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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Costumes and Cultures of Kouge in the era of Kamakura and the end of Heian in Japan
  • 비영리 CC B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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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ostumes and Cultures of Kouge in the era of Kamakura and the end of Heian in Japan
KEYWORD
Kouge(공가) , Sokdae(속대) , Pogo(포고) , Euigwan(의관) , Jikeui(직의) , Sueui(수의) , Sugan(수간)
  • 1. 서 언

    일본에 있어 헤이안시대 말기는 고대사회가 해체되고 중세사회가 성립된 시기이며, 헤이안(平安)시대 말ㆍ가마쿠라(鎌倉)시대까지의 기간은 중세정권을 장악한 주도세력이 천황을 비롯한 귀족출신인 공가(公家)세력에서 무가(武家)세력으로 교체된 시기이자 공무가 세력이 공존한 특수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복식문화면에 있어서는 종래 나라시대의 중국복식 영향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헤이안시대 초중기의 일본풍 복식으로의 도입 -전개기를 거쳐 복식의 발전이 기대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헤이안시대 말ㆍ가마쿠라시대 공ㆍ무가세력의 공존시기에 착용된 복식 중, 우선 공가복식에 주목하여 복식의 양상과 전개 및 특성에 관하여 고찰함으로써 당시의 사회와 복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둔다.

    본 연구의 내용은 헤이안시대 말ㆍ가마쿠라시대 복식의 이해를 위해 당시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적 배경에 관하여 고찰한다. 또한 이 시기에 착용된 남녀의 공가복식의 양상에 관하여 검토하고 그 특성에 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각종 문헌과 당시의 여러 회화자료 및 유물자료 등을 참고로 연구한다.

    본문의 외래어 표기에 있어, 명기된 일본어의 한글표기는 한글(한자)로 병기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요지명과 천황, 시대구분 등의 명칭은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였다.

    2. 헤이안말ㆍ가마쿠라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공가문화

    일본에 있어 중세에 해당하는 11~14세기는 헤이안시대 말ㆍ가마쿠라시대로, 우선 이 시기의 대외정세를 보면, 당이 쇠퇴하고 신라와 발해가 망하였으며, 고려, 거란이 건국된 시기이다. 중국에서는 5대의 흥망을 거쳐 북송이 통일하였지만, 요를 멸망시킨 금에게 쫓겨 남천해서 남송을 세웠다. 송과 일본 사이에 빈번한 교역은 이루어졌으나, 국가 간의 통교는 열리지 않았다. 13세기에는 몽고가 대제국을 건립하고 남송과 금을 멸망하고 고려를 복속시켰으며 일본에도 두 번 내습하였다(Kim, 1998).

    대내적으로 헤이안시대 말기는 고대사회의 해체와 중세사회의 진입이라는 중요한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즉 헤이안시대 말기는 귀족의 우아하고 화려한 문화의 꽃이 핀 시대이고 또한 국풍문화가 형성된 중요한 시기였으며, 정치 경제상으로는 나라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율령제가 점차 붕괴되어가는 시기였다. 헤이안시대 중엽부터 시작된 중앙 정치권력이 쇠퇴함에 따라 지방의 호족세력은 오히려 강화되면서 그 세력은 중앙의 정치권력을 제압할 정도였다(Lee, 1992/1999). 지방호족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이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토지제도에 변화가 있었는데 이 시기부터 전국적으로 장원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장원의 증가로 국가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하여, 사회적인 혼란이 야기되었다.

    한편 본 연구에서 언급되는 귀족층인 공가에 대하여 살펴보면, 공가는 원래 천황과 조정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공가귀족 일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공가가운데 삼위(三位)이상, 관직에 있어서는 참의이상을 공경(公卿)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바로 이것을 공가라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가문화라고 하는 것은 헤이안시대의 귀족문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헤이안시대의 공가문화를 왕조문화, 궁정문화라고도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공가문화라고 하는 것은 천황가 내지 조정을 중심으로 한 문화였으며 그 생활 기반이 수도인 쿄토(京都)에서 전개된 문화였던 것이다(Kwon, 1994).

    귀족으로서 공가들의 주된 생활은 의례로서의 축제를 연출하는 것이었으며, 헤이안시대 궁정을 중심으로 한 공가들의 생활은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행위가 그들 생활의 중요부분을 차지하였다. 즉 공적인 의식이나 행사에서 사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진력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Tukamoto, 1977). 그리고 공가귀족을 나타내는 상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인 침전조라는 양식을 선호하였다. 침전조는 침전이라는 건물을 중심으로 동서 또는 한 쪽에 대옥을 만들고 대옥에서 다시 몇 개의 건물을 복도로 연결되도록 자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침전과 대옥의 내부는 주실과 행랑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침전 남쪽의 앞면에는 연못이 있는 정원을 만들었으며(Kitamura, 1992), 이러한 침전조의 양식은 공가 복식의 세련되고 우아함을 표현하는데 있어 적합한 건축양식이었다. 이러한 여유로운 생활은 공가의 재력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흥취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장원과 관직에 따라 국가에서 지급하는 토지와 녹 등이었다. 이 수입은 당시에도 상당한 재산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며, 이러한 수입은 그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위한 것 뿐 아니라 다른 유력귀족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후궁으로 있는 자녀의 여방이나 조도품의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3. 공가의 복식문화

       3.1. 남자복식

    3.1.1. 속대(束帶, 소쿠타이)

    속대는 헤이안시대 공가 복식을 대표하는 최상위의 남자복으로, 속대라는 명칭은 표의인 포위에 석대를 둘러 위의를 갖추는 것에서 불리어졌다.

    속대는 궁정 출사 시의 조복이며, 천황 이하 신하들이 궁정에서 일상으로 착용하는 의복으로, 이것은 원래 나라시대의 조복이 헤이안시대에 예장화되어 성립된 것이다. 즉 속대는 나라시대에 대극전에서 즉위식, 원일조하의식과 같은 당풍을 모방한 행사에서 착용되었던 당풍의 복식이었지만, 헤이안시대에 와서는 즉위 시에만 천황이하 참열한 관인만이 착용하였으며 점차 의례복화 되기에 이르렀다(Kawakami, 1994).

    속대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의복은 포와 반비, 하습, 일, 단, 표고와 대구, 말, 석대, 관, 화, 홀, 어대이며 대검(帶劍)을 패용할 경우는 태도와 평서가 더해진다(Aikawa, 1984). 착장법은 하의의 대구를 입고, 단과 일을 겹쳐 입은 후, 표고와 하습, 반비를 착용하고 그 위에 포를 입고 석대를 허리에 맨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발에 말을 신고 손에는 홀을 든다. 전보의 연구(Lee, 2010a)에서 나라시대의 조복과 헤이안시대 말기의 속대를 비교분석한 바, 헤이안시대 말기의 속대는 전대에 비하여 구성복식의 종류가 증가한 것을 비롯하여 명칭, 용도, 형태적, 색상, 착장법, 소재, 문양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많았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러한 복식의 변화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필연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으며(Lee, 2010b), 소재 면에서도 딱딱한 소재의 사용으로 강장속화 경향에 의한 것이었다. 강장속이란 상하의 의복 소재를 조밀하고 견고하게 직조한 직물이나 부직물(浮織物)에 위사로 문양을 넣은 이배직물(二倍織物) 등을 사용하여 좀 더 빳빳한 느낌이 나는 질감으로 하여 의복을 제작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 소재로는 이러한 장속에 적합한 것이 능이나 견이 선호되었는데, 능의 경우에는 고지능(固地綾)이나 육매능(六枚綾)이 사용되었고, 평견의 경우에도 경사를 생사로 위사를 연사로 하여 만들어진 연위(練緯)라고도 불리어지는 직물을 사용하였다. 강장속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직물의 소재와 조직을 일반 직물과는 달리하는 방법 외에도 직물에 풀을 먹여서 더욱 단단하게 하는 특수한 기술이 개발되기도 하였으며, 풀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직물의 용도와 목적에 따라 풀의 재료를 달리하는 방법도 강구되었다. 견고한 질감의 소재로 제작된 장속은 우아하면서도 정돈 된 모습으로 보여 지고 또한 풀을 먹인 효과에 의한 직선적인 실루엣은 장려한 모습과 위풍을 나타냄으로서 당시 공가들의 권위와 위상을 더욱 높여 주었다고 사료된다.

    한편, 가마쿠라시대에 들면서 속대는 그 구성도 점차 간소화되어 반비는 생략되기도 하고, 하습도 별거라고 하여 자락을 별도로 하여 착용하였으며 평서도 앞에 드리우는 부분을 따로 만들어 착용하였다(Fig. 1).

    3.1.2. 포고(布袴, 호우코)

    포고는 속대 구성에서 표고 대신에 지관의 고를 착용한 장속이다. 이것은 속대보다는 약식이나 의관과 직의 보다는 갖추어진 복식이다. 포고란 원래 상급자가 보통 포와 같이 착용한 모습을 포고라고 불리게 되면서 하급자가 바지자락을 묶은 포제의 고라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여기에 포제의 고를 견이나 능으로 만든 고인 지관을 착용하게 되었다. 지관은 지위에 따라 색과 문양을 달리 하여 착용하였는데 예를 들어 황태자는 자과(紫)에 산문(霰文)의 부직물, 상황은 박색(薄色), 또는 천총(??)의 당초문 고지능으로 만든 지관을 착용하였다. 천황의 경우 유년기에는 이배직물 또는 부직물로 된 지관을, 장년기에는 운립용문(雲立涌文) 고지능으로 만든 것을 착용하였다(Takada, 1978). 또한 지관은 4폭으로 만들어진 표고와 소고와는 달리 8폭으로 제작되어 더욱 풍성한 실루엣을 연출하며 바지자락에 통과되어있는 끈을 발목에서 졸라 묶음으로써 동작하기에 편리하도록 제작되었다. 비상시에는 발목의 끈을 무릎아래에 묶기도 하였는데, 명칭에 있어서도 발목에 묶는 것을 하괄(下括)이라 하고 무릎에 묶는 것을 상괄(上括)이라고 하였다(Fig. 2).

    3.1.3. 의관(衣冠, 이칸)

    의관은 속대의 약장으로 문무관 모두 착용하였다. 속대가 낮에 입는 장속이라면 의관은 밤에 착용하는 숙직장속이었으나, 점차 이 숙직장속이 사적인 행사에 착용되다가 평상시 궁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의관의 구성은 포고에서 하습과 석대를 생략한 관, 포, 일, 단, 지관, 하고로 구성되어있다. 의관의 포는 속대나 포고의 포와 같이 위계에 따라 포의 색을

    다르게 하였다. 그러나 의관은 석대를 매지 않기 때문에 허리를 매는데 있어 포의 뒷면과 허리부위에 주머니 모양으로 된 격대(格袋)를 밖으로 내어 그 상부양측에 작은 끈을 부착하여 이것을 앞으로 둘러 배 아래부위에서 묶는다. 여기에 석대 대신에 가는 조대나 횡대를 허리에 두르며, 포는 봉액포로 되어 있고 태도는 패용하지 않는다. 관은 속대와 포고에서와 같이 수령(垂纓)의 관을 착용한다. 숙직장속이었던 의관이 점차 준 정장으로 착용되면서 수의와 수간이 숙직장속으로 착용되었다(Takada, 1978) (Fig. 3).

    3.1.4. 직의(直衣, 노우시)

    직의는 공가에서 통상 착용되는 포로 집에서나 사적인 방문 등에 널리 착용하는 장속이며, 헤이안시대 말에는 옷감과 형태, 착용자 등에 따라 어인직의, 소직의, 관직의 등의 종류도 생겨 나게 되었다. 직의 장속의 구성은 쓰개로 관 또는 오모자에 직의, 의, 단, 지관으로 되어있으며, 형식은 의관과 같고 봉액포로만 되어있다. 또한 석대는 매지 않고 격대는 밖으로 내어 늘어뜨려 끈으로 맨다. 홀은 들지 않고 발은 맨발이며 외출 시에는 얕은 신발을 신는다. 쓰개는 평상시에는 오모자를 쓰지만, 참조시 또는 격식을 갖추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관을 쓴다. 포의 색은 위계에 따라 정해지지 않아 자유로이 선택할 수가 있으나, 포에 사용되는 위색은 사용할 수가 없고 또 둔색(鈍色)은 흉색이라고 하여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Kawakami, 1994). 천황도 궁중에서 직의를 착용하였는데 이때의 직의를 어인직의라고 하였다. 천황의 경우 직의의 색은 겉은 백색이며 안감은 자색에 가까운 이남(二藍)이었다. 이남이란 홍색과 남색으로 염색한 것으로 젊은 착용자의 경우는 홍색을 많이 하고 남색을 적게 하여 붉은 색감이 나게 하였고, 나이가 듦에 따라 홍색을 적게 하고 남색을 가하여 청색의 색감이 나게 하였으며, 노년기에는 백색으로 하였다. 그리고 하절기용의 직의는 홑으로, 동절기에는 겹으로 하였으며 이남으로 염색한 것을 사용하였다. 천의 재질은 여름용은 시원한 느낌이 나도록 경사와 위사의 조직을 변화시켜 만든 곡직(?織)으로, 겨울용으로는 안과 겉 모두 능으로 하였고 특히 겉감의 문양으로는 천황과 황태자, 친왕이 소계(小癸)로 하였고, 신하는 둥근 당화(唐花)에 비문(飛文)을 넣어 직조하였다. 지

    관은 공가에서 젊은 층은 부직물과 짙은 색을 선호하고, 장년의 경우는 선염을 한 경사 3매와 위사 6매로 문양을 넣어 직조한 고직물(固織物)에 옅은 색을 사용하며, 문양은 젊은 층은 작은 문양을, 나이가 들수록 점차 큰 문양을 사용하였다.

    소직의는 직의보다 간략한 사복으로 대신과 대장 이상의 고관이 외출용으로 착용한 것이다. 형태는 수의와 직의를 절충한 것으로 직의보다 수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락에 란을 달아 위의를 높게 하였으며 수의보다 고가의 소재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직의가 집에서 입는 의복에서 공적인 용도로 착용됨에 따라 소직의라는 중간형의 의복을 고안하여 착용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천황은 원칙적으로 착용하지 않으며, 친왕이 착용할 때에는 방속(傍續) 이라고 하며, 상황의 소직의는 감어의(甘御衣)라고 불리어졌다. 소직의의 구성복식은 의와 단, 지관을 입고 머리에는 오모자를 쓴다(Fig. 4).

    3.1.5. 수의(狩衣, 카리기누)

    수의란 원래 신분이 낮은 사람의 상복으로 착용되었던 것이 공가에 도입되어 수렵이나 여행 등의 야외에서 활동할 경우에 착용하게 되었다. 즉, 서민이 착용하던 수의가 점차 활동에 편리한 의복으로 인식이 되자, 상류층에도 보급이 되기 시작하여 일반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수의는 布(포)로 만들었다고 하여 포의(布衣)라고도 불리어졌으며 또한 옆구리가 열리게 만들어졌다고 하여 수오(狩?)라고도 하였고(Takada, 1978), 이러한 명칭이외에 엽의(獵衣), 안의(雁衣), 오(?)라고도 불린다. 수의장속의 구성은 의에 지관과 수의, 오모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머리에 쓰는 오모자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감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점차 딱딱한 재질로 만들게 되어 입오모자, 절오모자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것이 신분에 따라 사용되었다. 수의의 형태는 반령에 양옆구리가 열려있는 궐액으로 되어있고 길은 한 폭으로 되어있으며, 앞길과 뒷길의 길이는 같다. 소매는 오수(?袖)와 단수(端袖)로 되어있고, 동작의 편리를 위해 뒷길에만 끈을 묶게 하였다(Kawakami, 1994). 천황, 황태자는 수의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이것을 착용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천황 양위 후 처음으로 수의를 착용하는 것을 포의하지메(布衣初め)라고 하여 수의착용에 의미를 두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궁중에서도 수의착용이 금지되었던 것이 점차 일반화하게 되어

    수렵 뿐 아니라 일상의 궁중생활에도 착용이 허용되기에 이르렀고, 허용범위가 넓어지게 됨에 따라 소재 뿐 아니라 문양이나 색상에도 변화를 보여 견직물에 여러 가지 색상이나 문양도 넣어 화려하게 되었다. 수의 착용 시의 하착으로는 8폭으로 된 지관을 착용하고 그 아래에 하고와 단을 입고 격식을 차릴 경우에는 단에 일을 더하여 입는다. 여름에는 유(?)에 단이나 유 또는 단만 입었다. 쓰개로는 오모자를 쓰고, 신발은 맨발에 얕은 신발을 신었다. 전상인과 수령 층 사이에는 수의를 일상의 사복으로 착용하였다(Fig. 5).

    3.1.6. 수간(水干, 수이칸)

    수간은 수의의 일종으로 마포로 제작되었으며, 서민의 평상복이었던 것이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공가의 사복으로 채용되어 하급관인이 주로 착용하였던 것이다(Oonuma, 1986) 형태는 수의와 비슷하지만 길이는 수의보다 짧고, 반령에 궐액으로 되어있으며 1폭의 길로 만들어져 있다. 평상시에는 수간의 자락을 고 안에 넣어서 착용하며, 쓰개로는 오모자를 쓴다(Takada, 1978).

    위부(衛府), 검비위사(檢非違使)의 관인이 입는 수간에는 장식술인 국철이 앞가슴부위의 섶선과 뒷 수구 부위, 그리고 뒷길에서 소매와 봉합되는 진동부위에 부착이 되어있다. 또한 소매 끝에는 끈이 달려있어 졸라매게 되어있고 평상시에는 장식의 효과를 위해 끝을 늘어뜨린다. 이와 같은 수간은 공가의 어린이에게도 착용되어 동수간(童水干)이라는 명칭도 생기게 되었으며, 무가에서도 착용하게 되어 가마쿠라시대에는 무가의 예장으로도 착용되었다. 옷감, 색, 문양은 점차 화려하게 되어 포 뿐 아니라 평견, 능, 곡, 금도 사용되었으며, 옷감은 색이 있는 무지나 홀치기 염 등의 각종 염색을 한 것이 사용되었다(Fig. 6).

    3.1.7 소수(小袖, 고소데)

    공가의 남자는 하착으로 소수를 착용하였다. 예복인 대수아래 착용하는 내의로서의 소수와는 이름은 같지만 실체는 다른 의복이다. 하착인 소수는 수령형식, 직선재단의 통수로 된 것이며 하착이기 때문에 보통은 흰견 또는 고위직의 사람은 희색 능으로 만든 것이 사용되었으며, 이 소수가 착용되어지게 된 원인은 장속이 관활화되면서 부터라고 생각된다. 내의는 이전부터 착용되었지만 헤이안시대 말기의 소수와는 형식이 달라서 대륙풍의 것으로 명칭도 간삼이라고 하였다. 포, 수의 일 외에 하착으로 착용되던 단이 관활화되고 길이와 화장이 길게 되면서 소매부리도 넓게 되고 광수형식으로 됨에 따라 통수형식으로 남아있는 하착의 기능성으로 인하여 광수의복에 대하여 소수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수라는 명칭은 광수를 착용하는 공가에서 생겨난 것으로 종래부터 통수의복만 착용하였던 일반서민에게서는 불리워질 수 없었던 명칭이다(Takada, 1978).

       3.2. 여자복식

    3.2.1. 십이단(十二單, 쥬니히도에)

    십이단은 남자의 속대에 해당하는 공적인 예장으로 궁중에 종속되어 있는 여자들의 정장이다. 이것은 나라시대의 예복에서 계승된 것으로 여방장속, 당의상장속이라고도 하며, 여기에 복식 부속품인 비례(比禮)와 군대(裙帶)를 착용하고 머리에 보관을 착용한 차림을 물구(物具, 모노노구) 차림이라 하여 십이단보다 더 성장한 차림으로 여겨지고 있다(Lee, 1989/2004). 십이단의 구성은 당의, 상, 규, 표착, 단, 고로 되어있으며, 의복을 여러 겹 겹쳐 입게 되어있어, 겹쳐 입음으로써 나타나는 의복의 색감과 풍성한 실루엣은 공가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나타내어 준다. 이것은 남자에 비하여 공적인 의식이나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적고 주거 공간 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여자의 경우는 당시 침전조라는 주택구조에 적합한 겹쳐 입는 식의 의복으로 발전하여 공가 특유의 양식을 나타낸 것으로 사료된다(Lee, 2008) (Fig. 7).

    3.2.2. 소규(小?, 고우치키)

    소규차림은 십이단의 약장으로 남자의 직의에 해당되는 차림이다. 소규는 십이단에서 당의와 상을 생략한 규차림에 소규를 덧입은 차림으로, 궁중에서의 평상시나 일반공가에서의 사

    적인 예장으로 착용되었으며(Takada, 1978), 헤이안시대 말에는 직의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경우에도 착용하였다. 소규는 준정장에 해당되는 것으로 규보다는 길이가 조금 짧다. 소규에 대한 기록으로는 헤이안시대 말 <도화예엽(桃花蘂葉)>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중납언중장(中納言中將)의 신부가 진한 소방색의 이중직물 귀갑문(龜甲文)의 소규를 입고 그 아래에 귀갑문의 표착(表着)과 타의(打衣), 그리고 흰색의 규를 8장 겹쳐 입고 다음에 단과 장고(長袴)를 착용하였다는 결혼피로연 시의 차림이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도 소규가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Lee, 1989/2004). 소규차림은 점차 예장인 청장속으로도 착용하게 됨에 따라 당의와 같이 착용하는 등 착장법에 다소 혼란이 있기도 하였다. 즉, 상은 착용하고 있지만 당의를 생략하거나 당의는 착용하고 상을 생략하여 착용하기도 하여 예장인 청장속과 약장인 설장속의 중간차림이 회권(繪圈)에 자주 묘사되고 있다.

    소규의 형태는 규와 비슷하며, 옷감은 문양이 있는 직물과 나(羅)가 주로 사용되었고, 색은 백색, 자색, 이남, 포도, 맹황, 소방 등이 사용되었다. 또한 소규차림에서 소규를 생략한 규차림도 공가의 설장속으로서 착용되기도 하였다(Fig. 8).

    3.2.3. 세장(細長, 호소나가)

    세장은 20세 전후 여자들의 사적인 예장으로, 규와 비슷한 형태이나 임이 없으며 깃은 당의와 같은 수령으로 접혀있어 세장 안에 입은 옷의 다양한 색의 표현 즉 카사네이로메(重ね色目)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게 되어있다. 옷의 길이는 착용자의 신장보다 길게 되어 있어 자락이 길게 끌린다. 2폭의 뒷길은 허리부위에서 각각 1폭 씩 뒤 중심을 기점으로 트여 있어, 뒷길의 두 자락과 앞길의 두 자락은 모두 뒤로 향해 끌리도록

    되어있다. 또한 소매는 1폭으로 되어있어 세장 안에 입은 규의 소매길이보다 짧아 수구부위의 겹쳐 입음으로 나타나는 카사네이로메가 잘 나타나고 있다. 허리에는 대(帶)를 맨다(Fig. 9).

    3.2.4. 한삼(汗衫, 가자미)

    한삼은 원래 홑으로 된 속옷이었으나, 점차 하급인의 겉옷으로 착용되다가, 다시 장대화하여 공가의 미성년인 동녀의 정장으로 입게 되었다. 한삼의 형태는 반령에 섶이 있고 옆선은 트여있는 궐액으로 되어있으며, 길은 2폭, 소매가 2폭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의복의 뒷길 길이는 약 4미터 50센티, 앞길의 길이는 3미터 60센티 정도로 매우 길어 뒤로 끌리도록 되어 있다(Idutu, 1989). 착장 시 특이한 점으로는 한삼의 옷깃은 원래 반령으로 되어있으나, 이것을 허리에 맨 대 부위부터 수령으로 넓게 접어서 입었는데, 이는 안에 입은 옷깃의 카사네이로메를 표현하기위하여 원래의 착장법이 아닌 변형된 방법으로 착용한 것으로 사료된다(Fig. 10).

    3.2.5. 소수

    소수는 원래 서민복으로 착용된 것이나(Takatukasa, 1978), 헤이안시대 말기에 그려진 회권물의 하나인 <병초자(病草子)>에 공가여자가 규 아래 흰색의 소수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공가여자도 하착으로서 소수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Takada, 1978). 뿐 만 아니라, 공가남자의 경우도 소수를 착용하였다. 당시 공가에서 서민의 의복인 소수를 하착으로서 착용하고 있는 이유는 공가계급의 쇠퇴화로 인한 경제적인 궁핍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때의 공가여자들은 규에 고만을 입든지 규도 생략하고 흰색 소수에 고만의 차림을 한 경우도 많았으며, 이에 대한 차림을 벌거벗은 차림이라는 명칭의 하다카의(はだか衣)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하였다(Takada, 1978). 소수에 관한 것은 다음 후속연구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4. 공가복식의 특징

    헤이안 말ㆍ가무쿠라시대에 접어들면서 종래의 지배계층이었던 공가 외에 무가라는 새로운 지배계층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지배계층의 복식은 공가복식과 무가복식으로 구별되어 나타났으며, 이러한 복식은 공무의 역할과 내용에 따라 복식이 달리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의 공가복식에 주목하여 보면, 공가복식은 남녀의 성별에 따라 남자와 여자복식으로 구별할 수가 있으며, 남자복식으로는 속대를 비롯하여 포고, 의관, 직의, 수의, 수간이 착용되었고, 여자복식으로는 당의상과 소규, 세장, 한삼이 착용되었다. 남녀의 복식에서 종류 면에서 비교하여 보면, 여자의 복식 중 세장과 한삼이 공가 미혼의 여자가 착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녀 기혼자가 착용하는 복식으로는 남자의 경우가 여자의 것보다 종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자가 정치와 사회적인 활동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어 여자보다 활동의 영역이 넓은 만큼 행사와 일의 성격에 따라서도 복식의 종류가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것보다 종류 면에 있어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복식의 장식미에 있어서는 여자의 복식에서 최고의 장식미라고 할 수 있는 겹친 색(카사네이로메)의 기법과 같은 표현은 남자의 경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남자에 비하여 비활동적이었던 여자의 복식은 하나의 장식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여자복식에서 한층 더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당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위상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복식에 있어 속대, 포고, 의관, 포고, 직의, 수의, 수간은 모두 머리에 쓰는 관과 구간부에 착용하는 의복, 그리고 신발과 함께 착용함으로서 관-의복-신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복은 다시 상의와 하의 2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 2부식 의복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았는데, 하의로는 바지인 고를 입고 상의로는 포 형태의 긴 의를 입었다. 상의의 길이는 비교적 길게 되어있고, 복식의 종류에 따라 상의자락을 고의 안에 넣어서 입기도 하고, 상의자락을 밖으로 늘어뜨리기도 하였다.

    이들 복식은 예장용으로서의 정장과 평상시 궐내에서 입는 준정장인 약장, 사적인 방문 시의 외출복, 그리고 수렵 야외에서의 활동복, 청장속과 숙직장속 등으로 나누어져 있어 행사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복식을 달리하여 착용하였으며, 이는 한 벌의 의복으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일반 서민의 생활과 구별되는 공가귀족의 우아한 의생활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각각의 복식은 위계에 따라 옷감과 문양, 복색을 달리 사용하여 시각적 언어로 상징되는 복식을 통하여 위계를 명확히 구별함으로서 공가 내에서도 신분간의 위계질서 유지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사료된다. 또 동일 명칭의 복식인 경우, 하급자의 복식은 상급자의 복식을 변형하여 착용함으로서 복식의 형태면에서도 신분간의 차이를 둠으로서 공가의 위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한편, 가마쿠라시대 이후에는 신분이 낮은 계층의 의복인 수의가 형태의 간소함과 착용의 편리함으로 인해 상류층의 의복으로 된 경우도 있어, 통상 하급자가 상급자의 의복을 모방하거나 변형하여 착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가 상류층에서도 중요한 행사를 제외한 일상의 의복은 용도에 따라 편의를 도모하고자 할 경우에는 하급자의 의복을 차용하여 착용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신분에 대한 엄격한 위계가 점차 희박해져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각 구성복식 별로 살펴보면 우선 속대는 예복으로서 가장 중요한 공복 중의 하나로 각 시대를 통하여 최고의 장속으로 여겨지고 있다. 속대는 나라시대의 조복에서 계승된 것으로, 공가가 국가의 주도력을 장악하였던 헤이안시대 초중기에는 형태면에서 관활하게 되고, 다양한 색의 표현으로 화려하고 다양화되었다. 헤이안시대 당시의 속대 구성은 포와 반비, 하습, 일, 단, 표고, 대구, 말, 석대, 관, 화, 홀, 어대 그리고 평서로 되어 있어 예복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가 되면서 속대는 구성복식인 반비와 하습, 평서 등과 같이 생략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간략하게 하는 등 점차 그 구성이 간소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당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가세력이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져서 새로운 발전은 기대할 수 없고 그 형식만 유지할 정도의 것으로 되었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포고는 정장인 속대의 약장으로서 속대의 구성복식 중 표고 대신 동작의 편이성을 위하여 발목부위에 끈이 부착된 지관을 착용한 것으로, 권위와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는 공가 생활에서 편리함의 도모를 위한 복식도 고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의관은 원래 숙직장속이었으나 수간과 수의가 숙직장속으로 됨에 따라 의관은 낮에 입는 청장속으로 바뀌게 되어 주ㆍ야 구별되어 있던 의복의 용도가 새로운의복의 등장으로 그 용도가 점차 바뀌었는데, 이것도 당시 사회정세의 변화에 의한 새로운 세력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복식의 발생으로 야기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의는 사복으로 착용되다가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참조(參朝)때에도 착용이 허용되어 천황도 어인직의 차림으로 의식에 참석하는 등 공복으로 됨에 따라 직의의 색과 문양이 발달하여 정형화되었다. 한편 직의가 사복에서 공복화 됨에 따라 수렵과 여행 등에 착용되었던 수의가 직의를 대신하여 사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수의는 원래 사적인 의복인 만큼 색과 문양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직의와 같이 나들이용 의복으로의 위용을 갖추기 위하여 옷감과 문양에 있어 종래의 수의 보다 더 한층 고급스러운 차림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사료된다. 뿐 만 아니라 사계절의 화초를 옷감에 표현하고 또한 겉감과 안감 그리고 상의와 하의의 배색까지 고려하여 복식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등 사적인 외출복, 나아가 공가의 사교복으로서의 화려함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사복에서 공복으로, 하급자의 복에서 상급자의 복으로, 숙직장속에서 청장속으로의 의복의 용도변화 및 착용자의 변화는 당시 의문화의 현저한 발전을 가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옷감과 문양, 염색, 수공예기법의 발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관한 구체적인 기술에 관하여는 후속연구에서 다루기로 한다.

    다음으로 여자복식은 십이단과 규고, 소규, 세장, 한삼이 있으며, 이러한 장속의 공통점은 늘어뜨린 긴 머리에, 고와 속옷인 단을 입고 그 위에 같은 형태의 의를 여러 겹으로 착용하여 전체적으로 풍성한 느낌의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다.

    우선 십이단은 나라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남자의 속대에 해당하는 공복이다. 당의상은 황후와 공가의 귀부인들이 중요한 의식에 참가할 때 착용하는 복식이기도 하며, 또 궁정 또는 귀족의 집에 시중드는 궁녀나 시녀들의 제복으로도 착용되어, 대비되는 두 계층이 같은 의복을 착용하게 되는 특수한 복식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공가 귀부인의 복식이 궁녀나 시녀들의 제복으로 착용되는 것은 시각적인 복식의 효과를 이용하여 시중드는 사람의 품위를 높게 보이게 함으로써 시중 받는 귀족의 권위를 더욱 격상시키는 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사료되며, 이러한 것을 통하여서도 복제제정 당시 공가의 위상을 추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복인 당의상에 대하여 남자의 직의에 해당하는 소규는 십이단에서 당의와 상을 생략하거나 또는 당의만 생략하고 그 위에 소규를 겹쳐 입는 것으로, 구성복식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사적인 예장이었으나,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소규도 직의와 마찬가지로 공식석상에서도 착용하게 되었다. 소규를 공식석상에서 착용하게 되면서 여기에 당의를 함께 착용하기도 하였는데(Kawakami, 1994), 당의 위에 소규를 착용할 것인지, 소규 위에 당의를 착용할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야기된 경우도 있었으나, 소규 착장 시에는 당의를 입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Kawakami, 1994). 또한 소규는 공가부인과 자녀가 착용하였고 시중드는 사람은 착용하지 못하였으며(Lee, 1992/1999), 형태는 규와 비슷하고, 길이는 규에 비하여 다소 짧다. 소규가 일반 여성의 사적인 예장으로 착용된 반면, 세장은 20세전후의 젊은 여자의 사적인 예장으로 착용되었다. 그리고 성인여자의 공적인 정장에 대하여 미성년 동녀의 정장으로는 한삼이 착용되었는데, 한삼은 원래 홑으로 된 속옷이었으나 점차 하급인의 겉옷이 되면서 다시 장대화되어 공가 동녀의 정장이 되었다. 이러한 공가 여자복식은 헤이안시대 국풍문화 등의 영향으로 관활화되었고, 색과 문양에 있어서도 다양하고 화려하게 되면서 직선을 강조한 강장속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같은 형태의 의복을 여러 겹 겹쳐 입는 착장법으로 인하여 카사네이로메라는 특유의 복식미를 표현함으로서 섶이나 수구, 자락 등에 겹쳐짐으로 연출되는 색의 배합은 착용자의 미적 감각과 함께 공가귀족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5. 결 언

    본 연구는 헤이안시대 말ㆍ가마쿠라시대의 공가복식에 주목하여 당시의 정치와 경제, 사회적 배경 속에 전개된 복식의 양상과 특성에 관하여 고찰한 것으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 있어 헤이안시대 말ㆍ가무쿠라시대는 대외적으로 주변국인 당이 쇠퇴하고 신라, 발해가 망하여 정권이 교체되는 혼란한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고대사회가 해체되고 중세사회에 진입하면서 종래의 율령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국풍문화의 형성과 함께 장원의 증가 및 지방호족세력이 강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헤이안시대 말ㆍ가무쿠라시대에는 정치를 비롯한 문화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복식 문화적 측면에서는 종래의 지배계층인 공가 외에 무가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으로 공ㆍ무가의 복식이 대별되어 나타나고, 이들 복식을 통하여 공ㆍ무가의 권위와 위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공가복식은 남녀성별에 따라 구별되어 나타나는데, 남자복식으로는 속대와 포고, 의관, 직의, 수의, 수간이 있고, 여자복식으로는 십이단과 소규, 세장과 한삼이 있다. 남녀의 복식에 있어 정치 사회적 활동이 강한 남자 뿐 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비활동적이었던 여자인 경우에도 공가의 권위를 위하여 복식의 치장에 진력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치장은 남자의 권위와 위상을 격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작용되었으며, 특히 여자복식에서는 시중을 받는 자와 드는 자의 복식이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는 특수 현상에 있어서도 지배계층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표현의 방법이었음을 고려할 때, 복식을 통하여 지배계층이라는 인간미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 복식은 예장용으로서의 정장과 준정장인 약장, 사적인 방문시의 외출복, 수렵야외에서의 활동복, 청장속과 숙직장속 등으로 구별되어있어 행사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복식을 달리 하여 착용하였으며, 이러한 다양한 복식의 종류로 보아 공가귀족의 우아한 의생활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복식은 위계에 따라 옷감과 문양, 복색을 달리하여 위계를 명확히 구별하여 공가 내 신분 간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서 공가 스스로 그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가마쿠라시대가 되면서 공가세력이 사회에서 멀어지게 되자 복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나 신분에 대한 엄격한 위계가 점차 희박해져 속대의 구성복식인 반비와 하습, 평서 등이 생략되거나 간략하게 되기도 하고, 하급자의 의복을 차용하여 착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새로운 세력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복식의 발생으로 사복에서 공복으로, 하급자의 복에서 상급자의 복으로 숙직장속에서 청장속으로 의복의 용도 변화 및 착용자의 변화는 당시 옷감과 문양, 염색, 수공예기법의 발전과 같은 의문화의 현저한 발전을 가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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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ig. 1. ]  Sokdae-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03.
    Sokdae-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03.
  • [ Fig. 2. ]  Pogo-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40.
    Pogo-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40.
  • [ Fig. 3. ]  Euigw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02.
    Euigw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02.
  • [ Fig. 4. ]  Jikeui-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58.
    Jikeui-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58.
  • [ Fig. 5. ]  Sueui-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14.
    Sueui-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14.
  • [ Fig. 6. ]  Sug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15.
    Sug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115.
  • [ Fig. 7. ]  Shipid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97.
    Shipidan-Won-si-mul-eo Life of Rokuzoin, p. 97.
  • [ Fig. 8. ]  Sogyu- 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58.
    Sogyu- 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58.
  • [ Fig. 9. ]  Sejang-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58.
    Sejang-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58.
  • [ Fig. 10. ]  한삼- 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63.
    한삼- The history of Women's Costumes in Japan, p.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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