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 Schmitt’s Hamlet or Hecuba

칼 슈미트의『햄릿, 또는 헤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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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paper interrogates what a new point Schmitt shows concerning the problem of sovereignty in Hamlet or Hecuba in comparison with his Political Theology. Schmitt reveals his political stand on sovereignty through ‘political representation’ that connects the politics to the aesthetics in Hamlet or Hecuba since Hamlet is above all aesthetic work as play. He stresses the determining effect of political reality over the play as he links the story of Hamlet to the tragic family of James I and the religious conflicts of the Stuart dynasty. This leads to, on the one hand, supporting the myth of absolute sovereignty by elevating Hamlet to the transcendental and the exceptional status of sovereign. However, Schmitt’s intent over the absolute sovereignty is, on the other hand, demolished with the two shadows that he scrutinized through the couple of Hamlet and James I: first, the suspect that Gertrude(MaryStuart) was involved in the murder of Hamlet(James I)’s father, and second, the century’s conflicts with religious reformation and civil war. The perils of sovereignty are manifested not only in these two, “the taboo of the Queen,” and “the Hamletization of the avenger.” It is most of all evidenced in Hamlet itself that subverts the unconditional sovereignty consistently. Hamlet’s selfreflective remarks likening the king to the beggar and the reality of Denmark succession prove that Hamlet’s political discourse is totally different from the politics that accentuates the divine sovereignty.


  • KEYWORD

    Carl Suhmitt , Hamlet or Hecuba , Sovereignty , Political Representation , James I , Hamlet

  • I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1920년대에는『독재』(Dictatorship),『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정치적인 것의 개념』(The Concept of the Political)등 일련의 논쟁적 저작들을 내놓고, 1930년대에는 베를린대학 교수로 임용,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나치당원으로 활동했다. 사실상 슈미트의 저작들은 파시즘이나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간으로 사용된 것이 사실이고, 이는 슈미트의 이론들이 유럽의 우파진영이나 최근에는 미국의 9.11 테러 정당화를 위해서 이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조지오 아감벤(Georgio Agamben), 샹탈 무페(Chantal Mouffe),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등과 같은 좌파학자들이 그의 이론에 관심을 갖는데, 이는 슈미트가‘주권’(sovereignty),‘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 정치의 신학적인 측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같은 현대정치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나름 통찰력 있는 시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1 슈미트의 정치철학은 또한 ‘주권’이나 ‘정치신학’과 같은 개념들을 둘러싸고 최근 영미 르네상스 연구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종교에서 국가로 세속화가 진행되는 르네상스 시대와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2 특히 르네상스 연구자들에게 슈미트의 주권이나 정치신학은 에른스트 칸토르비츠(Ernst Kantorowicz)의 대표적저서『왕의 두 신체』(The King’s Two Bodies)에서 논의되는‘왕의 두 신체’개념과 더불어 비교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3 정치신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슈미트의 주권 개념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독일 비애극의 기원』(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칼 슈미트가『햄릿, 또는 헤큐바』(Hamlet or Hecuba)에서 벤야민에 대한 일종의 응답으로 논의한 진술은 르네상스 연구자들에게 슈미트를 칸토르비츠뿐만이 아니라 벤야민과 함께 비교 연구하는 연유가 되기도 한다.4

    히틀러 독재와의 연루라는 의심스러운 전적 때문에 슈미트는 영미권에서 잠시 망각되었다가 위에서 언급한 좌파학자들의 관심과 더불어 1980년대에『정치신학』과『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영어로 번역되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정치신학이 르네상스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슈미트의 문학작품에 대한 유일한 저서라고 할 수 있는『햄릿, 또는 헤큐바』가 데이비드 팬(David Pan)과 제니퍼 러스트(Jennifer R. Rust)에 의해 2009년, 최근 영어로 완역, 출간되었다. 르네상스 연구자들, 러스트와 줄리아 라인하드 럽튼(Julia Reinhard Lupton)의「서론: 슈미트와 셰익스피어」“( Introduction: Schmitt and Shakespeare”), 슈미트의 글에 해당되는 본문, 그리고「칼 슈미트의『햄릿, 또는 헤큐바』의 역사적 사건과 신화적 의미」“( Historical Event and Mythic Meaning in Carl Schmitt’s Hamlet or Hecuba”)라는 팬의 후기로 구성된 이 책은 그의 정치신학에 관심 있는 르네상스 연구자들에게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자명하다.5 본 논문은 영미 르네상스 연구자들의 슈미트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더불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햄릿, 또는 헤큐바』를 살펴봄으로써, 슈미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권과 관련해서 이 책에서 어떤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햄릿, 또는 헤큐바』는 특별히 슈미트가『햄릿』이라는 예술작품을 통해 주권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써, 연극이라는 미학과 역사적 현실이라는 정치의 관계를 보여주는‘정치적 재현’(political representation)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정치적 재현이 슈미트가 제임스 Ⅰ세에 비유하고 있는 햄릿의 주권내지 왕권의 문제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절대적 주권의 입지를 어떻게 고수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입지에 어떠한 파열을 드러내고 있는지 검 토하려 한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1950년대, 슈미트가 모든 정치적 활동에서 물러난 즈음 집필한『햄릿, 또는 헤큐바』는 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하는 자로서의 주권자의 절대적 역할에 대해서 모순되고 상충된 입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슈미트가 이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 주권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절대적 주권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입장을 넘어서지못한다. 사실상 슈미트는 햄릿 왕위계승의 권리를“신성한 혈통의 권리”로 강조하고 있고 이를 제임스 Ⅰ세가 지지했던“왕의 신성한 권리”에 비유한다(58). 또한 이 책을 출간하기 전, 그의 딸, 애니마(Anima)가 독일어로 번역한 릴리언 윈스탠리(Lilian Winstanley)의『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Hamlet and the Scottish Succession)의 서문에서 슈미트는“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왕의 신성한 권리를 상념과 토론으로 낭비하지 말라는 제임스 Ⅰ세를 향한 호소이다” “( Foreword”171)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햄릿, 또는 헤큐바』에서 절대적 주권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입장이 어떠하든 그가 의도하지 않게 드러낸 주권에 대한 갈등적 태도는 빅토리아 칸(Victoria Kahn)이나 캐트린 트러스트(Katrin Trűstedt)가 지적하듯이 슈미트의『정치신학』을 시대를 거슬러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여지를 제공한다.6 슈미트가 이 책에서 주권에 대해 이러한 상반된 태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연유에는 왕권에 대해 결코 통일되고 단일화된 시각을 보여주지 않는『햄릿』이 놓여있다. 왜냐하면『햄릿』자체가 절대적 왕권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끊임없이 전복하고 허무는 사유의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역사적 현실의“진정한 침입”(genuine intrusions)으로 지적한 두 가지, 햄릿 어머니의 아버지 살해 관여여부와 관련된“왕비의 터부”(The Taboo of the Queen)와 평범한 복수비극의 영웅과 달리 자신의 복수임무에 대해 확신을 못하는, 의심스럽고 문제적인 영웅, 햄릿과 관련된“복수자의 햄릿화”(Hamletization of the avenger)(21)는 왕권의 기반이 결코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후들이다. 이외에도 햄릿의 왕의 위치와 관련된 언구들이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햄릿』이 절대적 왕권과는 다른 맥락의 정치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을 입증한다.

    1여기에는 아감벤의 Homo Sacer, State of Exception, 무페가 편집한 The Challenge of Carl Schmitt, 쟈끄 데리다(Jacques Derrida)의 The Politics of Friendship, 지젝, 에릭 샌트너(Eric L. Santner), 케네쓰 라인하드(Kenneth Reinhard)가 쓴 The Neighbor: Three Inquiries in Political Theology와 같은 저서들이 있다.  2여기에는 매튜 비버맨(Matthew Biberman), 캐슬린 비딕(Kathleen Biddick), 로웰갤러거(Lowell Gallagher), 그레헴 해밀(Graham Hammill), 리차드 헬펀(Richard Halpern), 빅토리아 칸(Victoria Kahn)과 같은 학자들이 존재하는데, 보다 자세한 사항은 캔 잭슨(Ken Jackson)과 아더 메로티(Arthur F. Marotti)의“The Religious Turn in Early Modern Studies”이나 해밀과 줄리아 라인하드 럽튼(Julia Reinhard Lupton)의“Sovereigns, Citizens, and Saints”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칸토로비츠의 The King’s Two Bodies의 부제인 A Study in Medieval Political Theology는 최근 학자들로 하여금 칸토로비츠를 슈미트와 비교 연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매리 엑스톤(Marie Axton), 세르조 베르텔리(Sergio Bertelli), 데이비드 노브룩(David Norbrook)등과 같은 학자들이 있다(Jennifer R. Rust and Lupton“Introduction”ⅹⅴⅲ참조). 국내에는 김영아의「왕의 죽음과 주권의 위기: 셰익스피어의『리차드 2세』」가 칸토로비츠의 주권과 셰익스피어의『리차드 2세』에 나타난 주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4슈미트와 벤야민의 비교연구는 대표적으로 사무엘 웨버(Samuel Weber)의“Taking Exception to Decision: Walter Benjamin and Carl Schmitt”를 들 수 있다.  5세계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공하는『텔로스』(Telos)는 2010년 겨울, 칼 슈미트의『햄릿, 또는 헤큐바』에 대한 특집호를 마련했다. 팬(David Pan)과 럽튼의 소개로 시작되는 이 특집호에는 카슨 스트라서슨(Carsten Strathausen)의“Myth or Knowledge? Reading Carl Schmitt’s Hamlet or Hecuba,”에릭 샌트너(Eric L. Santner)의“The Royal Remains: Carl Schmitt’s Hamlet or Hecuba,”드류다니엘(Drew Daniel)의““Neither Simple Allusions Nor True Mirrorings”: Seeing Double with Schmitt,”스테파니 프랭크(Stephanie Frank)의“Re-imagining the Public Sphere: Malebranche, Schmitt’s Hamlet, Theater of Sovereignty,”캐트린트러스트(Katrin Tru¨ stedt)의“Hecuba against Hamlet: Carl Schmitt, Political Theology, and the Stake of Modern Tragedy”와 같은 글들이 있다.  6Kahn, “Hamlet or Hecuba: Carl Schmitt’s Decision”67, Tru¨ stedt, “Hecuba against Hamlet”95

    II

    슈미트의『햄릿, 또는 헤큐바』는 2차 세계대전 후, 그가 나치정권과의 연계성 때문에 모든 공적활동을 금지 당한 즈음에 쓰여 졌다. 그가 공적 영역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한 일 중의 하나는 딸, 애니마와 함께 자신의 책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애니마는 1952년 봄, 윈스탠리의『햄릿과 스코틀랜드계승』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슈미트는 이 책에 대한 서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공동 작업이 잘 진행되어 애니마는 1960년대에 아버지의 여러 저서들을 스페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가 1956년 출판한『햄릿, 또는 헤큐바』는 책의 서문에서 밝히듯이 상당 부분 윈스탠리의『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슈미트는 이미『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서문에서 자신의『햄릿』에 대한 학문적 관심의 방향을 상세히 기술해놓았다.7 독일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슈미트가 애니마와 학술서적을 번역하기 전부터 셰익스피어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햄릿』에 대한 특별한 학문적 관심은 애니마와의 공동 작업부터 구체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번역작업 후 이어서 슈미트는 1955년 10월 30일 독일의 더슬도프(Dusseldorf)에서『햄릿』에대한 강연을 하고, 56년에는『햄릿』에 대한 자신의 책을 출판한다.8 셰익스피어 학자는 아니지만 당시 독일학계의 연구경향뿐만 아니라 영미권의 대표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밝힌 것만 봐도 슈미트의 셰익스피어, 특히『햄릿』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은 상당히 전문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테판 허먼스(Stefan Hermanns)는 슈미트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연구한 동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애니마와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책을 번역한 동기와 관련된 것으로써 슈미트가 그녀와 자신의 책을 번역하기 전 단계로 공동 작업을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뭔가 새로운 것을 그의 이름으로 출판함으로써 50년대 당시 독일 아방가르드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물론 반응의 결과는 슈미트를“타락한 권위자”(degenerate doyen)로 명명하는 평을 불러일으켰지만 말이다. 세 번째는 윈스탠리가 한 것처럼 문학작품을 역사적, 객관적 현실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다(162-63).

    허먼스가 슈미트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연구한 세 번째 동기로 지적한 사항, 즉 문학작품을 역사적, 현실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슈미트가『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의 서문에서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그리고『햄릿, 또는 헤큐바』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한 사항이다. 그는 서문에서『햄릿』이 보여주는 제임스 왕과 관련된“강렬한 동시대의 역사적 현재성”을 강조하고 있고, “모든 비극에서 끔찍한 일은 생길 수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끔찍한 역사적 현재성과 드라마의 공포가 겹쳐지는 것은 비극의 역사에서 드물다”“( Foreword”165)라고 진술한다. 동시대의 역사적 현재성이라 함은 제임스 Ⅰ세를 둘러싼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시하는 것으로써, 제임스 Ⅰ세가 햄릿처럼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가 전 남편, 존 단리(John Darnley)를 살해한 보스웰 백작(Earl of Bothwell)과 결혼한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슈미트로 하여금 햄릿을 제임스 Ⅰ세와 연관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그는 서문의 첫 부분을 햄릿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극작품이“메리 스튜어트와 그녀의 남편의 아들, 제임스 스튜어트의 극화된 이야기”(164)라고 시작한다. 이것은『햄릿』이 런던에서 공연됐을 거라고 추정되는 1600~1604년과 제임스가 영국에서 왕으로 즉위한 해, 1603년이라는 시 간적 동시성도 염두에 두는 것으로써, 슈미트는『햄릿』이 제임스를 포함한 궁정의 신하들과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제임스 Ⅰ세의 비극적 가족사를 공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슈미트에게 셰익스피어의『햄릿』은“시간, 장소, 행동에 있어서 극단적인 동시성”(166)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다른 고대비극들이나 심지어 셰익스피어 역사극들과도 구별되는 특수성을 갖는다. 고대비극이나 셰익스피어 역사극들에서는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 또는 에스킬러스 (Aeschylus)의『페르시안인들』(Persians)처럼 무대 위 펼쳐지는 이야기가 동시대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주인공이 관객의 자리에는 없다는 것 등은『햄릿』을 이러한 비극이나 역사극들로부터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다(165).

    객관적인 정치적 현실을 강조하는 슈미트의 입장은『햄릿, 또는 헤큐바』에서 계속되는데, 그는 먼저 셰익스피어를 독일의 레씽(Lessing), 괴테(Goethe), 쉴러(Schiller)와 같이 출판을 위해 극을 쓰는“골방 작가”(domestic worker)로부터 구분한다. 즉 셰익스피어가 현대작가들과 같이 출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런던의 궁정, 대중, 배우들과 직접 호흡하며 극을 쓴 작가임을 강조한다. 『햄릿』은 개인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셰익스피어의 개인적 창조성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판물로 미리 극의 내용을 접해보지 않았을 관객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무대 위에서 상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당대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소재를 무대 위에서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결과적으로『햄릿』을 작가, 연출자, 배우, 관객등을 모두 아우르는 공적 영역의 결과물로 바라본다(35-36).

    역사적 현실에 대한 강조는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서 지적되듯이『햄릿』이라는 연극의 미학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사이의 구분내지 연결로 이어진다.9 슈미트의 미학과 정치에 대한 관점을 책의 제목, 햄릿, 또는 헤큐바와 관련된 햄릿의 독백에 대한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햄릿은 2막에서 덴마크 궁전을 방문한 배우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연기를 실제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연기가 끝난 후 햄릿은 다음 인용부분에서 보듯이 실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쏟고 흥분하는 배우에 대해서 감탄한다. 반면 이러한 배우와 달리 복수할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슈미트는 위의 햄릿 독백에 대해서 햄릿이 배우처럼 헤큐바를 위해 울 수 없는 이유는 정치적 현실을 무대 위의 연극으로부터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우리가 현재 존재의 현실을 무대 위의 연극으로 구분하기를 원한다면 배우가 헤큐바를 위해 하듯이 우리는 햄릿을 위해 울 수 있다”(43)라고 진술하면서 햄릿이 연극을 정치적 현실로부터 구분할 수 없듯이 우리도『햄릿』이라는 연극을 역사적 현실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슈미트는 햄릿이나 우리의 눈물이 가능하려면 연극을 단순히 미학으로만 즐길 수 있는“연극 에 대한 순수한 미학적 즐거움”(43)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햄릿』이라는 연극의 미학이 현실로부터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슈미트가 햄릿, 또는 헤큐바의 논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연극이라는 미학과 정치적 현실이 구분되지만, 연극의 미학은 정치적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미학과 역사적 현실이라는 정치 사이의 연속성은 슈미트가 강조하는『햄릿』의 3막, ‘연극 속의 연극’(the play within the play)에 대한 설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연극 속의 연극’은‘쥐덫’(The Mousetrap)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각각의 배우가 클로디어스(Claudius)와 햄릿 아버지, 어머니 역할을 해냄으로써 햄릿 가족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이 연극은 루시어너스(Lucianus)가 곤자고(Gonzago) 영주를 살해하고 뱁티스터(Baptista) 왕비를 유혹하여 결혼하는 줄거리를 갖는다. 슈미트는 이 연극 속의 연극이 제임스 Ⅰ세를 포함한 관객들이 알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적 현실, 즉 햄릿-제임스의 아버지 죽음과 관련된 살해, 어머니의 살해자와의 잇따른 결혼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42-43). 사실 슈미트가 연극 속의 연극을 가장 극명한 정치적 현실의 재현이라고 강조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가 진술하듯이 연극 속의 연극을“가장 극단적인 동시대의 의미와 영원성의 핵심”으로 보지 않는다면 단순히 이것을“있을 법하지 않고, 가공적인, 진실하지 못한”(44) 순수 놀이로 격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슈미트에게 정치적 현실로부터 유리된 순수 예술형태의 미학은 벤야민의 바로크비극(Trauerspeil)에 대한 응답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놀이’(play)는 될 수 있을지언정‘비극’(tragedy)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다. 슈미트는『햄릿』이 극명한 동시대의 역사적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에 순수 연극형태의 바로크 비극에 머물러 있지 않고 비극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현실이『햄릿』이라는 비극을 후세대의 정신사 속에 계속 살아남을 ‘신화’(myth)로 승격시킨다고 본다(48-9).

    슈미트는 왜『햄릿』이라는 극을 다루는데 미학과 정치를 구분하면서 정치적 현실을 강조하는 것일까? 연극이라는 예술이 결코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역사적 현실의 예술에 대한 효과를 주장하는가? 우리는 이것을 슈미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한 주권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슈미트가『햄릿』에서 다루는 주권자는 다름 아닌 햄릿으로 대변되는 제임스 Ⅰ세이다. 슈미트는 햄릿을 제임스 Ⅰ세에 대비시킴으로써 햄릿을 가상의 인물로 남겨두지 않고 종교적 갈등과 시대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왕권신수설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을 피력했던 실제 왕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러스트와 럽튼이 지적한대로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왕은 역사적 현실의 순간과 연극이라는 예술사이의 연속성으로 벤야민 식의“텅 비고 분열된 창조물과 같은 왕”이 아니라“실제 군주인물”과 접촉하는 것이다(xxx). 이것은 햄릿-제임스 Ⅰ세가 슈미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하는 주권자의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위치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햄릿-제임스 Ⅰ세를 통해서 슈미트가 보여주는 주권에 대한 견해는 벤야민이『독일 비애극의 기원』에서 보여주는 주권에 대한 견해와 다르다. 사실 벤야민은 이 책에서 자신의 주권개념이 슈미트가『정치신학』에서 정의한 주권개념에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이에 대해서 1930년에 슈미트에게 그의 주권개념을 칭찬하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Weber 5-6). 그러나 벤야민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바로크 비극의 주권자는 슈미트의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주권자와 달리 현세에서“비참한 존재들의 무리들과 어울려 타락한 본성의 수평적 공간”에 존재하는 동시에“메시아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창조물”(creature)이다(Rust & Lupton xxxv). 이것은 벤야민의 주권에 대한 견해가 슈미트식 주권자의 초월성, 또는 예외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내재성(immanence)과 보편성(universality)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권자의 초월성 맥락에서 우리는 또한 슈미트가『햄릿』을 신화로 승격시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슈미트는 셰익스피어가『햄릿』을 통해 당대의 극명한 역사적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연극이 아닌 비극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슈미트가『햄릿』을 신화로 제시하는 것은 햄릿이라는 배우 뒤에 숨어있는 실제 군주의 신화를 제시하는 것이다. 군주의 신화는 여러 가지 시대적 혼란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에 기반하는 것으로 결국 신화의 논리 속에 숨어있는 의도는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주권자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물론 슈미트에게『햄릿』이라는 작품을 다루기 위해 강조하는 미학과 정치의 연속성, 예술작품과 역사적 현실의 매개성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서문에서보다『햄릿, 또는 헤큐바』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실 슈미트는『햄릿과 스코틀랜드 계승』서문에서 역사적 현실의 작품에 대한 반영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굳이 복잡한 언술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햄릿, 또는 헤큐바』에서는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작품해석에 역사적 현실의 무게를 싣는 것이 단순히 객관적인 역사적 관점과는 다름을 명확히 한다. 그는 프로이드적인 수많은 심리학적 분석이『햄릿』의 신비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반대로 객관적인 역사적 관점이 신비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한다(9). 슈미트는 자신의 관점을 교묘히 심리학적 분석과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분리시키며『햄릿』분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비극적 행동의 원천”(the source of the tragic action)을 알아내는 것이며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햄릿문제의 전체적 특수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10). 그가 비극적 행동의 원천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현실이『햄릿』으로 침입한 방식으로 제시한 두 가지는 첫 번째, “왕비의 터부”와 두 번째, “복수자의 햄릿화”이다. “왕비의 터부”는『햄릿』에서 어머니, 거트루드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 관여했는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고, “복수자의 햄릿화”는 햄릿이 일반적인 복수비극의 주인공과 달리 의심과 상념이 많아 끊임없이 복수를 지연하는 인물임을 지칭한다. 그런데 슈미트는 이 두 가지를 역사적 사실이 예술작품에 가담하는 방식, 가령“단순한 암시”나“진정한 반영”과 같은 재현들로부터 구별한다. 대신 왕비의 터부와 복수자의 햄릿화가 보여주는것은 정치적 현실이 연극이라는 미학에 참여하는 방식 중에서“진정한 침입”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침입의 재현형태가『햄릿』의 연극을 혼란시키는 동시에 신화로 격상시키는 동인이라고 주장한다(44). 사실 진정한 침입형식은 암시나 반영과 같은 일반적인 정치적 재현에 대해서 예외적인 형태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외적인 정치적 재현은‘예외성’을 기반으로한 슈미트식의 절대 주권처럼 예외성에 기초한 역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외성에 기초한 역사성은 예외상태에서 주권자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처럼 역사적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햄릿』을 신화라는 예외적인 형태로 승격시키고 햄릿-제임스 Ⅰ세의 주권에 초월성을 부여한다.

    예외성에 기초한 역사성의 관점은 셰익스피어 당대의 예외적인 상황이 이후 어떻게 영국의 국가 정체성에 기여하는가를 보여주는 슈미트 설명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슈미트는 벤야민이 셰익스피어 비극을 유럽의 바로크 비극에 비유하는 것이 유럽과 다른 셰익스피어 당대의 영국의 역사적 상황을 간과한 오류라고 주장한다(62). 슈미트는 셰익스피어 드라마가 속한 시기를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침몰한 시기부터 1688년 명예혁명과 함께 스튜어트왕가가 영국의 역사에서 추방된 시기까지로 삼는데, 이 시기가 유럽에서는 종교적 갈등시기에서 벗어나 군주국가로 확립되는 때라면 영국은 아직‘야만적’(barbaric)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육지에서 해상으로 영역을 뻗쳐나가는 시기라고 설명한다(64-5).그러나 이 시기에 영국은 유럽처럼 국가적 차원의 군사력이나 정치, 법제도, 경제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어도 선원, 해적, 나중에는 무역회사들까지 동원해서 신세계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력이 비록 유럽처럼 국가적 형태를 갖추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어도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영국이 유럽보다 더 급진적 혁명을 성취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동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65). 이것은 유럽과 대조적으로 육지에서 해상으로 영역을 확장시키는 셰익스피어 당대의 야만적인 시기가 어떻게 이후 국외로는 식민지개척, 국내로는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적 위상을 떨친 영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요인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슈미트의 셰익스피어 당대의 영국과 유럽의 비교는 그의 저서, 『대지의 노모스』(Nomos of the Earth)에 기초하는데,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노모스에 대한 노트」“( Notes on the Nomos”)에서 슈미트가 설명하는 16세기 영국의 해상정책은 국경이 사라진 오늘날 세계정세에 대한 미국의 무법적인 관여로 비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202).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미국을 영국의 연장으로 볼 경우 슈미트가 이해하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의 상황이 오늘날 미국의 초강대국적 헤게모니를 이해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절대적 주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햄릿』이라는 예술과 현실사이의 재현이 간단한 암시나 반영의 차원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햄릿-제임스 Ⅰ세로 대변되는 주권을 강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오히려 예외성에 기초를 둔 정치적 재현이 예외성을 기반으로한 주권처럼 주권의 절대성과 이 주권이 통치하는 국가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논지는 슈미트의 정치와 미학에 대한 기본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칸과 슈미트의 정치와 미학에 대한 견해를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와 구별하고 있는 팬의 논쟁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칸의 설명에 따르면 슈미트는 미학을 정치와 대조적인 것으로 보고, 미학을 정치적 예외상태에 대해서 결정을 하지 못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상황을 유예시키는 자유주의나 경제-기술집약적인 사회와 상통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슈미트에게 정치나 윤리학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는 미학은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을 하지 못하고 토론만 일삼는 자유주의나 상품의 근원적 가치에 대해 따지지않고 똑같은 물건만을 양산해내는 경제-기술집약적인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68). 이러한 슈미트의 미학에 대한 견해는 앞서 살펴봤듯이 슈미트가 미학과 정치의 연속성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미학보다는 정치적 현실을 강조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햄릿, 또는 헤큐바』에서 슈미트가 예술작품과 정치적 현실의 매개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예술작품에 대한 역사적 현실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을 따름이지, 반대로 예술작품이라는 미학이 정치적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비판적 역할을 논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사실 칸이 지적하고, 다음 팬이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는 미학과 정치의 매개성에 대한 슈미트 와 아도르노 논의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팬은 슈미트의 미학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아도르노의 사유방식으로부터 구별하는데, 아도르노는 정치적 현실의 미학에 대한 관여를 수용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미학적 구조를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10 팬은 아도르노의 미학과 정치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는데 앞서 아도르노의 두 가지 보편성에 대해서 진술하는데, 하나는 왜곡되지 않은 주체의‘진정한 보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사회적 관심을 부여함으로써 주체를 왜곡시키는 사회의‘거짓된 보편성’이다.그리고 예술작품은 특정한 사회적 관심의 폭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왜곡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이러한 거짓된 폭력성을 거부할 수 있는 진정한 보편성을 보존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예술, 미학이 정치적 현실에 대해 갖는 비판적 기능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아도르노의 주체의 진정한 보편성과 사회적 현실의 거짓된 보편성은 슈미트의 미학과 정치적 현실로 매개되어질 수 있는데, 슈미트에게는 아도르노가 거짓된 보편성이라고 정의한 정치적 압력과 사회적 관심들이 예술작품을 비극의 영역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인정된다. 왜냐하면슈미트에게는 진정한 보편성을 위한 별도의 기준이 없고 다만 사회적 현실들의 다양한 가치체계들이 경쟁할 뿐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에게 사회적 현실들에의해 결정될 수 없는 주체의 고유한 진정성과 같은 희망이 예술작품에 존재한다면, 슈미트에게는 그런 진정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주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정치적 현실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결국 슈미트에게 미학과 정치의 연결은 정치적 현실의 미학에 대한 결정성을 강조하는 것이지 미학이 정치적 현실에 갖는 비판적 기능이나 미학이 사회적 관심들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영역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팬의 흥미로운 논점은 미학과 정치적 현실의 매개 결과로서 드러나는‘정치적 재현’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절대적 주권을 지지하는 국가의 정체성과 그런 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폭력성을 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슈미트가『햄릿』이 라는 극을 정치적 현실과 매개해서 정치적 재현으로 보여줬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는 햄릿을 히틀러와 다르지 않은 절대적 주권으로, 『햄릿』을 그러한 주권이 기반하는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신화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7Schmitt,“ Foreword to the German Edition of Lilian Winstanley’s Hamlet and the Scottish Succession”  8슈미트가『햄릿, 또는 헤큐바』를 쓰게 된 배경과 관련해서는 허먼스(Stefan Hermanns)의“Introduction to Carl Schmitt’s Foreword to Lilian Winstanley’sHamlet and the Scottish Succession”참조.  9칸은“Hamlet or Hecuba: Carl Schmitt’s Decision”에서 슈미트가 미학을 정치의 쇠퇴를 의미하는 자유주의적 중립화로 간주하면서 미학과 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요하네스 터크(Johannes Turk), 아담 시츠(Adam Sitze)는 각각“The Intrusion: Carl Schmitt’s Non-Mimetic Logic of Art”와“A Space without War, a War without Space: Remarks on the Juridical and Political Thought of Carlo Galli”에서 슈미트가 미학과 정치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정치적 무의식’(Political Unconscious)과‘비극적 갈등’(Tragic Conflictuality)을 강조한다고 주장한다(Rust and Lupton“Introduction”ⅹⅹⅲ-ⅹⅹⅴ에서 재인용).  10슈미트와 아도르노의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팬, “ Afterword: Historical Event and Mythic Meaning in Carl Schmitt’s Hamlet or Hecuba” 73-80참조.

    III

    그러나 슈미트가『햄릿』비극의 원천으로 제시한,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역사적 침입, 첫 번째“왕비의 터부”와 두 번째, “복수자의 햄릿화”는 다른 한편 그가 의도한 절대 군주의 입지를 지지하지 못한다. 물론 슈미트는 이 두 가지 역사적 침입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햄릿을 제임스 Ⅰ세라는 실제적 군주에 비유함으로써 왕권의 신성한 권리에 대한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왕비의 터부와 복수자의 햄릿화는 어느 한편 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하고 다시 여기, 햄릿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려고 한 절대군주의 입지를 허물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에릭 샌트너(Eric L. Santner)와 같은 비평가는 슈미트가 역사적 침입의 두 방식과 함께 설명한 제임스 Ⅰ세가 절대 군주보다는 왕의 분열 혹은“존재 구조의 틈”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40). 첫 번째“왕비의 터부”는 햄릿 어머니의 아버지의 살해 관여에 관한 얘기로서, 『햄릿』에서는 어머니, 거트루드의 햄릿 아버지 살해 관여여부가 철저히 터부로 봉인되어 있다는 것이다.『햄릿』은 슈미트가 설명하듯이『햄릿』과 같은 스토리를 갖는 다른 비극처럼 어머니와 함께 살해자를 복수하든가, 아니면 살해자를 포함한 어머니까지 죽이는 식의 단순한 선택을 피한다. 이러한 회피는 거트루드의 햄릿 아버지 살해 관여여부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햄릿』만의 특수한 구성과 관련이 있다. 사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셰익스피어는 거트루드를 햄릿 아버지 살해와 관련해서 무죄나 유죄, 어느 한쪽으로도 판명하지 않는다. 햄릿의 아버지는 망령으로 나타나 햄릿에게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를 명령하지만 어머니와 관련해서는 “어머니를 위태롭게 해서도 안된다./ 어머니는 하늘의 심판에 맡겨둬라”(1.5.85-6)고 말한다든지, 3막에서는 어머니를 상대로 가혹한 언사를 서슴지 않는 햄릿에게 나타나“어머니를 돌봐 드려라. . . /어머니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 드려라”(3.4.104-05)라고 부탁할 뿐이다. 햄릿의 경우 3막에서 방장 뒤에 숨어있는 폴로니어스를 찔러 죽이고 자신이 한일을“왕을 죽이고 그 동생과 결혼한 일처럼요”(3.4.28)라고 비유하지만, 그의 언급을 거트루드의 햄릿 아버지 살해 관여의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일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햄릿』에는 거트루드의 아버지 살해 관여가 무죄나 유죄, 어느 한쪽으로 드러나지 않고 모호하게 가려져 있는데, 슈미트는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전략을 터부화로 명명하고 이러한 터부화의 근거를 제임스 Ⅰ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서 찾는다. 슈미트는 메리 스튜어트를 대변하는 거트루드를 유죄로 판결할 수 없는 이유가 어머니를 사형시킨 엘리자베스 여왕을 계승해야 했지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길 원했을 새로운 왕, 제임스에 대한 배려라고 얘기한다. 반면 거트루드를 완전히 무죄로 남겨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메리스튜어트의 남편 살해와 관련해서 궁정 안팎에서 떠도는 소문들로 인해 이미 그녀가 살해에 관여했음을 공공연히 알고 있는 관객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8). 하지만 왕비의 터부 문제를 슈미트식의 다소 투박하고 단순한 역사적 해석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문제가 햄릿 주체에 이어서 왕권의 분열까지 관련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트루드의 급한 결혼이 햄릿이 구분하고자 했던 신성한 아버지와 저속한 숙부, 클로디어스를 함께 희석해버리는 어머니의‘음탕한’행동이라면, 어머니의 아버지 살해는 이러한 희석을 가속화하는 극단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햄릿의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의 아버지 살해는 그녀를 순수하고 이상적인 어머니의 정반대인 결혼의 합법성과 간음의 비합법성을 나누지 못하는‘화냥년’으로 만들어 버린다. 햄릿의 남성 주체문제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악한 숙부를 죽이고 아버지의 신성함을 복원하는 일이라면, 아버지와 숙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간음의 행위를 저지른 어머니는 햄릿 주체의 형성을 처음부터 막고 있는 장본인이다. 이것이 햄릿이 처음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보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햄릿의 남성 주체의 문제는 또한 초월성과 예외성을 매개로한 왕권의 문제와 유별하지않다. 햄릿에게 아버지와 숙부의 구분은 이상적인 어머니와 타락한 매춘부의 구별처럼 아버지의 신성하고 예외적인 입지를 분명히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의 입지를 어머니의 구별하지 않는 욕망이 허문다면 아버지로 대변되는 왕권도 위태롭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왕권의 위태로움과 관련해서 슈미트가『햄릿』비극의 원천으로 파악한 두 번째, “복수자의 햄릿화”는 제임스 Ⅰ세 왕권의 입지가 그가 열렬히 지지한 왕의 신성한 권리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미 그 안에 종교적 갈등으로 빚어진 균열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수자의 햄릿화는 햄릿이 보통의 다른 복수 비극 주인공들과 달리 자신의 복수 임무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복수를 지연하는 문제적이고, 의심이 많은 햄릿의 특수성을 지시한다. 슈미트는 이러한 햄릿의 특수성을 시대적 혼란과 종교적 갈등으로 점철되어있었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제임스 Ⅰ세의 운명에서 찾는데, 제임스 Ⅰ세는“분열된 믿음과 종교적 내전의 세기, 그의 시대의 전 갈등”(25)을 상징한다. 슈미트는 먼저 세기의 갈등을 상징하는 제임스 Ⅰ세의 운명을 그의 혈통, 스튜어트 가문의 운명과 관련짓는데, 주지하다시피 아버지가 살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와 그의 아들, 찰스 Ⅰ세는 사형 당했으며, 그의 손자, 찰스Ⅱ세도 망명 생활을 했어야 했다. 불행한 가족의 역사에서 드물게 자연사를 맞이한 제임스 Ⅰ세도 시대적 갈등과 종교적 내란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세기의 분열을 감수해야 했던 인물이다. 스코틀랜드에서 한 살 반에 왕위에 올라 어린 시절부터 그의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의 위협에 노출되어야 했고, 카톨릭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적들에 의해서 프로테스탄트로 키워졌다. 자신의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카톨릭에 열성적인 신자로 남아 있었지만 그는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잃지 않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 지해야 했다. 또한 영국의 왕위 계승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사형시킨 엘리자베스 여왕과도 잘 지내야 했다(27). 이런 맥락에서 슈미트는 제임스 Ⅰ세의『악마론』(Daemonologie)이 햄릿의 유령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유령을 연옥에서 온 가련한 혼령으로 보는 카톨릭과 유령을 지옥에서 온 단순한 악마로 보는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고 본다(28). 물론 슈미트는 제임스 Ⅰ세가 시대적 분열의 세기를 나타낸다고 보더라도, 제임스 Ⅰ세의 왕권신수설, 그리고 그가 셰익스피어와 동료들에게“분열과 위기의 위태로운 순간에 희망이며 꿈”(31)으로써 상징하는 의미를 결코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단지 슈미트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을 포함한 여타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제임스 Ⅰ세가 당면한 시대적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햄릿』이라는 비극의 신화를 가능하게 했던 제임스 왕의 역사적 실재성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햄릿』이 슈미트가 의도한 절대적 주권의 입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비극의 원천으로 파악한“왕비의 터부”와“복수자의 햄릿화”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햄릿』작품 안에서 파악된다. 먼저 햄릿을 둘러싼 왕위계승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슈미트는『햄릿』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덴마크의 선출제도가“선거 군주제”(elective monarchy)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오늘날 간주되듯이 단순히“세습 군주제”(hereditary monarchy)의 반대 의미로 생각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덴마크의 선출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요소는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돌아가시는 왕이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자를 칭하는“죽는 자의 목소리”, 두 번째는 혈통에 바탕을 둔“왕의 신성한 권리”, 세 번째는 중요한 인물로 구성된 의회의 동의이다(56-57). 슈미트는 이 세가지 요소가 왕의 계승을 결정하는데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첫 번째 죽는 자의 목소리는 두 번째 왕의 신성한 권리에서 나오는 것이며, 세 번째 의회의 동의는 오늘날 “자유선거”(free election)와 다르며 이 동의는 반드시 첫 번째, 두 번째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슈미트가 클로디어스에 대해 내린 결론은 그가 햄릿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햄릿을 왕의 계승자로 칭할 가능성을 탈취했다는 것이다. 즉 클로디어스가 왕위계승의 첫 번째 요소, “죽는 자의 목소리를 질식시키고 햄릿의 왕위계승 권리를 파기했다”는 것이다(58). 이어서 슈미트는 햄릿의 왕위계승 권리가 다름 아닌 제임스 Ⅰ세가 호소했던 왕의 신성한 권리, 즉 신성한 혈통의 권리에서 파생하는 것임을 주장한다(58). 슈미트의 간단하지 않은 덴마크 선출제도와 그에 비춘 영국의 햄릿 왕위계승에 대한 논조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절대 주권에 대한 그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햄릿』이 과연 슈미트의 절대주권에 대한 의도를 지지할까? 럽튼에 따르면 16세기 덴마크에서 왕은 슈미트가 설명한 것과 달리 중요한 귀족들로 구성된 의회에 의해서 선출되는데, 이 선출은 평민들로 구성된 단체에 의해서 비준을 받는다고 한다( “The Hamlet Elections”78). 또한 이 선출에 있어서 왕은 자신의 계승자를 칭하는 데 있어서 목소리를 남기던지 의원들의 의견에 영향을 주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11 즉 슈미트는 덴마크의“선거 군주제”를“세습 군주제”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 체제로 보려고 했지만 역사적으로 덴마크의“선거 군주제”는 결코“세습 군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덴마크 선거 군주제는 럽튼이 지적하듯이『햄릿』에서 영국 왕위계승의 논란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왕권의 파열에서 등장할 입헌 군주제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79). 그렇다면 클로디어스에 대해서 우리는 단순히 슈미트가 주장하듯이 그가 햄릿의 왕위계승 권리를 탈취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햄릿』에서 클로디어스가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햄릿 아버지를 살해하고 햄릿까지 죽일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다는 것이지 햄릿의 왕위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니다. 클로디어스가 현재 덴마크의 왕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은 그가 이 왕위를 살해를 통해서 차지했다는 것이지 그에게 처음부터 햄릿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졌을 왕위에 대한 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살해를 통해 왕위를 차지한 클로디어스에 대한 햄릿의 복수가 만약 그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햄릿을 포함한 다른 누군가를 왕위에 앉힐 왕위계승의 문제라면, 과연 햄릿은 이 문제를 독단적으로 처리했는가? 어떤 의미에서 햄릿의 복수는 덴마크 국가차원에서 보면 살해를 통해 불법적으로 왕위를 탈취한 클로디어스를 처단하고 누군가를 왕으로 간택해야 하는 왕위계승의 문제이다. 햄릿은 결코 이 문제를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 아버지 혼령으로부터 클로디어스의 살해에 관해서 듣기 전, 클로디어스가 왕이라는 사실에는 분개하지 않았다. 그가 왕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이 햄릿의 심신을 괴롭히는 일이지 그가 왕이 된 사실에는 별 다른 언구가 없었다. 이것은 햄릿이 왕위가 자신에게는 선천적으로 주어질 당연한 권리가 아님을 의식했음을 암시한다. 그에게 왕위가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복수와 관련된 덴마크 왕위계승의 문제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임은 당연지사다. 살해를 통해서 클로디어스가 덴마크 왕위를 찬탈했다는 사실은 햄릿만이 분노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이라는 죄에 대해서 보편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분노할 일이다. 그러므로 햄릿의 복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은 보편성을 갖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이다. 아버지 혼령이 클로디어스의 악행에 대한 폭로와 복수를 부탁하기 위해 한밤 중 나타났지만 혼령은 햄릿만이 목격한 것이 아니다. 혼령은 햄릿을 제외한 바나도(Barnardo), 프랜시스코(Francisco), 마셀러스(Marcellus), 호레이쇼(Horatio)에게도 나타났다.

    햄릿이 극의 마지막 클로디어스를 처단하는 행위를 실현하기 까지는 그의 곁에 항상 그가 그의 진심을 나누는‘벗’들이 존재했다. 햄릿이 혼령을 보고 난 후 나누는 맹세는“친구이기도, 학자이기도, 군인이기도”(1.5.145) 한 벗들과 나누는 맹세였다. 작품 초반 햄릿 복수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혼령의 목격이 벗들과 공유하는 행위였다면, 이후 햄릿이 복수의 행위를 실현하기까지 계획한 일들과 실천은 절친, 호레이쇼(Horatio)와 나눈 행위였다. 그의 벗들이 햄릿이 본 혼령이 단순한 햄릿만의 환상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목격자라면, 3막 2장에서 호레이쇼는 햄릿이 본 혼령이 단순한 악마가 아닌데다가 더욱이 혼령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관찰자이다. 햄릿이 그의 영혼에 깃든 진정한 벗으로 선택한데다(3.2.56-58), “감정과 이성이 조화 이루고 있어/. . . 격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3.2.62-63) 호레이쇼는 클로디어스의 마음의 동요를 간파한 동료 관찰자였을뿐만 아니라, 나중에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살해의도로 계획된 영국으로 가는 배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편지의 수신자이기도 했다. 로즌크랜츠(Rosencrantz)나 길덴스턴(Guilderstern)처럼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햄릿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는‘거짓 벗’(false friend)도 있었지만 호레이쇼와 같은 진정한 벗도 있었기에 햄릿의 복수가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호레이쇼가 벗으로써 햄릿을 위해 해 준 행위는 햄릿이 죽기 전에 남긴 부탁을 듣고 그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햄릿』왕위계승의 문제가 단순히 슈미트가 의도하듯 햄릿 단독의 주권자의 맥락에서 행해진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햄릿은 호레이쇼를 통해서 포틴브라스를 추대하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전한다.

    그러면 포틴브라스는 누구인가? 만약 슈미트식으로 신성한 혈통에 바탕을 둔 왕위계승을 염두에 둔다면 햄릿이 포틴브라스를 왕으로 추대하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포틴브라스는 슈미트가『정치적인 것의 개념』(The Concept of the Political)에서 구분했던 적과 동지 중 적에 가까운 존재이다. 슈미트는 이 책에서 정치의 출발점이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했다(26). 그런데 햄릿은 왜 포틴브라스를 그의 아버지를 계승할 다음 왕으로 추대했을까? 사실 슈미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임스 Ⅰ세를 왕으로 명명한 것을 햄릿이 포틴브라스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과 다른 맥락에서 보지 않는다(54). 둘 모두가 신성한 왕의 권리에 기초한 행위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햄릿이 포틴브라스를 왕으로 추대하는 순간, 햄릿은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왕이 아니었다. 더구나 포틴브라스는 햄릿의 혈통이 아닌 것은 물론 극의 처음, 자신의 아버지 노르웨이 왕이 햄릿 아버지에게 빼앗긴 땅을 찾으러 덴마크를 침략하려 했었던 자이다. 만약 슈미트식으로 절대적 주권이 기초하는 정치행위가 가능하려면 포틴브라스는 덴마크 영토에서 퇴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왕 위계승의 명단에서 당연히 배제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햄릿』은 절대 주권자의 개념을 넘어서서 왕위계승의 문제를 호레이쇼와 같은 벗에게 의지하는 우정의 맥락에서 바라볼 뿐 아니라, 포틴브라스와 같은‘이방인’을 포용하는 범위까지 확장시킨다. 또한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이방인을 덴마크의 다음 왕으로 추대하는 순간에 햄릿은 왕이 아니었고 덴마크에는 왕이 부재했 다. 덴마크 선출에 있어서 햄릿이 왕이었어도 호레이쇼에게 전하는 그의 뜻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고, 더구나 그가 왕이 아닌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햄릿의 말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혼돈의 상황에 던져진 일종의 씨앗과 같은 것으로써 포틴브라스가 다음 왕으로 승인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이가 의회에 의해서 왕으로 선출될지 확신할 수 없다. 왕의 자리는 비어있다.

    11럽튼의 덴마크 선출제도에 대한 설명은 거너 스조렌(Gunnar Sjögren)의 Hamlet, the Dane에 의함( “The Hamlet Elections”78-79).

    IV

    햄릿을 제임스 Ⅰ세에 비유하여 절대적 주권에 대한 신화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슈미트의 의도는 그가 역사적 현실의 정치적 재현 근거로 삼았던 두 가지 비극의 원천, “왕비의 터부화”와“복수자의 햄릿화”를 통해서 파열음을 드러냈다. 슈미트는 역사적 현실이 연극의 미학을 단순한 놀이로 남기지 않고 비극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햄릿이 제임스 Ⅰ세에 대비됨으로써 비극적 가족사와 종교적 갈등이라는 시대적 혼돈에도 불구하고 왕권신수설로 상징되는 주권의 신화를 대변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슈미트가 햄릿-제임스 Ⅰ세를 통해 의도했던 주권에 대한 신화는 역사적 현실의 그림자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종교적 갈등 같은 왕권에 대한 위협을 통해서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슈미트가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왕권의 파열음은『햄릿』을 통해 나타난다. 셰익스피어가『햄릿』에서 보여준 왕위계승은 슈미트가『햄릿』을 통해 추척했던 덴마크 선거, 그에 따른 슈미트 식의 계승을 둘러싼 햄릿과 아버지, 햄릿과 클로디어스, 그리고 햄릿과 포틴브라스의 관계 독법과 다름을 보여줬다. 슈미트가『햄릿』의 왕위계승을 신성한 혈통에 근거해 파악하고자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이미 세습 군주제에서 멀어진 덴마크 선출을 통해서 영국의 왕권 위기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입헌 군주제도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살해를 범한 왕, 클로디어스가 존재하는 덴마크 국가는 햄릿의 말대로 어긋난 시대이다(2.1.189). 여기에서 햄릿이 한 일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혼령의 부탁을 받은 이로서 살해자를 물러나게 하고 누군가를 다시 왕으로 추대하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이 정치적인 행위는 신성한 왕의 혈통을 부여받은 자로써가 아니라 주체의 분열을 보여주는‘비존재’로써 행해진 행위이다. 햄릿은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 클로디어스가 꾸민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탈출 한 뒤, 호레이쇼에게“나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네/ 싸워야 돼”(5.2.68-69)라고 얘 기한다. 이어서 햄릿은 로즌크랜츠와 길덴스턴이 어떻게 처리될지 알려줄 영국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하는“그때까지 시간은 내 차지네”(5.2.74)라고 말한다. “그때까지”는 바로 이 시점부터 이어질 레어티즈와의 결투, 맨 마지막, 자신이 죽고 영국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하는 때까지를 의미하게 되는 것으로 햄릿이 ‘비존재’로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살찐 왕이나 야윈 거지나/ 맛은 서로 다른 요리지만 둘 다 같은 식탁에 오르지요”(4.3.23-24), 또는“황제 시저도 죽어 흙이 되어/ 구멍 막는 바람막이가 되었을지 몰라”(5.1.196-97)와 같이 왕에 대한 전복적 사유를 펼치는 햄릿이 슈미트가 주장하듯 왕의 신성성 맥락에서 정치행위를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이 거지가 되고, 왕이 한줌의 흙이 되는 주권에 대한 전복적 사유는 햄릿의‘우울증’이 증명하는 비존재로서의 주체 선상에서 가능하다.

    『햄릿』에서 개인적인 주체문제와 공적이며 정치적인 주권의 문제는 결코 유별하지 않다. 슈미트가 주장하듯 연극의 미학이 개인적인 창조성에만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 현실로부터 유리될 수 없듯이. 그러면 다시 슈미트가 주장하듯 정치적 현실이 연극의 미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면 반대로 연극의 미학이 정치적현실에 대해 갖는 영향력은 없을까? 단순히 정치적 현실을 동조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킬 사회비판 기능으로써의 힘 말이다. 사회의 경쟁적인 이데올로기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했을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미학이 관객을 둘러싼 정치적 현실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음을 감지한 듯하다. 슈미트는 간과하고 지나쳤지만 실상 햄릿은 헤큐바를 위해 눈물을 흘린 배우의 연극을 보고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극을 계획한다. 그리고 이것은 햄릿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행위로 이어졌다. 자 그러면 우리에게『햄릿』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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