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ude du contact des langues a travers la croisade albigeoise du moyen age en Languedoc-Roussillon

중세 랑그독-루씨옹 변경지역 언어 간 통섭 연구* - 알비파 십자군 전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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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Dans cet article nous avons envisagé l'étude de la problématique de la mobilité des langues dans le cadre du contact des cultures au regard de la guerre et de la religion. Pour ce faire nous avons adopté une chanson médievale écrite en Languedoc. C'est pourquoi cette approche permet des hypothèses de contacts des langues dans la complexité méditerranéenne. Cette étude est composée de trois parties majeurs : d'abord une analyse de la problématique du contact des langues en comparant les deux hypothèses : «les conquêtes des peuples voisins» et «le procès du contact des langues médievales» en Languedoc. Nous avons ensuite émis une proposition sur le rôle de la croisade albigeoise et son échange linguistico-culturel pour terminer sur un résultat du contact des langues dans sa compatibilité entre l'occitan et le catalan. Pour ce faire, nous nous sommes référés à la chanson de la croisade albigeoise en version originale et aussi française, en ajoutant la traduction en catalan. Notre recherche consiste à créer un modèle du contact des langues avec la chanson de la croisade albigeoise par Guillaume de Tudèle. Il vise à deux notions qui ne sont pas différentes mais intrinsèquement liées l'une à l'autre : la compatibilité entre les langues et leur mobilité en l'aire méditerranéenne. Ces résultats montrent que la compatibilité entre l'occitan et le catalan s'est maintenue depuis le Moyen-âge et que les problèmes rencontrés sont souvent réductibles à l'utilisation des langues dans deux régions hétérogènes.


  • KEYWORD

    contact des langues , echange linguistico-culturel , croisade albigeoise , Languedoc , langues d'oc

  • 1. 서론

    사회언어학자 뷜로(Th. Bulot)는 프랑스 언어들에 관한 연구1)에서 언어는 사회에서 그 지배성을 지니며 특히 언어 변경지역에서 다양하고 혼합된 사용의 결과로 인한 화자들 간 상호 체계가 구성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 언어학자 세르키글리니(B. Cerquiglini)에 따르면2) 프랑스 언어사에서 지역 언어들3)과 문화 교류는 빈번하게 이루어져왔으며 더구나 중세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간주될 정도로 라틴어, 옥시탄어, 카스틸라어, 카탈로니아어, 이탈리아어 교육이 균등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특히 남유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언어로 카탈로니아어와 옥시탄어4)를 든다. 옥시탄어를 사용하는 남 프랑스 지역 중랑그독-루씨옹 지역은 카탈로니아어와 병용되는 언어 변경지역이다.

    고대부터 이어 온 중세 지중해 역사에서 교류는 바다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남프랑스와 스페인 간 피레네 산과 육지를 통한 교류 역시 상호보완적으로 검토되어야 될 사항이다. 한 변경지역에서 이루어진 여러 민족들간의 침입과 전쟁, 정복은 언어를 비롯한 이문화 상호 교류를 촉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사회 변동 속에서 나타나는 언어 접촉현상은 문화·종교적인 파급 효과가 크게 부각된 중세의 전쟁5)을 통해 잘 살펴볼 수 있다(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2005: 65).

    중세 유럽 사회는 봉건제도와 가톨릭교회를 통한 종교적 권위가 보편적인 문화였던 곳이자 동방을 향한 서방의 침략과 약탈의 역사로 기록되기도 했다6).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록되는 문예가 있고 언어의 교류를 촉진했던 트루바두르의 역할이 존재했다.

    이 시대 프랑스의 경우는 당대 지적‧사회적 흐름에 따라 서유럽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인 클뤼니 대수도원을 비롯한 종교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고 남부 프랑스 랑그독 지역에서 시작된 알비파라는 이교도에 대한 응징으로 표면화된다. 초기 십자군의 성격7)과 다른 랑그독 지역의 알비파십자군 전쟁은 이 지역이 프랑스에 편입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이자 언어적으로 볼 때 북부 프랑스인 랑그 도일어권과의 접촉 내지는 이지역 언어들 간 교류 유형을 도출하게 되는 접점에 있다. 결국 중세 프랑스 지중해 지역의 문화는 이동되었고 복합성을 띄게 되었으며 다양한 형태로 통섭의 과정을 겪었다.

    랑그독(Languedoc)은 이미 7세기부터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통용된 랑그 독(langue d'oc)계열 언어들의 시원이자 지중해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고대 이곳은 켈트족의 정착 이전에 이미 이베리아족이 점령했던 곳으로 언어 역시도 골 어 이전에 이베리아어를 비롯한 여러 토착 언어들이 복합적으로 이동한 흔적이 남아있다.

    본 연구에서는 중세 이 지역에서의 언어 이동성 및 교류 현상이 전쟁과 정복의 요인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라는 평화적인 요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이 지역에 끼친 사회언어적 영향과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려한다.

    전쟁과 정복은 지중해지역의 문화 교류유형을 전달하는 중요 요인 중의 하나며 스페인 북서부와 남프랑스에 걸쳐 있었던 나바르 왕국 출신의 음유시인들이 프랑스로 이동함으로써 언어 교류의 직접적인 역할을 중시했다는 점과 언어 간 통섭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본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 또 랑그독 지역의 언어 교류 결과가 어떠한지 살펴보고 이러한 상호 영향이 함의하는 바를 논의하고자 한다.

    1)Bulot, Th., La langue vivante: l'identité sociolinguistique des Cauchois, L'Harmattan, 2006, pp.11~13   2)Cerquiglini, B., “La charte européenne des langues régionales ou minoritaires”(pp.107~110), Langues et cultures régionales de France: Etats des lieux, enseignement, politiques, L'Harmattan, 1999.   3)프랑스의 지역어는 크게 언어권별로 로망어 계열(랑그 도일어, 프랑코프로방스어, 옥시탄어, 카탈로니아어, 갈로-고대이탈리아어), 게르만어 계열(뤽상부르그 프랑크어, 모젤 프랑크어, 로렌 프랑크어), 브르타뉴어, 로마니어, 바스크어, 코르시카어 계열(코르시카어, 리구리아어, 카쥐스의 그리스어), 해외령 계열(카리브, 레위니옹 크레올어, 아메리카 인디언어, 몽어, 카낙어, 폴리네시아어들, 마요트어)로 정의하고 이외 소수어(베르베르어, 아랍 방언들, 이디시어 등)로 구분하고 있음. Frederic P. Miller, Agnes F. Vandome, John McBrewster(2010), pp.3~11   4)옥시탄어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모나코에서 사용되고 있고 스페인에서는 공식어 위상임.   5)특히 중세 십자군 이야기는 성지를 향한 전투만큼이나 서방과 동방의 서로 다른 문화권 간의 접촉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언어 간 접촉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됨.   6)특히 11세기 말 중세는 동쪽의 이슬람 세력과 서쪽의 서유럽 봉건 국가와 이둘 사이에 자리 잡은 비잔틴 제국의 견제와 갈등이 있었음. 비잔틴 제국과 서유럽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두 문화 간 결속을 다졌고 그 결과 종교적 이질성에 따른 이슬람 세력과의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임. 이후 스페인의 국토회복전쟁은 서유럽 지도자들에 대한 교황의 독려로 종교적 명분이 더해져 십자군전쟁이라는 서구 팽창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됨. 이로써 당대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의 십자군 원정(1096-1270)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이문화의 접촉이 이루어졌을 것임. 본 논문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고 있음.   7)초기 십자군의 목표가 순수 종교적 감정 확산으로 인한 예루살렘 성지 해방과 수호였다면 후반기로 갈수록 정치권력에 대한 야심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겪었음.

    2. 중세 랑그독 및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언어사회상

    지리언어학에서 랑그독 지역은 남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역어인 옥시탄어(l'occitan)를 사용하던 곳으로 현재 프랑스의 미디-피레네, 랑그독-루씨옹, 론-알프스, 오베르뉴 지역 전체를 포함한다. 중세 랑그독은 스페인, 이탈리아, 남프랑스를 포괄하여 옥시탄어를 사용하던 옥시타니아의 중요 부분이기도 하다.

    이곳은 철기시대에 이베리아족이 점령하여 살았고 기원전 3세기말에 와서 전체 골(Gaule)을 형성했던 켈트족의 이주가 본격화되었던 곳이다. 이후 골 족이 남하하면서 두 민족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한 카르타고 군대가 이 지역을 통과하게 되었으며 그리스 선원이 지중해 연안의 아그드(Agde)에 식민지를 세움으로써 지중해를 통한 이문화 접촉도 있었던 지역이다. 즉 육지와 바다의 교류가 모두 이루어졌던 곳이다.

    랑그독 사회는 5세기에 침입한 서고트족에 의해 고트(Gothie)라 명명되고 이후 8세기에는 사라센족이 점령하기도 했다. 이곳이 프랑스로 편입되는 과정은 바로 알비파 십자군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전에 이미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인식되는 견해도 있다. 여러 이민족의 상업, 문화 교류 장소였던 이곳은 전투력으로 무장된 샤를르 마르텔, 페펭, 샤를르마뉴에 의해 완전히 이민족과 결별하게 되고 프랑크족의 단일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어 통일된 지역문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알비파 십자군 결과 프랑스로 편입되는 과정이 용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10세기부터 툴루즈의 백작이 관여하게 되고 알비파 십자군 전쟁 이후 급변하는 언어사회상을 보이게 된다.

    나아가 랑그독 지역의 문화적 급변요인으로 전쟁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만이 이문화 교류의 매개가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자한다. 언어 간 교류 흔적은 어휘차용을 비롯한 통사구조 등 복합적인 언어 현상을 야기하는 데 어느 특정한 시기에 구별되는 문화 도입이 어휘수용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 간 접촉의 주요 사회상으로 이곳은 4세기에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여러 언어 간 접촉으로 인한 충돌과 수용에 앞서 종교의 수용은 문화 교류의 중심으로 설명될 수있으며 랑그독 지역의 종교 성향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된 다양한 문화교류의 결과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요인 또한 알비파라는 종교 성향을 고수하고자하는 지역성을 낳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 언어사측면에서 중세를 살펴보면(Theis L. 1992: 전체 참조) 다음과 같은 시기로 나뉘게 된다8). 첫째, 여러 민족들과의 침입과 정주가 있은 뒤 프랑크왕국(486년-678년)의 출현이 있었고 이후 샤를르마뉴(678년-771년)의 등장, 카롤링거왕조(771년-840년), 서프랑크왕국(840년-888년)을 거쳐 하나의 왕조에서 여러 왕조로의 분열(888년- 999년)되는 시기이다. 바로 클로비스왕에서부터 위그 카페왕의 시기를 통틀어 지칭할 수 있다. 이는 중세 초기인 로마 멸망직후 골(Gaule)지역의 언어분열시기로 각 지역에서 사용된 라틴어가 쇠퇴하고 민중 로망어로의 이동이 이루어져 고대 프랑스어 탄생을 예고하던 언어상황이다. 둘째, 카페 왕조를 중심으로 한 왕국(999년-1226년)이 건설된 시기이다. 필립 1세(996년-1108년)를 시작으로 루이 6세와 루이 7세(1108년-1180년)를 거쳐 왕국의 혁신을 이룬 필립 오귀스트에서 루이 8세(1180년-1226년)까지가 이 시기에 속한다. 언어적으로는 각 지역별로 민중 로망어의 발달 속에 지역어들이 생성되어 사용된다. 셋째, 프랑스 왕국의 황금기가 시작된 시기로 성 루이 왕부터 샤를르 4세의 죽음(1226년-1328년)까지를 말한다. 크게 북쪽인 랑그 도일(langue d'oïl) 언어권과 남쪽의 랑그 독 언어권(langue d'oc)으로 나뉘고 다시 여러 지역어로 분화된다. 넷째 시기는 일련의 사회적 위기를 겪은 후 안정화 단계를 거쳐 서서히 국가가 새롭게 재정비되던 시기(1328년-1483년)로 왕권 확립을 위해 다양한 지역어가 쇠퇴하고 프랑스어에 대한 강화 정책이 싹튼 시대다.

    프랑스 중세 언어 간 접촉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세 초기 언어단계인 5세기부터 8세기까지로 여러 언어들 간 교류의 결과로 고대프랑스어 탄생을 돕는 지역 언어들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골에 정주한 여러 토착민들의 구술언어와 이를 기록한 문자 언어인 고대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지역별로 흡수하여 발달한 민중 로망어의 발전과정은 언어 간 접촉상황에서 수용, 차용, 변용 등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문화의 이동성과 복합성의 결과로 고찰될 수 있다. 그 중심엔 전쟁, 종교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있었다고 본다. 이후 9세기를 기점으로 13세기까지의 고대 프랑스어(l'ancien français) 생성과 14세기에서 15세기의 중세 프랑스어(le moyen français) 역시도 일련의 중세 언어 간 접촉 과정의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랑그독 지역은 오래전부터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페니키아인, 고대그리스인과 선민족 간 융합이 있었으며, 또 동서에서 침입한 리구리아 인, 에트루리아 인, 이베리안 인, 게르만 인과 골 인 간 충돌 및 공존으로 그들의 문화인 언어들 간 접촉은 당연한 귀결이다. 중세에 이르러 이 지역은 프랑스 북쪽의 랑그 도일 언어권역과 맞물려 남쪽의 랑그 독 언어계열로 각각 다르게 발전해 나가게 되는 접변점이 되었다.

    표에서와 같이 몇몇 언어접변지역의 언어들을 제외하고 프랑스 지역어 권역은 북쪽의 랑그 도일 지역어권(dialectes d'oïl)과 남쪽의 랑그 독어인 옥시탄 지역어권(dialectes occitans)10)으로 양분될 수 있으며 중세부터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이 유지되어 지역어 수호 및 전통 보존에 대한 각 지역의 요구와 프랑스 정부의 ‘우리 문화 다양성’ 가치 차원에 입각한 유럽 언어정책의 일환이자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대 사용되었던 각 언어권역의 언어들을 다시 세분화하면 다음 도표와 같다.

    이렇게 나누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으로는 987년 카페 왕조의 시조인 위그 카페가 프랑스 최초의 왕위에 오르고 봉건제였던 당대 프랑스는 20여개의 지역 영주가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북쪽의 플랑드르 백작, 노르망디 공작, 동쪽의 부르곤뉴 공작, 남쪽의 아키텐느 백작이 위세를 떨쳤는데 각 영지에서 사용된 언어들이 그 주변 지역으로 전달되어 언어권을 형성하고 지세가 고립된 곳은 소통의 부재로 전통을 고수하여 고착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외부의 침입뿐만 아니라 종교의 역할도 언어 간 접촉의 요인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로마 교회의 언어인 라틴어와 일 드 프랑스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왕의 언어이자 지역어인 프랑스어는 넓은 프랑스 전역으로 보급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단적 종교로 인식되었던 남부 프랑스의 카타르파는 동일한 언어권 주변 변경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민중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언어들이 생성되고 활용되어 랑그 독어 계열 지역어로 발전하는 사회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랑그독 지역은 언어권으로 규정될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부터 꽃피웠던 옥시탄 문화(la culture occitane)가 지배했던 곳으로 여러 문화가 혼종·통섭 되었고 특히 프랑스 남부를 중심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와 관련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공통된 언어를 바탕으로 공통의 문화 공간이 이동되는 데 중요한 어떤 역할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지역어뿐만 아니라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의 지역어가 모두 사용되었고 옥시탄어13)는 이 곳을 시발점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에도 프랑스 지역어들 중 가장 강력한 위상을 유지하여 세계적인 연대를 결성하고 있다.

    결국 고대의 구술언어는 중세로 접어들자 문자 언어로의 병용표기가 활성화되었고 역사에 대한 기록도 빈번해졌다. 특히 십자군 전쟁 때는 사회문화에 대한 기록이 많아져 연대기와 무훈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본 논고에서 이 지역 언어 간 교류 방식으로 보는 것이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건너온 프랑스 남부 음유시인 트루바두르의 이동성에 따른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힘입은 언어를 통한 문화 간 이동의 흔적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랑그독 지역의 무훈시는 당대 여러 언어 접촉이 자연스러웠던 배경과 언어 간 교류의 근거로 기록 자료가 될 수 있다.

    8)Zink, G., L'ancien français, PUF, 2007.   9)http://www.tlfq.ulaval.ca/axl/francophonie/hist_fr_s3_ancien-francais.htm   10)랑그독 지역의 언어 표기로 옥시탄어권이라고 부를 수 있음.   11)이외에 스페인의 카탈란어(le catalan)도 사용되었음.   12)이외에 스위스의 le genevois, le vaudois, le neuchâtelois, le valaisan, le fribourgeois 어와 이탈리아의 le valdôtain 어도 사용되었음.   13)이 곳 지역어인 옥시탄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F. Mistral)의 노벨상 수상으로 지역어 보존 운동이 있어 왔음.

    3. 랑그독-루씨옹과 스페인 간 언어문화 교류방식

    랑그독- 루씨옹과 스페인 간 언어 교류 흔적은 두 지역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언어로 기록된 문예를 통해 한 역사적 사건을 부각시켰다.

    알비파 십자군 전쟁은 12-13세기 프랑스 남부 알비를 중심으로 한 랑그독 지역에서 발생한 카타르파(catharisme)14)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이 지역에 십자군(1209-1249)을 투입시킨 사건이다15). 기존 십자군이 일으켰던 전쟁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십자군 전쟁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스어로 순수하다는 의미인 카타르파는 3세기 마니교에서 유래된 교의로 가톨릭 교리와 다른 면이 있었고 선(신)과 악(악마)을 주요 가치로 삼고 있었으며 청빈한 삶과 완벽한 영적 신앙생활에 도달할 것을 강조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대립하여 반성직자파를 결성하였고 당대 성직자들의 부패를 끊임없이 비판하게 되었다. 이에 교황은 아르노-아말리크 수사의 주도하에 1209년 십자군을 출범시켜 이 지역을 처단하고 특히 시몽 드 몽포르는 카타르파를 가차 없이 박해했다.

    위의 십자군 전쟁 과정을 살펴보면 첫째, 알비 중심의 카타르파에 대한 종교적 회심전략이 있었다. 카타르파 교회가 급성장하자 종교적 영향력이 커졌으며 교황은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권유하였으나 받아들이는 이가 적어 이 지역에 투쟁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둘째, 교황은 카타르파의 축출을 위해 이 지역 남작들이 주도하는 십자군 전쟁(1209년)을 선포한다. 셋째, 십자군의 랑그독 지역 침입(1209-1213)이후 대대적인 저항(1216-1223)이 거세어졌고 왕의 개입(1226-1229)으로 파리에서 평화를 위한 협상이 시작된다. 넷째, 위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la Chanson de la croisade albigeoise ou Canso de la Crosada)가 작성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이후에도 이 십자군 전쟁은 지속되어 툴루즈 백작의 독립 말기(1233-1255)에는 다른 이교도에 대한 투쟁으로 확대된다.

    이 사건은 카타르파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를 아우르는 옥시탄인들을 무수히 죽인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는 랑그독 지역 언어 저항성의 상징이며 카타르파와 옥시탄인을 몰살한 사건에 대한 문헌 기록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이 지역에서 『십자군의 노래』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무훈시는 9578행의 역사서정시로 나바르 왕국 출신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인 기욤 드 튀델16)과 작자 미상17)에 의해 1209년부터 1218년 또는 1219년까지 지속된 비극을 기록한 문예작품이다. 이는 스페인 아라곤 왕국과 프랑스 남부 툴루즈, 그리고 옥시탄인의 연합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북부 프랑스인들에 대한 저항의 표현인 것이다. 무훈시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은 툴루즈 백작인 레이몽6세와 옥시탄인, 아라곤왕이 연합하여 십자군에 저항한 뮈레 전투(1213년)18), 보두앵의 죽음(1214년)과 북부 프랑스인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다루고 있다. 작가인 튀델은 프랑스어가 아닌 랑그독 지역언어인 옥시탄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자 십자군 전기 작가로 언어의 순수성을 표현했다고 평가 된다19). 두 번째 부분은 툴루즈의 레이몽 7세 백작의 시각으로 적혀졌으며 중세 옥시타니아에 대해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글로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에 의해 작가는 툴루즈 레이몽 7세 백작의 보호아래 있던 성직자로 추정되고 있다. 또 후대의 기록으로는 옥시탄어로 기록된 역사상 가장 저명한 작자미상의 문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알비파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록은 당대 랑그독 지역의 사회 상황인 주변과 동일한 옥시타니아 문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무훈시의 저자가 스페인에서 건너온 트루바두르라는 점에서 랑그독-루씨옹 지역과 스페인 간 옥시탄어의 이동과 교류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언어 교류 전달자를 통한 언어 교류 방식과 사용한 언어, 이 지역이 문화 교차로의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아가 알비파 십자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옥시탄어로 집필된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 이외에도 두 문헌에 의존하고 있다. 첫째, 세르네(Pierre des Vaux de Cernay)가 집필한 『알비의 역사』(l'Histoire albigeoise)가 있다. 이 역사서는 프랑스어도 옥시탄어도 아닌 라틴어로 기술되었다. 저자는 제4차 십자군(1202-1204)에 직접 참여하였고 작가의 삼촌이 1212년에 프랑스 카르카손의 주교가 되었으며 실제 의회 참여 등의 사회 활동으로 역사서를 집필하는 데 충분한 경험을 가졌다. 그는 1214년 시몽 드 몽포르를 따라 십자군 군대에 합류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1218년에 자취를 감출 때까지 십자군 공식 전기 작가로 알려져 있다. 둘째, 퓌로랑(Guillaume de Puylaurens)이 저술한 『연대기』(la Chronique)는 1200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성직자이자 작가의 공식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 지역에 관한 문헌의 특징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기술되어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며 당대 언어 간 교류가 존재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중세 언어 교류는 집필자인 성직자, 연대기 작가20)와 음유시인21)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트루바두르의 언어 교류자로서의 역할은 중세 중요한 문화 이동 매개체로 평가받을 수 있다. 또 여러 민족들이 정주하였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랑그독-루씨옹 지역은 여러 문화가 모이는 곳이자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변용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언어 통섭상황 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중세 언어 교류자의 역할은 성직자, 음유시인뿐만 아니라 랑그독-루씨옹 지역의 툴루즈 백작 레이몽과 같이 귀족도 기여한 점이 있다.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에 참가하는 등 스페인 왕실과 잦은 교류를 했고 프로방스에서 주로 군대를 모집하여 동맹 전쟁에 참여함으로 접촉을 이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지역의 다른 도시인 님, 나르본, 베지에 등과의 협력 하에 예루살렘을 탈환하러 출발한 첫 십자군(1099년)에 중요 인물로 참여하였으며 1102년 레바논에 트리폴리 백작령을 만들고 동양과의 접촉을 통하여 프랑스 남부 음유시인 트루바두르의 탄생과 궁중 연애로 대표되는 옥시탄 문화를 생성해 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언어 교류가 사회에 끼친 영향으로는 공통의 언어 옥시탄어를 기반으로 옥시탄 문화가 발생하였고 프랑스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까지 확산되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14)카타르파는 1176년 프랑스 남부 도시 알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알비파로 부르기도 함.   15)예루살렘 성지 수호라는 초기 십자군의 대의와 달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치스러운 약탈이 자행되자 서구 사회는 십자군의 윤리에 대해 충격이 거세지고 교황에 의해 무슬림이 아닌 이단 그리스도교의 처벌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알비파 십자군이 대표적인 사건임.   16)전반부의 130 laisse의 저자인 기욤 드 튀델은 몬토방에 거주하며 1210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214년에 절필했다. 십자군의 무훈을 상세히 기술하여 중요 역사자료가 될 수 있었음.   17)후반부를 기술한 작가는 미상으로 1213년에서 1218년까지의 역사적 이야기를 기록하였는데 전반부와 달리 십자군에 반대하는 시각이 두드러졌고 문체는 웅변적이고 열정적인 시 형식을 갖추었다고 알려짐.   18)1213년 9월 12일, 툴루즈 남쪽 25km 평원에서 일어난 알비파 십자군의 전투로 스페인 아라곤왕은 1212년 모레스인들을 축출한 Las Navas de Tolosa전투 이후 카타르파에 우호적이었으므로 프랑스 툴루즈와의 연합을 통해 참여함.   19)훗날 1337년 석회 제조공의 손에 들어간 원고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을 거쳐 1837년 소르본대 교수인 Claude Fauriel에 의해 출판되었음.   20)연대기 작가들은 지휘관의 후원을 받아 역사 기록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건이 지난 후 수년 내지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묘사하기도 했기에 십자군을 기술하는 데 객관적일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21)오히려 트루바두르에 의해 당대 기술된 십자군 무훈시는 사료만큼이나 생생한 기록으로 평가 받음.

    4. 랑그 독어와 카탈로니아어 간 통섭의 영향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랑그독-루씨옹 지역에서 발생한 중세 알비파십자군 전쟁은 서로 다른 언어로 적힌 세 문헌에 의해 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기록된 언어들은 한 지역에 들어와 언어 간 수용을 통해 서로 접촉했음이 드러난다. 특히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는 랑그독 언어인 옥시탄어로 작성되었으므로 스페인 간 언어 교류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점이다. 두 지역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언어는 옥시탄어이며 언어 발생 학에서 볼 때 스페인 나바르쪽에서 발전되어 간 카탈로니아어와의 유사성이 있다. 또 집필 작가의 출신이 랑그독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건너온 트루바두르이므로 그의 이동성으로 볼 때 언어접촉 방식이 스페인과 남부프랑스 일부인 아라곤 왕국에서 출발하여 랑그독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이후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남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 합류되는 지중해 문화의 다양성과 복합성은 랑그독-루씨옹에서 싹트고 확산된 하나의 문화 접변이며 언어 간 통섭의 예로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의 옥시탄어 원본과 후대에 작성된 프랑스어판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어로 번역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가 이 지역언어의 횡적 교류는 빈번했으나 종적 교류는 드물었는가 하는 언어 교류에 대한 재고의 여지가 있다. 프랑스 남부의 옥시탄어와 북부의 프랑스어는 확연히 다른 언어이고 프랑스 지역어인 옥시탄어는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동시에 카탈로니아어와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한편, 어원학적으로 볼때 옥시탄어와 카탈로니아어에 대해 이견이 있으며 라틴어에서 발생한 로망어 중 각각 갈로-로망어24)와 이베리아-로망어25)에 속하는 서로 다른 계통의 언어지만 프랑스에서는 중세까지 하나의 언어로 인식되었다. 이는 로망어 언어학자 본판테26)가 지적한 것처럼 옥시탄어와 카탈로니아가 라틴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발전하여 서로 다른 계열의 로망어로 파생되었다는 점이다. 중세의 언어 사회 환경에서는 주변 언어 간 접촉을 통해 서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유사한 언어로 비춰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이 지역은 중세 지중해 서편 스페인의 도시들과 교류를 시작하여 아라곤의 피에르2세왕, 바르셀로나, 제보당, 루씨옹 백작, 몽펠리에 영주, 툴루즈 백작, 베지에, 카르카손, 알비 자작이 모두 하나의 봉건령에 속하였기에 서로 상이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했을 것이며 언어 간 차용이 이미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오일어인 프랑스어와 남쪽의 옥시탄어는 언어학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특히 음성학과 형태론에서의 차이가 크다. 두 언어는 민중 라틴어와의 혼종 시기를 지나 민중 로망어 형태로 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남쪽은 더 이상 크게 변형되지 않았고 북쪽은 게르만 발음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27). 또 게르만의 악상에 영향을 받아 선율적인 악센트인라틴어와 달리 기식음이 첨가된 조음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라 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횡적 교류인 랑그 독어와 카탈로니아어 간 교류가 더 빈번하였고 종적 교류인 오일어와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언어 교류의 근거인 문예로 기록된 알비파 십자군 전쟁의 결과 이곳에서 일어난 사회 변화는 첫째, 랑그독 지역의 이단분파인 카타르파가 전멸되고 도미니크 수도회가 창설되었으며 중세 종교재판이 만들어졌다는 점28)과 둘째, 이 지역이 이론적으로는 프랑스 왕에 종속되었으나 아라곤 왕궁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랑그독-루씨옹에서 사용되는 옥시탄어는 종적인 교류 즉 프랑스왕의 언어인 프랑스어에 영향을 받아 상호 교류 과정을 겪기 보다는 변경지대를 중심으로 아라곤의 카탈로니아어와 더욱 밀접하게 수용되었으며 두 지역에 두 언어가 모두 사용되는 재차용 현상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 왕권 확립을 위한 언어정책29)으로 지역어에 대한 국가적인 조사가 있었을 당시 북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화자수에 비해 남부 프랑스의 옥시탄어 화자수가 훨씬 많았다는 점이 알비파 십자군 전쟁이후 이 지역이 프랑스왕에 종속되기는 했지만 언어는 유지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 알비파 십자군 전쟁 이후 지역내 변화를 겪는데 첫째, 북쪽 랑그독 지역과 남쪽 카탈루나 지역으로 나뉘게 되어 서로의 언어에 영향을 주게 되는 계기가 급증한다. 둘째, 프랑스 왕과 아라곤 왕궁의 대외정책에 있어 국토 남쪽으로는 관심이 덜 했던 프랑스 왕은 이 지역을 거점으로 피레네지역과 지중해지역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펼치게 되었다.

    언어 간 통섭은 당대 통용되는 언어로 기술된 중세 무훈시30)가 대표적인 사례로 고대 서사시를 이어받아 북부의 프랑스어31)와 남부의 옥시탄어로 기술되었다. 궁정 연애와 같은 서정시는 유일하게 옥시탄어로만 기술되었는데 이는 스페인, 남프랑스의 옥시탄 문화가 낭만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자 미상인 경우도 많았으나 정확한 출신지역을 알 수 없는 트루바두르에 의해 랑그 독어로 집필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른 한편, 오일어권의 음유시인인 트루베르도 서정시 집필에 참여하였으나 샤를르 마르텔과 샤를르마뉴 시대의 영웅과 기사들의 무훈에 대한 기술이 오히려 많았다.

    또 무훈시는 구술문학의 성격도 띄고 있었으므로 한 지역에서 빈번하게 의사소통되는 언어로 기록되고 전수되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랑그독-루씨옹 지역의 중심은 툴루즈였고 남부 프랑스와 스페인을 아우르는 옥시타니아란 용어는 중세 때 시작되었으며 중세 프랑스의 두 언어 형태는 랑그 독어와 랑그 도일어였으나 이 지역 만큼은 카탈로니아어와 교류를 빈번하게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후 옥시탄어는 자료가 많지는 않으나 북부 프랑스어와 전혀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옥시탄어는 남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북부프랑스, 전 유럽으로 이동하였으며 12세기 중세 인문학과 신학의 명성을 파리로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한편 스페인의 톨레도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로 된 과학저서의 번역으로 저명하게 되었다. 또 지중해를 중심으로 여러 언어들이 전파되고 통섭되는데 특히 연안 도시들인 살레르노와 몽펠리에의 의학, 볼로냐의 법률학은 파리, 오를레앙, 몽펠리에로 다시 전파하게 되고 오를레앙은 고전 저작에 몰두하는 지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32). 이는 언어 교류가 단순한 통사적 영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으로의 확산과 더불어 사회문화 전반에 끼치는 통섭의 과정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랑그독-루씨옹 지역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간 여러 언어 재차용 현상을 통한 문화 교차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서로의 학문을 발전시킨 교두보였다고 볼 수 있다. 저서와 문서를 통한 언어의 재차용 현상은 서사적 무훈시, 서정적 연가, 기사의 로맨스, 도시민들을 위한 우화집을 낳게 하고 특히 십자군 무훈시를 기술한 트루베르와 트루바두르를 통해 언어는 이동을 하게 되었으며 다시 각 지역에서 재차용 되는 선순환적 구조를 가져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22)http://www.chanson-de-geste.com/la_croisade_albigeoise.htm   23)Meyer P., La chanson de la croisade contre les albigeois, Librairie Renouard, 1878.(gallica.bnf.fr/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pp.1~2   24)속하는 언어 계열로는 프랑스 지역어들, 옥시탄어, 레티아어를 포함하고 있음.   25)속하는 언어 계열로는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안달루시아어를 포함하고 있음.   26)Bonfante, G., The Origin of the RomanceLanguages: Stages in the Development of Latin(ed. L. Bonfante), Heidelberg, 1999.   27)sapere→saber처럼 [p]가 [b]로 변화한 것임.   28)이교도에 대한 집단 박해와 종교재판이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반면 지역 성직자들의 개혁을 이끌어 내기도 했음.   29)장니나, 「프랑스 지역어 정책과 교육 방안에 대한 고찰-옥시탄어 사례 연구-」, 『지중해 지역연구』, 11권 2호, 지중해지역원, 2009, pp.91-111.   30)중세 무훈시는 11세기 말엽부터 출현했으며 십자군의 행적을 표현하였고 그 출발점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샤를르마뉴 군대의 무용담이었으며 프랑스에서 15세기까지 이어짐.   31)11세기 『롤랑의 노래』는 북부 랑그 도일어로 기술되었음.   32)존 볼드윈, 『중세문화이야기』, 박은구, 이영재 역, 혜안, 2002. 제3장. 학교와 대학들 참조.

    5. 결론

    복합적인 문화를 누렸던 중세 지중해연안지역에서의 언어 교류 유형을 통찰하기 위해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 변경지역인 남프랑스 랑그독-루씨옹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와 전쟁을 통한 언어의 이동성을 사회 속에서 해석할 수 있었다. 나아가 문예를 통한 언어 교류 방식인 옥시탄어로 집필된 알비파 십자군 무훈시는 당대 언어사회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 기록자료가 될 수 있으며 이후 프랑스어판, 스페인의 카탈루니아어판을 포함한 주변 언어 간 호환성과 재차용 현상으로 변경 지역 언어 통섭은 지속되었다.

    자입트의 견해처럼 중세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모호하여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구성원 간 이동이 자유로웠으며 특히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모험이라는 기사도적인 이상, 이교도의 탄압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언어의 수용 내지는 융합의 경우가 적지 않았다33). 이런 언어의 이동성은 제1차 십자군 연대기인 『프랑스인들을 통한 신의 계시』에서 라틴어를 서유럽 그리스도교의 표준어로 설정하게 되었고 한편 프랑스 음유시인들은 알비파 정벌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옥시탄어로 쓰여진 무훈시를 보게 되었다.34) 사실은 프랑스가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독립적인 언어 간 분쟁이 있기보다 왕래가 잦았던 변경지역을 통해 자유로운 언어 수용이 이루어졌으며 랑그독-루씨옹 지역이 중심이 되었던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더구나 프랑스 남과 북의 언어 교류 보다는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어와의 옥시탄어 교류가 더욱 많았음을 보았다. 이런 언어 교류의 주체는 빈번한 인적 이동이었고 전쟁과 종교의 간섭은 오히려 프랑스의 다양한 언어 통섭 환경면에서는 도움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이후 13세기경에는 지중해연안을 중심으로 교류가 폭넓게 확산되어 동맹과 대립의 상호 갈등의 상황도 존재했으나 남프랑스, 아라곤, 이탈리아의 해양도시가 주도하여 하나의 옥시타니아 문화권을 형성하며 언어 간 이동을 그대로 이어가게 된다. 여러 변경지역을 포함한 중세옥시타니아는 남부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 해양왕국 아라곤을 통합하였고 프랑스 음유시인들의 근원지로서 지중해 연안의 백작령들과 결합하여 바르셀로나에서 마르세유에 이르기까지 서로 접촉했다. 한편으로, 문예 교류의 경로를 놓고 볼 때 당대 프랑스 북부의 영웅적 서사시는 직접적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시간적인 유예가 있었고 언어 교류가 빈번했던 이곳엔 공통 문화코드를 기반으로 한 사랑과 모험을 다룬 기사 발라드와 지역의 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저항이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이문화 교류 관점에서 전쟁과 종교는 언어 교류 유형화의 단초가 될 수 있으나 인적이동에 따른 언어 간 수용도 사회에 끼친 상호 영향을 볼 때 직접적인 역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알비파십자군 무훈시는 스페인과 남프랑스 간 교류인 옥시타니아 문화의 바탕이 되며 언어의 이동 및 수용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중세 십자군이 갖는 문화 교류는 전쟁의 다른 이권 다툼만큼 획일적이지 않으며 랑그독-루씨옹 지역에서 일어난 사회역사적 배경은 상대적으로 변경지역 문화가 흡수된 지역의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는 언어 교류의 양상을 지향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접변 교류를 언어 간 통섭의 결과로 볼 때 첫째, 알비파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 견해 차이로 인한 북프랑스의 남프랑스를 향한 강제적인 교류였다. 둘째, 간섭과 획일적 체제의 통일인 교류에 맞서 저항의 의미가 강했다기보다는 거리가 먼 북부 프랑스 보다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 지역과의 교류가 훨씬 더 용이했을 것이고 자발적인 부분이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셋째, 언어 교류의 지역성이 고정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이동성에 따른 언어 간 통섭은 이웃 문화와의 교류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주된 문화권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향후 후속연구로는 이 지역의 언어가 쇠퇴하게 된 배경이 중앙집권적 체제에 순응하기 위한 언어정책의 강제성 때문인지 혹은 종·횡적 교류의 차이가 있었던 것인지에 관해 언어 교류의 지배성에 초점을 두어 이문화 교류 차원에서 살펴볼 것이다.

    33)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역, 까치, 2002, p.303   34)Ibid.,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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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1.] <프랑스 지역어 권역>9)
    <프랑스 지역어 권역>9)
  • [표2.] <프랑스 지역어 계열별 구분>
    <프랑스 지역어 계열별 구분>
  • [표3.] <la Canso de la Crosada 첫 시편 옥시탄어 원문22)>
    <la Canso de la Crosada 첫 시편 옥시탄어 원문22)>
  • [표4.] <la Chanson de la croisade albigeoise 첫 시편 프랑스어 번역본23)>
    <la Chanson de la croisade albigeoise 첫 시편 프랑스어 번역본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