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theatre autobiographique de Ionesco

외젠 이오네스코의 자전적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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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La grande majorité des thèmes abordés par Ionesco dans un théâtre ont leur source dans le continuum autobiographique constitué par les mémoires, les journaux intimes, les articles divers réunis dans Notes et contre-notes et les entretiens avec Claude Bonnefoy. Ces livres ont pour objet l’homme Ionesco. Dans cette étude, nous allons donc examiner les écrits intimes de Ionesco, et après nous allons les comparer son théâtre. Spectateurs ou lecteurs connaissent certains faits marquants de sa vie, même sans avoir lu de biographies du dramaturge. D’abord, parce qu’à mesure que le temps passe, le théâtre de Ionesco évolue vers des pièces plus oniriques mais dites aussi autobiographiques. Nous allons approcher les thèmes comme ceci: Le souvenirs des parents; La Chapelle- Anthenaise; Bérenger-Ionesco; l’Esprit critique de chez Ionesco. Et pour conclure on pourrait dire la fonction de la cure de l’écriture de l’auteur lui-même. Les images, les souvenirs d’enfance conduisent Ionesco aux rêves et interrogations suscitées par le fait d’exister. Ces motivations semblent bien constituer le point de départ de sa dramaturgie. Son théâtre évolue vers des pièces qui utilisent de plus en plus d’éléments biographiques. Des étapes, épreuves ou expériences marquantes de son existence sont intégrées aux représentations. En fait, plus le personnage se dépersonnalise et plus Ionesco le situe pourtant dans un contexte qui emprunte des éléments de sa propre vie. Ensuite, les journaux de l’auteur relatent encore d’autres épisodes de son existence. On y voit le développement de sa personnalité. En fin de compte Ionesco définit son théâtre comme la projection sur la scène d’un univers intérieur. Les acteurs de ce théâtre sont les médiums qui nous font accéder à l’intérieur de notre propre rêve. Et Ionesco remet en question la création dramatique. Son théâtre est non seulement une réflexion esthétique mais aussi une série de confessions comme l’expression de son angoisse et sa réalité.


  • KEYWORD

    Ionesco , theatre autobiographique , La Chapelle-Anthenaise , Berenger , enfance , ecrits intimes

  • 1. 서론

    이오네스코는 자신의 삶의 경험이나 사유체계를 연극으로 형상화한 극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일기‧강연‧대담 등을 통해 극예술에 대한 입장을 일관되게 언급해왔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삶이 연극이고 연극이 삶이라는 공식을 그대로 실현한 작가라고 할만하다. 그가 보기에 기억의 파장 속의 모든 것들은 움직이는 이미지들이며, 삶은 자유롭고 신속하게 사라지는 순간적 장면들의 집합체이다. 글쓰기는 망각의 소멸을 되살리려는 욕망에 의해 파묻혀있는 이미지들, 흩어져있는 존재들의 고유한 리듬을 추적하는 일이다. 무대를 위해 작품을 만드는 일, 그것은 이오네스코에게 사라진 형태들을 부활시키는 역동적인 힘인 것이다. 따라서 극작가로서 삶의 경험과 추억들이 세심한 그의 손끝에서 자전(自傳)적 글쓰기로 재창조되어 나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오네스코의 내적 글쓰기에 대한 탐구는 그의 연극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그것은 작품의 원천인 동시에 해설과 비평의 기능을 한다. 내적 글쓰기란 불연속적인 글들의 모음으로 『단편일기』1),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2), 『1939년 봄』3) 등과 같은 산문을 말한다. 이것들은 다른 어떤 글보다 작가의 사적인 삶, 내밀한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 페이지들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시간과 죽음, 존재에 관해 발견하고 사유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한 인식의 흐름은 삶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과 중첩된다. 그것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지나간 세월과 현재 사이에서 하나의 덧없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는 때로 정신의학적 치료의 방편으로 글쓰기의 기능을 활용하였으며 실제로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극작가로서 창조적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클로드 본느푸아, 마리-클로드 위베르, 질베르 타랍 등과의 대담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하여 <실험극장>에서 『대머리여가수』공연을 관람했으며, 대학에서의 강연, 연극인들과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4) 그의 삶과 연극은 평론집 『거부』의제목처럼 정체되지 않고 변화와 도전을 주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글들이 정확한 연대기적 표기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실존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불가능하지만 문제 될 것 없다. 우리의 관심은 그가 기록한 내면의 언어들이 어떻게 극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는가를 찾아서 해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적 산문으로 읽히는 『발견』5) 역시 초창기 어린시절 낯선 세계 앞에서의 놀라움, 사물의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로 채워져 있다. 그 내부에서 우리는 작가의 창조정신과 언어적 표현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연구의 목적은 이오네스코의 내적인 산문들과 극작품을 비교 분석하여 두 장르의 텍스트들 사이에 어떤 유사성 혹은 상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는 데에 있다. 그 작업은 궁극적으로 극중 인물들의 담화 속에 산재해 있는 작가의 실존적 삶을 추적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자전적 연극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규명될 것이다.

    1)Eugène Ionesco, Journal en miettes, Paris, Mercure de France, 1967.  2)Eugène Ionesco, Présent passé, passé présent, Paris, Mercure de France, 1968.  3)Eugène Ionesco, La Photo du colonel, Paris, Gallimard, 1962. Cf. Récits란 부제가 붙은 이 책 속에는 Oriflamme(1954), La Photo du colonel(1955), Le Piéton de l’air(1961), Une victime du devoir(1953), Rhinocéros(1957), La vase(1956), Printemps 1939(1939) 등이 들어 있다.  4)1974년 4월19일∼4월25일 한국을 방문하여 4월21일 이화여대에서 특강; 1977년 서울 실험극장 소극장 『대머리여가수』공연 관람.  5)Eugène Ionesco, Découvertes, Genève, Éditions d’Albert Skira, 1969.

    2. 부모의 추억

    이오네스코 연극 속의 커플들은 작가의 부모 혹은 작가 부부와 흡사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의무의 희생자』, 『아메데』, 『공중보행자』등에서 그렇다. 이들 작품 속의 남자주인공은 극작가 혹은 시인으로 등장하여 작가의 화신(化身) 혹은 대변인 역할을 한다. 『알마의 즉흥극』에서는 극작가와 동명인 이오네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연극학 박사들과 이론적 논쟁을 펼친다. 이 작가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려서부터 자신이 경험한 것,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타고 났다. 여기서는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에 대한 기억이 작품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나라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이중 언어 사용의 혼란스러움, 혹은 의사소통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겪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학도로서 가족과 함께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가 유학생으로 낭만적 생활을 즐기는 동안 어머니는 가사에 전념했다. 그녀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홀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다. 부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자주 화를 냈고, 그의 권위적인 성격은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어린 이오네스코는 부모의 말다툼과 폭력적인 상황을 자주 목격했다. 『의무의 희생자』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이오네스코가 자신의 고통의 상흔을 몰아내 정신적 치료를 시도하려는 듯 사이코드라마적 특성을 띠고 있다. 즉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개인적 고정관념, 죄의식, 환상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 슈베르는 어린 이오네스코가 되어 마치 자기의 부모인 양 마들렌과 수사관의 싸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아버지와 수사관을 동일시한다.

    슈베르는 어린애처럼 울먹이며 그들을 응시한다. 마들렌은 독약을 먹으러 간다. 수사관은 그녀를 말리는 척하다가 도리어 그것을 그녀에게 강제로 먹인다. 이 장면은 이오네스코가 어린 시절 목격했던 장면을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실제로 이오네스코의 어머니는 옥도정기 병을 들이마셔 음독자살을 기도했었다. 이오네스코는 당시 네 살 가량의 소년으로 충격적인 그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에 이렇게 썼다. “아마도 엄마는 진정 음독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의 행동을 억제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졌고, 당시 그녀가 내게 야기했던 공포 분위기는 결코 이성적으로 진정될 수 없었다. 이 장면은 내게 불행에 대한 감정, 우리가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불러일으켰다.”7) 이오네스코에게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콤플렉스는 여러 극작품들에서 발견된다. 그는 기꺼이 등장인물들에게 자기의 짐을 떠넘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의미에서 애도, 죽음에 대한 슬픔,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하는 장면들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의자들』에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방기했으며 어느 정도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말이지. 삶은 그런 것이야...그 점 때문에 난 고통스럽지.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8) 아마도 이오네스코의 남녀에 대한 인식, 특히 여자에 대한 인식, 즉 어머니 뿐 아니라 일반적인 여자에 대한 태도는 그 시절 형성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날 이후부터다. 그녀는 무기력하고 불쌍한 어린애로 보였으며, 아버지의 손에서 놀아나는 허수아비로 보였다. 아버지의 박해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옳든 그르든 모든 여자들은 불쌍하게 보였다. 그리고 난 죄의식을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자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게 두려워 난 스스로를 그녀들에 의해 박해받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를 괴롭힌 건 오히려 그녀들인 것이다.”9) 이러한 고백은 모호한 관계로 보였던 작품 속 커플들에 대한 뚜렷한 설명이 된다. 사랑과 평온함을 지닌 여자는 어머니의 특질과 더불어 배우자의 특질을 겸하고 있다.

    한편 『의무의 희생자』의 슈베르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 콤플렉스를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폭력의 상징, 증오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경청한다. “용서해야한다, 얘야, 힘들겠지만....눈물의 시간이 오고, 후회의 시간이 오고, 고해성사의 시간이 올 것이다....아버지를 용서하렴.” 그래서 슈베르는 이렇게 절규하며 용서를 빌기도 한다. “아버지 우린 결코 서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내 말이 들리나요? 아버지께 복종할께요, 우리를 용서해줘요. 우린 당신을 용서했어요!”10) 사실 이오네스코는 집밖에서도 아버지의 난폭한 행동을 자주 목격했다. 경찰국장인 아버지는 감찰순회를 하던 중 관리들의 뺨을 때리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파시즘에서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대세만을 추종하는 권위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몽상가이자 문학적 취향을 가진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를 쓰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들의 반항심은 본능적으로 권력, 기득권, 부르주아 질서를 거부하는 성격으로 발전한다. 특히 부르주아적 삶을 강요하는 아버지는 위선자로 보였다. 아버지의 권위 의식은 『수업』에서 학생을 죽이는 교수로 등장할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교수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극이 진행하면서 교수의 소심함은 점차 사라지고, 음탕한 눈빛은 마침내 꺼질 줄 모르는 격렬한 불꽃으로 변한다.”11) 교수의 가식적인 온화한 태도는 여학생을 죽이는 공격성으로 대체된다. 이 작품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교수가 여학생에게 대수와 문헌학을 계속해서 배우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문헌학이 범죄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La philologie mène au pire!”12) 이오네스코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삶의 방식이나 세계관을 자기 식대로 강요하는 것은 교수가 학생에게 강제로 지식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생은 자아와 창의성을 상실할 것이고, 기성의 지식체계에 질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쾌활하고 명석한 여학생은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말을 더듬고 몸짓도 얼어붙는다. 그녀가 마지막 징후인 치통에 걸렸을 때, 그녀는 오로지 교수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물로 변한다. 관객은 그러한 세뇌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건강한 여학생은 결국 교수의 모습을 한 야수에게 ‘의무의 희생자’처럼 제물이 된 것이다.

    이오네스코의 아버지는 두 번째 아내와도 평화롭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하녀처럼 취급했다. 그녀는 작가의 마지막 희곡 『무덤 속의 여행』에서 환기되는데 주인공 장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죽은 후 당신에게 여주인이 있었음을 알았어요. 당신의 집시 같은 하녀. 나는 그녀와 함께 당신이 어느 날 오후 영화관에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을 못 본 척 했지요. 의혹에 잠겨 있었어요.”13)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에 대한 기억도 일기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14).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완전히 결렬된다. 『자크 혹은 복종』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외가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장면이 나온다. “너는 나의 아들이 아니야. 난 너를 부정한다. 내 혈통에 어울리지 않아. 넌 네 엄마와 바보, 천치들의 가정을 닮았어.”15) 결국 이오네스코는 “나의 나라는 프랑스”16)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떠난다. 그가 아버지의 나라 루마니아 보다 어머니의 나라 프랑스를 더 가깝게 여기게 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불행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공부를 끝낸 남편과 루마니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당시는 전쟁 중이라서 이오네스코 가족은 공직자인 아버지를 제외하고 파리에 남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이오네스코에게 프랑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절이 왔지만 파리의 가족들의 삶에 무심했다. 그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히려 아내가 가정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에 이혼을 청구했다. 그는 유리한 권력자로서 자기의 뜻대로 이혼하고 재혼했던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미래는 달걀 속에 있다』에서 죽은 아버지가 집에 다시 나타나는 희극적 장면을 통해 아버지를 조롱했다. 『공중보행자』에서는 여주인공 조세핀의 괴상한 꿈은 똑같은 원천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에게 그의 의사 아저씨는 수년전 죽은 것으로 믿고 있던 아버지가 곧 도착한다고 알린다. “나는 알아요, 가엾은 이, 그는 전쟁터에서 죽었어요. 당신은 누군가 그를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가요?”17) 극작가는 이런 식으로 여러 극작품에서 아버지를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이오네스코에게 또 다른 중요한 체험이 있다. 그것 역시 어린 이오네스코에게 발견의 경이로움에 속한다. 기억에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인형극을 본 경험이다. 어머니는 인형극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어찌할 수 없었다. 아이가 인형극을 계속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한 인형극, 말하고 움직이며 언제나 두들겨 맞는 것으로 끝나는 인형극에 몰입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어떤 본질적인 것,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처럼 기괴한 존재들의 삶의 이미지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는 세계가 진정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뤽상부르공원의 인형극을 보고 있는 나를 강제로 떼어놓을 수 없었다...나는 하루 종일 그것에 도취되어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세상의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18) 이미 이오네스코의 눈에는 세상이 무대 위에 투영된 하나의 연극으로 보였다. 세상은 이미지로 포착되며, 지각된 모든 것들은 불연속성의 조각들이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연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소설이 한 순간에 발생하는 정신 속의 추억들, 이미지들, 연상들에 대한 묘사라면 연극은 말을 공간화 하는 작업인 것이다. “모든 것이 대사와 연기와 무대의 이미지 속에 있고, 그것은 언제나 시각적이다....항상 내 마음 속에서 창조적 메커니즘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이며 최초의 대사에서 비롯한다. 이어서 나는 등장인물에 의해 이끌려간다.”19) 이오네스코에 따르면 연극은 현실의 무게로부터 해방된 그림자들의 시각화다. 그것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것이 내적 무대의 공간적 투사 즉 물질화인 것이다. 어린 이오네스코는 보지라르 거리, 블로메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그곳은 파리 시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두리로 주위가 어두웠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불현듯 공포를 느낀다. 무엇을 본 것일까. 어둠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저들은 무엇인가, 유령인가. 아이는 무심결에 무의식 속에서 어떤 진실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세계는 개인이 고독 속에서 부조리한 움직임을 실행하는 어둠 속의 연극이라는 사실 말이다.

    6)Eugène Ionesco, Th. I, Victimes du devoir, p.201: Cf. 박형섭(역) 『의무의 희생자』, 지만지, p.50∼51.  7)Présent passé, passé présent, p.30: Cf. 박철화(역), 『자아의 책』, p.28.  8)Ibid., Th. I, Les Chaises, pp.153∼154. “J’ai laissé ma mère mourir toute seule dans un fossé....La vie est comme cela... mais moi, j’en souffre... les autres, pas...”  9)Présent passé, passé présent, p.29.  10)Th. I, Victimes du devoir, p.208. “Père, nous ne nous sommes jamais compris...Peux-tu encore m’entendre? Je t’obéirai, pardonne-nous, nous t’avons pardonné.”  11)Th. I, La Leçon, p.61.  12)Ibid., p.75  13)Eugène Ionesco, Théâtre complet, Paris, Gallimard, Coll.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Voyages chez les morts, p. 1295.  14)Cf. Présent passé, passé présent, pp. 141∼143: 『자아의 책』, p.125∼126.  15)Th. I, Jacques ou la soumission, p.99.  16)Présent passé, passé présent, p.24: Cf. “Mon pays était pour moi la France, tout simplement parce que j’y avais vécu avec ma mère dans mon enfance.”  17)Eugène Ionesco, Th. III, Le Piéton de l’air, p.129.  18)Eugène Ionesco, Notes et contre-notes, Gallimard, Coll. «Idées», 1966, p.53.  19)Ibid., p.220.

    3. 샤펠-앙트네즈 La Chapelle-Anthenaise20)

    이오네스코는 어머니와 떨어져 파리 외곽의 롱쥐모에서 생활한다. 당시 어머니와의 이별, 여동생과의 헤어짐은 그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슬픔과 두려움을 남겼을 것이다. 얼마 후 이오네스코와 마릴리나는 마이엔의 작은 마을 샤펠-앙트네즈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보낸 2년간(1917∼1919)의 전원생활은 아마 미래의 극작가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흔히 잃어버린 낙원으로 표현되는 이곳 생활에 대한 회상은 클로드본느푸아와의 대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샤펠-앙트네즈에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현재 속에 살았다. 산다는 것은 은총이요, 기쁨이었다.”21) 그들은 물랭의 농장에서 거주했다. 농부 바티스트와 아내 쟈네트는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베풀었다. 그들 덕분에 이오네스코는 시골의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었으며, 도처를 돌아다니며 전원의 평화스러운 삶을 체험했다. 전쟁 중인 도시와 어머니의 슬픈 얼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풍요와 조화로운 자연 속의 삶이었다.22)

    어린 이오네스코가 샤펠-앙트네즈에서 보낸 두 번의 4월과 5월은 발견과 경이로움의 시간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존재들. 그는 훗날 그 아름다운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글쓰기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해독』에서 말한다: 나는 왜 쓰는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기쁨 속에서 나는 프리마베라가 흐드러진 길을 달렸고 다시 초록이 된 초원을 달리곤 했다.”23) 또한 『단편일기』에서 시간을 초월한 행복의 체험을 이렇게 말했다. “물랭에 살았을 때, 나의 모든 것이 기쁨이요, 존재 그 자체였다. 마치 계절이 우주 속에 펼쳐져있는 듯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같은 장소에 있지만 그 바깥에 있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 것, 왔다가 멀어져가는 것, 눈앞에 펼쳐진 꽃들과 풀들과 함께, 세상은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한 다채로운 색깔로 장식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24)

    이 조화로운 세상 앞에서 행복한 순간에 체험한 충만의 느낌은 성인의 나이가 될 무렵 덧없이 사라지는 엑스터시의 순간에 다시 발견할 것이다. 그 순간은 가벼운 공기와도 같아서 가볍고 비상하는 느낌을 준다. 『의무의 희생자』의 슈베르가 인간과 멀리 떨어져 높이 올라가 행복하고 정상에 올라가 충만한 느낌을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질의 무거움에서 해방되어 비상하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6월의 아침이다. 나는 공기보다 더 가벼운 공기를 호흡한다. 나는 공기보다 더 가볍다. 태양은 태양보다 더 큰 빛속으로 녹아들어간다. 나는 모든 것을 가로질러 통과한다. 형태들이 사라진다.(...) 나는 빛이다. 나는 비상한다!”25) 엑스터시의 절정에서 슈베르는 존재 앞에서 놀라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함에 놀랐다. 존재에 놀랐다!”26)고 슈베르는 탄성을 지른다. 슈베르는 마침내 어린 시절의 옛 감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의식은 그 한계에 발부리를 부딪치고 돌연히 추락한다. 현실로 귀환하는 것이다. 이 두세계의 끊임없는 반복이 이오네스코 연극의 두 축을 이룬다. 창조적 감정의 두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비상하던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것처럼 『공중보행자』에서도 반복된다. 베랑제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다. 그는 자연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매혹적인 집에 살고 있다. 이자연의 정경은 샤펠-앙트네즈를 상기시킨다. 무대장치의 비현실성은 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27)

    샤펠-앙트네즈의 초등학교는 파리의 학교와 달랐다. 그것은 작은 막사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을 교실로 불렀다. 그는 아이들에게 마을 축제에 관한 글짓기를 과제로 냈다. 그 글짓기에서 이오네스코가 일등을 했다. 장차 극작가로 성장할 아이는 벌써부터 탐구의 세계와 현실보다 공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멋지게 대화체 이야기를 지어냈다. 루아조 선생님은 이오네스코의 재능을 알아본 것일까. 그는 어린 이오네스코의 대화체 글에 만족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이오네스코의 최초의 독자가 된 것이다. 그는 마이엔의 작은 마을에 잠시 들른 어린 소년이 훗날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창조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아홉 살의 어린 작가, 그는 구체성을 띠지는 않았지만 상상력과 글쓰기 능력으로 세계에 대한 폭로, 원천적 사실에 대한 발견의 순간을 체험했는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문체의 아름다움과 하나의 세계를 환기시키는 작가적 기질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그러한 황홀의 상태를 독서를 통해 다시 음미하는 기회를 갖는다. 12세에 플로베르의 『단순한 마음Un Coeur simple』을, 이어서 『대장 몬느Le Grand Meaulnes』를 읽었다. 독서를 통한 공감은 상상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그가 문학적 의미에 눈을 뜨고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게 된 것은 귀중한 선물이고 재능이었다. 문체를 음미하는 능력, 하나의 이야기가 이야기 자체보다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지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이오네스코에게 언제나 빛의 느낌을 줄 것이고, 샤펠-앙트네즈의 행복한 전원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꿈 많은 소년은 점차 글쓰기의 세계로, 책속의 단어들과 정신들로 옮겨간다. “나는 문학을 통해 제2의 탄생을 했다. 내가 두 번째로 신생아가 된 것이다. 스스로를 투영시키거나 오직 무엇인가에 자신을 투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나, 세상, 나와 세상, 세상과 함께 있는 나, 세상 속에 있는 나.”28) 문학은 그 때부터 끊임없이 최초의 세상에 대한 탐구, 절대적 고독에서 오는 일련의 질문들이 될 것이다.

    샤펠-앙트네즈의 행복한 삶과 관련된 환상으로부터 『증거없는 살인자』의 빛의 도시la cité radieuse의 무대가 탄생한다. 그것은 영원한 현재와 잃어버린 낙원의 상징이다. 이 정경은 이 작가의 대부분의 극작품의 무대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베랑제가 이 기적의 도시에 대해 건축가에게 하는 말은 바로 샤펠-앙트네즈에 대한 추억과 흡사하다. “정말 아름다워요⋯이 멋있는 잔디며 꽃이 만발한 화단⋯ 채소처럼 먹음직스러운 이 꽃들⋯ 꽃처럼 향기로운 채소들⋯거기다가 이 푸른 하늘, 도무지 이 세상에선 보지 못했던 이 푸른 하늘, (...) 양지바른 골목과 햇빛이 넘쳐흐르는 가로수 길의 이런 훌륭한 동네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도시 속에 선생께서 세워놓은 이 빛의 도시를 말입니다.”29) 베랑제는 이러한 도시의 장소를 빛의 도시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보편적 개념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동반한다. 그것은 작가의 존재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줄 것이다. “내가 시간의 흐름을 처음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시간의 느낌은 즉각 죽음의 생각과 결부되지는 않는다. 물론 네다섯 살 때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이해한 적은 있었다. 일곱, 여덟 살 즈음, 어머니가 언젠가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나는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재의 최종적인 중단처럼 나타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현재였기 때문이다. (...) 11살, 혹은 12살 무렵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간에 대한 직관을 갖기 시작했다.(...) 열다섯, 열여섯 즈음에는 그 생각이 끝났다. 나는 시간 속에 있었고, 달아남과 종말 속에 있었다. 현재는 사라졌다. 내게는 오로지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미래는 이미 과거처럼 느껴졌다.”30) 늙음과 죽음은 시간의 개념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행복과 대립된다. 특권적인 시절, 빛과 즐거움의 순간만이 존재했던 시절, 그 순간이 갑자기 절대적 진실의 느낌으로 파괴된다. “나는 샤펠-앙트네즈에서 생활할 때 시간의 밖에 있었다. 즉 그 시간은 파라다이스 속에 있었던 것이다.”31) 일단 어린 시절을 벗어나면 어른은 그 때의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시간은 이오네스코의 연극 속에서 역동성과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축을 형성하고 있다. 『대머리여가수』에서는 관객에게 작가 자신의 실존적 고뇌를 전달하려고 시간의 가속성을 사용한다. 『갈증과 허기』에서는 측정할 수 있는 시간과 현실의 시간 사이의 대립을 교묘하게 보여준다. 『왕은 죽어 가다』는 시간의 개념을 연극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체험한 시간의 개인적 경험과 작동중인 시간의 객관적 개념 사이의 모순성이 강조된다. 이를테면 재현의 지속과 행동의 지속의 총체적 일치라는 환각을 부여함으로써 말이다. 극의 시공간은 등장인물의 고뇌뿐 아니라 작가의 고뇌를 반영한다.

    20)La Chapelle-Anthenaise는 루아르 지방의 le département de la Mayenne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오네스코의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병약해서 이곳에서 전원생활하며 요양할 것을 원했다. 이오네스코는 샤펠-앙트네즈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웠다고 말한다.  21)Claude Bonnefoy, Entretients avec Eugène Ionesco, Belfond, 1966 ;Eugène Ionesco : Entre la vie et le rêve, Edition revue et augmentée, Belfond, 1977, p.14: “A La Chapelle-Anthenaise, le temps n’existait pas. Je vivais dans le présent. Vivre était grâce, joie de vivre.”  22)필자는 2011년 7월21일 샤펠-앙트네즈를 방문하여 당시 이오네스코가 머물렀던 물랭을 방문했다. 지금은 옛 가옥과 물랭 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창고와 축사가 세워져 있었다. 전원의 풍경과 자연의 모습은 이오네스코가 『1939년 봄』에 묘사한 것과 차이가 없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3월 이오네스코 연극 축제가 열린다.  23)Antidotes, Paris, Gallimard, 1977, p.317.  24)Journal en miettes, p. 14: Cf. 같은 책 pp.15∼22는 Moulin에서의 경험 이야기.  25)Th. I, Victimes du devoir, pp. 217∼218.  26)Ibid., p.219: “La lumière me pénètre. Je suis étonné d’être, étonné d’être...étonné d’être!”  27)voir, Th. III, Le Piéton de l’air, pp.121∼122.  28)Entre la vie et le rêve, pp.26∼27.  29)Eugène Ionesco, Tueur sans gages, Gallimard, «folio», pp.16∼17.  30)Journal en miettes, pp.13∼14.  31)Ibid., p.13: Cf. Entre la vie et le rêve, pp.13∼14.

    4. 베랑제Berenger와 이오네스코

    생 토비Saint Tobi는 베랑제를 “이오네스코의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 동시대 인간”이며 20세기의 “신화적 등장인물personnage mythique”32)이라고 말했다. 또한 엘자 트리올레는 베랑제의 기적적인 탄생이 문학비평계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썼다. “레카미에 극장에서 막 태어난 사람, 그는 파뉘르주, 동키호테, 피크윅, 프뤼돔, 마리우스와 같은 언어 속에 들어갈만한 전형적 인간이다.”33) 실제로 베랑제라는 인물과 함께 이오네스코의 극작술도 크게 변한다. 『증거없는 살인자』에서 처음 출현한 베랑제는 『코뿔소』, 『공중보행자』, 『왕은 죽어가다』에서 연이어 나타난다. 이 네 작품들은 작가의 존재적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점에서 자전적 연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코뿔소』는 이오네스코가 현장에서 경험한 나치즘에 대한 풍자다. 이들 작품 속의 베랑제는 매사 “존재의 파괴적인 힘에 저항하며 건설적인 탈출구를 모색하고 작가의 고뇌를 보다 명철하고 의도적으로 표출”34)한다. 그가 곧 작가의 분신인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베랑제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악이나 죽음, 소외감, 광기의 폭력 등을 투사한다. 그 자신 직접 체험한 정신적 갈등을 베랑제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오네스코가 내면일기나 대담 속에서 말하는 세계관이나 생각들은 베랑제의 그것들과 매우 흡사하다. 즉 극작품이 자서전의 다른 글쓰기 형태인 것이다. 결국 베랑제의 실존적 고뇌와 원죄, 행복의 순간이나 빛에 대한 느낌, 집단적 광기나 죽음의 체험 등은 작가 자신의 과거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증거없는 살인자』는 악에 대한 성찰이다. 악과 폭력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창세기 이전에 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투명하고 빛으로 충만한 순수한 세계인 것이다. 빛은 은총의 순간이며 희곡에서 ‘빛의 도시’로 상징된다. 이 빛의 도시에 죽음을 동반하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생명을 부식시키는 암세포인 것이다. 빛과 악이 공존하는 곳, 그곳은 부조리한 세계이다. 베랑제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 났다. 어두운 구역에 살던 베랑제는 어느 날 빛의 도시를 발견하고 몹시 흥분한다. 그는 황홀경에 빠져 넋을 잃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길한 느낌이 든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도시 어딘가에 살인자가 있는 것이다. 베랑제는 살인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그를 추적한다. 그는 빛의 도시를 설계한 건축가와 함께 등장한다. 이곳은 절대 비가 오지 않으며, 모든 것이 예견되어 있는 구역이다. 건축가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정신의 소유자이지만, 베랑제는 순박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시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에 돌이 날아든다. 불길한 징조다. 도시의 건축은 중단되었고, 누구도 그곳에 정착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도 떠날 생각만 한다. 저수지에서는 매일 익사자가 발생한다. 경찰관이면서 동시에 의사이기도 한 건축가는 베랑제에게 말한다. 누구든 인류의 모든 불행들에 집착하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살인자와 마주친 베랑제는 긴 독백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한다. 살인자는 냉소적이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베랑제는 왜 살인자가 빛의 도시의 행복을 파괴하는지, 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지 묻는다. 그는 인간성을 혐오하는 극단적 허무주의자인가? 이념과 체제,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인가? 하지만 그것들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지성의 산물 아닌가? 베랑제는 사랑과 이성, 과학과 자비에 대해 말하면서 애써 휴머니즘을 방어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곧 희생자가 될 것이다. “맙소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무엇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35) 이것이 베랑제의 운명, 인간의 원죄이다. 이 독백에 대해 마리-클로드 위베르는 연극작품 목록에서 소시아스Sosie36), 아르파공, 피가로의 독백에 버금가는 훌륭한 부분이라고 평가한다.37)

    『증거없는 살인자』의 베랑제와는 달리 『코뿔소』의 베랑제는 어떤 철학적 사유도 하지 않는다. 그의 말 속에는 상투어도 유치함도 없다. 친구 장Jean의 침착한 태도에 반해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하다. “오, 의지가 필요해. 모든 사람이 너와 같은 의지가 없어. 난 의지가 없어, 삶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고!” 그는 만사 귀찮아하고 유약하며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법도 없다. 그는 처음 코뿔소가 나타났을 때, 예상하기라도 한 듯 거의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코뿔소에 저항하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결국 그의 의식은 반항으로 끝난다. “나는 최후의 인간이야.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어! 난 항복하지 않을 거야!”38) 장은 베랑제와는 달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오만하다. 그는 베랑제의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을 권유한다. 심지어 문화생활을 하라고 간섭한다. “자네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아방가르드 연극에 대해 알고 있나? 이오네스코의 연극을 보았나?”39) 하지만 그는 장차 적극적으로 코뿔소의 무리에 합류할 것이다. 그는 “휴머니즘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의 불관용이나 교리주의는 더욱 코뿔소의 광기에 다가갈 것이다. 장과 베랑제 주변의 몇몇 부차적인 인물들은 코뿔소의 출현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보이며 각자 자기들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그들은 전체주의의 확장과 위협 앞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입장들을 대변한다. 어떻게 인간이 코뿔소로 변할 수 있는가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보타르는 좌파 사상을 가진 퇴직 교사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 믿는다. 따라서 이성을 명분으로 확실성을 부정한다. 뒤다르는 섬세하고 회의적이며 미묘한 정신의 소유자다. 그는 판단하기에 앞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이유를 확실히 알고 나서 코뿔소를 단죄하라고 말한다. 논리학자는 어리석고 위험한 이념주의자이다. 그에게 코뿔소 전염병은 엉터리 증명과 궤변적인 추론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모두가 코뿔소에 굴복하고 만다. 처음엔 질서를 존중하다가 다음에 도락으로 삼으며 세 번째는 무관심, 비현실주의, 맹종으로 일관한다. 베랑제를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이 코뿔소가 된다. 인간의 야수화,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전체주의에 귀속되는 것이다.

    『코뿔소』의 대중적 성공은 이오네스코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대중적인기가 코뿔소의 무리에 합류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혹에 휩싸인다. 군중심리에 익숙하지 못한 베랑제-이오네스코가 시류에 편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품 속의 베랑제는 마지막까지 절규하며 세상에 의문을 던지지만 여전히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 매일 가속화되어 가는 비인간화의 세계에서 개인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싸우는 사람들의 승리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뿔소』는 고독한 개인의 드라마이다. 즉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자, 슬로건이나 명령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개인인 것이다.

    『공중보행자』의 베랑제는 몽상하는 시인이다. 그와 조세핀, 마르트의 관계는 이오네스코, 아내, 딸과 유사하다. 베랑제 역시 극작가다. 인물들의 대화는 작가 자신의 경험, 가족적인 대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작가의 이력에 대한 내용은 작품 속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당연하지, 우리 예쁜 딸아, 그건 어린 대머리 여가수란다.”; “비평은 호평이든 악평이든 날 피곤하게 해, 그리고 연극도 배우들도 날 피곤하게 만들어!” 혹은 작가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써 “이런 표현은 작가가 쓸 법한 것이 아니다”40)라고 말한다. 베랑제는 문학에 대해, 창작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문학은 현상에 대한 탐구이며,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확립된 질서나 이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새롭게 경신하거나 해체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베랑제는 의미 있는 탐구를 결심한다. 그것은 꿈과 초현실에 대한 탐사인 것이다. 베랑제는 원하는 일은 뭣이든 가능하다고 믿으며, 하늘을 날아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그는 비행하면서 불타는 사막, 진흙과 피로 얼룩진 대양, 먼지 투성이의 대륙, 바닥없는 심연을 볼 뿐이다. 그야말로 “거꾸로 된 세상인 것un monde à l’envers”41)이다. 그것은 지옥이다.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느낄 수 있는 허무인 것이다. 베랑제는 이오네스코처럼 무대라는 상상의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비행과 상승의 꿈을 꾼다. 그런데 이 꿈은 몸의 가벼움을, 몸과 정신의 균형을, 존재와 세계와의 조화를 의미한다. 즉 자유와 해방의 체험, 행복한 상태이다. 이 행복은 빛 속을 비행하던 중 어둠으로 추락함으로써 불행으로 전환된다. 이카로스처럼 추락하는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다. 베랑제는 완전히 절망하고 있지만, 어린 딸 마르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화염은 꺼질 것이고, 얼음은 언젠가 녹을 것이며...그리고 정원이 새로 생길 것이다.”42) 그녀가 바라는 정원은 베랑제가 꿈꾸던 빛으로 둘러싸인 장소, 빛의 도시일 것이다.

    하늘을 비행하는 꿈을 꾸는 베랑제의 딸 마르트의 희망은 『왕은 죽어 가다』의 베랑제I세가 사망선고를 받음으로써 종말을 고한다. 베랑제의 영원한 죽음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오네스코의 존재론, 즉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나타낸다. 무대는 닫힌 공간에서 주인공이 고뇌하는 순간들을 반영한다. 여기서 공간과 베랑제의 육체는 하나다.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감염되어 서서히 해체되어 사라진다. 베랑제 왕의 왕국에는 기상천외한 대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계절이 불규칙하고, 비옥했던 땅이 사막으로 변한다. 나무, 풀, 동물 등 모든 것이 말라간다. 노쇠현상이 주민들을 강타한다. 절대자로서 우주를 지배했던 왕은 그 자신의 병과 함께 침몰한다. 무대는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소멸해가는 세상을 시각화한다. 연극은 균열, 해체, 사라짐의 과정이다. 무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연시간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마그리트 왕비는 이 절대적 진실을 수용하지 않는 왕에게 반복해 전한다. “당신은 한 시간 반 후에 죽을 겁니다. 당신은 공연이 끝나면 죽을 거예요.”43) 결국 베랑제I세도 위대한 극작가-이오네스코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할 것이다.

    ‘베랑제 사이클’ 속의 베랑제는 운명적으로 죽음을 동반하는 악과 싸운다. 처음에는 악의 존재를 무시하지만, 결국 낙원인줄 알았던 빛의 도시에서 추방되어 세상이 사탄의 힘에 지배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악, 그것은 살인자이며 증오심에 불타는 코뿔소이다. 악이 도시를, 인류 전체를 부식시킨다. 그렇다면 인간 자신이 악을 운반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부식시키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죽음, 그것은 바로 실존적인 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랑제는 하늘을 나는 꿈을 잃지 않는다. 그곳에는 순수한 안식처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분명 육체와 영혼의 운명은 다를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모호한 기대는 절대자에게 향하도록 하는 신앙심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단편일기』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신의 은총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44)

    32)Saint Tobi, Eugène Ionesco ou À la recherche du paradis perdu, Paris, Gallimard, 1973, p.67: “L’homo sapiens contemporain - le plus proche de l’image de Ionesco lui-même.”  33)Elsa Triolet, Les Lettres françaises, 5 mars 1959: “Ce qui vient de se produire au théâtre Récamier, c’est la naissance d’un type qui devrait entrer dans le langage comme un Panurge, un Don Quichotte, un Monsieur Pickwick, un Monsieur Prudhomme, un Marius.”  34)「이오네스코의 작품세계」 in. 『노트와 반노트』, 박형섭(역), 동문선, p.322.  35)Tueur sans gages, Gallimard, «folio», 1982, pp.196∼207.  36)플라톤의 『앙피트리옹』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이후 로트루, 몰리에르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37)Marie-Claude Hubert,, Eugène Ionesco, Paris, Seuil, 1990, pp.137∼138.  38)Rhinocéros, Gallimard, «folio», 1984, p.246.  39)Ibid., p.55.  40)Th. III, Le Piéton de l’air, p.127.  41)Ibid., p.150.  42)Ibid., p.198.  43)Eugène Ionesco, Le Roi de meurt, Gallimard, «folio», p.37: “Tu vas mourir dans une heure et demie, tu vas mourir à la fin du spectacle.”  44)Journal en miettes, p.31.

    5. ‘거부’의 정신

    이오네스코는 젊은 시절 『거부』(1934)45)라는 제목의 평론집을 펴냈다. 그는 하나의 사실과 그 반대를 입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즉 비평은 진정 하나의 기준에 근거할 수 없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 책에는 이오네스코의 유머와 독창적 사유의 비평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텍스트는 살아있는 문체, 변증법의 적용, 확신과 자만심, 진실추구, 주류비평계에 도전하는 격한 표현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오네스코의 도발적이고 과감한 반항성을 엿볼 수 있다. 보수주의 체제에 대한 거부, 기득권에 저항하는 저자의 성격과 사상은 연극의 형식에, 무엇보다도 인물의 담화속에서 펼쳐진다.

    가령 라신과 코난 도일 중 누가 더 우월한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순수한 아마추어 문학가의 입장에서 라신이 우월하다고 보는 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증명은 매우 어렵다. 객관적 판단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다. 그는 당시 루마니아 문단의 주류인 튀도르 아르게지, 이온 바르뷔, 카밀 페트레스코 등을 공격했다. 아르게지의 작품은 판에 박은 효과를 위해 신비감을 남용하고 있으며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시란 형이상학적 사유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직관이다. 그것은 시가 보잘것없는 사유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46) 그런데 아르게지의 ‘형이상학적’ 시는 철학적 담론이나 수사학, 알레고리로 축소되는 경향이있다. 웅변, 수사학 등은 악덕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근본적으로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이온 바르뷔는 같은 단점의 다른 유형이라고 비난했다. 바르뷔는 말라르메와 발레리처럼 지루한 일화들로 채워서 난해함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그의 시에 대한 찬사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당대의 저널리즘을 비난했다. 소설가 카밀 페트레스코 역시 이오네스코의 공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젊은 비평가에게 그의 소설은 프루스트의 아류로 보였다. 작품의 스케일도 프루스트에 훨씬 못 미치며 인물의 심리묘사는 지나치게 피상적이었다. 이 소설가가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 것처럼 이오네스코의 비평 역시 망각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오네스코는 훗날 자신의 연극을 언급하면서 같은 어조로 말한다. “신비는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편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기초를 이루고 있고 작열하며 날아오르게 할 수 있도록 일상성을 벗어난다.”47) 이 글에 뒤이은 문학적 일화들은 논쟁적이지만 어느 정도 걸작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우리는 1930년대 부카레스트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은 문학적 삶에 대한 풍자를, 현대인과 고대인, 젊은 전위문학가와 나이든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이오네스코는 선배들의 겸손함과 감수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비평적 관점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오네스코의 작가로서의 경력과 독창적 사유들의 근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러한 이오네스코의 혁신적 비평정신은 전통 연극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의 반(反)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미학, 반연극적 태도는 그런 배경에서 비롯한다. 그는 『알마의 즉흥극』에서 비평이 과학이라는 주장을 비웃는다. 이 작품에는 작가와 동명의 인물인 이오네스코와 바르톨로메우스 I,II,III이라는 세 명의 비평가들이 등장한다. 이 일련번호는 도그마주의가 사방에 퍼져 있으며, 그들이 동일한 오류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오네스코는 이 작품이 “악의를 띤 농담”이라고 말하면서 롤랑 바르트, 베르나르 도르와 같은 비평가들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 희곡의 상당 부분은 그들의 현학적인 텍스트에서 몽타주한 인용들로 뒤섞여 있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말한다. “내 생각에 연극이란 내부 세계를 무대 위에 투사하는 것입니다. 연극적 소재를 취할 권리, 나는 그것을 나의 꿈과 불안, 막연한 욕망과 내적 갈등에 부여합니다.” 또한 연극은 일련의 불안한 의문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최후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우리에게 우리가 지구 위에서 무엇을 하는지 묻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운명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물질적 세계의 짓누르는 무게를 견딜 수 없다.”48) 그것은 이오네스코가 구체적인 방법으로 심리학적인 현실을, 그리고 도약과 인간의 꿈을 연극의 장면들로 보여줌으로서 부조리한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이 영혼의 탐구자는 독창성이 넘치는 특별한 탐구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 방법은 상상의 세계를 통해 그의 마음속에 있는 내부 세계의 진정성과 그 자신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의무의 희생자』에서는 시인 니콜라를 통해 자신의 연극관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나는 영감을 얻어서 (...) 또 다른 논리와 또 다른 심리학에서 영감 얻어 비(非)모순 속에서 모순을 내세우고 상식이 모순이라고 판단하는 것 속에서 비모순을 내세우겠습니다......우리는 정체성이라든가, 성격의 통일성 등의 원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변화와 역동성의 심리학을 위해서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개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 속에는 모순 적인 힘이나 비모순적인 힘만이 존재 할 뿐이죠. (..) 전 비이성적적인 연극을 꿈꾸고 있어요.”49) 이런 인식에서 이오네스코의 연극비평과 극작술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가 부제로 사용한 반희곡anti-pièce, 비극적 소극farce tragique, 자연주의 연극 등도 그러한 새로운 실험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연극 속의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아방가르드적 연극론을 주장하도록 하는 일, “당신은 이오네스코의 연극들을 보았는가?”50)와 같은 식의 대화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거론하는 등의 의미 있는 풍자도 희극적으로 읽힌다.

    이오네스코는 교리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연극에 반대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부응하는 은밀한 향수나 욕망, 공통된 고뇌”를 담고 있는 우주적 연극을 원했다. “어떤 비평가들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나 추상적인 휴머니즘을 옹호한다고 나를 비난한다. 사실 난 모든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오네스코가 브레히트를 비난하는 것은 그의 비타협성과 광신적 태도, 그리고 우유부단, 놀람, 순진성의 부재 등이다. 연극학박사 바르톨로메우스로 상징되는 베르나르 도르는 브레히트를 옹호하면서 “브레히트주의가 유행병이지만 건강에 이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열광적인 비평가는 “코뿔소 유행병주의에 관해서 그것이 건강에 이로운 병이라고 선언하는 등장인물 뒤다르”51)를 닮았다. 『코뿔소』의 작가에게는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들이 알리바이, 살인의지에 대한 변명, 파괴본능의 구실, 본질적인 공격성, 인간에 대한 인간의 깊은 증오심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명령에 반한다고 살인했다. 사회 정의란 이름으로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인류의 구원자들은 종교 재판소를 설립했으며 강제수용소를 고안해냈다. 사회의 수호자들은 도형장을 만들었고, 사회의 적들은 처형되었다. 아마도 도형장이 범죄보다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내게 모든 극은 모험이고 사냥이며 나에게 드러나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 대상에 대해 처음으로 놀라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존재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작품 앞에서 이러한 놀람은 이오네스코가 인정한 이상 존재감의 생성과정에 대한 인식과 대조를 이룬다. “극은 나에게 있어 내면의 무대를 투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꿈속에, 그리고 내 불안과 숨겨진 욕망들, 내편에서 보자면 연극의 소재를 찾을 권리가 있는 내부의 모순들 속에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연극은 - 나의 연극들은 - 거의 대부분이 고백이고 나는 고백만을 합니다....저는 내적 이야기를 무대 위로 투사하려고 노력합니다. 간혹 나에게 소우주에 대우주의 이미지가 있다고 말하면 갈가리 찢기고 분해된 내부세계는 어떻게 보면 보편적 모순의 상징이거나 그것의 반영일 것입니다.”52) 연극의 기능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이오네스코의 연극적 사유방식이다. 그는 아방가르드 연극인을 표방했으며, “내 연극은 내 시대의 연극”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대가 불안하고 불확실했던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45)Cf. Non, Traduit du roumain et annoté par Marie-France Ionesco, Paris, Gallimard, 1986. Recueil d’articles et d’essais écrits entre 1930 et 1933 en Roumanie. 이 비평집에서 이오네스코는 저명한 루마니아 시인들(Tudor Arghezi, Ion Barbu, Camil Petresco)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혹은 복권시킨다. 그의 글은 우상파괴론자와 같아서 매우 선동적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과 유머로 가득 찬 비평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 책은 왕실협회로부터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46)Ibid., p.45: “La poésie n’est pas pensée métaphysique, mais intuition méaphysique et cela lui évite d’être une pensée médiocre.”  47)Ibid., p.118: “Le mystère, omniprésent dans notre vie de tous les jours échappe au monde quotidien qu’il sous-tend, qu’il peut faire voler en éclats. Son essence est radicalement autre que celle de notre monde.”  48)Th II, L’Impromptu de l’ Alma, p.57; Cf. Notes et contre-notes, pp.65∼67; Journal en miettes, p.26.  49)Th. I, Victimes du devoir, p.226.  50)Rhinocéros, p.55.  51)Notes et contre-notes, p.311.  52)Ibid., p.226; Cf. Lectures de Ionesco, p.32.

    6. 결론

    이오네스코의 산문들 속의 수많은 단상과 기록들은 그의 이념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것은 연극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 작가의 드라마가 자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한 이오네스코는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 고뇌를 글쓰기를 통해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글쓰기 작업에 카타르시스적 기능, 즉 치료적 기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극작과 일기 속에 자기의 삶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면서 드러내는 것은 작가로서의 표현욕구 이상으로 과거의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의 산문들은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자유로운 형식의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나 작가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들에 대한 기록들, 즉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기록들은 그의 삶과 작품의 연속성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연극적 상황과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펼쳐지는 담화는 일기 속에 언급된 내용들을 더욱 체계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자나 관객은 거기에 나타난 작가의 생각들, 즉 문학, 시간, 종교적 신앙, 빛, 언어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즉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이오네스코는 ‘나는 왜 쓰는가?’53)라는 질문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서 ‘나는 왜 존재하는가’하고 스스로 물었다. 자서전적 글쓰기, 혹은 자서전적 연극은 작가가 내면일기에서 기도한 지속적인 자아 탐구의 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스스로를 투사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욕구의 결과물이며,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한 고뇌에 찬 질문에서 비롯한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작가는 경탄할만한 자신의 지성을 형이상학, 윤리학과 미학의 구조물로 건축해낸 것이다. 따라서 그 하부조직에 녹아있는 문학 외적인 일상적 삶의 활동 역시 문학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연극은 일반적인 다른 예술처럼 형이상학적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오네스코의 연극은 자동분석에서 태어났다. “나의 연극이 일련의 고백들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희곡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54) 그러나 그의 연극은 인간사회를 조롱 할 것이다. 즉 작가의 자아를 통해서 범세계적인 자아에 도달함으로써 그리고 항구적인 정신의 표현방식의 재발견, 망각되었거나 결코 변하지 않을 원형들의 새로운 표현들에 대한 천착이다. 아무튼 이 글에서 이오네스코의 모든 것을 상세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만 그의 내면적글쓰기와 극작품을 비교하며 그의 연극의 자전적 특성을 밝히고, 사상들의 일부를 밝히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이 작가의 연극에 대한 입장이 일관적이며, 그것의 저변에 실존적 삶이 있다는 점이다.

    53)Antidotes, Paris, Gallimard, 1977: cf. Pourquoi est-ce que j’écris? pp.313∼335.  54)Entre la vie et le rêve, p.57: “Mon théâtre peut sembler être une série de confessions, que j’ai l’air avouer dans mes pièces des choses inavoua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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