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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역대(歷代) 의서(醫書)에서 탈영실정(脫營失精)의 의미(意味) 변화(變化) Conceptual Variation of TalYeong-SilJeong in the Medical History
ABSTRACT
역대(歷代) 의서(醫書)에서 탈영실정(脫營失精)의 의미(意味) 변화(變化)

Objectives: The aim of this study is to bring new light on TalYeong-SilJeong (exhaustion of Yeonggi and loss of Essence) through the verification of both the original intention of Hwangjenaegyeong and the conceptual variation afterwards.

Methods: Of various East Asian medical texts, those inferring to TalYeong-SilJeong includeing Hwangjenaegyeong itself were closely examined under the aspect of its conception.

Results: TalYeong-SilJeong was suggested as the first representative tool and accurate diagnostic method of questioning in order to determine the mental state of a patient. However, medical scholars have suggested different levels of meaning. Some used the term for the broad coverage of mental illnesses, understanding Hwangjenaegyeong's discrimination as symbolic gesture, while others projected an unchallenged value on it and weaved it into the concrete set of a disease.

Conclusions: The treatment of TalYeong-SilJeong is suggested according to the varying viewpoints of each medical text. By understanding multiple layers of the conception beyond, a clinician is expected to gain an exuberant image of conception on the one hand and an insight for more effective treatment on the other hand.

KEYWORD
TalYeong , SilJeong , Neurosis , Korean Medicine
  • I. 서론

    의서의 내용을 현대적 맥락과 연결시키는 일은 전통의학 학습자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전통의서에 기록된 내용을 현대적 용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단순화의 오류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다. 과거의 의서와 현재의 학습자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으로서 우리는 대개 의서에 제시된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현대적 질병분류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의서속 병명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은 질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병명에 얽힌 다층적 의미구조들을 단순화하고 해당 병명이 제시하는 대표 이미지를 추출하는 것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표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유익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의서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의미의 변화를 부득이하게 간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표면적 이해에 머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의학 이론은 서양의 과학이나 의학이 취해 온 형식과는 달리 개개의 질병이나 의론 내부에 고유한 의미 퇴적층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의가들이 질병을 이해한 방식에 따라 치법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층위들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은, 임상가들로 하여금 나열된 처 방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을 넘어 본질적 접근을 가능 하게 한다. 현재 한의학 전공자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탈영실정(脫營失精, 이하 탈영실정)의 원인은 『황제내경』 (『黃帝內經』) 「소오과론」 (「疏五過論」)1)의 도식적 논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실의와 좌절로 인해 정지(情志)가 억울된 결과, 영혈(營血)과 위기(衛氣)가 손모(損耗)”2)된 상태이다. 『동양의학대사전』3)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탈영과 실정에 대한 역대 의가들의 논의들을 추가하였으나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는 데에 그쳤다.

    탈영실정과 관련된 기존의 문헌연구를 살펴보면 임상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탈영실정의 개 념규정에 목적을 두었거나, 현대 의학적 병명과의 비교를 통한 임상적 활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등4)은 방대한 의서자료에 기록된 관련 내용들을 발췌하여 각 문헌에 기재된 탈영실정(脫營失精), 탈영(脫營), 실정(失精), 실영(失營), 탈정(脫精) 등을 각각 구분하는 한편, 그 원인과 증상을 열거하고 비교함으로써 탈영실정에 대한 한의학적 논의의 기초를 만들었다. 강 등5)은 탈영실정을 현대적 개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사회에 적합한 방식으로 치료적 범주를 확장시켰다. 해당 연구들은 다양한 문헌을 섭렵하여 탈영실정의 의미 분포를 살펴봄으로써 탈영실정의 여러 개념을 정리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가들의 인식 변화에는 주안점을 두지 않았기에 이 용어에 내포된 의미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이에 저자는 탈영과 실정이 대표해 온 이미지에 천착하여 이들을 고정된 실체로 다루기보다는 각 의서에서 표출하고자 한 개별적 의미구조나 그 변이에 주목하여, 현재 탈영실 정이라는 병명이 규정하고 있는 의미의 폭을 확장시켜 이해하는 한편, 의서에 제시된 치료법을 현대의 임상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II. 본론

       1. 탈영실정 개념의 변화

    본절에서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탈영실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맥락과 함께 여기에서 출발한 후대 의가들의 서로 다른 논의들을 살펴보고자 하며, 그 중에서도 탈영실정의 원인 및 의미의 폭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1) 『황제내경』(『黃帝內經』)의 탈영실정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소오과론」 (「疏五過論」)6)에서는 상귀후천(嘗貴後賤)을 탈영으로, 상부후빈(嘗富後貧)을 실정으로 비교적 간단히 구분하였고 이들이 외사(外邪)가 아닌 인체 내부로부터 생긴 병임을 명시하였다. 영(營)은 음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양물질로서 비장(脾臟)에 저장되며 생각이 머무는 물질적 기초가 되고7), 정(精)은 음식섭취를 통해 비위(脾胃)를 거쳐 오장(五臟)으로 운반되고 신장(腎臟)에 모아 저장됨으로써 생명을 자양하는 기본 단위가 된다6). 따라서 영(營)이 박탈되고 정(精)을 잃어버린 상태는 장부활동과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물질 단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 속에는 사실상 정리되지 않은 논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원인으로 제시된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의 신변변화가 탈영과 실정의 두 종류로 병명을 구분할 만큼 의학적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빈부귀천(貧富貴賤)의 변동 이외에 정신적 외상을 원인으로 한 경우에도 탈영실정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소오과론」(「疏五過論」)6)에서 제시한 오과(五過)의 나머지 내용, 그리고 후대 의가들의 논의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먼저 일과(一過)에서는 잘 알려진 탈영실정의 정의와 함께, “몸이 수척해지고 기허(氣虛)와 무정(無精)이 되며, 병이 깊어지면 무기(無氣)에 이르고, 추위를 느끼면서 잘 놀라며, 심한 경우에는 밖으로는 위기(衛氣)가 소모되고 안으로는 영(榮)이 박탈된 상태가 된다(身體日減, 氣虛無精, 病深無氣, 洒洒然時驚, 病甚者, 以其外耗於衛, 內脫於榮)”는 증후기록이 나온다. “脫於榮”의 구절에서 “營” 대신 “榮”을 사용하 기는 하였으나 이 내용은 후대 의서들에서 대개 ‘탈영’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에 대응하여 ‘실정’은 “근육이 마르고 다리를 절거나 경련이 일어나는 것(痿躄爲 攣)”과 “근육과 맥이 끊어지는 것(斬筋絶脈)”으로서, 사과 (四過) 및 오과(五過)에서 기술하였다. 여기에 실정이라는 병명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始富後貧”의 증후로 서술되어 있으므로 결국 실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실정의 증후는 『장씨의통』 (『張氏醫通』)8)을 제외한 대부분의 후대 의서에서 사실상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탈영과 실정을 구분하는 일이 의가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 오과(五過)에서는 이별과 단절 또는 칠정(七情)의 심리상태가 만들어 낸 병리를 모르면 의술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하여, 그 예로서 선부후빈(先富後貧)의 증후에 대한 의사의 무지와 그로 인한 잘못된 치료를 지적하였다. 이를 통해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의 문제는 칠정상(七情傷)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칠정상(七情傷)의 병리를 ‘人事’로 통칭하면서 人事에 밝아야 이상의 다섯 가지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소오과론」 (「疏五過論」)에서는 탈영실정에 관하여 일과(一過)에서 오과(五過)에 걸쳐 다양하게 논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그 지칭 범위에 있어서도 빈부귀천(貧富貴賤)보다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용어가 사용된 맥락이다. 「소오과론」 (「疏五過論」)은 의사로서 범하기 쉬운 실수를 경계하기 위한 내용이며, 그 안에서 탈영실정론은 진찰 시 칠정 상태를 누락 시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탈영실정을 논한 문단 전체를 놓고 본다면 탈영과 실정이라는 특정 질환, 혹은 양자의 구분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 다기보다는 진찰 과정에서 정신적 상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포괄적 메시지가 본질적인 논의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탈영실정은 하나의 병명이라는 측면 외에, 정신적 문제로 발생하는 신체 이상을 강조하기 위한 정신적 외상의 대표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하겠다.

    정신적 충격을 야기하는 다른 여러 요인들보다 빈부귀천 (貧富貴賤)의 변화에 주목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소오과론」 (「疏五過論」)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사과(四過)의 내용을 보면 귀천(貴賤), 혹은 제후에 봉해졌다가 실패하여 마음이 상한 것, 제후나 왕의 지위에 도달하고자 했던 일 등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의료지식인들이 주로 담당했던 환자층을 짐작하게 해준다. 야마다9) 역시 『황제내경』 (『黃帝內經』) 시대의 의학은 상류계급을 환자로 하는 의사들에 의해 탄생하였다고 한 바 있다. 즉, 상류계급의 사회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와 권력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것이며, 이들이 정서적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과 좌절 중 하나는 평생 추구해 온 부와 권력 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일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은 탈영실정이 당시 사회에서 정신 질환의 대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2) 『황제내경』 (『黃帝內經』) 이후의 탈영실정

    『황제내경』 (『黃帝內經』) 이후 의가들에 의해 언급된 탈영실정에 관한 논의에서는 크게 세 가지 흐름이 발견된다. 첫째는 병인(病因)을 부나 지위의 박탈에 제한하거나 이들 양자를 구분하는 도식적 설명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 않은채, 정신적 외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다룬 경우이다. 둘째 는 탈영과 실정의 원인 구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미처 드러내지 않은 각각의 병리나 증후를 확장시켜 설명한 경우이다. 앞의 두 가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논지를 이어받 았다면, 셋째는 직접적인 정신적 외상과 무관하게 탈영은 실혈(失血)이나 탈혈(脫血)과 유사한 의미로, 실정은 유정(遺精)의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이는 오지지화 (五志之火)로 인한 정혈(精血)의 소모와 구별되는 원인과 병리를 보여주므로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 논의 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정신과적 문제와 관련된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만을 논의하고자 한다.

      >  (1) 원인 구분이나 병명에 중요한 의의를 두지 않은 경우

    먼저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하고 있는, 빈부 귀천(貧富貴賤)의 신분변화가 영(營)과 정(精)을 손상시키는 정신적 외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간주된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경우에 병인(病因)은 부나 지위의 박탈에 국한되지 않을 뿐 아니라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한 탈영과 실정 양자의 차이에 관해서도 굳이 주목하지 않았다. 탈영과 실정이라는 명칭은 정신적 외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며 빈천(貧賤)으로의 추락 이외에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병인을 추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병인에 포함시킴으로써 보다 설득력 있는 병리를 만들어 냈으며, 결과적으로 탈영과 실정이라는 병명을 정신적 외상에 대한 일반적 명칭으로 치환하였다. 이러한 예는 여러 의서들에서 확인되지만 대표적으로는 『편작심서』 (『扁鵲心書』)와 『의학입문』 (『醫學入門』)을 들 수 있다.

    『편작심서』 (『扁鵲心書』)10)에서의 논의는 ‘착뇌병’ (‘着 惱病’)이라는 제목 하에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탈영이나 실정이라는 병명은 직접 등장하지 않으나 先富後貧과 先貴 後賤이라는 병인을 暴憂 및 暴怒와 함께 언급함으로써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론과 사실상 맥락을 같이 하였다. 『편작심서』 (『扁鵲心書』)에서 탈영실정의 병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부귀빈천(富貴貧賤)을 정신적 문제와 관 련된 병인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황제내경』 (『黃帝內經』) 시대 이래로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정신 병리로 간 주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편작심서』 (『扁鵲心書』)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했던 사상비(思傷脾), 우상폐(憂傷肺), 노상간(怒傷 肝)의 병리에 욕상심(欲傷心) 및 우시가식(憂時加食)으로 인한 상위(傷胃)를 덧붙였다. 오지(五志)나 칠정(七情)에 속하 지 않는 욕(欲)을 포함시킨 것은 부와 지위의 쇠락이라는 측면의 역관계, 즉 부나 지위를 얻고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태까지도 동일한 범주 안에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사려과다로 인해 비기(脾氣)가 울결 되었을 때 무리하게 음식을 먹어 상위(傷胃)가 된 경우를 추가함으로써 정신적인 문제가 비위(脾胃)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탈영과 실정에 관한 직접적 서술이 드문 송금원대(宋金元代)와는 달리, 명청대(明淸代) 의서에서는 탈영이나 실정의 정신 병리에 관한 논의들이 비교적 활발하였다. 먼저 『의학입문』 (『醫學入門』)11)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탈영’ 한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이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구분 방식을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귀빈천(富貴貧賤)의 제한된 신변 변화를 ‘선순후역’ (‘先順後逆’) 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탈영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증후기술과 병리에 있어서도 “婦人月水極少, 男子小便點滴”과 같이 남녀에 따른 증후 차이를 함께 논하였고, 동원(東垣)과 단계(丹溪)의 의론을 도입하여 비(脾)의 울(鬱), 기결(氣結), 담화(痰火) 등 구체적 병리과정을 제시함 으로써 치료법을 확장시켰다.

    『의학입문』 (『醫學入門』 )에서는 더 나아가 선순후역(先順後逆)의 탈영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정신 병리를 제공하고 있다. 뜻은 크게 품었으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를 ‘유지’ (‘有志’)11)라 표현하였는데, “有志恢圖, 過於勞倦, 形氣衰少”에 서술된 것처럼 심신의 과로가 함께 개입된 병리임을 알 수 있다. 즉, “선순후역”(“先順後逆”)이 빈천(貧賤)으로의 추락은 물론, 일상의 순조로운 패턴을 파괴하는 급격한 정서적 충격을 대표한다면, “有志恢圖, 過於勞倦”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느라 심신을 모두 수고롭게 하는 경우로서, 오랜 시간에 걸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의 피로가 동반된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일생동안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폭넓게 아우른다. 양자의 병리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화(火)가 생겨나 기혈(氣血)이 소모되는 것은 유사하지만 “선순후역” (“先順後逆”)이 심화(心火)나 오지지화(五志之火)로 인한 것이라면, “有志恢圖, 過於勞倦”은 동원(東垣)이 말한 음허생내열(陰虛生內熱)의 병리로서 수곡지기(水穀之氣)의 운행불리로 발생 위열(胃熱)이 흉중열(胸中熱)로 진행하여 내열(內熱)이 조장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갑자기 닥친 정신적 충격과 장시간 지속된 심신의 과로는 각각 병리적 진행 과정이 다르 므로 근본적인 접근 역시 달라져야 함을 보여준다. 다만 갑작스런 정신적 충격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오랜 시간 지속될 경우에는 이 역시 음허생내열(陰虛生內熱)의 병리11)로 진행 할 수 있으므로 장단기적인 접근방식의 차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경악전서』 (『景岳全書』)12)에서는 『의학입문』 (『醫學入門』)과의 유사성도 발견되지만 『황제내경』 (『黃帝內經』)에 기반을 두고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하였다. 「논허손병원」 (「論虛損病源」)조(條)에서는 탈영과 실정에 대한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으나 실제로 양자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또한 탈영과 실정으로 구분하기보다는 탈영으로 대표해서 설명한 후, 정신의 문제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을 논하는 과정에서 심신의 허로에 따른 문제를 논증하였다. 이천(李梴)이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심신의 허로를 “유지” (“有志”)로 대표해 놓았다면, 장개빈(張介賓)은 지식인들의 허로를 육체노동과 대비시키면서 “신체적으로 유약한 지식인들은 빈천(貧賤)한 이들의 노동 속에 존재하는 일과 휴식의 절도가 없이 심력(心力)을 고갈시키거나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른채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명리를 좇으므로 오히려 위해가 크다”고 하였다.

    『의학입문』 (『醫學入門』)이나 『경악전서』 (『景岳全書』)에 비해 『동의보감』 (『東醫寶鑑』)13)은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탈영실정에 접근하고 있다. 『동의보감』 (『東醫寶鑑』)에서는 「소오과론」 (「疏五過論」)의 탈영실정론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혈(血)은 근심으로 끓고 기(氣)는 슬픔으로 소모된다.”는 내용을 덧붙였고, 병리에서도 “입맛이 없고 정신이 피로하며 수척해진다.”거나 “분노, 사려, 비애로 간(肝), 비(脾), 폐(肺)가 각각 상하여 경락의 화(火)가 동하므로 원기를 상하여 열이나면서 음식생각이 없다.”, 또는 “기혈(氣血)이 부족하고 심신이 허손되었다.”는 등『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와 유사하게 포괄적인 범위의 병리와 증후를 기술하였다. 여기에서 탈영과 실정이라는 명칭은 부정적 감정으로 유발된 기혈(氣血)소모라는 논리를 견인하고 있을 뿐, 이후의 치료 처방이나 병리 해설에서 중요한 설명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한편, 청대(淸代)의 『잡병원류서촉』 (『雜病源流犀燭』)14)에서는 탈영실정을 「내상외감원류론」 (「內傷外感源流論」)에서 추가 항목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탈영실정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상외감원류론」 (「內傷外感源流論」)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외감병 (外感病)과 내상병(內傷病)에 대한 개념규정 및 감별진단이며, 내상병(內傷病)에 관해서는 음식(飮食)과 노권(勞倦), 칠 정(七情), 방노(房勞)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음식(飮食)과 칠정(七情) 모두 삼초(三焦)를 막아서 폐 위(肺胃)의 청도(淸道)가 운행을 하지 못하여 훈증하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칠정(七情)으로 동기(動氣)가 되면 음식상으로 인한 맥상과 구분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내상(內傷)에 관한 이러한 개괄적 설명에 뒤이어 탈영실정의 개념과 치법을 별도의 항목으로 상세히 논하고 있다는 사실은, 탈영실정을 음식(飮食)과 노권(勞倦), 칠정(七情)이 함께 얽힌 대표적인 내상병(內傷病)으로 보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잡병원류서촉』 (『雜病源流犀燭』)에서는 탈영실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동원(東垣)의 기쇠화왕론(氣衰火旺論)15)을 인용하여 칠정(七情)이나 기거(起居)의 실상(失常), 노권상 (勞倦傷)이 모두 기쇠화왕(氣衰火旺)의 병리를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탈영실정이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병리적 전개 과정은 결과적으로 비위병(脾胃 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또한 탈영실정을 ‘실지병’(‘失志病’)으로 규정함으로써 『의학입문』 (『醫學入門』)에서 언급한 ‘탈영’과 ‘유지’(‘有志’), 혹은 『경악전서』 (『景 岳全書』)에서 제시한 논의들을 통합한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질병인식은 치료원칙에 있어서도 다소간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2) 탈영실정을 확장된 의미로 사용한 경우

    탈영실정의 원인 구분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의미의 확장을 시도한 경우를 살펴보면,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구분 방식에 상세한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황제내경』 (『黃帝 內經』)의 논의를 강화한 예도 있지만, 외과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증후와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시키기도 하였다. 전자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내용을 발췌하여 해설한 『내경찬요』 (『內經纂要』)에서 확인되고, 후자는 『외과정종』 (『外科正宗』)과 『장씨의통』 (『張氏醫通』)에서 발견된다. 특히 『내경찬요』 (『內經纂要』)와 『장씨의통』 (『張氏醫通』)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상징적인 병명이 아닌 구체적 질환으로 확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내경찬요』 (『內經纂要』)16)에서, 탈영은 “貴之尊荣에서 賤之屈辱으로 추락하여 神屈로 인해 心懷眷慕와 志結憂惶으로 血脉이 虛減해지는 것”으로 설명하였고, 실정은 “富를 가지고 從欲하며 살다가 奪財가 되면 원하는 바를 풍족하게 도모하지 못하므로, 안으로는 울결되거나 근심이 끓고 밖으로는 슬픔이 일어나 營衛氣血이 순행하지 못하여 몸이 마르 고 기운이 약해진다”고 하였다. 또한 실정에 관하여 부연하기를, 氣는 精이 되고 精은 氣를 기르는 상호 관계를 유지해 야 하는데 氣虛로 인해 精을 자양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부연설명하였다.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병명이 제시된 이후 의가 들에 의해 별다른 설명이 추가되지 않았던 탈영과 실정에 대해 『내경찬요』 (『內經纂要』)에서는 구체적 병리를 설명해 놓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는 이 두 가지에 서로 다른 병명을 붙인 이유에 대해 언급이 없고, 증후에 관해서도 탈영의 증후인지 공통된 것인지에 관해 그 기술 방식이 분명치 않다. 그러나 『내경찬요』 (『內 經纂要』)는 先貴後賤으로 인한 정신적 굴욕감과 先富後貧으로 인한 욕구불만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논하면서 탈영은 血脈의 손상을, 실정은 氣衰로 인한 精의 손상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논지를 충실하게 수용하고자 하고 납득할 만한 의학적 설명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외과 방면에서는 다른 의서에서 발견되지 않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먼저 『외과정종』 (『外科正宗』)17)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외과적 증후로 귀결시켜 놓았으며, ‘失營’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도입하여 통칭함으로써 탈영과 실정을 별개의 질환이 아닌 하나의 증후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외과정종』 (『外科正宗』)에서 제시한 병인을 보면, 자신이 갖고 있던 무언가를 잃은 경우, 부유했다가 가난해진 경우, 부귀한 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경우(先 得後失, 始富終貧, 亦有雖居富貴, 其心或因六欲不遂)에 모두 실영(失營)의 증후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여, 실영(失營)의 원인에 관하여 기존에 제시되었던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논의를 확대시켜 적용하고 있다. 실영(失營)의 병리나 증후에 관해서도 중기가 손상되어 울화가 뭉치면 담이 뭉쳐 발생한다(損傷中氣, 鬱火相凝, 隧痰失道停結而成)는 일반적인 병리기전을 전제로 하면서도 외과적 증후에 초점을 맞추어 증후의 진행 양상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실영(失營)은 상체에서도 어깨 이상에서만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처음에는 마치 담핵(痰核)처럼 색의 변화가 없으나 점차 단단해져 돌과 같이 되고, 터뜨리면 농(膿) 대신 혈수(血水)가 흐른다”고 하였다.

    한편, 『장씨의통』 (『張氏醫通』)8)에서는 『외과정종』 (『外科正宗』)의 내용에 부연하는 방식으로 탈영과 실정을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외과정종』 (『外科正宗』)에서 제시한 몇 가지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다. 『장씨의통』 (『張氏醫通』)에서는 종괴(腫塊)의 발생 부위가 경항부 이상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외과정종』 (『外科正宗』)의 실영(失營) 방론이 미진한 이유를 사증(死症)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탈영의 옹저(癰疽)치료가 대부분 불가능한 이유는 시초에 증상을 가볍게 여겨 초기에 치료를 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발병초기에 위기(胃氣)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다해 익기양양영약(益氣養營藥)을 오래 복용함으로써 호전될 수 있는 바탕을 먼저 만든 후 치료약를 써볼 수 있다고 하여 탈영저(脫營疽)의 치료 기준을 마련하였다.

    특히 『장씨의통』 (『張氏醫通』)에서는 실영(失營)이라는 병명을 다시 탈영과 실정으로 구분함으로써 양자간의 차이를 분명히 규정하고자 하였으며, 탈영과 실정은 병인(病因)과 더불어 증후에 있어서도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는 병인(病因)를 통해 양자를 보다 분명히 구분하고자 하였던 『내경찬요』 (『內經纂要』)의 설명방식과 유사하다. 그 논의를 통해 본다면 선귀후천(先貴後賤)의 경우 영(營)이 사망(內亡)하므로 옹저(癰疽)가 발생하여 살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지만, 선부후빈(先富後貧)의 경우 내부에 울결은 있을지라도 외부로 표출되는 옹저(癰疽)의 증상은 없다고 하였다. 다만 이 두 가지 증상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서 경계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외과정종』 (『外科正宗』)에서 실영(失營)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통칭한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즉, 탈영에서 옹저(癰疽)의 발생은 필연적인 과정이며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실정은 근맥(筋脈)이 마르는 증상을 위주로 할 뿐 생사(生死)의 경중(輕重) 면에서는 탈영과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탈영과 실정을 뚜렷하게 구분하거나 옹저(癰疽) 질환으로 연장하여 파악하는 방식은 청대(淸代) 이후에 발견되는 흐름이다. 이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한 탈영과 실정의 의미로부터 상당부분 진행한 것으로서, 의학적 논의의 심화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굴욕감과 욕구불만의 차이에서 유발된 신체 증상의 격차를 부각시킨 『내경찬요』 (『內經纂要』)의 논점은 그 타당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외과서들 역시 심리적 문제의 처리는 논외로 한 채, 심리적 문제가 외과적 질환으로 직결된다는 관점만을 고수했다는 한계점을 가진 다고 하겠다.

       2. 탈영실정의 치법 고찰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는 진단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탈영실정의 논의를 제기하였으나, 치료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탈영실정의 치 료방법은 후대 의가들에 의해 여러 방면으로 제시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탈영실정의 치법에 있어서 외과적으로 해석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신과적 영역으로 접근한 대표적인 의서들을 비교, 고찰해보고자 한다.

    『편작심서』 (『扁鵲心書』)10)에서는 간비신(肝脾腎) 손상의 증후인 설사(泄瀉), 불성인사(不省人事), 노채(癆瘵), 실혈근련(失血筋攣), 객혈토담(咯血吐痰), 전모(顚冒) 등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먼저 강부탕(薑附湯)으로 사기(邪氣)를 몰아내고 금액단(金液丹)으로 비위(脾胃)를 보한 후 증후에 따라 뜸을 뜨도록 제안하고 있다. 함께 수록된 의안에서는 온보(溫補)의 치법을 그대로 관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증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대우대뇌(大憂大惱)로 비허(脾虛)에 이른 50세 환자에게 용의(庸醫)가 오령산 (五苓散)에 청피(靑皮), 지각(枳殼) 등을 사용한 후 음식부진과 흉민(胸悶)의 증후가 발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명관(命關)과 관원(關元)에 각각 2백 장과 5백 장의 뜸을 뜬 후 강부탕(薑附湯)을 복용시켰고, 다시 금 액단(金液丹)을 써서 치료되었다고 하였다. 금액단(金液丹)은 유황을 수비한 후 항(缸)에 넣고 가열하여 만드는 일종의 단약(丹藥)으로서 침한고랭(沈寒痼冷)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그가 사용한 방법들은 모두 열(熱)을 조장하는 치료법이므로 비(脾)가 허한(虛寒)하여 설사를 하는 증상에는 적합하지만 오지(五志)의 화(火)나 내열(內熱)이 울결(鬱結)된 경우에는 사실상 부적절하며, 그가 지향한 온보부양(溫補扶陽)의 방식은 유하간(劉河間)과 장종정(張從政)이 비판하던 송대(宋代) 온보법(溫補法)과 『화제국방』 (『和濟局方』)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칠정상(七情傷)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동원(東垣)와 단계(丹溪)의 의론은 명대(明代) 이후 의서 들에서 탈영실정의 효과적인 치법으로 제안되었다. 『의학입문』 (『醫學入門』)11)에서는 ‘탈영’의 경우 칠정상(七情傷)로인한 기울(氣鬱)에 효과적인 교감단(交感丹)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향염산(香鹽散)을 이용하여 자기 전에 찰아(擦牙)를 하는 것을 기본적인 치법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우사(憂思)로 인해 기결(氣結)이 되어 음식을 못 먹으면서 오후발열(午後發熱), 번민(煩悶), 갈(渴), 구(嘔)가 있거나, 멍하게 집에 틀어박혀 어두운 구석에만 앉아있으려는 증상이 보이면 온담탕(溫膽湯)이나 이진탕(二陳湯) 가미방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만일 담화(痰火)가 심하면 담약(痰藥)으로 토하(吐下)시킨 후 월국환(越麴丸)으로 조리를 하도록 하였다. ‘유지’(‘有志’)의 경우에는 비위(脾胃)의 문제로 인해 적체(積滯)가 생겨 내열(內熱)이 발생한 것이므로 삼백탕(三白湯)에 증후에 따라 순기(順氣), 보혈(補血), 치담지제(治痰之劑) 등을 가미하여 쓰도록 하였다. 즉, 탈영에서는 정신적 충격을 직접 다스릴 필요가 있으므로 온담탕(溫膽湯)을 사용하되 담화(痰火)까지 문제가 된 경우라면 토담약(吐痰藥)과 월국환(越麴丸)을 써주며,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내열(內熱)이 생겼을 때에는 삼백탕(三白湯)으로 울체(鬱滯)를 풀어주는 치료법을 구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기울(氣鬱) 및 중상초(中上焦)의 기불행(氣不行)으로 인한 내열(內熱)의 병리를 위주로 하되,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담(痰)이나 화(火)의 증후에 따라 처방을 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동의보감』 (『東醫寶鑑』)13)에서는 『의학입문』 (『醫學入門』)을 인용하여 교감단(交感丹)을 내복하고 향염산(香鹽散)을 외용하는 방법을 기록하였으나, 실제 주요 처방으로는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 가감진심단(加減鎭心丹), 승양순기탕(升陽順氣湯), 청심보혈탕(淸心補血湯)을 제시함으로써, 기울(氣鬱)이나 담화(痰火) 등에 대한 고려보다는 보심혈심기(補心血心氣)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만 동원(東垣)의 처방인 승양순기탕(升陽順氣湯)을 통해 비위(脾胃)의 문제로 인한 기체(氣滯)나 중기불리(中氣不利)로 인한 내열(內熱)을 치료하고자 하였고, 동반되는 착란이나 전광(癲狂)과 같은 증상을 제어하기 위해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과 같은 구급약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동의보감』 (『東醫寶鑑』)이 비록 『의학입문』 (『醫學入門』)의 영향을 받은 의서이기는 하나, 『의학입문』 (『醫學入門』)에서 그 근본 원인인 기울(氣鬱)을 출발점으로 삼아 비위(脾胃)의 승강(昇降)기능을 조절하고자 한 것과 달리,『동의보감』 (『東醫寶鑑』)에서는 심기(心氣)와 심혈(心血)의 손상을 중심에 놓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증후 설명에 있어서도 심계, 정충, 건망과 같은 심노(心勞)의 증후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잡병원류서촉』 ( 『雜病源流犀燭』)14)에서는 탈영의 치법 에 있어서 동원(東垣)의 의론을 인용하면서도 직접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하였다. 탈영 실정 치료를 위해 동원(東垣)의 의론을 활용해야함을 주장한 것으로 볼 때, 심(心)보다는 비위(脾胃)의 기울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잡병원류서촉』 ( 『雜病源流犀燭』)에서는 희노(喜怒)의 부정(不定)이 기거불시(起居不時)나 노권상(勞倦傷)과 마찬가지로 모두 기(氣)를 손상시킨다고 하였고, 기쇠(氣衰)로 화왕(火旺)이 되면 비토(脾土)를 승(乘)하므로 식심정좌(息心靜坐)의 방법으로 양신(養神)하는 한편, 감한약(甘寒藥)으로 사화(瀉火)하고 산미(酸味)로 흩어진 기(氣)를 수렴하며 감온약(甘溫藥)으로 중기(中氣)를 조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동원(東垣)가 말한 비장(脾臟)과 심화(心火)의 병리15)를 인용하여 탈영실정에서 비위(脾胃)의 문제를 치법의 중심으로 강조하였으며, 치료 처방으로 진심단(鎭心丹), 승양순기탕(升陽順氣湯), 향염산(香鹽散)을 제시하였다.

    또한 『잡병원류서촉』 (『雜病源流犀燭』)에서는 심리적 접근법으로서 희정(喜情)을 활용하거나 환경 조정을 통해 치료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단순한 정서적 안정 유도가 아닌 비위(脾胃)의 조화를 통해 심(心)에 응체됨이 없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였고, 이와 더불어 일상에서 기쁜일을 맞이하게 함으로써 칠정(七情)을 전환시키고자 하였 다. 또한 기후가 맑고 따뜻한 지역에 거주하게 하거나 집안을 온화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치료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위중(胃中)의 원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자미(滋味)를 먹게 하는 한편, 하고 싶은 일을 접하게 하여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처럼 직접적인 의약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음식과 정서는 물론 환경조건 까지도 치료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은 심신을 피폐하게 하는 탈영실정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안정된 환경의 인위적 조성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III. 결론

    탈영실정이라는 용어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 처음 등장한 이후 여러 의서에서 다양하게 변용되어 왔다. 따라서 용어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서는 용어나 관련 이론 의 변화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탈영실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맥락과 함께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출발한 후대 의가들의 서로 다른 논의들을 살펴보았으며, 여러 의서에서 제시한 치료법에 관해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1.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병인으로 구분하였다. 일과(一過)에서 오과(五過)에 이르는 내용에서는 인사(人事)에서 비롯된 다양한 칠정상(七情傷)를 포괄하였고, 진찰 과정에서 문진을 통해 정신적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내용이 본질적인 논의점이 되고 있다. 당시 의료지식인들의 주 고객층이 지배층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정신적 문제가 탈영실정을 통해 대표된 것으로 보인다.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는 탈영실정의 병리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제시하지 않아 후대에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2.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론은 이후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으로 기술되었다. 먼저, 빈부귀천 (貧富貴賤)의 신분변화를 정신적 외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간주함으로써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한 탈영과 실정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은 경우이다. 둘째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밝히지 않은 탈영과 실정 각각의 병리와 증후를 확장시켜 기술한 경우이다. 두 번째의 경우,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구분 방식에 상세한 해설을 덧붙인 경우도 있었으나, 외과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증후와 연관시킴 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시킨 경우도 발견된다.

    3. 『편작심서』 (『扁鵲心書』)는 ‘착뇌병’ (‘着惱病’)이라 하여 선부후빈(先富後貧)과 선귀후천(先貴後賤)을 병인 중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론과 기본적인 맥락을 같이하였다. 『의학입문』 (『醫學入門』)에서는 ‘탈영’ 한 가지로 귀결시키는 한편, 신변 변화를 선순후역(先 順後逆)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탈영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유지’(‘有志’)의 개념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정신병리로 논의를 연장하였다. 『경악전서』(『景岳全書』) 역시 탈영을 대표질환으로 내세워 정신병후를 논하였고, 『동의보감』 (『東醫寶鑑』)은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론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나 치법론에서는 다양한 견해를 수용 하였다. 『잡병원류서촉』 (『雜病源流犀燭』)에서는 탈영실정을 ‘失志病’으로 규정함으로써 『의학입문』(『醫學入門』)에서 언급한 ‘탈영’과 ‘유지’(‘有志’), 혹은 『경악전서』 (『景岳全書』)에서 제시한 논의들을 통합한 개념으로 접근하였다.

    4. 『내경찬요』 (『內經纂要』)는 탈영과 실정의 병리가 다르다고 보았는데, 선귀후천(先貴後賤)은 정신적 굴욕감으로 인한 혈맥(血脈) 손상, 선부후빈(先富後貧)은 욕구불만으로 인한 기쇠(氣衰)와 정(精)의 손상이라는 논리를 통해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연장선에서 보다 납득할 만한 의학적 설명을 제시하였다. 『외과정종』 (『外科正宗』)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외과적 증후로 귀결시키되, 새로 조합된 실영(失營)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하나의 증후로 이해하였다. 『장씨의통』 (『張氏醫通』)에서는 탈영과 실정을 별개의 질병으로 간주하여 탈영에서는 옹저(癰疽), 실정에서는 근맥(筋脈)이 마르는 증상만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두 가지가 함께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외과정종』 (『外科正宗』)의 논의를 일부 지지하였다.

    5. 『황제내경』 (『黃帝內經』)의 탈영실정론에서는 치료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후대 의가들은 자신들이 서술한 병리에 따라 치법을 제안하였다. 『편작심서』 (『扁鵲心書』)에서는 온보(溫補)의 치법에 치중하였음이 확인되고, 『의학입문』 (『醫學入門』)에서는 기울(氣鬱)과 수승화강(水昇火降) 및 담화(痰火)와 비위(脾胃)의 적체(積滯)에 치중하였다. 『동의보감』 (『東醫寶鑑』)에서는 『의학입문』 (『醫學入門』)을 인용하면서도 보심혈심기(補心血心氣)에 주안점을 두었고, 비위(脾胃)의 문제로 인한 기체(氣滯)나 중기불리(中氣不利)로 인한 내열(內熱)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잡병원류서촉』(『雜病源流犀燭』)에서는 비위(脾胃)의 기울(氣鬱)에 중점을 두었고, 음식과 정서 및 환경 조건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면서 심리적 접근법을 중요한 치료법의 일환으로 간주하였다.

    6. 탈영실정과 관련된 역사적 논의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사실은, 탈영실정이라는 질병이 역사적으로 일관된 의미를 유지해 왔다기보다는 『황제내경』 (『黃帝內經』)에서 제시한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현대적 관점에서 표준화된 지식으 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역사적 흐름의 결과를 한 가지로 요약하는 것만이 표준화가 지향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발췌되고 요약된 지식 뒤에 존재하는 역동적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이러한 연구는 표준화의 또 다른 측면인 단순화를 보완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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