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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Metaphorical Structure of the Text 텍스트의 은유적 구조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Metaphorical Structure of the Text
KEYWORD
metaphor , dualistic structure , text , literature , psychoanalysis , the real , Freud , Lacan
  • I

    메타포의 기본 구조는 A대신에 B가 들어서는 대치과정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치과정이 유사성(similarity)과 인접성(contiguity)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또한 이 유사성, 인접성은 각각 음성(signifier)의 차원과 의미(signified)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소쉬르, 야콥슨 등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내용은 구조주의 정신분석가 라캉에게 전달되었고 따라서 그의 정신분석 텍스트 분석은 텍스트의 은유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특징을 이루고 있다. 본 논문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신분석 텍스트는 물론이고 문학 텍스트를 포함한 텍스트 전반에 이러한 텍스트의 2원론적, 은유적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캉의 메타포 공식에서 유래된 부성의 메타포(paternal metaphor)를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단계가 “아버지의 No!/주이상스로서의 어머니”라는 분수식으로 그리고 두 번째 단계가 “아버지의 이름/욕망으로서의 어머니”라는 분수식으로 도식화할 수 있고 이 둘은 각각 상징적 거세의 두 과정인 소외(alienation)와 분리(separation)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두 과정이 각각 서로 다른 차원의 은유화 과정으로서, 라캉의 메타포 공식 오른쪽에 s(의미)로 표기되어 있듯이, 어떤 의미의 창출을 가져온다. 은유화 과정에서 빚어진 이 의미가 바로 주체화로 연결되고 문학 텍스트의 의미화의 구조를 형성한다. 여기서 ‘정신으로서의 텍스트’(psyche as text), ‘텍스트로서의 정신’이라는 문학과 정신분석의 진정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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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메타포 공식의 첫 단계부터 생각해 보자. 아버지의 금제의 명령, ‘No!’를 통해 아이-어머니의 주이상스적 유착관계가 청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동의 비밀을 설명해 주는 근친상간 금기(incest taboo)의 형성단계이다. “No mom! No sis!”라는 가족 간의 성 윤리가 형성되는 것이 바로 이 때이다. 그러면, ‘주이상스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바로 원초적 억압(primal repression)에 붙여진 것이다. 태초에 일어난 어떤 돌발사건(einziger Zug)에 비유되는 이 원초적 억압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실재계적 주이상스는 의식 밑으로 사라져 무의식화되고 이것이 억압된 것의 귀환(return of the repressed) 논리에 따라 사춘기 때에 변형된 모습으로 의식계에 돌아오면서 이성애(異性愛)의 모델이 된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이 첫 단계의 은유화 대치과정에서도 메타포 공식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의미화 과정이 철저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S2의‘아버지의 No!’자리에 ‘엄격하게 발화된 금지 명령’을 대입하고 S1의 ‘주이상스로서의 어머니’에‘ 가까움에의 막연한 동경’을 대입하면 메타포 공식의 오른쪽 편에 “어머니에 대한 나의 동경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무의식적 의미(s)가 생성된다는 것이다(CI 93). 이 의미가 주체의 형성으로 이어지므로 의미화는 곧 주체화의 길이다. 이의미화/주체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정점(point de capiton)의 개념이다. 라캉의 이 고정점 개념은 소쉬르가 음성이미지인 기표와 개념의 기의의 파장을 일정한 간격으로 분절하여 하나의 기호 단위로 묶어 고정시키는 도표화 작업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Saussure 156). 그것은 S1과 S2가 은유적 대치, 혹은 의미화의 대치를 하는 가운데 어느 한 점에서 상호구속적으로(diacritically) 묶여 의미가 고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고정점은 ‘지브랄터의 바위’(the rock of the Gibraltar)가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아 권위와 안정성의 상징으로 작용하듯, 주체화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중심축의 부재는 항해시 나침반의 부재와 같이, 주체화 과정이 어느 지점에 정박(anchoring)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정신병에서 말하는 ‘폐제’(Werverfung)가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정상인의 경우에 해당하는 ‘승인’(Bejahung)과 대조 되는 개념이다. 이 고정점을 누빔점(quilting point), 혹은 단추 묶음(button tie)이라고도 번역되는 이유는 소파의 덮개 천을 단추로 고정시키듯, 바늘 한 뜸과 같은 제스처로 언어의 구조에로의 주체적 진입을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차원을 넘어 언어가 인간 속에 사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언어의 구조를 몸으로 받아드리는 일종의 동화/육화 (assimilation) 과정이다: “언어의 <구조>를 동화시키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한 뜸이다. 그것 없이는 모든 것이 표류한다 . . . 심대하게 중요한 이 한 뜸이 없이는 주체의 피륙이 제멋대로 풀린다. 그것은 실로 ‘실마리를 잃는’(losing the thread) 것이다”(CI 94).

    다음으로 부성의 메타포 중 제2단계를 말해보자. 도식적으로‘아버지의 이름/욕망으로서의 어머니’라는 분수식으로 표현된다. ‘아버지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권위와 지배력을 말하면서 동시에 ‘어머니 대타자(mOther)에게 이름 붙이기’라는 타동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상징적 이름 붙이기를 통해서 실재계적 주이상스로서의 어머니는 상징계적 욕망으로서의 어머니로 변신한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라캉의 격률에 따라 2단계의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에 대한 심문에 들어간다. 이른바 ‘케보이’(cevuoi?)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무엇을 원하는가?”의 질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어머니 대타자의 욕망의 전부(be-all; end-all)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이-어머니의 2자 관계에 제3의 인물 아버지가 개입하면서 이러한 천금같은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 균열은 점점 커져 궁극적으로는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자신만은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에 닿게 된다. 어머니는 나 아닌 다른 대상, 즉 아버지를 일차적으로 욕망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욕망의 미스터리를 여는 열쇄이다”(CI 248). 이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요된 선택’은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주이상스에 이름을 붙이고 상징화하여 그것을 욕망의 형태로 탄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통과의례적 고통스런 경험(initiation)을 통하여 어린아이는 어머니와의 나르시시즘적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분리, 즉 상징적 거세를 완성하게 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궁극적 해소를 의미하고 상징적 거세를 성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주체화를 완성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2단계에 대해 너무 빠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 단계에서 아이의 어린 머리 속에서 진행된다고 생각되는 의미화 과정을 좀 더 고찰해 보자: “그 아이는 일반적으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머니 대타자가 욕망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머니를 욕망으로 이끄는 다른 사람, 다른 행위, 다른 일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 아이가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아이는 즉각적으로 바로 <그것>이 되려고 한다—이번에는 주이상스의 대상이 아니라 어머니가 존경하고 욕망하고 칭찬하는 바로 그 대상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부이든, 지위이든, 권력이든 간에 그것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자리의 추적자로서의 그 아이를 상징적 차원에 위치시키는 것이다”(CI 249). 어머니가 지향하는 이 사회적 이상, 그래서‘큰바위 얼굴’과 같이 아이가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부여된 이 상징적 이상이 이 아이의 자아 이상 (Ichideal; ego ideal)을 형성한다.

    여기서 다시 부성의 메타포 공식의 2단계를 도식화해보면, S1: “어머니는 나만을 욕망한다”가 분모에 자리 잡고, S2:“ 어머니는 나 아닌 다른 타자를 욕망한다”가 분자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 의미화 대치 과정의 결과인 오른쪽 난의 의미 s는 “어머니는 나 아닌 다른 사람, 즉 아버지나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적가치를 욕망한다”또는 “나는 어머니가 관심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다”라고 뜻매김된다. 이러한 뜻매김을 통해서 어린아이는 욕망하는 주체로 태어나고 어머니는 욕망/결핍의 대타자(Ø)로 자리매김 된다. 어머니 대타자(mOther)가 충만의 대타자(O)에서 결핍의 대타자로 위상이 변하는 것은 아이의 분리과정의 완성에 절대적이다. 어머니가 아이만을 쳐다보지 않고 그 자체로 결핍되어 다른 것을 향해 욕망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인식은 그 아이로 하여금 어머니와 떨어져 독립하여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연결된다. 이것이 주체 탄생의 신화이고 상징적 거세의 완성이다.

    여기서 S2/S1의 메타포, 즉 의미화 대치를 통한 의미 생성과정은 정확하게 역설의 논리에 대응한다. 역설의 논리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정방향의 논리(→)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반대 방향의 논리 (←)가 중간쯤 어느 지점에서 만나 부딪히면서 상호구속적 합의 논리로 발전해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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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역설의 구조이다. 『황무지』의 T. 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다”라고 읊었을 때 그것은 역설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것은 4월이 갖는 생명부여적 소생의 의미와 겨울과 같은 죽음에서 벗어나 의식이 깨어나는 데서 오는 자각적 고통의 의미가 상호교차적으로 교류하는 한 가운데를 거머쥐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라캉의 메타포 공식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나를 욕망한다”는 S1의 진술이“그는 아버지를 욕망한다”는 S2의 역진술로 의미화 대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창조적 의미 s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메타포가 갖는 창조적 의미는 이런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이 모든 정신분석과 문학 텍스트가 지향하는 창조적 의미이고 역설의 언어이다.

    II

    라캉적 정신분석의 핵심적 화두는‘사물에 대해서 말하기’(speaking of the Thing; FP 216)이다. ‘사물’(das Ding)은 실재(the Real)의 다른 이름이다. 라캉의 실재는 칸트의 ‘물 자체’(Ding an sich)와 같이 상징적 범주를 넘어선 비언어적 요소라고 정의된다. 정신분석의 요체는 이 비언어적 요소를 어떻게 언어적 요소를 통해서 접근하느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물은 언어 속에서만,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다. 그래서 라캉도 “사물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것이 언어화되는 정도까지 만이다”(SVII 55)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가 이것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라캉의 지론이다: “법이 사물인가? 분명 아니다. 그러나 나는 법을 통해서 사물에 대해 알수 있을 따름이다”(SVII 83). 그래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보통 방법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이 사물, 혹은 실재를 언어라는 비밀 병기를 사용해 그것에 충격을 주고 그것을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 주체화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피분석가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게 하던 그 말(혹은 말의 연합)을 소리 내어 말하게 함으로써 그 접근 불가능하고 손댈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어떤 원인체가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부재의 중심의 기피현상은 완화되고 그 원인체는 ‘주체화’의 길로 들어선다”(LS 28).

    이렇게 언어를 통한 실재에의 접근은 피분석가 자신에 의해서도 시도되지만 결정적으로는 분석 현장에서 분석가에 의해서 시도된다. 그것은 “해석은 실재를 강타한다”는 분석 강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핑크교수가 분석한 어느 히스테리 환자의 경우를 통해 보고되었다(CI 8장). 이 환자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폭력에 희생당한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을 표하다가 근자에 와서는 어머니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강렬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토로하고 있었다. 반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오래 억압되었던 사랑의 감정이 최근에 살아나 부녀 사이의 좋은 관계가 회복되었다. 이렇게 부모, 딸 사이의 삼각관계에 얽힌 사랑과 증오의 메커니즘을 유심히 관찰하던 분석가, 핑크교수는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려 맞서게 했다”라는 분석적 해석을 내놓았다. 이 해석은 D. H. 로렌스의『아들과 연인』의 주제하고도 맥락이 닿는다. 여기서는 조야한 광산 노동자인 남편에게 불만을 품은 모렐부인이 아들에게 몰입 하여 아들과 아버지 사이를 소원하게 한다. 하여튼 히스테리 환자의 언술을 바탕으로 내려진 분석가 담론인 위의 해석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언어를 통한 실재의 드러남의 차원에서 볼 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해석은 피분석가의 생각과 감정의 연쇄에서 <망실된 연결고리>를 복원시켰다. 그것은 전에 언어로 표현된 적이 없던 것을 언어화(상징화)했다는 점에서 ‘실재를 쳤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분노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그 분노는 그것에 대한 상징화작업 없이는 천착될 수 없다”(CI 48; 필자 강조).

    이 분석 사례를 앞의 메타포 공식에 따라 좀 더 분석적으로 고찰해 보자. S¡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남’을, 그리고 S2에‘오래 억압되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남’을 대입하면 이 상반되는 논리가 은유적 의미화 대치과정을 거쳐‘어머니가 나를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려 맞서게 했다’라는 의미 s로 뜻매김 된다. 다만 앞의 부성의 메타포의 경우에서는 오이디푸스기에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의미 작용을 문제시한 반면, 여기서는 분석가의 분석적 개입을 통해 그 히스테리 환자의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추정되는 의미 작용을 말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니까 분석가의 이 해석적 언어를 통해서 정의상 언어적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그 환자의 실재적 진실에 접근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 자체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실재적 진실’은 그 자체로 비언어적이어서 위의 해석과 같은 언어적 접근은 그 진실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분석 사례에서 그 언어적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달과 같은 실재적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환자가 어머니를 증오하고 아버지에게 끌리면서 느끼는 오이디푸스적 복잡한 감정(Oedipus complex) 그 자체이다. 이런 감정의 엇갈림과 갈등의 구조가 당사자에게는 그 원인과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즉, 무의식적으로) 이 중년 여인을 히스테리 증상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이렇게 언표화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아·더·메·치’와 같은 불유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내면의 그 무엇 — 이것이 라캉의 실재이다. 이 중 환자들에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트라우마적 실재(traumatic real)이다.

    이 트라우마적 실재가 <망실된 연결고리>(missing link)의 복원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연결고리의 망실 현상은 S1 → S2의 중간 어디쯤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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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분석 사례에서 이 분석 주체는 부모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애증 감정이 교차하는 갈등의 구조 속에서 의미론적 연결고리의 망실현상이 벌어졌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 S1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 S1가 교차적으로 엇갈리는 가운데 두기표의 <사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연결고리가 사라진 것이다. 분석적 해석의 언어는 바로 이 사라진 사이의 연결고리를 복원한 것이다. 그것은 S1이 S2로 이동해가는 <이유>를 밝히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 이유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실재, 라캉적 실재이다. 그것은 시적 역설의 언어가 빚어내는 어떤 효과와도 같은 것이다. ‘크레타의 역설’을 떠올려보자. “모든 크레타인들은 다 거짓말쟁이다”라고 어떤 크레타인이 말했을 때 이 진술은 역설을 성립시킨다. 크레타인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면 자신이 크레타인인 그 발화자도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고 그가 거짓말쟁이 신세를 벗어나려면 자신이 한 진술이 거짓이어야 한다. 이러한 논리의 뒤틀림, 아포리아(aporia) 속에 라캉의 실재는 숨쉬고 있다.

    분석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재에 관해서 말하기’의 종합편을 핑크 교수에게서 들어본다: “실재란 . . . 아직 언어로 표현되거나 구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억압되었다가 복원될 필요가 있는 두 생각들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말하여지거나 단어로 표현되거나 언어화된 적 없는 . . . 트라우마, 혹은 트라우마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라캉에 따르면, 이 실재는 분석을 통해서 상징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두로 말하여져야 하고 기표로 표현(‘기표화’) 되어야 한다. 자크-알랭 밀레르가 말했듯이, 분석은 실재의 속을 조금씩 빼내서(draining away) 상징화하는 작업과 관련된다. 실재를 겨냥해서 해석은 피분석가를 도와 그의 욕망을 이제껏 고착시키고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을 언어로 표현하게 한다”(CI 49).

    실재 그 자체는 비언어적이지만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만 접근가능하다는 논리는 “해석이 실재를 강타한다”는 말로도 연결된다. 해석이 언어의 산물이고 그것을 통해 실재가 충격(impact)을 받아 치료적 효과로 연결된다면 비언어적 실재가 언어를 통해 접근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메두사의 얼굴을 직접 쳐다보면 쳐다본 사람이 돌로 변하는 난문제를 풀기 위해 그리스의 영웅 페르세우스는 그 괴물을 직접 쳐다보지 않고 그의 청동검에 비친 그것의 모습을 바라보며 목을 쳤다는 일화에 비유될 수 있으리라. 직접성을 피하고 간접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실재는 언어적 간접화법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러한 상황을 필자가 직접 분석한 분석사례를 통해 논증해 보이겠다.

    중등교사 A씨는 동료교사 B에 대해 이름모를 저항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최근에 B가 A에게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한 위해를 가한 것은 사실이다. A의 ‘비리’를 상부에 보고해 그를 ‘매장’시켜버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은근히 흘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협박 내용은 그리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서 사안에 따라서는 그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교무실에서 B와 마주칠 때마다 ‘아·더·매·치’와 같은 ‘똥밟은 기분’과 끓어오르는 분노로 학교 생활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살인적 적개심과 불안·공포의 감정으로 압도당하고 있다. 분석시간에 분석 주체 A는 동료교사 B를 한결같이‘미친 개’이라고 호칭했다. 프로이트가 그의 젊은 여자 자‘도라’케이스에서 보여주었듯이, 피분석가가 ‘지나칠 정도로 격렬한 초가격적인(ubberwertig)’(SE 7: 54) 정서적 반응을 보일 때는 거기에 중요한 분석적 의미가 숨어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분석가는 A에게 강한 어조로 반복되는 ‘미친 개’라는 기표에 대한 연상을 물어 보았다.

    A는 즉각적으로 그가 어린 시절에 ‘미친 개’에게 당했던 광란의 무도의 기억을 떠올렸다. 산촌마을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외롭게 자란 A는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구에 들어서면 발을 멈추고 자기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 때 그의 가슴은 긴장과 공포로 쿵쾅거리고 숨이 멎는 듯 했다. 아랫마을에 사는 술취한 삼촌, ‘미친 개’가 그의 집에 쳐들어와 형수인 그의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며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이 두 어른들이 싸우는 광란의 몸짓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것이 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고 지금도 그는 동구 밖에서 그의 집으로부터 흘러나올지도 모르는 광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바짝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라캉의 분석은 당연히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기표 ‘미친 개’의 추적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리고 분석과정은 서사, 혹은 스토리-텔링의 제1판(old edition)에 나오는‘미친 개’의 기표와 제2판(new edition)에 나오는 그것의 의미론적 대치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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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타포 공식에서 분석의 효과는 ‘s,’즉 S1 → S2의 대치과정에서 생성된 의미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것은 분석시 해석 행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분석가는 분석주체 A가 말하는 ‘신판’의 서사 II를 들으면서 그것을 ‘구판’의 서사 I과 연결시켜“당신은 현재의 ‘미친 개’B와의 관계에서 과거의 ‘미친 개,’술취한 삼촌과의 관계를 전이(전이)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었고 이것이 해석의 담론을 구성한다. 이 해석적 담론은 바로 S1과 S2라는 두 개의 생각, 혹은 두 개의 이야기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공한 것이다. 그 때까지 그 두 담론은 각각 따로 존재했다. 왜냐하면 분석주체 A에게는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무의식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석을 통한 ‘망실된 연결고리’(amissing link)의 복원은 분석의 목표인 ‘무의식의 의식화’에 다름 아니다. 무의식이 의식화되는 순간 분석주체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충격이 치료적효과로 연결된다는 것이 분석의 매뉴얼이 전하는 바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해석은 실재를 강타한다. ’실재에의 충격이 해석이고 그 해석이 치료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말인데 이 분석사례에서 실재는 무엇이며,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스토리의 제1판인 S1에도, 제2판 S2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버전(version)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S1 → S2의 해석적 구조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실재는 바로 이 해석적 구조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그 무엇(X)이다. 이 분석사례의 경우 두 서사를 연결하는 기표, ‘미친 개’속에 함유된 불안, 공포, ‘아·더·매·치’의 감정, ‘똥밟은 기분’같은 것이 분석주체 A의 실재를 구성하는‘그 무엇’이다. 이 비언어적 실재가 언어적 진술, 즉“당신은 현재의‘미친 개’B와의 관계에서 과거의 ‘미친 개,’술취한 삼촌과의 관계를 전이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라는 해석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과거를 현재로써 재해석하며 현재가 과거를 재편하는 가운데, 다시 말해서, 현재와 과거가 상호구속적으로 작용/반작용하는 가운데 ‘미친 개’라는 기표 속에 고착되어 응결되어 있던 실재계적 감정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주인기표를 변증법화 하라”는 라캉의 언명이 의미하는 것이다. ‘미친 개’라는 주인기표(master signifier)를 흔들어, 즉 은유적으로 바꿔치기하여 그 기표 속에 화석화하여 굳어있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분석은 해방어 논리이다: “분석의 목표 중 하나는 고립된 기표를 ‘변증법화’하는 것이다. 이 기표는 환자의 연상 작용의 흐름을 막아놓고 주체를 응결시키며 절멸시킨다. 여기서 ‘변증법’이라는 말은 라캉이 S1의 밖, 즉 S1과 S2의 대극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만약 우리가 S1과 S2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 주체를 옥죄던 주인기표의 위상에 변화가 올 것이다”(LS77-78). 주인기표의 변증법화는 곧바로 주체의 위치(subject position)에 변화를 가져오고 이 변화가 분석치료의 성공을 담보한다.

    피분석가 A는 분석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중요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른 봄 만물이 소생하는 대지의 기운을 타고 동면하던 뱀 한 마리가 잠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모가지를 내밀었다. 우리의 이 어린 소년은 동네 친구들과 합세하여 그 뱀에게 돌을 던졌다. 그 뱀은 치명타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뱀은 한 마리가 아니었고 그것이 있던 구멍에는 여러마리의 뱀들이 서로 얽힌 상태로 똬리를 틀고 준동하고 있었다. 소년들이 그 구멍에 있는 모든 뱀들을 향해 돌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뱀들이 한두 번 돌을 맞는다고 죽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 많은 뱀들이 뒤엉켜 꿈틀대며 저항하는 모습에 공격자들이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 나쁜 것은, 만약 뱀을 완전히 죽이지 않고 상처만 입은 상태로 놓아두면 그 뱀이 공격자의 집으로 숨어들어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어느 소년의 겁에 질린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한나절 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뱀소탕 작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지쳐서 한두 명씩 전선을 탈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소년 A는 자기 집이 이 살육의 현장에서 가장 가깝다는 걱정 때문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끝까지 남아 이 적 아닌 적들과 사투를 벌였다. 그날 밤 이 소년은 뱀들에게 피의 보복을 당하는 악몽을 꾸었다.

    분석과정에서 분석가는 ‘미친 개’B에 대한 A의 정서적 반응을 새로이 떠올린 구판의 에피소드, 뱀들에 대한 기억과 연결시켰다: “당신은 가설적 적에 대해서 과잉반응 하던 정서적 패턴을 B와의 관계에서 전이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오.” 이 해석은 앞에서 본 “당신은 현재의 ‘미친 개’B와의 관계에 과거의 ‘미친 개,’술취한 삼촌과의 관계를 전이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라는 해석과 함께 분석주체의 판타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주체의 위치를 바로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S1과 S2 사이의 망실된 연결고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언어적 해석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것이 A의 실재이고 그 실재는 그 해석의‘밑’혹은‘밖’에‘외존’(ex-ist)하는‘똥 밟은 기분’과 같은 그 어떤 것, X이다.

    IV

    현대의 독자반응비평, 혹은 독서이론이 제기한 근본적인 질문은 “독자가 텍스트 속에서 객관적으로 발견하는 패턴과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주관적 경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Holland xv)였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저 쪽’텍스트 속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내용이‘이 쪽’독자의 마음속에서 공명하는가, 또는 어떻게 해서 저 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치’(as if) 이쪽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져 콜리지가 말하는 ‘불신의 자발적 중단’(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다.

    이들은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상호작용’(interaction)모델을 제공하고 있으나( 『현대정신분석비평』2장, 4장 참조) 여기서 텍스트의 은유적/이원론적 구조와 관련된 독서모델의 개발은 이 분야의 새로운 차원을 말해 줄 것이다. 그것은 독자를 통해 텍스트를 보고 텍스트를 통해 독자와 만나는 엄격한 의미의‘상호능동적’(bi-active) 모델로서 라캉의 메타포 공 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정신분석적 독서 이론가 홀란드교수가 예로 들고있는『맥베스』와「도버 해변」을 차례로 이 모델에 따라 분석해 보자. 우선 셰익스피어의 비극 5장 5절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이다.

    이 구절은 맥베스의 좌절과 슬픔, 환멸을 표현한 것으로 인생의 무대 위에서, 의미 없는 소리를 짓거리다가 하릴없이 스러져가는 배우와 같은 인간 삶의 덧없음을 날카로운 메타포로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아 왔다. 존 랜섬과 같은 ‘의식적인’비평가에 의해 이 구절의 메타포가 비논리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은 바 있지만 정신분석 비평가 홀란드에게 있어서 이 구절이 그에게 부하하는 충격과 감동은 막강하다. 그에 의하면 이 독백이 가진 그 막강한 힘은 그것이 환기시키고 있는‘원초적 장면’의 판타지에 있다. 어린아이가 그 부모의 성교 장면을 처음 목격한다는 사건인 원초적 장면을 떠올리는 내용이 이 구절속에 육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제’와 ‘내일’사이에는 그러한 원초적 장면의 연출 무대를 제공하는 운명의 밤들이 놓여 있고, ‘소음과 분노’는 그 무대 위에서 연출자들이 지어내는 괴상한 소리와 어지러운 몸짓이다. “꺼져라, 꺼져라, 단명의 촛불이여!”라는 표현은 촛불이 갖는 남근 상징성과 함께 강한 성적 이미 져리를 연상 시킨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는 어린 아이가 갖는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적개심은 그 원초적 장면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스러움과 으시댐, 초조함, 이런 모든 것들이 한낱“어떤 바보가 지어낸,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 의미 없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그 장면에 대한 평가 절하적인 독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상황을 라캉의 메타포 공식에 대입하여 정신분석 텍스트를 분석했듯이 이 문학 텍스트를 분석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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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의미(s)는‘인생의 무대 ’장면을 통해서 ‘밤 무대’의 장면을 전이적으로 재현한다”라고 뜻매김된다. 이 의미가 분석 텍스트에서는 해석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실재에 충격을 주어 치료의 효과로 연결되었다. 그것과 같게, 그러나 그것과는 좀 다르게, 여기서의 의미 s는 문학적 감동,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카타르시스’로 연결된다. 그 같음과 다름의 차이는 분석텍스트와 문학텍스트 간의 같음과 차이에 대응한다. 다시 말해서 그 의미는 S1(구판)의 ‘밤 무대’가 S2(신판)의‘인생의 무대’로 의미화 대치현상이 벌어지면서 빚어진 ‘메타포의 불꽃’이다. 전자가 독자에게서 일어나고 후자가 텍스트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이 둘의 만남과 상호작용은 진정한 의미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능동적’비평모델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의 해석을 통해 드러나는 문학적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바로 ‘문학의 실재’를 구성한다. 그것은 분석적 해석의‘밖’이‘외-존재적’실재를 구성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문학이 허구(fiction)로서 하나의 ‘거짓말’혹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면서도 인류 문명의 시작 이래 지금까지 식을 줄 모르는 감동으로 인간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유는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실재의 환기력 때 문이다. 거기서 ‘서사적 진리’(narrative truth)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있었던’것의 기록인 역사가‘역사적 진리’(historical truth)를 제공한다면 ‘있음직한’것의 기록인 문학은 그것과는 구별되는 ‘문학적 진리’를 발생시켜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기능을 떠맡는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 또한 라캉적 실재이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의「도버 해변」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홀란드 교수는 이 시를 읽으면서 표층적 언어의 구조 속에 드러나 있으면서 동시에 감추어져 있는 어떤 의미의 엇갈림에 주목한다. 이것은 ‘의심의 해석학’을 믿는 정신분석비평가들의 기본적 태도이고 분석과정에서 환자들의 말을 일단 의심해 보는 분석가들의 임상적 태도와도 일치한다. 예컨대 ‘쥐인간’이 살을 빼려고 어떤 강박적 달리기 행위를 반복할 때 프로이트는 이러한 행위 뒤에 감추어진 어떤 무의식적 의미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증상적 글읽기를 통하여 홀란드가 발견한, 혹은 그의 독서과정을 통해 텍스트가 역동적으로 그러낸 이 시의 무의식적 판타지는 앞의 맥베스의 경우와 같이‘원초적 장면’에 대한 판타지였다. 이 텍스트성 무의식이 독서과정에서 활성화되어 이 시가 의식론자들이 말하듯이 절망과 환멸에 관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도버 해협에 출렁이는 물결과 같이 풋풋한 생명력과 막강한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이러한 원초적 장면의 무의식적 판타지가 어떤 변형 과정을 거쳐 의식적이고 지적인 의미로 드러나는가 하는 문제, 즉 “성적인 관계에 있는 한 쌍의 연인들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돌려 멀고 문학적이고 도덕적인 경험 속으로, 투키디데스의 검은 평원 속으로 그것을 승화시키는”(Holland 121) 시적 비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투키디데스’의 검은 평원에 관한 막강한 이미지가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압권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강렬한 이미저리는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아테네군의 시칠리아 원정과 관련된 고사에서 나왔는데, 한 야간 전투에서 아테네군에 혼란이 일어나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전투구하는 혼돈상을 연출했다. 이렇게 밤의 어두운 평원에서 벌어지는‘공격과 퇴각’의 격렬한 전투적 이미지 속에서 두 남녀가 어지럽게 얽혀 연출하는 원초적 장면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 장면을 대하고 있는 어린 아이는 그것을 하나의 전투라고 생각한다지 않던가.

    이렇게 텍스트와 독자의 조우를 통해 생성되는 시적 의미, 그 ‘창조적 불꽃’을 다시 라캉의 메타포 공식으로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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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의 원초적 장면에 관한 판타지가‘같음과 다름’의 유사성 법칙에 따라 텍스트의 객관적 서술, 투키디데스의 야간전투 장면과 서로 겹치고 대치되면서 표층구조에는 ‘투키디데스의 야간전투’만 부각되어 있으나 그것의 심층구조와의 조우는 “투키디데스의 야간전투 장면을 통해 원초적 장면을 전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시적 의미 s를 창출해 낸다. 그러므로 이 시적 의미는 텍스트의 객관적 서술만도 아니고 독자의 주관적 판타지만도 아닌 둘이 상호능동적으로 빚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는 자신을 사용함으로써 텍스트 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통하여 분석텍스트와 문학텍스트의 은유적/2원론적 구조를 밝힘으로써 정신분석으로서의 텍스트(text as psyche), 텍스트로서의 정신분석(psyche as text)의 논리를 끌어내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에 대한 논의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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