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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A Theatrical Aesthetics of Peter Weiss and <Trial>-Drama 페터 바이스의 연극미학과 드라마 <소송>
  • 비영리 CC BY-NC
ABSTRACT
A Theatrical Aesthetics of Peter Weiss and <Trial>-Drama

리얼리즘 연극과 초현실주의적 아방가르드 연극 사이에서 진동하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의 연극관은 그의 연극 미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연극들 역시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진실된 것이라면 연극 형식이나 극작 방법에 대해 매우 열린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이스의 리얼리즘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형상화 방법의 당파성이 아니라 작가의 당파성이다. 즉 리얼리즘의 중핵은 사회적 모순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바이스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리얼리즘의 핵심을 현실에 대한 부정 혹은 사회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찾고 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면 예술적 수단의 선택은 자유롭다. 바이스는 마지막 드라마들인<소송>과 <새로운 소송>에서 이러한 연극미학을 십분 활용하고, 테마에 적합하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개방적인 연극관을 실행에 옮긴다. <소송>이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적 요소와 브레히트적인 생소화 기법(V-effekt)의 동시적 드라마투르기는 바이스 총체극의 면모와 아울러 유연한 리얼리즘관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K라는 반면교사를 통해 정치적으로 잘못된 태도를 시위하고자 하는 학습극(Lehrstück)이다. 관객은 K를 통해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소시민의 상황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파괴 및 전체 삶의 탈인 간화를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바이스는 관객의 극적 몰입을 차단하고 비판적 사유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생소화 효과를 활용한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게스투스(Gestus) 연기나 희극적ㆍ소극적인 장면의 설정이 그렇다. 사실 어떤 면에서 <소송>은 소시민 K가 경험한 ‘악몽’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의 초현실주의적 꿈 세계는 소시민적 규범과 강제에 사로잡힌 자의 ‘불안망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공상적인 요소와 현실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바이스는 사회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연출한다. 이는 도식적인 이념극의 지루함을 지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생소화 효과를 일으켜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아방가르드적 꿈 세계가 현실 너머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바이스는 그것을 인식확장과 정치적 의식화의 매개로 전유하고있는 셈이다.

KEYWORD
Peter Weiss , Franz Kafka , , Bertolt Brecht , surrealism , resistance , Fascism , snob , political play
  • 1. 들어가는 글

    우리는 ‘의문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과 예술 또한 사회 모순에 대한 질문의 의지를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다. 정치극이니 참여연극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일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외견상으로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을 당연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사회’의 풍토,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탈정치화, 거대담론에 ‘원한’을 표하는 포스트주의 (post-ismen)의 득세 등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일성 사유에 대한 비판, 여성과 성소수자, 이민자 등의 소수자나 하위주체에 대한 관심, 이성의 그림자에 눌려 있던 몸과 욕망에 대한 관심의 환기, 일상 정치의 공론화 등의 성과는 포스트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진전과 더불어 그것의 문제점이 심화되어 가는 지금, 비판적 연극의 종언 혹은 근대연극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현실 속의 수많은 모순들 혹은 적대(antagonism)는 그 어느 하나 시원하게 해소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당대의 사회ㆍ정치적 문제들과 대결할 것을 촉구하는 연극의 필요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를 위해 1960~70년대 서구 정치극의 아이콘이었던 페터 바이스(Peter Weiss, 1918~1982)의 연극미학과 <소송>(Der Prozeß, 1974) 드라마를 살피고자 한다. 68혁명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난 이후 바이스는 3권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 소설 『저항의 미학』(Die Ästhetik der Widerstands)의 집필에 착수한다.1) 이 소설에는 세 프롤레타리아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파시즘과 대결한다. 여기서 문학과 예술은 엄혹한 시대상황을 이겨내고 보다 정치한 현실인식의 촉매 역할을 한다. ‘저항’과 ‘미학’은 바이스의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그는 정치와 저항을 자극하면서도 한 번도 ‘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드라마들을 이념적으로 도식적인 정치극과 구분해주는 변별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냉전 시대의 서구에서 금기시되었던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유연한 리얼리즘’ 연극의 기본 정신이기도 했다. 바이스는 <마라/사드>를 통하여 ‘뇌관이 빠진 폭탄’ 브레히트를 다시 살려냈다. 여기에는 사회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교조적 독트린을 벗어나려했던 그의 개방적인 연극미학이 크게 기여했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바이스의 <소송>은 여러 가지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다.2) 우선 그는 <명중의 트로츠키>(Trotzki im Exil) 이후 서구뿐만 아니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불편한 관계에 처한다. 레닌과 더불어 러시아 혁명의 주요 지도자면서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금기 인물이었던 트로츠키를 등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바이스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고 그로 인해 중병을 앓게 된다.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은 정치적 세계관과 문학ㆍ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벼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바이스는 죽을 때까지 비판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했다. 이는 <소송> 드라마에서도 증명된다. 관료주의와 교조주의로 급전직하(急轉直下)의 길을 가는 현실 사회주의, 온갖 위기를 자본의 기회로 포획하는 자본주의의 득세, 나아가 분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저항운동. 이러한 위기적 상황들이 환멸과 절망의 경험을 안겨주었음에도, 그는 체제에 저항하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송>은 후기 바이스의 정치극과 연극미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나아가 제목이 암시하듯 <소송>은 카프카(Franz Kafka)의 동명의 소설을 드라마로 개작한 작품이다. 소설은 연극과 속성상 많이 다른 매체이다. 이는 원작을 충실하게 무대화하더라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따라서 소설을 연극으로 개작할 경우 그에 대한 일정한 변형이 불가피하다. 바이스는 화가, 영화감독, 극작가, 소설가 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들 매체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을 저술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극 구상에 있어서도 그러한 생각들을 반영하고자 했다. 사회주의자 바이스가 매체의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과 극적 전략은 ‘변형된 본받기’의 한 사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는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브레히트의 ‘생소화효과’(Verfremdungseffekt)를 거론하면서 언급한 ‘자리바꿈’(deplacement)의 간접 증거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3) 바이스는 카프카 <소송>의 주인공 K를 전쟁 직전의 자본주의로 불러오고 있다. 이로써 카프카 소설이 지니는 비의성과 다층적인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극을 통해 관객을 무대 밖 현실로 불러내려는 브레히트와 바이스의 극적 의도에서 볼 때 이를 비판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바이스의 소설 개작 작업을 통해 매체 전환의 어려움과 가능성, 나아가 우리 시대 정치극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스의 열린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개방적인 연극미학이 정체 상태에 빠진 한국 정치극 논의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Peter Weiss, Die Ästhetik des Widerstands. Roman. 3 Bd, Berlin: Henschel, 1983(이하 이 작품을 거론할 경우에는 본문에 ÄdW로 표기하고 쪽수를 병기함).  2)1970ㆍ80년대 한국에도 ‘민족극’ 혹은 ‘민중극’이라 하여 정치극의 바람이 일었다. 당대의 정치 현실이나 사회 모순과 대결하려는 연극의 전통은 오래되었거니와, 지난 20세기 후반의 연극 운동은 그러한 흐름들을 계승하려는 시도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정치극 혹은 리얼리즘 연극은 쇠퇴하였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있다. 여기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나 후기 자본주의로의 이행 등이 작용했다. 그러나 연극성에 대한 고민의 부족과 정치극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의 부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페터 바이스의 화두였던 ‘정치’와 ‘미학’의 접속 전략은 향후 한국 정치극 운동의 대안 모색에 하나의 실험으로 그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위기’ 속에서 연극적 해법을 찾아가면서 실험과 저항이 대립되는 가치가 아님을 보여준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3)Louis Althusser, “The 'Piccolo Teatro': Bertolazzi and Brecht”, in: For Marx, London: erso, 1981. p. 134.

    2. 바이스 연극미학의 전개

    바이스는 극작술이나 연극론과 관련하여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바이스의 연극론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거나 정리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기록극’(das dokumentarische Theater)을 제외하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정치적 총체극(total theatre)과 관련해서도 바이스는 자기 입장에 대해 명확히 밝힌 바 없다. 하지만 그는 몇몇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연극관을 개진함으로써 기존 아방가르드 총체극과 자신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이러한 기초자료에 의거할 경우 바이스 연극미학을 규명하는 데 유용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이스의 연극미학 정립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로 자주 거론되는 자료들로는「여기 이것은 무대…」4),「재료와 모델-기록극에 관한 노트」5),「저항의 모든 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6)가 있다. 이들은 바이스 드라마들의 미학을 함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연극미학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첫 텍스트는 <마라/사드>(Marat/Sade) 집필 당시 『Theater heute』 誌의서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쓰인 글이다. 잡지의 편집자는 오늘날의 세계가 극장에서 여전히 묘사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아직도 리얼리즘적 수단이 그러한 묘사에 유용한지 묻고 있다. 이에 대해 바이스는 “그 때 그 때 나의 환상과 순간의 관심, 정치적ㆍ사회적ㆍ심리학적 혹은 미학적 입장에 따라 오늘날 세계에 대한 묘사들은 바뀐다”7)고 대답한다. 겉으로 이러한 진술은 이 당시 바이스가 아직 주관주의적인 극작술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스는 세계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객관적인 세계 묘사의 수단만으로는 복잡한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세상문제에 대한 테마들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극적 수단이 필요하고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이미 바이스의 개방적인 리얼리스트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극 형식과 수단들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바이스의 연극관 밑바탕엔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관련하여 일관된 생각이 견지된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세계의 모습은 불의와 부조리들이 만연해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형상화하지 않는 작가는 불성실한 사람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가 보기에 진실한 테마들은 “사회 변혁의 필연성”과 “기성 체제들의 파산”8)이라는 두 가지 극을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사회문제들을 다룸에 있어 관객의 비판적 인식 형성에 주목하는 객관적인 묘사가 적합할 때가 있으면, 꿈이나 환상 등의 주관적 세계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는 것이다. 바이스가 보기에 리얼리즘은 창작방법이나 전형, 전망의 형상화 원칙보다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의 문제임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연극과 초현실주의적 아방가르드 연극 사이에서 진동하는 바이스의 이러한 연극관은 이미 그의 연극 미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연극들 역시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진실된 것이라면 연극 형식이나 극작 방법에 대해 매우 열린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는 무언가가 전달되어야 하고 무엇이 의심의 대상이 되거나 갱신되어야하며, 관객은 무언가를 발견하여야 한다”9)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면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대의 몸짓이 적합할 수도 있고, “관객에 대한 잔혹한 공격”10)이 유용할 수도 있다.

    “관객에 대한 잔혹한 공격”이란 명제는 아르또(Antonon Artaud)의 잔혹극 이론을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아르또는 이 텍스트에서 실명으로 거론되는 유일한 연극 이론가이다. 하지만 바이스에게 있어 아르또적인 연극 기법은 “관객이 서있는 견고한 지반을 허물고, 그를 극복되지 않은 파국들과 대결시킨다”11)는 브레히트적인 목적에 종속된다. 그는 비이성적 욕망의 어두운 힘들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일종의 카오스적 망아(忘我) 상태로 인도한다는 아르또나 아방가르드 연극구상의 파산을 선언한다. 왜냐하면 “실험, 즉 근본적인 공격의 시도 역시 대체로 보수적인 세계에 편입된 상태이고 그 과정에서 소진되고 말기”12) 때문이다. 이러한 진술들에서는 초기에 그가 신뢰한 초현실주의적 저항의 실패에 대한 환멸이 나타난다. 결국 바이스의 연극적 목표는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기여하는 연극이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적 실험은 사회 현실의 변화나 관객의 의식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바이스의 진단이다.

    하지만 서구 학생운동과 3세계 해방투쟁이 극에 달한 1968년, 바이스의 연극관은 급선회한다.「재료와 모델」에서 그는 기록극 창작과 공연 경험을 약술하면서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연극을 공적 영역의 구성요소로 간주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방가르드 연극에 사회 변혁적 효과가 내재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지배 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저항은 직접적인 효력을 지니는 드라마투르기를 요구한다. 1963년 그는 아르토가 말하는 황홀과 도취의 ‘절대적 순간’에 비판적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부터는 외부 현실에 대한 연극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기록극의 무대는 더 이상 순간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연속체에서 뽑아낸 한 조각 현실의 모사를 제시한다”13). 물론 그는 여전히 무대의 고유한 현실성을 인정한다. 즉 기록극이라도 진짜 재료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이상 반드시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록극 역시 외부세계에서의 정치적 실천 행위에 대해 예술로서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연극이 정치적 여론형성의 도구여야 하고 당파적일 것을 요구한다. 1963년까지만 해도 바이스는 관객에 대한 기습공격을 통한 충격 효과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무대화를 정당한 연극적 수단으로 본다. 하지만 이제 그는 “무대 위에서의 공격, 공포와 분노의 표현이 불가해하거나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된다”14)고 주장한다. 이전에 바이스는 피억압자들의 절망과 고난을 형상화할 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의 제시를 요구한다. 즉 절망과 분노를 주테마로 삼거나 출구 없는 부조리한 세계의 묘사에 그치는 극작(劇作)에 반대하는 것이다. 바이스에 따르면, 기록극은 대안을 제시하거나 세계를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의 입장에 비하면 바이스의 기록극 이론은 파격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바이스는 기록극이 고도의 예술성을 갖추어야 함을 역설하 지만, 그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당면한 현실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기성의 제도권 언론에 의해 왜곡된 사실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68혁명의 실패 이후 다시 바이스는 입장을 선회하는데, 기록극만으로는 너무 복잡한 현실을 묘사할 수 없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비민주적인 사건들에 절망하면서 선/악(자본주의/사회주의)의 이분법에 따른 기록극의 흑/백구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망명중의 트로츠키』와 『횔덜린』은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작품들인데,「저항의 모든 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작품들의 창작과정에서 얻은 인식들을 증언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좌파 잡지 『호박씨』(kürbiskern)가 브레히트 탄생 75주년을 기념하여 행한 질문에 대한 답변 성격의 글이다. 잡지 편집자는 현재 상황에 적합한 변혁적 연극이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 성(性)과 폭력 같은 테마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소재와 인물들이 이용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한다. 바이스는 이 글에서 다시 1963년의 인식으로 복귀한다. 왜냐하면 그는 <수사>나 <베트남 담화>같은 기록극 양식보다 초기 작품들의 제작 방법이 정치적으로 더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리스 비극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자연주의자들이나 상징주의자들의 연극, 표현주의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연극 역시 우리의 의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극적 형식들에 대해 1963년 당시 보다 더욱 열린 태도를 취한다.15)

    더 나아가 그는 아라발(Arrabal)과 아르또에게 영향 받은 피터 브룩(Peter Brook)과 리빙 시어터(living theatre)의 드라마투르기, “관객에 대한 잔혹한 공격”의 사회 비판적 의미를 다시 인정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연극이 비이성적인 요소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관객의 객관적 현실인식을 방해할 수 있음을 경계한다. 하지만 바이스의 견해에 의하면 억압과 강제 및 야만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폭력과 성의 분출은 긍정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요소들이 목적 그 자체가 되거나 오락거리로 전락하지 않는다면 말이다16). 이로써 바이스는 잠시 거부한 초기극들17)의 미학을 다시 수용하며 다시 모든 극적 표현 가능성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극작가는 맹목적인 숙명론에 빠지지 말고 이성의 조정 기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바이스에게 중요한 것은 형상화 방법의 당파성이 아니라 작가의 당파성 즉 사회적 모순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이다.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교의로부터도 자유로운 입장이다. 바이스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리얼리즘의 핵심을 현실에 대한 부정 혹은 사회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찾고 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면 예술적 수단의 선택은 자유롭다. 바이스는 마지막 드라마들인 <소송>과 <새로운 소송>에서 이러한 연극미학을 십분 활용하고, 테마에 적합하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그의 연극관을 실행에 옮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19)이라는 로트레아몽의 명제,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과 아르또의 근본 원리들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천명한다. 하지만 종국에 그는 연극의 인식적ㆍ비판적 기능을 고수하거니와, 다음과 같은 진술은 바이스 연극 미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4)Peter Weiss, “Dies hier ist Bühne...”(이하 DHB.), in: Theater heute 1963, Velber 1963, pp. 70-82.  5)Peter Weiss, “Material und Modell-Notizen zum dokumentarischen Theater”, in: RapporteⅡ, Frankfurt a.M.: Suhrkamp, 1968, pp. 91-104.  6)Peter Weiss, “Alle Zellen des Widerstands miteinander verbinden”(이하 ZW.), in: kürbiskern, vol. 28, 1972, pp. 314-320.  7)DHB., p. 70.  8)같은 책, p. 76.  9)같은 책, p. 75.  10)같은 책, p. 70.  11)같은 책, p. 72.  12)Peter Weiss, RapporteⅠ, Frankfurt a.M.: Suhrkamp, p. 90.  13)같은 책, p. 90.  14)같은 책, p. 92.  15)ZW., pp. 314-316 참조.  16)같은 책, pp. 317-318 참조.  17)바이스의 초기극들로는 <탑>(Der Turm), <보험>(Die Versicherung), <밤손님>(Die Nacht mit Gast), <모킨포트>(Mockinpott)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각가 카프카적 분위기와 주제, 잔혹성과 그로테스크, 육체와 성, 초현실주의 등의 요소를 강하게 띤다. 바이스는 초기에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전통의 연극들과 인형극이나 민중극, 피스카토르(Erwin Piscator)의 정치 레뷰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기록극 이외의 총체극들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 김겸섭:「페터 바이스의 총체극 연구」,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4를 참조할 것.  18)같은 책, p. 317.  19)Peter Weiss, Der neue Prozeß, Frankfurt a.M. 1984, p. 109.  20)Peter Weiss, "Der Stil", in: Der neue Prozeß, Frankfurt a.M: Suhrkamp. 1984, p. 120.

    3. 카프카와 바이스: <소송>개작의 배경

    카프카에 대한 바이스의 관심은 체코ㆍ스웨덴 망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그는 소설 『소실점』(Der Fluchtpunkt)(1962)에서 카프카 독서 체험을 지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자기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술한다: “나는 지금 소송을 읽으며 나 자신을 구속했던 소송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21) 바이스는 여러 면에서 카프카와 친화성을 느꼈다. 민족적ㆍ인종적ㆍ사회적인 소속감을 상실한 아웃사이더, 언어적 망명, 유대인 출신, 사회적인 관계의 결여,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 불확실한 주변 세계에 대한 불쾌감과 소외, 애정 관계의 실패, ‘예술적 촉매’로서의 자학(自瘧). 바이스는 카프카의 이 모든 성질들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초기의 예술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 점에서 초기 바이스의 카프카 독서는 자신의 실존적 위기에 대한 반성과 연관되었다. 나아가 바이스는 카프카를 정체성 형성의 거울로 삼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정체성 불안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자로 전향하고 난 이후에도 그는 카프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초기의 경우 카프카 독서가 개인 문제의 극복을 위한 촉매로 작용했다면, 후기로 올수록 그것은 당대의 사회ㆍ정치적 좌표 속에서 재해석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22)

    <소송>의 드라마화의 특징과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저항의 미학』 1권의 『성』(Der Schloß)에 대한 주인공들의 예술적 토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카프카 소설들에 대한 바이스의 연극적 수용 및 정치적 해석의 실마리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항의 미학』의 세 프롤레타리아 주인공들의 카프카 소설에 대한 해석 과정은 초기의 실존적 해석에 혁명적 계급투쟁의 입장을 가미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성』을 ‘실제적 독법’(eine operative Lektüre)의 관점에서 읽는다. 예술 작품들을 대하는 바이스의 태도는 기존의 해석 방법들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속할 임의적 가치”(ÄdW, 8)들을 찾아내는 것에 무게를 둔다: “하일만은 말했다. 우리가 예술, 즉 문학을 전유하려한다면 그것을 결을 거슬러 다루어야 한다. 즉 우리는 그것과 연결된 모든 특권들을 차단하고 우리 자신의 요구들을 그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우리는 문화뿐만 아니라 전체 연구를 우리와 관련된 일과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이 창조해야 한다.”(ÄdW, 41)

    우선 바이스는 자신이 체류했던 체코의 작은 도시 바른스도르프(Warnsdorf)에서 소설의 1인칭 화자로 하여금 브뤼헐(Peter Bruegel)의 화집과 카프카의 소설을 구입하게 한다. 이 그림들과 소설은 바이스 자신에게 그랬듯이 이 화자에게도 모종의 공통 감정을 느끼게 한다. 화자는 그림과 소설에 묘사된 현실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임에도 낯설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화자는 이들 작품을 통해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순간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온한일상 속에서 느끼는 기이함은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말한 ‘unheimlich’(uncanny)의 경험과 유사하다.23) 초기 바이스는 카프카의 문학세계에서 이러한 ‘언캐니’의 경험을 개인의 실존적 위기의 징후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이러한 경험은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ㆍ실존적 경험이 아니라 파시즘 시기의 사회ㆍ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한 부조리로 해석된다. 카프카는 이제 실존적 동일성 형성을 위한 매개자가 아니라 현실 인식의 촉매로 기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기의 개인적인 상황으로의 퇴행 속에서 행해지는 정체성 형성을 위한 독서는 만족스럽지 않다. 물론 실존적 해석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명시적이고 전적으로 정치적인 저항의 객관적 경험이 강조된다. 이를테면 여기서도 화자는 브뤼겔의 그림과 요제프 K라는 인물에게서 받은 균열적 느낌을 자신의 상황과 연결한다. 하지만 소설 속의 세계로 들어가면 갈수록 마을과 성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이상한 것들로 가득한 지가 드러난다. 화자는 이러한 상황과 자신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자기반성의 계기로 이용한다. 이를테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줄 것”(ÄdW, 175)을 요구하는 노동자 K의 모습은 성이라는 큰 기계의 부속품일 뿐이다. K나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은 위에서 자행되는 거대한 일들을 알지 못하고 파업을 주저하며 경제관계나 착취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소설이 “충분히 통찰력이 있고, 묘사방식의 일관성을 통해서”(ÄdW, 176)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카프카의 소설은 독자를 계속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면서” 현실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힘이 있다. 현실 극복의 전망이 부재하다는 비판에 대해 화자는 카프카가 “현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왜 이런 어려움을 한 번에 없애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가”(ÄdW, 177)라는 질문의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본다.

    이처럼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한 ‘실재적 읽기’는 바이스에게 현재적으로 예술 작품이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그것을 근본적으로 ‘현재화’(Aktualisierung)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저항의 미학』에서 세 노동자가 만나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철저하게 당대의 상황과 시각에서 그 시대대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인식의 매개로 작용한다. 그들의 예술적 논쟁과 대화는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방향과 그 궤를 같이한다. 초기의 실존주의적 동일화를 향한 카프카-독서는 확고한 계급적 관점에 선 정치적 독법으로 변한다. 이를테면 책을 읽는 노동자들에게 성의 조직과 건물들은 몰락 직전의 자본주의라는 구조물로 해석된다. 그리고 토지측량사 K는 계급 의식적 노동자의 전단계에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들 저항 투사들은 원작이 내포한 불투명한 형이상학적 소외와 억압들을 자신들의 현실적 억압과 겹쳐 읽는다. 성의 권력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를 연결하는 이러한 현재화의 전략은 정치적 실천을 위한 분명한 전선과 구상을 만들어내려는 바이스의 전략을 보여준다. 바이스는 성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신비적이고, 거의 종교적인 모호함”(ÄdW, 176)을 벗겨내고자 하는 것이다.

    더욱이 바이스의 1인칭 화자는 1930년대의 리얼리즘 논쟁에 관여하기도 한다. 그는 ‘데카당스’(Dekadenz)의 비난으로부터 카프카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24). 카프카에게는 “고양된 현실의 이미지”가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구체화의 잠재성과 실천적 사용지침을 내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진술은 카프카의 문학에 대한 화자와 바이스의 태도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예술과 문학을 제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을 결을 거슬러(gegen den Strich) 다루어야 한다. 즉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모든 특권을 차단하고 우리 자신의 요구들을 그 속에 투입해야 한다.”(ÄdW, 41) 이러한 수용 공식은 바이스의 연극적 실천에 고루 확장 적용될 수 있는 방법적 요구들을 담고 있다. 바이스의 이러한 독법이 옳은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에게는 카프카의 소설에 대한 나름의 용법(用法)과 효과가 중요하다. 바이스에게 예술작품의 의미들에 늘 모든 방향에서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노동계급의 해방 투쟁을 위해 카프카의 텍스트를 당파적으로 전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바이스는 늘 세계를 전유하는 독립적인 형식으로서의 예술의 필연성을 고수한다. <소송>은 예술 고유의 순간으로써 현실 인식과 휴머니티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개작 드라마 <소송>역시 이러한 독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1974년 『저항의 미학』 1권 집필을 잠시 쉬는 동안 바이스는 스웨덴의 영화감독이자 연출가였던 베르히만(Ingmar Bergman)으로부터 카프카의 『소송』을 드라마로 개작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6주 후 작업을 중단하고 그에게 작업을 거절한다. 이후 계약의 제약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바이스는 1달 반 만에 작업을 끝내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다. 이전 작품들의 거듭된 실패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도 바이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나 베르히만은 거부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대담한 실험”과 “개인적 해석”25)을 통해 카프카의 소설을 무대화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문 당사자였던 스톡홀름의 드라마센터(Stockholm Dramaten)에서 공연되지 못하고 1975년 브레멘과 크레펠트(Krefeld)에서 초연되어야 했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그러나 카프카의 원작에 대한 충실한 무대 번역에 불과하다는 베르히만과 같은 반응은 소수였다. 비판적 반응의 주된 원인은 작가의 사회주의적 해석에 대한 서독 사회의 불쾌감에서 찾을 수 있다. 동일한 이유에서 동독의 공연은 호평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라/사드> 이래로 바이스의 공연은 이데올로 기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이스의 연극들을 둘러싼 좌/우의 논쟁은 작품의 복잡한 구조와 다양한 형식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다성적 연극성(Theatralität)과 작품의 내용이 때로는 화합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다양한 효과들을 이념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다. 물론 바이스의 <소송>과 <새로운 소송>에는 비판적 사회주의자로서 바이스가 표방하는 정치적 세계관이 강하게 녹아있다. 그러나 바이스 정치극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리얼리즘 연극의 면모와 연극의 매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고려될 때 그의 현재적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다.

    페터 바이스에게 <소송>은 우선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저항의 미학』 작업의 돌파구로서 의미가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중간작업’(Zwischenarbeit) 혹은 ‘간주곡’(Zwischenspiel)으로 간주했다. 대작 소설의 ‘정체’(Stagnation)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자주 피로감과 좌절을 가져다준다. 그는 “9/21 내 소설 작업의 파국. […] 2월부터 카프카와의 간주곡: 이는 모종의 단절로 이어졌다. 이후-이제 반 년 동안- 본래의 작업으로 가는 그 어떤 입구도 찾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시도는 매일 흔들린다. […] 폐허에 서 있다.”26) 『저항의 미학』 작업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소설은 언어 예술과 조형 예술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성찰을 담고 있다. 소설은 페르가몬 프리즈의 이미지 묘사로 시작되고 카프카의 작품은 브뤼겔의 그림들과 동시적으로 읽힌다.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 화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바이스는 그림 미디어와 문자 미디어의 차이를 반성하면서 소설에 이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화가는 정적인 것, 사변적인 것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면 작가는 역동적인 것에 더 애착을 느끼나? 균열: 훌륭한 완결된 상황에 대한 고수와 과정 속의 변화 가능성 추구.”27)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긍정적인 결론을 끌어낸다: “글쓰기에 연쇄Nacheinander가 있는 것처럼 그림에는 동시성 Gleichzeitigkeit이 있다. 사건의 과정은 글쓰기에서처럼 그림을 통해서도 묘사될 수 있을까?”28)

    <소송>은 바로 그림(이미지)과 소설(언어)의 매체적 간극을 줄이기 위한 중간작업의 성격을 갖는 작품이다. 극적인 글쓰기, 즉 드라마는 글쓰기의 과정성을 조형예술에 연결한다는 점에서 중간적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극은 그에게 정지 상태와 서사의 연쇄적 과정성의 매개인 셈이다.『저항의 미학』 에서 그림을 글쓰기로 변화시켜내는 일이 관건이었다면, 이 연극 프로젝트에서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무대 장면들로 번역하는 일이 문제였다. 이 프로젝트의 대상이 ‘Prozeß’라는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이는 글쓰기의 속성인 ‘과정’과 ‘소송’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바이스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저항의 미학』의 예술 전유 방법론을 기조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이전의 연극 실험의 다양한 이질적 성과들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물론 연극의 목적은 관객 스스로 무대 위의 현실과 대결하게 함으로써 인식의 전환 혹은 인식의 향상을 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브레히트로써 카프카(초현실주의)를 감싸 안는 연극의 창조가 관건인 셈이었다.29) 물론 바이스의 극적의도와 실험이 성공적인가 아닌가에 대해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소송 프로젝트는 ‘매체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참조점을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21)Peter Weiss, Fluchtpunkt, Franfurt a.M.: Suhrkamp, 1985, p. 56.  22)초기 카프카 영향의 흔적들은 소설과 드라마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섬에서 섬으로』의 ‘처형기계’, 카프카『성』의 세계와 유사한『마부의 몸 그림자』의 세계, 드라마 <탑>의 아버지와의 갈등 등의 경우가 그렇다. 이외에도 드라마 <모킨포트>의 경우는 물론 정치적 성격이 강한 기록극 <수사>의 경우도 카프카와의 대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들이다.  23)사전적으로는 ‘초자연적인’, ‘비정상적인’, ‘무시무시한’, '신비한' 등의 뜻이 있다. 네이버 사전은 이 단어가 스코틀랜드와 북잉글랜드에서 ‘위험한’, ‘격렬한’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이 개념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로써 문화예술의 검은 그림자가 지닌 의미를 밝힌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다. 그는, 문화예술이 흔히 열렬한 감정의 고양과 감동으로 특징되지만 그 반면에(혹은 이면에) 낯설고 두렵고 괴이한 감정까지 수반하게 마련이고 어떤 경우는(예컨대 고야의 그림) 그런 두려움을 의도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친숙한’, ‘집 같은’, ‘낯익은’이란 뜻의 '캐니'(canny)와 ‘낯선’, ‘놀라운’의 '언캐니'(uncanny)가 사전적으로는 반대항이지만 동전의 양면으로 얽혀있는 관계로 보았다. 시점과 기억과 입장에 따라 누군가에는 ‘캐니’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캐니’하다. 이 대목에서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프로이트의 명제가 다시 강조될 수 있다. Silvia Kiensberger, Freud und Ungeheuer, Stuttgart: Reclam, 2002, pp. 16-18 참조.  24)카프카나 제임스 조이스 등의 작가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주도한 이론가가 루카치(Georgy Lukács)였다. 하지만 후기 루카치는 카프카 세계의 “심오하고 충격적인 진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카프카는 몰락하는 자본주의의 대변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작가였다. 아도르노(Th. Adorno)와 벤야민(Walter Benjamin), 안더스(Günther Anders), 피셔(Ernst Fischer) 등의 해석과 비평들은 초기 루카치의 경직된 태도를 벗어나고 있다. Robert Cohen, Peter Weiss in seiner Zeit, Stuttgart: J.B. Metzler, 1992, p. 260 참조.  25)Peter Weiss, Notizbücher 1971-1980, Bd 1, Frankfurt a.M.: Suhrkamp, 1981, p. 273(경우에 따라 이후 Nb. 1로 축약).  26)같은 책, p. 374.  27)같은 책, p. 274.  28)바이스의 매체 고민은 다른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바이스는 라오콘 인물상을 분석하면서 상이한 매체로서의 그림과 언어가 각각의 고유한 방식으로 공포와 전율의 경험에 접근한다고 말한다. 이 그림에서 괴물 바다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리고있다. 여기서 아버지와 작은 아들은 고통의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몰락에 대한 한 순간만을 보여준다. 반면 큰 아들은 고통의 상태를 벗어나려는 동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바이스는 동일한 경험의 순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줌에 주목한다. 이 그림은 순간을 정적인 이미지로 고정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특징과 이러한 정적 상태를 깨뜨리려는 언어적 시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체미학과 매체 언어적 특이성에 대한 그의 시각이 녹아 있다. Peter Weiss, “Laokon oder ueber die Grenzen der Sprache”, in: Peter Weiss: Rapporte, Frankfurt a.M. 1968, pp. 170-186 참조: “언어는 항상 질문을 담고 있다. 언어는 그림의 성분들을 순회하면서 분해한다. 그림은 고통에 만족한다. 언어는 고통의 근원에 대해 알고자 한다.”(ÄdW, 182)  29)이와 관련하여 브레히트와의 가상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브레히트: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자양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에서 영향을 받고 이를 계속 숙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Nb. 1: p. 274.

    4. 모호성의 축소와 소시민 비판의 연극적 전략

    카프카의 <소송>을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에서 바이스의 가장 큰 고민은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연극의 경우 소설이 인간의 내면에 관해 기술해 놓은 저 섬세함에 이를 수 없다는 매체적 한계와 바이스는 대결해야 했다. 그 누가 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다 해도 원작이 성취한 그 깊은 내면성의 표현에 버금가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연극 무대란 시각과 청각(나아가 촉각)이 이루는 표면이고 그것에의 작동으로 한계와 가능성 그 둘 다를 지닌다. 당시의 고민에 대해 바이스는 이렇게 밝힌다: “완전히 주관적인 세계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현실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소송>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주체에 의해 주어지는 것 말고는 달리 전달할 길이 없다. <소송>은 딱한 사람에 의해서만 체험된다. 모든 것, 각각의 인물, 사건, 각각의 변화가 그 안에, 패쇄적인 한 사람 속에 있다. 외적인 이미지와 연속성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 소송의 본질이 지닌 섬세함과 복잡성을 약화시키고 통속화하며 파괴할 수 있을 따름이다.”30) 바이스는 역사적 구체화, 원작의 모호하고 신비주의적인 요소의 삭제, 지금까지 실험해왔던 다양한 연극 언어들의 무대화를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큰 틀에서 보면 바이스는 원작에 대해 기록극적 자세를 취한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 구도를 고려하고 원작의 표현을 광범위하게 취한다. 2막 18개의 장면에는 원작의 인물과 무대, 사건들이 고루 반영된다. 그리고 바이스는 소송에 대한 카프카의 상상을 좌절된 에로티즘 관계들과 권력 관계들이 중첩된 삶의 과정으로 보는 해석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바이스는 결정적으로 형이상학적 연관의 여지를 없애려 하고 작품 내부의 신비적인 힘들을 가능한 한 축소하고자 한다. 일종의 정거장식 구성을 통해 <소송>의 사건들을 따르면서도 그것에 사회적ㆍ역사적 배경을 부여함으로써 정치극적 성격을 분명히 한다. 각 장면들은 K가 경험하는 소송의 중요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소설처럼 연대기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목표를 향한 사건의 전개는 포기된다. 오히려 판결을 피하거나 소송을 좋은 결말로 가져가려는 K의 시도가 정거장식 구성을 통해 묘사된다. 이로써 원작의 역사적 불확실성과 모호성은 대폭 축소된다. 이를테면 이 연극은 요제프 K의 30번째 생일(1913년)과 31번째 생일(1914년) 전야 사이에 진행된다. 1914년은 카프카 자신이 31세가를 맞이한 시기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2차 발칸 전쟁 등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지고 1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시기라는 점이다. 바이스는 이러한 시대적 조건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루바흐 부인(Frau Grubach)의 조카인 대위를 이용한다. 카프카의 원작에서 대위는 이름만 나올 뿐 실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극 <소송>에서 그는 자주 임박한 전쟁을 암시하고 동원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장면 1과 17)31).

    바이스는 전쟁이 자본주의의 이윤 창출과 연관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공장주: 무기, 무기요! 당신에게 말하지만 당신에게는 최고의 배당금이 지급될거요.”32)). 바이스는 의도적으로 은행 세계와 법정 세계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법정에 사는 사람들은 K의 직위를 인식하고 방세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재판이 열리는 법정이 은행의 소유임을 시사한다. 카프카에게는 암시만 될 뿐인 경제 권력과 사법 권력의 내밀한 친밀성이 더욱 구체화되는 것이다. 결국 바이스의 정치적 구체화와 역사화의 의도는 분명 자본주의 비판과 관련이 있다.

    바이스는 전쟁과 이후의 파시즘의 대두에는 K와 같은 소시민들의 태도가 크게 작용했음을 비판하고자 한다. 그는 K의 소송 과정을 자신의 당파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가 보기에 K는 “자기 계급에 속박된 자”(P, 524)이다. 바이스는 원작의 부르주아 은행지배인 K를 ‘소시민계급’에 편입시킨다. K는 현실의 본질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자기에 갇혀 살면서 계급적 연대에 실패한 소시민 계급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그의 좌절과 몰락은 사법제도(관료제도)의 어처구니없는 소송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바이스의 해석이다: “책을 다시 읽으며 내 눈에 띄었던 사실은, K를 끌어내려 결국 파괴하는 힘이란 전체적으로 보아 소시민성의 힘이란 점이었다. 그가 고통당한 모든 것, 그리고 절망적 노력에도 그가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이 만든 완고한 편협성, 법률 및 망상의 영역에서 나온다. 가장 가까운 그의 주변 사람이란 소시민들이고, 그는 이들의 판단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과 마주해서 그는 자기를 주장하려하고, 이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며, 그들 요구를 바르게 평가하고자한다. 그는 이런 사회의 일원으로 있고, 삶의 태도에서, 그의 노동에서, 그의 거처에서 그리고 책임 있는 관청과 사무실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일 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 그는 그 모든 계율과 단절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반대다. 즉 그는 이제 그 계율의 의미 안으로 들어서려 한다. 거기서 계율의 비인간성을 인식할 때조차도 그는 반역하지 않는다. 그는 굴복하고 자포자기한다.”(P, 523)

    결국 바이스는 드라마 <소송>을 통해 소시민 K의 계급 연대 무능력을 소송에 붙인다. 그는 K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이 드라마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삶에 적대적인 세력들로부터 왜 그는 등을 돌리지 않는가? 왜 그는 마음 편해지는 상태를, 이런 상태가 있음을 예감함에도 찾지 못하는가? 왜 그는 자기를 짓누르는 걸 없애기 위해 분노와 절망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가?”(P, 524) 바이스는 K의 무능력과 자폐성을 강조하기 위해 원작에 없는 ‘남자’(der Mann)를 등장시킨다: “남자: (K에게 몸을 돌리며) 대리님, 그냥 나가세요. 이 사람들일랑 신경 쓰지 말고. 당신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을 겁니다.”(P, 530) 주인공 K는 소시민의 전형으로서 소시민적 환경에 살면서 직업적 성공에 대한 야심을 지닌 인물이다. ‘소송’과 소외의 사회적 상황을 진보적인 노동자(‘남자’)처럼 집단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팔자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K나 그의 삼촌, 상인 블록 등은 모두 소시민성에 포획되어 있다. 물론 K는 문제제기는 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감옥에 갇혀 지배 질서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고 연대를 향한 그 어떤 실천도 하지 않는다. 바이스는 전쟁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의 비극적 파국의 책임으로부터 K와 같은 부류의 소시민들이 자유롭지 않음을 암시한다: “신부: 마음 내키는 대로 당신을 부를 수 있어요. 그들은 당신을 한 문자로, 한 부호로 지칭할 수 있습니다. K: 그렇다면 살 권리마저 제게서 뺏는 겁니다.”(P, 589)

    바이스의 극적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장면15 ‘돔에서’이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이 장면은 강한 비의성으로 인해 다양한 해석들을 낳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장면이다. 특히 한 시골남자와 문지기의 ‘우화’(Parabel)는 욕망과 권력 및 훈육을 통해 작동하는 법과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들뢰즈, 데리다나 아감벤 등 쟁쟁한 이론가들의 관심을 얻기도 하였다. 나아가 이 우화는 문학 텍스트의 의미와 해석, 이해와 비이해, 독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도 해석된다. 그리고 그 파라벨은 사법제도에 대한 카프카의 생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법 소설들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바이스는 이 이야기에서 시골남자를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K와 직접 연결시킨다. 이는 문지기-시골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K와 법정의 관계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스는 이해와 인식을 가로막는 장벽들과 지각의 구성에 대한 카프카의 우화를 K의 연대 무능력, 즉 외부의 진보적 세력들과의 부족한 소통에 대한 드라마로 전환한다. 그는 감옥 신부에게 “제가 어떻게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소송 밖에서 살 수있는지 조언해 주세요”(P. 588)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카프카에게 탈출 가능성 혹은 무죄판결은 불가능하다. 소송은 K의 삶과 동일한 것이고, 사회와 사회적 권력 관계에 내재한 운동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소시민 K의 죄는 자기기만(Selbsttäuschung)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은 권력의 작은 기능인들에 불과하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찾아 인정을 받으려는 소시민적 욕망 속에서 K는 정작 함께 구원의 길을 모색해야 할 세력들을 냉대한다. 사랑하는 뷔르스트너 양(Frau Bürstner)에게 ‘타자수 여자’라고 부르고 연대를 청하는 밑바닥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야말로 그의 ‘죄’이다. 그는 현재의 지위와 안정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상황 판단 능력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K의 탈출을 위한 해결책은 당파적인 관점에서 제시된다. ‘외부’와의 소통과 피억압자들과의 연대, 이를 위한 소시민성의 극복만이 K의 살 길이다. 사실 K의 처형은 잘못된 정치적 판단 혹은 외관상의 비정치적 태도에 대한 상징적 처형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결론은 이 드라마에 대한 비난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바이스의 구체화 시도는 난해한 카프카 소설의 가독성을 높여줄 수는 있다. 힘 있는 자와 무기력한 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바이스의 이분법적 권력 개념은 원작의 의미복잡성을 단순화하고 그 모호함을 구체화하며 정치적 앙가주망의 면모를 강화할 수는 있다.

    카프카의 끝을 알 수 없는 관료주의적인 법정 세계는 거대한 국가장치로부터 가족의 사적 기관 및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감시와 통제를 수행하는 권력체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은행세계와 법정세계의 유사성에 주목해야 하고 이 두 세계가 K의 사적인 공간과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프카의 소설에는 이에 대한 암시만 있다. 하지만 바이스는 이들 세계의 친화성을 무대화함으로써 자본 권력과 사법 권력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구체화한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소송>의 세계는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미시물리학’(Mikrophysik der Macht)의 모델로도 볼 수 있다.33) 권력의 편재성과 훈육의 실례로서 K는 ‘삶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삶을 구성하는 힘들’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이스의 ‘흑/백’(Schwarz/Weiß) 구도는 카프카 특유의 패러독스를 의도적으로 삭제한다. 이는 카프카가 그려내는 세계의 ‘패러독스’가 갖는 매력, 즉 매우 상이하고 모순적인 의미연관을 만들어내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독서를 촉발하는 힘을 부정하는 것이다. K의 소송을 계급투쟁으로 평준화하고 해석적 마찰의 지점들을 제거하여 그의 운명을 소박한 계급적 대안과 연결시킨 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드라마는 K라는 인물을 특정한 행동과 태도들을 하나의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숙고하고 변경하도록 요청한다.

    관객과 평단의 싸늘한 반응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해석의 편협성만으로 드라마 <소송>을 폐기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바이스가 자신의 당파적 독법을 관습적인 선전ㆍ선동극으로 구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스가 『마라/사드』이후 지속적으로 실험해왔던 그로테스크 요소들과 아방가르드 연극의 기법들에 주목하면 바이스 <소송>의 새로운 매력이 도출될 수 있다. 정치적 지향성과 이질적인 연극언어의 충돌과 긴장은 이 연극에 대한 단선적 해석을 거부한다. 크레머(Detlef Kremer) 역시 이러한 극적 장치들을 “‘소송’ 연극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으로 평가한다. 바이스의 강한 정치적 앙가주망은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고문 모티브, 코믹한 의례와 제스처, 성적 육체를 통해 연출된 욕망의 연극 언어 등을 통해 모종의 현재성을 획득하기도 하는 것이다.

    30)같은 책, p. 273  31)바이스는 여기에 전혀 다른 역사적 소재를 끌고 오려고도 했다. 그것은 <망명중의 트로츠키>와 『저항의 미학』에서 비판된 바 있는 모스크바 공개 재판이었다: “모스크바 공개재판을 통해 일깨워진 카프카에 대한 이해”(Nb2, 212). 더러운 다락방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법정에서 행해진 재판과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재판 사이의 유사성이 이런 아이디어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계획을 접는다. 카프카의 텍스트는 “전적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Nb, 1: p. 391)기 때문이었다. Lindner는 모스크바 공개재판에 대한 바이스의 진술에서 세 번째 <소송> 개작이 암시되고 있다고 본다. 앞의 책: Lindner, Entzifferung Kafkas, p. 300 참조.  32)Peter Weiss, "Der Prozeß", in: Peter Weiss Stücke Ⅱ, Frankfurt a.M.: Suhrkamp, 1977, p. 571.(이하에서는 본문에 P로 표기하고 쪽수를 병기함)  33)Detlef Kremer, “Der Prozeß/Der neue Prozeß”, in: Martin Rector & Christoph Weiß, Peter Weiss' Dramen, Wiesbaden, Westdeutscher Verlag, 1999, p. 250.

    5. 유연한 리얼리즘의 드라마투르기

    초현실주의적 요소와 브레히트적인 생소화 기법(Verfremdungseffekt)의 동시적 드라마투르기는 여전히 바이스적 총체극의 면모와 아울러 유연한 리얼리즘관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K라는 반면교사를 통해 정치적으로 잘못된 태도를 시위하고자 하는 학습극(Lehrstück)이다. 관객은 그를 통해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소시민의 상황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파괴 및 전체 삶의 탈인간화를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바이스는 관객의 극적 몰입을 차단하고 비판적 사유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생소화 효과를 활용한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게스투스(Gestus)적 연기나 희극적ㆍ소극적인 장면의 설정이 그렇다. 사실 어떤 면에서 『소송』은 소시민 K가 경험한 ‘악몽’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의 초현실주의적 꿈 세계는 소시민적 규범과 강제에 사로잡힌 자의 ‘불안망상’(Angstvision)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공상적인 요소와 현실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바이스는 사회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연출한다. 이는 도식적인 이념극의 지루함을 지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생소화 효과를 일으켜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아방가르드적 꿈 세계가 현실 너머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바이스는 그것을 인식확장과 정치적 의식화의 매개로 전유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스는 극적 강렬도(intensity)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적ㆍ청각적인 연극적 수단을 활용한다. 우선 그는 주관적 조명 연출을 통해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연출한다. 그리고 무대 측벽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은 정적과 소음의 선명한 대조를 통해 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장면 전환 시에 수반되는 격한 소음은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강화하고 K의 감정 상황을 대변한다. K의 동작 연기를 통해 표현되는 불안과 무기력은 음향효과와 어우러져 관객의 몸에 전달된다. 청각적 효과는 결말로 가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데, 이는 K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연극에서는 소품들 역시 강한 상징성을 띠면서 의미화 작용을 한다. 이를테면 법정에 닿기 위한 노력이 좌절될 때마다 K는 침대로 물러난다. 침대는 K의 실패한 가족 관계와 사랑, 그의 부재한 안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침대는 잠 혹은 가면(Halbschlaf)과 꿈의 장소로서 외부와 내부의 이중시점(Doppelperspektiv)을 지시한다. 즉 상상된 사건과 실제 사건은 뚜렷한 윤곽을 잃고 일종의 현실과 ‘초현실’(Surrealitaet) 사이에서 길항운동을 한다. 여기에 조명과 음향은 관객의 육체적 반응을 유도하고 감성을 자극한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관객을 감각적 흥분을 자아낸다.34)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장치들은 아방가르드 연극 고유의 엑스터시 효과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 바이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판적 인식의 활성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억압 관계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관객의 눈앞에서 무대를 변경한다거나 인물들의 게스투스(Gestus) 연기 방식은 무대 사건에 대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그로테스크나 코믹한 장면들의 삽입 역시 모종의 불안감보다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빌렘과 프란츠가 느닷없이 뷔르스트너 양의 옷을 입는다거나(장면1), 대위가 갑자기 K를 쓰러뜨린다거나(장면3), 사장-대리인이 K의 책상을 부순다거나(장면14)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관객에게 익숙했던 것들이 심히 부조리한 것으로 돌변한다. 그로테스크와 코믹한 장면들은 K의 굴욕과 무기력을 더욱 노골화하기도 한다. 이는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면서도 낯선 현실과 대결하게 한다. 나아가 관객들로 하여금 극적 현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 의문을 갖게 한다. 현실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왜곡은 부조리한 사회 현실의 반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카프카 소설의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한 바이스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입체적인 동시무대(앞 무대-중간 무대-뒷 무대)를 통한 무대배치이다. 그것은 다양한 사건 전개에 필요한 무대공간의 다채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다층적 무대와 장면전환은 원작 소설의 공간적 특이성을 극적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단조로운 정치극의 위험성을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무대 배치는 다양한 사건들의 내적 연관성을 보여주고, 법정 기관의 침투불가능성과 모호성 및 폐쇄성을 시각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러한 무대 연출은 한 장면과 다음 장면의 연결을 위해 영화에서 활용되는 오버랩(Überblendung)의 연극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특히 무대 전환을 위한 장치들을 공개함으로써 관객의 반성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이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함으로써 반-환영주의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관객에게 극장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바이스가 구상한 동시무대는 보다 많은 다양한 극적 상황들을 동시에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이는 얽히고설킨 사건 공간들의 ‘짜임관계’(Konstellation)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앞 무대(Vorderbühne)는 연극 내내 K의 방과 작업실로 이용되는데 이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중간무대(Mittel-)는 나머지 펜션 거주자들의 방, 은행 사무실, 법정 사건의 다양한 공간들, 변호사의 방, 돔 장면이 전개된다. 뒷 무대(Hinterbühne) 군중 장면이나 큰 공간 연출이 필요할 경우, 은행 창구업무나 다락방 법정의 집회 등에만 활용되고 그밖에는 암전 상태로 유지된다. 그리고 앞 무대와 중간 무대는 계단으로 서로 연결된다. 중앙 무대와 앞 무대의 ‘사이 공간’에서는 채찍질 장면이 일어나고, 티토렐리의 아틀리에도 여기에 있다. 무대의 계단식 배치는 실제로 다양한 사건들의 동시 상연에 복무하고 장면의 신속한 전환을 가능하게한다. 이는 또한 위계적으로 구조화된 사회와 권력 관계의 모사이기도 하다.35)

    또한 이런 식의 무대 배치는 사적 영역과 은행 영역, 법정 공간의 긴밀한 맞물림을 목표로 한다. K의 사무실 책상은 그의 개인 하숙방에 있다. 앞 무대와 중간 무대를 가르는 장롱은 화가 티토렐리(그는 법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와의 만남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벌어지는 법정 고용인 빌렘과 프란츠의 채찍질 장소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이 소품은 다양한 영역들을 연결하는 마디의 역할을 한다. 세 겹으로 상자화된 공간은 세 영역의 공속성을 시사해준다. K의 삶의 현실은 이 모든 공간들의 긴밀한 내적 연관을 통해 규정된다. 공공영역과 사적 영역은 서로 교차하고 있어서, 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의 모사이고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을 반영한다. 주지하다시피 동시적 공간 구상은 한편으로 신속하고 놀라운 장면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한 편 그것은 관객이 사건을 직접 리얼리즘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유동적인 공간 경계는 K의 공상과 외적 현실 사이에서 사건의 진자운동을 야기한다. 이로써 공간은 긴장의 장이 된다.

    특히 <소송> 드라마에서 몽타주 기법의 활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이 기법은 상이한 출처를 갖는 현실의 조각들을 전체로 연결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동시에 상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바이스는 현실의 조각들로부터 하나의 예술 현실을 구성한다. 여기서 관객의 참여가 중요하다. 그는 구성 과정 자체에 참여해야 한다. 작가는 관객에게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를 갖지 않는 병렬 이미지들을 기억 속에서 서로 연결할 것을 기대한다. 이로써 수용자는 처음부터 구성 과정에 참여한다. 그는 18개의 장면들로 몽타주된 파편적 사건들을 자기만의 의미연관 속에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무대 위의 사건은 관객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의 긴장 관계를 극단적 압축 속에서 포착한다. 바이스는 몽타주라는 예술적 방법을 수단으로 표면적인(천박한) 리얼리즘을 파괴한다. 그에게 몽타주는 현실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현실의 복잡성(모든 것에 스며든, 법정의 이미지로 표현된 사회 현실, 사회적 인습들과 규범들에 대한 개인의 내적ㆍ외적 종속성, 사회적 압력을 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실패한 시도)을 가닿기 위한 극적 장치이다. 몽타주 기법은 서로 상반된 조건 속에 있는 주관적 요소들과 사회적 요소들을 상연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판적 관점의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관객은 K의 실패가 전체적인 삶의 현실에 대한 그의 문제적 태도의 결과로 인식한다. 이러한 형상화 방식은 K의 역사적ㆍ사회적 상황과 그의 내면적 견해 및 행위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바이스는 <소송> 드라마를 원작에 가깝게 개작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담한 실험”과 “개인적 해석”을 요구하는 베르히만에게 다음과 같이 불만을 피력했다: “그들은 카프카의 텍스트들을 그들 자신의 계획을 위한 원료로만 간주한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인가를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텍스트에 밀착할 때만 카프카에 다가설 수 있다. 왜냐하면 카프카의 텍스트는 테마에 대해 이야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36) 하지만 베르히만이나 바이스 모두 틀렸다. 베르히만은 바이스의 ‘개인적 해석’을 놓치고 있고, 바이스 자신은 원작에 대한 적지 않은 변형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채로운 연극 언어와 형식들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음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어느 작품이든 바이스 연극의 전모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작가의 메시지를 받치고 있는 표현 층위를 고려하는 것이 요구된다.

    34)같은 책, pp. 252-254 참조.  35)Ulrike Zimmermann, Die dramatische Bearbeitung von Kafkas "Prozeß" durch Peter Weiss, Frankfurt a.M.: Peter Lang, 1990, pp. 114-115 참조.  36)Peter Weiss, Notizbücher 1971-1980, Bd 2, Frankfurt a.M.: Suhrkamp, 1981, p. 331(경우에 따라 이후 Nb. 2로 표기).

    6. 파시즘의 ‘증상’, 속물 K.

    바이스가 그려낸 소시민 K는 사실 ‘속물’(snob)에 가깝다. 그는 현실에 대한 순응 능력, 비굴함, 기민함 등의 자질들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이 매질을 당하거나 삼촌이 그의 소송 사건을 상의하려 방문할 때 오로지 걱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띠지 않아야 할텐데 하는 걱정뿐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K는 권력의 ‘신민’(Untertan) 혹은 ‘충복’의 모습이다. 여하튼 그에게는 지배 체제에 완전히 순응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더스(Günther Anders)의 말을 빌자면 K의 좌우명은 “네가 알지 못하는 의무들을 이행하라. 튀어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속물은 “타자와의 인정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존재”37)다. 속물의 본질은 “외적 태도의 천박성이 아니라 그가 종속돼 있는 욕망의 메커니즘”에서 찾아져야 하는데, 핵심은 그가 “과도하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38)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K는 속물의 전형에 근접해 있다. 강박적으로 타자(기업·시장)의 욕망을 욕망하면서도 그 욕망의 실체에 대해선 어떤 자의식도 갖지 못한 탓이다.

    바이스는 이러한 K의 태도가 파시즘을 불러왔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K의 속물성은 부하직원들을 매질하는 태형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태형리는 항의하는 K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매질하도록 고용되었소, 그러니 매질하는 것이오”.(P. 555) 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재판을 다룬 기록극 <수사>에 등장하는 강제수용소 관리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는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이고 그것이 자신의 직업상의 의무였다고 강변하기 때문이다. 사실 카프카의 『소송』에서는 파시즘과 연관을 보여주는 구체적 정황은 없다. 하지만 역사성과 사회성을 강화하기 위해 바이스는 원작의 ‘매’(Rute)를 ‘매다발’(Rutenbündel)로 바꿔놓았다. '파시스모'(fascismo)는 이탈리아어 낱말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로 ‘묶음’ 혹은 ‘다발’을 뜻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 낱말 파스케스(fasces, “속간”에서 나왔다. 이처럼 매다발은 옛 로마 권력의 상징이자 이탈리아 파시즘의 징표였다. 그리고 바이스는 카프카의 법정 제국을 독일의 제 3제국으로 바꿔 놓았다. 원작에 이름만 등장하는 검사 하스터러는 히틀러의 나치 일당들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좋네. 우린 우리의 규범을 가지고 있네. 그걸 우린 고수해야지. 그게 아니라면 어디에 기댈 것인가. 우리에겐 우리의 원칙이 있네. 좋아, 아주 좋아. 그러나 우리가 어떤 죄과를 제시하고 죗값을 요구할 때, 갑자기 다른 세력들이 나타난다면, 그리고 이 세력들에게 우리가 더 이상 책임이 없다면, 그럴 땐 어떻게 되는 건가? 그때 뭔가가 일어나고, 군중이 일어서며, 개별 사안이 풀려나면서, 어떤 숨막힐 듯하고 폭력적인 것이 거기서 등장하네.”(P. 544)

    K의 태도와 파시즘과의 관련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대목은 감옥신부와의 대화에서이다.

    K는 체제의 폭력을 보여주는 심급인 법정을 부패하고 매수된 조직으로 인식하기는 한다. 그리고 죄 없는 그를 체포하는 폭력적인 조직으로 자각하고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그것에 맞서고자 한다. 카프카의 경우 법정은 수많은 하급 관청을 가진 형이상학적 상부기관으로 신비화되어 있다. 소설 <소송>에는 최고 법정이 어느 누구도 가 닿을 수 없는 모호한 기관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 결과 여전히 법과 법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제출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바이스는 다락방 법정 뒤에 n개의 법정이 연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운다. 그저 그곳은 개인들에게 자의적으로 전횡을 일삼는 매수된 관리들의 조직일 뿐이다. 그런데 법정에 대한 K의 부정적 판단은 그의 태도를 더욱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남자’는 비판적 질문을 통해 K에게 인식과 행동을 촉구한다.

    K의 소시민성과 부르주아 규범에 정향된 그의 사유는 법정을 부인하거나 법정의 판결에 맞서는 것을 방해한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법정에 대한 K의 무기력은 합리적 숙고들로 삶의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무능함으로 나타난다. 사건들은 확실한 판단에서 비켜가고 K는 추측과 잘못된 해석의 순환에 붙잡힌다. 반면 바이스는 낯설고 위협적이며 불투명한 법정 현실에 대한 무기력을 K의 태도로 밀어놓는다. 카의 몰락은 사회적 태도 때문이다. 바이스는 카프카처럼 불투명한 현실에 대한 K의 좌절을 주체의 근본적 불가능성, 즉 현실과 권력구조의 다층성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주체의 불가능성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출신과 사회적 규범으로 제한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빚어진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르주아 세계 질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묵인하고 거부를 포기한 데서 입증된다. 바이스는 K의 죄를 이렇게 정리한다: “무의미한 삶은 마무리된다/ 무의미한 죽음으로-/ 거부에 대한 그의 부끄러움-/ 소송-이것이 삶이다/법정-세계/사랑의 무능력-죄.”39)

    바이스가 보기에 법정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는 폭력 그 자체이다. <소송>은 공포와 폭력 통해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K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조건 고용을 갈구하고 해고를 두려워하고 고용관계에 매달리는 소시민의 전형이다. 그런 점에서 K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하다. 그는 ‘이등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 실제적인 ‘생명박탈’의 위험에 처해있는 프롤레타리아와의 연대를 거부한다. 그 어떤 행동도 거부하는 그는 ‘임금노예’로서 ‘무언가를 박탈한다는데 대한 공포’를 내면화한 인물이다. 우선 바이스는 자본주의가 공포에 의거하는 폭력의 체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K가 이기주의와 무력함의 틀을 깨고 나와 ‘몫 없는 자들’과의 연대할 때만이 폭력의 순환 구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시위한다.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하여 안정을 추구하려는 피지배자들의 심리, 그것을 이용하여 사적ㆍ공적 착취를 강화하는 체제 하에서 K는 영원한 피고일 뿐이다.

    바이스가 카프카의 소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발적 순응의 모델(사례)이다. 그래서 그는 신비주의적 분위기에서 소설을 빼내 그것을 자본주의에서의 순응이야기로 만들어 놓았다. 이 이야기는 현실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그 때문에 ‘지금 여기’와 연관시킬 수 있다. 나치는 순응을 목표로 하는 소시민적 태도의 황폐한 결과를 시위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바이스의 시각은 편협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소설의 다의성과 다양한 현실의 배경들이 분명한 계급 연대라는 하나의 구상을 위해 희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유는 작가에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야만 중간기간(Zwischenzeit)에 획득된 경험들을 소설 『저항의 미학』과 매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바이스는 카프카의 경험들을 넘어 현재적인 행동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개작 과정에서 바이스는 내용에 변경을 하면서 개입하고 카프카의 현실 구상에 그 자신의 구상을 포개어 놓았다. 힝크(Walter Hinck)는 종전 텍스트들에 대한 그러한 가공 방식에 ‘생산적 수용’(die produktive Rezeption)의 이름을 주었다. 이러한 이름은 바이스의 드라마 개작 프로젝트의 특성을 정확하게 지칭한다.40)

    37)앞의 책, Ulrike Zimmermann, p. 137 재인용.  38)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10, pp. 28-31 참조.  39)Nb. 1: p. 262. 이와 관련하여 카프카 『소송』의 시골남자에 대한 아감벤의 다음과 같은 주문은 흥미롭다. 이는 드라마 속 K의 과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골 사람(그리고 미세화 속에서 문 앞에 서 있는 청년)의 메시아적 임무는 다름 아니라 잠재적인 예외상태를 현실화시키고 문지기에게 법의 문(예루살렘의 문)을 닫도록 강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메시아는 일단 문이 닫힌 뒤에야, 즉 의미 없지만 유효한 법이 일단 정지된 후에야 비로소 그곳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새물결, 2008, p. 133.  40)앞의 책, Ulrike Zimmermann, p. 155 참조.

    6. 나가는 글

    바이스는 카프카의 세계와 대결하면서 성장한 작가이다. 청년 작가에게 카프카는 정체성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장년 바이스에게 그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저항의 거점을 찾기 위한 나침반이었다. 바이스는 <소송>에서 ‘탐험가’의 시선을 취하면서 사회 변혁 불가능의 조건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K의 현실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면서 그가 실패한 객관적 이유를 탐색한다. 이를 위해 그는 ‘권력과 욕망의 내재성’을 보여주는 카프카의 세계를 “거짓이 세계질서가 된”(P. 588) 자본주의 세계로 설정한다. 하지만 더욱 큰 원인은 저항적 주체화의 실패에 있음이 드러난다. 카프카의 소설에 견주어 볼 때 바이스의 이러한 시선은 너무나 투박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이 카프카의 반성적 시선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체의 차이와 사회주의자로서의 자기 프레임은 원작의 복잡성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송>의 다층적 드라마투르기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 혹은 차선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이 드라마의 한계를 지적하기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바이스의 매체 전환의 과정과 현실 인식으로부터 무언가 유용한 것을 건져내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다. 격동과 혼란의 21세기를 관통하는 정치극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바이스의 연극미학과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반성과 참조의 자료가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자신을 반성하는 거울로 페터 바이스를 기능전환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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