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like to live as a “Working-Mom” in Korea?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기: 직장인엄마의 다중역할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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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e present study was a phenomenological inquiry in which working-mom’s inner experiences were explored and their multi-level experiences were described and interpreted. Six working-moms who have at least one school-year aged children and have never stopped their career were interviewed. By employing the phenomenological-hermeneutical analysis, authors revealed the following major findings. Working-mom’s experiences could be consisted of major themes, including 1) Living as like running a race on the track with two heavy sand bags in their legs, 2) Living with uncomfortable other’s eyes on at working moms and their children, 3) Making their own perfect decisions under various crises, 4) Experiencing richness coming from work and family, and 5) Showing working-mom’s better strategies, such as to bring out understanding others, to cooperate with others, and to reframe their mind-sets positively. Authors discussed the five core themes which were related to the working-mom’s identity formulation process.


    이 연구는 한국의 워킹맘들이 경험하는 일상 생활세계의 현상적 경험을 밝히고자, 이들의 생활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그들이 경험하는 중층적 의미들을 해석한 현상학적 연구이다.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 중에서 경력을 단절하지 않은 6명의 참여자들과 심층면담을 실시했으며, 면담과 동시에 진행된 순환적 분석과정을 통해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연구 결과, 한국의 워킹맘들이 경험하는 일상 생활세계의 체험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참여자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세계의 긴장 속에 처하여 전력질주하고 있었으며, 둘째, 워킹맘 자신과 자녀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과 함께 살아가면서, 셋째, 워킹맘으로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나만의 오롯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넷째, 일과 가정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드는 부요한 일상을 경험하면서, 다섯째, 경계선에 서서 터득하는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 결과로부터 도출된 핵심 주제들을 워킹맘의 정체성 발달 과정과 여성 심리 및 상담적 함의와 관련하여 논의하였다.

  • KEYWORD

    working-mom(employed mothers) , phenomenological inquiry , work-family experience , multiple roles , existential decision

  •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1980년대 이후 점차 증가해왔으며, 특히 기혼 여성의 비율은 미혼에 비해 급격히 높아졌다(손승우, 2006). 그러나 연령에 따른 취업률을 살펴보면, 25~29세까지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65.6%로 가장 높은 고용률을 보인 반면 30~34세에는 50.1%로 급격하게 감소한 후 40세 이후에 다시 증가하는 M자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전기택, 2011) 이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자녀양육이 여성의 취업을 중단시키는 중대한 요인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이다(이내영 외, 2007; 최윤정, 문상호, 신충식, 2009). 특히 30∼34세의 여성 고용률이 63.8%에서 63.4%로 약간의 감소 경향만을 보이는 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해 볼 때, 한국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 양육이라는 가정에서의 역할과 병행해야 하는 시기에 직장 경력을 단절하는 경향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진숙, 최원석, 2011; 전기택, 2011). 이는 곧 자녀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한국의 여성들, 소위 워킹맘1)으로 살아가는 삶이 직업을 포기할 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과 가족의 갈등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일과 가족을 병행하는 데에서 오는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며 특히 가정생활이 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여성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가영희, 2006; 장재윤 & 김혜숙, 2003). 여러 연구자들은 여성이 가정에 충실한 것을 자신의 기본적 성역할로 인지하기 때문에 전통적 여성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어머니 역할을 병행하고 있는 워킹맘들이 겪는 갈등이 크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박혜경, 2009; 이주일 & 유경, 2010; 장재윤 & 김혜숙, 2003). 특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의 교육 문제가 어머니 역할의 핵심이기 때문에(최윤정, 문상호, 신충식, 2009),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의 경우 일과 가족을 병행하는 삶 속에서 가장 큰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며 여러 연구자들과 기관이 워킹맘들의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 및 연구를 제안하고 진행해왔지만(전기택, 2011; 최윤정, 문상호, 신충식, 2009; 최윤정 & 김계현, 2009),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최전선에 있는 워킹맘에게 적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이하나, 2010). 워킹맘과 관련된 기존의 노력이 적실하지 못했던 이유 중하나는 워킹맘 개개인이 실제로 일상에서 어떠한 내적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 관심과 깊이있는 탐색적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채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양립해야 한다’는 당위적 목적을 먼저 세워놓고, 이를 위한 개입방법들을 일방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김주엽, 2006). 따라서 한국의 워킹맘들에게 적실한 접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워킹맘 여성 개개인이 가정과 자녀양육, 직장일을 병행하는 일상을 어떻게 경험하며, 어떠한 주관적 의미세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워킹맘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에 터할 때에야 워킹맘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담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직장여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대개 자녀양육과 직장일을 병행하는 워킹맘 여성보다는 전체 여성을 대상으로 했거나 연구자의 가정을 바탕으로 선택한 변인간의 관계를 고찰한 경우가 많아(남궁은정, 신성진, 허경호, 2008; 유성경, 한영주, 조윤진, 2011; 천혜정, 이지선, 2010; 최윤정, 2010; 최윤정, 2011; 최윤정, 김계현, 2009) 워킹맘 개개인의 경험 세계과 그 숨은 의미를 치밀하게 탐색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워킹맘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대개 워킹맘 개인의 내적 경험보다는 ‘자녀 교육’(최윤정, 문상호, 신충식, 2009), ‘육아 경험’(이내영 외, 2007) 등 자녀와 관련된 워킹맘의 인식을 탐색한 경우가 다수이다. 워킹맘 개인의 내적 경험을 탐색한 이숙현, 이세인, 김인지(2010), 김지훈 (2011)의 연구는 워킹맘들의 주관적 경험을 질적 연구방법으로 탐색하여 의미있는 결과를 제시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참여자들을 해외거주 워킹맘에 국한했거나 일과 가정을 택일 한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등 한국 현실에서 엄마와 직장인이라는 다중역할을 하는 워킹맘의 경험적 의미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시도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상담 분야에서 진행된 관련 연구들은 대개 여성 진로, 특히 여대생을 대상으로 성인진로 발달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볼 수 있다(우영지, 이기학, 2011). 그러나 최근 기혼 직장여성을 대상으로 한 양적 연구들(최윤정, 2010; 유성경, 한영주, 조윤진, 2011)이 진행되면서, 주로 다중역할 갈등을 완화하는 요인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상담적 개입의 시사점을 제시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워킹맘 여성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는 상담학적 관점에서 여성 개인의 주관적 경험 세계를 있는 그대로 탐색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양적연구의 결과들을 워킹맘들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확인하고 풍부하게 기술함으로써 보다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상담적 개입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어머니와 직장인이라는 다중 역할 속에서 직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질문은 현 시점에서 한국의 워킹맘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진정한 내적 현실에 터한 적실한 도움과 개입을 시도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어머니라는 여성의 전통적 돌봄 역할과 동시에 전일제 직장인이라는 다중 역할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워킹맘 여성들이 일상의 의미를 어떻게 경험하고, 자신만의 생활세계 속에서 다중역할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가하는 연구 문제의 탐색을 통해 워킹맘 여성들의 경험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이 연구는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생활세계와 그 안에서의 주체적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그 다층적 의미들을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상학적 질적 연구방법을 적용하였다. 질적 연구의 현상학적 접근은 선(先)이론적 전제나 선입견 없이 “사태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돌아가서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인식론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의식이란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으로서 어딘가 무엇인가를 향해 있음을 밝히는 지향성(intentionality)으로 특징지어지며 세계경험과 직접적이고 원초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현상학적 질적 연구에서 해석하는 인간 경험의 의미는 주관과 객관이 함께 작용하는 내적인 의미, 즉 생생하게 체험되는 구체적인 현실의 현사실성(現事實性, facticity) 차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며, 그 체험적 의미(lived meaning)와 본질 구조를 드러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Heidegger, 1972; Husserl, 2009; 박남희, 2009; 유혜령, 2011). 이와 같이 현상학적 연구가 경험의 객관적 사실 여부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경험하는 주체의 생생한 체험적 내적 의미와 그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지각, 즉 현사실성의 진실을 다룬다는 면에서 워킹맘들의 경험 이해를 위한 연구 방법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적용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워킹맘 여성들 개개인의 일상적 경험과 그 의미연관성의 생활세계에서 구성된 내적 현실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한 도움과 개입의 방향을 제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1)‘워킹맘(working mom)’이라는 용어는 그대로 번역하면 ‘일하는 엄마’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인 여성들을 통칭하여 쓰이고 있다. 국립국어원(2010)은 외래어인 워킹맘을 대체할 용어로 ‘직장인엄마’를 선정했으나 언론이나 매체를 비롯한 한국사회에서는 워킹맘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중앙일보, 2010).

    방 법

      >  연구참여자 선정 및 윤리적 고려

    한국에서 살아가는 워킹맘의 삶을 가장 집약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여성이라고 볼 수 있는 학령기 자녀를 둔 직장여성 6명이 연구에 참여하였다. 참여자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한국에서는 자녀교육의 문제가 어머니 역할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최윤정, 문상호, 신충식, 2009), 초등학교 진입 이후 대학입시까지의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표집하였다. 또한 직업 영역에서도 경력을 단절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 자녀의 학령기 진입 시기를 일과 가정 다중역할을 병행해온 워킹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둘째, 현상학적 질적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가 연구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펼쳐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미세계를 잘 드러내어, 연구자들이 참여자의 세계를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면담 과정에서 현상학적 연구에서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개인들이어야 한다(Creswell, 2010, p. 175)”는 점을 고려하여 자신의 정보를 기꺼이 제공해주며 풍부하게 언어화할 수 있는 참여자를 선정하였다. 셋째, 본 연구 참여자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 연구자가 수월하게 접근가능한 접근용이성(accessibility: Creswell, 2010)이 있는 대상을 참여자로 선정하였다. 이상의 선정기준에 적합한 참여자들을 연구자들의 개인적 친분, 혹은 소개를 통해 표집하였다. 기존 연구(손승영, 2005)에서 보고한 것과 같이, 워킹맘의 경우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심층 인터뷰 참여를 수락할 참여자를 표집하여 면담을 진행하는 데에 대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2011년 1월부터 6월까지 각 참여자들을 2회 면담하였다. 자료분석은 면담과 동시에 진행하였으며, 참여자들의 경험의 본질적 성격과 의미를 해석해내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이를 기초로 하여 추후면담의 참여자를 선정하는 이론적 표집방법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참여자의 인터뷰와 분석을 통해 직종과 종교의 유무가 경험의 본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확인하고자 이후에는 직종과 종교를 고려하여 참여자를 표집하였다.

    연구의 목적과 내용, 전적인 자발적 참여 및 자유로운 중단 권리, 비밀보장의 한계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연구자가 직접 설명했으며, 연구의 개요 및 참여 동의서를 서면으로 제시하여 이에 동의한 후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참여자들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었고, 6명중에 4명의 참여자들이 교수, 변호사, 카피라이터, 대기업 연구원으로 소위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는 학령기 자녀를 두면서 경력단절을 하지않은 워킹맘 여성들 중에서 연구 참여자를 표집한 결과였으며, 일정 부분 한국의 워킹맘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연구 참여자의 기본정보를 표 1에 제시하였다.

      >  현상학적 연구 방법의 절차

    이 연구는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이 경험하는 생활세계와 이들의 내적 체험의 본질을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상학적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였다. 현상학적 원리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van Manen(1990)의 연구절차를 다음과 같은 네 단계로 구성하여(권효숙, 2009)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째, 체험에 대한 지향성을 바탕으로 연구문제를 형성하고 연구자들의 선이해를 성찰하는 단계이다. ‘인간의 의식은 항상 그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Husserl, 1976)’라는 지향성(Intentionalität) 개념에 충실한 단계로, 주제적 현상에 대한 강렬한 지향성을 유지하는 것과 체험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포함된다. 먼저 연구자들은 ‘의미있게 경험한 현상의 본성(van Manen, 1990)’, ‘자신의 삶에서 강렬한 의미가 결집된 현상(Mustakas, 1994)’에 기초하여 연구주제와 질문을 형성하였다. 실제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경험자들로서 연구자들은 주제에 대한 강렬한 지향성을 갖고 있었고, 논의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개개인의 경험에 대한 심층 연구의 필요성에 적극 동감하며 연구 주제와 문제를 형성했다.

    강렬한 지향성을 유지하되, 세계에 대한 자연적 태도를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판단 중지하고 선험적 환원을 시도하기 위하여 연구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가정과 선이해를 점검하고 이를 드러내어 확인하는 과정을 연구 초기에 가졌다. 이와 더불어, 연구자들의 기존 경험과 가정이 현상에 대한 이해 및 해석학적 순환2)으로 발전하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연구자들이 자신을 성찰하여 토의하는 과정을 가졌다. 이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이 인식한 가정과 선이해는 주로 ‘어느 한 집단에 완전히 소속될 수 없음으로 인해 갖는 심리적 혼란이 가중되어 있는 삶일 것이다’, ‘내적 갈등과 혼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오히려 인식하고 결단하여 새로운 정체성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겪을 것이다’ 등으로 드러났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발견하게 된 연구자들의 선입견을 끊임없이 검토하면서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체험과 생활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두 번째, 경험을 겪은 대로 탐구하는 자료 수집 단계이다. 참여자들의 경험에 대하여 연구자의 선입견이나 가정없이 ‘겪은대로’ 탐구하기 위하여 비구조화된 심층면담을 실시하였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어떠합니까?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해주세요”라는 개방형 질문으로 시작하여 참여자의 진술에 따라 주제를 좁혀가는 깔대기와 같은 방식으로 면담을 진행하였다. 심층면담을 통한 자료수집과 분석은 순차적이 아니라 순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김영천, 2006), 이전의 분석에서 드러난 현상의 본질, 그에 관한 내용들은 이후 면담에 포함되어 확인•심화되었다. 면담은 1회당 1시간 반에서 2시간 반이 소요되었고, 주로 참여자의 직장 근처에 있는 조용한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집중적 면담이 필요하다는 연구자들의 판단에 따라 각 참여자당 1회에서 3회의 면담이 이루어졌으며, 면담 내용의 녹음을 거절한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음성자료로 녹음되어 전사되었다. 녹음을 거절한 경우에는 면담자가 주요한 키워드를 기록하였으며, 면담 직후 생생한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작성하였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개념인 현상의 본질직관을 위한 ‘상호주관성’ (Intersubjektivität)에 충실하기 위하여(유혜령, 2009), 같은 관심사를 갖는 공동연구자 3인이 격주 단위로 모여 참여자들의 자료를 토대로 해석과 지속적 협의과정을 거쳤으며, 현상학적 질적 연구방법론에 정통한 교수 1인에게 원자료와 함께 해석의 과정을 여러 차례 검증받았다. 또한 워킹맘들의 경험에 관한 문헌, 연구를 비롯하여 다양한 출처에서 통찰을 얻었으며, 면담을 통한 자료 수집과 동시에 연구자의 느낌과 해석을 녹음한 자료, 연구자들이 분석을 진행하며 떠오른 해석 자료를 수집하였다.

    셋째, 현상학적이고 해석학적인 반성을 통한 주제구성 단계이다. 본격적인 자료 분석단계로, 전사된 자료를 세 명의 연구자들이 각각 전체 내용의 흐름을 익힌 후 의미단위로 나누어 핵심 어구를 찾고, 이들을 모아 주제화하는 지속적인 비교와 논의 과정을 포괄한다. 면담이 진행된 직후, 상담을 전공한 석사과정학생이 면담 내용을 전사하였으며 면담을 진행한 연구자가 이를 확인한 후 공동 연구자들에게 전사 자료를 보냈다. 세 명의 연구자는 각각 자료를 의미단위로 나누고 가능한 참여자들의 생활언어, 즉 생생한 체험을 담고있는 일상언어를 포함한 핵심어구로 기록하고, 함께 모여 핵심어구들의 공통적 성격을 찾아 대표하는 주제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van Manen(1990)이 제시한 생활세계 실존체-체험적 시간, 공간, 관계, 몸-를 해석의 길잡이로 사용했으며, 논의 과정을 거쳐 워킹맘들의 경험의 의미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주제들을 결정하였다. 면담과 동시에 분석이 진행되었으며, 분석한 내용은 다음 면담에 하나의 참조로 활용되는 순환 과정을 활용하였다. 이 과정을 거쳐 도출된 주제와 내용들을 참여자들에게 직접 전달하였고,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받은 내용을 다시 연구자들의 해석과정에 포함시켰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나의 경험이 잘 포함되었다.’, ‘나의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나타냈으며, ‘워킹맘의 삶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실제 워킹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을 강조하면 좋겠다’ 등의 피드백이 해석 과정에 포함되었다.

    넷째, 현상학적이고 해석학적인 글쓰기 단계로 실제 논문 작성의 단계이다. 현상학적 연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단계로, 연구자가 내적인 반성과정을 거쳐 현상의 의미를 민감하고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언어를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또 하나의 해석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유혜령, 1998). 연구자는 참여자의 일상 언어에 집중하고, 각 주제의 의미를 잘 대표할 수 있는 예문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글쓰기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쓰여진 글의 표현 하나하나가 워킹맘 체험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가 하는 질문을 지속하며 연구자간의 논의를 통해 지속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2)Heidegger(1972)에 따르면 논리적 순환은 피해야할 악순환인 반면에, 해석학적 순환은 어떻게 그 순환구조에 잘 들어갈 수 있는지가 주관심사이다(p.7).

    결 과

    현재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 즉 엄마라는 여성의 전통적 돌봄 역할과 동시에 전일제 직장인이라는 전통 남성적 역할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특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현상이 이들로 하여금 일하는 엄마, 혹은 엄마인 직장인이라는 다중 역할수행의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한 해석학적 순환과정을 거친 결과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이 경험하는 생활세계의 의미는 1) 두 세계의 긴장 속에 전력질주하기 2) 불편한 시선과 함께 살기, 3) 크고 작은 위기 속 나만의 오롯한 선택하기, 4) 일과 가정을 넘나드는 부요한 일상, 그리고 5) 경계선에 서서 터득하는 실천적 지혜라는 주제로 집약할 수 있었다.

    각 주제 및 소주제들을 표 2에 요약하여 제시하였다.

      >  두 세계의 긴장 속에 전력질주하기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삶은 일과 가정이라는 양쪽 영역 모두에서 치열하게 매진하는 삶이었다.

    제한된 시간과 육체적 에너지 속에서 모든 물리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양 트랙을 달리고 있는’ 이들은 어느 한 쪽에도 완전히 몰입하 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양 쪽 발에 모래 주머니 달고 뛰는 전력 질주”와 같다고 표현 하였다.

    “모래주머니 달고 뛰는 전력질주”

    : 일과 가정이라는 양트랙을 오가며 주어진 시간과 체력의 한계 속에서 전력함

    직장에서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남자 동료나 싱글 여성들의 경우와는 달리, 워킹맘들은 직장에서도 가정 일(예를 들어 하교 후 아이들 관리, 전화로 일정 조정하기 등)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고 밀도있게 움직여야 했다. 절대적 시간과 여건이 열악하지만 워킹맘이라는 개인적 이유로 직장일의 성과가 낮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더 빨리 효율, 집약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몸에 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퇴근 후에 ‘또 하나의 직장에 출근’(1, 3, 4, 6)한다고 표현하는 이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잡으면 100개도 되고 200개도 될만큼 끝없는 엄마의 일(3)’을 해내느라 또다시 효율, 집약적으로 집안일에 전력하고 있었다.

    한참 정신없이 바쁘고 그럴 때는 집으로 가는데 또 하나의 직장에 출근하는것같은 느낌인 거지.. 집에 가서 저녁도 해야하고.. 가자마자 먼저 해야하는게 이제 밥 준비하는 거. 그니까 모든 게 빨라지지. 빨리 빨리 하는 음식만 하는거지. 빨리 빨리 저녁을 차리고 그 다음에 애들 숙제 한 거 공부하는 거 봐주고.. <중략>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그러다보면 자러 누울 때까지 엉덩이 한 번 못붙히는 거지. (참여자 3)

    “편견과의 전투”

    : ‘여성’, ‘아줌마’, ‘애엄마’라는 편견의 삼중고와 맞서 싸움

    이렇듯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전력을 다하는 워킹맘들은 절대적 시간의 부족, 체력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으나, 이들의 전력 질주를 방해하는 ‘모래 주머니’는 여러 일을 해야하는 물리적 한계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직장에서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 여성, 게다가 ‘애 까지 달린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직장인으로 ‘당당하고’ 싶은 워킹맘들의 발목을 잡는 버거운 요소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자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잘해야 정상이 된다’고 말하는 참여자 5(변호사)는 여성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와 유사하게 남성이 주류인 조직 속에 있는 참여자들은 ‘여자라 책임감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임신 중에도 남들과 똑같이 밤샘근무를 하고, 자신의 실력을 ‘정상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남자가 100의 일을 하면 최소 150의 일을 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일에 매진해야 했다(참여자 6).

    국내 유수의 대기업 부장인 참여자 2는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아줌마이기 때문에 전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워킹맘들의 직장생활과 평가에 큰 걸림돌이 되는 점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참여자 2의 기업 전체 임원 천여명 중에 단지 5명만이 여성이고, 그 여성들 대다수가 싱글이라는 점이 직장에서 여성들의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교적 남녀 차별이 적고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될 것으로 여겨지는 교육직종에 있는 참여자들에게서도 동일한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었다(참여자 3, 4).

    이렇듯 현재 한국의 워킹맘들이 경험하는 생활세계는 ‘직장은 공적 영역, 가정은 사적영역’이라는 구분이 명확했고, 유독 워킹맘 여성의 생활세계는 사적 영역이 공적영역에 투과되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규범이 존재하는 곳이었다(Nippert-Eng, 1996). 남성의 경우에는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 투과된다고 해서 비난 받지 않지만, 여성은 단지 출산이나 급박한 위기 상황과 같은 때에만 이러한 투과가 허용되며 여성들 스스로도 이를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참여자 3은 자신이 마음놓고 쉬어도 되는 때는 오로지 공식적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 즉 “큰 애 낳고 두 달, 둘째 낳고 두 달 그렇게 딱 네 달” 뿐이었으며, 참여자 5 또한 “남들은 애 낳고 힘들다는데 나에겐 그 3개월이 천국 같은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준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워킹맘 여성들에게도 적용되었는데, “여자라서 욕먹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해온 참여자들은 자신과 달리 가정을 핑계로 ‘대충’ 직장생활을 하는 동료 워킹맘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참여자 6은 애 때문에 빨리 퇴근하는 워킹맘 부하직원이 너무 보기 싫었고, ‘그들의’ 고충을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엄격한 구분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변신모드”의 삶

    : 가정에서는 완전한 엄마, 직장에서는 가정을 잊고 완전한 직장인으로 변신함

    참여자들은 직장과 가정 각 영역에서 완전한 직장인, 완전한 엄마로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집에서 나는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는 참여자 2의 말처럼 가정에서 자신의 모습은 워킹맘이 아닌 ‘그냥 엄마’로서 평가 받는 것이고, 일터에서의 자신 또한 ‘그냥 직장인’으로서 평가받는 것이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두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는 워킹맘들은 자신이 ‘지금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그냥 엄마’가 되고, ‘그냥 직장인’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참여자 1은 아침마다 회사에 도착하면 “이를 악물고 웃는 낯을 만들어서 OO엄마를 잊어버리고 직장인 000로 변신”하려고 노력했다. 또다시 저녁이 되어 퇴근할 때면 현관 문 앞에서 “나는 OO엄마다 나는 OO엄마다”를 속으로 다짐하며 엄마로 변신하는 의례를 해야 했다고 이야기 했다.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절단능력’이라고 표현한 참여자 4, 5 또한 집에 가면 일 생각하지 않고, 회사 오면 애들 생각을 차단하는 능력이 워킹맘으로 살면서 계발되었다고 하였다. 외부에서 보는 워킹맘의 삶은 ‘아이를 낳고도 일을 놓지 않는 커리어우먼이고, 남편과 아이들 교육까지 챙기는 유능하고 성공적인 여성’이었지만, 양 영역에서 ‘기본만하고 살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은 그 기본 유지를 위한 대가를 홀로 치르며 변신모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난들 날마다 변신하는게 쉬웠겠어요?’하는 참여자 1의 절규 섞인 말처럼 여러 역할에 필요한 사람으로 시시각각 변신하는 것은 개인에게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투쟁과정이며, 아이를 위해 ‘독한 엄마’, ‘불량 식품같은 엄마’가 되기로 하는 뼈아픈 선택이었다.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날마다, 순간순간 바꾸며 산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역할에서 역할로의 변신 투쟁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중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의 전이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다. 워킹맘들 역시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유독 ‘엄마 역할’과 ‘직장인 역할’ 간의 전환 과정만을 ‘변신을 위한 투쟁’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워킹맘들에게 있어 엄마와 직장인이라는 두 역할은 상호영향, 혹은 침투해서는 안될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참여자들에게 있어 엄마역할은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자신의 한 기능이나 역할정도가 아니라 전 존재를 평가하는 결정적인 표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평가는 비단 아이의 육체적 양육만이 아니라, 아이의 성격이나 정서, 그리고 학교성적과 진학여부 등 광범위한 성과를 모두 포괄한다. 엄마와 직장인 두 영역에서의 성공은 환영받을만한 일이지만, 만일 그 둘을 병행하느라 ‘엄마 역할’을 게을리 할 경우 그것은 복구될 수 있는 부족이나 실수가 아닌 치명적인 실패라는 비난이 가해지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었다. 연구 참여자들 및 참여자들의 주변인들은 이러한 처벌적인 인식의 위험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깊이 내면화하고 있었으며, 기존에 갖고 있던 ‘나의 꿈과 개인적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성취 욕구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침해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워킹맘들에게는 사적 영역인 엄마 역할이 공적 영역인 직장에 방해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각 영역에서 철저한 상호배타적 자세로 ‘그냥 직장인’, 그리고 ‘그냥 엄마’로서 살아가기 위해 ‘변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불편한 시선과 함께 살기

    연구에 참여한 워킹맘들은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는 불편한 시선, 즉 남편과 가족, 주변 사람들, 전업 주부들 등의 다양한 시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면담 과정에서 이러한 시선에 대해 느끼는 불편한 부대낌을 강하게 토로하였다. Sartre(1992)가 말한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는 나’3)라는 이중적 현상 속에 숨어있는 의미처럼, 주변인들의 시선에 대한 워킹맘들의 인식은 이들 스스로 내면화한 여러 가치관들 간의 상충에서 발생하는 내적 불편함 속에 살아감을 의미한다.

    엄마인 나에 대한 시선

    : “모성애 없는 독한 엄마”인가 갈등함

    백 일된 아이를 지방에 있는 시댁에 맡겨놓고 사법 연수원 생활을 해야 했던 참여자 5는 “독하다”, “어떻게 애를 떼어놓고 살 수 있냐?”하는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인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하였다. 절대적 공부량이 많았던 연수원생활에서도 그녀에게 몸이 힘든 것보다 더 참기 힘들었던 것은 ‘모성애 없는 독한 여자’라는 주변의 시선이었다. 특히 이성적으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동의했지만 심정적으로 은근히 ‘여자라면 애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남편의 비난섞인 태도는 죄책감과 서운함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이러한 시각과는 정 반대로, 딸의 사회적 성취를 적극 독려해온 친정어머니는 ‘주말에 왜 시댁에 가야 하냐? 그냥 눈 딱 감고 2년 동안은 애를 잊어버리고 일에만 전념해라’고 강하게 말하셨는데, 양 극단의 메시지 속에 ‘끼여 있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서운함이 면담 시에도 강하게 올라왔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고, 기회만 닿으면 셋째까지 낳고 싶다고 할 만큼 모성이 강한 그녀는 그 당시 ‘배고픈 것처럼 본능인 모성애’를 누르고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비난했던 주변의 시선에 대해 ‘생각 얕은 것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외부의 모순된 시선, 비난들은 사실 워킹맘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더욱 참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모성, 그리고 그 모성의 외침을 이성적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의 가벼운 시선과 말들은 워킹맘의 내적 갈등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평가적 시선

    : “엄마의 손길없는 아이”라는 평가로 인한 불안함

    워킹맘들에게 가장 불편한 시선 중의 하나는 ‘자녀의 상태에 대한 외부의 평가적인 시선’이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겪게 되는 크고작은 위기들에 대해 ‘엄마가 일해서 애가 저래’라는 귀인이 되는 순간, 워킹맘으로서의 심리상태는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다, 아무래도 엄마가 일해서 애들이 기가 안살아서 그런 거다”는 지인의 말 한마디가 참여자 2에게는 일을 그만둘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워킹맘의 가장 큰 문제는 엄마의 불안’이었다고 말하는 참여자 1 또한 “학교 선생님과 친구 엄마들이 일하는 엄마를 둔 애를 어떻게 볼까?”하는 불안을 해결하는 것이 워킹맘 자신과 아이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핵심 열쇠였다고 말한다. 일하는 엄마를 둬서 그렇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더 민감하게 잘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너무 잘하려고 해도 왜 저렇게 유난이야 하고 욕먹고, 안해도 그럼 그렇지 하고 욕먹게 되더라”고 토로한 참여자 3은 이젠 그 시선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전업주부들과의 불편한 관계

    : “경계하는 시선”으로 인한 불편함

    워킹맘 자신과 아이를 보는 불편한 시선은 특히 전업 주부들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부담을 초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업 주부 엄마들은 ‘직장다니는 나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샘을 내며 재수없게 볼 것’이라고 의식하는 참여자 3은 전업 주부들 사이에서 워킹맘이기 때문에 겪었던 따돌림 상처를 아직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 워킹맘들이 전업주부들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었으며, 전업 주부들이 갖는 아이 교육에 대한 정보와 노력을 하나의 권력으로 인식하고 그 권력에서 배제된 상태임을 이미 수용한 상태였다(참여자 1, 2, 3, 5). 이들은 전업주부들만의 그룹에서 갖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계심’,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를 하나의 권력으로 사용하며 ‘나와 다른 여성’을 견제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여성으로서, 모양은 다르지만 유사한 편견 가운데 살아가는 워킹맘과 전업주부들은 어떤 이유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경계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논의과정을 통해 크게 두 가지로 전업 주부와 워킹맘 간의 불편한 관계 현상을 해석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소수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수자내의 분열현상으로 보는 해석으로, 남자에 비해 적은 사회적 기회를 갖고 있는 여성이 소수자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파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작은 파이를 두고 상대를 제거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제로섬(zero-sum) 경쟁 대상으로 서로를 인식하기 때문에, 같은 여성들이 내부적으로 결속하기보다는 상대를 비하하고 낮추며 자신의 생존을 유지해가는 구도가 핵심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Wolfe의 자궁가족 논의에서 제시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해온 현상으로, 비공식적 통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온 여성이 이를 지키기 위해 비전통적 성역할을 하는 여성을 비공식적으로 가치절하 하는 소수자로서의 전형적 행태로 볼 수 있다(강준만, 2009). 두 번째는 현재 한국 사회가 이상화하는 여성상이 과도하게 모순되어 있어서, 전통적 여성상과 비전통적 여성상이 상존하며 이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나와 유사한 집단과의 연대’를 방어적으로 구축하고 자신과 다른 방향을 삶을 사는 여성들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업주부 여성이든 직장여성이든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미묘한 방식으로 서로의 삶의 방식을 평가절하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크고 작은 위기 속 나만의 오롯한 선택하기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소소한 위기로부터 시작하여 중대한 위기까지, 워킹맘으로서 여러 번의 다양한 위기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기들은 대체로 자녀와 관련된 것이거나, 직장에서의 좌절, 혹은 경제적 위기라는 형태로 찾아왔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통해 연구 참여자들은 직장여성이자 엄마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됐으며,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하는 구체적 고민에서부터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하는 자기정체성과 삶의 근본방향성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파도처럼 넘나드는 위기 속에서 이들 대부분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이건 내가 한 선택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오롯한 선택과 결단을 하는 실존적 체험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와 함께 오는 워킹맘의 위기

    : “일을 계속해야 하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위기를 겪기 마련이지만, 참여자들에게 있어 위기는 워킹맘이라는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대개 자녀와 관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참여자 1은 자주 아픈 아이를 혼자 돌봐야하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직장에서도 과중한 업무를 단기간에 ‘무섭게’ 처리했어야 했던 시기를 자신의 절대절명 위기로 기억한다. 또한 대다수의 참여자들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최고의 위기상황으로 거론하고 있다. 학령기 진입은 아이양육의 다양한 측면, 즉 공부 뿐 아니라, 성격이나 정서, 친구관계 등에 대한 공식적 평가를 받는 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워킹맘들에게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일으키는 위기로 다가왔다. 특히, 엄마의 노동력을 수시로 필요로 하는 학교상황을 접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으며 “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참여자 2는 자신이 일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함께,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려고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일을 그만둘 마음을 먹기도 했다. 아이의 야뇨증, 둘째 아이의 유산 위험, 아이의 잦은 병치레 등 아이들과 관련된 여러 신체적, 심리적 문제들이 참여자들에게는 크고 작은 위기상황이 되었고, “보스가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매일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둘까?”를 일 년 넘게 생각하며 직장에 다니기도 했다(참여자 1, 2, 4, 5).

    자녀와 관련된 문제 외에도 참여자들은 직장에서의 좌절, 경제문제, 건강 문제 등의 위기를 맞으면서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였다. 예를 들어,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직장에서 CEO까지 하고 싶다”는 포부가 강했던 참여자 6은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승진좌절을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함께 입사한 남자 동료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할 때, 자신은 어린 아이들 때문에 일찍 퇴근해야 했고 결국은 다른 점수가 더 높았던 자신보다 남자 동료가 승진을 했던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위기였다. 자신이 엄마가 아니었으면, 워킹맘이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않았을 좌절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삶의 근본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워킹맘들은 일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을 넘어서 자신의 인생방향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에 대한 실제적 고민에서 시작하여,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에게 일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신의 삶의 총체적 혹은 근본 방향을 점검하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크고 작은 위기 속 실존적 결단의 과정

    :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 참여자들은 어떻게, 혹은 어떤 이유로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해왔는가?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나 기타 위기 속에서 일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이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워킹맘으로 살아온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연구자들은 참여자들이 여러 위기 상황 속에서 거쳤던 선택과 결단과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겪었으며, 이를 통해 ‘나 만의 선택’을 하고 이선택을 기반으로 삶을 경영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본능과 같은 모성애를 뿌리치면서까지 나와서 내가 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거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졌던 참여자 1, 2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그야말로 몸부림쳤다’. 독서, 기도와 자아성찰, 모델을 찾고 조언을 듣는 등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근본적 의미를 확인했을 뿐 아니라, ‘나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면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내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중요한 사역이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 참여자 1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아이를 위해 딱 십 년만 아이에게만 집중하면서 일과 병행하자”는 결단을 했고, 십 년 동안 개인생활, 사회적 관계를 전부 포기하고 살아왔다. “내가 일을 해서 아이들이 기가 죽었다”는 자괴감을 가졌던 참여자 2 또한 ‘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직장일도 귀중한 일’이라는 교회 목사님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일을 그만두지 않기로 결단하는 과정을 거쳤다. 육아 휴직 등을 통해 ‘나는 집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사람’ 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아이들에게 모범엄마는 아니지만 때로는 필요한 불량식품 엄마처럼 살겠노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열망이 컸던 참여자 5와 6는 아이 양육과 직장에서의 위기속에서 좀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참여자 1, 2처럼 ‘일의 근본적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내가 일을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금 그만둘 수는 없다’는 기본 가정 하에 일의 영역에서 자신의 목표를 낮추어 실현가능한 대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자 5는 그 과정에서 ‘그동안 이뤄놓은 것이 아깝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 양육을 위해 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했던 ‘욕심’을 접었고, 현실적으로 병행이 가능한 직장을 선택하면서 오히려 ‘잊고 있던 변호사로서의 사명’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참여자 6 또한 ‘편안하게 가면서 애들 챙기라’는 동생의 조언을 들으면서 속상했지만, ‘정답은 없는 거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 기왕 하는거 이 직장에서 탑(top)까지 가보련다’ 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치열하게 개발하는 부서에 남아있기로 결단하기도 했다.

    선택과 결단 경험의 본질

    : “나만의 오롯한 선택”

    연구에 참여한 워킹맘들은 위기 상황에 부딪히면서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지속할 것인가’, ‘일과 가정 어느 곳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에서부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고민의 강도와 결론은 참여자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이들 경험의 본질이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나의 삶’을 선택· 결단하였다. 위기와 선택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크고 작은 사건 속에 이루어지는 연속적 과정이었으며 이 과정 속에서 때로는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잡으면서 ‘나의 오롯한 선택’을 시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과정에 각자의 가치관과 신앙, 주변 사람들의 조언, 그리고 친정 엄마에게서 받은 메시지와 모델링 경험 등을 되새기고 그 목소리의 의미를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 종교를 가진 참여자들의 경우,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대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결단에 대한 큰 힘과 지지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깊이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원가족에서 과거에 경험했던 친정엄마의 모습은 이들이 현재 선택과 결단을 이루는 과거의 파지로서 구성적 지평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 참여자 4는 5살짜리 아이가 전염병에 걸려 집에 혼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팠지만 ‘조금의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학교에 출근했던 자신의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하자, 그녀는 자신과 같은 교사였던 엄마가 항상 학교일을 우선으로 했던 것이 자신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습득되었던 것 같다며 친정 엄마의 모습과 중첩되어있는 자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한 명의 참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일하는 엄마를 둔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그들 중 대다수가 이들의 직장생활을 적극 독려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여성으로, 워킹맘으로 최초의 모델일수밖에 없는 친정 엄마와의 관계, 친정 엄마에게서 받은 메시지와 삶의 방식은 강력한 관계의 끈을 형성하며 체험적 동일시 현상을 이루고 있었다(참여자 1, 2, 4, 5, 6).

      >  일과 가정을 넘나드는 부요함

    여성으로, 일하는 직장인으로, 아이를 가진 엄마로 직장과 가정에서 다중 역할을 수행하는 삶은 참여자들에게 여러 가지 장점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일-가족 다중역할 연구들이 ‘일-가족 갈등현상’에만 치우쳤다는 비판과 함께 최근 ‘일-가족 향상(enhancement), 혹은 촉진(facilitation)’이라는 개념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결과들이다(강혜련, 윤미자, 2004; Greenhaus & Powel, 2006; Frone, 2003; Tompson & Werner, 1997).

    시너지

    : 서로 부요한 자원이 되는 가정과 직장

    돌봐야 하는 자녀가 있다는 점은 직장일에 몰입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는 반면 자신에게 무한한 정서적 지지를 주는 ‘진짜 내 편인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는 자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힘든 직장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했다(참여자3). 이들은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어도 돌아가 위로받을 곳인 가정이 있다고 표현했으며, 그 든든한 존재 자체가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엄마와 아내로 살아갈 때에 겪는 어려움, ‘해도 끝이 없는 엄마와 아내, 며느리의 일’에 치일 때에도 돌아가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인 ‘나의 일’이 있음이 큰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한 곳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다중역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한 곳에 몰입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되게도 하지만, 동시에 양 영역에서 얻는 장점을 시너지로 누리며 사는 부요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직장인이자 엄마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얻는 장점은 정서적 지지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각 영역에서의 실제적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문제를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며 객관적 조언을 해주었던 남편에게서 새로운 시각을 얻어 해결하고(참여자3), 주부와 엄마로서 체험한 것들을 자신의 직업인 ‘광고 홍보’에 직접 도입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참여자2). 성장해가는 자녀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더욱 유능한 교사가 되고(참여자4), 남성중심 조직에서 여성 직원들의 문제를 조정하며 조직 분위기를 융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참여자6). 또한 참여자 1은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과 남편의 고질적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아이의 성장과 함께 자신, 그리고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성장과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인으로서의 경험이 가정생활에 직간접적인 유익을 주는 점을 참여자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참여자 2는 직장에서 ‘남자 동료들의 바닥까지 다 보면서 우리 남편이 훨씬 낫구나’하는 걸 깨달았고, 직장 생활하는 남자들의 고충을 알기 때문에 남편과 동료의식을 갖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참여자6). 아이들에게도 직장엄마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는 점을 강조한 참여자 6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보통 여자가 아닌 대기업 연구원이라는 자긍심’을 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직장을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학교에서 일일교사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등 자신의 다중 역할경험을 최대한 긍정적 자원으로 활용하였다.

    일의 기쁨

    :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나의 일’

    연구자들이 참여자들의 삶에서 발견한 시너지 효과의 핵심은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표현한 ‘일 자체에 대한 기쁨과 의미’였다.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삶의 충만한 기쁨’을 얻었으며, 일 자체에서 얻는 흥미와 보람, 혹은 성취감이나 자부심이 이들의 삶을 생명력 있게 만들고 있었다. 참여자 2는 카피라이터로서 자신이 일에 매진하며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표현하였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기도 하지만, ‘헌혈을 통해 새로운 피가 생성되듯이’ 일 속에서 자신의 창조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기쁨을 얻는 것은 이들의 가정생활을 포함한 모든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요소가 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교사가 된 참여자 4는 ‘어느 순간 나의 목표가 좋은 엄마가 되는 걸로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좋은 엄마’라는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와 의미가 통합되는 충만한 경험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게중심을 놓고 균형을 잡아감

    연구에 참여한 워킹맘들은 가정과 직장 속에서 힘겹게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노력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역할을 수행하는 자신의 삶이 주는 보상, 즉 시너지 효과를 발견하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중역할의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는 형태와 정도는 워킹맘들마다 차이가 있었다. 가정과 직장의 영역을 서로 섞이지 않게 분리하는 방식에 치중하거나, 혹은 두 영역을 서로 융합해가는 방식에 초점을 두어 경영하는 등 두 영역의 시너지 효과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조금씩 다른 무게중심을 둔 자신만의 ‘지점’을 형성해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참여자 1과 5의 경우는 가정과 일터에서 두 영역을 분리시키고, 각 영역에서 요구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상호침투하지 않도록 병렬시키는 방식으로 두 역할을 수행한 경우에 속했다. 따라서 이들은 필요한 장면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필요한 ‘엄마’, ‘직장인’ 정체성을 활용하면서 각 영역에서 100%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변신’자체에 자신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딱 십년만’ 아이에게 투자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동안에는 저녁에 친구를 만난다거나 나를 위해 뭘 한다거나 하는 건 꿈도 못 꿨던 삶이 바로 참여자 1이 선택한 병렬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대기업의 고위 책임자로 있는 참여자 2와 6의 경우, 직장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감에 무게중심을 두고 일정량의 가용한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두 영역의 다중역할을 수행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보다는 자신의 이름과 직장에서의 역할로 인정받기를 원했으며, 그만큼 직장에 필요한 역할에 우선 순위를 두고 ‘가능한 만큼의 적정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경우로 기존 연구에서 드러난 ‘강한 직업의식으로 무장된’ 여성들이라 할 수 있다(이재경, 장미혜, 2004). 이들은 참여자 1과 5에 비해 그리 비장하거나 무거운 변신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유능한 전문직 커리어 우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 하에 자녀 양육과 가정 일을 경영해가고 있었다. 참여자 3의 경우는 엄마와 아내라는 정체성을 자신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으나 현실적인 여건상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직장일에 쏟아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과 주관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정에서의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던 참여자 4는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만족스런 돌봄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다고 느끼며 참여자 3에 비해 주관적 만족감을 보였다. 참여자들에 따라 무게중심의 지점, 즉 다중역할의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는 형태와 정도는 차이가 있었으나 각기 다른 영역에서 요구하는 바에 대응할 뿐 아니라 두 영역의 장점을 서로다른 영역에서 활용하는 시너지 효과를 경험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이들은 ‘일과 가정’ 어느 하나만을 선택했으면 갖기 어려웠을 정서적 안정감, 일에서 느끼는 생명력, 복잡한 상황을 조정해가며 중심에 서서 균형을 잡는 묘미 등 워킹맘으로서 여러 영역의 삶을 경험하며 ‘실상은 풍성한 삶의 시너지’를 누리고 있었다.

      >  경계선에 서서 터득하는 실천적 지혜

    연구 참여자들은 워킹맘으로서 살아오면서 터득한 다양한 실천적 지혜, 즉 워킹맘오르서의 ‘생존 전략’을 다양하게 제시하였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과 체력 속에서 두 영역의 삶을 적절하게 조정(manage)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이들은 깊은 숲속에서 길을 만들어가듯 힘든 환경을 헤쳐 나갈 ‘방법(ways)’을 배워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가는 동반자로 남편을 세워감

    가정과 직장의 넘치는 요구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홀로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그대책은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얻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임을 참여자들은 강조하였다. 특히 모든 참여자들이 워킹맘의 생존 및 삶의 질에서 가장 중요한 도움의 근원으로 남편과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워킹맘의 문제는 ‘남편과의 팀웍이 잘 이루어져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참여자 3은 자신이 발이 네 개인 것처럼 집안일을 하느라 힘들지만, “남편이 없으면 발이 네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더 힘들 거같다”고 표현하였다. 그녀는 참여자들 중에서 남편과 의 관계를 가장 강조했으며, 워킹맘이 갖는 자녀 양육문제, 시댁관계 문제, 경제적 문제등에 있어서 ‘해결의 키는 남편과의 관계’라고 강조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남녀 역할구분이 명확한 전통적 남자’였고 자신도 ‘집안일은 내가 주업, 남편은 부업이니까, 남편이 집안일하는 걸 보느니 그냥 마음 편하고 몸이 힘든 방법을 선택’하며 살았지만, 시간과 신체의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나 혼자 죽어나갈 순 없다”는 마음을 먹고 남편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남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랬다”는 것을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조금씩 가사분담을 실행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남편은 청소를 해주고 집안일을 도와준 것”이고, 원래는 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인식의 차이’는 남아있었다. 이에 비해 원래 가정적이고 집안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둔 참여자 2는 ‘고맙게도’ 남편이 해줘야 하는 부분을 당연히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물리적 어려움(시간, 체력적 어려움)을 가장 적게 보고하였다. 심지어 어려운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시댁에 말하지 않고 여행을 보내주는 등 남편의 지지에 대한 고마움과 만족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참여자6).

    연구 참여자들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남편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 키워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원래 가정적이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지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한국남자이기 때문에 뼈 속 깊이 박혀있는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말과 생각으로는 너무 진보적이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면’을 참여자들은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참여자1, 2, 4. 5). 이 부분에서 워킹맘들이 강조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인식의 불평등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남편을 동반자로 키우기 위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약한 지혜”

    : 부드러운 관계성의 힘을 배움

    물리적 힘이 아닌 부드러운 관계성 속에서 시도하는 진솔한 대화, 이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면서 상대와 함께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가는 소통과정이 바로 워킹맘들의 가장 강력한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약한 지혜”라는 참여자 1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워킹맘들이 남편의 진정한 공동참여, 즉 억지 노동력만이 아닌 남편의 자발적 참여를 얻어내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구체적으로 약한 지혜는 도와주지 않는 남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면서 도움을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의 기를 세워주는 말의 지혜”, 즉 피해의식과 짜증을 배제하고 ‘상황이 이러이러하고, 나는 힘들고 버거우니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협력해가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참여자 1은 “가사일은 좀 도와줬지만 역시나 전형적 경상도 남자에 불과했던” 남편에게 처음에는 짜증을 내고 논쟁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부 관계를 악화시키고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전략적 선회를 결단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가정이 바뀐다”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하면서 먼저 변화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참여자 1은 결단과 노력과정을 남편과 계속 나누면서 ‘진정한 동반관계’를 만들어갔다. 또한 아이의 상태, 걱정거리, 진로 등을 혼자 떠안지 않고 남편과 계속 그 내용에 대해 의논하고 ‘아빠 역할’을 해줄 것을 부드럽게 요청하였다. 때로는 “내가 남편까지 이렇게 키우면서 가야 하나”하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뼈아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국 ‘약한 지혜’가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참여자 2, 3 또한 남편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의논, 이를 통해 함께해가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참여자들이 치열한 삶의 경험에서 체득한 ‘약한 지혜’라는 전략은 여성이 자신들의 강점인 ‘관계성’을 활용하여 타자인 남편과의 공존 경험, 상호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 즉 Husserl (1962)이 말한 상호주관성 내지 상호주체로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목소리로’에서 Gilligan(1982)이 말한 여성의 진정한 힘, 즉 홀로 목표를 향해 분투하는 분리적 자아의 유능함이 아니라 비록 속도와 방식이 다르지만 상호 의존하며 함께 존재하는 관계적 자아를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워킹맘들의 약한 지혜는 ‘왜 나만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가’하는 내면의 절규를 녹여내고서 소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습득할 수 있었으며, 참여자들은 개인적 신앙이나 서적 탐독 등의 방법을 통해 약한 지혜를 활용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남편에게 서운함을 몇 번 표현하다가 좌절한 참여자 4는 더 이상 남편과의 팀웍을 위해 노력하기를 포기했으며, “그냥 내가 희생하고 말자”라고 마음먹으면서, 남편을 모자녀 체제에 말없이 순응한 경우였다. 이제는 남편이 집에 있으면 아이들도 자신도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 대신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또한 주변의 워킹맘들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면서 서로의 아이를 돌아가면서 봐주는 등 실질적 도움 뿐아니라 정서적 지지도 받고 있었다. 남편과는 ‘서로 의지하기보다는 그저 인정해주는 동료’라고 말하는 참여자 6 의 경우도 가사와 자녀양육의 부분을 친정엄마, 여동생, 회사 동료의 부인등 남편 외의 주변 사람들이 전적으로 당해주고 있었다. 이처럼 한 명의 워킹맘이 아남기 위해서는 ‘남편, 부모님, 친척, 혹은 변 사람이라는 사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했으며, 워킹맘의 생존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함께 도우며 기대어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워킹맘의 경우에는 주변의 다양한 도움이 생존의 기반이었으며 시기적절한 도움을 끌어내고 여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동반자로 만드는 관계 능력은 워킹맘의 최고 기술이자 주요 생존 전략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인드 세팅”

    : 긍정적인 나를 건립해감

    연구 참여자들은 직장과 가정의 다중 역할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가용한 외적 자원을 조정해나가는 한편, 자신의 내면 또한 그 효율성에 발맞추기 위해 특정한 인지적 조절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들어, 참여자 6은 이미 벌어진 일, 변화시킬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려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했으며 이를 ‘긍정적 마인드 세팅’혹은 ‘내 맘을 편하게 하려는 장치’라고 명명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모든 워킹맘들이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인지적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통해 역할 수행에 방해되는 인지, 정서적 에너지 낭비를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대부분 내 옆의 워킹맘들보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고, 여러 면에서 특별하고 유리한 케이스’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전업 주부로 살아가는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반복적이고 뻔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더 낫다’고 스스로를 확인시키듯이 말하였다. 인터뷰 중에서 다중역할 수행에 따르는 에너지 소모와 지치는 삶에 대해 토로하며 눈물을 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가고 있는 거야’, 혹은 ‘나는 되게 운이 좋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특별 케이스였어’ 등 긍정적 부분을 부각시키며 마무리하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인지 전략, 즉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에 선별적으로 초점을 두는 방식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개인들이 갖는 특성으로 알려진 자아 탄력성, 적응적 인지도식 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치명적 질병 등 인생의 위기상황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아탄력성과 연관시켜 본다면, 워킹맘들은 다중역할 병행이라는 위기 속에서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두어 성장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이끄는 개인적 특성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인 자신의 인지적 습관,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여 주변인의 협력을 끌어내는 전략이 참여자들이 제시한 워킹맘으로서의 생존전략이었다. 이는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초월적 주관의 세계구성 작업’(Husserl, 2009)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에 동감했지만, 한편으로는 워킹맘으로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개인적 전략을 습득하는 방법 밖에 없는가하는 부분에 멈추게 되었다. 이는 워킹맘들의 일-가족 갈등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변인이 여성개인의 특정 성격이나 특성이라는 기존의 양적 연구결과들(최윤정, 2010; 유성경, 한영주, & 조윤진, 2011)을 확인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주변의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관계적 자아를 동원하고, 인지 수정과 같은 내적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현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략이지만,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현장은 개인이 각개전투를 통해 개인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3)Sartre(1992)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는 나를 반성해볼 경우, 타인의 존재가 외부 세계에 단순히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시선(le regard)의 분석을 통해 행위의 주체로서 내가 이미 타인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타인의 시선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봄”이나 바라보는 시각으로서의 눈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는 “타자의 시선은 세계를 통해서 나를 엄습한다. 타자의 시선은 다만 나 자신에 변형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세계에’ 전체적인 변모를 가져온다”(p.450)고 말하는데, 이 때 그 시선은 ‘나 자신에로 향한 순수한 지시’로서 내가 항상 타인을 마주 대하고 있는 한에 있어 이미 그의 시선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논 의

    이제까지 한국의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내적 체험과 생활세계의 특징을 1) 두 세계의 긴장 속에 전력질주하기, 2) 불편한 시선과 함께 살기, 3) 크고 작은 위기 속 나만의 오롯한 선택하기, 4) 일과 가정을 넘나드는 부요함, 그리고 5) 경계선에 서서 터득하는 실천적 지혜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부터 나온 주제들에 연관되는 핵심논의들을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환경세계가 실제 이들의 삶 속에서 단절된 두 세계의 이중적 역할과 부담으로 주어져 있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제한된 시간과 체력, 자원을 가지고 일과 가정 이라는 양 트랙을 오가며 전력질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 가지 역할을 하면서도 다른 영역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과 가정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몰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직장에서 비주류인 여성이자 ‘애 까지 달린 아줌마’라는 편견은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 하는 워킹맘들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와 같았다. 또한 이들의 생활세계는 공•사 구분의 엄격한 분리, 특히 사적 영역인 가정이 공적 영역인 직장에 투과 되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규범이 지배하고 있었고, 두 영역을 오가는 워킹맘들은 ‘변신모드’에 돌입하여 ‘절단 능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따라서 ‘엄마가 된 사건’이 스스로에게 깊은 내적 변화를 가져오고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사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적으로 주어지는 경직된 ‘엄마 역할’에 대한 기대는 직장인 역할의 성공여부보다 더 우선적으로 지각되고 평가되었으며, 때로는 ‘처벌적’으로 인식되는 생활세계에 살고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워킹맘들은 자신을 ‘직장일하는 엄마’로 보는 주변의 평가적 시선을 불편하게 인식했으며, 그 시선 속에서 워킹맘과 전업주부 여성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워킹맘에게 불편했던 평가적 시선은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일차적 책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이에게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이는 곧 엄마의 책임이라는 가혹한 평가가 외부의 시선만이 아니라 그 시선이 워킹맘에게 내적인 강제로도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 여성들 속에 고착되어 있는 분리된 성역할,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신화적 신념은 시대와 연령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으며, 연구에 참여한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 여성의 내적 부담을 가중하는 방식으로 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강준만, 2009).

    또한 ‘일하는 엄마’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워킹맘과 전업주부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초래했는데, 이러한 여성들 간의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관계는 같은 여성임에도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들 안 혹은 간의 차이’의 맥락을 보여준다. 여성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과연 여성들끼리의 닫힌 소통 구조의 문제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주어진 여성에 대한 강압적 역할부담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세분화된 논의가 필요하다. 엄마로서 다른 경험 맥락을 가질 때 드러나는 여성들 간의 불편한 관계는 여성들의 정체성을 논의함에 있어 Braidotti(1994)가 강조한 ‘대문자 여성’, 즉 남성과 대비되는 전체 여성, 그리고 여성들 사이 및 여성 내부의 차이인 ‘소문자 여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전체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억압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자칫 ‘대문자 여성’ 속에서 일반화되고 평면화될 수 있는 ‘소문자 여성들’의 다양한 현실적 경험들을 수용하여 여성들 각각의 차이와 각 개인 여성들 내부에서 드러나는 다양성을 수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해준다.

    셋째, 참여자들은 직장일과 가정이라는 분리된 두 개의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차고 달리는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감내하기 어려웠던 크고 작은 위기를 경험했다. 이러한 위기들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일과 가정의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근본방향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내면서 참여자들에게 실존적 성찰과 주체적 결단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대개 아이의 문제, 초등학교 입학으로 인한 현실적 어려움, 직장에서 워킹맘으로 겪는 한계에 직면하는 등의 사건이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외부적 위기였으며, ‘일을 그만둘 것인가?’,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질문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외부적 역할, 즉 최선을 다해 해내야만 했던 것에 불과했던 직업과 가정이 ‘과연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치열한 실존적 고민을 생성했다. 이 시점에 참여자들의 자기성찰은 ‘일과 가정이라는 병렬적 역할 속에서 어느 곳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 것인가’라는 외적인 두 환경세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내면세계로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참여자들은 관련 서적, 주변인들의 조언, 특히 친정엄마의 역할 모델 등의 도움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관, 가치관을 검토함으로써 ‘나만의 오롯한 선택’, 즉 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참여자들에게 단지 역할로만 해내던 외부 역할인 일, 가정이 이제는 ‘나의 일, 나의 엄마역할’이라는 나와의 연관성 속에서 통합된 형태로 경험되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함으로써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세계로 탈바꿈했다.

    넷째, 나만의 오롯한 주체적 자기성찰을 통해서 참여자들의 삶은 가정과 일을 넘나드는 부요함, 단순한 병행을 넘어서서 얻는 시너지, 즉 가정과 일이 함께 있음으로 인해 더욱 풍성한 삶의 기쁨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삶으로 재정의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일과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진 환경세계에서의 두 개의 모래주머니가 아니었으며, 참여자들은 배타적인 두 세계 사이에서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중 역할자로서 약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가정에서의 체험을 직장으로, 직장에서의 체험을 가정으로, 두 세계를 넘나드는 워킹맘의 주체적 체험은 배타적으로 보였던 각 세계의 장점을 살려서 양쪽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생산적 자원이 되었다. 따라서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의 균열이 각자의 고유한 생활세계 안에서 새롭게 통합되는 형태를 띠었다. 이는 참여자들이 살아내는 외부 현실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치부될 수 있는 두 개의 배타적인 환경세계였지만, 이러한 실존적 경험과 내적 성찰을 통해 참여자들이 새로운 목적연관성 및 의미연관성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Heidegger(1976)가 말한 ‘세계-내-존재’(In-der-Welt-sein)4)로 거듭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워킹맘들이 새로운 의미연관성의 세계를 기투하고 건립해 가는 가운데, 다중 약자를 만들어 내던 모래주머니는 이제 일과 가정을 넘나드는 부요함으로 바뀌었으며, 오히려 다양성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에 생산적인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다섯째, 워킹맘들은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관계성의 지혜전략과 긍정적 마인드 세팅의 인지적 전략을 개발시켰다. 이들의 실존적 경험은 자기 자신에게만 한정되지 않았고, 주변의 사람들을 함께 협력하는 동반관계로 이끌어내는 소통과 동반 성장의 과정으로 발전되었다. 참여자들이 보여준 지혜의 전략은 내가 선택하며 재구성해가는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 전략임과 동시에 여성의 관계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낼 뿐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생활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형성하는 데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참여자들의 ‘상호주관적인 관계성’을 통해 발견되는 ‘지혜(Weisheit)의 전략’은 여성정체성의 지성적 특성으로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흔히 남성들이 보여주는 근대적‘지식(Wissen)의 책략’과는 완연히 구분된다. 후자는 자율성을 지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근대적 자아’의 특성으로 주-객 도식에 근거하여 타자들을 인식주체의 동일성 아래 굴복시키고 지배한다(노성숙, 2008). 반면에 참여자들이 보여준 ‘지혜의 전략’은 타인을 수단화하여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타자들을 책임감있게 배려하고, 특히 배우자와 친지들의 공감적 동반관계를 이끌어내고 함께 성장하는 상호주관적인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호주관적인 지혜의 전략과 더불어서 참여자들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조절하는 긍정적 마인드 세팅의 전략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을 ‘운이 좋고, 특별한 케이스’라고 인식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되도록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위기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자아가 되기 위한 인지전략을 개발해냈다. 이는 개인의 정신건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밝혀진 자아탄력성, 긍정적 착각의 요소들과 일치하는 바이다(이하나 외, 2006; 노여진, 이지연, 2006). 그러나 이러한 상호주관적 지혜의 전략과 긍정적인 인지전략이 워킹맘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전력을 다해 발전시킨 전략들이라는 점은 이들이 일과 가정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해결하고 있다는 제한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와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연구는 한국의 학령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내적 경험의 현상에 초점을 두어, 이들의 주관적 그리고 상호주관적 생활세계의 의미를 현상학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한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 혹은 균형이라는 목표점을 미리 설정해놓고 일가족 갈등 해결이나 역할수행 등에 초점을 맞추었거나(김주엽, 2006)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요인을 탐색한 양적 연구들(최윤정, 2010; 유성경, 한영주, 조윤진, 2011)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과 가정 두 영역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워킹맘들의 실제 경험은 간과되어 온 면이 적지 않다(강이수, 2007; 함영이, 2008). 이러한 논의의 맥락에서 이 연구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참여자들의 주관적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서 기존의 선입견들을 판단중지하고 이해하고자 현상학적 질적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였고, 기존의 양적 연구들에서 간과한 워킹맘 여성의 내적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기존의 양적 연구들은 워킹맘 여성의 일-가족의 갈등을 방향(일에서 가족, 혹은 가족에서 일로의 갈등이냐의 문제)이나 차원(시간, 긴장, 행동)의 면에서 구분하여 정의한 채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본 연구에서 참여자들이 가장 주요하게 거론한 갈등 경험은 오히려 심리내적 정체성의 문제와 더 관련이 깊은 것이었다. 직장인 여성, 혹은 어머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것이 내사되어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워킹맘들의 내적 경험은 워킹맘들을 위한 상담, 혹은 사회적 차원의 개입시에 주목해야할 주제일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두 역할의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워킹맘들이 처한 환경세계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참여자들이 내면화된 시선의 가치평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하고 난 뒤, 오롯한 자신의 내면적 대면과 실존적 선택을 통한 삶의 주체로서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일과 가정을 넘나들 수 있는 새로운 의미 세계의 지평을 형성하는 과정, 그리고 지혜의 전략과 긍정적 인지전략을 통해 상호주관적 자아와 세계를 새로이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추체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체험과 함께 연구자들은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이 이미 확고히 주어져 있거나, 또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주어진 두 역할을 강압적으로 내사하고 그대로 충족시키고자 하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세계의 위기에 직면하여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롯한 주체가 됨으로써 자신의 의미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가운데 끊임없이 새로운 ‘나’(홀로)와 ‘우리’(서로)의 관계 속에서 ‘워킹맘 되기’의 정체성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연구자들은 워킹맘의 체험을 Heidegger(1976)의 ‘세계-내-존재’의 생생한 한 예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이로써 워킹맘이 겪는 환경세계의 외부 경험들을 기술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다시금 그 의미세계를 건립해가는 현존재로서의 워킹맘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해석학적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연구자들도 참여자들의 내적 체험과 생활세계를 기술함과 동시에 마치 양파껍질을 벗겨가는 듯한 현상학적인 환원과 “공동체화된 상호주관성”5)의 생생한 구성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연구경험이었다.

    이 연구 결과는 그동안 간과되어온 워킹맘 여성의 개인내적 경험, 주관적 체험에 대한 생생한 자료를 토대로 워킹맘들이 다중역할이 부과되는 생활세계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의 주체로 거듭나고, 상호주관성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나가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한국 여성들을 돕기 위한 상담적 접근 및 연구, 나아가 정책방향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자녀의 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역할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학령기 자녀를 두면서도 경력단절을 하지 않고 워킹맘으로 살아온 이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양쪽 발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전력 질주’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사회의 시선을 개인의 인지 전략과 관계전략으로 해결해나가는 워킹맘들의 경험 속에서, 왜 많은 여성들이 자녀의 학령기 진입과 함께 경력 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심리적 고충이 클 수밖에 없는지를 역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중역할과 사회문화적 고정관념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전략을 가지고 각자 해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끝까지 워킹맘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성이 적을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심리 정서적 건강 또한 위협받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여성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속해있는 가정 전체, 그리고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본 연구 결과를 비롯하여 워킹맘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여 드러내는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워킹맘 여성들 개인의 심리적 건강을 돕기 위한 다양한 상담적 개입 및 심리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광범위한 활용은 절실하다. 특히 본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사회와 주변의 평가적 시선을 불편하게 의식하는 내적 갈등과 이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외로운 분투가 워킹맘 여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주요요소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워킹맘 여성을 상담하는 데에 있어 여성, 혹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가치관을 여성 스스로 점검하고, 그 근원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정립의 과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성들의 각개전투를 공공의 문제로 드러내어 공유하고, 개인적 차원뿐만이 아닌 소규모 공동체, 혹은 점차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나누어 해결점을 모색해 나가야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워킹맘 여성과의 인터뷰 자료를 주 자료로 연구를 진행하였고 워킹맘의 남편이나 자녀 등 주변인의 시각을 포함하지 못했다는 점은 연구의 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졸 이상의 전일제 근로여성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이 결과를 한국의 워킹맘 여성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비전일제 및 생계형 워킹맘을 대상으로 하는 후속 연구를 통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유사한 경력을 가진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들을 통해 다양한 워킹맘들의 경험을 집중 조명하는 연구를 제언하는 바이다.

    4)Heidegger(1976)의 ‘세계-내-존재’는 세계 안에 존재한다고 해서 어떤 사물이 용기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는 세계를 자신이 의미부여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존재함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 현존재는 목적연관성의 세계를 기투하고, “건립하는”(stiften) 방식으로 존재한다(p.165).  5)Husserl(1962)은 지향성의 총체적인 작업이 실행되는 데에는 “공동체화된 상호주관성의 전체”(das Ganze der im Leisten vergemeinschaftete Intersubjektivität)(p.170)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상호주관적인 구성”(intersubjektive Konstitution)을 통해서 의미형성의 통일체로서 새롭게 구성되고 형성된다(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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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연구 참여자의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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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주제와 소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