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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장률 감독의 <경주> Gyeongju directed by Zhang Lu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장률 감독의 <경주>

Gyeongju (2014) of Director Zhang Lu is the second film named after Korean city since the film Iri (2008). The film begins with the arrival of Choi Hyun (Park Hae-il), who served as a professor at Peking University, in Daegu Airport to visit the mortuary of the deceased senior Kim, Chang Hee. And then, Choi Hyun goes to Tourist town Gyeongju which he has traveled with his seniors 7 years before. Choi Hyun meets Gong Yoon-hee (Shin Min Ah), the beautiful hostess of the traditional tea house in there. He asked about the whereabouts of her pornography was on the wall. The two people have a friendly feeling toward each other, and Yoon-hee recommend to Choi Hyun that he join us in social meeting.

In a Korean restaurant, Choi Hyun nice to spend a good time with friends of Yoon-hee. Dayeon, Professor Park, Detective Lee, and Florist Gang etc. And there Choi Hyun is arguing with Professor Park about a north-south political issues. That night Choi Hyun spend the night at the home of Yoon-hee, but there was no affair between them despite the interest in each other. Choi Hyun left the house of Yoon-hee in the early morning, Yoon-hee tore up the wallpaper of the traditional tea house looking for pornography which Choi Hyun wanted so much to see. The picture of the problem was pornographic in young man and woman entering into sex positions.

The film Gyeongju is dealing with the love story in the background of a city in which the life and death coexisted, because there are many tombs. Through these settings, this film describes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o the lingering threat of war and peace metaphorically.

KEYWORD
관광도시 경주 , <경주> , 북경 , 춘화 , 삶과 죽음 , 전쟁과 평화 , 문인화 , 자살
  • 1. 장률, 그리고 트랜스-로컬 시네마(trans-local cinema) 삼부작

    장률(張律) 감독의 <경주>(Gyeongju, 2014)는 그가 <이리> 이후 한국의 지명(地名)을 제목으로 삼은 두 번째 영화다. 중국의 대도시인 중경을 제목으로 삼은 <중경>이란 영화까지 합하면, 이른바 트랜스-로컬 시네마(trans-local cinema) 삼부작이 되는 셈이다. 장률 감독은 1962년 생으로 중국 길림(Jilin Province)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민족(즉 조선족)이지만, 국적으로는 중국인이다. 연변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때 동 대학교에서 중국문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단편영화 <11세>(11 Eleven)를 시작으로 영화제작에 관심을 가졌으며, 2004년에는 <당시(唐詩)>(The Poetry)라는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사실 장률 감독이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芒種)>(2005)이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 영화는 2005년에 열린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으며, 프랑스 독립영화배급협회에서 수여하는 ACID상을 수상했다. 장률 감독은 세 번째 장편영화인 <경계(境界)>(2006)로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같은 해 이 작품은 홍콩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1)

    이처럼 장률 감독은 <망종>과 <경계> 단 두 편의 영화로 국제영화제 서클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평단에서도 주목을 받는 차세대 감독으로 급부상을 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장률 감독은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대단히 획기적인 시도를 하는데, <중경>(2007)과 <이리>(2008)라는 연작(連作)을 구상하고 거의 동시에 제작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중경>은 중국에서 찍었고 <이리>는 한국에서 찍었지만, 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스타일은 하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들 연작을 트랜스-로컬 시네마라는 새로운 개념의 틀로 보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중경>과 <이리>는 어떤 영화인지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김시무, 「장률 감독과 트랜스-로컬 시네마」, 『영화연구』 제60호, 2014, 59쪽.

    2. 두 도시 이야기: <중경>과 <이리>

    장률 감독의 <중경>(CHongqing, 2007)은 대단히 파토스(pathos)가 강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중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중경(重慶) 토박이 출신인 쑤이라는 처녀가 겪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내파(內破) 직전의 대도시의 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넓은 강의실에서 쑤이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백(李白)의 시 <촉도난>(蜀道難)을 텍스트로 삼아서 중국 표준어(즉 북경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수강생들에게 중국에 온 이유를 묻는데, 칸에서 온 프랑스인이 칸영화제에 참석한 여배우 공리(鞏悧)가 너무 아름다워서 무작정 중국행을 택했다고 말한다. 수강생 중 한국인인 김광철은 1977년 고향인 이리가 폭발사고로 사라진 후 한국에서 별다른 재미를 못 느껴서 중국으로 왔다고 말한다. 쑤이는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라는 등소평(鄧小平)의 어록을 작문과제로 제시하면서 수업을 마친다. 이 말은 “내일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라는 뜻이다.

    쑤이는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지식계급 출신인 아버지는 퇴직금 에도 불구하고 폐품을 수집하면서 구질구질한 삶을 영위한다. 아버지는 또한 이따금 창녀를 집안으로 불러들여서 욕정을 달래기도 하는데, 그만 경찰에 적발되어 벌금 3000위안 또는 구류 15일에 처해질 위기를 맞는다. 경찰서에 찾아온 쑤이를 본 왕위 소장은 그녀와 사귀는 조건으로 아버지를 무죄 방면해준다. 그리하여 쑤이는 이따금 호텔에서 왕소장과 만나 섹스파트너가 되어준다.

    한편 쑤이는 김광철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는데, 광철은 그녀에게 1977년 이리 폭발사고 때 극장의 화장실에 있다가 화를 당했다고 말해준다. 그 극장에서는 당시 인기가수였던 하춘화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함께 참석했던 부모님 모두 사망하고, 현재 고향인 이리(익산)에는 사촌형만이 남아서 중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댄스 파티장에서도 쑤이는 광철에게 친근감을 보이고 볼에 뽀뽀까지 해주지만, 광철은 사고 때문에 성기마저 잃었다면서 쑤이를 피한다. 광철은 중국도 한국만큼 재미가 없어서 몽골로 떠날 결심을 했다고 말해준다. 심란해진 쑤이는 엄마의 묘소에 가서 아버지와 자기가 점점 더러워지고 있다면서 자책을 한다. 이따금 창녀를 불러들이는 아버지와 역시 이따금 왕소장의 섹스파트너가 되어주는 자신의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심경의 토로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쑤이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왕소장과의 정사를 위해서 예의 그 호텔방에 들른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와 격렬하게 섹스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날로 평소 오다가다 만난 지하도의 홈리스 부녀를 찾아가서 맹인인 아빠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는다. 왕소장의 배신에 화가 난 쑤이는 한 술 더 떠서 그의 권총까지 빼내갖고 다니는데, 경찰에게 목숨과도 같은 권총을 돌려받지 못한 왕소장은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홀딱 벗은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한편 아버지는 중경 사투리를 버리고 표준어만을 고집하는 딸내미에게 질렸다면서 집을 나와 고물상으로 거처를 옮겨버린다. 쑤이가 사는 낡은 마을은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주민들은 ‘인터내셔널 가(歌)’를 부르면서 철거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더 이상 머물 자리가 없어진 쑤이는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한다. <중경>의 디제시스상에서는 그녀가 어디로 떠나는지가 분명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연작인 <이리>에서 그녀가 이리에 있는 중국어 학원을 찾아옴으로써 최종 행선지가 밝혀지게 된다.

    대략적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았는데, 장률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인 쑤이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중경이라는 대도시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일상화된 폭력(暴力)에 대하여 그냥 스쳐지나 가듯이 스케치를 하고 있다. 이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쑤이가 학원 강의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버스 창밖으로 폭력배들로 보이는 남자들 서너 명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가 그중 한 명이 다른 남자의 머리에 대고 총을 쏘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포착된다. 백주(白晝)에 대로(大路)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쑤이가 왕소장과 처음 데이트를 하는 야외 음식점에서도 폭력 상황이 펼쳐지는데, 옆 테이블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던 세 명의 남자들 중 두 사람이 갑자기 한 남자의 팔을 펄펄 끊는 탕 그릇에 집어쳐 넣는 것이 아닌가? 상황이 심각한데도 경찰인 왕소장은 그저 수수방관만 할 뿐이다. 장률 감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과 더불어서 매춘(賣春)도 일상화 된지 오래임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 초반부의 한 장면에서 고가도로 위에서 홀로 고공시위를 하면서 자기 땅을 돌려 달라고 호소를 하던 한 농민공이 영화 후반부에서 결국 투신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설정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률 감독의 <이리>(Iri, 2008)는 지난 1977년 11월 11일 전라북도 이리시(지금의 익산시)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이후 30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종의 로컬 시네마다. 영화의 주인공은 진서(윤진서)라는 이름의 서른 살 처녀인데, 사고 당시 엄마의 배속에 있다가 폭발의 진동으로 인해 미숙아로 태어난 불운한 여자다. 진서는 택시기사인 오빠 태웅(엄태웅)과 함께 경로당을 겸하여 쓰는 허름한 주택에서 사는데, 노인들의 수발을 들기도 하고 동네 중국어 학원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하루하루를 영위하고 있다. 오빠는 일을 마친 후면 집안에 틀어박혀서 이리시의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외견상 평온해 보이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진서의 삶은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다. 남들보다 사고력과 분별력이 떨어지는 그녀는 걸핏하면 남자들로부터 강간을 당하여 임신을 하고 유산(流産)을 반복한다.

    한편 여동생의 거듭된 성폭력 피해에 울분을 참을 수 없는 오빠 태웅은 아예 진서의 불임수술까지 생각해보지만, 이것마저 여의치가 않다. 그녀의 판단력 결여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서가 반복되는 임신의 후유증으로 거리에서 쓰러지고 마침 같은 동네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그녀를 발견하여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어쨌든 이 같은 일련의 참담한 사건을 겪은 태웅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동생 진서를 이리 앞바다로 데리고 가서 물속에 쳐 넣는다. 그러고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만들어온 이리시 미니어처를 폭죽을 이용하여 폭파시켜 버리고 만다. 그리고 중국 중경 출신의 쑤이가 새로운 중국어 선생으로 오자 진서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2)

    이처럼 장률 감독은 중국의 대도시 중경과 한국의 소도시 이리(익산)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두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중국 여자 쑤이와 한국 남자 광철의 사연을 절묘하게 엮어서 트랜스-로컬리티(trans-locality)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장률 감독은 여기에 문제작<경주>를 추가함으로써 일관된 주제의식(主題意識)과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중견 감독이 되었음을 입증했다.

    2)위의 논문, 73-74쪽 참조.

    3. <경주>의 시퀀스 분석

    장률 감독은 2009년 자신의 고향 땅에 대한 영화 <두만강>(The Dooman River)을 만들고 난후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3년 <풍경(風景)>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연출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가 전작들에서 거둔 성취를 넘어서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최근작인 <경주>야말로 그의 진정한 복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경주>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영화는 크게 열 개의 시퀀스로 나눌 수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대구공항에서부터 시작한다. 북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국인 최현(박해일)이 얼마 전 사망을 한 김창희 선배의 빈소를 찾아 온 것이다. 조문객이 별로 없는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최현은 선배 이춘원(곽자형)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창희의 사망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사연인 즉 창희가 3년 전에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하여 그야말로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살다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거의 일 년 동안 그녀와 말을 끊고 지내다가 갑자기 사망을 했다는 얘기였다. 부검을 했느냐는 최현의 질문에 선배는 당연히 샅샅이 조사를 했지만, 살해 당한 흔적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대답해준다. 게다가 그 선배는 창희의 아내가 그만큼 철저하게 완전범죄를 꾀했을 거라는 심증까지 덧붙인다.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최현은 자기네 집에서 한잔 더 하자는 선배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주로 향한다. 7년 전 창희선배와 함께 들렀었던 전통 찻집에 가보고 싶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3) 이어서 경주에 내려 관광안내소에 들린 최현이 젊은 안내원(정인선)과 중국어로 몇 가지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단일한 시퀀스로 보기에는 너무 간략하여, 네 번째 시퀀스로 이어지는 전단계로 봐야 할듯하다.

    두 번째 시퀀스는 최현이 찾아간 경주의 전통 찻집 아리솔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미모의 여주인 공윤희(신민아)의 환대를 받은 최현은 황차를 주문하고는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지인들로부터 ‘경주의 여신’이라고 불린다. 윤희는 황차를 찾는 손님은 별로 없다면서 마침 가깝게 지내는 망월사의 스님으로부터 받은 황차가 있는데 처음으로 대접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건넨다. 한편 최현은 다소 민망스럽게도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의 벽면에 그려있었던 춘화(春畵)의 존재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 윤희는 춘화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진 손님들의 농 탓에 아예 벽지로 발라버렸다고 대답해준다. 최현은 오래전에 사귀었던 후배 김여정(윤진서)에게 전화를 걸어서 신경주역에서 보자고 하고는 찻집을 나선다. 윤희는 친구에게 문자로 춘화를 찾는 변태손님이 왔다고 전해준다. 윤희로부터 명함을 받아든 최현은 그녀의 아버지가 공자의 78대 후손임을 알게 된다.

    세 번째 시퀀스는 최현이 신경주역에서 후배 여정을 만나서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최현은 역사(驛舍) 안으로 걸어 나오는 여정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반가운 마음을 표시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다. 최현은 여정과 함께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생수를 사는데, 근처에 있던 점집 할아버지가 그녀를 불러서 점을 봐주겠다고 한다. 한편 식사를 하던 여정은 앞으로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점쟁이의 말을 상기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의처증이 심한 남편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데, 플렛홈에서 최현과 헤어지면서 자신이 한때 최현의 아이를 임신했었다는 고백을 한다. 여정을 떠나보낸 최현은 그 동안 참아왔던 담배를 피우면서 불편한 심기를 달래 보려한다.

    네 번째 시퀀스는 관광안내소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담고 있다. 다시 안내소를 찾은 최현은 젊은 안내원의 호의로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경주 시 어디쯤에 작은 돌다리가 있었는데 아느냐?”고 묻는다. 그는 그 다리 위에서 요란한 물소리를 들었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 안내원은 그것이 환청(幻聽)일수도 있다고 대답하는데, 그 순간 커다랗게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햇볕이 이토록 쨍쨍한데 천둥일리 없다고 부인하고, 이에 최현은 북한에서 쏘는 포가 아닐까하고 말해준다. 이들의 얘기를 옆에서 엿들었던 안내소 주임은 최현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젊은 안내원은 “북한이 쳐들어오면 뭘 할꺼냐?”고 농담처럼 묻는다. 최현은 보문호수 공원에 들렀다가 다시 찻집으로 가는데, 이 과정에서 대구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모녀를 다시 보게 된다.

    다섯 번째 시퀀스는 다시 찻집이다. 미리 와서 차를 마시고 있던 일본의 아줌마 관광객 두 명이 최현의 잘 생긴 용모를 보고 배우로 오인하여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해온다. 윤희의 소개로 얼떨결에 포즈를 취하게 된 최현은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중 한 일본인은 찻집을 떠나면서 윤희와 최현에게 “일본의 과거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이에 윤희는 “과거사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 함께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례를 건넨다. 점심 때 마신 낮술 탓에 깜빡 졸던 최현은 꿈결에 창희 선배의 아내(이은우)를 만나는데, 그녀는 최현에게 남편인 창희는 결코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자살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불가(佛家)의 고승들이 종종 속세(俗世)와의 모든 연을 끊고 열반(涅槃)을 하듯이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때 윤희가 보이차를 내오는 바람에 꿈에서 깨어난 최현은 다시 윤희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최현은 보이차를 사러 중국에 자주 가느냐고 묻고, 윤희는 그냥 서울에서 사오는 것이라고 대답해준다. 최현은 윤희에게 공자(孔子)의 후손인데 언제 그의 고향인 중국 곡부(曲阜)에 한번 놀러오라고 권한다. 이때 천둥과 함께 소나기가 내리고 윤희는 장독대에서 말리고 있는 국화차 등을 거두어들인다. 비에 젓은 윤희에게 최현이 수건을 건네주고 그녀가 옷을 갈아입자 두 사람은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간다. 대화의 주제는 또 춘화의 유래에 관한 것이었다. 윤희가 왜 그토록 춘화에 집착하느냐고 묻자, 최현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그 그림에 끌린다고 대답한다. 처음에 왔을 때 그 그림이 이 공간과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지만, 왠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어야 할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는 것이었다. 이에 윤희는 미술을 전공했느냐고 묻고, 최현은 ‘동북아 정치학’을 전공했노라고 대답한다. 결국 그 그림은 이곳의 원래 주인이었던 미모의 여주인에게 반한 단골손님인 한 화가가 그린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동안 소나기가 그치고 마당에 다시 햇볕이 들자 최현이 국화차 등을 다시 장독대에 옮겨놓는다. 최현은 윤희에게 양해를 얻어 찻집 마당 전경을 동영상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는데, 이때 윤희의 친구 다연(신소율)이 등장한다.

    여섯 번째 시퀀스는 경주의 한 음식점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날은 마침 윤희가 경주에 사는 지인들과 계모임을 하는 날인데, 최현도 얼떨결에 동석을 하게 된 것이다. 윤희는 최현과 함께 그가 낮에 빌린 자전거를 반납해주고 약간 늦게 약속장소에 나타나는 데, 일찍 와있던 박교수(백현진), 플로리스트 강선생(류승완), 그리고 다연은 이미 한잔 씩 걸친 상태다. 윤희로부터 최현을 소개받은 일행은 최현이 북경대학교 교수라고 하자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특히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교수는 학자로서의 최현의 명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그가 ‘근대 이전 한중관계사’의 최고 석학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북한학 전문가답게 최현 교수가 김일성의 측근이었던 인민부장(즉 국방부장관) 최현 장군과 동명이인임을 내세워 그를 ‘장군’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한편 뒤늦게 술자리에 합류한 또 다른 계원인 이영민(김태훈) 형사는 최현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는 오늘 낮에 보문호수에서 엄마랑 8살의 딸아이가 동반자살을 하여 수사를 하다가 늦었다고 말해준다. 이에 최현은 그 모녀가 아침에 공항에서 만난 그 모녀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 이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이 와중에 박교수는 최현을 따로 불러내어 북경대학교에 한번 초청해줄 수 없겠냐고 청탁했다가 거절을 당하자, 이번에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학계 권위자의 입장에서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최현은 ‘백년’이라고 대답하고, 어안이 벙벙해진 박교수는 농담하지 말라며 재차 물어온다. 같은 학자로서 진정성을 갖고 아카데믹한 질문을 하는데, 농담으로 받아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최현은 자기에게 학문은 ‘똥’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하자, 당황한 박교수는 “당신이 북경에 있으니 한국이 불바다가 되던 피바다가 되던 상관없다는 얘기냐?”면서 길길이 날뛰며 흥분을 한다. 북경에 있다고 경주에 있는 학자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을 하는 것이다. 보다 못한 윤희의 개입으로 두 교수의 언쟁은 마무리되고, 늘 그렇듯이 일행은 노래방으로 차수를 옮겨간다.

    일곱 번째 시퀀스는 심야에 왕릉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노래방에서 나온 일행 중 술에 만취한 박교수와 강선생, 그리고 다연을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남은 세 사람인 최현과 윤희, 그리고 영민은 동네 근처에 있는 한 왕릉으로 올라간다. 거대한 무덤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앉은 윤희는 영민에게 이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술 한 잔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문화재 관리인이 내려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알만 한 사람들이 조상님 머리 꼭대기에서 놀면 되겠느냐”고 호통까지 친다. 그러다가 이영민 형사를 알아본 그가 목소리를 낮추자 영민은 낮에 일어난 자살 사건의 ‘용의자’를 찾기 위해 온 것이라고 둘러대고는 그 자리를 뜬다. 윤희는 영민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최현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도중에 최현은 일본 교수와 통화를 함으로써 그가 일본어에도 능통함을 보여준다.

    여덟 번째 시퀀스는 윤희의 집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심야에 창밖으로 능이 보이고, 윤희는 최현에게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데, 윤희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자주 이랬어요?”라고 묻고, 최현은 “그래 보여요?”라고 대답한다. 일종의 밀당인 셈이다. 그러다 문득 최현은 벽에 걸린 그림한 점에 눈길이 쏠린다. 다구(茶具)가 놓여있는 정자 위로 그믐달(the old moon)이 떠있는 단순한 그림이다. 최현은 능통한 중국어로 그림의 여백에 쓰인 글을 천천히 읽는데,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라는 내용이다. 그림의 내용을 묻는 윤희에게 중국의 유명한 화가인 봉자개(Feng Zikai)의 문인화(文人畵)라고 설명해준다. 그림의 내력을 묻는 최현에게 윤희는 남편이 죽기 얼마 전에 갖다 걸어놓았다고 설명한다. 남편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윤희는 뜬금없이 최현의 귀를 만져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외모는 남편과 전혀 다르지만 귀만큼은 꼭 닮았다는 것이다. 귀는 일종의 부분대상이다.4) 그리하여 귀를 만지고, 두 사람이 거의 포옹에 가까운 자세를 취할 즈음 초인종이 울리고 영민이 느닷없이 쳐들어와 최현의 여권을 조사하고 이내 사라진다. 윤희는 남편 사후 술에 절어 살다가 망월사 스님의 조언으로 차를 입에 대게 되었고, 결국 찻집까지 차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희는 침실에서 최현은 소파에서 각각 잠자리에 든다. 윤희는 침실 방문을 살짝 열어놓음으로써 그에게 마음을 열었음을 전달한다. 두 사람 모두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새벽녘에 최현은 북경에 있는 아내로부터 한통의 녹음 메시지를 받는다. 남편이 떠나는데 인사도 안 해주어서 후회하고 있으며, 홀로 밤을 지내는 것이 너무 외롭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중국 가요 <모리화>를 불러주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아홉 번째 시퀀스는 이른 새벽에 윤희네 집을 나선 최현이 우동으로 해장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경주의 외딴 숲속을 헤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최현은 식사도중 후배 여정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데, 자기 남편이 지금 선배를 찾아서 경주로 갔다는 긴박한 통보였다. 여정의 남편의 의처증이 도진 것이었다. 황급히 식당을 나선 최현은 마침 어제 들렀던 점집이 눈에 띠자 그리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젊고 어여쁜 점쟁이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어제 점을 봐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묻자 그분은 몇 해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고 대답해준다. 아연실색한 최현은 점집을 나와서 가로수 길을 배회하다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다. 어제부터 자기 주변을 알짱대던 폭주족들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헬멧도 안 쓴 폭주족들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현장을 빠져나온 최현은 마침내 그가 찾던 작은 돌다리에 도착하지만, 개천의 물은 모두 말라버린 상태다. 연속되는 부조리한 상황에 떠밀린 최현은 급기야 숲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마지막 열 번째이자 엔딩 시퀀스는 다시 아리솔 찻집으로 이어진다. 윤희는 최현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춘화를 보기 위해서 벽지를 뜯어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문제의 그림은 젊은 남녀가 풀밭에서 하반신을 드러내놓고 좌식 체위로 성관계를 맺는 춘화인데, 한쪽 옆에는 “한잔하고 하세!”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는 이 그림을 쳐다보면서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나누는 세 사람, 즉 고인이 된 창희 선배와 춘원 선배, 그리고 최현의 7년 전의 모습이 보인다. 선배들은 그 그림 속 여자가 최현을 닮았다고 농을 건넨다. 이때 미모의 여주인(신민아)이 새로운 차를 갖고 들어오면서 대화는 잠시 소강상태가 된다. 네 사람의 어색한 침묵을 깨고 풍경(風磬)소리가 들려온다. 최현과 여주인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화면은 암전(暗轉)된다.

    3)장률 감독은 영화평론가 안시환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창작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95년에 한국에 와서 대구의 아는 두 형과 함께 경주에 처음 갔는데, 경주라는 지역이 너무 특이했다. 능과 일상이 공존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찻집에 갔는데, 누가 봐도 찻집과 경주가 잘 어울렸다. 그런데 그 찻집의 춘화는 좀 뜬금없었다. 찻집에서 춘화를 보는 것이 어이없어 보였다고 할까. 그런데 그게 점점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춘화 안에는 공간이 보이고 섹스를 해도 여유가 있고, 무덤의 사람들도 다 해본 사람이고, 우리도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그런데 그 여유는 다 어디 갔는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씨네21』 958호, 2014, 74쪽.  4)“부분대상(part object)이라는 용어는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학파에 의해서 처음으로 도입된 개념인데, 후에 라캉에 의해서 새롭게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라캉에 따르면, 모든 욕동들이 부분욕동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대상들은 반드시 부분대상이라는 것이다. (중략) 부분대상에 대한 라캉의 개념화는 1963-64년경 욕망의 원인으로서의 타대상(object a)이란 개념의 발달과 더불어 수정된다. 이제 각각의 부분대상은 주체가 그것을 욕망의 대상, 즉 타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의해 하나의 대상이 된다. 그의 저작의 이러한 관점 때문에 라캉은 대개 부분대상에 대한 논의를 목소리, 시선, 유방, 똥이라는 네 가지로 제한한다.” 딜런 에반스, 김종주 外 역, 『라깡 정신분석 사전』, 인간사랑, 1998, 154-155쪽.

    4. 주제의식(主題意識)과 독특한 스타일

    앞서 살펴보았듯이, 장률 감독은 <중경>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리>를 거쳐 <경주>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에서 특정 지명(地名)을 제목으로 내세우면서 그 지명이 갖는 로컬리티(locality)를 탐색해왔다. 그러니까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영화적으로만 가능한 추상적(抽象的)인 것이 아니라 감독 스스로가 체험하고 느꼈던 구체적(具體的)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어떤 평자들은 영화 <경주>를 보고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피상적인 견해일 뿐이다. 예컨대 한 평자는 이 영화에 대해서 “박해일의 장난기, 홍상수의 취기, 장률의 공기”가 어우러진 영화라고 평하기도 한다. 홍상수 영화들은 일상성을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 그것을 지극히 형식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장률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일상성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을 지극히 부조리한 상황희극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두 번째 시퀀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현은 윤희에게 인사를 하고 찻집을 나서면서 찻집 전경을 카메라에 담는데, 막상 화면에 찍힌 사진에는 윤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효과는 최현이 윤희가 서 있는 찻집의 전경을 향하여 카메라(폰카)를 들이대는 쇼트에 이어서 바로 최현이 폰카의 앨범을 바라보는 측면에서 찍은 쇼트를 이어붙임으로써 얻어지는데, 그리하여 윤희가 유령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은근슬쩍 암시한다. 유령이라니?

    우리는 영화의 전편을 통하여 윤희가 최현을 비롯하여 일본인 관광객을 만나고, 또한 지인들과의 계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유령이라는 해석은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디제시스상에서 명백하게 유령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 번째 시퀀스에서 최현과 여정의 데이트 장면에서 여정이 점쟁이 할아버지로부터 앞으로 임신을 못한다는 점 쾌를 듣고 울먹였는데, 아홉 번째 시퀀스에서 최현이 다시 찾아간 그 점쟁이 할아버지는 이미 고인(故人)이었음이 밝혀진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정이 만난 할아버지는 유령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장률 감독은 현실과 꿈, 나아가 현실세계와 사후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리얼리즘 계열에 속하는 홍상수 스타일과는 변별되는 것이다.

    윤희가 최현의 폰카에 찍히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현의 옛 애인인 여정의 모습은 그의 동영상 카메라에 선명하게 포착된다. 물론 여정은 최현과 헤어지면서 그의 폰카에 저장됐던 자신의 모습을 말끔하게 지워버린다. 나중에 최현은 찻집에서 재촬영을 시도하지만 윤희가 사진 찍히기를 완곡히 거부하는 바람에 그녀의 모습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최현의 폰카 속 앨범에는 어떤 여자의 이미지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아마도 중국인 아내의 사진 몇장쯤은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정은 말그대로 과거(過去)의 여자다. 각자 결혼을 하여 다시는 볼 일이 없는 남녀가 굳이 헤어진 애인의 사진을 간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아내는 현재(現在)의 여자, 즉 현재진행형이므로 사진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윤희는 미래(未來)의 여자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아니 미지(未知)의 여자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미지로 포착되지 않아서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여자가 바로 윤희라는 얘기다. 라캉이라면 실재(계)의 사랑의 대상물(agalma)이라고 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윤희가 뜯어낸 벽지 속 춘화의 제작년도가 2192년도라는 미래형으로 표기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거의 같은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미 죽은 사람, 곧 죽을 사람,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장률 감독은 경주를 방문했을 때, 도처에 능들이 있어서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를 연상시키는 고장이면서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낯선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장률 감독은 절친한 동료인 윤종빈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95년에 경주에 갔을 때 충격적이었어. 어느 나라에나 왕릉이 있지만 일상과 단절되어 있지. 과장하자면 경주는 왕릉이 코앞에 있어. 더 과장하자면 냄새도 날 것 같은. 경주 사람들이 이 냄새를 어떻게 참는지 의아해하면서 도시를 돌아보았는데 그 풍경이 자연스러운 거야. 당시에는 문화재 보호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능이 놀이판이었고, 연애판이었어. 능 옆에서 형들과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 때 능이 참 좋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중국에서 경험한 죽음에 대한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어.”6) 요컨대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共存)하는 공간인 경주를 보면서 전쟁의 위협과 평화가 상존(常存)하는 한반도의 축소판처럼 여겨졌고, 그러한 색다른 인상이 본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장률 감독다운 발상이다.

    장률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그가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정치적 관점과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영화 <경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경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단순한 로컬 시네마가 아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영화의 주인공인 최현 교수가 북경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라는 점이다. 게다가 그는 동북아 정치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가 경주에서 만난 소위 북한학 전문가인 박교수와 벌이는 언쟁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참고로 홍상수의 일련의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교수들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그들은 술이나 마시면서 일탈적인 연애만을 꿈꾼다. 어쨌든 “김정은 체제가 향후 어찌 될 것 같은가?”라는 박교수의 우문(愚問)에 최현은 ‘백년’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함으로써, 영화는 매우 민감한 문제의 뇌관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교수가 그런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박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단명(短命)하리라는 예단을 가진 상태에서 최현을 떠보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북한의 삼대 세습체제가 영구토록 이어질 것을 원하지 않고, 또 그러기를 바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백년 이상’이라고 진단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 백년이지 이는 곧 영구적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박교수는 “그럼 한국이 불바다, 피비다가 되어도 좋다는 말이냐?”하면서 최현을 몰아 세웠던 것이다. 만약 윤희가 적극적으로 만류를 하지 않았다면, “이 빨갱이 교수 같으니라구!”라는 대사가 박교수의 입에서 흘러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최현은 박교수가 아카데믹한 질문의 진정성을 무시한다는 그의 항변에 “학문은 똥이다!”라고 대꾸함으로써 박교수의 박제된 의식에 일침을 가한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장률 감독은 남북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객관적인 학문적 접근도 허용되지 않는 북한학의 실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의 잣대가 학문의 엄정성보다 우선한다면, 그런 학문은 똥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현은 과연 ‘동북아 정치학’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는 과연 객관적인 학문적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한중일의 정세(情勢)를 논할 수 있는 학자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영화 속에서 최현이 썼다고 여겨지는 저서 및 논문의 내용이 소개되지 않으므로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겪고 있는 중국인과의 결혼생활과 그의 일상적인 습관 등을 통해서 우회적으로나마 그의 처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는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지 못한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다. 중국인 아내가 담배 냄새가 나면 아예 접근을 불허하기 때문에 그저 담배의 향기만 맡을 따름이다. 게다가 그는 선배의 장례식 때문에 며칠 간 한국행을 한 것인데도, 북경을 떠날 때 아내로부터 작별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현은 아내로부터 온 녹음 메시지 한통 때문에 한국 땅 경주에서의 은밀한 로맨스를 포기해야만 했다. 담지자 없는 아내의 유령 같은 목소리가 늘 상 그의 뇌리 속에 맴돌면서 그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국인 아내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제유법(提喩法)으로,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를 미사일의 제유법으로 본다면, 지나친 과잉 해석일까? 욕망의 통제이자 사상의 통제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5)『씨네21』, 앞의 기사, 72쪽.  6)위의 기사, 78쪽.

    5. 춘화(春畵)와 문인화(文人畵) 사이

    이제 이 영화의 핵심 화두(話頭)라고 할 수 있는 춘화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그리고 그 춘화와 정확히 대비를 이루는 봉자개의 문인화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성(聖)과 속(俗), 정신과 육체의 극명한 대비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또한 순수(純粹)와 욕망(慾望)의 대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본래 춘화(春畵)를 다시 보고자 경주까지 찾아갔던 최현은 결국 그 그림을 보지 못하고, 대신 윤희가 그것을 재발견(복원)했다는 점이다. 둘째, 윤희가 자기 집 벽에 오랫동안 걸려있었으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문인화(文人畵)의 의미를 최현이 해독해 주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최현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춘화 대신에 문인화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먼저 문인화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덟 번째 시퀀스에서 이 문인화가 나오는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다구(茶具)가 놓여있는 정자위로 그믐달(the old moon)이 떠있는 단순한 그림이다. 그런데 여백에는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라고 적혀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작가인 봉자개가 착각을 한 것일까? 초승달은 다른 말로 하면 신월(新月) 또는 초월(初月)이다. 영어로 뉴문(new moon/ crescent moon)이라고 하는 초승달은 음력 4일에 뜨고, 그믐달은 음력 그믐께(26일)에 뜨는 달이다. 음력 한 달에서 뜨는 시점이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영어 표현에서도 보듯이 초승달은 새롭게 탄생한 달이고, 그믐달은 나이가 차서 지는 달인 셈이다. 이를 삶과 죽음의 대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백의 글을 다시 쓰자면 “사람들 흩어진 후에 그믐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작가는 그믐달을 그려놓고 초승달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늘 죽음을 예감했던 윤희의 남편은 그 그림을 남김으로써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死別)을 준비했던 것이다. 자기가 죽더라도 맑은 물처럼 정절(貞節)을 지키라는 일종의 유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춘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풀밭에서 젊은 남녀가 엉겨 붙어 있는데, 여자는 저고리만 걸친 상태에서 아예 홀딱 벗은 남자의 성기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때 남자의 오른손이 여자의 엉덩이를 살짝 받쳐주고 있는데, 풀밭에 짓눌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는 고고함의 상징인 학 한 마리가 그들의 정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춘화에 나오는 체위(體位)의 모티브가 감독의 전작인 <중경>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예컨대 쑤이가 왕소장의 배신에 열을 받아 평소 알고 지내던 홈리스인 맹인 남자를 찾아가 그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는데, 그때의 체위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호텍스트성인 셈이다. 아무튼 7년 전에 최현과 함께 만났던 창희와 춘원 선배는 이 그림을 보고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면서 농을 건네는데, 짓궂게도 최현이 여자와 닮았다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여주인이 합석을 하고 최현은 그녀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데, 그 엉큼한 웃음 속에서 우리는 그가 그림 속 여자와 찻집 여주인을 동일시(同一視)하고 있음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다. 벌거벗은 그림 속 남자는 최현 자신임은 물론이다. 그러니 어찌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최현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춘화 한 점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마음 속 깊이 각인된 아갈마(agalma)와의 해후(邂逅)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성취한 것은 미지의 여인과의 두 번째 조우(遭遇)였던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장률 감독은 최현과 윤희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을 대단히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종의 멜로드라마로서도 잔잔한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번째 시퀀스에서 윤희가 전화를 받으러 정원으로 나간 사이 최현은 한 쪽 벽면에 있는 문틈 사이로 그녀를 훔쳐본다. 조금 후에 최현이 후배 여정에게 전화를 하러 정원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번에는 윤희가 같은 위치에서 그를 은밀하게 훔쳐보는 장면이 이어진다. 윤희가 최현을 따라한 것이다. 일곱 번째 시퀀스에서는 따라 하기가 역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윤희가 능의 한쪽 봉우리에 올라가 드러누우면서 “죽으면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능의 다른 봉우리에 올라갔던 최현이 역시 드러눕는 모습을 보이자 윤희는 큰 소리로 “나를 따라하는 거예요?”라고 물음으로써 그의 따라 하기를 기정사실화한다. 이러한 밀고 당김이 선행되었기에 여덟번째 시퀀스에서 윤희가 최현에게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자주 이랬어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장률 감독은 감정 묘사의 디테일에도 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평론가 배장수는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를 재미있는 영화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2014년 코미디영화 베스트 목록에 들수 있을 만큼 웃음을 낳게 하는 장면들이 잇따르고, 실제와 환상 혹은 착각을 넘나드는 플롯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궁금증과 연상이 영화보기의 재미를 더해 준다는 것이다,7) 예를 들어보자. 두 번째 시퀀스에서 윤희는 춘화에 대해서 집요하게 묻는 최현에 대해서 ‘변태’라는 의심을 품고 이를 친구인 다연에게 문자를 통해서 알려준다. 다섯 번째 시퀀스에서는 다연이 찻집을 찾아와서 윤희에게 “그 변태손님 갔냐?”고 물음으로써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최현과 윤희를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어지는 여섯 번째 시퀀스에서 다연은 여전히 춘화를 찾는 당사자가 최현인지 모르고 변태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똥자루’라고 지칭함으로써 윤희가 애초에 그에 대해 가졌던 선입관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주>는 한편의 로맨틱 코미디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경주>는 중국 북경에 거주하면서 잠시 한국 경주를 방문한 최현 교수의 짧은 여행을 통해서 대륙(大陸)과 반도(半島)의 역학관계(力學關係), 춘화와 문인화의 차이, 성(聖)과 속(俗),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트랜스-로컬리티(trans-locality)를 추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또한 운명처럼 만난 남녀의 이루어질 듯 말 듯 한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멜로물과 로맨틱 코미디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하겠다.

    7)배장수, 「경주: 사랑과 삶은 어쨌든 계속 된다」, 『영화평론』 (제27호),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 2015, 287쪽.

참고문헌
  • 1. 딜런 에반스, 김 종주 1998 『라깡 정신분석 사전』 (An Introductory Dictionary of Lacanian Psychoanalysis) google
  • 2. 김 시무 2014 「장률 감독과 트랜스-로컬 시네마」 [『영화연구』] google
  • 3. 문 관규 2013 「동아시아 영화작가의 디아스포라적 경향과 트랜스-로컬 시네마의 가능성」 [『민족미학』] Vol.12 google
  • 4. 배 장수 2015 「경주: 사랑과 삶은 어쨌든 계속 된다」 [『영화평론』] google
  • 5. 2014 『씨네21』 958호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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