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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 마음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Survival, Survivalism, Young Generation from the Viewpoint of the Sociology of the Heart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 마음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This article attempts at constructing preliminary theoretical frameworks for the empirical research on the singularity of the Korean new young generation of 21st century, which we propose to term ‘survivalist generation’. For this, we need to modify partially the mannheimian theory of generations, in particular, by replacing the task of approaching the generational consciousness by that of approaching the ‘heart’ of the generation, that is to sa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ociology of the heart. The survivalist generation is characterized by the heartset of survivalism whose most important problem is not to be excluded from generalized harsh competitions. Regarded as the telos of existence, the survival acquires the value of moral good. The regime of the survival is susceptible of being differentiated into co-existentialism, solipsism, and counter-existentialism. The empirical research of these four types of lifestyles remains our subsequent task.

KEYWORD
만하임 , 마음의 사회학 , 서바이벌 , 생존주의 세대 , 탈존주의
  • Ⅰ. 새로운 청년들의 등장

    21세기 한국 사회에 새로운 청년들이 몰려오고 있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연령적으로는 대개 20대에서 30대 중반에 이르는 청년들이며, 학교-직업의 자동적 연계가 파괴되어, 최종 학력기관을 졸업한 이후 상당기간을 비정규직 혹은 잉여로 지내야 하는 동시에, 결혼과 출산을 삶의 당연한 과제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선택으로 여기거나 혹은 포기하면서, 이전의 청년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를 만들어가는 주목의 대상이다. 2007년에 우석훈과 박권일이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로 당시의 20대를 규정한 이래 ‘IP 세대’(동아일보, 2008. 9. 30), ‘Global 세대’(조선일보, 2010. 1. 1), ‘2.0 세대’(김호기. 한겨레신문, 2008. 5. 14), ‘삼포세대’(경향신문, 2011. 5. 11) 등의 호명과 후속 진단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면서, 한국 사회는 이른바 청년세대론의 폭발을 목도하였다. 이런 관찰들 속에서 청년들은, 만성적 실업과 높은 등록금 그리고 정서적 불안과 폐색감(閉塞感)에 시달리면서, 사회적 문제보다는 개인적 활로를 타개하는데 더 몰두하는 존재들로 표상되고 있다.1)

    주지하듯 청춘 혹은 청년은 역사적으로 발명된 하나의 ‘개념’으로서(Galland, 2011: 9-34), 19세기 후반에 동아시아에 수입되어 당시의 다양한 사회적 과제들을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들에게 부여된 기호이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청년은 국가 건설의 주역, 계몽주의자, 산업역군, 반공(反共)전사, 민주화투사,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 혹은 아방가르드 등으로 다양하게 호명되어 왔다(이기훈, 2014). 이 과정에서 청년은 대개의 경우 특정 거대서사의 담지자 역할을 수행했고, 기성 권력과 제도를 부정·비판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운동적 주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Rossinow, 1998; 주은우, 2004). 그러나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가혹한 경쟁에 노출된 채, 선배들이 누렸던 ‘영웅적’ 청춘을 더 이상 구가하지 못하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전상진, 2013: 316-20). 저항, 반항, 유희, 자유, 도전, 모험, 정치적 열정은 이들의 리얼리티와는 무관한 것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모토로 등장하는 것은 ‘생존(survival)’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청년들이 각자도생의 전략을 세우고,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를 꿈꾸는 자들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가는 것은 이상한일이 아니다. 생존이 급선무가 된 행위자들에게는, ‘생존주의’를 마음으로부터 구성해 나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생존주의는 후기 근대적 상황이 야기한 새로운 삶의 곤경에 직면한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형성한 집합심리의 시스템으로서, 순수한 이념적 표현물이나 철학적 세계관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존에의 불안과 강박 그리고 의지와 욕망의 형식으로 작용하면서 행위자들을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마음’의 구성체이다. 그리하여 그 이념적/의식적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이 구성하는 습속, 그것을 형성시키는 장치나 제도들, 더 나아가 생존에 대한 열망의 미적 표현물들을 모두 내포하는, 모스(Marcel Mauss)가 말하는, 하나의 ‘총체적 사회적 사실’로 접근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21세기 한국의 청년 세대를 바로 이런 의미의 ‘생존주의 세대’로 명명하고, 그 마음의 구조와 논리를 탐구하기 위한 이론적 성찰을 다음의 절차들을 통해 수행하고자 한다. 첫째, 만하임(Karl Mannheim) 세대 사회학의 기초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생존주의 세대라는 용어의 정합성을 타진한다. 둘째,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세대가 ‘서바이벌’이라는 중심 문제를 부여받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합심리 시스템인 ‘생존주의’를 육성하게 되었는지를, 사회변동을 통해 재구성된 문제공간의 변천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셋째, 생존주의 세대의 핵심 문제를 집약하고 있는 ‘서바이벌’의 의미론을, 글로벌한 수준에서 형성된 경쟁 패러다임의 맥락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넷째, 생존주의의 압력에 대한 다양한 대응 속에서 형성된 분화된 마음의 형식들로서 독존(獨存)주의, 공존(共存)주의, 탈존(脫存)주의라는 세 이념형을 제시하고 이들 각각이 펼쳐내는 삶의 형식의 차이들을 유형화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청년들의 생존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굴곡과 문제 형성의 역사를 소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생존주의 레짐의 역사성에 대한 차후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1한국, 중국, 일본 사회 모두가 흥미롭게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의 청년 세대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과 진단의 담론들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빠링허우(80後) 세대’라는 용어가 2000년대 초반부터 주로 문학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이 용어는 80년대 생 젊은 작가들을 가리켰지만, 점차 확장되어 개혁개방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집단을 지칭하기 시작하였다(黄洪基, 邓蕾, 陈宁, 陆烨, 2009). 이들은 1가정 1자녀 정책 하에서 태어난 외아들/외동딸이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지만, “방탕한 청춘”, “전통에 대한 반역의 대명사”, 혹은 예쁘지만 연약한 모습을 풍자한 “딸기종족”, 고학력이지만 저임금에 시달리며 집단거주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개미족”이라는 부정적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张有平, 赵广平, 2008; 聂婷, 张敦智, 2007; 刘锐, 2010). 일본의 ‘로스제네’는 대개 1971년부터 1980대 초반 사이에 태어나, 취업 빙하기를 경험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2006년 8월 아사히신문에서 처음으로 ‘ロストジェネレーション(lost generation)’ 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으며 등장하였다. 2007년에 아사히신문이, 특집기사의 형식으로,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잃어버린 10년”에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25세~35세)의 실태를 연재하면서, 소위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NEET), 프리타, 넷카페 난민, 히키코모리, 파견 노동자 등이 ‘로스제네’로 총칭되기 시작했다. 2008년 5월에는 『로스제네』라는 잡지도 발간되었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용이나 경제문제와 로스제네세대를 관련시킨 논의도 대규모로 증가했다. 이들 역시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사회변동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청년 세대를 이룬다(Brinton, 2011; 熊代亨, 2014). 한편, 이처럼 사회변동에 의해 궁지에 몰린 청년 세대에 대한 관심은 글로벌한 현상이다(Comaroff and Comaroff, 2001: 16-19; Hutchens, 1994; Klammer, 2010; Kretsos, 2010).

    Ⅱ. 세대 의식에서 세대의 마음으로 - 만하임을 경유하여

    만하임의 “세대 문제”가 출판된 이래 세대는, 사회학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적 자원으로 인지되고 활용되어 왔다(Roseman, 1995: 7-8; Edmunds and Turner, 2002: 7-11; Jureit and Wildt, 2014: 29). “세대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가 출판되기 2년 전인 1927년에 집필되었으며, 당대의 독일적 상황과 만하임 특유의 지식사회학적 지평이 선명하게 반영되어 있는 글이다. 만하임이 세대 사회학에 가져온 가장 중요한 기여는, 계급과 마찬가지로 세대가 사회 변동의 중요한 행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한 데 있다. 맑스의 사적 유물론의 지식이론과 계급중심성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 만하임은, 특정 의식으로 무장한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적극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세대위치(generation location), 실제세대(generation as actuality), 세대단위(generation unit)를 개념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세대 논의를 위한 입체적 공간을 마련한다. 세대위치는 계급위치처럼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잠재적 그룹으로서, “명백한 행동, 감정, 그리고 사유의 양식”을 하나의 “내재하는 경향”으로 함축하고 있다(Mannheim, 2013: 47). 세대 위치가 실제 세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러나 “역사적-사회적 통일성이라는 공동 운명에 대한 참여”가 요청된다(Mannheim, 2013: 64-5). 또한 이 참여는 “동일한 세대 위치에 있는 개인들 사이의 실질적인 연대”를 요청한다(Mannheim, 2013: 65-6). 그런데 실제 세대는 다시 세대단위들로 분화될 수 있으며, 이렇게 분화된 세 대단위들이 보여주는 내적 밀도는 실제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다(Mannheim, 2013: 67). 만하임에 예시에 의하면, 19세기 초반 독일의 청년 세대(실제 세대)는 합 리적이고 자유주의적 집단과 낭만적인 동시에 보수적인 집단(세대단위들)으로 분화된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대 단위를 만들어내는 힘, 세대 내부에 차이 있는 하위 집단들을 만들어내는 힘인가? 그것은 구성원들의 의식에 주어진 내용들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들을 만들어내는 모종의 형성적 힘들, 혹은 형성적 경향들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 힘은 사람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힘이며, “일상적 슬로건부터, 이성적인 사유체계, 명백하고 고립된 몸짓이나 완성된 예술작품” 속에서 작용한다. 즉, 세대 단위는 세계와 사건을 해석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게 하는 선험적 인지틀(Gestalt)을 공유하는데, 이것은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불변의 심층구조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형성하는 구체적 집단들에서 생성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되는 수행규칙들에 가깝다(Mannheim, 2013: 68-72). 만하임의 이런 초석적 세대 개념은 그러나 이를 실제로 활용하고자 할 때 몇 가지의 난점을 노정한다.

    첫째, 만하임의 세대 개념은, 특정 사건이 야기한 영향을 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역사적 세대’(가령 68세대, 4.19세대, 1차세계대전 세대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런 체험을 공유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세대’들에 대해서는 적용가능성이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가령, 올리비에 갈랑(Olivier Galland)에 의하면, 세대를 ‘역사적’ 의미에 국한하여 파악하는 것은 세대 개념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비록 모종의 외상적 사건을 동시적으로 체험하고 그 결과 자신 세대에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사회구조적 영향력이 형성한, 그리하여 다른 세대들과 구분되는 의식, 태도, 가치를 공유하는 연령집단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의미 있는 사회학적 접근을 위해서는 만하임의 모델을 ‘사회적’ 세대의 이미지 쪽으로 좀 더 끌고 와야 한다. 즉, 강한 소속감이나 정체성은 없지만, 다른 세대들과 명확한 경계를 형성하는 집단으로서의 세대 개념이 요청되는 것이다(Galland, 2011: 110). 이와 유사한 지적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는데(Chauvel, 2006: 151; Chauvel, 2010: 86-7; Aboim and Vasconcelos, 2014: 167; Pilcher, 1994: 483), 특히 메리 브린튼(Mary Brinton)은 “사회적 세대의 구성원들은 집합적 이해관계나 정체성을 반드시 인지하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세대들과 구분되는 특정한 사회화의 방식들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일본의 ‘로스 제네’를 그 전형으로 파악하고 있다(Brinton, 2011: 10-1). 이런 관점은 생존주의 세대에 대 한 접근에 매우 유효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는 만하임에 의해 역사적 행위자로 상정된 세대에 너무 과도한 행위능력이 부여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만하임 세대이론의 핵심은 그 변동론적 성격에 있다(Laufer and Bengtson, 1974). 그가 말하는 단위세대가 변화를 추동하는 행위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Pilcher, 1994: 491). 그러나 특정 세대가 사회변동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 역사적 예외에 속한다. 다수의 사회적 세대들은 변동의 주체라기보다는, 사회변화에 의해 구성되는 주체 위치들의 집합인 경우가 더 많다. 이 문제는 특히 21세기 청년 세대에게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제기된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앞선, 영웅적 청년 세대들과 현격한 차이를 노정하는 존재들로 간주되어 왔다. 이들에게는 정치보다는 경제나 문화가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이념이나 대의에 동원되는 모습보다는 미시적이고 생활세계적인 삶의 양상들에 더 많은 에너지와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만하임의 입장에 적절한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즉,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생존주의 세대를 논하기 전에, 사회구조의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그 세대가 공유하는 사회·문화적 특성들을 주조해 내었는가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Aboim and Vasconcelos, 2014: 167).

    마지막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세대적 특이성의 본질, 즉 세대성(世代性)이다. 만하임은 세대성의 본질을 세대가 공유하는 ‘의식(consciousness)’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의식’에 중심을 두는 접근의 학문적 타당성은 논쟁의 여지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대의식이건 계급의식이건, 의식은 존재와 대립되는, 혹은 존재에 종속된 범주로서(의식의 존재구속성), 인지적이며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정신활동을 주로 가리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2) 의식의 자료는 주로 사상이나 지식 혹은 철학적 언술들에서 찾아지고, 만일 이런 경우라면, 의식에의 접근은 개별 행위자들의 관념 내용들(생각이나 의견들)을 조사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에 반해서, 20세기 사회과학은 행위자의 ‘의식’을 넘어서는 집합 표상들, 미디어들, 지식과 상징들, 혹은 그들에게 체화된 의식 이전의 습관들과 성향들, 의례나 공연을 통해 의식을 사후적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실천들 혹은 상징적 상호작용들의 각별한 중요성에 주목해 왔으며, 이는 세대를 세대로 구성하는 원리에 대한 탐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3)

    이런 맥락에서 이 연구는 세대의 ‘의식’이 아닌 그 ‘마음’을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는 관점을 제안한다. 이때 마음이란 마인드(mind)가 아닌, 인간 행위자의 총체적이고 심층적인 심적 능력을 가리키는 하트(heart)의 의미계열을 지시한다. 이는 특히 파스칼(Blaise Pascal), 루소(Jean-Jacques Rousseau),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뒤르켐(Émile Durkheim)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근대 사상에서 두드러지게 돋보이는데, 이들에게서 하트로서의 마음은 이성이나 정신과 구별되는 의지와 감정의 기관(器官)이자,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정초하는 토대로 이해되었다. 이런 관점을 현대 사회학의 실천이론과 접목시키고, 이를 통해서 사회학적 실천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도모하려는 기획이 ‘마음의 사회학’이다. 마음의 사회학은 특정 사회구조의 작용 하에서, 일군의 행위자들의 실천 원리로 기능하는 집합 심리가 어떤 짜임새로 어떻게 발생하여 진화하는지를 탐구하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실천의 가능한 양태들을 포착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설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마음의 개념은, “사회적 실천들을 발생시키며, 그 실천을 통해 작동(생산, 표현, 사용, 소통)하며, 실천의 효과들을 통해 항상적으로 재구성되는, 인지적/정서적/의지적 행위능력의 원천”으로 조작되어 정의된다(김홍중, 2014a: 184). 마음이 행위능력의 원천이라는 이 입장은 사회적 행위가 뇌, DNA, 의식, 무의식, 습관(하비투스), 육체 등으로부터 솟아나온다는 여러 상이한 이론적 입장들과의 차이를 명시하는 것이며, 심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분리선을 긋는 강한 사회학주의적 입장들과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이며, 순수한 합리성으로 사회적 행위의 본성을 이해하는 사회과학의 오랜 전통과의 비판적 준별을 명시하는 것이다. 마음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이건, 사랑이건, 학습이건, 양육이건, 저항이건, 창조이건, 운동이건, 소통이건, 혁명이건 모든 사회적 행위는 행위자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다시 그 마음으로 회귀한다. 마음은 실천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인간 행위의 의미는 마음에서 구성되고, 다른 마음들과 부딪혀 변화하고, 다시 마음으로 흡수되어, 이후의 다른 행위의 갱신된 원천으로 작용한다. 마음을 의식(생각)으로 환원하는 것은 그리하여 행위능력으로서 마음이 취하는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형식과 내용을 부당하게 축소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이나 계산은 감정의 발흥과 욕망의 추동과 더불어 마음의 작동을 구성하는 한 차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행위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생각 뿐아니라 감정과 의지까지 이해하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인 마음가짐(heartset)을 규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음가짐은, 행위자들이 마음을 일으키고, 사용하고, 관리하고, 혹은 다른 마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규제하는 규칙과 규범들의 총체를 가리킨다. 이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행위준칙들(rules of conduct)인 사고방식, 감정양식, 그리고 욕망의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문법이나 법률처럼 사회적 사실에 속한다. 뒤르켐을 빌려 말하자면, 마음 가짐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 혹은 내적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랑그와 파롤처럼 분리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루는 마음과 마음가짐(마음/가짐)을 형성시키는 사회적 실정성(이념들, 습관들, 장치들, 풍경들)의 특정 배치를 우리는 ‘마음의 레짐(regime of the heart)’이라 부른다. 마음의 레짐은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위자들이 동원하고 활성화하는 마음/가짐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발생, 지속, 진화한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1세기 한국의 청년세대는, 생존에 대한 불안이라는 기조감정과 서바이벌을 향한 과열된 욕망,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 존재의 가능성들을 전략적으로 계발하려는 집요한 계산으로 특징지어지는 독특한, 마음의 역동을 보여준다. 행위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이 세대에 고유한 삶의 형식들을 생산하는 이런 행위능력의 원천이 바로, 우리가 생존주의라고 명명하는, 이 집합심리이다. 생존주의는,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인지되고 체험되는 경쟁상황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수월성을 증명함으로써, 패배와 그 결과 주어지는 사회적 배제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믿는 마음, 마음/가짐, 그리고 마음의 레짐을 가리킨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전력투구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해주는 이념들(이데올로기), 그런 생존 능력을 신장하는 것을 도와주는 각종 테크닉들(장치), 그 과정에서 행위자들에 체화된 성향들의 체계(하비투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존을 추구하는 자들의 희망과 기억 혹은 공포와 불안을 형상화한 문화적 산물들(풍경)이라는 복합적 차원들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다.4) IMF 외환위기 이후 전개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화 과정에서 전면화된 이 생존주의는 21세기 한국의 청년 세대의 가장 내밀한 마음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2계급의식 개념의 협소함을 넘어서 계급의 ‘심적 풍경(psychic landscape)’라는 좀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접근법의 제안에 관해서는 다음을 볼 것(Reay, 2005).  3가령 필처(Jane Pilcher)는 세대의식을 대체할 세대 사회학의 탐구 대상으로 지식/담론의 복합체를 제안한다(Pilcher, 1994; 492). 아보임(Sofia Aboim)과 바스콘첼로스(Pedre Vasconcelos)는 담론분석으로 세대의식 분석을 대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Aboim and Vasconcelos, 2014: 174-9). 에이어맨(Ron Eyerman)과 터너(Brian S. Turner)는 세대의식이 아닌 세대 하비투스를 탐구하기를 제안한다(Eyerman and Turner, 1998: 93). 에슬러(Anthony Esler)는 세대를 아날 학파의 심성사 전통을 빌려서 ‘집합 심성(collective mentality)’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접근이 세대의식에 대한 접근을 대체해야 한다고 본다(Esler, 1984).  4이념은 특정 사회 그룹의 ‘믿음의 시스템’을 이루며 주로 담론 형식으로 집약되어 마음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습관은 그 그룹의 ‘성향의 시스템’을 이루며 주로 하비투스 형식으로 집약되어 마음의 사용을 지도한다. 장치는 그룹의 마음을 생산하는 ‘테크닉들의 시스템’으로서 주로 사회적기구의 형식으로 작동한다. 풍경은 그룹의 ‘꿈과 기억의 시스템’으로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표상하고 재현하는 문화적 차원이다(김홍중, 2014a: 198-202). 마음의 사회학은 특정 행위자들의 ‘마음’이 이러한 사회적 마음 생산의 정교한 기제를 통해 작동한다고 본다. 즉, 마음은 심적 내부로 체험되지만, 사실은 사회적 공통성을 갖는다. 예컨대 21세기 청년들의 생존주의적 마음가짐은 경쟁시스템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과 경쟁적 세계상(적자생존)이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진실이라는 신념, 더 나아가서 그런 삶에서는 결국 개별자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강박적 능력주의 등, 속화된 다윈주의라 불릴 수 있는 이념내용들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념적 내용들은 순수한 사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삶의 습성들(하비투스)에 체화된다. 생존주의적 하비투스는 경쟁적 상황에 최대한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주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습득된 다양한 태도들과 미적 성향들(루저에 대한 경멸감, 성과 없는 노력/낭비에 대한 불안감, 사소한 일에서도 실패를 회피하려는 습성, 경쟁의 룰의 공정성에 대한 민감성, 승리자의 스타일과 가치에 대한 선망, 삶의 모든 국면을 경쟁상황으로 인지하고 여기에서 승리하려 과시하고 과장하는 습관)로 표출된다. 더 나아가서 이런 하비투스와 이념을 제도적으로 생산하는 다수의 장치들이 존재한다. 생존주의 세대가 교육기관/사교육을 통해 익숙한 방식으로 체험해온 각종 학습/평가절차들과 교육 컨텐츠들, 그들이 방대하게 소비하는 자기계발 담론들, 취업과 입시 그리고 중요한 경쟁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반화된 상호작용 패턴인 오디션 세팅, 스펙추구의 장치들이 그것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서 절박한 현실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통치의 결과물로 생존주의적 마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존주의자들의 불안과 꿈 그리고 기억은 집합적 수준에서 미학적 표상물들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생존주의 세대는 방대한 양의 ‘마음의 풍경’을 생산하고 이를 소비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생존주의 마음의 레짐을 구성하는 이 네 가지의 차원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절차적인 접근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작업을 차후로 미룬다. 대신 이 연구에서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마음의 레짐의 형성을 야기한 ‘서바이벌’이라는 문제의 등장과 그 의미론이다.

    Ⅲ. 문제공간의 변동 ? 생존주의의 형성

    마음을 세대 구성의 가장 중요한 차원으로 고려하는 이런 관점에 의하면, ‘세대’는 사람들의 집합 즉, 특정 출생코호트로 환원되지 않는다.5) 세대는 코호트로부터 창발한, 소통을 요소로 구성되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Corsten, 1999: 261-2). 만하임이 세대를 세대 위치로 파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위치(location)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구조화된 공간에 분포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세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대 형성적 소통의 총체이자 세대적의미론을 내포하는 문화적 요소들의 결정체 즉, 세대가 공유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향한 이 강력한 열망과 불안과 계산의 집합심리(세대의 마음)는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가? 마음의 사회학은 이에 대해 소위 실천론적(praxéologique) 설명논리를 제안한다(김홍중, 2014a: 203-4). 말하자면, 행위자들이 특정한 마음을 집합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공통의 ‘문제/과제’가 출현하여, 이 ‘문제/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행위능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정향할 실제적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적응의 과정에서 마음이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의하면, 세대의 마음은 현실이 어떤 문제들로 인지되고, 구성되고, 틀지어지느냐 라는 ‘문제구성’의 논리에 의해 생성·변형된다. 이때, 행위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구축되고 그 서열과 중요성이 결정되며 그들의 마음/가짐의 형성을 근원적으로 촉발하는 복합적 의사소통 공간을 마음의 사회학은 ‘문제공간’으로 개념화한다. 문제공간은 구조와 행위의 두 차원을 매개하면서 ‘사건화(eventualization)’와 ‘문제화(problematization)’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문제공간을 통해서 구조의 힘은 행위자의 생활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구체적 사건들의 형태로 행위자들의 체험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즉, 문제들의 사건화가 발생한다. 주지하듯 사회 구조는, 행위자들의 실천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파라미터들의 분포’의 형태로 사회적 행위에 일정한 영향력(압력)을 행사한다(Blau, 1974). 그런데 밀즈(C. Wright Mills)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구조가 행사하는 힘은 행위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못하고 오직 ‘개인적 문제’의 형식으로 번역되어 체험되는 경향이 있다(Mills, 1977: 9-10). 예를 들어 말하자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제도화’의 구조적 압력은, 아버지의 실업, 어머니의 우울증, 빈곤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파탄, 등록금 인상, 청년 실업, 의료비 증가, 양극화로 인한 절망 범죄의 증가, 취업난, 전세대란, 우울증의 발병, 혹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형태로 사건화되어 행위자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가시화되기 이전에는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나 용어로 남게 된다. 이처럼 구조(거시)와 행위(미시) 사이에는, 제도가 발휘하는 효과들이 구체적 삶의 사건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복잡하고 우발적인 사건화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문제 공간은 사건화의 공간인 동시에, 특정 사회적 행위자들이 해결해야 되는 주요한 문제들이 구성되는 문제화가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추상적 압력이 야기한 잠재적 문제들 혹은 앞서 이야기한 사건들이 기존의 문화적 인지구조에의해 해석되면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들’로 지각, 인지, 상징화되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사건화가 대개 사건들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규정된다면(물론, 사건을 사건으로 보도하고, 해석하고, 소통시키는 과정의 담론적 속성 역시 간과할 수 없지만), 문제화는 사건화보다 훨씬 더 상징적인 성격을 띤다. 어떤 문제도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인정되고 인지될 필연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모든 문제적 사안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형성은 모종의 선택과 희소성의 원리에 기초한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문제화 과정은 문제를 문제로 구성하는 행위자 집단의 담론적 성향, 도덕적 지향, 인지적 능력, 정치적 수준 등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가령, 20세기 후반 이래 독일 사회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중대한 사회 문제로 구성한 반면에, 프랑스 사회는 이를 훨씬 더 경미한 사안으로 설정하고 있다. 환언하면, 핵의 위험은 두 사회에서 다른 방식으로 문제화되고 있다. 또한 어떤 문제들은 세대적, 계급적, 젠더적 차이에 의해서 상이한 문제화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출산이나 육아의 경우, 동일한 한국 사회 내에서도 60대 이상과 40대 이하, 중산층과 부유층, 남성과 여성은 이를 매우 다르게 문제화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동일한 사안이나 대상이 역사적으로 다른 시간성 속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문제화되는 경우도 지적할 수 있다. 실례로, 흡연이 중대한 사회문제로 구성되는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비로소 발생한 현상으로서, 그 이전에 담배피우는 행위는 개인들의 사적 기호였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로까지 인지되지는 않았다(Brewis and Grey, 2008: 984). 문제화는 이처럼 사회적 경계들의 맥락에서 벌어지는 상징투쟁과 권력충돌의 함수이다. 또한, 문제 공간은 상징들의 교환, 담론의 형성과 배제, 매스미디어의 프레이밍, 다양한 매체들을 통한 다층적 상호작용들에 의해 가로질러지며, 집합기억과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간섭받는, 부단히 변동하는 의미생성의 현장으로 파악되어야 한다(Best, 2012: 3-27).

    한국 청년 세대의 생존주의의 형성은, ‘서바이벌’이라는 특권적 ‘기표’를 통해 청년 세대의 객관적 현실이 표상되어 재구성되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마음의 레짐을 구성하여 실천들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실제로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변동은 청년들이 해결해야 하는 다양한 문 제들의 위계, 배치, 중요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새로운 문제 공간을 발생시켰다. 문제들의 위계는 전도되고, 과거에는 문제화되지 않던 새로운 문제들이 형성되 어 지각되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자원의 동원, 마음가짐의 형성, 그리고 전략적 행위들이 창발한 것이다.6)) 우선, 높은 청년 실업률과 ‘학업-직업(school-work)’ 의 연계 고리의 파괴가 야기한 취업 문제, 그리고 대학 등록금과 대출 그리고 주택자금의 문제, 즉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부상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업이라는 ‘실패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요구되는 ‘스펙’을 축적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지되기 시작했으며 연애,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구성되는 친밀성 영역이 합리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문제 영역(리스크)으로 전환되어, 결혼과 출산이 삶의 필수적 과정으로부터 선택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강화되기 시작했다(Kim, 2013: 324-5). 사회적 삶의 두축을 이루는 직업적 삶과 가족적 삶, 사회성의 영역과 친밀성의 영역에서 모두 자명했던 생애과정이 이처럼 탈-표준화(de-standardized)됨으로써(Bruckner and Mayer, 2005), 과거에는 당연시되던, <취직-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상적’ 삶이 고도의 노력과 능력을 요하는 과업으로 변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삶의 서사를 세우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태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이란 용어는 이들 청년 세대가 삶을 고민할 때 그것에 조회하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설정의 틀로 등장하게 된다. 동일한 시기에 생산된, 청년 세대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령, 88만원 세대론은 비정규직에 내몰리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곤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으며(우석훈·박권일, 2007), “삼포세대(三抛世代)”나 “이케아세대”라는 명칭 하에 이루어진 관찰들은 20대 행위자들의 친밀성 영역에서 발생한 새로운 삶의 난관들을 식별해 내고 있으며(전영수, 2013), “잉여” 혹은 “루저”나 “병맛” 등의 용어들7)과 연관된 청년 하위문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은 사회성의 장애와 세대심리적 특이성들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있다(한윤형, 2013; 이길호, 2012; 최태섭, 2013). 이런 곤경, 난관, 장애는 모두 이들의 기초적 삶의 과정에 발생한 생존의 문제들에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특히, 2010년경부터 에세이, 웹툰,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소설의 형식으로 청년 세대가 스스로 생산한 자기관찰들은, 정글과 같은 삶에서의 서바이벌 문제가 이들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간파할 수 있게 한다.8)) 생존/낙오의 코드는 청년들의 마음이 작동하는 기초 코드를 이루고 있다. 생존과 낙오를 가르는 상황이 바로 경쟁이다.

    원래 ‘경쟁’은 시장과 스포츠 영역에 국한되어 사용되던 개념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용어는 사회의 다른 영역들로 서서히 침투하였고, 그런 영역들에서의 행위준칙을 지도하는 원리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기업을 위시한 여타 사회조직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인간상으로서 “전사, 리더, 모험가”와 같은 경쟁인homme compétitif)의 형상이 군림하고(Ehrenberg, 1991: 13-4), 경쟁의 상상계가 소위 신경제 시스템의 지배적 정신 상태, 사회관계의 양태, 그리고 자기통치의 이상적원리로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한다(Ehrenberg, 1991: 14-5; Verardi, 2009:131-5). 경쟁 프레임이 펼치는 상상계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관계형식은 힘의 논리에 근거하여 차별화된 위치들이 서로 퍼포먼스를 통해 각축하는 경연장(競演場)으로 나타난다. 자아는 근본적으로 승부에 임한 존재로 상상되며, 그가 스스로를 구제하는 방법은 가용한 모든 자원을 최대치로 동원하여 살아남는 것, 즉 서바이벌하는 것이다(Kim, 2014: 48). ‘서바이벌’은 이제 물리적이고 생물학적 연명 혹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제로부터 경쟁적 삶에서 배제되지 않는 상태로의 의미론적 전이를 겪는다.

    5유럽 사회학과 미국 사회학은 여기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미국 사회학계에서는 주로 세대 개념을 친족관계에 대한 논의에 국한시키고 있으며, 특정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과, 특정 사건(가령 결혼)을 동시에 체험한 코호트에 대한 통계적 접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럽 사회학계에서는 여전히 문화적으로 규정된 세대의 개념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Chauvel, 2006: 151; Chauvel, 2010: 81 이하). 코호트적 접근이 세대론적 접근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Alwin and McCammon, 2003: 41; Cavalli, 2004; Edmunds and Turner, 2005: 561).  6사실, IMF 이전 한국 사회(소위 87년 체제)의 20대 행위자들은 생존주의 세대와는 매우 다른 문제공간을 체험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들로 현상했던 것은,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열망과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억압이 충돌하면서 야기한 다양한 사건들과, 청년 세대에게 부여된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과제들이었다(이희영, 2006). 이는, 그 시기 청년들에게 취업이나 친밀성의 문제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시기의 청년 세대의 문제공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구성된 것은 개인수준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 소위 민주화라는 사회적 문제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시기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제기된 정치-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형성한 지배적 마음/가짐이 바로 진정성이다. 그것은 80년 광주 항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광주 항쟁의 기억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정의/불의, 도덕/비도덕, 용기/비겁, 민중/파쇼, 선/악, 의미/무의미, 삶/죽음 등의 인지적 경계선을 구획하는 기준을 제공했으며, 광주에서 체험된 ‘절대 공동체’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상상적, 규범적, 도덕적 지향점을 제공했다(최정운, 1999). 광주가 청년세대의 마음에 남긴 각인은 삶의 원초적 의미에 대한 질문,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특수한 마음의 조직의 구성을 야기하였다. 진정성의 레짐은 민주주의/민중주의/민족주의와 같은 소위 삼민(三民) 이데올로기, 독특한 운동권 하위문화와 세대적 하비투스, 시위, 대자보, 술자리, 세미나로부터 농활에 이르는 특수한 주체화의 장치들, 그리고 해방된 사회에 대한 집합적 꿈의 문화적 표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김홍중, 2009: 24).  7‘잉여’는 “자신의 전문적인 혹은 잡다한 지식이나 기술을 이용하여 타인들이 보기에 무의미한 시간 낭비로 비춰질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안에 개입하는” 청년들 혹은 직업을 아직 얻지 못한 고학력자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이들이 주로 컴퓨터에 접속하여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잉여짓’이라 부른다(김상민, 2013: 78). ‘루저(loser)’는 일반적으로 패배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 비유도 광범위하게 확장되어 외모, 성격, 스타일에서 월등하지 못한 자들을 내포한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을 줄인 말로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원래 디시인사이드에서 생겨난 신조어로서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온 다양한 창작물 중 수준이하라고 생각되는 것에 조롱조 답글을 달 때 사용했고”, 이후에 그 적용대상이 확대된다(김수환, 2013: 150-1).  8이에 해당하는 주요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김예슬. 2010. 『김예슬선언』. 느린걸음.; 단편선, 전아름, 박연수. 2010. 『요새 젊은 것들』. 자리.; 김민수. 2013. 『청춘이 사는 법』. 리더스북.; 유재인. 2010. 『위풍당당 개청춘』. 이순.; 장현정, 류성효, 송교성. 2012. 『레알청춘대폭발』. 호밀밭.; 청년유니온. 2011. 『레알청춘』. 삶창.; 안치용. 2011. 『청춘은 연대한다』. 프로네시스. 다큐멘터리로는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개청춘>(2009), 석보경, 장경희, 정동욱의 <방, 있어요?>(2009), 최신춘의 <알바당선언>(2008), 김은민의 <내청춘을 돌려다오>(2009), 하샛별의 <나의 길 위에서>(2010), 늘샘의 <노동자의 태양>(2010) 등이 주목할 만하다. 우문기의 <족구왕>(2013)이나 엄태화의 <잉투기>(2013)는 청년 세대의 잉여 문화에 대한 극영화로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웹툰으로는 주호민의 <무한동력>, 윤태호의 <미생>, 노란구미의 <돈까스 취업>(2008), 곽인근의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하일권의 <목욕의 신>, Seri의 <고시생툰>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청년들을 삶을 그리고 있다. 문학장에서는 김애란을 필두로 김사과, 박솔뫼, 박주영, 서유미, 한재호, 김미월 등이 청년 세대의 삶과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

    Ⅳ. ?서바이벌?의 의미론

    이와 같은 경쟁 패러다임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일상문화의 수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삶의 원초적 풍경들을 이루게 된다. 가족,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경쟁은 하나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혹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의 청년 세대는 이를 깊이 내면화해 온 것으로 보인다(서상철, 2011; 류웅재·박진우, 2012: 142). 자기계발 담론, 경영 담론, TV에서 방영되는 각종 리얼리티 서바이벌 포맷 프로그램들의 압도적 인기와 영향력은 이를 방증한다.9) 웹툰, 드라마, 문학작품 등에서 ‘배틀로얄(battle royale)’로 상징되는 서바이벌 상황과 알레고리 혹은 상징들이 등장하여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10)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에 의하면, 매스 미디어와 학문, 예술이 생산하는 다양한 담론들과 문화적 산물들은, 고도로 분화되고 복잡한 현대사회가 스스로를 (자기)관찰하는 대표적 형식들이다(Luhmann, 1997: 1139). 사회는 이런 자기관찰을 통해 작동하며, 작동의 고유한 원리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소통을 이어간다. 이와 같은 사회의 작동(자기관찰)의 개연성을 높여주는 기대구조를 루만은, 코젤렉(Reinhard Koselleck)을 따라서, 의미론(semantics)이라 부른다. 의미론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더 높은 이해와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능한 테마들의 온축(蘊蓄)”이다(Luhmann, 1995: 163). 자기관찰을 통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루만의 이런 입장은, 사회적 실재(가령 세대)가 담론적 관찰들의 외부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관점을 기각하고, 세대라는 것이 자기관찰 속에서, 그리고 그런 관찰들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구성주의적’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따르자면, 매스미디어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프로그램들과 방송들 그리고 공론장에 유통되는 학문적 언설들과 연구들, 문화영역에서 유통/소비되는 자기계발서들,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 웹툰 등, 사회의 자기관찰의 형식들은 단순한 이차적 재현물들이 아니라, ‘서바이벌’이라는 문제구성의 틀을 통해 ‘생존주의 세대’를 실제로 조형해낸 가장 중요한 심급이자 자료들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 방대한 텍스트 속에 난삽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는 ‘서바이벌’이라는 핵심 기표의 의미는 다음과 같 은 특성들의 모자이크로 나타난다.

    첫째, 새로운 생존 개념이 지시하는 사태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 또는 생애 과정 전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쟁 상황에서 도태되거나 낙오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새로운 생존의 의미는 재난이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하는 것이라는 본래의 뜻이 비유적으로 확장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TV를 점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과거에는 경쟁의 문법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삶의 필드들(예술, 음악, 무용, 요리 등)을 치열한 경연 상황으로 재구성한다.11) 서바이벌 가이드(서적)의 형식으로 행위를 지도하는 담론들은 조기유학, 자녀양육, 회사생활, 연애생활, 대학생활, 세계여행, 주식투자, 마케팅 등 한국인의 일상적 삶의 거의 모든 부문들을 서바이벌 메타포가 적용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는 부부생활도 서바이벌 게임으로 인지되어, 게임에서의 실패가 ‘이혼’이거나 아니면 ‘불행’으로 의미화되는가 하면(주병선, 2005), 인생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도 ‘서바이벌’로 불리면서 치명적 외상을 극복하고 정상적 삶으로 복귀한 자들이 “수퍼서바이버(supersurvivor)”라는 명칭을 획득하기도 한다(Feldman and Kravetz, 2014). 생존 의미론의 이런 무작위적 확장은 그 기호가 지칭하는 사태, 문제가 되는 곤경의 성격, 그런 곤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의 유형,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감각 등을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로 뒤섞어버림으로써, 거의 모든 삶의 상황들이 서바이벌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현상하고야 마는 기이한 상황을 야기한다. 그 결과 비정규직을 벗어나는 것, 해고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추구해 나가려는 시도, 혹은 노동·주거·금융과 관련된 각종 ‘생존법률’들을 숙지하여 부당한 처우에 대처해나가는 것, 이들 모두가 청년 세대에게는 서바이벌을 위한 행위들로 간주되고 있다(청년유니온, 2011; 김민수, 2013). 서바이벌은 이처럼 다양한 내용들을 포괄하면서, 청년의 존재와 의식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어로 등극한다.

    둘째, 생존은 경쟁에서 이겨 그 외부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상황을 한 번더 미래로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들에게 대학입시나 취직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경연장으로 나아갈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윤태호의 웹툰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생존을 추구하는 자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삶’의 상태 즉 미생(未生)’이다. 사활(死活)적 상황의 연쇄를 내포하는 바둑의 메타포는 생존의 의미론에 매우 적합한 긴장과 불안을 추가한다. 생존한다는 것은 이제 ‘살아남았다’는 일회적 사건이 더 이상 아니다. 생존과정의 영구적 연쇄가 불투명한 미래의 어딘가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탈근대 자본주의에 고유한 주체화의 특성과 조응한다. 예컨대, 초기 근대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 세계로 진입하는 결정적 이행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 근대적 노동 세계는 “평생 교육을 통해 혹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자신을 능력화”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데 이처럼 의무가 되어버린 능력이란 “분명한 내용으로 규정된 외재적인 기준이 없는 미지의 X”이다. 어디부터 능력 있는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리하여 “능력 있는 주체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언명은 불길한 설득력을 갖는다(서동진, 2003: 109-110). 사실, 노동 유연화와 삶의 전반적 액화 속에서 끝없는 혁신과 자기계발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신시켜야 하는 사회적 압력을 염두에 두고 보면, 생존 개념의 외부는 용이한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다(어쩌면 그 유일한 외부는 죽음일지도 모른다). 생존자는 다음의 경연 앞에 있는 자에 불과하며, 기왕의 생존자에게도 미지의 생존 게임은 어김없이 펼쳐질 것이다. 경쟁의 이 유사 무한성은 생존에의 성공을 일종의 소실점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꼭대기의 딱 한 자리, 그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패자”라는 진단은 청 년 세대가 바라보는 세계상의 진실을 적시하고 있다(엄기호, 2010: 46).

    셋째, 경쟁 상황에서의 서바이벌을 위해서 개인은 자신의 모든 잠재적 역량을 가시적 자원(자본)으로 전환하는 자기통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특히 청년 세대들에게는, “개인들 간의 군비경쟁”이라 불릴 수 있는 다양한 스펙 경쟁의 형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최철웅, 2011: 39). 생존 여부는 요행이나 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생존 추구자가 자신의 자아와 맺는 합리적 규율과 통치 가능성에 종속된다. 왜냐하면 경제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 이외의 감정 능력, 희망의 능력, 회복력(resilience), 집중력(mindfulness), 상상력, 기획력, 창조력, 인간적 품성, 꿈꿀 수 있는 능력 등,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들의 총체가 서바이벌을 위해 관리되고 계발되어야 하는 자본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몇몇 자기계발서는 적절하게도 이런 힘을 “생존력(生存力)”이라 명명하고 있다(조용상, 2009; 김광희, 2013).12) 생존력은 경연에 동원되는 자본이다. 또한 생존력의 확장이라는 최대의 과제는 오직 스스로 자신의 잠재적 생존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것을 계발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삼켜 생존에 적합한 존재로 자신을 변환시키는 일종의 초도덕적 프로그램이다. 그리하여 힘과 도덕의 위계가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령, 포용(包容)과 같은 전형적인 도덕적 태도도, 한 리더십 매뉴얼에는, “가장 이기적인 생존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정현천, 2011).13) 해외자원봉사에 나가서 지구적빈곤현장에 투신한 다수 대학생들을 연구한 조문영의 관찰에 의하면, 이해타산에 대한 계산을 넘어서는 무상성에 기초한 행위일 것으로 기대되는 자발적 봉사 활동은,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에 의해, 취업준비 과정의 한 단계, 즉 취업을 위한 도구적 행위로 간주되고 있었다. 무사심(disinterestedness)을 요청하는 자원봉사 활동도 하나의 프로젝트이자 생존을 위한 ‘스펙’으로 해석되며 실천되는 것은, 서바이벌의 의미론이 그만큼 강력한 문화적 언어로서 현실을 조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조문영, 2014: 245-6).

    넷째, 새로운 생존은 특별한 성공이나 대단한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서바이벌을 향한 노력은 성공이나 치부(致富) 혹은 명성의 획득을 위한 야심찬 시도가 아니라 놀랍게도 “평범한 안정을 위한 분투”이다(박고형준, 2014: 119). 계급적 차이를 고려한 세밀한 분석이 더 요청되지만, 몇몇의 관찰들에 의하면 21세기 한국의 청년 세대들은 “평범함에 대한 열정”을 품고, 그 이상(以上)을 꿈꾸지 않으며, 안정된 삶을 소망한다(정수남‧김정환, 2014). 김학준은 이들의 내면에서 소위 평범성의 유토피아를 읽어낸다. “이제 이들에게 꿈은 친밀성과 가족의 영역을 유지하여 계급을 재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제 누구도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고, 평화롭게, 사회에서 튀지는 않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평범하게 사는 것은 불가침의 유토피아가 된다”(김학준, 2014: 136). 이런 점에서 보면, 새로운 생존의 의미론은 20세기를 풍미한 소위 성공학 담론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성공의 의미론과 동일시되기 어려운 특색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생존은 풍요로운 미래를 향해 야심차게 전진하여 무언가를 의기양양하게 획득하는 그런 이미지라기보다는, 더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자세, 피로와 체념의 은폐된 감정, 화려한 삶이 아니라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의’삶에 대한 소망의 이미지와 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생존의 의미론은 자아 표현과 사회적 적응의 접합, 다른 표현으로 하면 자아가 스스로를 차별화(differentiation)하는 것과 자신을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정상화(normalization)하는 것의 기묘한 접합으로 구성된다(Cederström, 2011: 39). 새로운 생존 개념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자아를 포기하거나 자아를 위해 생존을 포기하는, 그런 양자택일적 상황을 제시하지 않는다. 생존 추구 과정은 사회적 통제에의 순응(정상화)인 동시에 자아를 실현시켜 스스로의 정체를 표현하는 과정(차별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바로 그런 진정성을 통해 체제에 기능하는 이중적 존재로 나타난다. 모더니티의 문화적 문법에 의하면, 진정성의 윤리는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하는 반역적(rebellious) 개인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기 근대적 진정성은 사회와 길항하는 개인성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에 기능적으로 복무하는 노동윤리에 충실한 주체형성의 원리로 변모한다(Murtola and Fleming, 2011: 2). 진정성의 추구가 사회적 순기능으로 전환되는, 소위 “진정성의 덫(authenticity trap)”이 나타난다(Spicer, 2011: 47). 가령,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존재 전체를 생존 게임에 헌신하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서바이벌을 욕망하는 방식으로 자아를 구성하고 연출함으로써 서바이벌 상상계의 휴먼 드라마를 제공하는 장면들 속에서, 생존과 진정성은 분리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생존하기 위해 진정성을 버려야 하거나 아니면 진정성을 위해 생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향해 특수하게 정향된 새로운 유형의 진정성(생존주의적 진정성)은 “열정노동”이라는 적절한 용어로 포착된 새로운 노동 스타일 혹은 노동 통제의 심적 동력을 이루고 있다(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2011).

    이 새로운 ‘서바이벌’은 리얼리티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실태라기보다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실천 속에서 추구해야 하는 기획이자 가치이자 규범으로 부과되는 일종의 가능태이다. 리얼리티를 지도하는 추상적 원칙, 문화적 명령, 더 나아가서 미학적 판단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생존과 낙오를 가르는 저 선은 명확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생존자가 차후의 생존자가 된다는 보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 생존자도 절대적 루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열화된 위치들이 구성하는, 외부 없는 경연장으로 상상되는 사회 속에서, 자아의 전 부분을 존재를 위한 투쟁에 요구되는 자원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강박에 밀려, 자기 자신과의 도구적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야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어떤 영원한 유예(moratorium)의 상태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생존주의의 헤게모니이다.

    9서바이벌 포맷 프로그램들은 2009년부터 국내 예능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를 점령하고 있다. MBC의 <위대한 탄생 1, 2>,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댄싱 위드 더 스타>, KBS의 <밴드서바이벌 TOP 밴드>, <도전자>, SBS의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 <기적의 오디션>, , <빅토리> 등이 그것이다. 케이블에서도 tvN의 <코리아 갓 탤런트>, QTV의 <에드워드권의 YES CHEF 시즌 2>, Mnet의 <슈퍼스타 K3>, tvN의 <부자의 탄생>, Onstyle의 <도전슈퍼모델 Korea 2>, Storyon의 <아트 스타 코리아> 등이 있다(류웅재·박진우, 2012: 144). 서바이벌 포맷 프로그램들은 ‘오디션’ 상황을 가장 주요한 상호작용의 형식으로 설정한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한 자기계발서는 오디션을 삶의 전반적 상황으로 확장시킨다. “오디션이란 무엇일까? 그 개념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쉽게 풀자면 ‘목적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 정해진 시간 내에 자신의 특징, 장점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연예인 지망생 선발 외에 사회생활의 관문인 ‘면접’도,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수인 ‘미팅’도, 심지어 연애가 결혼을 위한 ‘맞선’도 일종의 오디션이다”(심혜안, 2011: 15-6).  10한국 대중문화의 장에 200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좀비(zombie)’의 형상은 이런 점에서 보면 생존주의 문화의 한 징후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개성 없는 맹목적 욕망의 덩어리인 좀비들의 파상적 물결 앞에 위험에 빠진 채 생존을 도모하면서 살아남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고투를 그리는 좀비서사는 생존주의적 상상력과 깊은 친화력을 갖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묵시록이나 파국의 상상력이 21세기 문화공간에 범람하는 현상 역시 생존의 상상계의 은유적 확장으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예상하지 못한 압도적 재난의 세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부각하는 문제는 바로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11국내에 번역된 한 자기계발서는 승리자(winner)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낸 사람이라면 모두 ‘위너’로 부르기로 했다. 위너는 골프에서 스윙을 마스터하는 것이든, 자녀를 자신감 있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든, 아니면 목표한 자리로 승진하는 것이든 자신이 이루려 했던 일을 이루어낸다.”(Brown, Fenske, Neporent, 2011: 14). 흥미로운 것은, 골프나 아이의 양육이나 승진이 모두 ‘이겨야 하는 무엇’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취미, 육아, 노동을 가르는 질적 경계선이 경쟁의 언어에 의해 침식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식이다. 자기계발의 대상 영역이 잘 보여주듯이, 경쟁 상황은 공식적 삶으로부터 친밀성의 영역, 더 나아가서 내밀한 심리의 수준에까지 확산되어 있다.  12소위 ‘멘탈’이라는 용어로 집약되는 심적 능력은 중요한 ‘서바이벌 키트’의 구성요소로 인지되고 있다. 한 자기계발서는 이를 ‘마음력(力)’이라 명명한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힘들 때 빨리 에너지를 충전하는 법, 화날 때 빨리 풀어버리고 웃음을 되찾는 법, 대인관계를 세련되게 풀어가는 법, 자신감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 남의 장점을 잘 칭찬하는 법 (...) 현대인에게 이것은 생존의 키워드다. 이제는 자기 삶에서 불행을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우종민, 2007: 7). 놀라운 것은 성공과 행복의 순서가 전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것. 행복은 이제 생존을 위해 요청되는, 성공의 이전 단계에 위치함으로써, 노골적으로 도착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13도덕이 생존의 도구로 전환되는 것과 동시에 생존 또한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생존에 성공한자, 지속적으로 경쟁 시스템에 잔류한 자는, 게으르거나 무책임하지 않으며, 헛된 몽상을 좇는 자들이 아니고, 자신에 대한 합리적 경영과 냉혹한 규율에 성공한 자로 인식된다. 반대로 말하면, 생존을 위한 자기자본화의 절차에 실패하는 자는 무능할 뿐 아니라 부도덕한 자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러한 생존의 도덕화는 생존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광범위한 승인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 한국의 대학생들이 생존게임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려 시도하는 대신, 게임의 규칙들(가령 엄정한 학사관리와 상대평가)이 공정하게 적용되어 “규칙의 위반자들에 대한 철저한 불이익”이 가해지기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무임승차하는 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최철웅, 2011: 41)은 대학에서의 일상적 관찰에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

    Ⅴ. 마음의 분화

    생존주의는 21세기 한국의 청년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음의 레짐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 행위자들이 자동적으로 생존주의에 지배되는 것도 아니며, 생존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서바이벌의 이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적 레짐의 힘은, 잔존하는 다른 마음의 레짐에 의해 도전받기도 하며, 이상적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패배하거나 낙오된 행위자들의 병리적 삶에 의해서 도덕적 타격을 입기도 한다. 혹은 좀 더 진화된 다른 형태로 변화하기도 한다. 생존주의적 행위 공간은 복수(複數)의 레짐들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분화를 겪는다. 허시먼(AlbertHirschman)을 빌려 말하자면, 생존주의에 대한 충성(loyalty), 항의(voice), 그리고 이탈(exit)의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것이다(Hirschman, 2005). 가령 공존주의와 독존주의가 생존주의에 대한 항의의 유형이라면, 탈존주의는 이탈의 유형을 이룬다. 이들 각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4)

    독존주의는 생존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개인화된 자율적 삶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독(獨)은 타인들과의 교제나 사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초월적 자세를 표상한다. 독존주의의 마음은 사회적 삶으로부터의 거리두기, 혼자만의 안락한 공간에서의 독립된 삶에 대한 욕망, 강력한 개인주의적 가치, 타자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교란될 가능성에 대한 거부 등을 내포한다. 독존은 생존투쟁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승리했거나 아니면 그런 투쟁으로부터 (아마도 부모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면제된 자들이 생존 경쟁의 괴로움과 처절함을 회피하여 구성한, 자족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사회적인 ‘자유주의적’ 삶의 형식이다. 즉, 절대적 생존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계급에 속하는 청년들이 독존주의와 친화력을 갖는다.생존주의가 ‘속물성’의 자발적 승인과 연관된다면, 독존주의는 가령 코제브(Alexandre Kojève)가 말하는 ‘동물성’에 대한 승인이다(김홍중, 2007: 82-5). 그것이 바람직하고 좋으며, 또한 욕망되는 것으로 형상화되는 ‘독존’이라는 삶의 형식은 초식남(草食男), 나홀로족, 니트족, 혹은 싱글족으로 불리는 행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한다(上野千鶴子, 2007). 독존주의가 동원하는 주요한 감정 자원은 우월감 혹은 나르시시즘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던 그렇지 않건 간에, 독존주의는 언제나 미적 취향과 문화 자본의 축적을 통한 자기(self)의 창조적 실현이라는 환상적 가치를 그 이데올로기로 두르고 있다. 독존주의의 핵심 관심은 자기와 자기의 관 계이며, 이와 같이 섬세하게 실천되는 자기에의 배려는 사회적인 것의 부담과 비용에 대한 단호한 거절이라는 단단한 보호막으로 둘러져 있다. 생존주의의 세계를 초월하여, 생존에 매몰된 청년들을 때로는 조소하며, 때로는 비판하면서, 삶의 미학적 표현과 구성을 통해 그들과 ‘구별짓기’를 시도하려는 욕망의 레짐, 그것이 바로 독존주의이다.

    공존주의는 생존주의적 삶의 형식의 시대적 전횡에 문제제기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집합적 라이프스타일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마음가짐이다. 여기에서 공(共)은 타인들과의 공동체를 구현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며, 공적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대응하고자 하는 태도를 집약한다. 많은 경우 공존주의를 구성하는 주된 장치는 역시 다양한 형식의 운동이다. 시위나 집회, 공연, 학습, 세미나 등의 모임들을 통해서 공존주의자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구체적 실천들이 발생한다. 이들의 중요한 감정적 자원은 분노와 공감이다. 분노는 사회/정치적 시스템을 향하며, 공감은 배제된 자나 피해자를 향한다. 한국의 대학공간에서 공존주의자들의 입지는 현저하게 축소되어 있다. 도리어 소수자로 전환된 공존주의자들에게는 ‘전망없음’이라는 폐색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이들 역시 자신들의 생존 문제 앞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외부에서 새로운 형식의 공존주의의 활성화가 감지된다. 전통적 운동을 추동한 마음가짐과는 다른 “구체적인 활동과 재미”라는 새로운 동력으로 운동하는 청년들도 있으며(김강기명, 2011: 186-7), 생명평화운동, 대안주거운동, 기본소득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마을 만들기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생존주의를 넘어선 공존을 꿈꾸는 청년들도 있다(이윤경·신승철, 2014). <서울시일자리청년허브>에서 일하는 청년활동가들의 실천양태와 가치에 대한 연구에서 류연미는 이들의 활동이 자기 자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진정성의논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다(류연미, 2013: 101-5). 운동의 윤리가 생존의 압박과 독특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공존적 활동으로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은 세심한 주목을 요한다. 가령, 2010년 3월에 창립된 세대별 일반노조인 청년유니온(Youth Community Union)이나 알바노조와 같은 자생적 운동조직들은 이런점에서 새로운 공존주의적 실험의 모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유형근, 2014).

    탈존주의는 생존주의로부터의 과격한 이탈의 운동이다. 탈존(脫存)이란, ‘존(存)’의 여러 형식들(사회적, 생물학적, 정치적)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 삶을 끊고 싶은 마음, 이처럼 비참한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낳고 싶지 않은 마음들의 방향성을 표상한다.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 ‘사라지는 것’을 꿈꾸는 마음의 지향이다. 이는 정신분석학이 죽음충동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 실존의 깊은 부정성과 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자연적이고 본능적 충동과는 거리가 멀다. 탈존주의는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된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가혹한 생존경쟁의 지속되는 압력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어가는 행위자들이 체험하는 ‘마음의 부서짐(heartbreak)’의 결과물이다. 생존의 꿈이 거부되었을 때, 공존의 현실이 파괴되었을 때, 그리고 독존의 환상이 환멸로 끝났을 때, 탈존의 참혹한 실재가 나타난다. 21세기 청년들의 마음 풍경은, 발전과 성장의 신화를 체험했던 부모 세대, 민주화의 진보를 체험했던 세대들의 맹목적 낙관주의와는 다른 허무와 비관, 피로와 체념, 꿈과 미래의 상실이라는 공유된 비관주의의 기본 정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탈존의 체험은 이런 비관주의가 개인적 삶의 해결할 수 없는 난관을 만나 병리적 증상들(자살, 디프레션, 여러 형태의 정신적 장애들, 범죄, 절망)의 형태로 표출될 때 비로소 가시화된다. 깊은 마음의 상처들과 무력감과 우울이 탈존주의의 보편적 잠재성의 영역을 이룬다. 앞서 말한 듯이, 생존주의의 레짐에서 진정한 생존자의 자리는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사실상 다수의 분투하는 행위자들은 그 분투의 결과가 계속되는 좌절로 귀결될 때, 탈존의 방향으로 경사되어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국의 청 년 작가들 중에서 이런 탈존주의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표출하는 이로서 박솔뫼를 거론할 수 있다. 박솔뫼 소설에는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존재의 발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흔적 없이 스쳐가는” 청년들이 등장한다(정여울, 2010: 204, 207). 희박한 사회성, 삶과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포기와 체념, 그리하여 사라짐 에 대한 강박적 추구를 보여주는 젊은 군상들의 세계, 이른바 “탈존주의의 극장”이그녀의 소설 세계에 펼쳐진다(김홍중, 2014b). 탈존주의는 생존주의의 환상적 스크린 이 미처 가리지 못하는 실패와 좌절의 리얼리티에서 자라나는 마음가짐이다15).

    생존, 독존, 공존, 탈존은 청년 세대의 마음을 지배하는 네 가지 삶의 좌표축이다. 각각의 마음의 레짐들은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산물들, 그들의 상상력의 표상들 속에서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다양한 조직과 활동들을 통해 구현된다. 각 레짐은 서로 다른 형태의 하비투스의 형식으로 체현되고, 상이한 믿음의 체계를 갖게될 것이며, 결국 다른 인간 유형을 만들어낼 것이다. 마음의 사회학으로 만하임의 기획을 이어가는 것은, 생존주의 세대의 사회적 형성을 설명하고, 그들 마음의 핵심 문제(서바이벌)의 의미론을 규명하고, 더 나아가서 이처럼 분화되어 각축하는 다양한 실천 유형들을 탐구하는 일련의 절차를 수행하는 것이다. 앞서 제시된 네 가지 개념은 이런 의미에서 모두 이념형적 수준에서 포착된 ‘유형(type)’들로서 현실에 실재하는 경험적 내용들을 발견술적으로 포착해 내기 위한 이론적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지하듯 유형학적 접근은, 통계적 측량에 기초한 설명적 프로젝트와 연관되는 분류(classement)와는 달리 베버(Max Weber)의 이해사회학적 프로젝트와 더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Heinich, 2000: 13). 그것은 현실의 행위자들을, 그들의 속성에 기초하여 분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관찰된 행위들과 담론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추상적 관계의 논리를 계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Schnapper, 1999: 113-4). 이런 유형들의 구성과 설정이 가능하게 할, 차후의 확장되고 심화된 경험연구들을 통해서 우리는 청년 세대의 심적 풍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능성과 가시성을 제공받기를 기대한다.

    14전성우는 ‘실존의 사회학’이라는 제명 하에,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사회를 구성하고 또한 자아를 설립시켜야 하는 인간의 필수 욕구들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존재의 세 상이한 차원을 (물리적) 생존, (심리적) 자존, (사회적) 공존으로 규정하고 있다. 생존, 자존, 공존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포괄하는 개념들로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진화하며 문명을 구성하는 기초 요소들이다(전성우, 2013). 이 연구에서 개념화하는 생존, 독존, 공존, 탈존은 인간 존재의 보편적 가능성을 지칭하는 용어라기보다는 특정 역사적/사회적 상황에서 형성되어 기능하다가 소멸하는 ‘마음의 레짐’을 가리킨다.  15최근에 일본의 청년들은 비관적 탈존주의가 아닌 ‘낙관적’ 탈존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흥미로운 보고가 있다. ‘사토리(さとり)세대’라는 별칭을 얻은 일군의 일본 젊은이들은 현실세계에 더 이상 어떤 소망도 품지 않는 ‘쿨’한 태도를 견지하며 마치 깨달은 불교도들과 같이 욕망과 집착이 사라진 삶을 디자인하고 있다고 관찰된다(‘사토리’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탈존의 제스처는 비극적인 패배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일종의 정신승리법, 방법적 초탈의 외양을 띤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을 볼 것(古市憲壽, 2014).

    Ⅳ. 생존주의의 역사성

    21세기 청년 세대의 마음을 지배하는 생존주의적 경향은 선배세대로부터 상당히비판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386 세대에 부여되는 일반적 인상(정치적 참여, 인습에 대한 저항, 강렬했던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민주화를 이끌었던 운동 주체로서 그들이 보여준 적극적 세대의식)과의 대비는 이들 젊은 세대의 소위 ‘반(反)청춘적’ 혹은 ‘비(非)청춘적’ 속성을 더욱 두드러진 모습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사실 생존주의 문화는 청년세대에만 국한되어 발견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이들을 그런 방식으로 주체화시키는 것은 앞선 세대가 만든 제도들과 장치들을 통해서이며, 부모세대가 체득한 삶의 진리들이 훈육과 소통을 매개로 이들에게 재생산되는 과정을 통해서이며,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 가치의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학습을 통해서인 것이다16). 청년들만이 생존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전(全)세대적으로 확산된 한국사회의 생존주의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약한 고리가 바로 청년 세대라고 보는 것이 더 사태의 진실에 부합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생존주의적 삶의 태도와 이에 대한 사회적 승인은 사실, 21세기에 비로소 관찰되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격랑을 헤쳐 온 한국 사회의 근대성의 역사적 체험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마음의 레짐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김종엽, 2014: 18-28). 이 질문은 특히 ‘마음’의 역사성과 연관해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내포한다. 마음은, 가령 아날학파의 심성사 연구들이 잘 보여주듯이, 장기지속적 시간성 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조감을 통해 살펴보면, 생존 문제야말로 근대 한국인의 집합기억, 집합표상, 집합심리의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자명한 것으로 드러난다. 한국은, 19세기 후반에 파국적으로 열린 ‘만국공법의 세계’, 즉 제국주의 열강이 구성한 국민국가들의 경쟁 공간에 던져짐으로 근대로 진입하였고(1894년 체제), 식민화를 거쳐 1950년의 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분단/냉전 구조(1950년 체제)를 맞이하였고, 개발독재,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구조(1997년 체제)를 체험한다. 이 세 가지 중요한 국면들을 통과하면서, 민족-국가의 형성 그 자체가 ‘생존’의 프레임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민중의 삶은 노골적 생존의 투쟁으로 인지되었고, 국민의 기초적 안전과 먹고 사는 것을 보장해주는 소위 “생존의 정치”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가치로 설정되었다(권태준, 2006: 17-20). 가령, 구한말의 위기상황이 일군의 유교지식인들에 의해 “힘에 의한 생존”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해석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박노자, 2005: 28-9, 51). 이 시기에 박은식, 주시경, 이광수, 현상윤 , 송진우, 이승만, 윤치호, 유길준, 서재필, 신채호, 한용운 등의 선각자들은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 1836-1916)와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에 의해 번역된 서구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힘이 곧 정의’ 라는 시각,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라는 논리, 그리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한다’는 처방으로 구성된 ‘우승열패’의 신화를 통해 민족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고투를 벌였다(신용하, 1995; 전복희, 1996; 박성진, 2003; 우남숙, 2011).

    근대로의 전환기에서 여론과 민족적 집합의식을 선도한 이들에게 ‘생존’이란 조선왕조의 문약(文弱)을 서구적 문명개화를 통해 극복하는, 외경(外競)에서의 승리라는 의미를 획득했다. 그러나 세상을 온통 경쟁의 공간으로 파악하는 이런 관점은 이미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에 이르는 각 생존단위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유길준은 이렇게 쓴다. “대개 인생의 만사가 경쟁을 의지하지 않는 일이 없으니 크게 천하 국가의 일부터 작게 한 몸 한 집안의 일까지 실로 다 경쟁으로 인해서 먼저 진보할 수 있는 바라, 만일 인생에 경쟁하는 바가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 그 지덕(智德)과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가?”(유길준. 1971. 『유길준 전집』 제 4권. pp 47-8. 박노자(2005: 231)에서 재인용). 신소설을 분석하면서 최정운은 생존주의적 상상계가 개인들이 상호작용 수준으로 하강해 있음을 발견한다. 예컨대, 이인직을 비롯한 다수의 신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표상된 사회는 연대 없는 홉스적 사회상태, 후에 이광수가 사용한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무정(無情)한 사회’로서, “사회적 유대가 사라지고 각자 개인들로 흩어져서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기회만 되면 누구에게 무엇이라도 빼앗으려 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최정운, 2013: 93). 1894년이라는 단절점(청일전쟁, 갑오경장, 동학농민운동)을 기점으로 변화된 새로운 근대세계는 민중에게 “생존이라는 것이 온 사회에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예외 상황을 창출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하릴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혈의누』의 메아리는 당시에 획득된 민중적 지혜를 표상한다(최정운, 2013: 112, 117).17)

    한국 근대성의 기원적 트라우마를 이루는 이런 아노미적 상황과, 그 이후 전개되는 유사한 장면들의 반복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생존주의적 태도’의 동인을 제공했다. 왕조의 패망, 식민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중은 “생존 동기를 행동과 사유의 가장 기본적인 근거”로 삼게 되며, 이런 점에서 냉전 체제 하에 형성된 고도의 생존불안 의식을 정치적으로 동원했던 박정희 정권에서 특히, 민중의 생존욕망과 불안은 근대화의 심리적 동력으로 활용되었다(김흥수, 1999: 10; 박찬승, 1996: 353). 냉전 체제 역시 국가/민족 수준의 생존과 개인 수준의 생존이 절대적으로 문제가 된 한국전쟁의 기억과 체험의 심각성을 그 심리적 토대로 삼고 있다. 국가는 공산화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존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한국 민중은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을까? 한 구술사 연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박수호는 전쟁 현장과 포로수용소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고 편을 가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에게 전쟁은 조국이니 이데올로기니 좌우니 하는 모든 것을 떠나 ‘내’가 살아남으려는 생존투쟁 그 자체였다. 그에게 ‘전쟁’과 ‘가난’은 구별되지 않았다. 돈 없고, 백 없고, 힘없는 무지렁이 백성에게 한국전쟁의 의미는 국가에 의지하지도 말고, 남에게 의지하지도 말고 오직 ‘내’ 의지와 노력으로 정직하게 땅을 일구며 비정치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오유석, 2011: 186).

    열강에 둘러싸여 존속을 보장받지 못한 민족-국가가 냉전적 대치 상황을 돌파해 나오면서, 또한 절대 빈곤에 다수 민중이 노출되어 목숨의 최저선이 위협받던 저개발 상황을 돌파하면서, 한국 사회는 생존의 정언명령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다른 가치들, 즉 벨라(Robert Bellah)가 말하는 시민종교들을 성공적으로 창출해 내지 못했다. 따라서 “오랜 역사적 고통과 파시즘의 지반 위에 세워진 우리 근대성의 사회문화적 지평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인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단순한 ‘생존’의 차원 너머에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한 공간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강요된 생존 이데올로기의 핵심에는 속물근성이 필연적으로 들어 있었다”는 지적은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다(장은주, 2008: 27-8). 수많은 난리와 파국의 상황들을 거쳐 오면서 한국의 민중과 엘리트는 결국 힘의 차등으로 구성된 사회(시민사회로부터 국제사회까지)에서 살아남는 것은 강자이며, 결국 살아남는 것이 선이라는 원초적 생존주의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가장 소중한 삶의 철학으로 어린 세대에 학습시켜왔다.18) 한국 근대의 사회적 상상은 이런 의미에서 ‘사회진화론’의 그것에 근접해 있다. 한국의 근대는 아담 스미스의 근대(자유주의), 루소의 근대(민주주의), 맑스의 근대(사회주의), 뒤르케임의 근대(공화주의), 혹은 베버의 근대(합리주의)와도 모두 다르다. 한국 근대성을 규정하는 사회풍경은 속류화된 다윈의 근대, 즉 생존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진화론적 상상력 위에 건설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의 근대가 위기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사회의 다수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을 했다는 ‘경험주의적’ 언명이 아니다. 생존 그 자체는 생명의 자기보존 본능과 충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악도 아니고 추도 아니다. 생존은 인간학적 상수로서, 유기체의 절대적 과제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고투한다는 사실과, 어떤 사회가 특정 역사적 조건 하에서 ‘생존’을 절대가치로 설정한다는 것은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는 상이한 사태들이다. 한국의 근대성은 전방위적 생존의 위기를 겪은 동시에 그 체험을 ‘생존’이라는 문제틀로 적극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생존주의’라 불릴 수 있는 마음의 레짐을 중층적으로 형성해 왔다. 21세기 청년 세대의 생존주의는 그와 같이 역사적으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생존주의적 태도, 가치, 지향, 즉 마음가짐들이 사회적으로 선행하지 않았다면,지금처럼 강력하고 전일적인 방식으로 한국 청년들의 마음을 강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힘은 행위자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존주의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은 구한말, 냉전, 그리고 세계화 시대의 세 가지 상이한 생존의 의미론들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성에 대한 탐구를 동시에 요청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21세기 한국의 청년 세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시에, 근대 한국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공포와 불안, 꿈과 아픔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회학적 모험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16대학에서의 일상적 관찰(가령, 의도하지 않은 참여관찰)을 통해 살펴보면, 학과의 선택이나 전공 혹은 진로와 연관된 문제에서 청년들이 놀라울 정도의 수동성 혹은 친밀성 속에서 부모들의 견해에 의존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 시대 청년들의 외적 자유분방함, 세련됨, 개인주의적 태도를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위축된 내면, ‘엄마’나 ‘아빠’에 대한 부담과 애정과 의존과 억압된 분노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면서 이와 동시에 거기 안주(安住)하고자하는 욕망 등이 착종된 흥미로운 심리풍경이 나타난다. 제임스 코테(James Côté)의 지적에 의하면, 이는 한국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후기 근대에 접어들면서 부모가 청년들에게 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청년들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이슈들, 가령 직업 선택, 정치/종교적 신념, 삶의 스타일의 선호 등에 대해서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Côté, 2007: 223).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청년 연구는 반드시 그들의 부모에 대한 연구, 부모와 청년의 다각적 관계, 상호작용의 형식들, 영향력과 애정의 방식과 강도에 대한 연구, 그리고 청년 세대가 유년기 이후 현재까지 자신들의 인성, 성격, 습성, 가치를 육성해 오는데 영향을 끼친 주요한 제도적, 담론적, 도덕적 장치들에 대한 정교한 연구를 동반해야 한다고 본다.  17최정운에 의하면 근대 한국인이 보여준 사회창출 능력의 두 극단은 신소설에 표상된 홉스적 상황과 80년 광주에서 형성된 절대공동체로 양분된다. 한편에는 사회의 소멸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다윈적 상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계급과 신분과 성별과 출신이 모두 녹아 사라진 자리에서 형성되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상태가 있다. 생존주의는 물론 전자의 상황에서 솟아나오는 마음가짐이다.  18한국의 ‘엄마/어머니’는 이런 생존주의의 숭고한 주체이자 그 희생자이다. 남성 가장(家長)에게는 생존주의를 도덕적으로 은폐하고 위장할 수 있는 언술적 자원들이 있었지만, 출산/양육/교육/생계/질병 등의 가장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직접적 책임을 지고 있던 여성들은 생존주의적 태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생존주의는 무교(巫敎)와 선택적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 무교는 주로 여성들에 의해 가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용적 수단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무교에 특징적인 역현(kratophany) 종교성 혹은 힘숭배(kratocult)는, 무교가 도덕적 선/악을 가리고 초월적 성스러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견지에서 민중의 삶의 생존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힘’에 대한 숭배를 중요한 구성원리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하거나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필요한 힘이 최우선시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무교적 수단을 동원하여 혈로(血路)를 모색해왔고, 그것은 특히 남성의 묵인 하에 여성(어머니)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중요한 것은 종교시스템으로서의 무교 혹은 샤머니즘이 아니라(개신교를 포함한 한국의 제도 종교들에 습합되어 있는) 무교적 삶의 양식 혹은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Kim, 2014: 51-4).

    Ⅴ. 사회적인 것의 환상

    생존주의란 당혹스런 개념이다. 왜냐하면, 생존은 그 본성상 주의(主義)와 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존은 주의 이전, 성찰 이전, 사고 이전의, 생명의 충동과 힘의 영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존재로서 생존에의 경향성을 벗어던질 수 있는 존재는 없으며,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존재들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생존에의 열망은 자연적인 것이며, 선악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존이, 조직된 주의가 될 때, 지향된 가치가 될 때, 집합적 마음의 짜임의 원리가 될 때이다. 생존이 주의로서 나타날 때, 그것은 무언가의 붕괴를 지시하고 있다. 뒤르켐이 정확하게 간파한 것처럼, 인간의 사회적 삶은, 만약 그 구성원들이 순수한 목숨의 존재로서 먹고 살고 살아남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면, 성립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성한 사회는,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기초요건을 초과하는 지평에 대한 공유된 표상(토템 혹은 성스러운 것)위에 건립되어 있다. 그것이 아무리 현실화될 수 없는 것 이건(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들), 그것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건(사랑, 구원, 평화와 같은 가치들), 사회를 만들어 산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생존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 너머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타자와의 삶을 욕망하고 소망한다는, 고프먼적인 의미에서의 ‘위선’이나 ‘거짓’을 연기하고 신앙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도덕이란 바로 그 방법적 거짓의 차원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주의가 되어 버린 생존’은 바로 이 차원의 붕괴의 징후이다. 생존주의는 사회적인 것의 성스러운 환상이 벗겨진, 인간의 생물학적 나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처절하고 슬픈사상, 사회적인 것의 불가능이 생산하는 마음의 형식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위자들의,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몸짓들의 원리이다. 21세기 청년 세대의 생존주의는 한국 근대성에 배태된 ‘생존주의’의 막막한 두께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청년세대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좀 더 청년적인 삶의 태도를 요구하거나 혹은 이들에게 값싼 위로와 힐링의 언어를 던지기에 앞서, 한국 사회 전체의 생존주의적 경로의존성을 차갑게 직시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삶의 세목에서 펼쳐지는 실천들 속에서 청년 세대는 자신들을 운명처럼 규정해 오는 시대와 구조의 쇠우리와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 그들은 생존주의에 속절없이 함몰되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들을 창출하면서, 생존 너머의 어떤 세계에 대한 공유된 환상을, 사회 라는 ‘성스러운 환상’을 다시 만들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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