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萊城 陷落의 날>의 텍스트 연구(Ⅰ)*

A Study on the Text Taken on the day of the Dong Rae Castle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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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고는 공연 기록만 전해 오는 <東萊城 陷落의 날>의 대본 텍스트를 자료로 발굴하고 그 텍스트 층위 가운데 우선 부 텍스트를 분석한 것이다. 우선 공연 기록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은 <東萊城 陷落의 날>이 염재용 작, 김수돈 연출, 남상협 실기 지도, 김정한 진행, 문예신문 사 주최, 삼남문학회 후원으로 1948년 6월 18일 부산 시내 각 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공연 텍스트의 대본은 필경사본으로 발굴되었는 바, 그 첫 페이지 오른쪽부터 세로로 ‘廉周用作’ ‘東萊城 陷落의 날’ ‘四幕 六場’으로, 맨 밑에는 가로로 ‘鶴山女中 出演 台本’으로, 마지막 페이지에는 ‘’프린트 責 조중현‘으로 적혀 있다. 그 대본 텍스트의 층위는, 일반적인 극 텍스트의 층위와는 달리 텍스트 전체를 범위로 하여 ‘극작가명+제목+장 및 막 표지’로, 이어서 각 막과 장을 단위로 하여 ‘시간 및 공간 표지+등장인물표+무대지시문+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본 텍스트는 1948년 6월 18일 공연되면서 공연 텍스트로 전환한다. 그 전환은 ‘문학운동의 중앙집중주의를 배격’하고 ‘조선민족문학 수립의 당면 과업인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삼남문학회의 취지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임진왜란 발발 시기 동래성의 함락을 통하여 죽음으로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는 민족 양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곧 대본 텍스트와 같이 부산지역 향토사를 형상화 하는 것이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성과 그 의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This paper’s the first step to excavate the drama text and the second step to analyse the subtext of it. And substitute the analysis of results for the conclusion.

    1) The script of the Drama Text is discovered as a copyist’s print.

    2) The Script Text is composed by ‘the dramatist+Title+the marks of Acts and Scenes+the marks of time and space+the characters list+the stage direction+dialogues’

    3) The Script Text is transformed into The Performance Text as a result of the performance at 18 June 1948.

    4) The Performance data of contemporary newspapers are well-established as follows. The title is <Taken on the day of the Dong Rae Castle>. The first public presentation of the drama was performed by the dramatist Youm, Jae Yong, the producer Kim Soo Don, the acting leader Nam Sang Hyup. The Performance was hosted by the Moonye Newpapers Co., and with the support of SamNam Literary Association at 18 June 1948.

    5) The background of the transformation is the intent of the SamNam Literary Association. The intent is to cater for development of the new Region Literature Movement.

    6) The direction of Busan Region Literature Movement is shaped by the history of Busan.

    And finally this paper’s future issue is a scientific analyse of the Drama Text.

  • KEYWORD

    염주용 , 東萊城 陷落의 날 , 문예신문 , 삼남문학회 , 향토문학운동 , 해방기

  • 1. 문제제기

    염주용은 1946년 6월 15일 조선청년문학가동맹 경남지부결성의 준비위원으로, 1946년 8월 1일 『문예신문』의 발행인으로, 1946년 10월 24일 삼남문학회 창립 대표로서 활동하면서 부산경남지역문학계의 실질적인 지도자1)의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을 하면서 그는 부산경남 지역 연극계에서도 전문 극단 문인극회를 창립하여 극작가로서 향토문학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 일환으로 그가 창작한 <東萊城 陷落의 날>이 문인극회에 의해서 공연된다. 그 공연 텍스트2) <東萊城 陷落의 날>에 관한 최초의 공연 기록은 다음과 같이 지적된다.

    인용 ①과 ②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텍스트의 공연에 관한 연도만 있을 뿐 구체적 공연 날자가 없다.

    둘째, 텍스트 제목의 문제이다. 만일 동일 텍스트라면 그 원제목은 <동래산성 함낙의 날>인지 「동래성함낙의 날」인지가 문제가 된다.

    셋째, 텍스트에 관한 증언의 신뢰성 문제이다. 즉, 인용은 문헌 기록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한남석의 증언(1990년 8월 23일)에 의존하고 있다. 그 ‘증언’도 같은 증언자와 대담자임에도 불구하고 ①과 ②에서 그 내용이 다르다. ①의 본문에서는 김수돈 연출로, ②의 각주에서는 김수돈, 김용호 연출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텍스트에 관한 증언자와 그 기록자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용 ①과 ②에 관한 학문적 검증도 없이 이 자료들이 부산희곡사, 부산연극사 등에서 그대로 인용되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5)

    이러한 공연 텍스트에 관한 신뢰성 문제를 전제로 하여 본고는 먼저 대본 텍스트를 발굴하여 확정하고 그 텍스트의 층위와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대본 텍스트는, 극작가가 언어로 쓴 인쇄된 희곡 텍스트에서 관객이 수용하거나 이해(혹은 오해)한 공연 텍스트로 전환하는 과정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대본 텍스트는 희곡 텍스트를 바탕으로 연출되거나 연기된 것이면서 관객이 수용하는 공연 텍스트의 바탕이 된다. 곧 대본 텍스트는 극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전달, 수용되는 과정에 있다. 독자와 희곡 텍스트, 관객과 공연 텍스트는 ‘기본 장르명→ 제목(+부제)→ 하위 장르명→ 장 및 막 표지→시간 및 공간 표지→ 등장인물표→ 무대지시문→ 대사’의 순차적인 만남을 이룬다. 그 만남을 희곡 텍스트와 공연 텍스트에서 본다면 독자나 관객은 ‘부 텍스트→ 서사 텍스트 → 주 텍스트’6)를 순차적으로 만나서 희곡 텍스트 혹은 공연 텍스트를 수용한다. 이에 희곡이든 대본이든 공연이든 극 텍스트의 분석은 부 텍스트, 서사 텍스트, 주 텍스트의 세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고는 대본 텍스트 <東萊城 陷落의 날>의 텍스트 층위 분석을 우선 부 텍스트에 한정하고자 한다.7)

    1)이순욱, 「광복기 시인 염주용의 매체 활동과 문예신문」, 『석당논총』 52호, 동아대학교 석당 전통문화연구원, 2012, 1-42쪽.  2)본고에서는 극 텍스트를 극작가가 쓴 언어로 된 작품을 희곡 텍스트, 이에 바탕을 두고 연출가가 연출하거나 배우가 연기한 공연 작품을 대본 텍스트로, 관객이 수용하거나 이해한 작품을 공연 텍스트로 구별하고자 한다. 희곡에서 대본을 거쳐서 연극에 이르는 텍스트 전환 과정에 관해서는 다음의 저서에 상론한 바 있다. 민병욱, 『현대희곡론』, 삼영사, 2003, 23~33쪽.  3)경성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부산연극사 자료집・1』, 1994, 398쪽.  4)경성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앞의 책, 399~400쪽.  5)‘앞의 책’ 이후 부산문인협회의 「부산지역 희곡사」(『부산문학사』, 소재, 1997), 한국연극협회 부산광역시지회의 「부산지역 극작가의 창작 희곡 60년사」, 「부산연극사」 ( 『부산연극사자료집(1)』 소재, 2006)에서도 그대로 수록될 뿐만 아니라 그 자료집을 거의 그대로 베끼고 있다.  6)일반적으로 희곡 텍스트, 대본 텍스트, 공연 텍스트는 대사를 주 텍스트로, 기본 장르명 및 하위장르명, 제목(+부제), 장 및 막 표지, 시간 및 공간 표지, 등장인물표를 부 텍스트로, 무대지시문을 서사 텍스트로 구성하고 있다.  7)본고에서 주 텍스트의 분석을 ‘앞으로의 문제’로 남겨 둔 것은 다음에 기인한다. 첫째, 양과 질에 있어서 자연주의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극 텍스트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 주 텍스트이다. 곧 극 텍스트와 주 텍스트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주 텍스트의 분석은 극작가가 언어로 쓴 희곡 텍스트의 언어 분석이면서, 주 텍스트인 대사가 가지고 기능, 사건과 인물 간의 관계, 그 사건 속에서 실현시켜나가는 극적 행동 등의 분석이기도 하다. 둘째, 본고에서는 대본 텍스트를 발굴하여 확정했지만, 그 바탕이 되는 희곡 텍스트의 발굴 문제가 남아 있다. 희곡 텍스트와 대본 텍스트 간의 차이는 극작가가 쓴 언어와 연출가 재창조한 언어 간의 차이이다. 그 차이 극작가와 연출가 간에 있는 연극예술관의 차이이기도 하다. 본고는 대본 텍스트만 발굴했을 뿐, 그 텍스트를 연출한 연출가, 그 바탕이 되는 극작가가 쓴 희곡 텍스트를 밝혀내지 못했다. 심지어 선행 연구에서는 극작가 염주용에 관한 일반적인 전기적 사실조차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우선 대본 텍스트의 부 텍스트와 서사 텍스트에 한정하고 연구하고자 한다.

    2. 공연 텍스트의 문헌 기록과 대본 텍스트의 확정

       2.1. 공연 텍스트의 문헌 기록

    공연 텍스트의 증언에 관한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헌 기록을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문헌 기록을 찾는 키워드(key word)는 ‘동래산성 함낙의 날’ 혹은 ‘동래성함낙의 날’과 ‘염주용’, ‘문예신문’ 혹은 ‘문예신문사’, ‘문인극회’이다. 이 가운데 ‘염주용’, ‘문예신문’, ‘문예신문사’는 염주용이 문예신문사를 설립하여 『문예신문』을 발간했다는 사실8)로 확인된다.

    『문예신문』은 염주용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하여 ‘부산부 대교통 1의 48번지’에서 타블로이드 2면으로 매주 월요일 발간된 주간 신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1948년 1월에서 6월 사이에 발간된 6호분뿐이다. 『문예신문』에서 ‘동래산성 함낙의 날’ 혹은 ‘동래성함낙의 날’을, 이어 동시대 다른 신문을 검색하면 그 결과가 다음과 같다.

    검색 결과에 따른 기사는 다음과 같다.9)

    인용 ①, ②, ③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문인극회의 제2회 공연으로 염주용의 창작 史劇 <東萊城 陷落의 날>이 1948년 6월 17일 혹은 18일에 공연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이 사실을 기준으로 공연 텍스트에 관련된 문제를 다음과 같은 확정할 수 있다.

    도식에서 공연 텍스트 <東萊城 陷落의 날>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대본이 된 희곡작품이 염주용의 창작 희곡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이다. 대본 텍스트 혹은 희곡 텍스트에 관한 그 구체적인 서지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2.2. 대본 텍스트의 발굴과 확정

    희곡 텍스트의 서지 사항에 관해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가운데 대본 텍스트가 2002년 발굴된다. 그 발굴은 2002년 이주홍문학관의 개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경남부산지역문학회가 이주홍의 소장 자료를 정리하는 가운데 대본 텍스트가 필경사본으로 발굴된 것이다. 필경사본에는, 그 첫 페이지 오른쪽부터 세로로 ‘廉周用 作’ ‘東萊城 陷落의 날’ ‘四幕 六場’으로, 맨 밑에는 가로로 ‘鶴山女中 出演 台本’으로, 마지막 페이지에는 ‘프린트 責 조중현’ 으로 적혀 있다.12) 이 필경사본에서 명확한 사실은 ‘이주홍이 鶴山女中 출연 台本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곧 필경사본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극작가 염주용, 출연 대본의 공연 장소 학산여중, 소장자 이주홍이다.

    필경사본에서 가장 먼저 확인 가능한 것은 그 본이 <東萊城 陷落의 날>의 대본 텍스트이며, 그 극작가가 염주용이라는 사실이다. 필경사본이 대본 텍스트라고 한다면 염주용은 그것으로 전환되기 이전에 언어로 쓰여진 희곡 텍스트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극작가 염주용의 전기적 사실들에 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으며, 그 희곡 텍스트에 관한 문헌 기록(창작연도, 발표 혹은 수록잡지, 발표 혹은 수록 연도 등등)에 관해서도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이어 필경사본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공연 장소가 학산여중이라는 사실이다. 1951년에 개교한 학산여중에서의 연극 공연과 관련되는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도식에서는 ‘동래가정고녀’를 ‘현 학산여고’라고 있다. 학산여고는 학산여중과 함께 학교법인 학산학원에서 설립한 학교이다. 학산여중과 학산여고는 동래가정여학원에서 시작된다. 동래가정여학원은 1946년 11월 6일 창립되어 1947년 7월 18일 설립 인가를 받고 개교하다가 1951년 8월 6일 학교법인 학산학원 및 학산여중으로 설립 인가를 받는다.14) 그 이후 학산학원은 1984년 문교부의 설립 인가를 받아서 1985년 3월 학산여고를 개교한다.15) 학산여고의 개교가 1984년임에서 본다면 1949년 동래가정교녀는 1949년 동래가정여학원이며, 1951년 8월에는 학산여중이다.

    문제는 도식에서 ‘1949년 동래가정교녀(현 학산여고)’라는 표현의 진위 여부이다. 1948년 남한 단독 정부에 의한 교육법의 제정으로 ‘국민학교(6년), 중학교(초급 3년, 고급 3년), 대학교(4년)’로, 1951년 교육법의 제 2차 개정으로 ‘국민 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4년)’로 학제 명칭을 한다. 이 명칭에서 본다면 ‘동래가정고녀’는 속칭으로서 동래가정여학원의 ‘고급 3년 과정’을 뜻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동래가정여학원의 고급 3년 과정’을 현재 학산여고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학산여고의 개교 연도는 1984년이고 동래가정여학원이 학산여중으로 바뀐 것은 1951년이기 때문이다.

    1951년 8월은 우리나라 학제 변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6년제 중학교가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된다.16) 이러한 분리 과정에서 동래가정여학원은 학교법인 학산학원과 학산여중으로만 설립 인가를 받는다. 따라서 ‘동래가정교녀(현 학산여고)’는 ‘동래가정여학원(당시 고급 3년 과정)’으로 정정하는 것이 올바르다. 이런 의미에서 필경사본에 적힌 ‘鶴山 女中 出演 台本’은 적어도 1951년 9월 이후 학산여중에서 공연된 작품의 대본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대본 텍스트의 연출가와 배우가 누구인지 문제가 된다.

    도식에서 동래가정여학원에서 연극 공연은 ‘극작가 이주홍, 그의 희곡 텍스트, 연출가 박재용, 장수철’에 관한 기록이 제시된다. 이 가운데 연출가 박재용의 이름은 거의 사라지지만 연출가 장수철은 국립 부산수산과대학교에서 적어도 1954년까지 이주홍의 극작품들을 계속 공연한다.17) 곧 장수철은 1949년 동래가정여학원에서, 1954년 이전에는 국립 수산과대학교에서 이주홍의 극작품을 공연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필경사본 텍스트의 연출가를 장수철로 단정 짓기도 그렇지 않기도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필경사본이 1951년 9월 이후 학산여중에서 공연된 염주용이 창작한 <東萊城 陷落의 날>을 공연하기 위해서 만든 대본 텍스트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8)염주용의 문예신문사 설립 연도와 『문예신문』 발간 연도에 관한 구체적 시기의 확정문제에 관해서 이견이 있을 뿐, 그 설립자, 설립, 발간에 관한 사실의 이견은 없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에서 상론하고 있다. 이순욱, 앞의 논문, 2012, 1~42쪽.  9)논술의 편의상, 인용에서는 텍스트의 공연 제목을 제외하고는 표기법을 한글로 바꾸고 현대 띄어쓰기를 하여 인용하였음.  10)『문예신문』 1948년 5월 24일에는 공연일자를 1948년 6월 17일로 보도하나 동 신문 1948년 6월 과 14일, 『대중신보』 1948년 6월 9일에는 같은 달 18일로 보도한다. 공연 한 달 전 보도와 같은 달 보도 가운데 같은 달 보도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1)도식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삼남문학회가 후원한 것이다. 삼남문학회는 1946년 10월 24일 결성된 단체인 바, 미군정의 탄압으로 문단이 좌파문단이 위축되고 우파문단으로 재편 되는 과정에서 창립된 좌우연합 결사체로 성립된다. 그 대표에는 염주용, 대리 조인제, 시부 유치환, 김수돈, 탁창덕, 소설부 김정한, 김석호, 염주용, 평론부 윤안두, 탁창덕, 조인제 등이다. 그 결성의 목적인 ‘문학운동의 종파적 경향과 중앙집중주의를 배격하고 조선민족문학 수립의 당면 과업인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재 남선 문학인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창립 목적에서 ‘조선민족문학 수립의 당면 과업인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라는 선언은 지역문학의 발생과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에 관해서는 본고의 <Ⅳ. 대본 텍스트의 공연과 향토문학운동>에서 상론할 것이다. 김용호 엮음, 『1947년판 예술연감』, 예술신문사, 1947, 120쪽. 죽순시인구락부, 「시단 소식 – 삼남문학회 결성」, 『죽순』 3호, 1946.12, 44쪽.  12)필경사본은 필자에 의하여 『항도 부산・29 』에 소개된 바 있다. 아울러 본고에서 다음에 수록된 pdf 파일을 대상텍스트로 하고, 인용하고자 할 때는 그 뜻이 변질되는 않는 범위에서 현대 맞춤법에 따라서 한글로 제시할 것이다. 민병욱, 「<동래성 함락의 날>에 대하여」, 『항도 부산』 29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13, 345~396쪽.  13)이 공연기록도 장수철의 증언에 의존한 것이다. 경성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앞의 책, 392~393쪽.  14)http://h-s.ms.kr/  15)http://hsgh.hs.kr/  16)경남공립여자중학교는 부산 제1여자고등학교(현 부산여고)와 부산동여자중학교(현 부산여중)로, 경남공립중학교는 경남고등학교와 부산서중학교(현 경남중)로, 동래공립중학교는 동래고등학교와 동래중학교로, 부산공립여자중학교는 부산여자고등학교와 부산서여자중학교(현 부산여중)로, 부산공립중학교는 부산고등학교와 부산중학교로 분리된 시기가 1951년 9월이다.  17)박정오, 『수대학보』, 1966.7.25

    3. 대본 텍스트의 층위와 그 구조

       3.1. 대본 텍스트 층위와 역사적 진실의 초점화

    대본 텍스트의 첫 페이지는,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廉周用 作, 東萊城 陷落의 날, 四幕六場, 鶴山女中 出演 台本‘으로 시작된다. 이어 작품의 층위는 “廉周用 作, 東萊城 陷落의 날, 四幕六場, 第 一 幕, 때, 곳, 사람, 舞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순차적인 층위는, 텍스트들의 일반적인 유형과 다르다.

    도식에서 ‘1. 기본 장르’와 ‘3. 하위 장르’는 대본 텍스트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장르 명칭은 동시대 신문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다. 대본 텍스트의 전단계 창작 희곡의 극작가 염주용이 발간한 『문예신문』(1948.5.24., 동 6.14)의 기사 표지에는 ‘예술 사극’으로 기사 내용에는 ‘임란 사극’으로 표기된다. 아울러 동시대 『대중신보』(1948.6.9.)의 기사 내용에서는 ‘사극’으로 표기된다. 공연 텍스트의 원작가가 염주용이며, 그가 『문예신문』의 발행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다면 대본 텍스트를 ‘1.기본 장르’에 있어서 ‘사극’으로, ‘3.하위 장르’에 있어서 ‘예술 사극’이나 ‘임란 사극’으로 전제해도 될 것 같다. 이러한 기본 장르의 설정을 이어서 제시되는 제목 <동래성 함락의 날>과 관련시켜서 본다면 텍스트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함락된 날, 곧 1592년(선조 25) 4월 15일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함락된 날을 다룬 텍스트의 하위 장르가 ‘임진 사극’ 혹은 ‘예술 사극’인가 하는 점이다.

    ‘임란 사극’이라는 측면에서 텍스트의 초점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나 그 과정이 아니라 ‘동래성 함락의 날’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극 작가들이 역사적 사실 과정의 정확한 표현이나 세부 묘사가 아니라 그 진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갈등의 순간을 선택한다면18) 텍스트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으로 ‘동래성 함락의 날’을 선택한 것이다.

    ‘예술 사극’이라는 측면에서 텍스트의 초점은 역사적 제재의 사실(fact) 보다는 그것의 예술적 허구화(fiction)에 가있다. 텍스트에서 사실은 ‘동래성 함락’에 관련된 송상현과 평의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실존 인물, 예술적 허구는 송상현의 애첩, 기생 김 섬, 투화민 모리균 등을 중심으로 한 인위적 형상 인물에 의해서 전개된다. 곧 텍스트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주 플롯으로, 인위적 형상 인물을 부 플롯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장르와 하위 장르 층위에서 본다면 텍스트가 역사적 진실을 초점화 하여 주 플롯으로 설정하고 허구적 형상 인물들의 사건을 부 플롯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2. 장과 막의 시간·공간 층위와 결정론적 구조의식

    이어서 대본 텍스트는 그 역사적 사실을 장과 막의 표지를 통하여 ‘4막 6장’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4막 6장으로 표현하고자 한 역사적 사실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 표지19)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도식에서 일정한 시간이 관계하는 바의 시대, 곧 시대적 시간은 임진왜란이다. 일정한 시대적 시간이 관계하는 바의 시대적 공간은 1592년 4월 14일의 부산성과 15일의 동래성이다. 허구실연적 시간은 임진왜란 발생 1년 전에서 발생한 때까지의 1년이며, 허구실연적 공간은 동래부 공소, 성내 이양녀의 집, 부산성, 동래성이다. 곧 텍스트는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동래성이 함락된 날까지의 1년에 걸쳐서 동래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1591년 5월 일본의 가도입명(명나라와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이 길을 비켜는 것) 통보,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첨사 정발의 전사와 부산성 함락, 4월 15일 동래부사 송상현의 전사와 동래성 함락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본다면 제3막과 제4막 제1장의 시간과 공간 표지가 문제가 된다. 텍스트의 제4막 제1장의 무대지시문에는 ‘무대는 전 막과 같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곧 제4막 제1장의 무대는 제3막의 ‘경상남도 부산성’과 같다는 것이다. 문제는 도식에서와 같이 제3막과 제4막 제1장의 시간은 일치하지만 공간은 ‘부산성’과 ‘동래성’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무대는 전 막과 같다’라고 했음에도 제3막과 제4막 제1장간에 있는 시간의 일치와 공간의 불일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3막에 다루고 있는 사건은 임진왜란의 첫 전투, 곧 정발 장군의 전사와 부산성의 함락과정이다. 제4막의 제1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적군의 병력을 정탐한 것’, ‘정발 장군의 고군분투 및 원병 요청’, ‘정 발 장군의 전사와 부산성 함락’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다가 ‘적병과의 내일 전투를 위한 진지 구축과 송상현의 독려’로 끝난다. 이러한 사건 구성에서 본다면 제3막의 전체 사건과 제4막 제1장의 전반부 사건은 일정한 시간, 곧 부산성 전투의 시작과 몰락까지의 시간이 겹친다. 이런 사건 시간의 겹침에서 본다면 제3막의 전체 사건과 제 4막 제1장의 전반부 사건은 병렬적 사건진행으로 이루어진다. 제3막에서 ‘무대는 전 막과 같다’라는 표현은 무대 공간이 아니라 무대 시간의 겹침에 한정할 때 성립된다. 따라서 장 및 막의 표지와 시간 및 공간의 표지에서 본다면 텍스트의 극적 사건20)은 인과관계에 의한 종속접속적 플롯을 보여주면서 부산성의 함락과정(제3막)과 동래성의 전투 준비과정(제4막 제1장)을 분편화된 사건의 병렬관계로 보여주는 등위접속적 플롯을 부분적으로 취하고 있다.

    문제는 대본 텍스트가 사건진행을 종속접속적 플롯으로 순차적으로 전개하면서 특정한 사건을 시간의 겹침으로 형상화 하여 등위접속적 플롯으로 형상화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등위접속적 플롯으로 형상화 된 사건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도식에서 제 3막의 사건들은 무대 위에서 행위줄거리로 전개된다. 제4막 제1장의 사건들, 송상현의 전투 대책 회의와 준비에 관련된 사건들은 행위줄거리로 무대 위에서 전개되고, 제3막의 사건들은 보고줄거리로 전달된다. 도식에서 행위 줄거리 ‘부산성 함락과 정 발 장군의 전사’와 ‘송상현의 전투 대책 회의와 준비’는 시간이 겹쳐지만 막을 달리 전개된다. 제3막이 끝나고 제4막 제1장이 시작되면서 ‘송상현의 전투 대책 회의와 준비’에 관련된 극적 사건들이 무대 위에서 실현된다. 그 무대 실연과 같이 제3막에서 일어난 행위 줄거리가 다시 척후병의 보고에 의해서 ‘부산성 함락과 정발 장군의 전사’가 언어적 표현으로 전달된다. 보고줄거리가 사건이나 사건 주체의 실체보다는 보고자의 의식이나 이념에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거나 극적 인물의 의식이나 이념에 더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21)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제4막 제1장에서 ‘부산성 함락과 정발 장군의 전사’는 그 극적 사건보다는 ‘송상현의 의전투 대책 회의와 준비’를 행위줄거리로 드러내고 전경화 시키는 유기적 기능을 한다. 제4막 제1장의 보고 줄거리는 제3막과 제4막 제1장 간의 인과론적 질서를 방해하고 지연시킴으로써 극적 인물 송상현과 그의 행위를 결정하는 환경으로 전경화 된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주도세력 송상현과 그의 민족적 행위가 그의 의지보다는 상대적으로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됨을 보여준다. 텍스트의 4막 구성은 극적 인물과 그의 행동이 의지 보다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구조의식22)을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텍스트를 ‘4막 6장’으로 스스로 규정한 것이다. 텍스트는 제1막 제1장과 제2장, 제2막, 제3막, 제4막 제1장과 제2장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인 극적 관습에 따르면 텍스트는 4막 4장이다. 텍스트를 스스로 4막 6장으로 규정한 것은 1막과 1장이 같다는 것으로 규정한 결과이다. 따라서 장과 막을 극적 행위의 단위나 장소의 변화를 지시하는 임의적인 분할 단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 사건진행을 허구실연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줄거리 마디로 사용한 것이다. 곧 텍스트가 장과 막을 사건진행의 의미 단위를 분할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4막 4장’이 아니라 ‘4막 6장’이다.

       3.3. 등장인물의 층위와 갈등세력의 순차적 제시 및 평면 구성

    시간과 공간의 층위에 이어 대본 텍스트에서 제시되는 것은 등장인물의 층위이다. 대본 텍스트에서 등장인물의 층위는 막을 단위로 하여 달리 제시되는 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막에서 등장인물들은 송상현과 적장 평의지의 양 세력으로 나뉘어서 제시된다. 송상현의 세력은 그를 중심으로 하여 정발(첨사), 송봉수(군관), 대송백(향리)로 서열화 되어 있는 권력관계, 이양녀(그를 따라 온 여인), 김섬(기생), 신여로, 우동, 김춘, 만개(관노 혹은 종)로 서열화 되어 있는 사회적 신분 관계로 제시된다. 평의지의 세력은 그를 중심으로 모리균(투화민)권력 관계 및 사회적 신분관계로 제시된다. 곧 제1막에서는 송상현 및 그 세력과 평의지 및 그 세력 간이 ‘적장’의 서로 대립되는 관계로 제시되고 있다. 그 방식에 있어서도 송상현 및 그 세력과 평의지 및 그 세력을 분리하여 있으므로 제1막은 그 세력들 자체가 대립의 관계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2막에서 등장인물 제시 방식은 제1막과 다르다.

    제2막에서는 제1막에서 제시된 송상현의 권력관계, 곧 정발(첨사), 송봉수(군관), 대송백(향리)이 제시되지 않고 사회적 신분관계로 서열화 되어 있는 인물들 이양녀 및 김섬, 만개, 김춘, 신여로로, 그 대립세력 모리균만 제시되어 있다. 곧 송상현을 중심으로 이양녀, 김섬 간의 특정 관계와 모리균을 관련 있는 인물로 제시한 것이다. 제1막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낮은 이양녀와 김샘을 중심으로 송상현 간의 관계와 이에 관련 있는 인물로 서로 대립되는 세력인 모리균 간의 특정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3막에서는 제1, 2막과 달리 서로 대립되는 세력의 지도자 송상현과 그의 서열화 된 관계 인물들이 생략되어 제시된다.

    제3막에서 제시되는 것은 서로 ‘적’으로 대립되는 정발과 평의지 간에 병력의 관계이다. 정발과 그의 세력들은 비장, 척후병, 민병과 같은 군인들, 애향, 용월과 같은 서열이 낮은 신분들이다. 평의지와 그의 세력들은 적장, 적병과 같은 군인들이다. 곧 제3막에서는 정발 및 그 군인 세력들과 평의지 및 그 군인세력들 간의 다툼을 제시하고 있다.

    제4막에서는 제3막에서 제시된 정발 및 그의 세력들은 사라지고 평의지 및 그의 세력들은 여전히 제시된다.

    제4막에서도 송상현 및 그의 세력들과 평의지 및 그의 세력들이 양분되어 제시된다. 송상현 및 그의 세력들은, 제1막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규, 조영규, 송봉수, 김희수, 대송백, 소송백, 병졸로 서열화 되어 있는 권력관계, 이양녀, 김섬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사회적 신분 관계, 부민, 촌녀로 서열화 되어 있는 계급관계로 제시된다. 반면 그 ‘적장’으로 대립관계에 잇는 평의지 및 그의 세력들은 권력관계로 제시된다. 그 권력관계가 ‘적장’ 혹은 ‘병졸’ 혹은 ‘적병’과 같이 군인집단 간의 대립관계로 제시되고 있다. 제4막에서 등장인물표는 서로 ‘적’으로 대립되는 세력들의 지도자 송상현과 평의지 간의 병력 충돌을 제시하고 있다.

    제1막에서 제4막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표는 송상현과 그의 권력관계에 있는 인물들, 사회적 신분 서열이 낮은 인물들, 평의지와 그의 권력복종적 인물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등장인물표는 송상현과 평의지 간의 대립을 양분으로 구조화 하고 그의 복종세력들을 동시에 양분으로 구조화 하여 제시함으로써 극 텍스트가 ‘적장’을 중심으로 서로 군사적 대립관계에서 군사적 충돌행동까지 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아울러 등장인물표에 제시된 인물이 무대 위에 극적 행동으로 등장하는 경우, 곧 보고줄거리를 통해서 보고되지 않고 행위줄거리에서 무대 실연하는 경우24)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식에서 등장인물의 구성은 각 막에 제시된 등장인물표에 따라서 이루어진 순차적 구성이다. 곧 등장인물표에서와 마찬가지로 송상현 및 그의 세력들은 사회적 권력이나 지위, 신분질서 등을 기준으로 하여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이어서 평의지 및 그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로 제시된다. 곧 등장인물표는 상단에 주동세력을 하단에 반동세력을 제시하고 그 계급적 상하관계를 기준으로 다시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등장인물표의 이러한 주동세력과 반동세력 간의 양분화 된 순차적 제시는 그 인물들 간의 사건들이 단순 평면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8)T.Hodgson, The Batesford Dictionary of Drama, B.T.Batsford, London, 1988, p.165.  19)연극적 기호로서 시간과 공간 표지는 3층위로 나눈다. 시간의 층위는 시대적 시간, 허구실연적 시간, 실제 상연 시간으로 공간의 층위는 시대적 공간, 허구실연적 공간, 실제 상연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소련 콤 아카데미 편집부 엮음, 김만수 역, 『희곡의 본질과 역사』, 제3세계문학사, 1990, 10쪽.  20)민병욱, 앞의 책, 106쪽.  21)민병욱, 앞의 책, 106쪽.  22)4막극은 일반적으로 등장인물과 그 행동을 결정하는 환경을 무대지시문으로 무대 위에 가능한 정확하게 재생시키고 하는 자연주의 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구조이다. 텍스트가 4막극을 선택한 것과 자연주의 드라마 4막극 간의 관계는 달리 논의될 문제이다. 밀리 S 베린저, 우수진 역, 『서양연극사이야기』, 평민사, 2001, 228쪽.  23)毛利均(投化民)은 제1막 제2장부터 폐막까지 출연하지만 제1막 제1장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표에서는 제시되지 않는다. 단지 비슷한 이름 金利均(投化民)이 텍스트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는 제1막 제1장의 등장인물표에 나타나지만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극 텍스트의 출연 인물에서 보면 ‘金利均(投化民)’은 毛利均(投化民)의 오기로 보인다.  24)행위줄거리와 보고줄거리 간의 차이는 무대에 극적 행동을 실연하는 줄거리와 무대 위에서 단지 말로써 전달되는 줄거리 간의 차이이다. 민병욱, 앞의 책, 105쪽.

    4. 대본 텍스트의 공연과 향토문학운동의 방향

    지금까지 살펴 본 바, 대본 텍스트는 그 제목 <東萊城 陷落의 날>와 같이 임진왜란의 발발 시기 직전 1591년부터 동래성이 함락되는 1592년 4월 14일까지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 상연시간은 임진왜란이지만 시대적 상연 공간은 동래성이다. 곧 4막 6장 가운데 제 1막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을, 제 2막부터 제4막까지는 왜란의 발발 2일 간을 다루고 있다. 제2막 부터는 제1막과 극적 시간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고 1년 후의 사건들이 전개된다. 제1막은 제2막에서 제 4막까지의 극적 사건의 전개를 설정하기 위한 전제 상황이 된다. 그 때문에 제1막에서 시간과 공간 표지를 특정하지 않고 ‘1591년 동래성’으로 설정하고 등장인물표에서 송상현 및 그의 세력과 평의지 및 그의 세력을 순차적으로 제시하여 제2막에서 제4막까지도 그대로 따른다.

    무대지시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제1막에서는 전쟁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하지만 제2막부터 제4막까지는 전쟁이라는 극적 사건을 그 자체로 서술하여 단순 전달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태도는 제1막의 개막에서부터 제4막의 폐막까지의 극적 사건이 시간적 질서와 인과관계에 의한 종속접속적 플롯을 보여주고자 한 것에 있다.

    그러면서도 제3막 ‘부산성의 함락과 정발의 전사’가 제4막 제1장 ‘송상현의 동래성 전투 준비과정’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이 겹치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제4막 제1장의 사건들은 행위줄거리로 무대 위에서 전개되고, 제3막의 사건들은 보고줄거리로 전달된다. 그 보고줄거리는 제4막 제1장의 사건을 행위줄거리로 드러내고 전경화 시키는 유기적 기능을 한다. 그 기능은 제3막과 제4막 제1장 간의 인과론적 질서를 방해하고 지연시킴으로써 극적 인물 송상현과 그의 행위를 결정하는 환경으로 전경화 된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주도세력 송상현과 그의 민족적 행위가 그의 의지 보다는 상대적으로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됨을 보여준다. 텍스트는 극적 인물과 그의 행동이 의지 보다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의식을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그 대본 텍스트의 첫 공연이 1948년 6월 18일 부산 시내 각 극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곧 텍스트가 1948년 6월 18일에 공연된 콘텍스트가 무엇인지가 문제이다

    공연 텍스트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극작 및 기획 염재용, 연출 김수돈, 진행 김정한, 주최 문예신문사, 후원 삼남문학회 등등이다. 이 사실들을 중심으로 1948년 전후 부산지역 문학운동단체의 성립과 그 성원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25)

    극작 염재용, 연출 김수돈, 진행 김정한이 함께 참여한 단체는 후원 삼남문학회이며, 그 주소지는 문예신문사이다. 곧 공연 텍스트는 삼남문학회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삼남문학회는 1946년 10월 24일 결성된 단체로서 그 창립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삼남문학회의 결성 연도는 1946년은 해방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연도이다. 1946년 신탁통치에 관한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미군정은 좌익 세력을 제거하고 극좌 및 극우 세력을 제외한 좌우 합작을 추진하게 된다. 좌우 합작은 1946년 10월 4일 좌우 합작의 ‘7원칙’을 발표하여 시작되었지만 그 원칙을 실천하지도 못하고 1947년 12월 6일 해체된다.27)

    삼남문학회은 좌우 합작이 시작된 1946년에 창립된다. 그 목적도, 좌익과 우익의 ‘문학운동의 종파적 경향’을 배격하여 좌우 연합에 둔 것은 물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삼남문학회는 ‘문학운동의 중앙집중주의를 배격’하고 ‘조선민족문학 수립의 당면 과업인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창립 목적으로 한다. 곧 그 창립 목적은 재남선 문학인을 중심으로 한 민족문학의 수립을 위한 향토문학운동이다. 민족문학의 수립이란 당시 좌우익의 공통된 명제이긴 하지만 그 의미 내용이 너무 다를 뿐 아니라 그 편차로 인하여 좌우합작에서는 문학이나 문학운동의 명제로 설정되지도 않는다.28) 이런 의미에서 삼남문학회의 설립 취지는 민족문학의 수립 보다는 상대적으로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 1947년 좌우 합작의 해체 이후, 삼남문학회는 1948년 6월 18일 대본 텍스트를 공연한다. 곧 대본에서 공연 텍스로의 전환은 ‘향토문학의 새로운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 초점은 텍스트의 층위에서 확인된다. 제목과 시간 및 공간 표지에서 ‘1592년 임진왜란과 그 시기의 동래성’이며, 등장인물표가 동래 부사 송상현 및 그의 추종 세력과 일본 대마도 도주의 아들 평의지 및 그 추종세력 간의 갈등 구도로 만들어진 것은 공연 텍스트가 해방기 부산지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산지역은 임진왜란 시기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 일제 식민지 거점도시로서 식민지 찬탈이 시작된 도시이다. 부산지역은 조선과 일본을 연결해 주는 매개 도시이기도 하며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시기에 일본의 조선 침략 역사를 공연한다는 것은 임진왜란이 부산지역 ‘향토사의 산 교실’29)이기 때문이다. 그 공연 내용으로 동래 부사 송상현 및 부산 첨사 정발의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는 전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부산지역 향토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 양심’30)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임진왜란 발발 시기 동래성의 함락을 통하여 죽음으로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는 민족 양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곧 대본 텍스트와 같이 부산지역 향토사를 형상화 하는 것이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성과 그 의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25)이순욱, 「광복기 경남·부산 시인들의 문단 재편 욕망과 해방 1주년 기념시집 『날개』」, 『비평문학』 43호, 한국비평문학회, 2012, 189-226쪽. _____, 「부산의 문화지도 그리기 ; 광복기 부산 지역 문학사회의 형성과 창작 기반」 『석당논총』 50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 97-128쪽.  26)「시단 소식–삼남문학회 결성」, 『죽순』 3호, 죽순시인구락부, 1946.12, 44쪽.  27)황의서, 「해방 후 좌우합작의 실패원인 분석」, 『대한정치학회보』, 제17권 1호 대한정치학회, 2010, 325-342 쪽.  28)민족문학이나 민족문화에 관한 논의는 한상동의 논문에서 좌우익합작의 ‘7원칙’에 관해서는 이완범의 논문에서 상론하고 있다. 한상도, 「해방정국기 민족문화 재건 논의의 내용과 성격」, 『사학연구』 89호, 한국사학회, 2008, 119-157쪽. 이완범, 「해방 직후 남한 좌우합작 평가 : 국제적 제약 요인과 관련하여, 1946-1947」, 『국제정치논총』 제47권 4호, 한국국제정치학회, 2007, 105-139쪽.  29)「「東萊城 陷落의 날」-文人劇會 공연」, 『대중신보』, 1948.6.9  30)『문예신문』, 1948.5.24., 6.14

    5. 결론 및 앞으로의 문제

    본고는 공연 기록만 전해 오는 <東萊城 陷落의 날>의 대본 텍스트를 자료로 발굴하고 그 텍스트 층위 가운데 우선 부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를 결론으로 대신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연 기록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은 <東萊城 陷落의 날>이 염재용 작, 김수돈 연출,남상협 실기 지도, 김정한 진행, 문예신문 사 주최, 산남문학회 후원으로 1948년 6월 18일 뿌산 시내 각 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2) 공연 텍스트의 대본 곧 대본 텍스트는 필경사본으로 발굴되었는바, 그 첫 페이지 오른쪽부터 세로로 ‘廉周用 作’ ‘東萊城 陷落의 날’ ‘四幕 六場’으로, 맨 밑에는 가로로 ‘鶴山女中 出演 台本’으로, 마지막 페이지에는 ‘’프린트 責 조중현‘으로 적혀 있다. 곧 대본 텍스트는 1951년 9월 이후 학산여중에서 공연된 염주용이 창작한 <東萊城 陷落의 날>의 대본이다.

    3) 그 대본 텍스트의 층위는, 일반적인 극 텍스트의 층위와는 달리 텍스트 전체를 범위로 하여 ‘극작가 명+제목+장 및 막 표지’로, 이어서 각 막과 장을 단위로 하여 ‘시간 및 공간 표지+ 등장인물표+ 무대지시문+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4) 텍스트의 첫 번째 층위는 동시대 신문에 ‘예술 사극’ 혹은 ‘사극’ 혹은 ‘임란 사극’으로 설정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기본 장르의 설정에서 본다면 텍스트의 제목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함락된 날, 곧 1592년(선조 25) 4월 15일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5) 대본 텍스트는 그 역사적 사실을 장과 막의 표지를 통하여 ‘4막 6장’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곧 텍스트의 4막 6장은, 제1막 제1장과 제2장, 제2막, 제3막, 제4막 제1장과 제2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장과 막을 동일시하여 규정한 것으로서 극 텍스트의 구조의식이 결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6) 대본 텍스트는 사건진행을 종속접속적 플롯으로 순차적으로 전개하면서도 부산성의 함락과정(제3막)과 동래성의 전투 준비과정(제4막 제1장)을 분편화된 사건의 병렬관계로 보여주는 등위접속적 플롯을 부분적으로 취하고 있다. 곧 부산성의 함락과정은 제3막에서는 행위줄거리로, 제4막 제1장에서는 동래성의 전투 준비과정에 관련된 행위줄거리를 전경화 시키는 보고줄거리로 다시 재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주도세력 송상현과 그의 민족적 행위가 그의 의지 보다는 상대적으로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됨을 보여주는 환경결정론적 구조의식을 내재하고 있다.

    7) 제1막에서 제4막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표는 송상현과 그의 권력관계에 있는 인물들, 사회적 신분 서열이 낮은 인물들, 평의지와 그의 권력복종적 인물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등장인물표는 송상현과 평의지 간의 대립을 양분으로 구조화 하고 그의 복종세력들을 동시에 양분으로 구조화 하여 제시함으로써 극 텍스트가 ‘적장’을 중심으로 서로 군사적 대립관계에서 군사적 충돌행동까지 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8) 대본 텍스트는 1948년 6월 18일 공연되면서 공연 텍스트로 전환한다. 그 전환은 ‘문학운동의 중앙집중주의를 배격’하고 ‘조선민족문학 수립의 당면 과업인 향토문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삼남문학회의 취지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임진왜란 발발 시기 동래성의 함락을 통하여 죽음으로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는 민족 양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곧 대본 텍스트와 같이 부산지역 향토사를 형상화 하는 것이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대본 텍스트의 공연은 향토문학운동의 방향성과 그 의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는 극 텍스트의 부 텍스트에 한정되어 있다. 극 텍스트의 주 텍스트는 대사인 바, 본 연구는 주 텍스트 대사의 분석과 이를 통하여 극 텍스트의 전체 구조와 의미 구조를 살펴 볼 과제를 남기고 있다. 특히 본 연구의 과제는 주 텍스트 대사가 제공하는 극적 사건 전개과정,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양식에 관해서 제공하는 정보 및 평설적 가치 판단까지 살펴봄으로써 텍스트의 구조와 의미구조, 그 연극사회학적 의미 내용까지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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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동래가정고녀(현 학산여고) 1949.13)
    동래가정고녀(현 학산여고) 19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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