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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From Island to Ecotone: Nature Recognition as Boundary Crossed and Ecocritical Implication 섬에서 에코톤으로―경계중첩지대로서의 자연인식과 생태비평적 함의
  • 비영리 CC BY-NC
ABSTRACT
From Island to Ecotone: Nature Recognition as Boundary Crossed and Ecocritical Implication
KEYWORD
islands , ecotone , border , ecocriticism , island biogeography
  • I. 자연의 경계와 메타포

    전세계적으로 장소 검색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구글어스일 것이다. 구글어스의 위성기능은 어느 지역이나 장소든 실재지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세계의 지형을 자연형상대로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글어스는 경계로서의 지구와 자연에 대한 인식을 부각시켜 주기도 한다. 구글어스를 실행시키면 초기 화면에 어두운 우주를 배경으로 지구가 푸른 행성으로 등장한다. 1968년 달 탐사선인 아폴로호에서 전송한 우주에서 바라본 최초의 지구 전체 모습인 지구행성 사진을 상기시켜주는 이 행성 모습은, 망망대해의 작은 섬처럼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분명하게 경계가 구분된 독립적으로 떠있는 섬으로서의 모습이다. 지구가 태양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행성으로서 우주의 질서 안에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날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모습에 자명하게 드러나지만, 최초로 지구행성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이 지구가 우주에서 연약하고 미세한 존재라는 사실과 더불어 인근 행성들 중 유일하게 푸르고 아름답고 생명체로 가득한 우주의 낙원 같은 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는다.

    우주속의 섬의 이미지와 더불어 구글어스가 확인시켜주는 또 다른 경계는 자연지형과는 상관없이 인위적으로 자연위에 그어진 온갖 경계선들이다. 구글어스의 초기화면은 지구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만, 줌인 할수록 자연형상 위에 나있는 국경을 표시하는 노란선과 주 혹은 도 경계인 하얀 선, 그리고 도시를 표시하는 점들이 거대도시의 지하철 노선도만큼이나 복잡하게 드러난다. 특히, 북미주 대륙을 화면에 채워 넣게 되면 미국-캐나다의 국경이나, 대평원에서 로키산맥, 그레이트 베이신, 시에라 산맥 그리고 평야를 거쳐 바다까지의 자연형상이 뚜렷이 구분되는 중부에서 태평양연안에 이르는 자연지형 위에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뚜렷이 나있는 주 경계선들이 나타나고, 이 선들이 자연형상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이 자연에 무수히 많은 선을 그어 경계를 나누고 살아간다. 국경에서부터, 행정단위의 주나 도에서 마을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나누고, 사유지를 구분하기 위해 목장, 논밭의 경계를 나누고, 특별한 자연지형 내지는 생태계를 구분하기 위해 국립공원이나 야생지 보호구역 등으로 경계를 나눈다.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가 “자연경관에는 고유의 형태와 구조, 중심과 가장자리가 있으며, 이것들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정작 “미국 서부 주의 정치적 경계들은 서둘러서 그리고 무지로 세워졌다”(1996; 222)고 지적하듯이, 이러한 분할된 경계들은 자연형상과 생태적 특징에 의해 지정되기보다는 대개 인위적으로 그어진 것들이다.

    섬으로서의 지구형상 및 자연지형 위에 그어진 이와 같은 인위적 경계는 우리의 지구행성 및 자연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지구와 자연에 대한 이해는 지구/우주 및 나/자연, 인간/자연, 문명/자연과 같은 이분법에 근거한 인식론적 경계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자연을 둘러싼 인위적 경계 및 인식적 경계는 일반의 자연에 대한 이분법적 경계인식에 의해 재차 강화되고, 인위적인 경계로 인해 구분된 장소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상과 이미지 역시 경계 구분의 영향을 받는다. 지형이나 식생의 관점에서 전혀 구분되지 않은 경우에도 인위적인 경계선으로 나누어진 마주한 두 지역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켄트 라이든(Kent Ryden)은 코너티컷과 로드아일랜드 주를 연결하는 101번 지방도로의 주 경계선에서 경험의 영역으로의 경계의 의미에 대해 숙고한다.

    자연에 그어진 경계는 이와 같이 직접적 경험에 의해서건 아니면 주어진 문화에 의해서건 경계 그어진 자연 및 장소에 대한 우리의 의식 및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그 장소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우리는 우주로부터 지구행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점과 자연에 그어진 인위적인 경계를 대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인간/자연 사이의 분별적 특성 역시 당연시 해왔다. 특히 인간사회로부터 자연을 구분하기 위해 그어진 경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의식 속에 자연과 문화 사이의 ‘당연한’ 경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문명의 역사는 자연과의 분별되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과는 달리 언어를 구사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이성적인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연과의 연결점을 끊임없이 부인하고 자연을 이용하고 남용해 왔다. 서구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억압하기 위한 근거로 여성과 자연의 특별한 연관성을 주장한다든지, 원주민 땅을 식민지화하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원주민들과 자연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 역시 백인남성들의 자연세계로부터 자신들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1970년대 이후 환경파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환경 및 생태인식이 본격적으로 대두대면서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한 자연에 대한 도구적 인식을 반영하는 인간/자연간 경계는 환경파괴의 근본적 원인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인간중심주의 환경담론 역시 또 다른 자연/인간문명간 경계를 설정하게 된다. 즉, 인간문명의 자연파괴성을 비판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과의 뚜렷한 구별과 경계를 설정하게 된다. 심층생태주의가 잘 보여주듯 타락하고 파괴적인 인간문명에 대해 순수하고 수용적인 자연세계가 대립적으로 설정된다. 인간문명으로부터 별리된 낙원으로서의 순수한 자연을 가장 잘 형상화하는 대표적인 것은 야생자연(wilderness)과 섬이다. 야생자연과 섬은 실질적인 장소로서 만이 아니라 메타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 자연 메타포는 문학작품과 같은 문화적 매개 수단을 통해 더욱 자연의 인위적 경계 및 인식적 경계를 재차 강화하고 고착시킨다. 어느 세기를 막론하고 문학작가들은 작품의 의미구현 수단으로 끊임없이 자연의 형상을 이용해왔다. “메타포는 세계관 및 자연에서의 인간의 행위를 재구조하는데 본질적인 역할을 하기”(Oelschlaeger 119) 때문에 작가들은 물리적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보다는 자연의 형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익숙하다. 특히, 1차적 자연에 관심을 가진 자연문학 작가들은 자연의 형상을 메타포로 즐겨 사용한다. 로렌스 뷰얼(Lawrence Buell)은 “우리는 . . . 그것들[메타포]을 사실로 믿든 안믿든 메타포에 기대지 않고서는 자연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생각조차 시작할 수 없으며, 메타포 선택은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281)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작품에 앞서 1차 자연 및 생태계의 건강성과 파괴문제에 사회참여의 관점에서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며 이러한 관심을 문학장르중 에세이 형식의 자연문학(nature writing)에 집중해 온 생태비평에서 자연의 메타포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중요하며 자연문학에서 다루는 기존의 자연 메타포가 자연현상과 형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야생자연이 다분히 미국적인 문화를 반영하는 장소이자 문명과 구별되는 개념이라면, 섬은 시대와 공간을 통해 독자적 자연공간 및 문명과 대립하는 자연낙원으로서의 보다 큰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섬의 메타포에 대한 재고는 더욱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주변환경과 별개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인간문명과 확실한 경계가 구별된 공간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메타포를 대표하는 섬의 이미지는 과학적 오류로써, 기존의 섬에 대한 실재 및 심상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수정을 필요로 하며, 더 나아가 섬으로 대변되는 인간문명과 절연된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오히려 인간문명과 중첩되는 지대로 존재해왔다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많은 자연문학 작가들이 독립적인 자연공간에 대한 집착 및 자연/인간문명간의 경계를 전제로 자연에만 천착해온 경향이 있으며, 심층생태론적 자연관을 기본적인 비평준거로 삼아온 기존의 생태비평 역시 자연문학의 자연 및 자연-인간관계에 대한 비평적 접근에서 섬으로 상징되는 경계나눔의 원리에 근거해왔다.

    본 논문에서는 영미문학에서 독자적 자연공간으로서 자연/문화간 경계를 반영하는 섬의 심상공간이 자연계에서 독립된 영역으로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본 후, 1960년대 섬 생물지리학이 밝혀낸 기존의 이와 같은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섬이 과학적 오류이며 오히려 섬이 이웃 섬과 육지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발견이 섬의 생태비평적 적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 이후,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섬이 아닌 생태학 개념인 경계중첩지대를 지칭하는 에코톤임을 제시하며, 이 에코톤의 개념이 문학작품, 특히 자연문학에 대한 생태비평적 이해와 해석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

    II. 자연(/문화) 경계로서의 섬과 섬의 문학적 심상공간

    육지나 주변 섬으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인 공간으로 존재하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섬은 실재공간으로서 그리고 심상공간으로 인간의 문화적 의미를 규정해 왔다. 주변으로부터 독립된 실질적으로 공간으로서의 섬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게 정립된 것은 찰스 다윈에 의해서이다. 다윈은 진화론의 입장에서 섬을 새로운 종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며 외부로부터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고유의 진화과정을 겪는 실질적인 독립된 공간으로서 그리고 있다. 갈라파고스 군도를 탐사한 후 다윈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단지 몇 마일 떨어져 있는 섬들이 같은 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전혀 다른 자연식생을 보인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287). 각기의 섬이 고유의 독특한 자연식생을 유지하고 독자적인 진화과정을 거치는 독립된 실재공간으로서의 섬에 대한 다윈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일반에 의해 여전히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자연과학적 빅뱅으로만 머물지 않고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종교와 세계관을 근본부터 흔들었으며, 이 점에서 다윈의 진화론의 무대인 섬은 새로운 사회와 문화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로도 작동한다. 섬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다윈의 과학적 발견을 이끌었던 것처럼, 그 지정학적 특성에 근거하여 섬을 둘러싼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미 역시 활발하게 부여되어 왔다. “섬 심상공간을 그려내는 것은 아이디어와 신념, 문화를 구조화하는 데 대지의 형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섬은 인간세계의 의미를 만들어내는데 참여함으로써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구성할 수 있다”(Arnold 24).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주변, 특히 육지로부터 그리고 육지가 상징하는 인간문명 및 문화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러한 섬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심상공간에 자리 잡아왔다. 특히, 서구문명의 주역인 그리스와 로마, 영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거나 섬나라로서, 바다는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점으로 섬에 대한 관심과 섬을 둘러싼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서구문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부여되어 왔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대화록』에서 높은 수준의 문명사회를 형성하고 이상주의를 실현했던 국가로 아틀란티스란 섬을 언급했으며, 호머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주인공이 돌아가는 고향을 이타카란 섬으로 삼고 있으며, 돌아가는 귀로에서 각기 다른 모험과 시련, 역경을 겪는 일련의 섬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의 고향인 이타카 섬은 실재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오디세우스가 온 갖 역경에서도 부인과 자식이 있는 그곳에 가기 위해 희망과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것처럼 인간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관을 상징하며,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달하기까지 거쳐가는 섬들도 각각 주인공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버리거나 극복해야할 문제내지는 갖춰야 할 덕목을 상징함으로써 당시 그리스 사회의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담아내고 있다.

    국토자체가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국에서는 스페인을 누르고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고 국력이 흥했던 시기인 15, 16세기에 섬 지형이 영국 자체를 상징하며 국가적 자긍심의 표현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섬 및 섬의 심상공간은 영국사상가들과 작가들의 주요한 관심을 끌어왔다. 예를 들어, 정치 지도자로도 활약했던 영국의 사상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플라톤의 개념을 이어받아 『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란 제목의 작품에서 ‘벤살렘’(Bensalem)이라는 남미 부근의 가상의 유토피아 섬을 상정하여 당시 영국의 국력을 암시하는 바다를 통한 새로운 탐험과 과학적 진보로 이룩될 새로운 인간문명사회를 그리고 있다.

    섬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사용은 특히 작가들에 의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문학에서 섬은 이국적인 모험을 하고 전혀 새로운 독창적인 것을 제시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당대 독자들의 깊은 무의식에 호소하는 힘과 독자들의 정신에 암시적이고 명시적인 많은 가치와 감식을 표현하는 힘으로서 현실에 근거한 것만큼이나 상상력의 소산이 되어왔다”(70)는 스튜아트 하나버스(Stuart Hannabus)의 지적처럼, 문학에서 섬의 공간은 실재장소로서 보다는 사람들의 소망이 구현되는 가상의 공간으로서 제시되어왔다. 특히 영국문학에서 자주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섬은 당시의 영국사회 및 문화를 비판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였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유토피아』(Utopia, 1516)에서 기독교와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종교 및 정치적으로 고착된 영국사회와는 다른 대안적인 이상향의 세계를 가상의 유토피아란 섬으로 그려내고 있고,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에서 영국을 암시하는 섬을 등장시켜 17세기 영국정치와 문화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동시에 호이흠흠(Houyhmnhmns)과 같은 가상의 섬을 이상적인 평등한 사회로 그려냄으로써 영국사회와 대비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부각시킨다. 한편, 다니엘 데포(Daniel Defoe)는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에서 주인공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판단, 경험에 의지하여 새로운 도전적인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 냄으로써 정치집단과 규범, 관습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억압하던 영국사회와는 다른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근거한 새로운 문화 탄생의 장소로서 섬을 그려내고 있다. “섬은 인간 상상력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섬은 육지의 질병으로부터 바다에 의해 격리되어 타락이전의 순수성과 축복의 상태를 상징한다”(118)는 인문 지리학자 이푸투안(Yi-Fu Tuan)의 이들 작가들에게 섬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구비한 완전한 이상세계로서 불완전하고 타락한 본토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이 완전함은 본토와 단절을 통해서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섬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완전한 세계를 상징하는 소우주인 셈이다.

    영국문학이 구조적으로 개인성을 보장하지 않는 위계억압적인 당시 영국의 현실문명에 대한 유토피아적 대안세계로 섬을 상정하고 있는 반면, 미국자연문학은 섬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자연문학에 드러난 섬의 심상공간 역시 현실의 인간문명에 대한 대안세계 내지는 현실문명으로 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그림으로써 문명으로 부터 분명한 경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미국자연문학에서 자연파괴적인 현실문명의 대안세계로서의 대표적인 섬의 이미지는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의 ‘거북 섬’(turtle island)이다. 스나이더는 자연의 파괴를 일삼는 현실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자연생태계와 인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세계를 섬의 심상공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자신의 대표시집의 제목으로 삼기도 한 ‘거북 섬’은 북태평양 연안의 북미 원주민들이 북미대륙을 일컫던 용어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한 때 지구는 온통 물로 덮이게 되고 육상동물들은 갈 곳을 잃고 허둥되는데 이때 거대한 거북이 물속에서 떠오르며 자신의 등을 이들 동물들에게 삶터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신화가 인간 삶의 터전을 거북이라는 생명체 및 섬으로 상정하여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존중해야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연과의 공동운명 관계에 있다는 북미 인디언 고유의 자연관을 드러내고 있다면, 스나이더는 실질적인 북미대륙, 더 나아가 전체 지구이자 동시에 이러한 자연관이 실천되는 가상의 공간으로서의 세계를 살아있는 통합된 생태계로서의 거북 섬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세계에서 무분별하게 쪼개지고 파괴되는 ‘어머니 대지’(Mother Earth)의 실상을 부각시킨다. “로봇들은 목청을 높인다/우리의 어머니 대지를 어떻게 조각낼지/조금 더 숨을 연장시킬지/날개를 파닥이는 맹금류처럼/트림하고 입맛을 다시며/죽어가는 암사슴 가까이에서”(Turtle Island 48). 하지만 스나이더 역시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영위했던 옛 북미원주민들의 단순소박한 자연관이 반영된 ‘섬’을 현대인들이 본받아야할 삶의 공간으로 제시할 뿐 현대 인간문명과 자연간의 복잡한 경계양상을 피해감으로써 자연은 여전히 현대문명과 경계를 구분하고 있다.

    섬을 주제로 다루는데서 미국자연문학이 영국문학과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점은 실재장소에 대한 생태학적 관심이다. 미국자연문학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된 공간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전해야할 자연지역, 그럼으로써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야할 공간으로서의 실제 섬에 대한 관심과 특히 생태계가 온전히 보존된 실재 자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자연을 심상공간으로서의 섬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자연문학에서 제시하는 실재공간 및 심상공간으로서의 섬 역시 그 주변 및 인간문화와 경계를 둘러친 독립된 공간의 특징을 보인다. 실재 섬에 대한 생태학적 관심은 섬의 자연환경이 단일 생태계를 이루며 육지에서보다는 훨씬 큰 정도로 섬 거주민들의 몸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밀접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강조된다. 예를 들어, 리차드 넬슨(Richard Nelson)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북미주 북태평양 연안 섬의 생활을 그린 『내 안의 섬』(The Island Within)에서 자신의 삶과 사고가 얼마나 섬이란 지정학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넬슨에게 자신의 몸과 정신은 섬의 자연형상과 특질에 의해 형성되어 있으며 섬 역시 자신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인식함으로서 ‘나-섬’ 간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자연’ 간의 무경계 인식은 거의 모든 미국자연문학에서 드러나는 ‘인간-자연’ 관계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작가의 개인적인 인식차원에서 머물고 있을 뿐 실질적인 인간사회 및 문화와의 관계로 발전되지 않는다. 넬슨 역시 ‘나-섬’ 관계를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을 뿐 섬 주민들의 실제 삶과 관련된 복잡한 사회상과의 연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즉, 넬슨은 섬에 자신을 온전히 합일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차원에서 섬을 자연-인간의 조화로운 관계의 특별한 장소로 상정하고 있지만, 그의 섬은 인간사회와 자연이 경계를 공유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계중첩의 장소는 아닌 것이다.

    실재 섬은 아니지만 특정 자연지역에 대한 관심에서도 미국자연문학은 독립공간으로서의 섬의 심상공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미국자연문학 작가들은 야생자연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과 같은 특정지역을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성하는 단위로 인식한다. 이들은 이 지정지역이 주변지역과 경계를 나누고 자체적으로 온전한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믿음을 피력함으로써 일종의 섬으로 인식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뮈어는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센츄리』(Century)에 기고한 글에서 “요세미티로 물을 쏟아 넣는 강유역의 분기 계곡은 손가락의 손바닥과의 관계처럼 요세미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 . . 따라서 요세미티 계곡 위의 산봉우리, 협곡, 설야, 빙하, 산림, 계곡시내 등 모든 물의 원천이 되는 곳은 당연히 국립공원으로 포함시켜 이곳을 조각이 아닌 조화를 이룬 하나의 온전한 구성단위로 만들어야 한다”(“Treasures” 591-92)고 역설한다. 뮈어와 같은 자연문학 작가들이 특정지역에 국립공원과 같은 경계망을 둘러칠 필요성을 역설했던 이유는 보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미국의 자연지대를 인간의 무문별한 침범과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였으며, 따라서 국립공원이나 야생지보호구역과 같은 자연보호보전구역으로 지정된 곳의 경계의 필요성을 잘 인식한다. 뮈어는 국립공원이라는 경계가 요세미티의 환상적인 자연경관과 야생자연을 독립된 보호영역으로서 인간의 간섭과 파괴로부터 온전히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더욱이 요세미티는 섬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온전한 유기체로서 존재해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뮈어는 도구적 자연관에 맞서 보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면 국립공원이나 야생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영구히 보전되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요세미티와 세콰이어는 인간의 간섭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유타의 야생자연이 문명의 접촉으로 오염되는 것을 극히 혐오했던 자연작가인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 역시 자연에서의 경계망의 필요성을 잘 인식한다. 그는 정부에 의해 지정된 경계의 의미를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이러한 지역이 경계에 의해 그나마 인간의 간섭으로 부터 보호받고 야생상태를 유지할수 있다고 믿는다. “야생자연지역에 둘러친 경계는 인공적이고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든 구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일단 그 경계선 안에 들어가면 인공의 흔적은 없어지기 시작하고 그 안에 더욱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 안에 오래 머물수록, 더욱 흥미로운 것들을 체험하게 된다”(230). 뮈어나 애비의 국립공원이나 야생자연보호구역으로의 경계설정 필요성에 대한 주장과 인식에는 실제 섬처럼 육지 내의 이들 지역 역시 주변으로부터 독립된 자체의 온전한 생태적 특성이 인간문명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자연문학과 생태비평이 자연의 물리적 특성과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특히 자연인식에 섬 메타포를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으로 독립된 영역으로서의 섬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과학적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자연문학은 자연에 대한 문학적 접근인 심상공간으로서만이 아닌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과 작가의 자연에서의 직접 경험에 의존한 객관적인 사실을 메타포만큼이나 중시하다는 점에서 다른 문학장르와 차별되며, 자연문학을 주 비평대상으로 삼는 생태비평 역시 분석 대상으로서의 텍스트와 언어 이전에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물리적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특히 20세기 후반의 언어와 텍스트에 의존하던 대부분의 문학비평과 구별된다. 톰 린치(Tom Lynch)는 생태비평(ecocriticism) 용어의 ‘eco’는 생태비평이 생태학이란 자연과학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증거해주기 때문에 생태비평에서 자연 및 인간-자연 관계에 대한 생태학적 인식은 필수이며, “자연과학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의미있는 생태비평이란 있을 수 없다”(15)고 단언한다. 자연문학과 생태비평이 이와 같이 실체로서의 자연형상 및 현상과 인간-자연의 관계를 핵심적인 주제로 삼기 때문에 과학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연의 실체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인 요건이 되며, 따라서 문학에서 자연의 메타포로 중요하게 작동해온 섬에 대한 메타포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더욱이 그동안 독립된 경계구분지대로서의 섬 메타포가 자연을 인간문명과 별개의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자연/인간, 자연/문명간 이분법적 경계란 왜곡된 관계를 당연시해왔고 자연문학에 대한 생태비평적 접근을 상당히 제한시켜 왔다는 점에서 섬에 대한 과학에 근거한 올바른 인식이 요구된다.

    III. 섬 생물지리학의 발견

    섬 자연지형에서의 동식물의 종 분포도를 연구하는 섬 생물지리학(island biogeography)은 주변과 별도의 독립된 독자적 공간으로서의 섬에 대한 과학적 가정과는 상반된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젊은 생물학자인 로버트 맥아더(Robert MacArthur)와 윌슨(E. O. Wilson)은 1967년 공동 저서인 『섬 생물지리학 이론』(The Theory of Island Biogeography)에서 섬에서의 종 분포와 관련된 기존의 이론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섬에서의 종 분포에 대한 기존의 이론은 섬의 고립된 지정학적 특징을 전제로 삼고 시간의 개념을 적용한다. 즉,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은 종의 다양성이 풍부하지 못한데 그 이유는 섬의 역사가 육지보다 상대적으로 짧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군체형성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섬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생성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다양하지 못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하지만 맥아더와 윌슨은 섬의 종 분포도는 이러한 시간 개념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존의 널리 받아들여져 온 가설에 의문을 품고, 실험과 탐사, 연구를 통해 시간개념은 섬이 생성된 후 초기 단계에서만 영향을 줄 뿐이며 군체형성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평형상태에 도달하고 이 후의 평형상태는 종의 이입(immigration)과 소멸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끊임없이 조절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평형 모델만이 종의 이입과 소멸간의 역동성과 관련된 새로운 지식으로 이끌어 준다. 한 섬에서 종의 유입과 소멸 비율이 상호 균형을 이룰 때 그 섬에서 종의 분포도는 생물평형상태에 도달한다고 할 수 있다”(65). 섬에서 종의 분포도가 종의 이입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이들의 이론은 한 섬이 육지나 주변 다른 섬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독립된 생태계를 발전시킨다는 기존의 이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종의 이입이 섬의 종 분포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이들은 주변 섬이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그리고 섬이 작을수록 종의 분포도가 다양하지 못한 이유 역시 종의 이입이 희박하게 일어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결국 섬의 종 다양성은 주변 섬이나 육지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의 정도에 반비례하며 섬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본다. 육지는 생물이 분산되어 나가는 종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종의 이입은 희박해지며, 작은 섬이 큰 섬보다 종 다양성이 작은 이유는 작은 섬은 이주하는 생물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즉, 섬이 육지로부터 멀수록 그리고 크기가 작을수록 종의 이입이 적게 일어난다. 종 소멸 역시 종 이입과 마찬가지 원리로 설명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그리고 섬의 크기가 작을수록 종 이입이 희박하게 일어나므로 종 소멸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섬의 면적크기, 고립성, 그리고 섬의 연령의 순서대로 종 소멸이 진행된다고 본다.

    맥아더-윌슨의 섬 생물지리학 이론은 실제 섬은 아니지만 육상의 고산지대나 동굴과 같이 섬처럼 물리적으로 고립된 지역과 특히 현대환경론에서 중요한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야생지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과 같은 구획화되고 단편화된 서식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맥아더-윌슨은 애초부터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섬과 같은 고립은 생물지리학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갈라파고스 군도나 다른 멀리 떨어진 군도에서 아주 생생하게 전개된 많은 이론들이 모든 자연서식지에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적용될수 있다. . . . 이전에 연결되었지만 지금은 문명의 간섭으로 조각나고 있는 자연 서식지에도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3-4). 사실 이들의 섬 생물지리학은 국립공원이나 야생지보호구역과 같은 자연자원이나 경관, 특정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과 같이 단편화된 서식지에 대한 생태학적 관심의 증가와 더불어 더욱 빠르게 파급되었다. 이점에서 섬 생물지리학 이론은 자연지역의 크기 및 고립화와 생물보전의 관계를 규명하는 현대 보전생물학 분야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해오고 있다.

    맥아더-윌슨의 섬 생물지리학적 발견을 국립공원에서의 동물의 종 분포연구에 적용하여 연구한 사람은 생물학자인 윌리엄 뉴마크(William Newmark)이다. 맥아더-윌슨의 이론을 이미 접한 뉴마크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늑대와 같이 미국 서부 국립공원에서 사라진 동물들에 대한 조사연구에서 전체 멸종 수가 보호구역 내에 전체 군체형성 수를 초과한다는 사실과 전체 멸종 수는 보호구역 크기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국립공원의 고립화를 든다. 육지와 이전에는 연결되었던 곳이 수면이 높아지면서 고립된 섬의 상황처럼, 국립공원지역은 애초에는 훨씬 넓은 인근지역과 연결되었으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인간의 간섭에 의해 영역이 구별되고 제한되어진 섬과 같은 축소되고 고립된 자연영역이 되었다고 파악한다. 국립공원이 고립된 섬과 같다는 전제에서 뉴마크는 국립공원에서의 동물종 분포도 설명에 맥아더-윌슨의 섬 생물지리학이론을 적용시킨다. 전체 멸종 수가 군체 형성 수를 초과하는 이유는 섬 이론에서처럼 유입되는 개체 수가 제한을 받기 때문이며, 멸종수와 보호구역 크기의 반비례는 보호구역 크기가 종의 개체 수를 결정하며 개체수가 작은 종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본다. 그가 미국의 14개 국립공원을 조사하고 나서 이 국립공원들은 섬 고립화로 인해 “대규모의 동물 와해(collapse)”를 겪었으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립공원이나 국립공원에서 이보다 훨씬 큰 지역의 동식물상을 소규모로 완전히 재현하여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Quamman 재인용 491).

    섬 생물지리학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자연문학 및 생태비평의 실질적이자 인식론적 공간으로서의 섬에 대한 기존의 관점 역시 수정이 요구된다. 자연문학 및 생태비평이 생태학적으로 온전한 격리된 섬과 같은 공간으로서의 국립공원이나 야생자연보호구역과 같은 지역을 즐겨 다뤄오고 이들 장소를 비롯하여 자연을 기술하는데 섬의 이미지를 문학적 심상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자연매개나 문화매개 혹은 둘의 혼합을 통해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자연영역”을 의미하는 “메타포로서의 섬”(Philippon 268) 역시 섬 생물지리학 이론에서 고찰할 필요성이 있다. 자연 작가인 데이빗 쿼만(David Quammen)은 멕킨토시와 윌슨의 과학적 발견을 인문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인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 1996)에서 섬 메타포에 대한 생태학적 사실에 입각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섬이 독특한 종들과 “변종들의 천국이자 번식장소”로서 “진화의 실험이 진행되는 자연 실험실”이며 “섬의 한정된 영역과 태생적 고립이 결합하여 진화의 패턴을 두드러지게“하지만(18-19), 맥킨토시-윌슨의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섬의 형태는 특히나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생태학적 고립은 그것이 바다에 의해서건 다른 종류의 한계설정에 의해서건 소멸의 위기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381).

    섬 생물지리학에 의해 섬이 독립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지역과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새로 밝혀진 사실에 근거하여 섬이 연결체계로서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니엘 필리폰(Daniel Philippon)은 자연을 섬으로 상정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현대 생태학을 가장 명확히 정의하는 연결성을 간과하는 듯 보이지만, 섬 생물지리학이 증거하듯이 섬은 실재 자연물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과 더불어 영향관계에 있는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논의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섬은 시공간상 존재로서 사물간의 이러한 연결시스템을 인식하도록 이끌어주는 “방법적 모델”이 될 수 있으며, “섬 메타포는 개척지, 정원, 공원, 야생자연지대, 유토피아가 모두 섬의 다른 형태이며 이 장소들은 다른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270) 때문에, 섬을 자연의 메타포로 삼는 것은 가장 적절하며 미래의 환경론에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하지만 주변과 격리된 생태계를 구성하는 고립되고 독립적인 자연지역이라는 기존의 섬 이미지는 섬 생물지리학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반의 인식에서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자연의 메타포와 이 메타포에 내포된 심상공간은 오랜 기간을 거쳐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몬 샤마(Simon Schama)는 서구문화에서 과학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자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어느 정도는 바뀌어 왔지만, 자연세계에 대한 서구의 관계는 “바위 단층만큼이나 사람들의 기억의 층으로 세워진다”(7)면서 과학적 사실이나 기술적 관행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에 단지 피상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뿐, 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사람들은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과거의 기억에 여전히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섬 생물지리학의 새로운 발견이 일반의 자연인식에 대한 의식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필리폰의 기대와는 달리 섬은 자연의 연결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경계구분된 영역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에서 샤마의 지적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또 한편으로는 섬 생물지리학의 발견으로 인해 섬은 오히려 생태학적 관점에서 파편화된 자연영역에 대한 메타포로 작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 미국자연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릭 배스(Rick Bass)는 『야크의 북』(The Book of Yaak)에서 로키산맥이 여러 국립공원들로 “조각” 분할되면서 곰이나 늑대 같은 대형 포식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이동통로”(migration corridors)가 차단되고 결과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조각나고 분할된 영역을 섬으로 기술한다. “보존생물학의 이론적 핵심과 실천은, 자연은 하나의 망으로 모든 것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이 상호 단절됨으로써 파편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이 섬들로 파편화 될 경우 격리된 생물집단이라면 어느 것이든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은 자명하다. 즉, 새로운 유전자로 수혈되지 않는다면 잡초의 세계에 둘러싸여 멸종하게 될 것이다”(73).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메타포를 통해 자연 및 자연-인간관계의 성격을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연현상 및 이러한 관계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올바로 전달해주는 메타포 사용은 중요하다. 자연 메타포로서의 섬은 새로 밝혀진 생태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자연내지는 파편화된 자연공간으로 인식하며 이러한 인식은 자연 및 인간-자연관계를 잘못된 관점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섬 생물지리학이 밝혀낸 것처럼 한 자연공간과 이웃 공간과의 그리고 더나아가 자연공간과 인간사회간의 관계성과 중첩을 드러내줄 수 있는 새로운 메타포가 요구된다. 이러한 관계성과 중첩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자연 지리형상과 현상으로 에코톤이 있다.

    IV. 에코톤─경계중첩지대로서의 자연 및 자연-문화인식

    생태학적 입장에서 볼 때, 자연의 경계지대는 서로 다른 자연 생태계가 중첩되고 통섭되면서 생태학적으로 보다 풍성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격이 다른 두 식물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대를 생물학적 용어로 에코톤(ecotone)이라 부른다. 이 용어는 생태학ecology의 eco와 긴장(tension)을 의미하는 희랍어 tonos의— tone의 합성어로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자연생태가 긴장을 이루고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생태학 사전에 따르면, 에코톤은 “협의의 제한적인 의미에서 둘 혹은 그 이상의 상이한 군집 간의 전이지대(transitional area)이다. 이와 같은 엣지(edge)군집에는 전형적으로 종이 풍부하다.”1 이 경계지대는 산림과 나무를 잘라낸 공터와 같이 두 지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두 식물군이 서로 섞여서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단일 식물군으로 형성된 지역보다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종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에코톤에서는 두 식물군이 동시에 공존할 뿐만 아니라, 이 전이지대를 새로운 군락지(colony)로 삼는 적응능력이 높은 다수의 종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지구상 가장 다양한 종들이 함께 서식하는 곳 중의 하나인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늪지(marsh) 역시 대표적인 에코톤이다. 이 에코톤은 지역적으로 보다 넓은 영역의 적합한 환경조건과 생태학적 적소(ecological niches)를 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여러 생태학자들의 주장처럼 다양한 식물군이 풍부한 에코톤에서는 먹이도 풍부하고 은폐장소도 많고 또한 짧은 거리이내에 필요에 따라 여러 다른 서식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에코톤을 새끼를 낳고 키우는 장소로 삼고 있다. 암사슴이 에코톤인 숲 속 공터 언저리에 새끼를 낳아 키우는 이유는 숲 너머 공터에서는 다양한 먹이가 발견되고 바로 인근 숲은 새끼에게 은폐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Robert Smith 251).

    에코톤에서 발견되는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의 하나는 끊임없는 변화이다. 물론 변화는 균형상태에 도달한 가장 안정되어 보이는 자연 생태계를 포함한 모든 자연에서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현상이지만, 다양한 생물군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에코톤에서 변화는 가장 두드러지고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이와같이 에코톤에서 식물군 및 식물군에 의존하는 생물들이 혼재하고 끊임없는 변화가 수반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생태학자들은 “엣지효과”(edge effect)라 부른다. “두 생태계가 겹치는 지역에서는 단일 생태계로 구성된 곳보다 더 많은 종들이 생존한다. 그 이유는 이 중첩지역은 이웃한 두 생태계의 종들과 중첩지역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종을 함께 부양하기 때문이다.”2

    자연의 지정학적·지형학적 특색이 자연-인간(문명)관계를 규명하는 메타포로 작동하듯이, 경계중첩지대로서의 에코톤은 생태학적 자연계에서 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계와 자연과 문화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한 유용한 메타포로 작동될 수 있다. “에코톤은 땅과 물이 교차되는 곳과 같은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지만, (이전에 숲이었으나 농작을 위한 공터로 바뀐 곳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인간의 관여를 반영한다.”3 알모 파리나(Almo Farina)는 에코톤은 다양한 규모로 존재하며 그 중 자연관리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간활동이 관여된 3가지 종류의 에코톤을 소개한다. 첫째는 방풍림과 같은 인간의 전적인 자연간섭에 의해 생긴 에코톤, 둘째는 강기슭의 숲과 같이 자연과정으로 생겨났지만 인간활동에 의해 유지되는 에코톤, 그리고 셋째는 인간활동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자연과정에 의해 유지되는 인공저수지 주변의 범람지와 같은 에코톤이다(204).

    섬 메타포가 자연계 내에서 특정 지역이 주변지역과 확고한 경계를 긋고 별도로 존재한다는 심상공간으로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순수자연은 타락한 인간문명과 구별되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면, 이와 같은 인간-자연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에코톤은 인간-자연관계에서도 영역이 중첩되고 상호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교류점으로서의 새로운 긍정적인 메타포로 작동 될수 있으며, 더 나아가 에코톤은 사회의 다양한 집단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유용한 메타포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우선 에코톤으로서의 인간-자연 관계는 나와 자연의 단절이나 한쪽의 함몰이 아닌 상호의존 및 연속성의 개념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나와 자연은 별개의 구별된 존재로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고 착취하는 도구적인 존재에 불과 했다면, 인간중심주의 관점의 상극점인 심층생태론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함몰되는 형상으로 인간은 자연을 이루는 단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며 자연의 원리에 전적으로 순응되는 피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 관점은 자연존재와는 다른 인간의 특성이나 의지는 무시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 관점만큼이나 문제가 있다. 인간-자연에 대한 바람직한 관계성은 양자의 관계를 주객이나 상하, 혹은 함몰이 아닌, 상호의존 및 공존인 것이다. 이는 이웃한 두 자연생태계가 접경 지역에서 각자의 특성이 일정부분 유지된 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보다 건강하고 풍성한 상태를 이루어내는 에코톤으로서의 관계이다. 에코톤으로서의 자아-자연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생태론적 자아”(ecological self)이다. 생태론적 자아는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나 양심, 책임의식과 같은 인간의 특성을 자연의 가치인식의 근거 및 자연에 대한 보존과 그리고 책무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발 플럼우드(Val Plumwood)는 생태론적 자아는 일종의 관계적 자아이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에 함몰되거나 둘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정체성은 상대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론적 자아는 자아가 대지타자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는 일종의 상호자아성의 형태로서 관계적 자아의 결과물이다. 이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개인은 상대의 목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 역시 성취한다. 인간 개개인은 타자인 자연에 대해 돌봄, 보호관리, 우정, 또는 그 밖의 다양한 미덕과 같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타자인 자연은 그 자체로 당연한 관심을 받아야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184-85).

    자연-문화에 대한 관계 역시 에코톤으로 새롭게 상정해 볼 수 있다. 섬의 심상공간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요소를 대표하는 인간문명으로부터 섬이 바다에 의해 격리되고 섬의 요소가 온전히 보존되는 것처럼, 자연은 파괴적인 인간문명과 별개로 존재하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자연/문화 경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미국에서 자연과 동의어로 인식되어 왔으며 생태론의 근간을 차지해 야생지 개념이다. 야생지 개념은 자연을 문명의 대립구조로 보고 자연환경 형성과 변화과정에 영향을 끼쳐왔던 인간의 역할과 인간이 여전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측면을 전적으로 무시해 왔다. “야생(지)에 자연세계가 보전되어 있다”라는 소로우의 간결한 표현에 압축되어 있듯이, 생태론의 최대 화두인 생태계보전은 바로 야생지 보전에 달려있으며, 이 야생지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문명의 간섭이 최소화되는 얼마 남지 않은 원시적인 모습을 갖춘 땅을 의미한다.4

    에코톤에서는 단일 식물군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식물종들이 각기 자신이 번식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뻗치고 그 너머는 다른 경쟁식물종이 번식함으로써 다양한 식물군이 공존하듯이, 사실 자연세계는 인간문명과 별도로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물리적으로 그리고 상징적 차원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전이지대가 되어 왔다.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흔히 인간문명과는 절연된 것으로 인식되는 야생자연 역시도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활동의 장이 되어 왔다. 다만 인간/자연의 습관화된 경계인식으로 인해 자연에 담긴 사회구성적 요소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경계인식은 미국자연경관의 야생성과 프론티어를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받들어온 자연문학을 비롯한 자연을 다루는 예술이 크게 일조했다.5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기존 야생지 개념에 담긴 믿음과는 달리 실재장소로서의 야생자연과 프런티어가 인간문명세계 바로 주변에서 자신의 영역을 되찾아 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연과 문명은 더 이상 별개의 영역을 구축하기 보다는 둘이 함께 공존하는 하나의 거대한 에코톤이 되고 있다. 환경담론은 대개 환경파괴가 지구행성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와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춰왔으며, 이러한 위기담론은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각성시킨다는 점에서 일견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우리 주변에서 자연이 복구되고 야생자연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부자연지대는 인위적인 보전정책과 막대한 예산을 들인 복구노력에 의해 자연의 모습을 되찾기도 하지만, 20세기 초 이후에 뉴잉글랜드 산림지대나 일부 중서부의 목초지대의 경우처럼 한때는 과도하게 남용되었지만 이후 개간이나 개발이 용이하지 않은 이유로 인간에 의해 “버려진” 자연지대는 스스로 야생자연의 모습을 되찾아 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좁고 복잡한 도시공간을 떠나 자연이 잘 보전되어왔거나 새롭게 재생한 자연지대 근처에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주변의 자연과 공존을 모색한다. 또한,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적지 않은 동물들은 인간의 보존 노력과 동물에 대한 정부정책 및 일반의 의식변화로 종 번식에 성공하게 되고 옛 서식지로 돌아오기도 한다.6 이 동물들은 한편으로는 급격히 늘어난 개체로 인해 스스로의 활동에 필요한 자연공간이 비좁게 되고 먹이부족을 겪게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도심을 탈출하여 그들의 옛 자연서식지내에 혹은 주변에 주거공간을 마련한 사람들로 인해 이동통로가 막히고 서식지가 파편화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새롭게 주어진 상황에서 많은 동물들은 인간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생지에서 새로운 서식지를 마련하기 보다는 인간과의 일정부분 공존을 선택한다. 이전에는 깊은 야생자연에서나 서식했던 늑대, 코요테, 북미산 살쾡이(bobcat), 쿠거(mountain lion) 등 대형 포식동물이 1980년대 이후 도시근교나 심지어는 도심에서 적지 않게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정원 안의 야수』(The Beast in the Garden)에서 데이비드 바렌(David Baren)이 미국에서 프런티어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잭슨이 선언한지 100여년이 흐른 뒤에 미국사회가 새로운 프런티어의 복귀를 경험하고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 말이다. 즉, 인간은 자연지대로 확장해나가고, 반면 동물은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오며, 일부 자연공간은 인간에 의해 개발되지만 바로 옆 공간은 야생상태로 보전 내지는 복구, 회복되는 두 상이한 경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바렌은 이 새로운 프런티어는 서부로 단호하게 전진하는 선이 아니라 “도시와 근교를 고리모양으로 담는 복잡한 나선형 경계”로서 “오늘날 미국의 프런티어는 구불구불하고 험준한 해안선과 같이 점점 더 두 서식지, 즉 육지와 바다처럼 도시와 야생이 만나는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프랙탈 엣지(fractal edge)가 되고 있다”(11)고 지적한다. 즉, 현재의 미국은 자연과 문명이 가까이에서 상호공존하는 일종의 그 자체로 에코톤이 되고 있다.

    자아와 자연, 인간문화와 자연 사이의 관계와 더불어, 에코톤은 상이한 사회집단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로도 작동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한 사회 내에서 경제적 혹은 성적, 인종적, 종교적 그리고 그 밖의 요인으로 인해 주류집단과 비주류 집단이 존재하며 이 이질적인 두 집단 간의 관계는공생과 협력보다는 격리와 무시, 경쟁 혹은 적대감으로 특징지어 진다.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가장자리(margins)는 두 세계가 균형을 유지하는 고립의 장소만은 아니다. . . . 삶에서 성취와 기쁨을 방해하는 간극 혹은 힘겨루기를 치루는 전선으로서 가장자리가 분리시키는 경계가 될 수도 있지만, 분리보다는 서로 연결해주는 거주 장소가 될 수도 있다. . . . 가장자리는 풍요하고 역동적인 전이지대가 될 수 있으며 고통만이 아니라 큰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4)는 플로렌스 크랄(Florence R. Krall)의 지적처럼, 이들 상이한 집단이 상호 고립되고 격리된 “섬”으로 간주하고 상호 무관심내지는 적대시하기 보다는, 전지구적 차원의 생태계 파괴에 직면하여 생태계의 에코톤처럼 이들 집단들이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일정 부분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섬에서 에코톤으로의 자연 및 자연-인간관계, 더나아가 인간집단간 관계의 인식은 자연문학 연구 및 생태비평 방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자연문학과 생태비평의 논쟁점이 되어온 자연 및 자연-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양상은 독립적이고 고립된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섬 메타포로서는 제대로 규명되기 힘들고, 자연과 문화의 복잡한 관계성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한 자연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을 동시에 동원하는 생태비평적 방법 역시 과학적 오류와 자연-인간경계를 상정하는 섬 메타포를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자연의 생태학적 실체, 자연과 인간사회 및 다양한 인간사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중첩의 맥락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1Michael Allaby, ed. A Dictionary of Ecology, 2nd Ed. (New York: Oxford UP, 1998) 136.  2ibid 137.  3ibid 137.  41964년 제정된 야생지 법(Wilderness Act)에는 “인간에 의해 방해받지 않은 곳, 인간이 찾아가기는 하지만 머물지는 않는 곳(“untrammeled by man; where man is a visitor who does not remain)으로 규정되어 있다.  5「야생지의 분란, 혹은 엉뚱한 자연으로 돌아가기」(“The Trouble of Wilderness, or Getting back to the Wrong Nature,” 1995)에서 윌리엄 크로논(William Cronon)은 야생지란 그 자체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원시상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결과물”(the product of human civilization), 즉 인간이 특정 시기에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야생지가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자연’이라는 의미로 굳어지게 된 것은 “프런티어 이데올로기”에 의해서이다.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가 189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프런티어는 사실상 사라졌으며 이와 더불어 미국의 정체성도 함께 소멸했다고 선언한대로, 크로논에 따르면 야생지는 바로 이러한 소멸해가는 프런티어에 대한 향수(nostalgia)이자 야생지에 대한 방문은 사라져가는 “ 미국적인” 정체성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바람으로 “야생지를 보호하는 것은 미국의 가장 신성한 건국신화를 보호하는 것이다.” 사라진 프런티어에 대한 미국적인 신화의 소생으로서의 야생지는 이것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을 증거해 준다.  6U.S. Fish and Wildlife Service에 따르면 늑대, 곰과 같은 대형 포식동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1980와 90년대에 미국에서 인구중가는 13%에 달했지만 사냥인구는 오히려 8% 줄었으며, 많은 주들이 포식동물 사냥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V. 에코톤으로서의 생태비평적 자연(/문화)인식

    어슐라 헤이제(Ursula Heise)는 『장소인식과 행성인식』(Sense of Place and Sense of Planet, 2008)에서 글로벌 시대에 자연을 다루는 문학과 예술, 생태비평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및 새롭게 관심을 갖고 나가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예술가와 작가들뿐만 아니라 환경주의 사고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도전의 하나는 전체지구를 표현하는데 여전히 피하기 어려운 모드인 알레고리를 사회적 및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보다 복잡한 규범적인 구조로 통합하는 지구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21). 탈경계와 세계주의란 경향이 핵심을 이루는 지구화시대에 문학과 문학비평의 관심이 이제는 지역중심사고에서 탈피하여(deterrorialization) 전지구적 차원의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자연-인간관계, 인간집단간 관계를 인식하는 비전인 “생태-세계주의”(eco-cosmopolitanism)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61)는 헤이제의 인식은 자연 및 자연-인간관계 혹은 인간사이의 관계를 섬이 아닌 에코톤으로 인식하는 방향전환과 괘를 같이하고 있으며, 생태비평의 접근 역시 섬이 아닌 에코톤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을 잘 말해준다. 사실 지금까지 자연문학의 자연에 대한 관점과 생태비평의 자연문학에 대한 접근은 섬으로서의 푸른 지구행성에 대한 심상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해 왔다. 지구행성을 거대한 우주 속의 한 작은 섬으로 보아온 심상공간에는 우리의 지구 섬이 아름답고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구체라는 사실로 인해 지구행성을 소중히 여겨야할 당위성과 더불어 동시에 그 ‘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지구인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국가간, 지역간, 집단 및 계층간에 존재하는 온갖 차이와 불평 등의 문제는 간과되거나 기껏해야 아주 사소한 것으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7 에머슨과 소로우, 뮤어로 이어지는 초월주의적 자연관을 반영하는 미국의 주류 자연문학은 인간세계보다는 ‘섬’으로서의 자연, 특히 야생자연에 초점을 두어왔으며 자연과 인간사회와의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 및 인간세계 내에 존재하는 차이와 문제는 부차적인 관심사항이었고 자연문학을 즐겨다뤄온 생태비평 역시 자연문학에서 추구해온 심층생태론적 자연관에만 주된 관심을 두어왔다. 하지만, 섬의 지형학적 형상을 유토피아나 하나의 온전한 자연생태계가 유지되는 독립된 공간으로 상정하는 데는 과학적 오류만이 아니라 단순화의 오류라는 문제가 동반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들에게 섬이 유용한 이미지를 제공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섬은 그 지정학적 및 지형학적 형상으로 인해 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단순화하는데 적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 아놀드(Jean Arnold)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놀드의 지적은 섬을 실제 및 심상공간으로 다뤄온 영국작가들 및 미국자연문학 작가들에게 잘 들어맞는다. 자연문학은 자연의 개념을 섬의 심상공간이 잘 보여주듯 인간문명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야생자연지대로 단순화 시켰으며, 실재 자연공간 및 자연개념에 이미 들어와 있는 문화적 함의를 고의로 축소시키거나 아예 배제시켜왔다.

    자연문학적 관점을 비평의 기본적인 틀로 삼아온 생태비평 담론 역시 이와 같은 단순화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태비평은 다루는 주제와 선호 문학장르, 연구방법에서 자연/문화의 뚜렷한 경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생태비평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자연문학에 잘드러나있는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형성해온 심층생태론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비인간중심적 시각에서 자연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강조하고, 현대인들이 자연과의 재연결과 생태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환경파괴적인 (도시)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야생자연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경외의 대상인 순수한 자연을 타락하고 파괴적인 인간문명으로 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생태비평이 심층생태론적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연문학 장르에 비평적 관점을 집중해온 이유는 이와 같이 자연과 문화를 상호배제적이고 대립적인 개념으로 단순화시킨 비평적관점 때문이며, 자연문학 작품에 비평적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비평적 접근방법 역시 텍스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미 자연은 인간활동의 장이 되어왔고 자연 개념에는 인간문명과의 복잡한 양상이 담겨있으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에는 더 이상 자연/문명이라는 뚜렷한 경계나누기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생태비평은 자연-인간사이의 경계중첩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자연문학에 대한 접근 역시 이러한 중첩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존 엘더(John Elder)는 “자연문학이 지니는 특별한 관심과 중요성은 자연문학이 활발한 엣지를 드러내주는 방식에서 찾아진다”면서 자연문학에서는 자연을 다루는 주제 및 방식에서 이미 경계중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자연문학은 문학과 과학간의, 상상력과 물리적 특성간의, 그리고 인간과 함께 지구를 공유하는 많은 자연생명체와 인간사이의 겹쳐지는 엣지를 잘 드러내 준다”(xiii). 자연문학에서 과학분야를 전문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가가 적지 않고 과학분야에 전문배경이 없다하더라도 자연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자연작가들이 많다는 점에서 엘더가 지적하는 문학과 과학간, 상상력과 자연의 물리적 특성간의 엣지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며, 자연문학이 과학 및 자연의 물리적 특성을 상상력의 영역과 중첩하여 다룬다면 자연문학에서 다루는 자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거해준다.

    또한 자연-인간사이의 엣지에서 엘더가 의미하는 것은 전통자연문학에서 드러나는 자연에서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자연과의 연관성에 머물지만, 자연과의 중첩되는 인간은 개인의 차원을 너머서 인간사회 및 문명으로 확대시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경계는 안전하고 그렇지 못한 장소를 구분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저들과 구분하기 위해 세워진다. 경계란 가파르게 서있는 가장자리를 따라난 좁다란 길인 분할선이다. 경계지대란 인위적인 분계의 정서적 잔유물이 만들어낸 애매하고 확정되지 않은 장소이다. 경계지대는 지속적인 변화의 상태에 놓여있다”(25)는 글로리아 안젤두아(Gloria Anzeldua)의 지적대로, 자연에 난 경계는 사회정치적 및 문화적, 정신적 함의를 갖는다. 자연을 분할하는 경계가 안젤두아에게 사회정치적 논리에 근거한 인위적인 분할선인 것처럼, 자연작가들이 찬미하는 자연 혹은 야생자연은 실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및 정치적, 역사적 혹은 문화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가 중첩되는 곳이다. 자연문학이 그리고 있는 자연은 사실 문명의 배제로 비춰지고 있는 경우에도 자세히 보면 문명과 긴장관계 및 역동적 관계 속에 경계를 공유하며, 더 나아가 자연문학의 자연관 및 자연 개념에서 북미원주민의 고의적 배제와 같은 사회정의나 환경정의 문제를 읽어 낼 수 있다. 자연문학에서 자연은 문화와 전혀 별도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미국적 담론에서 자연은 시대적 요청에 의해 상당부분 문화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연이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인간사회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간사회 혹은 문화와 그 경계를 일정부분 공유하며, 자연개념 및 의미 역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으며, 인간의 주관적 인식이 투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론적으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인식의 경계가 통섭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을 문화와 경계의 중첩지대로 봄으로써 자연문학에서 다루는 자연 및 장소에 대한 다양한 중층의 의미들이 새롭게 드러날 수 있다. 자연/문화의 두꺼운 경계가 깨지고 자연-문화가 중첩된 영역으로 이해된다면, 생태비평 담론과 생태비평의 자연문학에 대한 접근에서 인간-자연관계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통합적 접근 및 자연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자연-문화 중첩의 에코톤으로서의 자연문학에 대한 생태비평적 접근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자연문학에 대한 텍스트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 자연작가들의 야생자연 집착 원인을 포함한 보다 통합적인 사회문화적 접근을 요구한다. 애써 인간문명의 흔적을 고의로 배제시키고 순수한 야생자연으로서의 특징만을 부각시키는 존 뮈어나 에드워드 애비와 같은 전통 자연문학 작가들의 동기를 당시의 사회정치적이고 역사적 맥락에서 밝히는 작업이 그 예이다. 생태비평의 주도적 흐름은 자연을 인간문화와 단단한 경계가 세워진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함으로써 자연문학에 등장하는 장소를 주로 자연 생태계와 심층생태론적 관점에서만 해석해왔지만, 이들 장소 역시 인간 활동의 장소이며 자연을 문화로부터 분할하는 경계는 사회정치적 및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 경계에는 많은 역사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경계나눔의 논리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을 생태비평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8

    에코톤이 여전히 자연생태계를 설명하는 자연과학적 용어로서 남아있으며 아직은 일반의 자연인식에 대한 심상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9 하지만, 이 용어가 생태학적 관점에서 연결체로서의 자연의 실체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인간-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연계관계의 성격을 규명해준다는 점에서, 한 지역의 환경파괴가 전세계 다른 지역의 환경문제와 연계되어 있으며 인간-자연의 상호연계의식, 인간집단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생태주의적 인식이 요구되는 현 지구화 시대에 ‘생태-세계주의’에 대한 적합한 새로운 메타포로 작동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에코톤이라는 자연과학으로서의 생태학적 개념을 (인)문학적 연구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이와 같은 시도가 최근 (인)문학 담론에 자주 등장하는 경계지우기와 혼종성과 같은 논의에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7야콥 가브(Yaakov Garb)는 이 전체 지구이미지가 행성지구를 조화롭고 순수한 대상으로 제시함으로서 이 행성내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고 균형잡혀 있으며, 알력이나 분규, 자연파괴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통합된 전체론적 틀”(269)로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8하지만 동시에 이 경계지대를 지나치게 사회문화적 요소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요소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사회생태론적 관점이 생태비평에 등장함으로써 생태비평이 지나치게 심층생태론적 관점에 경도되어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주었으며, 자연의 의미를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볼수 있도록 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를 했지만, 인간문명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에만 집착함으로써 자연을 담론에서 배제시킨다. 이런 점에서 사회생태론적 관점 역시 자연과 문화간의 중첩되는 경계지대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연/문화 사이의 충첩되지 않는 뚜렷한 경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경계지대가 두 영역에 걸친 보다 큰 자연지형적 혹은 생태계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경계지대를 사회정치적 산물이자 동시에 자연생태계 구성의 관점에서 봄으로써 인위적인 경계가 자연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인식할 수 있고 자연은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점과 자연의 운명은 인간의 문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9인간-자연 및 상이한 사회집단간의 관계성을 대립과 고립이라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 중첩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미 강조되어 왔지만 (인)문학에서 에코톤 개념에 대한 적극적인 적용은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앞에서 인용한 크랄은 생태여성주의 시각에서 여성과 자연에 대한 관계성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이 관계성 및 인간사이의 관계성 인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에코톤 용어를 차용하고 있지만 자서전적 철학적 상념이 주를 이루는 이 저서에서 제목과는 달리 이 용어는 단지 메타포로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에코톤 개념 역시 새로운 이론의 주창이라기보다는 생태문학과 비평이 지향해야 할 인간-자연 및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기존 인식변화의 필요성을 에코톤이라는 개념을 빌려 설명하고 있으며 이 개념이 기존의 섬 메타포를 대체하여 새로운 관계성에 대한 적합한 메타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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