Richard Hutton)을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이“1875년 11월 생체절단 반대운동에 설립하는 구성원에 참여하였다”(Preece 416). 1876년에 생체절단 법안이 발효된 이후, 생체절단은 자격증을 보유한 소수에게 유익한 공의를 위해 마취를 조건으로 한 실험의 경우에만 일부 허용되었다. 모로우 박사가 런던에서 쫓겨난 이유도 알고 보면 그의 동물 실험에 있어 이 때 통과된 법안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로우박사는 당시 이미 규정된 법의 처분에 의해 런던에서 추방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McLean 42).

    토마스 쿤이 제시하듯, 계속되는 과학혁명과 더불어 과학은 절대 진화를 멈출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분야의 일이“현존하는 과학적 실행을 전복하는 변종들을 더 이상 피해갈 수 없기”(6) 때문이다. 과학에서의 변화는 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산적인 동력이다. 다시 말해, 변화의 근원지로서의 빅토리아 시대의 실험실은 어둡고 음산하더라도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실험실에서의 과학적 발견과 기술적인 발명은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바깥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곧 빅토리아 시대에도“과학은 문화에 배어 있었다”(Levine 25). 그리고“기술적인 것이 거의 보이지 않게 자연적인 것과 융합될수 있고, 두 가지가 다시 영적인 것과 융합될 수”(Manlove 216) 있었다. 그 결과 빅토리아 시대에 있어서의 문화와 과학의 갈등을 거쳐 과학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권력을 획득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을때,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 모로우 박사와 같은 미친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의 다양한 과학적 기술적 성취는 정신적인 문화와 물질적인 사회를 구성하는데있어서 그리고 인간 세계의 패러다임을 개념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3이러한 사실은 푸코(Michel Foucault)의『광기와 문명: 이성의 시대에 있어서의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에 잘 나타나 있다. 푸코는 이 저서에서 16세기 말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고전 시대에 나타난 미침 혹은 광증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다루며, 광증에 대한 상당히 창조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광인들이 특별히 위험하게 될 때, 형별의 성격의 것이 아니긴 하더라도 그들은 광기의 물리적 공간을 제한하는 의도를 지닌 제도에 의해 구속받았다”(71). 다시 말해 그러한 분리와 격리 방법은 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와 현상의 주체를 위험한‘미침’과‘광증’의 대상으로 여기고, 일련의 제도와 법을 통해 그들을 격리시켜 사회의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로 해석된다.  4코넬리우스 아그리파(1486-1535)는 독일 신비주의자로『비학삼서』(De Occulta Philosophia Libri Tres 1529)의 저자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공부한 세 명 가운데 가장 괴팍한 신비주의자이며, 신학자이자 연금술사이다. 그는 마술을 철학과 수학이 결합된 물리학으로 보았다. 패라셀서스(1490-1451)의 본명은 Theophrastus von Hohenheim이다. 그는 스위스 의사, 화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다. 그의 관심은 중세 연금술과 초기 근대경험론적 의학으로 확대되었다. 계몽주의 과학역사가들은 패라셀서스의 실험주의와 전일론(holism)의 기여를 인정했다. 알버투스 매그누스(1193?-1280)는 도미니컨 신학자이자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고 교사로서 식물의 삶과 두뇌를 연구했다. 그는 질문에 답할 수있는 놋쇠로 만든 머리 장치, 환상, 혹은 기계적 장치를 고안하기도 하였다(Butler 254).  5반면 토마스 쿤은 19세기에 일어난“베이컨식 과학의 성공적인 양화”(successful quantification of the Baconian sciences)를 제 2과학혁명이라고 정의한다(217, 1977). 따라서 토마스 쿤은 19세기의 과학혁명을 브러쉬가 말하고 있는 과학혁명과 구분하여 제2과학혁명이라고 지칭한다.  6이탈리아의 뤼기 갤버니(Luigi Galvani)는 1791년에 개구리에 전기자극을 가함으로써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더 나아가 1800년대 초에는 소머리와 사형당한 죄수의 몸을 빌어 전기자극의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실험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것이 갤버니이론이다(Morus 95-98).

    III. 결론

    과학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행하는 비밀스러운 실험은 과학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사회의 각 분야에 많은 영향력 있는 발명과 발견들을 이루어낸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작업은 단지 자신들의 과학적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동을 위한 커다란 초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초월적인 약에 관한 랜연 박사와 지킬 박사 사이의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실험실로부터의 새로운 결과들은 학술계, 정부, 혹은 종교계에 있어서도 논쟁적인 이슈들을 불러왔다. 소위“진화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과학적 교리는 더욱 전통적인 종교적, 문학적 지도층에 도전하게 되었고, 반 생체실험 운동은 전통주의자들에게 직접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Harris 104). 아이러닉하게도 실험실의 영향력은 예술가들의 감수성에도 은밀하지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스윈번(Algernon Charles Swinburne)과 페이터(Walter Pater)와 같이 와일드(Oscar Wilde)도 역시 쾌락주의와 미학주의의 삶에 몰두하였다. 특히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작가 와일드는 생존을 위해 자연에 일어나고 있는“수많은 무작위의 [동식물] 변종들사이의 난잡한 다산의 성적인 생산”(King 318)에 주목하였고, 이러한 혁명적 진화론에 대한 와일드의 이해와 신념은 그가 몸을 중시하는 쾌락적 예술주의에 경도될 수 있었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험실의 문화적 영향력은 단순히 과학적인 측면의 영향력뿐 아니라 예술적, 문화적 층위의 다양한 삶의 관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발전의 영향으로 학문체계 및 교과과정의 변화가 이루어져, 과학 관련 과목들이 정규교과목으로 인문학과 더불어 교육되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이 예술, 문학, 고전 등과 같은 학문과 더불어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헤인즈가 언급하고 있듯이, 매력적이지 않은 그 과학자들이“전적으로 좋은사회로의 이행을 실천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결코 승리하지는 못한다할지라도, 때때로 그들은 질적인 승리를 이루며, 우리가 밝은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유일한 희망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294). 과학자들의 음침한 실험실에서의 과학실험만이 사회를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제시한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이 다양한 방면에서 사회의 문화와 발전 방향 설정에 큰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만화에 등장하는 이상하고 기괴한 과학자의 모습을 오늘날 과학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만큼 그들의 작업은 이미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고,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사회의 요구, 특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주문에 의해 과학 실험의 향방이 결정되고 있는 관계로 과학윤리의 상실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되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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