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ud’s and Derrida’s Theories of Mourning: “I Mourn Therefore I Am”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이론 ―“나는 애도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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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study compares and contrasts Freud’s “work of mourning” which mostly appears in his memorable essay “Mourning and Melancholia” and Derrida’s theory of mourning which appears in various works such as MEMOIRES for Paul de Man, The Work of Mourning, and others. Freud maintains that the mourner begins to sever emotional ties to the lost object through a labor of memory and eventually completes the work of mourning. It is a “testing of reality” that motivates the mourner to begin to relinquish emotional attachment to the lost object. Derrida, however, challenges Freudian work of mourning by saying that true mourning lies in “respecting the Otherness of the Other.” Derrida suggests that Freud’s “normal work of mourning” is “unjust betrayal” of the lost object because it “kills” and “devours” the other and thereby makes it part of the self. So he proposes that work of mourning has “to fail in order to succeed”: “success fails” and “failure succeeds.” There is an enormous, even epistemological, chasm between Freud who states that mourning, “however painful it may be, comes to a spontaneous end” and Derrida who states that “mourning is interminable. Inconsolable. Irreconcilable.” and “I mourn Therefore I am.” The former is the voice of “testing of reality” and common sense whereas the latter is that of utopian ethical vision. Yet neither seems to get the upper hand and they are kind of forced to maintain an ongoing dialogue with each other, for true mourning seems to lie somewhere in between.


  • KEYWORD

    mourning , melancholia , Freud , Derrida , introjection , incorporation

  • I

    자크 데리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리다의 말에 따르면, 그는 1965년에『그래마톨로지』(Grammatology)를 쓰면서부터 자신의 “철학적인 작업에 정신분석학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그것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없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는 정신분석학에 대해 “완전히 공백이거나 무지했던 게 아니라”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지식이 ‘자신’의 문제에 융합되지 않았을 뿐이었다”(Derrida & Roudinesco 170). 이는 정신분석학이 그의 철학적 담론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게 1965년경이었다는 말이고, 따라서『그래마톨로지』를 중심으로 하는 그의 해체이론이 정신분석학적 “자원”과 방법론에서 많은 걸 차용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이후에 발표한 글에서 정신분석이론을 다양하게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관한 많은 글들을 썼다. 예를 들어, 그의『포스트 카드』(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가 150페이지가 넘는 분량(259페이지에서 409페이지까지)을 프로이트에 할애하고 나머지 상당 부분도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이론과 관련된 글이라는 사실은 프로이트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준다.1

    그렇다고 데리다가 프로이트를 곧이곧대로 수용한 건 아니었다. 그가 프로이트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정신분석학의 친구”라고 칭하면서, “친구”를 “제휴의 자유, 아무런 제도적 지위가 없는 연대를 환기하는” 말이자 “비판을 위해, 토론을 위해, 상호적인 심문을 위해 유보, 철회, 혹은 거리를 유지하는” 자(Derrida & Roudinesco 167, Kirkby 463-64)라고 정의한 것은 프로이트와의 관계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2 데리다는 “경계를 하면서” “늘 조정되고 바뀌는 거리”(Derrida & Roudinesco 168)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아, 이드, 초자아, 억압의 1차 과정과 2차 과정” 등과 같은 “거창한 개념적인 틀”이 “과학사의 어떤 맥락에서 심리학과 결별하는 데 필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개념적인 장치가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Derrida & Roudinesco 172). 또한 그는 “정신분석이 근절될 수도 없고 그것의 혁명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문명이 그러한 것처럼 그것도 유한하며” (Derrida 2002, 260), “세계가, 세계의 세계화 과정이, 그것의(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기술과학적) 결과와 더불어 정신분석을 거부한다”(Derrida 2002, 243)고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은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했기에 가능했다.3 그가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보다, 『쾌락원칙을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와 같은 “추리적”이거나 “주변적” 텍스트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Derrida & Roudinesco 171)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데리다는 “(개념과 ‘무의식’이라는 말을 포함한) 거창한 프로이트식 기계장치”에 관심이 없었다. 달리 말해, 프로이트의 주변적인 생각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 많은 관심을 할애한 것도 그것이 고정된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변적” 이고 “추리적인”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추리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자면 이렇다. 프로이트는「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의 후반부에서, “정상적인 애도도 대상의 상실을 극복하고,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 자아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다.”라고 진술하면서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승리의 국면에 대한 암시가 없는 걸까?” 이 말을 풀면, 애도는 모든 에너지가 총동원되어 행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것이 끝나면 그것을 끝냈다는 데 대한 승리감 내지 성취감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수반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힘겨운 애도작업이 끝났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위반되지 않아야 할 경제원칙이 위반되는 건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질문에 “바로 답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 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어떤 경제적 수단을 통해서 애도가 행해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추측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단절의 작업이 너무 완만하고 순차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끝났을 즈음에는 그것에 필요한 에너지의 지출도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Freud 255)고 덧붙인다. 이렇게 그는 애도에 대해서 단정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다소 불확실하고 애매하게 추론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possibly, perhaps, conjecture, may, seem 등과 같은 말이 자주 반복되고 있는 것도 그의 애도이론이 확신과는 거리가 먼, 임의적이고 가설적인 것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은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면, 그가 “신학적 혹은 인본주의적 알리바이라고 부르는 원칙에 안주하지 않고 그 원칙에서 피난처를 구하지 않으며” “알리바이가 없는 지식의 이름으로 이론적인 ‘허구’를 써놓은”(Derrida & Roudinesco 173) 것인 셈이다. 여기에서 데리다가 정신분석학을 “이론적인 허구”라고 한 건 결코 부정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피한 대담한 사고” 요 “용기”이다. 즉, 애도이론을 포함한 프로이트 이론의 임의적이고 추리적이고 가설적인 특성은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관심을 갖는 건 바로 이러한 긍정적인 속성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하는 임의적이고 추리적이고 가설적인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는 “프로이트가 늘, 자신의 해석들을 불충분한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씩 그것들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옮겨가며” 그것을 다시 버려 “결국에는 단일한 해석이 남지 않게 된다”(Derrida 1985, 70)고 했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애도이론에 대한 데리다의 생각은 폴 드 만의 죽음 이후에 쓴『폴 드 만을 위한 회고록들』(MEMOIRES for Paul de Man), 레비나스의 죽음 이후에 쓴『레비나스에게 이별을』(Adieu to Emmanuel Levinas), 그리고 여러 명의 친구들을 추도한 애도사들을 묶은『애도작업』(The Work of Mourning)에 집약 되어 있는데, 세 저서에서 공통적인 것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 대한 그 나름의 유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계속하여 변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데리다의 애도이론과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은 대화적 관계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대화’란 엇비슷한 시각들을 오순도순 공유하고 조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양자가 긴장관계를 형성하며 팽팽하게 대치하고 힘겨루기를 하는 바흐친적 개념이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애도와 관련된 글에서 어떻게, 정신분석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때로 그것과 “제휴” 내지 “연대” 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유보” 하고 “철회” 하며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지키는지 점검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이론을 문학텍스트에 적용하여 논하는 일이 잦은 게 학계의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1커크비(Joan Kirkby)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관계를 설득력있게 논하고 있다(461-62). 그러나 커크비의 글은 양자의 관계에서 데리다의 입장은 비교적 분명하게 대변하지만, 지나치게 한 쪽에 기운 나머지 프로이트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불공정한 것처럼 보이며, 또한 논의가 데리다가 쓴 회고록(MEMOIRES for Paul de Man)에 지나치게 한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데리다에 기우는 것은 커크비만이 아니라, 데리다를 중심에 놓고 있는 학자들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인 듯하다.  2데리다는 자신과 정신분석의 관계를 루디네스코(Elisabeth Roudinesco)와의 대담 (“In Praise of Psychoanalysis”)에서 아주 소상히 밝히고 있다(Derrida & Roudinesco 166-96).  3데리다가 문제 삼은 건 자아, 이드, 초자아만이 아니었다. 그는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 아브라함(Nicolas Abraham)과 토록(Maria Torok)의 내사(introjection)와 융합(incorporation)도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구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거창한 개념적인‘대립들’이 그들의 경계선을 지우거나 바꾸는 ‘디페랑스‘의 불가피한 필요성에 휩쓸린” 결과라고 생각했다(Derrida & Roudinesco 173-74).

    II

    프로이트는 몸과 마음의 유사점에 주목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체적인 고통의 작동 방식도 정신적 고통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Freud 258), “몸이 작동하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듯 마음이 움직이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비도가 그 에너지다. 간단히 얘기하면, 리비도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우리를 몰고 가는,”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심리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왕은철 291).4 그래서 누군가 혹은 뭔가에 대한 집착은 반드시 리비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문제는 그 에너지가 유한한 것이어서 아무렇게나 남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경제원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나면 그와의 감정적 고리를 끊음으로써 그에게 투자했던 심리적 에너지를 회수해 다른 사람한테 다시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의 요체다. 물론 리비도를 회수하는 일, 즉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일이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프로이트도 그 일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Freud 245)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일망정, 애도는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애도를 “작업”(work, arbeit)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해도 성공적으로 행해지고 완수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효과적으로 지칭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프로이트가「애도와 우울증」에서 전개한 애도이론은 엄밀히 따지면,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는 상식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회가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그다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사람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감정의 회오리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이승을 향해 눈과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했던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사회는 우리에게 늘 죽음을 성공적으로 애도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요구한다. 사회는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될 경우, 그 사람의 부재를 슬퍼하되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말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이후의 삶을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면 정상, 그렇지 못하면 비정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전자는 애도에 성공한 경우고, 후자는 애도에 실패한 경우다.

    데리다의 애도이론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과 상식이 결탁 혹은 공모하는 지점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다. 그는 “애도작업의 성공이나 실패가 꼭 그렇게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어야 하는지, 애도작업의 성공만이 긍정적인 것이고 실패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어야 하는지”(왕은철 17) 묻는다. 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과의 결별이 시작되는 지점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이, “아무도 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을 나와 연결시키는 책임이 탄생하는” (Derrida 1995a, 44) 지점이다. 이를 데리다의 애도이론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 레비나스의 방식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얼굴과 얼굴이, 내 얼굴과 타자의 얼굴이, 서로 만나 비로소 “내가 내 자신이 되는” 지점이며, “내 자신을 그의 죽음에 포함시킬 정도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고, 그래서 타자의 죽음은 늘 “첫 죽음” 이다(Levinas 43). 레비나스에게 그런 것처럼, 데리다에게도 죽음은 어떤 것이 종결되는 게 아니라 새로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애도를 바라보면, 프로이트식의 애도이론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이 프로이트에게는 타자를 잊는 여정의 시작인 데 반해, 데리다에게는 타자를 기억하는 여정의 시작인 탓이다. 애도가 프로이트에게는 “작업”인 데 반해, 데리다에게는 “작업”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의 이름”(Derrida 2001, 50)이고 “혼란스럽고 끔찍한 표현”(Derrida 2001, 200)인 탓이다.

    데리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애도가 기억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뭔가?” (Derrida 1986, 6)라고 반문하고, 스스로 답변을 시도한다. 그가 애도를 거론하며 기억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애도가 기억을 통해 행해지는 것이어서, 기억이 없으면 애도도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데리다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다지 복잡한 게 아니다. 그에 따르면, 프로이트와 그를 따르는 정신분석학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無)가 되어버린 타자를 “정상적으로” 애도하는 건 그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중일부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리비도를 대상에 묶어놓은 기억들과 기대들을 낱낱이 불러내” 돌아보는 과정에서 “리비도의 분리” 가 이뤄진다. 여기에서 “리비도의 분리”가 “성공적인 애도작업”으로 연결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리비도의 분리”가 이뤄지면서 “애도작업이 완성되고” “자아는 다시 자유롭고 억제당하지 않게 된다”(Freud 245). 그것이 비록 “즉시”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조금씩 행해지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정상적인 경우, 현실에 대한 존중심이 이기게 된다”(Freud 244-45)는 것이다. 데리다도 애도가 필요하다는 덴 당연히 동의한다. 애도하지 않는 건 타자에 대한 무관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리다가 보기에 프로이트의 “정상적인 애도”가 갖고 있는 문제는 타자의 타자성을 말살하려 한다는 데 있다. 내면화가 성공하면, 타자는 나의 일부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타자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성공은 실패”라고 말하는 건 이러한 맥락에서다(Derrida 1986, 34-35). 데리다의 입장에서 보면, 기억과 내면화를 통한 “정상적인” 애도작업은 타자에 대한 일종의 배반행위다. 타자의 타자성을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여기에서 데리다의 물음은 표면적으로 양자택일을 하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는 후자의 경우, 즉 “불가능한 애도”에도 배반이나 배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대상을 배반하거나 배신하는 건전자의 경우, 즉 “가능한 애도”라고 생각한다. 우선, 전자가 왜 배반이나 배신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그걸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것은 “조금씩 행해지는” “너무나 고통스러운”(Freud 245)과정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우,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이미지, 우상, 혹은 이상을 내면화”하여 우리의 일부로 만든다. 그래서 애도작업이 완성될 즈음이면, 사랑하는 대상은 부재하게 되고 오직 우리의 일부가 된 그의 기억만이 남게 된다. 이는 타자가 타자성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말이고, 더 심하게 표현하면 사랑의 대상에 “심리적인 잔혹성”(Derrida 2002, 240)이 가해진다는 말이다. 데리다는 이를 배반이자 배신이라고 본다. 타자 윤리의 측면에서 배반이고 배신이라는 것이다. 데리다의 다소 자극적인 표현을 빌리면, “정상적인” “애도작업”에서는 주체가 타자를 “삼킴” (devouring)으로써 타자의 타자성을 말살한다(Derrida 1986, 34). 그렇다고 그가 애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는 애도의 필요성만큼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인정한다. 가령, 데리다는 그가 사랑했던 친구 폴 드 만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실토한다. “매번, 우리는 우리의 친구가 영원히 가버렸고, 돌이킬 수 없이 부재하고, 그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아무것도 알거나 받지 못할 정도로 무(無)가 됐다는 걸 안다”(Derrida 1986, 21).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그의 죽음이 현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말하면, 그의 부재는 “현실검증”(reality-testing)을 통해 이미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Freud 244). 다만 데리다는 프로이트와 다르게, “현실검증”을 통한 부재 증명이 그 사람과의 최종적인 결별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자성을 그대로 두며, 그래서 그의 무한한 거리를 존중하며, 무덤이나 나르시시즘의 지하실에 있는 것처럼, 타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거나 자기 안에 타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애도”(Derrida 1986, 6)에도 배반이나 배신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불가능한 애도”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타자를 내면화하여 궁극적으로 자기의 일부로 만드는 “가능한 애도”와 달리 배반이나 배신이 아닐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애도를 하지 않고 그 사람과 자신을 관계지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배반이고 배신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기억을 통한 내면화는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데리다가 “부드러운(tender) 거부”라는 말을 동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는 “실패는 성공”이라며 “좌절된 내면화(aborted interiorization)는 “동시에 타자를 타자로서 존중하는 것, 일종의 부드러운 거부(rejection), 타자를 밖에, 저쪽에, 그의 죽음에, 우리의 밖에 혼자 놔두는 거절(renunciation)의 자세를 의미한다”(Derrida 1986, 35)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그가 사용하는“부드러운 거부”라는 표현은 그의 애도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핵심적인 말이다. 애도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이 표현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 입각해서 얘기하자면, 데리다가 말하는 “거부”나 “거절”은 사랑의 대상이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해 “중재되는, 회고된 기억의 자취들로부터 리비도를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부분적으로 회수하는 것”에 해당한다(Ziarek 145).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대상이 죽음의 세계로 떠날 경우, “현실검증이 그 사랑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그 대상에 대한 집착들로부터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Freud 244). 그런데 데리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있음이 없음으로 바뀌고 유가 무로 바뀌었으니까 대상에 대한 기억을 내면화하고 자기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생각과 다르게, “부드러운 거부”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거부”란 잃어버린 대상을 “밖에, 저쪽에, 그의 죽음에, 우리의 밖에 혼자 놔두지” 않고 자기화하려는 경향에 대한 거부를 일컫는다. 보통의 경우, 거부나 거절은 부정적인 의미를 띠지만, 데리다의 경우, 거부나 거절은 타자의 타자성을 유지하게 하면서 타자에 대한 기억과 계속 교감하고 교류하기 위한 것이기에 대단히 긍정적인 의미를 띤다. 그가“부드러운”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거부나 거절에 수반되는 다소간에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제거하고 거기에 부드럽고 긍정적인 의미를 더한 것이다. 타자를“부드럽게”거부하지 않고 단호하거나 냉정하게 거부하는 것은 그 타자와의 대화나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단절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랑의 대상이어야 할 타자를 배격하는 것이므로 앞에서 언급한 “가능한 애도”와는 다른 맥락에서 타자를 배반하고 배신하는 몸짓일 수 있다. 따라서 타자를 “부드럽게” 거부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긴다. 거부의 몸짓 자체가 타자를 자기화 내지 식민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부드럽게”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다. 이런 의미에서, “부드러운”이라는 말은 애도를 대하는 데리다의 입장을 아주 잘 대변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 말을 통해, “타자를 내안에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Derrida 1995, 321)는 말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말 자체로는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데리다는 진정한 애도가 이러한 아포리아를 통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데리다에 따르면, 타자에 대한 “부드러운 거절”을 통해, 타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일부가 되지 않게 된다. 타자는 우리가 조종하고 통제 할 수 있는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타자성을 여전히 유지하는 “나보다 더 강력하거나 힘 있는”(Derrida 2001, 160) 존재다. 타자가 “우리 안에서”(in us) 우리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타자는 우리 안에 사는 “목격자”이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보는 존재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타자이고 영원히 타자”이고 “우리 안에 있는 먼”(far away in us) 존재다(Derrida 2001, 161). “우리 안에 있는 먼”이라는 표현도 “부드러운 거부”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아포리아지만, 긍정을 위한 아포리아다. “우리 안에 있다”와 “먼”은 상호간에 공존할 수 없는 상태인데, 데리다는 타자가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화하지 않고 자신의 타자성을 유지하는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먼”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 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하는” 것이 “애도의 법”(Derrida 2001, 144)이라는 역설적인 표현도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환대, 사랑, 혹은 우정” 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환대와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 “내면화를 넘어서고, 깨고, 상처내고, 다치게 하고, 충격을 줌으로써”(Derrida 2001, 160) 타자에 대한 전면적이고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내면화를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차이가 있다. 프로이트는 기억을 통한 내면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데리다는 기억을 통한 내면화가 실패하고 불완전한 것이 되도록 그것을“깨고 상처내고 다치게 하고 충격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계승한 아브라함(Nicolas Abraham)과 토록(Maria Torok)이『외피와 핵심』(The Shell and the Kernel)에서 제시한 “내사”(內射, introjection)와 “융합”(incorporation)의 개념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5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내사”와 “융합”은 아브라함과 토록이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다시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개념이다(Derrida 1985, 57). 엄밀히 말하면,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에서는 융합(incorporate)이라는 말은 사용했지만 내사(introject)라는 말은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프로이트가 다른 논문들에서 내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의 개념에서는 양자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아브라함과 토록이 그 말들을 자기화하여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설명하는 데 전용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과 토록이 말하는 “내사”란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좋은 기억(속성)들을 자신의 일부로 동화시키는 정상적인 애도를 의미하고, “융합”이란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면면을 자기화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지하묘지” (crypt)를 만들어 그를 살아 있게 하는 비정상적인 애도를 의미한다. 그들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 “때때로 한밤중에 그 묘지 속의 유령이 다시 돌아와 살아남은 자를 괴롭히는”(Abraham and Torok 130)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사”는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작업”의 성공을, “융합”은 “애도작업”의 실패 즉 우울증의 경우를 지칭한다. 전자는 앞에서 얘기한 “내면화”의 성공이요, 후자는 “내면화”의 실패에 해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타자의 윤리라는 시각에서 문제시한 것처럼,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계승한 아브라함과 토록의 애도이론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시한다. 이는 그가 그들의 은유적 표현인 “지하묘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데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위에 인용된 글은 사실, 데리다가 말하는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에 대해 한 토론자(Eugenio Donato)가 질문한 것에 답변한 내용인데, 그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애도애론에 대해서 그간 취해온 입장을 조금만 이해하거나, 설령 그걸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용하는 어휘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내면화하는 기억”과 “내사, ”즉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아가 죽은 타자를 “자기 안에 들이고 그것을 죽이고 기억한다” 라고도 하고, 또 그것을 먹어 “소화시킨다” 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가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을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보아도 무방하다. 정상적인 애도를 일종의 카니발리즘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들인 탓이다. 물론 먹고 삼키고 소화한다는 표현이 데리다 자신의 말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멀게는 프로이트가 정신발달단계 중 구강기를 설명할 때 사용한 표현이고, 가깝게는 아브라함과 토록이 프로이트의 구강기 개념을 원용하여 애도와 우울증을 설명할 때 사용한 은유적 표현이다. 아브라함과 토록은 “내사로부터 융합으로 옮겨가게 되는 건 말(words)이 주체의 진공을 채우지 못해, 그걸 대신하여 상상적인 것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 (Abraham and Torok 128-29)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애도의 실패가 상실한 것을 언어로 표현 해내지 못하고 그것을 무의식 속으로 집어넣는 데서 발생한다는 논리인데, 이는 그들이 “어머니의 젖으로 채워지던 입에서, 말로 채워지는 입으로 옮겨가는 것” (Abraham and Torok 127-28) 즉 아이가 구강기에서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과정을 “내사”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데리다는 구강기와 관련된 프로이트의 어휘나 그걸 원용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토록의 어휘를 단순반복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모양새를 잘 살펴 보면, 데리다는 아무리 은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은유를 사용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생각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은연중에 드러난다. 자신한테 소중한 것을 어찌 죽이고 먹어치우고 소화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위의 글에 짙게 배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그의 애도이론이 타자는 죽어서도, 아니 죽었으니까 더욱,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이러한 입장은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과 토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의 애도이론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봐야 옳다. 실제로 프로이트의「애도와 우울증」에는 “죽인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죽은 대상과 자신을 분리시키려는 애도작업의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경우, 자아는 죽은 대상을 “헐뜯고 모욕하고 심지어 죽임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리비도의 고착을 느슨하게 한다” (Freud 257)고 설명한다.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든, 필요하면 죽여서라도, 죽은 타자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토록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이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결국 데리다의 애도이론이 향하는 곳은 애도의 실패에 해당하는 “융합” 즉 잃어버린 대상을 죽음의 세계로 떠밀지 않고 “살아있는 사자”로 만들어 내 안에, 내 안에 있는 “비밀묘  지”로 들이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토록, 혹은 프로이트에게는 “융합”이 타자를 내면화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결함, 혹은 치료의 대상이지만, 데리다에게는 타자를 죽이거나 먹거나 소화하지 않으려 하는 건 죽은 대상에 대한 책임이며 윤리성의 발로다. 데리다가 타자를 먹어치우는 “내면화하는 기억”(Erinnerung)이 아니라, 타자가 타자성을 유지하면서 우리와 대화 관계에 있게 되는 “생각하는 기억”(Gedächtnis)을 애도의 본질에 근접한 것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Derrida 1986, 35).6

    그래서 “성공은 실패”이며 “실패는 성공”이라는 역설은 “내사”와 “융합”의 경우에도 성립된다. 데리다에 따르면, “만약 내가 ‘정상적으로’ 내사의 과정에서 성공을 한다면, 나는 타자한테 진실치 못하게 되고, 그것은 타자가 내 자신이 된다”는 말이며, 그것은 “타자를 잊기 위하여 타자를 기억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결국 그럴 경우, “타자는 내 자신의 일부가 되고 나는 내 안에 있는 타자와 나르시스적인 관계를 갖게 되어” 애도가 진실치 못한 것이 되어 버린다(Patton and Smith 66, Kirkby 재인용). 따라서 그에게 진실한 애도는 “내사”와 대조되는 개념인 “융합”에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애도는 불가능한 애도”(Patton and Smith 66, Kirkby에서 재인용)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근거다. 데리다에게 애도의 “유일한 긍정은 그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긍정이어야 한다”(Derrida 1986, 32).

    이처럼 데리다가 기억과 내면화, 내사와 융합 등과 관련하여 말하는 것은 우리 곁을 떠난 타자의 타자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단히 이타적인 개념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다. 그가 애도를 끝내야 하는 “작업” 정도로 인식하는 프로이트의 자아중심적인 애도이론에 비판적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궁극적으로 그는 프로이트의 “애도작업”을 일종의 폭력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폭력이란 “타자를 원래의 자신으로 놔두지 않고, 타자를 위해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Derrida & Ferraris 92)이기 때문이다.

    4이 논문은 왕은철의『애도예찬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과 상호보완적이고 상호텍스트적이다. 전자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과 데리다의 애도이론을 이론적으로 비교하고 고찰한 논문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문학텍스트에 실제로 적용한 문학비평이다.  5여기에서 아브라함과 토록이 사용하고 있는 introjection과 incorporation의 우리말 번역은 통일돼 있지 않다. 전자는 내입, 내투사, 내부투사, 내향투사, 입사, 내사, 투입, 섭취 등으로, 후자는 혼성, 합체, 내적동일화, 흡수, 융합, 포섭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모두 한자어로,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내사와 융합도 마찬가지다. 이 용어를 정신분석학에 사용한 것은 아브라함과 토록에 따르면, 헝가리의 정신분석학자인 산도르 페렌치(Sandor Ferenczi)이다(Abraham and Torok 127).  6그러나 데리다가 “내사”보다 “융합” 쪽으로 기울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거창한 개념적인 대립”을 달가워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는 그러한 개념들이 “경계를 지우거나 옮기는 어떤 디페랑스의 불가피한 필요성에 휩쓸려” 만들어진 것이어서 “지나치게 견고하고, 따라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아, 이드, 초자아 등과 같은 프로이트의 “거창한” 개념들과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 등과 같은 프로이트를 따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거창한 개념적 대립”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실증주의를 불신”하는 것이다(Derrida & Roudinesco 173-74). 그래서 그가 “내사”와 “융합” 중 후자에 손을 들어준 것은 그것이 꼭 들어맞는 개념이어서가 아니라, 타자를 자기화하는 애도에 실패하면서 애도의 진실에 어느 정도 근접하는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III

    그렇다면 타자가 어떻게 타자성을 잃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프로이트와 다르게, 데리다가 죽은 사람에게서 리비도를 떼어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것도 필요한 일인 탓이다.

    데리다는 사랑의 대상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었으니까 더욱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그의 친구인 폴 드 만이 죽고 나서 쓴 글들은 그가 어떤 각도에서 애도를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폴 드 만은 죽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어떤 것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을 상대도 아니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은 복잡한 게 아니라, 이와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상식의 소리다. 그런데 데리다는 그 상식을 뒤집고 죽은 사람이 말을 하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그는 폴 드 만이 죽은 후, 애도를 대상으로 하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에 대한 “마지막 말”이 “폴 드 만에게서 나오기를 바란다”(Derrida 1986, 126)고 말한다. 그는 “그에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와 같이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에 관해 얘기한다”(Derrida 1986, 126)는 것이다. 그가 이 세상에 없는 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대상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었으니까 더욱, 그와의 약속들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게 “약속이란 그것을 약속하는 첫 순간부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죽음을 넘어서까지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약속에 응답하거나 그 약속을 위해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조차, 우리 안에 있는 죽은 타자를, 첫 순간부터 관련시킨다”(Derrida 1986, 149). 그래서 약속이란 “살아있는 사람이 어느 날, 그의 약속만을 갖고 혼자 남게 될 때, 그러니까 죽음을 조건으로 해서만 의미와 엄숙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데리다의 애도이론이 현실적이냐 아니냐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몸짓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행위”라고 부른다. 그것은 당연히 “이름뿐인 불가능한 행위”다. 또한 그것은 “그 이름에 값하기 위해, 타자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타자의 이름에 값해야 하는”행위다(Derrida 1986, 150).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와 대화만 시도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타자와 눈길을 교환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즉, 그는 우리가 기억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잡은 타자의 이미지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가 우리를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와 죽은 사람이 상호적인 응시의 주체요 대상이라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가 더 이상 여기에 없고 저기에도 없다”는 이 “끔찍하고 오싹한 확실성을 사라지게 만들”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이미지를 보는 것보다는 그 이미지에 의해“우리가 보여진다”는 사실이다. 데리다가 루이 마랭(Louis Marin)의 추도식에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저녁 여기에 있는 것은 이것을 위해서, 그를 위해서입니다. 그는 나의 법이고, 나는 그 앞에, 그의 말과 눈길 앞에 나타납니다. 내 자신과 나의 관계에서, 그는 나보다 더 강하고 강력하게, 내 앞에, 내 안에 있습니다”(Derrida 2001, 160)라고 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데리다에게 타자는 애도의 법이다. 내가 아니라 타자가 애도의 법인 것이다. 그에 반해, 프로이트에게 애도의 법은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다. 즉, 떠난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중심인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의 법이 이별을 거부하는 몸짓이라면, 프로이트의 법은 이별을 인정하고 삶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생존의 몸짓이다. 그리고 데리다가 말하는, 이별을 거부하는 몸짓도 생존의 몸짓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프로이트가 상정하는 것과는 다른 윤리적 생존의 몸짓일 것이다. 데리다가 “생존이라는 주제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그 용어의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계속 산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산다는 의미도 되기”(Derrida 2007, 26) 때문이다.

    데리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애도하며 쓴 글들을 보면, 애도의 불가능성이나 실패에 관한 언급이 놀랄 만큼 자주 반복되는데, 이것은 그가 애도에 대한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기 위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느끼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를 그런 식으로 삭히고 표현했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그는 “내가 불가능하고 상스럽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죽음 이후에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침묵하는 것도 공허한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상처, 또 다른 모욕”(Derrida 2001 49-50)이 아닐까 싶어 애도의 말을 하고 애도의 글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친구인 바르트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그를 향해 말을 하고, 또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기를 바랐다. 이러한 바람은 그 자신의 말처럼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이 되는 유토피아를 상정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불가능성은 때때로, 우연히, 유토피아로 가능해진다”(Derrida 2001, 45)는 그의 말은 그래서 각별한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유토피아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어느 곳에도 없는 완벽한 이상향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데, 데리다가 애도와 관련된 글에서 유토피아를 거론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닌 그의 이름을 말할 때, 이름 너머에 있지만 아직도 그 안에 있는 그에 대해서, 그를 위해서, 그에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을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서글픈 상황에서, “불가능한 것을 향해 달려가는”(Derrida 2001, 45)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타자를 향해 아무리 확장되어도, 우리가 말하거나 행하거나 울먹이는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남아 있으니”(Derrida 1991, 203), 그래서 더욱 그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하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는 “끝이 없는 것이고, 위로할 수 없는 것이고, 화해할 수 없는 것”(Derrida 2001, 143)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끝이 있을 수 없으니 당연히 애도에도 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애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애도가 죽은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주려고 하는” 무모하고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실이나 “현실검증”을 애도의 중요한 변수로 생각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데리다는 이처럼 타자의 윤리성과 관련된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애도이론을 개진했다. 데리다가 프로이트와 각을 세울 수 있었던 건 그러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데리다의 애도이론에 과도하게 기운 나머지,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을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양자의 관계를 대화적 관계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가령, 데리다가 애도이론을 개진하면서 거듭 밝히고 있는 기억과 내면화, 애도의 불가능성의 문제는 애도와 우울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틀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애도와 우울증」에서 정상적인 애도와 비정상적인 애도, 정상과 병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것은 양자가 놀라울 만큼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애도와 우울증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기억을 하나씩 지루하게 되짚는 과정이나 그에 따라 리비도를 조금씩 회수하는 과정이 양쪽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만 정상적인 애도의 경우, 리비도의 회수과정에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애도의 경우, 대상에 관련된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traumatic experience)이 “억압된 다른 물질을 활성화시키는 것 같다”(Freud 257)는 것이 양자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적어도 그것의 시발점에 관한 한, 애도와 우울증을 거의 같은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견해는 데리다의 애도이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내사”와 “융합”이라는 개념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안으로 들여야 애도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출발점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내사는 타자를 안으로 들이는 과정을 완수하여 자아의 일부로 만드는 몸짓이고, 데리다가 지향하는 융합은 타자를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부드럽게” 밀어내는 아포리아의 몸짓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 것이다. 이러한 데리다의 견해는 애도와 우울증, 즉 애도의 성공과 애도의 실패를 적어도 출발점에서는 같은 것으로 본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핏 보면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은 데리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애도이론과 달리 차갑고 비정해 보인다. 이는 전자가 자아와 타자의 엄격한 분리를, 후자가 타자의 타자성이라는 윤리적 속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그걸 강조하는 건 프로이트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관심을 기울였던 건 정신분석을 통한 치료였다. 그가 사랑의 대상을 잃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즉 애도를 끝내지 못하고 계속하는, 비정상적인 사람(환자)의 심리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정신분석을 통해서 그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증을 무의식과 관계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의식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우울증은 의식으로부터 물러난 대상-상실과 모종의 관련이 있고, 그것은 상실에 관한 아무것도 무의식적인 것이 없는 애도와 대조되는 것”(Freud 245)이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직접적으로 치료의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글을 잘 보면 무의식으로 물러난 것을 의식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가의 책무라고 생각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토록이 분석가의 임무를 “융합”이라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내사”라는 의식의 영역으로 환자가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은 프로이트의「애도와 우울증」에 내포되고 암시된 것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들은 환자에게 애도와 우울증 사이의 역학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것이 성공하면 환자가 “진정한 애도”로 넘어가 “융합의 환상들이 내사로 전이될 수 있다”(Abraham and Torok 137)고 생각했다. 결국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이나 아브라함과 토록의 애도이론은 극단적인 증상을 보이는 우울증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이는 애도이론을 윤리의 영역에서 접근한 데리다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부분이었다. 데리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프로이트가 “지식과 윤리, 심지어 법과 정치까지 가능성의 이법(economy)으로 한정시킨다”(Derrida 2002, 275)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에 반해, 그는 가능성을 넘으려고, 아니 가능성의 가능성마저 넘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지향점은 어떤 것 “너머의 너머(beyond the beyond)의 긍정” 이었다(Derrida 2002, 276). 그의 “해체론이 늘 예스(yes)의 쪽에 있고, 삶에 대한 긍정의 쪽에 있는”(Derrida 2007, 51) 것처럼,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모든 것이 종료되는 시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과의 약속을, 죽음을 넘어서까지 지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시점으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정의 코드에 속하는 상실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죽음은 그에게 상실이 아니었다. 그에게 애도는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었다(Derrida 1995b, 143).

    환자들을 관찰하고 치료한 결과를 토대로 한 프로이트의 실증적인 애도이론과 다르게, 데리다의 애도이론은 드 만, 바르트, 푸코, 알튀세르, 들뢰즈, 레비나스, 료타르 등처럼 그의 친구이면서 주목할 만한 저술을 남긴 철학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애도이론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이론이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고, 양자를 단순논리로 비교하게 되면 대단히 공정치 못한 것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프로이트는 비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도와 우울증」에서 프로이트가 집착한 것은 정상적인 애도가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과 유사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실패한 애도였다. 따라서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논문「애도와 우울증」에 “강박관념적인 승리감”이 배어 있다고 한 것이 “프로이트의 글에 대한 부분적인 오독”이라는 화이트의 지적(White 86)은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는 애도작업의 완성에 따르는 “강박관념적인 승리감” 대신, 애도작업이 완성된 후에도 “승리의 국면이 없는”(Freud 255) 현상, 즉 경제원칙에 위배되는 애도의 속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자아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Freud 255) 애도가 끝났음에도 승리감은 그만두고라도 슬픔만 남는다는게 프로이트에게는 인간심리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그 신비로움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아름답게 읽히는「애도와 우울증」이라는 글을 낳았던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말한 프로이트의 “강박관념적인 승리감”은 다소간에 몰이해가 포함된 말이었다. 여하튼, 프로이트는 비정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와의 집착을 떼어내고 다른 대상에 리비도를 투자하는 걸 액면 그대로 실천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피울음을 울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1920년에 딸(Sophie)을 잃고, 3년 후인 1923년에는 그 딸의 아들이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외손자(Heinerle)를 잃었다.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유산”(Freud’s Legacy)을 논하는 글에서 프로이트가 외손자를 잃고 우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프로이트가 우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Derrida 1987, 334)고 했다. 이러한 아픔이 있어서인지, 프로이트는 1929년 4월 12일, 아들을 잃은 친구(Ludwig Binswanger)를 위로하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만약「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에서 프로이트가 말한 것과 비교하면, 이 편지는 대단히 모순적이다.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에서는 리비도를 사랑의 대상에서 회수하는 것은 그것을 새로운 대상(대리인)에 다시 투자하기 위해서다. 프로이트는 사랑의 대상을 잃은 사람은“대리인이 이미 손짓을 하고 있을 때조차, 결코 자발적으로 리비도의 위치를 버리지 않으려 하고”때로는“저항이 너무 강렬해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실에 대한 존중심이 승리한다”(Freud 244)고 했다. 그런데 그는 위의 편지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애도의 극심한 상태는 진정” 되겠지만, 우리는 “위로할 길 없는 상태”로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을 대신할“대리인”도 찾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전에 했던 말을 뒤집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아무리 세월이 흐르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순도 보통 모순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을 사적인 편지와 비교해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는 건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프로이트가 이 편지에서 십여 년 전(1917년)에 자신이 했던 생각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어떤 것으로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위로할 수 없는”(inconsolable)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생각은 공교롭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위로할 수 없는”(Derrida 2001, 143) 것으로 본 데리다의 생각과 겹치는데, 애도를 완성해야 하는 “작업”으로 보았던 프로이트의 이전 생각과 이것을 비교해보면 엄청난 간극이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애도와 우울증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수정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프로이트가「애도와 우울증」에서 밝힌 내용과 다소 상반된 말을 한 것은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그 글이 임의적이고 추리적이고 가설적인 데서 연유하는,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전에 발표한「애도와 우울증」에서 상실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심리에 대해 고정적이고 확정적인 발언을 한 게 아니라, 얼마든지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스스로도 상실을 겪으면서, 자신이 비슷한 속성을 공유하지만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에 따라서 정상적인 애도와 비정상적인 애도로 나눴던 인간심리를 더 이상 그렇게 선명하게 나눌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는지도 모른다.8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그리고 데리다 스스로가 밝힌 바와 같이,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관계는 “비판”과 “토론”과 “상호적인 심문”을 위해 “유보, 철회, 혹은 거리를 유지하는”(Derrida & Roudinesco 167) 친구의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데리다는 정신분석학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십분 활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에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던 철학자였다. 그의 애도이론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애도의 실제와 이상은 어쩌면, “현실검증”을 중시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울음을 보일 정도로 인간적이었던 프로이트와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논리로 타자의 타자성을 중시하며 “상실에 저항하고 기억의 상실에 저항”(Derrida 1995b, 144)하려고 했던 데리다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을지 모른다. 프로이트는 애도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저절로 끝난다”(Freud 307)고 했고, 데리다는 애도는 “끝이 없는 것이고, 위로할 수 없는 것이고, 화해할 수 없는 것”(Derrida 2001, 143)이며 “나는 애도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Derrida 1995, 321)라고 했다. 애도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 차이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발언들은 애도가 현실과 이상의 역학에 의해 빚어지는 대단히 복잡한 인간심리의 메커니즘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7이 번역은 왕은철의『애도예찬—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에 따른 것이다(31).  8실제로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했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가령 클리웰(Tammy Clewell)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1923년에 발표한『자아와이드』(The Ego and the Id)에서“자신이「애도와 우울증」에서 제시한 동일시에 대한 설명을 수정하고 있다”며 그러한 수정은 애도에 대한 개념 자체에 대한 수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프로이트가 전에는 동일시를 “잃어버린 대상을 내면화하며 그것이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우울증적인 고착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내면화 과정을 “자아의 형성과 이후 발전에 근본적일 뿐만 아니라‘이드가 그것의 대상을 단념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 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Clewell 12). 즉, 프로이트가 우울증과 관계된 것으로 보았던 내면화과정을 더 이상 병적인 것이 아니라 자아의 형성과 발전에 불가피한 요소로 보았다는 말이고, 이는 잃어버린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대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프로이트의 애도이론이 변화했다고 보는 건 버틀러(Judith Butler)도 마찬가지다. 그는 프로이트가 처음에는 “성공적인 애도는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 우울증과 관련된 것이었던 내면화가 애도 작업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Butl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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