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의 신화성 및 환상성 연구

Study on mythology and fantasy of TV drama「A record of the Taewang-four gho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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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신화는 태초의 신화적 시대에 일어난 신적 행위와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TV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이 신화의 이야기를 토대로 신화성을 형성하면서 환타지를 구현한다.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들, ‘물’과 ‘불’로 상징되는 신화소, 순환과 반복을 통한 영원회귀적인 신화적 시간 그리고 ‘빛’의 출현은 신화적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광영했던 시대의 신화적 질서를 도래시키기 위해 드라마 속에 전략적으로 배치된다. 이런 측면에서 신화는 수사적 장치이자 전략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신화는 환상성을 유발하면서 현실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도록 한다. 환타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중요한 기제이자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담덕을 신성하고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서 현실세계를 만들고 지탱하는 모범으로 삼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이를 설명해준다. 신화의 인물상으로서 담덕의 행보는 우리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A myth is a story about a divine action and incident in an age of myth. TV drama 「Taewang and four gods」 realize a fantasy forming a mythology on the basis of a story of myth.

    A supernatural beings, a symbol of ‘water’ and ‘fire’ as a mythmes, the mythical time for return of eternity by a repetion and a circulation and an appearance of ‘light’ are an important elements forming a world of myth. These are allocated strategically to come a mythical order of glorious age in drama.

    In this respect, a myth is utilized to rhetorical device and strategy. And a myth make the people prepare for combat to a response to reality forming a fantasy. Because a fantasy is an important matter and a way of life to solve a real problem.

    A reason that tries to the model for a real world, making a protagonist Dam-duk be a devine and transcental existence, explains directly this one. Dam-duk’s walk of life as a personal character of myth comes up an actual problem that our community have to advance.

  • KEYWORD

    신화 , 신화성 , 환상성 , 신화소 , 초자연적 존재들 , 영원회귀의 신화적 시간 , 빛의 출몰 , 수사적 장치

  • 1. 서론

    TV 드라마 <태왕사신기>1)는 판타지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민족주의 및 역사 왜곡2)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낳으며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어냈다. 그런데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논의의 대상에 오르면서 방송된<태왕사신기>가 새로운 TV 드라마의 지점을 마련했다3)는 측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드라마가 다른 시대와 역사를 다룬 여타의 사극들과 마찬가지로 역사 왜곡의 논란에 휩싸이며 표적을 받은 부분은 드라마에서 다루는 이야기와 사실들이 실제 역사적 현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대상으로 한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채 지나친 상상력에 의존해서 드라마를 전개시켰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이러한 논란에 가중된 사실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장르적 성향에 기인한다. 이 드라마는 환타지 대서사 드라마라는 장르를 설정하고 역사를 소환한다. 문제는 이 역사를 호출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것이 환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과 해석을 통해 구성되던 역사 장르가 환타지라는 새로운 감수성의 체계와 리얼리티에 근거하면서, 드라마의 진실성과 진정성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동시에 역사 왜곡의 진실성 문제를 함께 제기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환타지 장르는 주류적 범주에서 벗어나 주변적 위치에 머무르면서 자리매김4)해 왔다. 다른 한 쪽 편에 서서 대중들의 욕망과 정서를 반영하고 담지해 왔던 환타지 장르가 올바르게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이성과 합리를 중 시해왔던 전통적 사고 관습 체계에 기인한다. 환타지는 미메시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혹은 단순한 오락거리로서 치부되어 온 것5)이 일반적이다. 요컨대 환타지 장르는 현실을 초월하는 비현실적인 ‘어떤 것’으로 인식되면서 평가절하되고 주변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 환상 문학이 었다는 지적에서처럼6) 환타지는 인간 삶의 경계에 인접해 있는 영역이다.

    그것은 인간 삶의 현실 맥락에 닿아 있으며 현실의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 영역으로 기능한다. 일반적으로 환타지는 실제 세계에 문제가 일어나고 발생할 때 문제를 해결하고 초극할 수 있는 기제로 활용된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의혹과 의심이 제기되는 지점에서 환타지는 타개의 방책으로서 소환되는 것이다. 환상적인 것은 ‘실재’의 ‘본질’에 가장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과의 화해를 거부하는7)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환타지의 비현실성과 초월성은 현실과 상관성을 얻으며 유효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 환타지는 신화의 형성과 연결된다. “신화는 초자연적 신이나 자연, 아니면 초현실적 인간이나 영물들의 이야기가 일상적 경험 세계를 초월한 사고에서 인식될 뿐만 아니라”8), “신화는 그 진실성 내지는 신성성이 인간의 사고에서 부정당하면 성립될 수 없기”9) 때문이다. 신화는 태초의 시간에 일어난 신적 행위나 사건을 담은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존재나 요소들이 총망라된다. <태왕사신기>에는 이러한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 드라마의 신화성을 형성하면서 환타지의 세계를 구현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TV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어떠한 요소들이 신화성을 형성하면서 환타지 장르를 구현해 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신화성이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신화적 모티프, 테마, 구조 등 신화와 관련된 모든 요소와 측면들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신화성을 살펴 보는 작업은 드라마가 갖고 있는 의미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 될 것이다.

    신화는 “선대의 그림자, 꿈, 환각의 왕국으로 사람들을 되돌려 놓고, 잊혀져 버린 인류의 질서를 요청하면서”10) 사라져버린 완전함을 지향하고 복원시키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신화는 현실 밖에 존재하지 않고 그 안에 자리를 잡아 현재의 문제를 다루면서 균형 감각을 잃은 현실의 모습을 질서화하고 재통합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신화의 세계는 자연과 초자연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전체적 현실이 된다.

    따라서 왜 신화를 차용하고 도입하였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드라마가 욕망하는 현실의 모습과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신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역사적 인물을 신화화하면서까지 신화적 세계를 구현하는 데에는 어떤 궁극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화는 한 민족이 오랜 기간 일정한 장소를 기반으로 살아오면서 축적한 민족적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정신적 원형”11)으로써 특히 “신화가 민족의 수난기에 호출되고 신화를 통해 민족이 단결하여”12)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니만큼, TV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드러나 신화성을 탐색하는 작업은 중요해진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이 신화성을 중심으로 면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논의를 이루지 않은 채, 민족주의적 관점이나 주변 정치적 상황에 대입하여 외재적 접근 방식의 논의를 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실은 구현된 텍스트 내적체계의 진실성을 간과함으로써 텍스트가 의미전달하려는 지점에서 이탈하여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여지가 충분해진다. 결과적으로 텍스트와 독자 간의 상호의사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됨으로써 텍스트는 텅 빈 기표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게다가 신화성의 문제는 TV 드라마의 리얼리티 형성 문제와 관련한다.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실재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TV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이미 새로운 감각의 리얼리티를 형성하면서 시청 수용자들의 감각의 변화와 현실 대응방식에 영향을 끼친 지 오래 되었다. TV 드라마 <시크릿가든>(2010),<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등을 위 시하여, 현재 방송 중인<별에서 온 그대>(2014)에 이르기까지 TV의 현실은 환상적 현실 인식을 그대로 노출해내면서 그 자체로 TV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태왕사신기>의 신화성 및 환상성 문제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른다. 이 드라마가 구성한 새로운 감각의 현실이 이후 드라마들과 상관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들 간에 영향 관계의 문제는 본고가 목적하는 사안이 아닌 만큼 또 다른 지면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재현의 구성 방식과 TV 현실이 변화함으로써 생겨난 감각의 문제이고 현실에 대응하는 논리 기반의 문제이다. 따라서<태왕사신기>가 신화이냐 역사이냐 하는 문제보다는 신화를 수용하고 구성하면서 그려내고자 한 현실과 그 욕망은 무엇인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보다 드라마 내적 체계 논리에 입각하여 신화성 및 환타지가 구현 된 사실들에 대해 주력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의도했던 사실이 무엇인지에 천착하고자 한다.

    1)김종학ㆍ윤상호 연출, 송지나ㆍ박경수 극본, MBC TV 드라마 2007년 9월 11일~12월 5일 방송 총 24회분.  2)“민족의 영웅을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만나게 하고 싶었다”는 김종학 PD의 기획의도가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중국동북공정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내보이려는” 야심찬 의도로 나아가자 지나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시켜 나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왜곡의 문제는 환타지 드라마로서의 장르 설정 문제와 연관한다. 역사드라마가 표방하는 리얼리티와 환타지 드라마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단지 설화나 설화적인 요소로 실추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혹은 “역사적 사실이 불행한 당시의 상황을 판타지로 메꾸려는 의도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혹은 “심지어 일제시대에 왜곡된 고조선(환웅) 시대를 신화로 치부한단 말인가...”라는 이야기들이 점철된다. 『뉴스엔』, 2007, 9, 11. 또한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김강원의 「텔레비전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의 역사 서사 연구」(『어문논집』28집, 2008); 김현숙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태왕사신기’」(『역사와 담론』49집, 2008); 권유리야의 「기억상실증에 내재된 동북아시아의 사춘기적 욕망과 콤플렉스」(『동북아문화연구』34집, 2013), 윤석진의 「200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장르 변화 양상 고찰」(『극예술연구』 38집, 2012)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민족주의와 신화, 역사드라마의 관계성을 논의한 윤석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논문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지나친 민족주의적 의식을 내세워(마케팅 측면 포함) 역사드라마로서의 진실성을 담보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이다. 환타지라는 장르에 퓨전의 논리를 내세워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채로 지나친 자의식을 노출한 제작진의 기획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오히려 민족의식의 고취를 저하하고 있다고 비판을 한다.  3)조미숙의 「문화콘텐츠로서의 역사드라마와 신화」(『겨레어문학』 41집, 2008, 593~594쪽)에서는 <태왕사신기>가 오히려 다른 장르와 혼융하고 접점을 하면서 역사드라마 영역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 긍정적 시선을 견지한다. 그리고 새로운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리얼리티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된다.  4)최혜실은 환타지에 대한 종래의 관점과 인식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환상성을 악마, 영혼, 유령, 흡혈귀 따위의 수많은 모티프의 나열로 보거나 현실과 반대의 개념으로 상대화시킨다. 둘째, 환상적 현상을 이성적 행동의 죄의식 또는 타부의 위반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본다. 셋째, 사회성 부족과 도피주의로 인한 반윤리적 태도라 비난한다. 종래의 이러한 환상에 대한 시각에 대해 최혜실은 불충분한 정의들이라 보면서 특히 각주 5)에서처럼 토도로프가 갖고 있는 개념에 대해 현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고하게 가진 사람, 즉 근대 실증주의자와 같은 사람이 갖는 자기 확인이나 불안감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환상에 대한 시각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수되는 경향이 있다. 「가상공간의 환상성 연구: 동ㆍ서양 영혼관의 비교를 중심으로」, 『인문콘텐츠』 8집, 2006. 219쪽.  5)환타지는 특히 현대에 이르러 게임과 조우하면서 가상 현실의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소설과 영화와 접점하는데 주로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한편 단지 환상성이 황당무계한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은 토도로프에 이르러 어느 정도 수정된다. 토도로프는 “오직 자연의 법칙만을 아는 사람이 초자연적 사건에 직면해 있을 때, 경험되는 주저함”이라고 환상을 규정하면서 환상에 대한 관념을 변경시킨다.  6)송태현, 『톨킨ㆍ루이스ㆍ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판타지』, 경기: 살림, 2003년, 6~7쪽 참조.  7)로즈메리 잭슨, 『환상성-전복의 문학』, 서강문학연구회 역, 경기: 문학동네, 2001, 19쪽.  8)김무조, 『한국 신화의 원형』, 정음출판사, 1988, 12쪽.  9)위의 책, 2쪽.  10)이에 대한 논의는 조르주 귀스도르프의 『신화와 형이상학』(김점석 역, 경기: 문학동네, 2003, 48쪽~59쪽)과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와 의미』(임옥희 역, 경기: 이끌리오, 2000)에서 참조함.  11)조미숙, 「문화콘텐츠로서의 역사드라마와 신화」, 『겨레어문학』 41집, 2008, 588쪽.  12)주창윤, 「역사드라마의 장르사적 변화과정」, 『한국극예술연구』 25집, 2007, 370~373쪽.

    2. 신화소: ‘물’과 ‘불’의 원형 상징

    <태왕사신기>에는 여러 가지 원형 상징들이 등장한다. 원형13)은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로 신화에서는 신화소라 부른다. “신화소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의 핵이다. 곧 원형의 내용인 원형상이다. 그것은 어떤 개인의 일회적인 사고, 어느 문화집단의 특유한 사유형식과 관습, 어느 시대에 특징적인 사조의 영향을 확충의 방법으로 하나씩 구별하고 나서 최후에 추출되는 공통핵이다”14). 따라서 이 신화소를 탐색하고 살펴보는 것은 한 개인 혹은 집단이 인식하고 있는 의식의 기저를 파악해 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태왕사신기>에서 ‘물’과 ‘불’은 이러한 원형적 의식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신화적 상징이자 이미지로서 드라마를 구성하고 주재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2.1. 재생과 창조의 이미지: ‘물’

    고대인들은 모든 자연 현상에 국가적 이변이나 삶의 흉악을 예지하는 원리가 내재한다고 믿었고, 그 중에 ‘물’은 이러한 “자연 현상의 암시적, 예지적, 상징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원초의 물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물이 생명의 원천, 참조의 모태로 생각되었기 때문에”15) 고대인은 ‘물’과 인간 삶의 제반에 대한 연관성을 깊이 사고하면서 ‘물’에 대한 관념을 생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물’에 대한 의식은 엘리아데의 논의 속에서 잘 드러난다.

    <태왕사신기>에서 사신(四神) 중 현무는 이러한 물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현무는 우사로서 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수호신인데 ‘거북’과 ‘뱀’이 합쳐진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는 거북이요 꼬리는 뱀인 모습의 현무는 물과 육지를 오고 가는 인물로 오랜동안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어 왔고, 방위 상북 쪽을 관장하면서 ‘물’의 재생과 창조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물’은 그 자체가 지닌 생성력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생성과 창조에 깊이 연관하는데, 이 때 선행하는 전제 조건이 바로 ‘파괴’이다. 재생을 위해서는 ‘파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에 들어가는 행위는 ‘파괴’를 동반하는 그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서 ‘파괴’는 재생과 탄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주 생성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긍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태왕사신기>의 첫 회, 신화시대 이야기는 이 현무에 의해 종결된다. 현무가 주작의 분노가 일으킨 ‘불’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세계의 소요와 혼란을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불’에 대척하여 ‘불’의 성질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물’이기 때문에 ‘불’로 인한 인세의 혼란, 혼돈, 무질서, 그리고 분노는 ‘물’의 파괴적 본능에 의해 잠재워 진다. 7일 밤낮으로 비가 내려 불이 소멸 되자 세상이 온통 바다로 뒤덮여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재생을 위한 전초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제 태초의 기원을 밝히는 신성한 역사로서 신화는 이 카오스로부터 시작된다. 이처럼 신화시대에서 인간시대로 넘어오기 위한 하늘의 통과의례로서 ‘물’과 ‘불’이 만들어내는 카오스는, 코스모스 를 지향하고 ‘물’은 이때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재생적 능력의 역할을 한다. ‘물’은 생명의 재생이나 새로운 탄생을 가리키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원’의 이미지가 한데 겹치면서, 살육과 전쟁이 난무하고 혼란스러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환웅의 소망 = ‘물’의 이미지 = 재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결합은 ‘물’이 갖고 있는 조화로움의 성질과 변형을 가능게 하는 유연성에서 비롯된다. “물은 모든 대상을 한 곳에 집합시키고 조화있게 사상을 결합시켜 다시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작용”17)을 하기 때문이다. 물이 끝내 물로서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라는 상상력을 통하여 생명의 재생, 부활, 탄생 그리고 승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태왕사신기>에서 신화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인간 시대의 창조는 이러한 ‘물’의 생성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2000년 후, 이 신화시대의 복원과 재생의 논리는 ‘물’의 원형적 심상을 통해 구체화된다. 제1차로서 신화시대가 끝나고 제2차로서 인간시대가 도래할 때, 새로운 세계의 생성적 원리를 주재하고 지배하는 것은 이러한 ‘물’의 에너지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현무의 화신으로서 현고가 불주작으로 짐작되는 수지니아의 운명을 거머쥔 인물로 예고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제2차 세계의 창조와 구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노의 화신으로서 흑주작의 힘을 제어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제1차 세계에서 일어난 혼란과 불안이 반복될 수 있다. ‘불’의 상징으로서 흑주작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물’이고, 그 상징체로서 현고는 수지니아와 강력한 운명의 실타래 속에 엉킨 채 공존하고 수지니아의 운명은 현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인간시대에서 현고와 수지니아의 운명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은 채 극적 갈등은 크게 조성되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불’의 힘을 가진 기하와 담덕 사이의 관계에 서사는 집중한다.

    게다가 현고는 사신(四神)들 중 최초로 쥬신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임무를 갖는다. ‘쥬신의 왕이 심장이 타들어가는 분노를 느낄 때’ 각성하게 되는 현고에게 다른 어떤 사신(四神)들 보다 그에게 쥬신을 맞이하라는 임무가 부여된 것은, 바로 잠재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물’의 재생적인 원형 상징 때문이다. 쥬신의 탄생과 재생 그리고 이로 인한 새로운 세계의 도래는 ‘물’의 이러한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TV 드라마 「주몽」에서 해모수가 두 번의 위기와 죽음을 맞이하고 재생하는 것도 그를 실어 나르는 ‘강’ 때문이다. ‘물’이 모여 이루어진 ‘강’은 그 생성력 때문에 해모수의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키는 재생을 이루어낸다.

    이처럼 현고가 물의 생산적 힘의 동력을 가지고 나머지 신물의 깨어남과 쥬신의 탄생을 이루어내는 인물로 형상화된 것은, 갱신과 재생의 에너지를 지닌 ‘물’이 지닌 창조적 이미지 때문이다. 따라서 ‘물’은 죽음에서 부활로, 과거세계에서 현 세계로의 변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만물을 변형 재생시키는 원리로 서 간주된다. 이것은 원시적 사고에서 통용되었던 인식의 기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시적 사고 체계에서는 ‘물’이 인간 우위에 놓여 있는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태왕사신기>에서는 이러한 원시적 사고와 인식의 체계가 사상적 배경을 이루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태왕사신기>에서 ‘물’의 상상은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이루기 위한 원형 상징으로 기능한다. 아울러 ‘불’에 대척하고 견제하는 대립적 심상으로서 활용되면서 <태왕사신기>의 재생적 세계의 형성을 가능케 한다.

       2.2. ‘파괴’와 ‘소멸’의 이미지: ‘불’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래, 인간은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고 이것은 구체적으로 서양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구체화되어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벌을 받지만 인간들로부터는 ‘문화영웅’으로 추대를 받게 되는 역설은 ‘불’의 권능함을 그만큼 증명하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상의 ‘불’은 하늘의 태양신으로 상징되는데, <태왕사신기>에서 역시 ‘불’의 이미지는 하늘을 흠모하고 공경하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 ‘불’ 역시 ‘물’과 마찬가지로 생성과 소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산불이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파괴시킨다. 이런 점에서 ‘불’은 ‘물’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불’의 이러한 파괴성이 궁극적으로 생성에 있다는 점에서 ‘물’의 재생적 이미지와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태왕사신기>에서 ‘불’의 힘과 에너지는 창조와 갱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불’이 지닌 이면의 부정적 성향에 보다 집중한다. 요컨대 ‘불’의 화신으로서 주작의 힘과 에너지는 신화시대에서나 인간시대에서나 세계를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주요인이 된다. ‘불’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벗어나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시대에서 ‘불’을 숭상하는 호족은 하늘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불’의 신녀 가진을 중심으로 호족은 ‘불’의 힘을 이용해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고자 한다. 요컨대 호족은 천상적 질서의 유지와 수호를 방해하는 안티 세력인 셈이다. 이에 따라 태평성대한 쥬신 시대는 위기에 놓이고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늘의 질서를 바탕으로 한 믿음과 체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자 저항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진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닮아 있다.

    고대 신화시대 사람들은 하늘에 순응하면서 하늘이 선사하고 태양이 부여하는 ‘밝음’에로 통하는 이상을 추구한다. 이를 광명숭배 사상18)이라 하는데 이는 하늘의 밝음을 지상 세계에 펼치기를 바라는 희구에서 잉태되고, 이 때 ‘불’ 은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주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요컨대 밝음으로 사람들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한데, 이때 ‘불’이 사악해지면 그 본성을 잃어 세상을 불태우는 속성을 갖게 되어 망녕하게 되고 문제를 일으킨다. <태왕사신기>에서 ‘불’은 이러한 성질을 내포한다.

    ‘불’이 인간의 욕망과 접점할 때, 그것은 하늘에 대한 원망과 복수의 마음을 낳고 하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 의지에 집착한다. 또한 김무조에 따르면 ‘불’이 가지고 있는 파괴력, 세상을 전복시키는 힘이 팽창하고 충만해지면 正한 불의 속성은 사라지고 邪한 ‘불’의 속성이 남겨지게 됨으로써 이 때, ‘불’ 은 邪의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正과 邪의 상호충돌적인 속성과 에너지 중 어느 하나가 강력해질 때 ‘불’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게 된다. ‘불’의 이러한 마음을 얻은 호족은 천상적 지배를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를 바탕으로 세계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이루기 위해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 때 피로 물들여 버린 골육상잔의 이미지는 바로 이 ‘불’ 의 邪한 모습을 담아낸다. 요컨대 인간들의 어두운 욕망과 ‘불’의 邪한 욕망은 한데 겹치며 서로를 투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 형상은 天地의 분리를 가능케 하는 신화소의 역할을 하면서 天地分群神話를 차용해 온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의 시절, 요컨대 양성구유20)의 상태에서 벗어나 각각 독립적으로 분화되는 이야기를 <태왕사신기>는 담아내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하늘은 남성으로, 땅은 여성으로의 미화된다. 환웅으로 상징되는 하늘과, 땅으로 상징되는 웅족 여인과의 합체(혹은 짝맺음)는 양성구유의 구현을 위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하늘과 땅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자 양성구유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태왕사신기>는 신화적 질서에서 인간적 질서로 넘어 오는 과정의 모습을 ‘불’의 형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신화시대의 종결을 양성구유의 회귀로 이루어 낸다.

    그러나 2000년 세월이 흐르고 ‘불’을 숭상하는 화천회와 화천회의 수장이 영원불멸하는 삶을 얻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펼치는 순간, 양성구유의 상태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의 상징이자 현신체로서 주작이 인간 시대에 기하와 수지니아로 환생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들에게는 ‘불’이 지닌 양면의 성질이 부여되는데, 기하에게는 正한 ‘불’의 성질이, 수지니아에게 는 邪한 그것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타고난 운명에 따라 삶을 살아가면서 담덕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 놓인다.

    담덕에 대한 사랑의 배신감과 패배감에 기하는 자신의 신성한 능력을 ‘악’에 이용하고자 하나 수지니아는 담덕을 위해 곁을 떠난다. 서로 각각 타고난 ‘불’ 의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은 갈라지지만, 종국에 가서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는 순간 ‘불’의 본성은 다시 살아난다. 기하는 담덕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이가 위기와 죽음에 직면할 때, 분노를 일으키면서 대지적인 모성 본능을 회복하고 邪해져버린 ‘불’의 마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하의 분노는 바로 흑주작의 분노이다. 흑주작으로서 환생한 것은 수지니아가 아닌 기하인 것이다. 결국 기하는 ‘불’의 正한 마음과 邪한 마음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불’의 신으로서 가진은 하늘과 지상을 이어주고 하늘의 대행자 역할을 해야 하는 위무를 저버린 채 천심과 인심을 연결하지 않고 오히려 ‘불’을 소유하고자 한 인물이다. 결말에서 화천회 수장과의 빙의를 통해 자아분열을 하면서 갈등하는 기하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기하는 모성 본능을 회복하면서 ‘불’의 正하지도 邪하지도 않은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한편 <태왕사신기>에서는 예상과 달리 ‘물’과 ‘불’의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지 않은 채 서사를 종결시킨다. ‘물’의 상징인 현고는 ‘불’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수지니아의 운명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물’과 ‘불’의 대립 보다는 ‘불’ 안에 내재하고 있는 두 가지 성질과 본능의 갈등 대결에 보다 집중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 보다는 ‘불’이 인간적 차원에 존재하면서 인간 내면의 욕망을 상징하고 투사하고 있기 때문에, ‘불’은 문화의 초기적 현상을 보여주며 서사 형성에 집중한다.

    13)원형(archetype)이란 그리스어로 ‘최초의 유형’이라는 뜻의 archetypas에서 유래한 말로, 문학과 사상 전반에 보편적인 개념이나 상황으로 여겨질 만큼 자주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근본적인 상징ㆍ성격ㆍ유형을 가리킨다. 이것은 ‘집단 무의식’ 이론을 체계화한 심리학자 카를 융에게서 차용된 말로, 인간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유전적으로 암호화 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논리 이전의 사고에 기원을 두는 원초적인 심상(心象) 유형과 상황은,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무의식의 원초적 이미지이자 모형으로서의 집단 무의식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신화 속에서 모티브로 나타난다.  14)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2006, 86쪽.  15)왕 림, 『신화학입문』, 금란출판사, 1980, 81쪽.  16)엘리아데, 『종교형태론』, 이은봉 역, 형설출판사, 1979, 208∼226쪽.  17)김무조, 앞의 책, 306쪽. 왕 림, 앞의 책, 81∼82쪽 참조.  18)“우리의 인유한 원초적 낱말 가운데 하늘을 으뜸으로 하는 것으로는 ‘’감계가 있고 인간을 으뜸으로 하는 것으로는 ‘한·불’이 있다.” 김무조, 앞의 책, 343쪽. “고대인의 사유 속에는 천상적 세계의 희귀를 거쳐 지상에 탄생하는 새로운 삶. 그것이 바로 밝음의 휘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창조적 삶의 의미는 하늘의 聖적 ‘밝음’과 인간의 사회적 ‘불’의 연결에서 얻고자 노력했다.” 김무조, 앞의 책, 362쪽. “불의 근본 성격이 양의성에 있고 천심과 인심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이행하는 존재자라 할 때 인간은 ‘불’을 정복하고 ‘불’의 악성에서 해방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화된 오늘날까지도 ‘불’이 양면을 동시에 구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완전히 천심을 이해 못하는데 결정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김무조, 앞의 책, 357쪽.  19)김무조, 앞의 책, 353쪽.  20)양성구유란 완전성, 통합성이다.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자웅동체는 분리되기 이전의 완전 상태이기도 하고, 기원 회귀에 따른 통합이기도 하다. 나경수, 『한국의 신화 연구』, 경기: 교문사, 1993, 257쪽.

    3. 신화의 ‘영원 회귀’적 시간관: 재생과 부활의 구조

       3.1. 재생적 삶의 귀환과 원초 회귀적 본능

    신화적 세계의 시간관은 순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달력의 질서에 따른 연대기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신화의 시간은 ‘年ㆍ月ㆍ日ㆍ時의 반복적 주기가 하나의 단위가 되면서, 마치 壯子가 말하듯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循環的 反復構造’21)”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계기적 질서에 따른 세계의 운행 보다는 자연의 질서에 따른 세계의 운행을 기반으로 한다. <태왕사신기>를 지배하는 시간은 이러한 신화적 시간관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이 드라마의 신화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신화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기원의 문제라면, 기원은 이 시간을 근거로 형성된다. 결국 <태왕사신기>는 신화적 시간을 토대로 ‘무엇인가’의 기원을 그려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 역사 속 인물인 광개토대왕이 정복했던 광활한 대륙 역사가 있었던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하늘의 아들인 환웅이 통치했던 쥬신의 시대에서 비롯된다. 드라마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로부터 2000년을 소급하여 과거의 신화를 재현하려는 데에 주력한다.

    2000년 전의 광영이 다시 도래하기 위해서는 원초 회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재생’과 ‘부활’을 통해 가능해진다. ‘재생’이란 신화의 원형 중 하나로 순환적으로 반복하는 세계상을 지탱해주는 주요한 원리이다. ‘재생’은 자연세계에서 소멸과 갱생으로, 인간세계에서 죽음과 부활로 실현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죽음에 대비되는 개념이자 삶으로의 회귀라는 중첩적 개념을 지닌다. 재생과 부활이 종말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원리에 입각해 있는 만큼, 죽음과 삶은 하나의 모습으로 현현되고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원초 회귀적인 신화적 시간의 형성을 돕는 인자로 작용한다.

    <태왕사신기>에서 재생적 삶은 신화시대의 인물들이 2000년 후에 다시 환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환생을 하는 이유는 신화시대의 영광과 질서를 재현하고 재편하려는 의도 속에서이고 이에 따라 신화적 인물들은 인간의 시대에서 부활하는 삶을 얻는다. 신화시대의 질서란 결국 하늘의 질서를 의미한다. 하늘이 세상을 지배하고 관장하던 시절에는 어떤 고통도 어떤 슬픔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옛 시대의 영광을 기억하고 되살리려는 집단의 무의식적인 믿음은 고스란히 대대로 전승된 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신이적인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수용할 수 있을 만하고 믿을 수 있다고 간주 해버리고 마는 고대인들의 사유체계22)를 닮아 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 미분화되지 않은 고대인들의 신화적 시간 속에서 가능한 사유방식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의 질서를 지상에 심기 위해 운사ㆍ우사ㆍ풍백신을 데리고 오는”23) 것처럼, <태왕사신기>에서 환웅 역시 현무, 백호, 청룡과 함께 인간세계를 관할하는데 이 때 환웅은 물론 현무, 백호, 청룡은 하늘의 질서와 시간을 상징하는 시간의 징표 그 자체로 기능한다. 이들이 활보하고 웅거하는 곳에서는 천상적이고 신화적인 시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환웅은 물론 사신들은 2000년 후 신물(神物)로 봉인된 채로 재생과 부활을 통해 다시 삶을 얻기에 이른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태왕사신기>의 시간은 ‘사신 → 신물 → 신물의 주인’ 의 모습으로 연속되는 재생과 부활의 삶이 이루어지면서 순환과 반복24)을 거듭한다. 이 그림을 재구성하면 그림은 순환하고 동심원적 형태로 드러난다.(그림 2) 그리고 시간은 공간화되면서 <태왕사신기>의 시간관은 “순환론적 시간관과 동심원적 공간관으로 형성된다.”25) 고대의 시간과 공간은 미분의 형태26)이기 때문에 한데 통합된 형태로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한편 순환론적 삶의 구조는 담덕의 출생과 성장에서도 나타난다. 담덕의 유년기—과도기—성년기의 모습은 죽음과 재생의 구조27)를 기반으로 하는 영웅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유년기 성장의 단계에서 담덕은 그를 방해하는 세력들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숨긴 채 은둔의 삶을 살아간다. 특히 이 시기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른 채, 목숨을 연명하고 부지하기 위해 생존한다. 따라서 이 때 담덕의 은둔과 위장은 상징적 죽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과도기에서는 죽음과 재생의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천상으로의 회귀가 가능해진다. 이 시기에는 담덕이 누구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확인이 이루어진다. 이때에는 담덕이 천상의 피를 이어받은 인물이자 쥬신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천손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 순간 담덕은 생존을 위한 상징적 죽음의 단계에서 벗어나 재탄생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성년기에 이르러 담덕은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태왕으로서 영토의 확장과 대통합적 질서를 이루어간다. 이 시기에는 태왕으로서의 뛰어난 능력과 천손으로서의 신성한 위엄과 기지를 발휘하며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담덕은 결국 빛을 발하는 무한한 시·공간대에 진입하면서 천상으로 복귀한다.

    열린 결말(open ending)로 끝맺는 <태왕사신기>에서 마지막 담덕의 모습은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태초의 모습으로 회귀 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확보해준다. 그리고 담덕의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이어지는 행로는 봄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로 이어가는 자연의 순환 구조를 모방하고 있으며, 위기 ― 죽음 ― 재생28)으로 연속되는 죽음과 재생의 구조를 닮고 있다.(그림 3 참조)

    신화적 시간을 표지하는 또 다른 상징물은 ‘별’과 ‘빛’29)이다. 환웅의 현신으로서 광개토대왕 담덕의 탄생을 알리는 쥬신의 ‘별’은 하늘과 땅을 연계시키는 우주목의 구실을 한다. 천상적 체계와 질서에 속해 있는 ‘별’과 그것의 발광은 하늘로 상징되는 상상적 시간의 부활과 인간적 세계 질서와의 계층화를 돕는다. “무한의 시간성을 의미하는 ‘光’”30)은 바로 하느님의 빛의 시간을 도래시킨다. 빛은 두 계층 간의 질서를 시간적으로 배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태왕사신기>에서는 순환과 반복을 통한 원초 회귀적 본능을 잉태하며 신화적 시간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역사적 시간의 도래와 함께 충돌하는 면면을 보여준다.

       3.2.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충돌과 변증법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태왕사신기>의 시간 구조는 죽음과 재생이 반복되는 원초적인 영원회귀의 본능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신화적 시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고 인간 세계 속에 하늘의 질서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국신화에서 하늘을 근원으로 삼아 개국의 뜻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처럼, <태왕사신기>에서 역시 하늘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한 근간이자 이유로서 작용한다. 그것은 하늘을 규범으로 삼아 보다 인간 세계의 질서를 잘 운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신시(神市)’와 같은 하늘을 축소한 도시형태의 모습을 만들어 인간 세계에 천상 세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 고대인들의 사유 체계를 이 드라마에서는 그대로 재현한다.

    <태왕사신기>가 만들어진 드라마 형성 배경은 바로 이러한 의도와 어느 정도 결부된다. 실제 인간 현실 세계를 질서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방법적 모색의 일환으로서 역사는 소급되고 광개토대왕이라는 인물이 차용된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능력과 업적을 재현하여 현재의 삶을 개선하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거대 전략은 신성화 전략으로 나아간다. 광개토대왕을 신화적 인물로 바꾸어 신성하고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한 의도는 제작자가 논의한 바와 같이 현실 세계를 만들고 지탱하는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다.31) 결국 드라마 속의 시간은 이러한 신성화 전략의 바탕 때문에 신화적 시간의 형성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고구려 소수림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2000년 전의 광영이 재현된다는 믿음은, 드라마 안팎에서 신화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의 교차적 질서를 가능케 하면서 신화와 역사의 구성을 한데 섞어 놓는다. 그런데 신화와 역사적 구성의 교묘한 혼합은 이 드라마를 신화로 볼 것인지, 역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망설임과 함께 시청자로 하여금 애매하고 모호한 시청의 태도를 갖도록 한다. 그것은 <태왕사신기>가 그 자체로서의 신화가 아닌 TV 속에서 신화를 그려내며 신화적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태왕사신기>는 신화의 힘을 토대로 하여 실제 우리 역사 속 실제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신화에 대한 믿음에 체중이 실릴 때, 실재의 사실은 신화 속에 함몰되고 역사는 초월되어 버린다.

    <태왕사신기>는 전반적으로 신화적 시간의 질서와 운용의 체계를 따른다. 신화적 시간의 운용이 가능한 것은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유 방식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들을 구원해 줄 쥬신이 왕림하리라는 것, 그것은 쥬신의 별이 뜨는 날 실현되리 라는 것, 그리고 쥬신의 별이 뜨던 날에 고대하던 쥬신이 탄생했다는 것, 그래서 쥬신이 쥬신의 시대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 체계감은 신화적 시간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이하고 신비하게 나타나는 빛과 존재들에 대한 믿음은 어떤 합리적 논리와 이유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 놓지 못한다. 오히려 신성한 하늘의 뜻과 과거의 영광을 인간 세계에 연계시키기를 바라는 갈력이 팽배할 뿐이다. 이것은 고대인의 원시적 사유 체계와 연관되는 지점이다. 고대인의 사유방식은 하늘을 근간으로, 우주적 질서와 시ㆍ공간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늘 그 자체의 영험함과 위대한 능력에 대한 열광 때문이 아닌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지상에 이식시켜 인간 삶의 전범으로 삶고자 하는 데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고대 사유 방식의 구체적 성과는 담덕의 지배 통치와 연결된다. <태왕사신기>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신화적 시간이지만, 이와 대립하며 충돌하는 인간적 시간이 존재한다. 그것은 특히 담덕이라는 인물의 내적 자질과 속성에서 비롯된다. 담덕 자신이 천손의 피를 이어 받아 쥬신의 뜻과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는 위무를 받을 때, 담덕은 최초로 회의하고 생각하는 근대적 자아상을 보여준다.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세계에 대한 최초의 부정과 비판을 가하며 자신의 정체 확인을 모색하는 담덕의 모습은 ‘생각하는 인간’의 형상이다.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회외와 함께 결국 자신이 천상적 존재라는 점, 천상의 자손으로서 달성해야 할 과업을 물려 받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다시 신화적 시간 속으로 함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이후 그의 태왕으로서의 역사와 정치적 행보는 인간적 차원과 질서의 논의 속에서 이루어진다. 신이한 어떤 능력도, 마법적 능력도 그리고 천상적 차원의 어떤 방식도 활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인간과 인간 간의 만남, 관계의 문제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간다. 담덕의 이러한 행동은 대륙의 대통합적 질서의 기반을 마련해 가고 인간적 질서와 체제를 형성하는 원리를 만들어 준다. 특히 담덕이 시행한 과업 중에서 기록자를 두고 역사를 기술해 가는 체제를 최초로 시도한 것은, 담덕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사고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담덕은 천상적 존재이자 인간의 자손으로서 신화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이 동시에 공존하고 교차하는 형상소이다.

    한편 담덕과 유사한 사고를 하기 시작한 인물이 연가려인데, 그 역시 인간의 자손이 인간 세계를 통치할 수 없는지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한 인물이다. 따라서 천손의 피를 이어 받지 않은 자신의 아들 호개를 왕으로 만들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자살해 버리는 비극적인 인물이 된다. 이처럼 연가려가 신화적 질서에 대한 회의와 불만을 갖고 인간을 우위에 둘 때, 신화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은 충돌한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 신화적 시간의 우위는 다시 확보된다.

    한편 담덕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습은 환웅을 닮아 있다. 환웅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인간 세계를 다스리지 않았다. 환웅은 인간들이 스스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처럼 살도록 통치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진 순간 환웅은 천상으로 귀의해 버리고 마는데 담덕 역시 이러한 환웅처럼 자신의 위무를 다한 후 사라져버린다. 결국 담덕은 하늘의 이상적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강림한 천상 존재이지만, 하늘적 질서를 강요하지 않고 이상적 인간 세계를 구현할 뿐이다. 신화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의 충돌은 이 지점에서 소거되고 새로운 인간이 펼치는 이상적 세계의 구현과 시간이 도래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태왕사신기>가 욕망하는 지점이다.

    21)왕 림, 앞의 책, 57~58쪽. 마리 루이즈 본 프란츠, 『시간-리듬과 휴지』, 윤원철 역, 평단문화사, 1986, 11~19쪽.  22)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이학사, 2003, 13~16쪽 참조.  23)김무조, 앞의 책, 158쪽.  24)“반복은 인간의 시간을 태초의 시간 속에 재통합하는 것을 보장해준다.” 조르주 귀스도르프, 앞의 책, 78쪽.  25)나경수, 앞의 책, 810쪽 참조.  26)둘은 내용상 동일한 것이며 적어도 동양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합치된 형태로서 인식하였다. 따라서 신화의 기원은 시간과 공간의 기원을 동시에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7)이 구조는 엘리아데와 노드롭 프라이의 논의, 우리 나라 고대 군담 소설의 재생 모티브를 기준으로 한다.  28)위기는 현실로부터의 격리, 죽음은 과도와 변형, 재생은 새로운 현실로서의 복귀로 이루어진다. 김무조, 앞의 책, 36쪽.  29)‘빛’에 대한 논의는 4장 1절에서 구체적으로 하고자 한다.  30)김무조, 앞의 책, 381쪽.  31)이미 이것은 제작기획 의도나 <태왕사신기> 스페셜 영상에서 김종학 감독이 직접 설명한 바가 있다.

    4. 환타지 구현을 위한 신화성의 수사학

       4.1. ‘사라짐’과 ‘나타남’의 출현 방식: ‘빛’의 출몰

    ‘어떻게 출현하는가/사라지는가?’의 문제는 환상성을 가늠해 보는 중요한 방식이다. <태왕사신기>에서 ‘나타남’과 ‘사라짐의 방식은 환상적 분위기의 조성과 함께 이 드라마의 비실재성과 비현실성을 구별하고 강조하는 주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환상성의 진정한 주제’32) 이자 <태왕사신기>의 환상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태왕사신기>에서 쥬신 왕의 재림, 사신의 출몰은 한 줄기 ‘빛’의 ‘나타남’과 ‘사라짐’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빛’은 존재를 드러내고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기능한다. 일반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오버랩이나 이중인화33)와 같은 촬영의 기법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태왕사신기>에서는 ‘빛’을 이용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빛’이란 모든 활동을 위한 조건이자 사물을 보게 하는 절대적 요소이며 다른 존재로 활성화하는 힘, 열의 상대역이다34). 이 빛은 대상을 현상하거나 감지할 수 있게 하고 사물로 구체적인 세계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어둠과의 대조를 통해 변별되는 ‘빛’의 개념은 특히 “원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여 흑과 백, 밤과 낮, 생과 사라는 본능적인 상징체계의 출발점이 되었고, 마침내 정신적인 차원으로 옮겨와서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의 상징으로 변했다. 곧 빛은 정신적 세계, 영혼, 나아가서는 신의 상징”35)으로 명명되는 단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제의미를 얻는다.

    <태왕사신기>에서 ‘빛’은 신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단서이자 그 자체로 기능한다. 환웅 및 담덕의 현현과 사신들의 출몰은 ‘빛’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빛’은 신성성의 표상이다. 환웅의 주변에서 발광하는 빛들은(그림 4) 그의 신성한 분위기, 천상적 체계에 속한 여러 자질들을 환기해 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간의 형상과 일치하는 천상 질서의 환웅을 구별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 ‘빛’을 통해서이다. 환웅은 인간 세계에 내려와 새로운 세계를 최초로 펼치는 천상적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환웅은 인간 세계의 질서를 최초로 태동시키는 인물로 그의 이러한 시초의 작업을 규명해주는 것은 바로 ‘빛’36)으로 나타난다. ‘빛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탄생의 근원’37)이기 때문이다. 이 ‘빛’은 그가 속한 세계와 인간 세계와의 구별을 짓게 하는 경계선으로 기능하면서 세계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만든다. 환웅의 ‘빛’은 2000년 후 인간 담덕에게로 전이되는데 환웅이 갖고 있는 신성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위해서는 이 ‘빛’을 통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빛’은 인간 담덕이 천신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는 점 그리고 환웅이 환생한 인물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징표로 기능한다.

    따라서 담덕이 태어나는 날에 대한 계시는 ‘쥬신의 별’(그림 5)이라 믿어왔던 별의 빛남과 반짝거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새로운 세상을 구원하고 만들어 갈 쥬신의 재림은 이 ‘빛’의 제시와 함께 모두에게 천명되고 믿음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담덕이 발현하는 신성성의 부각은 이 전수된 ‘빛’의 출몰과 깊이 관련 한다. 쥬신 왕의 탄생은 하늘에 떠있는 별의 발광을 통해 감지되고 그것은 한 줄기 ‘빛’의 모습으로 현현된다. 2000년을 윤회하여 태어나는 존재성의 과시는 이와 같이 ‘빛’의 형태를 통해 가능해진다.

    사신들이 출몰하는 과정 역시 한 줄기 허공에 떠오르는 ‘빛’의 형상화를 통 해서 나타난다. 환웅이 사신을 호출하고 집합하는 실제 방식은 이러한 ‘빛’의 나타남을 통해서이다. ‘빛’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사신들 각각의 형체가 실현됨으로써 사신은 자신의 실체성을 구현한다. 비, 구름, 물, 불 등과 같은 비실체 적인 대상들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빛’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빛은 보이지 않는 바람, 속도, 소리, 공기, 음, 시간의 어떠한 현상적 특성을 갖는 비물성체들을 시각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림 6, 7 참조)

    ‘빛’의 출몰은 빛이 지니고 있는 속도와 연관한다. 호출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빛’의 속도감은 결코 인간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을 구현하면서 존재에 대한 신성성과 환상성을 부각시킨다. 결국 빠른 빛의 물질성은 그 자체로서 성역화된다. 빠른 속도감과 함께 화면 위로 하얗게 점점이 흩어져 날리며 형상화되는 ‘빛’은 순간적인 시간의 지연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사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간이 지연되고 존재의 드러남이 잠시 유보됨으로써 사신의 존재는 더욱 비실재화된다. 결국 빛의 파장은 사신의 나타남을 기표화하면서 그들 형체의 탄생을 물리화한다.

    사신이 현신화된 신물들과 현신체들은 인간 세계에서의 사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현신체와 신물들 역시 사신의 신성성을 전승받는데 그러한 신성성의 발현은 ‘빛’을 통해서이다. 특히 신물의 각성이 이루어질 때 사신이 드러내는 존재론적 증명은 ‘빛’이 발광하면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빛’은 담덕과 현신체, 신물들과의 의사소통을 이루고 그것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징표로 활용된다. 결국 서로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 이들이 서로에 대한 존재를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빛’ 으로 인해 가능하다. 이 때 ‘빛’은 그들이 비슷한 속성을 지닌 유사체라는 점과 태생과 기원의 동질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는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 이 ‘빛’을 통한 존재의 증명 방식은 거꾸로 그의 형체가 애초에 ‘빛’ 이 아닐까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구체적인 실체로서 환웅이나 사신 그리고 환생체들을 통한 시각적 현현은 ‘빛’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방식일 수도 있다. ‘빛’이 물질 세계에 드러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형체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재현되는 형상이 본래의 그들을 표상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빛’은 빛 그 자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인물 대상들의 존재 방식이 ‘빛’을 통해서라는 점이고 ‘빛’은 그 대상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면서 그 대상이 지닌 본질과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점에 있다. 가령 환웅이라는 인물에 대한 ‘빛’의 제시는 그가 빛의 이미지로 표상될 수 있는 천상적 세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천상의 체제는 이러한 빛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빛’은 시각 현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의 속성을 드러내고 인식시킨다. 시각 현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란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범위 내의 세계이고 구체적으로 그것은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으로 환기된다. ‘빛’은 가시적이지 않은 세계, 비실재하는 세계와 연루하고 있으며 그러한 세계의 성질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빛’ 자체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세계 안에 그것이 도입될 때, 새로운 세계의 조성과 변경은 급격하게 빨라진다.

    <태왕사신기>에서 ‘빛’은 공간의 지표로서 작용하면서 세계와 세계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시청자의 감각을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예컨대 “빛은 비물성을 실현시키는 표현 언어가 되면서 적극적으로 비물성의 현상을 시각적으로 가시화시키면서 관찰자의 감각을 활성화시킨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비가시적인 현상학적 이미지를 가시화시키면서 새로운 실존적 의미로 전환”38)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빛’은 <태왕사신기>의 환상적 세계의 구현을 이루면서 새로운 감각의 리얼리티를 형성한다. ‘빛’은 대상체들의 ‘나타남’과 ‘사라짐’의 방식이2015-03-18고, 그들의 존재론적 증명을 제시하는 확인이다. 그리고 이 ‘빛’을 통한 출현과 소멸의 이미지는 <태왕사신기>의 환상성을 조성하는 주요한 기제로 역할한다.

       4.2. 수사적 장치로서의 신화와 환상적 현실 인식

    <태왕사신기>는 신화적 현실을 기초로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는 이야기이다. 신화적 현실이란 신 혹은 신성과 관련한 세계의 구성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모습으로 <태왕사신기>의 신화적 세계의 구현은 이 현실을 기초로 해서 환타지를 형성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찬란한 빛, 주술적 마력, 기이한 캐릭터의 형상, 초자연적이고 천상적인 존재 등의 다양한 구성적인 요소와 원리들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상적 현실이 펼쳐지는데, 이런 측면에서 신화는 “환타지의 원천 재료이자 영감을 제공하는 제재”39)이다.

    요컨대 <태왕사신기>에서는 신화의 세계상을 활용해서 환타지의 세계를 구현한다. 신화의 세계상이란 대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 받아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켜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도래에의 열망이 발현된 세계의 모습을 말한다. 신화는 이런 맥락에서 <태왕사신기>의 수사적 장치이자 전략으로 활용된다. 이것은 실제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강력한 염원으로 바뀐 발현 형태이다. 환타지는 “사실에 반대되는 조건을 오히려 ‘사실’ 그자체로 변형시키는 서사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40)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과 다가오는 대선 주자들에 대해 바라는 제작진의 희구가 시대적 요청에의 논리로 나아가면서 집단적으로 무의식화 되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결국 신화적 심상은 이런 방식으로 한 집단에게 심리적 보상을 제공해 줌으로써 시대의 정신을 주도하는 데에 역할을 한다. 이처럼 환타지는 균열된 현실의 틈새로 잠입하여 충족되지 않는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특성이 강하다. 다시 말해서 환타지는 현실을 떠나서 작동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인 셈이다.

    그런데 이 현실 인식은 새로운 감각의 리얼리티를 형성하면서 종래의 리얼 리티 개념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관련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재현을 기본으로 하던 TV의 현실은, 점점 외부 세계와의 지표적 연관성을 잃은 채 현실적으로 모사하기 불가능했던 상상적 세계의 현실을 담아 내기에 이른다. 특히 이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지는데 이후 TV는 과매개성41)을 숨기지 않으면서 새로운 현실의 출현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42)이란 실재가 아니라 현실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태왕사신기>에서는 이 가상 현실을 바탕으로 환타지를 구현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시감각의 변화를 초래한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43)을 활용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대한 제시와 전망은, 시청자의 정서 및 감각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인식의 확장을 이루 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애초에 실제 광개토대왕이라는 인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대륙을 정복하고 위대한 기상을 떨쳤던 광개토대왕이 거칠고 호방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고 온건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춘 인물로 형상화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광개토대왕은 낯설게 변경되면서 실제 역사적 근거나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는 역사 왜곡 논란까지 불러일으킨다. 광개토대왕은 실제가 아닌 상상44)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인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을 신화적 인물로 볼 것이냐 역사적 인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의 문제와 연관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신화는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한다.

    신화가 허구이고 역사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인식은 일반적이다. 그리 고 이 일반론은 서구 근대성의 양분법적 모델에 따라 이루어진 사고의 결과로써 신화는 이런 측면에서 합리성의 개념과 대립하며 허구나 거짓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다.45) 그러나 더 이상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해 역사가 해명을 할 수 없는 순간에 이러한 통념이 깨어지고 이 자리에 신화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역사는 인과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설명을 통해 인간 존재 방식의 문제를 탐구하기 때문에 문제적인 현재를 해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화는 삶의 끊임없는 재생을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화가 갖고 있는 재생적 시간관과 역사가 긍정하는 선적 시간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역사가 과거의 인물과 이야기를 기억하여 서술하려 하듯이 <태왕사신기>에서도 광개토대왕을 기억하여 축적 하려 하지만, 이 때 광개토대왕을 기억하는 행위는 선조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태왕사신기>는 실재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서 스스로 ‘참된 이야기’가 되어 역사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 텍스트 내적 체계에 기반하는 기호들이 실증적인 역사를 만들어 내는 데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드라마에서는 텍스트 내적 체계의 기호들이 실재를 재현하려 하기 보다는 초실재들을 지시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 신화는 이 순간 존재하는 나의 삶을 해명하고 충일하게 경험해 보고 싶은 존재론적 소망에 집중하면서 현재를 반성하는 자아보다 앞서기 때문에 역사 우위에의 지점을 확보한다.

    게다가 역사는 “인과론적 설명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임을 숨길 수 없다”46)는 것이 문제이다. 역사의 이야기적 성격은 역사를 ‘예술로서의 역사’로서 관망하게 함으로써 신화와 접점할 가능성을 배태시킨다. 요컨대 이야기 관점에서 역사는 신화적 차원을 내재적으로 구조화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왕사신기>를 역사로도 신화로도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이 ‘왜 신화인가’에 있는 만큼 이 텍스트를 역사로 볼 것이냐 신화로 볼 것이냐의 문제 보다는, <태왕사신기>를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과거의 선행 사건들의 역사로,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들을 선택하고 해석한 이야기로 간주해 보기를 제안한다.

    김기봉47)은 이를 위해 역사의 ‘상사성’을 논의하면서 역사 인식 영역의 확장을 제안한다. ‘상사성’이란 원본의 존재에 얽매이지 않고 복제와 복제 사이의 닮음과 차이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이런 측면에서 <태왕사신기>는 상사성을 근거로 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 담덕의 역사는 김기봉이 제안한 것처럼 과거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담덕이라는 현재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요컨대 ‘담덕 이후의 담덕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담덕 이후의 담덕은 담덕의 복제이고 시뮬라크르이다. 현재가 만든 ‘담덕’에 대한 이미지가 담덕의 역사적 사실로 기호화된 것이다. 그리고 신화는 이런 상사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신화는 추상적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역사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유를 가능하게”48) 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이루게 한다.

    결국 광개토대왕은 부드러우면서도 인간애와 리더십을 갖춘 인물에 대한 희구가 만들어낸 상상의 현실인 셈이다. 이처럼 “절대왕권을 휘두른 마초형 군주의 전형성을 탈피해 휴머니즘과 로맨티시즘을 강조한 것은 최근 시청자들의 감성과 상통하는 흐름”49)과 관련한다. 시청자들이 갈망하는 시대에 대한 현실 욕망은 담덕이라는 주인공이 적어도 군주로서 인간적 덕목을 갖추고 연인과 사랑도 할 줄 알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정서와 감각과 합치된다. 담덕은 우리의 통념 속에 있는 왕의 이미지를 깨버리고 부드럽고 백성을 사랑하는 왕으로서 형상화되면서 환웅이 펼치고자 했던 홍익인간의 이념을 펼쳐나간다.

    이처럼 기존의 정치 역사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권위적이고 호방한 군주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인물상을 구현하는 것은 환타지와 결합하면서 강력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개토대왕 담덕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인물로서 형상화되지 않은 것이다. 담덕은 문제적인 현실 상황에 대한 타개의 일환으로 집단적 희구가 낳은 상상의 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타지는 결코 초월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요소들을 전도시키는 것, 낯설고 친숙하지 않으며 그리고 명백하게 ‘새롭고’ 절대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산출하기 위해 그 구성 자질들을 새로운 관계로 재결합하는 것과 관련하기”50) 때문이다. 요컨대 환타지 TV 드라마로서의 <태왕사신기>는 갈망하는 세계를 변형시키는 그 자체의 고유한 기능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태왕사신기>가 가져야 할 역사 의식은 상상적 욕망에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의 형상화는 대통합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에 연결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환웅의 이야기는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며 동시에 교훈적 의미”51)를 얻게 하기 위해 도입되고, 아울러 드라마가 지닌 신화적 의미와 의의를 동시에 설명해준다. <태왕사신기>는 역사적 인물로서 의 광개토대왕을 그려내는 데에 주력하기 보다는 담덕이라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군주로서의 왕은 누구인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화물로서 <태왕사신기>에서 가장 핵심적 인물상은 ‘왕’이다. 신화 속에서 “‘왕’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 포함한 전체집단의 대표단수로서 전체집단의 삶의 안녕과 번영을 제공하는 마술적 근원”52)이다. 요컨대 “‘왕’ 은 집단 삶의 전제, 혹은 인류의 삶의 시작과 더불어 있어 온 선험적 표상”53) 인 셈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 왕으로서 담덕의 마지막 행위는 진정한 왕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담덕은 천손으로서, 쥬신의 왕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 그것은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들 것이냐는 것에 대한 대답이 아닌, 비로소 하늘이 인간에게 던지는 궁극적 질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말한다.

    담덕은 그런 하늘의 뜻에 따라 인간이 쥬신의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단수의 빛 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하늘의 정해진 답을 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 개체로서의 의지 표명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을 펼쳐나갈 수 있는 신념에 대한 확고한 의지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집단의 번영과 안정에 대한 희구가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의 결말에는 전체적 특성으로서의 인물상이 형상화된다. 요컨대 왕은 이 모든 신화의 결말이자 궁극의 목적을 실현하는 인물상이다. 담덕이라는 인물상은 신화의 결말을 이루고 신화가 궁극으로 가고자 하는 것을 실현시키면서 전체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 “신화의 인물상은 그 자체로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 펼치는 내용을 수행”하면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행위하고, 무엇을 경험해야 하며, 무엇을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전형”54)을 발견하게 한다. 담덕은 그러한 신화적 심상, 요컨대 신화의 중심인물상으로서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궁극에 도달한다.

    <태왕사신기>는 담덕으로 은유화된 표상에 대한 희구와 함께 어려운 현실 세상을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식을 노출한다. 게다가 이를 전세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욕망은 드라마에 신화를 형성하도록 한다. 신화는 세속적 시간과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초월하는 인류의 공통된 욕구로서 인간 본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표를 잃을 때 찾게 되는데, 이와 같은 창조신화는 인간 존재의 시원을 밝혀 줌으로써 현실의 삶과 인성에 이정표 역할을 한다.55)

    <태왕사신기>는 도전, 용기, 도약, 확장 등의 의미로 확장되는 현실적 인식의 기저에 바탕을 두고 초공동체적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일지라도 신화를 차용하면서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동시에 이야기 하고자 하는 영속성을 확보한다. 이와 같이 “신화는 한 집단의 시대정신 혹은 집단의 의식성에 대한 보상적 내용을 의식의 주체들이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장”56)인 만큼, <태왕사신기>의 신화적 심상은 이처럼 시대적 요청을 바탕으로 의식의 태도에 대한 보상적 내용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32)장 루이 뢰트라, 『영화의 환상성』, 김경온 외 역, 동문선, 2002, 22쪽.  33)오버랩이란 한 장면에 다른 장면이 겹치게 나타나서 앞의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게 하는 촬영 기법이고, 이중 인화란 두 개 이상의 화면을 복합시켜 하나의 화면으로 만드는 화면 합성 기법을 말한다. 가령 배경 화면에 제목과 이름, 설명 문자 등을 중첩시키는 경우가 그 사례이다.  34)루돌프 아른하임, 『미술과 시지각』, 김춘일 역, 홍익사, 1982, 393~394쪽.  35)르네 위그, 『예술과 영혼』, 김화영 역, 경기: 열화당, 1979, 115쪽.  36)빛은 모든 사물이 탄생하는 근원으로서 애초에 우주의 시작은 이 빛으로 시작되었고 특히 지구의 탄생은 시간과 공간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 빛이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은 고대로부터 이 빛을 건축이나 역사와 같은 영역에 끊임없이 끌어들이려 하였다. 빛은 생명을 드러내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37)김경재, 「건축 구성과 빛의 상관성 및 의미 변화에 관한 연구」, 홍익대 대학원, 1999, 15쪽.  38)김광수, 「조형에 있어서 빛과 색채의 정신성에 관한 연구」, 계명대 대학원, 2000, 66쪽.  39)“21세기를 맞아 탈근대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환타지가 태곳적 이야기인 신화와 가장 많은 친연성과 유사성으로 접목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중략) 특히 오늘날 다양한 문화현상, 게임, 미술, 영화, 비디오 등에서 신화의 세계상을 차용하거나 활용한 환타지의 세계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허만욱, 「디지털 융합 시대의 판타지 영화의 매체 미학과 서사 변용 연구」, 『우리문학 연구』 39집, 2013, 365쪽.  40)로즈마리 잭슨, 앞의 책, 24쪽.  41)과매개성이란 TV 리얼리티가 매개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실을 의미한다. 수시로 보여주는 여러 프로그램의 NG 장면이나 드라마가 최종으로 종영된 후 이어지는 제작과정의 노출은 이러한 과매개성의 강조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또한 HD ― TV의 방식, 가상현실 구축, 3차원 그래픽 등의 사용 역시 매개성을 드러내고 강조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42)마이클 하임, 여명숙 역,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한나래, 1997, 20쪽 참조.  43)몇몇 TV 드라마 장르에서 다루어 왔던 상상적 세계의 현실이 이제는 자유롭게 여러 드라마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가령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인물들의 여러 심리적 현실과 정황들이 귀엽고 아기자기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전달되었는데 이것은 시청자에게 감각적 재미를 자아내면서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시청률 상승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10대 시청자들의 시선을 모으기도 하였다. 10대 계층의 시청자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리얼리티에 호응을 한 셈이다. 정서는 물론 인식의 확장을 유도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일깨움을 일으켰던 사례이다. 이에 대해 본 연구자는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졸고,「변신이야기에 나타난 ‘변신’의 논리와 현실대응방식 고찰」,『우리문학연구』40집, 2013. 370~375쪽 참조.  44)박명진, 「역사드라마의 광학적 의식, 민족서사와 재현이미지 연구」, 『우리문학연구』 20집, 2006. 214쪽.  45)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신화와 역사』, 서울대 출판부, 2003, 276쪽. 이에 대한 깊은 논의는 본고에서 다루려 하는 사안이 아닌 만큼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논의하고자 한다.  46)임현수,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어서서」, 『종교학연구』 17집, 1998, 119쪽. 이 논문에서 논자는 역사를 ‘예술로서의 역사’로 바라보기를 피력하면서 역사가 지닌 이야기성의 문제를 논의한다.  47)김기봉, 『팩션—역사와 영화를 중매하다』, 프로네시스, 2006, 89쪽.  48)송효섭,『탈신화 시대의 신화들』, 기파랑에크리, 2005, 71쪽.  49)「‘태사기’ 배용준 광개토 대왕을 재해석하다」, 『newsen』, 2007, 12. 6.  50)로즈메리 잭슨, 앞의 책, 18쪽.  51)김무조, 앞의 책, 13쪽.  52)이유경, 『원형과 신화』, 분석심리학 연구소, 2008, 198쪽.  53)위의 책, 198쪽.  54)이유경, 앞의 책, 127쪽.  55)표정옥, 『현대문화와 신화』, 연세대 출판부, 2008, 40쪽.  56)이유경, 위의 책, 132쪽.

    6. 결론

    신화는 태초의 신화적 시대에 일어난 신적 행위와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TV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이러한 신화적 이야기를 토대로 전개된다. 본고에서는 <태왕사신기>에 나타난 신화적 요소들이 신화성을 형성하면서 환타지 장르를 구현해 갔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화성이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신화적 모티프, 테마, 구조 등 신화와 관련된 모든 요소와 측면들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우선 이 드라마에는 신이하고 초자연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여 드라마의 신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이들은 신화시대와 인간시대에 두루 걸쳐 초자연적이면서도 신이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신화적 인물로 형상화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신성성을 갖추며 환타지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에 기여 한다.

    한편 ‘물’과 ‘불’은 신화적 모티브이자 신화소로서 이 드라마의 ‘생성’과 ‘파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신화소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의 핵이다. ‘물’은 본래 우주의 생성 원천과 관련하지만 그것은 파괴를 통해 가능하다. ‘불’ 역시 ‘물’과 마찬가지로 재생과 파괴의 이미지를 구현하지만 보다 ‘불’이 갖고 있는 부정적 속성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들은 순환과 반복을 통해 원초적으로 회귀하면서 신화적 시간을 형성한다. 신화적 시간은 재생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의 기원을 그려내기 위해 형성된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는 담덕으로 표상되 는 기원의 문제와 관련한다. 담덕은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지상에 이식시켜야 하는 위무를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담덕이 이를 거부하고 태초의 빛으로 사라지는 순간에 신화적 시간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다. 담덕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스스로 살아가기를 고대하면서 인간의 역사적 시간을 잉태시킨다.

    한편 이 모든 요소들은 드라마의 환상성을 유발한다. 특히 ‘나타남’과 ‘사라짐’의 방식은 환상적 분위기의 조성과 함께 이 드라마의 비실재성과 비현실성을 구별하고 강조하는 주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환상성의 진정한 주제’이자 <태왕사신기>의 환상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원리로 작동한다.

    이와 같이 이 드라마에서 신화는 수사적 장치이자 전략으로 활용된다. 요컨대 신화는 삶의 방향성을 잃을 때 찾게 되는 현실 위안으로서 현실 세계를 해결하는 타개책의 일환으로 차용된다. 이것은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세상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 집단들의 무의식이 발원해낸 결과이자 환타지적 세계를 구현해내는 현실 대응의 논리이다. 환타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기제이자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태왕사신기>의 신화성은 환타지를 구현하며 현실 문제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도록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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